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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으로부터 기도 응답 들어 본 사람 있어?]
글쓴이 : 제삼자  (219.♡.30.247) 날짜 : 2020-04-29 (수) 21:33 조회 : 1414 추천 : 4 비추천 : 0
[신(神)으로부터 기도 응답 들어 본 사람 있어?]


예수교의 신(神) 여호와의 최고 최대의 선지자(신의 앞잡이)를 꼽으라면 <모세>와 <엘리야>를 당할 자는 없을 것이다. <엘리야>가 여호와의 앞잡이로 막 활동을 하기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그 당시, 이스라엘 왕국에서는 제7대 왕 아합의 왕후 <이세벨>에 의하여 여호와는 박해를 받아 찌그러지고, 그 대신 <바알>신(神)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여호와>와 <바알> 중에 누가 진짜 신(神)이고 누가 가짜 신(神)인지 가려내는 시합을 하자."고 제안을 한다.
마침내, 여호와의 앞잡이 <엘리야>와 바알의 선지자들 사이에서 진짜와 가짜를 가리기 위한 시합이 벌어진다.

시합 방법은 "송아지 고기를 제단 위에 올려 놓고, (성냥 없이) 각자 자기의 신에게 기도를 하여 불사르는 쪽이 진짜 신으로 판명하자."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바알> 선지자들 쪽에서 먼저 송아지를 불사르기 위해서 제단을 쌓고 자기들의 신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 쯤에서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 1) [저희(바알의 선지자들)가 그 받은 송아지를 취하여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가로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저희가 그 쌓은 단(壇) 주위에서 뛰놀더라.

오정(午正=낮 12시)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조롱하여 가로되,
"큰 소리로 부르라. 저(바알)는 신(神)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 잠간 나갔는지 혹, 길을 행(行)하는지 혹,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이에, 저희(바알 선지자들)가 큰 소리로 부르고, 그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더라.
이와 같이 하여 오정이 지났으나 저희가 오히려 진언을 하여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를찌라도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더라.

(열왕기상 18;26~29)

 
100여 년 전 시대에 번역된 바이블 내용이라서 납득하기가 조금 쯤 힘들다. 그래서, 요즈음 어휘에 맞도록 해설을 해야 좋을 것이다. 그러나, 글이 너무 길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간단히 설명하기로 하자. 

<바알>의 선지자들이 단(壇) 위에다 송아지 고기를 올려 놓고 아침부터 저녁 때까지 별 짓을 다 하며 자기네 신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었다고 한다. 얼마나 답답하고 앞이 캄캄했을까?
결국, <바알>은 가짜 신(神)으로 판명이 났다는 말이다. 그러면, 예수쟁이들은 기도를 한 후에 무슨 응답을 들어 본 자가 있을까?

여기서는 생략하겠지만, <바알> 선지자들의 기도가 실패로 끝난 다음, 여호와의 앞잡이<엘리야>의 기도가 시작됐다고 한다.
<엘리야>가 기도를 하자 여호와의 응답으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단 위의 송아지는 물론 주위의 흙까지 새까맣게 태웠다고 한다. 세상에나!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만이 참신으로 판명이 나는 멋진(?) 순간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예수교의 참신이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응답하는 신(神)이시란다. 대박!


그런데, 말이다. 위의 기적질 시합은 없었던 허구(虛構=거짓말, 가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왜냐 하면, (성냥 없이) 기도 만을 해서 제물(송아지 고기)을 불사를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런 시합에 응할 그런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여호와의 앞잡이<엘리야>와 <바알>의 선지자들 사이에서 벌였다는 기도질 시합이 벌어졌고, 이 시합에서 여호와가 진짜 신으로 판명되고, 바알신은 가짜로 판명났다는 바이블 얘기는 없었던 허구이다.

**(이상의<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 사이에서 벌어졌다는 기도질 시합 얘기가 무슨 말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예수쟁이가 있다면, 그는 죽어서도 예수쟁이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는 멍텅구리일 뿐이다.)


어쨌든, 막무가내식(莫無可奈式=달리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융통성이 없는 습성)의 예수쟁이들 사회에서는 자기들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에게 빌어대는 <기도 생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예배라는 것을 볼 때에도, 무슨 일을 시작할 때에도, 또 일을 끝낼 때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도 우선 여호와(또는 예수)에게 기도질부터 하고서 그 다음에 부차적으로 무엇을 하더라도 한다.
이럴 때, 예수쟁이들 중에 여호와(또는 예수)로부터 가타부타 간에 어떤 응답을 들어 본(또는 받아 본) 자가 있을까?
다시 말하지만, 예수쟁이들은 그 중요한 <기도 생활>로 목적하는 바를 얻어 낼 수가 있을까? 있어 없어?


예수교 역사 속에는 무수히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해 내고 있다. 예수교는 그 순교자들의 많음을 크게 자랑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그 순교자를 대량 생산하는 이유는 기도의 응답일까? "나를 죽여 주십시오."라고 빌어서 순교를 한 것일까? 아니면, "살려 주십시오."라며 빌었는데도 죽여진 것일까?

예수교는 예수쟁이 개개인도 그렇고, 예수쟁이들 집단인 교회도 그렇고, 재정적으로 풍족한 교회(또는 예수쟁이)가 있는가 하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여 초라한 교회(또는 예수쟁이)도 있다. 
이런 현상(교회 또는 예수쟁이 개개인의 잘되고 못됨)을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예수쟁이 개개인 중에는 신체적으로 건전한 사람도 있고, 가난하고 병약한 사람도 있다. 이런 현상을 기도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예수교의 <기도 생활>은 아무 쓸모가 없는 혹세무민(세상 사람을 속여 정신을 홀리고 어지럽힘)을 위한 도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예수교 역사 속에 순교자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예수교의 <기도 생활>이 말짱 헛 수고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도 남는다.
다시 말해서,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어떤 것에도 응답할 수 없는 허구(가짜=거짓)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이 말이 들리지 않는 예수쟁이는 평생토록 예수교를 졸업할 수가 없을 것이다. 헐!

(각설하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자.

** 2) [(예수 가라사대) "그러므로 너희(예수쟁이들)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오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우리를 시험(시련)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마태 6;9~13)

예수(여호와의 아들)가 자기 제자들에게 직접 가르쳐 준 기도문 일부이다. 예수쟁이들에게 있어서 <기도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거듭거듭 말해지고 있지만, 예수쟁이들 사회에서는 이 <기도 생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시험(시련)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아무리 울며 불며 매달리고 기도를 해봐도 예수쟁이들 중에 과연 풍족하고 행복을 구가할 수 있는 자가 몇 %나 될까?

<기도 생활>이야 말로 예수교의 가장 커다란 사기극 중 사기극일 뿐이다. 기도질로 얻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또, 기도질로 무엇인가 얻어지는 세상이라면, 그런 세상이 바로 지옥이 아닐까? 기도질로 시작해서 기도질로 끝나는 예수교가 시궁창보다도 더 썩어 문드러지는 현상도 바로 기도의 응답이 빚어 낸 모습이 아닐까? 대박!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사기극)을 더 보자.

** 3)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근하게) 중에 계신 네 아버지(여호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 6;6)


기도할 때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여호와(예수교의 신)에게 기도를 해야 된다고 한다. 예수의 가르침이다.
예수쟁이들에게 겸손의 극치를 가르쳐주는 대단히 멋진 말이다. 바이블 속에 간혹 이렇게 멋스러운 말들이 있어서 조금 쯤 지적(知的)인 체하는 예수쟁이들을 우쭐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실상, 수 백 수 천 심지어는 수 만 명이 떼거리로 모여서 세상이 떠나가도록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짓은 신에 대한 기도가 아니다. 세상을 한 층 더 어지럽게 만드는 <종교 공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사기극)을 더 보자.


** 4) [(예수 가라사대) "무엇이든지 너희(예수쟁이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예수쟁이들)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예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 18;18~20)


위의 예수의 감언이설에 매료(魅了=사람을 홀리어 마음을 사로 잡음)되지 않는 예수쟁이는 없을 것이다.
천지를 창조한 전지전능한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이 함께 하면서 모든 것을 다 이루어주신다는 말보다 더 신나는 위안이 어디에 또 있을까?
간단하게 말해서, 기도라는 것은 예수쟁이들이 바라는 바를 여호와(예수교의 신)에게 고하면, 이에 여호와가 화답하는 절차이다.

"무엇이든지 예수쟁이들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게 되어 있다."는 것이 예수쟁이들이 기도를 하는 목적이다.
예수쟁이들과 여호와(또는 예수) 사이에 손발이 척척 맞아 떨어지고 있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멋져 부렀다. 대박!
그러나, 아무리 기도질을 해봐라. 과연, 그 기도질에 대한 응답을 받아 본 예수쟁이가 있거든 손을 들어 보라. 있어 없어?


"예수쟁이들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여호와께서 그 예수쟁이들을 위하여 이루어 주신다."고도 한다.
"예수쟁이 두 세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예수도 그들 중에 함께 하고 있다."고도 한다.
수 백 수 천 또는 수 만 명씩 떼거리로 모여서 왁짜지껄 과시할 필요 없이 예수쟁이 2~3명 만 모여서 기도를 하더라도 거기에는 여호와(또는 예수)가 함께 하면서 모든 것을 다 이루어주신다는 말이다. 예수쟁이들에게 기도는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아맹!

그런데, 말이다. 예수교에 기도에 대한 응답은 있어 본 적이 없다. 단, 1도 있어 본 적이 없는 것이 기도의 응답이다.
따라서, 예수쟁이들의 그 <기도 생활>이란 것이 말짱 헛 수고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그것이 바로 정상적인 인간의 정신 상태이다.
예수교는 통째로 복마전(伏魔殿=마귀가 숨어 있는 소굴)이요, 혹세무민(惑世誣民=사람을 속여 정신을 홀리고 세상을 어지럽힘) 집단이란 사실을 깨달을 때, 그것이 바로 정상적인 인간의 정신 상태이다.


또,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사기극)을 보자.


** 5) [(스데반이)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예수)가 여호와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하고, 무릎을 꿇고 그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죽으니라.)]

(사도행전 12;56~60)


여호와의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된 직후, <스데반>이라는 이름을 가진 예수쟁이가 하늘을 향해서 소리쳤다고 한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예수가 자기 아버지인 여호와의 우편에 서신 모습이 보인다."라고.
그러자, 유대인들이 달려들어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다고 한다. 이것이 예수교의 첫 순교 장면이라고 한다.
맨 하늘을 져다보면서 "와! 저기에 여호와와 그 아들 예수가 보인다."고 헛 소리를 치는 사람이 있다면, 2,000년 전의 유대인들로서는 마땅히 돌로 쳐 죽여야 될 이단이었다.

이 경우, <스데반>은 2가지 방향으로 여호와(또는 예수)에게 기도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하나는, "나를 살려주십시오."라고 비는 기도이고, 다른 하나는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나를 죽여지록 내버려 두십시오.)"라고 비는 기도이다.
그런데, <스데반>은 자기가 죽으면(순교를 하면) 그 즉시 천당으로 직행한다고 믿었던 것일까? 그러기에,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하고 기도를 했던 것 같다.

어쨌든, <스데반>은 여느 예수쟁이들과는 사뭇 달랐다. 대개의 예수쟁이들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하루라도 더 이 세상에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과는 영 다른 모습을 <스데반>은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만약 스데반이 "살려달라."고 기도를 했다면,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과연 스데반을 살려주었을까?


바이블 속의 주인공 중 주인공인 <모세>는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진 고대 이집트의 국왕 바로(pharaoh) 앞에서 폭언(저주와 악담)을 쏟아내고 있어도 죽여지지 않고 있다.
역시, 바이블 속의 주인공 중 주인공인 <엘리야>도 폭군 아합왕 앞에서 저주와 악담을 퍼붓고도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엘리야>가 선지자(여호와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을 당시, 아합왕의 왕후 <이세벨>에 의하여 여타 다른 수 백 명의 선지자들이 떼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열왕기상 18;4)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주인공 <엘리야>는 순교를 당하지 않는다. 다만, 여타 이름 없는 조무래기 여호와쟁이들만 무수히 순교를 당하고 있다. 왜일까?


바이블(예수교의 근본 교리=사기극)을 더 보자.


** 6)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害)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예수의 제자)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예수의 수제자)도 잡으려 할쌔, 때는 무교절(유월절 다음날부터 일주일 동안)이라.

(베드로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여호와께 빌더라.(기도하더라.)]

(사도행전 12;1~5)


<스데반(예수쟁이)>이 순교를 당한 직후, 연이어서 <야고보(예수의 제자)>가 헤롯왕에게 잡혀서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야고보>가 처형 당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기뻐했다고 한다. 이에, 헤롯왕은 <베드로(예수의 수제자)> 마저 잡아 죽이려고 체포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때가 마침 무교절(명절)이어서 처형을 뒤로 미루고 베드로를 잠시 감옥에 가두게 됐던 모양이다.

그러자, 감옥 밖에 모여 있던 예수쟁이 무리들이 베드로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를 했다고 한다. "베드로를 살려달라."고.
마침내, 여호와(또는 예수)의 사자가 나타나서 감옥의 철문을 열어주고, 쇠사슬도 벗겨주어서 베드로는 순교를 당하지 않고 도망쳐 나올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말이다.
예수쟁이들은 여호와(또는 예수)에게 기도를 할 때, 야고보 때는 "야고보를 죽여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를 하고,
그런 다음 베드로 때는 "베드로를 살려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다는 말인가?
왜냐 하면, <야고보>도 예수의 제자요, <베드로>도 예수의 제자인데, 야고보는 순교를 당하고, 베드로는 감옥에서 유유히 살아서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같은 예수쟁이인데 어째서 어떤 녀석은 죽여져야 되고, 어떤 녀석은 살아 남아서 띵까띵까하며 호강을 누릴 수가 있는 걸까?)


시간과 지면을 생각해서 수 천 년에 걸친 전 세계적인 예수교의 역사를 모두 언급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줄이고 줄여서 조선 말기의 순교자들에 관해서만 잠시 훑어 보려고 한다.
주인공들은 순교를 당하는 일이 없는데 어째서 이름 없는 똘마니 또는 지치레기(지스러기) 예수쟁이들만 순교를 당할까?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조선 말기에 예수교에 대한 커다란 박해 사건이 5번 발생한다.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또는 예수)의 크신 뜻이 있어서 발생한 박해일 것이다.
아니면, "주여, 우리에게 커다란 박해가 오도록 도와 주시시오."하고 당시의 예수쟁이들이 간절히 기도를 했을 수도 있겠다.
왜냐 하면, 긴절한 <기도 생활>과 이에 대한 <응답>은 예수쟁이들과 여호와(또는 예수) 사이에 맺어진 굳건한 약속이 아니던가?


(1) 신해박해(辛亥迫害)--1791년(정조 15년), 윤지충, 권상연 등 순교.
(2) 신유박해(辛酉迫害)--1801년(순조 1년), 선교사 주문모와 신자 100여 명 순교, 400여 명 유배.
(3) 기해박해(己亥迫害)--1839년 (헌종 24년), 프링스 선교사 3명과 신자 100여 명 순교.
(4) 병오박해(丙午迫害)--1846년 (헌종 12년), 김대건 신부와 신자 9명 순교.
(5) 병인박해(丙寅迫害)--1866년 (고종 3년), 프랑스 선교사 9명과 신자 8,000여 명 순교.


얼마나 지지리 못나고, 가치도 없고, 인격도 없는 허접쓰레기 인간이었기에 저렇게 많은 사람이 죽여졌을까?  
그런데, 박해와 순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엉뚱한 예수쟁이(특히, 지도자급)들이 뒤늦게 나타나서 호의호식하며 띵까띵까 신나게 돌아간다.
마침내, 우리 한국의 예수교는 1,000만이 넘는 예수쟁이와 함께 예수교 전성시대를 구가하는 나라가 되었다.

고대 로마 제국도 마찬 가지였다. A.D.64년부터 A.D.313년 예수교가 공인될 때까지 250년 동안 엄청난 박해와 함께 무수히 많은 이름 없고 하찮은 조무래기 예수쟁이들이 멋모르고 순교를 당해야 했다.
이렇게 무수히 많은 이름 없이 희생된 순교자들 덕택에 A.D.500년 경부터 A.D.1,500년 대까지 1,000년 동안 암흑시대(예수교 전성 시대)를 구가하게 된다.
박해 및 순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엉뚱한 예수교 지도자들이 나타나서 띵까띵까 신나게 돌아가던 시대가 다름 아닌 중세 유럽의 암흑시대이다.

여기에서 예수교의 그 끈적끈적하고 미끌미끌거리고 능글맞은 모습과 썩어 문드러진 모습에 대해서는 언급하기를 생략하기로 하자.
작금, <코로나19>라는 역병을 당하여 전국민의 정서(또는 질서)에 교묘하게 역행하는 예수쟁이들의 행동거지를 보라. 어떻게 설명도 할 수 없는 <종교 공해>라고나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재미있게(?) 굴러가는 현상은 예수교 말고는 이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도 구경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예수교의 <진리>에 대해서 잠시 훑어 보았다. 암, 예수교의 진리구 말구. 대박!
이 모두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모든 것)을 읽지 않은 예수쟁이들 때문이 아닐까? 아니, 읽어도 그게 무슨 말인지 감이 오지 않겠지?





[역병 <코로나19>가 예수교에 미칠 영향]


예수교의 교리(가르침)는 굉장히 중요하고 값지고 비밀스러운 것이어서 아무에게나 마구잡이식으로 가르쳐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즉, 예수교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은 그것을 가르쳐 주어도 될 사람이 따로 있고, 가르쳐 주어서는 절대로 안 될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헐!

그래서, 예수쟁이들이 전도 여행에 대한 계획을 세울 경우, 그 계획이 합당하면 성령(또는 예수)이 이를 허락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허락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도 한다.
어쨌든, 예수교의 교리(특히, 천당 가는 방법 등등)를 아무에게나 가르쳐 주어서는 안 되게 되어 있다. 
그렇다. 그렇게 값지고 귀중한 보물(천당에 갈 수 있는 비밀)을 개나 소에게까지 아무렇게나 던져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대박!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더 보자.


[(예수 가라사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마태 7;6)


"거룩한 것과 진주를 개와 돼지에게 던져 주지 말라." 예수의 가르침이다.
여기에서 예수가 말하는 <개>와 <돼지>는 어떤 종류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수(교)를 좋지 않게 보는 사람을 가리켜서 하는 욕말이다.
또, <거룩한 것과 진주>는 천당에 갈 수 있는 방법(비밀) 즉, 여호와(또는 예수)의 말씀(복음)을 뜻한다.

다시 말하지만, 개 돼지로 취급되는 하찮은 인간에게는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의 귀한 가르침을 주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엄중한 경계의 말씀이다.

그런데, 말이다.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예수쟁이치고 전도질을 지상 명령(至上命令=반드시 따라야 하는 명령)으로 알고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 짓을 감행하지 않는 자는 없다. 
종교, 전통, 문화, 풀습이 생판 다른 나라에도 막무가내로 쑤시고 들어가서 "예수를 믿어라." "여호와는 너를 사랑하신다"고 생떼를 쓰며 억지로 전도질을 감행한다.

심지어는 총 칼을 겨누고서 상대방을 위협하며 강제로 "여호와(또는 예수)는 너를 사랑하신다."고 떠들어대기도 한다. 헐!
총 칼을 겨누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아예, 상대국을 침략 유린하면서 "예수교는 사랑과 화평의 종교이다."라며 눈 웃음을 치기도 한다. 대박!


공공 장소, 지하철, 남의 종교 안마당 등에는 <개 돼지>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이런 곳에도 무단 침입자처럼 들어가서 무차별로 아무에게나 그 거룩한(?) 것을 아무렇게나 내던지는 예수쟁이들도 있다.
이럴 경우, 어느 쪽이 개 돼지이고, 어느 것이 거룩한 것이고, 진주인지 모르겠다. 예수교의 가르침으로 얼이 빠진 예수쟁이가 되면 저렇게 되는 것인가?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기나 하고서 <예수쟁이 노릇>을 하는 예수쟁이가 몇 명이나 될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썰)을 더 보자.

[성령(聖靈=예수교의 신)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傳)하지 못하게 하시거늘....비두니아(지명)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靈=예수교의 신)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밤에 환상이 바울(예수의 앞잡이)에게 보이니,...바울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니아(유럽)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여호와(예수교의 신)가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사도행전 16;6~10)


바울(예수의 앞잡이) 일행이 아시아(터어키 반도) 쪽으로 전도 여행을 하려고 했으나 성령(聖靈=예수교의 신)과 예수의 영(靈)이 가지 못하게 하여 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유럽(발칸 반도) 쪽으로 전도 여행을가려고 했더니 그것은 허락이 되더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유럽 사람들에게는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비밀(바이블 내용)을 가르쳐 주어도 되는 것이지만, 아시아 쪽 사람들에게는 예수교의 교리를 가르쳐 주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15~20세기에 걸쳐서 서구 열강이 총 칼을 들고 그리고, 예수(또는 여호와)의 사랑을 앞 세우고서 지구 구석구석을 유린하던 만행질들도 모두가 여호와(또는 예수)가 허락을 해서 저질러 놓은 잡놈 짓이 분명하다.


어쨌든, 예수교의 교리(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를 아무에게나 함부로 가르쳐 주거나 발설해서는 안 되는 비밀이다.
어떤 사람에게 전도를 하려면, 먼저 성령(여호와 또는 예수)에게 그 사실을 허락 받아야 된다. 그런데, 그 허락 받는 방법을 예수쟁이가 아닌 사람들은 모른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보면, 예수쟁이들은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막무가내(한번 굳게 고집하면 도무지 융통성이 없음)로 아무나 붙잡고 전도질을 감행한다.
이럴 경우, 그 막무가내식 전도 행각도 예수(또는 여호와)란 녀석의 허락을 받고서 자행되는 짓일 것이다. 아맹!

이제, 결론을 말해도 될 것 같다.

(1) 1095년에서 1291년까지 200년 동안 7차례에 걸쳐서 치러진 십자군 전쟁! 예수(또는 여호와)란 녀석의 허락 없이는 발발할 수 없는 전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irony)하게도 이 십자군 전쟁은 하늘을 찌를 정도로 콧대가 높아졌던 예수교를 와해시키기 시작하는 단초가 되고 만다. 헐!

(2) 14세기에 유럽 대륙을 휩쓸었던 <흑사병>의 창궐! 이 흑사병은 유럽 전체 인구의 1/3이상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한다.
이 흑사병 역시 예수교의 신이신 예수(또는 여호와)님의 허락 없이는 창궐할 수 없었던 전염병이었다.
그런데, 이 속수무책의 역병(흑사병)도 십자군 전쟁에 이어서 예수교를 쓸어박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 대박!

(3) 작금, <코로나19>의 대유행! 이 <코로나19> 역시, 예수(또는 여호와)의 허락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역병이다.
이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서 전 세계가 "정확하고 세밀한 역학 관계를 조사하기" 및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 등등을 감수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교(신천지 예수교는 물론 여타 기성 예수교단)에서는 속임수, 거짓말, 예배 보기 등등으로 역학 조사와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을 방해하고 있다. 
이 모두가 여호와(또는 예수)의 허락을 받고서 저지르는 만행질이 분명하다.

아무리 사소한(적거나 작아서 보잘것 없거나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도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또는 예수)의 허락 없이 되어지는 일은 이 우주 속에 아무것도 없다. 
예수교의 여호와(예수)는 전지전능하신 잡놈 신이시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한 신은 모르는 것도 없고 못하는 것도 없는 법이다. 물론이다. 하모!

그래서, 이 <코로나19> 역시, 십자군 전쟁이나 흑사병에 버금가는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번의 <코로나19>는 예수교를 아예 박살내는 데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아맹! 할렐루야!




[성직자들이 신(神)의 돈을 갈취하는 방법]


성직자(聖職者)--(1) 종교적인 직분을 맡은 사람. (2) 성스러운 직업을 가진 사람?


어느 날 개신교의 목사, 천주교의 신부 그리고 유태교의 랍비, 이렇게 세 명의 성직자(?)들이 모여 환담을 즐기고 있었다고 한다.
환담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마침내 돈 버는 얘기에 들아서게 되었던 모양이다.

먼저, 개신교의 목사가 천주교의 신부에게 물었다.
"신부님은 헌금으로 들어 온 돈을 어떻게 쓰십니까?" 하고.

그러자, 신부가 말했다.
"나는 땅바닥에다 자그마하고 둥글스럼한 원을 그려 놓습니다. 
그런 다음, 헌금으로 들어 온 돈을 들고 그 둥글스럼한 원 가운데로 들어가서 섭니다. 그리고는, 헌금으로 들어 온 돈을 하늘로 향해서 확 던져 뿌립니다.
이 때, 둥글스럼한 원 안에 떨어진 돈은 내가 쓰고, 원 밖에 떨어진 돈들은 성당을 위하여 씁니다."


담소는 돌고 돌아 천주교의 신부 차례가 되었다. 그러자, 신부는 개신교의 목사에게 말했다.
"목사님, 당신은 헌금으로 들어 온 돈을 어떻게 나누어 쓰십니까?" 하고.

그러자, 개신교의 목사가 대답을 했다.
"나도 신부님과 비슷합니다. 땅에다 그려 놓은 원 안에 들어 서서 헌금으로 들어 온 돈을 하늘을 향해서 냅다 던지는 것까지는 저도 신부님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나는 원 안에 떨어지 돈만을 교회를 위하여 쓰고, 원 밖으로 떨어진 돈은 모두 내가 가집니다."


마침내, 시부와 목사는 유대교의 랍비가 헌금으로 들어 온 돈을 어떻게 배분하여 쓰는지가 궁금해졌다. 
목사와 신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유태교 랍비에게 물었다.

"당신은 헌금으로 들어 온 돈을 어떻게 나누어 쓰시오?"

그러자, 랍비가 말했다.
"나도 당신들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나는 땅바닥에다 아무 것도 그리지는 않습니다.
나는 헌금으로 들어 온 돈 전부를 그냥 공중을 향해서 확 뿌립니다. 그리고는 크게 소리칩니다." 
"여호외시여! 필요한 만큼 마음대로 가지십시오."하고.

"마침내, 여호와께서 필요한 만큼 가지신 다음, 땅에 떨어진 나머지 돈은 내가 다 가집니다."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19.♡.30.247) 2020-04-29 (수) 21:40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족속의 역사 공부]


전염병(또는 질병)이 창궐하면, 예수쟁이들은 우선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예수가 쏟아 낸 기적질 중, 가장 많은 것이 병든 사람을 고쳐주는 일이었다. 이는 병든 사람을 고쳐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이 창궐하게 되면, 예수쟁이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여호와(또는 예수)를 향해서 간절히 빌어대는 기도질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예수쟁이들은 해야 할 기도질은 하지 않고,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과 인간 세상의 질서에 어짓장 놓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각설하고)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께서 특별히 선택하여 아끼고 사랑하는 백성이 있다고 한다. 이름하여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족속이 그들이다.
옛날 옛날, 호랑이가 담배를 태우던 시절에 히브리 족속은 <유다 왕국>을 건설하고서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이 <유다 왕국>은 북쪽에 <이스라엘>, 남쪽에 <유다>, 이렇게 두 개의 왕국으로 쪼개지게 되었다고 한다.

북쪽의<이스라엘> 왕국은 19명의 역대 왕들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9명의 왕들이 유혈 혁명으로 피를 튀기다가 겨우 200년 만에 멸망한다.
그런데, <유다> 왕국은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한 뒤에도 130여 년을 더 견디며 살아 남을 수가 있었다고 한다.
짧은 200년 짜리 이스라엘 왕국이 19명의 왕들이 교체되는 동안, 330년 짜리 유다 왕국에서도 20명의 왕들이 교체되고 있다.

(또, 각설하고)

지금부터 말해지는 이야기는 남쪽 <유다> 왕국의 20명의 왕들 중, 제13대 <히스기야왕> 때의 일이다.
유다 왕국의 13대 히스기야왕 때는 이스라엘 왕국의 20대 호세아왕과 동시대가 된다. 이 때(BC 722) 이스라엘 왕국은 앗시리아 대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다.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킨 앗시리아 대제국은 그 여세를 몰아 유다 왕국에도 침략을 감행하게 되어 유다 왕국도 큰 곤욕을 치르게 된다.

그러나,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의 특별하신 배려로 유다 왕국은 멸망하는데까지는 이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히스기야왕이 여호와의 마음에 들도록 업적을 쌓았기 때문이었다.
유다 왕국은 330년 동안에 20명의 역대 왕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13대 히스기야왕은 가장 커다란 업적을 남긴 명군이었다고 한다.

히스기야왕의 업적을 대충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유다 왕국의 역대 왕들이 모두 우상 숭배에 빠졌던 것과는 달리 히스기야왕은 여호와에게 인정 받을 만큼 여호와만을 전적으로 의지했다.

2) 히스기야왕은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고, 우상 숭배의 단을 제거하고, 유월절을 부활시킬 만큼 과감하에 종교 개혁을 단행했다.

3) 히스기야왕은 앗시리아 대제국의 침략을 받았을 때, 오로지 여호와에게 매달리는 기도에만 힘을 썼다. (여호와 및 예수쟁이의 가장 훌륭한 업적이요 덕목이다.)

4) 왕의 신분이면서도 히스기야는 선지자(신의 앞잡이) 이사야에게 모든 것을 의론하며 기도를 요청할 만큼 신앙심이 강했다.

5) 앗시리아 대제국의 침략 속에서도 히스기야왕은 블레셋(Philistines)을 쳐서 국토를 넓혔다.

6) 히스기야왕은 오직 여호와에 대한 기도로써 앗시리아 대제국의 침략을 막아내고, 정치적 개혁 운동을 단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하나도 여호와, 둘도 여호와, 셋도 여호와(예수교의 신)만을 찾던 히스기야왕은 금방 "마음이 교만해져서 여호와로부터 받은 은혜를 까먹고 보답하지 않아 여호와로부터 진노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역대하 32;25)
왜, 예수쟁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호와(또는 예수)의 은혜를 금방금방 까먹고 노여움을 사기도하고 징벌을 받기도 할까?

여호와(또는 예수)의 은혜를 금방 금방 까먹고 엉뚱한 짓을 하는 작태는 아브라함, 모세, 다윗, 솔로몬 그리고 목사, 신부 또 그리고 잔챙이 예수쟁이들까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예수교에서 횡행하는 모습이다.
예수쟁이들은 여호와(또는 예수)의 은혜를 왜 그렇게 쉽게 쉽게 까먹고 엉뚱한 짓을 하다가 노여움(징벌)을 받을까?

*** 여기 쯤에서 예수교(또는 바이블 내용)의 모순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은 영원히 예수쟁이 노릇(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아맹 할렐루야!
 

히스기야왕은 앗시리아 대제국의 침략을 받고서도 멸망당하지 않는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은혜를 입었었다. 그러나, 히스기야왕은 즉시 그 은혜를 까먹고 교만해졌다고 한다. 저런!
마침내, 히스기야왕에게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진노가 쏟아진다.
"네 이 놈 히스기야야, 네 놈을 당장 죽여버리고 말겠다. 네 놈이 그래도 내(여호와) 능력을 무시하고 교만해지겠느냐?"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그 즈음에 히스기야(왕)가 병들어 죽게 되니.....선지자 이사야가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말씀하시를 '너(히스기야)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하셨나이다."

히스기야(왕)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온 마음)으로 행하며,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追憶=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함)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선지자)에게 임하니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이사야)는 가서 히스기야(왕)에게 이르기를.....'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壽限=목숨의 한도)에 15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앗시리아 제국)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유다 왕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그 병이 나을 때에 기록한 글이 이러하니라.]

(이사야 38;1~9)


위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을 분단(文段) 나누기를 해 보자.

1) 히스기야왕이 여호와의 은혜를 까먹고 교만해지자, 크게 진노함을 받아 죽을 병이 들었다고 한다.

2) 히스기야왕이 통곡을 하면서 여호와에게 간절히 뉘우치는 기도를 했다고 한다.

3) 그러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이사야에게 임했다고 한다. 
(왜, 히스기야왕에게 직접 임하지 않고 선지자 이사야에게 임할까? 여호와란 녀석은.)

4) 히스기야왕을 당장 죽이려고 했었으나, 통곡을 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여호와는 죽이려던 마음을 고쳐 먹고, 히스기야왕의 수명을 15년 연장시켜 주기로 했다고 한다.


결론을 말할 차례가 된 것 같다.

여호와(또는 예수)의 눈으로 보면, 히스기야왕의 업적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 업적이란 것이 아무 것도 아니어서 통곡을 하며 간절히 빌고 빌어야 겨우 용서를 받을 수가 있었다.

여호와의 아들 예수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한 일은 병든 사람을 고쳐주는 기적질이었다.
따라서, <코로나19>라는 역병이 창궐하는 이 때를 당하여 예수쟁이들이 할 일은 무조건 여호와(또는 예수) 향하여 빌어대는 기도질 말고는 없는 것이다.


(예수 가라사대)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근하게) 중에 계신 네 아버지(여호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 6;6)
기도를 할 때에는 떼로 몰려다니며 세상을 시끄럽게 하지말고, 골방에 혼자 쳐 박혀서 조용히 하자.


(예수 가라사대)
"저희(예수교 지도자 또는 예수쟁이 전부)는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차는 경문(종교 지도자들이 머리나 손목에 차는 물건)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上席)과 회당의 상좌(上座)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선생님)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마태 23;5~7)

예수쟁이들이여! 떼로 몰려 다니며 시끄럽게 하지 말고, 제발 조용히 좀 살자.
예수쟁이들이여! 세상이 조용히 굴러가게 좀 놔 두자.



참고: 히스기야왕은 25살에 왕위에 올라 50살에 죽은 사람이다. 
      여호와의 진노가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히스기야왕은 35살에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로부터 15년이라는 수명을 연장 받아 50살까지 살 수 있는 은혜를 입은 셈이다.
      (50살에 죽었을 경우, 그것이 15년 연장된 죽음인지 타고 난 원래의 수명인지 그걸 어떻게 구별하지?)
 
      위에서도 열거했지만, 여호와(또는 예수)의 입장에서 히스기야왕의 업적은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그 업적에 보답으로 얻은 수명이 겨우 50년이라니, 그까짓걸 신의 은혜라고 할 수 있어?
      그리고 또, 히스기야왕이 해 놓은 짓들이 업적이라고 할 수 있기는 한 거야? 헐!

      작금 예수쟁이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벌이는 짓들에다 "예배"라는 이름을 붙일 수는 있는 거야?
      그 "예배"가 과연 여호와(또는 예수)에게 영광이 되기는 하는 거야? 똥물 튀기는 일이 아니고? 세상에나!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의 전문가 양성 기관]


** 전문가(專門家)--특정 분야의 일을 줄곧 해 와서 그에 관한 풍부하고 깊이 있는 지식이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

세상에는 누구에게나 선배 또는 스승이 있게 마련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어떤 분야에도 선배와 스승은 있다. 
젊은이들은 이들 선배와 스승으로부터 기초를 배우게 되고, 여기에다 자기 재능과 노력을 보태어 자기 발전을 이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참으로 이상한 분야가 있다. 신학(神學=어떤 종교의 신, 교리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그것이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 의하면, 소위 선지자(신의 앞잡이)라는 것도 교육 기관에서 교육을 시켜서 배출하고 있다.
또, 예수교에서는 신학교라는 교육 기관에서 교육을 시켜 목사, 신부 또는 신학자 등등을 배출시키고 있다.
세상의 어떤 분야라도 가르치고 배우고, 자기 재능과 노력을 첨가하여 마침내 전문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신(神)의 분야에서도 가르치고 배우고, 재능과 노력을 보태면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사람이 어떻게 신(神)에 대해서 어떻게 무엇을 가르치고 배울 수가 있으며, 여기에서 무슨 노력을 보탤 수가 있을까?


(1) 누군가가 유리를 발명하면, (2)그 다음 사람이 확대경을 발명하고, (3) 그 다음 사람은 확대경으로 세균을 발견하고, (4) 그 다음 사람은 질병 원인을 알아 내고, (5) 그 다음 사람은 질병 퇴치 법을 찾아 내고, (6)그 다음 사람은 예방 백신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다. 
(7) 마침내, <코로나19>라는 역병의 커다란 어려움을 당해서도 우리 한국의 방역 대책(또는 의술)이 세계적으로 큰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가르치고 배우고 그리고 자기 노력을 보태어 세상을 발전시킨 결과이다.

마찬 가지로, 예수교에서는 (1)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은 이름도 모르는 신을 덮어 놓고 받들다가, 
(2) 모세라는 사람이 마침내 그 신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신(神)을 발견해 내고, 
(3) 다윗 때에 이르러서 여호와에게 사랑이 많음을 알게 되고, 

(4) 엘리야와 엘리사에 이르러 여호와의 갖가지 재주를 알아 내고, 
(5) 예수에 이르러서는 여호와가 자기 아비임을 깨닫게 되고, 
(6) 비로소, 바울에 이르러서야 예수교라는 집단을 만들면 돈이 된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되고, 

(7) 마침내, 신학(神學)이란 것이 하늘 꼭대기까지 발전하여, 예수교으의 신이신 여호와(또는 예수)를 똥값에 팔아 먹어도 별 탈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까지 이르렀다. 
(8) 뿐만 아니라, 예수쟁이 탈을 쓰고서 몇 달 만 지나면, 어느 누구나 신의 세계를 훤히 아는 박사급 전문가에 도달한다? 
(9) 그래서, 예수쟁이들은 어느 누구를 불문하고 하나도 빠짐 없이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에 관한 한 모르는 것이 없는 전문가로 우뚝 서게 되는 것이다. 

(10) 마침내,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의 뜻에 의하여 발생하는 <코로나19>라는 역병"이 창궐하자, 
"역학 조사를 방해하기" "사회적 거리 두기에 역행하기" 등등으로 세상 질서를 파괴하는 예수(교)쟁이들의 행패는 신학적(또는 예수교적) 전문가가 아니면 감히 감행할 수 없는 작태(하는 짓거리)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박!

어떤가? 
이렇게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의 분야도 가르치고 배워서 발전시키고 전문가를 배출할 수 있는 분야인가? 그런 다음, 여기기에다 자기 노력과 재능을 더하면 마침내 박사급 수준으로 발전하여 신의 세계를 훤히 알게 되는가? 
마침내, 이 전문가적 재주로 교회를 세워서 사람들을 꼬여 들이고, 재물을 갈취하여 먹고 살면 이것이 신의 앞잡이 자격이 되는 것인가? 

아니라면, 신의 세계를 누가 어떻게 가르칠 수도 있고 배울 수도 있다는 말인가?
이 신의 지식에다 무엇을 보태고 노력하여 무엇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신학교(神學校)라는 곳에서는 목사와 신부도 배출시키고, 신학자라는 것도 만들어 낸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처음으로 기록한 자들과 신의 섭리를 알아 내어 일반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선지자(신의 앞잡이)들도 교육으로 배출하고 있다. 
어떤가? 되는 말이라고 생각되는가? 

결국, 신(神)의 세계를 가르치는 자도 사기꾼, 배우는 자도 사기꾼, 여기에다 어떤 노력을 보태서 전문가(목사, 신부, 신학자 등등) 노릇을 하는 자도 모두 사기꾼일 뿐이다. 
예수교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통째로 사기꾼과 여기에 말려 든 바보 천치들의 집합체일 뿐이다.


어쨌든, 신학교(神學校)라는 곳에서는 신의 전문가(목사, 신부, 신학자)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킨다. 
아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구절들은 <선지자 생도> 또는 <예언자 수련생>을 모아 놓고 교육시키던 흔적이다. 
다시 말해서,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의 세계를 알아 내는 재주를 교육이나 훈련으로 취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제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아래의 바이블 구절은 신학교를 만들어 놓고서 신학생(선지자 생도, 예언자 수련생)들을 교육시키던 흔적이다. 
이 신학교에서 배출된 선지자(신의 앞잡이)들이 바이블도 쓰고, 여호와(예수)의 섭리도 찾아 내어 풀어냈던 것이다. 
학교라는 교육 기관을 차려 놓고서 신의 세계를 가르치기도 하고 배우기도 했다는 것이다? 정말로 귀신이 곡을 할 일이다. 헐!


**1) [선지자(신의 앞잡이)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개역 (열왕기하 9;1)
**2) [예언자(신의 앞잡이) 엘리사가 한 예언자 수련생을 불러 일렀다.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가지고 라못길르앗으로 가거라."]--공동 (열왕기하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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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지자(신의 앞잡이)의 생도 오십(50)인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엘리야와 엘리사)이 요단가에 섰더니]--개역 (열왕기하 2;7)
**2) [예언자(신의 앞잡이) 수련생 오십 명이 뒤를 따라가다가 두 사람이 요르단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는 것을 멀찍이 서서 보고 있었다.]--공동 (열왕기하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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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지자(신의 앞잡이)의 생도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한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개역  (열왕기하 6;1)
**2) [예언자(신의 앞잡이) 수련생들이 엘리사에게 와서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을 모시고 사는 이 곳이 너무 좁습니다."]--공동 (열왕기하 6;1) 




[예수쟁이들은 정말로 원수도 사랑할까?]


아래는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족속 최고 최대의 명군으로 알려진 다윗왕이 여호와(예수교의 신)를 향해서 간절히 빌고 있는 기도요 노래이다.
예수쟁이들 전체의 간절히 바라는 진짜 속 마음의 기도이기도 할 것이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내 찬미의 신(神=여호와)이시여, 침묵을 깨고 나오소서. (한 두 번의 기도로는 신의 응답이 없었던가 보다.)
...............................................

부랑배를 내세워 그(이웃)를 치자.
그 오른편에 고발자를 세우자.
재판에서 죄를 뒤집어쓰게 하자.

그의 기도마저 죄로 몰자.
이제 그만 그의 명(줄)을 끊어 버리고,
그 자식들은 고아가 되고,
아내는 과부가 되게 하자.

자식들은 이리저리 빌어 먹고 다니며,
폐허 된 제 집마저 쫓겨나게 하자.

빚쟁이가 그의 재산을 모조리 잡아 버리고,
남이 와서 그의 수입을 털어 가게 하자.

그에게 동정하는 사람도 없게 하고,
그 고아들을 불쌍히 여겨 주는 사람도 없게 하자.

그의 후손은 끊기고,
그의 이름은 다음 세대에 없어지게 하자.

그 아비가 저지른 잘못이 잊혀지지 않고,
그 어미가 지은 죄가 지워지지 않게 하자."
...............................................

여호와, 나(다윗)의 신(神)이시여, 나를 도와주소서.
.............................................
................................................

나(다윗)는 여호와께 크게 감사드리고,
사람이 모인 곳에서 그를 찬양하리라.

여호와께서 이 가난한 자의 오른편에 서시어,
재판관의 손에서 목숨을 건져 주셨다.]

(시편 109;1~31)



1) 제 땅이 없어서 남의 땅을 침략해서 살아가는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족속이요, 사막 벌판을 배회하며 노략질로 살아가는 비적떼들에게는 주위가 온통 적(敵=원주민)으로 둘러싸여 일을 뿐이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오늘 날까지도 중동 지방은 평온한 날이 없다. 중동 지방의 평화는 그 기약이 요원할 뿐이다.

2)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서는 중동 지방의 원주민을 가리켜 적(敵=원수), 사악한 자, 사기치는 자, 거짓말하는 자, 까닭 없이 공격해 오는 자, 우정을 원수로 갚는 자, 선을 악으로 갚는 자, 사랑을 미움으로 갚는 자 등등으로 치부하고 있다.
마치, "똥 싼 놈이 화내는 격"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3) 위의 기도 및 노래는 다윗왕이 여호와에게 적(敵=원주민=이웃)을 사그리 때려잡아 달라고 간절히 비는 기도이다.
오늘 날, 예수쟁이들이 줄기차게 빌어대는 기도라는 것도 그 내막을 엄밀하게 훑어 보면, 세상(또는 이웃)을 향해서 쏟아내는 악담과 저주라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래서, 수 천 년 동안 예수교가 있는 곳에 평화는 없(었)다.

4) 위의 다윗왕의 노래(기도)를 읽으면서, 제삼자(필자)는 예수쟁이들이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들을 이모저모로 속여가며 진멸시킨 역사적 사건과 너무도 똑 같음을 발견하고는 놀라고 있다.
바이블, 여호와, 예수 그리고 예수쟁이들을 어떤 방향에서 조명하더라도 용서할 수 없는 악마(惡魔) 집단이라고 단정하게 되었다.

5) 재삼 부탁이지만, 좀 지루하더라도 독자들은 위의 노래 가사(기도 내용)을 자세히 음미해 보기 바란다.
사람 껍데기를 쓴 자로서 이보다 더 악질적인 표현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교(쟁이)들의 진짜 면목이다.

6) 작금, <코로나19>라는 전염병 때문에 어려움 속에서도 전 세계가 얼마 동안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도 신천지 예수교는 물론 기성의 각종 예수교에서는 <종교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각종 집회를 감행하는 짓도 다윗이 자기 이웃을 저주하며 빌어대던 짓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행패이다.
예수교는 송두리 째 복마전(伏魔殿=마귀가 숨어 있는 소굴)이요, 혹세무민(惑世誣民=세상 사람들을 속여 정신을 홀리고 어지럽힘) 집단일 뿐이다.





[서구에서 쓰다 버린 똥폐차 예수교]

 
(1) 종교라는 점에서 예수교도 악(惡)한 것보다는 착한(善) 것이 보기에 좋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교는 교육 사업을 합네, 의료 사업을 합네, 각종 사회 사업을 합네 하며 분주한 척하기를 꽤나 좋아한다.
어디까지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전시효과를 노리고 하는 짓이지만. 아니, 실질적으로 착한 예수쟁이도 있기는 있다. 그래야, 그것이 예수쟁이다운 짓인 줄 알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쟁이들이 자기네 신(神) 여호와(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배반하는 짓이다.
어느 여호와(또는 예수)가 이웃을 위하여 그렇게 봉사활동을 하라고 가르치던가?
예수교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라. 어디에 그런 짓을 하라고 씌어 있다는 말인가?

(2) [네가 어떤 성읍(城邑)으로 나아가서 치려할 때에 그 성읍에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
그 성읍이 만일 평화하기로 화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온 거민(居民)으로 네게 공(貢=세금의 한 종류)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만일, 너와 평화하기를 싫어하고 너를 대적하여 싸우려 하거든 너는 그 성읍을 에워쌀 것이며,
네 신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붙이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속의 남자를 다 쳐 죽이고,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육축과 무릇 그 성중에서 네가 탈취한 모든 것은 네 것이니 취하라.
네가 대적에게서 탈취한 것은 네 신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것인즉 너는 그것을 누릴지니라.] (신명기 20;10~14)

** 예수교와 평화하자는 말은 곧 스스로 노예가 되어 상대를 섬겨야 된다는 조건임을 알 수 있다. 그래 안 그래?

(3) 결국,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예수교에서 착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떤 효과를 노리고 겉으로만 보여주는 사기 행각일 뿐, 실질적으로는 철저하게 악독한 짓을 골라서 자행하는 집단이 예수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교가 보여주는 시궁창 같은 모습은 자기 네 신 여호와(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깨알만큼의 차질 없이 실천해 오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예수교 또는 예수쟁이들의 본질이다.

(4) 따라서,
"예수교가 여호와(또는 예수)의 가르침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느니,
"예수교의 잘못된 점을 개선하여 바른 길로 가자."느니,
"예수교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니다."라느니,
"예수교의 잘못된 모습은 본질을 벗어난 일부 사이비가 저지르는 짓이다."라느니...따위는 웃기는 난센스이다.
소가 들어도 웃을 소리이다. 예수교(쟁이)가 제 길을 가지 않은 적은 없다. 대박!

(5) 지금까지 표출되고 있는 예수교의 시궁창 모습은 하나도 빠짐 없이 여호와(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100% 차질 없이 실천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호와(또는 예수)는 스스로 그렇게도 좋아하고 밝히는 영광 속에 푹 파묻혀서 거룩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박!

(6) 대단히 중요한 참고 사항;
예수쟁이 중에는 실질적으로 착한 언행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그들은 예수교의 근본 교리인 바이블 속에 좋은 가르침이 있겠거니 하고, 제풀로 흥에 겨워 예수교 이름으로 착한 일을 하게 된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 대한민국 속에 내재(內在)되어 있는 가치관으로 무장된 윤리가 배어나오는 현상이라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교 이름으로 무엇인가 착한 일을 하게 됐다고 착각하는 자가 있다면, 그런 사람이야 말로 얼이 빠진 매혼노와 다르지 않은 예수쟁이이다.
빠른 시일 내에 예수교를 몰아내지 못한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는 없는 것이다.
서구사회에서는 이미 똥폐차로 내다 버린지 오랜 예수교이거늘, 우리 한국은 어쩌다가 뒤늦게 그 똥폐차에 빠져들어 이렇게 허덕여야만 된다는 말인가? 오호 통재라!




[예수교의 진짜 알멩이]

가르치는 자(목사, 신부, 신학자 등등)들은 모두가 무신론자-신을 무서워할 턱이 없는 자-들이고,
배우는 자(평신도 및 저 밑엣것들)들은 유신론자-신의 징벌이 무서워서 벌벌 떠는 자-들이라는 점이다.
가르치는 자는 무신론자, 배우는(따르는) 자는 유신론자, 이것보다 무서운 현상이 있을까?
따라서, 인류 역사상 가장 간악한 범죄가 만들어지고 쏟아져 나오는 곳이 다름 아닌 예수교이다. 아멩 할렐루야!

* 참고; 저 밑엣것들 중에도 사실상 유신론자(신이 무서워서 벌벌 떠는 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일반 예수쟁이들의 못된 짓도 목사나 신부들을 뺨칠 정도로 왕성한 것이다.
        예수쟁이들에게 적당히 필요할 때마다 정신적으로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존재가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일 뿐이다.
        결국, 예수교 전체는 종교라는 간판 뒤에 숨어서 잔인하고 더러운 짓을 밥 먹듯하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이 예수교를 무너뜨리기 시작하고 동시에 르네상스 시대를 연 것처럼 오늘의 <코로나19>는 마침내 예수교를 박멸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지작해 본다.





[육식 동물의 편애가 빚은 비극]


** 육식 동물(肉食動物)--(1) 다른 동물을 먹이로 하는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2)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또는 예수)를 별도로 일컫는 말.

   편애(偏愛)--어느 한 사람이나 한쪽만을 유달리 사랑함.
                 예, 여호와(또는 예수)께서 오직 예수쟁이(또는 히브리 족속)만을 유달리 사랑함.
                 그러나, 신(神)의 뜻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매, 편애란 예수쟁이들이 제풀에 날뛰는 광란임. 


1)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에 의하여 천지가 창조되고서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최초의 인간 아담(남자)과 하와(여자) 그리고, 그 두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 <가인>과 <아벨>, 세상에 이렇게 4명의 사람만 살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고 한다.

큰 아들 <가인>은 농사꾼이었고, 작은 아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였다고 한다.
따라서, 큰아들 가인은 곡식(식물성)으로 제사를 지내고, 작은아들 아벨은 양고기와 그 기름(동물성)으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는 아벨의 제사는 열납(悅納=기쁘게 받음)하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는 없다.
인간으로 천당으로 가느냐 지옥으로 가느냐를 가르치는 교육서(바이블)에 중대한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이 아무 것도 없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라는 녀석은 육식을 좋아하고 초식을 싫어하는 귀신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라는 녀석은 바로 <육식 동물>이었던 것이다. 대박!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 2)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동물성)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식물성)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忿)하여 안색이 변하니...] (창세기 4;3~7)


인간끼리의 사회에서는 "똥싼 놈이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전지전능한 신(神)에게 얼굴을 붉히며 분(忿=억울하여 화가 나고 억울함))하여 할 사람이란 없는 것이다.

옛날에, 임금이 밥을 먹다가 토하면 옆에서 시립하고 있던 궁녀(또는 내시)가 그 토해 놓은 음식을 얼른 집어 먹었다고 한다. 그 음식에 어떤 독(毒)도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되기 때문이었다.
더럽다 어떻다를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인데도 임금과 신하(또는 백성) 사이는 이렇게 무서운 사이였던 것이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은 물론 주위에 시립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갖은 고문 끝에 도륙이 될 사건이기 때문이다.

가타부타를 따지기 전에, 우선 급한대로 임금에게 진상된 음식에 독약이 들어 있지 않다는 증거부터 확보해야 되는 것이다.
임금과 신하(또는 백성)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이렇게 대단히 엄중하고 무서운 서열 관계가 있는 것이다.
하물며, 신(神)과 인간 즉, 신과 인간의 관계는 어떠할까? 가인은 여호와(전지전능한 신)를 직접 대면하며 대화를 나누던 자였다. 가인은 여호와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가인(인간)이 여호와(신) 앞에서 안색까지 변하며 분(忿=성냄)하여 했다고라?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되는가?


여기 쯤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아주 중대한 문제가 있다.

신(神)에게 제사를 지냈을 때, 그 제사를 신이 열납(悅納=기쁘게 받음)했는지 또는 거절했는지 그 사실을 인간이 알 수 있을까?
만일,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신(神)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람은 신(=여호와)을 거역하면 지옥으로 가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 안 그래?
그런데, 신 쪽에서 자기의 제사를 거절했다 해여 얼굴을 붉히며 분(忿)하여 한다는 말인가? 헐!


어쨌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 의하면, 가인은 여호와를 직접 대면하며 살아가면서도 여호와가 자기의 제사를 열납하지 않는다고 얼굴을 붉히고 분하여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큰아들 가인은 자기 동생 아벨을 때려 죽였다고 한다. 되는 말이라고 생각되는가?
이런 궤변이 발생하는 이유는 바이블(예수교의 경전) 내용이 신의 가르침이 아니라, 미개 시대의 종교 사기꾼이 그것도 서투른 두뇌가 조작해 놓은 글이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 세계 여러 나라(사회)에는 조상 또는 신에 대한 제사 풍습이 많다.
   그런데, 그 제사를 지낼 때, 조상이나 신이 와서 그 제사에 참석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그것을 감지한 사람이 단 1명인들 있을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더 보자.


** 3)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창세기 4;8~12)


마침내, <가인>은 인류 최초로 살인죄를 짓고 여호와로부터 유리(流離=정처 없이 떠돌며 빌어먹음)하는 벌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피살당한 <아벨>에 대한 피해 보상은 없다.
다시 말해서, 전지전능하다는 신(神)이면서도 여호와는 죄를 지은 <가인>에게 벌 만을 주고 있을 뿐, 억울하게 피살된 <아벨>을 살려 내지 못하고 있다.
전지전능한 신이라면서도 여호와는 인간보다 나은 것이 없다.
인간들도 범죄자를 처벌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인간은 무능해서 피해자에 대해서 어떤 보상도 해 줄  재주가 없다. 인간의 재주로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 줄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전지전능하다는 여호와는 피해를 보상해 줄 능력이 있을 것이다. 여호와는 "천지를 창조했다."고도 하지 않았는가?
그럴 정도면, 여호와는 억울하게 신체가 파손된 사람을 원상으로 회복시키기도 하고, 죽은 사람을 살려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블(여호와 또는 여호와의 가르침) 그 어디에도 피해를 보상해 주는 장면은 없다. 왜일까? 헐!


또,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 4)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重)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일정한 집과 직없이 없이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님) 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창세기 4;13~14)


<가인>은 살인죄 값으로 유리 걸식을 하는 벌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유리 걸식을 하는 동안 <가인>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이것을 걱정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가인>과 그의 부모인 <아담>과 <하와>, 이렇게 3사람 밖에는 아무도 없을 때였다.
그렇다면, <가인>은 누구에게 죽임을 당할까봐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일까?

두뇌 조직이 엉성했던 종교 사기꾼은 바이블 내용을 꾸며 낼 때, 천지 창조 직후의 모습을 조작해 놓고는 그 사실을 금방 까먹고서 현실로 돌아와 실수하는 장면이다.


** 5) [여호와께서 그(가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7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標=주민 등록증, LD카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창세기 4;15)


천지가 창조되고 나서 살인 사건이 처음으로 발생했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살인자에 대한 처벌이 없었다.
그렇다면, "벌을 7배나 받으리라."라면서 여호와가 직접 쏟아낸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무엇을 기준 하여 7배일까?
이 장면 역시,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조작하던 종교 사기꾼이 실수하는 장면일 뿐이다.
천지 창조 장면을 꾸며 놓고는 그 사실을 금방 까먹고, 살인 사건이 늘 발생하는 현실로 돌아와서 바이블 내용을 조작하다 보니 이런 엉터리 조작극을 만들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호와가 발행하여 가인에게 주었다는 표(標=주민 등록증, ID카드)는 어떻게 생긴 것일까?
또, 그 표(주민 등록증, 또는 LD카드)가 가인을 죽이지 말라는 증표인지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종이도 잉크도 글씨도 없던 시절일 텐데, 그 증표를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을까?

거두절미하고, 바이블(예수교의 모든 것)은 미개 시대에 살았던 종교 사기꾼이 조작해 놓은 악서(惡書)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두뇌 조직이 꽤나 엉성했던 종교 사기꾼이 꾸며 낸 악서가 <바이블>이다. 바이블은 신의 가르침일 수가 없다.
제삼자 (219.♡.30.247) 2020-06-04 (목) 09:33
[예수와 이승만, 누가 더 영광을 얻어 먹은 걸까?]


** 사람이 신(神)의 감동(感動=깊이 느껴 마음이 움직임)을 받으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 옆구리 찔러가면서 절을 받았다면, 그것은 영광일까? 아니면 굴욕일까?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능력으로 길바닥의 돌멩이들이 소리쳐서 "호산나!=만세!"를 외쳐 준 <예수>와 
   3선 출마를 지지하기 위해서 관제데모에 동원된 서울 시내 마차꾼들의 칭송을 받은 <이승만>,
   이럴 경우, <예수>와 <이승만> 중, 누가 더 영관을 얻어 먹은 셈일까? 

(각설하고)

삼위일체(三位一體); 예수교의 神은 성부(여호와), 성자(예수) 그리고 성령(성신), 이렇게 3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1이면서 3이요, 3이면서 1이라는 둥, 그 뜻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예수쟁이는 지금까지 1명도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수교의 신(神)은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 이렇게 세(3) 녀석이면서 또 한(1) 녀석이라고 한단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삼위일체에 대해서 예수교는 통일된 <썰>을 내놓지 못하고 서로 으르렁대고 있다. 
아니, 예수교는 삼위일체가 뭔 말인지 영원히 그 결말을 내지 못하고 서로 물고 뜯게 될 것이다.
예수교의 삼위일체 썰에서 재미있는 이론(?) 하나를 소개해 보기로 하자. 

"성부(여호와)와 성자(예수)를 합해도 <성령>보다 크시지 않으며, 세분을 합해도 어느 한분보다 크시지 않다." 

이 <썰>이야 말로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데 가장 유명한 궤변이 아닌가 싶다. 유식한 척하는 예수쟁이들 중에는 서로가 경쟁적으로 인용하는 썰이라서 한번 해보는 말이다.

그러나, 전혀 아는 것이 1도 없는 존재(인간?)들이 신(神)에 관해서 아무리 묘한 말장난으로 설명을 해댄들 거기에 무슨 가치가 생겨나겠는가?
어쨌든, 어느 귀신의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묘한(?) 말이 장해서 예수쟁이들 사회(특히, 지도자급 예수쟁이들)에서는 경쟁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예수교의 신(神)이란 녀석(들)은 예수쟁이들과 영원한 시간 동안 이런 농담 따먹기 하기가 꽤나 재미있나 보다. 헐!

(또, 각설하고)


예수교의 신(神) 여호와(예수 또는 성령)가 정말로 존재하는 전지전능한 녀석이라면, 77,000줄이나 되는 그렇게 장황하고 황당한 바이블(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남겨 놓을 것이 아니라, 아주 간단 명료한 다른 방법을 세상에 남겨 놓았어야 했다. 

일단, 예수교의 신(神)이라는 녀석들이 세상에 남겨 놓은 가르침이라니까, 여기에서 그 바이블을 잠시 훑어 보는 것도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77,000줄이나 되는 그 바이블 내용을 모두 거론할 수는 없는 일이고....최소한으로 줄여서 다만, 몇 구절 만이라도 인용해서 <썰>을 만들어 보기로 하자.


바이블(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자.


1) [모든 성경(바이블=예수교의 근본 교리)은 여호와(예수 또는 성령과 동급의 신)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16)


예수교의 바이블(예수교의 근본 교리)은 그냥 아무나 제 기분내키는대로 써 놓은 것이 아니라 한다.
바이블은 여호와의 감동(感動=깊이 느껴 마음이 움직임)을 받은 사람에 의하여 씌어진 것이라 한다.
따라서, 바이블(예수교 신의 가르침)은 일점일획(一點一劃)도 하자(瑕疵=어떤 사물이나 일에서 잘못되거나 불완전한 부분)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바이블(예수교의 근본 교리)은 예수쟁이들에게<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한다.

** 바이블(예수교의 근본 교리)은 전지전능하신 신(여호와)의 감동으로 엮어진 책(가르침)이고, 
** 그 바이블을 해설하는 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임명된 목사(또는 신부)들이고,
** 그 목사(또는 신부)의 설교를 듣는 똘마니 예수쟁이들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자들이다.

그렇다면, 예수(교)쟁이들보다 더 완벽한 조직체는 없을 것이다. 그래 안 그래? 아맹 할렐루야!
그런데, 말이다. 예수교보다 더 썩어 문드러진 모습을 하고 있는 조직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2) [내(요한=예수의 제자 중 하나)가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고, 그 보좌 위에 앉은 이(여호와 또는 예수)가 있는데...."] (요한계시록 4;2)


요한(예수의 제자 중 하나)이 어느 날 성령의 감동(感動=깊이 느껴 마음이 움직임)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러자, 요한의 눈에 하늘의 보좌(寶座=임금이 앉는 자리)에 예수(여호와 또는 성령)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이더라고 한다.
마침내, 요한은 요한계시록(바이블 66권 중 하나)이라는 풀기 어려운 요상한 책을 써 놓게 됐다고 한다.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이런 짓을 하게 되는 모양이다.

<신천지 예수교>의 우두머리 되는 어떤 사람은 말했다고 한다. "요한계시록은 나만이 해석할 수 있는 어려운 책이다."라고.
이 말은, 자기(신천지 예수교의 우두머리)가 요한(예수의 제장 중 하나)과 동급이라는 말도 되고, 자기도 요한처럼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고 선포를 한 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지금 요한계시록을 해설하고 있는 제삼자(필자)도 요한과 동급이요, 성령의 감동을 받은 것일까? 그런데, 왜 하늘에 보좌도 없고 예수도 보이지를 않지? 헐!


3) [예언(바이블 내용)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여호외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베드로후서 1;21)


예언(예수교의 교리=바이블)은 어중이떠중이 아무나가 써 놓은 글(책)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 써 놓은 글이라고 한다.
그래서, "바이블은 일점일획(一點一劃)도 하자(瑕疵=잘못이나 흠)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는 말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보드랍과 반지르르하다)고 한다."는 말이 있다.
"바이블은 일점일획도 하자가 없는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의 진리의 말씀이다."라면서 치켜세우는 예수(교)쟁이들의 꼴을 보노라면 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이 세상에 바이블(예수교의 근본 교리)보다 더 비논리적이고, 모순과 궤변과 허구(거짓, 가짜)로 뭉쳐진 <썰>이 또 있을까?

금가루를 쳐 발라가며 아무리 감언이설(甘言利設=남의 비위에 맞도록 꾸민 달콤한 말과 이로운 조건을 내세워 꾀는 말)을 펼치더라도 바이블(예수교의 근본 교리)이 비논리적이고, 모순과 궤변과 허구(거짓, 가짜)라는 엄연한 사실을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수쟁이들의 교언영색(巧言令色=남에게 잘 보이려고 그럴듯하게 꾸며대는 말과 알랑거리는 태도)도 하나도 빠짐 없이 결국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4) *[속으로 아브라함(히브리 족속의 조상)이 우리의 조상이라 생각지 말라. 
    내(예수)가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리라."] (마태 3;9) 

   *[(예수의)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태 21;9)

   *[(예수)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누가 19;40)


위에 열거된 바이블 3구절은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하고 굉장한가를 나타내 주고 있다.

예수가 할 일 중에는 "인간의 죄를 대신 걸머지고 대신 죽어 주어야 되는 막중한 일이 있다."고 한다.
이 막중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도성인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만천하가 떠들썩하도록 소문이 울려퍼져야 그 가치가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침내, 예수가 자기의 임무를 실천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성으로 들어서는 날이 왔던 모양이다.

제자들이 예수를 나귀에다 태우고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며 환호성을 치며 퍼레이드(parade=축하 행진)를 펼쳤다는 것이다.
이 때, 사람들이 예수를 칭송하지를 않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땅바닥에 널려 있는 돌멩이들이 소리를 쳤을 것이라 한다.
뿐만 아니라, "돌멩이로 아브라함(히브리 족속의 조상=예수쟁이들의 조상)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예수의 아비 여호와에게는 있다."며 자랑을 곁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을 해보자.
돌멩이로 사람을 만들 수 있는 그 좋은 재주가 있고, 돌멩이들로 하여금 "호산나, 찬송하리로다!"하며 소리를 지르게 할 수도 있는 재주(능력)를 가진 자가 예수교의 신(神)이라고 하자.
그런데, 그런 재주와 능력을 가진 녀석들이 세상을 겨우 이런 지경으로 이끌고 있다 이거지?
그래서, 예수(교)쟁이들이 저토록 썩어 문드러진 모습을 답습하고 있다 이거지?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찾을 수가 없네!

"신(神)이란 녀석이 감동(感動)만 시키면, 돌멩이들이 소리를 지르게도 할 수 있고, 그 돌멩이들로 사람도 만들 수 있는 재주(능력)를 가졌다면서 세상을 이처럼 비극적으로 이끌면서 예수교가 저처럼 썩어 문드러진 모습을 하고 있게 만든다."고라? 대박!이야, 헐!이야?


5) *[태초에 여호와(예수교의 신 중 하나)가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여호와가 그 지은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세기 1;31)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께서 천지(天地=세상 또는 우주 만물)를 창조했다고 한다. 그 지으신 결과물(피조물)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지구 덩이 하나만도 아니요, 그렇다고 태양계 하나 정도가 아니라, 천지(天地=세상 만물)를 창조했다고 한다. 얼마나 크고 넓고 많은 것들이 여기에 포함되는 것일까?

그런데, 말이다. 칭기스칸! 그러니까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통일했던 칭기스칸이 "독도는 내 땅이다."라고 큰 소리를 치며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될까?
아니다. "천지(우주?)를 창조했다."는 녀석이 77,000줄이나 되는 궤변(바이블)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제 자랑으로 꼴값을 떨며 우쭐대는 여호와(예수 또는 성령을 포함해서)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될까?


** <코로나19> 때문에 전국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또는 생활 속 거리두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럴 때, 예수쟁이들이 자기는 물론 남들까지도 역병에 전염되건 말건 "내가 알게 뭐야?"하면서 
(1) 사회 질서를 무시하고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에게 예배를 드린답시고 떼거리로 모이는 짓과 
(2) 사회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교회의 모임을 자제하는 경우 중, 어느 예수쟁이의 행위가 여호와(또는 예수)에게 더 영광이 될까?

죽음을 무릅쓰고, 전염병이 창궐하건 말건, 남이야 죽던 말던, 예배를 드린답시고 꾸역꾸역 떼거리로 모여들어야 여호와(또는 예수) 녀석에게는 더 큰 영광이 되겠지?
예수쟁이들의 저 더러운 행패를 무엇으로 제재할 수가 있을까?






[예수쟁이 모두를 반드시 돌로 쳐죽여라?]-헐!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자.


[남자나 여자가 신접(神接=몸에 귀신이 내려 접함)하거나 박수(남자 무당)가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치라. 그 피(죄?)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레위기 20;27)


1) 예수교는 유일신(唯一神) 종교이다.
그런데, 어느 신(神)이 또 있어서 신접(神接)을 하는가?

2) 신(神)은 인간이 조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신접(神接=신이 인간의 심신에 들고 나는 일) 역시 인간의 뜻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책임이 아닌 신접(神接) 문제를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가?

3)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 의하면 신(神), 악신(惡神), 영(靈), 천사(天使) 따위들은 여호와(또는 예수)가 부리는 똘마니들로 되어 있다.
또, 여호와(또는 예수)는 그 똘마니들을 사람 속에다 집어넣기도 하고 빼내기도 한다. 따라서, 신접(神接=귀신의 들고 남)은 여호와(또는 예수)가 벌이는 장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 보고 뭘 어쩌라고? 장난(못된 짓)은 여호와(또는 예수)가 하고, 그 벌(죽임)은 인간이 받는 격이다. 이런 억지가 여호와(또는 예수)의 섭리인가?

4) 예수는 사람에게 들어가 있는(신접되어 있는) 귀신을 빼내어 돼지 200마리에게 신접(神接)시키는 장면이 있다. (누가 8;26~33)
그러자, 신접된 돼지 200마리들은 바다로 달려들어가 모조리 빠져 죽는다. 사람이거나 돼지이거나 신(神)을 조종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책임(죽음)을 사람과 짐승에게 묻는 여호와(또는 예수)의 방법이 타당한 짓일까?

5) 예수교의 교리(바이블)에 의하면 "예수쟁이들은 성령(聖靈)을 받아야 된다"는 말이 있다. (디도서 3;6)
실제로, 예수도 그 성령을 받았으며(누가 4;1), 예수쟁이들 중에도 그 것을 받았다는 사람 있다. 성령을 받는 일도 신접(神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령을 받은 자들도 돌로 쳐죽여야 합당한 처사가 아닐까? 이럴 때는 예외인가?

6) 신접(神接)한 사람을 죽이면, 그 죄값(피=살인죄)은 죽인 자에게 있지 않고 죽은 자에게 돌아간다는 논리도 재미있다. 예수교의 교리는 이 세상 이야기가 아니던가?
어쨌든,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사람 죽이는 짓을 빼면 할 일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 이러나 저러나, 이유야 어떠하든, 여호와의 사람 죽이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 것일까? 이것이 전지전능한 신의 섭리인가? 이것이 예수교식 사랑인가? 대박!
동양 사상에 "신검(神劍)은 불살생(不殺生)이다."라는 말이 있다. 예수교는 이 사상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8) 교리(敎理=바이블)가 옳든지, 예수교의 모습(과거와 현재)이 옳든지, 적어도 둘 중에 하나쯤은 옳아야 억지로라도 보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교의 교리와 모습은 어느 것도 그럴싸한 것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될까?
예수(교)쟁이들의 변명은 무엇일까? 듣고(알고) 싶다.

9) 마지막으로, 목사(또는 신부)의 자격이 주어질 때에도, 장로, 권사, 집사 등등의 직책이 주어질 때에도 그리고, 정식 예수쟁이가 될 때에도 "성부(여호와)와 성자(예수)와 성령(성신)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예수쟁이들 전체 역시 성부, 성자 및 성령이라는 3마리의 신접(神接)에 의하여 조직이 짜여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교 전체가 송두리 째 돌로 쳐 죽여야 될 대상이라는 결론이잖아? 헐! and 대박!

목사(신부), 장로, 집사는 물론, 예수쟁이 전체는 성부, 성자 및 성령 이렇게 3마리의 신(神)이 접한 무당 종류가 분명하다.
따라서, 예수쟁이들 전체는 모조리 돌로 쳐 죽여야 될 대상들이다. 바이블(레위기 20;27)의 말씀이다. 대박!






[너, 예수쟁이로구나?]


한 때, 말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서, "너, 빨갱이냐?" 또는 "너, 예수쟁이로구나?"라고 핀잔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 말이 많은 자는 빨갱이 아니면 예수쟁이일 가능성이 크다.
말이 많다는 것은 뭔가 결함이 많은 것을 은폐하려는 수작이다. 그리고, 실제로 말이 많으면 쓸 데 있는 말이 별로 없는 법이다.

그래서 또, 말이 많은 사람을 향하여, "너 빨갱이냐?" 또는 "너 예수쟁이로구나?" 라고 했을 때, 이 말은 빨갱이와 예수쟁이는 이 세상에 써먹을 데가 별로 없다는 말도 포함된 것이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자.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한 21;25)


예수가 공생애(公生涯=개인의 생애 중 공무나 공공사업에 종사하는 기간)를 시작한 때가 30살 쯤 됐을 때라고 한다. (누가 3;23) 그리고, 33살 때 쯤에 십자가에 달려서 처형된 것으로 되어 있다. 
전지전능하다는 신의 부자(父子=여호와와 예수)의 행적이 모두 이렇게 정확하지를 못하고 어림짐작으로 전해지고 있다. 왜일까?

그런데, 이런 예수의 3~4년의 공생애 동안 행하신 일(가르침과 활동 내역)이 너무도 많아서 만약 그것이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 만큼 커다란 창고(도서관)가 있더라도 그 책을 모두 진열할 수가 없을 것이라 한다. 헐!
신(神)이란 녀석이 되어가지고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인간에게 알리는 방법이 그렇게도 없어서 그토록 많은 수다(쓸데없이 말수가 많음)를 떠들어 놓았는가?

요한(복음)이라는 책에서 예수가 떠드는 말의 특징을 보면, "내(예수)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라는 말을 무수히 발견할 수가 있다.
얼마나 자신 없는 사기꾼 소리였으면, <진실로 진실로>를 거듭 거듭 강조하고 있을까? 세상에나!
그런데, 이렇게 떠들어 놓은 예수의 행적을 모두 책으로 엮는다면, 세상 만큼 커다란 창고(도서관)가 있더라도 책을 모두 넣어 둘 수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아맹!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더 보자. 그러자.


[모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은 여호와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여호와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후서 3;16~17)


세상 일이란 것이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신(神)이신 여호와(또는 예수)의 감동으로 되는 것이라면 바이블(신의 가르침)이 무엇에 필요할까?
여호와(또는 예수)의 감동이 미치는 곳에 해결되지 않을 것이 없을 텐데, 구태여 "이 세상이라도 기록된 책을 둘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많은 수다(쓸데없이 말수가 많음)를 쏟아 놓을 이유가 무엇일까?"

그래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본보기(예수의 가르침)" 즉, 바이블이 있어서 예수교의 역사와 현실이 저토록 썩어 문드러진 시궁창인가? 헐!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에다 글로 남기는 경우에는 감동을 주었다면서, 실질적인 예수쟁이들의 언행에는 그 흔한 감동을 주지 않는 모양이지? 예수교가 썩어 문드러지는 걸 보면!
어떤가? 그래도 바이블이 신의 감동(또는 언행)이 담긴 신의 가르침이라고 믿어지는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이 저렇게 두껍다는 것은 예수와 여호와가 가짜라는 증거일 뿐이다.
현재의 바이블 두께가 두꺼운 것도 문제인데, 저 바이블 두께 속에는 아직도 예수의 활동(언행)이 덜 기록된 것이라 하니.....아이구 두(頭)야!.


누군가 이 제삼자(필자)의 바이블 진단을 변명하려고 할 텐데, 이 변명이 또한 예수와 여호와가 허구(虛構=거짓, 가짜)임을 증명해 주는 좋은 현상이다.
예수교의 모든 것은 어떤 방향에서 조명하여도 통째로 허구, 모순, 궤변 아닌 것이 없으며, 여기에다 세상의 모든 악(惡)까지 포함하고 있는 복마전(伏魔殿=마귀가 숨어 있는 소굴)일 뿐이다.

"예수교가 있는 곳에 평화는 없(었)다. 그렇다.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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