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menu
 
   
  
  • • 아이디 공유 및 다중 아이디 사용시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 • 반기련 후원 계좌:045-21-1262-515(국민은행) 이찬경
  • • 처음 오신 분께는 안티바이블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 • 전도성 글, 정치성 글, 비방글을 올리면 출입이 차단됩니다.
 
 
ID 저장 자동로그인
   

 • 자유토론
 • 비회원토론
 • 과학과 창조구라
 • 나의 경험담
 • 주제별토론
 • 구 자유토론
 • 휴지통

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결과보기
참여인원 : 5,126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채팅방가기


   • 전도성 글, 반복적인 글, 정치적인 글, 원색적인 글 등은 삭제가 됩니다.
   • 게시자의 IP는 기록되어 일부 공개 됩니다.
   • 비회원은 하루에 5개의 글만 쓸 수 있습니다.
   • "휴지통으로 보내기"가 5개면 휴지통으로 이동됩니다.


   
[반기련과 1,000만인 서명 운동의 위력]
글쓴이 : 제삼자  (180.♡.240.11) 날짜 : 2019-04-22 (월) 05:35 조회 : 795 추천 : 3 비추천 : 0
[반기련과 1,000만인 서명 운동의 위력]


반기련이 <1,000만인 서명 운동>을 시작한 지 어언 10년하고도 2년 여의 세월이 더 흐른 것 같다.
그런데, 1,000만 인에는 어림도 없고, 겨우 1만 천여 명 정도의 서명을 얻은 것 같다. 10여 년에 겨우 1만 명이라!
500만이나 100만도 아니요, 그렇다고 20만이나 10만도 못되는 겨우 1만이라! 목표가 1,000만인데, 1만은 참패 중의 참패요 굴욕 중의 굴욕이 아닐 수 없는 숫자 같다.
목표 치의 1/1,000 즉, 0.1%는 분명 실패작으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반기련의 실력(實力)은 ..... .>

그래서 그랬던가? 일찌감치 <반기련의 실패>를 결론지으면서 반기련의 뻔한(?) 장래를 점치는 글을 남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반기련은 이제 겨우 명맥만 이어가는 그래서, 머지 않아 없어질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는 듯한 글을 만나 본 적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과연, 반기련의 <1,000만 인 서명 운동>은 실패작이요, 그래서 반기련은 겨우 명맥만 이어가다가 머지 않아 마침내 그 존재 자체가 없어질 그런 보잘 것 없는 존재일까?


여기 쯤에서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몇 개의 명언들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一當百(일당백)"-혼자서 능히 백 사람을 당한다는 뜻으로, 매우 용감하거나 능력이 많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一夫當逕,足懼千夫(일부당경,족구천부)"-"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람도 두렵게 만들 수 있다."--충무공 이순신

(3) "一騎當千(일기당천)"-한 사람의 기병이 천 명을 당한다는 뜻으로, 무예나 능력이 아주 뛰어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4) "一夫當關, 萬夫莫開(일부당관, 만부막개)"-"한 사내가 막아 서면, 만 사람도 뚫지 못한다." 중국 詩仙 이백의 "촉도난"에서.
    한 사내가 관문을 지키니, 천군만마도 벌벌 떨게 된다. 천험의 요해지 또는 용감한 장수의 용맹 및 중요한 직책을 의미함.


그렇다면, 반기련의 <1,000만인 서명 운동>에 서명을 한 1만 1천 여명은 어느 정도의 사람들일까?

(이야기를 조금 쯤 곁길로 옮겨 보자.)

2,30년 전만 해도, 서울을 비롯한 웬만한 도시의 거리에서는 일요일만 되면, 제법 삐까뻔쩍하는 양복을 쭉 빼입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과 찬송가라는 것을 옆구리에 끼고서 활보하는 모습을 자랑스레 내보이 곤했었다.
아니, 평일에도 남녀 예수쟁이들 여러 명으로 구성된 집단이 그 바이블과 찬송가라는 것을 옆구리에 끼고서 소위 심방(예수쟁이 일반 가정을 찾아다니며 만남)을 하기 위해서 자랑스레 웅성웅성 몰려다니 곤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제삼자(필자)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즈음은 그 바이블과 찬송가라는 것을 자랑스레 또는 겉으로 보이게 들고 다니는 예수쟁이가 거의 없어진 것 같다. 왜일까? 

"고슴도치도 제 새끼를 추듯" 
어디까지나 예수쟁이들의 착각이었지만, 예수쟁이들도 자기들끼리 예수쟁이 노릇이 자랑스럽게 여겨져서 세상이 좁다며 휘졌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쟁이 노릇을 하기가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부끄러운 세상이 된 것이다.
바이블과 찬송가라는 것이 예전처럼 자랑스러운 소지품이 아니라, 이제는 숨기고 싶은 흉물이란 것을 많은 예수쟁이들도 알게 된 것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또,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현상!
오늘 날, 예수교에 불어닥친 가장 큰 문제는 <전도 행각>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현상일 것이다.
감언이설과 각종 선물 공세를 펴면서 아무리 사람을 꾀려 해도, 요즈음의 한국 사람 중에는 <예수교의 사기 행각>에 말려드는 사람이 거의 없게 됐을 것이다.

예전과는 사뭇 다른 커다란 장벽이 예수교의 각종 활동을 가로막고 있을 것이다. 그래 안 그래? 
그만큼 사람들이 예수교의 내막과 사기 행각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됐다는 말이다. 이를 어쩌지?  

이 모든 현상이 누구 때문일까? 물론, 무수히 많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가 있어서 "예수쟁이 노릇이 부끄러운 짓"이란 것을 빠른 속도로 홍보하는 위대한 일을 해낸 것일까? 대박!

반기련의 <1,000만인 서명 운동>이 10년 동안에 겨우 1만 1천 명이라며, 힘이 아주 미약한 존재로 치부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一夫當關, 萬夫莫開 (일부당관, 만부막개)"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 사내가 관문을 지키니, 천군만마도 벌벌 떨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 반기련의 <1,000만인  서명 운동>에 서명한 1만 1천 여 명은 1,000만 예수쟁이들을 부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한 숫자이다.
반기련의 <1,000만인 서명 운동>은 벌써 그 목적을 달성했다. 반기련의 힘은 一騎當千(일기당천)을 훨씬 능가하여 一夫當關, 萬夫莫開(일부당관 만부막개)를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기련은 10,000명 *1,000=1,000만 명 이상의 위력을 가진 활동 조직이다.
실제로, <1,000만인 서명 운동>에 서명을 한 11,000여 명이 지난 10여 년 동안, 
"만나는 사람(특히, 예수쟁이를 포함해서)들에게 예수교(바이블)의 허구성과 악독한 내용을 소문 내고 다녔다면,
그 효과가 일당천(一當千)을 훨씬 능가해서 일당만(一當萬)을 넘치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가히, 반기련 회원은 일부당관 만부막개(一夫當關, 萬夫莫開=한 사람이 만 사람을 막아냄)의 위력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조직이 분명하다. 아, 기분 째져! 

반기련의 <힘>은 지구 위 인류 역사 속의 어느 조직보다도 강력한 힘과 깨끗함을 견지(어떤 견해나 입장을 굳게 지니거나 지킴)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조직 중의 조직이다.
그러면서도, 반기련(反基聯=Antichrist.or.kr)은 아주아주 깊게 그리고 아주아주 조용히 천천히 흐르는 대하(大河)이다.  


**참고; 
반기련의 <바이블 19금 지정 촉구를 위한 1,000만인 서명운동>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읽지 못하게 하자."는 운동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바이블을 제대로 읽고서 예수교의 정체를 바르게 알자."는 운동이다.
만약, 바이블을 제대로 읽은 사람을 1,000만 명 확보하는 날이 온다면, 그 날이 바로 예수교의 문도 완전히 닫게 되는 날을 겸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180.♡.240.11) 2019-04-22 (월) 05:47
[피해보상에는 속수무책인 예수교의 신]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가해자인 범죄자와 피해자인 피살자가 있게 마련이다.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피살자의 유가족은 물론 범죄자의 가족도 억울한 피해자가 된다. 
이 때, 범죄자는 법이 정한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전혀 할 수가 없다. 
즉, 억을하게 죽은 사람을 살려 낼 수도 없고, 그 유가족의 불행도 근본적으로 막아 줄 수가 없다. 

더 나아가서, 범죄자를 처벌하므로써 벌어지는 그 유가족의 비극도 막을 수가 없다. 
살인 범죄 사건이 벌어지면 살인자에 대한 처벌만 어느 정도 실행 가능할 뿐, 피살자와 양쪽 가정의 유가족에게 주어지는 불행을 보상해 줄 방법이 인간에게는 없다. 
인간은 참으로 무지무능하여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전지전능한 신(여호와 또는 예수)이 간섭하는 세상이라면, 처벌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인간 세상의 어떠한 종류의 피해에 대한 보상도 가능할 것이다. 그래 안 그래?  
범죄자에 의하여 억울하게 죽여진 사람을 다시 되살려 놓으면 될 것이다. 아주 쉽고도 간단한 피해 보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어디에도 또, 예수교의 역사 속 그 어디에도 피해 보상이 되는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전지전능하다고도 하고, 사랑이 무진장 많다고도 하고, 인간의 요구 사항이 무엇인지도 자세히 안다고도 말해지는 여호와(또는 예수)가 아니던가?
뿐만 아니라, "인간은 여호와(또는 예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떠들어대는 예수쟁이들도 많다.
그러나, 여호와(또는 예수)라는 녀석은 실제로 무엇을 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헐!

여기에서, 바이블 속에서 벌어지는 여호와(또는 예수) 녀석의 활동을 잠시 보기로 하자. 

여호와의 선민 히브리 족속은 왕국(?)이 세워지기 전에 사사(추장) 시대라는 것이 펼쳐진다. 
그래서, 총 15명의 역대 사사(추장)가 출현하게 되는데, 그 중 제6대 추장에 아비멜렉(왕)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형제(이복 형제 포함해서) 70명을 박살을 내고, 그 아비 기드온(제5대 추장)을 이어 사사에 등극한다. 

아비멜렉의 이러한 행위를 여호와 쪽에서도 악행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여호와는 아비멜렉이 악행을 저지르는 동안에는 못 본 척하고 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 벌어진 뒤에야 여호와는 인간 세상에 간여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범죄자 아비멜렉이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폭정을 하도록 방치해 두었다가 뒤늦게 괴상한 방법으로 인간 세상에 간여하기 시작한다. 세상에나!


[아비멜렉(왕=추장)이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3년에, 여호와가 아비멜렉과 세겜(아비멜렉이 다스리는 나라)사람들 사이에 악한 신(惡神)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이는 여룹바알(=기드온)의 아들 70인에게 행한 포악한 일을 갚되, 그 형제를 죽여 피 흘린 죄를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서 그 형제를 죽이게 한 세겜 사람에게도 돌아가게 하심이라.] 

(사사기 9; 22~24) 


(1) 아비멜렉은 아비 기드온(여룹바알)이 죽자, 원주민인 세겜 사람들과 짜고, 이복 형제 70명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스스로 사사(추장)에 등극했다고 한다.

* 참고;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솔로몬왕도 자기 이복 형제들을 도륙시키고 왕위를 쟁탈하기는 아비멜렉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여호와(예수교의 신)는 솔로몬을 무지무지 사랑해주었고, 아비멜렉에게는 엄청난 미움을 안겨준다. 
        여호와(또는 예수) 녀석이 세상을 다스리는 잣대의 기준은 무엇인가? 팥죽 끓듯 뒤죽박죽이 그 기준인가? 세상에나!

(2) 아비멜렉이 사사(추장)가 되어 히브리를 다스린 지 제3년에 여호와는 추장과 원주민 사이에 악신(惡神)을 보내어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원주민과 아비멜렉(추장) 사이를 이간질하여 서로 전쟁을 일으키게 하려고 악신(여호와의 똘마니)을 보냈다는 것이다. 저런!

*똘마니--주로 범죄 집단에서 부하나 하수인을 속되게 이르는 말.

(3)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이런 괴상한 짓이 아베멜렉이 지은 죄를 갚고, 피 흘린 죄를 되돌리는 것이라 한다. 
하루 종일 전쟁이 계속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여졌을지는 짐작할 수도 없다. 
전쟁 마지막 날에 아비렐렉 쪽에서 화공법으로 죽인 사람이 1,000명이었다고 한다. 

전쟁 마지막 날, 모든 악행의 주인공 녀석 아비멜렉도 원주민 여인이 망대 위에서 내려뜨린 맷돌짝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헐! 
그러나 저러나, 지난 3년 동안 폭정에 시달린 애매한 백성들의 고통은 그 이유가 무엇일까? 

(4) 아무리 찾아 봐도 억울하게 죽여진 이복 형제 70명의 목숨과 전쟁통에 죽여진 그 많은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 얘기는 어디에도 없다. 
악행을 저지른 아비멜렉을 처벌한답시고 여호와가 인간 세상에 간섭해서 해 놓은 일이란 전쟁을 일으켜 또 다시 수 천 명의 억울한 목숨을 죽이는 일 뿐이다. 
포악한 범죄자는 아비멜렉 한 사람이다. 그런데, 전쟁으로 죽어가는 무수한 백성은 무엇인가? 

전쟁이란 아군 적군을 가릴 것 없이 수 많은 목숨이 죽여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 바이블 여기 저기에서는 적군만 진멸됐다고 씌어 있을 뿐, 여호와 쪽의 사람이 죽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어쨌든, 여호와는 사람 잡아 먹는 악마임에 틀림 없다. 

(5) 바이블 속에는 죄(?)에 대한 공갈 협박과 때때로 징벌하는 쪽으로만 정신이 팔려 <피해 보상> 쪽으로는 생각조차 해 볼 겨를이 없다. 
여호와(또는 예수) 쪽에서 단 한 번도 생각이 미치지 못한 분야가 <피해 보상> 문제이다.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에서도 살인자인 <가인>에게 징벌만 가할 뿐, 억울한 피살자 <아벨>을 다시 살려내야 된다는 생각을 미쳐 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바이블이 소개하는 신 여호와(또는 예수)가 허구(虛構=거짓, 가짜)임을 극명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실제로 바이블이 말하는 신이 존재한다면, 예수교 역사 속에 <피해 보상> 장면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6) 참고로 첨부할 말; 
위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에서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 세상을 간여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가? 
인류 사회를 이간질하기 위하여 사람 사이에 악신(똘마니 신)을 보냈다는 여호와, 뭐 이런 더러운 짓도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서 푼어치의 가치도 없는 말장난이요 어이없는 일이다. 
여기에 매달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예수쟁이들의 두뇌 구조가 어떻게 생겼을까 들여다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고 있다.




[톨스토이, 간디 및 정약용을 홀려 놓은 예수교]

** 홀리다--넘어가 마음을 빼앗겨 정신을 차리지 못하거나 산만해지다. 유혹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다.


우리 인간이 범하는 오류(그릇되어 이치에 어긋남) 중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권위에 호소하거나 의지하는 오류"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예수교는 미국(세계 최강국?)으로부터 전래되었다. 따라서, 예수교는 참이고 좋은 종교이다." 
또는, "링컨(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대통령)은 예수를 믿었다. 따라서, 예수교는 믿을 만한 좋은 종교이다." 등등은 "권위에 호소하거나 의지하는 오류"들 중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각설하고) 


[1] 인도의 간디가 말했다고 한다.
"나는 예수를 존경하지만 예수쟁이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와 전혀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고.
어떤가? 간디의 예수교에 대한 진단은 오른 것일까? 간디는 예수교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을까?

인도에서 간디보다 더 유명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다! 세계 전체를 놓고 계산하더라도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 마하트마 간디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말일 것 같다.
따라서, 간디 정도되는 유명한 사람이 그 이름(지위 또는 권위)으로 예수교를 평해 놓은 말 "나는 예수를 존경하지만 예수쟁이들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그 권위에 눌리어 "맞아! 맞아"하면서 맞장구를 치는 사람이 많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 안 그래?

그러나, 간디는 예수교(실제로는 바이블)를 조금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읽어봤는지는 모르겠으나, 간디는 바이블 내용을 전혀 터득하지 못한 사람이 분명하다. 
간디의 예수교 진단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궤변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예수교의 역사(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예수쟁이들의 그 썩어 문드러진 모습은 바이블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예수를 쏙 빼닮은 본연의 모습일 뿐이다. 예수쟁이와 예수는 100% 닮은 꼴일 뿐이다.

간디가 예수교를 제대로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그에 의한 예수교 진단은 달리 말해져야 옳다. 
"나는 예수도 좋아하지 않고, 동시에 예수를 쏙 빼닮은 예수쟁이들도 좋아할 수가 없다."고. ㅎㅎ...아멩 할렐루야! 대박!


[2] <부활>은 <전쟁과 평화> 및 <안나 카레니나>와 함께 톨스토이의 3대 걸작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면, 톨스토이는 누구인가?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대문호로 지칭되는 동시에 세익스피어, 괴테와 함께 "세계 3대 문호"로도 불리는 유명 또 유명한 사람이다.
이렇게 유명한 톨스토이가 예수교적으로 유명한 말을 남겼다면, 세상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나타낼까?

톨스토이는 <부활>이라는 소설을 통하여 "주인공이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의 감동에 의해서 정신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부활하는) 장면을 그려내는 소설 <부활>을 창작해 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활>을 읽는 독자들은 톨스토이의 권위에 압도되어 "예수교(또는 바이블)는 좋은 종교로구나."라며 예수교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이런 현상이 바로 "권위에 호소하거나 의지하는 오류"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소설 <부활> 속의 주인공 네흘류도프는 친척(고모) 집에 놀러갔다가 예쁜 하녀 카튜샤를 유혹하여 임신을 시키게 된다. 그러나, 돈 몇 푼을 쥐어 주고는 헌 신짝처럼 버린다. 결국, 카튜샤는 창녀로 전락하게 된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네흘류도프가 어느 지방 법원의 배심원이 되어 법정에 나가게 된다. 재판은 어느 매춘부가 손님을 독살하고 돈과 반지를 훔친 사건이었다.
알고 보니, 그 매춘부는 네흘류도프가 유혹하여 임신시킨 후, 팽개쳐버린 바로 그 카튜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서 받는 재판이었다.

종국에는, 카튜샤가 4년이라는 중형을 받고서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게 된다.
네흘류도프는 자기 때문에 한 여자가 파멸했다는 사실에 깊은 죄의식을 느껴 어떻게 해서든 그 카튜샤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모두 허사가 된다.
네흘류도프는 직접 카튜샤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시베리아까지 따라간다. 마침내, 시베리아에서 카튜샤 사건에 대한 판결 취소 명령이 내려지고 그 녀는 자유의 몸이 된다. 

(네흘류도프와 카튜샤의 복잡한 사랑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하자.)
두 남녀의 흥미로운 사랑 이야기 중간 중간에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읽으면서 그 속에 나타나 있는 무한한 사랑(?)으로 진실을 찾아간다는 줄거리가 바로 <부활>이다. 헐!
매춘부로 타락한 뒤에도 영혼의 저 밑바닥에 있는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카튜사, 여기에 감동을 받은 네흘류도프도 새로운 인생으로 부활한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 유명한<부활>이라는 소설이다. 세상에나!


[3] 정약용! 한국 국민 중에 저 유명한 대학자 정약용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따라서, 정약용의 이름으로 무엇인가 말해진다면, 그 권위에 압도되어 감히 저항해 볼 생각을 일으킬 사람이 별로 없지 않을까?

정약용은 명실 공히 천재였던 것 같다. 그는 이미 22세 때에 소과에 합격하고, 28세 때 대과에 차석으로 합격하여 34살에 이미 당상관인 정3품 부승지(임금 비서관)에 올랐다고 하니까....
이 정약용이 천주실의(천주교에 대한 책자-결국 이것도 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 빠져서 마침내 예수교에 걸려들었다고 한다. 세례명은 <요한>으로 알려져 있다. 헐! 

결국, 정약용은 배교를 한 것으로 전해지는 것 같다. 고문에 의한 죽음이 무서워서?
그러나, 저렇게 똑똑한 천재도 예수교에 빠져들어 코가 뚫려 끌려다니기도 하고 착취를 당하며 허덕이는 꼴을 보노라면 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긴 말은 줄이기로 하자. 그 긴 말을 어찌 다 말 할 수 있으랴!)


그런데, 말이다. 
간디, 톨스토이 그리고, 정약용처럼 똑똑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의 어디를 읽었기에 어떤 대목에서 무슨 감동을 받고서 예수교에 코가 뚫려 끌려다닌 걸까? 세상에나!

간디는 뭐에 눈이 멀어 "나는 예수를 존경하지만, 예수쟁이들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게 됐고,
톨스토이는 어떻게 해서 그토록 더럽게 타락한 두 남녀로 하여금 갱생할 수 있는 모법 답안을 바이블에서 찾을 수 있었다는 겐지?
정약용은 무엇에 홀려서 예수교에 현혹됐었던 것인지...세상은 역시 요지경이로다!

세계에서 두 번 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의 위인(?) 간디도, 대문호 소리를 듣는 톨스토이도 그리고 대학자 정약용도 여늬 예수쟁이들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엉터리꾼임을 알려주고 있는 사실이 아닐까?
유명하디 유명한 인도의 간디나,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나, 우리 한국의 대학자 정약용이나, 그 명성과 권위를 가지고 뭔가를 떠들어 놓으면 어느 누구도 감히 그것에 저항해 볼 수가 없는 진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헐! 

그러나, 인도의 그 유명한 지도자 간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그리고 정약용 같은 유명인이 그 이름(또는 권위)으로 아무리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추켜 세우더라도 그 바이블 내용이 훌륭해질 수는 없다. 그렇다!

인류의 역사 속에는 허명(虛名)과 허세(虛勢)가 참으로 많다. 물론, 그 허명과 허세에서 여호와(또는 예수)를 따를 자는 없지만 말이다. 물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기련이 인류 역사상 가장 허명과 허세 없이, 거품도 없이 액면 그대로의 깨끗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닐까 싶다. 아! 기분 째져!

역시, 반기련 최고!
제삼자 (180.♡.240.11) 2019-04-22 (월) 05:51
[신(여호와 또는 예수)은 인간을 체험할 수 없다]

** 다음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공부이다. 조금 쯤 정독을 해야 이해되는 말들이다. 

인간의 슬픈 감정은 어떤 상황에 놓일 때 발생하게 될까?
코끼리 무리는 동료나 새끼가 죽으면, 그 자리를 며칠 씩 뜨지를 못하고 서성거린다고 한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사람 이외의 동식물은 슬픈 감정이 없는 걸까?
그렇다면, 전지전능한 재주를 가졌다는 신(예, 여호와 또는 예수)에게는 회로애락의 감정 작용이 있을까? 
(각설하고)

여호와의 아들 예수란 녀석은 30대 젊은 시절, 부모가 없는 나이 어린 두 처녀 자매가 살고 있는 집을 즐겨 찾곤 했다고 한다. 왜 그래야 했을까? 이는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엉큼한 행동으로 보인다. 
"아니"라고 항변할 예수쟁이가 많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예수교라는 소굴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흉악한 추태들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 안 그래?

예수교에서 최고로 유명한 선지자 중에 <엘리야>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이 있다. 
그는 한 두 살 짜리 어린 아들을 둔 과부(그러니까 젊은 여자?) 집에서 3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갖은 서비스를 받으면서 머물렀다고도 한다.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는 아예 늙은(?) 남편을 둔 젊은 유부녀 집에 들어가서 봉양을 받았다더니, 이제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의 아들 녀석 예수는 어린 두 처녀의 집에 머물면서 갖은 서비스를 만끽했다는 것이다. 세상에나!

예수가 즐겨 찾던 두 처녀(마르다와 마리아)에게 나이 어린 남동생이 있었다.
이름을 <나사로>라했는데, 이 어린 남동생이 병들어 죽었다고 한다. 이에, 예수의 기적질 활동이 시작된다. 한 번 보기로 하자.
조금 쯤 길다란 얘기지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된다. 또, 정독을 해야 들리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村)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
...병든 <나사로>는 그(마리아)의 오라비러라.]

(요한 11;1~2)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2km 쯤 될까 말까 함)에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활동하면서 한가한 때를 즐길 수 있는 현지처(現地妻)를 베다니에 둔 셈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그런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후세의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는 이러한 전례를 남겨서는 안될 일이었다. (요즈음, 요란스러운 언론의 Burning Sun 사건도 예수가 세상을 향하여 시범을 보여준 결과물이 아닐까?) 
또, 작금 예수교의 지도자(이름하여 성직자)라는 사람들에 의하여 벌어지는 성폭력을 보면 알 것이다. 그래 안 그래?


**[이에 그 누이(나이 어린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여호와의 영광을 위함이요, 여호와의 아들(예수)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하시더라.]

(요한 11;3~4)

이 세상에 병신(또는 병자)을 만들어 놓은 이유가 "
여호와가 하시고자 하는 일을 위함이라."는 기록도 있거니와, 여호와와 그 아들 예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도 한다. 
글쎄, 이것이 되는 말일까?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이 있기는 하다만, 사람에게 병이 들게 하고서 이 병을 고쳐주는 짓이 예수교 신에게는 영광이라니....세상에나!


**[...(예수)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예수는 그(나사로)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제자들)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요한 11;11~13)

예수가 <나사로>의 
죽음을 가리켜 "<나사로>가 
잠들었으니, 깨우러 가자."고 말했더니, 그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하더란다. 헐! (예수의 제자들은 눈치와 말귀가 지극히 어두운 멀대들이었나 보다!)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

(요한 11;14~15)

예수가 아끼고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도록 내버려 둔 것은 잘 된 일이라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를 다시 살려 내는 기적질을 보여 주어 제자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과 사람들이 예수교 신의 존재와 그 능력을 믿게 하는 방법으로 이런 이상한 짓 밖에는 없는 것일까?
그런데 말이다. 다른 곳에서는 "기적질들을 보여 달라."고 요구를 하면, 악담과 저주로 윽박지르면서 거절하던 예수였다. 

정작, 보여 주어야 될 상대 즉, 식자(識者) 층이나 반대 세력에게는 보여 주지 않고, 
자기네 무리끼리 모여 있는 장소에서만 그 기적질이란 것이 시행됐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또, 죽은 자를 살리고, 병자(또는 병신)를 고쳐 주는 기적질을 시행할 것이라면, 예수(여호와의 아들)가 이 세상에 온 것으로 모든 죽은 자와 병자(또는 병신)가 일어났어야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끼리끼리 일부에서만 기적질이라는 이름으로 괴상한 일만 벌여 놓는다.
이상의 모든 술수(術數=속임수가 들어간 교묘한 생각이나 방법)들은 결국, 예수(또는 여호와)의 기적질은 없었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예수교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을 위한 복마전(호시탐탐 못된 짓을 하기 위하여 마귀들이 숨어 있는 곳)임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을 뿐이다. 그래 안 그래?


**[마르다(마리아의 언니)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여호와께 구하시는 것을 여호와가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여호와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요한 11;21~27)

여기에서 예수와 마르다(마리아의 언니)는 동문 서답(東問西答)으로 서로 어긋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예수는 "지금 당장 나사로를 
살려 주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
마르다>는 "마지막 심판날에 있을 부활 때에 살려 준다."는 말로 듣고 있다. 
이렇게 동문 서답을 주고받으면서도 즉,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하면서도 "믿습니다."로 화답하면 구원(救援)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헐!

마치, 일반 예수쟁이들이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의 허구성(虛構性=거짓말)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믿습니다."를 읊어대는 모습과 같다. 
그리고, 예수쟁이들은 그 믿음에 의하여 천당을 맡아 놓은 것으로 착각한다. 착각은 자유라지? 이 얼마나 우스꽝스런 모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박!

예수란 녀석은 말했다고 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그러나, 이 말대로 되어진 일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변함없이 신앙의 대상이 되는 예수이다. 
이는 <삶과 죽음>이라는 단어만 적당히 섞어서 던져 놓으면, 종교적으로 인간을 현혹시키기가 아주 쉽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인간은 이렇게 불안하고 약한 존재요 불쌍한 존재라고나 할까? 인간보다 지능이 약간만 낮아도(예를 들자면, 원숭이 따위) 종교가 없건만!


**[...마리아(예수의 어미가 아닌 마르다의 동생)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心靈=마음)에 통분(痛憤=비통)히 여기시고, 민망(딱하고 안타까움)히 여기시사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한 11;32~35)

죽은 사람의 가족과 문상객들이 우는 모습을 보고, 예수는 심령에 통분과 민망함을 느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런 엉터리 상황도 존재할 수 있는 일일까?)

어떤 집의 아들이 죽었다고 하자. 
인간 세상에서 실험을 해 볼 수는 없는 일지만, 만약 그 죽은 아들이 며칠 후에 되살아나기로 되어 있다고 하자. 이럴 경우, 그 초상집의 가족들에게 '심령의 통분과 민망'이 일어날까? 어떤가? 

사람들이야 믿을 수 없으므로 부활된 모습을 볼 때까지는 슬퍼할 수도 있다고 해 두자. 그러나, 예수란 녀석은 전후 사정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전지전능자이다. 
예수는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보면서 속 마음으로는  오히려 <웃음>이 절로 나왔을 것이다. 조금 있으면 다시 살아날 것을 아는 자라로서는 웃음이 나오게 됐을 것이다. 
아니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는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젊어서 고생은 금을 주고도 못 산다." "초년 고생은 은 주고 산다.(북한 속담)"는 격언이 있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부자로 알려진 빌 게이츠의 딸(23세?)이 그 귀중한(?) 경험을 쌓기 위해서 몇 달 동안 셋방 살이를 하며 품팔이를 해봤다고 하자. 
그러면, 젊을 때 겪어 봐야 얻을 수 있는 그 귀중한 체험을 할 수가 있을까? 거의 100% 실패작이 될 것이 뻔하다. 그래 안 그래?

빌 게이츠와는 비교가 안 되는 무한대의 재주를 가졌을 예수는 어떤 짓을 하더라도 가족의 죽음으로 겪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체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알아 몰라?

따라서, 여기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도 허구(거짓=가짜)임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제삼자(필자)는 바이블의 어느 한 구절도 허구, 모순, 궤변 그리고 악독 아닌 것을 발견하지를 못했다.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痛憤)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썩었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 11;38~42)


예수는 죽은 사람을 살리기 전에 하늘을 향하여 여호와(예수의 아비?)에게 중얼거리고 있다. 
증얼거린 이유가 둘러선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를 믿게 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이렇게 이상한 짓을 하지 않으면, 여호와(또는 예수)를 인간 세상에 선전 광고하여 알리는 방법이 그렇게도 없다는 말인가? 

예수교의 신이라는 여호와(또는 예수)는 자기 자신을 세상에 알리고 광고하는 일에 반드시 엉뚱한 제삼자(第三者=선지자 또는 각종 예수쟁이)를 통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여호와(또는 예수) 자신은 꼭꼭 숨어 있으면서, 중개인(仲介人)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할까? 무슨 꿍꿍이 짓을 하려고 이런 짓을 할까? 

예수교는 모든 것을 환하게 까발려 놓고 무엇이든 하면 안 될까?
그렇게 하면, 예수교는 그 날로 문을 닫게 되겠지? 그래 안 그래? 아멩!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요한 11;43~44)

마침내, 예수는 죽은 사람도 살려 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아멩 할렐루야! 암, 아멘 할렐루야로다. 대박!
그런데 말이다. 왜, 오직 <나사로> 하나 뿐인가? 어디 슬픈 죽음이  <나사로> 하나 뿐이던가?

1)모세, 2)아브라함, 3)다윗, 4)엘리야(그 제자 엘리사 포함해서) 등은 여호와의 가장 유명한 선지자(앞잡이)들이다. 
이들은 너무도 유명해서 예수 이후의 신약(新約=바이블)에도 여러 번 인용되는 위인들이다. 모세는 80회, 아브라함73 회, 다윗 59회, 그리고 엘리야가 30회 인용되고 있다. 

이 중에 모세, 아브라함, 다윗 등은 제정 일치(祭政一致) 시대의 지도자로서 종교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정치적 색채가 더 강한 인물들이다. (물론, 실존 인물들이 아니다.)
그러나, 엘리야야 말로 제정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시대의 순수한 종교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엘리야부터가 예수교의 진정한 종교적 뿌리가 되는 것이다. (물론, 엘리야도 실존 인물이 아니다.)

예수는 자신이 여호와의 아들로서의 권위을 확보하기 위하여 엘리야는 물론, 모세까지도 이용하고는 있지만, 구체적으로는 엘리야를 더 많이 흉내를 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엘리야(그 제자 엘리사를 포함해서)는 1. 죽은 사람 살리기, 2. 강물 가르기, 3. 적은 양의 음식으로 여러 사람 먹이기, 4. 여자들의 각종 서비스 받기, 5. 가짜 신과의 시합에서 승리하기 등등의 기적질로 유명하다. 

예리야의 행적은 유대(이스라엘) 족속들이 전통적으로 믿어 내리는 신앙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예수가 엘리야(또는 엘리사)를 모방하여 죽은 사람도 살려(?) 낸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죽은 사람 살리기는 없었던 허구(虛構=거짓=가짜)임을 알 수 있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다
"천지를 창조했다." 또는 "죽은 사람을 살려 냈다." 등등을 아무 설명 없이 간단하게 기록을 남겼더라면, 그 기적질이 "사실이냐?" "아니냐?"로 논쟁을 벌여 볼만도 하다.
그러나, 바이블에는 '창조 과정' 또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과정'을 너무도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겨 놓고 있다.

아뿔싸! 그런데,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이 자세하게 설명하는 과정들이 모두 허구, 궤변 및 모순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예수교(여호와, 예수, 각계 각층의 예수쟁이들)는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바이블(예수교의 경전)은 여호와(또는 예수)의 존재와 그 능력을 증명해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이 가짜(허구, 궤변, 모순)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대박!

강조하고 강조해서 또 다시 말해 둔다. 
"오직 하나 뿐인 예수교의 경전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은 예수교를 추켜 세워주기 위한 증명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예수교의 모든 것(여호와, 예수 그리고 예수쟁이까지 포함해서)이 하나도 빠짐 없이 엉터리요, 사기행각이란 것을 너무도 자세하게 증명해 주는 아주 훌륭한 교과서(또는 惡書)이다. 이것이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이름 패스워드

글 저장.
비밀글 (체크하면 글쓴이만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왼쪽의 글자를 입력하세요.
   

게시물 19,763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비추천
[필독] 게시글 작성시 명예훼손에 각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4) 반기련 16/04/19 211981 2 0
19763 19/08/25 3 0 0
19762 국민을 걱정하게 만드는 개독스런 짓 기독바다 흙탕물 19/08/23 37 1 0
19761 [예수교의 신이신 야훼(=여호와)의 능력] (2) 제삼자 19/08/16 124 5 0
19760 넌 왜 저런 사형틀을 걸어놓고 사냐? 기독바다 흙탕물 19/08/09 145 3 0
19759 안녕하세요? 2017년 통합측 바이블분야 목사고시 문제입니다.… (1) 동포 19/08/09 158 4 0
19758 성경에 관해 (4) 어떤이 19/08/04 307 0 4
19757    [바이블(예수교의 경전)이 씌어진 내력] 제삼자 19/08/07 292 6 0
19756    바이블은 형성자체가 왜곡 동포 19/08/10 98 3 0
19755    카톨릭(73권)과 개신교(66권) 바이블이 다르게 된 이유 동포 19/08/10 102 2 0
19754 하나님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100% 관여한다면... 냥냥 19/08/03 272 0 0
19753 개독은. 개독 스스로 개독박멸을 벌었다고.. 기독바다 흙탕물 19/07/27 431 4 0
19752 근데 왜 잘자고있는 사람 집에 무조건 찾아오는거임? 안서진 19/07/23 395 2 0
19751 겁나 궁금한게 있음 이신웅 19/07/22 244 0 0
19750 난 개독을 보면 참 안쓰러 (1) 기독바다 흙탕물 19/07/19 382 3 0
19749 [대신 내 딸들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라] (2) 제삼자 19/07/19 424 3 0
19748 그동안 <제삼자>선생님에관해 많은 생각을 했는데,,,그 결과를… 절대성자 19/07/15 334 0 4
19747 개독 생명체는 남녀가 평등하지 못한 조현병 환자가 분명혀 기독바다 흙탕물 19/07/13 354 1 0
19746 지옥갈 반기련의 가여운 아가들아. (3) hm 19/07/11 493 0 5
19745    개독 Dog Baby 후레자식의 무례한 글 : 삭제, 접차대상입니다 칡넝쿨 19/07/13 267 1 0
19744 [뒤죽박죽으로 다스려지는 예수교의 천당] (2) 제삼자 19/07/08 485 3 0
19743 제삼자의 모순 또는 거짓 (4) ????? 19/07/06 495 0 4
19742 남 지옥 운운하기 전에. 먼저 지옥에 떨어졌을. 우매멍청한 개… 기독바다 흙탕물 19/07/03 378 3 0
19741 너희들 지옥이다 (7) HM 19/06/27 544 0 4
19740 전지전능한 야훼의 "원죄방조죄" 는 누가 벌주나 (2) 기독바다 흙탕물 19/06/26 374 4 0
19739 도데체 개독들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하여라 (7) 기독바다 흙탕물 19/06/25 409 3 0
19738 [삼독(三毒)=사람의 착한 마음을 해치는 3가지 번뇌] (1) 제삼자 19/06/22 493 4 0
19737 예수보다는 염라대왕을 택해야하는 이유 갈롱 19/06/17 430 7 0
19736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자꾸 물고늘어지는 개독들에게 이글을 … (2) 절대성자 19/06/16 479 3 0
19735 보이지 않는 무형의 야훼 구라를.. 개독만 알아 듣는다. 기독바다 흙탕물 19/06/15 477 3 0
19734 ????님께 ....모든 존재하기 시작한 것에는 원인이 있다? (3) 갈롱 19/06/14 573 4 0
 1  2  3  4  5  6  7  8  9  10    
최근게시물 : 9,140 건    오늘 : 1,504    어제 : 1,668    최대 : 12,198    전체 : 7,928,258      총회원 수 : 19,177 분    접속중 : 320(회원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