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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무엇(또는 누구)일까?]
글쓴이 : 제삼자  (180.♡.240.52) 날짜 : 2019-11-12 (화) 11:33 조회 : 996 추천 : 5 비추천 : 0
[예수는 무엇(또는 누구)일까?]

예수는 무엇(또는 누구)일까? 글쎄, 예수는 누구(또는 무엇)일까?
예수는 신의 아들일까? 아니면, 괴물일까? 그것도 아니면, 허구(가짜=거짓)일까?

예수교에 의하면 예수는 여호와(예수교의 주신)의 독생자라고 말해진다. 또는 3위 일체 중 한 녀석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뚜렷한 정답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예수를 가리켜 여호와의 독생자 또는 3위 일체 중 하나라는 썰은 예수쟁이들끼리 수 천 년을 두고 대가리가 터지게 싸우는 뜨거운 감자라고나 할 수 있을까?

바이블 얘기에 의하면, 히브리 족속(예수쟁이들의 옛 조상)의 최고 최대의 명군(名君) 다윗왕과 예수의 직계 조상 중에 <유다>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불륜 상대가 없었던지, 이 히브리 족속의 조상 <유다>는 며느리(다말)와 간통을 하여 자식이 태어났다고 한다. 
여기에서 이 시아비 유다와 며느리 다말 사이의 간통(불륜) 문제를 잠시 다루어 보려고 한다.


우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1] [유다는 
다말(유다의 며느리)에게서........................1.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2.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3. 람을 낳고, 
람은.....................................................4.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5. 나손을 낳고, 
나손은...................................................6.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창녀)에게서 ...........................7.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이방 여인인 동시에 과부)에게서...8. 오벳을 낳고, 
오벳은...................................................9. 이새를 낳고, 
이새는.................................................10. 다윗왕을 낳으니라.]

(마태 1;3~6)

위의 바이블에 기록된 족보를 다시 늘어 놓아 보자.

시아비 유다(시아비)와 며느리 다말(며느리)이 불륜으로 붙어서 태어난 사생아 혈통 
1대)베레스----2대)헤스론----3대)람----4대)아미나답----5대)나손----6대)살몬----7대)보아스----8대)오벳----9대)이새----10대)다윗

위에서 볼 수 있듯, 시아비 유다와 그 며느리(다말)의 불륜으로 태어난 사생아 제1대는 베레스이며, 제10대는 다윗왕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얘기이지만, 다윗왕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의 모든 것이 집중되는 중심 인물이다.
다윗 이야기는 신학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하고 복잡하며, 예수교의 천국설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다윗은 예수교 교리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다. 다윗을 중심에다 세워 놓고서 먼 예수교의 과거와 미래의 예수교의 모든 것이 중앙에 있는 다윗을 향하여 집결하게 되어 있다. 다윗은 이렇게 중요한 인물이다.
오죽하면, 다윗을 예수의 조상으로 꾸미기까지 했을까!

그러나, 여기에서는 다윗을 포함시킨 예수교의 복잡한 교리 문제는 일단 생략함이 좋겠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더 보자.
 
2] [사생자(私生子=사생아)는 여호와의 총회(總會=오늘날의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10대까지라도 여호와의 총회(總會)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신명기 23;2)

사생아는 그 10대까지 여호와의 총회(總會=오늘날의 교회)에 참석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생아 제 10대인 다윗왕이 어떻게 여호와의 모든 것이 집중된 중심 인물로 되어 있을까?
여호와의 총회(總會)에 참석조차 할 수 없는 부적격자(不適格者)가 어떻게 천국을 상징하는 중심 인물이 될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젊은 과부 룻이 늙은 보아스와의 사이에서 씨받이로 태어난 사람이 오벳인데, 이 오벳이 바로 다윗의 조부(祖父)이다.
따라서, 오벳은 변칙적으로 태어난 사생아이며, 다윗은 사생아의 제3대가 되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다윗은 사생아 제10대와 제3대를 겸한 사람이다. 이렇게 더러운(?) 사람이 어떻게 여호와(예수교 신)의 지엄한 명을 깨고 히브리(예수교)의 최고 최대의 인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또, 다윗은 라합이라는 창녀(갈보)의 핏줄도 섞인 더러운(?) 복잡한 사생아이다.
그런데, 다윗은 신약(新約=바이블)에서 59회씩이나 인용되고 있으며, 예수도 자랑스레 인용하는 인물이다.
심지어, 예수는 다윗의 혈통임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헐!

예수교에서 
1. 모세, 2. 다윗, 3. 엘리야 이렇게 3녀석의 이름을 빼면, 사실상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된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총회(總會=교회)에도 참석할 자격이 없는 다윗의 경우를 어떻게 변명하려는가?

제삼자(필자)는 이미 여러 곳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허구(虛構=가짜)임을 증명해 왔다.
이제 여기서는 다윗의 문제점을 하나 지적한 셈이다. 앞으로 계속해서 다윗의 허구성(虛構性=가짜)도 지적할 것이다.
또, 
이미 히브리의 학자들은 자기네 역사 속에 1. 사울왕, 2. 다윗왕, 3. 솔로몬왕, 이렇게 3명의 시대는 없었다고 연구 발표한 적도 있다.
 
예수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모세, 다윗, 엘리야가 모두 없었던 허구(虛構=가짜)라는 말이다.
그리고, 바로 아래에 이어지는 예수는 더욱 커다란 허구 덩어리일 뿐이다.

바이블(예수교의 교리)은 신(神)의 감동으로 씌어진 일점일획(一點一劃)도 하자(瑕疵)가 없는 진리의 말씀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종교 사기꾼들이 서로 상대방이 써 놓은 바이블 내용을 제대로 납득(숙지)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자기 취향과 필요에 따라 첨삭 또는 편집시킨 결과이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또 보자. 그러자!

3]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定婚)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聖靈=여호와)으로 잉태(孕胎)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태 1;18)


위의 바이블 내용을 보면,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定婚)한 뒤에 여호와의 아이를 가진 셈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마리아가 정혼한 남자(남편)가 아닌 다른 녀석을 아비로 하여 태어난 사생아란 말이다. 그래 안 그래?

바이블에서 말하는 사생아란 <인류 사회의 척도>로 계산된 규례이다. 인간을 가르치기 위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 아닌 신(神)의 자식이라 하여도 정혼한 남자(남편)의 자식이 아닌 사생아는 사생아이다. 예수는 분명한 사생아이다.
따라서, 예수도 여호와의 총회(總會=교회)에 참석할 자격이 없는 자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구세주가 될 수 있는가?

이것도 미쳐 바이블 전체를 숙지(熟知)하지 못한 어떤 종교 사기꾼이 
자기 나름의 필요와 속임수를 적당히 배합하여 만들어 낸 허구(虛構=가짜)임을 증명하는 한 대목이다.

또, 여호와의 지엄한 명령 중에는 "병신 또는 몸에 흠집이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참석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서 못과 창에 찔려 몸에 흠집이 생긴 예수가 어떻게 구세주의 자격을 가질 수 있을까? 결국, 예수는 예수교의 교리에 비추어 볼 때, 여러 가지로 자격이 없는 괴상한 존재이다. 그래 안 그래?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180.♡.240.52) 2019-11-15 (금) 10:32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민족]


히브리(이스라엘) 족속은 여호와(예수교의 주신)가 선택하여 특별히 사랑을 베풀며 아끼는 백성이라고 한다. 좋겠다.
그런데, 이 히브리(이스라엘) 족속은 애굽(이집트)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게 됐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모두 여호와의 섭리라고 한다. 헐!

종살이하던 히브리(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인도를 받으며 애굽을 탈출할 때, 그들이 건너야 할 넓은 
홍해 바다가 갈라지고, 그 갈라진 바다 밑으로 행군하는 과정이 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출애굽이다. 전지전능한 여호와(예수교의 주신)의 기적질이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대박!
 
자, 그러면 지금부터 여호와의 기적질에 의하여 넓은 홍해 바다가 갈라지고 그 사이로 히브리(이스라엘) 족속이 행군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하여 출애굽을 구경해 보기로 하자.
이런 장면을 <spectacle>이라고 한다던가?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剛愎=까다롭고 고집이 셈)케 할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왕)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시더니,]

(출애굽기 14;15~18)

 
여호와(예수교의 주신)께서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어 놓겠다고 한다. <강퍅>이란 깐깐하고 고집이 센 성품을 뜻한다.
즉, 히브리 족속을 종으로 부려 먹던 애굽 사람들로 하여금 상황 판단을 모두 비뚤어지게 하겠다는 말이다. 여호와는 이런 짓을 하기에 충분한 분(?)이시다. 솔직하게 말해서 잡놈이시다.

홍해 바다가 갈라지고 히브리 족속이 그 바다 밑으로 행군할 때, 애굽의 모든 장병들도 따라서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애굽 사람(병사)들을 싹 쓸어 죽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성품)이 강퍅해지면, 이렇게 상황 판단을 비뚤어지게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강퍅>을 여호와라는 예수교의 신께서 사람의 마음 속에다 집어 넣었다는 것이다. 세상에나, 이런 잡놈이 있다니! 헐!

"여호와(예수교의 주신)는 애굽의 왕과 병거(兵車)와 마병(馬兵)이 모두 몰살을 당하는 결과를 보아야 마침내  영광을 얻게 된다."고 한다.
"애굽의 모든 장병을 홍해 바다에다 수장(水葬)시켜 모조리 죽여 버리는 일이 여호와의 영광이라는 것이다."
여호와의 영광과 동시에 비로소 애굽 사람들은 여호와를 여호와인줄 알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인간의 마음에다 강퍅(까다롭고 고집이 셈)을 집어 넣는 짓이나, 애굽의 장병(사람)들을 모조리 수장(水葬)시키는 짓이 여호와의 영광이 된다는 것이다. 대박!
그렇게 하므로써 애굽 사람들이 여호와를 여호와인줄 알게 될 것이라는 말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신(神)다운 것이 있는가?
악마(惡魔)는 그런 짓을 하겠는가? 놀랍기만 하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더 보자.

 
2) [이스라엘 진(陣) 앞에 행(行)하던 신(神=여호와)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
구름기둥도 앞에서 그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 편(애굽)은 구름과 흑암(黑暗)이 있고, 이 편(히브리)은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 편에서 이 편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출애굽기 14;19~20)

 
히브리 족속이 애굽을 탈출할 때,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을 인도했다고 한다.
홍해가 갈라졌을 때에도 <밤새도록> 구름기둥이 활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밤새도록> 자체만으로도 적진(敵陣=애굽)은 흑암이 덮여 있었는데, 거기에다 구름기둥까지 합세하여 더욱 깜깜 절벽을 만들었던 모양이다.

오리무중(五里霧中)이란 말이 있다. 짙은 안개 속에서 5리 떨어진 거리는 아무것도 보일 리가 없다. 낮이라 해도.
출애굽 사건 당시는 오리무중 정도가 아니라 오리운중(五里雲中)이었던 모양이다. 그것도 깜깜한 밤중이었으므로 적(敵=애굽)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독자들은 <밤새도록>이란 말과 <구름 기둥이 뒤덮인 흑암>이란 말을 기억하고 있기 바란다.
이럴 때, 그 넓디 넓은 홍해 바다가 갈라졌다고 한다. 대박!

반면에, 
히브리 족속이 움직이고 있는 쪽은 광명이 있었다고 한다.
적어도 1,000만(어쩌면 2,000만) 이상의 생명체가 움직일 수 있도록 밤새도록 비춰주는 광명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었을까?
이 엄청난 광경(기적)에 대하여 바이블에서는 아무 설명이 없다.
실제로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도 없다. 왜일까? 시시한 기적이라서?

 
그 때, 제삼자(필자)가 거기에 있었다면, 제삼자는 홍해 바다를 건너지 못했을 것 같다.
아군과 적군이 근접 거리에서 대치하고 있었으므로, 광명과 흑암의 경계면(境界面)이 가까이에 뚜렷하게 나타났을 것이다.
이 희한한 광경을 보고서 어떻게 발이 떨어지겠는가?
흑암 속으로 손을 넣어 보기도 하고, 휘휘 저어 보기도 하고, 몸뚱이 통째 들어가 보기도 하고, 경계면에 서 보기도 하고, ....
그 광명이란 것이 어디에서 오는가도 보고....
어쨌든, 그 때 그 출애굽 대열에 제삼자가 섞여 있었다면, 제삼자는 여호와의 기적질에 홀려서 끝내 애굽을 탈출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래 안 그래?


 
3)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東風)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行)하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출애굽기 14;21~22)

 
홍해는 남북으로 길게 놓여 있는 망망 대해이다. 그리고, 히브리 족속의 애굽 탈출이란 이 바다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건너는 일이다.
그런데, 이 바다가 갈라지게 한 것은 큰 동풍(東風)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강한 바람이란 말이다.

홍해는 가장 깊은 곳이 -2,920m이며, 바다가 갈라졌을 만한 곳의 깊이도 -1,676m 쯤 된다.
아니, 여기서는 홍해의 깊이가 -100 m라고 하자. 가장 좁은 곳의 폭은 70~80km(약 200리) 쯤 된다.

100m 깊이의 바닷물이 완전히 밀려날 정도의 바람의 세기는 어느 종류의 바람일까?
정온,
연풍,
화풍,
질풍,
강풍,
열풍,
구풍, 이렇게 7가지 세기의 바람 중 어느 세기의 바람이어야 할까? 

 
이렇게 강한 동풍(東風)이 앞에서 불어오고 있을 때, 이 바람을 앞에 안고서 도보로 전진이 가능할까?
또, 하루 밤 사이에 1,000만(어쩌면 2,000만)이 넘는 생명체(사람+가축)가 걸어서 200리를 건너갈 수가 있었을까?
바닷물이 갈라졌더라도 바다 밑은 아스팔트 길처럼 평평한 땅이 아니라 날카로운 계곡이다.
또, 바람에 물이 밀려나면 그 밑바닥이 즉시 마른 땅이 되는가?

제삼자(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홍해 바다의 해저는 우리 한국보다 훨씬 험악한 굴곡(계곡)을 이루는 지형을 하고 있다.
아니, 홍해의 해저(海底)가 아스팔트로 다져진 운동장 같더라도 하루밤 사이에 200리나 되는 거리를 건널 수는 없을 것이다.

출애굽에 포함된 히브리 족속의 대열에는
1. 가재 도구는 물론,
2. 임산부, 출산부, 각종 병자와 불구자가 있었을 것이고,
3. 노인, 
4. 가축도 함께하고 있었다.
5. 그리고, 이런 잡동사니가 자그마치 1,000만(어쩌면 2,000만)이나 되는 거대 집단이다.


 
4) [애굽 사람(장병)들과 바로(왕)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 뒤를 좇아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극난(極難)하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예수교의 주신)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출애굽기 14;23~25)

 
히브리 족속이 바닷물이 갈라진 홍해의 해저로 들어가자 애굽 장병들이 히브리 족속을 치려고 따라 들어 갔다고 한다.
깜깜한 흑암과 여호와가 덧씌운 구름으로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밤중에, 바다가 갈라졌는지, 히브리 족속이 그 곳으로 들어갔는지 어떻게 판단하고서 따라 들어가는가?
전혀 아무것도 분별할 수 없는 흑암(黑暗) 속에서 애굽 왕 바로는 무엇을 하려고 군사 작전을 폈을까?

"여호와는 바다 가운데서 애굽 장병의 병거(兵車) 바퀴를 벗겨 버려, 달리기에 극난(極難)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자, 애굽 사람들이 말한다. "도망가자. 여호와가 히브리를 돕고 있다." 고.
이 사실을 애굽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애굽 사람들은 신(神=여호와)의 활동을 감지할 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인가?
전쟁을 하고 있을 때, 적군을 신(神)이 돕는지 그렇지 않은지 인간이 어떻게 감지할 수 있는가? 헐!

서두에서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겠다." 더니, 그 예언이 이루어지려고 저절로 알게 되었는가?
그러나 저러나, 애굽 사람은 전멸했다. 이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이 "야호와를 여호와인줄 알았다."는 말인가?
바이블 내용은 예수교의 신(여호와 또는 예수)이 허구(虛構=가짜)임을 증명해 준다는 말을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가?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왕)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출애굽기 14;26~28)

 
갈라졌던 바다가 새벽녘에 원상으로 회복되자, 애굽 군대를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다 덮어 죽여 수장시켰다고 한다.
한 사람도 남김 없이 진멸시키는 전법이 여호와의 성전(聖戰)이다. 이것이 서두에서 말한 <여호와의 영광>이라는 것이다. 대박!
사람 죽이는 현상이 영광인가? 그래서, 예수교의 역사가 사람 죽이기 시합이었던가?

어쨌든, 여호와의 영광되는 장면은 바이블의 곳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또, 십자군 전쟁, 신대륙에서 벌어진 진멸 작전, 세계 도처에서 원주민들의 목숨과 재산을 강탈하고 전통과 문화를 파괴한 짓,
그리고, 마녀 사냥 등등, 여호와의 영광은 계속해서 빈 틈 없이 발휘되고 있다. 대박!


 
6)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 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출애굽기 14;30~31)

 
히브리(이스라엘) 사람들은 해변에 떠밀린 애굽 장병들의 시체를 보았다고 한다.
태풍보다 훨씬 강력한 동풍이 밤새도록 불었는데도 시체들은 서쪽이 아닌 동쪽 해변으로 떠밀린 모양이다. 헐!
 
**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정독하면, 이런 엉터리 상황이 즐비하다. 이것이 예수교의 실체이다.

 
마지막으로, 
히브리(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커다란 기적을 보고서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로 장식하고 있다.
애굽에서 13가지 엄청난 기적을 체험했고, 홍해 바다까지 행군하면서 불기둥, 구름기둥까지 보고서도 믿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믿게 됐다는 말인가?

그러나, 저러나, 잠시 후가 되면, 히브리(이스라엘) 족속은 여호와를 헌신짝 버리듯 내동댕이친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여호와 쪽에서도 자기 백성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친다. 영원히 불변하는 여호와의 신실한 언약은 하루가 멀다 하고 변덕을 부린다.
전지전능한 신(神)은 그런 것인가 보다.

 
(히브리 족속의 출애굽 이야기는 필자의 저서 [신(神)의 이야기 사람 이야기]에서 자세히 논했다.)

 
미개 시대의 사람 손으로 씌어진 바이블, 이것을 과학이다 논리다 하며 비판할 가치도 없다.
여기에 신(神)은 없다. 이것을 무슨 진리나 되는 듯 끌어 안고서 민족의 얼을 빼내고, 나라를 풍비박산시키는데는 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사돈 남 말 한다]-얼씨구!



"사돈 남 말 한다."

자기도 같은 잘못이 있으면서 제 잘못은 제쳐 놓고 남의 잘못만 나무란다. (요즈음 국어 사전에서)



여호와(예수교의 주신)가 말했다고 한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나 여호와가 말한다.

 

"너희(예수쟁이들)는 이방 사람의 풍습을 배우지 말아라.

이방 사람이 하늘의 온갖 징조를 보고 두려워하더라도 너희는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방 사람이 우상을 숭배하는 풍속은 허황된 것이다.

그들의 우상은 숲 속에서 베어 온 나무요, 조각가가 연장으로 다듬어서 만든 공예품이다.

그들은 은과 금으로 그것을 아름답게 꾸미고, 망치로 못을 박아 고정시켜서, 쓰러지지 않게 하였다.

 

그것(우상=가짜 신)들은 논에 세운 허수아비와 같아서, 말을 하지 못한다.

걸어 다닐 수도 없으니, 늘 누가 메고 다녀야 한다.

그것들은 사람에게 재앙을 내릴 수도 없고, 복을 내릴 수도 없으니, 너희는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예레미야 10;2~5)

 

 

 

** 위의 바이블 구절은 여호와(예수교의 주신) 쪽에서 설명하는 우상(가짜 신)에 대한 해설이란다.

    그런데 말이다. 먼저 말했다 해서 그 말의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위의 우상에 대한 해설은 자기 자신(여호와=예수)을 두고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제삼자(필자) 복음(?) 내용이다.

한 번 음미해 보기로 하자.

 

 

[나 제삼자(필자)가 말한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예수교의 풍습을 배우지 말아라.

예수쟁이들이 여호와(또는 예수)를 보고 두려워하더라도 한국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예수쟁이들이 우상(또는 예수)을 숭배하는 풍속은 허황된 것이다.

그들의 우상은 숲 속에서 베어 온 나무 조각, 땅 속에서 파 낸 쇠붙이요, 이런 것들을 조각가, 미술가 등이 연장(붓)으로 다듬어(또는 그려서) 만든 공예(미술)품일 뿐이다.

 

그들은 은과 금으로 그것을 아름답게 꾸미고, 망치로 못을 박아 고정시켜서 쓰러지지 않게 하였다.

(예수교의 모든 것들은 바이블 기자, 신학자, 신부, 목사들의 공갈, 협박, 사기질로 그럴싸하게 추켜 세워지고 있다.)

 

그것(여호와 상 또는 예수 상 및 각종 기물)들은 허수아비와 같아서 말을 하지 못한다.

걸어 다닐 수도 없으니, 늘 누가 메고(떠들고) 다녀야 한다.

그것들은 사람에게 재앙을 내릴 수도 없고, 복을 내릴 수도 없으니, 한국 사람들은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제삼자 복음서에서)



**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사돈 남 말 하듯 한다."의 원래 뜻?

사돈은 무척 가까운 사람(친인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소 닭 보듯 할 수 있는 아주 먼 사이이기도 하다?

사돈 댁에 경사스러운 일이 생겨도 또는 불행한 일이 생겨도 내 심금을 크게 울리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거리가 먼 것이 사돈지간 일 수도 있다?

"사돈 남 말 하듯 한다."는 큰 관심 없이 아예 먼 곳의 남 얘기 하듯 아무 부담 없이 아무렇게나 던져 말하는 마음 자세를 말한다.

제삼자(필자)는 이렇게 알고 있다. "사돈 남 말 하듯 한다."를.







[50년이면 족한 것을 2,000년 씩이나]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悔改)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마태 4;17)


 회개(悔改)-전의 잘못을 뉘우치고 고침(국어 사전에서)
그렇다면, 
회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사실은 無) 또는 태어나지 않을 사람(이것도 無)에게는 무관한 것임이 분명하다.


 "개하라."는 가르침은 현재 태어난 사람이 살다가 죽을 때까지면 족한 것이다.
 예수 당시, 장수(長壽)하는 사람의 수명은 고작해야 40세 전후였다고 한다,

 40세에 죽을 사람(甲)이 20세 때, 사람이 해서는 안될 악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고 하자.
 이 때, 예수가 나타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깝다."고 가르쳤다고 하자.
 甲은 예수의 가르침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는 甲을 사랑하여 참고 기다렸다.
 마침내, 19년의 세월이 흘러 甲의 나이 39세 되던 해에, 甲은 회개하여 예수쟁이가 되었다.
 마침내, 예수가 참고 기다려 준 보람이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1년을 기다려서 회개하고,
어떤 사람은 5년을 기다려서 회개하고,
어떤 사람은 40년을 기다려서 회개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50년을 기다리면, 예수 당시의 사람들은 모두 죽어서 없어진다.
더 기다려서는 안된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의 죄를 회개시키려는 짓은 폭력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깝다."고 떠들 때,
예수(여호와)는 모든 여자들이 아이를 더 낳을 수 없도록 태(胎)를 막아 놓고, 50년 정도만 기다리고 있으면 족했다.
여자의 태를 막지도 않고 2,000년이 넘도록 무작정 기다린다는 것은 무지 막지한 폭력이다.

왜냐 하면,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는 속에서 오랜 시간이 흐르면,
회개하고 천국에 갈 사람이 늘어날지는 모르겠으나, 회개하지 않고 지옥으로 갈 사람은 기하급수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예수(여호와)가 아무리 전지전능한 신(神)이라 하여도, 
아직 태어나지도 않아 죄(잘못)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사실은 無)까지 기다렸다가 천국 지옥을 논할 권한은 없을 것이다.
 
태어난 사람을 모두 천국으로 보내 준다면 모를까, <회개>를 전제로 하는 천국이요 지옥이라면, 계속 사람이 새로 태어나게 하면서 마냥 세월을 기다린다는 것은 용서될 수 없는 만행질이다.

"예수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는 반드시 50년 시한부였어야 했다.
그것도 모든 여자의 태를 막아, 더는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지 않는 상태에서 행할 일이었다.
(여호와는 수시로 여자의 태를 막아 임신을 못하게 하기도 했다.)

여호와(예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1,000년을 하루 같이 참고 기다리는 악마이다.
지난 수 천년 동안, 천국 갈 사람 몇 명을 확보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옥 갈 사람은 수 백억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사랑이 많아 오래 참고 기다린다는 것인가? 아서라. 악마들아.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은 바보. 계속 예수쟁이질이나 하랄 수밖에.





[한 번 허구(가짜)는 영원한 허구이다]-그래 안 그래?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족속은 애굽에서 탈출하기 직전, 모세(여호와의 앞잡이)의 예언에 따라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엄청난 기적들을 여러 번 체험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특별한 여호와의 기적질인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기도 하고,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질에 의하여 그 사이로 생겨난 신작로를 통하여 직접 건너서 도망을 쳐 애굽을 탈출한 사람들이다.

출애굽 과정에서 사막 벌판을 40년 동안 배회하게도 되는데 이 때. 매일 매일 여호와가 하늘에서 음식(만나와 메추라기)까지 눈오듯 내려주어서 먹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입고 있는 옷도 40년 동안 떨어지지 않는 기적도 체험하고 있으며, 사막의 생활 속에서 여호와의 커다란 기적들을 계속적으로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능력과 기적질을 직접 체험해 본 사람이라면, 그가 학박사이건, 불교 또는 힌두교 따위의 타종교 신봉자이건, 남녀노소, 상하 귀천을 불문하고, 그 자리에서 여호와 앞에 부복하여 쪼그라들게 되어 있다.
인간으로 태어난 자 중에 감히 여호와에게 항명(抗命)할 그런 간덩이 부은 사람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 안 그래?

그런데 바이블(예수교의 경전)에는 그 사람들(출애굽에 직접 동참했던 히브리인들)이 한 두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여호와를 거역하고 믿지 못하여 전전긍긍하는 장면이 연속되고 있다. 헐!
바이블과 예수교에서는 이런 현상을 가리켜을 "인간이 악하고 교만해서 그런 것이다."라고 장소와 때와 경우를 가리지 않고 말해지고 있다. 되는 말이요 현상일까? 대박!

이런 것을 <궤변> <모순> <허구> 즉, 가짜(거짓)라고 하는 것이다. 아멩!

여기에서 히브리인(예수쟁이들의 엣 조상)들이 여호와를 거역하는 장면을 바이블 속에서 한 가지만 소개하려 한다.

출애굽(애굽에서 도망쳐 나옴)에 동참한 사람은 장정만 헤아려도 60만 명이었다고 한다. 젊은 장정이면 부모가 있을 것이고, 늙은 장정이면 자식이 있을 것이다.
바이블(=히브리인)이 말하는 <장정>이란 노략질 전투에 동원될 수 있는 장성한 남자를 말한다.
따라서, 장정 한 사람의 가족이 5인이라면 히브리 인구는 적어도 300만 명은 된다고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도망쳐 나올 때, 가축들도 모조리 끌고 나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람을 비롯한 생면체가 1,000만(어쩌면 2,000만)은 되지 않았을까?
이 1,000만(또는 2,000만)의 생명체들을 염두에 두고서 다음 바이블 얘기를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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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여호와의 앞잡이)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는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磐石)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의 장로들의 목전(目前)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

(출애굽기 17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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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족속이 모세(여호와의 앞잡이)를 원망하면서
"우리를 공연히 애굽에서 끌어내어 여기서 목말라 죽일 작정이냐?" 하고 다투었다고 한다.

히브리 족속들은 종살이였을 망정, 나일강 하류의 비옥한 땅에서 물은 실컷 마시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애굽에서 탈출하여 도망쳐 나온 곳이 사막벌판이었던 것이다. 나일강물을 마음껏 마실 때와는 달리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히브리 족속들은 모세를 향하여 원망을 하게 됐던 모양이다.

"야, 모세야. 네 놈은 우리를 감언이설로 꾀어내어 이 사막벌판에서 목말라 죽일 작정이냐?"


(2) 이에 모세가 여호와의 명에 따라 지팡이로 반석(磐石=넓고 평평한 바위)을 쳤더니 거기에서 물이 나와 마셨다고 한다.

흙 바닥이나 모래가 아니라 <반석>이라는 말이 재미있다. 그지?
이왕, 여호와(예수교의 신)를 높이 높이 추켜 세우려면,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적질로 포장시켜야 멋져 보일 것이라고 생각됐던 모양이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던가? 수 천 년 전의 종교 사기꾼도 어리석은 대중을 상대로 혹세무민하는 재주가 있었던 게다. 대박!


(3) 중동 지방에는 와지(wadi=wady)라는 강들이 있다. 우기(雨期)에만 잠시 물이 흐르다가 이내 말라 버리는 강이다.
사막 벌판이어서 물은 곧 모래 속으로 스며든다. 독자들은 이 <와지>도 기억하면서 다음 이야기를 더 보기로 하자.


(4) 사막벌판에서 60만, 300만, 또는 1,000만에 달하는 생명체들이 마실 수 있는 물이 솟아나려면 어떤 상태의 물줄기여야 할까?


(5) 서울 시민이 1,000만 내외로 알고 있다. 아니, 작년(2018년)부터는 서울 인구가 1,000만 미만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서울 사람들이 수 십 층 빌딩에 살고 있어도 그 서울 경계를 벗어나려면 자동차로 이동을 해도 몇 시간이 걸릴 정도이다.
그렇다면, 천막 생활을 하는 생명체들의 1,000만(또는 2,000만) 집단의 지역 범위는 어느 만할까?


(5) 소설(삼국지 연의)이지만, 조조의 100만 대군이 진을 쳤던니 그 범위가 100여 리에 달했다고 했다.
(이것은 팔팔 날고 기는 청년들 만의 간편한 무장 집단이다.)


(6) 와디(wadi) 뿐인 사막 벌판에서 물이 어떻게 솟아올라와야 그 많은 생명체들이 마실 수 있을까?
물이 단번에 지경 100m의 물기둥이 1,000m 높이로 솟아오르면 될까? 그래도, 물은 모래벌판 저 멀리까지 흐르기 전에 다 땅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그리고, 직경 100m나 되는 물기둥이 1000m로 물이 솟아올랐다면, 물기둥 주위의 생명체들은 모두 익사(溺死)했을 것이다. 그래 안 그래?
(일본과 동남아에서 자주 발생한다는 <쑤나미=해일>은 여기의 물기둥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못 될껄? 헐!)


(7) 바이블(예수교의 경전)의 물 기적질이 사실이라면, 그 상황으로 보아 그 기적질로 인하여 발생한 부수적인 기적질이 더 요란했을 것이며, 그 기록 또한 요란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막벌판에서 배회한 세월이 40년이라니까, 이런 엄청난 기적질도 수 백 수 천 번 반복됐을 것이다.
그런데, 바이블의 기적질 이야기들은 맹물에 몽둥이 삶은 맛보다 더 심심하다. 왜일까?


얘기가 길어져서 이만 줄인다.
과학이다 논리다 뭐다를 다 집어치우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현상들이다. 조용히 생각해 보자.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은 허구(虛構=거짓)일 뿐이다. 따라서, 허구가 설명하는 여호와(또는 예수) 또한 허구(가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여호와는 사랑이 많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된다."는 말들을 꿀을 발라서 아무리 떠들어 봐도 예수교의 모든 것은 역시 허구(거짓)에서 나온 허구(가짜)일 뿐이다. 그래 안 그래?

허구(=0)를 1,000만 번 보태거나 곱해봐도 여전히 허구(0)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제삼자 (219.♡.30.247) 2019-12-28 (토) 00:06
[궤변(詭辯)]

궤변; 형식적으로 타당해 보이는 논증을 이용해서 거짓 주장을 참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논법.


(1) "죄는 미워하되 사람(죄인)은 미워하지 말라." 는 말이 있다.
그럴싸하게 들리는 말이다. 아니, 제법 멋지게 들리는 명언이다.

그런데 말이다. 
사람의 언행에 의하지 않고도 죄라는 것이 성립(또는 존재)할 수 있던가?
다시 말해서, 
죄라는 것을 사람(죄인)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일까? 죄가 사람(죄인)이요, 사람(죄인)이 죄가 아니던가?

그런데, 
어떻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가 성립할 수 있을까?
이런 것을 궤변(詭辯)이라고 한다. 그래 안 그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궤변 중의 궤변일 뿐이다.
"사람 자체는 존엄한 존재이니까 무슨 방법으로든 그 가치를 인정해 주자."는 억지 주장이 만들어 낸 난센스라고나 할까?


(2) 예수교 집단에서 횡행하는 유명한 명언이 있다. 
"사람을 보지 말고 여호와(또는 예수)만 바라보라."

그런데 말이다. 예수교 속에 사람(?) 아닌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으니 이를 어쩌지? 
예수교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은 인간의 생각과 손이 써놓은 글이 틀림없다.

교회당(또는 신전)이란 것도 인간의 손이 만들어 놓은 건물이다. 그 교회당과 신전에 드나드는 목사, 신부, 신도들도 모두 인간들이다.
결국, 
예수교의 모든 것이 하나도 빠짐없이 인간만의 모습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을 보지 말고 여호와(또는 예수)만 바라보라."가 가능한 소리일까? 이것도 궤변(詭辯)임을 알 수 있다.
예수쟁이 중에 사람다운 노릇을 하는 종자가 다만 1명이라도 보이지를 않으니까 쪽팔리게 된 형편이 부끄러웠겠지!
이 부끄러운 장면을 조금이라고 모면해 보려는 궁색한 변명이 "사람(예수쟁이)을 보지 말고 여호와(또는 예수)만 바라보자."였던 거지.

그러나, 여호와(또는 예수)는 종교 사기꾼이 꾸며낸 더 더욱 고약한 존재라는 건 어쩔 텐가?


(3) "예수쟁이(사람?)는 비판하되, 예수교 자체는 비판하지 말라." 또는
"예수쟁이(사람?)는 비판하되, 여호와(또는 예수)는 비판하지 말라."는 말도 들린다.

심지어, 다음과 같은 말도 들린다.
"예수교는 미워하되, 예수쟁이(사람?)는 미워하지 말라." 그러면, 사람 없는 예수교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예수교=예수쟁이(?)가 분명하거늘, 
"예수교는 미워하되, 예수쟁이(사람?)는 미워하지 말라."가 성립되는 말일까? 이것도 궤변(詭辯)임이 틀림없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위의 궤변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야말로 실제로는 이 세상을 한 층 힘들게 배배꼬아 놓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배운 척,
아는 척,
지식인인 척,
지성인인 척,
뭔가 세상에 보탬이 되는 척,
너그러운 척,
도량이 넓은 척,
인격자인 척, .............

그러나, 
그것은 세상을 점점 복잡하고 힘들게 만드는 쓰레기 말장난일 뿐이다.


영국에서 한 때, 국왕제도를 폐지하자는 여론이 분분했었다고 한다.
이 때, 처칠 수상이 의회에서 국왕제도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국회의원 여러분,
여러분 중에는 국왕제도를 찬성하지 않는다고 생각되지 않는 분이 있다고 판단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찬성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되지 않는 바는 아니라고 생각되지 않는 바가 아닙니다만, 어쨌든 좋지 않은 안건이 아니라고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도 사실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됐습니다.
따라서, 찬성하지 않는 분은 손을 들어주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자, 그러면 이 안건에 대한 가부를 거수로 결정하겠습니다.
찬성하지 않는다고 여기지 않는 의원들께서는 손을 들어주시기 바라마지 않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유식한 척, 착한 척, ......
아무 데나 끼여들어 될 소리 안 될 소리를 늘어놓는 모습, 예수교(쟁이)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궤변이다.
이런 궤변이 가장 많이 횡행하는 곳이 바로 예수교이기 때문이다.

위의 처칠 이야기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고 일축하며 웃어넘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면,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과 예수교 속에서 굴러다니는 말들은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말로 인정이 되던가?
 
인간은 신을 감지할 능력이 전혀 없는 무능한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신(神)에 관해서 전혀 알 턱이 없는 인간이 신을 설명하기도 하고 그 설명을 알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뇌화부동되어 세상이 좁다고 휘졌고 다니는 저 무리들은 도대체 무엇일까?
 
어떤가? 처칠의 말이 터득하기 쉬운가, 아니면 예수쟁이들의 그 궤변들이 터득할만 한가?
어찌 세상을 살아가기가 힘들지 않겠는가? 오호 통탄할 일이로다.
예수쟁이들과 섞여서 세상을 살아가는 일보다 더 힘들고 답답하고 공허한 일이 또 있을까?






[여호와(또는 예수)의 만행(蠻行)질]
 
 
 
만약, 바이블(또는 예수교)에서 주장하듯 천지 만물이 여호와(예수교의 신)에 의하여 창조된 것이라면, 여호와는 영원히 돌이킬 수도 용서될 수도 없는 만행자(蠻行者)이다.

 
 
(I) 우주는 형이상이건 형이하이건 또,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있는 그대로 놔둬야 가장 완전한 모습이다. 그런데, 여기에다 뭔가를 조작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벌써 용서될 수 없는 만행질이다.
한술 더 떠서, 여호와는 천지를 창조했다고 우쭐댄다. 이보다 더 큰 만행질이 있을까? 여호와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만행질을 저질러 놓았다.

 
(I)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 스스로는 전지전능하다면서 피조물인 인간을 무지무능한 존재로 만들어 놓은 것은 지독한 만행질이 아닐 수 없다.
여호와(또는 예수) 녀석 스스로가 정정당당하고 공명정대한 신(神)이라면, 인간을 자기와 똑 같은 능력자로 만들어 놓았어야 옳다.
따라서, 무엇인가 자신의 결점을 숨기고, 인간 위에 군림하려는 저질적 성품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잔인하고 모순이 가득한 세상을 만들 이유가 없었을 게다.
 
무엇보다도 무서운 일은 <인간을 포함하여 생명체를 창조할 때, 당사자인 피조물의 의견을 물어 보지도 않고 제 기분내키는대로 여호와(또는 예수) 혼자서 다 해버렸다.>는 사실이다.
제삼자(필자)의 경우, 여호와(또는 예수)로부터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으냐?" 고 미리 의견을 물어왔다면, "No, 전지전능한 여호와(또는 예수)를 주물러 터뜨릴만한 능력을 준다고 해도 나는 사양하겠다."고 단호히 잘라서 말했을 것이다.
 
피조물 당사자의 의견을 물어 보지도 않고 그들을 자기 임의대로 창조해낸 여호와는 영원히 그 죄를 용서 받을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만행자이다.

 
(I) 여호와는 인간(모든 생명체 포함해서)에게 생(生)에 대한 애착심을 무한대로 집어 넣어 놓았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이 천당과 영생 복락을 지독하게 욕심내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들도 천적으로부터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해서 도망을치다가 처참하게 잡혀 먹힌다. 사람을 비롯해서 모든 생명체들이 그 생을 유지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빈약한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또, 인간을 100살도 살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보다 고약한 짓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전지전능한 녀석이 저질러 놓은 짓이라고 할 때, 이를 어찌 여호와(또는 예수)의 만행질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I) 여호와는 인간(모든 생명체 포함해서)에게 지극히 열악한 환경을 만들어 주어 놓고는, 쓸데없는 빈 공간은 너무도 크고 많게 만들어 방치시키고 있다.
별과 별 사이의 쓸데없는 공간을 너무 멀게 그리고, 조그만 지구 덩이에는 사막과 툰드라 같은 불모지를 너무도 많이 만들어 놓았다.
전지전능하다는 녀석의 심술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여호와(또는 예수)는 변명의 여지없는 만행자이다.

 
(I) 예수교의 기준이 되는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은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교의 종파가 자그마치 35,0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실제로는 모든 예수쟁이들이 자신만의 해석으로 누구와도 다른 개개인의 신앙심으로 무장되어 있다. 따라서, 예수교 종파는 수 억 개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여호와(또는 예수)는 엄포를 쏘고 있다.
"이단과 사이비가 여기 저기에서 가지 각색으로 사기치고 현혹시킬 것이다. 이것을 조심하라. 그렇지 못하면 유황불 지옥으로 보내겠다." 고. 이 얼마나 못돼 먹은 잡놈 짓인가?
여호와(또는 예수)는 아주 심술 고약한 만행자이다.

 
(I) 여호와(또는 예수)가 전지전능한 녀석이라면, 세상을 다스림에 있어서 부드럽고 평화스런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라는 녀석은 그 많고 많은 방법 중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방법을 채택해 오고 있다.
더 긴 설명 필요 없이, 여호와(또는 예수)보다 더 악독한 살인 만행자가 또 있을까? 예수교의 신이라는 여호와(또는 예수)는 지극히 악질적인 만행자이다.

 
(I)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무엇이든 직접 자기 손으로 하는 일이 없다. 언제나, 선지자, 목사(또는 신부), 전도자, 예수쟁이 등등의 중간 과정을 동원하여 일을 처리한다. 여호와(또는 예수) 녀석은 입과 손발이 없는가? 전지전능하다는 신이 돼가지고 철저한 직무 유기이다.
 
예수교의 역사와 현실의 모습이 저토록 썩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신이란 녀석이 직접하지를 않고 중간 과정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가 발생하면, 그 고통과 벌은 인간만이 감당하게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해명도 없이 꼭꼭 숨어 있는 여호와(또는 예수) 녀석, 그는 아주 못돼 먹은 만행자이다.

 
(I) 지난 수 천 년 동안 예수교는 무수히 많은 악행을 더질러왔다. 그런데, 그것에 대하여 지난 서기 2000년에 교황의 입을 빌어 사과라는 것을 했다.
인간(자연인)의 감각으로도 예수교의 발자취가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지전능한 신(神)을 모시고 있다는 종교에서 맨 입으로, 건성으로, 형식적으로 사과만 해가지고 되겠는가? 그 전지전능을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썩 먹으려고 맨 입으로 떠들기만 하는가?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악(惡) 중의 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맨 입으로 사과랍시고 중언부언할 것이 아니라, 여호와(또는 예수)는 모든 것을 실제로 보상하면서 사과했어야 된다. 그러나, 여호와(또는 예수) 녀석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여호와(또는 예수)는 용서될 수 없는 만행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I) 바이블(여홍놔 또는 예수의 가르침)은 사람들로 하여금 읽어 보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냥 읽어 보기만 하라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 속에 무엇이 씌어 있는지 그것을 터득하라고 있는 책일 것이다.
그래서. 제삼자(필자)는 그것을 읽고 나름대로(터득된대로) 몇 가지 쯤 해설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예수쟁이들은 제삼자(필자)를 꽤나 미워한다.
별별 악담과 저주를 욕에다 섞어서 악을 쓰고 있다. 제삼자(필자)가 왜 그런 일을 당하며 살아야 되는가?
 
읽어 봐라 해서 읽었고, 음미해 봐라 해서 음미한 것 뿐인데, 왜 욕을 먹어야 되는가? 그런데도, 정작 여호와(또는 예수)라는 녀석은 입을 봉하고 아무 말이 없다.
제 놈 때문에 벌어지는 불상사인데도 당사자는 모른는 척 꼭꼭 숨어 있다. 어느 누구와 술래잡기 장난이라도 하고 있는가? 이래 저래,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무책임한 만행자일 뿐이다.

 
(I) "힘 없는 정의는 죄악이라."고 했다. 하물며, 여호와(또는 예수)의 힘 없는 허구적 궤변을 말해서 무얼하리!
오직 혹세무민과 착취를 목적으로 꾸면낸 말장난 뿐인 여호와(또는 예수)의 공수표 남발은 무엇으로도 비길 수 없는 만행질이다.
"이웃집 처녀 믿다가 장가 못간다"는 속담이 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또는 예수)의 궤변과 허구를 믿고 따르다가 귀한 인생을 헛개비 노릇을 하다가 마감하게 만들고 있다. 이 일을 어찌해야 좋단 말가!
 
여호와 및 예수교는 돌이킬 수 없는 만행질을 저질러 오고 있다. 이 무서운 결과에 대한 벌을 무엇으로 감당하게 될까?
여호와, 예수 그리고 예수쟁이들은 영원히 용서될 수 없는 만행자들이다. 두 번 다시 기회가 오지 않는 남의 인생을 망쳐 놓고 있으니 말이다.
 
 
(1)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들은 먹이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생명체들은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서로 잡아 먹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때, 모든 생명체들은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 하여 도망 다닌다. 이보다 끔찍한 모습이 또 있을 수 있겠는가?
인간 끼리도 서로 상대를 짓누르거나 파멸시키지 않고는 자신의 생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전지전능하다는 신이 있다면 세상 다스리는 방법이 이런 것밖에는 없을까?
 
이유 불문 여호와(또는 예수)는 지극히 악질적인 만행자일 뿐이다.
이상,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라는 녀석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린다는 전제 하에 되어지는 말들이었다.
그러나, 예수교(바이블)의 모든 것은 허구(거짓), 모순 그리고 궤변일 뿐이다. 





[여자는 입을 다물라]


여자는 입을 다물고 조용해야 된다고 한다.
언감생심, 남편이나 남자를 가르치거나 지배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대박!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그러자!
 
 
[여자는 조용히, 언제나 순종하는 가운데 배워야 합니다.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나(바울=예수의 가장 뛰어난 앞잡이)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조용해야 합니다.

사실, 아담(남자)이 먼저 지으심을 받고, 그 다음에 하와(여자)가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아담이 속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임을 당하고 죄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가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지니고, 정숙하게 살면, 아이를 낳는 일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11~15)
 
 
인간이 창조될 때, 남자(아담)가 먼저 창조되고 그 다음에 여자(하와)가 창조되었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게 당연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또, 사람이 에덴동산에 살고 있을 때, 뱀의 꾐에 빠져 죄를 짓게 될 때에도 남자(아담)보다도 여자(하와)가 먼저 죄(속임)에 빠졌기 때문에도 여자는 남자보다 높아질 수도 없고, 심지어는 대등해서도 안 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대박!  
 


참고; 신약(바이블)의 <디모데전서>를 예수쟁이들은 바울(예수의 최고 최대 앞잡이)의 서신이라고 알고 또 믿는다.
그러나,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디모데전서>는 바울의 글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노리는 종교 사기꾼이 나중에 삽입시킨 글이라고 밝혀져 있다.
다시 말해서, <디모데전서>는 바이블로서는 위서(僞書)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바이블 중에 위서 아닌 것이 있을 수는 없다.
 
 
원래, 바이블 중에 원본이란 것은 존재할 수가 없으며, 처음부터 사본만 존재했던 것이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바이블 사본은 구약이 10,000여 가지, 신약이 5,700여 가지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본들 중에서 진짜와 가짜가 어느 것인지 가려내기 위하여 예수쟁이 지도자들이 오랜 시간 동안 대가리 박터지게 싸우면서 구별하여 마침내 오늘 날의 66권으로 정리를 해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이 무슨 재주로 가짜 신의 가르침과 진짜 신의 가르침을 구별해 낼 수가 있다는 말인가?
예수쟁이 지도자들은 정말로 그 많은 사본들 중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 낼 수가 있었다는 말인가?

 
어쨌든, 위의 <디모데전서> 이야기 즉, 남존여비 사상은 사본 중에서도 위서(그러니까 가짜 사본)라고 알랴져 있다.
어느 예수쟁이 지도자(사기꾼) 중에 남존여비 사상이 형성되어야 착취해 먹기가 편리하다고 여겨져서 꾸며 놓은 구절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예수교의 바이블에는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변개(變改)시킨 내용이 바이블의 단어보다도 더 많은 것으로 확인되어지고 있다.
15,700여 가지나 되는 사본(바이블)에서 그 변개(變改)된 내용을 모두 합치면, 현재의 바이블에 들어 있는 낱말의 수보다 더 많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교의 경전이라는 바이블은 송두리 째 허구, 궤변 그리고 모순에다 악담과 저주와 악행과 음행으로 뭉쳐진 악서(惡書)라는 말이다.


우리 나라 속담에 "시건든 떫지나 말고, 얽었거든 검지나 말지"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못났으면 착실하기나 하거나, 재주가 없으면 소박하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마치, 예수교(바이블을 포함해서)를 빗대서 만들어 놓은 말이 아닌가 싶다.

바이블이 소설처럼 허구(거짓말)이면, 우리 인간에게 어떤 감동(또는 의미)이라도 안겨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바이블(예수교 역사 포함해서)은 허구(가짜)이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악담과 저주로 일관하면서 악행과 음행을 일삼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예수교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은 인류가 만들어 놓은 가장 커다란 악서(惡書)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예수교의 순교자는 무엇을 의미할까?]

예수교는 자기네 역사 속에 순교자가 많음을 여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게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 역사 속에도 특히, 조선 말기에 꽤나 많은 예수쟁이들이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그래서, 이들 죽임을 당한 예수쟁이들 중에는 예수교에 의하여 <성인>으로 추앙되는 사람도 생겨난 것 같다. 헐!

우리 한국은 선교사가 파견되어 오기도 전에 이미 예수쟁이를 몇 만 명 씩이나 확보할 수 있었던 나라이다. 헐!
아마도, 선교사가 파견되어 오기도 전에 이미 수 만 명의 예수쟁이를 확보할 수 있었던 나라는 우리 한국이 지구 상에서 유일한 나라가 아니었을까?

놀랍게도, 우리 한국 사람은 선천적으로 책(학문?)을 읽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학구열이 대단한 나라가 한국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책과 각종 언론(기록물) 속에는 가짜 뉴스(승자의 입맛에 맞게 씌어진)가 횡행하게 마련이다.
마침내, 우리 한국은 선교사가 파견되어 오기도 전에 예수교 서적에 의하여 수 만 명의 예수쟁이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예수교의 바이블과 설교보다 더 교묘하고 달콤한 가짜 내용이 포함된 말장난은 인류 역사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래 안 그래?
어쨌든, 우리 한국은 선교사가 파견되어 오기도 전에 이미 예수쟁이 수 만 명을 확보할 수 있을 정도로 전도활동이 활발했던 나라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우리 한국 민족은 가짜 뉴스(바이블과 예수교의 각종 서적)에 의하여 선교사가 파견되기도 전에 예수교의 전도활동이 활발했던 것이다. 대박! 그리고 헐!

** 우리 한국이 자랑하는 유명한 대학자(실학자) 정약용! 이 정약용이 예수쟁이로 빠져들었던 것도 그의 독서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독서가 좋은 것이라고 추켜세우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그 읽는 책 내용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구분할 능력이 없다면...)

** 참고; 오늘 날, 우리 한국은 물론 전 세계는 거짓 뉴스를 습득하고서 그것을 마치 사실 또는 진실인 양 무장하고서 자기 주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섬 없이 세상을 어렵게 몰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예수쟁이들이 바이블과 목사의 가르침으로 무장하고서 고집(예수쟁이들은 이것을 신앙심이라 함)을 부리는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무서운 현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전도활동! 예수교에서 이 전도활동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리라. 전도할동은 예수교의 지상 명령(반드시 따라야하는 명령)이기 때문이다.
마가(바이블) 16:14~20에서 예수는 말하고 있다. "너희(예수쟁이들)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이 복음(福音)이 바로 인류 역사를 피로 물들이게 만든 가짜 뉴스일 줄을 뉘 알았으리요!
(각설하고)
 
예수교적 순교에는 세 가지가 있다.

(1) 전도하다가 적(敵)을 만나 당하는 죽음.
(2) 신앙심은 강철 같이 굳쎈데, 바이블을 잘못 해석하여 비뚤어진 신앙을 가졌다고 당하는 죽음.
(3) 다른 나라를 상대로 노략질(도둑질, 약탈질 등등)을 하다가 당하는 죽음.

이상, 3가지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과 예수교 역사가 만들어 낸 순교이다.


(1) 전도를 하자면 자연히 적을 만나게 되어 있다. 적에는 타종교, 그 나라의 전통, 풍속, 사상, 정서 등등 얼마든지 많다.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자기네 종교와 전통 등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서 가만히 있을 국가나 사람이란 없다. 
많은 사람이 죽여졌다.
이럴 때, 예수교는 자기네 쪽 순교자만 계산하여 예수교가 진리라고 떠든다. 그러나 상대 쪽에도 순교자는 많다. 오히려 예수교보다 상대 쪽이 훨씬 많다.

순교자가 많은 것으로 그 종교의 진리를 나타내려고 한다면, 예수교보다는 여타 다른 종교가 진리에 더 가깝다.
예수교에 의하여 씨를 말린 종교도 많은데, 이 씨가 마를 때까지 철저하게 순교를 당해준 종교는 엄청난 진리를 가졌던 종교였으리라.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린다면, 예수교는 순교자의 많음을 자랑하지 말라. <얼>이 빠져 죽을 짓을 했을 뿐이다. 그래 안 그래?


(2) 예수교는 자기네와 전통이 다른 사회에 전도하려다가 순교 당한 것보다는, 예수쟁이들끼리 <이단>으로 몰아 죽이는 짓을 더 많이 했다.
예수쟁이들끼리 만들어내는 순교자들이다. 순교자가 많아야 그 속에 진리가 많은 것이라면, 부지런히 죽일 일이다.
여기서 "아멘, 할렐루야"를 소리쳐야 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이단>이란 바이블을 잘못 해석하거나 너무 잘 믿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 때문에 종파가 수없이 늘어난다.
<이단> 중에서도 가장 강력했던 것은 <영지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지주의>를 몰아내고, 문자주의(근본주의)가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진시황제처럼 무자비한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실시해야 됐다.
 
그러나, <영지주의>를 몰아냈지만 예수교는 현재 30,000가지 이상의 종파로 쪼개져 있다. 그리고, 쪼개진 종파들은 서로 간에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게 일이다.
이 개 싸움(전쟁)은 10년 20년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아니, 100년 200년으로도 끝나지 않는다. 그냥 개 싸움이 아니라 이전투구(진흙탕에서 싸우는 개 싸움)이다.

이래서, 서구(西歐)에서 <종교의 자유>라는 법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 법의 취지가 불교를 믿어도 좋고 회교를 믿어도 좋다 또는 종교를 가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오로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 의하여 태어난 종파끼리 허구헌날 죽기 살기로 쌈박질하는 짓이 지겨워서 울며 겨자씨 먹기 식으로 만든 법이 소위 <종교의 자유>라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라는 말이 나오면, 예수쟁이들은 쥐구멍을 찾아 들어야 하거늘, 그 게 무슨 벼슬이나 되는 듯 떠들고 다닌다.
몰라서 그러는 겐지 얼굴 가죽이 두꺼워서 그런 겐지.
그런데, 여호와는 무슨 심사(心思=남을 괴롭히려는 고약하고 심술궂은 마음))로 그 어려운(?) 글(바이블)을 인간에게 주었을까?
서로 제가 옳다고 우기다가 싸우고 죽이는 그 더럽고 잔인한 모습이 그렇게도 영광이 되던가?


(3) 예수교의 순교 중에는 노략질(강탈질, 약탈질)하다가 뒈진 순교도 빼놓을 수가 없는 업적이다.
하기사,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은 온통 노략질 전쟁 교과서이다.

배운대로 써먹은 예가 바로 근세의 <제국 주의>이다.
공산 주의는 예수교를 역동적으로 써먹은 예이다.

바이블에 <적(敵) 그리스도>라는 말이 있다. 즉, 예수를 믿지 않고 적대시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볼 때, 못된 짓은 예수쟁이들이 도맡아 해내고 있는 사실이다.
이를 발견한 <여호와의 증인(예수교의 한 종파)> 쪽에서는 <거짓 그리스도의 친구>라는 새 용어를 만들었다.
다시 말해서, 못된 짓만 골라서 쏟아내는 예수교는 예수의 가짜 친구라고 지목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호와의 증인> 쪽에서 바이블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의 비참한 역사, 예수교의 잔인하고도 파렴치한 역사, 현재의 사납고도 뻔뻔한 기독교인들의 모습 등등은 지극히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를 쏙 빼닮은 모습 그대로가 아닌가? 

예수교의 사납고, 잔인하고, 더럽고, 뻔뻔하고, 사기성으로 똘똘 뭉쳐진 모습은 여호와(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실천하고 있는 모습일 뿐이다. 그래 안 그래?


참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속의 주인공들은 120~180세, 또는 900세까지 잘도 살아냈다.
모세와 엘리야 같은 자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을 향해서 악담과 저주를 퍼붓고도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그 후의 예수쟁이들은 순교자를 만드는가? 여호와(또는 예수)는 제 자식들을 보호하지 않고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엄마, 밥이 뭐야?”-"글쎄, 밥이 뭘까?"]

 

 

 

5살 먹은 아들 녀석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밥이 뭐야? 하고. 그래서, 엄마가 설명해 주었다.

 

엄마 왈, “사람이 죽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려면 필요한 영양소들을 공급해 주어야 되는데, 한국 사람들은 주로 주식과 부식으로 그 영양소를 해결하고 있단다.

이 때, 그 주식과 부식 중 전자인 주식을 다른 어휘로 <밥>이라고 칭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아들아, 이제 밥이 무엇인지 알았지?

 

어떤가? 5살 먹도록 <밥>이 무엇인지 모르는 바보 아들에게 위와 같이 설명해 주면 되겠는가?

 

5살 먹도록 밥이 무엇인지 모르는 바보에게 밥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방법은 2가지 뿐이다.

하나는, 식사 시간에, 그릇에 담겨 있는 실물(밥)을 가리키며 이것이 밥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실물(밥)이 없을 때, 이론으로만 설명해야 될 경우, 밥은 밥이란다.


밥의 뜻을 설명해 줄 때, 밥은 밥이다. 이것 이상으로 훌륭한 답변은 있을 수가 없다. 밥보다 더 쉬운 낱말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밥은 밥이다.는 밥을 해설하는 가장 훌륭한 답변이다. 그래 안 그래?


** 젖 먹이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먼저 떠들 수 있는 말(단어)은 "엄마" "맘마" "빠빠" "아빠" "맘" "마미" "대디" 즉 <밥>을 의미하는 음향(?)이 아닐까?

 

각설하고………

 

 

 

제삼자(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 근처의 전철역 광장에는 몇 년을 두고 거의 매일 2종류의 사람이 광고지를 나누어 주며 선전(광고)을 하고 있다.

한 종류는, "신문 좀 구독해 달라."고 선전하는 보급소 사람이고, 다른 한 종류는 "예수 좀 믿어 달라."고 떼쓰는 예수쟁이다.

 

조금 전, 전철역 광장을 지나 귀가하는 길에도 어김 없이 예수님을 믿어 보세요. 하며 접근하는 예수쟁이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금만 생각을 정리해 보기로 하자.

 

예수님을 믿어 보세요.”하고 권유를 받았을 때,

다시 말해서, 인간의 결심(작정) 여하에 따라서 신(神)을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일까?

신(神)을 믿어 보려고 마음을 정하면 예수(또는 여호와)가 믿어지기도 하고, 믿으려고 하지 않으면 믿어지지 않는 존재가 예수교의 신(예수 또는 여호와)인가?

 

OO신문 좀 구독해 보시죠? 하고 권유를 받았을 때는 사람이 그 가부를 결정할 수 있다. 시문을 구독하기로 결정할 수도 있고, 구독하지 않기로 작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神)이란 것은 인간이 믿으려고 작정한다고 해서 믿어지기도 하고, 믿지 않으려고 배척한다고 해서 믿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 그래 안 그래?

신(神)의 세계는 인간이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즉,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경지일 뿐이다.

 

예수쟁이들의 이런 바보스런 모습을 여기까지 설명해 주어도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5살 먹도록 밥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에게 밥을 설명해 주는 일보다 훨씬 더 불가능한 일이다. 헐! 아니 대박!

제삼자 (219.♡.30.247) 2020-01-05 (일) 00:36
[금수저 가정의 자식교육]


요즈음, 우리 한국에서는 금수저 가정들의 자식에 대한 특수 교육 문제를 서로 물고 뜯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다.
이전투구(泥田鬪拘=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를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헐!

그런데, 이 세상에서 금수저를 논함에 있어서 예수쟁이들보다 더 상위층의 금수저는 없다고 사료된다.
왜냐 하면, 전지전능한 신이요 무진장의 사랑을 가진 신(여호와 또는 예수)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보다 더 보장된 삶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안 그래?
그래서, 여기에서 잠시 예수쟁이(또는 여호와쟁이) 가정의 자식 교육 장면을 한 가지 소개해 보려고 한다.

바이블(예수교의 경전 즉, 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 금수저 중에서도 최상류 층에 속하는 <기드온>이란 사람이 나온다.
<기드온>은 왕(王)이라는 칭호가 생겨나기 전 시대의 사사(추장) 노릇을 하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기드온>은 예수교의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로부터 대단히 크게 쓰인 명장이다. 다시 말해서, <기드온>은 금수저 중에서도 금수저에 속하는 최상류 층 사람이었다.

<기드온>은 
여호와의 진두지휘를 받으며 전쟁을 수행하여 마침내 적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개선하는 길에 오르게 됐다고 한다. 한 층 높은 금수저의 반렬에 오르게 됐다는 말이다. 아멩!
<기드온>은 <세바왕>과 <살문나왕>, 이렇게 2명의 미디안(적국) 왕을 생포하여 끌고 보무도 당당하게 개선했다고 한다.

<기드온>에게 나이 어린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기드온>은 그 어린 아들을 씩씩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하여  생포되어 끌려 온 적의 왕 <세바>와 <살문나>를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명령을 했다고 한다.

"아들아!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칼로 저 두 놈의 목아지를 싹뚝 잘라 죽여 보거라."
그러나, 그 어린 아들은 두려워서 칼을 뽑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자, <기드온>은 어린 
아들이 보는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을 죽이고, 적의 왕이 타던 약대의 목에 꾸몄던 장식을 떼어내 취했더란다. 대박!
어린 아들이 보는 앞에서 멋진(?) 살인과 노략질 교육을 시범으로 보여준 셈이다. 금수저 부모의 멋드러진 교육 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아멩!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기드온은) 
그 장자 <여델>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 하였으나,
그 소년(少年)이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이는 아직 어려서 두려워함이었더라.
...<기드온>이 일어나서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그 약대 목에 꾸몄던 초승달 형상의 장식을 취하니라.]

(사사기 8;20~21)


이 얼마나 무서운 현상인가?
그러나, 예수교에 한 번 세뇌되고 나면 이런 것들이 제대로 뵈지 않게 된다.
그저 여호와(또는 예수)의 능력이 위대하게 보일 뿐이다.

"도둑놈도 제 자식에게는 '도둑질하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개선 장군(금수저)이기로서니, 제 어린 자식에게 사람을 죽여 보라고 시켜 본대서야, 그게 사람인가?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어린 아들이 보는 앞에서 상대의 재물을 강탈까지 하는 시범을 보여 주다니!
상대는 이미 체포되어 저항할 힘이 없는 불쌍한 상태의 사람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렇게 소름 끼치도록 무시무시한 가르침(시범)이 비일비재한 예수교, 여기에 세뇌되면 인간이 이상해진다.
도무지 어떤 말로도 통하지 않는 정신병자가 되고 만다.

** 예수쟁이들은 수 십 년 아니, 평생 동안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읽어도 저 위에 있는 내용은 구경도 못했을 것이다. 
    아니, 읽었더라도 저 게 무슨 소린지 전혀 감이 잡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예수쟁이들의 한계이다. 그래 안 그래?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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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 똥인지 된장인지 분간 못 하는 댄민국 개독. (2) 기독바다 흙탕물 20/04/06 104 3 0
19799 [예수쟁이들은 정말로 원수도 사랑할까?] (2) 제삼자 20/04/05 109 2 0
19798 한국 기독교의 현주소. (2) ImperialGuardian 20/03/30 137 1 0
19797 간만에 야소멸절 인사드립니다 (1) 야소멸절 20/03/29 96 2 0
19796 기도의 효과~~~~~~~^^ (1) 행복한사회 20/03/23 192 2 0
19795 [예수교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을 다스리는 법] (3) 제삼자 20/03/19 366 3 0
19794 믿음에도 정족수가 있던가? 갈롱 20/03/14 198 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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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2 상식이 안 먹혀 들어가는 개독 집단. 기독바다 흙탕물 20/03/09 283 3 0
19791 기독교는 기생충 바이러스다.~~~~~~~~^^ 행복한사회 20/03/08 240 4 0
19790 기독교는 사기다. 모두 폐기해야 한다~~~~~~~~^^^ (1) 행복한사회 20/03/04 215 3 0
19789 [요한계시록과 신천지 예수교] (4) 제삼자 20/02/29 736 3 0
19788 광화문의 촛불이여 다시한번!!! 겨울나무 20/02/26 230 3 0
19787 개독 들의 개 싸움 (1) 님의침묵 20/02/24 357 2 0
19786 설마 했는데..... 역시! (5) 겨울나무 20/02/22 403 4 0
19785 드디어 해법을 찾다 (3) 겨울나무 20/02/22 287 0 2
19784 기독교는 사기고, 목사는 사기꾼이다.~~~~~~~~^^^ 행복한사회 20/02/21 230 2 1
19783 코로나 바이러스와 기독교 바이러스 (2) 겨울나무 20/02/20 333 3 0
19782 예수의 존재 가치~~~~~~~~~~~~^^^ (1) 행복한사회 20/02/19 244 1 0
19781 예수는 죽었다.~~~~~~~~~~~~^^^ 행복한사회 20/02/19 234 1 0
19780 [예수의 명쾌한 썰] (3) 제삼자 20/01/22 762 5 0
19779 개독인 얼굴을 보면 왜 저리 뻔뻔 스러울꼬 불쌍한 생각.. 기독바다흙탕물 20/01/20 461 5 0
19778 화이트비즈를 통해 홈페이지 운영을 방해하는 자에게 경고합니… 반기련 20/01/19 5247 5 0
19777 가만보면 개독짓이 전부 치매 짓이더라고 (1) 기독바다흙탕물 20/01/12 912 3 0
19776 중심을 내 팽게쳐 버린 한국. 워쩌면 좋타냐 (2) 기독바다흙탕물 19/12/29 544 5 0
19775 회개하면 새예루살렘성에 들어갑니다. (3) aaa 19/12/22 795 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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