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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교(바이블)의 곱빼기 궤변]-헐!
글쓴이 : 제삼자  (121.♡.127.15) 날짜 : 2017-04-02 (일) 09:18 조회 : 1154 추천 : 2 비추천 : 0
[예수교(바이블)의 곱빼기 궤변]-헐!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일까?
(1) 착한 일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일이 더 어려울까? 아니면,
(2) 신을 찾아내어 그 신의 존재와 가르침을 믿고 배우며 살아가는 일이 더 어려울까?
이렇게 2가지 숙제가 주어진다면,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어느 일을 실천하기가 더 어려운 것일까? 
착한 일을 행하며 살아가는 일과 신을 믿으려 살아가는 일 중에 어느 쪽 일이 더 어렵고 힘든 일일까?

예수교(쟁이) 사회에서는 실천(行)은 어려운 것이고, 믿음 생활은 간단하고 쉬운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나온 말이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다. 아주 쉽고 간단한 믿음만 가지면 누구나 천당에 들어가서 영생 복락을 누릴 수 있다는 게 예수교의 기본 교리이다.
이제, 실천(行)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이며, 예수(여호와)를 믿고 받드는 일은 얼마나 쉽고 간단한 것인가를 따져 보기로 하자.

바이블을 보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으며...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저희(사람들)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3;10~18)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한다. 예수의 가장 위대한 사도(使徒) 바울의 말이다. 그렇다. 실천(行)을 기준으로 따져 볼 때, 의인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실천(行)으로 따져서 의인(義人)이 한 사람도 없다는 말에 이의를 달고 싶지는 않다. 거의 아니, 100% 수긍이 가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역시, 실천(行)의 결과물로 의(義)로운 인격을 갖추기는 어려울 것 같다.
따라서, 행실의 열매를 계산해서 천당으로 보낼 사람을 뽑는다면, 틀림 없이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참고; 의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는 세상에서 그래도 훌륭한 사람들이 있으니, 이름하여 <예수쟁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수쟁이들은 사랑과 희생봉사 정신으로 세상을 맑게 정화시키는 여호와(예수)의 일꾼들이기 때문이다.
이 예수쟁이들과 아주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을 실천하는 위대한 사람들이 그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높은 사회적 신분 또는 쌓은 지식이 많은 지성인(?)들의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와 그 실천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한단다.
쉽게 말해서,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어리석고 불쌍한 백성들에게 뭔가 좀 베풀면서 살아야 된다는 아주 멋스러운 말이다. 글쎄, 그게 그렇게 말처럼 되어진 적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예수쟁이들이 세상이 떠나가도록 떠들어 대는 사랑, 희생, 봉사 그리고, 기득권자(지성인?)들의 유식하고 멋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과연 실질적으로 실천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서라! 베풀 생각은 그만 두고 악착 같이 더 뜯어 먹는 짓이나 없어지길 바랄 뿐이다.
불교(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사람이 아무리 숭고한 정신으로 자신을 희생하면서 이웃을 돕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모든 것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움직이는 짓이다."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어떤가? 아직도 착한 일을 실천(行)한 열매로 계산하더라도 천당에 들어갈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거 큰 일 났네! 꼼짝 없이 뜨거운 지옥불로 들어가서 영원토록 이를 갈며 신음해야 되는 길 밖에 없단 말인가?
결론이 나왔다. 실천(行)의 열매로 천당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비로소, 예수교의 사랑이 많은 신 여호와(예수)의 은혜가 쏟아지게 되는 것이다.

바이블을 보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義)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神=여호와)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여호와=예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신(神)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5;1~2) 

앞에서도 언급됐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실천(行)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예수교의 신 여호와(예수)는 인간의 불가능한 실천(行)에 대해서는 슬쩍 눈을 감아 주고, 오직 간단하고 쉬운 믿음만으로 의(義)롭게 여겨 구원하겠다고 은혜를 내려 주었다는 말이다. 
실천(行)은 어려운 것이어서 불가능한 것이지만, 믿음은 쉽고 간단한 것이어서 누구나 손쉽게 구원을 받아 천당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아멩 할렐루야!


참고; <이신칭의(以信稱義)>=실천(行)이 아닌 믿음으로 의로워져서 구원을 받아 천당에 갈 수 있게 해 준다는 여호와(예수)의 은혜를 지칭하는 예수교의 으뜸되는 교리이다.


그러나, 과연 실천(行)은 어려운 것이고, 믿음은 쉬운 것일까? 그래서, 실천(行)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하겠다는 약속(?)을 신의 은혜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러나, 또 그러나, 이것은 지능지수 45이하의 예수쟁이들에게나 통하는 어림없는 궤변이다. 
물론, 실천(行)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실천(行)은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조금이라도 실행할 수 있는 범주(範疇)이다. 100% 실천으로 100% 열매를 맺기는 어렵지만, 다만 1% 만이라도 실천하여 1% 열매를 맺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신(神)을 찾아 내어 그것을 믿는 짓은 100% 불가능한 다른 세계이다. 인간의 어떤 재주로도 신(神)을 감지할 수도 터득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신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그것을 알아 낸다는 것도 전혀 불가능 또 불가능 또 불가능만 있을 뿐이다. 

사람들 특히, 예수쟁이들이 아주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예수쟁이들은 자기 입으로 "믿습니다" 했을 때, 그것을 자기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의 연약하고 불안한 마음을 절대적인 어느 힘(神)에 의지하고 싶어서 믿음을 가장하고 있을 뿐이다. 
신에 대한 믿음은 그렇게 값싸고 쉬운 것이 아니다. 아니, 인간의 신에 대한 믿음(또는 지식?)은 아예 불가능한 경지일 뿐이다.

따라서, 불가능하더라도 실천(行)으로 구원한다면 모를까, 믿음으로 의로워지기도 하고 구원된다는 이론은 이치에도 맞지 않는 궤변이며 허구이다. 
사람의 재주로는 신(여호와=예수)을 알아 내는 일도 불가능한 일이며, 그 신의 명(가르침)을 알아내는 일도 불가능일 뿐이다. 따라서, 그 신을 믿는다는 짓도 100% 불가한 경지로서 바보 멍텅구리들 끼리나 통하는 웃기는 말이다. 

실천(行)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예수교의 교리는 예수쟁이들로 하여금 온갖 못된 악행을 저지르게 하는 구실만을 만들어 주고 있다.
"예수를 믿습니다" 예수쟁이들은 주구장창 이 말을 뇌면서 스스로 용서도 잘 받고, 천당도 맡아 놓은 셈이다. 이 얼마나 간단하고 쉬운 용서 받기요 천당행인가! 예수쟁이들은 좋겠다. 
예수쟁이들만 살판 만난 셈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웃기는 짓(사실은 악)이 또 있을까! 

지루하더라도 한 번 더 강조해 둔다. 
실천(行)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인간을 평가할 때는 실천 여부만으로 계산해야 옳다. 믿음으로 평가하겠다는 발상은 예수쟁이(지능지수 45이하 짜리)들 끼리나 통하는 궤변일 뿐이다.
인간의 재주로는 신을 감지해 내는 일이나 그 신의 가르침을 찾아내어 믿는 일이나 모두가 200% 이상으로 불가능 또 불가능일 뿐이다. 
여기에다 뭔가를 변명해 보려는 사람이 있다면, 신팔불출(新八不出=진짜 예수쟁이)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정말로 아멩 할렐루야다!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121.♡.127.15) 2017-04-03 (월) 05:48
[4명의 계집을 가져도 좋다?]-대박!


이슬람(아랍) 사회의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짐작된다.
이 일부다처제 이야기는 남성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할 것이다. 대박!
그러나, 또 그러나, 이것은 언제나 단서 조항 없이 굴러다니는 즉, 전제 조건이 생략되어 있는 즐거운(?) 말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일부다처제는 소위 <역사 비판적 안목>이라는 것이 빠진 형태의 옛날 고릿적 잔해(殘骸)에 지나지 않는 말이라는 말이다.

* <옛날 고릿적>의 "고리"는 우리 역사상의 "고려"를 당시 사람들은 <고리>라고 발음했다 한다.
"옛날 고릿적 얘기"는 적어도 수 백 년 내지 천 년 전 즉, 고려 시대의 얘기라는 말이 되겠다.
발가락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를 "고린내"라고 하는 것도 같다.
이 "고린내"의 어원에 의하면, 원 제국 시대의 사람들이 고려 사람을 능멸하는 의미로 <고려인의 냄새>를 가리켜 "고린내"라고 지칭한데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옛날, 고려 시대의 사람들은 <고려>를 "고리"라고 발음했다는 설이 맞는 말 같지 않은가?

이슬람 사회에서 "4명의 아내를 가져도 좋다."는 말은 앞뒤 사정과 경우를 모두 생략하고서 떠들어지는 무지막지한 말이란 말이다. 그러면 그렇지.....


[만약, 너희(모슬렘)들이 고아(孤兒)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걱정된다면, 마음에 드는 계집을 두 사람 또는 셋, 넷이라 할지라도 아내로 맞아들이도록 하라.
그러나, 그 아내들을 공평하게 다룰 일이 걱정된다면, 한 사람의 아내나 혹은 네 오른 손이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하라.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다.] 

(코오란 4;3)

(1) 아랍권에서 아내를 4명까지 둘 수 있다는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의 근거는 위에 인용된 코오란의 내용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그러나, 한 남자가 4명의 아내를 가져도 된다는 모슬렘의 교리 뒤에는 마호메트의 고충이 담긴 역사적 배경(전후 사정)이 깔려 있다.

여기에서, 잠시 이야기는 곁길로 간다.
사실, 아랍권만이 아니라, 전근대 사회 이전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가 아닌 사회는 없었다.
오히려 4명의 아내는 문제도 안 된다. 능력과 조건만 되면 무한 수의 아내를 둘 수도 있었다.
우리 나라 속담에는 "열 계집마다 할 사내 없다."는 말까지 만들어 내며 여러 계집을 거느리던 시대도 있었다.

자연(自然)에다 직접적으로 힘든 노동력을 쏟아 부어야 생산 활동이 되던 전근대 사회 이전에는 여자가 재화(財貨)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은 별로 없었다.
더구나, 기후 풍토가 지극히 척박한 사막 벌판에서 <노략질 전쟁>으로 먹을 것을 찾아야 했던 고대 중동 지방에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여자는 신체적, 생리적 조건 및 육아(育兒) 과정 때문에 일차산업(一次産業 또는 광업) 및 전쟁(戰爭)에서 남자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문명이 미개했던 고대 사회로 소급할 수록 남자에 비하여 여자가 할 수 있는 생산 활동은 거의 없었다.
이런 상황들이 바로, 전근대 이전 사회가 남녀차별(男女差別) 또는 남존여비(男尊女卑) 풍조를 만들어 내게 되었던 것이다.
생존(먹고살기)을 위해서 여자는 어느 남자에게 기대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2) 이슬람 군은 623년, <바도르 전투>를 치뤘다. 이 전투에서 마호메트는 두 배가 넘는 적군을 격퇴했다고 한다. 
적군 전사자는 100여 명이었고, 이슬람 군에서는 전사자가 겨우 14명 뿐이었다. 마호메트가 인솔하는 군대가 대승을 거두었던 것이다.

다음 해에는 <우흐드 전투>가 있었다. 
이 전투에서는 적군의 전사자가 27명인데 반하여 마호메트 편에서는 70여 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이렇게 마호메트는 자고 새면 전쟁을 일삼던 시대에 이슬람의 지도자가 되어 살았다. 

마호메트는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동시에 이슬람 군의 최고 지휘자이며, 개혁자인 동시에 정치가로서 자기 수완을 발휘해야만 했다.
끝없는 전쟁으로, 그 날 그 날의 호구지책도 없는 과부와 고아들은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있었다. 
마호메트는 우선적으로 이런 사회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 한 불만과 동요를 막을 수도 없고,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는 상황도 막을 수가 없게 되었다.

위에 인용된 코오란 구절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3) [만약, 너희(모슬렘)들이 고아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걱정된다면, 마음에 드는 계집을 두 사람 또는 셋, 넷이라 할지라도 아내로 맞이하도록 하라."]

전쟁터에서 죽은 병사에게는 집에 남겨 둔 아내와 어린 자식이 있다. 호구지책을 할 수 없는 과부와 고아가 생겨나는 것이다.
"4명의 아내를 가져도 좋다."는 허락은 바로 고아가 딸린 과부를 아내로 맞아들여 그들을 먹여 살리는 책임을 지라는 뜻이다.
물론, 자식이 딸리지 않은 과부도 있다. 그러나, 자식 없는 과부도 생활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마호메트 생존 당시에, 아랍권에는 남녀의 비율이 1:4였다는 설도 한다. 노략질 전쟁이 이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내들을 공평하게 다룰 일이 걱정된다면, 한 사람의 아내나 혹은 네 오른 손이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하라.]

4명의 아내가 있는 남자에게는 당사자들끼리 적당한 합의로 공평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 한 가지 예로, 아내 한 사람 당 1주일 씩 잠자리를 하기로 합의가 됐다면, 한 아내는 대략 한 달 간격으로 남편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금전적인 것도 문제가 되겠지만, 체력이 모자라는 남자는 4명의 아내에게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헐!

그래서, "그 아내들을 공평하게 다룰 일이 걱정된다면, 한 사람의 아내나 혹은 네 오른 손이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하라."는 코오란의 내용이 생겨나게 된다. 
"오른 손이 소유하고 있는"이란, 노예(노비)를 뜻한다. 

너무 긴 글이 됨을 막기 위하여 <오른 손>에 대한 의미는 생략하겠지만, 여기의 <소유>는 노예(노비)를 뜻하는 것으로, 노비(사내 종과 계집 종)는 인간이 아니라 물건 짝이므로 주인 마음대로 취급할 수 있는 존재이다. 

계집종은 4명의 정식 아내와 상관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취했다 버렸다 할 수가 있다.
따라서, 4명의 아내에게 금전과 잠자리를 공평하게 해줄 자신이 없는 사람은, 차라리 1명의 아내와 이미 소유하고 있는 계집종만으로 만족하라는 말이다. (이것만 해도 대박!이지 뭐.) 헐!

마호메트 자신도 여러 아내 중 특히 예쁜 <마리아>라는 계집에게 더 많은 잠자리에 들다가 들통이 나서 큰 곤욕을 치르는 장면이 있다. 
이 때, 마호메트는 자기 자신에게 편리하도록 새로운 알라의 계시를 받아(?) 발표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하는 장면은 여간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글이 길어지고 지루하므로 이것은 생략한다.)

(4) 이상에서, 코오란의 일부 구절이 알라(신)의 계시 형식으로 태어나게 되는 장면을 역사적 배경과 마호메트가 직면했던 상황을 조명하면서 서술해 봤다.
이렇게, 코오란의 내용이 씌어지던 시대의 주위의 모든 상황을 역사적으로 조명(비판)하면서 살펴보는 안목이 바로 <역사 비판적 안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필자는 아직까지 모슬렘(이슬람교도)을 만나 본적이 없으므로 이슬람교에 대한 실제적인 언급은 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독자들은 마호메트의 상황=모세의 상황으로 놓고 해석하면, <역사 비판적 안목>으로 바이블을 볼 수 있을 것이다.

(5) 여기에 대단히 중요한 것이 있다.
예수교의 유식한(?) 쟁이들은 바이블에 대한 논쟁 중에 논리(과학)로는 도저히 변명할 수가 없게 되면, "바이블은 그렇게(?) 해석하는 게 아니라, <역사 비판적 안목>으로 보아야 한다."고, 제법 유식한 척을 한다.
그러나, 예수쟁이들은 바이블을 죽으나 사나 문자주의로 고집 불통이 되어 우겨야지, <역사 비판적 안목>으로 뜯어보면 볼수록 점점 더 자명하게 엉터리 허구(虛構)로 판명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역사 비판적 안목>이란, 고대 미개 시대의 사람들이 주위의 환경을 당시의 두려운 눈(감각)으로 보고 느낀 상황들을, 현대의 사람이 과학(과학)의 힘으로 거기에 동참하여 느껴 보는 방법을 말한다. 
결론은 뻔하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은 고대 미개 시대 사람들의 무지와 공포가 만들어 낸 허구(虛構)이며, 거기에다 긴 세월이 지나면서 예수교 속에서 밥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이 자기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내용을 가감시킨 혹세무민의 악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이블을 <역사 비판적 안목>으로 해석하게 된 배경에는, 현대에 이르러 <계몽주의 사상가>들에 의한 공격을 막아낼 방법이 없게 되자 도입된 방법 중 하나이다.
그러나, 바이블을 <역사 비판적 안목>으로 해석한다고 하여 거기에서 신(神=여호와, 예수)이 증명되는 것도 아니며, 반인륜적 내용이 도덕적, 윤리적 의미로 둔갑되는 것도 아니다.

또, 우리 한국의 예수교에 가득한 근본주의자(골수분자)들의 막돼 먹은 정신 세계를 치유할 방법도 나오지 않는다.
예수교는 오직 도태되는 방법 외에는 어떤 것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 안 그래? ㅎㅎ...아멩 할렐루야!
제삼자 (121.♡.127.15) 2017-04-03 (월) 05:49
[4단 통 광고 비가 6,000만 원?]


(1) 신문에다 대문짝 만한 광고를 할 때, 즉, 지면의 1/4 또는 1/5에 해당하는 광고를 낼 때, 이를 가리켜 <4단 통> 또는 <5단 통>이라고 명명하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어느 뉴스에서 "신문에다 <4단 통>이나 <5단 통>으로 광고를 내려면 거금 6,000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는 말을 들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필자(제삼자)가 1980년대 초, 여러 개의 주요 일간지에다 <4단통>으로 바이블(예수교=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비판하는 광고를 쏟아 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광고비로 1회에 400만 원 씩 지불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때의 광고 메시지 중 하나는 "병신은 교회에 나오지 말란다."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병신은 교회에 나오지 말란다." 바이블에서 근거 구절을 찾아내어 인용까지 해서. ㅎㅎ...아멩 할렐루야! 
이 광고가 나가자 마자 우리 집 전화 벨소리는 밤새도록 그치지 않고 울렸었습니다. 연락처로 우리 집 전화 번호를 올려 놨었거든요. 헐!

* 2000년 대 이후부터는 월 3만 원(컴퓨터 가입료?) 정도만 들이면, 400만 원 또는 6,000만 원보다도 훨씬 큰 효과를 얻을 수가 있군요. 
전지전능하다는 예수교의 신도 컴퓨터(또는 SNS) 앞에서는 쪽(씨름판에서 쓰이는 특수한 기술?)을 쓸 수가 없는 세상이 됐습니다. 헐!


(2) 필자가 처음으로, 바이블(여호와=예수) 속에서 사람 죽이는 이야기, 사람에게 악신(惡神) 집어 넣는 이야기, 비 윤리적 활동도 서슴지 않는 이야기, 비 과학적 비 논리적 이야기 등등을 지적하여 발표했을 때,

"그런 내용이 바이블에 있을 리가 없다." 
"거짓말 하지 말라." 
"바이블 어디에 그런 말이 있단 말이냐?" 
심지어는 "너 죽고 싶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줄 알아." 등등의 공갈 협박이 난무했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50년 전이나 10여 년 전까지도 마찬 가지였었습니다.
그런데,1999 년과 2000 년 사이에는 수많은 사람(특히 장로급 예수쟁이)들이 그 바이블의 모순성과 악독성에 대하여 놀라워하면서 필자에게 응원하기도 했었습니다.

예로서, 조선일보 독자 마당과 청와대 게시판에서는 수 백 명의 독자들이 논쟁을 벌이기도 했었는데, 그 논쟁들의 근간은 거의 모두가 
"바이블에 그런 내용이 있었느냐?" 
"믿음 생활 수 십 년에 처음으로 알게 되는 일이다." 
"예수쟁이라는 것이 부끄럽고 억울하다." 등등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바이블은 그렇게 해석하는 게 아니다." 
"바이블은 전체의 흐름으로 파악해야 되는 것이다." 
"바이블은 역사  비판적 안목으로 봐야 되는 것이다." 
"성령이 함께 해야 바이블은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등등의 궤변이 나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모든 현상들이 불과 10여 년 전부터 벌어지는 현상들입니다. 엄청난 변화들이라고 자신합니다.
이제, 몇 년 후에는 어떤 종류로든 결판이 나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박!


(3) 지금 각종 게시판에 나타나서 바이블(예수교)을 감싸고 돌며 궤변을 떠들어 대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아직 생활 기반이 잡히지 않은 목사(전도사) 수준급들이라고 판단됩니다.
이런 궤변들에다 일일이 답변하고 응수하게 되면, 좋은 글들이 뒷면으로 밀려나게 되고, 게시판이 너무 복잡하여 뜻있는 독자들의 정신을 혼돈시켜 갈피를 잡을 수 없게 하여 안티 활동의 효과를 반감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교의 과거와 현재를 있는 그대로 알리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의 모순을 조용히 그리고 줄기차게 알려 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쟁이들도 분명히 사람 껍데기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이블의 모순과 악독성과 예수교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알게 되면, 설교하는 자도 그것을 듣는 자도 자유로울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계기와 인연이 맞는 때를 당하면 서서히 예수교와 멀어지는 현상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바이블의 모순과 악독성 및 예수교의 더러운 역사를 처음 들었을 때는 변명해 보려고 갖은 궤변을 동원하지만, 결국은 그들도 예수교를 떠날 날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4) 여기에다 오프 활동이 곁들여지면 금상첨화가 되겠지요.
글쎄요. 반기련 활동이 또 다시 <오프 활동>까지 겸하는 날이 올른지 모겠습니다.
아니지요. 이대로 쭉~~ 예수교가 슬그머니 사리질 수도 있겠지요? 반기련의 오프 활동이나 더 적극적인 활동 없이도 예수교가 슬그머니 도태되지 말란 법도 없겠지요. 대박!
 
반기련 활동이 점점 더 활발해진다는 말은 예수교가 점점 더 극성을 부린다는 뜻도 될 것입니다.
반대로, 반기련 활동이 있는 듯 마는 듯 조용히 움직인다는 말은 예수교의 교세도 그만큼 쇠퇴됐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요즈음, 예수교에서 전도 활동으로 얻어지는 결과물은 모르긴 몰라도 0일 겝니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암, 아멩 할렐루야!
제삼자 (121.♡.127.15) 2017-04-03 (월) 05:50
[예수교 신(여호와 또는 예수)의 위대한 능력] 


전지전능한 재주가 있는 신이 있어서 그가 천지를 창조해 냈다고 하자.
이렇게 엄청난 능력을 가진 신이 귀신과 장난을 치기도 하고, 사람을 굴복시키고 그 위에 군림하여 우쭐대려고 한다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헐!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한 구절을 음미해 보기로 하자.

[다음 날, 예수(여호와의 아들)의 일행은 산에서 내려 와 큰 군중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 때, 웬 사람이 군중 속에서 큰 소리로
"선생(예수)님, 제 아들을 좀 보아 주십시오. 하나밖에 없는 자식입니다.
그 아이는 악령(귀신)이 덮치기만 하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경련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온 몸에 상처를 입습니다만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하며 소리쳤다.

예수께서는
"이 세대가 왜 이다지도 믿음이 없고 비뚤어졌을까! 내가 언제까지나 너희와 함께 살며 이 성화를 받아야 한단 말이냐? 그 아이를 나에게 데려 오너라." 하셨다.
그 아이가 예수께 오는 도중에도 악령(귀신)이 그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발작을 일으켜 놓았다. 예수께서는 더러운 악령을 꾸짖어 아이의 병을 고쳐서 그 아버지에게 돌려 주셨다.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예수의 아비)의 위대한 능력을 보고 놀라 마지 않았다.]

(누가 9;37~43)

1) 사람에게 악령(귀신)이 덮치는 현상을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귀신이 움직이는 모습을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헐!
미개 시대의 무속 신앙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그래 안그래?

2) "악령(귀신)을 쫓아 내지 못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이 악령을 쫓아 내려는 시도를 했다는 말이다. 어떤 방법을 시도했을까? 헐!
이것도 미개 시대의 무속 신앙 따위의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뿐이다. 안 그래?

3) 예수 가라사대, "이 세대가 왜 이다지도 믿음이 없고 비뚤어졌을까!" 라며 한탄하고 있다.
이 것은 믿음이 없고 삐뚤어지면 악령이 덮친다는 말일까? 아니면, 덮친 악령을 쫓아낼 수 없다는 말일까?
<믿음이 없음>과 <비뚤어진 마음(죄악?)>을 묶어서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믿음이 없는 것"과 "비뚤어진 마음"에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걸까? 정말로 예수쟁이스러운 논법이로다. 대박!

4) 예수 가라사대, "내가 언제까지나 너희와 함께 살며 이 성화를 받아야 한단 말이냐?" 하며 사뭇 짜증을 내고 있다.
예수(여호와의 아들)는 그 당시 겨우 3년 정도를 사람들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인류를 구하러 왔다는 자가 3년만에 짜증이라니.......

예수 당시에 다른 사람들은 고사하고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를 정확히 아는 자가 없었다. 
그렇거늘, 예수는 누구를 향하여 무엇을 떠들고 있는 것일까? 누가 언제 무슨 성화를 부렸다는 말일까?
"병든 자식을 고쳐 달라."고 애걸하는 부모의 간절한 호소가 <성화>란 말인가? 그러고도 예수는 인류를 구하러 온 자가 맞는가? 헐!

5)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예수의 아비)의 위대한 능력을 보고 놀라 마지 않았다." 고 하는데, 악령을 가지고 장난치는 일이 위대한 일인가? 그게 전지전능한 신의 일인가?
그리고, 여호와라는 녀석이 정말로 악령(귀신)을 사람 몸 속에서 몰아냈는지 어땠는지 그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감지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여호와의 위대한 능력 즉, "사람 몸 속에 있는 악령을 몰아내는 여호와의 위대한 능력을 보고서 사람들이 놀라 마지 않았다."는 썰(說)이 성립될 수 있는 말일까? 
예수교의 신(여호와 또는 예수)이란 작자가 악령(귀신)을 몰아내는 과정을 사람들이 정말로 인식(감지)할 수가 있었다는 말인가? 맙소사! ㅎㅎ...아멩 할렐루야!

차라리, "호랑이가 담배를 태우던 시절이 있었다."고 썰을 피력하는 게 더 그럴싸하고 합리적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가? 대박!

예수교(바이블) 속에 성립되는 말이 단 1개라도 있을까? 저런!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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