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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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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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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9[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1-05-23 (월) 14:32 조회 : 6029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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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짓되, 수확을 하지 않는 농업인, 직장을 가졌으되, 봉급을 받지 않는 회사원, 회사를 경영하되,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기업인, 생활비를 받지 않고 거절하는 공무원 등등, …

위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면, 훌륭한 사람들일까? 아니, ()한 사람이라고 지칭될 수 있을까? 그런데, 바이블(예수교)에서는 예수를 가리켜 <선한 목자>라고 한다.

바이블을 보기로 하자.

 

[(예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한 10; 14~15)

 

선한 목자란 무엇일까? 양을 비롯한 가축을 잘 먹이고, 돌보기만 할 뿐, 잡아 먹지도 않고 팔지도 않는 목자라는 뜻인가? 만약, 그런 것이 선한 목자라면, 그 선한 목자의 의식주는 무엇으로 해결해야 될까?

그러면, 악한 목자라는 것도 있는가? 자기 양들을 공연히 학대하고 먹이도 주지 않고, 아무 때나 마구 죽이면, 악한 목자인가? 양들은 자기 재산인데, 그 재산을 훼손하는 그런 미치광이가 있을까?

 

너무 지나친 억지 해설이라고? 그렇다면, 선한 목자란 무엇일까? 부지런한 목자를 선한 목자로 표기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리라. 예수(바이블 기자)의 언어 구사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장면이다. , 바이블 내용은 신의 말도 아니며, 신의 감동으로 씌어진 글도 아니라는 뜻이다.

 

양과 가축은 목자의 재산이다. 선하든 악하든, 목자는 이들 가축을 사육한 다음 그것들을 팔든지 잡아 먹으려는 것이 그 목적이다. 여기에 선한 목자가 무엇에 필요하겠는가? 어떤 경우에도, 가축들은 결국 제 수명을 다 하지 못하고 목자에게 잡혀 먹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축들 쪽에서 보면, 부지런한(선한) 목자는 게으른(악한) 목자보다 훨씬 더 무서운 존재이다. 또 그리고, 동물 쪽으로서는 목자가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훨씬 더 자유롭고 좋은 것이다. 목자라는 것이 없어야 비로소 동물들은 마침내 넓은 대지를 마음껏 뛰놀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동물(여기서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악하든 선하든, 목자(여기서는 예수)는 굴레일 뿐이다. 목자가 없는 양 떼는 때때로 맹수의 밥이 되기도 하지만, 제 수명을 다하는 양들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목자가 있는 양들은 100 % 제 수명을 다 하지 못하고 잡혀 먹히게 되어 있다.

 

예수교를 보라. 목자(예수=여호와=목사)를 모시고 있는 예수쟁이들! 평생 동안 갖가지로 착취를 당하다가 마침내 100 %가 지옥으로 가게 되어 있다. 바이블 내용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1-05-25 (수) 13:16
[선(善)한 목자(牧者)이신 예수님]


목자(牧者)란 양(羊)을 치는 사람 즉, 양을 쳐서 먹고 살아가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양은 목자의 밥이다. 양은 반드시 갖가지로 착취를 당하다가 마침내 제 목숨을 다 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여 목자의 먹이가 되게 마련이다. 심지어 가장 비참하고 억울한 죽음을 `희생양(犧牲羊)`이라고 하지 않던가?
`선(善)한 목자`란 무엇일까? 양을 착취하지도 않고 죽이지도 않는 목자인가? 양들을 맹수로부터 보호해 주고 먹을 것을 주어 제 수명을 다 하도록 도와주기만 하는 사람인가? `선(善)한 목자`가 있으면 `악(惡)한 목자`라는 것도 있는가? 그 `악한 목자`는 양에게 풀도 뜯기지 않고, 맹수들에게 노출시켜 해침을 받도록 유도하는가?
결론을 말하면, 부지런한 목자, 게으른 목자는 있어도 선한 목자, 악한 목자는 없는 것이다. 양은 목자의 재산(돈)이다. 따라서 자기 재산을 고의로 학대하고 파괴할 바보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게으른 목자보다 부지런한 목자에게 속한 양들이 훨씬 많은 것을 착취당할 것이다. 양들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번식(繁殖)을 해야 되고, 젖과 털을 생산하다가 결국 자신도 잡혀 먹히는 것이 양들의 일생이다. 야생(野生)으로 살아도 천적과 여러 가지 위험이 있지만, 야생 동물들은 제 수명을 다하며 착취당함 없이 자유롭게 생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아주 없지도 않은 것이다.
양(동물)은 선한 목자건 악한 목자건, 그 목자라는 것 없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다. 양(동물)에게 있어서 최악의 적은 목자이다. 그런데, 여호와의 아들 예수를 가리켜 `선(善)한 목자`라 한단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는 양 대신 사람을 치는 선한 목자란다. 무엇을 의미할까?
목자의 직분은 무조건 양들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착취하는 데에 그 목적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착취할 것이 적어진 양은 시간을 다투어 죽여 버리게 되어 있다. 그것이 부지런한 목자(선한 목자?)일 경우, 더욱 철저하게 단행될 것은 자명하다.

이제 바이블을 보자.

1) [내(예수)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요 강도며,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직이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요한 10;1~6)

선(善)한 목자인 예수가 자신의 역할을 설명한 것이다. 그런데 이 비유(比喩)의 말을 사람들이 알아 듣지를 못하더라는 것이다. 알아 듣지 못하는 게 아니라, 거부 반응을 일으켰을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말)은 100 % 찬성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신(神)의 것이라면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는 신(神)이 아니었던 것이다.
"비유(比喩)로 말함은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예수는 말했다. 그렇다면, 여기의 비유도 그런 차원이었을까?
목자는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드나들고, 절도와 강도는 울타리로 넘나든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예수교(히브리 포함)는 지금까지 남의 나라에 들어갈 때, 총칼을 앞세우고 절도, 강도 모습으로 들어갔다. 그 역사가 증명하고 있으므로 변명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예수교는 주인이나 상대의 허락도 없이, 지하철, 유원지, 공공 장소, 주택가 심지어 타종교의 안마당에까지 들어가서 소위 `전도`랍시고 자기 주장을 떠들어댄다. 역시 목자 아닌 절도와 강도의 행패이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 듣고 따른다고 했다. 그러나, 예수교는 양(羊=사람)들이 `모르겠다` `싫다` `다시는 내 집에 오지 말라` 등등으로 거절을 해도 막무가내로 쑤시고 들어와 `여호와(예수)는 너를 사랑한다` `믿고 천당가라`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 `덮어 놓고 믿어라` 등등으로 억지를 부린다.
양들은 타인(절도, 강도)의 음성을 들으면, 오히려 도망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역시 예수교는 목자가 아닌 절도, 강도들이다. 예수의 말대로라면, 양(사람)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듣고 알아서 따라갈 텐데, 왜 억지로 `전도`라는 짓을 하고 있을까?

2)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善)한 목자(牧者)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勒奪)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요한 10;7~13)

사람들이 비유(比喩)를 알아 듣지 못하자 다시 풀어서 한다는 말이 또 비유 뿐이다. 예수는 역시 사람들을 구원 받지 못하게 하려는 것일까? 밑도 끝도 없이 예수교에서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예수는 "자기보다 먼저 온 자는 모두 절도요 강도"란다. 이 말 하나만 가져도 예수는 십자가에 처형될 소지(素地)는 충분했을 터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팔아 먹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을 때였으니 말이다.
자기(예수)만이 `양의 문`이란다. 예수는 `선한 목자`도 되고, `양의 문`도 되는 셈이다. 그럴싸한 것은 모두 자기 꺼군? 예수보다 먼저 온 자들은 절도요 강도이기 때문에 양(사람)들이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가 태어난 땅에서는 예수보다 먼저 온 선지자(모세, 엘리야 등)를 따라 여호와만 받들 뿐, 예수를 따르기는커녕 아예 죽여버렸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예수의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떤다. 예수의 말은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에 가 본 사람보다 서울에 가 보지 못한 놈이 서울 풍물을 더 잘 안다는 식으로, 예수를 잘 아는(?) 것은 본국 아닌 타국 사람들이다. 예수가 태어난 이스라엘에는 아예 예수가 없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려는 것이란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런데, 예수가 온 것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하려는 것이란다. 그러나 예수가 오던 날, 수 많은 아기들이 죽여져서 그 가족들의 슬피 우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으며, 예수교가 들어간 땅에서는 도륙을 당하고, 모든 전통과 문화 유산들이 파괴되고, 정신 세계는 마비되어 매혼노(埋魂奴)들의 세상이 되어 있다. 예수는 `선한 목자`라더니, 진정한 의미로서의 구실을 다 한 셈이다. 양들로부터 최대의 착취와 최대의 살생(살인)을 자행해 냈으니 말이다.

3) [나(예수)는 선(善)한 목자(牧者)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여호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한 10;14~15)

예수쟁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내용 중 하나이다. 얼른 듣기에 멋스럽고 포근한 위안의 말로 들린다. 그래서 예수쟁이들이 홀딱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선한 목자 또는 악한 목자란 따로 없는 것이다. 자기 재산인 양들을 아끼지 않는 목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신(神)의 가르침은 이렇게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으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 그런 것이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전지 전능이라 하지 않던가?
양을 위하여 목자 즉, 인간을 위하여 신(神)이 목숨을 버린다는 것도 어불 성설(語不成說)이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예수교의 신학적 해석을 필자도 아주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모두 헛소리이다.
"내가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가 나를 알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다."에 이어서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이게 무슨 논법이며,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또, 정말 양(사람)이 예수를 안다는 말인가? 누가 그러던가?

제삼자 2011-08-11 (목) 06:23

[처녀가 아이를 낳다--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聖靈=여호와)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主=여호와)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리니,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이사야 7;14)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인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여호와가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마태 1;18~25)


(1) 여자의 종류는 많다. 그런데, 구태여 정혼한 여자를 범하여 임신시킬 이유가 무엇일까?
전지전능한 신(神)이라면, 차라리 고무 풍선이나 플래스틱 튜브 속에다 임신시켰어야 더 멋지지 않았을까?

그래야, 오히려 인간의 유전자가 없는 순수한 신(神=예수)의 종자가 태어나지 않았을까?
그러나, 2,000 년 전의 여호와로서는 고무 풍선이나 프래스틱 튜브를 몰랐겠지?
모르는 물건과 연결되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리가 없었겠지?

(2) 제 계집을 빼앗기고 아무 말도 못하게 된 요셉의 인격은 무엇인가?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추켜 세워 놓고서, 강자(여호와)에게 말 한 마디 못하고 빌빌대도록 만들어진 모습이 의로움인가?

여호와(예수)는 이렇게 못나고 무능한 인간 위에 군림하면서도 영광과 거룩이 나오는가?

(3) 장가를 들고도 남의 자식(예수)이 태어날 때까지 제 계집과 동침도 못한 요셉의 인격 유린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인격이 유린된 상태가 <의로운 사람>의 모습인가?

아무리 신이라고는 하지만, 정혼한 여자(인간)를 겁탈하여 자기 자식을 임신시키는 신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 것일까?

(4) 마리아가 여호와의 아들 예수를 임신하고 있는 동안, 요셉이 마리아와 동침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혹시라도 예수가 요셉의 자식으로 오인을 받을 염려가 있기 때문에 그러는가?

바이블 기자는, 한 여자가 두 남자와 동침하면, 두 남자의 씨가 동시에 임신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요셉과 마리아가 동침하지 않은 사실은 누가 보증하는가?

(5) 이상은 요셉이 꿈으로 알게 된 현상들이다.
이렇게 객관적 검증 절차도 없는 꿈 이야기가 우주의 진리로 둔갑되어 세상이 좁다고 횡행하고 있다. 되는 말인가?

이런 꿈 이야기가 인간에게 있어서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는 갈림길의 척도라는 말인가?
이런 꿈 이야기를 지키기 위하여 수많은 인명까지 짓밟으면서 그토록 무지막지한 만행질을 저질러왔다는 말인가?

(6) 예수는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자(구세주)라고 한다. 예수가 어떻게 남을 죄죄에서 구원할 수가 있을까?
구체적으로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는 일이라 하던데, 그것이 그렇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신 짓는 죄, 대신 용서하는 권한, 대신 누리는 천국의 복락 등등, 이런 현상이 되는 말인가?


* 예수가 아비 없이 <처녀의 몸에 임신되었다가 태어났다>는 교리는 <예수의 부활> 교리, 그리고 <천지 창조> 교리와 함께 예수교를 쓰러박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지난 과거 시대에는 그것들이 예수교의 가장 중요한 버팀목이었으나, 이제부터는 그것들이 예수교를 쓰러박는 가장 대표적인 상징물이 될 것이다.

예수쟁이 중에도 (1) 예수의 처녀 임신 (2) 예수의 부활 (3) 여호와의 천지 창조 따위를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것(바이블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입에 담아낸다는 것은 사람이기를 포기하거나 바보가 되기로 작정을 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삼자 2011-08-12 (금) 11:49
[아시아인들을 개 돼지 취급하는 예수와 여호와]


1) [성령(聖靈)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傳)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비두니아(지방)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靈)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바울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니아(마케도니아=유럽)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여호와가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사도행전 16;6~10)


바울 일행이 터어키 반도(아시아) 일대에서 전도하려고 했으나 성령(聖靈=여호와)과 예수의 영(靈)이 가지 못하게 하여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발칸 반도(유럽) 쪽으로 가려고 힘썼더니 그것은 되더라는 것이다. 이것을 여호와(예수)가 부르신 것으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쪽에서 힘써서(노력해서) 되는 일들을 여호와(예수)가 허락한 것으로 인정하면 되는 것인가?
요즈음, 예수교에서는 아무 곳에서나 전도 행각을 벌이던데, 그 현상은 예수의 영(靈)이 허락한 장소인가?

여호와(예수)는 어찌하여 전도할 곳과 못할 곳을 구분할까?
개와 돼지에게는 진주(복음)를 주지 말라고 하더니, 아시아(터어키 반도) 쪽의 사람들이 개와 돼지이던가?


2) [(예수 가라사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마태 7;6)


거룩한 것과 진주를 개와 돼지에게 주지 말란다. 예수의 가르침이다.
여기에서 개와 돼지는 어떤 인간의 종류를 지칭하는 말이다. 또, 거룩한 것과 진주는 여호와(예수)의 말씀(복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여기(게시판)의 <안티기독인>들이야 말로 예수가 말하는 개와 돼지들이 아닐까?
그런데, 여기(게시판)에 와서 여호와(예수)의 말씀(?)을 헌 신짝 내던지듯 하는 무리는 무슨 종자들일까?

공공 장소, 지하철, 남의 종교 안마당 등에는 개 돼지에 해당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무차별로 아무에게나 그 거룩한(?) 것을 아무렇게나 내던지는 무리들은 무엇일까?

분명, 우리 한국은 아시아의 한 귀퉁이를 점령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곳에서 예수교의 거룩한 것과 진주(예수와 여호와의 말씀)를 악을 쓰면서 전도라는 이름으로 아무렇게나 마구 쏟아내고 있다.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 우리 한국의 예수쟁이들은 바이블을 읽는지 모르겠다.

예수쟁이들과 비 예수교인들 중, 어느 쪽이 개 돼지이고, 어느 것이 거룩한 것이고 진주인지 모르겠군.
얼이 빠지면 저렇게 되는 것인가? 매국노, 매혼노가 따로 없다.
제삼자 2011-08-20 (토) 18:12
[여호와의 위대한 섭리(攝理)]


신(神)의 섭리(攝理)는 인간이 쉽게 터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다음 글은 마음을 예리하게 가다듬고 정독을 해야 될 게다.
전지전능한 신(神) 여호와의 위대한 섭리(攝理)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여호와의 섭리가 시작된다.

한 끼의 식사만으로 80 일을 굶을 수 있는 능력(기적)이 있다면, 차라리 한 끼의 식사조차 하지 않고 80 일을 견딜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 전 날은 식사를 했을 것이므로, 81 일을 견디는 셈이다.
한 끼의 식사로 80 일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81 일도 견딜 수 있을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바이블 기자는 이런 정도의 아이디어(계산 능력)도 가지지 못한 둔한 사람이 기록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바이블이 전지전능한 신(神)의 기록이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바이블에 의하면 여호와의 집(거처)은 중동 지방 시내(시나이) 반도에 자리잡고 있는 호렙 산이 분명하다.
모세가 여호와를 처음 발견한 곳도 호렙 산이며, 그 가 다시 10 계명을 받은 곳도 역시 호렙 산이다.
그런데, 예수교에서 여호와의 앞잡이로 모세와 쌍벽을 이루는 엘리야도 호렙 산까지 가서야 여호와의 명(여호와의 섭리)을 받게 된다.

이만하면 호렙 산이야말로 여호와의 집(거처)이 분명하다.

이야기를 진행하자면, 줄거리의 서론까지도 중요하지만 사정상 짧은 글을 만들기 위하여 머리도 자르고 꼬리도 잘라서 요점만 말하기로 한다.

이스라엘 왕 아합과 그 왕후 이세벨은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야를 잡아죽이려고 한다.
사태가 급박해 지자 엘리야는 야반 도주하여 멀리 도망친다.

바이블을 보자.


1) [저(엘리야)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브엘세바(지명)에 일르러,
자기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 광야(사막)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소서..."]

(열왕기상 19;3~4)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도망친 녀석이 안전한 곳까지 도망가서 한다는 소리가,
"여호와여, 나를 죽여주십시오. 살만큼 살아서 여한이 없습니다." 라며 죽기를 구하는 기도를 했다고 한다.

도망가지 않았으면 자연스레 잡혀 죽게 되어 있는데, 구태여 먼 곳까지 도망을 가서 죽여 달라고 기도까지 하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바이블 기자는 자기가 꾸며 놓은 한 두 줄 앞의 내용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횡설수설 나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이블이다. 이런 것에 신(神)이란 것이 들어 있겠는가?


2) [(엘리야가) 로뎀(싸리)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열왕기상 19;5~7)


아합왕을 피하여 야반 도주하느라고 피곤했던지 엘리야는 싸리나무 밑에서 잠이 들었다고 한다.
그 때, 여호와가 보낸 천사가 "일어나 음식을 먹으라"고 깨워서 두 차례에 걸쳐서 떡과 물을 먹게 되었다는 말이다.

나중에 나오는 말이지만, 아무 것도 없는 사막 벌판에서 왕복 80 일 동안 여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엘리야는 음식을 먹어 두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끼의 음식을 먹고서 80 일 동안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먹지 않고도 80 일 동안 여행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전 날 음식을 먹었을 것이므로 81 일 동안 여행을 하는 셈이 된다.

한 끼의 식사만으로 80 일 동안 여행을 할 수 있는 재주(능력)가 있는 사람이라면, 81 일 동안 여행도 가능할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구차스럽게 천사(여호와)가 나타나서 기적으로 엘리야에게 음식을 먹이는 장면을 꾸며내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여호와의 못난 짓을 꾸미느라고 바이블이 쓸 데 없이 두꺼워지고 있는 것이다.


3)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40 주(晝) 40 야(夜)를 행하여 여호와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열왕기상 19;8)


잠을 자다가 천사(여호와)가 깨워서, 일어나 음식을 먹고 그 음식의 힘에 의지하여 40 주야(40 일)만에 여호와가 거처하는 호렙 산에 도착했다는 말이다.
다시 돌아와야 되므로, 한 끼 식사의 힘으로 80 일 동안의 여행을 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결국, 여호와가 주는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한 끼의 식사만으로도 80 일을 견딜 수 있었다는 기적질 얘기가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못나니 소리라는 말이다.
차라리 한 끼의 식사도 없이 그냥 80 일 동안 여행을 할 수 있었다고 했어야 했다.

한 끼의 식사로 80 일을 견딘 수 있는 것이라면, 그냥 먹지 않고도 80 일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 전 날 식사를 했을 것이므로 81 일을 견디는 셈이다.


4) [(열왕기상 19;9~18은 엘리야가 여호와 신을 만나는 장면이다. 지루하고 쓸데없는 것이라서 생략함)]


여호와는 전지전능해서 무소부재(無所不在)한 존재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을 구태여 호렙 산까지 불러다가 만날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 곳에서나 쉽게 만나 주면 무엇이 잘못되기라도 하는가?

또, 왕복 80 일이나 걸리는 곳까지 사람을 불러갔으면 무엇인가 그럴싸한 사명을 일러주어야 될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가 엘리야에게 들려주는 말은 다음과 같다.


(1) 너(엘리야)는 다메섹으로 돌아가라.
(2) 하사엘(인명)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시리아)의 왕이 되게 하라.
(3) 예후(인명)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이 왕이 되게 하라.

(4)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선지자가 되게 하라.
(5)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6) "그러나 내(여호와)가 7,000 인을 남기리니, 바알(잡신?)에게 무릎을 꿇지도 않고, 입도 맞추지도 아니한 자들이니라."

이상이 인류 최고 최대의 선지자 엘리야를 80 일 걸리는 먼 곳으로 불러들여 여호와가 내린 명령이다.
어떤가?
이것을 전지전능한 신이란 작자가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출애굽 당시에도 장정만 헤아려서 60 만이라 했다.
그렇다면, 엘리야 시대의 이스라엘 인구는 얼마나 됐을까?
그리고 얼마나 죽여 없애야 7,000 명만 남게 될까?

"아람 왕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이스라엘 왕 예후가 죽이고,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사가 죽이고, 마침내 7,000 명만 남기고 다 죽여 없애 버리겠다."는 게 여호와의 계획이다.

여기의 살인자 하사엘, 예후 및 엘리사는 모두 여호와가 기름 부어 세운 여호와의 앞잡이들이다.

이상으로 여호와의 위대하신 섭리(攝理)를 잠시 훑어보았다.
신의 섭리가 무엇인가 했더니, 그리고 그 섭리는 쉽게 터득되는 게 아니라고 해서 긴장을 했었는데, 이제 보니 더럽고 잔인하여 반인륜적인 것을 지칭하는 것이란 것을 알겠다.

어떤가? 여호와의 섭리=잡놈의 행패라고 보면 되겠는가?
제삼자 2011-08-23 (화) 01:10
[무식한 '마가'의 기록]


필자는 예수교를 논할 때, 하나님, 하느님, 복음(福音), 성경 등등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마태복음' 따위를 단순히 '마태'라고 한다. 다른 것도 신(神) 또는 여호와, 예수, 바이블 등으로 표현한다.

신약(바이블)에서 예수의 일대기를 기록한 글이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이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이 '마가'이며, 나머지는 그 '마가'의 기록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내용이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의 일대기의 기초가 되는 '마가'는 팔레스틴 지방의 지리(地理)를 전혀 모르는 무식한 자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우선 바이블의 한 부분을 살펴보기로 한다.

[예수께서 다시 두로(티레) 지경(地境)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데카폴리스)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마가 7;31)


위의 내용대로 예수 일행의 행로를 보면,
인천(두로)에서 경주(갈릴리)로 가려는 사람이,
인천(두로)을 출발하여 신의주(시돈)를 통과하여 경주(갈릴리)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예수 당시(서기 1 세기)에 시돈에서 갈릴리로 가는 길은 없었고, 오직 두로에서 갈릴리로 뚫린 길 하나 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는 두로에서 출발하여 시돈으로 갔다가, 없는 길을 따라 시돈에서 갈릴리로 여행하고 있다.

데가볼리 지방은 아예 울릉도쯤으로 보면 될까? (너무 엉뚱해서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

이는 예수의 일대기를 가장 먼저 써서 다른 글(마태, 누가, 요한)의 자료를 제공한 마가는 팔레스틴 지방의 지리를 전혀 모르던 무식한 사람이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이런 엉터리 글을 일점일획도 하자(瑕疵)가 없는 전지전능한 신(여호와=예수)의 진리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제삼자 2011-08-23 (화) 23:08
[부끄럽지 않은(?) 일]


[내(바울)가 복음(福音=바이블)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救援)을 주시는 여호와의 능력이 됨이라...]

(로마서 1;16)


1) 누가 뭐랬나? 도둑이 제 발이 저리다더니...저 깊은 마음 속에서는 부끄러웠던 모양이지?
혼자 이불을 쓰고 누워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믿어지지 않던가 보다.
허구(虛構), 궤변(詭辯), 모순(矛盾)을 억지로 합리화시키며 믿어 보려 하다 보니, 배운 자로서 부끄럽던가?

아니, 그보다도, 예수교(즉 허구)의 이름으로 아녀자들의 코 묻은 재물을 후려서 먹고 사는 일보다 더 부끄러운 짓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속일 수는 없었겠지?

2) 나이 살이나 먹은 사람이 양복을 쭉 빼입고, 바이블을 옆구리에 끼고서, 대로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실소(失笑)를 금할 수가 없다.
그 바이블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 본 자라면, 돈을 주면서 시켜도 못할 것이다.

무차별 잔인한 살인 만행질, 노략질, 포르노 이야기, 허구와 모순을 뒤범벅시킨 내용으로 가득 채워진 책을 어떻게 옆구에 끼고서 저리도 의젓할 수가 있을까?
무식(無識)이 태평(太平)이라더니...

3) 부끄럽지 않기로 따지자면, 불교인도 불경이 부끄러울 리 없고, 모슬렘은 코오란이 뿌끄럽지 않을 것이며, 유교인도 4 서 5 경이 부끄러울 턱이 없다.
학자에게 연구 서적이 부끄럽지 않고...

바울은 무슨 연유로 복음(바이블)이 부끄럽지 않다느니 뭐니 했을까?
스스로 바이블(신약)의 거의 절반을 써서 삽입시켜 놓고는, 당사자로서 그 바이블이 부끄럽지 않다고 떠들 이유가 무엇일까?
인류 역사상, 바울보다 더 많은 전쟁과 살인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있을까?

지금도 부끄럽지 않은가? 아니, 후회되지 않는가?

4) 사람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일까? 살인일까? 도둑질일까? 폭력일까?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다.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이라도, 훌륭하면 훌륭할수록 먼 훗날, 그 가르침에 세뇌되고, 마침내 습(習)으로 굳어진 사람들에 의하여 별별 만행질이 횡행하게 되어 있다.

특히, 그것이 정신 세계를 훔쳐 내는 예수교의 가르침(믿음)에 이르러서는 수습되기에는 너무도 끔찍한 현상을 쏟아 놓게 되었다.
제삼자 2011-09-01 (목) 03:32
[애꾸 1 명과 장님 1,000 명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애꾸(외눈) 한 사람과 두 눈이 다 보이지 않는 장님 1,000 명이 전쟁을 하면 누가 이길까?
그렇다면, 정상적인 군부대(적군)를 상대하여 장님 부대가 작전을 수행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경우가 있을까?

더구나, 그 적군이 전지전능한 신(神) 여호와가 진두지휘하는 군부대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 적군을 상대하여 장님들이 군작전을 감행할까?

아니,
두 눈이 멀쩡한 정상적인 청년들만으로 조직된 군부대라고 하더라도,
적군이 전지전능한 신(神)이 진두지휘하는 군대임을 알고도 이에 대항하여 전쟁을 할 생각을 일으킬 수 있을까?

각설하고 .......

옛날 옛날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 이스라엘과 아람(시리아)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지전능한 신(神) 여호와가 적군(아람)의 모든 작전을 미리 알고 있어서,
이것을 이스라엘 쪽에 알려 주어 이스라엘군은 백전 백승을 거두게 된다.

적군(아람)의 작전 내용을 여호와로부터 알아내어 이스라엘군 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한 사람은 선지자 엘리사(엘리야의 제자)였다고 한다.
엘리사는 적군의 통수권자인 아람 왕이 안방에서 그 부인(왕후)과 귓속말로 소근거린 내용까지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전지전능한 신(神) 여호와가 함께 하고 있었으니 무엇인들 할 수 없는 것이 있었겠는가?

아람 왕은 엘리사를 제거하지 않고는 그 전쟁에서 승산이 없음을 알게 된다.
실제로는 여호와를 제거해야 될 텐데.....
마침내, 아람 왕은 엘리사를 잡아 죽이기 위하여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도단성>으로 파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엘리사가 도단성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람 왕과 그 각료들은 멍텅구리였던가?
왜냐 하면,
전지전능한 신(神) 여호와가 선지자 엘리사를 통하여 이스라엘군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람 왕은 물론 그 각료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호와가 전지전능한 신(神)이란 것을 알면서도 이에 대항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인가?

안방에서 자기 마누라와 귓속말로 소근거린 내용까지도 알아내는 능력을 가진 신(神)을 잡아 죽이려고 시도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인가?
엘리사(여호와) 쪽에서는 아람 왕이 엘리사를 잡아 죽이려는 계획도 이미 알고 있을 것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도 상대(엘리사=여호와)를 잡아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는가?


여기에서 잠시 바이블을 보기로 하자.

[왕(아람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저희가 밤에 가서 그 성(도단)을 에워쌌더라.....
아람 사람(군사)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엘리사가 저희(적군=장님)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도 아니니,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의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저희를 인도하여 사마리아(이스라엘의 도성)에 이르니라.]

(열왕기하 6;14~19)

1) 엘리사가 여호와에게 기도했다고 한다.
자기를 잡아 죽이려고 몰려온 많은 적군들의 눈을 멀게(어둡게) 해 달라고.

그러자 여호와는 엘리사의 편을 들어 많은 아람 군사들의 눈을 멀게 했다고 한다.
이제 아람 군사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님들이 된 것이다.


2) 엘리사가 장님들 앞에 나아가서 말했다.

엘리사; "당신들은 여기에 무엇을 하려고 왔습니까?"
장님들; "우리는 엘리사를 잡아 죽이려고 왔다."

엘리사; "당신들은 길을 잘못 찾았습니다. 이 길은 그 길도 아니며, 그 성도 아닙니다.
             내가 당신들을 인도할 테니 나를 따르시오. 내가 당신들이 찾는 사람에게로 인도하겠습니다."

장님들; "............"

3) 장님(아람 군사)들은 엘리사를 따라 이스리엘의 도성 사라마리아로 들어가서 모조리 체포되었다고 한다.
도단성에서 사마리아성까지는 적어도 50 리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눈이 멀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님들이 무엇을 하려고 엘리사를 따라 먼 거리를 따라갔을까?

4) 지루할 것 같아 여기서는 생략했지만,
여호와는 이 때 무수히 많은 불말(馬)과 불병거(兵車)를 엘리사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불말과 불병거는 엘리사와 그 사환(종)의 눈에만 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또, 이 불말과 불병거는 어디에도 사용되지 않는다.
또, 장님 군대와 상대하기 위하여는 불말과 불병거 따위는 필요치도 않다.
그렇다면, 여기에 불말과 불병거가 왜 등장했을까? 여호와의 장난인가?

이상에서 잠시 살펴 보았지만,
두뇌 조직이 엉성한 사기꾼이 꾸며내는 허구(虛構)이다 보니, 모순과 궤변으로 버무려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사>의 기적 이야기는 없었던 허구(거짓)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호와, 예수 및 예수교는 허구이며, 혹세무민 집단이 되는 것이다.
제삼자 2011-11-18 (금) 21:48
[금붕어에게 핏대 올리는 사람?]


금붕어를 기르던 사람이 무엇엔가 화가 난다고, 또는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고, 그 금붕어를 도끼로 찍어 죽이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면, 금붕어나 화초(식물)에게 "칼날에 삼키우리라"며 위협하는 잡놈은 있을까? 



["너희가 거절하고 배반하면, <칼날>이 너희를 삼킬 것이다." 이것은 주(여호와)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

(이사야 1;20)


이게 입을 가진 자의 말일까? 아가리를 가진 자라면 모를 일이지만...
도무지, 전지전능하다는 신이란 작자가 무능하고 불쌍한 인간을 상대하여 할 소리일까?

사람과 금붕어는 같은 생물류라는 점에서 수 십 촌 또는 수 백 촌의 거리에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금붕어나 화초(식물)를 상대로 화를 내거나 핏대를 올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신과 사람 사이는 그 간격이 무한대이다. 70 억의 인간을 모두 합쳐 놔도 그것은 신과는 상대가 되지 않은 새발의 피만도 못한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인간을 상대로 무엇인가를 요구하기도 하고, 질투도 하고, 성깔도 부리고, 핏대를 올리는 존재가 있다면 그게 신일까?
제삼자 2012-01-17 (화) 15:05
[병신(병자)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이 세상에 불구자와 병자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그 대답이 바이블에 있다. 한 번 보기로 하자.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도 심심할 때 무엇인가 소일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럴 때 고쳐 주는 기적질이라도 하기 위해서 세상에다 소경이나 불구자를 만들어 놓고, 암 환자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1)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선생)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병신과 병자)에게서 여호와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요한 9;1~3)


(1) 불구자와 병자의 존재 이유는 본인의 죄도 아니고 그 부모의 죄도 아니라고 한다.
오로지 여호와의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한다.

(2) 예수가 살아서 움직이던 시대의 팔레스틴 지방의 병신(병자)들은 예수에 의해서 고쳐 주는 기적질로 여호와의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냈거니와 지금의 병신과 병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3) 평생을 병신(병자)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무엇일까?
그 질병으로 제 수명을 다 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은 무슨 의미인가?


그러면 다음 말들은 무엇일까? 한 번 보기로 하자.


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사람의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딱지가 앉거나, 색점이 생겨서...제사장은 그 피부의 병을 진찰할지니.
환처(患處)의 털이 희어졌고, 환처가 피부보다 우묵하여졌으면, 이는 문둥병의 환처라.
제사장이 진단하여 그를 부정(不淨=더럽다)하다 할 것이요..."]

(레위기 13;1~8)


피부병자를 진찰하여 문둥병으로 판명된 사람을 '더럽다'고 선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예수의 말을 빌려서 말하자면, 문둥병자를 향하여 "더럽도다."라고 말해 주는 짓이 '여호와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는 일'이 되는 셈이다. 어떤가? 되는 말 같은가?

적당히 속임수로 고칠 수 있는 병은 고쳤다고 떠들어대고, 치료 불가능한 병자는 더럽다고 접근도 못하게 하는 잡놈 여호와.

바이블을 더 보자.


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모든 문둥병 환자와 유출병(流出病=고름나오는 병)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不淨)케 된 자를 다 진(陣) 밖으로 내어 보내되, 무론 남녀하고 다 진 밖으로 내어 보내어, 그들로 진을 더럽히게 말라.
내가 그 진 가운데 거하느니라." 하시매]

(민수기 5;1~3)


여기에서 여호와가 하시는 일은 병자를 진(陣) 밖으로 내어쫓는 일이다.
그러면 진(陣)이 무엇일까?

히브리 족속은 사막 벌판을 배회하던 비적떼 집단이다.
이들은 항시 전투 태세를 갖추고 병영(兵營) 생활을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병영(兵營)은 곧 히브리 족속들의 생활 터전인 동네 또는 마을과 같은 개념이다.

이것이 비적떼의 생존 방식이며, 바이블은 바로 이들의 군법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진(陣) 밖으로 쫓겨난다는 것은 아예 히브리(이스라엘) 사회에서 추방됨을 의미한다.

병자들로 진(陣=사회)을 더럽히지 말라고 한다.
심지어 직계 가족의 시신을 만져도 '더럽다'고 했다.

병을 만든 자도 여호와요, 그 병을 치료해 주는 자도 여호와라고 하지만, 여호와는 병자를 향하여
"더럽다. 이 사회에서 없어져라."라고 할 뿐, 치료해 주는 일은 없다.


예수의 기적질 중에는 병자와 불구자 또는 귀신들린 사람을 치료해 주는 장면이 가장 많다.
이런 일이 다 여호와가 하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는 일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는 인간에게 병(病)을 주고, 예수는 이것을 치료해 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예수는 제 아비 여호와의 뜻을 거역한 셈이다.
"더러운 병자들아, 물러가라. 거룩한 곳을 더럽히지 말라."
이것이 여호와의 지엄한 명령이기 때문이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면무식(免無識)은 할 수 있다는데, 여호와(예수=쟁이)는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었으면 면 악신(免惡神)은 했으리라.

여호와(예수)는 극악 무도한 극악신(極惡神)임에 틀림없다.
이런 여호와(예수)가 허구가 아닌 진짜 신이었다면 우리 인간은 실로 큰 낭패를 볼 뻔했다.

바이블은 노략질이 생업으로 되어 있던 고대 히브리 족속의 잔인하고도 비윤리적 모습만 보여 줄 뿐,
현대의 문명 사회에서는 절대로 흉내를 내어서도 안 될 무서운 악서(惡書)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삼자 2012-03-05 (월) 16:05
[내가 직업 소개소를 차린다면]


만약 내가 직업 소개소를 차린다면, 주저함 없이 최우선적으로 누구에게나 "예수교를 개업하라."고 권유하겠다.
예수교만큼 수지 맞는 장사가 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다음을 보자.

[누구든지 부정(不淨=더러운)한 들짐승의 사체(死體)나, 부정한 가축의 사체나, 부정한 곤충의 사체들, 무릇 부정한 것을 만졌으면, 부지중(不知中)에라 할지라도, 그 몸이 더러워져서 허물이 있을 것이요...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범과(犯過=실수를 저지름)하였노라" 자복하고, 그 범과를 인하여 여호와께 속건제(贖愆祭=제사 종류)를 드리되, 양떼의 암컷 어린 양(羊)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贖罪祭=제사 종류)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제(贖罪=죄를 씻음)할지니라.]

(레위기 5;2~6)


동물을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으로 구분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여호와의 소치가 꽤나 재미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정말로 더러운 동물이 있고, 깨끗한 동물이 따로 있는 것일까?

그런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람이 더러운 동물의 사체(死體)를 만지거나 접촉하게 되면 사람 자체도 더러워진다는 것이다.
이 때, 더러워진 사람은 죄(罪)를 지은 것과 마찬가지여서 여호와 앞에 가서 그 죄를 자복하고 깨끗하게 씻어내는 제사를 지내야만 된다고 한다.

죄는 간단하게 그냥 씻어지는 게 아니라, 돈(양이나 염소)을  바치고 또, 제사를 지낸 후에야 제사장이 그 죄를 씻어 주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양이나 염소를 바칠 수 없는 사람은 비둘기 2 마리라도 바쳐야 된다고 한다(레위기 5;7).
이것도 할 수 없는 가난뱅이는 밀가루라도 가져와야 된다고 한다(레위기 5;11).

죄란, 사람이 다른 사람을 괴롭혔기 때문에 발생하는 불행으로서, 피해 당사에게 빌면서 피해 보상을 해 주어도 겨우 용서를 받을 수 있을똥 말똥한 심각한 현상이다.
그렇거늘, 피해자가 아닌 엉뚱한 여호와(예수)에게 빌면서 어디에다가 재물을 바쳐야 된다고라?  

예수교는 돈을 벌기 위하여 사람의 죄(罪)의 종목을 헤아릴 수 없이 만들어 놓았다.
그물 코를 가능한 한 작게 만들어 송사리 새끼 한 마리도 빠져 나갈 수 없도록 싹 쓸어 긁어 모아 빨아 먹자는 계산 방식이다. 


물론, 죽은 동물을 만지거나 접촉되면 오염(汚染)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독 차원의 세척(洗滌)이면 족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왜 양이나 염소을 필요로 할까? 지독한 혹세무민(惑世誣民)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제사장(여호와=예수)이 인간의 죄(罪)를 씻어 준다는 말도 헛소리요, 여기에 재물을 요구하는 일도 용서될 수 없는 짓이 아닐 수 없다.

연약하고 우매한 인간의 재물(수고)을 종교 이름으로 빨아 먹는 짓보다 더 큰 죄악(罪惡)이 있을까?


바이블을 보라.
죄(罪)의 종류와 그 죄를 씻기 위하여 가져다 바쳐야 되는 재물 종류를...
지금은 그 제사들을 일요일, 수요일, 금요일 등의 예배(禮拜)라는 형식으로 통일시켜 놓고 있다.

예배 시간만 철저히 지키게 세뇌시켜 놓으면 돈은 저절로 쏟아져 들어오게 되어 있다. 예배 순서에다 <헌금> 시간만 삽입시켜 놓으면 되기 때문이다.
<십일조 헌금> <주정 헌금> <월정 헌금> <각종 감사 헌금> <건축 헌금> <특별 헌금> 등등... 이것이 지옥에 가고도 남을 죄가 아닐까?


[소제(素祭=제사 종류)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아론의 자손(목사와 신부)은 그것을 단(壇)앞 여호와 앞에 드리되...
여호와 앞에 향기(香氣)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그 나머지는 아론과 그 자손이 먹되...

이는 나의 화제(火祭) 중에서 내가 그(예수교의 지도자)들에게 주어 그 소득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는 여호와의 화제(火祭) 중에서 그(예수교의 지도자)들의 대대(代代)로 영원한 소득(所得)이 됨이라.
이(소득=돈)를 만지는 자마다 거룩하리라.]

(레위기 6;14~18)


제사장, 레위인, 목사(신부) 및 예수교의 지도자들은 좋겠다.
사람들이 각종 죄(罪)를 용서 받기 위하여 제물(祭物=헌금)로 바치는 모든 돈은 모두 예수교의 지도자들에 대한 대대(代代)로 이어질 영원한 소득이라 한다.

이 돈을 만지는 자는 거룩해지기까지 한다니 얼마나 좋은가?

같은 부류들끼리 모여 저 좋아서 벌이는 짓이므로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자.
혹세무민(惑世誣民)으로 선량한 사람의 피땀을 욹어 먹으며 살아가는 짓보다 더 무서운 죄악(罪惡)은 없다는 사실을...
 
어쨌든, 내가 직업 소개소를 차린다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예수교를 개업하라."고 권유해 줄 작정이다.

지옥이란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혹세무민으로 인생을 꾸려 가는 예수쟁이들 말고 누가 그 곳으로 들어가게 되겠는가?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실질적으로 지옥을 믿지 않는 자들이 바로 예수쟁이들이라는 점이다.
예수교의 역사와 현실이 저토록 더럽고 잔인하고 무지막지한 이유가 그것을 증거하고도 남는다.

만약, 지옥을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어떻게 감히 못된 짓을 할 수가 있겠는가?
예수쟁이들은 사실상 철저한 무신론자들이며, 대단히 악독하고 더러운 속물들이라고 단정해서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혹세무민으로 밥을 벌어 먹고 살 수가 있단 말가?

신의 존재를 믿어도 그렇고, 믿지 않아도 그렇고, 어떻게 어리석은 사람들의 쌩돈(목숨)을 갈취해서 먹을 수가 있단 말가?
무섭지도 않은가?  그게 어떻게 사람 껍데기를 쓴 자의 할 일이 겠는가?

하기사 막돼 먹은 무신론자에게 무엇이 무섭겠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일까?
신의 이름을 팔아 사기쳐서 먹고 살아가는 예수쟁이들보다 더 무서운 현상이 또 있을까?
아서라. 맙소사! 


참고;
사람이 더러운 동물의 사체를 만지거나 접촉되면, 죄를 지은 것이나 다름 없이 사람도 더러워진다는 것이 예수교 신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제사장은 부모의 시체도 만지지 말라."는 여호와의 명령도 있고, "죽은 자는 죽은 자들이 장사 지내게 내버려 둬라."는 예수의 당부도 있다.

다시 말해서, 특별히 제사장(목사, 신부)이나 고급 예수쟁들은 성스러워야 되는데, 죽은 시체를 만짐으로써 더러워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재차 강조해서 말하지만, 성직자나 예수쟁이들이 사람의 죽은 시체(부모의 시신도 포함해서)를 만지게 되면, 그 만진 사람까지도 부정한(더러워진)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신성한 예수쟁이들은 죽은 시체를 절대로 만져서는 안 된다는 게 예수교의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사람도 부정한(더러운) 동물에 속하는 존재가 아닐까?
부정한 동물의 사체를 만지면 더러원 진다고 했으니까, 사람의 시체를 만졌을 때에도 더러워진다는 것은 사람도 역시 더러운 동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기사 사람만큼 악독하고 더러운(?) 존재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 악독하고 더러운 인간이 바로 여호와( 예수교의 신)를 닮은 존재라고 했으니까, 이로써 여호와(예수)의 실체도 더러운 녀석일꺼라고 유추해서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바로 예수와 여호와, 요 녀석들이 악독하고 더러운 괴물들이었던 것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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