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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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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인원 : 5,163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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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241) [바이블에 없는 말 보태면 지옥간다]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1-05-01 (일) 09:18 조회 : 4610
(241) [바이블에 없는 말 보태면 지옥간다]
 
 
["이스라엘(예수쟁이들)아,
이제 내(여호와)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規例)와 법도(法度)를 듣고 준행하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加減=보태거나 빼지)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신(神)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신명기 4;1~2)
 
 
여호와가 명한 규례와 법도(바이블 내용)는 가감(加減)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바이블에 없는 말을 보태거나, 있는 말을 빼면 지옥에 보내겠다는 말이다.
여호와의 말(명령)이다.
 
 
그런데, 정작 예수는 율법을 완성하려고 왔다면서 여호와의 규례와 법도를 풍비박산 시켰다.
 
심지어, 예수쟁이(특히 신학자와 목사 신부)들은 바이블에 없는 말을 쏟아 내기도 하고, 바이블에 있는 말을 감추기도 한다.
 
바이블(여호와의 규례와 법도)은 원래 히브리말로 기록되었던 것인데, 나중에 그리스말로 번역된다.
그런데, 이 번역 과정에서 오역(誤譯)이 많게 된다.
다시 말해서, 그 오역(誤譯)이란 것도 여호와의 말이 잘못 번역되어 결국은 내용이 가감도 되고 변질도 되었다는 말이다.
 
심지어, 예수는 오역으로 가감, 변질된 내용을 인용하여 떠들기도 한다.
가감해서는 안 된다는 여호와의 규례와 법도는 우선적으로 예수가 철저히 가감, 변질시켰으며, 그보다 앞서서 바이블 번역자들이 그런 짓을 했다.
 
이어서, 모든 예수쟁이들이 제 입맛대로 변용하고 있다.
수만 가지가 넘는 예수교의 종파, 이것도 바이블 내용을 가감, 변질시킨 모습이다.
예수교는 원래의 모습도 마귀요, 가감 변질된 모습도 마귀의 소리뿐이다.
 
예수교의 근본적 잘못은 그 신이 허구(虛構)로서 문제요,
그 신의 명령을 가장 철저하게 어기는 자들이 바로 예수쟁이들이라는 점이다.
예수교는 전후 좌우 위아래 어느 쪽에서 조명하여 보아도 좋게 보아 줄 아무런 가치를 찾아 낼 수가 없다.
 
바이블 내용(여호와의 규례와 법도)에 의하여 다시 한 번 더 말하겠다.
 
<바이블 내용을 가감(加減)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다른 말로 하면, "바이블 내용을 자기 입맛에 맞도록 해석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성령을 받아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는 말도 바이블 내용을 가감(加減)하겠다는 수작일 뿐임을 알 수 있다.
 
예수쟁이들의 모든 것은 결국 바이블 내용을 모르면서 떠들어지는 궤변이다.
예수교는 얼빠진 자들의 집단일 뿐이다. 무엇을 더 말하랴!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1-05-13 (금) 07:07
[기독교는 예수교가 아니다]


기독교(基督敎)는 예수교가 아니다. 차라리 불교에 가까운 종교라고나 할까!!!

기독(基督)이란, 뿌리를 살피다, 내면을 살피다, 근본을 살피다, 자기를 살피다, 
등등의 의미를 가졌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근본 또는 자기의 내면을 살피는 종교가 과연 어느 종교일까?
그것이 예수교일까? 그것이 과연 예수교일까?
예수교는 자기를 버리고(잃고), 덮어 놓고 여호와(예수)를 받드는 종교이다.

자기를 살피기는 커녕, 아예 자기가 없고 남(신)만 있는 종교가 예수교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자기가 없는 종교가 어떻게 기독교(基督敎)란 말인가? 
기독교(基督敎)는 예수교가 아니다.

따라서, 구태여 기독교(基督敎)라는 이름을 가진 종교가 있을 것이라면, 
그것은 예수교가 아니라, 불교라야 맞는 이름이다.

기독교(基督敎)=불교이다.
기독교(基督敎)는 예수교가 아니다. 
제삼자 2011-05-16 (월) 15:12
[3 가지 웃기는(?) 이야기]


           [1]

60~70 살은 먹어 보이는 늙은이가 나쁜 짓을 하고 있었다.
유식한 말로 <현행범> 짓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청년이 이를 보게 되었다.

"어르신, 그런 일을 하시면 안 됩니다."
"젊은 것이 뭘 안다고, 어른 하는 일에 간섭인가?"

이렇게 시작된 늙은이와 젊은이 사이의 대화는 마침내 싸움이 되고 말았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보아 늙은이가 불리한 싸움이었다.
그러자, 늙은이가 말했다.

"이 놈, 네 놈은 애비 에미도 없는냐?" 하며 언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구경꺼리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판에서 나이가 무슨 상관일까?



          [2]

한 번은 이런 구경꺼리도 있었다.

아기를 업은 30 대 초반의 젊은 여자와 20 대의 대학생 사이에 언성을 높이며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여기에서 싸움의 발단과 내용까지는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싸움의 내용으로 보아 30 대 여자에게 잘못이 많은 것 같았다.
상황이 점점 불리해지자, 여자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왔다.

"야, 너는 애비 에미도 없냐? 어디다 삿대질하며 큰 소리야."
".........................."


옳고 그름을 논하는 자리에서 나이가 왜 튀어 나올까?
(아직, 이런 말을 할 나이도 아니고.....)



          [3]

<겸손>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 자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덕스러운 낱말이다.
<교만> 겸손의 반대 쪽에 우뚝 서 있는 참으로 고약한 성품이 아닐 수 없다.

예수교(바이블 내용과 예수쟁이들의 주장 등등) 속에
흔하디 흔하게 굴러다니는 것 중에 다음 같은 말들이 있다.

"여호와(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교만> 때문이다." 
"하나님(예수교의 신)의 말씀은 <겸손>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등등....

참이냐 거짓이냐, 옳음이냐 그름이냐를
논하는 마당에서 <교만>과 <겸손>이 왜 필요할까?


참고;
여호와(예수)의 존재와 능력을 믿는 자들은 그 신 앞에서 <겸손>해야 할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예수)를 가짜라고 확신하는 사람에게
여호와(예수) 앞에서 <겸손>해야 된다는 요구는 정말로 웃기는 일이다.

더 참고;
그런데, 예수쟁이들 중에도 여호와(예수)에게 <겸손>한 자는 없다는 사실이다.
<겸손>은 커녕, 여호와(예수)를 제 집 종부려 먹듯하며, 지랄발광들을 한다.
아니, 사실 상 예수쟁이들 중에 여호와(예수)를 믿는 자는 없다. 단 한 명도 없다.
제삼자 2011-05-16 (월) 17:33
[사람은 포악(暴惡)해야 된다. 하모!]
 


(1) 여호와는 전지전능해야 된다.
    왜냐 하면, 전지전능하지 못하면 천지를 창조하고, 그것을 임의로 다스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호와는 전지전능해야만 되는 것이다.

(2) 예수는 죄가 없어야 된다.
    왜냐 하면,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죄 많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예수가 죄인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 인류를 위해서 예수에게 죄는 없으면서 은혜가 많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3) 인간은 포악(暴惡=사납고 악함)해야 된다.
    왜냐 하면, 여호와(예수 또는 예수쟁이)의 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사랑을 베풀어야 하고, 예수는 은혜를 베풀어서 인간을 구원해야 되는데,
    만약, 인간이 포악해지지 않는다면 여호와(예수)의 그 사랑과 은혜를 써 먹을 곳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반드시 포악해져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여호와의 사랑, 예수의 은혜 그리고 인간의 포악이 한 통 속에 어울어져서
    여호와(예수)에게는 할 일과 영광이 생산되고, 인간에게는 행복한 노비 생활이 펼쳐지는 것이다.

(4) 서울에 거주하는 예수쟁이들은 서대문에서 동대문 쪽으로 걸어가야만 된다.
    왜냐 하면, 남해에서 꽁치가 많이 잡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해에서 꽁치가 잡히지 않게 되면 숙정문에서 숭례문 쪽으로 걸어가면 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그러게 말이야. 나도 몰라.
 
(5) 한반도는 반드시 통일되어만 한다.
     왜냐 하면, 남북이 분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일된 뒤에는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것도 무슨 말이냐고?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 물어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어 보도록....
 
제삼자 2011-05-19 (목) 18:58
[자신은 실천 못하면서 남 가르치기]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예수(여호와)의 가르침이다. 정말로 멋진 가르침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여호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 6 ; 3~4)

자랑하지도 말고 생색을 내지도 말고 공치사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분명하다.
제법, 멋진 가르침이다. 예수가 떠들어 놓은 말이다.

다음을 더 보자.


[나는 너(이스라엘)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신 여호와니라.]

(출애굽기 20 ; 2)

애굽(이집트)에서 종살이로 고생하던 이스라엘 족속을 건져 낸 자가 바로 자기라고 우쭐대며 자랑하는 여호와의 말이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친 자의 자신에 대한 공치사는 세상이 떠나가도록 시끄럽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여호와=천당)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 14 ; 6) 

예수는 말한다.

자기만이 인간을 구원하여 천당에 보낼 수 있는 절대자라고.
결국, 예수는 자신의 직책과 업적에 대한 공치사가 하늘을 찌른다.
자기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큰 소리 탕탕친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친 예수는 자기 자랑에 정신이 없다.


하나만 더 보기로 하자.


[태초에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 ; 1)


역시, 천지를 자기가 창조했노라고 떠벌이는 여호와의 자랑이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외손이 모르게 하는 방법 중 하나가 커다란 소리로 떠벌이는 것인가 보다.

예수교의 경전이라는 <바이블>!
바이블 내용은 예수와 여호와 녀석이 정신 없이 떠들어대는 제 자랑 이야기이다. 


MIT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자랑을 하고 싶다면 누구에게 해야 좋을까?
아직 걸음마도 못하는 아기(그것도 남의 집 아기)에게 자랑을 해야 할까?
초등학교 문턱도 넘어 보지 못한 촌노파에게 자랑을 해보면 어떨까?

그렇다.
좋은 짓은 못되지만, 구태여 자랑이 하고 싶다면, 적어도 자기 수준과 비슷한 상대를 만나서 자랑을 해야 명예스럽든지 욕을 쳐 먹든지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천지를 창조한 자 또는 인간을 자기 마음대로 천당에도 보내고, 지옥에도 보낼 수 있는 전지전능자 쪽에서 사람을 향하여 자기 자랑(바이블 내용 전체)을 늘어 놓는다면, 칭찬을 들어야 될까? 욕을 얻어 쳐 잡숴야 될까?

특히,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치는 자가 걸음마도 못하는 아기(즉 무능한 인간)를 상대로 제 자랑을 줄기차게 쏟아 내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제삼자 2012-07-12 (목) 14:21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의 말이다.
위의 말이 성립되려면,
"네 불신(不信)이 너를 구원하지 못 하였다."라는 말도 있어야 된다.

그런데, 이제부터 시작하려는 이야기는 믿음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신도 아닌,
상황 판단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엉거주춤 대중 잡아서 떠드는 허구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교의 모든 것이다. 


바이블을 보자.


[예수께서...한 촌(村)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10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10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9)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누가 17;11~19)


1) 예수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가다가 어느 촌에 들어섰다.
마침, 문둥병자 열(10)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2) 문둥병자 10  사람은 소리 높여 외쳤다고 한다.
"예수 선생이시여, 우리를 긍휼히(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를 부르는 호칭으로 보아서도, 문둥병자들은 예수에 대하여 정확히 아는 것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예수 선생이시여."는
예수를 높여 주는 말이지 신(神=여호와)의 아들임을 알고서 하는 말은 아니다.


3) 예수가 10 사람에게 말했다.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여 주어라."라고.
다시 말해서,
"문둥병을 고쳐 줄 테니, 그 기적 현상을 제사장에게 보여 주어 그들의 코를 납짝하게 만들어 주라."는 뜻이다.

예수는 기적을 보여 달라는 사람들에게는 악담과 저주로 책망하면서 보여 주지 않는다.
그러다가, 엉뚱한 곳에서 기적을 일으키면서, 이 기적 현상이 목격한(체험한) 사람들에 의하여 널리 전해지기를 바란다.
여호와, 예수, 그리고 예수교의 모든 것이 바로 이런 식으로 꾸며져 있다.

이것이 100 % 속임수가 아니고 무엇인란 말인가!

여호와(예수)의 기적질이 일반 사람들의 감각에 보여지는 적은 없다.
선지자, 목사(신부) 등등의 특수한 사람에게만 기적 또는 계시 따위를 보여 주고, 이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로만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예수교는
말로서 신(여호와=예수)이 존재하고,
말로서 증거하고,
말로서 전도하고,
말로서 믿고,
말로서 은혜와 사랑을 나누고,
말로서 천당에도 가고,
말로서 영생도 한다.

예수교 속에서 일반인들에게 실물(實物)로서 보여지기도 하고, 오고 가기도 하는 것은 역시 돈뿐이다.
예수교 안에서 말로서가 아닌,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돈의 움직임뿐이다.

한 가지 더 있기는 있다.
여자들의 고깃덩이(?)가 목사(신부)에게 상납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4) 10 사람의 문둥병자들은 예수가 시키는 대로 제사장에게 보여 주려고 가는 도중에 병이 다 나았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문둥병자들은 자신들의 병이 고쳐지기도 전에 예수를 떠나 제사장에게 보여 주기 위하여 길을 떠난 셈이다.

문둥병자들은 자기들의 문둥병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하여 길을 떠났다는 말인가?
이런 상태에서 길을 떠났던 문둥병자들의 행동은 이해될 수가 없다.


5) 길을 가던 도중에 문둥병이 나은 것을 알게 된 10 사람 중, 사마리아인(이방인) 한 사람만이 예수에게 돌아와서 고맙다고 사례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예수 왈,
"다른 9 사람은 어디로 가고, 너 혼자만 와서 여호와께 영광을 돌린단 말이냐?"

그런 다음, 예수는 말한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렇다면, 예수에게 돌아와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은 배은망덕한(믿지 않은?) 9 사람의 문둥병은 무슨 힘으로 고쳐졌을까?

예수에게 돌아와서 사례한 문둥병자는 믿음에 의하여 고쳐졌다고 했다.
믿지 않은 9 사람의 문둥병이 고쳐진 이유는 무슨 힘의 결과인가?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 9 사람의 문둥병자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다.

아니,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 문둥병이 고쳐진 1 사람도 사실은 예수를 믿지 않았다.
10 사람 모두는 예수가 정확히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가 말한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이다.
바이블 내용(여호와=예수의 언행) 중에 이상과 같은 궤변 아닌 것을 찾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하면,
예수교의 모든 것 즉, 바이블, 여호와, 예수, 예수쟁이들 중에 무뇌충이라는 별명을 얻기에 부족한 자는 없다는 말이다.

사실상,
예수쟁이 중에 여호와(예수)를 정확하게 알고서 믿는다고 떠드는 자가 있을까?
 

6) 인간이 불행해지는 이유는 많다. 그 중의 하나가 병고(病苦)이다.
그런데, 전지전능을 표방하는 예수(여호와)는 사람의 병을 고쳐 주는 일에 <믿음>을 요구하고 있다.
꼭 그런 식으로 해야만 되는가?
 
예수가 이 세상에 온 자체로서 이유 불문하고 인간의 병고가 없어지면 무엇이 잘못 되는가?
그 좋은 능력으로 2,000 년 전, 중동 지방의 조그만 촌 구석에서 그게 뭣하는 짓인가?
그러고도, 신(神)의 자격을 유지하고 싶은가?


7) 바이블(여호와)에 의하면, 문둥병자는 고쳐 주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한(더러운) 자'로 취급하게 되어 있다(레위기 13;3).
이것이 여호와의 지엄한 명령이요 뜻이다.

그런데,
예수는 어찌하여 자기 아비의 뜻을 거역하고, 인간의 병을 고쳐 주고 있을까?
영원히 불변한다는 여호와의 말이 변질되었는가?
다시 말하지만,
예수의 아비 여호와의 뜻은 병자를 '부정한 자'로 치부하는 것이지 그 병을 고쳐주는 게 아니다.

점 하나라도 땅에 떨어짐 없이 다 이루어진다는 여호와의 진리의 말씀은 어느 것일까?
사실은 오늘의 예수쟁이들처럼, 예수도 바이블 내용을 제대로 알고 있지를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도 제 아비의 뜻을 모르는 상태에서 반대로만 적용하며 살았던 것이다.

예수 이후,
예수교는 전 세계적으로 의료 사업을 크게 떠벌이며 자랑하기를 즐기고 있다.
그러나, 의료 사업이야 말로 여호와의 뜻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짓임을 아는 예수쟁이는 없는 것 같다.
기가 막혀서 이 쪽으로 건 저 쪽으로 건 더 할 말을 못하겠다.


8) 바이블은 신구약(新舊約)을 불문하고 모순과 궤변으로 범벅되어 있다.
거기에다 천륜과 인륜을 어기는 악(惡)으로 얼룩져 있다.
신(神)의 언행이 담겨 있는 말(글)이라고는 할 수가 없다.

또, 바이블에 준하여 만들어진 예수교의 역사(히브리 역사 포함)와 현재의 모습은 장난의 말로도 옮길 수 없을 만큼 잔인하고 더럽다.


9) 아직 인간의 능력으로 신(神)의 존재 여부를 가려 낼 수는 없다.
만약 어느 때인가 신의 존재와 그 능력이 규명된다 하더라도 그 신이 여호와 및 예수일 수는 없다.
그것은 바이블이 이미 명약관화하게 판가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블 속에 등장하는 신(神)과 그 내용은 모두가 허구(虛構)이다.
크게 양보하여 그 신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 신은 지극히 간악한 악신(惡神)일 뿐이다.
여호와(예수)는 없는 신, 가짜 신, 악독한 신일 뿐이다.


10) 현재까지 세상에 굴러다니고 있는 예수교의 존재 이유는 그 속에서 오고 가는 돈(또는 여자의 몸뚱이))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교에다 돈(재물)을 바치는 자들은
악의 방관자,
악의 조장자 또는
지적 수준이 아주 낮은 바보 아니면
터무니없는 욕심(천국=영생 복락)으로 마음이 흐려진(어두워진) 어리석은 자들일 뿐이다.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조용히 그리고 차분히 자신을 돌아다 볼 일이다.
우주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이며, 인간 역시 여기에 소속된 존엄한 귀한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결코 어느 신의 종이 아니다.

앞으로의 인류 사회는
<믿음>을 바탕으로 사람을 착취하고, 바보 만드는 악의 소굴 예수교를 물리치고,
<아는 것>을 바탕으로 진리를 찾아가는 그런 세상이 도래해야 옳다.
제삼자 2012-08-25 (토) 09:14
[바이블 내용은 가감하면 안 된다]
 
 
[이스라엘(예수쟁이들)아,
이제 내(여호와)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規例)와 법도(法度)를 듣고 준행하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加減)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신(神)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신명기 4;1~2)
 
 
여호와가 명한 규례와 법도(바이블 내용)는 가감(加減)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여호와의 지엄하신 명령이다.
 
그런데, 여호와의 아들이라는 예수 녀석은 율법(바이블)을 완성하려고 왔다면서 규례와 법도를 풍비박산시켜 놓았다.
그리고, 예수쟁이(특히 신학자와 목사 신부)들은 바이블에 없는 말을 보태서 쏟아 내기도 하고, 바이블에 있는 불리한 내용은 슬쩍 감추기도 한다.
 
바이블 내용은 원래 히브리말로 기록되었던 것인데, 나중에 그리스말로 번역된다.
그런데, 이 번역 과정에서 오역(誤譯)이 많게 된다.
다시 말해서, 그 오역(誤譯)이란 것도 사실은 여호와의 말이 잘못 번역되어 결국은 내용이 가감도 되고 변질도 되었다는 의미이다.
 
심지어, 예수는 오역으로 가감, 변질된 내용을 인용하여 떠들기도 한다.
가감해서는 안 된다는 여호와의 규례와 법도는 우선적으로 예수가 철저히 가감, 변질시켰으며, 그보다 앞서서 바이블 번역자들이 그런 짓을 했다.
 
이어서, 바이블 내용은 모든 예수쟁이들에 의하여 제 입맛대로 변용되고 있다.
수만 가지가 넘는 예수교의 종파, 이것도 결국은 바이블 내용을 가감, 변질시킨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예수교는 원래의 모습도 마귀요, 가감 변질된 모습도 마귀일 뿐이다.
 
예수교의 근본적 잘못은 그 신(여호와=예수)이 허구(虛構)라는 사실이 문제요,
그 신의 명령을 가장 철저하게 어기는 자들이 바로 예수쟁이들이라는 점이 문제이다.
예수교는 전후 좌우 위아래 어느 쪽에서 조명하여도 전혀 좋게 보아 줄 아무런 가치를 찾아 낼 수가 없다.
 
바이블 내용(여호와의 규례와 법도)에 의하여 다시 한 번 더 말하겠다.
"바이블 내용을 가감(加減)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여호와의 명령이다. 
다른 말로 하면, "바이블 내용을 유권해석(有權解釋)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성령을 받아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는 말도 바이블 내용을 가감(加減)하여 적당히 변질시키겠다는 엉큼한 수작일 뿐임을 알 수 있다.
예수쟁이들의 모든 것은 결국 바이블 내용을 모르면서 떠들어지는 궤변이다.

결국, 예수교는 대다수 얼빠진 멍텅구리들과
이들에게서 재물을 비롯하여 각종 혜택을 빨아 먹으려는 흡혈귀가 어우러진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을 더 말하랴!
제삼자 2012-10-17 (수) 16:34
평준화 이후 CEO 가장 많이 배출한 고교는?
기사등록 일시 [2012-10-17 15:32:53]
제삼자 2012-11-07 (수) 16:26
[여호와의 증인(證人)]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면, 논리적으로 성립될 수 있는 말일까?

여호와 가라사대,
"여호와(신?)를 알 수 있는 인간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여호와의 증인이 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존재와 그 능력을 알게 하라."

사람은 여호와(신?)를 알 수 없는 존재라 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라도 신의 증인 노릇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르는 자가 증인이 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따라서,
"너(사람)는 여호와의 증인이 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존재와 그 능력을 알게 하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는 궤변일 뿐이다.

바이블을 보자.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

(이사야 43;8)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가 말했다고 한다.
"사람은 눈이 있어도 소경이며,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라."고.
그렇다. 인간은 지극히 미련하고 무능해서 여호와(예수)에 관한 한 사실상 소경이고, 귀머거리이다.

그런데, 이렇게 못나 먹은 인간들을 무엇에 써 먹으려고 그러는지, 여호와는 그 못난 인간들을 여호와(예수) 앞으로 이끌어내라고 한다. 


다시 말한다. 사람 중에 신(神=여호와)에 관한 한 소경 아닌 자가 있으며, 귀머거리 아닌 자가 있을까?
제대로 된 사람이거나 양심적인 지성인이라면 신(神)에 대하여 입을 열 수가 없어야 정상이다.

따라서, 신앙 생활은 주관적인 문제로서 조용히 자신을 닦는 일이다.
이것이 밖으로 드러날 때, 그것은 이미 신앙이 아니며, 이웃을 속이는 악(惡)이다.


2) [열방(列邦)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會集)하였은들, 그들 중에 누가 능(能)히 이 일(신에 관한 것)을 고하며, 이전 일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그들로 증인(證人)을 세워서, 자기의 옳음을 나타내어, 듣는 자들로 '옳다' 말하게 하라."]

(이사야 43;9)


전세계(열방)의 인간이 다 모여 회집(會集)을 하며, 평생 동안 갑론 을박(甲論乙駁)을 하더라도 신(神=여호와)에 관한 일을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은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여기에 잘못은 없는 것이다. 여호와도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증인(證人)을 세워 옳음을 나태 내어, 듣는 자들로 하여금 "옳다"고 말하게 하란다.
다시 말해서, 사람 중에 여호와(예수)에 대한 증인을 세워서, 여호와(예수)에 대한 신앙 생활이 옳음을 증거하여 "옳다"고 말하게 하라는 것이다.


어느 누가 증인(證人)이 되어 '옳음'을 나타낼 수 있다는 말인가?
금방, 여호와 쪽에서도 인간은 모두가 소경이며, 귀머거리라고 지목하지 않았던가?
그래 놓고는 금방 다시 인간에게 증인이 돼 달라고 강요하고 있다.
되는 말이라고 생각되는가?


예수쟁이나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바이블 내용을 떠들어대면 그것이 '옳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된다는 뜻인가?
그리고, 예수쟁이들의 그 말을 듣고서 "옳다"고 말하면, 그것이 신(神)에 관하여 알게되고 믿어지는 결과인가? ㅎㅎ로다.

밖으로 드러난 예수교의 모든 모습은 혹세무민(惑世誣民)에 목적을 둔 악(惡)일 뿐이다.


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證人), 나의 종으로 택(擇)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여호와)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前)에 지음 받은 신(神)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後)에도 없으리라."]

(이사야 43;10)



신(神)에 관한 한 모두가 소경이요, 귀머거리라고 정론(正論)을 펴다가 "너희는 나(여호와)의 증인(證人), 나의 종으로 택(擇)했다."라니, 그게 무슨 논법(論法)인가?

어떤 종류의 인간이 여호와의 증인(證人)이고, 종으로 택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람 중에 어느 누가 "신(神=여호와)을 알고, 믿는다"는 말인가? 논리의 비약(飛躍)치고는 너무 심했다.

또, "여호와 외에는 전에도 지음 받은 신(神)이 없고, 후에도 없다."고? 그것을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여호와가 한 말이면, 인간이 터득할 수 없는 분야일 것이고, 바이블을 쓰고 있는 '이사야(사람)'의 말이면, 이보다 더 큰 사기꾼이 있을까?
한 마디도 건질 것이 없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일 뿐이다.


4)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救援者)가 없느니라.
내가 고(告)하였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神)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證人)이요, 나는 신(神)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사야 43;11~12)


결국, 본론(本論=근본)에는 접근조차 해 보지도 못하고, 거죽에서 빙빙 돌다가, "나는 전지 전능한 신 여호와이고, 너희는 증인이다."로 결론에 도달한다.
도대체, 이렇게 길게 떠들어 놓은 말 중에 신(神)을 보여 준 장면은 어느 것이고, 증인이 될 수 있는 증거는 어느 것인가?

그냥 말을 길게 늘어 놓으면, 그 자체가 진리인가? 장난하는가?


5) [과연 태초부터 나는 그(여호와)니, 내 손에서 능(能)히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오.]

(이사야 43;13)


결론을 말해 놓고도 무엇이 부족했던가? 한 마디 더 떠들어 보태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여호와의 손에서 '건질 자'가 없는 게 아니라, '건질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이 분명하다.
우상(偶像)을 부수면 하다 못해 땔감이라도 나오지만, 여호와(예수)를 훼파(毁破)시켜 봐도 남는 것은, 이미 부서진 인성(人性)을 재교육시켜야 할 수고 밖에 남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6.25 전쟁을 전후해서 필자가 살던 시골에 '디딜 방앗간'이 있었다. 하루 종일 마을의 부녀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신문이고 라디오고 외부 사람이고 아무 것도 없는 마을에서, 디딜 방앗간은 마을 여자들의 모든 것이 얻어지고 교환되는 곳이었다.

이 곳에서는 거의 매일 똑 같은 소재의 대화로도 웃음꽃이 피어오르 곤했다.
디딜 방앗간에서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벌어지는 대화 한 토막을 들어보자.

이 마을에 좀 얼띤 40 대 주부가 있었다.
이 주부에게 달언(가명)이라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었다.

"달언 엄니, 금년에 몇 살이우?"  "응? 나, 금숙 엄니하구 동갑이잖어..."
동시에 방앗간 안은 세상이 떠나가는 웃음바다가 된다.

미리 준비된 웃음 보따리였다. 달언 엄니는 자기 나이를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아들 달언이가 자기 엄니에게 수백 번에 걸쳐서 나이를 일러주었지만, 끝내 달언 엄니는 자기 나이를 몰랐다.
다만, 자기 나이가 금숙 엄니와 동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럼, 금숙 엄니는 몇 살이우?"  "응? 나도 달언 엄니하구 동갑이지. 아마."
또, 다시 웃음으로 방앗간이 날아간다. 하루도 거르는 법 없이 몇 년이고 계속되던 마을 웃음의 중요한 소재였었다.

꼬마였던 필자도 이것으로 여러 번 웃을 수 있었다.
아니, 지금까지도 마음 세계를 즐겨 주는 그 어떤 것으로 자리 잡혀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디딜 방앗간의 대화는 바이블(예수교)의 여호와(예수)에 대한 설명과 너무도 똑 같은 논법이요 상황이다.

구체적인 알맹이는 없이 개미 쳇바퀴 돌 듯, 그 소리가 그 소리뿐인 바이블(예수교), 언제쯤에나 제 정신으로 돌아오려는지?

"나(여호와)를 알 자(사람)가 누구냐?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너희(사람)는 나의 증인이다."
아무도 여호와를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단정지어 놓고서, 너희는 나의 증인리라고 선포하고 있다.

논리의 비약치고는 너무 심하다. 이런 것이 바이블이며, 여기에서 태어난 한 종파가 '여호와의 증인'이다.
제삼자 2012-11-21 (수) 10:27
[야고보서, 베드로서, 요한서]-미완성


예수교의 바이블 66 권 중, 위서(僞書=가짜) 아닌 것은 없지만, 그 중에서도 <야고보서>, <베드로서>, <요한서> 등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위서(가짜)이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의 백성 히브리(이스라엘)는 멸망하여 2,500 년 동안 자기 땅(나라) 없는 족속이 된다.
마침내, 그들은 중동, 북아프리카 및 유럽 일대로 흩어져 비참한 유랑민(=집시) 신세로 전락한다.
이들을 가리켜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한다.
 
'디아스포라'들은 자기네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종교(바이블)는 유치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군림하는 신은 지극히 잔인한 악신임을 발견하게 된다.
가깝게는 페르시아 제국, 이집트 왕국, 그리스 그리고, 멀리는 인도 등지의 고등 종교들을
 
고등 종교들의 가르침은 바이블과는 사뭇 달랐으며, 언어나 글로는 나타낼 수 없는 심오함(오묘함)이 있었다.
이에 히브리 종교에 타종교의 그럴듯한 이론들을 끌어들이게 된다. 이것이 예수교의 영지주의이다.
이 때를 전후하여 예수라는 존재도 만들어지게 된다. 예수는 역사적 사실이 아님은 물론이다.
 
신약(바이블)의 거의 절반을 썼다는 바울은 예수의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단 한 마디도 언급한 적이 없다. 바울이 영지주의자였음을 말해 준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영지주의자들이 만들어 낸 허구(좋게 말해서 방편이라고나 할까?)였던 것이다.
어리석은 군중들로부터 신앙심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방편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예수였던 것이다.
 
* 참고; 재미있는(?) 것은,
예수교는 예수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교는 바울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여기에다 뚜드려 맞추기 위하여 나중에 예수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옛날에 왕국이 세워지면, 나중에 왕실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하여 전설을 만들어 붙여 놓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영지주의적 예수교가 중동 지방으로부터 멀리 유럽 쪽으로 전파되어 가면서, 오묘하고 심오한 방편적 의미의 예수는 없어지고, 역사적 실존적 존재로 둔갑되기 시작한다.
방편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예수를 만들어 낸 지적 수준이 높은 학자(동시에 종교인)들은 중동 지방 일대에 머물거나 죽어 없어지고, 예수교가 새로 전파되어 들어간 유럽 일대에는 무식한 일반 신도들이 압도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위 문자주의라는 것이 태어난다. 시간이 흐르면서 영지주의는 자취를 감추고, 문자주의가 득세하게 된다.
가르치기도 힘들고, 배우기도 힘든 영지주의는 쇠퇴하고, 개나 돼지나 아무나 쉽게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도 있는 문자주의가 기승을 부리게 된다. 
마침내, 로마제국이 예수교를 공인할 즈음에는 예수교에 문자주의 골수분자가 판을 친다.

바보(문자주의)와 써워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또, 승자는 역사를 자기들 입맛에 맞도록 왜곡하게 되어 있다.
바이블 내용도 자기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좋도록 첨삭도 하고, 왜곡시켜 놓게 되는 것이다.

세력을 잡아 그 기득권을 확보한 문자주의자들은 영지주의자들을 철저하게 몰아내기 위하여 신약(바이블)을 이모 저모로 뜯어 고치기도 하고, 위서까지 만들어 내게 된다. 
특히, <야고보서>, <베드로서>, <요한서> 등은 영지주의자들을 악랄하게 이단으로 몰아치기 위하여 씌어진 위서(僞書) 중의 위서로 알려져 있다.
 
요한 2서는 한 장으로 된 글인데, 이는 영지주의자들을 통렬하게 질타하는 위서(僞書)이다.
 
 
요한 2서에 보면,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니라.
...그런 자에게는 인사도 하지 말라.
인사하는 자는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이다.]
 
(요한 2서 1;7~11)"
 
 
다시 말해서,
예수의 존재를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인사도 하지 말며, 원수로 취급하라는 말이다.
 
한 편,
초기 예수교에서는 예수가 실존 인물이 아니었음을 아는 사람도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두뇌가 썩은 무리들의 덮어놓고 믿는 우매함이 승리하고, 마침내 오늘날의 고집 불통 예수교가 태어나게 된다.
예수교의 문자주의자들은 로마 제국 황실을 배경으로 영지주의자, 타종교 및 그 서적들을 모조리 죽이고 태웠던 것이다.
마치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같은 사건이었다.
 
그러나, 흔적도 없이 100 % 없앨 수는 없었다.
이 남은 흔적이 머지 않아 예수교의 모든 것은 밝혀 내게 될 것이다.
예수교는 허구(虛構)였던 것이다.
 
인간이 저지른 실수 중 돌이킬 수 없는 가장 큰 죄악이 바로 예수교이다.
독자들은 위에 인용한 요한 2서를 다시 읽어보기 바란다.
이 위서(僞書) 하나 만으로도 예수교는 이 세상에 공존해서는 안될 무서운 악마의 집단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제삼자 2012-11-25 (일) 15:12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여호와의 계획


(1) 현재, 중동지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하마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수 천 년 전에 여호와가 준비해 놓은 계획이 실천되고 있는 결과이다.

(2) 바이블(예수교)을 파헤치기 힘든 이유는 그 내용이 복잡하고 재미 없는 말로 이어져 있어 어느 누구도 읽기 싫어하고, 간혹 어느 정도 내용을 연구한 사람은 그 속에서 밥을 먹는 자이므로 폭로할 수가 없다.

(3) 신학자(?)라는 사람들은 바이블 밖에서 소위 신학(神學), 철학(哲學), 사상(思想), 고고학 따위를 연구랍시고 하여 예수교에다 더덕더덕 붙여 놓는다.
바이블만 분석하기도 힘든데, 이것저것 너덜너덜 붙여 놓아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놓는다.

(4) 바이블에 사사기(士師記)란 책이 있다. 이스라엘 왕국이 세워지기 전 단계의 추장(사사) 시대를 기록한 책이라 한다. 역대 사사는 모두 15 명으로 되어 있다.

(5) 여호와의 선민(選民) 이스라엘은 원래 모세 시대에 가나안(팔레스타인) 땅에 들어가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약속은 40 여 년 지연되어 모세는 죽고, 여호수아와 사사 시대에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정복하고 들어간 것으로 되어있다.

그 정복 장면 한 가지만 보자.

[...여호와께서 유다(이스라엘 지파 중의 하나)와 함께 하신고로, 그가 산지(山地)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鐵兵車)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사사기 1; 19)

여호와의 힘으로도 <철병거>로 무장한 강력한 원주민은 몰아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여호와의 괴상한 변명이 등장한다.


(6)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壇)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내가 그들(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사사기 2; 2~3)

철병거로 무장한 원주민을 정복할 수 없어서 그대로 둔 것이라 하고서는, 이제 와서 자기(여호와) 말을 청종치 않았기 때문에 쫓아내지 않았다고 변명한다.
그들(원주민)이 히브리(이스라엘)들의 옆구리에 가시가 되고, 그들의 신들이 너희의 올무가 될 것이란다.

남의 땅(나라)을 빼앗으면, 주인(원주민)의 저항으로 당연히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을 뭣에 쓰려고 예언하는가?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여호와의 다음 말이다.

(7) [...여호와께서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예수교인)을 시험하려 하시며, 이스라엘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하사, 남겨두신 열국(列國)은...]

(사사기 3 ; 1~6)

중동 일대(또는 전 세계)를 다 정복시켜 놓으면, 먼 훗날, 히브리 자손들이 전쟁 교육을 받을 수가 없을 것이란다.
그래서, 중동 일대(또는 전 세계)를 다 정복하지 않고 적(敵)을 남겨 놓은 이유가
장차 전쟁을 모르는 히브리(예수쟁이들)의 후손들에게 전쟁 교육을 시키기 위한 자료로 남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8) 따라서, 지금, 중동 지방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은 수 천 년 전에 여호와가 설정해 놓은 계획이 시행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중동 지방의 아랍 족속들을 모두 죽여 버리고 통일시켜 놓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됐더라면 오늘의 이스라엘 후손들이 무엇으로 전쟁 실습(교육)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먼 훗날도 훤히 내다 볼 줄 알았던 여호와는 수 천 년 전에 이미 오늘을 예비하여 아랍 족속들을 모조리 죽여서 없애 버리지 않고 일부를 남겨 놓은 덕택에 오늘,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멋드러지고 훌륭한 전쟁 실습을 하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전쟁 실습(교육)>을 시키기 위해서는 중동 지방은 영원히 화약고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여호와가 수 천 년 전부터 세워 놓은 계획을 뉘라서 막을소냐? 아멘 할렐루야!

(9) 여호와의 선견지명!
여호와의 오묘한 섭리!
여호와의 그 뜻 깊은 사랑!
인간이 어찌 감히 측량할 수 있으랴!
지금 유엔과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반전 시위는 여호와의 계획과 뜻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행위임을 모르는가?
사람들이 어찌 감히 여호와를 거역한단 말인가! 맙소사!
제삼자 2012-12-13 (목) 14:16
[아주 정확한 사실(진리?) 한 가지]


(1) 말기 암 진단 결과를 통고 받은 환자와 그 가족의 심신은 어떤 것일까?
말 그대로 사생 결단하고 온갖 치료 방법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 암 환자에게 3 내지 6 개월이라는 시한부 삶이 통고되었다면, 어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그에게 아직도 금전욕, 권력욕, 명예욕, 성욕 따위가 남아 있을까?


(2)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죽은 후에 뜨거운 유황불 지옥에 들어가서 영원히 신음하게 된다는 것과 어느 것이 끔찍한가?
예수쟁이라면, 말기 암 진단 결과를 통고 받았을 경우, 죽는다는 사실과 지옥에 간다는 사실 중, 어느 쪽이 더 긴장되고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는 부분일까?


(3) 예수쟁이라면, 좀 더 오랜 삶을 유지해 보려고 노력하는 마음과 죽은 뒤에 지옥에 가지 않도록 조심하는 마음 자세 중, 어느 쪽에 더 신경을 곤두세우게 될까?


(4) 그렇다면, 예수쟁이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치열한 경쟁으로 상대를 쓸어 박으면서까지 성공(?)하려고 할까?
그 무서운 지옥을 믿으면서도 그토록 극악스럽게 살아갈 마음이 발동하는가?


(5) 예수쟁이라면, 반기련 게시판에 나타나서 무책임하게 횡설수설 못난 소리를 할 수 있을까?
그 무서운 지옥을 믿는다면서도 그런 지랄 발광을 할 용기가 있을 수 있는 것일까?


(6) 예수쟁이라면, 예수교의 역사를 그렇게 잔인하고 더러운 시궁창으로 만들어 놓았을까?
예수쟁이라면, 오늘의 교회 모습을 시궁창으로 만들어 놓았을까?
지옥을 믿는 예수쟁이라면, 자기의 모든 것으로 이웃을 돕는 일을 게을리 할 마음이 일어날까?


(7) 결론(진리);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서, 예수쟁이들 중에 <믿는 자>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스스로 진짜 예수쟁이라고 확신하는 예수쟁이에게는 위의 말들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위의 말들을 알아 들을 수 없는 사람이라야 진짜 예수쟁이가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8) 더 큰 결론; 예수쟁이들은 1) 바보 아니면 2) 양가죽을 쓴 늑대들이다.
예수쟁이들은 결국 위의 1) + 2)를 모두 갖춘 사기꾼이 될 수밖에 없다.
예수교는 혹세무민을 위한 악마의 집단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쟁이들 속에는 <믿음이란 것이 전혀 없다>.
이것만이 예수교의 아주 정확한 사실(진리)이다.


(9) 재차 부연 설명; 뭔가 더 변명이 하고 싶어 안달하는 예수쟁이가 있다면, 그건 지능 낮은 진짜 바보 + 양가죽을 쓴 늑대일 뿐이다.
암 진단만 가지고도 모든 것이 포기되는 마당에, 영원한 신음만 있는 끔찍한 지옥을 믿는다는 자들에게 다른 욕망이 남아 있어서 시궁창을 만들어 갈 못된 성품이 작용할 수 있다고?

짐땀이 나고, 소름이 다 끼치네.
바보+양가죽 쓴 늑대들에게나 있을 법한 사고 방식이다.
제삼자 2016-06-02 (목) 14:45
[삼국지연의 독후감 변천사] 

필자는 <삼국지연의>를 꽤나 여러 번 읽은 것 같다. 
독후감을 말하라면, 초 중 고 시절에는 조조, 손권, 유비 중 유비가 단연 으뜸으로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학 시절에는 유비보다는 조조가 더 훌륭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유비는 우유부단하고 능력도 없으면서 필요 이상으로 착한 척하느라 정신이 없다. 
대세를 볼 줄 몰라서 기회를 잃기도 잘 하고, 따르는 백성들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 주기도 한다. 
그러나, 조조는 역시 권모술수와 소위 정치(속임수와 용인술 따위)란 것에 순발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20 대 전반에 걸쳐서는 \"역시 조조 같아야 세상을 이끌어 갈 수 있겠다\"고 생각되었다. 
덩달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정치가의 갖추어야 될 필수 덕목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30 대가 되자, 대세는 또 다시 역전되어 역시 <유비>가 훌륭한 사람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런데, 40 대가 되자, 조조, 손권, 유비 등, 삼국지에 등장하는 모든 배역들이 백성의 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조조와 손권은 물론 유비까지도 필자의 뇌리에서는 멀리 멀리 떠나가게 되었다. 

삼국지연의는 한나라 황실을 위협하는 황건적(우두머리 장각)을 토벌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당시, 한나라는 전한과 후한을 합쳐 400 여 년을 이어오는 썩어 문드러진 사회였다. 
모든 백성이 도탄에 빠져 신음하고 있었으나, 한나라 조정은 이것을 해결할 아무 힘이 없었다. 

전국 각지에서 민란이 발생할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 중 가장 큰 세력이 황건적이었다. 
썩어 문드러진 황실과 그 추종 세력을 몰아내려는 억울한 백성들의 꿈틀거림이 황건적이었다. 
그런데, 조조, 손권, 유비 등이 나타나서 황건적(사실은 백성의 아픔)을 토멸시켰던 것이다. 

결국, 조조, 손권, 유비 등은 억울한 백성을 짓밟고 썩어 빤진 황실 편을 들었던 것이다. 
<황건적의 난>이란 승자들이 자기 입맛에 맞도록 기록으로 남겨 놓은 거짓 역사일 뿐이다. 
필자는 이 거짓 역사에 속아서 오랜 동안 조조와 유비의 인격 사이를 왔다 갔다 했던 것이다. 

이 거짓 역사에 속은 사람은 필자 만이 아닐 것 같다. 
삼국지연의를 쓴 작가도, 
이 삼국지연의를 읽는 독자들도 
조조, 손권, 유비 사이에 갇혀서 좁은 안목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 것이다. 

황건적(불쌍한 백성에게 씌워진 억울한 누명)을 짓밟아 버리고, 
썩은 황실을 도운 유비의 영웅담에 매료되어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여자가 뭘>하면서, 여권 신장에 가장 큰 걸림돌이 여자라는 것과 쏙 빼닮은 고정관념이다. 

인류 사회 도처에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많다. 
조조, 손권, 유비 등 어떤 사람도 훌륭함과는 거리가 먼 백성의 적일 뿐이다. 
그들은 황건적(도탄 속에서 신음하는 백성의 소리)을 짓밝아 말살시킨 강도들이다. 

어쨌든, 세상에는 백성(황건적)의 소리와 그 적(유비, 조조, 손권 및 황실)을 구별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중산층의 종류?] 

* 대한민국(직장인 대상 설문조사 결과) 

 1. 부채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2. 월급여 500만원 이상 
 3. 자동차는 2,000cc급 중형차 보유 
 4. 예금잔고 1억 이상 보유 
 5. 해외여행 1년에 1차례 이상 다닐것 

* 프랑스( 퐁피두 대통령이 ''삶의 질''에서 정한 기준) 

 1. 외국어를 하나 이상 할 수 있어야 하고 
 2.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고 
 3. 다룰 주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고 
 4. 남들과 다른 맛을 낼 수있는 요리를 만들수 있어야 하고 
 5. 공분에 의연히 참여할 것 
 6.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 

* 영국(옥스퍼드대에서 제시한 기준) 

 1. 페어플레이를 할 것 
 2.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3.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4.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강할 것 
 5.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 

* 미국(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기준) 

 1.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2. 사회적인 약자를 도와야 하며 
 3.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는 것 
 4. 그외,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놓여 있을 것 


[거세개탁(擧世皆濁)] 

2012 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참으로 빠른 세월이다. 
그런데, 이 2012 년은 어떤 해였을까? 
2012 년을 짧게 사자성어로 표현해서 "거세개탁(擧世皆濁)"의 해로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거세개탁(擧世皆濁)이란 "온 세상이 다 흐리다는 뜻으로 지위를 막론하고 모두가 올바르지 않음"을 일컫는 말이라 한다. 
"맑고 깨끗한 세상"은 끝끝내 없는 것일까?



[핵심 생산 인구] 

(1) 얼마 전, 주로 70대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단체의 회원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말이 있다. 
50대 후반의 어느 유명한 교수(과학자)의 말과 행동을 가리켜 "어린애의 불장난"이라고 성토하는 내용이었다. 
나서서 뭐라고 떠들어 볼만한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조용히 입다물고 듣고만 있었다. 

50대 후반의 전문가의 활동이 "어린애의 불장난"이면, 7,80대 늙은이의 망령(?)에 가까운 주책바가지 고집이 어른다운(?) 모습일까? 
50대 후반의 원숙한 사람의 활동이 눈에 거슬리고, 못마땅해 뵈는 늙은이의 안목이야 말로 "어린애만도 못한 고리타분한 고집불통"이 아닐까? 
늙어 가면서 거죽만 우굴쭈굴해지는 게 아니라, 속까지도 우굴쭈굴 험상 궂은 모습으로 굳어지는 것은 아닐까? 

(2) 지난 달(2012년 12월), 미국에 살고 있는 70대 부부가 한국으로 필자를 방문했었다. 
남편은 71세이고, 부인은 72세, 그러니까 부인 쪽이 1살 더 많은 연상의 부부였다. 
그들 부부는 45 살된 딸과 41살된 아들을 두고 있다. 딸은 한국에 살고, 아들은 미국(뉴욕)에 살고 있다. 

잠시, 한국을 방문 중인 아버지(71세)가 하루는 45살 먹은 딸과 대선 문제로 의견이 달라서 밤새도록 다투었다고 한다. 
그 부인의 표현을 빌리면, 딸과 싸울 때의 아버지의 얼굴은 불그락 푸르락 가관이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필자가 그 아버지(71세)되는 사람에게 몇 마디 질문을 던져 봤다. 

"당신은 40대 시절에 70대 늙은이를 만나면, 사람 취급을 해주기는 했었소?" 
"당신은 당신 딸이 서울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틈만 나면 자랑을 해오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똑똑한 딸이 이제 45살입니다. 그런데, 71살 먹은 늙은이가 45살 먹은 젊은 딸을 이겨보겠다고 악을 썼다 이거지요?" 

결국, 아버지되는 사람은 아무 대답도 못하면서 뭔가 깊이 생각을 해보는 것 같았다. 

(3) 벌써, 1년이 되었다. 
김정일이 죽고 그 아들 김정은이 등장하자, 각 TV프로에서는 경쟁적으로 전문가들이 나타나서 김정은에 대해서 갖가지 진단도 하고 예측도 했었다. 
필자의 기억에 의하면, TV에 등장했던 전문가들은 대부분 5,60대 또는 70대들로 보였다. 

그 전문가들 대부분의 진단에 의하면, 김정은은 29살 짜리 풋내기라서 정권 안착에 모종의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 때, 그 TV를 시청하면서 마누라에게 말했었다. 
"내 눈에는 29살을 풋내기로 보는 저 6,70대 늙은이들이 진짜 세상 물정 모르는 풋내기로 보이는구만..."이라고. 

1년이 지난 지금, 김정은에 대해서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결국은 50~70대 늙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질병적 기우(杞憂=쓸데 없는 걱정=자기 환경에 절어 있는 망령?)임이 밝혀진 셈은 아닐까? 
세종대왕은 21살에 등극했고, 진흥왕은 6살, 광개토왕은 17살, 조선의 성종은 12살에 임금에 올랐다. 
물론, 등극하자 마자 실권을 쥐고 모든 것을 처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광개토왕은 38살에 죽었고, 조선의 대학자 율곡 이이와 22대 왕 정조는 각각 48살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상록수의 저자 심훈과 메밀꽃 필 무렵의 저자 이효석은 모두 35살 때 죽었다. 
너무도 젊은 나이에 죽었기 때문에 "어린애의 불장난"도 못해 보고 인생을 마감했을 것 같다. 
그러나, 위의 인물들은 한국 역사 속에서 커도 너무 커다란 족적을 남겨 놓은 인물들이다. 

(4) 5,60대 늙은이들 70%는 저쪽, 2,30대 젊은이 70%는 이쪽... 
1~2%의 다름이 아니라, 수 십%가 얼굴을 붉히면서 저 잘난 멋으로 당파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대단한 정치적 경륜을 가지고 있기나 한 것처럼 자신의 주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 서지 않고 싸운다. 

부모 없는 자식이 없을 것이고, 자식 없는 부모도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늙은이만 따로 있는 집도 없을 것이고, 젊은이만 따로 있는 가정도 없을 것이다. 
늙은이와 젊은이는 모두 1촌 또는 2촌으로 묶여 있는 피붙이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되는 가족이란 말이다. 

아니, 자식 쪽에서 효도하는 마음으로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여 부모 쪽에서도 똑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죽더라도 너(자식=젊은이)는 어떻게 하든 살아 남아야 한다."고 말해야 되고, 실질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되는 것이다. 
이것이 늙은이(부모)가 가져야 될 마음 자세이다. 

그런데, 그런데...50대 또는 40대의 자기 자식의 활동을 가리켜 "어린애들의 불장난"으로 몰아 붙이는가 하면, 제 자식(젊은이)을 상대하여 이겼다고 쾌재를 부르는 늙은이들이 많아 뵌다. 
뭔가 이상한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아서... 
앞으로 젊은이(자식)들이 살아 갈 세상에다 너무 삭막한 인간 관계 모형을 남겨 주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5) "아들이 가장 먼저 뛰어 넘어야 될 산은 아버지"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자식이 부모를 극복하지 못하는 가정이 있다면, 그 가족은 성공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늙은이 쪽에는 젊은이가 갖지 못한 기득권이란 것이 쥐어져 있어서 늙은이의 고집불통적 고정관념이 우세할 수밖에 없다. 

알렉산더 대왕의 부왕은 필리포스 2 세인데, 그도 스스로 정복 전쟁을 여러 번 감행했다고 한다. 
왕이 직접 진두지휘한 전쟁에서 승전을 하고 개선을 할 때, 그 국가적 환영행사는 대단했을 것이다. 
부왕이 보무도 당당하게 개선하는 장면을 볼 때 마다 어린 아들 알렉산더는 말했다고 한다. 

"저 늙은이가 왜 저러지? 나는 무엇을 하라고..." 
그렇다. 아버지가 다 했버리면, 아들이 할 일은 남아 있지 안게 될 것이다. 
하물며, 아들(젊은이)을 짓밟고 올라 서서 "내가 이겼다."고 으쓱대는 아버지(늙은이)가 있다면, 그 현상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될까? 

(6) 경제 전문 용어에 "핵심 생산 인구"라는 것이 있다. 
경제(생산) 활동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25세로부터 49세까지의 인구를 말한다. 
20대, 30대 그리고 40대는 철부지 어린애들이 아니라, 한 나라의 지금 당장을 짊어지고 땀을 흘려야 되는 기둥이요 대들보들인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역사 이래 처음으로 "핵심 생산 인구" 비율이 줄어 붙었다고 한다. 
하기사, "불장난이나 해대는 어린애들"이 줄어들었다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5,60대 늙은이들이여! 아니, 6,70대 늙은이들이여! 아직도 뭔가 느껴지는 게 없을까? 

"원래 지구는 젊은이들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지구의 한 귀퉁이를 늙은이들이 잠시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더부살이하는 늙은이 주제에 주인(젊은이)을 닥달한다는 것은 적반하장(賊反荷杖) 바로 그 모양새이다. 
제자가 자기만 못하기를 바라는 스승, 자식이 자기만 못하기를 바라는 부모, 이런 어리석은 짓에 자기도 모르게 한 몫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차분히 따져 볼 때이다. 


[염라대왕의 재판] 

어느 날, 3사람이 죽어서 염라대왕 앞으로 재판을 받으러 왔다. 
3사람은 풀이 죽은 모습으로 염라대왕 앞에 나란히 섰다. 

염라대왕이 첫 번 째 사람에게 말했다. 
"너는 이제 저승으로 떠나기에 앞서서 마지막으로 내게 하고 싶은 말은 없느냐?" 

그러자, 첫 번 째 사람이 말했다. 
"염라대왕님, 저는 억울합니다." 

"무엇이 그리도 억울하단 말이냐? 기탄 없이 그 억울한 것을 내게 말해 보거라." 
"저는 커다란 정치인이 되어 한 나라를 멋지게 다스려 보고 싶었는데, 끝내 그것을 해 보지 못하고 이렇게 죽었습니다. 억울 합니다." 

"그래? 그러면, 내가 너를 다시 세상으로 돌려 보내 줄 테니, 커다란 정치가가 되어 한 나라를 다스려 보겠느냐?" 
"예? 정말입니까? 고맙습니다. 염라대왕님!" 

이리하여, 첫 번 째 사람은 즉시 인간 세상으로 돌려 보내졌다. 


다음, 염라대왕은 두 번 째 사람에게 질문을 했다. 
"너는 저승으로 떠나기에 앞서서 내게 할 말은 없느냐?" 
"염라대왕님, 저도 억울합니다." 

"너는 무엇이 그리도 억울하단 말이더냐? 말해 보거라." 
"저는 큰 부자가 되어 많은 돈을 직접 써 보기도 하고, 불우 이웃도 좀 도와 주고...이렇게 살아 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해 보지를 못하고 이렇게 죽었습니다. 정말 억울합니다." 

"그렇다면, 너도 인간 세상으로 다시 돌려 보내지면, 큰 부자가 되어 한 번 떵떵 거리며 살아 볼 수 있겠느냐?" 
"여부가 있겠습니까? 세상으로 다시 돌려 보내 주시기만 하십시오." 

이리하여, 두 번 째 사람도 인간 세상으로 돌려 보내졌다. 


마지막으로, 염라대왕의 질문은 마침내 세 번 째 사람에게 던져졌다. 
"너는 저승의 문턱에 서서 내게 할 말이 없느냐?" 

"왜 없겠습니까? 저는 꿈이 그렇게 크지도 않았습니다. 
"아들 딸, 둘 셋 쯤 낳고, 죽이라도 굶지 않고 하루 세 때 먹을 수 있는 가정을 꾸리고, 오손 도손 살아 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해 보지 못하고 이렇게 죽은 것이 억울합니다. 
만약, 제가 다시 살아서 인간 세상에 갈 수만 있다면,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저렇게 한 번 살아 보고 싶습니다." 

그러자, 앉아 있던 염라대왕은 벌떡 일어나서 세 번 째 사람 앞으로 닥아 가더니, 다짜고짜 볼때기에 불이 번쩍 일어나도록 한 대 치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는 염라대왕은 크게 소리쳐 말했다. 

"이 놈아, 그렇게 좋은 자리가 있으면, 그 걸 왜 네 놈에게 주겠느냐? 내가 갖지 않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면서 실망하다]

남산 위에서 서울역 청사를 내려다 보면 성냥갑보다도 작게 보인다. 서울역으로 드나드는 기차(열차)는 성냥 개피만하게 보이기도 한다. 

이 지구에는 지평선(地平線)과 수평선(水平線)이란 것이 있다. 요새는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운평선(雲平線)이란 것도 볼 수 있다? 

미국 일리노이주에 샴페인(Champaign=땅이 평평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함)이라는 조그만 도시가 있다. 인구가 겨우 10만이 조금 넘는 조그만 마을(?)이다. 여기에 명문 일리노이 주립 대학교(University of Illinois)가 자리잡고 있다. 
이 곳 샴페인에서 동서남북 어느 쪽으로든 10시간 이상 고속도로를 달려도 낮은 산조차도 볼 수 없는 지평선만 보게 된다.
땅이 어찌나 평평한지 높낮이(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가 겨우 12feet 밖에 안 된다고 한다. 

이런 미국의 일리노이 주를 출발하여 미시간주를 거쳐 국경을 넘어 캐나다의 Ontario주 쪽으로 한 없이 펼쳐지는 지평선만을 보며 질주 또 질주하는 통쾌한 여정이 이번의 여행이었다. 
미국의 일리노이주---> 미시간주--->캐나다의 Ontario주---> 다시 미국의 뉴욕주---> 펜실바니아주---> 오하이오주---> 인디애나주--> 그리고 다시 일리노이주. 

이들 중 가장 작은 주(실제로는 국가임)라고 하여도 남한만하고, 큰 것은 한반도의 2배 이상되는 7개의 주를 일주했지만 산(맥) 하나 없는 지평선만 보면서 달리고 또 달리는 그래서 가슴 속이 툭 터지는 통쾌(痛快)한 여행이었다.
필자는 수시로 장거리 여행을 많이 했는데, 자동차로 하루에 1,000mile(1,600km)까지 달려 본 경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중간에 호텔이나 모텔이 만원이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기는 하지만...

어떤 사람은 미국이 50개의 주로 이루어진 나라라고 알고 있다. 이 때, 주를 우리 한국의 경기도, 강원도 같은 행정구역 쯤으로 오해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미국은 50개의 나라가 뭉쳐진 합중국(合衆國=聯邦)이다. 

필자의 가족은 거의 30여 년 전 나이아가라 폭포를 미국 쪽에서 구경했었는데, 이번에는 캐나다 쪽에서 보기 위하여 떠난 여행이기도 했다. 
30여 년 전,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면서 필자는 몇 가지 두려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었다.
그 중 하나, 저 거대한 나이아가라 폭포가 저렇게 세차게 강 바닥을 침식해 가면 머지 않아 미대륙 전체가 모두 없어지지 않을까? 지구의 육지를 모두 바다 속으로 밀어 넣으면 지구 전체가 바다물로 덮인다고 하지 않던가? 

나이아가라 폭포는 필자의 눈에 그렇게 두려울 정도의 거대함 자체였었다. 배(Maid of the Mist)를 타고 폭포 바로 밑에까지 가서 볼 때는 내 생애 최대의 두려움을 경험하는 기분이었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바로 곁에서 보면 그렇게 엄청난 위력이었던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필자의 가족 일행은 나이아가라 폭포가 정면으로 보이는 호텔(Hilton) 22 층 방에다 여정을 풀었다. 호텔에서 폭포까지는 눈 짐작으로 800m 내지 1,000m 쯤 되어 보였다. 
그런데, 이 무슨 변괴인가? 미국 쪽 폭포는 한 뼘 정도로 보이고, 캐나다 쪽 폭포는 두 뼘 정도 될까 말까?
폭포의 높이는 가운데 손가락 한 마디 쯤 되어 보이는 게 아닌가! 

나이아가라 폭포 중 미국 쪽의 것은 그 높이가 56m, 폭이 335m라고 한다. 그리고, 캐나다 쪽의 것은 그 높이가 54m이고 폭이 610m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을 1,000쯤 떨어진 호텔 22층 높이에서 볼 때, 겨우 한 뼘 내지 두 뼘 정도요 손가락 한 마디 될까 말까였을 뿐이었다.
저 폭포가 아무리 열심히 침식 작용을 하더라도 미대륙을 바다 밑으로 밀어 넣으려면 영원한 시간을 주어도 불가능 또 불가능일 것이다. 

호텔의 동서남북(360도)으로 뚫린 창문을 통하여 보이는 까마득한 지평선! 
끝 없이 펼쳐지는 거대한 대륙의 까마득한 지평선 속에 파묻힌 나이아가라 폭포, 그것은 어린 아이 장난감도 못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음 날 배를 타고 폭포 밑에까지 접근했을 때도 시시하기만 했다. 

사람은 자기 손으로 대궐이나 신전(神殿)을 웅장하게 지어 놓고는 그 속에 들어가서 그 거대함에 눌리어 종 노릇하기를 자처하게 된다.
나이아가라 폭포나 에베레스트산의 위력에 눌리어 신(神)을 찾아(만들어) 종 노릇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만 멀리서 보면, 대궐, 신전 그리고 나이아가라 폭포나 에베레스트산 따위는 어린 아이 장나감도 못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니, 지구를 통째로 수 백 수 천 또는 수 만 km 떨어진 곳에서 보면 그것은 조그만 공(또는 먼지)일 뿐이다.

신의 감각이 아닌 사람의 눈으로 보는데도 나이아가라 폭포는 어린 아이 장난감만도 못한 그런 것이었다.
그렇다. 세상의 어느 무엇이라도 조금만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별 것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가 있다. 
아무리 심각한 것이라도 시간적으로 또는 공간적으로 조금만 멀찍이서 보면 그렇게 단순하고도 고요할 수가 없다. 
이번 여행은 말 그대로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면서 실망하다."였다.



[감정노동자의 고마움]

감정노동이란 얼굴 표정이나 몸짓을 만들어 내기 위해 감정을 관리하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화가 나도 표현하지 못하고, 배우가 연기하는 것처럼 감정을 숨기고서 하는 일을 지칭한다.
비행기 승무원, 아나운서, 음식 서비스 관련 관리자, 검표원, 간호사, 경찰관, 연예인, 판매원 등등이 감정 노동을 많이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감정노동자는 항상 화를 참다보니 다른 업종보다 훨씬 정신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그 수치는 생략하겠지만, 엄청나게 많은 수의 감정노동자들이 우울증과 각종 질병으로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전문가와 심리 상담을 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해직당한 사람 이상으로 하루 하루를 힘겹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손님(고객)은 왕이다."라는 멋진(?) 말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자기 돈 좀 조금 지불했다 하여 세상 곳곳에서는 왕 노릇을 하느라 많은 일꾼들을 괴롭히는 모습을 수시로 발견하게 된다.
반대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도 있다.
먹고 살기 위해서 겨우 얻은 직장이라는 것이 고작 고객의 시달림에 죽을 힘을 다하여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화를 참고 웃음을 팔아야 되는 을(乙) 위치의 당장 때려 치우고 싶은 알량한 직장(?)이 대부분이다.

나이 7,80년을 살아 온 사람은 산전수전을 다 겪었기에, 이미 뼈에 사무치도록 각인되어 있을만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세상 모습일 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것도 이제는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 모른다면 인생을 헛살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을까?
자기를 돌아다 보면서 인생 7,80년을 거울 삼아 내 이웃을 배려할 줄 아는 여생 아니, 마지막 인생을 아름답게 장식할 때라고 생각해 본다.

일산노인종합복지관을 가리켜 "노인들의 낙원"이라고 지칭한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 일산노인복지관은 명실 공히 "노인들의 낙원"이 맞다. 
동시에, 이 복지관을 계속해서 "낙원"으로 만들어 갈 책임은 바로 복지관 회원인 노인들이다. 그런데, 그 <책임>이라는 것이 그냥 입의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일산노인복지관이 아름답게 굴러가는 힘은 바로 누군가의 참고 또 참고 또 참는 <감정노동>에 의해서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늙은 사람의 생떼보다 다루기 힘든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이 생떼는 자기 자식들도 별로 달가와하지 않는 모습일 것이다.
그렇거늘, 밖에 나와서까지 그 모습을 보인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에서 그 <감정노동>을 하고 있는 고마운 일꾼들이 누구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삼가겠다.

일산노인복지관을 계속해서 "낙원"으로 만들어 갈 책임이 누구에게 있고, 그것이 무엇인지는 그 결론이 나왔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감정노동자>들의 수고에 의한 혜택으로 살아 낸 우리의 삶! 죽어서도 영원히 그 고마움을 갚을 길이 없으리라! 



[조그맣게 옹크리고 살아가야 할 몸과 맘]

오전 중에 호수공원 주위에서 걷기를 즐기는 때가 많다. 그런 다음 아예 외출한 김에 복지관 식당에 들러 점심 식사까지 하고 귀가하게 된다.
오늘도 공원에서 걷기를 하다가 복지관에 들러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꽤 큰 식당인데도 매일 평균 1,000여 명 정도가 이용을 한다고 하니까, 점심 시간이면 언제나 북새통까지는 아니더라도 꽤나 붐빈다.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배식하기 수 십 분 전부터 줄서기를 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 흔한 새치기는 물론이고, 10여 년 전부터 안면을 다진 동아리(소위 터줏대감?)들끼리 죄의식 없이 봐주기 식 새치기는 여러 사람의 눈쌀을 찌프리게 하기도 한다.
수명이 길어진 시대라 그런지, 늙은이들 모임인데도 세대가 바뀌지 않고 있어서 유난히 터줏대감들이 많은 것 같다.

터줏대감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새 사람과 낮선 사람을 괴롭히고 왕따시키는 일을 하기 일쑤이다.
그래서, 각종 시설물을 이용할 때에도 기존의 동아리들끼리 나눠 먹기식으로 이용하고 있어서 신참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역시, 고참(기존 회원 또는 터줏대감)들은 자기들의 언행에서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그것을 감지할 힘이 없어 보일 때가 많다.

오늘도 점심 식사를 하는데 옆 사람이 다리도 쩍 벌리고 앉아 있고, 양 팔도 쩍 벌린 상태로 식사를 하고 있어서 옆에 앉은 사람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탁자는 2사람 씩 마주 앉아서 4사람이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때, 각 사람은 가능한 한 몸을 작게 하고서 식사를 해야 옳다.
그런데, 오늘 자기 마음껏 식탁과 공중을 넓게 점령하고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사람의 행동 반경 때문에 그 옆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해야 됐던 사람은 탁자 바깥 쪽으로 몸(상체)을 기울이고서 상당히 불편한 자세로 밥을 먹어야 됐었다. 

아직까지도 완전하게 해결된 상태는 아니지만, 10여 년 전, 아직 한국 생활이 꽤나 서툴 때였다. 어느 전철역을 걸어서 찾아가고 있었다. 그 전철역 역사(驛舍)가 수십 m 앞에 보였다.
그런데, 도무지 그 역사 쪽으로 뚫린 길이 없었다. 이 쪽 저 쪽으로 수백 m 씩 왔다 갔다 해 보았지만 역시 길이 없었다. 결국은 택시를 불러 타고서야 그 전철역사를 찾아 갈 수가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택시가 일단 고속도로 쪽으로 나갔다가 다시 주택가로 들어서더니 그 전철역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전철역으로 뚫린 길이 없었던 것이다.
40~50년 전에는 그 곳이 허허 벌판 평야지대였었다. 그런데, 몇 십 년 사이에 길도 남겨 놓지 않고 소위 난개발(亂開發)로 건물만 가득한 동네로 바뀌어 있었다.

"집을 크게 지으면, 마당이 작아진다." 채근담에 있는 말로 알고 있다.
당연하다. 집을 크게 지으면, 당연히 마당이 작아진다. 마당이 작아지면 마침내 길이 없어지게 된다. 길이 없는 집도 집일까?
그러나, 문제는 집이 아니다. 집 문제는 껍데기 이야기일 뿐이다. 집을 크게도 짓고 작게도 짓고 어디에다 어떻게 지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마음이 정하는 것이다.

난개발도 사람의 마음이 한 짓이고, 길이 없는 건물도 사람의 마음이 해 놓은 짓이다.
몸과 맘을 자그마하게 <옹크리지 못하고> 세상을 자기 마음껏 점령하고서 자유자재(이런 것을 방종이라고 헤도 될 듯)로 활개를 친다면, 세상과 자연은 금방 파괴되고, 곧 이어 그 결과는 자기 불편(또는 화근)으로 돌아오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7,8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체험한 늙은이들 집단인데도 아직 자기의 몸과 맘을 조그맣게 옹크릴 줄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욕망은 우주보다도 큰 것이어서 그대로 마냥 풀어 놓는다면 우주 속의 모든 것과 충돌을 일으켜 많은 불상사를 만들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욕망(몸과 맘)은 가능한 한 조그맣게 "옹크려서" 사용돼야 옳다.

무엇인가 잔뜩 구입하여 집안에 들여 놓으면, 마침내 집안이 좁아져서 운신을 하기도 힘들어지게 된다.
그렇다. 소유한 것이 많을 수록 더욱 가난해지고 몸과 맘은 부자유스럽게 속박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역시, 몸과 맘을 조그맣게 옹크릴 줄 아는 그런 지혜를 닦아야 옳다. 이것이 가장 커다란 행복과 자유를 맛볼 수 있는 첩경이 아닐까! 




제삼자 2016-06-15 (수) 15:28
여기 노인복지관 맞나요?

** ?!
    한국의 모 일간지에 살인강도 사건이 기사화된 것을 보고서 한심하다는 듯 
    "거기 한국 맞나요?"하면 합당한 질문일까? 


아무리 자유게시판이라지만, 여기 올라오는 글이 너무 심하네요.
노인복지관이라고 하기엔 좀~

** ??!!
    좀 심하게 표현됐다 하여 근본 얘기(폭력 사태?)는 없어지고 게시판 글만 나무라는군요.
    못된 사람은 어린이, 젊은이, 늙은이가 따로 없는 겁니다.
    24,000 여 명의 회원(그러니까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는 별별 일이 다 있게 마련입니다.



노인복지관에도 일진이 있어요? 미친개도 있고? ㅎㅎ
노인분들이 더 무섭네요. 초등학생들도 이렇게는 안하는데.

** 누구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막연히 <일진>이니, <미친개>니 하니까 이해가 좀 안 되는군요.
    무섭다면서, ㅎㅎ라니요? 결국은 장난하시나 보죠?
    게시판에 나쁜 언어를 올린 사람이 <미친개>인가요, 입과 육체로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 <일진>인가요?



자유게시판이니까 아무 얘기나 올릴 수는 있지만, 그래도 좀 심하네요.

** 여기서도 막연히...누가 어느 쪽이 심하다는 겐지요?
    언어(또는 몸뚱이)폭력은 심한 게 아니고, 게시판에 올린 글만 심한 것이군요.
    먼저 잘못한 사람은 괜찮고, 나중에 지적하는 사람은 못된 사람이군요?



복지관에서도 좀 관리하실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아무나 글을 올리지 못하게 하거나,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글을 올리면 강제로 삭제하거나.
포털에서도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글이나 욕설을 올리면 삭제해버리는데~

** 관리하지 않는 게시판(세상 모든 것)도 있던가요?
    막연히 아무나가 누구인가요? "못난(?) 사람은 글을 올리지 말라" 이런 소리인가요?
    아무나 글을 올리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란 것도 있나요? 그 묘책을 제시해 보시면 어떨까요.
    현실을 바르게 말한 경우, 그런 것도 <비방>인지요?
    결국, 억울하더라도 상대를 비판하는 글(말)이 되는 것이면, "입 다물고 있어라" 이거군요?


한 사람 죽이는 거 아주 쉽겠어요. 이렇게 그냥 두면...

** 여기서도 너무 막연하군요.
    누가 어느 쪽을 죽이기가 쉽다는 거지요? <그냥 두다>니요?
    탁구장에서는 폭력이나 욕을 먹더라도 그냥 입 다물고 있어야 되고,
    하소연해야 될 게시판에서도 입 다물고 있어야 되는 것이고? 지금 뭘 말하려는 겁니까?
    세상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모르시나 보죠?


노인분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에티켓이 없으신 것 같은데, 
복지관에서도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정책을 정하셔야 할 것 같네요.

** 부드러운(부드러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 멋진 단어를 쭉 나열하면 그게 에티켓인가요?
    웹사이트 운영 정책을 말했으면, 그 좋은 예를 한 가지라도 첨부하셔야 되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글을 올리지 못하게 한다거나, 

**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글을 어떻게 해야 올리지 못하게 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저 쪽 구석에서 벌어지는 불상사는 어떻게 하지요?
    여기에서 지금 다루는 글들은 저 쪽 구석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상사를 고발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 불상사는 덮어 두고, <비방하는 글>에다 초점을 맞추고서 물타기만 하는군요.


그런 글을 올리면 임의로 삭제하고 올린 사람을 찾아서 주의를 준다거나...

** <사람을 찾아서 주의를 준다?> 주의를 주어서 그 주의를 듣는 사람도 있습니까?
    다시 말해서, 충고를 받아 들이는 사람도 있습니까? 천당에 사시나 보죠?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하자는 말이 한 톨도 없군요.
    빚 받으러 온 사람(돈의 주인)이 화가나서 언성을 높이니까,
    "감히 누구에게 큰 소리냐?"며 더 큰 소리치는 빚쟁이보다 더 어이가 없군요.
    적반하장(賊反荷杖)과 비슷하게 들리는데요?


이렇게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을 비방하게 두는 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할 수 있도록 방조하는 거니까 관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이런 것을 정말로 賊反荷杖(적반하장)이라고 하는 겁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게시판 문제가 아니라, 탁구장을 비롯한 각 부서의 불협화음입니다.
    먼저 벌어진 말썽은 놔둔채로, 어뚱하게도 도덕적(?)인 단어로 초점을 흐려 어렵게 만드는 것 같네요.


저희 부모님이 복지관 다니시고 싶다고 해서 들어왔는데, 여기 글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 이런 얘기를 왜 여기에다 결부시키지요?
    깜짝 놀랄 일 많기도 하군요. 사람이 모이는 곳은 다 그런 것 아닌가요? 24,000 명이면 별 별 물건 다 있는 겁니다.
    그리고, 댁에서는 부모님을 유치원 다니는 자식 다루듯 하나 보군요.
    또 그리고, 탁구장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얘기로 시작됐는데, 그 문제는 덮어 두고 
    게시판만 문제가 있다면서 부모님을 단도리하겠다니...좀 어이가 없네요. 
    문제 아동보다도 문제 부모가 더 문제이듯, 부모님보다 더 큰 문제를 가지고 있는 문제 자녀로 보입니다만...
    늙은이들 문제에 젊은이 문제까지 섞어서 복지관을 어지럽히지 맙시다.




여기 노인복지관 맞나요?

아무리 자유게시판이라지만, 여기 올라오는 글이 너무 심하네요.
노인복지관이라고 하기엔 좀~

노인복지관에도 일진이 있어요? 미친개도 있고? ㅎㅎ
노인분들이 더 무섭네요. 초등학생들도 이렇게는 안하는데.

자유게시판이니까 아무 얘기나 올릴 수는 있지만, 그래도 좀 심하네요.

복지관에서도 좀 관리하실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아무나 글을 올리지 못하게 하거나,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글을 올리면 강제로 삭제하거나.
포털에서도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글이나 욕설을 올리면 삭제해버리는데~
한 사람 죽이는 거 아주 쉽겠어요. 이렇게 그냥 두면...

노인분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에티켓이 없으신 것 같은데, 
복지관에서도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정책을 정하셔야 할 것 같네요.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글을 올리지 못하게 한다거나, 
그런 글을 올리면 임의로 삭제하고 올린 사람을 찾아서 주의를 준다거나...
이렇게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을 비방하게 두는 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할 수 있도록 방조하는 거니까 관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희 부모님이 복지관 다니시고 싶다고 해서 들어왔는데, 여기 글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통쾌2013.04.08 18:07:04
조목조목 제대로 분석하여 비판하신 아주 통쾌한 지적이십니다. 문제의 사안을 호도하려고 복지관 직원이나 씀직한 내용을 제대로 간파해 주셔서 복지관의 위상을 한층 높혀 놓았습니다. 회원의 한 사람으로 아주 통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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