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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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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인원 : 3,947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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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에서 베껴온 진리....기독교는 도둑질과 날조로 만들어진 종교임
글쓴이 : 동포  (59.♡.24.125) 날짜 : 2017-10-06 (금) 16:39 조회 : 581 추천 : 2 비추천 : 0


제목 :   어느 것이 하나님이고 예수래요?
  글쓴이 : 제삼자                              
   
.........................................(어느개독분께서...)
 
.........예수님 자체를 모욕하는 것은 마음이 아프네여.
 
.................아무리 불효막심한자식이라도 누가 자기 부모님 욕하는데
 
............................. 하나님은 당신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시네여.........................
 
 
 
 
 

(1) 성경(聖經) ;

성경이란 성현들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뜻하기도 하고, 종교의 최고 법전이 되는 책이다.
불교의 대장경, 유교의 사서 오경, 회교의 코오란 등이 다 성경이다.
그런데 예수교는 자기네 구약과 신약을 아무 설명 없이 `성경`이라 하고 있다.
이것이 예수교가 인류 역사 속에서 행하여 오던 못된 짓의 버릇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기독교의 경전은 `바이블`이다.
꼭 성경이라고 하고 싶으면 `예수교의 성경`이라고 해야 한다.
이도 저도 싫으면 고대 히브리 말이나 희랍 말로 사용하던지, 그것은 자유일 수 있다.
필자의 이 말이 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예수교가 인류 사회에서 지탄 받아 마땅한 이유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예수교는 공존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판단되는 셈이다.


(2) 하느님(하나님) ;

하느님(하나님)은 우리 나라의 고유한 자연 신(神)이다.
`하나` `하늘` `할아버지` `한아버지` `하느님` `하나님` `하늘님`등의 말은 "하(크다, 많다)"에서 파생한 말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신(神)인 여호와나 알라 신과는 달리, 하나님(하느님)은 순수한 자연 신이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한국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수시로 자신의 잘 잘못을 비추어 보는 거울 같은 신이 하나님(하느님)이시다.

하나님(하느님)은 자연 신이기 때문에, 한국 사람은 그 말을 들으면 거부 반응 없이 무조건 선(善)을 떠올리게 되어 있다.
예수교가 짧은 시간에 크게 자란 것도 `하나님`을 자기네 신으로 도용(盜用)했기 때문이다.
연약하고 불안한 인간이기에, 바이블의 내용은 아는바 없이, `하나님`이란 말에 솔깃하여 빠져들고, 마침내 세뇌되어 쇠귀신화하고 만다.

예수교의 신은 하나님(하느님)이 아니다. 야훼(여호와)이다. 명심하도록.
실제로는 자음만으로 4 자(YHWH)가 진짜 이름이다
그래서 소리내어 부를 수 없는 신이다. 그러니까 `하나님`만 빼고 맘대로 부르도록.....
 


(3) 헌법(憲法) ;

헌법은 국가의 통치 조직과 통치 작용에 관한 근본 원칙을 정한 기본 법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자기네 회칙을 `헌법`이라 하고 있다.

신(神)은 "하나님(하느님)"을 도용(盜用)하고,
교리 책은 "성경(聖經)"을 도용하고,
회칙은 헌법(憲法)을 도용하고 있다.
으뜸을 뜻하는 의미의 용어는 모조리 도둑질하여 제 것으로 만드는 조직이 바로 예수교이다.

자기네 조직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될 듯싶으면, 벌떼 처럼 일어나 아우성친다.
악담과 폭력과 협박이 그들의 주무기이다.
단군(檀君) 문제도 자기네 종교에 이득이 안된다고 해석되므로 저렇게 악을 쓰며 저지한다.
 


(4) 종교의 자유 ;

세계 각국이 헌법으로 보호하는 `종교의 자유`는, 예수교를 믿어도 좋고, 유교를 믿어도 상관 없고, 불교 신앙을 가져도 좋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법이 아니다.

오로지 바이블에 의하여 태어난 종파끼리 서로 간에 죽기 살기로 싸우는 모습이 지겹고, 더러워서 울며 겨자 씨 먹기로 만들어 놓은 법이다.
이 예수교의 종파끼리 벌이는 전쟁은 10년, 20년으로는 끝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사납고 잔인한 예수교의 콧대를 어느 정도 꺾어 놓은 사람들이 바로, 목숨을 걸고 투쟁한 계몽주의(啓蒙主義) 사상가들이었다.
그 후에 겨우 겨우 만들 수 있었던 게 `종교의 자유`란 것이다.

종교의 자유라는 말이 나오면 예수교인들은 쥐구멍을 찾아야 옳거늘, 고개를 바짝 쳐들고 그 말을 인용하며 떠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5) 설교 내용 ;

목사들의 설교를 들어 보면, 그 게 예수교의 가르침인지, 불교 또는 유교나 도교의 가르침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처음에 바이블을 한 두 구절 읽고서, 그것에다 얼기 설기 엮어내는 예화들은 모두가, 이미 우리 나라에 내재(內在)되어 있는 가치관 즉, 유교, 불교, 도교 등의 가르침들을 출처도 모르면서, 잘도 떠들어댄다.
그것들이 어째서 여호와(예수) 의 것인가?


 
*** 이상에서 살펴 본바와 같이
`성경` `하나님(하느님)` `헌법` `종교의 자유` `설교 내용` 등등, 우리 나라에서 그럴듯한 것 중에 예수교가 도용(盜用)하지 않는 것이 없다.
도용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들을 모두 예수교의 독점물로 만들어 놓는다.
그 재주는 가히 훌륭하다 고 아니할 수 없다.
도대체 예수교가 훔쳐 쓰지 않는 것에 무엇이 있는가?
 
 
 
 
 
 
 
 
 
 
 
 
도둑질의 종교
   글쓴이 : 동포
기독교는 훔친 걸로 연명하는 종교...



1. 교리나 경전 내용은 이미 주변 종교의 것을 훔친거고

2. 천지신명의 고유 이름인 한울님, 한님, 하느님 하나님 의 이름을 훔쳤고

3. 만민제사장 시대에서 "성직자' 의 지위를 훔쳤고

4. 이교도의식을 고대로 차용하여 예배의식을 훔쳤고

5. 바알사제들의 의복을 자기네 고유의 성찬복으로 훔쳐 쓰고 있으며

6. 구제에 쓰라는 십일조를 자기네 목구멍에 집어넣으므로 신의 재물을 훔치며

7. 헌금액의 3.3% 밖에 구제에 사용하지 않으므로
   
    야훼에게 바칠 십일조를 훔친 셈입니다....
 
 
 
 
 
 
 
 기독교는 짜깁기, 표절 각색한 종교임.
글쓴이 : 동포
 
 
관련링크 [1]    http://www.xbible.com.ne.kr/ - hit : 0
 
 
 
 
유죄일까요,무죄일까요? .....by 동포




지역사회에 괜찮은 조로아 음식점이 있었습니다.

음식도 독특하고 맛있었고 더구나 주인장도
개방적이면서도 포용력도 있어서 음식의 메뉴나 조리방법들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기도 하고 공생을 도모하였습니다.

어느날 동네에 세일즈영업하던 사람이 찾아와 음식점 개업을 하고 싶다고
해서 많이 가르쳐주고 한 동네에서 같이 살기로 했었습니다.
새 음식점 주인은 가게이름을 그리스식당으로 하고 메뉴나 조리방법을
크게 바꾸지 않고도 곧잘 장사가 되었고 자기의 노하우를 살려 체인점도 차리고 점차 조직화한 기업이 되었습니다. 비밀조리 방법들도 몰래 훔쳐서 자기가 개발한 것이라고 자랑했습니다.

시간이 꽤 흘러 그 자손들이 계속 음식점을 하고있는 동안에 과연 누가
원조냐?
는 질문도 받게되고 그리스식당의 주인도 혼자 독식하고픈
욕심이 생겨 권력자들과 결탁하여 조로아 식당을 압박하여 문을 닫게 만들었습니다. 또 각 체인점으로 주방장들이나 종업원들을 파견하여 사업은 오랜동안 번창하였습니다.

또 그 옛날일을 아는 사람들도 거의 없어서 우리가 원조이며 이 음식은 우리식당이 최고라고 공공연히 자랑합니다. 과거의 증인들이 있으면 곤란하므로 조로아식당의 식구들이나 종업원들,또는 그때의 단골손님들
이나 그집이 더 맛있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다 처치해 버렸고
이제는 그 식당이 있었는지도 모르며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 식당만
이용합니다.

그런데 식당이 번창하자 각 체인점 주인들이 각자의 이득을 위하여 음식을
변질시켜 버리면서도 오로지 음식은 자기 가게것만이 진짜요 최고요 원조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가게에서는 식중독에 걸린 이도 있었고 맛도 과거와 많이 차이가 나서 어떤 손님들은 차츰 원조였던 조로아 식당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 식당사람들은 그 옛날의 원조 조로아 식당을 찾아보려는
사람들을 반사회적인 파렴치범으로 매도하기도 하고 자기네 주장과 다른 음식평가를 하면 유치하다고 비꼬기도 합니다.

이 식당은 상대식당의 영업내용을 도적질하였을뿐 아니라 모방한 사업내용을 자기가 원조라고 거짓주장 하였으며 곤란한 증거나 증인들을 모두 처치하여 그 이후의 손님들에게까지 거짓말을 하며 성업중인데 음식만 괜찮으면 무죄일까요?

참고로 이 식당의 가훈은 10가지 항목이 있는데 그중에

도적질하지마라,
거짓말 하지마라,
살인하지마라,
네 이웃의 물건을 탐하지 말라 라는
내용도 있다네요.







조로아스터란?

인도에서 성전 Vedas의 마지막 장인 Upanishad 가 씌어질 무렵,
기원전(B.C.E.)600-700 년경에
지금의 이란인 페르시아에 Zoroaster 란 현인이 있어서 지금의 서양문명의 한 근원을 이루는 중요한 신앙적 사상을 전파하였다.
이는 동양의 불교 또는 이와 유사한 철학 또는 종교관념인 <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이 자연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사상에 완전히 반대되는 관념이 되었다.
페르시아 의 이러한 사상은 기원전 약 2000년경부터 시작되었지만 조로아스터에 이르러 완전히 체계화되어 가르침을 주게 되었고 더욱 강력하게 확산되었지만 주변의 다른 관념들과의 충돌은 없었다.

조로아스터는 인도에서 인간은 우주와 조화를 가져야 한다는 사상에 절대적으로 반대하였다.
그는 두가지의 신이 존재한다고 가르쳤는데 하나는 아후라 마즈다 (빛의 신령,자비,전지전능한 창조주,선의 신) 이고 또 하나의 신은 앙그라 마인유(어둠,악의 신)
이다.

선의 신은 선한 세상을 창조하였고 이 세상에는 선만 있으며 광명만 있도록 만들었다.여기에 시기를 느낀 앙그라 마인유 라는 신은 광명의 세상에 어둠을 드리워 그림자가 있게 만들었고,인간을 유혹하여 악하고 사악한 일을 하도록 만드는 일이 업이 되었다.
그 결과 우주는 선과 악이 서로 상반관계를 유지하면서 조화를 이루어 결합하는 세상이 되었다.
따라서 인간이 태어날때에는 이미 선과 악이 결합되어 있기때문에 태어나면서 악의 존재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서는 안되는 것이고 인간은 의지의 힘으로 결정을 내려
실제 용기있는 행동으로 선을 알아차리고 선을 행해야 하며,악을 제거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운 세상을 돕기 위해서 "사오샨트" 라는 구세주가 동정녀의 몸에 잉태되어 세상에 태어나 인류에게 선의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깨닫게 만들며 선을 실행하도록 인도하고 구원을 얻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러한 결과로 구세주로 인해 깨달은 인간들이 노력을 함으로써 "아후라 마즈다"가 애초에 만든 원래의 세상으로 환원하려는 노력이 생기게 되며, 구원이 이루어 질수있는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아후라 마즈다는 앙그라 마인유 신을 쳐부수는 일로 불로서 말세를 고하며,모든 인간을 심판하게 된다.

드디어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뿐인 세상의 성취가 이루어지며, 그때에 구세주의 재림이 있게되고 , 속세에서 구세주의 가르침대로 선한 생활을 한 사람들은 주검에서 부활하여 영생을 얻게 되며,드디어 어둠의 세상은 악의 신 앙그라 마인유와 함께 완전히 제거되고, 광명뿐인 세상을 이룩하여 구원을 받은 자들은 고통없는 극락의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는 내용.

여기에도 천사가 있고 제사장이 있으며 부활이 있다.

결국 그리스도교 사상의 원리와 무엇이 다른지 구별하기 어렵다. 이러한 신앙체계는 예수가 나타나기 6-7세기 전에 완성되어 널리 퍼졌고, 페르시아가 망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페르시아 사람들이 신봉하던 신앙이었다.
이러한 사상은 구약 유대인들의 Yahweh 신과 공존했었고 유대인들의 종교가 둔갑하여 예수왕림 300년후에 현재 우리가 아는 훌륭하게 조직된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인정되면서 탄생하게 되었고,전 세계에 전파된것이 기정사실이다.

조로아스터교가 사라지고 그리스도교가 만연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기원전 480년에 새 페르시아 왕인 Xerxes가 10년전 선왕 Darius의 참패를 보복하기 위해 막대한 대군을 거느리고 희랍을 침공했으나 해군선박의 교묘한 작전으로 페르시아는 대패하고 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투와는 달리 페르시아와 희랍사람들은 서로의 문화와 사상을 존중하고 관대하여서 서로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였고 타협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는 사회였었다.
그후 희랍의 한 소국인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3세 대왕은 데모크라시의 근본사상을 뿌리깊이 갖고 있어 그의 점령지의 통치는 이해와 관용으로 일관되었다.
페르시아도 마찬가지였는데 기원전 586에 바빌로니아에서 탈출한 유대인들이 Jerusalem에 정착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러한 사회풍토와 관습으로 인하여 11세기 로마의 십자군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 갔을때 그곳의 크리스쳔과 유대교도와 회교도들은 종교적 갈등없이 서로가 화목하게 잘 살고 있었다.
불행히도 예루살렘을 점령한 십자군들은 그리스도교,유대교,회교도들을 가리지 않고 수십만명의 인구를 모두 죽여버렸다.
(그 이유는 다음에, 로마 기독교의 모순이 드러나면 안되니까)


로마제국시대에 예수가 왔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하는 일이 생기고,네로황제등에 의해서 박해가 극성을 부리고 극단적인 반그리스도교적인 사회가 약 300년 흐르는 동안에 그리스도교가 정식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으며 곧이어 그리스도교만이 허용되는 사회로 탈바꿈을 하게 되었다.
당시 로마제국은 세계를 통일한 막강한 나라였고,로마황제의 결정이 전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때였다.
그리하여 그 교세가 파죽지세로 세계에 번지게 되었고 다른종교가 박해를 받게 되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수 있다.
당시 로마의 카이사르가 선택한 종교인 로마 가톨릭 교회와 조금이라도 다르게 믿는 종교라면,비록 그 종교가 근원이 같은 그리스도교라 할지라도 이단으로 낙인 찍히게 되고 결국 화형을 당하거나 갈기갈기 찢어지는 죽음을 당하는 때였다.

더구나 조로아스터 같은 종교는 더 더욱 알려지면 곤란한 종교였기 때문에 로마에 점령당한 페르시아 인들이 그 종교를 전파시키기는 커녕 존속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종교가 없어진다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라 믿어질수밖에 없다.

이렇게 조로아스터교와 그리스도교가 너무나 비슷하다면 어느 쪽이 표절한 것이란 생각이 오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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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수는 700년전의 크리슈나(Krishna) 흉내를 냈을까요?
 
 
..  크리슈나(Krishna) ......by  구라

Subject 예수 이전에 먼저 부활했던 힌두교의 성자


인도의 크리슈나(Krishna)는 힌두교에서 두 번째로 추앙받는 위격의 성

자(聖子)이다.

B.C 7세기경(약 2,600년전) 크리슈나(Krishna)는 인도의 한 부족에서

태어나, 스스로 태양신을 숭상했으며, 실천윤리를 중시하는 통속종교를

창도(唱導)했다.

천사와 현인들 그리고 목동들이 크리슈나의 탄생을 지켜봤다고 한다.

크리슈나(Krishna)는 동정녀 처녀에게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목
수였고, 갠지스강 강가에서 세례
를 받았다고 한다.

크리슈나는 나무 위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그는 그를 죽인자들 가운데에서 일어나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해진다.
그는 하나님으로 불리워졌으며 구세주로 불리워졌다.

그는 흰두교의 삼신일체 가운데 두 번째 위격이었고, 자신을 아버지에게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많은 기적과 이적을 행했으며, 나환자와 맹인, 귀머거리를 치료했다.

크리슈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모든 것의 생명이며, 세상을 떠받치는 자이며, 세상의 길이며, 그 피난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는 길이요,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이 연상된다.





예제우스 크리스트나(jezeus Christna)

여기에서 예수 크리스트가 나왔다.

예제우스 크리스트나(jezeus Christna)는 예수 크리스트의 어원인 것이다.

힌두교의 비슈누파(派)에서 비슈누 신은 여러 개의 권화(權化)의 형태로 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한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크리쉬나(Krishna)로, 현대에 와서도 많은 신자를 가지고 있다.

크리쉬나를 실존하였던 인물로 보는 이도 있다.
BC 7세기경 인도의 한 부족에서 태어나, 태양신을 숭상하고 신을 바가바트(Bh嚆gavat)라 하여, 실천윤리를 중시하는 통속종교를 창도(唱導)하였다.

그가 죽은 뒤 그는 자신의 신 바가바트와 동일시되어 마침내 전통적 바라문교의 태양신과 일치됨으로써 바라문교의 신이 되었다. 풍부한 전설과 여러 가지 성격을 갖고 있어, 시대와 장소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요소가 부여된 사실을 짐작케 한다. 중세 이후에는 애인 라다(Radha)와의 사랑을 중심으로 에로스적(的) 신앙이 강조되어 문예 ·회화 ·조각 ·종교시 등의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예수와 인도의 메시아 크리슈나 사이의 유사점은 매우 많다.

신화 연구가인 제럴드 매시 는 크리쉬나로부터 100가지가 넘는 유사성을 주장하였으며, 외경까지도 함께 분석한 그레이브는 두 인물들간의 300여 가지에 달하는 유사점을 열거했다.

1. 크리쉬나는 성처녀에게서 태어났다.

2. 그의 아버지는 목수였다.

3. 크리쉬나의 탄생을 천사와 현인들 그리고 목동들이 지켜보았으며 그는 황금과 몰약과 유황을 선물로 받았다.

4. 그는 아기를 죽일 것을 명령한 폭군에 의해 박해를 받았다.

5. 크리쉬나는 왕가의 후손이었다.

6. 갠지즈 강가에서 세례를 받았다.

7. 많은 기적과 이적을 행했다.

8. 죽은 자를 일으켜 세웠으며 나환자와 귀머거리 그리고 맹인을 치료했다.

9. 크리쉬나는 사람들에게 자비와 사랑을 가르치기 위해 우화를 즐겨 사용했다.

10. 가난한 자들과 더불어 살았고 그들을 사랑했다.

11. 제자들 앞에서 변모된 모습을 나타내었다. (마태복음17장,마가복음14장,누가복음37장에 보면 온몸에서 빛이나오도록 형상을 변화한 예수가 엘리야와 모세와 이야기 하는 장면을 예수의 제자들이 목격.)

12. 크리쉬나는 나무 위에서 혹은 두 도둑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13. 그는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일어나 하늘로 올라갔다.
 
14. 그는 牧者 하나님, 萬主의 主로 불리어졌으며 구세주, 최초로 태어난 자, 죄를 떠맡은 자, 해방자, 보편적인 말씀으로 여겨졌다.

15. 그는 힌두 트리니티, 즉 삼위일체 중에서 두 번째 위격이었고 자신을 아버지에게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16. 크리쉬나의 제자들은 그에게 순수한 정수를 의미하는 ‘예제우스(jezeus)’라는 칭호를 바쳤다.

호테마의 말에 따르면 크리슈나의 원 이름은 예제우스 크리스트나가 된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바뀌어졌다고 한다.


http://my.netian.com/~antibible/ <---윗글을 발췌한 사이트


Krishna는 인도에서 Krishuto로도 발음을 한다고 한다. (홀거게르스덴의 저서 "인도에서 예수의 생애"중에서)

이외에도 예수가 인도에 갔었다는 증거는 많다.
그리고 현재에도 인도에는 유대인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는 예수의 무덤도 있다고 한다.

크리쉬나 - 비슈누의 화신

크리쉬나(Krishna)는 <마하바라타>와 <바가바탐> 경전의 주인공이며 비슈누신의 여덟 번째 화신이기도 하다.

크리쉬나는 또한 인도에서 가장 사랑받는 신 중의 하나이다. 크리쉬나도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는 왕이었으며 수많은 여인인 고피(Gopi)들의 우상이었다.

그의 가르침은 <바가바드 기타>란 경전 중에서 삶의 핵심을 응축하여 가르쳤다. 그의 부인인 라다(Radha) 또한 인도에서의 이상적인 여인상으로 표상되기도 한다.


"크리쉬나"에서 "크리스트나"로 변하고 "크리스트나"에서 "크리스트"가 나왔다고

홀거게르스덴의 저서 "인도에서 예수의 생애"중에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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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왜 기독교는 BCE 700년~2000년전의 오시리스-디오니소스 고대로 따라 했을까요?
 
   


..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고대 그리스에서 연극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울려 퍼지는 합창은 주인공의 운명을 예고한다. 이처럼 우리가 가야 할 험난한 길과 목적지를 미리 안다면 그 여정은 한결 쉬워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더 섬세한 얘기로 접어들기 전에 우리의 발견 과정을 되짚어 보고 이 책의 간략한 조감도를 먼저 보여 드리고 싶다.

우리 두 사람은 일평생을 온 세계의 신비주의에 대한 깊은 관심을 지닌 채 살아왔고, 최근 들어서는 고대세계의 영적 신앙까지 탐구하기에 이르렀다. 예리한 학구적 탐구의 결과가 대중에게 널리 이해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우리도 처음에는 대중들과 마찬가지로 이교 신앙에 대해 부정확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사실 이교 신앙을 원시적인 미신으로 치부하도록 배워 왔다. 이교도들은 우상 숭배와 피의 제사에 사로잡혀 있었고 토가(로마 시민의 외투)를 걸친 삭막한 철학자들은 우리가 오늘날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을 향해 장님처럼 비틀거리며 걸어왔다고 배웠다. 우리는 올림포스의 남신과 여신들이 변덕스럽고 파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여러 고대 그리스 신화를 늘 들이 왔다. 대체로 이교 신앙은 원시적이며 근본적으로는 황당해 보였다. 그러나 수년 동안 연구한 후 우리는 전혀 달리 이해하게 되었다.

이교도의 영적 신앙은 사실상 고도로 발전한 문화의 세련된 산물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올림포스 신들을 숭배한 것은 국가적 권장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국교라 할 만한 이 같은 숭배는 화려한 겉치장과 축제 의식에 지나지 않았다.

국민들의 참된 영적 신앙은 신비하고 역동적인 ‘여러 미스테리아종교 Mystery religions’를 통해 표출되었다. 미스테리아는 처음에 이단적인 지하 운동을 통해 고대 지중해 전역에 퍼져 번성해 갔고, 이교도 세계의 영적 지도자들을 고무시켰다. 영적 지도자들은 미스테리아를 문명의 원천으로 간주했다.

전통적으로 각각의 미스테리아는 공개적인(외적) 미스테리아나 은밀한(내적) 미스테리아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공개적인 미스테리아는 참여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활짝 열려 있는 의식과 상식적인 신화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편 은밀한 미스테리아는 강렬한 입문 절차를 거친 자에게만 전해지는 신성한 비밀이었다.
은밀한 미스테리아의 입문자들은 의식의 신비한 의미를 알게 되면서 미스테리아 신화의 비밀을 전수 받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들은 개인적으로 탈바꿈해서 영적 깨달음을 얻었다.


고대세계의 철학자들은 은밀한 미스테리아의 영적 스승들이었다.
그들은 신비주의자였고, 기적을 행하는 자였으며, 케케묵은 학자라기보다는 힌두교의 구루(영적 지도자) 같은 인물이었다.
 
예컨대 위대한 그리스 철학자인 피타고라스는 오늘날 수학 정리를 만든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사실 그는 불꽃 같은 신비주의 현자였다.
기적적으로 바람을 잠재우는가 하면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로 신봉되었던 것이다.


미스테리아의 핵심에는, 죽어서 부활한 신인(神人)과 관련된 신화가 놓여 있다.
그런데 이 신인은 여러 이름으로 알려졌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이집트어로는 우시르),
고대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
소아시아에서는 아티스,
시리아에서는 아도니스,
이탈리아에서는 바쿠스,
페르시아에서는 미트라스로 불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들 신인은 모두 동일한 신화적 존재이다.


이 책에서는 일찍이 기원전(BCE) 3세기에 통용된 이름들을 합성해서 오시리스-디오니소스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이 신인의 세계적이며 혼성적인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개별적인 미스테리아 전통을 언급할 때는 개별적인 이름을 사용할 것이다

(저자는 기원전을 나타내는 ‘BC’ 대신 ‘BCE[Before the Common Era]’ 를 사용했고
또 AD 대신 CE를 사용하면서 이 용어들의 종교적 중립성을 주목해 달라는 각주를 달았다.

‘BCE’는 ‘예수 이전’ 이 아니라 ‘공동 시대 이전’을 뜻한다. 그러나 역서에서는 독자의 편의를 위해 BC, AD를 사용키로 했다 : 옮긴이 주).

BC 5세기부터 크세노파네스와 엠페도클레스 등의 철학자들은 남신과 여신들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걸 비웃었다.
그들은 그리스 신화를 인간의 영적 경험의 비유로 보았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가 단순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닌 상징적 언어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상징적 언어로 이루어진 신화는 은밀한 미스테리아의 가르침이 암호화된 것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이 신화는 문화가 다른 곳에서는 다소 다르게 채택되어 발전해 나갔지만, 그 핵심만큼은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미스테리아의 여러 신인들 신화는, 세기적인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 ‘동일한 해부 구조’라고 부른 것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모든 인간이 신체적으로 유일무이한 존재이지만 인체의 일반 해부구조는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이들 여러 신화도 유일무이하면서 동시에 근본적으로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사이의 관계와 같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전자는 부유한 이탈리아의 가문에 대해 쓴 16세기 영국의 비극작품이고, 후자는 거리의 갱들에 대해 쓴 20세기 미국의 뮤지컬 작품이다.
겉보기에는 아주 달라 보인다. 그러나 두 작품은 근본적으로 같은 이야기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교도 미스테리아의 신인들 신화는 형태만 다를 뿐 근본적으로는 같은 이야기이다.


우리가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의 다양한 변형들을 연구하면 할수록 예수의 이야기 역시 그 변형들이 지닌 온갖 특성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우리는 오시리스-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신화의 골자를 추려내면 예수의 전기를 사사건건 재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육체를 가진 신이며 구세주이고 ‘하나님God의 아들 이다.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며 어머니는 인간처녀(동정녀)이다

그는 3명의 양치기가 찾아오기 전인 12월 25일에, 동굴이나 누추한 외양간에서 태어난다

그는 신도들에게 세례 의식을 통해 다시 태어날 기회를 준다.

그는 결혼식장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한다.

그가 나귀를 타고 입성할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찬송하며 그를 맞이한다

그는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부활절 무렵에 죽는다.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해서 영광되이 하늘로 올라간다.

신도들은 최후의 날 심판 자로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의 죽음과 부활은 그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 의식으로 기념된다.




이것들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이야기와 예수의 전기에 똑같이 나타나는 것들 가운데 핵심만 추린 것이다.
이처럼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전혀 몰랐던 것일까?

나중에 우리는 초기 로마 교회가 그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로마 교회는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신앙을 말살하기 위한 잔혹한 계획을 세우고 이교도의 신성한 문헌들을 체계적으로 말살했다.

이 계획은 너무도 완벽하게 수행되어 오늘날 이교 신앙은 ‘죽은’ 종교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놀라운 일이지만, AD 첫 몇 세기 동안의 작가들에게 있어 새로운 그리스도교와 고대 미스테리아 신앙 사이의 유사성은 명백한 것이었다.

그리스도교를 비판한 풍자가 켈수스 Celsus(AD 약 170) 같은 이교도는 새롭게 나타난 종교가 자신들의 옛 가르침을 엷게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AD 100-165), 테르툴리아누스(AD 160-220), 이레나이우스(AD 130-202) 등 초기 ‘교회의 아버지(교부(敎父))’들도 분명 너무나 곤혹스러운 나머지, 그 유사성이 악마의 모방 탓이라고 필사적으로 주장했다.

일찌기 제시된 불합리한 주장 가운데 하나였던 악마의 모방 이론을 채택한 그들은 악마가 ‘예상에 의한 표절’을 했다고 비난한 것이다.
즉 어수룩한 사람들을 오도할 목적으로, 예수의 진짜 이야기가 실제로 발생하기 전에 악마가 미리 예상을 해서 사악하게 모방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이 보기에 이 교부들은 그들이 죄를 덮어씌운 악마들 못지않게 사악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그리스도교 주석가들은 여러 미스테리아 신화가 예수의 실제 도래에 ‘앞서 울린 메아리’, 즉 예언이나 예견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악마의 모방 이론을 좀 누그러뜨린 것이지만, 여전히 우스꽝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예수 이야기가 그보다 먼저 있었던 수많은 신화의 역사적 완성 판이라고 보는 것은 문화적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편견 없이 바라보면, 예수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똑같은 이야기의 또 다른 변형일 뿐이다.

초기 그리스도교가 이교도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이교도 신화에서 인기 있던 테마가 예수 전기에 접목되었다고 보면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건 다수의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이 일찍이 언급한 대로이다.
예컨대 동정녀의 성령 잉태는 후대에 외래신화를 추가한 것이어서 문자 그대로 이해되면 안 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테마는 이교 신앙에서 ‘빌려온’ 것이었다.
그 같은 차용은 이교도 축제들을 그리스도교 성자들의 날로 삼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축적된 신화의 잔재에 깔려 숨겨진 ‘진짜’ 예수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이론을 받아들인다.


일견 매력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설명이 부적절한 것 같았다. 우리는 유사성 전체를 포괄적으로 대조해 보았다.

그 결과, 예수의 전기 가운데 이교 신앙에 미리 나타나지 않은 테마는 거의 찾아들 수 없었다. 나아가 우리는 예수의 가르침조차도 독창적인 게 아니라, 이교도 현자들이 이미 앞서 말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모든 것의 배후 어딘가에 ‘진짜’ 예수가 실제로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진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후대에 이교도 신화를 덧붙인 기록들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도 어쩐지 터무니없어 보였다. 이러한 수수께끼에 대해 좀더 우아한 해답이 분명 있지 않을까?
 
 
 
제 목   예수가 부르던 아버지는 누구일까요? (예수는 야훼, 여호와를 언급한적이 없습니다)
이 름    동포 
      




예수의 행적이나  가르침은 거의 대부분이 석가모니의 것을 그대로 베꼈습니다.

(바이블의 진실[http://xxbible.com.ne.kr/] 참조.)




예수는,  바이블에서

 

야훼나 여호와의 이름을 한번도 거론 한적이  없었으며,

어린시절 인도, 티벳에서 불경을 공부했다는 사실로 비추어볼때

예수가 부르던 아버지란, 석가모니 부처일수도 있겠습니다.



근거제시;


신약성서는 창작인가? 표절인가?


일본의 호리(堀堅土)교수는 그의 저서 『불교와 그리스도교』에서 ①탄생설화 ②신앙을 씨앗에 비유한 것 ③빛의 비유 ④구하면 주어라 하는 설교 ⑤의식주 문제를 걱정하지 말라는 대목 ⑥죽은 자에게 구애받지 말라는 대목 ⑦물 위를 걷는 기적 ⑧음식의 기적 ⑨병을 고치는 기적 ⑩나는 왕이라고 한 대목 ⑪무덤의 기적과 부활의 기적 등을 위시한 "많은 부분의 성경 내용의 원형이 불경에 있다"고 지적하고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 이렇게 해서 '탄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의 전생애에 걸친 수수께끼가 바로 불교경전에 의해 해명될 뿐 아니라, 『미린다 왕문경』이라는 불경에는 그 뒤에 일어난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적'의 원형이 무엇인가를 밝혀주는 자료까지 준비되어 있다."


그러면 불교의 불경(佛經)과 기독교의 성경(聖經)을 대조하여 장소나 인물만 다를 뿐 그 상황설정이나 이야기 전개, 가르치고자 한 교훈 등이 거의 흡사하다는 것을 상세하게 증명한 『불경과 성경 왜 이렇게 같을까(윤청광 著) 』의 내용을 요약, 대조해 보기로 한다. 불경과 성경의 말씀들을 일일히 비교, 대조해 보고 싶은 분들에게는 본서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 하늘에서 내려온 두 성자


예수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로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과 똑같이 석가모니도 아름다운 하늘나라 도솔천에서 머물다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세상에 내려온 것으로 되어있다.[ 불경 『자타카(본생경)멀지 않은 인연 이야기』『불소행찬 탄생품』]

우선 불경과 성경은 똑같은 출발점, '하늘'에서 시작하고 있다.

▣ 너무 비슷한 탄생 이야기


▶ 석가모니와 예수 모두 태몽을 통해서, 남녀의 동침 없이 잉태된다는 점이다. 마야부인이 여덟가지 계행을 지키느라고 그의 남편과 동침하지 않고 있었는데, 석가모니가 흰코끼리가 되어 어머니의 오른쪽 갈비뼈를 헤치고 그 태(胎)안에 들어가는 꿈을 꾸고 잉태된 것으로 불경『본생경』에 기록되어 있고, 성경 또한 요셉의 태몽에 주(主)의 사자(使者)가 나타나 성령이 임하여 마리아에게 잉태됨을 알린 이후 예수가 태어나기까지 동침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 석가모니가 태어나자마자 아시타 선인(仙人)이 왕궁에 나타났다고 불경은 기록하고 있는데, 바이블 또한 이와 비슷하게 예수가 태어나자마자 동방박사가 마굿간에 나타났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아시타 선인이 왕궁에 서린 서광(瑞光)을 보고 찾아왔듯이 동방박사는 별빛의 인도를 받아 찾아왔다.

▶ 갓 태어난 석가모니를 보고 아시타 선인이 "장차 부처가 되리라"고 예언했다고 불경은 기록하고 있는데, 바이블 또한 아기 예수를 본 예언자 시메온이 "주의 구원을 보았다"고 예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 불경『현우경비파리품』에는 미륵의 탄생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나라 왕이 미륵의 탄생을 두려워하여 없애고자 하였으나 도피하여 생명을 구하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바로 이와 똑같은 이야기가 예수의 탄생과 헤롯왕의 이야기로 변형되어 성경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 불경의 『불소행찬』에는 노부인이 어린 석가모니를 보고 찬탄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성경에도 노부인이 아기예수를 보고 예수를 찬탄하는 대목이 똑같이 실려 있다.


▣ 소년시절의 성인될 징조


석가모니와 예수 둘 다 어렸을 때 스승을 놀라게 할 정도로 총명하였고, 이미 성인(聖人)이 될 징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불경『과거현재인과경』『불교성전 불전(佛典)』 성경『누가복음 2장 41∼50』]


▣ 책봉식과 세례식


불경『과거현재인과경』에는 석가모니의 태자책봉식 때 강가에서 왕은 손으로 태자의 이마에 물을 끼얹고 '그대는 나의 후계자니라'하고 선언하자 하늘에서 '좋도다!좋도다!'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하늘로부터 청작(靑雀) 5백 마리가 날아 내려왔다고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도 요단강에서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할 때 하늘에서 '너는 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성경과 불경 모두 의식(儀式)이 '강가'에서 물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온다'는 점에서 이야기 전개가 똑같다고 할 수 있다.


▣ 카아샤파와 요한 - 선지자


불경『과거현재인과경』『우리말 팔만대장경』과 성경『마가복음 1:4∼10』『마태복음 3:11∼14』을 보면 불경의 '카아샤파'와 성경의 '요한'이라는 선지자가 이미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있다가 더 큰 성인인 '석가모니'와 '예수'가 나타나자 선지자는 머리를 조아리며 바로 이 분이 성인(聖人)이시라고 만인에게 선언하고 있다.

미리 준비된 선지자, 그리고 그 후에 나타나는 성인, 많은 사람들 앞에서 행해지는 선언, 장소와 이름만 다를 뿐 전개되는 이야기의 구성은 한치도 다를 바가 없다.


▣ 고향에서의 푸대접


석가모니가 부처님이 되어 고향에 돌아가자 처음에 석가족들은 석가모니를 부처님으로 얼른 인정하려 들지 않은 채 '저 싯달타 태자는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조카뻘이다,손자뻘이다,동생뻘이다'하면서 경배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는 석가모니의 신통력에 친족들이 모두 인정하고 경배하게 된다.[ 불경『본생경』]

마찬가지로 예수가 고향에 돌아 간 후 고향사람들이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려들지 않고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고 업신여기자 예수께서는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하고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셨다고 한다.[ 『누가복음 4:20∼24』『마태복음 13:53∼58』]

▣ 마아탕가와 사마리아 여인

불경『마등가녀경』에서 아난다가 우물가에서 여자를 만나 물을 청한 것이나 성경『요한복음 4:3∼15』예수가 우물가에 앉아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청한 것이나 그 장소 설정과 주고받는 이야기까지도 똑같다. 마아탕가 처녀가 출가사문과는 감히 상종도 할 수 없는 천민의 딸임을 이유로 내세워 물을 떠바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나 사마리아 여자가 유대인과는 상종치 못하는 사마리아 여자임을 내세워 물을 떠바치기를 사양하는 것이나 똑같다.

또한 아난다가 출가 사문이므로 나의 마음에는 빈부귀천 상하의 차별이 없으니 물을 달라고 한 것이나,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네게 물을 달라고 한 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생수를 주었을 것이라 대답한 것은 예수도 사람 차별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우물의 물을 매체로 해서 나중에 석가모니가 직접 마아탕가 처녀를 만나 설법을 통해 전법에 성공한 점과, 예수가 이 우물의 물을 매체로 해서 사마리아 여인을 전도하는 데 성공한 점이 똑같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같은 점은 석가모니가 '애욕의 갈증으로 인하여 모든 생명은 영원히 지옥, 아귀, 축생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지혜있는 사람은 욕심을 멀리하여 애욕의 불 속에서 영원히 벗어난다'고 설법한 내용이나, 예수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설교한 내용은 똑같이 '영원히 잘 사는 길'을 뜻하고 있다.

이와 같이 불경의 마아탕가 이야기와 성경의 사마리아여자 이야기는 지명과 인명만 다를 뿐 설정된 무대와 등장인물, 주고받는 이야기의 내용, 가르침까지도 똑같다.


▣ 가난한 여인의 공양과 헌금


불경『근본설일체유부』『현우경빈녀난타품』『본생경』『잡보장경』의 '가난한 여자걸인'이야기와 성경『마가복음 12:41∼44』의 '가난한 과부'이야기는 헌금에 하는 데 있어서 그 액수의 많음을 칭찬하지 않고 액수가 적더라도 그 정성과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들은 누가 보아도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똑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죄짓기보다는 육신을 절단하라


불경『아함경』에는 죄를 짓는 것보다는 차라리 '타는 불을 껴안는 게 나으며, 살이 찢기고 살가죽이 벗겨지고 힘줄이 끊어지고, 뼈가 꺾어지고, 이글이글 불에 단 쇳덩이를 삼키고, 불에 단 철침상에 눕는 편이 낫다'고 석가모니가 설법을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성경『마가복음 9:42∼47』에는 죄를 짓는 것보다는 차라리 '손이 죄짓게 하거든 손을 잘라버리고, 발이 죄짓게 하거든 발을 잘라버리고, 눈이 죄짓게 하거든 눈을 빼버리라'고 예수가 설교하는 장면이 있다.

두 성인 모두 육체의 고통을 참을지언정 죄를 짓지 말라고 하면서 죄악을 지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경고하고 있는 점에서 똑같다.


▣ 물위를 걸어가는 이적(異蹟)


불경『불전(佛典)』『아함경』『본생경 무쌍품』에는 석가모니와 그 제자가 물위를 걷는 이적을 보이고 있으며, 성경『마태복음 14:22∼29』에는 예수와 그 제자(베드로)가 역시 물위를 걷는 이적을 보이고 있다. 두 제자 모두 강한 신앙심으로 물을 건넜다는 점에서 똑같은 이야기이다.


▣ 신앙의 힘으로 잠재운 폭풍


불경『자타카(본생경)』에는 배를 타고 떠난 신자들이 바다 가운데서 폭풍을 만나 파선을 당하고 사경을 헤매다가 깊은 신앙심으로 구원을 받는 이야기가 나오고 『법화경 관세음보살 보문품』에는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믿고 염하면 어떤 태풍이나 환난 속에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 내용이 있다. 마찬가지로 성경『마가복음 4:36∼41』『누가복음 8:22∼25』『마태복음 14:29∼33』에도 예수가 바다에서 제자들과 배를 타고 가다가 폭풍을 잠재우는 대목이 있다.

불경과 성경 모두 한결같이 믿음이 강하면 거센 파도와 폭풍도 잠재울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 점에서 똑같은 이야기이다.


▣ 의식주를 걱정 말라


불경『슛타니파아타 여덟 편의 시(詩)』에서 석가모니는 제자들에게 먹고, 입고, 잠자는 걱정을 하지 말고 다섯 가지 욕심에서 벗어나 해탈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성경『누가복음 12:22∼23』『마태복음 6:24∼33』에도 예수가 제자들에게 먹고, 입고, 마시는 걱정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말하고 있다. 의식주를 걱정 말고 궁극의 목표를 추구하라는 점에서 똑같은 이야기이다.


▣ 곡식의 비유


불경『아함경』과 성경『마태복음 3:11∼12』『마태복음 13:24∼30』에는 가르침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짚이나 쭉정이가 되지 말고 알곡이 되라는 석가모니의 비유와 가르침을 듣고도 믿지 못하고 깨닫지 못해 쭉정이와 가라지가 되면 불에 태움을 당하리라는 예수의 비유가 나오는데 이는 '똑같은 발상, 똑같은 표현, 똑같은 결론 유도'라고 볼 수 있다.


▣ 너희에게 이르노니

불경『율장(프리아티모옥샤)』을 보면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두 벌 옷이나 밥그릇마저도 두 벌을 가지지 못하게 했고, 법을 전파하고 나서 금이나 은이나 돈을 받지 말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한 번 먹고 자기로 한 집에서 한 번 이상 더 묵지 말라고 가르쳤으며 부부의 눈치가 다른 줄 알면서 억지로 앉아 있지 말라고 다짐했다.

성경『마가복음 6:7∼13』『누가복음 9:1∼6』을 보면 예수 역시 제자들에게 두 벌 옷을 입지 말고, 금이나 은이나, 동을 받지 말라고 다짐하는 데까지는 석가모니의 다짐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들어간 집에서 영접하지 아니했을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석가모니와 예수의 가르침이 서로 다르다.

석가모니는 '부부(夫婦)중 어느 한쪽이라도 싫은 기색을 내거든 더 이상 폐를 끼치지 말고 나오라'고 당부한 데 반해, 예수는 '영접치 아니하거든 그 성을 나올 때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로 삼으라'고 하였으니 이는 곧 대접 못받은 분풀이로 발을 굴러 흙을 털어 버리고 '너희가 우리를 괄시했다' 하는 점을 증거하여 훗날 심판대에 혼날 것임을 암시하라 했던 것이다. 석가모니와 예수가 제자들에게 당부한 말씀은 비슷하지만 그 심성(心性)만큼은 똑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 가짜 성인이 나타날 것이다.


불경『율장(律藏)』과 성경『마가복음 13:21∼23』『마태복음 24:3∼14』에는 각각 가짜 부처님과 가짜 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지만 끝까지 제대로 견디는 자는 각각 성불(成佛)할 수 있고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이야기가 있다. 성불(成佛)이나 구원은 각각의 종교에 있어 최고의 이상이므로 이 두 이야기는 똑같은 내용이라는 걸 알 수 있다.


▣ 모든 죄악은 마음에서

불경『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법구경』에는 '악(惡)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와 다시 사람의 몸을 망친다'라고 비유했듯이 성경『마가복음 7:20∼23』에도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함으로써 같은 어법을 쓰고 있으며 악한 행위의 나열에 있어서도 살인,음란,도둑질,탐욕,속임수,성냄 등 거의가 다 똑같은 것이다. 결국 석가와 예수는 모든 죄악이 사람의 마음 속에서 나와 바로 그 사람 자신을 망친다는 경고를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 장자 궁자와 돌아온 탕자


성경『누가복음 15:11∼32』의 '돌아온 탕자' 이야기는 한 번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반성하고 돌아오면 용서해주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와 너무도 흡사한 '장자 궁자(長子 窮子)'의 이야기가 불경『법화경 신해품』에 고스란히 실려 있는 데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에서 '돌아온 탕자'는 곧 이 세상의 죄지은 사람들로 비유되고 있고 죄를 용서해준 탕자의 아버지는 곧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상징하고 있으며, 불경의 '장자 궁자'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었던 부처님의 제자들로 비유되고 돌아온 가난한 아들을 용서하고 받아주고 보배까지 안겨주는 '장자'는 곧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상징되고 있다.

'돌아온 탕자'나 '장자 궁자'의 이야기는 모두 '죄있는 자','허물있는 자'도 반성하고 믿고 따르면 용서받을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점을 똑같이 강조하고 있다.


▣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것


불경『제법집요경 보시품』『방등경』『잡보장경』에서 석가모니는 재물이나 착한 일을 베풀 때, 그 재물이나 도움을 받는 특정한 사람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체의 모든 중생이 다 구제받게 되기를 원하라 하였다. 그리고 부처님 자신에게 보시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보시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 당신에게 보시하는 것과 같다고 당부했다.

성경『마태복음 25:35∼46』에서 예수 또한 보잘 것 없는, 다른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입을 것을 주고, 물을 주는 것이 곧 예수 당신을 대접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설교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곧 성자인 자신에게 베푸는 것이라는 석가모니의 설법이나 예수의 설교는 결국 똑같은 내용이라 아니할 수 없다.


▣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


불경『방등경』『법구경』과 성경『마태복음 7:15∼20』『마태복음 12:33∼35』『누가복음 6:43∼45』에는 사람이 행하는 선(善)과 악(惡)을 석가모니와 예수가 똑같이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로 비유하고 있다.

예수가 말한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는 곧 석가모니가 '착한 인(因)을 심지 않고 어찌 좋은 열매(果報)를 얻을 수 있겠느냐'는 가르침과 같으며, 그 비유 또한 좋은 나무는 '착한 일을 하는 것' 또는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을 상징하고 있고 열매는 그 행(行)에서 얻어지는 과보를 상징하고 있으며 석가모니가 '선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죄를 받는다'고 강조한 것이나 예수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고 한 것은 똑같은 경고라고 할 수 있다.


▣ '내가 법이요'와 '내가 진리이다'


불경『열반경』『아함경』과 성경『요한복음 14:5∼12』에서 석가모니는 '법을 보는 자를 곧 나를 보는 자'라고 설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는 '나를 본 자가 곧 하나님을 본 자'로 말하고 있다. 또한 석가모니가 '나는 곧 법이니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보는 자'라고 말한 것처럼 예수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똑같은 의미의 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석가모니가 '나의 가르침대로' 법에 의해 등불을 삼고 살아가라고 당부한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도 '나를 믿는 자는 나의 일을 저도 할 것'이라고 당부하고 있다.


▣ 행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불경『법구경』과 성경『마태복음 7:21∼27』에서 '제 아무리 경전을 많이 읽고 외워도 실천하지 않으면 성인의 문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나, '제 아무리 주여 주여 함께 하지 않았느냐고 가까이 지냈음을 강조하더라도 행하지 않은 자는 모르는 자니 내게서 떠나가라 할 것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똑같이 실천 없는 신앙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 비록 원수일지라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예수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불경에 수록되어 있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에도 여러 번 되풀이 되고 있다.

불경『열반경 범행품』『아함경』에서 석가모니는 '부모를 죽인 원수도 갚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고 '마주 때리거나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말라'고 몇번이나 다짐을 받는다. 또 '부모와 원수를 대할 때에도 평등한 마음으로 대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성경『누가복음 6:27∼35』『마태복음 5:38∼46』에서 예수 또한 '원수를 사랑하라'고 강조했고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저주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강조했다.


▣ 살인마와 길 잃은 양


불경『아함경』에는 '99명을 살해한 아힝사카가 구원받는 이야기'를 통해 악인도 바른 마음을 깨치면 구원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누가복음 15:3∼10』『마태복음 18:12∼16』에도 '99마리의 양과 길잃은 한 마리의 양'이야기를 통해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성경은 '99마리의 양과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비유해서 죄지은 자를 구원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불경은 '99명의 피살자와 한 명의 죄인'을 들어 죄 지은 자를 구제하고 있는데, 가르치고자 한 점은 다 똑같이 악(惡)을 선(善)으로 구해주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 경전비방과 성령모독


성경『누가복음 12:4∼10』『마태복음 23:23∼29』에는 예수의 설교를 제대로 믿고 따르지 않은 자들에게는 구원이 없으며 지옥에 던지움을 당할 것이라고 극렬하게 경고하고 있다. 또한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할 것이니 이는 곧 하나님의 용서를 못받고 최후의 심판에 의해 지옥에 던져질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가 전도를 위해 파송한 제자들을 박대한 자들도 폐망하게 되리라고 경고하고 있다.

불경『법화경 비유품』에도 경전을 비방하거나 가르침에 의혹을 품고 믿는 자를 미워하고 천대하면 지옥에 떨어지는 벌을 받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법화경 법사품』에서는 "어떤 사람이 나쁜 마음으로 한 겁 동안을 부처님을 항상 훼방하고 꾸짖더라도 그 죄는 오히려 가벼우려니와 어떤 사람이 한마디 나쁜 말로써 집에 있는 이나 집을 떠난 이가 법화경을 읽고 외우는 것을 비방하고 방해한다면 그 죄는 매우 무거우니라"고 경고하고 있는데, 성경에서도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함을 받지 못하리라"고 한 것은 석가모니나 예수를 비방하는 것보다 경전을 비방하고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강조하고 있는 점에서 똑같다고 할 것이다.


▣ 신앙과 씨뿌림의 비유


불경『슛타니파아타』『아함경』『미린다 왕문경 6장』과 성경 『마가복음 3:2∼9』『마가복음 3:14∼20』『마태복음 13:31∼32』『마태복음 13:36∼40』에서 석가모니가 자기 자신을 농사짓는 농부로 비유하고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린다고 설법한 것은 예수가 자신을 씨뿌리는 인자라 비유한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또한 예수가 '길가에 뿌려진 씨앗'과 '돌밭에 뿌려진 씨앗''가시떨기 밭에 뿌려진 씨앗'을 비유로 든 것과 똑같이 석가모니도 '돌과 나무가 무성한 황무지에 뿌려진 씨앗'을 비유로 들어 잘못된 신앙 행위를 지적하고 있는 점은 불경과 성경이 똑같은 비유, 똑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석가모니가 씨를 뿌려서 얻는 수확은 '온갖 고뇌에서 풀려나게 되는 것'이니 곧 불교의 이상이자 목표인 '해탈'에 이르는 것이요, 예수가 씨를 뿌리는 목적은 '추수 때인 종말의 때'에 천사들의 구원을 얻게 하는 데 있으니 석가모니와 예수가 씨뿌리는 목적 또한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 말법시대와 말세


불경『아함경』과 성경『마가복음 13:4∼13』『마태복음 24:6∼22』에는 불경의 말법시대와 성경의 말세에는 똑같은, 비참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첫째, 사람들이 미혹하여 서로 미워하고 서로 잡아 죽이며,

둘째, 기근과 재앙이, 처처에 지진이 일어나며,

셋째,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형제가 형제를 잡아 죽이게 되고,

넷째,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가 활과 칼로 죽이려 싸우게 되고.

다섯째, 불법이 횡행하게 되며,

여섯째, 그러나 서로 죽이는 것을 싫어해 산 속에 숨어 있다가 깨달은 자들이나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는 다시 구원을 받아 살 수가 있다는 점에서 불경과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말법시대와 말세는 똑같이 묘사되고 있다.


▣ 이 세상의 빛


불경『슛타니파아타』『법화경 안락행품』『법화경 서품』과 성경『누가복음 2:30∼32』『누가복음 11:33∼36』『마태복음 5:14∼16』『요한복음 1:4∼11』『요한복음 8:12』를 보면 석가모니와 예수 모두 자신도 빛이요, 횃불이요, 광명이며, 이 성자들의 가르침도 빛이요, 등불이요, 광명으로 묘사되고 있는 점에서 똑같다.


▣ 악마와 마귀


성경『마태복음 4:1∼11』『마가복음 1:12∼13』『누가복음 4:1∼13』에는 예수가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석가모니도 악마의 시련을 받는 이야기가 『본생경』『아함경』『불소행찬』『불본행경』『잡아함경』등 불경에도 많이 실려 있으며 그 이야기의 구성이나 전개,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강조하려 한 것까지도 불경과 성경이 서로 똑같은 데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마귀가 시험하기 위하여 예수를 금식시켜 주리게 해놓고 돌을 떡으로 만들라고 한 것이나, 석가모니에게 걸식을 못하도록 해서 주리게 해놓고 다시 걸식하게 권해서 '식욕의 유혹'에 빠지게 하려는 것이나, 마귀와 악마가 한 짓은 '배고픔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유혹'을 향해 던진 미끼였다.

이 때 예수는 배고픔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식욕의 유혹을 단호히 뿌리치고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대답하였고, 석가모니 또한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광음천처럼 기쁨을 양식으로 먹고 산다'고 똑같은 대답을 했던 것이다.

또 마귀가 예수를 높은 산으로 데려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유혹한다.

마찬가지로 악마도 석가모니에게 '나라 전체를 직접 통치'하라고 유혹한다.

이에 대해 예수는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하였으니 이는 곧 하나님의 진리대로만 살 것이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갖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요, 석가모니가 '물욕을 따르는 자 물욕에 결박될 것이니 사람은 마땅히 그 결박 벗어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진리, 곧 법을 취했다는 점에서 똑같다 할 것이다.

그리고 마귀가 예수로 하여금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돌에 부딪혀 죽게 하려 한 것이나 데바닷타가 높은 산에서 돌을 던져 그 돌에 맞아 석가모니가 죽게 하려고 한 점이나 '돌'로 해치려고 한 점에서는 그 발상이 같다.


▣ 한 명의 배신과 도망친 제자들 이야기


불경『아함경』과 성경『누가복음 22:20∼21』『마태복음 26:20∼25』『마태복음 26:31∼35』『마태복음 26:45∼56』을 보면 예수는 자기의 제자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자기를 배반하고 팔아넘길 줄 미리 알고 있었으며 이것은 석가모니가 그의 제자 데바달타가 자기를 배반할 것을 미리 알고 제자들에게 얘기했던 점과 같다.

그리고 예수가 검과 몽치를 들고 온 자들에게 붙잡혀 가게 되자 그의 모든 제자들이 모조리 다 도망갔듯이 석가모니의 제자들도 그의 스승이 코끼리의 위해(危害)에 처했을 때 5백 명이 모두 도망쳤다.

뿐만 아니라 예수가 자기를 잡으러 온 자들에게 '검을 가진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경고한 것처럼 석가모니는 '악은 악으로 망하는 법'이라고 경고한 점에서 똑같은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 하늘에서 내려온 음식


하늘에서 내려온 음식이야기는 불경『본생경 길상초품』『본생경 바수나품』『아함경 카필라성의 비극』『유마경 향적불품』등과 성경『마가복음 6:35∼45』의 '오병이어(五餠二魚)' 『마가복음 8:1∼9』『마태복음 15:32∼39』의 '칠병이어(七餠二魚)'의 기적 이야기가 있다.

불경의 유마힐과 성경의 예수가 똑같이 수많은 사람을 앉혀놓고 없던 음식을 순식간에 만들어 그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고도 남을 수 있도록 기적을 일으킨 사실이 똑같다는 데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가르침을 듣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 먹을 것이 없는 상황, 기적을 일으키는 유마힐과 예수, 배불리 먹는 신자들, 그러고도 남는 여유있는 음식, 이 얼마나 똑같은 구성과 전개이며, 이 얼마나 똑같은 공식에 의해 이야기가 엮어져 있는가?


▣ 부자는 천국에 가기 어렵다


불경『방등경』『법사경』과 성경『마가복음 10:21∼30』『누가복음 18:22∼30』에서는 석가모니가 재물을 버리고 법을 따르라고 한 것이나 예수가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좇으라고 한 것이나 그 가르침은 똑같다. 또 석가모니는 재물에 집착하면 열반에 들 수 없다고 하였고, 예수는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으니 그 말씀이 그 말씀인 것이다.


▣ 네 자신을 뒤돌아 보라


성경『요한복음 8:1∼11』에서 예수는 간음한 여자를 잡아온 사람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였다. 이 는 '너 자신부터 죄가 있는지 없는지 솔직하게 되돌아 보라'는 이야기이고 여자를 잡아왔던 사람들은 모두가 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 하나씩 하나씩 그 자리를 도망쳐 나간 것이다. 불경『불전(佛典)』에도 석가모니가 물건을 훔쳐 도망친 창녀를 잡으려고 찾아다니던 젊은이들에게 '죄지은 여자를 찾는 것과 그대들 자신을 찾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급하냐'고 힐문하자 젊은이들은 한동안 아무 대답도 못하고 부끄러워하다가 '자기자신을 찾는 것이 더 급하다'고 대답하고는 부처님으로부터 설법을 듣는 장면이 나온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끌려온 여자와 값진 물건을 훔쳐 도망쳐버린 창녀, 그리고 그 여자를 벌주기 위해 끌고온 사람들과 도망친 창녀를 붙잡기 위해 찾아다니던 젊은이들, 그들에게 너 자신부터 되돌아보라고 요구한 예수와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같은 것이다.


▣ 남을 비방하기 전에


불경『사십이장경』『법구경』에서 '남의 잘못을 보기는 쉽지만 자기의 잘못은 보기 어렵다. 남의 잘못은 등겨나 쭉정이처럼 까불어 날리지만 자기잘못은 교활한 도박꾼이 제게 불리한 주사위 눈을 숨기듯 한다'고 한 것이나 성경『마태복음 7:1∼5』의 '형제의 눈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한 것은 똑같은 내용의 비유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서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한 것이나 불경에서 '남 듣기 싫은 성낸 말 하지 말라. 남도 그렇게 네게 답할 것이니'라고 한 말이나 그 표현은 똑같은 것이다.

▣ 신통술과 기적


성경을 읽어 보면 예수가 기적과 이적을 일으키는 대목이 곳곳에 수없이 나오고 있다. 장님을 눈뜨게 하기도 하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고, 떡 일곱 개와 생선 두 마리로 4천명을 배불리 먹이기도 하고, 그야말로 벼라별 기적을 자유자재로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능력은 예수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 제자들도 '병자를 고치면서' 복음을 펴고 다녔다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예수가 행하고 다녔다는 기적들의 유형은 이미 불경의『본생경』에 거의 다 있으며, 이외에도 석가모니와 그 제자들이 일으킨 기적 이야기는 불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석가모니는 독룡(毒龍)을 잡아 밥그릇 속에 담기도 했고, 허공 중에 가부좌를 틀고 앉기도 했고, 용왕의 세계에 나타나기도 했고, 병자를 고쳤으며, 전염병을 물리치고 홍수를 물리쳤으며, 하늘 세계에 있는 여러 나라를 자유자재로 왔다갔다 했으며 석가모니의 제자가 하늘 나라 향적국을 마음대로 왔다갔다했을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 음식을 얻어다가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기도 했고, 하늘나라의 왕 제석천왕으로 하여금 하늘밥, 하늘옷을 내리게도 했는가 하면, 석가모니의 제자는 지옥에까지 내려가 지옥중생을 구제하기까지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석가모니와 그 제자들은 형용할 수 없이 먼 거리도 잠깐 사이에 왔다갔다하는 신통자재술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불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 나타나는 기적과 이적의 원형은 수많은 불경 여기저기에 수록되어 있으며 이 불경의 기적들이 조금씩 변형되어 성경에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없다.


불경『방등경』『유마경』『미린다 왕문경』에는 괴로움의 바다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을 병든 환자로 비유하고 있으며 '병든 자에게만 의사와 약이 필요하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와 약이 필요치 않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런데 성경『누가복음 5:30∼32』『마가복음 2:16∼17』에도 예수가'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하고 있다.

괴로움의 바다를 헤매는 중생을 병자로 비유한 불경이나 죄인을 곧 병자요, 의사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비유하고 있는 성경이나 똑같은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석가모니와 그 제자들을 의사로 비유하고 있는 부분이나 예수가 자신을 의원에 비유한 것도 똑같은 이야기이다.


▣ 깨우침의 경지와 하나님의 나라


불경의 '해탈'의 경지와 성경의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석가모니와 예수의 대답은 똑같이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이다. 불경『원각경 보안보살장』을 보면 '극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네 마음 속에 있다' 즉 '心卽是佛'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성경『누가복음 17:20∼21』에서 예수도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한 예수의 가르침이나 '네 마음이 곧 부처다'고 한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 진정한 보물


불경『소송경(小誦經)』『잡아함경』과 성경『마태복음 6:19∼20』『요한복음 17:14∼16』에서 세속적인 재물은 참다운 보물이 아니며 '마음 속에 지녀야 할 참다운 보물은 자비, 경건, 절제, 침착함'이라고 가르친 석가모니의 말씀과'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가르친 예수의 말씀은 똑같으며 그 다음에 계속되는 '다른 사람이 가질 수 없고 도둑이 훔쳐갈 수 없는 보물을 가지고 떠나라'는 석가모니의 말씀이나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한 예수의 말씀도 똑같다.

석가모니와 예수는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장소가 엄청나게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에게 들려준 가르침은 서로가 서로의 경전을 옮겨놓은 듯이 똑같음을 보여주고 있으니, 대단한 '경전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 평등한 사랑


불경과 성경을 비교해 보면 석가모니의 길고 긴 설법 내용 가운데서 그 핵심부분만을 간단히 추려내어 다이제스트처럼 축약시켜 놓은 대목이 성경의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불경『법화경 약초유품』『법화경 신해품』과 성경『마태복음 5:39∼47』의 경우도 이와같은 예(例)라 할 것이다.

석가모니가 어떤 차별도 없이 골고루 비를 내리듯이 모든 중생들에게 가르침의 비를 내린다고 했듯이 예수 또한 악인에게도 선인에게도 하나님이 해를 비춰주시고, 의로운 자에게도 불의한 자에게도 비를 내린다고 표현하고 있다.


▣ 서로 돕고 존중하라


불경『백유경(百喩經)』과 성경『고린도전서 12:14∼31』에서는 서로 아끼고, 서로 존중하고, 서로 화합하라는 가르침을 펴기 위하여 석가모니는 뱀의 머리와 꼬리를 비유해서 설법했고, 바울은 같은 가르침을 펴기 위하여 몸과 지체(肢體)의 비유를 들고 있는데 불경과 성경이 똑같이 강조하고자 했던 점은 교단의 화합과 결집이었다. 머리라고 해서 귀중하고 꼬리라고 해서 하찮은 것이 아니며, 머리와 꼬리가 서로 자기만 제일이라고 주장하고 우기다가는 뱀의 몸통은 물론 머리와 꼬리 전체가 다 죽는다는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만일 한 지체(肢體)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는다'는 바울의 가르침은 똑같은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 석가모니의 수명과 예수의 수명


불경『법화경 여래수량품』에서 석가모니는 낳고 죽는 일에서 벗어난 분이요, 헤아릴 수도 없는 아득한 옛날부터 헤아릴 수도 없는 아득한 미래까지도 그 수명이 늘지도 줄지도 않고 항상 머무르며 무한한 자비심으로 중생들을 깨우치고 지켜주며 괴로움의 바다에서 건져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석가모니 부처님도 영원히 살아 있으되, 중생들의 깨우침을 위하여 인간의 모습을 잠시 보였을 뿐이라고 불경은 강조하고 있다.

성경『누가복음 24:13∼53』『마가복음 16:1∼20』『마태복음 28:5∼20』에서 예수도 이와 똑같이 세상 끝날이 있음을 알려 주고 그들을 구원에 들게 하기 위하여 잠시 그 모습을 이 세상에 보였다가 다시 하나님의 나라로 올라 갔을 뿐, 결코 죽은 것이 아니며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깨어 있으리라'고 하였으니 세상 끝날까지 영원히 살아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석가모니도 그 수명이 헤아릴 수 없는 무량수(無量壽)니 영생(永生)이요, 예수도 영생(永生)이라, 불경과 성경은 교조(敎祖)의 죽음 그 이후까지도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 무덤에서 일어나는 기적


불경에는 '무덤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경우'를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성경『마가복음 16:1∼6』『누가복음 24:1∼6』『마태복음 28:1∼4』『요한복음 20:1∼14』에서는 '불경의 무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설명 그대로를 '재현'시켜 놓고 있다.

『미린다 왕문경』에서 나아가세나 존자가 '향이나 화환이나 의복 중 한 가지를 탑, 묘에 바치면 죽은 자를 묻은 탑이나 묘에서 기적이 일어난다'고 설명한 그대로 막달라 마리아는 미리 준비해둔 향품을 가지고 무덤을 찾아 갔으며 무덤에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처럼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예수의 '무덤의 기적'은 이미 불경의 『미린다 왕문경』에 이론과 근거가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며 이 불경의 내용을 그대로 재현시킨 것이 이른바 예수의 '무덤의 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


▣ 기타


석가는 49일 단식했을 때 마라라는 악령의 시험을 받았다.

예수는 40일간 단식 후 악마에게 시험을 받았다.

석가는 12제자를 모든 계급의 사람들에게 파견했다.

예수는 12제자를 이스라엘 전역에 파견했다.

석가는 갠지스강을 걸어서 건넜다.

예수는 갈릴리 호수를 걸어서 건넜다.

석가는 과부의 두 냥 헌금이 정말 값지다고 했다.

예수는 과부의 한 냥 헌금이 거룩하다고 했다.  [ S. 라다 크리슈난 <석가와 예수의 대화> 중에서 ]

불경과 신약성서가 왜 이렇게 같을까?

여기에 대한 해답은 인도에서의 예수의 잃어버린 생애와 기독교의 영지주의와 불교와의 관계 등을 알면 자동적으로 풀리는 문제이다.

영지주의가 활짝 꽃 피었을 당시는(서기 80년 ~200년) 그리이스-로마 세계와 극동 지역간의 무역로가 열리고 있었던 중이었고, 불교 포교사들은 여러세대에 걸쳐 알레산드리아에서 포교하고 있었다. 또한 그리이스어를 아는 기독교인이었던 로마의 히폴리투스(225년경)가 인도의 브라만교도들을 알고 있었고, 그들의 전승을 이단의 원천들 가운데 하나로 여기고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을 [ 일레인 페이젤 <성서밖의 예수> 방건웅,박희순譯, p24, 정신세계사, 1989 ] 볼 때 불교나 힌두교가 기독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앞서 영지주의 복음서인 『도마복음서』에 있었던 말씀 중에 '하느님은 너희들 안에 있고 동시에 밖에 있다'는 말은 불교의 불성내재론(佛性內在論)이고 또 그 다음에 계속된 문장은 『법화경 방편품』의 '여아등무이(如我等無異)'다 『도마복음서』의 존재는 예수의 사상이 불교 사상 그 중에서도 불성내재론(佛性內在論)을 역설한 『법화경』과 유사하다. 유태교의 토양에서는 이러한 사상이 발생할 여지가 없으므로 불교의 『법화경』사상이 실크로드를 거쳐 이스라엘에까지 간 것으로 추측할 수 있고 예수 자신이 인도와 간다라, 티벳트에서 배워 왔을 가능성도 있다. [ 민희식 <법화경과 신약성서> p27, 가이아, 1999 ]

이러한 불교적인 색채들이 비단 영지주의 복음서뿐 아니라 필자가 앞에서 Bible과 불경을 비교한 것처럼 기독교인들이 소위 '정경(正經)'으로 분류해 놓은 복음서에서조차도 많이 발견되는 것이다.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의 불교적인 요소들을 빼어 버리고 나면, 남는 것은 예수가 영적인 스승이었다기보다는 주로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었으며, 종말을 예언한 사람이었다는 것 정도뿐이다.[ 루이아모르著, 류시화譯 <성서 속의 부다> p257 ]



개독들아 ...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제발 네 몸과 같이 하라. 니네 야훼의 말이다. [레위기 19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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