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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8 ]
글쓴이 : 제삼자  (180.♡.240.52) 날짜 : 2019-11-10 (일) 11:17 조회 : 1999 추천 : 7 비추천 : 0
[ 1 : 8 ]

고려말의 부패상 중 하나로서 세제(稅制)를 빼놓을 수가 없다.
농사꾼 1명에게서 각종 명목으로 세금을 착취해 가는 놈은 평균 8명 이상으로 되어 있던 사회가 바로 고려 왕조였다.
이 세금제도의 썩은 모습을 깊이 연구하던 조준은 혁명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조준이 정도전과 함께 이성계를 중심으로 역성 혁명을 일으키게 되는 동기였다.

기득권 세력은 나라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의 것을 양보하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현재의 우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 값의 고고행진 현상도 이러한 기득권 세력의 못돼 먹은 행패의 한 단면이 아니고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젊은들 사이에서 3포니 5포니 헬조선이니 하며 그 신음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있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자기 잇속을 차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기득권 세력들의 잔혹한 움직임을 보노라면 치가 떨릴 정도이다. 그래 안 그래?

기득권 세력은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외세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짓도 주저하지 않는다.
기득권 세력(고위 통치자, 고급 지식인, 종교 지도자 등등)은 언제라도 상황과 기회가 맞아 떨어지면 매국노 또는 매혼노로 돌변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이나 병자호란이 발발하기 직전 또는 을사늑약과 한일합방이 이루어지기 직전의 기득권 세력들의 모습은 매국노(또는 매혼노)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것도 그래 안 그래?

이런 모습이 모두 기득권 세력의 작태이다.

인류 역사상 단 한번의 예외가 있기는 하다. 바로 미국의 기득권 세력이었다.
1929년부터 시작된 세계 경제대공황을 해결하려는 로즈벨트 대통령의 조치(모든 재산권이 휴지 조각으로 바뀌는 정책)를 조용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 참고; <루즈벨트>가 아니라 <로즈벨트>가 가장 가까운 발음이라고 함)
다시 말해서,  세계 경제대공황 당시 미국의 기득권 조직은 엄청난 자기의 재력이 부서지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 정신이 마침내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음 할 수 있었던 기초 정신이라고 제삼자(필자)는 믿고 있다.

그러나, 그 외의 어떤 경우에도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한 예는 인류 역사상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혁명, 왕권 교체, 정권 교체 그리고, 기득권 조직의 해체만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는 해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리 한국은 기득권이나 재산권을 박탈하는 것이 아닌데도 금융실명제조차도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하는 못나니 나라로 판명이 났(었)다.

예수교는 가장 더럽고 질깃질깃한 기득권 조직이다. 예수교는 어떤 조직보다도 썩어 문드러진 질긴 기득권 조직이다. 예수교는 왜 그렇게 더럽고 질긴 기득권 조직이 되었을까?  
예수교는 무능한 사람이 자기 능력 이상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예수교는 자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매국노(또는 매혼노)적 방법은 물론 인간의 정신까지도 말살시키려고 한다.
그 방법 중 가장 흔한(쉬운) 수단이 바로 상대를 이단으로 몰아 처형하여 없애 버리는 것이다.
14~17세기에 유럽에서 벌어졌던 <마녀사냥>이라는 끔찍한 행패도 예수교가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치던 더러운 모습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또, 특히 예수교의 무섭고 더러운 현상 중 하나는 "예수교가 권력에 아부하는 근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도 남는다."는 사실이다.

** 예수교가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꼬리를 치며 아부하는 모습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과 예수교 역사 속에서 그 모습을 무수히 발견할 수가 있다. 
    재물(돈)은 왜 그렇게 또 밝히는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보라. 내(예수교의 신 여호와)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제물로 바친 짐승의 내장과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말라기 2;3)

[만군의 여호와(예수교의 신)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3;10)

예수교의 신(神) 여호와는 인간을 어르고 치면서 십일조(돈)를 강요하고 있다. 
심지어, 십일조(돈)를 바치지 않는 종자(사람?)의 얼굴에다 짐승의 <똥>을 쳐 발라 주겠다고 으르렁거리기까지 하고 있다. 헐!

예수교의 각종 헌금(착취)은 대단하지만, 소위 추수감사절이라는 절기에는 또 다시 1년 소득의 십일조(1/10)를 강요하기도 한다.
따라서, 중산층 이하 예수쟁이들은 경제적으로 영원히 일어설 수가 없다. 마치, 고려 시대의 일반 백성이 수탈당하던 상황과 별로 다르지 않다.
아니, 돈푼께나 쥐고 있던 가정이 예수교 때문에 아주 망하는 예도 많다. 대박!

고려 말기의 썩었던 세제(稅制) 즉, 농사꾼 1명당 착취자가 8명이었던 것보다도 더 많은 재물을 착취하는 조직이 오늘날 우리 나라 예수교의 중대한 문제라고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은 현상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 한국의 어려움은 그 제 일차적 근원이 예수교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상은 예수교와 경제적 측면 만을 간단하게 조명한 것이다.

예수교와 우리 인류의 정신적 측면은 이보다 한층 더 심각하다. 우리 한국은 예수교의 도태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나라이다.
이 악마적 거대한 기득권 집단을 문닫게 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앞날은 없을 것이다.
예수교에 의한 썩은 정신으로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예수교 악마들의 어전 회의(御前會議)]


* 어전 회의(御前會議)--예전에, 임금 앞에서 여러 신하들이 모여 국가의 큰일을 의론하는 회의를 이르던 말.
 
 
예수교의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는 여러 번에 걸쳐서 똘마니(마귀)들을 모아 놓고 회의(會議)라는 것을 하기도 한다.
인간 세상으로 따지자면 어전 회의라고나 할까? 실제로는 못된 짓을 하기 위한 작당의 음모(陰謀)라고 함이 옳다.
 
조선 왕조의 제14대 임금이었던 선조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기 위하여 소위 어전 회의라는 것을 7번 열고 있는데, 그 때 선조의 입에서 나온 말 중 제삼자(필자)가 기억하고 있는 것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이순신은 글 좀 하나?"

백전 백승의 명장이요, 7년의 왜란을 승리로 이끈 수군 통제사의 신상을 왕이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임명한 장군이요, 자기의 왕 자리를 지켜 준 명장! 그것도 도원수인 권률 장군 다음 자리라 할 수 있는 수군 통제사의 신상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다. 헐!
 
그런데,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도 재미 있는 어전 회의 장면이 있다.
세상 돌아가는 모든 것을 훤히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임의로 주관한다는 여호와가 똘마니(마귀)들을 모아 놓고 어전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실제로는, 못돼 쳐먹은 것들이 작당하여 인간 세상을 들쑤시려고 음모를 꾸미는 작태라고 보면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각설하고)
 
히브리(여호와가 특별히 선택한 백성) 왕국은 1.사울왕 2.다윗왕 그리고 3.솔로몬왕, 이렇게 초기 3대 동안만 통일을 유지하다가 그 이후에는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쪽의 유다, 이렇게 두 개의 왕국으로 쪼개진다.
유다 왕국은 다윗의 자손들이 비교적 조용하게 대를 이어간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국은 유혈 혁명으로 세워진 나라여서, 정통성 없이 정정이 불안정하여 19명의 역대 왕 중 9명이 혁명으로 정권을 잡는다.
 
그래서,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의 할 일은 안정된 유다 왕국보다 불안정한 이스라엘 왕국 쪽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된다. 이 현상이야 말로 여호와의 수상한 행동이 아닐 수가 없다.
세상이 좀 더 복잡하고 어수선 해야, 그 사이 사이에다 여호와의 업적(?)을 적당히 쑤셔 넣기가 좋은 법이다. 대박!

어쨌든, 안정된 유다 왕국보다는 항시 정국이 불안정한 이스라엘 왕국 쪽에서 여호와의 활동은 많게 된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도 이스라엘 왕국의 이야기가 되겠다.
 
이스라엘 왕국 제 7대 왕에 아합이란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사람은 여호와가 보기에 전무 후무할 정도로 악독한 왕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22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다.
이스라엘 왕국의 왕들 중에는 3일 짜리 왕도 있고, 7일 짜리 왕도 있었다. 그런데도, 여호와는 그 악독한(?) 아합을 22년 동안이나 놔두고 있다. 대박!
 
더욱 재미있는 현상은 예수교 최고 최대의 선지자(여호와의 앞잡이) 엘리야가 이 악독한 아합왕 시대에 활동한 것으로 꾸며 놓는다.
전무 후무할 정도로 악독한 왕의 22년 체제가 지나가자 마침내, 여호와는 "아합왕을 죽여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그 중대한(?) 일을 처리하기 위하여 <어전 회의(御前會議)>가 열리게 된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여호와께서 그 보좌(의장석)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萬軍=똘마니 마귀들)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지명=죽을 곳)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하시니,

하나(A)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B)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靈=똘마니 마귀 중 하나)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아합)를 꾀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저(靈=똘마니 마귀 중 하나)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가로되, "내(靈)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여호와의 앞잡이)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열왕기상 22;19~22)
 
 
(1) 여호와(예수교의 우두머리 신)가 의장석(보좌)에 앉아 있고,
 
(2) 그 좌우에 만군(萬軍=똘마니 마귀들)이 시립하여 있고, (삼엄하다.)
 
(3) A, B, C 등등의 영(靈=역시 마귀)들이 위원 자격으로 모여 있다.
 
(4) 의장(여호와)이 안건을 내놓고 있다. "누가 아합왕을 길르앗 라못(전쟁터=죽을 곳)으로 꾀어내겠는가?"
 
(5) 영 A; "이렇게 하겠습니다."
 
(6) 영 B; "저렇게 하겠습니다."
 
(7) 영 C; "내가 아합왕을 꾀어 낼 자신이 있습니다."
 
(8) 의장(여호와); "어떤 방법으로 꾀어 내겠는가?"
 
(9) 영 C; "내가 거짓말하는 영으로 변하여, 아합왕의 자문역으로 있는 선지자(여호와의 앞잡이)들의 입에 들어가면 능히 아합왕을 전쟁터로 꾀어 낼 수 있을 겁니다."

(10) 의장(여호와); "좋다. 그럼 결정됐다. 영 C의 방법으로 아합왕을 죽이기로 한다. 가라. 너는 성공하리라."
 
(11) 여호와; "땅땅땅....."
 
 
마침내, 아합왕은 선지자(여호와의 앞잡이)들의 농간에 속아 길르앗 라못(전쟁터=죽을 곳)으로 갔다가 전사했다고 한다.
아합왕만 죽나? 전쟁인데....(이 게 여호와의 섭리이다. 대박!)
  
아합왕이 죽는 일은 여호와와 그 똘마니들이 어전 회의에서 결정하여 만든 <필연>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 세상의 어떤 무엇으로도 변형시킬 수 없는 신의 계획 즉, <필연>이다.
그런데, 바이블에는 "우연히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되어 있다. 헐! (왕상 22;34)
 
 
그래도, 예수쟁이들은 "바이블은 일점 일획도 하자(잘못)가 없는 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이 담겨 있는 진리의 말씀이다."라며 못난이 짓을 계속하려는가? 세상에나!

이런 모습이 모두 기득권 세력의 작태이다.

인류 역사상 단 한번의 예외가 있기는 하다. 바로 미국의 기득권 세력이었다.
1929년부터 시작된 세계 경제대공황을 해결하려는 로즈벨트 대통령의 조치(모든 재산권이 휴지 조각으로 바뀌는 정책)를 조용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 참고; <루즈벨트>가 아니라 <로즈벨트>가 가장 가까운 발음이라고 함)
다시 말해서,  세계 경제대공황 당시 미국의 기득권 조직은 엄청난 자기의 재력이 부서지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 정신이 마침내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음 할 수 있었던 기초 정신이라고 제삼자(필자)는 믿고 있다.

그러나, 그 외의 어떤 경우에도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한 예는 인류 역사상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혁명, 왕권 교체, 정권 교체 그리고, 기득권 조직의 해체만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는 해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리 한국은 기득권이나 재산권을 박탈하는 것이 아닌데도 금융실명제조차도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하는 못나니 나라로 판명이 났(었)다.

예수교는 가장 더럽고 질깃질깃한 기득권 조직이다. 예수교는 어떤 조직보다도 썩어 문드러진 질긴 기득권 조직이다. 예수교는 왜 그렇게 더럽고 질긴 기득권 조직이 되었을까?  
예수교는 무능한 사람이 자기 능력 이상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예수교는 자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매국노(또는 매혼노)적 방법은 물론 인간의 정신까지도 말살시키려고 한다.
그 방법 중 가장 흔한(쉬운) 수단이 바로 상대를 이단으로 몰아 처형하여 없애 버리는 것이다.
14~17세기에 유럽에서 벌어졌던 <마녀사냥>이라는 끔찍한 행패도 예수교가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치던 더러운 모습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또, 특히 예수교의 무섭고 더러운 현상 중 하나는 "예수교가 권력에 아부하는 근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도 남는다."는 사실이다.

** 예수교가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꼬리를 치며 아부하는 모습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과 예수교 역사 속에서 그 모습을 무수히 발견할 수가 있다. 
    재물(돈)은 왜 그렇게 또 밝히는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보라. 내(예수교의 신 여호와)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제물로 바친 짐승의 내장과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말라기 2;3)

[만군의 여호와(예수교의 신)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3;10)

예수교의 신(神) 여호와는 인간을 어르고 치면서 십일조(돈)를 강요하고 있다. 
심지어, 십일조(돈)를 바치지 않는 종자(사람?)의 얼굴에다 짐승의 <똥>을 쳐 발라 주겠다고 으르렁거리기까지 하고 있다. 헐!

예수교의 각종 헌금(착취)은 대단하지만, 소위 추수감사절이라는 절기에는 또 다시 1년 소득의 십일조(1/10)를 강요하기도 한다.
따라서, 중산층 이하 예수쟁이들은 경제적으로 영원히 일어설 수가 없다. 마치, 고려 시대의 일반 백성이 수탈당하던 상황과 별로 다르지 않다.
아니, 돈푼께나 쥐고 있던 가정이 예수교 때문에 아주 망하는 예도 많다. 대박!

고려 말기의 썩었던 세제(稅制) 즉, 농사꾼 1명당 착취자가 8명이었던 것보다도 더 많은 재물을 착취하는 조직이 오늘날 우리 나라 예수교의 중대한 문제라고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은 현상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 한국의 어려움은 그 제 일차적 근원이 예수교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상은 예수교와 경제적 측면 만을 간단하게 조명한 것이다.

예수교와 우리 인류의 정신적 측면은 이보다 한층 더 심각하다. 우리 한국은 예수교의 도태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나라이다.
이 악마적 거대한 기득권 집단을 문닫게 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앞날은 없을 것이다.
예수교에 의한 썩은 정신으로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깜깜한 밤 중에]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깜깜한 밤이 어떤 것인지 실감하지 못할 것 같다.
전기불의 보급으로 요즈음의 밤은 사실 밤이라고 할 것도 없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시골의 밤은 바로 옆 사람도 전혀 보이지 않는 깜깜 절벽이었다.

물론 휘영청 달이 밝은 밤은 예외가 되겠다.

구한 말(대한제국 시절), 서울에 전차길이 처음 놓이고, 
그 차고가 동대문 옆에 있을 때, 밤이면 그 차고의 정문에 전등이 켜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적어도 몇 사람이 모여 서서 밤새도록 그 전등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사람이 없을 것 같기도 하련만,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비를 맞으며 그 전등을 올려다 보며 서 있었다고 한다.
빗물에 젖으면서도 또, 바람이 세차게 부는데도 그 불빛은 꺼지지 않고 영롱했던 것이다.

이것보다 더 멋진 구경거리가 어디에 또 있었겠는가?



예수가 물(커다란 호수) 위를 걸었다고 한다.
그 때가 새벽 4시, 그러니까 깜깜한 밤 중이었다고 한다.
(물론 예수쟁이 중에는 새벽달이 떠 있었을 수도 있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다.)


얘기는 대략 이러하다.

예수가 떡 5덩이와 생선 2마리로 5,000명을 배불리 먹이고 난 후,
제자들을 먼저 배에 태워 건너 편으로 보내고, 예수 자신은 모였던 군중을 해산시키고, 그리고 기도하기 위하여 산으로 올라갔었다고 한다.

시간이 한참 흘렀으므로 배가 멀리 갔을 것은 분명하다.
그 때가 새벽 4시경이었다고 한다.


[제자들은 마침 역풍을 만나 배를 젓느라 몹시 애를 쓰고 있었다.
이것을 보신(?) 예수께서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 쪽으로 오시다가 그들 곁을 지나쳐(?) 가시려고 하였다.
그것은 새벽 4시경(?)이었다.]

(마가 6;48)


(1) 마태에 보면, 배가 수 리(數里)나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새벽 4시경 즉, 깜깜한 밤에 이 배가 예수의 눈에 보였다는 말인가?


(2) 몇 시간 후면, 호수에 역풍이 분다는 것을 예수는 몰랐는가?
구태여 제자들을 위험한 곳으로 먼저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
물 위를 걷는 기적질을 만들기 위하여 준비 작업을 한 것인가?


(3) 몇 시간 전에 떠난 배를 예수는 걸어서 따라갔는가? 아니면 달려서 따라갔는가? 아니면 날아갔나?
그런데, 예수는 제자(배)들 곁을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고 돼 있다.
제자들을 돕지 않고 그냥 지나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4) 제자들은 예수가 호수 위로 걸어오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 알고 놀랬다고 한다.
깜깜한 밤 중에 호수나 바다 위에서 무엇이 보일까?


(5) 파도치는 물 위를 걸으려면, 사람도 오르락내리락 상하 운동을 하면서 걸어야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걷는 모습이 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예수가 물 위를 걸었다."라고만 씌어질 문장일까?

바이블에서 설명되는 기적질들이 모두 맹물에 몽둥이 삶은 맛 같이 심심한 이유가 무엇일까?
모두가 없었던 허구를 두뇌 조직이 엉성한 자가 골방에 앉아서 조작해 낸 허구임을 증명하는 장면이다.


(6) 이 <물 위를 걷는 기적질 장면>의 앞 뒤 과정에는 모순과 궤변이 많지만 글을 짧게 줄이기 위하여 더 말함을 삼가겠다.


모세 때, 
깜깜한 밤 중인데다가 여호와가 덧씌운 흑암(구름)으로 더 더욱 깜깜 절벽인 때에 홍해(바다)가 갈라졌다고 한다.
그런데도 애굽의 장병들은 그 바다가 갈라진 것을 알기도 하고, 그 갈라진 사이로 히브리 족속들이 행진하는 것도 알아서, 이를 진멸시키려고 따라 들어갔다고 한다.

마침내, 애굽 장병들은 그 바다에 빠져 전멸됐다고 한다. 되는 말이라고 생각되는가?


엘리야 때, 
그의 사환(종)은 깜깜한 밤 중에 갈멜산에서 지중해 쪽을 보다가 <손바닥 만한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3년 동안 가믈다가 비가 오려고 기상 변화를 일으키는 장면이다.
 
깜깜한 밤중에 바다 쪽의 하늘에 손바닥 만한 구름 조각이 보일까? 되는 말이라고 생각 되는가?

이상으로 (1) 예수 (2) 모세 (3) 엘리야 중, 깨알 같은 부분에서 모순(궤변) 한 가지 씩을 지적 해봤다.
예수교에서 예수와 모세 그리고 엘리야가 누구인가?

설명이 더 필요할까?
 
 
 
* 사실은 수 십 년 이상을 예수교에 다녀야 겨우 알똥말똥한 바이블 내용이지만.





[맹물에 몽둥이 삶은 맛]


[...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 뿐이니이다."
 
(예수)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12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5,000명이나 되었더라.]

(마태 14;13~21)

이것이 소위 예수가 시행했다는 저 유명한 5병 2어(五餠二魚)의 기적질이다.
떡 5덩이와 생선 2마리로 여자와 아이는 계산하지 않고, 장정 5,000명을 먹이고도 12바구니가 남았다고 한다. 대박! 그리고 헐!


1) 기적질 현상이 예수의 앞에서 벌어졌을까, 예수의 손에서 벌어졌을까? 
    아니면, 배식(配食)을 하고 있던 예수의 제자들의 손 안에서 벌어졌을까?

    한 사람에게 배식을 하고 나면, 연속적으로 또 한 사람 분의 떡(또는 생선)이 생겨났을까? 
    아니면, 한꺼번에 많은 양의 떡(또는 생선)이 쌓인 것을 한 사람 분 씩 떼어다가 배식을 했을까?

어떤 경우일지라도, 배식하는 사람이나 배식을 받는 사람이나,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적질 현상에 놀라워했을 것이다. 그래 안 그래?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먹는 일에 바쁠까, 아니면 그 기적질 현상에 놀라서 정신이 없었을까?

배식하는 사람의 손에서, 한 사람 분이 주어지고 나면, 또 한 사람 분이 생겨날 때마다,
사람들의 눈과 입에서는 "저런저런 또 생겨나네. 저것 봐, 저걸 보라구. 또 생기네."
등등의 수라장적 현상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것도 그래 안 그래?

또, "먹고 남은 것이 12바구니가 남았다."는 따위의 장난 같은 기록을 남길 여지는 없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 5병 2어 기적질이 사실이라면 그 부수적 장면은 책 한 권으로는 부족하리 만큼 쏟아져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배불리 먹었다."는 말도 쓸 자리도 없어야 말이 된다. 먹는 일은 다들 잊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두들 정신이 빠져서 먹는 일을 잊어 버리고 있었다."고 기록됐어야 말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엄청난 기적질 내용이 맹물에 몽둥이 삶은 맛처럼 심심하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5병 2어> 기적질은 없었던 것이라는 말이다.
바이블 기자 정도의 두뇌가 골방에 앉아서 상상으로 꾸미다 보니 이런 엉터리 구상이 나온 것이리라.
소문만 풍성한 그 소문만으로도 지금의 교회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비교해 보라. 저렇게 엄청난 기적질이 벌어졌었다면 어떠했을까를.


2) 모여 있는 장정이 5,000명이라 했다. 
   그렇다면, 여자와 아이들을 합치면 적어도 10,000명은 되지 않았을까?
 
여기에서 제삼자(필자)는 <수수께끼> 문제를 하나 내겠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군중 집회를 가지려면,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독자들은 무엇이라고 생각되는가?

정답은 <화장실>이다. 
여기의 기적질 장소는 <빈 들>이라고 했다. 
사막과 돌짝밭으로 이루어진 중동 지방이므로 나무 하나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 있지 않았을 것이다.

자. 이제 배불리 먹기까지 했다. 
10,000명 정도가 그런 곳에서 작은 일, 큰 일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상상이 되는가?
그런데, 그 중요한 화장실 얘기가 없다. 왜일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서?
바이블 기자는 커다란 집회라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그 세계에 대한 경험도 계획도 짤 수 없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5병 2어> 기적질은 없었던 것이란 말이다. 그래 안 그래?


3) 바이블 기자는 예수 이름으로 종교가 성공하려면, 이스라엘 족속의 영웅(?) 모세와 엘리야를 등에 업어야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여호와쟁이들의 나라이므로 당연하다.
    그런데, 
모세와 엘리야에게서 전해 내려오는 기적질은 꽤나 많다.
    따라서, 예수도 여기에 준하는 기적질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아니, 예수를 여호와의 아들로 만들기 위해서는 예수가 그들보다 더욱 멋지고 큼직한 기적질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모세가 바다를 가르고, 엘리야가 강을 갈랐다니까 예수는 아예 바다(호수) 물 위를 걸어가는 것으로 만드는 것처럼.

그러나, 당시 바이블 기자들의 아이디어들은 그만그만해서, 
모두가 비슷비슷할 뿐, 파격적으로 '꽝'하고 터져 나오는 것이 없다. 
기적질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바이블 기자들의 머리에는 새롭고도 뛰어난 아이디어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엘리야(또는 그 제지 엘리사)가 조금의 음식으로 100명을 먹이는 기적질을 시행했다니까,
예수 쪽에서는 어린 아이와 여자를 빼고도 5,000명을 먹였다고 뻥을 좀 크게 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새롭고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없었던 것이다.
 
예수가 시행했다는 <5 병 2어> 기적은 없었다.
아니, 예수교의 모든 기적질은 한 개도 빼놓지 않고 전혀 없었던 사기극일 뿐이다.
없었던 사기극이기 때문에 내용 기록이 모두 <맹물에 몽둥이 삶은 맛>이 되고 있는 것이다. 헐!
 
실제로 실시된 기적질이라면,
그 5,000명(아니, 10,000명)의 난리 법석으로 세상이 떠나가고,
그 상황에 대한 기록은 상상을 불허하는 다른 모양을 하게 됐을 것이다. 그래 안 그래? 다시 한 번 더...그래 안 그래?




[완전(完全)과 절대(絶對) 그리고 전지전능]

* 완전(完全)--필요한 요소를 모두 갖추어 부족함이나 결함이 없음.
* 절대(絶對)--그 자체로서 아무런 제약이나 구속을 받지 않고 어떤 조건에도 붙지 않는 상태. 견주어 맞설만한 것이 없음.
* 전지전능(全知全能)--모든 것에 대하여 다 알고 있으며 행하지 못하는 일이 없음.


그런데, 말이다.
완전(完全)과 절대(絶對) 그리고 전지전능(全知全能) 등등의 현상에서도 아직 무엇인가 모자라서 발전도 하고 퇴보도 하며, 결함도 있고 미비점이 있어서 이를 보완도 하고 때를 기다려 완성시키기도 하고 그러는가?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전지전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녀석들은 완전(完全)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 존재(絶對的 存在)라고도 일컬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또는 예수)에게는 견주어 맞설만한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서 아무런 제약이나 구속을 받지 않고 어떤 조건에도 얽매이지 않는 그런 존재가 바로 여호와(또는 예수)라는 것이다. 헐!
오죽하면, 이 녀석들은<천지를 창조하는 어처구니없는 짓>까지 저질러 놓았을까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신(神=여호와)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 2;52)


 
예수는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아들로서 삼위일체(三位一體) 중 하나라고 한다.
즉, 성부(여호와)와 성신(성령) 그리고 성자등, 이렇게 삼위(三位) 중에서 성자에 해당하는 녀석이 바로 예수라고 한다.
그렇다면, 위의 바이블 내용에서 보듯, 전지전능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이고 완전한 신이라는 예수 녀석도 지혜가 자라기도 하고 발전도 하고 완성되는 과정도 있고 그러는가?

"키(몸뚱이)도 자란다."던데, 그러면, 나이도 먹는가? 그렇다면, 예수(또는 여호와)는 어떤 모습(연령 층)으로 영생하는가?
늙은 모습으로 영생하는가? 젊은 모습으로 영생하는가? 아니면, 어린 아이 모습으로 영생하는가?
사람이나 신(神)이나 영생하려면, 어느 연령 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가장 이상적인가? (궁금하지 않아?)

 
"예수(여호와의 아들)는 성장하면서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라고 한다. 예수가 사람으로부터 받는 사랑도 점점 더 크게 자란다는 뜻이다.

그런데, 예수의 일생 동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예수는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서 엄청 커다란 배척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낭떨어지에서 밀쳐 죽이려고까지 할 정도로 극심한 미움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예수는 마침내 고향 사람들에 의하여 체포되고 결국은 십자가에 처형된다.
이런 현상들이 완전이요, 절대인가? 그리고, 이런 현상이 예수가 성장하면서 받은 고향 사람들의 사랑인가? 헐!

무슨 변명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이상의 현상들은 전지전능에 포함될 현상은 아닐 것이다.


정말로 한 가지만 물어보자.

 
예수교는 (1) 이단으로 취급되던 태동기가 있고 (2) 발전하던 시기가 있고 (3) 전성기를 누리다가 (4) 쇠퇴기를 지나 (5) 마침내, 와해기에 접어들고 있다. 그래 안 그래?
그렇다면, 전지전능하고 완전과 절대를 겸비한 신이란 녀석이 주관하는 예수교에도 발전과 퇴보라는 그러한 순서가 있는 것인가?
 
일점일획도 하자(잘못)가 없고, 진리만 담겨 있다는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도 수시로 재해석도 하고 정비를해야 된다고 한다.
바이블에 대한 재해석은 발전인가 퇴보인가? 그리고, 예수교의 변명은 발전인가 퇴보인가?


시작할 때나 마지막이나 항상 완성된 상태의 완전만이 있어야 그것이 전지전능과 절대라고 해야 될 것이다. 
아니, 시작도 끝도 없이 항상 완전과 절대만 있어야 그것이 여호와(예수)의 할 일과 모습이어야 될 것이다. 그래 안 그래?

그런데, 바이블(=예수교)을 보면, 완전과 절대 속에서도 무엇인가 할 일이 남아 있는 예수교(여호와=예수)이다. 
완전과 절대 속에서도 무엇을 더 완성(완전)하려고 활동하는 여호와(=예수)! 이런 현상이 성립되는 말인가?

예수교(여호와=예수)의 존재 자체는 참인가 아니면, 모순(거짓=가짜)인가?
아직도, 예수교를 혹세무민의 집단 또는 복마전(마귀가 숨어 있는 소굴)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예수교가 완전하고 전지전능한 신(神)이 인도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헐!



지금 그 회사 이름을 잊었지만, 미국에 유태인이 운영하는 회사가 있었다.
그 회사의 사훈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이미, 알고 있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사 훈>

(1) 고객은 항상 옳다.
(2) 만약, 고객이 틀렸다면 역시 (1)을 보라.


제삼자(필자)도 장사꾼으로 생업을 삼고 있던 때가 있었다. 그 때,
"고객은 항상 옳다."와 "고객은 왕이다."를 얼마 동안 점포 내부에다 써서 붙여 놓았었다.
고객들이 점포에 들어와서 그 글을 보며 싱글 싱글 웃기도 하고, 고객들이 오히려 제삼자(필자)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기도 했었다.

어느 미국의 영화 제작사가 제삼자(필자)의 점포를 배경으로 17분 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미전국 대학원,
특히, <인류학 전공 대학원>에 교육용으로 배포한 적도 있다.


위의 사훈은, 철저하고도 완벽하게 고객에게 친절과 봉사를 베풀어, 자기네 공장 제품을 한 가지라도 더 팔아 가능한 한 한 푼의 돈이라도 더 욹어 내려는 대단한 상술(商術)이다.
마찬 가지로, 예수교가 인류 역사 속에서 펼치는 눈웃음, 친절, 봉사, 교육, 의료활동 등등의 모든 활동은 혹세무민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교로 끌어들여, 금품과 시간과 노력을 철저하게 갈취하려는 수단과 방법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투망(投網) 작업일 뿐이다.

지구 위의 모든 나라가 예수교의 이 투망 작업에 말려들어 피를 뿌리는 역사를 점철시켜 왔다. 여기에 가장 늦게 말려든 나라가 불행하게도 우리 대한민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이여! 하루 속히 대오각성(大悟覺醒)할찌어다.
돈과 시간과 노력을 빼앗기는 게 문제가 아니다. 예수교에 의하여 정신(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보다 무서운 현상이 또 있을까?
예수교는 나라의 장래와 직결되는 중차대한 문제이며 무서운 중병(重病)이다.




참고; 가끔 각종 TV프로에서는 <영재>들에 관한 것도 방영하고 있다.
      수학, 어학은 물론 체육, 음악, 각종 예술 등등에 이르기까지 천재들에 관한 정보가 비일비재하다.
      제삼자(필자)가 알고 있는 어느 여자 아이(7세)도 각종 과목에서 벌써 고등학교(12학년) 수준에 달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각종 능력(또는 각종 재주과 성품 등등)은 연령에 관계 없이 습득될 수 있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지전능하다는 신의 경지일 경우, 그 능력이 어떠해야 될까?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신(神=여호와)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 2;52)
      이런 말이 성립될 수 있는 경우일까? 예수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능력이 완비된 상태였어야 되는 말 아닐까?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19.♡.30.247) 2020-01-30 (목) 06:04
["이 세상에 믿을 놈 한 놈도 없다."-예수]


"이 세상에 믿을 놈 한 놈도 없다."고 한다. 예수의 말이다.
그러면서, 제 놈(예수=여호와) 자신을 믿어 달라고 떼를 쓰고 이유는 뭘까? 되는 경우일까? 세상에나!

그래도,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예수)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예수)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예수)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마태 24;3~28)

(1) 많은 사람이 와서 서로 자기가 예수라며 미혹(마음이 흐려지도록 무엇에 홀림)할 것이란다.
그런데,  여기에 속아서는 안 된다는 게 예수의 신신 당부이다. 세상에 이렇게 고약한 짓이 있을 수 있는가? 

참고; 여기에서 <많은 사람>이란 바로 목사(또는 신부)를 비롯한 예수쟁이들일 것이 분명하다.
        비(非) 예수교인 또는 다른 종교인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전도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지하철, 길거리, 광장 등등의 장소는 물론 교회 안에서 떠들어지는 전도 및 설교 등은 예수쟁이들의 전유물이다.
        그런데, 이들 예수교(쟁이)에 의하여 떠들어지는 어떤 것에도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따라서, 예수쟁이들의 말은 어떤 것도 따라서 안 된다. 큰 일난다. 예수의 말이다.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예수의 말이다. 대박!

(2) "'보라. 예수가 여기 있다.' 혹 '예수가 저기 있다.'하여도 믿지 말라.'"
또는 "'보라. 예수가 광야에 있다.'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예수가 골방이 있다.'하여도 믿지 말라."
그러면, 도대체 어쩌라는 말일까?
 
오늘 날, 세상에 난립되어 있는 예수교 종파는 35,0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이들 종파들은 모두 서로 자기가 정통파라고 으르렁대며 대가리 박터지게 싸우고 있다. 
이런 현상은 결국은 어떤 놈이 진짜 예수인지 몰라서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이렇게 더럽고 악독한 짓이 그렇게 관람할 만한가? 꼭꼭 숨어 있으면서 그게 뭣하는 짓일까?

사람의 천당행 지옥행을 이런 식으로 판가름해야 되는가? 아서라.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는 그 뜨거운 유황불 지옥에는 예수(또는 여호와)가 제일 먼저 들어가야 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예수(또는 여호와)를 쏙 빼닮은 예수쟁이들이 뒤따라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래 안 그래?

(3) 제삼자(필자)는 40여 년 전에 미국에서 신학(종교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어느 목사에게 다음을 질문했었다.

"예수가 여기 있다고 하여도 속지 말고, 저기 있다고 하여도 현혹되지 말라면, 우리 인간은 어떻게 처신해야 되겠는가?"

그렇지만, 그 목사(박사) 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참 후에 제삼자(필자)가 계속해서 첨부하여 질문했었다.

1. "교회고 어디고 가지 말고, 골방에 홀로 앉아서 신앙 생활을 하라는 말인가?"
2. "또는 썩었건 말았건, 어느 교회를 한 번 정했으면, 평생 동안 그 교회의 귀신이 되라는 말인가?"
3. "아니면, 어디에 진짜 예수가 있는지 그것을 찾아서 이 교회 저 교회로 전전해야 하는가?" 라고 질문했었다.

그래도, 그 목사(박사)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4) 인간은 신(神)을 알아 낼 능력이 없는 존재이다. 그래 안 그래?
이렇게 무능한 인간을 상대로 장난치는 악마가 어떻게 신이란 말인가?

책임(責任)은 권한(權限)이 있을 때 물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권한(신을 알아 볼 능력)이 없는 인간에게 책임(신을 믿고 받드는 일)을 묻고 있는 예수(또는 여호와)는 재대로 생겨 쳐 먹은 신일까?
예수(또는 여호와)는 과연 신의 자격을 가진 녀석일까? 헐!

(5) 예수교(쟁이)들은 100%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신(神)의 섭리가 아니라, 사람 스스로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교(쟁이)들은
1.자신도 속이고, 2.사람도 속이고, 마침내, 3. 신(神)도 속이며, 평생을 살아 가는 사기꾼들이다.
이보다 더 무섭고도 큰 죄가 있을까? 따라서, 예수쟁이들은 반드시 100% 다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대박!

참고; 예수쟁이들의 삶을 "신앙 생활"이라 한다. 다른 말로 믿음 생활이라 한다.
        그러나, 진짜 예수쟁이라면 "불신앙 생활"을 해야 옳다. 왜냐 하면, 어떤 것도 믿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예수가 신신 당부하는 진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아멩!
        알아 들었는 지 모르겠네. "불신앙 생활" "어떤 것도 믿지 말라." 이것이 진짜 예수쟁이의 길이다.

       "세상에 믿을 놈 한 놈도 없다."고 떠드는 녀석이 "나(예수)를 믿으라."고 강요하고 있다니, 이런 걸 아이러니하다고 하던가?


우스개 얘기 하나!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자기 학급 아동들에게 숙제를 내 주었다. 다음 날, 숙제 검열 시간이 되었다.
거의 모든 아동들이 맞은 답이건 틀린 답이건 간에 숙제를 해 왔다.
그런데, 한 아동 만은 그 숙제를 해 오지 않았다. 예수를 착실하게 믿는 집안의 아들이었다.

"왜, 숙제를 해 오지 않았니?"
"어제, 저녁을 먹은 후, 숙제를 하려고 책가방을 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숙제를 어찌나 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숙제를 하고 싶을 때, 숙제를 했으면 됐을 텐데 왜 하지를 않았느냐?"
"그 때,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숙제를 하고 싶은데 그것을 하지 않고 참느라 혼났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 참는 일은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역시, 이 세상에 믿을 수 있는 놈은 없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그렇다. 사람의 속 마음은 사람끼리도 모르고, 전지전능하다는 신(여호와 또는 예수)도 그것을 모르기는 마찬 가지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사람의 속 마음을 잡아 보려고 발버둥치는 여호와(또는 예수)의 지랄발광을 구경해 보기로 하자. 대박!

"저 가슴 속에는 능구렁이가 몇 마리나 들어 있을까?" 또는, "저 가슴 속에 좀 들어 가 봤으면 좋겠다." 
믿어 지지 않는 남자(남편)들을 향해서 한탄하는 여자들의 말이다. 그렇다. 사람의 마음 속을 알아 내기란 참으로 어렵다. 
전지전능한 신이란 작자도 사람의 속을 알 수가 없기는 인간과 마찬 가지인 모양이다. 
그래서, "예수교의 근본 교리(바이블)는 인간의 속 마음을 알아 보기 위해서 지랄발광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강요하고 또 강요하고, 그렇게 하고도 모자라서 공갈 협박으로 어르고 치기도 하고, 저주와 악담으로 악을 쓰며 얽어 매고, 코를 뚫어서 끌고 다니면서도 그 인간을 믿지 못해서 지랄발광하는 여호와(예수)의 행패는 안타깝기까지 하다. 
제 녀석은 상대(사람)를 믿지 못하면서, 사람에게는 제 놈을 믿어달라고 지랄발광하는 꼴을 보노라면 측은하기까지 하다.


자, 그러면,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여호와가 가라사대)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神)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그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신(神)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신(神)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與否)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신명기 13;1~3) 

(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즉, 기적질)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神)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꾀더라도 따라가지 말라.)" 

누군가가 나타나서 <기적질>을 보여 주며 꾀더라도 거기에 현혹되어 따라가지 말라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사람 중에 속임수 없이 <기적질>을 보여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설마, 기적질을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현상을 들먹이며 떠들어 대는 말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만약, 어떤 사람이 황해 바다를 갈라 한반도에서 중국 산동반도까지 걸어서 건너 갈 수 있는 <기적질>을 시행하면서, "사람들아, 여호와(예수)를 버리고 "나를 믿고 받들라. 그렇지 않으면, 지옥으로 보내겠다."고 외치고 있다고 하자. 
이럴 때, 이 기적질을 보여 주며 위협하는 말에 반기를 들며 저항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무엇을 어쩌라고?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神)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꾀어도 좇아가지 말라."고? 

실제로, 이적과 기사를 시행하는 신이 있다면, 여기에 굴복되지 않을 사람이란 없을 것이다. 
예수교도 이적과 기사를 보여 주면서 사람을 꾀기도 하고 재물을 후려 내는 집단이 아니던가? 
아니, 실제로는 아무 것도 보여 준 적 없이 말로만 떠들어지고 있는 이적과 기사가 예수교의 속임수 아니던가? 


모세라는 녀석도 10여 가지 기적질을 보여 주었다고 말로만 떠들면서 여호와라는 신을 인류 사회에 끌어 들였으며, 예수라는 녀석도 물 위를 걷기도 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적질을 보여 주었다고 말로만 떠들면서 자신을 여호와의 아들이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이적과 기사(즉, 기적질)란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적과 기사를 들먹이며 떠들어 대는 위의 바이블 구절은 존재하지 않는 허구(虛構=거짓)일 뿐이며, 또, 이적과 기사를 보여 줬다고 떠들어 대는 여호와(예수)의 행적도 없었던 궤변과 모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2)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神)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본래부터 알고 있던 신(여호와)만 믿고 받들어야 하고, 새로이 알게 된 다른 신을 따라가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 쪽에서 <본래>부터 알던 신이란 것이 있는가? 아니, 본래부터 알거나 새롭게 알게 된 신이란 것이 있는 한 건가? 
여호와라는 신도 모세가 처음으로 소개하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던 녀석이며, 예수도 2,000여 년 전에는 아무도 모르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무엇을 어쩌라고? '"네가 본래부터 알지 못하던 다른 신(神)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꾀어도 따라가지 말라." 고? 웃기신다!

어쨌든, 잘 된 일이다. 여호와 건 예수 건 간에 두 녀석 모두 우리 한국 사람이 본래부터 알 던 신이 아니다. 
그리고, 본래부터 알지 못하던 신을 따라거서는 안 된다는 게 여호와의 명이다. 어떤가? 한국 사람은 여호와(예수)를 따라야 될까, 배척해야 될까? 
존재할 수 없는 현상(기적질)을 들먹이며 떠들어 대는 짓도 어처구니 없는 짓이며, 여호와나 예수를 본래부터 알던 신으로 결정해 놓고서 짖어 대는 짓도 성립될 수 없는 모순임을 증명해 줄 뿐이다. 


(3) 다시 한 번 더 보자. 
"이적과 기사(즉, 기적질)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그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기적질이라는 현상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기적질이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하며 떠들어지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는 궤변일 뿐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실제로 기적질을 일으킨다면, 여기에 굴복되지 않을 간덩이 부은 사람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바이블 속에는 예수(여호와)가 일으키는 수 없이 많은 기적질들을 볼 수 있다. 그 기적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교의 신 여호와(예수)에게 굴복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여호와(예수)에게 굴복되었던 인간들이 즉시 즉시 배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바이블 속에서 보여 줬다는 기적질들은 없었던 것이다. 또, 여호와(예수)에게 굴복된 사람도 없었던 일이란 것을 증명해 준다. 
말로만 <믿었다> <믿지 않았다> <굴복했다> <배반했다>를 거듭해서 반복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단 한 가지도 있어 본 적이 없는 허구(거짓말=가짜)들이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그래 안 그래?

(4) "이는 너희 신(神)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신(神)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與否)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이 세상에서 누군가가 기적질을 보여 주며 사람을 꾀는 이유는 "사람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만을 받들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아 보려고 시험해 보시는 것이란다." 
전지전능하다는 녀석도 <한 길 사람 속을 몰라>서 미치고 팔짝 뛸 일이라는 말이다. 헐!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속을 알 수가 없어서 여호와(예수) 쪽에서 안달 복달 지랄발광하는 광란이다. 

결국, 신(여호와=예수)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므로, 결국은 종교로 밥을 먹고 살아 가는 자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발버둥치는 더러운 모습이 바로 바이블의 내용이다. 


이왕지사, 사람이 사람 속을 몰라서 애태우는 모습도 보기로 할까?
(그런데, 이 알 수도 없고, 변화무쌍한 모습 때문에 인생을 한 번 쯤 살아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대박!)

확실한 증거는 없으나 마누라가 외간 남자와 간통하는 낌새가 보이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기에 예수교의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가 제시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1) 우선, 여호와에게 적당한 예물을 바친 후, (이래 저래 돈은 뜯어 내고 본다.)
(2) 커다란 그릇에다 물을 담아 놓는다. 
(3) 예배당 바닥의 쓰레기를 빗자루로 쓸어 모아, 준비해 놓은 물에다 넣는다.
 
(4) 그리고 또, 종이나 가죽에다 저주의 내용(말)을 써서 이것도 물에다 넣는다.
   (저주의 내용이 씌어진 두루마리를 저주해 놓은 물에다 빨아야 함. 저주가 물에 철저히 녹아들도록)-헐!
(5) 저주와 악담이 2중 3중으로 녹은 쓰레기 물을 간통 혐의가 있는 마누라에게 마시게 한다. 저런! 

(6) 저주와 악담이 섞인 더러운 물을 마셨는데도 아무 탈이 없으면, 간통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면 되고, 
그것(성기)이 썩어 문드러지면, 
(7) 그 여인(마누라)은 간통한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는 것이다. 대박! 역시, 대단혀! 


참고; 여성의 성기를 한국 바이블에서는 <넓적다리>라고 한다.


 아래는 아내의 간통죄 여부를 밝해 내는 여호와의 가르침(방식)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이 아내가 실행(失行)하여 남편에게 범죄하여 타인과 정교(情交)를 하였으나, 
그 남편의 눈에 숨겨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그 여자의 더러워진 일에 증인도 없고, 
그가 잡히지도 아니하였어도, 
그 더러워짐을 인하여 남편이 의심이 생겨서 그 아내를 의심하든지, 
또는, 아내가 더렵혀지지 아니하였어도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서 그 아내를 의심하거든, 
그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그를 위하여.... 
보리 가루를....예물로 드리되.... 

제사장은 그 여인으로....여호와 앞에 세우고, ..... 
성막(聖幕=예배당) 바닥의 티끌(쓰레기)을 취하여 
물에 넣고....제사장은 저주(詛呪)가 되게 할 쓴 물을 자기 손에 들고, 
여인에게 맹세시켜.... 

제사장이 저주(詛呪)의 말을 두루마리에 써서 그 글자를 그 쓴 물에 빨아 넣고, 
그 여인으로 그 저주가 되게 하는 쓴 물을 마시게 할지니.... 

그 물을 마시운 후에.... 
만일 여인이 몸을 더렵혀서 그 남편에게 범죄하였으면, 
그 저주(詛呪)가 되게 하는 물이 그(녀)의 속에 들어가서....그 배가 부으며 
그 넓적다리(여성의 성기)가 떨어지리니, ..... 
그러나 여인이 더럽힌 일이 없고 정결하면 
해(害)를 받지 않고 잉태하리라...."] 

(민수기 5;11~31) 

** 역시, 이 세상에 믿을 수 있는 놈은 없다. 그 중에서도 여호와(또는 예수)야 말로 믿을건덕지가 깨알 만큼도 없다.
   여호와(또는 예수)는 제 녀석 입으로 "아무도 믿지 말라."고 가르쳐 놓고는 "오직, 제놈만 믿으라."고 지랄발광이다.
   되는 말을 해야지. 그래 안 그래?





[궤짝 신(神=여호와)의 행패]

* 행패--체면에 어긋나는 난폭한 짓을 함.

(1)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는 원래 <궤짝>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모양의 궤짝이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사과 같은 과일은 궤짝에 담겨서 상품 노릇을 했었다. 
그런데,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도 옛날에는 예쁘게(혹은 요란하게) 꾸며진 <궤짝>에 담겨 있었다고 한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형체가 없는 <말씀>으로만 존재하는 괴물(?)인데, 이것이 궤짝에 담겨 있었던 모양이다.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조상) 족속은 노략질을 하러 다닐 때, 이 궤짝을 맨 앞에 들고 다니며 약탈을 해야 많은 재물을 획득할 수도 있었고, 마침내 그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가 있었다고 한다. 

원래,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께서 택하신 백성 히브리 족속은 약간의 목축업과 함께 노략질(전투)이 그들의 생업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멩 할렐루야!

(2) 히브리 족속은 노략질 및 약탈질을 하기 위해서 전쟁(전투)을 할 때는 이 궤짝(여호와)을 진 앞에서 끌고 다녔지만, 평시에는 이 <궤짝>에다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 <궤짝> 신에다 제사를 지내려면 반드시 쇠고기국이 필요했었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와는 초식보다는 육식을 좋아하는 육식 동물이었으므로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3) 육식 동물이신 여호와에게 제사를 지내는 모든 절차는 물론 제사장 직책을 가진 <엘리>의 몫이었다.
제사장 <엘리>에게 두 아들 녀석들이 있어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두 녀석들이 제사가 시작 되기도 전에 준비해 놓은 커다란 고기 덩이를 슬쩍 먹어 치우곤 했다고 한다.
자기가 먹어야 될 쇠고기를 빼앗긴 여호와! 화가 상투 끝까지 뻗쳤을 것은 불문가지!

화가 상투 끝까지 뻗친 여호와는 그 보복으로 <블레셋>과 전쟁을 일으켜 제사장인 <엘리> 집안을 멸망시켜버리고, 동시에 히브리 족속 중 일반 백성 30,000명을 도륙시켜버렸다고 한다. 헐!
그런데, 참말로 재미있는 것은 이 전쟁에서 그 궤짝(즉, 예수교의 신 여호와)을 적(블레셋)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이다.
(이런 장면을 무엇이라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아멩 할렐루야!)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녀석들이 저지른 죄(?) 때문에 엉뚱한 30,000명이 죽임을 당하고, 그 유가족들이 고통을 당하게 된 셈이다.
여호와의 세상 다스리는 법이 항상 이런 식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놈의 법이란 말인가? 세상에나!

(4) 적국 블레셋은 무엇에 써 먹으려고 목숨을 다투는 전쟁에서 상대 쪽의 <궤짝>을 빼앗았을까? 또, 빼앗은 궤짝을 자기네 신전의 다곤(블레셋 신) 옆에다 모셔 두었다고 하던데, 이것은 또 무슨 짓일까? (과연 그렇게 했을까?)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았더니 <궤짝(히브리 족속의 신)>이 다곤 상(블레셋 족속의 신)을 쓰러뜨려 팔과 다리 그리고 목을 모조리 부러뜨려 놓았더란다.헐!
(이 근처를 읽어 보면 전혀 말이 되지 않는 모두가 허구요 모순이요 또 재미도 없어서 생략하기로 한다.)

(5) 그런데, 이 예수교의 신이신 <궤짝>이 큰 환난을 일으켜 그 나라(적국)의 남녀 노소 상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독종(질병)으로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
견디다 못한 블레셋(적국)은 이 궤짝을 히브리로 다시 돌려 보냈다고 한다. 돌아온 궤짝(그러니까 여호와)이 반가와서 히브리 족속들은 이 궤짝(여호와)을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궤짝>은 히브리 백성을 쳐서 50,070명을 살육시켜 버렸다고 한다.
궤짝(여호와)이 적진으로부터 돌아왔다 하여, 반가워서 백성들이 여호와의 낯짝(?)을 보려고 한 것 뿐인데, 그게 왜 죄가 될까? 그렇다고 50,070명 씩이나 죽여? 잡놈(여호와+예수)들의 행패는 막을 방법이 없다.

* 이상은 사무엘 상 4, 5, 6장(바이블)에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궤짝 신이 다곤 신을 쓰러뜨렸는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으며, 그 궤짝(여호와)이 적국에서 질병을 일으켰는지는 어땠는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 현대의 밝은 대명 천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궤짝(예수교의 신 여호와)에 빠져 조국까지 팔아 먹으려는 현상을 보노라면 착잡한 마음 금할 수가 없다. 그래 안 그래?

다음은 위에 설명한 원문이 담긴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이다.

[...불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육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30,000 이었으며, 여호와의 궤(짝)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사무엘 상 4;10~11)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의 궤(짝)를 빼앗아 가지고...
다곤의 당에 들어가서 다곤의 곁에 두었더니,...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짝) 앞에서 엎드러져...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둥이만 있더라.]

(사무엘 상 5;1~4)

[그것(궤짝)을 옮겨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에 더하사성읍 사람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종(毒腫)이 나게 하신지라.]

(사무엘 상 5;9)

[벧세메스 사람들(히브리)이 여호와의 궤(짝)를 들여다 본고로 그들을 치사 50,070인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육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사무엘 상 6;19)



[예수교 소굴에서 횡행하는 기적질]

예수교 소굴에서는 기적질이 다반사로 발생하는 것 같다.
다반사(茶飯事)란 "차 마시는 일이나 밥 먹는 일과 같이, 일상에서 늘 일어나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쟁이들 소굴에서는 그 기적질이란 것이 차 마시는 일이나 밥 먹는 일보다도 쉬게 보여지는 것 같다. 헐!

우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한 구절을 먼저 보기로 하자.

[너희(예수쟁이들) 중에 선지자(여호와의 앞잡이)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즉, 기적질)를 네게 보이고, 네게(일반 예수쟁이에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神)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즉, 기적질)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이르는 말을 듣고 잘 좇음))하지 말라.
이는 너희 여호와(예수교의 주신)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그러함과 그러지 아니함)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사람의 됨됨이를 알기 위하여 떠봄)하심이니라."]

(신명기 13 ; 1~3)

원문을 두 세 번 읽은 후, 해설을 보기 바란다.

(1) 어떤 사람의 마음과 성품의 됨됨이를 알아보려면, 그 사람에게 정확한 책임을 주고서 그것을 어떤 자세로 처리하는가를 관찰해야 한다고 사려된다.
그런데, 여호와의 그것은 초점을 잃고 있다. 사람으로 하여금 이것이 진짜 신인지, 저것이 진짜 신인지 알 수 없게 해놓고서, 본래부터 알던 신만 섬기라고 강요하고 있다. 
이것이 여호와(예수교의 주신)가 사람의 됨됨이를 살펴 보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2) 여호와(예수교의 주신)가 아닌 다른 신(神) 쪽에서 기사와 이적(즉, 기적질)을 실제로 실시하더라도 
그 쪽에 청종(이르는 말을 듣고 잘 좇음)하면 안 된다는 게 여호와의 엄명이다.
 
그렇다면, 예수가 나타나서 기적질을 행하고 다닐 때, 히브리인(예수쟁이들의 옛 조상)들은 어떻게 대처했어야 되는 것이었을까?
당연히 잡아 죽였어야 된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했다. 그런데, 예수교의 해석은 무엇일까? 아직도 변명할 게 있을까?

(3) 예수는 히브리인들이 본래부터 알던 신(神)이 아니다. 
따라서, 당연히 잡아 죽여야 할 마귀이다. 여호와의 엄명이다..인간이 진짜 신과 가짜 신을 구별할 방법을 가르쳐 주지는 않고, 이유 불문(기사와 이적 즉, 기적질을 시행하더라도) 청종하지 말라고만 했다.
그것이 마음과 성품을 다해서 여호와를 받드는 것이라 했다.

(4) 세례요한이 예수에게 따져 물어 왔었다. 
"당신이 진짜로 여호와의 아들입니까? 아니면, 다른 진짜 아들을 더 기다려야 됩니까?"하고.
이 때, 예수는 "자기가 시행한 기적질들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기적질을 일으키는 걸 보면 자기(예수)가 여호와의 아들임이 분명하다고 떠드는 말이다. 그래 안 그래?
 
그러나, 그것이 바로 청종해서는 안될 여호와의 명령이 아니던가?
예수가 시행하는 기적질을 보고서 예수를 청종하며 따르는 짓이야 말로 분명히 여호와를 정면으로 거역하는 마귀들이다. 여호와가 그렇다고 했다.

(5) 사실 상, 히브리(이스라엘) 족속은 오늘 날도 예수 이름만 들어도 치(齒)를 떤다. 따라서, 
여호와의 명을 충실하게 지켜오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제삼자(第三者=세계 각국의 예수쟁이)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더 잘 아는 체하고 있다. 여호와의 명을 정면으로 거역하고 있는 조직이 바로 오늘 날의 예수교(쟁이)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서울에 가 본 적이 없는 놈이, 서울에 가 본 사람보다 서울 풍물을 더 잘 안다."
는 우스개 말이 있다. 마치, 한국의 예수교(쟁이)를 두고 하는 말 같다.
한국의 예수교(쟁이)들은 서구의 예수교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보다도 바이블을 더 잘 알고 있다. 대박!
여기에서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으랴?

* 이상, 위에서 떠들어 놓은 말들은 그냥 여담일 뿐, 정작 중요한 것은 다른 곳에 있다.

사람이 성품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예수교의 신)를 받드는 여부(與否)를 알아 보는 방법으로는 
본래부터 알던 신(神)만을 섬기는 데에 있는 것도 아니며, 다른 신(神)을 좇아가나 가지 않나를 보아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또, 공갈 협박으로 윽박질러서 되는 것도 아니다.
신(神) 스스로  인간들에게 자신의 존재 여부와 정체를 분명하게 밝혀 준 후에, 인간이 어떠한 마음 자세와 정성으로 살아가는가를 관찰해야 비로소 인간의 정상적인 마음과 성품을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 안 그래?

실상(즉, 神)에 대하여 전혀 아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단순히 믿음(사실은 인간의 가련한 희망 사항)이라는 불확실한 언행(言行)으로 '성품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받드는 여부'를 측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믿음'이란 모른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기 때문이다."

모르면서 하는 언행(言行=믿음)에는 그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언행에다 "성품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따위는 가당치도 않은 궤변(詭辯)이다.

더 더욱 어처구니 없는 "궤변 중의 궤변"

위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의 주요 골짜는 
"어떤 사람이나 신이 기적질을 시범으로 보여 주며 나타나서 꾀더라도 여기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니까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된다"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는 기적질이란 것이 종종 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바이블 속에도 바이블이란 것이 꽤나 많다.
여호와의 아들 예수란 녀석도 평생 동안 그 기적질로 살아낸다. 여호와 역시도 기적을 빼내면 남는 것이 없다.
그런데 말이다. 위의 바이블 내용처럼 "기적질을 이르키며 꾀는 사람"이 낱 수 있을까? 예수가 정말로 기적질을 일으키며 이 세상을 살았을까?

"입은 비뚫어졌어도 말은 바르게 하라."는 격언이 있다. 말을 바르게 하자.
"기적질을 일으키며 나타나서 꾀는 사람(또는 신)이 있어도 여기에 말려들지 말라."는 여호와의 가르침은 궤변이다.
이 우주 속에 "기적을 일으킬 사람(또는 신)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없는 것(기적질)을 들먹이며 떠들어대는 짓, 이보다 더 어처구니 없는 궤변이 있을까?





[인간과 신, 어느 쪽이 상전이고 어느 쪽이 종 놈일까?]

예수교의 신(여호와=예수)과 인간(특히,예수쟁이)은 어느 쪽이 주인이고 어느 쪽이 노비(남녀 종)일까?
어쨌든, 종(노비)이란 것은 주인이 마음대로 부려 먹을 수 있는 대단히 유용한 존재이다.
(각설하고)

동양의 역대 왕조에서는 혁명으로 정권(권력)이 바뀌면, 승자는 "천명이 나에게 임했다."고 선포하게 마련이었다.
단순한 권력욕으로 전 왕조의 임금(또는 왕조)을 거역하여 혁명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천명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라고 핑계를 대며 민심의 화살을 모면했던 것이다.
서구 열국에서는 이 <천명>이란 말 대신에 "여호와(또는 예수)의 뜻이 내게 인했다."로 얼버무렸었다.

<천명>을 아는 사람도 없고, <신의 뜻>을 아는 사람도 없지만, 무력으로 권력을 잡은 승자쪽에서 선수를 쳐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선포해 놓으면, 힘 없고 무지한 일반 백성은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게 마련이다.
오늘 날처럼 문명이 대낯처럼 밝은(?) 세상에서는 "국민의 뜻이 내게 임했다."고 눙치는 것 같다. 사실상, <국민의 뜻>을 알아내기도 신의 뜻만큼이나 짐작하기가 어려운 것이지만.

* 눙치다; 듣기 좋은 말로 상대의 마음을 누그러지게 하다.

고려 왕조를 쓰러뜨리고 조선 왕조를 세운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용비어천가>에도 천명을 빙자한 변명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바이블과 예수교 역사 속에도 예외 없이 승자들에 의하여 여호와(또는 예수)를 종부리듯 부려 먹는 노래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특히, <시편(구약의 일부)>은 주로 승자인 다윗왕(또는 솔로몬왕)이 여호와(예수교의 주신)를 제 집 종부리듯 부려 먹는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또, 사무엘상 하와 열왕기상 하를 읽어 보아도 여호와는 인간 세상의 승자 즉, 악마들을 변호해주는 종(노예) 노릇을 하느라 정신을 못차린다.
신이란 녀석이 인간의 주인 노릇을 하지를 못하고, 오히려 악당 중에서도 악당인 인간들(예수쟁이들)의 종노릇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바이블 내용과 예수교의 역사 속에서 여호와(또는 예수)가 해 놓은 일이란 악마들의 언행을 정당화시켜 주는 종(노비)노릇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 쯤에서 다시 한 번 더 물어 볼까? 여호와(또는 예수)는 예수쟁이들의 주인일까 아니면 예수쟁이들의 종 녀석일까?

심지어, 바이블 속의 지도자들은, 아후라마즈다신의 대리자로서 강력한 신권(神權) 정치를 펴며 군림했던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들에게까지 "여호와의 뜻이 임했다." 며 알랑방귀를 뀌기도 한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혈안이 되어 자기들의 신을 종(노비)보다도 더 쉽게 부려 먹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고대 예수교의 조상들은 페르시아 대제국의 권력에 빌붙어서 알랑방귀를 뀌어야 겨우겨우 살아 남을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던 매국노들이다. (그 때, 그것들이 매국노였던 아니었던 내 알 바 아니지만.)
우리 나라의 예수쟁이들도 일제 시대는 물론 박정희, 전두환 등등, 어느 독재 시대를 불문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는데는 여호와(또는 예수)를 자기들의 종으로 부려 먹기에 씩씩하게 앞장을 섰었다. 그래 안 그래?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승자와 기득권자들의 종 노릇과 앞잡이 구실을 빠짐 없이 해냈던 것이다. 대박!

로마 교황청의 교황들은 물론, 유럽의 역대 왕조들도 "여호와(또는 예수)의 뜻이 나에게 임했다."를 내세우며 치열한 투쟁이 벌어진다.
악마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쟁하여 일단 승자의 자리를 챙취한 후, "여호와(예수)의 뜻이 나에게 임했다."를 선포하면 모든 것은 완성되는 것이다.

<여호와(또는 예수)의 뜻>이나 <천명>을 아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 안 그래?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팔아 먹어도 고갈될 염려가 없는 명품이 바로 <여호와(예수)의 뜻>과 <천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물건>을 약자, 실패자 또는 선량한 사람이 멋모르고 입에 올렸다가는 목숨을 잃어야 된다. 이것이 이단이다.

"여호와(또는 예수)의 뜻이 내게 임했다." 이것을 승자 또는 악마가 떠들었을 때는 신(神)의 진리가 된다.
<여호와(예수)>와 <천명>은 악마들의 전용품 노릇을 하는 명품이다.
따라서, 여호와(또는 예수)는 예수쟁이들의 앞잡이 노릇은 물론 종 노릇을 충실히 이행하는 셈이다.

예수교의 역사는 "누가 어떻게 여호와(또는 예수)를 종으로 잘 부려 먹었느냐?"를 판가름하는 승자(사실은 악마)의 역사이다.
대형 교회, 중형 교회 또는 소형 교회란 목사 이하 그 지도자들이 예수와 여호와라는 종(또는 상품)을 어떻게 부려 먹느냐로 판가름 나는 모습이다.

자신들이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어서 그렇지, 어떤 예수쟁이라도 예수와 여호와를 종(앞잡이)으로 부려 먹지 않는 사람은 없다.
예수와 여호와는 예수쟁이들의 잘 훈련된 종이다.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사유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날로 예수쟁이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 것이다.

예수쟁이들의 일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이다.
<기도> 후에, 응답을 받았느니, 은혜를 입었느니, 마음이 편해졌느니, 등등의 모든 현상은 예수쟁이(인간)의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기도>의 결과는 신의 뜻과는 아무 상관 없이 인간의 뜻에 따라 여호와(또는 예수)는 주인이신 예수쟁이의 심기에 맞도록 충복의 구실을 하게 된다.

<기도>란 주인이 종(여호와 또는 예수)을 불러 놓고 불편한 심기를 토로하면, 종이 적당히 알아서 기는 모양이다. 그리고, 주인(상전)이 종에게 하는 말 중에는 억지 투정이 많은 법이다.
그러나, 종(여호와 또는 예수) 쪽에서 그것을 지적하며 상전에게 항의하는 법은 없다. 종은 무조건 주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다.
예수교의 <기도> 모양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주종 관계이다.

따라서, 예수쟁이가 주인(상전)이고, 여호와(또는 예수)는 종이다. 인간이 떠드는 <기도(억지)>에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듣기만 하는 여호와(또는 예수).
여호와(또는 예수)는 참으로 길이 잘든 예수쟁이들의 충복이다. 예수쟁이들 마음대로 요리해도 아무 말 없이 순종만으로 외 길을 걷는 충복이 여호와(또는 예수)이다.

존재할 수 없는 허구(거짓말)로 태어나서, 인류 사회에다 못할 짓 너무도 많이 해낸 여호와(또는 예수)!
속죄하기에는 너무도 엄청난 만행질을 쏟아 놓은 여호와(예수)! 이를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무지와 욕심과 어리석음이 뭉쳐져서 만들어진 여호와(또는 예수)! 이에 부화뇌동되어 정신 못차리는 예수쟁이들!
그 무서운 죄악들을 무엇으로 갚음을 하게 되려나?

오히려, 신(神)을 두려워할 줄을 모르고, 믿지도 않는 무리들이 예수쟁이들이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오히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한 무지막지한 무리가 예수쟁이들이라고 여겨진다.

신도 속이고, 사람도 속이고 마침내 자신도 속이고, 눈과 귀까지 막고 살아가는 무리가 예수쟁이들이라고 여겨진다.
주어진 지능과 이성조차 포기하고, 사람되기를 포기하고, 아무렇게나 쉽게 살아가려는 무책임한 무리가 예수쟁이들이라고 여겨진다.
제삼자 (219.♡.30.247) 2020-02-21 (금) 08:21
[뇌물 앞에서 침을 흘리는 예수교의 신]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왕국의 제3대 왕 솔로몬은 여호와의 집을 짓는데 7년, 자기 궁궐을 짓는데 13년, 도함 20년의 토목공사를 끝내고 그 기념으로 여호와에게 14일 동안 계속해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14일 동안의 제사 때, 소모된 희생 제물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솔로몬이 화목제(제사의 한 종류)의 희생을 드렸으니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22,00이요, 양이 120,000이라.] (열왕기상 8;63)


이만하면,여호와(예수교의 신)란 녀석의 밥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커다란 여호와의 배때지(또는 배때기)도 14만 2천 마리에 해당하는 소와 양의 고깃덩어리가 들어가니까 꽉 찼던 모양이다.
배가 불러지자 여호와도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뇌물은 사람이나 귀신(여호와 또는 예수)이나 좋아하기는 한통 속인가 보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더 보자.

[여호와께서...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간절히 바람)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殿=여호와의 집)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永永)히 그 곳에 두며, 나의 눈과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열왕기상 9;2~3)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 역시 뇌물(좋게 말해서 재물 또는 돈)을 많이 바치는 사람에게 침을 질질 흘리며 헬렐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호와(또는 예수) 앞에서도 무전유죄(無錢有罪), 유전무죄(有錢無罪)라는 것을 새삼 명심해야 될 것이다.
어쨌든, 겨우 14일 동안에 14만 2천 마리의 소와 양을 먹어 치우신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식성이 놀랍기만 하다. 헐!

그러나 저러나, 수 십 년에 걸친 토목 공사로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폭군이요 잡놈이었던 솔로몬을 감싸고 도는 여호와라는 녀석을 제대로 생겨 먹은 신(神)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조선 말기, 임오군란 때, 일본 공사관이 불에 타자, 조선 조정은 일본에다 배상금을 물어야 했었다. 그 때. 그 배상금 액수가 당시의 소 600마리에 해당하는 값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소 600마리 값에 해당하는 돈이 없어서 조선 조정은 마침내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얻어다가 그 배상금을 갚았다고 한다.

* 차관--한 나라의 정부나 기업, 은행이 외국 정부나 공적 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빌려 옴.

코딱지 만한 나라 이스라엘에서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란 녀석은 14일 동안에 600마리가 아니라 자그마치 14만 2천 마리를 꿀꺽하고 쳐 잡수셨다는 것이다. 세상에나! 대박!

이렇게 무지막지한 여호와(또는 예수)를 가리켜서 
"사랑의 신"이니, 
"공의의 신"이니, 
"전지전능한 신"이니 하며 미쳐 돌아가는 예수쟁이가 이 지구 상에 자그마치 22억 명(개신교, 구교 등을 합쳐서)이나 된다고 하니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또는 예수)가 얼마나 고약한 녀석인가를 한 가지만 더 간단히 훑어 보기로 하자.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르호보암왕이) 소년(젊은 층 각료)의 가르침을 좇아 저희(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솔로몬왕)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르호보암왕)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사람을 징계하여 다스림)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열왕기상 12;14)


뇌물을 푸짐하게 받아 먹은 여호와(예수교의 신)로부터 푸짐한 축복을 받았던 솔로몬왕!
예수쟁이들은 물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아는 체를 하며 수시로 그 화려했음을 읊어대는 솔로몬왕!
그 솔로몬왕이 어떤 녀석이라는 것을 그 아들 르호보암의 입으로 밝혀주는 대목이다.

솔로몬왕은 "백성의 멍에를 무겁게 했다."고 한다. 솔로몬왕은 "채찍으로 백성을 징계하며 다스렸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20년에 걸친 그 커다란 토목 공사를 해 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주 고약한 잡놈이 아니고서는 14일 동안에 14만 2천 마리나 되는 가축을 잡아서 제사를 지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고약한 녀석을 "훌륭한 사람"이라며 추켜 세우던 여호와!
결과적으로,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허구(가짜=거짓)이거나, 악신(惡神)이라는 증거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수 천 년에 걸쳐서 수 백 억의 사람들이 여기에 홀려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걸까? 

** 예수교의 신 여호와로부터 무지무지하게 커다란 축복을 받기도 했고 또, 그 여호와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혜까지 얻은 솔로몬왕! 
   그런데, 그 솔로몬왕의 아들 르호보암왕은 백성을 향해서 "전갈로 징치하겠다."며 으르렁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여호와(또는 예수)의 무슨 섭리일까?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로부터 얻어 낸 지혜를 가지고도 <자식 교육>은 실패를 했구나. 
   역시, 자식 농사는 여호와의 도움으로도 안 되는구나. 아니, 자식 교육도 문제지만, 자기 자신의 심신도 추스리지 못한 잡녀석 솔로몬왕! 이것이 종교쟁이(예수쟁이 또는 여호와쟁이)들의 현주소가 아니던가? 대박!

** 섭리-세상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신의 뜻. 
         결과적으로,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가 허구(가짜)라고 증명해 주는 단어가 섭리?
         위에 열거된 모든 말이 모두 여호와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말 되는 게 없잖아?





[예수쟁이)들끼리는 통하는 계산법]
 
(1) 80일을 굶어도 견딜 수 있는 체력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10배가 넘는 800일 이상을 굶고서도 아무 탈이 없을 것이라고는 장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만약, 80일을 굶더라도 체력에 아무 이상이 없는 건강한 체질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81일을 굶어도 크게 문제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그래 안 그래?

* 어차피, 모두 다 말이 안 되는 말들이지만, 바이블(예수교)에 있는 말을 거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거론하게 됐다.
 

(2) 한국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A)이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사람(B)을 만나야 될 일이 있다면, A는 어쩔 수 없이 서울에서 뉴욕 여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마침, A가 서울에 여행을 와 있다면, B는 구태여 미국 뉴욕까지 가지 않더라도 B를 만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 안 그래?

(각설하고)
 
 
그러면, 여기 쯤에서 우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즉, 예수교의 모든 것) 한 구절을 보고서 다음 말을 이어가기로 하자.
(다음 바이블 내용은 예수교의 신 여호와가 벌이는 기적질 이야기의 일부이다.)
 
 
** [이에 (엘리야가)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食物=음식)의 힘을 의지하여 40주(晝) 40야(夜)를 행하여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열왕기상 19;8)
 
 
엘리야는 여호와 신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앞잡이)이다. 엘리야의 행적이 없다면, 예수교의 존재도 없을 것이다.
엘리야는 너무도 유명한 여호와의 앞잡이여서 신약(바이블)에서 30번 씩이나 인용되는 대단히 중요한 걸물이다.
만약, 엘리야의 업적(?)이 무엇인지 모르는 예수쟁이가 있다면, 그는 가짜 예수쟁이가 분명하다. 아니면 돌대가리이거나.
"돌대가리"라고 해야 되는 말이지만, 이것이 흉한 욕 같이 들린다면 "돌머리"라고 하기로 하자. 서양에서는 이런 경우 "호박 대가리"라고 한다더만.
 
자, 그러면 본론으로 가자.
 
옛날 옛날, 호랑이가 담배를 태우던 시절에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앞잡이 역할을 하던 엘리야가 호렙산으로 여호와를 만나러 가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호렙산은 40일을 걸어가야 되는 사막 벌판 한 가운 데에 있었다. 따라서, 왕복 80일 동안 아무 것도 먹고 마실 것이 없는 사막 벌판을 걸어야만 여호와를 만날 수 있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엘리야가 호렙산(여호와가 살고 있는 곳)을 향해서 막 떠나려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여호와가 엘리야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엘리야가 구태어 호렙산까지  가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엘리야는 이미 여호와를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호렙산으로 여호와를 만나러 가야 된다. 그게 엘리야의 중대한 사명이다. 헐!

어쨌든, 여호와(예수교의 신)가 엘리야 앞에 음식을 가지고 나타서 말했다고 한다.
"엘리야야, 왕복 여행으로 80일을 굶고도 체력을 유지하려면 무엇이든 먹어야 된다. 그러니, 이 음식을 먹도록 하거라."
마침내, 여호와가 제공해 준 음식을 먹고서 엘리야는 40일을 걸어가서 호렙산에 거주하고 있는 여호와를 만나 보고 그리고, 다시 40일을 걸어서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위에 제시된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구절은 이러한 내용의 한 부분이다.
예수교의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의 도움을 받으면, 이렇게 한 끼의 음식만을 먹고도 80일을 견딜 수 있었다는 기적질을 보여 주려고 괴상한 잡소리를 늘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돌머리>가 아니라면 다음에 말해지는 말들을 꼼꼼히 따져 봐야 할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한 끼의 식사로 80일을 견딜 수 있는 체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81일을 굶는 일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을 것이다.
여호와(예수교의 신)가 제공해 줬다는 음식을 먹지 않더라도 엘리야는 그 전 날에는 음식을 음식을 먹었을 것 아닌가?

다시 말해서, 여호와를 만나 보기 위하여 호렙산으로 여행을 할 때, 여호와 쪽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엘리야가 먹었을 경우는 80일을 굶는 계산이 되고, 그 제공된 음식을 먹지 않았다면 81일을 굶고서 여행을 했다는 계산이 된다.

어때? 전지전능한 신의 능력과 기적질로 벌어지는 사건일 경우, 
(1) 신이 제공하는 음식을 먹고 80일을 견디는 경우와
(2) 그냥 전 날 먹은 음식에 의지해서 81일을 견디는 경우 중, 어느 쪽이 멋진 경우일까?

엘리야(여호와의 최고 최대의 앞잡이) 때에 벌어졌다는 여호와의 기적질은 돌대가리들끼리나 지지고 볶아댈만한 쓰레기일 뿐이다.
"천지를 창조했다."고 우쭐대는 녀석의 한다는 짓이 겨우 이런 짓이더냐? 
"꼴값을 한다."는 명언이 있다. 여호와(또는 예수)가 벌이는 짓 중에 꼴값 떠는 짓 말고 무엇이 있을까? 대박!

그리고, 이미 여호와가 엘리야 앞에 나타났거늘, 엘리야가 80일을 굶으면서 여호와를 만나기 위하여 호렙산으로 걸어가야 될 이유가 무엇인가?
이것 역시 돌대가리(예수쟁이)들끼리 달밤에 망부석 붙잡고 꾸며내는 꼽사춤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 세상에 <돌머리>들끼리 그<돌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해서 할 수 있는 일도 있을까?
이상, 세상이 점점 힘들어지는 이유 중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예수교(쟁이)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래 안 그래?





[<나발>의 아내 그리고 <도미>의 아내]

(1) <도미의 아내> 이야기(설화)는 고려시대의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 열전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 나라 고대국가였던 백제(3국 중 하나)의 개루왕(또는 개로왕) 때, <도미>라는 이름을 가진 평민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가난하고 볼품 없는 평민이었지만 <도미>에게는 절세 미인의 아내가 있었다. 이것이 문제였다.
옛날에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별 볼 일 없는 평민 따위가 아름답고 예쁜 미인 아내를 가졌다는 사실은 대단히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 위험천만--위험한 일이 천 가지 만 가지나 된다는 뜻으로, 매우 위험함을 이르는 말. 
              예쁜 계집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그 만큼 위험한 일이다. 명심 또 명심할찌어다. 헐!

예수교의 경전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서도 언급하는 사건이지만, 아브라함도 예쁜 계집 <사라>를 아내로 둔 덕에 큰 곤욕(?)을 치르는 과정이 있다.
아브라함이 누구인가? 그는 예수교의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가 선택하고 뽑아서 특별히 돌보는 그런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그 아브라함은 건방지게도 감히 예쁜 계집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을 뻔했었다고 한다. 헐! 

아브라함의 처 <사라>는 90세가 넘었을 때에 아들을 낳기도 하고, 아리따웠다고 하니까 20~30대 때에는 얼마나 예뻤겠는가?
이렇게 예쁜 계집을 가졌다는 사실은 대단히 위험천만한 일이란 것을 아브라함도 모를 리가 없었으리라.
결국, 아브라함은 <사라>를 자기 아내가 아닌 "누이 동생"이라고 속이며 살기로 부부 간에 약속을 한다.
그러나, <사라>가 아브라함의 누이가 아니라 그의 <아내>라는 사실은 금방 탄로가 나게 되고, 이 소문은 마침네 애굽(이집트)의 바로왕 귀에까지 들어가게 됐던 모양이다.

처음에, 애굽왕 바로는 건방지게도 감히 예쁜 계집을 가지고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아예 죽여 버리고 당장 그 계집 <사라>를 빼앗아 오려고 작정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예수교의 신 여호와께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바로왕은 아브라함을 죽이지를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왕은 예쁜 계집을 빼앗아 오는 대가로 아브라함에게 많은 재물을 하사해야 됐다고 한다. 마침내, 아브라함은 예쁜 계집을 바로왕에게 넘겨주고 하루 아침에 거부가 된다. 대박!



참고; 반 년인지 일 년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아브라함은  자기 계집 <사라>를 바로왕으로부터 되돌려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자기의 계집을 얼마 동안 왕에게 빌려 주고서 그 대가로 많은 재물을 획득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자기 계집을 완전히 빼앗기지는 않고 잠시 동안 대여해 주는 것만으로도 거부가 된다! 이 얼마나 통쾌한 행운이냐?

      이 모두가 예수교의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의 섭리요 조홧속이라고 한다. 사실, 전지전능한 신의 능력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를 믿고 받들면, 이렇게 횡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대박!

(각설하고)



<도미>의 아내가 예쁘다는 소문은 퍼지고 퍼져서 마침내 대궐 안의 개루왕(개로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다. 
"별 볼 일 없는 하찮은 평민 <도미> 따위가 절세미인을 가지고 산다?" 개루왕의 귀에도 대번에 거슬리기도 하고 역겨운 소문이었다.
마침내, 개루왕은 <도미>의 아내를 대궐 안으로 불러들인다. 세상에나! 이렇게 예쁜 여자가 내 나라 백제 땅 안에 있었던가? 

개루왕은 욕심이 발동했다. 마침내, 왕은 갖은 감언이설로 꾀어보기도 하고, 위력을 가하며 협박도 해봤으나 도미 아내의 절개를 꺾을 수가 없었다.
자존심도 상하고 화가 상투끝까지 뻗힌 왕은 <도미>를 잡아다가 무지막지한 고문도 하고, 불에 달군 인두로 두 눈을 지져 아예 눈 먼 장님을 만들어 백제 땅에서 추방시켜 버렸다고 한다.

남편을 타국으로 추방시킨 후로도 개루왕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 동원하여 <도미>의 아내를 차지하려고 애를 썼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도미>의 아내는 궤계를 써서 궁궐을 탈출을 하고, 수소문 끝에 눈 먼 남편 <도미>가 고구려 땅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된다.
마침내, <도미>는 예쁜 아내를 다시 만나게 됐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어쨌든, 이것이 우리 나라의 정서이다. 우리 나라 만세!


그런데 말이다. 우리의 그 애달픈 정서 말고, 저 먼 곳으로부터 굴러온 예수교의 정서는 어떤 것일까?
우선, 예수교의 경전이라는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환난을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다윗)에게로 모였고,
그(다윗)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다윗)와 함께 한 자가 사 백(400) 명 가량이었더라.] (사무엘상 22;2)


예수교 역사상, 다윗(왕) 이상으로 여호와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다윗이 장인(사울왕)을 피하여 도망다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좋게 표현해서 망명 생활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위의 바이블 내용은 다윗이 도망다니던 때의 상황을 나타낸 말이다.

다시 말해서, 다윗(왕)은 <환난을 당한 모든 자> <빚진 모든 자> <마음이 원통한 자> 등등으로 뭉쳐진 집단의 우두머리였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또는 환경적으로 결함이 있어서 인간성이 제대로 형성되지를 못한 사람들의 무리 400여 명으로 뭉쳐진 집단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자가 다윗(왕)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수 천 년 전에 인간성에 심히 결함을 가진 사람들 400여 명으로 뭉쳐진 무리가 수 년에 걸쳐서 사방으로 몰려다녔다면 그들이 지나가는 동네마다 그 민폐가 어떠했을까?

수 천 년 전에, <환난을 당한 모든 자>, <빚진 모든 자>, <마음이 원통한 자> 등등으로 뭉쳐진 무리 400여 명이 여러 해 동안 중동지방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 깡패 집단의 우두머리는 그 유명한 다윗(왕)이었음은 물론이다.

자, 그러면, 이 깡패 집단의 어느 하루 동안의 활동 모습을 보기로 하자. (어쩌면, 며칠 동안의 활동 모습일 수도 있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을 여기에 첨부해야 되겠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고 지루해짐을 막기 위해서 일단 바이블 인용은 일단 생략하기로 한다.
다윗(왕)을 우두머리로 하는 400여 명의 깡패 집단도 여기서는 그냥 <깡패 집단>이라고 간단하게 표기하기로 한다.


<깡패 집단>이 하루는 어느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그 마을에는 매우 큰 부자가 있었다. 남편의 이름은 <나발>이었고, 그 아내 이름은 <아비가일>이라고 했다. <아비게일>은 미인이었다.
<나발>에게는 각종 가축도 많고, 넓은 농장도 있었다. 부리는 일꾼들도 많았다. 다윗의 <깡패 집단>은 <나발>이 살고 있는 마을 어귀에서 여장을 풀고 쉬게 된 것이다.

쉬는 동안 다윗은 수하 몇 명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너희들은 지금 <나발>에게 가서 내 말을 전하거라." 

"우리 <집단>은 지금까지 남을 해코지한 적도 없고, 민폐를 끼친적도 없다. 어느 동네라도 그 곳을 지날 때는 조용히 지났다. 농작물에 손을 대거나 가축을 해친적이 없다. 알겠느냐? 너의 농장에서도 아무런 해를 주지 않았다.
그러니, <나발>은 듣거라. 너는 우리 <집단>을 위해서 얼마간의 재물을 바쳐야 되지 않겠느냐?"


** 400여 명으로 뭉쳐진 집단이 몇 년 동안을 돌아다니면서 무엇으로 먹고 마시고 입으며 잠을 잤을까?
   민폐를 끼치지 않고 400여 명이 도망다니는 방법이 있을까? 예수쟁이들 사회에서는 그런 짓이 가능한 모양이지?


다윗의 전언을 듣게 된 <나발>은 말했다.
"다윗이 누구란 말이냐? 나는 그런 사람을 모른다. 또, 내게는 그런 <다윗>에게 줄 돈도 없고 주고 싶은 마음도 없다."
수하로부터 <나발>의 거절을 듣게 된 <다윗>은 그 분노가 하늘을 찌르게 된다.

"무엇이라고? <나발> 그 놈이 감히 이 <다윗>의 청을 거절했다고? 지금 당장 <나발> 그 놈을 박살 내러 가야 되겠다."
다윗과 수하들은 쉬기 위하여 풀어 놨던 군장을 다시 걸치기 시작했다.
집안에서, 남편 <나발>과 <다윗>의 수하가 주고 받은 이야기의 전말을 듣게 된 <아비가일>은 일이 크게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아비가일>은 부랴부랴 <깡패 집단> 400여 명이 먹을 만큼의 고기와 빵등을 준비해 거지고 <다윗>에게로 달려갔다고 한다.
"<다윗>님이시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제 남편 <나발>이 원래 미련하고 성격이 비뚫어졌습니다. 남편 대신 제가 얼마 간의 재물을 준비할 터이니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왜 <다윗>님의 손에 피를 묻히려고 하십니까? 그냥 내 버려 두면 여호와께서 알아서 <나발>을 죽여 주실겁니다.........."

<나발>의 처 <아비가일>은 엄청난 미인이었다고 한다. 마침내, 예쁜 여자의 아양에 하늘까지 치솟았던 <다윗>의 분노가 봄눈 녹듯 녹아 버렸다.
그런데, <아비가일>이 예언했듯 그 날 밤 <나발>이 급살맞아 뒈졌다고 한다. 여호와가 그런 조홧 속을 부렸던 것이다. 대박!

<나발>이 급살맞아 뒈졌다는 사실을 듣게 된 <다윗>은 즉시 <아비가일>에게 수하를 보냈다.
"<아비가일>은 듣거라. 네 남편 <나발>은 이제 죽었다. 그러니, 이제부터 너는 이 <다윗>의 계집 노릇을 하지 않겠느냐?"
<다윗>의 전언을 듣자마자 그 즉시 모든 것을 팽개치고 <아비가일>은 <다윗>에게로 달려갔다고 한다.

어두컴컴한 밤에 공동묘지의 어느 무덤 앞에서 한 여인이 무덤을 향해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나던 사람이 이상도 해서 물었다. "왜, 무덤에다 부채질을 하고 계십니까?"
"죽은 남편과 약속을 했습니다. 무덤이 마르기도 전에 개가하지는 않겠다."고. (멋져 부렀다.)
그런데, <아비게일>은 남편 <나발>이 급살맞아 뒈지자 마자 부채질이고 뭐고 다 필요없이 그 즉시<다윗>의 품으로 달려가서 안겼다고 한다. 대박!

유럽, 미국, 남미등, 여러 나라에는 <아비가일>이라는 여자 이름이 많다. 
<다윗>을 단번에 녹여 낼 정도로 예쁘던 <아비가일>의 미모가 서양 여자들의 흠모 대상인 것 같다.
어쨌든, 이것이 서양 여자 특히, 예수쟁이 여자들의 정서이다.

이상, <도미>의 아내 이야기와 <나발>의 계집 <아비가일>의 이야기로 우리 한국인의 정서와 예수쟁이들의 정서를 잠시 훑어 보았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제삼자 (219.♡.30.247) 2020-05-24 (일) 00:45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문은 어느 것일까?]]

국내의 유명한 일간지에 다음과 같은 광고가 게재됐다고 하자.

"오는 한가위(추석) 명절에 
달나라에 살고 있는 토끼 부부 두 쌍이 서울 모처에 하강하여 쇼(show)를 보여 주기로 했습니다.
서울 시민 여러 분들의 관심은 물론, 많이 많이 왕림하시어 토끼 쇼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문의처; 전화 (000)000-0000>"

달랑 문의처 전화 번호 하나만 있을 뿐, 
장소, 시간, 요금 등, 어느 것도 자세한 내용이 없다.
따라서 문의 전화가 쇄도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1) "토끼 쇼 장소가 어디입니까?" 이런 전화 문의가 올까?
(2) "토끼 쇼 시간 좀 알려 주세요." 이런 문의가 올까?
(3) "토끼 쇼 관람료는 얼마입니까?" 이런 문의가 올까?

(4) "토끼가 어떻게 쇼를 합니까? 거짓말 마십시오." 이런 문의가 올까?
(5) "토끼가 어떻게 지구에 하강을 합니까?" 이런 문의가 올까?
(6) "...........................?"

어떤가? 이런 종류의 문의가 우선적으로 궁금하고 필요한 문의일까?

우리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문은 뭐니뭐니 해도.....우리가 가장 먼저 문의할 것(문제)은
(7) "달나라에 정말로 토끼가 살고(존재하고) 있습니까?"여야 할 것이다. 그래 안 그래?

위의 문의 (1) (2) (3) (4) (5) (6) ...... 등등은, <달나라에 토끼가 존재하느냐?>가 해결된 뒤의 문제들이다.

이야기를 <달나라 토끼 이야기>에서 예수교 <바이블(예수교의 모든 것)의 이야기>로 바꾸어 볼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즉, 예수교의 모든 것)에 의하면,

(1') 여호와(또는 예수)는 전지전능한 신(神)으로서 천지를 창조하고, 세상 만물과 인간도 창조했다고 한다.
(2')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사랑이 많아,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여 천국으로 보내려고, 그 독생자 예수를 보냈다고 한다.
(3') 그리고, 바이블에는 여호와(또는 예수)의 역할이 줄줄이 기록되어 있다.

(4') 그리고 또, 거기(바이블)에는 인간의 역할도 씌어져 있다.
(5') 바이블에는 좋은 내용도 조금쯤 있지만, 더러운 내용, 악독한 내용, 반인륜적 내용 등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6')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즉, 예수교의 모든 것) 속에는......................

이상에서 보는 것처럼 바이블 속에는 
위의 토끼 쇼에 대해서 가졌던 의문 (1) (2) (3) (4) (5) (6)에 해당하는 수박 겉 핥기 식의 허무맹랑한 말장난만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토끼 쇼에서나 바이블(예수교의 모든 것)에서나 가장 근본적인 내용을 우리 인간은 알 수가 없다. 그게 무엇일까?

(6) "달나라에 토끼는 존재할까?"
(6') "이 우주에 신(神)은 존재하는가? 또,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神)은 여호와(또는 예수)인가?"

위의 (6) 또는 (6')가 해결되어야 그 다음 문제 즉,
** "토끼가 지구에 하강하여 쇼를 하는 문제"라든지, 
** "여호와(또는 예수)가 천지를 다스린다."든지를 논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 안 그래?

그러나, 바이블(예수교의 모든 것)에는 (1') (2') (3') (4') (5') 등등,
신(여호와 또는 예수)의 역할과 사람의 역할만 씌어 있을 뿐, 정작 가장 중요한 신(神)의 존재 여부를 증명하는 내용에 대하여는 아무 것도 없다.
달나라에 토끼가 존재하지도 않는데, "달나라의 토끼가 지구에 하강하여 쇼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따라서,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의 존재 여부가 판명되지 않는 한, 
예수교(즉, 바이블)의 모든 것은 아무 쓸모 없는 허구(虛構)요 악(惡)일 뿐이다.

어느 예수쟁이가 말했다. "여호와(또는 예수)를 능가할 존재란 없다."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여호와(또는 예수)가 존재하는 신(神)이란 것을 증명한 뒤에 할 말이다. 그래 안 그래?
<전지전능하고> <천지를 창조하고> <사랑이 많고> <인간을 구원하고> 등등을 아무리 떠들면 무슨 소용인가?
그런 신(神)이 "존재한다."는 사실부터 증명하라.

예수쟁이들은 다른 쓸데 없는 말을 자제하고, 신(神)의 존재 여부(與否)부터 밝히고, 동시에 그 신(神)이 여호와(또는 예수)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부터 하기 바란다.
여기에 첨부하여, 
예수교는 여호와를 우리 한국의 전통적 신(神)이신 <하느님(하나님)>을 도용하는 짓에서도 벗어나기를 바란다.

여호와를 하나님(하느님)으로 부름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녕되히 일컷지 말라"는 여호와의 제 1계명에도 어긋나는 짓이 아니겠는가?
예수쟁이들은 그러한 불손한 짓을 하고도 천당에 갈 자격이 되겠는가? 헐!





[예수의 가르침과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 

얼마 전, 주로 70대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단체의 회원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말이 있다. 
50대 후반의 어느 유명한 교수(과학자)의 말과 행동을 가리켜 "어린애의 불장난"이라고 성토하는 내용이었다. 
나서서 뭐라고 떠들어 볼만한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조용히 입다물고 듣고만 있었다. 

50대 후반의 전문가의 활동이 "어린애의 불장난"이면, 7,80대 늙은이의 망령(?)에 가까운 주책바가지 고집이 어른다운(?) 모습일까? 
50대 후반의 원숙한 사람의 활동이 눈에 거슬리고, 못마땅해 뵈는 늙은이의 안목이야 말로 "어린애만도 못한 고리타분한 고집불통"이 아닐까? 
늙어가면서 거죽만 우굴쭈굴해지는 게 아니라, 속까지도 우굴쭈굴 험상 궂은 모습으로 굳어지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수 년 전(2012년 12월),  미국에 살고 있는 70대 부부가 한국으로 필자를 방문했었다. 
당시, 남편은 71세이고, 부인은 72세, 그러니까 부인 쪽이 1살 더 많은 연상의 부부였다. 
그들 부부는 그 해 45살된 딸과 41살 된 아들을 두고 있었다. 딸은 한국에 살고, 아들은 미국(뉴욕)에 살고 있다. 

잠시, 한국을 방문 중인 아버지(71세)가 하루는 45살 먹은 딸과 대선 문제로 의견이 달라서 밤새도록 다투었다고 한다. 
그 부인의 표현을 빌리면, 딸과 싸울 때의 아버지의 얼굴은 불그락 푸르락 가관이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필자가 그 아버지(71 세)되는 사람에게 몇 마디 질문을 던져 봤다. 

"당신은 40대 시절에 70대 늙은이를 만나면, 사람 취급을 해주기는 했었소?" 
"나는 당신이  '내 딸이 서울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틈만 나면 자랑을 해오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똑똑한 딸이 이제 45살입니다. 그런데, 71살 먹은 주책바가지 늙은이가 45살 먹은 젊은 딸을 이겨보겠다고 악을 썼다 이거지요?" 

결국, 아버지되는 사람은 아무 대답도 못하면서 뭔가 깊이 생각을 해보는 것 같았다. 

벌써, 거의 10년은 된 것 같다. 
김정일이 죽고 그 아들 김정은이 등장하자, 각 TV프로에서는 경쟁적으로 전문가들이 나타나서 김정은에 대해서 갖가지 진단도 하고 예측도 했었다. 
제삼자(필자)의 기억에 의하면, TV에 등장했던 전문가들은 대부분 5,60대 또는 70대들로 보였다. 

그 전문가들 대부분의 진단에 의하면, 김정은은 29살 짜리 풋내기라서 정권 안착에 모종의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 때, 그 TV를 시청하면서 마누라에게 말했었다. 
"내 눈에는 29살을 풋내기로 보는 저 6,70대 늙은이들이 진짜 세상 물정 모르는 풋내기로 보이는구만..."이라고. 

10년이 지난 지금, 김정은에 대해서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결국은 50~70대 늙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질병적 기우(杞憂=쓸데 없는 걱정=자기 환경에 절어 있는 망령?)임이 밝혀진 셈은 아닐까? 
세종대왕은 21살에 등극했고, 진흥왕은 6살, 광개토왕은 17살, 조선의 성종은 12살에 임금에 올랐다. 
물론, 등극하자 마자 실권을 쥐고 모든 것을 처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광개토왕은 38살에 죽었고, 조선의 대학자 율곡 이이와 22대 왕 정조는 각각 48살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상록수의 저자 심훈과 메밀꽃 필 무렵의 저자 이효석은 모두 35살 때 죽었다. 
너무도 젊은 나이에 죽었기 때문에 "어린애의 불장난"도 못해 보고 인생을 마감했을 것 같다. 
그러나, 위의 인물들은 한국 역사 속에서 커도 너무 커다란 족적을 남겨 놓은 인물들이다. 

5,60대 늙은이들 70%는 저쪽을 찍고,  2,30대 젊은이 70%는 이쪽.을 찍고.........
1~2%의 다름이 아니라, 수십 %가 얼굴을 붉히면서 늙은이와 젊은이가 저 잘난 멋으로 당파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대단한 정치적 경륜을 가지고 있기나 한 것처럼 자신의 주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 서지 않고 싸운다. 

부모 없는 자식이 없을 것이고, 자식 없는 부모도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늙은이만 따로 있는 집도 없을 것이고, 젊은이만 따로 있는 가정도 없을 것이다. 그래 안 그래?
늙은이와 젊은이는 모두 1촌 또는 2촌으로 묶여 있는 피붙이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되는 가족이란 말이다. 

아니, 자식 쪽에서 효도하는 마음으로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여 부모 쪽에서도 똑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식 쪽에서 저렇게 말을 했더라도 부모 쪽에서는 "나는 죽더라도 너(자식=젊은이)는 어떻게 하든 살아 남아야 한다."고 말해야 되고, 실질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되는 것이다. 
이것이 늙은이(부모)가 가져야 될 마음 자세이다. 그래 안 그래? 

그런데, 그런데........50대 또는 40대의 자기 자식의 활동을 가리켜 "어린애들의 불장난"으로 몰아 붙이는가 하면, 제 자식(젊은이)을 상대하여 이겼다고 쾌재를 부르는 늙은이들이 많아 뵌다. 세상에나!
뭔가 이상한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아서.......... 
앞으로 젊은이(자식)들이 살아 갈 세상에다 너무 삭막한 인간 관계 모형을 남겨 주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아들이 가장 먼저 뛰어 넘어야 될 산은 아버지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자식이 부모를 극복하지 못하는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성공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늙은이(또는 기성 세대) 쪽에는 젊은이가 갖지 못한 기득권이란 것이 쥐어져 있어서 늙은이의 고집불통적 고정관념이 우세할 수밖에 없다.

알렉산더 대왕의 부왕은 필리포스 2세인데, 그도 스스로 정복 전쟁을 여러 번 감행했다고 한다. 
왕이 직접 진두지휘한 전쟁에서 승전을 하고 개선을 할 때, 그 국가적 환영행사는 대단했을 것이다. 
부왕이 보무도 당당하게 개선하는 장면을 볼 때 마다 어린 아들 알렉산더는 말했다고 한다. 

"저 늙은이가 왜 저러지? 나는 무엇을 하라고..." 
그렇다. 아버지가 다 했버리면, 아들이 할 일은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다. 
하물며, 아들(젊은이)을 짓밟고 올라 서서 "내가 이겼다."고 으쓱대는 아버지(늙은이)가 있다면, 그 현상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될까? 

경제 전문 용어에 "핵심 생산 인구"라는 것이 있다. 
경제(생산) 활동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25세로부터 49세까지의 인구를 말한다. 
20대, 30대 그리고 40대는 철부지 어린애들이 아니라, 한 나라의 지금 당장을 짊어지고 땀을 흘려야 되는 기둥이요 대들보들인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역사 이래 처음으로 "핵심 생산 인구" 비율이 줄어 붙었다고 한다. 
하기사, "불장난이나 해대는 어린애들"이 줄어들었다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5,60대 늙은이들이여! 아니, 6,70대 늙은이들이여! 아직도 뭔가 느껴지는 게 없을까? 

"원래 지구는 젊은이들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지구의 한 귀퉁이를 늙은이들이 잠시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더부살이하는 늙은이 주제에 주인(젊은이)을 닥달한다는 것은 적반하장(賊反荷杖) 바로 그 모양새이다. 
제자가 자기만 못하기를 바라는 스승, 자식이 자기만 못하기를 바라는 부모, 이런 어리석은 짓에 자기도 모르게 한 몫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차분히 따져 볼 때이다.


그런데 말이다. 예수교의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녀석(예수)의 가름침이 참으로 괴이쩍다.

다시 말해서, 제자가 자기만 못하기를 바라는 스승이 있다거나, 자식이 자기만 못하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까?


우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이 동리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리로 피하라.
내(예수)가 진실로 너희(12제자)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예수)가 오리라.
제자(弟子)가 그 선생(先生)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

(마태 10; 23~25)


위의 바이블 내용은 제자들에게 전도 여행을 보내면서 예수가 떠들어 들려 주는 말이다.
<진실(眞實)로>라는 접두사(?)를 들이 밀며 떠드는 말이므로 틀림 없는(?) 말일 것이다.
아니지, 얼마나 자신이 없고 허황된 말이기에 <진실(眞實)로>를 거듭 거듭 강조했을까 싶다. "정말로 무서운 개는 짖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1. 전도 여행을 다니다가 상대가 핍박을 하거든 도망을 쳐라.
2. 전도 여행으로 이스라엘(조그만 세상)의 모든 동리를 다 돌기 전에 예수가 재림하리라.
3. 제자가 선생보다 더 높아 질 수 없다. 자식이 부모보다, 더 잘 될 수 없다.
4. 종이 상전보다 높아질 수 없다.


천방 지축 술취한 사람처럼 떠들어대는 말의 내용을 모두 끌고 가고 싶지는 않다. 예수의 떠드는 말에 체계는 없기 때문이다.
신의 아들이라는 녀석이 그냥 즉흥적으로, 단편적으로 떠들어대고 있으니........

도망다니기를 즐기는 신, 이스라엘(조그만 세상)을 다 돌기 전에 오겠다고 장담하던 신의 말은 나중으로 미루자.


제자가 선생보다 못해야만 되는 세상이라면, 또 자식이 부모만 못해야 되는 세상이라면, 끽해야 제자가 선생만큼만 되어야 하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의 결말은 무엇이 될까?

"곡식 밭의 김을 매지 말라."(마태 13;29)는 가르침과 "제자가 선생보다 더 크게 되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은 예수교(바이블)의 가르침 말고는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 안 그래?
그러면서도 사람보다 윗 자리를 밝히는 여호와(또는 예수)의 꼬라지라니.....기가 막힐 일이다.

결국 예수(또는 여호와)는 영원히 인간의 코를 뚫어 끌고 다니며 부려 먹고 착취하겠다는 의도인데, 실로 무서운 발상이다.





[인천에서  대전으로 갈 사람이 신의주 쪽으로 출발하는가?]

필자는 예수교를 논할 때, <하나님> <하느님> <복음(福音)> <성경> 등등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마태복음> 따위를 단순히 <마태>라고 한다.
다른 것도 신(神) 또는 여호와, 예수, 바이블 등으로 표현한다. 이 점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신약(바이블)에서 예수의 일대기를 기록한 글이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이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이 <마가>이며, 나머지는 <마가>의 기록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내용이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의 일대기의 기초가 되는 <마가>는 팔레스틴 지방의 지리(地理)를 전혀 모르는 무식한 자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우선 바이블의 한 부분을 살펴 보기로 한다.

[예수께서 다시 두로(티레) 지경(地境)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데카폴리스)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 (마가 7;31)

위의 내용대로 예수 일행의 행로를 보면,
인천(두로)에서 대전(갈릴리)으로 가려는 사람이, 인천(두로)을 출발하여 신의주(시돈)를 통과하여 경주(데가볼리)로 갔다가 다시 대전(갈릴리)에 도착했다는 말이다.
 
인천(두로)---->신의주(시돈)---->경주(데가볼리)---->대전(갈릴리)

더욱 중요한 점은, 
예수 당시(서기 1세기)에 시돈에서 갈릴리로 가는 길은 없었고, 오직 두로에서 갈릴리로 뚫린 길 하나 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는 두로에서 출발하여 시돈으로 갔다가, 없는 길을 따라 시돈에서 갈릴리로 여행하고 있다.
데가볼리 지방은 아예 경주 쯤으로 보면 될까? (너무 엉뚱해서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

이는 예수의 일대기를 가장 먼저 써서 다른 글(마태, 누가, 요한)의 자료를 제공한 <마가>는 
팔레스틴 지방의 지리를 전혀 모르던 무식한 사람이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이런 엉터리 글을 일점일획도 하자(瑕疵)가 없는 전지저능한 신(여호와=예수)의 진리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내 것 내 맘대로"-그 권리 한 번 좋구나!]

* 다음 이야기는 예수가 천당에 관해서 비유로 떠들고 있는 장면이라고 한다. 
  한 번 들어보자꾸나!

어느 포도원 주인(천당 주인=여호와 또는 예수)이 품삯을 3만 원으로 정하고서 이른 새벽에 일꾼들을 포도원으로 들여보냈다. 
오전 9시에도 노는 사람이 있어서 그들도  포도원으로 보냈다. "품삯은 일 한만큼 주겠다."면서. 

정오, 오후 3시 그리고 오후 5시에도 빈둥빈둥 노는 사람이 있어서 그들도 포도원에 들여보냈다고 한다.
날이 저물어 품삯을 나누어주는데, 맨 나중에 들어온 사람부터 3만 원 씩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른 새벽부터 일한 사람은 생각했다.
"내게는 3만 원보다 더 주려나 보다."
그러나, 그도 3만 원을 받았다. 그는 투덜거렸다.

"맨 마지막 사람은 겨우 한 시간 일을 했어도 3만 원을 주면서, 새벽부터 하루 종일 일한 내게도 3만 원이군 .... "
그러자, 주인(여호와 또는 예수)이 말했다.

["내 것을 내 맘대로 처리하는데 네가 무슨 잔소리냐? 내 후한 처사가 네 바위에 거슬리느냐? 꼴찌가 첫째 되는 모습을 보고 배 아프냐?"]  (마태 20장의 내용)

이상은 예수가 말하는 천국(비유)이라 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수고를 억울하고, 분하게 만드는 곳이 천국인 셈이다.  대박!

적당히 기회를 노리거나 빈둥빈둥 노라리로 세월을 보내더라도 그 천국은 신(神)의 기분 내키는 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는
"세상에서 수고한 만큼 천국에서 보상이 있다."는 가르침이 여러 번 보인다. (천국도 계급사회란 뜻이지만). 

그런데,  위의 천당 이야기는 다른 천당이야기와 상충된다. 그렇다면, 어떤 천당 얘기가 진짜로 맞는 말일까?
신이라는 녀석의 말이 왜 이렇게 두서없이 왔다 갔다 하고 있을까?

물론, 제삼자(필자)도 이 곳의 천당 비유를 좋도록 해석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다는 신(神)의 입에서 직접 쏟아 낸 말이고 보면 심히 고약하다. 
무능하고 불쌍한 인간을 상대하여 저런 엉터리를 제시해서야 되겠는가?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가늠하게 하는 가르침이란 말인가? 세상에나!

그리고, 이 세상에 제 것이 어디에 있다고 제 맘대로 하는가? 
또, 설령, 
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사람에게 쓸데 없는 기대를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며, 약을 올리면서 무원칙(無原則)하게 운영되는 곳이 예수교 천당이라면...그 놈의 천당!
한 번 살아 볼만 하겠구나. 헐!
 
예수(또는 여호와)의 심보짝을 알아 볼 만한 바이블 구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박!






[애꾸 1명과 장님 1,000명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애꾸(외눈) 한 사람과 두 눈이 다 보이지 않는 장님 1,000명이 전쟁을 하면 누가 이길까? 
그렇다면, 정상적인 군부대(적군)를 상대하여 장님 부대가 작전을 수행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경우가 있을까?

더구나, 그 적군이 전지전능한 신(神) 여호와가 진두지휘하는 군부대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 적군을 상대하여 장님들이 군작전을 감행할까?

아니, 
두 눈이 멀쩡한 정상적인 청년들만으로 조직된 군부대라고 하더라도,
적군이 전지전능한 신(神)이 진두지휘하는 군대임을 알고도 이에 대항하여 전쟁을 할 생각을 일으킬 수 있을까?

각설하고 .......

옛날 옛날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 이스라엘과 아람(시리아)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지전능한 신(神) 여호와가 적군(아람)의 모든 작전을 미리 알고 있어서,
이것을 이스라엘 쪽에 알려 주어 이스라엘군은 백전 백승을 거두게 된다.

적군(아람)의 작전 내용을 여호와로부터 알아내어 이스라엘군 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한 사람은 선지자 엘리사(엘리야의 제자)였다고 한다.
엘리사는 적군의 통수권자인 아람 왕이 안방에서 그 부인(왕후)과 귓속말로 소근거린 내용까지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전지전능한 신(神) 여호와가 함께 하고 있었으니 무엇인들 할 수 없는 것이 있었겠는가?

아람 왕은 엘리사를 제거하지 않고는 그 전쟁에서 승산이 없음을 알게 된다.
실제로는 여호와를 제거해야 될 텐데.....
마침내, 아람 왕은 엘리사를 잡아 죽이기 위하여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도단성>으로 파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엘리사가 도단성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람 왕과 그 각료들은 멍텅구리였던가?
왜냐 하면,
전지전능한 신(神) 여호와가 선지자 엘리사를 통하여 이스라엘군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람 왕은 물론 그 각료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호와가 전지전능한 신(神)이란 것을 알면서도 이에 대항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인가?

안방에서 자기 마누라와 귓속말로 소근거린 내용까지도 알아내는 능력을 가진 신(神)을 잡아 죽이려고 시도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인가?
엘리사(여호와) 쪽에서는 아람 왕이 엘리사를 잡아 죽이려는 계획도 이미 알고 있을 것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도 상대(엘리사=여호와)를 잡아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는가?


여기에서 잠시 바이블을 보기로 하자.

[왕(아람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저희가 밤에 가서 그 성(도단)을 에워쌌더라.....
아람 사람(군사)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엘리사가 저희(적군=장님)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도 아니니,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의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저희를 인도하여 사마리아(이스라엘의 도성)에 이르니라.]

(열왕기하 6;14~19)

1) 엘리사가 여호와에게 기도했다고 한다.
자기를 잡아 죽이려고 몰려온 많은 적군들의 눈을 멀게(어둡게) 해 달라고.

그러자 여호와는 엘리사의 편을 들어 많은 아람 군사들의 눈을 멀게 했다고 한다.
이제 아람 군사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님들이 된 것이다.


2) 엘리사가 장님들 앞에 나아가서 말했다.

엘리사; "당신들은 여기에 무엇을 하려고 왔습니까?"
장님들; "우리는 엘리사를 잡아 죽이려고 왔다."

엘리사; "당신들은 길을 잘못 찾았습니다. 이 길은 그 길도 아니며, 그 성도 아닙니다.
             내가 당신들을 인도할 테니 나를 따르시오. 내가 당신들이 찾는 사람에게로 인도하겠습니다."

장님들; "............"

3) 장님(아람 군사)들은 엘리사를 따라 이스리엘의 도성 사라마리아로 들어가서 모조리 체포되었다고 한다.
도단성에서 사마리아성까지는 적어도 50 리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눈이 멀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님들이 무엇을 하려고 엘리사를 따라 먼 거리를 행군했을까?

4) 지루할 것 같아 여기서는 생략했지만, 
여호와는 이 때 무수히 많은 불말(馬)과 불병거(兵車)를 엘리사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불말과 불병거는 엘리사와 그 사환(종)의 눈에만 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또, 이 불말과 불병거는 어디에도 사용되지 않는다.
또, 장님 군대와 상대하기 위하여는 불말과 불병거 따위는 필요치도 않다. 
그렇다면, 여기에 불말과 불병거가 왜 등장했을까? 여호와의 장난인가?

이상에서 잠시 살펴 보았지만,
두뇌 조직이 엉성한 사기꾼이 꾸며내는 허구(虛構)이다 보니, 모순과 궤변으로 버무려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사>의 기적 이야기는 없었던 허구(거짓)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호와, 예수 및 예수교는 허구이며, 혹세무민 집단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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