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menu
 
   
  
  • • 아이디 공유 및 다중 아이디 사용시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 • 반기련 후원 계좌:045-21-1262-515(국민은행) 이찬경
  • • 처음 오신 분께는 안티바이블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 • 전도성 글, 정치성 글, 비방글을 올리면 출입이 차단됩니다.
 
 
ID 저장 자동로그인
   

 • 제삼자 칼럼
 • Staire 칼럼
 • 추천게시물

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결과보기
참여인원 : 3,306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채팅방가기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23[명예(名譽)]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2-05-26 (토) 17:22 조회 : 4179
[명예(名譽)]


명예(名譽)란 무엇일까? 국어 사전에서 찾아 보자.
명예--세상에 널리 인정받아 얻은 좋은 평판이나 이름.

세상에서는 이 명예를 획득하려고 혈안이 된다.
획득하고 싶어하는 욕망 순서도 명예-권력-돈 이렇게 나열하는 게 통례이다.
돈을 많이 벌고, 권력(출세)도 가질만큼 소유하고 나면, 최종적으로 명예까지도 거머쥐려는 꿈을 꾸게 된다. 

욕망을 인간의 본성에 따라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이 있다.
인간의 본성을
(1) 생존적 본능,
(2) 생식적 본능,
(4) 생태적 본능,
(5) 사회적 본능으로 나눈 다음,
각각의 본성에 따라 나타나는 구체적 욕망으로는 식욕, 성욕, 명예욕 등, 20 여 가지로 나뉘는 모양이다.

욕망(식욕, 성욕, 수면욕, 지배욕, 경쟁욕 등)은 살아 있을 때에만 존재하는 현상이다.
일단, 당사자가 죽은 다음에는 어떤 욕망이라도 그 그림자도 없이 사라진다.
그런데, 죽은 뒤에도 오래도록 가지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그것이 바로 <명예>이다.

사람이 가진 욕망 중에서 가장 질기고, 터무니 없이 크고 긴 것이 명예욕인 것 같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도 인간의 이 명예욕을 나타낸 말이다.
옛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면, "청사에 길이 남을 명예" 욕심이 인간의 가장 큰 욕망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깊이 생각을 더듬어 보아야 될 것이 있다.

진실된 명예를 획득할 만한 인격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자기 자랑을 한다든지,
자기를 내세운다든지,
잘 난 체를 한다든지,
자기를 세상에 드러내려는 짓 따위와는 거리가 먼 대단히 고매(高邁)한 인격자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고매한 인격자의 언행은 숨겨져서 움직여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질 수가 없다는 말이다.
거짓 없는 훌륭한 인격자, 고매한 인격자의 업적은 세상에 알려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세상에 널리 인정받아 좋은 평판이나 이름"을 얻을 수가 있겠는가? 

어처구니 없는 경우는, 돈도 많이 벌고, 권력도 크게 잡은 사람이 명예까지 욕심을 낸다는 사실이다.
되는 경우 같아 뵈는가? 욕심 한 번 야무지다고나 할 수 있을까?
돈을 많이 벌고, 출세를 하려면, 누구보다도 본인들이 그 내막을 아주 잘 알고 있을 것 아닌가?

세상에 알려지기도 하고, 보이는 명예는 가짜(거짓) 명예 또는 속임수 명예이다.
아름다운 인격을 가진 사람이 보이지 않게 움직인 대가로 얻어지는 명예는 어차피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이 세상에는 명예가 없는 것이나 마찬 가지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명예>라는 것도 있고, <명예 훼손죄>라는 것도 굴러다닌다.

보이지 않는 명예, 없는 명예가 어떻게 존재할 수도 있고, 어떻게 훼손될 수가 있을까?
없는 명예도 존재하고, 가짜(거짓) 명예도 훼손되는 경우가 있는가?

명예 훼손죄라는 말은 "명예 기만죄" 또는 "명예 도둑질 죄"로 바뀌어 불려져야 될 것이다.
없는 명예를 지키겠다는 발상은 사람을 속이고, 명예를 훔치는 도둑이 되겠다는 말과 다름이 아니다.
이 세상에 <명예>라는 것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명예 훼손죄>라는 것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태초에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 1)

[내(예수)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 15; 12~13)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나중 문제로 하고,
예수의 아비 여호와는 세상을 자기가 창조해 놓은 것이라고 자랑을 거듭 거듭한다.
여호와의 아들 예수는 자기가 목숨까지 바쳐서 사람을 사랑했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예수교의 경전 바이블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66 권 전체가 시시콜콜 여호와(예수)의 업적과 자랑으로 가득하다.
제 자랑을 그렇게 푸짐하게 쏟아 놓으려고 세상을 창조해 놓고, 사랑을 해놨나 보다.

그런 다음, 영광(명예?)을 제 녀석들이 차지해야 되는 것이라며, 그것을 내놓으라고 별에 별 치사한 짓과 공갈 협박을 다 한다.

여호와(예수)는 자기에 대한 명예 훼손죄(일명 불신죄, 불경죄, 괴씸죄 등)를 들먹이며, 사람을 꽤나 닥달한다.
한 술 더 떠서, 예수쟁이들까지도 봉사활동을 많이 한다며 그것을 드러내려는 생색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그러면서, 예수쟁이들은 명예보다도 더 큰(?) 명칭인 성도(聖徒)를 자칭하기를 즐긴다. 웃겨!

사람도 저 정도의 저질 인격으로는 별 볼일 없는 소인배 축에도 끼일 수가 없거늘, 하물며 신(神)과 종교(인)라는 작자들이 저래 가지고서야 무슨 말을 더 하고 말고 할 가치가 있겠는가?
그 신(神)에 그 새끼(신도)들이라고나 할까!!



참고;

인생 70 여 년을 살아오는 동안에도 유명한 정치인, 유명한 학자, 유명한 기업인, 유명한 종교인 등등을 많이 보아왔다.
그들 명사 중에 각종 비리와 썩은 냄새로 얼룩지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었고, 허명이나 허세로 포장되지 않은 사람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어느 사이에 그들 모두는 역사에 등재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악했던 사람이라도 일단 죽어진 사람을 상대로 악평(사실은 올바른 평가)을 하기는 쉽지않다.
죽은 사람에게는 생전에 자행해 놓은 악행들에 대한 모든 것이 봄눈 녹듯 용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다음 조금 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죄과의 흔적은 잊어지고(?), 업적이란 것만 커다랗게 부풀려져서 역사로 기록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찬란하고,
밝디 밝은 대명천지 세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초현대(요즈음 세상)에서 벌어진 일들인데도 그들의 죄과는 망각되고, 업적(명예)은 점점 과장되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어둡디 어두운 세상에서, 독재와 전제로 꽉꽉 묶여 있던 고대, 중세, 전근대 사회에서 만들어지고 전해지는 기득권자들의 명성과 업적과 명예가 과연 진짜 모습일까?
예수와 여호와도 이런 어둡디 어두운 세상에서 만들어지고 전해지는 허명(가짜)이다.
다시 말한다. 이 세상에 <명예>라는 것은 보이지 않거나 없다는 말이다.

절에 가 보면, <요사채>라는 것이 있다.
사찰 내에서 전각이나 산문 외에 승려의 생활과 관련된 건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특히, 본사 사찰이나 커다란 절의 요사채에는 여러 개의 방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 여러 개의 방들 중에서 가장 후미지고 퇴락한 방에는 초라하게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하루 세 때 밥만 축내고 있는 늙고 병든 중들이 들어 있다.

종정, 방장, 총무원장, 주지 그리고 각종 감투(?)를 쓴 중들처럼
출세도 못하고,
돈도 벌지 못하고,
명예도 얻지 못하고,
건강하지도 못하여,
결국, 상좌(제자 또는 양자 등)도 거느리지 못하고,
자기 절도 가지지 못하여,
남의 절에 얹혀서 근근히 연명하는 불쌍한(?) 중들이다.

여행하는 젊은 중들 중에는 이 초라한 실패작의 중들이 기거하는 방을 들여다 보게 되는 수가 있다.
그런 다음 어쩌다가 서로 안면이 있는 중의 얼굴을 만나게도 된다.
이 때, 젊은 중이 늙은 중에게 건네는 인삿말,
"아이구! 여태 안 갔어요? (여태 안 죽고 살아 남았어요?)
"그러게 말일쎄. 이렇게 여태 남아서 신세를 지고 있구먼."

이 때,
종정, 방장, 총무원장, 주지들처럼 돈도 많이 벌고 출세도 한 쪽과
돈도 못 벌고, 남의 절 구석방에서 밥만 축내는 쪽 중,
어느 쪽에 명예를 획득한 사람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예측되는가?

어쨌든,
만약에 명예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면,
평생 동안 중 생활을 하고도 돈 한 푼 없고, 집도 절도 없는, 그래서 푸대접 받으며 죽지 못해서 살아 남아 있는 초라한 중들 속에 있을 것이 분명하다.

정치인, 관료, 학자, 법조인, 의료인, 연예인, 종교인 쪽과
KBS 1의 프로그램 <지오그래피>에 등장하는 7,80 대의 무식한(?) 시골 농사꾼 중, 어느 쪽에 그 명예가 숨겨져 있을 것 같은가?

가짜(거짓) 명예 또는 사람을 속이는 명예라면 모를까,
많이 배운 사람, 돈을 많이 번 사람, 출세를 한 사람에게는 명예가 얻어질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어느 선(線)을 넘어간 학식, 어느 선을 넘어간 부자, 어느 선을 넘어간 출세, 어느 선을 넘어간 명성은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과 마찬 가지이다. 


(꾸며낸 말이겠지만)
 
甲은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 계획도 짜고, 거기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귀신이 甲의 하는 일이 훌륭해 보여서 어떤 방법(기적?)으로든 甲의 하는 일을 도와 주려고 했다.
그러자, 甲은 자기의 설익은 인격을 한탄했다고 한다.

"내 인격이 얼마나 경솔하기에 하는 일과 마음을 귀신에게 들키게 됐을까?"

하물며, 귀신도 아닌 사람에게 들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신의 업적을 세상이 떠나 가도록 떨벌이는 사람에게 <명예>가 가당한 일일까?
명예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이며, 그 명예를 획득한 사람 자신조차도 감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 실제로 <명예>를 획득할만한 인격자는 시대와 환경과 주위의 시기심으로 제대로 된 삶은 물론 목숨조차 유지하기가 어렸다.
  심지어, <명예> 대신에 <무명(無名)>이나 <오명(汚名)> 내지는 <누명(陋名)>을 뒤집어 쓰지 않으면 다행이다.
  반대로, 갖가지 권모술수(權謀術數)로 조작된 명예, 거짓된 명예가 횡행한다.
  이것이 인류의 역사요, 현실이요, 세상은 그런 것이다.
  
  그러나, 100 % 아니, 적어도 80~90 % 이상의 완벽에 가까운 인격자라면,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 차리지 못할 것이매, 방해 받지 않고 대단히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참된 <명예>이다.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2-05-30 (수) 06:24
[반기련]   
                                    -제삼자-


조그만 구멍가게를 차려 놓고도
불량 식품을 팔지는 않는구나.
동네 구멍가게이면서도
불량 상품은 진열대 어디에도 없구나.

그렇더라도, 겨우 열 살 꼬마가 
이 천 년 역사의 코를 납짝하게 만들어 버렸구나.

불경기에 아무리 장사가 안 돼도
사랑 장사를 하지는 않는구나.
아무리 운영 자금이 궁색하더라도
구걸을 하지는 않는구나.

하기사, 학(鶴)은 날개가 부러져도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를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어쨌든, 겨우 일 만 명 회원이 
수 십 억 거대 집단의 뚫어진 입들을 봉해 버리고,
여덟 줄 짜리 짧은 싯귀가 
수 만 줄 짜리 신의 가르침을 부끄럽게 했구나.   
 
제삼자 2012-05-30 (수) 06:26
[세뇌(洗腦)]


세뇌(洗腦)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
(洗)--씻을 세,  (腦)--뇌 뇌, 그러니까 단순하게 한자 풀이를 하면, 뇌를 깨끗하게 씻어낸다는 뜻이 될 것이다.

세뇌(洗腦)를 국어 사전에서 찾아 보면,

"_?xml_:namespace prefix = daum ns = "http://dic.daum.net/" />어떤 사상(思想)이나 주의(主義), 신념(信念) 머릿속 주입하거나 또는 받아들이도록 설득하여, 본래 가지고 있던 생각 행동 개조함"이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세뇌(洗腦)란 2 가지 방향에서 생각해 볼 수가 있을 것 같다.

(1) 사상과 주의와 신념이 <파란> 색으로 물들어 있던 사람이 누군가의 설득과 가르침으로 <파란> 색을 씻어 내고 <빨간> 색으로 변했다면, 그 현상이 바로 세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어린 아이 시절에는 그 마음과 생각이 어디에도 물들지 않아서 하얀 <백지>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던 백지에다 부모와 주위의 기성 세대들이 여러 가지 색으로 염색을 시켜 놓게 된다.
이런 경우에도 세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결과가 형성된다.

한국 사람에게는 한국에 대한 애국심이 심어지고, 일본 사람은 일본에 대한 애국심이 심어진다.
어떤 노래를 여러 번 듣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노래와 가수에 대한 팬이 된다.
축구나 농구도 여러 번 반복해서 관전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팀과 어느 선수에 대해서 강렬한 호감을 가지게 된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간섭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당과 어떤 정치가의 열렬한 응원자가 된다.
TV광고를 반복해서 시청하다 보면, 상품의 질과는 상관 없이 어느 상품의 노예가 되고 만다.
이상의 현상들도 모두 세뇌 과정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현상이라 하겠다.

유럽이나 미국에 태어난 사람은 자연히 예수교인이 되는 것도 세뇌 현상이고,
중동 여러 나라에 태어나면 이슬람교도가 되고,
동남아에 태어나면 불교인이 되는 것도 두 말 필요 없이 세뇌 현상이다.

인도에 태어나면 힌두교도가 되고,
라틴 아메리카에 태어나면 캐톨린 신도가 되는 것은 자연 현상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새로운 것을 반대하고 재래의 풍습이나 전통을 중히 여기어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을 가리켜 보수(保守) 성향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을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해서 좋은 값을 쳐 주는 사람이 많다
.

참고; 온고지신(溫故知新)-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하여 새것을 앎. 논어의 <위정편>에 있는 말이다.
        사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것(옛것)을 지키려는 고집이 숨어 있기도 하다.

이 온고지신도 사실은 어려서부터 오랜 시간에 걸쳐서 쌓인 질긴 세뇌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늙은 사람에게는 고집불통으로 보일만큼 보수성이 강하고, 젊은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진보 성향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세뇌의 기간과 반비례하는 현상이다.
그래서, 보수 성향의 사람이 진보(進步) 성향의 사람으로 바뀌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보수성향>을 <고정관념>으로 대치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불교 용어로, <보수성향>이나 <고정관념>을 <습(習)>이라고 표현해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것 같다.
보수적인 사람이 진보적인 사람으로 바뀌기도 어렵고,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일도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대단히 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
6,70 대 부모가 3,40 대 자식이 못나(모자라) 보여서, 자기 주장으로 자식을 이겨 보려고 고집을 피우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인생에서 3,40 대가 얼마나 성숙되고도 왕성한 때인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6,70 대 또는 7,80 대 부모들이 이 3,40 대들을 그것도 자기 자식들을 이겨 보려고 고집을 부린다는 것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에서 그 구체적인 예들을 나열하기는 삼가기로 한다.

그러나, 나이 먹은 사람들은 자기가 고집을 피우며 주장하는 것들이 오랜 시간 동안에 세뇌되어 쌓인 <고정관념> 내지는 <고약한 인습>은 아닌지 곰곰히 따져 봐야 될 것이다.
이 때, 가장 중요한 자세는 몸과 마음이 모두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고, 넉넉해야 된다는 사실이다. 


[여담]

젊은 시절의 남자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했겠지만, 여자인 <비너스상>만 멋있게 보였을 뿐, 남성적인 <석굴암의 불상>은 눈에 들어 오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40 살이 넘은 어느 때부터인가 <비너스상> 따위는 있는지 없는지 보이지 않게 되고, <석굴암의 불상>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했다.

42 살 되던 해 겨울(12 월) 어느 날, 경주의 석굴암을 구경하게 되었었는데, 그날 필자는 오랜 시간 동안 석굴암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도 유리 벽 바깥에서 추위에 떨며.

<미륵 반가사유상>이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보다 더 감미롭게 보이기 시작한 것도 40 살이 훨씬 넘어서였다.
지금도 <미륵 반가사유상>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때면, “저런 미소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하고 욕심을 부려 볼 때가 많다.

오랜 세월 동안, 북한과 미국을 말할 때는 <미북>이라 했고, 북한과 중국이나 일본을 말할 때도 <중북> <일북>이라고 지칭되었었다.
어려서부터 북한을 <빨갱이>라 하여 무슨 악마라도 되는 것처럼 교육을 받기도 했고, 마침내 그것에 푹 절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북미> <북일> <북중>이라고 말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북한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요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동포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 것이리라.
이런 안목이 생겨나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과 우여곡절이 필요했던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100 % 맞는 내용인 줄 알고 있었다.
아니, 100 %는 아니더라도 90 % 이상은 맞는 말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나, 역사라는 것도 승자(勝者)의 입맛에 맞도록 변질되고 각색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부터는 어떤 역사라도 50 % 이상은 접어 놓고 음미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런 자세는 현재의 언론 기관들이 전하는 내용들도 절반 이상을 깎아 내린 다음 곰곰이 따져 보는 습성이 생겼다.

서양식(?) 교육을 받고, 서양식 문물에 젖어서 그랬던가, 예수교만이 정당한 종교로 보일 뿐, 불교 따위는 미신 내지 무식한 사람들이나 가지는 사탄의 무리쯤으로 여기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불교의 <방편 설> <불입 문자> 등등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불교는 고등 종교, 예수교는 하등 종교라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사실이던 거짓이던 예수교는 며칠만 파고 들어가면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는 막다른 절벽에 걸리지만, 불교는 수 십 년을 파고 들어도 그 끝을 만나기가 힘들 정도로 깊은 맛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는 미신으로 취급되던 우리 나라의 무속 신앙이 대단히 심오한 종교라는 것을 알게도 되었다.
이 외에도 필자의 안목이 달라진 분야는 많다.
그런데, 이 모든 현상은 1980 연대 초, 나이 40 이 훨씬 넘어서 겨우 얻어진 안목이었다.

그렇다.
서양식 교육을 받고 굳어진 서양식 굴레와 어려서부터 주위로부터 세뇌되고 염색된 틀을 벗어나서 세상을 보면, 새롭게 보이는 것이 많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고정 관념을 깨고 새롭게 태어난 모습>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제삼자 2012-06-13 (수) 06:45
[계속 유통시켜야 할 위조지폐]

아래 그림은 예수가 이 세상에서 최초로 기적을 일으켰다는 소위 <가나의 혼인 잔치> 그림이다.
요한 2 장에 나오는 말이다.

 
그림을 감상해 보자.

혼인 잔치의 주인공은 두 말 필요 없이 신랑과 신부일 것이다.
그런데, 잔칫상의 정 중앙에는 신랑과 신부가 아닌 예수가 떡하니 자리 잡고 앉아 있다.
그리고, 예수 오른 편에는 예수의 어미 마리아가 앉아 있다.

그러니까,
<가나의 혼인 잔치>는 예수와 예수의 어미 즉, 모자(母子)가 혼인을 하는 잔치였던 것이다?

독자들은 이 잔치의 진짜 주인공인 신랑 신부는 어느 구석에 쳐 박혀 있는지 찾아 보기 바란다.
신이라는 허상 앞에서 존엄한 인격이 여지 없이 짓밟힌 모독이 위의 그림이다.


진짜로 그림을 설명해 보면, 
2,000 년 전에 중동 지방의 촌 구석에서 벌어진 혼인 잔치가
16 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웅장한 궁전을 보여 주고 있다.

2,000 년 전, 중동 지방의 촌 구석에서 벌어지는 잔치인데,
잔치에 모여 있는 녀석들은 전 세계의 귀족들이 총 집합된 모습이다.
16 세기 경의 베네치아의 부귀 영화를 한껏 과시하고 있다.

맹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켰다니까, 그 포도주 병도 나딩굴고 있다.
촌구석 잔치에 악사들도 동원되어 있다.

결국,
위의 그림은 사람이 제 멋과 흥에 겨워서 제 멋대로 그려 놓은 신의 세계이다.
신의 세계는 인간 각자가 자기 멋대로 그려서 간직하는 신기루이다.
바이블 내용도 신과는 아무 상관 없이 어느 누가 제 멋대로 상상해 놓은 것이다.

한국 예수교도 그 속은 텅 비어 있으면서,
허무 맹랑한 못난이들이 그 속을 꽉꽉 채워 놓은 쓰레기통이다.

위의 그림도 제 딴에는 화려한 색채로 최대한 멋을 부렸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서 푼어치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 더미요, 인간이 가진 최고의 망상이다. 
아름답게 그려진 그림은 값진 것인가? 내용이 거짓과 허구일지라도 예술품이어서 값진 것인가?

어떤 집에 천연색으로 잘 그련진 초상화가 걸려 있다.
그 집안의 부모 또는 조상의 실물 그림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초상화는 그 집 조상의 초상화가 아닌 가짜로 밝혀진다.
그렇더라도, 예술품답게 천연색으로 잘 그려진 초상화이므로 전처럼 여전히 잘 모시게 되는가?

위조지폐!
어찌나 세밀하게 잘 그렸는지 진짜화폐보다 더욱 아름답고 멋지다.
그러면, 그 위조지폐를 폐기하지 않고 그냥 계속 유통시키나?


성지 순례를 다닌다, 유럽의 대 성당을 구경 다닌다, 위대한 성화를 감상한다,
등등등.....
결국은 모두가 허구(거짓)를 포장해 놓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행적에 침을 질질 흘리는 꼴이라니... 
이 현상이 바로 예수교가 아니고 뭘까?



* 참고;

[여호와(예수)는 신이 아니다]

무신론자들은 신이 없다고 주장한다.
예수교는 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은 여호와(예수)가 아니다.
왜냐 하면,
예수교의 바이블은 여호와(예수)가 신이 아님을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신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신이 존재할 수 있다는 증거가 제시된다면,
다른 종교의 신은 존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여호와(예수)는 그 신의 반열에 편입될 수가 없다.
왜냐 하면,
예수교의 바이블은 여호와(예수)가 신일 수 없다고 자세히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교는 책(바이블)의 종교이다."
이는 예수교의 신앙과 예수쟁이들의 생활이 전적으로 바이블에 입각하여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이블 내용은 한 글자도 어김 없이 허구, 모순, 궤변으로 엮어져 있으며,
한 술 더 떠서, 바이블은 여호와(예수)가 가짜임을 철저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제삼자 2012-06-14 (목) 23:22
[할 짓 다하고, 죽기 직전 회개하기]

 
근래에 전직(은퇴) 목사 또는 교회를 가지지 않은 목사(신학대 교수 등)들에 의하여 예수교에 대한 비판서가 심심치 않게 출판되고 있다.
그들은 어찌하여 은퇴한 뒤에서야 그러한 일을 하게 되었을까?
좀 더 일찍 양심적인 밝은 눈을 뜰 수는 없었을까?

한참 돈을 벌 나이 때에는 아무 말 없이 예수교 이름으로 사회적 지위와 치부(致富)를 즐기다가 늙은 후, 은퇴하고서야 바른 말을 하고 있는 파렴치범의 독백이라 할 수 있겠다.
어느 은퇴 목사는 자기 저서(책) 속에서 자신의 과거(목사질=공갈, 협박, 사기질로 돈을 벌던 짓)가 부끄럽다고 피력해 놓은 것도 보았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잘못은 상황 논리적 결과로 덮어두고, 입으로만 선심(善心)쓰며 떠들어대는 약삭빠른 잔재주로 보인다.
대단히 편리한 변명이다.
성직자(聖職者)라는 종교인의 가면을 쓰고 벌이는 무서운 자기 변명이다.
 
그런데 그 전직(은퇴) 목사들이 한결 같이 주장하는 방향이 있다.
"바이블의 악질적인 내용을 삭제 또는 수정하고, 좋은 내용만을 새롭게 재해석하여 예수교를 바르게(?) 이끌어야 된다." 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차라리 감나무 밑에 누워서 입 속으로 감이 떨어질 날을 기다리는 게 더 가능한 일이다.
예수교(쟁이)가 인간다워지는 일은 절대로 불가능의 난제일 뿐이다.
인류 사회의 어느 조직이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예수교(쟁이) 역시 정화(淨化)될 날은 없는 것이다.
 
위의 전직(은퇴) 목사들도 젊어서부터 이미 예수교의 잘못된 점을 발견하고 있었을 것이다.
잘못된 점이 적당히 작은 것이 아니라 대단히 심각한, 인간과 아주 크게 대치되는 무서운 집단이란 것도 발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안위와 돈부터 챙긴 후, 늙어서야 겨우 모기 소리로 몇 마디 중언 부언할 뿐이다.
그러면서 예수교 역사에 대하여 그들이 쏟아내는 말은 재미있다.
 
"지금까지 예수교는 여호와(예수)의 가르침대로 바르게 이끌어 지지를 못하고 악(惡)을 만들어 내었다."라고.
그들은 바이블에 악질적인 요소가 있으므로 이것을 수정, 삭제하여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어떻게 "예수교 역사가 여호와(예수)의 가름침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악을 만들어 냈다." 고 진단할 수 있을까?

마지막까지(죽을 때까지) 양가죽을 쓴 늑대 노릇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아니면, 예수쟁이들은 지능지수(知能指數)가 낮기 때문에 또는 얼이 빠져 더 이상 사고력을 확장할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결론에 도달되는 현상이리라. 
 
"예수교가 역사 속에서 즉, 과거와 현재에 배설해 내는 모든 악질적인 만행질은 바이블의 가르침을 한 가지도 빠뜨리지 않고 모든 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십자군 전쟁, 남북 아메리카의 원주민에 대한 겁탈과 도륙, 100 년 전쟁, 30 년 전쟁, 아프리카 및 아시아 등지에서 전도와 교화를 빙자하여 각 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파괴한 짓, 또 자기네 예수쟁이들끼리 벌이는 잔인한 살인 행각(이단과 마귀로 몰아), 그리고 인간의 약점을 최대한 공갈 협박하여 재물을 후려내는 짓 등등, 어느 경우일지라도 바이블의 가르침이 아닌 것이 없다.
 
전직(은퇴) 목사들의 "바이블 내용을 삭제하거나 수정하자"는 주장은 바로 이런 악질적이고도 잔인한 내용과 허구성 및 비윤리성을 두고서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왜, 바이블을 수정, 삭제하면서까지 우리가 그 예수교를 붙들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가?
흔한 말로, "인간에게는 종교가 있어야 된다"는 그 터무니없는 속설 때문인가?
목사(신부)질로 먹고 살아가는 사람을 위한 좋은 궤변일 뿐이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유황불 지옥에 쳐 넣어도 그 죄가 다 갚아질 수 없을 정도로, 예수교 안에서 갖은 편의를 만끽하는(하던) 자들의 입에서 나온 그 궤변을 우리는 냉철하게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독자들은 이제, 예수교(바이블)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예수교가 있는 곳에 평화는 없(었)다.
또, 예수교는 종교 전쟁의 불씨 노릇을 철저히 감당해 왔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과거와는 달리 (더욱 심각하게) 예수교에 의한 종교 전쟁은 마침내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다.

서구 사회는 이미 예수교가 마지막을 달리는 사양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뉴욕의 쌍둥이 빌딩 테러 사건은 예수교와 모슬렘의 한판 결투였다.
여호와(예수)의 고향 이스라엘을 위한 대리 전이었다.
서구 사회에서 예수교가 문을 닫게 되더라도 그들에게서 예수교적 습(習)이 사라지려면 적어도 한 세기 이상의 세월이 흘러야 될 것이다.
 
종교적 습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는 것이다.
예수쟁이들의 습(習)은 피(血) 맛을 가장 즐긴다.
 
여기에서 특별히 강조하거니와, 인류 역사상 인간이 저지른 가장 크고 불행한 실수(시행착오)는 바로 예수교를 만들어 낸 일이다.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비극이(었)지만, 이제라도 예수교를 인류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할 것이다.
 
예수교가 인류 사회로부터 격리된다고 해서 평화가 즉시 도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예수교가 인류 사회로부터 격리된 뒤에라야 모든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는 예수교가 인간의 원형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예수교는 인성(人性)을 마비시키는 무서운 마약이다.
인성이 마비된 사람에게는 그 마귀 소굴(예수교)을 마치 천당으로 알고 있다.
 
예수교가 그런 대로 인류 사회에 좀 더 머물기 위해서는,
(1) 바이블 내용(예수교의 교리)이 옳든지 또는
(2) 예수교의 역사가 바르든지,
(3) 예수교의 현재의 모습이 아름답던지, 셋 중에 어느 하나쯤은 보여 주어야 된다.

그러나,
예수교는 그 세 가지 모두가 악과 잔인과 독선과 배타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실제로 인류 사회에다 그 모든 것을 배설해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교의 경우,
초신자 또는 어리석은 일반 신도 시절에는 여호와(예수)의 징벌을 두려워하여 선행(善行)을 쌓으려고 노력하는 시절도 있다.
그러나, 지도자 또는 교리를 터득해 가거나 연륜을 쌓은 예수쟁이가 된 후에는 철저한 악(惡)의 방관자(傍觀者), 악의 조장자(助長者) 내지 악의 시행자(施行者)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는 특성(特性)을 가지고 있다.
 
또, 전국민의 1/3 이상의 신도를 확보하게 되면,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막강한 망나니 집단화되어 국운(國運)을 좌우하는 무서운 괴물로 둔갑한다.
따라서, 예수교는 재고의 여지없이 인류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한다.
필자의 글은 이런 연유로 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삼자 2012-06-21 (목) 00:03
[규명(糾明)된 진리] 

 
(1) 어느 천주교 신자가 신부에게 말(질문)했다.

"신부님, 신학자들과 생각이 있는 사람들에 의하면 바이블 내용은 거의 모두가 허구(虛構)라고 한답니다.
신부님은 이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러자, 신부가 대답했다.

"신학자들과 생각이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바이블 내용이 허구이다 뭐다 하고 떠드는 것은 그들의 몫으로 내버려 두십시오.
우리(예수쟁이)들은 바이블 속에 좋은 말이 있겠거니 하고 그냥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 껍데기를 쓰고서 이렇게 무지막지한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예수쟁이가 되면, 사람이 저렇게 되는 것인가? 그러니, 예수교를 박멸해야 된다고 하지... 

 

(2) 캐나다로 신학(神學)이란 것을 공부하기 위하여 유학을 간 어느 유식한(학자) 예수쟁이가 그의 논문에서 이런 말을 했다.

"바이블 내용이 사실과 다른 허구(虛構)이든 궤변(詭辯)이든 또는 모순(矛盾)이든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여호와는 전지전능하신 참 신이시며, 그가 천지를 창조하고 이것을 사랑으로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허구, 궤변, 모순 속에서도 참 신을 설명할 수 있고, 창조론이 설명될 수 있나 보지?
예수쟁이가 되면, 사람이 저렇게 되는 것인가? 그러니, 예수교를 박멸해야 된다고 하지...


(3) 금년(2012 년) 들어와서 여수 앞 바다에서는 꽁치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그렇다면, 서울 사람들은 동대문(흥인문) 쪽으로 열심히 걸어가야 한다.
     왜냐 하면, 여수 앞 바다에서 꽁치가 많이 잡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논법이냐고?"
     "여호와 또는 예수의 논법이다. 어쩔래! 떫어?"
제삼자 2012-06-24 (일) 14:28
[사상누각(砂上樓閣)]


100 만 명의 사람을 죽이는 행위와 지팡이(죽은 막대기)로 뱀(살아 있는 뱀)을 만드는 일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운(불가능한) 일일까?

조금 더 심하게 말해서, 저절로 개구리가 생겨나게 하는 일과
지구(地球)의 자전(自轉)을 멈추게 하는 일은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 (과학적 이론으로)

그러면, 물이 피로 변하게 하는 일과
우박이 내리게 하는 일은 어느 것이 더 불가능한 일일까? (이것도 과학적 이론으로)

그런데, 바이블에서는 인간(애굽의 술객들)이 지팡이로 뱀을 만들고,
또 물을 피로 변화시키고 그리고 개구리를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이 모두가 여호와라는 신(神)을 인간 세상에 처음으로 소개한 모세의 글 속에 나오는 말들이다.
이것으로 여호와 및 그 아들임을 자칭하는 예수 그리고 예수교가 모두 허구(虛構)임을 증명한 셈이다.

더 긴 설명이 필요할까?


[바로(애굽 왕)도 박사와 박수를 부르매, 그 애굽 술객(사람)들도 그 술법으로...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출애굽기 7;11~12)



[...애굽의 술객(사람)들도 자기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물로 피를 만들므로)...]

(출애굽기 7;20~22)


[술객(사람)들도 자기 술법대로 이와 같이 행하여 개구리로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였더라.]

(출애굽기 8;7)


바이블에 의하면,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는 모세를 통하여 10 여 가지 재앙(기적)을 애굽에 퍼붓는다.
처음 재앙은 조금(?) 가볍다가 뒤로 갈수록 피해가 점점 커지고 심각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피해의 크기가 그렇다는 것이지, 시행 방법으로 본다면 앞의 것은 불가능한 것이며, 뒤의 것은 조건만 갖추면 인간도 능히 할 수 있는 일(기적?)이다.

따라서, 바이블은 미개 시대의 무지한 사람의 생각이 그려낸 허무맹랑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호와라는 신(神)은 이런 허구(虛構) 속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허구(모세)가 허구(여호와)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 허구(虛構)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예수교인(학자?)들에 의하여 갖가지로 각색되어 얼기설기 얽어지게 된다.
마치 무슨 진리나 되는 것처럼.

빈 보따리를 비단으로 싸고 또 싸고 또 싸면 그 속에 보물이 생기는가?
그 빈 보따리를 아무리 금은 보화로 치장하고 좋은 말로 이론을 전개하더라도 여전히 그 보따리 속에는 아무 것도 없을 뿐이다.

사상누각(砂上樓閣)은 밑에 모래라도 있지만, 예수교는 기초와 1~2 층 없이(허공중) 3 층에서부터 설명되는, 말 그대로 허구(虛構)일 뿐이다.
이것이 바이블이요 예수교이다.

어떤 예수교인은 예수와 바울의 말 중에서 그럴싸한 것을 인용하여 무엇인가를 변명하려고 한다.
그것이 바로 기초와 1~2 층 없이 3 층을 떠들고 있는 궤변이란 말이다.
여호와가 허구인 마당에 예수와 바울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예수교는 신(神)과 사람과 자신을 모두 속이는 살인 만행의 무서운 사기꾼이다.
아니 악마(惡魔)의 집단이다.
역사와 현실이 증명하고 있다.
제삼자 2012-06-28 (목) 12:46
[변칙적인 삶]


70 살 먹은 늙은이가 새치기를 잘 한다면, 그의 2,30 대 젊은 시절은 어떠했을까?
70 살 먹은 늙은이가 새치기에 능하다면, 그의 2,30 대 시절은 보나 마나 뻔하다.
학교보다도 배울 것이 훨씬 더 많은 세상 속에서 70 년을 배우며 수련을 쌓고서도 그 모양이니 기가 막힐 일이다.

인생 70 년 동안을 변칙적으로 살고도 모자라서,
마지막 죽을 날을 며칠(?) 앞두고도 여전히 변칙적인 삶을 버리지 못하고 그 짓을 계속하다니...

그 변칙적으로 굴러가는 세상이 그냥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식과 손자 손녀들이 계속 살아가야 되는 그런 세상이 아닌가?
자기 자식과 후손들이 살아 가야 될 세상을 지옥 같은 세상으로 만들어서 물려 줄 작정인가?

젊어서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변칙적 방법을 써 먹었다고 하더라도, 늙어서 죽을 날을 앞두고서까지 그런대서야...

아무 것도 아닌 줄서기인데도 새치기를 한다.
전철 줄서기에도 새치기, 식당(예그린) 줄서기에서도 새치기, 세상사 매사에 새치기를 한다.
죽으러 가는 줄서기만 그 새치기에서 제외되는 것 같다.


(1) 작년(2011 년) 어느 날, 우리 부부는 온양에서 서울행(종로3가) 전철을 탔었다.
전철이 온양까지 운행된다고 해서 그 곳 온천엘 다녀 오는 길이었다.

우리 부부는 나이는 70 이 넘었어도 외국 시민권자여서 즉, 한국 국적이 없어서 소위 공짜 카드가 없다.
그래서, 요금을 지불하고 승차권을 구입하고서 전철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 날, 전철을 타기 몇 시간 전부터 집 사람의 몸에서 열이 나더니, 급기야 감기 기운이 돌면서 거동하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다행히, 노인 우대석에 자리가 있어서 우리 부부는 앉아서 편한 자세를 취할 수가 있었다.

평택역이 닥아오자 좌석은 만원이되고 서 있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평택역에서 어느 노인 부부가 승차했다. 그들이 앉을 자리는 없었다.
열차가 떠나고 1 분도 채 안 됐을 때, 늙은이(남자)가 소리쳤다.

"늙은이 좀 앉집시다." 우리 집 사람에게 던지는 말이 분명했다.
요즈음, 노인(노파)들은 예전과 달라서 젊어 뵈는 사람이 많다.
집 사람 역시 나이보다는 몇 살 젊어 뵌다고 느껴오고 있었다.

그러나, 집 사람은 당시 몸이 몹시 아픈 상태였다.
앉아 있기도 힘든 상태인데, 평택에서 서울까지 서서 올 수는 없었다.
필자가 얼른 일어섰다. 그 늙은이(남자)가 냉킁 앉았음은 물론이다.

필자는 그 때, 마음 속으로 씨름을 많이 했다.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할까 말까...결국은 입을 다물고 말았지만...
그 늙은이 부부도 70 세 전후로 보였지만, 우리 부부도 마찬 가지였다.

사실, 필자의 입이 한 번 열리면, 그 늙은이를 크게 혼을 내줄 작정이었다.

"공짜로 차를 탔으면, 미안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좀 힘들어도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

"젊은이 앞에서도 늙은이 행세를 조심해야 하거늘, 늙은이들 앞에서 늙은이 행세를 하다니..."

"우리 부부는 늙었어도 당당하게 승차 요금을 지불한 사람들이다."

"우리 부부도 70 이 넘은 늙은이들이다."

"여행할 때, 꼭 앉아야 되는 사람이라면, 자가용을 사서 이용하라."

"늙은이가 될 때까지 아직도 자가용을 살 형편이 못 되는가? 여태 뭘 했나?"

"평생 동안 국가에다 세금 한 번 제대로 납부도 못해 본 자가 늙은이 행세로 큰 소리만 치고 있는 게 아닌가?"

"젊은이들과 정부에서 대한민국의 경제 대국 건설이 늙은이들의 공이라고 추켜 주니까 당신 같은 사람까지 드러내 놓고 우쭐거려도 되는 줄 아는가?"

"설령, 진짜로 공을 세웠더라도, 부끄러워 할 줄도 알고, 사양도 할 줄 알고, 숨길 줄도 알아야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할 말 다 하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그 날, 필자는 아뭇소리 못하고 시흥인가 어디까지인가 꼬빡 서서 왔다.
사실, 필자는 전철에서 노인석 바로 옆에 있는 출입구 외에는 서 있어 본 적이 없다.

일반석 앞이나 옆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미안해 할까봐서 그 근처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아예, 처음부터 앉을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종로3가,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등지에 자주 가는 편인데,
전철 안에서 1~2 시간 씩을 서 있어도 필자는 아무 부담이 없다.
아예, 처음부터 마음 속에서 앉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 전철의 노인석에 3 개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런데, 일반석 쪽에는 젊은이들이 20 여 명이 서 있었다.
그 일반석에는 늙은이 여나믄 명이 지긋이 여유 만만하게 앉아 있었다.

젊은이들은 노인석에 자리가 3 개 비어 있어도 앉지를 못한다.
일반석에 앉아 있는 늙은이들은 전혀 아무 감각이 없다.
그 서 있는 젊은이가 자기 자식이거나 손자 손녀라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직장 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날마다 출퇴근하는 자기 자식이
뻔뻔한 늙은이들 때문에 자리가 없어서 시달리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노인 좌석에 남는 자리가 없을 경우, 일반석에 늙은이가 앉았다면,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노인 좌석에 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석에 무슨 기득권이라도 확보한 것처럼 아무 감각 없이 멀뚱 멀뚱 앉아 있는 꼴은 좀 그렇다.

자리 다툼 또는 새치기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 부부가 종로3가에서 전철을 타고 독립문까지 가고 있었다.
집 사람이 독립문역에서 내렸다. 다음에 필자가 내리려고 했다.

그러나, 필자는 하차하지 못했다.
차 안에 빈 자리가 몇 개 있는 것을 발견한 차 밖의 무더기(사람이 아니다)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어서 도저히 하차할 수가 없었다.
필자는 무악재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했다.

사실상,
차 안의 승객이 하차하기도 전에 우르르 몰려 타는 모습은 거의 매일 볼 수 있는 추한 모습이다.
주로 늙은이들이 벌이는 추태이다.
역시, 70 년 이상을 변칙적으로 살고도 모자라서 죽을 날을 앞에 두고도 끝까지 그 더러운 모습을 보여 주는 짓이다.



(3) "이 놈이 누구보구 이래라 저래라 하는거야!"

80 세 전후의 늙은이가 자원 봉사자(70 세 전후)에게 쏟아 붓는 욕설이었다.
예그린 식당(어느 노인종합복지관)에는 자원 봉사자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그 중에는 식사하는 사람들에게 질서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다.

쓰레기가 어지렵혀져 있다던지,
휴지가 고갈됐다던지,
쓰레기통이 제 자리에서 이탈돼 있다던지,
밥 먹는 사람의 자세가 남에게 방해가 된다던지 등등...
이것 저것 정리 정돈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하루는 80 세가 조금 넘어 보이는 늙은이가 한 쪽 다리를 식탁 밖으로 내 놓고 삐딱하게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몸뚱이가 삐딱하니까 옆 사람도 불편하고,
다리(발)가 통로로 나와 있으니까, 통행하는 사람에게도 위험한 일이다.

봉사자가 말했다. "다리를 안으로 들여 놓으세요."라고.
그랬더니, 주의를 받은 늙은이가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이었다.

"이 놈이 누구보구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야!"
이 뿐만이 아니었다. 그 늙은이의 욕설과 아우성은 한참 계속됐었다.
그 늙은이의 병(?)은 죽어야 고쳐지는 그런 괴질 같아 보인다.

적반하장(賊反荷杖=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 뜻으로, 잘못한 사람이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을 도리어 나무람을 이르는 말)이 제대로 어울리고 있었다.

누가 있어 그 늙은이에게 무슨 말을 해 줄 수가 있겠는가?
꼴에 양복을 쪽 빼 입고 나타나서 노파(여자니까?)들과만 놀려고 든다.
"곱게 늙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절감하게 한다.



(4) 우측 보행(통행)이 실시된 지 3 년은 됐을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쉬운 것조차도 어기는 사람이 왜 그렇게 많은 걸까?
건강, 건강 건강 또 건강을 찾으며 오래 오래 살고 싶어서 안달하는 사람들!

정신 상태가 이미 푹푹 썩어 있는데, 몸뚱이만 건강해서 무얼 어쩌겠다는 걸까?
손해가 나는 일도 아니고,
다리가 부러지는 일도 아닐 텐데, 그 쉬운 일을 왜 어기고 있을까?

날씨가 무척 더운 어느 일요일이었다. 오후 2 시 쯤.
주엽역 쪽에서 노래하는 분수대 쪽으로 육교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 넓은 육교의 오른 쪽으로 4/5 는 공원 쪽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겨우 왼 쪽으로 1/5 정도 만이 공원 쪽에서 밖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우측 보행이 잘 이행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오른 쪽 저 멀리에서 키가 꽤 크고 몸집이 거대한 30 대 청년이 넘어오고 있었다.
이 쪽에서 보기에 오른 쪽이니까, 그 청년은 좌측 보행으로 넘어오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육교에 가득하기 때문에 그 청년은 계속해서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치느라 전진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청년은 자기가 왜 걸을 수 없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우람한 청년도 건강을 위해서 걷기 운동을 하려고 나온 모양이지만, 이미 그 정신은 썩은 상태가 아닐까?

썩은 정신에다 우람하고 건장한 몸뚱이를 입혀 놓으면, 그게 무슨 사람인가?

공원만이 아니다.
전철역에서도 그렇고, 노인종합복지과에서도 그렇고...
글씨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는 화살표도 그려져 있다.

좀 흉한 표현이지만, 옛날 시골 노인들이 하던 말이 생각 난다.
"썩은 동태 눙깔" 또는
"얼음에 빠진 쇠 눙깔"

100 번 1,000 번을 일러 줘도 아무 감각이 없는 사람을 두고서 답답하여 하는 말이었다.
썩은 동태 눈은 광채가 없다.
얼음에 빠진 소의 눈도 커다랗기만 할 뿐, 긴장감이나 광채가 없다.

사람의 눈(정신, 마음, 품행)이 그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더구나, 세상이라는 커다란 학교에서 70 년 80 년을 배우고 닦았는데도 여전히 변칙적 삶으로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한다는 것은 너무한 것 같다.

그런 변칙적인 힘든 세상을 만들어 아들 딸과 손자 손녀에게 물려 주려는가?


(5) 변칙적인 삶 중에서 가장 변칙적인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예수쟁이의 삶이 가장 변칙적이고 더러운 것이다.
순수한 인간의 원형을 깡그리 부정하면서 엉뚱한 영생 복락에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에서 변칙적이지 않은 것이 한 가지도 없다.
아니. 예수쟁이들의 삶은 변칙적이라기보다는 악질적이고 범죄적이라고 해야 옳다.

세상에 그럴싸한 말이란 말은 모두 깔고 앉아서
원수를 사랑하느니,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니, 
희생 봉사를 하느니 등등등...
세상에다 온갖 더러움과 악독을 쏟아 내는 예수쟁이들의 위선과 독선은 변칙 중에서도 가장 경계해야 될 변칙이다.

"사람은 예수(여호와)의 은혜로 사는 것이다." 예수쟁이들의 너스레이다.
그러면서, 이웃(사람)이 생산해 내는 편의을 가장 먼저 먹어 치우거나, 소비해대는 무리가 예수쟁이들이다.
새치기 중에서도 이렇게 억울한 새치기가 있을까?

사실상, 인류 사회에서 가장 큰 새치기가 바로 고마움을 모르면서 아무 것이나 무대뽀로 먹어치우는 예수쟁이들의 악마적 횡포이다.
그리고는 여전히 "하나님(여호와) 감사합니다."를 연발한다.
기가 막힐 일이다.
제삼자 2012-07-01 (일) 19:03
[위대한 섭리(攝理)]


2010 년 10 월 13 일, 칠레의 광부 33 명이 700 m 지하 갱도에 묻혀 있다가 69 일 만에 모두 생환된 사건이 있었다. 
만약, 하루가 늦은 70 일 만에 구출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역시, 33 명 모두가 생환됐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각설하고)


신(神)의 섭리(攝理)는 인간이 쉽게 터득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다음 글은 마음을 예리하게 가다듬고 정독을 해야 될 것이다.
전지전능한 신(神) 여호와의 위대한 섭리(攝理)이기 때문이다. ㅎㅎㅎ...

자, 그럼 이제부터 여호와의 섭리가 시작된다.


한 끼의 식사만으로 80 일을 굶을 수 있는 능력(기적)이 있다면, 차라리 한 끼의 식사조차 하지 않고도 80 일을 견딜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 전 날은 식사를 했을 것이므로 81 일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끼의 식사로 80 일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 끼의 식사로 81 일도 견딜 수 있을 것이란 말이다.


바이블을 기록한 사람은 위의 말을 알아 듣지도 못하고, 저런 정도의 계산 능력도 가지지 못한 둔한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즉, 80 일을 굶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81 일도 굶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못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바이블 내용은 전지전능한 신(神)의 기록이 아니라, 어느 덜 떨어진 인간이 줏어 모은 잡동사니 글이라는 말이다.


바이블 내용에 의하면, 여호와의 거처(집)는 중동지방 시내(시나이) 반도에 자리잡고 있는 호렙산이 분명하다.
모세가 여호와를 처음으로 발견한 곳도 호렙산이며, 그가 10 계명을 받은 곳도 역시 호렙산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앞잡이(선지자)로 모세와 쌍벽을 이루는 엘리야도 호렙산까지 불려 가서야 여호와의 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만하면, 호렙산이야말로 여호와의 집(거처)이 분명하다.


이야기를 진행하자면, 복잡한 서론까지도 중요하지만 사정상 짧은 글을 만들기 위하여 머리도 자르고 꼬리도 잘라서 요점만 말하기로 한다.


이스라엘 왕 아합과 그 왕후 이세벨은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고 한다.
사태가 급박해 지자 엘리야는 야반 도주하여 멀리 도망친다.

바이블을 보자.


1) [저(엘리야)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브엘세바(지명)에 일르러, 자기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 광야(사막)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싸리)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소서..."]

(열왕기상 19;3~4)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멀리 도망친 녀석이 안전한 곳까지 도망가서 한다는 소리가,
"여호와여, 나를 죽여주십시오. 살만큼 살아서 여한이 없습니다." 라며 죽기를 구하는 기도를 했다고 한다.

도망가지 않았으면 자연스레 잡혀 죽게 되어 있는데, 구태여 먼 곳까지 도망을 가서 죽여 달라고 기도까지 하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바이블 기자는 자기가 꾸며 놓은 한 두 줄 앞의 내용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횡설수설 나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이블 내용이다. 이런 것에 신(神)이란 것이 들어 있겠는가?



2) [(엘리야가) 로뎀(싸리)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열왕기상 19;5~7)


아합왕을 피하여 야반 도주하느라고 피곤했던지 엘리야는 싸리나무 밑에서 잠이 들었다고 한다.
왕 부부에게 쫓기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잠을 잤다?
그 때, 여호와가 보낸 천사가 "일어나 음식을 먹으라"고 깨워서 두 차례에 걸쳐서 떡과 물을 먹고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나오는 말이지만,
아무 것도 없는 사막 벌판에서 왕복 80 일 동안 여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엘리야는 음식을 먹어 두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한 끼의 음식을 먹고서 80 일 동안 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기적질)이라면, 그 한 끼를 먹지 않고도 80 일 동안 여행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 끼 식사를 하지 않더라도, 그 전 날, 음식을 먹었을 것이므로 81 일 동안 여행을 하는 셈이 된다.

재차 말하지만,
한 끼의 식사만으로 80 일 동안 여행을 할 수 있는 재주(능력)가 있는 사람이라면, 전 날 먹은 음식만으로 81 일 동안 여행도 가능할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구차스럽게 천사(여호와)가 나타나서 기적으로 엘리야에게 음식을 먹이는 장면을 꾸며내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여호와의 못난 짓을 꾸미느라고 바이블이 쓸 데 없이 두꺼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 짓을 가리켜 전지전능한 신(여호와)의 섭리라고 한다는 것이다. 웃겼다. 그지?


3)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40 주(晝) 40 야(夜)를 행하여 여호와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열왕기상 19;8)


잠을 자다가 천사(여호와)가 깨워서, 일어나 음식을 먹고,
그 음식의 힘에 의지하여 40 주야(40 일)만에 여호와가 거처하는 호렙산에 도착했다는 말이다.
다시 돌아와야 되므로, 한 끼 식사의 힘으로 왕복 80 일 동안의 여행을 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결국, 여호와가 주는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한 끼의 식사만으로도 80 일을 견딜 수 있었다는 기적질 얘기가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못나니 웃기는 소리라는 말이다.

차라리 한 끼의 식사도 없이 그냥 80 일 동안 여행을 할 수 있었다고 했어야 했다.
한 끼의 식사로 80 일을 견딘 수 있는 사람(능력)이라면, 그냥 먹지 않고도 80 일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 전 날 식사를 했을 것이므로 81 일을 견디는 셈이다.


4) [(열왕기상 19;9~18은 엘리야가 여호와 신을 만나는 장면이다.
지루하고 쓸데없는 것이라서 생략함)] 어쨌든 또 각설하고,


여호와는 전지전능해서 무소부재(無所不在)한 존재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을 구태여 호렙산까지 불러다가 만날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 곳에서나 쉽게 만나 주면 무엇이 잘못되기라도 하는가?

또, 왕복 80 일이나 걸리는 곳까지 사람을 불러갔으면 무엇인가 그럴싸한(중대한) 사명을 일러주어야 될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가 엘리야에게 들려주는 말은 다음과 같이 시시껄렁한(?) 것들이다.

아니, 전혀 말도 안 되는 어거지 내용의 말들이다. 


(1) 너(엘리야)는 다메섹(시리아의 수도)으로 돌아가라.

(2) 하사엘(인명)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시리아)의 왕이 되게 하라.
    (엘리야는 다른 나라의 왕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자인가?)

(3) 예후(인명)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이 왕이 되게 하라.
    (또, 엘리야는 이스라엘 왕도 맘대로 주무를 수 있는 막강한 권력자인가?)

(4)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선지자가 되게 하라.

(5)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무차별 대량 학살을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여호와=예수?)

(6) "그러나 내(여호와)가 7,000 인을 남기리니, 바알(잡신=미신)에게 무릎을 꿇지도 않고, 입도 맞추지도 아니한 자들이니라."

이상이 인류 최고 최대의 선지자 엘리야를 80 일 걸리는 먼 곳으로 불러들여 여호와가 내린 명령이다.

어떤가?
이런 것을 전지전능한 신이란 작자가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섭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출애굽 당시에도 장정만 헤아려서 60 만이라 했다.
그렇다면, 수 백 수 천년이 지난 엘리야 시대의 이스라엘 인구는 얼마나 됐을까?
얼마나 죽여 없애버려야 7,000 명만 남게 될까?
이렇게 잔인하고 못돼 먹은 녀석이 어떻게 신이란 말인가?

아람 왕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이스라엘 왕 예후가 죽이고,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사가 죽이고,
마침내 7,000 명만 남기고 다 죽여 없애 버리겠다는 게 여호와의 계획이다.

결국, 이런 계획을 들려 주려고, 엘리야에게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하고, 80 일 동안의 여행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친 녀석의 지랄 발광이지 어떻게 섭리란 말인가?

여기의 살인자 하사엘, 예후 및 엘리사는 모두 여호와가 기름 부어 세운 여호와의 앞잡이들이다.

이상으로 여호와의 위대하신 섭리(攝理)를 잠시 훑어보았다.
신의 섭리가 무엇인가 했더니, 그리고 그 섭리는 쉽게 터득되는 게 아니라고 해서 긴장을 했었는데, 이제 보니 더럽고 잔인하여 반인륜적인 짓을 지칭하는 말이란 것을 알겠다.

어떤가? 여호와의 섭리=잡놈의 행패라고 보면 되겠는가? 
제삼자 2012-07-07 (토) 07:39
[바이블(여호와=예수)은 말이 너무 많아]
_?xml_: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1]

 

입을 다물고 있으면 중간은 간다. 또는

입을 다물고 있으면 면무식(免無識)은 할 수 있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 말이 있다.

 

사실상, 무식한 사람이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자신의 모자람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꼴이 되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바이블(예수교의 기초)은 쓸데 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느라, 자신이 허구(虛構), 궤변(詭辯), 모순(矛盾)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자세히 증명해 주고 있다.

 

심지어, 여호와(예수)의 악독성(惡毒性), 잔인성(殘忍性), 사기성(詐欺性), 배타성(排他性) 따위를 적나라(赤裸裸)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입을 다물고 있거나 말 수가 적으면 자신의 약점이 감추어 질 수도 있으련만, 쓸데 없는 말을 너무도 많이 하다가 마침내 자신의 치부를 만천하에 알리게 된 바이블(예수교)!

 

예수교의 경전이라 불리는 <바이블>은 예수교가 <>임을 증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짓>임을 철저하게 증명해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는 바이블(여호와=예수)이 입을 다물고 있지를 못하고 계속해서 아는 체를 하며 떠들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마침내, 바이블 내용은 스스로 신의 말이 아니라, 고대 미개 시대의 미개인들이 떠들어 놓은 헛소리라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게 되는 것이다.

 

          [2]

 

<태초에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예수는 여호와의 아들이다.>

<여호와(예수)는 전지전능한 신이다.>

<여호와(예수>는 인간을 사랑한다.>

<모세, 엘리야, 베드로, 바울 등은 실존하던 선지자이다.>    등등,

 

바이블에는 위의 말들만 아무 설명 없이 간단 명료하게 기록되어 있어야 했다.

그래야, 그 진부(眞否)에 대하여 논쟁을 벌이기가 그럴싸할 것이기 때문이다.

 

<태초에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런 말이 세상에 굴러다니면, 이 말을 믿는 예수쟁이들도 있을 수 있고, 이 말을 믿지 않는 비 예수교인도 있게 될 것이다.

 

이 경우,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그 증거를 제시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목소리가 크고, 고집 불통으로 박박 우기는 쪽이 이길 가능성이 많다(?)

바보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이블(여호와)<태초에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 하니라.> 이 말만 간단히 써 놓는 것으로는 견디지를 못한다.

입이 근질근질해서 창조 과정을 쭉 떠들어 대게 된다.

 

마침내, 그 창조 과정 설명이 서로 모순되기도 하고, 비 과학 비 논리로 점철되고 있어서, <창조설> 자체가 송두리 째 허구라는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증거해 주고 있게 되는 것이다.

 

<모세, 엘리야, 베드로, 바울 등은 실존하던 선지자이다.>라고 간단하게 씌어 있지를 못하고, 이들 역시 그 활동 내역이 너무도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활동 내역이 모두 신의 것이 아니라, 미개 시대의 미개인들이 가질 수 있는 생각과 행동임을 훤히 보여 주고 있다.

모세, 엘리야, 베드로, 바울 등은 선지자라는 타이틀을 붙여 주기에 앞서서 아예 실존 인물이 아님을 증명해 주고 있다.

 

이런 현상들이 모두 바이블이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지를 못하고 줄기차게 입을 열어 떠들고 있어서 벌어지는 결과이다.

 

바이블의 말 많음은 결국, 바이블 내용이 스스로 신의 말이 아니라, 고대 미개 시대의 미개인이 떠들어 놓은 헛소리라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는 여호와의 아들이다.>,

<여호와(예수)는 전지전능한 신이다.>,

<여호와(예수>는 인간을 사랑한다.>

등등의 내용도 말을 아껴서 입을 다물고 있지를 못하고, 미주알고주알 떠들어 대느라 모두가 헛소리임을 밝혀 주고 있다.

 

바이블은 스스로 예수와 여호와가 허구(虛構)임을 너무도 자세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3]

 

자연질서, 과학, 논리 등등은 천지 창조와 동시에 우주 속에 내재(內在) 법칙(法則)일 것이다.

천지(우주?)가 없다면, 자연질서, 과학, 논리 등은 존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예수교의 주장대로, 천지가 여호와에 의하여 창조된 것이라면, 자연질서 등등도 여호와가 창조하여 천지(우주) 속에다 집어 넣은 법칙일 것이다.

 

그런데, 바이블의 내용 중에서 자연질서, 과학, 논리 등에 대입했을 때, 모순과 궤변에 귀착되지 않는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호와는 스스로 철저하게 어긋나게 하기 위하여 자연질서와 과학과 논리를 창조했다는 말인가?

스스로 단 한 가지도 지키지 않고 파괴할 자연질서와 과학과 논리를 왜 창조했을까?

 

          [결론]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지를 못하는 바이블!

그래서, 중간도 할 수가 없고, 면무식(免無識)도 할 수 없는 여호와(예수)!

 

자기가 창조했다는 법칙(자연질서, 과학, 논리)에 단 한 가지도 어긋나지 않는 것이 없는 예수교(바이블, 여호와, 예수)!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예수교의 모든 것(바이블, 여호, 예수, 모든 선지자)은 허구(虛構), 모순(矛盾), 궤변(詭辯)임을 확실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거기에다, 예수교(바이블)는 독선, 악독, 저주, 악담, 위선 등등으로 철옹성을 쌓고 있는 혹세무민 집단이다. 

제삼자 2012-07-18 (수) 15:08
[요지경(瑤池鏡)]


[여호와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예수)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 3; 16)
---------------------------------------------

[여호와가 세상을 이처럼 헷갈리게 하시려고 예수만이 아니라,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조로아스터, 마호메트 등도 주셨으니,
이는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려고 하심이니라.]
---------------------------------------------

여호와는 세상을 이처럼 미워하사 마귀들을 주셨으니,
이는 마귀에게 휘둘릴 수 밖에 없는 무능한 인간들로 하여금
속수무책으로 지옥에 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

여호와가 중동의 이스라엘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조그만 이스라엘에만 주셨으니,
이는 나머지 거의 전 세계와 예수 이전의 세계와 예수가 재림하기 이전의 세계를
몽땅 지옥으로 보내려 하심이니라.]
---------------------------------------------
제삼자 2017-05-08 (월) 16:20
[조금 멀리서 보기]      - 곽혜란 -


내 친구 K는 6년 넘게 사랑했던 그의 그녀와 헤어진 후,
징글징글하게 술 퍼마시다 툭하면 눈물 콧물 흘려 쌓더니
두어달 전 초췌한 얼굴로 친구들 앞에 나타나서 하는 말이,

"예쁜 꽃일랑은 꺽지 말고 한번 꺾은 꽃은 버리지 말고 어떡하다 버린 꽃이면 잊어버려야 해"였다. 

누구 들으라고 한 말인지, 
저 스스로에게 한 다짐인지
어릴적 어른들 하시는 말씀 어깨 너머로 한번쯤 들어봄직한 말을,
K는 소주 석 잔을 연거푸 들이키고 나서 되뇌이더라.

K가 하도 숙연하게 말하는 바람에 나는 그 말이 대단히 철학적으로 들렸다.
아직 슬픔이 덜 용해되어 소주가 맑게 일렁이는 눈빛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들었을거야.

그래,
예쁘고 좋은 것, 아끼고 싶은 것들은 조금 거리를 두고 보는 거야.
욕심 내서 만져보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모든 것들은 
언젠가는 나의 조바심 때문에 깨어져버리고 잃어버리고 
감쪽 같이 증발해버리기 쉽지 결국엔. 




멀리서 보기 / 남영숙   


그와의 통화 후, 떠나지 않고 맴돌이 하며 긴 여운을 남기는 말이 있었다. “멀리서 보면 그렇지요”였다. 짤막한 그 한 마디는 그가 건넨 몇 마디 말들에게 마음껏 상상의 덧칠을 하게 하였다.


그의 사랑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이미 노인이 되어 버린 남편을 지극하게 보살피는 것이 그러하고, 많은 연령 차이가 궁금했다. 그것으로 유추하면 그 사랑은 바람처럼 와서 부딪고만 갔어야 할 것이었고, 상대에게 섣부른 희망을 갖지 말았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배들이 서로 엮이어 정박하며 물결에 떠밀리지 않듯, 서로를 단단히 묶어 통념의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고 부부가 되었다. 그의 사랑의 특별함이 궁금해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어서 ‘본디 바라는 바’이지만 청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대신 찬사를 하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 했다. 통화 중에 그가 몇 마디로 내 가슴의 현을 건드린 것이었다. 그것은 둔탁하지만 강한 소리를 냈다.


저녁 모임을 위한 외출은 그에겐 작은 전투다. 남편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아기를 재우듯 그를 “재워 놓고” 나들이를 한다는 것이다. 그 시간에 맞게 재우려면 종일을 “놀아주어야”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크고 작은 외출 후엔 ‘칭얼대는’ 남편을 위한 유, 무형의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그의 나직하고 감칠맛 나는 화법에 실린 생의 내공에, 감전된 듯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뒤이어 삶이, 사랑이, 서러운 아름다움이라 생각했다.


시간은 인간의 기억을 지우는 노련한 청소부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역할을 바꾸는 것 또한 시간이다. 지아비의 청순한 어린 연인이었을 여인이 이제 강한 모성으로 그를 보듬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사랑으로 낡아져 왔다. 살아간다는 것이, 명치끝이 아릿한 아픔이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통증의 승화가 있어 생은 아름다워진다. 그런 삶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서 칭송을 아끼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가식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단호하여 ‘멀리서 보아’ 그럴 뿐이며 칭찬을 사양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칭찬에 부응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 속내야 어떠하든 ‘멀리서’ 본 그대로 그의 사랑을 여전히 아름다운 것으로 여기기로 하였다.


세상의 어느 사랑에도 ‘콩 꺼풀’의 유효 기간은 존재한다. 그녀라고 하여 그것이 없었으랴.  잉걸불로 타오르던 사랑의 짧은 낭만 후에 뒤따라 온 긴 책무가 얼마나 큰 아픔으로 다가 왔을 것인가는 물어 보아야만 알 것인가. 자신의 사랑에 대한 한 줄기 회한이 없었을까. 아름답게 보이는 까닭이 가까이서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면 굳이 속내를 헤집어 실체를 보아 버릴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의 사랑의 실체만 그러할까.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지 않겠는가.


모자이크그림은 조금 물러나서 보아야 확연히 보인다. 유화 그림, 또한 그렇게 보아야 명암이나 색조의 선명함이 두드러진다. 대저, 한 발짝 물러서서 보아야 근사해지는 것이 수런거리는 세상이 아닌가 한다. 사람의 풍경에서 그 점은 두드러진다. 지척에서 보는 삶이란 통증만 자욱할 뿐, 보여 지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누구인들 그 점에서 자유로울까. 오랜 옛적, 제왕이라고 하여 복되기만 하였을까. 화려한 용포에 휩싸인 외로운 한 인간이었을 뿐. 스타덤에 오른 배우도, 크게 성공한 사람도, 모두 물위에 뜬 우아한 백조의 모습을 위하여 물밑의 갈퀴는 수도 없이 움직여야 하는, 그 부산한 삶의 얼굴이란 여느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 세상 풍경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세상은 연민이 가득한 공간이 되어 버린다. 


어느 지인은 자신의 시력이 나쁜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긴다고 하였다. 집안의 웬만한 먼지나 어지러움은 보이지 않아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고 한다. 그의 말을 대상과의 물리적 거리가 아닌 마음의 거리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말의 은유였다. 인간의 시력이 나이듦과 함께 근시에서 원시로 옮아가, 멀리의 것이 잘 보이는 까닭이 거기에 있으리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기는 긍정적인 시선의 ‘반숙’상태가 아니겠는가. ‘완숙’의 상태는 관조이리라. 그것은 켜켜이 쌓인 삶의 지층이 가져오는 선물인 셈이다.


사세가 복잡하여 각단을 잡을 수 없을 때 그 소용돌이에서 한 걸음 물러나면 자신에게 마저 객관적인 시선이 생기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된다.


이제, 세상을 그렇게 멀리서 보고자 한다. 멀리서 보아 아름답다면 그 속내야 어떠하든 아름다운 것이다. 세밀한 흠결까지 볼 것은 없다. 보퉁이 속의 삶을 구태여 끌러서 볼 것은 없는 것이다. 너의 것이나, 나의 것이나, 삶이 복잡하고 아프기는 매한가지 아닌가. 보자기의 색깔이 아름다우면 그 내용물도 고우리라 치부해 버릴 것이다. 멀리서 보는 삶들은 끝내 고요하고 평화롭다.

이름 패스워드

글 저장.
비밀글 (체크하면 글쓴이만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왼쪽의 글자를 입력하세요.
   

게시물 728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728
*52[죄인(죄악)과 병자(질병)]* 다음 이야기들은 조금 쯤 신경을 써야 들리는 내용이다.  즉, <죄인>이라는 개념과 <병자>라는 개념은 비교할 …
제삼자 17/05/07 410
727
*51[예수 왈;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이는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아들임을 자처하는 예수가 한 말이라 한다.그…
제삼자 17/03/17 2149
726
*50[예수교(바이블)에서 가장 큰 사기극]** 예수교(바이블)의 활동 중에 사기 행각 아닌 것이 없지만, 필자는 다음 사건이 예수교(바이블)에서 가장 큰 사…
제삼자 15/04/09 21719
725
*49["돈을 많이 바쳐야 된다."는 말만 있는 예수교!]예수교(또는 바이블)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어느 것일까?"지난 일요일, 달나라에 …
제삼자 14/12/10 17408
724
*48[예수교의 핵심이 되는 문젯점]어떤 사람이 말했다."나는 사과나무를 싫어한다. 그 이유는 사과나무에 배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어떤가? 되는 말 같은가?…
제삼자 14/05/25 12497
723
*47[반기련이 가야 할 길]부창부수(夫唱婦隨);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이에 잘 따름" 부부 사이의 화합하는 도리를 비유적으로 나타낸 말이다.(1) "목적이 좋…
제삼자 14/04/02 4549
722
*46[장하다! 반기련이여!]한국 사람들 사이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특이한 정서에 정(情)이란 것이 있다. 정(情)이란 오랫동안 지내 오면서 생기는 사람과 사람 …
제삼자 14/02/11 4367
721
*45[예수교의 뿌리]** 예수교의 뿌리가 무엇(누구)인지 아는 예수쟁이가 있을까?   여호와를 세상에 최초로 소개한(발명해 낸?=만들어 낸?) 사람은 모…
제삼자 13/12/11 5778
720
*44[귀하디 귀한 내 자식의 친구로는?]   수 십 년 전(50 여 년 전) 일이다. 필자의 친구 중에 J라는 젊은이가 하나가 있었다. 그는 술과 여자…
제삼자 13/11/29 3687
719
*43[아주 커다란 착각(궤변)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일까?(1) 착한 일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일이 더 어려울…
제삼자 13/11/14 3634
718
*42[지상 최대의 사기극 제1막과 제2막 공연]* 참고; 시간이 없는 독자는 저 밑으로 가서 =====선 아래 <사기극 제1막>부터 읽어도 된다.[근거 제1]--구약…
제삼자 13/10/11 3585
717
*41[예수교는 예수도 감지 못한 자력 신앙(自力信仰)]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예수교는 타력(他力) 신앙이고, 불교는 자력(自力) 신앙이다."라고. 불교는 무슨 …
제삼자 13/08/30 4297
716
*40[예수일당은 3 년 동안 무엇을 한거야?] 예수쟁이의 으뜸되는 목표는 <믿음 생활>이다. 그래서, 예수쟁이의  다른 이름도 <신앙인(…
제삼자 13/08/26 4846
715
*39[개망신]  * 개망신--아주 큰 망신.   망신--말이나 행동을 잘못하여 자기의 명예나 체면 따위가 손상을 입음.  영국 역사상 가장 중요…
제삼자 13/07/21 4148
714
*38[혼인할 배우자를 찾음] 어느 일간지에 다음과 같은 구혼(求婚) 광고 3 개가 게재되어 있었다.  (A) [혼인(결혼)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소유…
제삼자 13/07/06 4238
713
*37[군자 삼변(君子三變)에 비춰 본 예수교]예수의 조상 중에 <유다>라는 사람이 있다. 이 유다가 며느리(다말)와 불륜으로 간음하여 자식이 태어나는데, …
제삼자 13/06/21 5026
712
*36[협잡질(挾雜-질)]협잡질(挾雜-질); 그릇된 행동으로 남을 속이는 짓.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난 사람이 하는 일(예: 나라를 다스림)을 가리켜 경-륜(經綸)이…
제삼자 13/05/14 4702
711
*35[보복(?)이 두려워 숨어 다니는 神]* 전지전능하다는 신(神)이 숨어 다니기도 하고, 도망다니기도 한다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1) [유대인들이 가로되,…
제삼자 13/04/30 4118
710
*34[두 연놈의 배때지를 꿰뚫어 죽이기] 여호와(예수교의 신이라 함)의 질투심이 발동했을 때, 초기 진화를 하지 않으면 한 나라와 민족이 송두리 째 없어질 수…
제삼자 13/04/09 4091
709
*33[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짓]"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속담(?)이 있다."무슨 일을 하려면 그에 걸맞은 실력과 견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 무슨 …
제삼자 13/03/25 4140
708
*32[예수의 산상수훈(山上垂訓)]고등학교 2 학년 때, 윤리 과목 선생이 결근을 하자, 교장 선생이 대신 교단에 나타난 적이 있었다.그 때, 교장 선생으로부터 처…
제삼자 13/02/12 4361
707
[논리 중의 논리-논리의 진수(眞髓)](가정) 부산 앞 바다에서 유난히 꽁치가 많이 잡히는 해가 있다고 하자.(결론) 그렇다면, 그 해에는 서울 사람들은 서대…
제삼자 13/01/28 4080
706
*30 [예수가 태어나던 날의 날벼락] 한 나라에 왕자가 태어나면, "대역 무도한 죄인을 제외하고, 모든 죄수들을 방면하라."는 임금님의 어명이 떨어지게 마련…
제삼자 12/12/23 5187
705
[축사(祝辭)] 반기련 회원 여러분! 오늘은 참으로 뜻 깊은 날입니다. 아니, 어쩌면 먼 훗날 역사의 한 페이지를 크게 장식할지도 모를 그런 감격스런 …
제삼자 12/09/13 4255
704
[무식과 용감무쌍은 이란성 쌍둥이]요즈음, 태풍 볼라벤과 덴빈으로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태풍이 몰려 오면, <호우 주의보>니, <…
제삼자 12/08/31 3713
703
[막중한 임무를 띤 반기련]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354~430)-초대 예수교의 가장 유명한(?) 교부신학자라 불린다.예수교의 기초와 근본 교리는 아우구스티…
제삼자 12/08/19 3563
702
[예수의 사상에 대한 고차원적 분석] A. 약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는 어렵다. B. 부자가 천당에 들어가기는 어렵다. 위의 2 가지 논제 중, A는 물리적(물질적)인…
제삼자 12/07/31 4240
701
[여호와(예수)의 만행(蠻行)질]다음의 말은 여호와(예수)가 전지전능한 신으로서 천지를 창조하고, 이것을 정의와 사랑으로 다스린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성…
제삼자 12/07/16 4447
700
[주객전도(主客顚倒)] 주객전도 :주인과 손의 처지가 뒤바뀐다는 뜻으로, 사물의 경중(輕重), 선후(先後), 완급(緩急) 따위가 서로 뒤바뀜을 이르는 말. (1…
제삼자 12/07/13 3751
699
[명예(名譽)]명예(名譽)란 무엇일까? 국어 사전에서 찾아 보자.명예--세상에 널리 인정받아 얻은 좋은 평판이나 이름.세상에서는 이 명예를 획득하려고 혈안이 …
제삼자 12/05/26 4180
 1  2  3  4  5  6  7  8  9  10    
최근게시물 : 2,174 건    오늘 : 1,149    어제 : 1,588    최대 : 12,198    전체 : 5,861,348      총회원 수 : 18,725 분    접속중 : 207(회원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