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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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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인원 : 5,164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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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14[잡동사니 5 가지]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1-05-23 (월) 14:43 조회 : 4496
[강력한 군대 즉 철병거에 밀리는 여호와]

[...여호와께서 유다(이스라엘 지파)와 함께 하신고로, 그가 산지(山地)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鐵兵車)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사사기 1 ; 19)

히브리(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진두지휘를 받으며, 가나안(카나안=팔레스타인) 정복 전쟁을 감행할 때,
여호와의 힘으로도 철병거(鐵兵車)로 무장한 강력한 원주민은 몰아낼 수 없었다고 한다. 





[아이들 42 명을 찢어 죽이다]

여호와의 선지자 중에 유명한 엘리사라 이름하는 자가 있다. 여기에서 그의 업적 한 가지만 간단히 소개하려고 한다.

[엘리사가...길에 행(行)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城)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하여 가로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42 명을 찢었더라...]
                                            
(열왕기하 2 ; 23~24)

엘리사는 대머리였던 것 같다. (여기까지만 조선일보 독자마당에 올렸었다.) 이 글이 조선일보 독자마당 게시판에 올라가자, 예수쟁이로 짐작되는 사람의 답 글이 올라왔다. "그것이 선지자(先知者)의 권능이다. 그런 권능이 없다면, 누가 선지자를 하겠는가?"
지금은 그 선지자 노릇을 목사(신부)가 대행하는 셈인데, 목사(신부)에게 그런 권능이 주어져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좋겠다. 목사(신부)들은.





[예수교의 거룩한 가르침]

[너희(이스라엘=예수쟁이)는 너희 여호와의 성민(聖民)이라. 무릇 스스로(병들어) 죽은 것은 먹지 말 것이니, 그것을 성중(城中)에 우거(寓居)하는 객(손님)에게 주어 먹게 하거나, 이방인(타인)에게 팔아도 가하니라.]

(신명기 14 ; 21) 





[자지 200 개 자르기]

히브리 왕국의 초대 왕 사울이 다윗에게 말했다. "다윗아, 네가 만약 사람의 자지 100 개만 잘라오면, 내 딸 <미갈>을 네게 주어 부마(사위)로 삼겠다. 어떠냐? 할 수 있겠느냐?" 그러자, 다윗은 즉시 부하들을 데리고 달려가서 블레셋(Philistines) 사람(적군) 200 명을 죽이고, 그 자지 200 개를 잘라다 사울왕에게 바친다. 그리고 마침내 왕의 부마가 된다.
사실은 사울왕이 다윗을 적진(敵陣)에 보내어 죽이려고 한 말이었다. 그러나 여호와가 도와주어서 죽기는커녕 100 개면 되는 자지를 200 개씩이나 잘라다 바쳤다고 한다.

[...다윗이 일어나서 그 종자(從者)와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 200 명을 죽이고, 그 양피(陽皮=자지)를 가져다가 수대로 왕께 드려 왕의 사위가 되고자 하니, 사울이 그 딸 미갈을 다윗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무엘 상 18; 27~28)


 
[여호와(예수)의 대갈통을 삶아 먹었나?]



목소리가 크고 시끄러운 사람을 향하여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라고 말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禍), 화(禍), 화(禍)가 있으리로다.]

(요한계시록 8;13)

위의 바이블 구절을 교회 간판으로도 내걸고, 전도지 표지에다 자랑스럽게 광고하는 교회도 있었다.
이런 저주의 말을 밤낮으로 뇌고 가르치는 무리 아니, 평생 동안 저런 저주짓으로 살아 가고 있는 사람이나 집단이 있다면, 그들을 향하여 우리는 무엇이라 해야 할까?
"여호와(예수)의 대갈통을 삶아 먹었나?" 라고 하면 되겠는가? 달리 표현할 말이 없지 않은가? 천당과 지옥을 적당히 배합하여 어르고 치면서 세상에 쏟아 부어 혹세무민으로 사람을 갈취하고, 세뇌시켜 얼 빠진 인간을 양산해 내는 예수교,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가?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1-05-25 (수) 21:30
단군십계명(檀君十誡命)---미완성

우리의 옛 조상들은 단시대(?)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면서 이지적이며, 진보적이고, 활동적이고 낙천적인 요소가 깃든 어린이 十訓을 통해 天心을 고스란히 간직한 어린이들에게 동작으로 재롱을 부리게 하는 독특한 교육을 전수해 왔다고 한다?
한국인의 오랜 생활 역사속에 전해 오는 단군의 10개조의 가르침을 단군십계명 (檀君十誡命) 또는 단동십훈(檀童十訓)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제 1훈 : 弗亞弗亞(불아불아)

동작 :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어린이의 허리를 잡고 세워서 왼편과 오른편으로 기우뚱 기우뚱하면서 "부라부라>"하고 소리내어 부르며 귀에 들려주었었다.

弗(불)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다는 뜻이고, 亞(아)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간다는 뜻이니, "弗亞弗亞"는 하늘의 사랑으로 땅에 내려오고, 神(신)이 되어 다시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 무궁 무진한 생명을 가진 자라는 예찬이다.

"너는 귀한 천손이니 이 세상에 빛이 되라." 고 해석하면 될 것이다
"우리 아가, 귀한 아가, 이 세상을 훤히 비칠 빛이 되거라!"



제 2훈 : 詩想詩想(시상시상)

동작 : 어린이를 앉혀 놓고 앞 뒤로 끄덕끄덕 흔들면서 "시상 시상."하고 소리내어 들려 주었었다.

사람의 형상은 하느님이요, 신체는 태극으로 하늘과 땅에서 받은 것이므로 "사람이 곧 작은 우주"라는 인식아래, 조상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애초부터 하느님을 나의 몸에 모신 것이니, 조상님과 하느님의 뜻에 맞도록 순종하겠다는 것을 나타내는 뜻이라는 것이다.
어른과 하느님을 곤경하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3훈 : 道理道理(도리도리)

동작 : 머리를 좌우로 돌리게 하며, "도리 도리"하는 소리를 들려 주곤 했었다.

천지에 만물이 무궁 무진한 하늘의 道理(도리)로 생겨났듯이 너(아가)도 하늘의 도리로 생겨났음을 잊지 말라는 뜻이며, 대자연의 섭리를 가르치고 있다.

하늘의 이치와 땅의 도리를 깨우치라는 뜻이요, 하늘의 진리와 땅의 진리를 깨우치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제4훈 : 持闇持闇(지암지암)

동작 : 두 손(팔)을 앞으로 내놓고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하는 동작이다.

“쥘 줄 알았으면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가르치고 있다.
손이 간신히 들어갈만큼 가는 병목을 가진 병 속에 든 쌀을 한 줌 손에 쥐고 빼내려면 다시 쥔 것을 내려놓지 않고선 결코 손을 뺄 수 없는 법!
결국, 쥔다고 다 내 것이 아님을 알려 주는 가르침이라 하겠다.

모든 진리들을 받아들이고 모든 진리를 놓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제5훈 : 坤地坤地(곤지곤지)

동작 : 집게 손가락으로 왼쪽 손바닥을 찍는 동작으로, 
하늘의 이치를 깨달으면 사람과 만물이 서식하는 땅의 이치도 깨닫게 되어 천지간의 무궁 무진한 조화를 알게 된다는 뜻이다.

땅이 곧 곤(坤)이니, 어두운 땅에 태어났으나 너는 그 곳의 주인이 되어 우뚝 서라는 뜻이다



제6훈 : 西摩西摩(섬마섬마)

동작 : 어린이를 세우면서 하는 동작. 

"서(立)라."는 말로 "{섬마 섬마."라고 하는데, 정신 문명인 剛常(강상)의 이치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므로 西卍(서마)에 입각한 물질 문명을 받아 들여 발전해 나가라는 뜻으로"섬마  섬마" 또는 "따로 따로" 라고 부르기도 하며, 독립하여 정신과 물질에서 발전하라는 뜻이다.
남에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일어나 굳건히 살라는 뜻도 있으며 , 진리에서 자유한 자가 되고 진리의 주인이 되라는 뜻도 있고 하겠다.



제7훈 : 業非業非(업비업비)

무서움을 가르치는 말로써 어릴 때부터 조상님들의 발자취와 하느님의 뜻에 부합하는 삶을 살라는 뜻이다. 자연의 이치와 섭리에 맞는 업이 아니면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할머니나 어머니가 아이가 위험한 곳으로 가거나 위험한 동작을 하려고 하면, "업비 업비"란 말을 사용하는 것을 알수 있다.
일을 함에 있어서 도리에 어긋남이 없어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제8훈 : 亞合亞合(아함아함)

동작 : 손바닥으로 입을 막으며 소리내는 동작.

두 손을 가로모아 잡으면 亞(아)자의 모양이 되는데, 이것은 천지 좌우의 형국을 이 몸속에 모신다는 것을 상징하며, 두 손을 모아 벌린 입을 막아 ‘아(亞)' 자의 모양처럼 입에서 나는 소리를 항상 조심 하라는 뜻이다
 


제9훈 : 作作弓作作弓(짝짝궁 짝짝궁)

동작 : 두 손바닥을 마주치며 소리 내는 동작.
천지좌우와 태극을 맞 부딪쳐서 하늘에 오르고 땅으로 내리며, 사람으로 오고 신으로 가는 이치를 깨달았으니 손뼉을 치면서 재미있게 춤추자는 뜻이 되겠다.
음양의 결합, 천지의 조화 속에 흥을 돋우면서 함께 손뼉치며 가라는 뜻이다



제10훈 : 地羅亞備 活活議(질라아비 훨훨의)

동작 : 나팔을 불며 춤추는 동작.

천지 우주의 모든 이치를 깨닫고, 地氣(지기)를 받아 생긴 육신을 活活(훨훨)하게 자라도록 즐겁게 살아가자는 뜻이다.
아이의 팔을 잡고 영과 육이 고루 잘 자라도록 기원하고 축복하며 함께 춤추는 모습이다. 결국, 천지 자연의 모든 이치를 담고 지기(地氣)를 받은 몸이니 잘 자라서 작궁무(作弓舞)를 추며 즐겁게 살라는 것이다

     
     
제삼자 2011-08-30 (화) 22:25

안희완군에게 주는 동료 목사의 고언

                                                                                               글 쓴 이        아기사자 (okwiza****)

 

희완군~! 요즘 자네의 인기가 인터넷에서 하늘을 찌르는 듯 높다는 것을 자주 실감하네.

지금도 <크리스천투데이>, <뉴스엔조이> 등에서 글을 쓰고 있다지? 일부러 자네 글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안희완 칼럼’ 이라고 눈에 잘 보이면 클릭해서 본다네.


내가 같은 목회를 하는 사람으로서(아직 난 목회를 하는 건 아니고 준비 중이라네) 그리고 대중 앞에서 설교와 글을 써야 하는 사람으로서 자네에게 충고를 하나 하고자 하네.


글은 그 사람의 수준을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자(바로미터)라네. 말은 어떻게 둘러대고 순간적으로 수습할 수 있지만 글은 이미 활자화 되고나면 흔한 말로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리지. 그래서 항상 글을 쓸 때는 심사숙고를 해야 하는 법이라네.


예전에 나의 막내 숙부께서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네. “사람은 자기 수준만큼 세상을 본단다.” 그 때는 어려서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나이가 점차 들고 나서 참으로 그 말씀이 진리로구나 하고 생각했다네. 나의 숙부님은 서울대 공대 학부에 개인적인 관심과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인한 종교, 교육 쪽으로 아주 조예가 깊으신 분이라네.


한 가지 간단한 예를 들겠네. ‘아기사자’ 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나의 글은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글에 깊이가 없네. 다양한 스펙트럼을 다루고 논하기는 하지만 글에 깊이가 없단 말일세. 그건 나의 성품이나 성격의 바탕이 그러하기도 하지만 사물을 꿰뚫어보고 그것을 이해하고 숙성시키는 과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네. 내 글이 깊이가 부족한 것은 마지막 단계인 숙성과정이 없기 때문이네. 이해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네. 물론 자네로서는 그 ‘이해’ 라는 단계도 무척이나 버거운 단계라는 것을 잘 아네만...


처음에 <반기련> 에 들렀을 때 참으로 놀랐네. 나도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아직 괜찮은 인식을 해주는 의사이고 또 개인적으로 책을 좋아해서 많이 읽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반기련 칼럼들을 보니, 나의 수준은 정말 ‘새발의 피’ 도 아니더란 말이네. 그 글들은 범상적인 사고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쓴 글이 아니란 말일세. 사물, 실체, 사건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편벽되지 않은 판단,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 것인지 예측하는 능력까지, 실로 그들의 수준은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지. <반기련>은 나의 스승이었지. 사실 반기련으로 인해 나의 판단과 사고능력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야. 그러한 곳은 <반기련> 뿐만 아니겠지. 수없이 많은 반기독교 사이트는 거의 반기련과 같은 수준이라고 본다네.


자네들 목사들의 수준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자네들은 학교 다닐 때 학업성적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지 않은가? 공부수준이 그 사람의 인격수준이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잘 안다네. 하지만 대체적인 연관성이 있음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네. 희와니 자네, 서울대, 연대, 고대, 포공, 카이스트 학생들과 대화 해 본 적이 있는가? 여기서 조심스러운 것이 학벌위주의 판단을 하는 것 같아 걱정되지만 할 말은 해야겠네. 자네들 목사들 수준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가 말일세. 자네는 자네가 아무리 똑똑하다고 스스로 생각해도 자네가 나온 학부 수준을 넘지 못하네. 이 세상은 예수 이야기만 하면서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네. 아무리 믿는 사람들이라도 세상을 살아가려면 세상과 소통해야 하고 또한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일이 대부분이지. 그런 세상에서 희와니 자네 수준의 사고능력, 판단능력, 그리고 학식으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자네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네. 내가 보는 그대로 이야기 하는 것이네. 자네의 글이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네. 자네는 자네가 쓴 글을 보고 얼마나 사람들이 자네를 비웃을지 생각을 못하는 것 같네. 왜냐하면 자네는 모든 사람이 다 자네 수준이거나 혹은 이하라고 생각을 해 버리기 때문이네. 정말 높은 의식 수준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이상을 가지고 어떤 대화를 하는지 자네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은가? 안그래?^^


내가 희와니 자네에게 한 가지 충고를 하겠네. 일단, 글 쓰는 것을 멈추게. 그리고 글을 잘 쓰는 분들 예를 들어, 이어령, 이규태 선생들의 글을 읽어보고 그 분들이 어떻게 글을 쓰는지 그 글의 구조(기승전결, 서론 본론 결론)를 잘 살펴보게. 그리고 그대로 따라서 써 보게. 혹은 김세윤 목사나 김남준 목사의 글을 살펴보게. 그들이 어떻게 쓰나 공부하게. 그리고 로이드존스나 조나단에드워드의 책을 읽고 공부하게. 특히 로이드존스가 어떻게 기독론, 신론, 성경론을 설명하고 대중들에게 이해시키는지 필히 공부하고 익히게. 같은 목사이지만 로이드존스와 자네는 어찌 그리 차이가 나는지 사실 같은 목사라고 하기가 부끄러울 지경이네. 모르면 배워야 하고 부족하면 채워야 하네. 정말 자네의 그 수준으로는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것 이상 하면 안될 것 같네.


희완군~! 내가 살펴보니 자네는 <강박신경증>을 앓고 있다네. 안티가 아무리 밉고 싫어도 그리고 글을 써서 어떻게든 나타내고 싶어도 일단 참게. 그리고 많은 독서와 글쓰기로 자신의 내공을 몇 단계는 올린 후 다시 나서보게. 중국의 ‘구양수’ 라는 분이 글을 잘 쓰는 3가지 비결을 ‘다독’ ‘다상량’ ‘다작’ 이라고 하셨다네. 책을 많이 읽고, 그 책의 내용을 깊이 상고하고, 또한 글을 많이 써보라고 하셨다네. 자네는 앞의 두 가지는 전혀 하지 않은 채 세 번째 것만 하려고 나대고 있으니 어찌 글이 조잡하고, 가볍고, 이치에 그르지 않겠는가?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먼저 동양과 서양의 고전을 많이 읽고 또한 그 책들의 독서노트를 작성하고 주위 사람들과 대화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네. 그러다 보면 자연히 글의 수준은 높아진다네. 지금 자네의 글은 거의 유치원 수준의 글이라네. 자네만 모를 뿐이지 자네 글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느낄 수 있다네.


희완군~! 이제 같은 길을 가야 하는 동지로서 자네에게 부탁하네. 수준 낮은 글쓰기 이제 그만하게. 도대체 같은 목사가 될 사람으로서 얼굴이 부끄러워 들지를 못하겠네. 그리고 자네 교회 교인들도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드네. 하긴 그 목사에 그 수준인 교인들만 모이기는 하겠지만...


희완군~! 앞으로 앞길이 창창한 자네에게 고언을 하였다고 생각하게.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옳은 소리는 귀에 거슬리는 법이네. 나는 자네가 이 글을 읽고 또다시 전과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았으면 하네. 자네의 지지자들이 많은 그 <크리스천투데이>에 가서 또 조잘조잘 일러바치는 것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네. 그러고 싶더라도 참게. 인내심이 없으면 큰 대형 교회 목사가 되기 어렵다네.


자~! 그럼 희완군~!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고 더 훌륭한 목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진심으로 기도하겠네~!


 잘 지내게~!

제삼자 2011-07-29 (금) 06:07

[가장 무서운 마음의 병--습(習)]

조선(대한제국) 말기 청일 전쟁과 을미 사변이 이어지면서 소위 <을미 개혁>이란 이름으로 단발령(斷髮令)이 공포되었다.
그러나, 수 백년 동안 상투 문화에 절어 있는 전국민은 유생(儒生)을 필두로 거족적인 저항 운동을 벌였다.
심지어, "내 머리카락을 자르려거든 차라리 내 목을 자르라."며 항거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어느 날 지나가는 말 비슷하게 "요즈음 젊은이들 머리가 왜 그 모양이야." 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음 날로 전국 경찰관들의 손에는 가위가 들려지고, 장발족의 수난 시대가 도래한다.

머리를 단정하고 짧게 치장하던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서의 습관에 젖은 박정희의 눈에 꺼벙한(?) 장발족들의 모습이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그런 속에서도 많은 젊은이들이 자기의 장발을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도망 다녔었다.

별 것도 아닌 머리의 길이, 이 머리의 길이를 지키려고 목숨을 바치겠다고도 하고, 경찰을 피하여 이 골목 저 골목으로 피해 다니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머리가 길고 짧음에 따라 선악(善惡)이 분별되는 것도 아니며, 진리와 거짓이 나뉘는 것도 아니며,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는 것도 아니다. 부와 가난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좀처럼 자기의 고집(?)을 굽히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은 거꾸로 돈을 주면서, 아니 죽인다고 해도 상투를 틀겠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것을 습(習)이라고 한다.
좀 뉘앙스는 다르지만 인습(因習) 또는 아집(我執)이라고 표현해도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사람(모든 생명체 포함)은 어떤 습(習)에 젖어 놓으면 여간해서 그 수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한다.
여기에서 불교의 이론을 대입함은 좀 어색하지만, 불교의 가르침에 이런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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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習)을 깨고 벗어나려면, 3 아승기겁 동안 뼈를 깎는 용맹 정진을 해야 한다."
여기서 아승기(지)란 무한대란 뜻이며, 겁도 무한대란 뜻이다.

다시 말하면, 3 아승기겁 = 3 x 아승기(영원) x 겁(영원), 즉 무한대(영원)을 두 2 번 곱하고, 여기에다 다시 3을 곱한 만큼의 세월 동안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노력해야 습(習)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습(習)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말해 주고 있다.

습(習)의 종류는 무수히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습(習)이 바로 종교적 습(習)이다.
종교적 습(習)에 절어 있는 사람은 정말 목숨도 바치며, 전쟁도 불사하며, 악마가 되는 짓도 마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자신의 습(習)을 지키려 한다.
이보다 더 무서운 정신병이 있겠는가?

우리 한국은 마침내 예수교의 습(習) 속으로 깊이 빠져든 나라이다.
서구에서는 수 백년에 걸쳐서 뜻 있는 사람들의 목숨을 거는 노력으로 겨우 겨우 벗어나고 있는 때에, 우리 한국은 뒤늦게 그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어찌해야 된다는 말인가? 오호, 통재라!

제삼자 2011-08-04 (목) 22:16
[천지 창조와 2+3=8]


만약에 전지전능(全知全能)이란 것이 가능하다면, 천지를 창조하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울 것이다.
물론, 사람을 비롯한 동식물과 삼라만상을 만들어내는 일도 아주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2+3=8이라는 식은 전지전능(全知全能) 아니라, 그 할애비가 와도 <참>을 만들 수가 없다.
이것이 논리(論理)이며 동시에 진리(眞理)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바이블의 기적질을 부정하고 비판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필자는 여호와의 천지 창조와 예수의 구원 사업을 부정하거나 비판한 것이 아니라, 천지 창조 과정과 구원 사업을 설명하는 중간 과정이 2+3=8 처럼 비 논리적이어서 바이블 내용은 마침내 허구와 궤변에 도달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이블이 소개하는 여호와 및 예수도 모순, 궤변 및 허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결국, 예수교는 혹세무민을 위한 사기꾼 집단이요, 악마의 소굴에 지나지 않는다.

비 논리를 전지전능으로 해결하려는 예수쟁이가 있다면, 그것은 이미 사람이기를 포기한 괴물일 뿐이다.
이 우주에서 논리(진리)를 벗어나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논리를 떠나서 다른 진리란 없는 것이다.

** 혹자 중에는 "논리가 다는 아니다." 등등의 말로 바이블(예수교)을 변명하려고 한다.
그것은 <논리>와 <논리학>을 구분하지 못한 소치이다.
논리학은 논리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인간이 아직 완성시켰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완전하게 완성시키지 못한 논리학으로는 세상을 완전하게 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논리는 인간이 그것을 다 알아냈건 알아내지 못했건, 그 진리성에 하자가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인간이 알아낸 논리만 가지고도 바이블의 모순을 밝혀내기에는 조금도 부족하지도 않다.
다시 말해두지만, <논리>와 <논리학>을 혼동하지 말라.
그리고, 이 우주에 <논리>를 벗어나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신(神), 전지전능(全知全能), 천지창조(天地創造), 천당(天堂), 지옥(地獄), 사랑, 구원(救援), 영생(永生) 등등.... 어떤 것이라도 논리(論理)에 대입되어 모순이 없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논리=진리이기 때문이다. 
제삼자 2011-08-20 (토) 02:19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초대 예수교 시절에 옥신각신 싸우기도 하고,
서로 상대방을 죽이면서까지 자기 파의 신앙을 지키려고 별 짓을 다 하던 것이 있다.

"가짜 교부(또는 예수교의 지도자)가 베푸는 세례는 효력이 있다고 해야 하느냐, 또는 없다고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로 대가리가 터지게 싸웠다고 한다.
여호와나 예수가 결정할 문제인 것 같아 뵈는데도 예수쟁이(인간)들이 왈가왈부 아우성이다.

그러나 어느 누가 감히 "나는 진짜다."라고 나서기도 힘들거니와, 그렇게 떠들어댄다고 하여도 누가 그것을 인정할 것인가?

그래서 마침내 "가짜가 세례를 베풀어도 효력이 있는 것으로 하자."고 합의를 보게 된다.
과부의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한다. 같은 의미에서 사기꾼의 사정은 역시 사기꾼만이 아는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가짜가 세례를 베풀어도 그 효력이 있는 것으로 하자." 고 합의를 도출해 내게 되는 것이다.

그 이유로서 세례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감동으로) 베푸는 것이지 사람의 이름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었다.
예수교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 중 어느 한가지 이상의 이름이 들어간 말이나 사건이면 절대의 진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바이블은 성령의 감동으로(이름으로) 씌어졌기 때문에 일점 일획도 하자가 없는 진리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예수쟁이들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
그렇다면, 모든 예수쟁이들 개개인은 절대로 잘못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가?

목사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목사 안수를 받는다.
그렇다면, 모든 목사들 개개인은 절대로 잘못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가?

바이블은 성령의 감동으로(이름으로) 씌어진 것이라 한다.
그래서 바이블은 일점 일획도 하자가 없는 절대 진리의 말씀이라 한다.
아직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일반 예수쟁이(목사, 신부, 신학자 포함)들은 모두가 사기꾼뿐인데, 바이블을 기록한 자들만 잘못이나 실수 없이 절대 진리만 뇌까릴 수가 있었다는 말인가?

되는 말이라고 생각되는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예수쟁이들이 한결같이 악마이듯, 성령의 감동을 받고 바이블을 기록한 자들도 악마였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는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어도, 예수쟁이 하나 하나는 물론 예수교의 모든 것(바이블, 여호와, 예수 그리고 예수교의 과거와 현재 등등)은 악마의 소굴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따라서 예수교의 선택할 길은 두 가지 길이 있을 수 없다.
예수교는 인류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되는 길뿐이다.
제삼자 2011-08-23 (화) 00:28
[여성의 성기가 xx 아닌 '넓적다리'?]


유부녀가 외간 남자와 간통을 했으나 증거(증인)는 없고, 남편은 질투로 불타고 있을 때,
제사장은 성막(교회) 바닥의 먼지(쓰레기)를 물에 넣어, 그 물을 간통 혐의가 있는 여인에게 먹여야 된다고 한다. 여호와의 명이다.

간통 혐의가 없는 여인이 그 쓰레기 물을 마시면 아무 일이 없으나, 간통이 사실이라면 그 여인의 xx는 말라비틀어지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인의 xx를 한국 바이블에서는 '넓적다리' 또는 '허벅지'라고 쓰고 있다. 여성의 성기가 넓적다리(허벅지)인가?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간통하지 않은 유부녀가 성막(교회) 바닥의 먼지를 물에 타서 마시면 정말로 배탈이 나지 않는가?
또, 간통한 유부녀가 그 물(쓰레기 물)을 먹으면 정말로 그녀의 그것이 말라비틀어지는가?


[...그 물(쓰레기)을 마시운 후에, 만일 여인이 몸을 더럽혀서 그 남편에게 범죄하였으면,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이 그의 속에 들어가서 쓰게 되어 그 배가 부으며, 그 넓적다리가 떨어지리니...
그러나 여인이 더럽힌 일이 없고 정결하면 해를 받지 않고 잉태하리라...]

(민수기 5;27~28) 좀 더 자세히는 (민수기 5;11~31)


"xx가 말라비틀어진다"를 "넓적다리가 떨어진다"로 표시하는 짓,
다시 말해서 좀 흉칙한 말을 부드러운(?) 말로 표현했다 하여, 혐의가 있는 사람(인간)에게 쓰레기를 넣은 물을 먹여 실행(失行) 여부를 가려내려는 짓이 용서될 수 있을까?
또, 위의 방법으로 죄(罪)의 여부가 판가름난다고 가르치는(명하는) 마귀를 전지전능한 신(여호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수교인들이 어떤 변명으로 나올는지 궁금하다.


얼마 전, 어느 목사의 기저귀 발언(여성 비하 발언)으로도 술렁이던 예수교,
여자의 간통 여부를 가려내기 위하여 신전(교회) 바닥의 쓰레기를 물에 넣어서 그 물을 마셔 보게 해야 된다는 여호와의 발언에는 왜 조용할까?

아무리 거듭 생각을 해도 교회에 다니는 여자들은 노예 중에서도 최하급 노예 근성으로 똘똘 뭉쳐진 종자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다.
제삼자 2011-08-24 (수) 04:13

[마른 뼈다귀들]


수 많은 사람(군인)들이 죽은 지 오래되어 마른 뼈만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것을 소생시켜 고향으로 돌려 보내는 장면이 있다.
물론 여호와의 전지전능이 베푸는 멋진(?) 기적질이다. 한번 보자.


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선지자 에스겔)게 임하시고, 그 신(神)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여호와)가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뼈에게 대언(代言)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生氣)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에스겔 37;1~6)


히브리 군인들이 수북하게 쌓여서 싸우는 전법으로 싸우다가 죽은 것인 지 아니면, 여러 곳의 전투에서 싸우다가 죽은 시체를 옮겨다가 수북하게 쌓아 놓았는데, 이것들이 오랜 세월에 바짝 말라 붙은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어쨌든, 사람의 죽은 시체의 마른 뼈들이 골짜기에 가득하더란다. 이것들을 선지자 에스겔을 시켜 여호와가 살려 내겠다는 것이다.

여호와는 천지를 창조할 때에는 누구와도 의론함 없이 홀로 그 작업을 했다면서, 왜 하찮은 일을 할 때에는 반드시 어느 선지자(사람)을 앞세워서 할까?


2) [이에 내(에스겔)가 명을 좇아 대언(代言)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결(連結)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들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生氣)는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極)히 큰 군대(軍隊)더라.]

(에스겔 37;7~10)


골짜기에 가득한 뼈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더니, 원래의 뼈끼리 연결되고 그 위에 살가죽이 입혀 졌으나, 아직은 생기(生氣)가 없더란다.
그래서, 다시 여호와의 명대로 하여 거기에다 생기를 넣었더니, 살아난 사람들이 극(極)히 큰 군대(軍隊)가 되었더란다.

예수는 겨우 시체 하나 둘을 살려 낸 것이 고작인데, 그러고 보면 에스겔은 대단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 살아난 극히 큰 군대의 대원들이 나누는 인사 말, 죽었다가 살아나게 된 경이로움, 갖가지 사건 등으로 떠드는 소리들은 천지가 떠나갈 듯했을 것이다.

그런데, 바이블에는 그런 현상에 대한 일언 반구의 말도 없이, 맹물에 몽둥이 삶은 맛을 내고 있다. 되는 현상일까?

`극(極)히 큰 군대(軍隊)`란 100 명 또는 1,000 명의 군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군대는 히브리(이스라엘) 청년들의 집단이다. 살아남과 동시에 서로 안면이 있는 전우들이다.
대단히 복잡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보다 더 흥미(기적) 있는 일이 있을까? 바이블에 이런 기록이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까지 필자가 여기에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3) [또, (여호와) 가라사대,
"인자(에스겔)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滅絶)되었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대언(代言)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게 하리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내가 또 내 신(神)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故土)에 거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에스겔 37;11~14)


여기에서도 지루하게 긴 바이블 내용을 일일이 설명하는 일은 생략하자. 다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이 `극(極)히 큰 군대`의 장병들이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그것도 10 년이나 20 년이 지난 후에, 죽은 줄 알았던 아들과 남편들이 돌아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은 죽을 당시의 젊은 나이로 소생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향에 돌아간 이들은 이미 많이 늙어 있을 가족들과의 만남은 어떠했을까?
특히, 늙어져 있을 아내가 젊은 모습으로 나타난 남편을 만나는 순간, 그 상황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또, 죽어서 없어졌던 극(極)히 큰 군대(軍隊=100,000 명?)가 어느날 갑자기 히브리 사회에 나타났다고 하자.
그 사건이 히브리 및 중동 지방의 역사에 기록되고도 남을 사건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 사건은 가장 먼저 바이블에 씌어졌어야 말이 된다.
그 위대한 여호와의 기적질을 빠뜨릴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의 마른 뼈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질은 모세의 출애굽 사건을 훨씬 능가하는 사건(기적질)이기 때문이다.

(에스겔은 환상도 많이 보았다니까, 위의 내용도 환상이라고 변명할 예수쟁이들도 있겠지만, 환상을 신(神)의 가르침으로 여기는 자들이야 말로 사기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쨌든, 이렇게 황당한 말들이 담겨 있는 책을 옆구리에 끼고 대로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재미 있기도 하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래도 사람일 텐데 말이다. 어디에 정신을 빼앗기면 그렇게 되는 걸까?

제삼자 2011-11-12 (토) 05:51
[손발을 절단하리라]


1) [알라(신)와 그 사도(使徒)에게 도전(挑戰)하고,
세상에 해독을 만드는 자들에게는 그 보답으로
죽음을 당하고,
책형(죄인을 기둥에 묶어서 세워 놓고 창으로 찔러 죽이는 형벌)을 당하고,
손발을 절단 당하고, 또는
국내에서 추방당할 것이다.

이것은 그들에게 현세에서 내리는 벌일 뿐,
내세에서는 더욱 큰 징벌이 내려질 것이다.]

(코오란 5:33)


이슬람교의 신, 알라에게 대적하고, 세상에다 해독을 만들어 놓는 자들은 그 보답으로,
죽음을 당하고,
책형을 당하고,
손발을 절단 당하고, 또는
국내에서 추방당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예수쟁이들에게 현세에서 내리는 벌일 뿐, 내세에서는 더욱 큰 징벌이 내려질 것이란다.

알라(이슬람교의 신)가 예수쟁이들을 향해서 포효하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지난 1,500 년 동안, 이슬람교로서는 예수교가 여간 골치 아픈 존재가 아니다.
예수쟁이들은 이슬람교의 대단히 커다란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이에, 알라(신)는 무시무시한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게 된다.
"예수쟁이들아! 너희는 죽음을 당하고, 책형을 당하고, 손발을 절단 당하고, 국내에서 추방당할 것이다." 라고. 

예수쟁이들아, 겁나니? 안나니?
코란(이슬랍교 경전) 내용은 가짜라서 무서워할 가치가 없고, 바이블은 진짜여서 그 내용만 무서워하면 된다고? ㅎㅎ...

그런데,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있다.
<알라(신)와 그 사도에게 도전하는 행위>에다
<세상에 해독을 만드는 자>를 슬쩍 삽입시켜 놓은 점이 절묘하다.

마치, 인기 있는 상품에다 인기 없는 상품을 끼워서 파는 장삿술 같다.

<세상에 해독을 만드는 사람>은 어느 사회 어느 계층에서도 경계하는 악(惡)이다.
그런데, 여기에다 <알라(신)와 그 사도(신도)에게 도전하는 사람>을 함께 묶어서 팔아 먹는 모슬렘의 교리는 제법 멋지다(?)

다시 말해서, 알라(신)를 받들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악을 만드는 자와 동일하다는 개념이 되고 만다.
여기에서는 생략하겠지만, 예수교에서 떠들어대는 바이블 내용과 조금도 기울지 않은 끼워 팔기 상술이다.


어쨌든, 예수쟁이들은 위의 모슬렘의 가르침(코오란)을 인정하겠는가?
만약,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반면에 여호와(예수)의 가르침이라는 바이블 내용을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이블과 코오란의 다른 점이 무엇인가?



2) [(예수 가라사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 11;28~30)


위 예수의 말은 제법 그럴싸하다. 그러나, 먼저 말했다 하여 그 말의 주인은 아니다.
또 그 말 내용을 책임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치가들을 보라.
멋진 공약을 내걸고 권력을 잡지만, 그 공약을 얼마나 실천할 수 있던가?
다시 말하면, 위의 예수의 말은 혹세무민을 위한 대단히 멋진 말일 뿐, 어느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허구(虛構)라는 말이다.

모슬렘의 유일 신 알라와 예수교의 유일 신 여호와(예수) 중,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예수쟁이들의 답변을 듣고 싶다.
겸해서, 바이블은 왜 진리이고, 코오란은 왜 허구가 되는지도 듣고 싶다.
제삼자 2011-12-19 (월) 05:54
[기쁘다 구주 오셨네-Merry Christmas]


한 나라에 왕자가 태어나면,
"대역 무도한 죄인을 제외하고, 모든 죄수들을 방면하라."는 임금님의 어명이 떨어지게 마련이었다.
나라에 경사가 나면 옥중의 죄인들에게도 은혜와 혜택이 돌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천지를 창조하고 이것을 다스린다는 전지전능한 신(神), 여호와의 아들 예수가 구세주라는 이름을 달고 태어나던 날, 2 살 이하의 사내 아기들이 도륙을 당한다.


또 그런데,
이 모든 비극이 오래 전에 여호와가 계획을 세우고,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을 해 두었던 것이 이루어진 것이라며 우쭐거리고 있다.

장차 인간에게 닥아 올 불행을 미연에 예방해 주는 게 아니고,
그 불행을 계획하고 예언까지 해 주고서, 그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우쭐거리며, 자기의 점괘가 맞아 떨어졌다고 자랑하는 여호와,
세상에 이런 못된 악신(惡神)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에 헤롯(왕)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그 때를 표준하여, 2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더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마태 2; 16~18)


(1) 예수가 태어나던 날, 베들레헴과 그 원근 일대의 2 살 이하 사내 아이들이 국왕 헤롯에 의하여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2)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사건은 오래 전(태초?)에 여호와가 계획을 세운 것으로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예언해 놓은 일이 이루어진 것이라 한다.


(3) 지금은 여자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 세상이 됐지만,
옛날의 인간 세상은 어디나 집집마다 어린 아기가 없는 집이 별로 없었다.
따라서, 당시 베들레헴 일대에서 자식이 죽임을 당하지 않은 집은 없었을 것이다.


(4) 그래서, 죽은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소리가 천지을 진동했다는 것이다.
죽은 아기들도 불쌍하지만, 그 유가족들의 슬픔은 무엇일까?
여호와(예수)는 인간이 감당할만큼만 시련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비극들이 인간이 감당할만한 시련들일까?


(5) 전지전능하다는 신 여호와는 세상을 이런 식으로 다스려야 되는 것일까?
여기에서 우선적으로 여호와는 욕을 한 번 더 얻어 먹어야 될 것 같다.
여호와를 가리켜 악마(惡魔)의 왕초라고 하면 제대로 된 표현이 될까?


여기 쯤에서 바이블을 더 보기로 하자.


[(천사가 이르되)
"오늘날 다윗의 동리에 너희를 위하여 구세주가 나셨으니, 그리스도 주(主)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허다한 천군(天軍)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신(神=여호와)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천국?)에서는 신(神=여호와)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 2; 11~14)


(1) 예수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지극히 높은 곳(천당?)에서는 여호와에게 영광이 되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한다.


(2) 그렇다면,
베들레헴 원근 일대에서 도륙된 2 살 이하 사내 아이들과 불행 속으로 빠져 든 그 유가족들이 바로
<여호와로부터 기뻐하심을 입지 못한 미운 털 박힌 종자들>이었던 셈이다.


(3) 2 살 이하의 아기라면, 자기 의지가 없을 때이다.
따라서, 그 아기들에게 <죄의식>이란 것이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도륙된 아기들이 여호와로부터 <기뻐하심을 입지 못한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4) 여기에서 여호와는 부득이 또 한 번 욕을 더 얻어 먹어야 되지 않을까?
신(神) 아니라 신의 할애비라 하더라도 여호와는 미친 잡녀석이 분명이다.
기준과 원칙이 없는 불한당 같은 <악마>라고 불러도 그 호칭이 부족하다 하겠다.


그러나, 위의 모든 것은 허구(虛構)일 뿐이다. 그 사실을 바이블에서 찾아 보기로 하자.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베들레헴에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마태 2; 1~3)



(1) 옛날 왕권 시대에 어떤 아기가 하나 태어났다고 하자.
이 때, 어느 점쟁이나 도인이 나타나서 "이 아기는 장차 임금이 될 상이다"라고 선포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아기는 무슨 일을 당하게 될까? 이유 불문 그 아기는 죽여지게 되어 있다.


(2) 동방으로부터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왔다는 박사들은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천치 바보들이었던가?

동방박사들은 유대의 국왕이 머무는 도성인 예루살렘성에 들어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이렇게 공표해 버리면, 그 결과는 예수를 경배하러 온 것인가 아니면 죽이려고 온 것인가?

이렇게 상황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동방박사>라는 칭호도 어울리지 않고, 별을 보고 먼 동방으로부터 왔다는 말도 웃기는 상황이 되고 만다.


(3) 북쪽 지방 멀리(약 150 km) 나사렛이란 동네에 살고 있는 마리아 부부가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예수를 낳게 된 것은, 로마 황제의 명을 따라 호적을 하기 위하여 여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베들레헴은 잠간 동안 머문 곳으로 여기에서 예수가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이 이 곳 베들레헴으로 경배를 하러 왔다는 것이다.
그러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그 <동방>이란 것이 베들레헴 <건너 동네>라는 뜻인가?
<건너 동네>에서 온 사람을 가리켜서 <동방>에서 왔다고 하는가?


(4) 미국에 살고 있는 A라는 사람이 한국에 살고 있는 친구 乙이라는 사람을 만나러 가게 되었다.
그래서, A는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乙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마침 乙은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기 위하여 동사무소에 가고 집에 부재 중이었다.
그래서, 전화는 乙의 아내가 대신 받았다.

이럴 경우, 미국에서 한국으로 출발하는 A는 乙을 만나기 위하여 乙의 집으로 가야 하는가, 아니면 동사무소로 찾아가야 되는가?

같은 의미에서,
예수의 출생을 축하 하러 오는 동방박사들은 예수 부모의 본거지인 나사렛으로 가야 되는가, 아니면 호적 신고를 하기 위하여 잠시 여행 중인 베들레헴으로 찾아가야 되는가?


(5) 동방박사라고 할 때, <동방>은 적어도 바로 이웃인 건너 동네는 아닐 것이다.
상당히 먼 곳일 것이며, 걸어서 왔거나 낙타나 나귀 따위를 타고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동방박사들은 베들레헴이 아닌 나사렛으로 찾아 왔다고 했어야 되는 말이다.


특히, 유의할 것이 있다.
헤롯왕이 2 살 이하 사내 아이들을 도륙시켰다는 말은 <이 일이 적어도 2 년에 걸친 사건>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더 더욱 동박박사들은 여행지 베들레헴이 아닌 나사렛으로 경배를 왔어야 된다.
호적을 하기 위한 여행이 1~2 년 씩 걸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6) 또, 동방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으며 따라왔다고 한다.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서울에서 머리 위에 있는 별은 대전이나 부산에서도 머리 위에 있는 별이 될 것이다.
별이 머문 곳에서 예수가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예수가 태어난 집을 찾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별이 낮게 떠다닐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변명하는 예수쟁이가 없으란 법은 없다.
그러나, 낮게 떠 다니는 불을 별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것을 사람들은 <불똥>이라고 하는 것이며, <별>과 <불똥>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7) 헤롯왕은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고 태어난 정적(政敵)을 찾아 내어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좀 더 고도의 추리력이 필요하다.


 
(a) 만약, 헤롯왕이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믿었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그 예언은 전지전능한 신(神=여호와)의 예언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약한 인간인 헤롯왕이 감히 여호와의 아들인 예수를 죽일 생각을 할 수 있을까?


(b) 반면에, 헤롯왕이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믿지 않았다고 하자.
이럴 경우, 금방 태어난 아기가 죽여야 될 정적(政敵)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예수 하나만을 쉽게 찾아 낼 수 있다면, 국왕의 권세로서 어린 생명 하나 쯤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베들레헴과 그 원근 일대의 2 살 이하 사내 아이들을 모조리 죽여야 되는 일을 감행한다는 말인가?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될 것>
이라는 신(神=여호와)의 예언을 믿어도 또는 믿지 않아도, 헤롯왕은 예수를 죽여 없애 버릴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신을 거역할 인간이란 없는 것이며, 믿어지지 않는 허무맹랑한 유언 비어 때문에 하나 둘도 아닌, 수 천 수 만의 어린 생명을 무차별로 죽일 그런 망나니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말로라도 그렇게 무수한 사람을 죽이기를 즐기는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이 바로 <여호와>라는 악신(惡神)이다.



예수가 태어나던 날에 벌어진 일은 더 많이 있지만, 오늘은 여기에서 줄이기로 한다.
그러나, 예수가 태어나던 날 벌어졌다는 사건들은 어느 한 가지도 허구(虛構) 아닌 것이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와 여호와의 얘기는 한 가지도 빠짐 없이 허구(虛構)이다.
따라서, 예수교는 허구(虛構) 위에 세워진 마귀 소굴이요 혹세무민 집단일 뿐이다. 
제삼자 2012-02-19 (일) 18:47

[한 번 허구(虛構)는 영원한 허구]


히브리 족속은 애굽(이집트)에서 탈출하기 직전, 모세의 예언에 따라 여호와가 시행하는 엄청난 기적들을 여러 번 체험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행군도 하고 전진했으며, 홍해 바다가 갈라진 기적을 보면서 그 사이로 직접 건너 온 사람들이다.

또, 여호와가 하늘에서 음식(만나와 메추라기)까지 눈 오듯 내려주어 그것을 먹으며 40 년 동안을 살아 낸 사람들이다.
40 년 동안 입고 있어도 떨어지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아 갈 수 있는 기적도 체험해 본 사람들이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사막 벌판)에서 40 년 동안을 배회하면서 계속적으로 여호와의 커다란 기적들을 직접 체험한 사람들이 히브리 족속이다.

이렇게 여호와의 엄청난 기적질들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라면, 그가 학박사이건, 타종교 신봉자이건, 남녀노소, 상하 귀천을 불문하고, 그 자리에서 여호와 앞에 부복하여 쪼그라들게 되어 있다.

인간으로 태어난 자 중에 감히 여호와를 거역할 그런 간덩이 부은 사람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아니, 인간보다 수 만 배의 재주와 능력을 가진 귀신일지라도 여호와의 능력을 체험한 존재라면, 그 자리에서 무조건 노글 노글 쪼그라들게 될 것은 뻔한 결과이다.

그런데 바이블에는 출애굽에 직접 동참했던 히브리인들이 한 두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줄기차게 여호와를 거역하고, 믿지 못하여 전전긍긍하는 장면이 연속되고 있다.
이 현상은 오늘 날의 예수쟁이들은 물론, 예수의 역사 전체에 걸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예수쟁이 중에 여호와(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가 한 명이라도 있거든 손을 들어 봐라. ㅎㅎㅎ.... 

사람들이 여호와(예수)의 가르침을 따르지 못하는 이유를 바이블과 예수교에서는 그것을 <인간이 악하고 교만해서 그런 것>이라고 장소와 때와 경우를 가리지 않고 말해지고 있다.
되는 현상일까? 예수쟁이들의 두뇌(IQ)가 45 이하라는 것을 실증해 주는 모습이 아닐까?

예수교의 모든 것을 <궤변> <모순> 그리고 <허구>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히브리인들이 여호와를 거역하는 장면을 한 가지만 소개하려 한다.

출애굽에 동참한 사람은 장정만을 헤아려도 60 만이었다고 한다.
젊은 장정이면 부모가 있을 것이고, 늙은 장정이면 자식이 있을 것이다.
히브리인들이 말하는 장정이란 노략질 전투에 동원될 수 있는 남자를 말한다.
따라서, 장정 한 사람의 가족이 5 인이라면 히브리 인구는 적어도 300 만은 된다고 할 수 있다.

또, 가축들도 모조리 끌고 나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생면체가 1,000 만은 되지 않았을까?
이 생명체들을 염두에 두고서 다음 얘기를 보기로 한다.

----------------------------------------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는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磐石)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의 장로들의 목전(目前)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출애굽기 17 ; 1~7)
-----------------------------------------


(1) 히브리 족속은 모세(여호와)를 원망하면서
"우리를 공연히 애굽에서 끌어내어 여기서 목말라 죽일 작정이냐?" 하고 다투었다고 한다.

(2) 이에 모세가 여호와의 명에 따라 지팡이로 반석(磐石)을 쳤더니 거기에서 물이 나와 마셨다고 한다.

(3) 중동 지방에는 와디(wadi=wady)라는 강들이 있다. 우기(雨期)에만 잠시 물이 흐르다가 이내 말라 버리는 강이다. 사막 벌판이어서 물은 곧 모래 속으로 스며든다.

(4) 60 만, 300 만, 1,000 만에 달하는 생명체들이 마실 수 있는 물이 솟아 나려면 어떤 상태의 물줄기여야 할까?

(5) 서울 시민이 1,000 만 내외로 알고 있다. 수 십 층 빌딩에 살아도 그 지역을 벗어나려면 몇 시간이 걸린다.
천막 생활을 하는 사람의 1,000 만 집단의 지역 범위는 어느 만할까?

(6) 소설(삼국지 연의)이지만, 조조의 100 만 대군이 진을 쳤던니 그 범위가
100 여 리에 달했다고 했다. 이것은 팔팔 날고 기는 청년 만의 간편한 무장 집단이다.

(7) 와디(wadi) 뿐인 사막 벌판에서 물이 어떻게 솟아 올라와야 그 많은 생명체들이 마실 수 있을까?
물이 단번에 지경 100 m의 물기둥이 1,000m 높이로 솟아오르면 될까? 그래도 저 끝까지 흐르기 전에 다 땅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또 물이 솟아오른 주위의 생명체들은 모두 익사(溺死)했을 것이다.

(8) 바이블의 물 기적이 사실이라면, 그 상황으로 보아 그 기적으로 인하여
발생한 부수적인 기적이 더 요란했을 것이며, 그 기록 또한 요란할 것이다.
그러나 바이블의 기적 이야기들은 맹물에 몽둥이 삶은 맛보다 더 심심하다.
왜일까?

몽둥이 삶은 맹물에 달콤한(고소한) 맛이 들어 있다고 거짓과 사기치는 짓이라니...자신도 속이고, 남(사람)도 속이고, 마침내 신도 속이는 짓이 바로 예수교요 예수쟁이 짓이다. 
예수쟁이들의 짓은 실로 웃기는 짓이요 지옥에 떨어질 더러운 짓이 아닐 수 없다.

길어져서 이만 줄인다.
과학이다 논리다 뭐다를 다 그만 두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상황들이다.

허구(0)를 1,000 만 번 보태거나 곱해봐도 여전히 허구(0)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한 번 허구(여호와, 예수, 바이블, 예수교, 예수쟁이)는 영원한 허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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