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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나는 왜 성경을 우롱하는가?
글쓴이 : 적 그리스도  (155.♡.33.235) 날짜 : 2006-07-19 (수) 01:45 조회 : 33869

서론.  나는 왜 성경을 우롱하는가?  _?xml_: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한국의 개신교는 카톨릭의 교황제도를 비난한다. 그러나 필자가 단언하건대 교황은 저 머나먼 땅 이탈리아의 바티칸에만 살아 숨쉬고 있는 게 아니다. 바로 대한민국 이 땅에서도 수많은 교황들이 서로 난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황들도 십자군을 선동하여 끊임없이 십자군 전쟁과 마녀사냥을 선동한다. 한국의 교황들도 면죄부를 팔아서 천국장사를 한다. 한국의 교황들도 성모 마리아상과 성화(=기복신앙과 미신행위)로 어리석은 우민들을 현혹한다.한국의 교황들도 창조과학회를 조직하고 지원하여 갈릴레이의 후계자들을 어떻게 하든 종교재판소로 끌고 오고 싶어한다. 한국의 교황들은 최고급 양복에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여신도와 유부녀를 능욕한다.

 

그리고 한국의 교황들은 마치 민법 몇 조 몇 항 처럼 자신의 필요에 따라 성경구절을 요리조리 끄집어 내어 쉴새없이 외친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장 10절]

 

목사는 교인들에게 절대 복종, 절대순종을 강요하는데 문제는 복종해야 할 대상이 애매모호하다는 점이다. 예수도 여호와도 이 세상에 없다. 이 세상에 충성해야 할 대상이 사실상 목사와 교회밖에 없다. 이러한 충성심을 밑바탕으로 한국의 목사들은 스스로 교황이 되었다.

 

진보 기독교인들이 물러가라고 소리쳐도 교황은 성경구절로 맞받아친다! 한 가정, 아니 수많은 가정이 파탄 나도 교황은 성경구절을 끄집어 내며 절대로 물러가지 않는다! 여자가 목사를 하겠다고 하니 이번에도 교황은 성경구절로 맞받아친다! 교황은 계속해서 성경구절을 요리조리 끄집어 내어 십자군 전쟁과 마녀사냥을 선동하고 다닌다. 교황은 자신의 입맞에 따라 성경구절을 요리조리 끄집어 내어 수많은 종류의 면죄부를 만들었다.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에 안 드는 자들을 공격하기 위해....목사들은 성경구절을 능수능란하게 끄집어 내며 교인들을 능욕하고 있다.

 

성경이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하자고 성경을 찾아보면 그런 내용이 있으며, 이교도들을 싹쓸이 죽여 버리자고 성경을 찾아보면 그런 내용이 있으며, 귀신들림에 의해 병이 걸린다는 미신(베뢰아 귀신론)을 옹호하기 위해 성경을 찾아보면 그런 내용이 있다.

 

성경이 진리라고 성직자들은 귀가 아프게 말한다. 진리는 이렇게 구호 형이 아니어도 진리이다. 독재자가 민주주의를 더 크게 외치듯 성경도 외친다. 오직 성경만이 진리라고 말이다. 수 차례의 개정을 통해 수세기에 걸쳐 왜곡과 첨가와 누락과 변형이 가해져 오늘에 이른 성경이 우주를 창조한 자의 말씀이고 진리인가? 성경을 누가 만들었는가? 성경이 만들어진 역사를 보라. 그리고 성경에 속했다가 버려진 외경들을 찾아 비교해 보라. 가장 오래된 사본들과 오늘날의 성경을 비교해보라. 성경에 원본은 없다. 사본(寫本)들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수천 종류를 넘는 사본들은 역시 모사를 거듭한 모사본(模寫本)인데다가 내용 또한 똑같은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다. 지금, 여러분의 손에 쥐어진 성경은 신학자들이 수많은 사본들을 비교하고 검토해서 만든 것이다. 어떤 사본을 토대로 번역을 했느냐에 따라서 성경의 내용이 약간 틀리기도 하는데, 일부 과격한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보는 성경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사탄이 변개한 것이라고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구약성경을 보라! 당신은 결코 구원이 아니라 율법으로 저주를 퍼붓는 중동지방의 한 종족의 신을 추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구약 속의 여호와는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추잡하고 저질스러운 저주를 퍼붓는 고대 이스라엘의 추잡한 잡신일 뿐이다.

 

또한 성경 속의 신화는 철저히 주변국들의 신화를 모방한 것들뿐이다. 천지창조, 노아의 방주, 바벨탑, 아브라함, 모세의 출생, 욥기, 잠언, 등 모두다 바빌론의 유수 때 유대인들이 수메르 신화와 주변국들의 신화를 모방했을 뿐이다.

  

성경 속에서 바라보는 윤리는 어떠한가? 근친상간과, 여성비하, 장애인비하, 이방인들에 대한 저주등 온갖 추잡한 것들로 얼룩져 있다.

 

성경 속의 사건들은 전부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있는가? 아니다! 바빌론 유수이전에 존재했던 다윗과 솔로몬 왕국을 포함해서 그 이전의 사실은 모두 신화요 허구이다. 오히려 역사는 성경 속의 사실이 허구임을 증명하고 있다. 예수 역시 그와 너무도 비슷한 행적을 보이는, 또 다른 메시아들이 로마제국시대에 예수보다 먼저 등장했었다.

 

성경은 과학적인가? 아니다. 성경은 철저히 고대 관념적이다. 지구를 만들고 난 후에, 태양과 달, 별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고대인의 관점을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낡은 책일 뿐이다. 갈릴레이를 종교재판에서 무릎 꿇게 만든 것도 바로 성경이었다. 그리고도 성경이 진리라고 말하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세뇌 당한 성경의 창세기를 과학으로 증명해 보이겠다고 창조과학회까지 조직했다. 성경자체가 비과학적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거니와, 성경의 기초적 신학적 지식이 전무한 광신자들의 추태라고 할 수 있겠다. 목사들은 이 사람들에게 신학교에서 배운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오히려 부추기고 지원을 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멀게 만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성경의 문자 속에서 자유로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는 분명히 오류가 있다. 여러분이 성경의 오류를 인정하지 못하고 성경의 문자 속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한다면, 성경구절을 끄집어내는 성직자들의 비합리적이고 몰상식한 짓에 언제까지고 질질 끌려 다닐 수 밖에 없는 가련한 영적 노예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 나라의 기독교인들은 서구인들이 버린 중세기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에서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실상 오늘날의 한국의 개신교인들이 야기시키는 배타성은 목사들이 솔직하게 신학교에서 배운 진실을 신자들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데에 있다. 따라서 자신의 종교가 완벽하고, 성경이 무오 하다고 철썩 같이 세뇌 당한 기독교인들에게 다른 종교는 전부 우상숭배요, 미신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법이 무서운지도 모르고, 단군상을 파괴하고, 불상을 때려부수고, 절에 불을 지르고, 지하철에서 고성방가를 하는 기독교인들이 끊임없이 사회문제를 야기시킨다. 물리적인 배타행위뿐만이 아니라 마귀, 사단, 사탄, 이단, 가라지 등의 아름다운(?) 용어들을 사용해서 끊임없이 타 종교와 사상을 짓밟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 기독교인들에게 대의명분으로 주어지는 것은 다름아닌 성경이다. 이방신의 우상을 불살라 버리고, 낫으로 찍어버리고, 제단을 파괴하라고 성경에 나와있기 때문이다. 즉, 기독교의 배타성은 바로 성경과 기독교의 교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약속에서의 이방인들에 대한 저주는 도를 벗어난다. 이방인들은 갓난아기까지 죽이고 임산부의 배까지 갈라 씨를 말려 버리라고 여호와가 명령하며, 이방인 남자들은 칼날로 쳐죽이고, 이방인 여자들은 강간하고, 이방인들에게 평화를 약속하고 쳐들어가서 노예로 삼으라는 구절까지 나온다. 구약속의 여호와는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비 기독교인들을 잔혹하게 죽인다 하더라도 성경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단군에 대해서 그의 역사적 실체를 부정하는 교수들 역시 기독교인들이다. 그러나, 이미 서구에서는 예수 자체가 허구의 인물이라는 학설이 힘을 얻고 있는 마당이다. 구약의 역사는 말할 필요도 없다. 단군의 실체를 부정하면서, 정작 서구에서는 예수가 신화적 허구의 인물이라는 설이 힘을 얻어간다는 것은 어찌 모르는가?

 

성경을 맹신하고 오류라고는 전혀 없는 신의 영감을 받아 쓰여진 책이라고 철썩 같이 믿도록 세뇌 당한 한국의 개신교도들은 성경속의 배타적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광신도화 되어 버렸다. 즉, 성경이 개신교인들의 배타적 교리를 형성하고 있는 근원적인 뿌리인 셈인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단순한 종교경전으로 취급하지 않고, 오류라고는 전혀 없는 무오함의 책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있는 한 그들의 배타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여기저기 칼을 휘둘러 대는 것일까? 기독교는 어쩌다가 이다지도 악착같은 전투자세로 이웃종교를 맞아야만 하게 되었는가?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가? 무엇 때문에 시선을 돌려 넓은 세상을 보려 하지 않고 그 좁은 성경과 인색한 여호와라는 울타리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려고 하는 것인가?

 

의심하는 정신, 그것은 인간으로써, 그리고 민주시민으로써 당연히 거쳐가야 할 과정이다. 그 과정을 무시하고 억제시킨 결과는 우매한 광신자를 만들뿐이며, 민주주의의 다원성도 인정하지 않는 꽉 막힌 배타적 인간만을 양산할 뿐이다. 더욱이 과학마저도 부정하면서 인간이 걸어가야 할 발전을 퇴보시킨다. 의문을 갖는 것은 본능적인 인간의 본성이지만 기독교에서는 그 본성을 억압한다. 사단이니 마귀니 시험에 든다느니 죄악시 한다. 어째서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지적 호기심을 원천 봉쇄하는 것인가? 왜 기독교의 신은 자신을 의심하지 말라고 하는지 한 번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오히려 어떤 종교는 끊임없이 회의하고 물음을 찾으라고도 한다. 기독교의 신은 무지몽매한 인간들만 좋아하는 것은 아닌가? 기독교의 출발부터 오류에서 비롯된 때문은 아닌가? 기독교는 결코 보이고 싶지 많은 비밀을 숨겨두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기독교 내에서 믿음과 의심은 정녕 병립할 수 없는 것인가? 특히 한국 개신교의 문제는 무조건적인 믿음의 강요와, 믿지 않는 자에 대한 무시와 비난, 의심과 회의를 원천 봉쇄함으로써 인간을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이다. 이런 것들의 폐해는 필연적으로 무지한 기독교와, 허약한 신앙과, 배타적 신앙을 낳게 된다.

 

회유와 협박, 불안과 공포, 물질적 축복의 갈구 등을 통해 기독교에 입문한 사람들은(어쩌면 거의 대다수이지만), 진리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자신의 부족분을 채우는 것으로만 만족하기 쉽다. 불안한 사람은 평화로우면 그만이고, 몸이 아픈 사람은 마음의 위안을 얻으면 그만이고, 빈궁한 자신의 신에게 부를 가져다 달라고 기도를 드리며 위안을 얻으면서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상태로 거기에서 안주하고 마는 것이다. 안주하고 만족하는 순간, 치열한 과정을 통해 진리를 깨달음으로 인해 의심이 해소된 것이 아니라, 의심 자체가 불필요한 상태에 머물게 되어버린다. 이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의심하지 않는 신앙, 의심 없는 믿음! 언뜻 강고한 신앙인의 자세로 착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복제품일 따름이다.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따져보아도 도대체 의심 없이 믿음이 있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믿음이 아니고 맹신이 아니지 않는가! 한참 지적인 활동이 왕성할 청소년들에게 반복적인 찬양을 시키면서, 사고하고 의심할 능력을 마비시키는 것이 한국 기독교의 교회교육이다. 사회를 개혁하고 이웃을 섬기는 복잡하고 불편한 과정으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 회의해야 할 성인들에게, 단순하기 짝이 없는 교회 포스터 쪼가리 따위로 "그대는 구원받았다!"며 마취시키는 것이 한국 기독교의 기본 패턴인 것이다.

 

신학대학의 많은 학생들뿐 아니라 일반 교회의 많은 신자들도 조금만 자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처음 기독교를 접하고 당연히 회의를 갖지 않는가? 그런데 그들이 종래 어떻게 변해가는가? 기독교가 지난 2천년 동안 회의하는 지성과 자의식을 잠재웠다. 그래서 의구심, 회의, 지적 호기심을 죄악시 하기 위해 "성령을 의심하지 마라"라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자신들이 믿는 신의 전지 전능이 부족해 결국 마귀나 사탄까지 동원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거의 세뇌의 기술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반복적인 행위와 반복적인 억압, 동류의식 그리고 죄의식의 주입해서 말이다.

 

기독교인들은 흔히 "신의 뜻은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으니 그냥 믿어 버려라"라는 주장을 흔히 한다. 정녕 믿음이 그런 것인가? 답이 나오지 않은 것을 일단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인 것인가? 그것이 확신인가? 그것이 신앙인가? 믿음으로 얻는 진리, 그것이 무슨 구구단인가? 그렇다면, 무당이 섬기는 신도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으니 그냥 믿어버리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과연 치열하고 처절한 의심의 터널에서 헤매보지 않고서 쉽사리 얻을 수 있는 진리 따위가 있겠는가?  있다 한들, 혹시 광신자의 싸구려 진리가 아니겠는가? 종교와 학문을 착각하는 것 아니냐고 물으실 분께서도 계시겠지만, 철저하게 믿음의 복종만 강요하는 한국 기독교는 비난 받아야만 한다. 기독교에 뭐 대단한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사기만 치지 말라는 거다.

 

목사들 자신 역시 신학교에서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딴판인 신학을 배웠다. 기독교에 대해서 의심하는 것이 죄악이라면, 신학 따위 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왜 신학생들은 목사가 되기 위해서 신학교에서 신학을 배워야 하는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눈으로 기독교라는 종교를 보기 위함이다. 만약 목사의 조건으로 믿음이 우선이라면 광신자를 목사로 세우는 것이 낫다. 그러나, 그런 광신자의 관점으로는 신자들을 올바르게 이끌어 낼 수가 없다. 그런데, 목사들은 신학교에서 제대로 된 신학을 배우고서는, 주일날 강단에 서서는 신도들에게 엉뚱한 설교를 하는 것이다. 한국의 목사들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신학을 배우고서도 신자들에게 맹신과 광신을 요구하고 있다.

 

제발 거짓을 가르치지 말자. 믿기지 않아도 믿으면 알 수 있다고 사기 치면서 사람 바보 만들지 말라. 그리고 의심하는 자에게 질문을 허락하라! 손 붙잡고 시험에 들었다는 둥, 기도하자는 둥, 의심을 가지게 된 사람을 자신과 똑같은 바보로 끌어내리지 마라.

 

기독교인 되기 쉽다고 한다. 일단 믿으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무조건 믿는 자세, 즉 맹신하는 믿음은 어린이들의 태도에 불과 할 뿐이다. 하기야 기독교인들은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최고로 평가한다. 이러니 말이 통하는가? 어쨌든, 그 믿음, 혹은 믿는다는 착각, 혹은 진실에 대한 외면 속에서 스스로 도취되어가고 자기방어 집단 합리화와 끊임없는 동어반복! 신은 인간을 로봇으로 만든 적이 없다. 상식과 지식과 몸과 영혼을 모두 내던져 부딪히면서 치열하게 자연에게 도전하면서 삶의 난제들에 대한 숨은 해답을 찾아가는, 그런 의심 많은 진정한 인간으로 다시 거듭나길 기대한다. 필자는 그러한 점에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성경을 재조명해 보도록 자료를 올린 것 이다. 여러분의 마음에서 조금의 의구심이라도 생긴다면 필자는 그것으로 만족하겠다.

 

그러나 성경의 모순을 이야기 하고자 하면 읽기 전부터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끝까지 읽지 못하고 중도에서 내팽개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관념은 그 벽이 두터워 깨뜨리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관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를 꽁꽁 얽어 메어 버리기 때문에 꼼짝달싹 도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관념을 깨뜨리고 나면 우물 속에서만 살던 개구리가 지상으로 뛰어 나오듯이 지금까지 살아온 틈 바구니에서 빠져 나와 새로운 세상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세상은 지혜로운 세계이며 무지에서 해방되어 인간 본연의 권위를 되찾는 세계이다. 관념을 헐고 타성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누리도록 하라. 만약 지금까지 지녀온 관념을 소중하게 여기어 관념을 깨뜨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을 끝까지 독파하고 난 후에도 여전히 그 관념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독파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내 팽개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필시 패배자 이거나 낙오자일 뿐이지 결코 승리자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왜냐하면 합리적인 이성 앞에 무릎을 꿇은 맹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흔히 감성(느낌 또는 영감)으로 읽어야 한다고 기독교인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진리는 만인이 공유할 수 있어야만 진리일수 있는 것이다. 성경이 진리이기 위해서는 성경은 더욱 더 감성으로 읽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성경을 감성으로 읽어야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진리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기독교는 2천년간이나 기반을 닦은 종교라고 한다. 그러나, 2천년간 철학과 사색을 통해 기반이 닦인 종교가 기독교라고는 하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기독교 치하에서 정상적인 비판이 용인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가? 긴 탄압의 터널을 지난 기독교 역사는 서구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짧은 역사를 가진 한국에서만 판을 칠뿐이다.

 

물론, 성경에는 고린도 전서13장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같이 훌륭한 구절도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린도 전서의 한쪽 편에는 여성을 비하하는 구절도 함께 공존한다. 성경에는 훌륭한 말씀과 함께, 한쪽 구석에는 배타성과 인종차별, 성차별등과 수많은 사악한 것들이 함께 공존한다. 목사들은 그 중에서 그럴듯한 구절들만을 끄집어내서 설교를 할 뿐이다.

 

기독교인들의 배타성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성경을 파헤치지 않는 한 그들의 광신행위는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광신자들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성경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 교회에서는 아직까지도 모세오경이 모세에 의해 쓰여졌다고 가르쳐주는 마당이니, 우리가 그들의 눈을 뜨게 해주어야만 한다. 이제, 기독교인들에게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함께 손잡고 공존할 수 있는 여유, 오류를 개선할 용기, 진실을 구별할 줄 아는 지식과, 진실 아님을 고발할 배짱이 요구되고 있다.

 

이제부터 언급할 사실들은 기독교인들을 시험하는 악마의 속삭임도 아니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성경을 보라. 객관적인 시각에서 여러분의 신을 보라. 그리고 기독교와 성경이 형성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냉담히 보라. 여러분의 마음속에 의심이 생겼다면, 그것은 한 명의 진정한 인간으로 가기 위한 위대한 첫걸음이다.

 

성직자들은 성경으로 교인들을 우롱한다. 자신의 노예로 삼기 위해......

그러나 이제부터 필자는 성경을 우롱할 것이다. 여러분들을 성경의 문자 속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여러분은 성경의 문자에서 자유로워져라!

 

 

적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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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25일. 첫 번째 판 배포

2006년 4월27일. 다섯 번째 개정증보판 배포

 

일러두기: 본 서에서는 개역한글판 성경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개역한글판의 뜻이 난해하거나 뜻이 잘 전달이 안될 경우에는 공동번역판을 추가로 사용하였다. 인용한 서적에 관해서는 []안에 표기 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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