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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왈, "양가죽을 쓴 위선자는 지옥으로"]-헐!
글쓴이 : 제삼자  (121.♡.127.15) 날짜 : 2017-04-05 (수) 23:21 조회 : 840 추천 : 4 비추천 : 0
[예수 왈, "양가죽을 쓴 위선자는 지옥으로"]-헐!


 [(예수 왈) 
"거짓 선지자(결국은 예수쟁이 전체)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늑대)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지옥)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 7;15~20) 


(1) 선지자란 여호와(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알아 내어 이것을 세상에 전파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불교인, 도교인, 힌두교인, 유교인 및 일반인 속에는 선지자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들이 여호와(예수)의 가르침을 알아 낼 수도 없고, 예수교를 전파하려고 활동할 턱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새 말로 선지자란 목사(신부)와 예수쟁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이 선지자 중에는 양가죽을 뒤집어 쓴 늑대가 있으므로 이를 조심하라는 것이다. 

(2) 양가죽을 쓴 늑대(즉, 선지자 및 예수쟁이)는 노략질을 일삼는다고 한다. 양가죽을 뒤집어 쓴 늑대를 구별하는 방법으로는 어떤 종류의 열매를 맺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한국 예수교(예수쟁이)는 무슨 열매를 맺어 놓았다고 보이는가? 현재, 우리 한국의 예수교의 썩어 문드러진 모습은 무슨 열매에 속할까?
18 세기(300 년 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제국주의로 온 세상을 들쑤시며 식민 쟁탈 전쟁을 벌이며 살인 날강도 짓을 하던 서양의 예수쟁이들은 무슨 열매를 맺어 놓았다고 할 수 있을까? 

(3) 유럽 중세 시대의 예수쟁이들이 벌인 십자군 전쟁, 마녀 사냥 등등은 무슨 열매일까? 고대 중동 지방의 여호와쟁이들이 벌여 놓은 짓은 무슨 열매일까? 
남북미 대륙에서 예수쟁이들은 무슨 짓을 했는가? 양가죽을 쓰고서 눈웃음을 살살 뿌리며 벌인 늑대 짓(노략질과 살인질)은 무슨 열매에 해당할까? 
결국, 예수쟁이들은 모두 다 도끼로 찍어 내어 불태워야 할 거짓 선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수가 그렇다고 분명히 단정지어 말했다. 예수쟁이들은 하나도 빠짐 없이 그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는 뜨거운 유황불 지옥으로 보내져야 마땅하다. 

(4) 바이블 내용이 허구이더라도 예수쟁이들의 열매가 아름다우면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 바이블의 내용은 아름다운데 예수쟁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했다면 앞으로의 기회를 생각해서 참고 기다려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교는 바이블(여호와 및 예수의 가르침) 내용도 그리고 예수쟁이의 모습도 양가죽을 늑대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예수교는 실로 천인공로할 무시무시한 열매를 맺는 마귀 집단일 뿐이다.

(5) 몇 년 전, 로마 교황청은 수 천 년 동안 저지른 죄악을 입으로(건성으로)라도 사과라는 것을 했었다. 
보상 없이 맨 입으로 떠드는 사과는 전지전능한 신을 모신 종교로서는 웃기는 짓이지만, 개신교는 그 짓도 못하는 악마의 집단이다. 
필자의 말이 아니다. 예수가 한 말이다. 이제 예수교는 그 열매로 보아 불태워 없애야 마땅하다. 
더 이상 예수교가 양가죽을 쓰고서 노략질을 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틀린 말인가? 여기서도 "바이블은 그렇게 해석하는 게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일까?

(6) 예수교가 모두 썩은 것이 아니라 '일부 사이비'들이 어쩌고 저쩌고 변명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게 다 못돼 먹은 잡소리이다. 
'사이비(似而非)'란, 겉으로는 제법 비슷하나 본질적으로는 다른 가짜를 일컷는 말이다. 그런데, 현재 전세계적으로 예수교는 그 종파가 자그마치 30,000여 개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서 기존 예수교는 모두가 가짜여서 계속 새로운 진짜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교는 진짜는 없고 모두가 가짜라는 증거이다.
결국, 예수교 속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 지옥에 쳐 박아야 될 양가죽을 쓴 늑대들만 가득하다는 결론이다. 예수의 말이다.


(참고) 예수교를 저대로 둔다면 한국은 머지 않아 상상을 초월하는 굴레와 불행을 맛보게 될 것이다. 
"종교는 자유다."라면서, 나와는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이것이 바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락으로 빠져드는 무책임이란 것을 모르고 있다. 
지금 당장의 정치, 경제, 사회의 무질서를 아무리 떠들어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저변의 이유를 모르고 있다.
예수교는 인성(人性)과 인간의 원형(原形)을 파괴하는 무서운 매혼노 집단이다. 이 현상을 감지하지 못하는 한 우리 한국은 커다란 난관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것은 요즈음 예수교의 부서지는 소리가 제법 요란하기도 하고, 가속도가 붙었다는 징후가 사방에서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몇 년 또는 적어도 남북이 통일되기 전에는 예수교가 완전히 박멸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그 비참한 종교전쟁을 한반도에서 막을 수가 있을 것이다.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121.♡.127.15) 2017-04-05 (수) 23:22
[똥 싼 놈이 화내다] 


[또 (예수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밀)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헐! (마태 13;33) 

<천국>=<누룩>  ???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에게 "천국은 어떤 곳이냐?"하고 물어봤던 모양이다.
위의 바이블 이야기는 예수가 직접 설파하는 천당의 모양새이다.
장차 예수쟁이들이 들어가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될 천당은 밀가루 반죽을 커다랗게 부풀리는 작용을 하는 <누룩>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대박!
 
"질량과 내용에는 전혀 변화가 없고, 풍선처럼 겉 모양만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게 하는 현상이 천국이다."-헐!

밀가루와 누룩의 질량에는 아무런 변화 없이 반죽만 커다랗게 부풀려진 모양이 천국이라!
실속은 없이 거죽 모양만 푸짐하게 보이는 그런 곳 즉, 허섭쓰레기 같은 곳이 천당이라는 말이다. 역시, 대박!

이런 껍데기 천당에 가려고 예수쟁이들은 코 뚫린 소처럼 끌려다니며, 평생 동안 이모 저모로 착취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예수쟁이보다 더 억울하고도 못난 인생살이는 없을 것 같다. 
얼 빠진 멀대 인생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천당은 그렇다치고, 그러면 여호와가 창조해 놨다는 이 세상의 현실은 어떤 것일까? 이 세상도 한 번 보기로 하자. 


[전도자(여호와의 증인?)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태양)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전도서 1;2~3) 


누가 누구에게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똥 싼 놈이 화내는 경우와 무엇이 다른가? 
모든 것이 헛수고인 세상을 만들어 놓은 녀석이 누구인데, 누가 누구 들으라고 떠드는 말일까? 헐!

사람이 언제 사람으로 태어나겠다고 의견을 제시하기라도 했는가? 
제 풀에 제 녀석(여호와) 맘대로 생명체들을 동원시켜 놓고서, 이게 뭣하는 짓일까? 
전지전능은 저런 짓을 하라고 주어진 것일까? 헐!

결국, 천당이나 현실 세상이나 신기루 같은 헛것으로 가득 찬 세상이라는 의미가 아닌가?
아서라. 이런 엉터리 속에서 불쌍한 인간의 등을 쳐 먹는 종자들아! ㅎㅎ...아멩 할렐루야!
제삼자 (121.♡.127.15) 2017-04-05 (수) 23:23
[예수쟁이 눈과 귀를 틀어막아 놨다?]-헐! 


1) [네(마호메트 및 모슬렘)가 코오란(알라의 가르침)을 읽고 있을 때, 우리(알라)는 내세를 믿지 않는 자들과 너와의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막을 쳐 두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해할 수 없도록 그 마음을 덮어씌우고, 그 귀에는 마개를 해 두었다. 
내가 코오란 가운데에서 주(主=알라)의 일만을 생각하고 있을 때 그들은 불쾌한 듯 등을 돌리고 있으리라.] 

(코오란 17;45~46) 

코오란(알라의 가르침)을 믿지 않는 사람과 예수쟁이(유대교 포함)들의 귀에다 마개를 막아 놓고, 마음에는 장막을 덮어 씌워 놓았기 때문에 알라(모슬렘의 신)의 가르침이 들리지 않게 해 놓았다는 것이다. 
덮어놓고 믿는 일부터 시작해야만 알라의 가르침이 들린다는 것이다. 


2) [(예수 가라사대) 
"이는 저희(外人)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마가 4;12) 

모슬렘과 예수교의 신(알라와 여호와)의 가르침이 비슷비슷하다. 
여호와 또는 알라를 믿는 사람에게는 자기네 교리가 들리게 하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교리가 들리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점이 있다. (설명이 전달 잘 될는지 모르겠네.) 

신(神)에 대한 올바른 믿음이 생기려면, 먼저 교리(신의 가르침)를 들어야 할 것이다. 
교리를 듣고 터득한 후에야 그 신(또는 그 종교)이 믿어지던지 또는 믿어지지지 않던지가 결판이 날 것이다. 그래 안 그래? 
당연한 논리가 아닌가? 
그런데, "예수교의 여호와(예수)나 모슬렘의 알라는 사람 쪽에서 먼저 믿어야 교리가 들리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것이 논리적으로 참이 될 수 있는 이론일까? 
이것이 순환 논리(모순=궤변)임을 밝혀 낼 능력이 없는 사람은 종교의 굴레에서 빠져 나오기는 영영 틀린 일일 것이다. 
사실상, 종교의 가르침은 이런 종류의 순환 논리(모순)로 뒤범벅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1) "여호와가 허락해야 예수를 믿을 수 있다." 
(2)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여호와를 믿을 수 없다." 

(1) "성령를 받아야 예수를 믿을 수 있다." 
(2) "예수를 믿어야 성령을 받을 수 있다." 

(1) "신(神)을 믿는 사람만이 교리가 들린다." 
(2) "교리를 잘 해석해야 신(神)을 알게 된다." 

(1) "신(神)의 허락(또는 감동 감화)이 있어야 믿을 수 있다." 
(2)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인위적으로) 전도하라." 

(1) 예수교의 가르침 중에는 '예정론'이란 가르침이 있다. (이것은 인간 쪽에서는 어쩔 수 없는 운명론이다.) 
(2) 예수교에는 "믿음(또는 행)에 따라 보상한다."는 교리도 있다. (이것은 인위적 노력 여하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위에 열거한 것들 외에도 예수교에는 순환 논리(모순)는 부지기수이다. 
뿐만 아니라, 목사(신부)들의 설교와 일반 신도들의 언행을 보면, 이건 장난 얘기도 못되는 수준이다. 
허구(모순, 궤변, 및 거짓)이면 모든 것이 끝난 일인데도, 여전히 할 말과 변명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정신과 두뇌 조직이 어떻게 생겼을까? 헐!
군사 (210.♡.168.38) 2017-04-13 (목) 14:06

제삼자님 예수님을 믿지는 않지만 성경을 많이 읽고 연구하는 모습이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역시나 성경말씀대로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바리새인들과 같이 성경도 하나님도 오해해서 곁길로 가게됨을 봅니다

그래도 열정 만큼은 저보다 앞서시네요 인정합니다

기도할때 마다 제삼자님의 이름을 놓고 기도하겠습니다 영안이 열리는 은혜가 있길 소망합니다

제삼자 (121.♡.127.15) 2017-05-07 (일) 13:10
[신(神)은 존재할까?]


(1) "신(神)은 존재할까?"하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모르겠다."하고, 일단 "모른다."는 쪽으로 대답할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신의 존재 여부를 내가 알 턱이 없지 않은가? 

(2) "여호와(예수교의 신)는 존재할까?"하고 누가 물으면, "없다."하고, 나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 이유는 예수교의 경전이라는 바이블에서 "여호와는 허구(가짜)이다."라고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블은 여호와가 존재하지 않는 허구(가짜)라는 사실을 아주 자세하게 증명해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3) 예수는 무엇일까? 예수교(또는 바이블?)에 의하면 예수는 여호와의 아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허구(가짜)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내려진 셈 아닌가? 예수도 허구(가짜)일 뿐이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여호와(또는 예수)의 존재 여부를 "모른다."고 대답할 게 분명하다. 나는.





[사람들에게 인정 받지 못하는 신(神)]


* 사람들에게 인정 받지 못하는 신, 이런 존재가 신일 수 있을까? 고무신(발)인가? 헐!

* 참고; "신은 있다. 고로 발이 편하다." 어느 유원지 가설 변소 벽에 씌어 있던 낙서라고 함! ㅎㅎ...아멩 할렐루야!


예수가 자기 고향에 가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누가 4;24)
예수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환영 받지 못한 상황에 대한 변명이었다. 헐!

여기서 선지자란 신(여호와)의 심부름꾼 즉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고향 사람들에게 속속들이 알려져 있는 사람이 고향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듣는다는 것은 어려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하다.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고만 고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하여 <존경심>이 나올 턱이 없을 것이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거든 그 저자를 만나 보지 말라"는 말이 있다. 
책 내용이야 인간의 이상적인 희망 사항이 작가의 취향대로 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책 내용과 동일한 인격자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인기 있는 정치가, 연예인들도 그들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면 거의 모두가 실망스러울 때가 많을 수 밖에 없다. 어느 사람을 막론하고 그 사람의 내면을 알면 알수록 존경할 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언제인가, 미국의 백악관에서 역대 대통령 4사람의 식사를 담당했던 조리사가 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너무도 오래 전 일이라서...대충 기억에 남는 내용은, 어느 대통령을 막론하고 그 나름의 약점과 부끄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더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인간의 진면모일 것이다.

자기 교회에서는 갖가지로 미움과 배척을 당하는 목사가 다른 교회로 다니면서 <부흥회 설교>로 인기가 대단한 사람도 많다. 
그 목사의 내면과 인격을 모르는 타교인들로서는 그 입에서 나오는 미사 여구에 반할 수밖에 없다.
어느 목사 부인이 자기 남편(목사)에게 말했다고 한다. "다음부터는 우리 살림을 교회 강단에다 차리자" 고. 
강단에 서서 설교할 때에는 그토록 그럴싸한 말만 늘어 놓는 남편이 현실 생활로 돌아왔을 때는 그런 비인격자도 없었던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지금까지의 예화는 모두가 인간(사람)의 경우라는 점이다. 그러나, 신(神)의 경우는 달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 예수의 고향 이야기는 어물성설이다. 선지자(여호와의 앞잡이=사람)가 자기 고향에서 환영을 받을 수 없을 지는 몰라도, 신(예수=神)의 경우는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에게 실망을 주고, 아픔을 주고, 권태를 주고, 환영되지 않는 존재라면 그것은 이미 신(神)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예수(여호와)는 전지전능과 절대와 완전의 대명사가 아니던가?

이제 바이블로 옮겨 가서 생각을 해 보자.

[예수께서...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예수)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이는 그 목수(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그런즉, 이 사람의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예수를 배척(排斥)한지라...]

(마태 13; 52~57 상단)

예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와 그 부모 형제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가 하나 있다. 
고향 사람들이 놀라워할 정도로 예수에게는 지혜와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예수가 가진 지혜와 능력은사람의 것이 아니라 신(여호와)의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예수가 성장하던 시절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고향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굴복됐어야 말이 된다.

<벤허>라는 영화에서, 벤허가 노예로 끌려 갈 때, 예수가 그에게 물을 떠다 먹여 주는 장면이 있다. 
그 때, 감독관이 채찍으로 치려다가 예수의 눈을 보더니,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면서 계속 예수를 돌아다 보고 있었다.
그렇다. 예수가 신(神)이라면, 그의 지혜와 권능에 압도되어 어떤 누구라도 배척 아닌 환영에 앞장 섰을 것이다. 상대가 신이라면, 배척은 고사하고 아부 떠느라 정신이 없을 인간이다.

만약, 여호와(예수)가 전지전능한 신(神)이라면, 그를 대변하는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짜 신에다 가짜 선지자들이 서로 권커니 자커니 하며 벌이는 사기극이기 때문에 그 내면을 알고 있는 고향 사람들에 의하여 배척되는 것이다.
예수는 여호와의 아들도 아니었고, 선지자도 아닌 순전한 사기꾼이었기 때문에 고향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고 배척되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헐!

능력도 없고, 돈도 없으나 거짓이 없고 이웃과 잘 어울리는 것만으로 고향 사람들에게 환영 받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엇엔가 출세(성공)했다는 사람일수록 고향에서 배척되는 경우가 많다. 출세(성공)란 것을 쟁취하려면 대개는 비인간적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기 일쑤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혹, 무엇인가 혜택을 얻으려는 사람의 아부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승이 죽었을 때보다 그 집 개가 죽었을 때, 조상꾼이 더 많다" 는 속담이 이런 때 제격일 것이다. 
예수는 여호와의 아들 즉, 신(神)이 아니라, 일하기 싫은 건달이었다. 
거기에다 신의 아들을 참칭하고 있었으니, 배척 정도가 아니라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예수의 설교)을 듣고, 다 분(憤)히 가득하여, 일어나 동리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리가 건설된 산(山)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누가 4;28~30)

예수에게 <지혜>와 <능력>이 있었다면, 예수의 설교를 들으면서 분개하고, 죽이려고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겠는가? 
도대체, 예수 즉, 신의 지혜와 능력이란 것이 어떤 것이기에 고향 사람들에게 극단적 분(憤)을 일으키게 했을까?

예수는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 "너희는 구원은커녕 모두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설교를 했던 것이다. 
지금의 예수쟁이들이 어느 누구를 닮았을까는 짐작이 되리라.
(어느 정도 바이블 실력이 있어야 감이 잡히는 내용이지만, 이 부분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누가 4; 25~27을 읽어 보기 바란다.) 

* 결론; 
사람이란 모두가 그만 그만한 것이어서 사실을 알게 됐을 때, 특별히 누구에게 칭송될 만한 사람이란 없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자기 고향에서 칭송 받을 만한 사람이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실제로는 종교적 사기꾼)들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선지자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의 경우는 다르다. 전지전능한 신은 지루하거나 권태롭거나 인기가 떨어질 리가 없는 것이다. 신은 고향 아니라 어디에서도 환영 받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고향에서 환영 받지 못한 예수, 심지어 낭떠러지에서 밀쳐죽이려고까지 했다는 것은 신은 고사하고 못된 잡놈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예수가 실존 인물이라면, 예수는 일하기 싫어서 젊은 것들 십 여명을 몰고 다니며 무전 취식하던 잡놈이요 건달이었던 것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여호와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겠다]-헐!

예수교의 신 여호와(Jehovah)의 이름은 6세기 경에 만들어진 용어라 한다. 원래의 이름은 야훼(Yahweh) 또는 엘로힘이었다던가? 
아니, 진짜 이름은 아도나이(Adonay)였다고도 한다. 이 이름으로 예배를 했다고도 전해진다. 
아니지. 예수교 신의 진짜 이름은 <YHWH> 즉, 4개의 자음만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소리 내어 부를 수도 없었던 신이었다고도 한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우리 한국 예수교에서는 <하나님(하느님)>이란 이름을 도용(盜用)하고 있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의 10계명에 의하면,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히(아무렇게나?) 일커러서는 안 된다."고 엄히 경고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쨌든, 여호와(야훼)라는 명칭은 바이블에 거의 6,000번이나 나온다. 그들의 신(神)이라니까 그렇게 여러 번 뇔 만도 하다고 할 수 있겠다.
재미있는 것은 "만군(萬軍=군사령관?)의 여호와"라는 명칭으로 279회씩이나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역시, 여호와는 노략질이 생업이었던 히브리 족속의 씨족 신이요 전쟁신(戰爭神=전쟁 사령과?)이었음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나 할 수 있을까!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서는 여호와(야훼)라는 이름이 모세 때에 처음으로 인간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모세는 아브라함(예수쟁이들의 옛조상)의 7대 손이다. 
그런데, 그 여호와(야훼)란 이름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때에도 불려지고, 심지어는 아담의 손자인 "에노스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불렀더라."(창세기 4;26)라고 되어 있다.

모세 때에 처음으로 만들어진(알려진) 신의 이름을 어떻게 모세 이전의 사람들이 그 이름 <여호와(야훼)>를 부를 수가 있겠는가? 이는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의 내용을 사람의 손이 조작하느라 실수하는 장면이다.
바이블을 조작하는 나중 사람(後 사기꾼)이 먼저 사람(先 사기꾼)의 바이블 기록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 주장을 삽입시키느라 서로 맞지 않는 엉터리 이야기를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여호와(야훼)의 이름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때, 아브라함은 무슨 신(神)의 제사장인지도 알 수 없는 <멜기세덱>이란 사람에게 십일조를 바치는 장면도 있다.(창세기 14;20)
이런 장면도 바이블 기자(사람)가 실수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것이 예수교의 십일조의 기원이라고 한다. 너무 웃긴다. 그지? 헐!

남의 젯상에다 감놔라 배놔라 할 필요는 없지만, 예수교는 우리 한국의 신이신 <하느님(또는 하나님)>이라는 명칭을 도용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를 어쩌지? 만약 예수교에서 <하느님(또는 하나님)>이란 명칭을 도용하지 않고 자기네 신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여호와 아버지...어쩌고 저쩌고...여호와시여 도와주소서...어쩌고 저쩌고..." 어떤가? 기도할 수 있겠는가?
우리 한국 고유의 신이신 하느님 또는 하나님이란 호칭을 도용하지 않고 기도란 것을 할 수 있는 예수쟁이가 있을까? 헐!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남 신의 이름을 도용해서 기도를 한다는 게 될 법한 일인가? 저런!

이제까지 <하느님 또는 하나님>이란 이름으로 기도를 들어야 됐던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야훼)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입이 있어서 항의할 수 있는 처지도 못되고, 힘이 있어서 어떤 방법으로든 제재할 수도 없고... 이래 저래 여호와(또는 예수)는 미치고 팔짝 뛰다가 마침내 복창이 터질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 같다. 세상에나!

다시 말(경고?)한다. 
예수교는 자기네 신의 이름에다 <하느님(또는 하나님)> 명칭을 도용하지 말라. 족보에도 없는 이름으로 불리면 여호와(야훼)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 아니겠는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1) [사람이 감당할 시험(시련)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여호와(예수교의 신)는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 10;13)


여호와는 미쁘사(믿음성이 있다?) 즉, 신의가 있으셔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시험(시련)만을 내리신다고 한다. 저런!
여호와는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어렵고 힘든 시험(시련)은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한다. 헐!

여호와는 사람에게 시험(시련)을 내릴 때에, 
피할 수 있는 길도 열어 놓으셔서, 사람이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이럴 경우, 사람은 여호와의 은혜에 고맙다고 해야 할까? 젠장맞을!


1)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이든,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든, 
시련이란 것을 인간에게 덮어 씌우는 여호와의 이유가 무엇일까?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원한 사람은 없다. 사람(모든 생명체 포함해서)은 멋모르고 동원됐을(태어났을) 뿐이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동원(창조?)시켜 놓고서 전지전능하다는 여호와(또는 예수)는 그게 뭣하는 짓일까?

 
신(神)의 간여가 없는 자연 질서 속에서 적자생존을 위하여 시련을 당하고 경쟁도 하는 것이라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한 신(神)이 목적을 가지고 창조해 놓은 세상에서 자기 의지 없이 동원된 인간이 크든 작든 시련(시험)을 당해야 될 이유가 무엇인가?

 
이유를 불문하고, 인간(모든 생명체 포함해서)에게 주어지는 시험(시련)은 불쌍하고 무능한 인간(모든 생명체 포함)에 대한 여호와의 잔인한 횡포가 아닐 수 없다. 악마라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호와는 하루 속히 자신이 허구(虛構)임을 만천하에 밝혀 자신이 뒤집어 쓴 악마적 누명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2) 인간에게 시련(시험)을 내릴 때,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는 길도 열어주신다는 여호와, 이런 궤변도 있을 수 있는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식을 남겨 놓고 암에 걸려 갖은 고생을 하다가 죽어가는 시련도 있다. 이것이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인가?
세월호 침몰 사건! 이런 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인가? 6.25 전쟁 참화!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극복하고 벗어날 길인가? 

한 가정의 모든 것을 책임지던 남편 또는 아버지가 교통 사고를 만나 시체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남은 유가족이 겪는 고통과 슬픔이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인가?
젊은 나이에 질병으로 죽는 사람도 많다. 
그 죽은 당사자에게 여호와(또는 예수)가 마련해 준 시련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어느 것인가? 
죽은 뒤에 천국의 복락을 준다는 말인가? 저런! 웬 일이니?


그런데 말이다. 크든 작든, 인간에게 주어진 시련을 벗어난 사람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인간은 주어진 모든 시련을 극복한 셈이다.
이것이 여호와가 마련해 준 피할 수 있는 길인가? (이런 경우를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자에게는 없다.) 헐!

 
어떤 주부가 콩을 가마솥에 넣고 볶고 있을 때, 콩들은 이유 불문 꼼짝 못하고 볶아지게 되어 있다.
콩들이 그 주부의 뜻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방법)은 없다. 크든 작든, 콩이 시련(볶아지기)을 극복하는 길은 그냥 볶아지는 것 뿐이다.
마찬 가지로, 여호와(예수)로부터 주어진 시련을 벗어난 사람은 없다. 
최종적으로, 모든 생명체는 각종 시련으로 시달리다가 종착역은 죽음으로 통하는 길 뿐이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느니, 
시련을 줄 때에 피할 수 있는 길도 열어 준다느니 따위는 신(神)의 사기꾼적 궤변일 뿐이다.
 
신(神)의 이름으로 손쉽게 남의 재물을 갈취하여 살아가는 사기꾼들이, 
인간의 수고와 고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기꾼이, 혹세무민하기 위하여 꾸며낸 예수교(바이블)의 궤변이다.


* 참고; 위의 바이블 구절과 비교하며 다음 글을 음미해보라.


(2)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예수)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태 11;28~30)


원인을 알 수 없는 각종 시련으로 허덕이는 인간에게 달콤하기 이를 데 없는 멋진 말이다. 사기꾼의 말은 이렇게 멋진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수고, 자기의 무거운 짐, 자기의 멍에를 가볍게 해 주거나 벗겨줄 자(신)는 없는 것이다.
예수교의 모든 것은 혹세무민을 위한 달콤한 사기꾼의 미끼일 뿐이다. 여기에 한 번 말려든 사람은 모든 것을 빼앗긴 얼빠진 종자가 되고 만다.

좀 냉혹한 말이지만, 자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사람은 자신 뿐이다.
여호와(예수) 아니라 그 할애비가 나타나더라도,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대신 걸머져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생명체는 죽는다는 사실과 함께 우주의 진리(眞理)이다.
이 엄연한 진리를 엉뚱한 곳에서 찾으려는 예수쟁이들의 허욕과 이를 교묘히 이용하려는 종교 사기꾼의 합작품이 바로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모슬렘 천당과 예수쟁이 천당] 


(1) [신앙(모슬렘)을 가지고 선행을 쌓은 사람은 그 신앙이 있기에 주(主=알라)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 
쾌적한 낙원(천당)에서는 그들의 발 밑에 냇물이 흐르고 있다.

그 곳(천당)에서의 
구호는 "알라(신)에게 영광이 있으라!", 인사는 "평안이 있을지어다!", 기도는 "만물의 주(主)이신 알라를 찬양하라!" 이다.] 

(코오란 10; 9~10) 

마호메트교 신도들이 죽어서 갈 수 있다는 모슬렘의 천당 이야기이다. 
사막 벌판을 조국으로 가지고 있는 민족(또는 국민)에게는 천당에서도 가장 중요한 조건이 "발 밑에 냇물이 흐르는 것"이라고 생각해 낸 점이 참으로 재미있다.
황량한 사막과는 달리 충분한 물이 흐르는 멋진 천당에서 인간이 할 일은 3가지 뿐이라고 한다. 척박한 사막 기후에 시달리다가 초원(천당)에 안착한 생활은 대단히 편할 것 같다.

1. 구호는 "알라(신)에게 영광이 있으라!",  
2. 인사는 "평안이 있을지어다!", 
3. 기도는 "만물의 주(主)이신 알라를 찬양하라!" 
이렇게 3마디만 하고서 영생 복락을 누리기만 하면 된다고 하니,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그러나, 예수쟁이들에게는 위의 모슬렘에 대한 천당 얘기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예수쟁이들은 위의 모슬렘의 천당 얘기가 왜 믿어지지 않는 것일까? 
예수교의 얘기가 아닌 것은 덮어 놓고 믿으면 안 되는 것인가? 그냥 덮어 놓고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인가?

그러면, 다음 얘기를 더 보 기로 하자. 

(2) [내(예수) 아버지 집(천당)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요한 14; 2~4) 

이상은 예수교의 천당 이야기이다. 예수가 떠들어 놓은 말이다. 
예수쟁이들은 위의 이야기를 믿을 뿐만 아니라, 침을 질질 흘리며 넋을 잃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1) 번의 코오란 이야기는 믿지 못하고, (2) 번의 바이블 이야기는 믿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믿을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고, 코오란(알라의 가르침)을 믿을 수 없는 근거는 무엇일까? 
그냥 덮어 놓고 예수교의 것은 믿어야 되는 것이고, 모슬렘의 것은 배척해야 되는 마귀의 소리인가? 

어떤가? 예수쟁이들이여! 
아직도 자신이 무엇엔가 멍텅구리 노릇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가? 
세뇌의 결과가 이렇게 무서운 것이던가? 


참고; 위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내(예수) 아버지 집(천당)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예수쟁이들이 장차 들어가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될 천당에 기거할 자리가 넉넉치 못할 수도 있어서, 예수가 먼저 가서 처소를 준비하겠다는 말이다.
어떤가? 전지전능하다는 녀석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며 감탄사까지 남발하면서 창조해 놨다는 세상인데, 아직도 뭔가 모자라는 게 있어서 준비해야 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핑계가 될 법한 말인가? 헐!

"내(예수)가 너희(예수쟁이들)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는 천당에 자리를 준비하기 위해서 갔다 온다고 했다. 그런데, 한 번 가버린 예수는 2,000년이 넘도록 다시 오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그 천당에 자리가 마련되지 못한 모양이다. 

천지를 창조할 때는 6일 만에 뚝딱 해치웠다고 자랑했던 여호와(또는 예수)였다. 
그렇다면, <천지 창조>보다 천당에다 자리 만들기가 훨씬 어려운 것인가 보다.
그렇더라도, 6일과 2,000년(730,000일)은 너무 차이가 많다. 헐!

어떤가? 
전지전능한 여호와가 다스리는 천당에 자리가 모자라서 준비해야 된다는 말이나, 2,000년이 넘도록 그 자리를 준비하지 못해서, 아직도 그 약속(재림)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예수(여호와) 녀석이나....... 
그래도, 더 기다려 볼 작정인가? 예수쟁이들여! ㅎㅎ...아멩 할렐루야!

* 참고; 모슬렘의 천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냇물>이듯 예수쟁이 천당(에덴동산) 모형에도 3개의 강이 흐르고 있다. 역시, 사막 미족이니까.....
       그렇다면, 우리 한국의 예수쟁이들이 생각하고 있는 천당은 어떤 모습일까? 혹시 "배낭에다 50,000원 짜리 돈을 잔뜩 담아서 걸머지고 남산이나 북한산을 끙끙대며 오르는 장면은 아닐까?" 물은 이미 충분(?)하니까.....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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