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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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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인원 : 3,306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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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24[주객전도(主客顚倒)]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2-07-13 (금) 06:03 조회 : 3750
[주객전도(主客顚倒)]


주객전도 :주인 처지가 뒤바뀐다는 으로, 사물 경중(), 선후(), 완급() 따위 서로 뒤바뀜 이르는 .
 

(1) 부모가 어린 자식들의 잘못을 선도하고 사랑으로 양육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모 쪽에서 말썽을 저질러 놓으면 그에 대한 불행과 고통을 자식
들이 책임지고 감내하는 모습.
세상에 이럴 수가...맙소사!


(2) 정부 또는 국가가 국민의 뜻과 어려움을 헤아려서 그 일을 처리해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부와 국가가 일을 크게 저질러 놓으면 그것으로 인한
불안과 고통을 국민이 참고 뒷수습해야 되는 모습.
세상에 이럴 수사...맙소사!


(3) 말 그대로 종교가 인생의 모범을 보여 주어 불쌍하고 연약한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를 불어 넣어 주는 게 아니라, 세상의 어느 쓰레기통보다도 더
썩어 있어서, 오히려 비 종교인들이 참고 기다려 주는 모습.
세상에 이럴 수가...맙소사!


(4)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하면서도 이상한 모습이 있으니, 이 반기련
게시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 예수교인들은 <바이블의 내용>과 <예수교의 교리>와 <예수교의 역사>
에 대하여 열심히 정성을 다 하여 설득하고 설명하고 있는 반면,

예수쟁이들은 한결 같이 <바이블>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궤변으로,
<예수교 교리>와는 아무 연관이 없는 잡설로, <예수교의 역사>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공허한 말로 정성 없이 대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떤가?
어느 쪽에서 <바이블 내용>으로, <예수교 교리>로, <예수교 역사>로 말을
해야 사리에 맞는 모습이라고 생각되는가?

비 예수교인 쪽에서는 바이블(교리, 역사) 내용에 준해서 열심히 정성을 다
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예수쟁이 쪽에서는 바이블(교리, 역사) 내용과는
거리가 먼 잡설로 전혀 정성도 없이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치듯 내뱉는 모습을
예수쟁이들은 무엇이라 변명하겠는가?

한 가지 더.
예수교(바이블) 주장대로 천지를 여호와가 창조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천지 내부에 존재하는 자연 질서(과학 및 논리) 또한 여호와가
창조한 것일 게다.
아니, <천지>와 <자연 질서>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해야 맞는 말일
게다.

무슨 말이냐 하면,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쟁이> 쪽에서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말을 구사해야 정당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비 예수교인들은 모두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논설을 전개하는데 반해서, 예수쟁이들은 한결 같이 <비 과학적>이고
<비 논리적>인 궤변 외에는 다른 방법의 말을 할 줄을 모른다.

세상의 모든 것이 비 과학 또는 비 논리를 주장할지라도, 예수교만은
죽음을 무릅쓰고 과학과 논리를 고수해야 될 입장이다.
왜냐 하면, 과학과 논리도 여호와가 창조했다고 주장하는 쪽이 예수쟁이
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분야에서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세상을 설명하고
있는데, 거꾸로 <바이블 내용>과 <예수쟁이들>만이 세상을 비 과학적,
비 논리적 방법으로 미련을 부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세상에 이럴 수가...맙소사!

다시 말한다.
어느 쪽에서 가장 과학적, 논리적으로 이론을 전개해야 된다고 생각되는가?
예수쟁이 쪽인가, 아니면 비 예수교 쪽리라고 생각되는가?
예수쟁이들이여!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살자.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2-07-19 (목) 09:26
[누가 가장 많이 벌까?]


다음 이야기는 미국에서 굴러다니는 우스개(?) 말이다.


어느 날,
개신교의 목사,
천주교의 신부 그리고,
유태교의 랍비,
이렇게 3 명의 성직자(?)들이 모여서 환담을 즐기고 있었다.

이야기가 여러 곳으로 빙빙 돌다가 마침내 소위 헌금이라는 돈 얘기에 이르렀다.

먼저, 목사가 신부에게 물었다. "당신은 헌금으로 들어 온 돈을 어떻게 쓰시오?"

신부 왈,
"나는 땅에다 둥그런 원을 그려 놓고, 돈을 하늘로 확 뿌려서 원 안에 떨어진 것만 내가 쓰고, 
원 밖에 떨어진 돈은 성당을 위하여 씁니다."

다음엔 신부가 목사에게 물었다. "당신은 헌금을 어떻게 쓰시오?"

목사왈,
"나도 당신과 비슷합니다. 땅에다 원을 그려 놓고 돈을 하늘로 확 뿌려서
원 안에 떨어진 돈은 교회에 쓰고, 원 밖에 떨어진 돈은 내가 다 가집니다." 


마지막으로, 목사와 신부가 유태교 랍비에게 물었다. "당신은 헌금으로 들어 온 돈을 어떻게 쓰시오?"

랍비왈,
"나도 당신들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나는 땅에다 둥그런 원을 그리지는 않습니다. 
그냥 돈을 하늘로 확 뿌리면서, `여호와시여! 가지고 싶은 만큼 가지십시오.` 하고 소리칩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가지고 남은 돈이 땅에 떨어집니다.
그 땅에 떨어진 돈만을 내가 다 가집니다." 


참고;
불우 이웃 돕기 성금을 모으려면, 그런 활동을 해야 하는 조직과 각 부서의 일꾼들이 필요하게 된다.
결국, 모아진 성금은 조직 운영과 인건비로 거의 모두가 소진되고, 불우 이웃을 도와 줄 돈은 없다고 한다.
1 %라는 말도 있고, 그보다 적다는 말도 있고, 한 푼도 받아 본 적이 없다는 사람도 있고...

종교 조직으로 흘러들어가는 소위 헌금이라는 돈도 결국은 위에서 지적되는 경우와 거의 비슷하게 소진되어 없어지고 말 것이다. 
----------------------------------------------------

[거룩 또 거룩한 예수쟁이]


[나는 여호와 너희 신(神)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예수쟁이)도 몸을 구별(區別)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바 기어 다니는 것(벌레?)으로 인(因)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레위기 11;44)


예수쟁이들은 거룩한 존재들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예수쟁이들이 받드는 신 여호와가 거룩하기 때문에 예수쟁이들도 자동으로 거룩해진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러나, 100 % 자동으로 거룩해질 수는 없다고 한다.
땅에 기어다니는 벌레에 오염(汚染)되지 않도록 조심을 해야만 거룩해진다고 한다.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하고 있으면 거룩해 질 수가 없는 모양이다.
못 생겼다든지, 남루한 옷을 걸치고 있다든지, 더러운 오물이 묻어 있다든지, 몸에 병이 들어 있거나 병신 몸을 가지고 있으면 예수교적 거룩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쟁이들은 스스로를 성도(聖徒)라고 불리기를 즐긴다.
그런데, 그 성도가 되는 방법으로 땅에 기어다니는 벌레 따위를 멀리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호와의 말(가르침)이다.

농수산업(農水産業)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예수쟁이 즉, 성도가 될 수 없다는 사실도 알 것 같다.
농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벌레 따위와 부정(不淨=더러운)한 동물들을 만지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병신(병자), 사생아는 물론 모압과 암몬 족속 및 이방인은 여호와의 총회(總會=교회=거룩한 장소)에 참석할 수가 없다.
이들 병신(병자), 사생아, 모압과 암몬 족속 및 이방인들도 여호와의 거룩함에 똥칠을 하는 더러운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예수교 신(神=여호와, 예수)의 거룩함이라는 것이 땅에 기어다니는 벌레와 접촉에 의한 오염과 관계되는 것이라는 점은 재미있는 일이다.
아니,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교 자체가 얼마나 유치한(더러운) 하등 종교인가를 증명해 주고 있다.

사람 몸에 오물이 묻어 오염됐다면, 깨끗한 물이나 세척제로 닦아 내면 되는 것이다.
그 오염과 거룩함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교의 신이란 작자는 인간에게 무엇을 가르치려는 것인지?
제삼자 2012-07-21 (토) 13:28
[여호와(예수) 규탄 대회]
 
 
사람들은 말한다. "예수교가 썩었다." 고.
 
좀 더 장황한 말도 많다.
"교회가 돈을 너무 밝히고, 목사와 예수쟁이들이 도덕적으로 너무 타락해 있다." 고 한탄하는 소리도 있다.
그래서, 예수교의 그 썩은 모습을 들춰내어 세상에 알리는 일에 열을 올리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예수교가 궤도를 벗어나서 제 길을 가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그것이 바로 여호와(예수)에 대하여 정면으로 거역하는 규탄 대회란 것을 모르고 있다.
 
왜냐 하면,
지금은 물론 예수교 역사상 예수교가 제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 때는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교의
더러운 모습,
잔인한 모습,
타락한 모습 등등,
예수교가 쏟아내고 있는 모습 중에서 예수교의 진짜 모습이 아닌 것은 없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예수)의 가르침은 하나도 빠짐 없이 바이블 속에 들어 있는데,
예수교가 나타내고 있는 모습 중에서 바이블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은 때는 없었다.
 
심지어,
목사 신부는 물론 예수쟁이들이
돈을 밝히는 모습,
계집질을 밝히는 모습,
뻔뻔한 모습,
사기 행각,
전쟁의 원흉 노릇,
세상을 향해서 쏟아 내는 악담과 저주,
권력과 돈의 노예가 되어 아부하는 짓,
등등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예수)의 가르침과 몸소 보여 준 시범에서 벗어나는 것은 없다.
 
지금까지의 예수교 모습 중에서 예수교의 본래 모습이 아닌 것은 없었다.
 
그런데,
"예수교는 썩었다. 그러니 제 모습으로 돌아가자." 고 떠드는 짓 자체가 벌써 여호와(예수)를 정면으로 거역하는 짓이 된다.
 
예수교의 잘못을 고치겠다는 생각이야 말로 여호와(예수)에 대한 가장 커다란 배반 행위일 뿐이다.
예수교의 비리와 악행 중에 여호와(예수)의 뜻 아닌 것이 있을까? (아멘)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은 바이블 내용(여호와 및 예수의 가르침)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바이블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예수교에 대해서 떠드는 모습보다 더 웃기는 넌센스는 없으리라. 


* 참고; 필자의 글에다 <비추천>을 눌러대는 사람이 가끔 있던데...
           필자의 글은 거의 모두가 바이블 내용(여호와=예수의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그 비 추천은 여호와(예수)를 물 먹이겠다는 목적? ㅎㅎ...
제삼자 2012-07-22 (일) 11:28
[필자의 경험과 의견]


필자의 경험으로는 이렇습니다.

(1) 필자가 처음으로, 바이블(여호와=예수) 속에서
사람 죽이는 이야기,
사람에게 악신(惡神) 집어 넣는 이야기,
비 윤리적 활동도 서슴지 않는 이야기,
비 과학적 비 논리적 이야기 등등을 지적하여 발표했을 때,

"그런 내용이 바이블에 있을 리가 없다."
"거짓말 하지 말라."
"바이블 어디에 그런 말이 있단 말이냐?" 심지어는
"너 죽고 싶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줄 알아." 등등의 공갈 협박이 난무했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50 여 년 전이나 20 여 년 전까지도 마찬 가지였었습니다.
그런데,1999 년과 2000 년 사이에는 수많은 사람(특히 장로급 예수쟁이)들이 그 바이블의 모순성과 악독성에 대하여 놀라워하면서 필자에게 응원하기도 했었습니다.

예로서,
조선일보 독자 마당과
청와대 게시판에서는 수 백 명의 독자들이 논쟁을 벌이기도 했었는데,
그 논쟁들의 근간은 거의 모두가
"바이블에 그런 내용이 있었느냐?"
"믿음 생활 수 십 년에 처음으로 알게 되는 일이다."
"예수쟁이라는 것이 부끄럽고 억울하다." 등등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바이블은 그렇게 해석하는 게 아니다."
"바이블은 전체의 흐름으로 파악해야 되는 것이다."
"바이블은 역사 비판적 안목으로 봐야 되는 것이다."
"성령이 함께 해야 바이블은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등등의 궤변이 나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모든 현상들이 불과 10 여 년 전부터 벌어지는 현상들입니다.
엄청난 변화들이라고 자신합니다.
다시 1~2년 후에는 어떤 종류로든 결판이 나리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2) 지금 각종 게시판에 나타나서 바이블(예수교)을 감싸고 돌며 궤변을 떠들어 대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아직 생활 기반이 잡히지 않은 목사(전도사) 수준급들이라고 판단됩니다.

이런 궤변들에다 일일이 답변하고 응수하게 되면,
좋은 글들이 뒷면으로 밀려나게 되고,
게시판이 너무 복잡하여 뜻있는 독자들의 정신을 혼돈시켜 갈피를 잡을 수 없게 하여 안티 활동의 효과를 반감하게 될 것이라 짐작됩니다.


따라서, 예수교의 과거와 현재를 있는 그대로 알리고,
바이블의 모순을 조용히 그리고 줄기차게 알려 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쟁이들도 분명히 사람 껍데기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이블의 모순과 악독성과 예수교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알게 되면,
설교하는 자도 그것을 듣는 자도 자유로울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계기와 인연이 맞는 때를 당하면 서서히 예수교와 멀어지는 현상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바이블의 모순과 악독성 및 예수교의 더러운 역사를 처음 들었을 때는 변명해 보려고 갖은 궤변을 동원하지만,
결국은 그들도 예수교를 떠날 날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3) 여기에다 예수교의 현실적 비행과 더러움이 속속 밝혀지고,
좀 더 활발한 오프 활동이 곁들여지면 금상첨화가 되겠지요.
어서 시민운동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제삼자 2012-07-25 (수) 09:25
[세상을 살면서 특히 조심 할 것]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마태 10; 12~13)

예수가 전도 여행을 떠나는 제자들에게 일러 주는 말이다.
위의 말에다 다른 말을 대치시켜 보기로 하자.
평안(축복)이란 낱말 대신에 저주(악담)을 대입시켜 보자. 
저주와 악담은 예수교(바이블)의 주특기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전도가 먹혀들지 않거든 저주(악담)를 퍼부어라.
상대에게 그것이 합당하면, 너의 저주(악담)가 상대에게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저주(악담)가 너에게로 돌아올 것이니라.]


백 번 천 번 지당한 말씀이다.
상대에게 축복을 빌어 주었으나, 상대가 그것을 받을 그릇이 못되면,
그 축복은 빌어 준 사람에게로 돌아 올 것이다.

마찬 가지로,
상대가 미워서 저주(악담)을 퍼부었으나, 상대가 그것을 받을 이유가 없으면,
그 저주와 악담은 그것을 발설한 사람에게로 돌아 오게 될 것이다.
역시, 천 번 만 번 지당 또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예수쟁이들 중에 이 말을 믿을 사람은 없다. 암, 한 명도 없지!
자기네들이 목숨 걸고 받든다는 예수의 가르침인데도 말이다.
그러니, 예수교와 예수쟁이들이 저 모양이 되는 것이다.
저 모양을 모를 예수쟁이는 없겠지?


* 반기련 회원들이여!
  함부로 남을 미워하지 맙시다.
  엉뚱한 사람을 미워하면, 그것이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특히, 예수쟁이들처럼 눈웃음 살살 뿌리며, 저주와 악담을 쏟아 내는 위선자는 절대로 되지 맙시다.

제삼자 2012-07-26 (목) 00:03
[계집(숫처녀) 분배하기]


여호와의 백성 히브리(이스라엘)는 약간의 목축업과 노략질이 생업이다.
따라서, 노략질에서 약탈한 물품을 분배하는 일은 여간 중요한 게 아니다.
노략질 품목 중에서 특히 계집은 중요한 품목이다.


여호와의 명에 따라 노략질 품목의 분배법과 납세법은 다음과 같다.


(분배 법)

노략품 전체를 둘로 나누어(2 등분 하여),
하나는 노략질 전투에 직접 참가했던 군인들의 몫으로 한다.

노략품 중 2 등분된 다른 하나는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일반 백성들의 몫으로 한다.


(납세 의무)

군인들은 자기 몫의 1/500을 여호와(제사장)에게 바쳐야 한다.
일반 백성들은 자기 몫의 1/50을 레위인에게 바쳐야 한다.
(레위인이란 요즘의 목사, 신부로 보면 된다.)


여기에서 실제의 예를 하나만 보자.

히브리 족속의 근처에 살고 있는 미디안 민족은 여호와의 원수라고 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

(민수기 31;1~2)


미디안은 모세가 살인죄를 짓고 피신하여 수 십년을 살던 곳이다.
거기에서 모세는 마누라 십보라를 얻고 자식들도 얻은 곳이다.
그런데, 이 미디안을 원수라 하여 도륙시키라는 것이다.

히브리 족속은 430 년 동안 신세 진 애굽을 10 여 가지의 재앙으로 골탕을 먹이고,
전국적으로 노략질을 감행하고 도망쳐 나오더니, 이제 미디안을 상대로 만행질을 한다.


여호와의 명에 따라 히브리는

1. 미디안을 쳐 부수고,
2. 남자를 모조리 도륙시켜 씨를 말리고,
3. 부녀와 아이들을 모두 사로잡고,

4. 가축과 양떼와 재물을 모두 탈취하고,
5. 성읍들과 촌락을 다 불살라 초토화시키고,
6. 탈취한 것, 노략한 것, 사람과 짐승을 다 취했다고 한다.

(민수기 31;7~11)


나중에, 사로잡아 온 여자 중 남자를 아는 여자(비 처녀)는 모두 죽이고,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자(숫처녀)만 살려서 분배한다.

이 때, 처녀와 비처녀를 어떻게 식별했는지 모르겠다.
옷을 벗겨서 신체 검사를 했던가? 그렇게 해도 알 수 없을 껄?
아니면, 히브리 족속은 수 천년 전부터 숫처녀를 식별하는 비법을 알고 있었던가?

히브리가 미디안에서 노략한 품목은 다음과 같다.

1. 양---675,000 마리
2. 소--- 72,000 마리
3. 나귀--61,000 마리

4. 여자--32,000 마리?(남자와 동침하지 않은 여자)
5. 그 외 물품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음.

(민수기 31;32~35)


특히, 여자 32,000 명 중 군인에게 돌아간 몫이 16,000 명이고, 그 중 1/500인 32 명이 여호와(제사장)에게 주어졌다고 한다.
여호와(제사장)는 하루 아침에 32 명의 계집을 얻은 것이다.

전리품으로 분배 받은 계집을 가지려면, 그 계집의 죽은 부모(노략질 전투에서 죽여졌다)를 위하여 한 달 동안 애곡(哀哭=문상)을 한 후에 가져야 된다고 한다.
 
(신명기 21;10~14)

따라서, 이 때의 여호와(제사장)는 32 달 동안 애곡을 했어야 됐을 것이다.
추녀는 빼기로 했다고 하더라도 1 년 이상 우는 시늉을 했을 것 같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신일지라도 역시 계집은 거저 가져지는 게 아닌 모양이다.


일반인의 몫으로 돌아간 계집도 16,000 명이고, 그 중 1/50인 320 명은 레위인들(목사와 신부)에게 주어졌을 텐데, 예쁜 여자, 못생긴 여자, 불구자, 병자, 영계, 노계? 등등, 여러 종류의 처녀들을 놓고 어떻게 분배했을까? 구경할만 했겠다.

그 때, 포로로 잡혀 온 여자들은 자기 부모를 죽인 원수의 계집이 되어 어떤 기분으로 살았을까?
(여자의 마음을 잘 몰라서...)


이상은 한 번의 노략질 만을 예로 올린 것이다.
이런 노략질이 수없이 전개된다. 노략질이 생업이니까...

이것이 바이블이요, 예수교인들이 받드는 경전의 가르침이요 시범이다.


어느 예수쟁이가
"좋은 말도 많은데 왜 나쁜 곳만 골라 쓰느냐?"고 하겠지?
또, "바이블은 그렇게 해석하는 게 아니다."라고 하겠지?

또, "바이블은 영의 눈으로 보아야지,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게 아니다."라고도 하겠지?
또, "지옥에나 가라."고 하겠지?
또, "마귀"라고도 하겠지?  
제삼자 2012-07-27 (금) 00:40
[인간의 지능을 써 먹어야 할 곳은?]


1)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여호와)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여호와)를 보는 것이니라."]

(요한 12;44~45)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믿는 것이며,
예수를 보는(감지하는) 것은 여호와를 보는 것이라 한다.
이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

이런 식으로 사람을 가르치고서,
믿는 자는 천당에 가게 되고, 믿지 않는 자는 지옥으로 보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호와는 인간을 창조할(?) 때, 무슨 이유로 '지능(知能)'이란 것을 주었을까?
인간의 지적(知的) 작용은 분명히 예수의 말에 의혹을 가지게 한다.

이와 같이,
신[神=예수(여호와)]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에 거추장스러운 지적 능력(知的能力)을 인간에게 허락한 이유가 무엇일까?

예수 당시에는 예수를 보는 것이 여호와를 보는 것이며,
예수를 믿는 것이 여호와를 믿는 것이라면, 지금은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가?
바이블을 보는 것이 여호와(예수)를 보는 것이며,
목사(신부)의 말을 믿는 것이 여호와(예수)를 믿는 것인가?

예수교의 종파가 25,000 여 가지로 쪼개진 현상은 여호와(예수)의 능력인가
아니면, 인간의 지적 능력(知的能力) 결과인가?

예수쟁이들이 지적(知的) 작용으로 종파를 만들어 내는 짓은 허용되는 일이고,
일반인들이 지적 능력으로 바이블(예수교)의 모순과 허구성(虛構性)을 지적하는 일은 허락되지 않는 것인가?

도대체, 바이블(예수교)의 어디를 읽어 보아야 인간의 지적 능력으로 용납될 수 있는 장면을 만날 수 있는 것일까?
무조건 덮어놓고 믿기만 해야 여호와(예수)의 뜻이다? 맙소사!


2) ["나(예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요한 12;46~47)


자기가 창조해 놨다는 세상에다 대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창조 첫 째 날 빛을 창조했다면서, 새삼스레 예수는 빛으로 세상에 왔다니, 그게 무슨 뜻일까? 예수는 말장난하려고 세상에 왔는가?

예수쟁이들이여, 위의 글을 몇 번이고 읽어 봐라.
말장난이 아니고 무엇인가? 예수가 빛으로 왔으면, 어두움으로 온 자는 누구인가?

또, 예수는 평화가 아닌 검(劍)을 주러 왔다고도 했는데,
이제 구원하러 왔다고 하니, 그러면 검=구원이란 말인가?
천당이든 지옥이든 제 마음 대로일 텐데,
알아듣지도 못하는 무능한 인간을 상대로 무슨 사설이 그렇게 장황할까?

인간의 지적 능력과 사유 능력은 접어 두고,
계속 믿으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일이 신(神)의 할 일인가?


3) ["나(예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내가 내 자의(自意)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여호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하시니라.]

(요한 12;48~50)


예수는 자기가 아버지(여호와)의 아들이요, 또, 여호와의 명령을 받은 자,
등등으로 두리 뭉실 횡설수설하다가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는 심판을 받으리라."
운운하며, 공갈 협박으로 결말을 짓고 있다.

인간의 지적(知的) 능력이나 사유 능력 따위는 아무 곳에도 써먹을 데가 없다.
무조건 덮어 고 밑도 끝도 없이 믿어야 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렇게 긴말을 떠들면서도,
인간 쪽에서 속 시원하게 객관적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여호와(예수)는 사랑과 은혜가 많은 전지전능자이므로 이를 믿고 받드는 자는 천당에 가게 되고, 거부하는 자는 심판 받고 지옥으로 가게 된다는 말만이 서론이요 본론이며 결론이다.


여호와(예수)---선지자(사도)---바이블---신학자---목사(신부)---25,000 가지 종파,
이렇게 줄줄이 길게 늘어선 맨 끝에 서서, 그 많은 종파 중에 어느 한 가지를 골라잡아 믿어야 될까?

인간의 지적(知的) 능력을 폐기 처분시키고서, 어떤 것을 골라잡아야 될까?
아무 것이나 잡고서 믿으면 되는 것인가?

말세가 되면,
"예수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리니, 여기에 현혹되지 말라."고도 했다. 예수의 말이다.
이럴 때, 인간의 지적 능력 없이도 제대로 된 길을 찾아 갈 수 있을까?
덮어놓고 여호와(예수)만 믿으면, 제 길을 찾아 갈 수 있게 되는가?

이제, 결론을 말해도 될 때가 된 것 같다.
그러나, 그 결론을 필자가 꼭 말해야 될까? 독자의 몫으로 남겨둠이 더 좋을 것 같다. 
제삼자 2012-08-03 (금) 03:30
[축복(祝福=기도 내용)을 가로채다]


히브리 족속의 제2대 조상 이삭은 그 아내 리브가와의 사이에서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을 두고 있다.
그런데 이삭은 장자 <에서>를 사랑했고, 리브가는 차자 <야곱>을 사랑했더란다.


이삭의 나이 100 살쯤 되자
"눈이 어둡고 언제 죽을는지 모르겠다" 면서
장자 에서(인명)에게 여호와 이름으로 축복 기도를 해줄 계획을 세운다.

이 낌새를 알아차린 차자 야곱이 형 에서처럼 변장(變裝)하고 아버지(이삭)에게 들어가서 속임수로 축복 기도를 가로챈다 (창 27;27~29).

뒤늦게 에서는 동생 야곱이 한 짓을 알게 된다.
이에 에서가 울면서 아버지 이삭에게 말한다.


[..."내 아버지여,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하고 소리 높여 우니 .....]

(창 27; 38)


이런 상황에서, 이삭은 큰아들 에서에게 저주(詛呪)를 퍼붓는다. (창 27;39~400)


(1) 정신 세계에서 오고 가는 축복 기도란 것도 가로 챌 수 있는 것인가?
아비 이삭은 야곱의 손을 잡고 있었지만, 정신(마음)은 에서(장자)에게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 기도 내용은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로 옮아가는가?

(2) 또, 큰아들 에서의 말대로 여호와가 베풀어 줄 축복 기도는 오직 하나 뿐인가?

(3) 또,
빌어줄 축복이 없으면 그것으로 그만 둘 일이지, 아비가 자식에게 저주를 퍼붓는 경우는 무엇인가?

(4) 이삭의 아비 아브라함은 175 세에 죽었다. 그리고 이삭은 180 세에 죽었다.
다시 말해서, 이 때의 사람들은 175~180 살을 향유하던 시절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삭은 100 세 때에 나이 많아 눈이 어둡다면서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느니..." 한다.

지금으로 비교하면, 40 살쯤 먹은 사람이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는 소리와 같다. 이런 현상은 왜일까?

바이블 기자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나이를 늘여 놓고는, 그것을 까먹고, 현실로 돌아와 사건을 전개하느라 아차 실수하는 장면이다.

어떤가?
예수교의 바이블 내용이 과연 신(神)의 가르침이라고 믿어지는가?
아직도 예수쟁이들을 사람 취급을 할만 하다고 여겨지는가?
제삼자 2012-08-04 (토) 09:51

[잔인과 악독을 겸비한 사기꾼 여호와]

예수교의 신(神) 여호와는 애굽(이집트)에서 종살이로 고통 당하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 족속을 탈출(해방)시켰다고 한다.
이것이 소위  바이블이 말하는 출애굽이라는 것이다.
이 때의 지도자가 그 유명한(?) 모세이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족속은 가나안(중동의 팔레스틴) 땅에 자리 잡고 살도록 여호와로부터 약속되어 있었다고 한다.

애굽을 탈출한 후, 여호와가 허락했다는 가나안 땅을 향하여 이동하는 이스라엘 족속의 인구수는 적어도 300 만이 넘었으며, 가축도 함께 하고, 금 은 보화는 물론 가재 도구까지 포함된 이동이었다.  
이러한 거대한 집단이 이동하자면, 그 부수적인 광경이란 대단했을 것이다.

특히, 어떤 나라의 국경을 통과하는 문제는 쉽지가 않았을 것은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서 다루려는 것은, 이스라엘이 헤스본이라는 나라(조그만 마을?)를 통과하는 장면이다.

여기에서 특히 말해 둘 것이 있다.
여호와는 헤스본을 아예 박살을 낼 작정이면서도 그 무시 무시한 발톱을 숨기고서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속임수 정도가 아니라, 아예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하고도 악독한 사기꾼이 여호와라는 신이다.
독자들은 이 점을 잊지 말고 다음을 보기로 하자.
 
일본(왜국)의 풍신수길이 조선을 향하여
"명나라를 치려고 하니 길을 빌리자."고 시비를 걸어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상황을 상기하며 다음 글을 읽으면 된다.


1) [내(모세)가 그데못(지명) 광야에서 헤스본 왕 시혼에게 사자(使者)를 보내어 평화(平和)의 말로 이르기를...]

(신명기 2;26)


헤스본 땅을 통과하려면 사전에 헤스본 왕 시혼의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모세는 헤스본 왕 시혼에게 협상 사자(使者)를 보낸다.
그리고, 평화(平和)의 말로 협상에 임했다고 한다.

참고;
"<Yes>라는 말을 입에 담는 자는 외교관이 아니고,
<글쎄요>라는 말을 입에 담은 자는 처녀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평화의 말을 앞세우고서...협상이 결렬되도록 조종하여 전쟁을 발발시켜 상대를 박살 내는 여호와는 정말로 유능한 잡놈이요 사기꾼 외교관이다.


2) ["나(모세 즉 이스라엘)를 네 땅으로 통과하게 하라.
내가 대로(大路)로만 행(行)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라.
너는 돈을 받고 양식을 팔아 나로 먹게 하고, 돈을 받고 물을 주어 나로 마시게 하라.
나는 도보로 지날 뿐인즉...
그리하면, 내가 요단(강)을 건너서 우리 신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르리라..."]

(신명기 2;27~29)


 모세(이스라엘) 쪽에서 평화(平和)의 말로 내놓은 협상안은,
 (1) 대로(大路)로만 지나가겠다.
 (2)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겠다.
 (3) 식량과 물은 돈을 주고 사서 먹고 마시겠다.
 (4) 도보로만 행군하여 지나가겠다.
 (5) 그러면, 여호와가 허락한 땅에 가서 살겠다.

 (1~2) 어떻게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대로(大路)로만 지나가겠다는 것일까?
 300 만이 넘는 사람에다, 수 많은 가축과 가재 도구가 포함된 행군인데, 무슨 재주로 대로로만 지나갈 수가 있는가?
 
대통령 한 사람의 약속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일치 단결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인가?

(3) 왜 돈을 주고 식량과 물을 사서 먹고 마시는가?
당시 이스라엘 족속은 여호와가 하늘로부터 내려 주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살았다.
물도 반석에서 샘솟게 하여 마시게 해 주고 있었다.
입은 옷도 40 년 동안 떨어지지 않았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무엇을 돈을 주고 사서 먹고 마시는가? 
 
허구가 아닌 사실이었다면, 협상 안은 다르게 되었을 것이다.
 
"음식은 여호와가 해결해 주시므로 그 문제는 귀하(헤스본 왕)가 심려할 필요 없다."
이런 협상 문안이 나왔으리라.
 
좁은 시내 반도에서 40 년 동안 그런 기적질을 하고 돌아다녔다면, 중동 지방 일대에서 그 소문을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그만 헤스본 나라(마을?)의 왕이 모세의 평화(平和) 협상을 결렬시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바이블 기자는 다른 바이블 기자의 글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제 취향대로 기록, 삽입, 편집시키느라 실수와 모순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바이블은 성령(神)의 감동으로 씌어져서 일점 일획도 하자가 없다는 주장은 허구일 뿐이다.)

(4) "도보로만 행군하여 지나가겠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되는가?
300 만 군중 속에 병자, 노인, 임신부(출산부), 불구자 등등, 걸을 수 없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인가? 
 
하는 말마다 모순과 사기꾼의 음모가 들어 있다.
아니, 바이블 자체가 모조리 허구임을 증명하고 있다.

(5) "여호와가 허락한 땅(가나안=팔레스틴)에 가서 살겠다?"
여호와가 허락한 땅이 어디에 있는가?
가나안 지방에는 이미 10 여 개의 원주민 족속들이 자리 잡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땅을 여호와가 이스라엘 족속에게 허락하는가?  
텅 빈땅도 얼마든지 있는데, 원주민을 모조리 도륙시켜야 들어 갈 수 있는 땅을 허락한 여호와를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이스라엘은 예나 지금이나 제 땅이 없다. 그래서, 중동 지방은 잠잠할 때가 없다. 그 불똥이 미국(쌍둥이 빌딩 테러)에까지 튀고 있다.
(이 문제는 "히브리 역사" 편에서 자세히 설명된다.)


3) [헤스본 왕 시혼이 우리(이스라엘)의 통과하기를 허락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이스라엘)의 신 여호와께서 그(헤스본)를 네 손에 붙이시려고(지배 아래 두시려고),
그 성품을 완강(頑剛)케 하셨고, 그 마음을 강퍅(剛愎=성질이 깐깐하고 고집이 셈)케 하셨음이라...]

(신명기 2;30)


평화(?)의 협상 안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음모와 흉계),
(1) 헤스본 왕은 이스라엘의 통과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2) 협상이 결렬된 이유인즉,
여호와가 헤스본을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 두려고, 헤스본 왕의 성품에다 완강과 강퍅을 집어넣어, 협상이 결렬되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협상이 결렬되어야 그것을 트집 잡아 전쟁을 일으켜 도륙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애굽 왕 바로의 마음에다 강퍅을 13 번씩이나 집어넣고서,
그 때마다 트집을 잡아 재앙(災殃)을 퍼부은 적도 있고,
사울왕의 마음에다 악신(惡神)을 집어넣어 미치광이 짓을 하게 하고(왕 자리에서 쫓아내려고),
가룟 유다에게는 마귀를 집어넣어 예수를 팔아먹는 짓을 하게 한다.
사람의 마음에다 못된 성품을 집어 넣고서 그로 인하여 벌어지는 못된 짓의 결과를 트집 잡아 징벌을 가하는 신(神), 이것이야말로 극악신(極惡神)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4) [...때에, 여호와께서 내(모세)게 이르시되,
"내가 비로소 시혼과 그 땅을 네게 붙이노니, 너는 이제부터 그 땅을 얻어서 기업(基業)을 삼으라."

...우리 신 여호와께서 그를 우리에게 붙이시매,
우리가 그(헤스본 왕 시혼)와 그 아들들과 그 모든 백성을 쳤고, 그 때에 우리가 그 모든 성읍을 취하고,
...그 남녀와 유아와 함께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진멸하였고,
오직 그 육축과 탈취한 것은 우리의 소유로 삼았으며...]

(신명기 2;31~35)

 여호와의 명에 따라서 모세(이스라엘 족속)는 헤스본 땅에서,
 (1) 남녀, 노유를 불문하고 싹 쓸어 진멸시켰다고 한다.
 (2) 헤스본 땅과 성읍을 탈취하여 이스라엘의 기업(基業)을 삼았다고 한다.
 (3) 가축을 비롯하여 탈취한 모든 재물은 이스라엘의 소유로 삼았다고 한다.

결론:
여호와(이스라엘)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흉계와 음모로서 속임수는 주특기이다.
여호와(예수)를 닮아야 되는 예수쟁이들은 결국 어떤 모습이 될까?

이런 극악스런 신(神)을 섬기며 닮아가는 예수쟁이를 무엇이라 해야 될까?


** 이 후부터 여호와가 이스라엘 족속에게 허락했다는 땅, 가나안 지방의 정복 전쟁이 시작된다.
이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제삼자 2012-08-10 (금) 09:29
[또래 끼리 모여서 놀기]


히브리(유다) 왕국의 제16대 왕에 <히스기야>라는 사람이 있다.
이 <히스기야왕> 시대에 이사야라 이름하는 유명한 여호와의 선지자도 활동을 한다.
바이블에 '이사야(바이블)'라는 책이 있는 것을 보아도 이사야(인명)가 얼마나 대단한 선지자인가는 짐작할 수 있다.

사서오경 중에 맹자(孟子)라는 책이 있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맹자 역시 대단히 유명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마찬 가지로, 바이블에 이사야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은 이사야라는 사람이 대단한 여호와의 선지자라는 사실도 증명해(?) 준다.

'이사야(바이블)'에는 구세주(예수)가 올 것도 예언하고 있어서 바이블 중에서도 으뜸가는 귀중한(?) 책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 예수에 관한 내용이라고 주장되는 부분을 필자가 파 헤쳐 보면, 예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허구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사야서의 이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로 논하기로 한다.)  


<히스기야왕>에게 죽을병이 들었다고 한다.
이에 여호와는 선지자 이사야를 파송하여 여호와의 예언을 전했다고 한다.
"너(왕)는 이번 병으로 죽을 것이다. 그러니, 주위를 정리하고 유언이라도 남겨 두도록 하라."고.

이 예언을 전해들은 왕은 여호와에게 울면서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살려달라."고.

<히스기야왕>의 기도를 듣게 된 여호와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고 한다. 
여호와는 선지자 이사야를 다시 불러 여호와의 말을 전하게 한다.
"네(히스기야왕) 병을 고쳐 주겠다. 그리고, 15 년을 더 살게 해 주겠다."고.

그리하여, <히스기야왕>의 수명이 15 년 연장됐다고 한다.
역시, 여호와의 능력은 대단하시다. 그지? 그러나, 한 번 생각을 해 보자.

그 15 년 연장된 수명이 여호와 쪽에서 베푼 것인지, 또는 그냥 <히스기야왕>의 자연 수명인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지?
히스기야왕의 병이 죽을 병이었는지, 아니면 며칠 앓다가 일어날 수 있는 병이었는지 그것을 인간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한 번 더 말하지만,
히스기야왕이 15 년을 더 살게 된 것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여호와가 은혜를 베풀어서 그렇게 된 것인지, 그것을 인간 쪽에서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여기 쯤에서 바이블 이야기를 하나만 보기로 하자.

["나 여호와가 말한 것을 네(히스기야)게 이룰 증거로 이 징조를 네게 주리라... 
...해 그림자를 뒤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이에 일영표(해시계)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도를 물러가니라.]

(이사야; 38; 7~8)

히스기야왕의 죽을 병을 당장 고쳐 줄 뿐만 아니라,  
그 수명을 15 년 더 연장시켜 주겠다는 예언이 저절로 된 것인지, 
또는 여호와 쪽에서 조화를 부린 것인지,
그것을 가려 내게 하기 위해서 해시계에 나타나는 그림자를 여늬 때와 달리 10 도 물러나게 하여 보여 주겠다는 내용이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아무리 머리가 나쁜 바보일지라도 일단 사람 껍데를 쓴 물건이라면,
자기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는 상대를 적당히 속일 줄을 아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바이블(이사야)을 기록한 녀석도 히스기야왕의 수명을 15 년 연장시켜 주겠다는 여호와의 예언을 믿을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꾸며 낸 으뭉스러운 잔 꾀가 바로 위에 인용한 바이블 구절이다. 

역시,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 

그러나, 바이블의 행간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바이블을 읽는다면,
전지전능하여 천지를 창조하고 다스린다는 신과 그 선지자의 노는 모습에서 역겨운 정도를 지나 유치하기 짝이 없는 장면을 수 없이 발견할 수가 있다.

또래(바이블 저자, 여호와, 예수, 선지자, 목사, 신부, 예수쟁이 등등)들 끼리 모여서 노는 장면은 재미있다. 그지? ㅎㅎ...

제삼자 2012-08-11 (토) 17:07

[예수쟁이가 갈 천당 모양새]

 


예수쟁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천당은 어떻게 생겼을까?

[보라. (여호와)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세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것이리라.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의 건축한 데 타인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의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나의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며,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의 생산한 것이 재난에 걸리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 소생도 그들과 함께 될 것임이라.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이사야 65; 17~25)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겠다.”
천당 얘기가 분명하다. 그러면, 그 천당을 구체적으로 보자
.

1) 천당에서는 과거의 불행이 기억되지 않으며,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라고 한다.
 

(2) 천당에서는 나이 어린 유아가 죽는 일이 없을 것이며, 수한(壽限)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한다. 천당에서는 100 세에 죽으면 아이 때에 죽었다고 말해질 것이라 한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서는50 세에 죽으면 "한참 살 나이에 죽었다."고 아쉬워하듯, 천당에서는 100 살에 죽으면 "어린 나이에 죽었구나."라고 말해질 것이라 한다. 100 살도 못살고 죽는 경우는 저주(詛呪) 받았을 때뿐이라고 한다.
 

(3) 천당에서도 살 집을 지어야 하고, 먹을 것을 재배하여야 되는데, 좋은 점은 내 것을 남이 빼앗아 갈 수 없는 세상이라고 한다.
 

(4) 여호와가 택한 백성의 수한(壽限=나이)은 나무의 수한과 같게 해줄 것이라 한다. 미국의 요세미테 공원의 쉐콰이어 나무는 4,000 년 된 것도 있다니까 천당에서는 사람도 꽤 오래 살 것 같다. 좋겠다.
 

(5) 여호와가 택한 자의 수고가 헛되지 않고, 생산한 것이 재앙에 걸리지 않도록 보호 받는 다고 한다.

천당의 사람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며, 그 소생(所生)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이 부르기 전에 여호와가 응답하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여호와가 들어줄 것이라 한다.
 

(6) 천당에서는 늑대와 어린양이 함께 먹고 놀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고, 뱀은 흙을 먹고 살 것이라 한다. (늑대와 사자의 이빨을 다르게 고쳐 줄 모양이다.)

여호와의 성산(천당)에선 해()함도 없고, ()함도 없을 것이라 한다.
 

<필자 주>

예수교의 천당은 현재의 대한민국보다는 훨씬 정화된 사회 같다
  
그러나, 영생복락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어쨌든, 예수쟁이들은 좋겠다
.

제삼자 2014-12-01 (월) 15:59

[바이블 감상하기]--미완성


다음은 예수(사랑과 재주가 많은 예수교의 신?)가 일반 군중과 자기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 기적질로 병든 아이를 고쳐주는 장면이다. <마가> 9장 14절부터 29절 사이에 있는 내용이다. 12단락으로 나누어 감상해 보기로 한다. 


[(단락1) 그들이 다른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 제자들을 둘러싸고 있고, 율법학자들이 그들과 논쟁을 하고 있었다.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서는 몹시 놀라, 달려와서 인사하였다.

(단락2)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는 그들과 무슨 논쟁을 하고 있느냐?"

(단락3)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습니다. 그 아이는 말을 못하게 하는 귀신이 들려 있습니다. 어디서나 귀신이 아이를 사로잡으면, 아이를 거꾸러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그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했으나, 그들은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단락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아,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에게 참아야 하겠느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단락5) 그래서 그들이 아이를 예수께 데려왔다. 귀신이 예수를 보자, 아이에게 즉시 심한 경련을 일으켰다. 아이는 땅에 넘어져서, 거품을 흘리면서 뒹굴었다.

(단락6)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셨다.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단락7) 그가 대답하였다. "어릴 때부터입니다. 귀신이 그 아이를 죽이려고, 여러 번, 불 속에도 던지고, 물 속에도 던졌습니다. 하실 수 있으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십시오."

(단락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할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단락9) 그 아이 아버지는 큰소리로 외쳐 말했다. "내가 믿습니다. 믿음 없는 나를 도와주십시오."

(단락10) 예수께서 무리가 어울려 달려오는 것을 보시고, 악한 귀신을 꾸짖어 말씀하셨다. "벙어리와 귀머거리가 되게 하는 귀신아, 내가 너에게 명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말아라."

(단락11) 그러자 귀신은 소리를 지르고서, 아이에게 심한 경련을 일으켜 놓고 나갔다. 아이는 죽은 것과 같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말하기를 "아이가 죽었다" 하였다. 그런데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서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섰다.

(단락12) 예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따로 그에게 물어 보았다.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런 부류는 기도로 쫓아내지 않고는, 어떤 수로도 쫓아낼 수 없다."]

(마가 9;29)

**********************************************************************

<감상하기>

[(단락1) 그들이 다른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 제자들을 둘러싸고 있고, 율법학자들이 그들과 논쟁을 하고 있었다.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서는 몹시 놀라, 달려와서 인사하였다.


제삼자 2016-02-23 (화) 14:02
[인식의 전환이 절실한 우리 한국]--미완성


한 시대의 패러다임을 새 시대에 맞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꾼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여겨진다.
더욱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다음 시대(또는 세대)에나 생겨날지도 모른다고 예견되는 획기적인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출하여 그것을 각계 각층의 여러 사람으로부터 찬동을 얻어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다른 말로 좀 쉽게 표현해 보면, 사람이 한번 어느 것에 길이 들어 놓으면, 그 길든 사고 방식 또는 습관에서 벗어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당대 뿐만 아니라, 수 백 년의 세월이라는 시간이 흘러도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 오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사료된다.

다른 말로 간단하게 표현해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기는 대단히 어렵다."는 말이다. 

한 두 가지 쯤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예1) 우리 한국 민족은 수 백 년(또는 수 천 년) 동안, 봉제사(奉祭祀)라 하여 조상의 제사를 받들어 모시는 일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겨 왔다.
전쟁이 발발하여 긴박하게 피란을 갈 때에도 조상들의 신주를 모시고 갈 정도였다. 임진왜란 때, 임금이 의주로 몽진을 갈 때, 천신만고의 고난을 무릅쓰고 역대 왕실의 신주를 모시고 이동했던 사건은 그 좋은 예가 되겠다.
그러나, 봉제사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자손 중에 누가 죽거나 병이 나면, 그 당시의 봉제사는 중지시키게 되어 있다. 자식이나 후손이 슬픔 또는 고통으로 허덕이는 속에서도 섬김(효도)을 받기를 원하는 부모(조상)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번거롭고 힘든 그 봉제사로 인하여 분란이 일어나는 가정이 많게 되었다. 심지어는 그 봉제사의 복잡하고 힘든 형식 때문에 이혼도 하고 가정이 와해되는 비극이 초래하기도 한다.
자식 또는 손자의 가정이 풍비박산되어 불행 속으로 쳐 박히는데도 그 봉제사가 무엇이기에 그 수렁(전통을 고집하는 봉제사의 형식)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것일까?
설 또는 한가위 같은 명절 때가 되면, 전통적 차례 음식을 준비하는 문제(형식)와 여기에 수반하여 여러 가지로 곪았던 문제들이 터져 나오곤 한다.
봉제사 방식을 현대 감각에 맞도록 대폭 축소시켜서 간편하게 치르면 아주 쉽고 지혜롭게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건만, 수 천 수 백 년 된 퀘퀘 묵은 고리타분한 전통(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모습이다.
역시, 한 시대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서 다음 단계의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일 즉,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말해 주고 있다.   


예2) 고려 말의 정몽주는 수 백 년이 지난 오늘 날까지도 <충신>이라는 이름으로 그 칭송이 대단하다.
고려는 나라가 세워진 후, 50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건국 이념은 오리무중으로 보이지도 않고, 사회 전체가 모순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모든 기강이 무너져 있었다.
따라서, 귀족 사회(기득권 층)의 횡포는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게 되어 온 백성은 온갖 참상으로 허덕이게 되었다.
썩어 문드러진 고려, 온 백성이 기근에 빠져 허덕이는 고려, 이러한 고려를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목숨을 던져 지키려고 애쓴 사람이 바로 충신 정몽주이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충신(또는 충성)이었을까!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전근대 이전 사회의 가장 커다란 패러다임(또는 덕목) 중 하나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역모(왕권을 범하는 행위)는 용서될 수 없는 가장 큰 범죄이다." 이것도 가장 커다란 패러다임 중 하나이다.
이 패러다임은 수 천 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 날에도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의 견해와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인식의 체계이다.
따라서, 패러다임 즉, 한 시대 아니, 수 천 수백년을 풍미해온 인식 체계가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바뀌려면, 엄청나게 커다란 어떤 사건 또는 계기가 전제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하겠다.
왕은 하늘이 낸 절대 권력자로서 백성의 어버이라는 인식 체계(전제 군주제)가 바뀌어 민주주의에 의한 입헌 공화제라는 새 세상(인식 체계)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독립, 프랑스 대혁명, 영국의 산업 혁명,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뉴턴의 만유인력 등과 같이 지축을 흔들 만한 초대형 사건들이 동반하지 않고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 즉, 인식의 전환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한 번 반들반들하게 길이 들어 놓은 패러다임은 그것이 마침내 지옥을 만들어 내고 있어도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변화를 가져오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수백 수천 년의 역사와 전통으로 똘똘 뭉쳐진 구시대의 낡은 굴레(패러다임)를 단번에 훌훌 털어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새 세상을 이루어 낼 수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이다.
길고 긴 세월 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종교와 문화 그리고 전통이라고도 불리는 인습(因習=몸에 배어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낡은 습속 또는 오랜 버릇)으로 철통 같이 길들여진 구대륙(아시아, 유럽 등)에서는 새 세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삶을 찾아 새로운 세상 미대륙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인간을 얽어 매고 있던 구대륙의 모든 굴레를 훌훌 벗어버리고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가 있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변신 또는 인식의 전환이다.  
 

미국(사람)에게서 (1) 실용주의 (2) 합리주의 (3) 개인주의 그리고 (4) 자유주의를 빼내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실용주의, 합리주의, 개의주의 그리고 자유주의의 구체적인 의미를 구태여 이론적 또는 학술적으로 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냐 하면, 국어 문법을 전혀 모르더라도 한국 사람 중에 한국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미국 사람 중에 실용주의, 합리주의, 개인주의 그리고 자유주의를 이론적(학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지는 몰라도 저것들이 몸에 배어 있어서 일상 생활화되어 있지 않은 미국인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필자의 체험에 의하면, 미국에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 곱셈이나 나눗셈은 고사하고 덧셈과 뺄셈조차 할 줄 모르는 사람이 그들먹하다. 그런데도 미국 사람 중에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미국 사람 중에는 양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태반인 것처럼! ㅎㅎ...
마찬 가지 의미에서, 미국 사람 중에 실용주의, 합리주의, 개인주의 그리고 자유주의를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자(?)는 얼마 되지 않을지 몰라도 저것들이 몸과 마음에 배어 있어서 저절로(?) 실천하고 있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렇다. 수 백 수 천 년에 걸쳐서 유럽이나 아시아 대륙에서 반들반들하게 길들었던 구태(舊態=낡은 전통 또는 인습 따위)를 단번에 훌훌 벗어버리고 획기적이고도 강력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출발할 수 있었던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의 200년 전체 역사를 통틀어 실용주의, 합리주의, 개인주의 그리고 자유주의가 천성적으로 몸과 마음에 배어 있는 것처럼 일상 생활화되어 있는 사람들이 미국 국민들이다. 구대륙(유럽과 아시아 등)에 그대로 눌러 앉아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획기적이고 도약적인 인식의 전환이요 패러다임이다.
우리 나라 조선 시대에도 새로운 패러다임 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 기회는 몇 번 있었다. 정도전, 세종 대왕, 조광조, 정조 대왕(정약용을 포함해서) 등, 뛰어난 선각자들의 등장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
특히, 조선 후기, 정조 시대의 <실학 사상>은 수 백 년을 이어온 탁상 공론적 체면 문화를 벗어나서 실용주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의 싹을 틔워보려고 발버둥치던 역동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 사람들은 쾌쾌 묵은 인습과 전통 또는 고정 관념을 훌훌 털어버리는 인식의 전환과 함께 새로운 패러다임 속으로 뛰어드는데는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 한국 사람을 가리켜 <체면 민족>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심지어는 내가 나의 삶을 사는 것인지 남의 삶을 사는 것인지 그것을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남을 의식하면서 삶을 사는 민족이 한국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실용주의, 합리주의, 개인주의 그리고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먼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이제, 더 큰 불행 속으로 빠져들기 전에 체면 치레가 아닌 내가 나의 삶을 사는 그런 가치관과 패러다임 속으로 뛰어들어 봄이 어떨까?



** 처음 출발할 때는 조금 쯤 거창하게 윤곽을 짰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필자도 이미 늙은 사람이어서 <황혼 연설>을 하고 있구나 여겨졌다. 
   그래서, 글 쓰기를 중도 포기하기로 했다.
   다만, 이 글의 결론이기도한 오늘 날의 미국이 태어나게 된 저력(도시와 농촌)에 대해서는 좀 더 정리가 되는대로 여기에 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 패러다임(paradigm)--한 시대의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인식의 체계.
                            다양한 사물에 대한 이론적 틀이나 구조.

제삼자 2016-03-21 (월) 12:43
[빨랫줄과 올챙이]


몇 십 년 전, 그러니까 6.25사변(한국 전쟁) 전후 때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에는 집집마다 빨랫줄을 설치해 놓지 않은 집이 거의 없었다.
바깥마당, 안마당은 물론이고, 장마철에는 대청마루와 안방, 건넌방에까지 그 빨랫줄이 설치되어 있게 마련이었다.
가족 전체의 일반 빨래의 건조도 문제이지만, 갖난 아기가 있는 집에서는 기저귀를 말리는 일은 여간 큰 문제가 아니었다. 따라서, 집집마다 빨랫줄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집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빨랫줄에다 빨래를 너는 일에 상당히 중요한(또는 엄격한) 규칙(?)이 있었다.
즉, 빨랫줄에다 빨래를 널 때, 빈 틈 없이 빨래를 널지 않고, 빈 틈을 남겨두어 사람이 편하게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놔야 된다는 것이 그 규칙이다.
심지어는 그 빨랫줄에 대한 경고성 속담까지 만들어 놓고 있었다. "사람이 편하게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통로를 남겨 놓지 않고 빨래를 촘촘히 널어 놓으면, 남편이나 아들(또는 아버지)의 출세 길이 막힌다."고.

어렸을 때, 할머니들과 어머니들이 며느리들과 딸들에게 야단을 치면서 <빨랫줄에다 빨래를 너는 방법>에 대해서 훈계하는 소리를 먼 발치에서 몇 번이고 들어 봤다.
지금 생각해 봐도, 학교 문턱에도 가 보지 못했던 무식하기(?) 짝이 없었을 그 할머니들과 어머니들에게서 어떻게 그렇게 멋지고 교양있는 에티켓(etiquette=예의, 의례, 공중도덕)이 나올 수 있었을까 놀랍기만다.

다음 그림은 올챙이의 사진이다. 몸통(머리 포함해서)은 커닿고, 꼬리는 가늘다.

올챙이

혹자 중에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속담에 대해서 말하려나 보다."하고 지레짐작하는 사람이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속담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가 보면 저 올챙이와 꽤나 닮은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한국에는 아직도 공중 도덕을 지킬 줄 모르는 사람이 않은 것 같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을 이루었다고 말해지는 한국인데도 아직 공중 도덕이 뭔지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줄서기>는 사회 생활을 할 때, 질서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기본 도덕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저 <줄서기>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
70대 80대 노인들이 주종을 이루는 집단에서도 줄서기가 되지 않고 있다. 마치, 저 올챙이 모양의 줄서기를 하고 있다. 70년 8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인생 공부를 하고도 기초적 공중 도덕을 지킬 능력이 없다.
도착하는 사람 순서대로 목적에서부터 차례대로 한 줄로 서지를 못하고 모여드는 사람족족 맨 앞으로 모여들어 무더기를 만든다. 마치, 올챙이 모양을 만든다. 그것도 꼬리가 아주 짧은 기형 올챙이를..... 
중국을 여행하면서도 <줄서기>가 전혀 되지 않는 수라장 같은 모습을 종종 보게 되는데, 우리 한국에서도 그 <줄서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

도저히 줄서기가라고 할 수 없는 올챙이 모양의 줄서기에서 몸통 부분에 해당하는 곳은 십자로처럼 사람이 다니는 중요한 통로 지점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 1개, 강당으로 가는 통로 1개, 그리고 밖으로 통하는 통로 2개, 이렇게 사방으로 사람이 지나다니는 통로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통로 지점에서 와들와글 모여 줄서기 아닌 줄서기를 하고 있다.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무슨 걸림돌(불편) 노릇을 하고 있는지 전혀 감각이 없다.
빨래를 널 때에도 사람이 지나다는데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하여 통로를 열어 놔야 했던 아름다운 풍습의 나라였건만, 어쩌다가 이렇게 무지막지한 모습으로 변했을까?
"사람이 지나다니는 통로를 막아서면, 아들 딸과 손자 손녀의 출세 길이 막힌다."는 경고장이라도 써서 붙여 놓아야 되지 않을까?

우리 한국에서는 어린 아이를 국가 장래의 보배라 하여 <어린이>라고 높여 부른다. 그러면, 70년 80년 동안 인생 교육을 하고도 기초 도덕률도 지키지 못하는 늙은이(또는 어른)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좋을까?
어린 아이를 높여서 <어린이>라고 한다면, 늙어서도(어른이 돼서도) 제 구실을 못한다면, <늙은 아이> 또는 <어른 아이>라고 불러야 되지 않을까?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 단계인 유치원 아동(아기?)들도 줄서기를 아주 잘 할 줄 안다. 그런데, 70~80세 된 늙은이들이 그 간단한 줄서기를 못하고 있다. 줄서기조차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야만적 사회를 손자 손녀들에게 물려 주려는가?
제삼자 2016-04-06 (수) 05:38
[예수의 진짜 모습]--미완성

예수가 자기 고향에 가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고향에서 자신이 환영을 받지 못한데 대한 변명이었다.

"내(여호와의 아들 예수)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예수 또는 여호와의 선전꾼)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누가 4;24)

여기의 선지자란 특별한 어떤 존재가 아니라 순수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 같다. 그렇다면, 예수의 말은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 대하여 속속들이 알고 있는 고향 사람들로부터 진심어린 칭송을 듣는다는 것은 어려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하다.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고만고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하여 <존경심>이 나올 턱이 없을 것이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거든 그 저자를 만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책 내용이야 인간의 이상적인 희망 사항이 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책 내용과 동일한 인격자일 수는 없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송강 정철! 사람들은 관동별곡, 사미인곡 등등을 읽고서 송강 정철을 꽤나 우러러 볼 것이다. 글 내용을 마치 글 쓴 사람의 인격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강 정철은 선조 때, 기축옥사(정여립 모반 사건)의 수사 책임자 노릇을 하며 자그마치 1,000명이 넘는 억울한 선비들을 죽여낸다. 이는 4대 사화(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때 죽여진 사람을 합친 것보다도 2배나 많은 숫자이다. 어떤가? 글 내용과 저자의 인격은 어떤 관계인가?

인기 있는 정치가나 연예인들도 그들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면 거의 모두가 실망스러울 때가 많을 수 밖에 없다. 어느 사람을 막론하고 그 사람의 내면을 알면 알수록 존경할 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언제인가, 미국의 백악관에서 역대 대통령 4사람의 식사를 담당했던 조리사가 쓴 책을 본 것 같다. 대충 기억에 남는 내용은, 어느 대통령을 막론하고 그 나름의 약점과 부끄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더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인간의 진면모이기도 할 것이다.

자기 교회에서는 갖가지로 미움과 배척을 당하는 목사가 다른 교회로 다니면서 <부흥회 설교>로 인기가 대단한 사람도 많다. 그 목사의 내면과 인격을 모르는 타교인들로서는 그 입에서 나오는 미사여구에 반할 수 밖에 없다.
어느 목사 부인이 자기 남편(목사)에게 말했다고 한다. "다음부터는 우리 살림을 교회 강단에다 차리자." 고. 강단에 서서 설교할 때에는 그토록 그럴싸한 말만 늘어 놓는 남편이 현실 생활로 돌아왔을 때는 그런 비인격자도 없었던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지금까지의 예화는 모두가 인간(사람)의 경우라는 점이다. 그러나, 신(神)의 경우는 달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 예수의 고향 이야기는 어물성설이다. 순수한 사람은 자기 고향에서 환영을 받을 수 없을지는 몰라도, 신(神)이나 선지자(신의 앞잡이)의 경우는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선지자가 순수한 자연인이 아니라, 전지전능한 신(여호와=예수)의 감동과 명을 받고서 활동하는 존재라면,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현상이다. 
인간에게 실망을 주고, 아픔을 주고, 권태를 주고, 환영되지 않는 존재라면 그것은 이미 신(神)도 아니고, 신의 앞잡이 선지자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더구나, 예수(여호와)는 전지전능과 절대와 완전의 대명사가 아니던가?


이제 바이블로 옮겨 가서 생각을 해 보자.

[예수께서...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예수)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이는 그 목수(요셉)의 아들이 아니냐?...그런즉, 이 사람의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예수를 배척(排斥)한지라...]

(마태 13;52~57 상단)

예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와 그 부모 형제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다. 고향 사람들이 놀라워할 정도로 예수에게는 지혜와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예수가 가진 지혜와 능력은 신의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예수가 성장하던 시절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고향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굴복됐어야 말이 된다.

<벤허>라는 영화에서, 벤허가 노예로 끌려 갈 때, 예수가 그에게 물을 떠다 먹여 주는 장면이 있다. 그 때, 감독관이 채찍으로 치려다가 예수의 눈을 보더니,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면서 계속 예수를 돌아다 보고 있었다. (겁 먹은 눈이라고 할까? 어떤 위대한 힘에 굴복된 자세라고 할까?)
그렇다. 예수가 신(神)이라면, 그의 지혜와 권능에 압도되어 어떤 누구라도 배척 아닌 환영에 앞장 섰을 것이다.
선지자들도 그렇다. 만약, 여호와(예수)가 신(神)이라면, 그를 대변하는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짜 신에다 가짜 선지자들이 서로 권커니 자커니 하며 벌이는 사기극이기 때문에 그 내면을 알고 있기에 배척되는 것이다.

능력도 없고, 돈도 없으나 거짓이 없고 이웃과 잘 어울리는 것만으로 고향 사람들에게 환영 받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엇엔가 출세(성공)했다는 사람일수록 고향에서 배척되는 경우가 많다. 
출세(성공)란 것을 쟁취하려면 대개는 비인간적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기 일쑤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혹 무엇인가 혜택을 얻으려는 사람의 아부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승이 죽었을 때보다 그 집 개가 죽었을 때, 조상꾼이 더 많다." 는 속담이 이런 때 제격일 것이다. 
예수는 여호와의 아들 즉, 신(神)이 아니라, 일하기 싫은 건달이었다. 거기에다 신의 아들을 참칭하고 있었으니, 배척 정도가 아니라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예수의 설교)을 듣고, 다 분(憤)히 가득하여, 일어나 동리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리가 건설된 산(山)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누가 4;28~30)


예수에게 <지혜>와 <능력>이 있었다면, 예수의 설교를 들으면서 분개하고, 죽이려고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겠는가? 도대체 예수 즉, 신의 지혜와 능력이란 것이 어떤 것이기에 고향 사람들에게 극단적 분(憤)을 일으키게 했을까?
예수는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 "너희는 구원은커녕 모두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설교를 했던 것이다. 지금의 예수쟁이들이 어느 누구를 닮았을까는 짐작이 되리라. (어느 정도 바이블 실력이 있어야 감이 잡히는 내용이지만, 이 부분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누가 4;25~27을 읽어 보기 바란다.) 

사람이란 모두가 고만고만한 것이어서 사실을 알게 됐을 때, 특별히 누구에게 칭송될 만한 사람이란 없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자기 고향에서 칭송 받을 만한 사람이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들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선지자 역시 신과 연결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그냥 세상에 흔해 빠진 순수한 자연인이기 때문이다. 
아니, 선지자(목사, 신부, 신학자 등등)는 순수한 자연인이라기보다는 껍데기가 속임수로 포장된 대단히 더러운 사기꾼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신과 선지라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세상은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다. 전지전능한 신은 지루하거나 권태롭거나 인기가 떨어질 리가 없는 것이다. 신은 고향 아니라 인류 사회 전체를 통틀어 어디에서도 환영 받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고향에서 환영 받지 못한 예수, 심지어 낭떠러지에서 밀쳐 죽이려고까지 했다는 것은 신은 고사하고 못된 잡놈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예수가 실존 인물이라면, 예수는 일하기 싫어서 젊은 것들 십 여명을 몰고 다니며 무전 취식하던 잡놈이요 건달이었던 것이다.

제삼자 2016-05-03 (화) 16:46
[성전(聖戰)-성스러운 전쟁]-지루한 글---미완성

성전(聖戰)이란 무엇일까? 성전(聖戰)이란 종교적 이념에 따라 수행되는 전쟁이라고 한단다.
이 얼마나 웃기는(?) 전쟁인가? 사람을 죽이는 전쟁에 성스러운 전쟁이란 것이 있다니, 이것이 웃기는 전쟁이 아니고 뭘까?
성전 즉, 여호와가 진두 지휘하는 성전(聖戰)에서는 '칼날로' '진멸(殄滅)' '도륙(屠戮)'은 필수 용어이다. 이 또한 얼마나 웃기는 어휘들인가? 
칼날로 목을 뎅겅뎅겅 잘라 죽이는 짓도 재미있겠지만 또, 한 민족의 씨를 말려서 없애 버리기 위하여 진멸 또 진멸하고, 도륙 도륙 또 도륙을 시켜 버리는 전쟁! 성전(聖戰)은 말 그대로 성스럽고 그리고 재미있는(?) 전쟁임에 틀림 없는 것 같다. 헐!

여기에서 여호와의 성전(聖戰)을 몇 가지만 잠깐 보려고 한다. 중세와 현대의 성전 이야기는 생략하겠지만, 고대 성전에서 명성을 날리는 총대장은 여호수아이다.
여기에서 거론되는 성전(聖戰)은 600여 년 전에 여호와가 계획을 짜고, 아브라함을 통하여 예언해 두었던 것이 마침내 600여 년 뒤에 실제로 벌어졌던 전쟁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가 히브리 족속(이스라엘)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던 땅 즉,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여러 개의 원주민이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땅을 여호와 쪽에서 히브리 족속에게 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미 자리잡고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모조리 때려 죽이지 않고는 히브리 족속이 들어 갈 수가 없는 땅이다.
결국, 원주민을 박살내고, 그 땅과 기업을 송두리 째 탈취하는 전쟁이 바로 성전(聖戰)이었던 것이다. 
쉽고 짧게 말해서, 성전(聖戰)이란 노략질(떼를 지어 다니면서 사람을 마구 죽이고, 잡아가거나 재물을 빼앗아 가는 짓)의 다른 이름이다. 
역시, 성전(聖戰=성스러운 전쟁)은 웃기는 전쟁이요, 재미있는 전쟁이다. 그지? ㅎㅎ...아멩 할레루야!

아래의 성전은 사방 100리 쯤 되는 조그만 땅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아모리 족속의 5개국 연합군을 도륙 또는 진멸시키는 전쟁을 말한다. 
5개 국이란 1예루살렘, 2헤브론, 3야르뭇, 4라기스 그리고, 5에글론이라는 조그만 나라(마을?) 5개를 말한다.
그러면, 지금부터 여호와가 진두지휘하는 성전(聖戰=성스러운 전쟁)을 관전해 보기로 해 볼까!


1) [(여리고) 성중(城中)에 있는 것을 다 멸(滅)하되, 남녀(男女) 노유(老幼)와 우양(牛羊)과 나귀를 칼날로 멸(滅)하니라.] 

(여호수아 6;21)

* 서두부터 칼날로 남녀 노소는 물론 동물(가축)까지도 모조리 싹쓸어서 진멸시켰다고 한다. 이 짓보다 더 재미있는 지랄이 또 있을까?
이것이 여호와가 진두지휘하는 거룩한 성전(聖戰)이다.


2) [여호수아가 아이(城 이름)를 취하여 진멸(殄滅)하되,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여호수아 10;1)

* 역시 아이성 전투에서도 진멸시켰다고 한다. 여리고성 전투에서처럼. 그러니까 이미 여리고성에서도 저런 지랄발광을 했었다는 뜻이다. 
[...백성(히브리 군대)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여리고) 성에 드러가서 그 성을 취하고, 성 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와 우양(牛羊)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여호수아 6;20~21)
역시, 여호와가 진두지휘하는 노략질 전투는 대단히 재미있는 성전이라고 불릴만 하다고 하겠다.


3) [여호와께서 그들(5개국 연합군)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도륙(屠戮)하고,] 

(여호수아 10;10)

* 도륙했다고 한다. 도륙 중에서도 크게 도륙했다고 한다. ㅎㅎ... 얼마나 흥미진진했을까! 역시, 성전답다.!


4) [그들(5 개국 연합군)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우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 

(여호수아 10;11)

* "큰 덩이 우박"이란 말을 들어 본 사람이 있는가? 아마도 우박의 크기가 커다란 수박만 했었다 보다.
지금은 한국에서 생산되는 수박도 꽤나 커졌다. 그러나, 미국 쪽에서 생산되는 수박보다는 아직 어림 없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수박 중에는 40대 젊은 시절의 힘으로도 끙끙대며 겨우 들어올릴 수 있는 크기의 수박이 많다. 그것을 단 돈 5불 씩을 지불하고서 사 먹었었다.

여호수아 시대의 중동 지방에서 생산되는 포도 송이는 어찌나 큰지, 포도 1송이를 운반할 때에도 작대기에 끼워서 장정 2사람이 어깨에다 메고 운반을 했다니까(민수기 13; 23), 그 때의 수박은 지금 미국에서 생산되는 수박보다도 훨씬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니까, 여호수아 시대에 벌어졌던 성전(聖戰)에서 적군(원주민) 진영에게 폭탄처럼 쏟아져 내린 큰 덩이 우박이란 것은 적어도 그 당시의 수박의 크기는 됐으리라 짐작된다.
그 큰 수박 덩이 크기의 우박에 직접 얻어 맞은 사람은 박살이 났을 것이고, 우박이 터지면서 튀는 파편에 얻어 맞은 사람도 직사했으리라.

오죽하면, 적군(5개국 연합군)은 이스라엘 군이 휘두르는 칼날에 목이 잘려 죽은 자보다 우박 덩이에 맞아서 죽은 자가 더 많았다고 하겠는가?
그 큰 우박 덩이를 여호와가 직접 쏟아 내렸다니까, 여호와가 진두지휘한 성전(聖戰)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성전 이야기를 잠시 멈추어야 될 것 같다. 왜냐 하면, 여호와를 잡놈 악신이라고 한 번 불러 주어야 되지 않을까? "잡놈 악신!" 이렇게. ㅎㅎ... 아멩 할렐루야! 


5) [여호와께서 아모리(민족 이름)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目前)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지명)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스라엘)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여호수아 10;12~14)

* 여기의 성전(聖戰)은 아모리 족속의 씨를 말리려는 전쟁인데, 그렇게 하자면, 하루의 전투로는 시간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여호와에게 기도를 했던 모양이다. "전지전능한 여호와시여! 오늘 하루는 태양과 달이 중천에서 오래 머물도록 해 주십시오."하고. 
그러자, 여호와는 여호수아(인간)의 요구에 응하여 태양과 달을 중천에 며칠 동안을 머물러 있게 하였던 모양이다. 마침내, 이스라엘 군은 적(아모리 족속)을 전멸시킬 수가 있었다고 한다. 
전지전능한 신이 진두지휘를 하면, 전과가 이렇게 막강한 것이다. 아멩 할렐루야! 그렇지만, 여호와는 잡놈이 맞지? 안 그래?


6)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5개 국 연합군)을 크게 도륙하여 거의 진멸시켰고...] 

(여호수아 10;20)

* 지금까지의 성전(聖戰)에서 전투 때마다  계속해서 적군을 도륙, 진멸, 전멸시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아직도 "거의 진멸시켰고..."라는 말을 하고 있다.
여기 만이 아니라 바이블 내용에 의하면, 중동 지방에서 히브리 족속을 제외한 여타 족속들은 여호와에 의하여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한도 끝도 없이 진멸(또는 전멸)되어 왔다.
그런데도 오늘 날, 여타 족속들에 의한 이슬람 교도는 18 억이 넘으며, 여호와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는 순수 히브리 족속은 600만에 불과하다. 

이스라엘 영토 안에서만 헤아려도 2020년이면, 순수 히브리 족속은 690만, 아랍인은 720만이 되어 아랍인이 히브리인을 앞지를 것이라 한다. 
진멸(또는 전멸)됐다던 여타 족속들이 없어지기는커녕 여호와의 보호를 받는 히브리 족속의 10배 20배로 번성하는 이유가 뭘까?
지금 여호와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낮잠을 주무시나?  


7) [여호수아가 군장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희가 더불어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 

(여호수아 10;25)

* 히브리 족속(그러니까 예수쟁이들의 조상)이 대적하여 싸우는 전쟁은 모두가 성전(聖戰)이며, 성전은 언제나 여호와가 함께 하며 진두지휘한다는 말이다.
여하간, 히브리 족속(또는 예수쟁이)은 신났어! 여호와가 함께 하고 있으니, 무엇인들 운수 대통하지 않을 것이 있겠는가?
어쨌든, 예수쟁이는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야 할 것이다." 항상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게 다 무엇을 하는 지랄인지 모르겠다. 


8)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 죽여, 다섯 나무에 매어 달고 석양까지 나무에 달린대로 두었다가, 해 질 때에...그 시체를 내리어...굴에 들여 던지고...] 

(여호수아 10;26~27)

* 이제 겨우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진 모양이다. "석양"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마침내, "5개 국 왕들을 모조리 잡아서" "쳐 죽이고" "석양까지 나무에 매달았다가" "해질 녘에 그 시체를 내려" "시궁창에 던져 버렸다"고 한다.
여호와께서 진두지휘하시는 성전(聖戰=성스러운 전쟁)답게 전쟁의 끝 장식도 멋져 버렸다. 그지?


9) [그 날에 여호수아가 막게다를 취하고, 칼날로 그 성읍과 왕을 쳐서 그 성읍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수아 10;28)

* 지금까지 꽤나 긴 시간 동안 전투 장면을 설명했는데, 이 모든 것이 하룻동안에 벌어진 성전(聖戰)이었다고 한다.
태양과 달이 움직이지 못하고 중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실제의 시간으로는 어쩌면 달포 동안을 쉬지 않고 전투를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날에 칼날로 그 성읍과 왕을 쳐서 그 성읍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와! 대단한 전과다! 아멩 할레루야! 
이럴 때 아멩 할레루야를 부르짖지 않고 언제 그 짓을 하겠는가? 대박!


이상에서, 히브리 족속(예수쟁이 조상)이 여호와 신과 함께 원주민 아모리 족속(5 개국)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남의 땅을 빼앗는 장면 즉, 성전(聖戰) 일부를 관람했다.
조그만 마을을 '나라'로 보고, 추장을 왕(王)으로 그려낸 바이블, 바이블 기자는 자기의 조국 땅이었던 팔레스틴 지방에 단 한 번도 가 본적이 없었을 것이며, 이미 페르시아 대제국 같은 나라를 경험한 그로서는 자기의 조상들도 그렇게 살았으려니 하는 생각으로 바이블을 쓴 것이다.

여기에다 자기네 조상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터무니없는 허풍과 자기의 무식한 신앙심이 보태져서 엄청난 악(惡)의 모습을 탄생시킨 것이다. 
나라(왕)가 무엇인지, 전쟁이 무엇인지, 신(神)이 왜 존재해야 되는지도 모르는 무식한 자가 신(神)의 이름을 내어 걸고 있으면, 우매한 무리가 몰려들어 재물을 바치는 것은 알아서, 그 재미(?)에 맛이 붙은 자가 만들어 낸 책(여호와)이 바이블이다. 그리고, 이 바이블이 바로 예수교의 기본이 되는 교리이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는 전쟁에서 자기 나라가 승리를 거두면 덮어 놓고 마냥 신나는 법이다. 
어린 아이로서는 전쟁이 무엇인지, 사람의 떼죽음이 무엇인지 알 턱이 없다. 덮어 놓고 자기 나라가 이겼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좋은 것이다.
바이블 기자는 이런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던, 오직 종교로 돈 버는 재미 밖에는 아무 것도 모르던 악마(惡魔)였던 것이다.
제삼자 2016-05-23 (월) 09:14

[죄인을 부르러 온 예수]


 [(예수가) 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예수)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누가 5;27~32)


위의 바이블 내용은 여호와의 아들 예수의 말이다. 다시 요약해 보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 일당에게 비방하여 말했다고 한다.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고.
예수 일당이 죄인들과 어울려서 히히덕거림을 비방하는 말이다.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을 들어 보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얼른 듣기에는 비유법을 인용하여 제법 그럴싸하게 들리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의 말이라고 할 수 없는 모순된 내용인 동시에 바이블(여호와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대역무도에 해당하는 말이다.

의원(의사)은 건강한 사람보다는 병자에게 필요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의인이 아닌 죄인을 구하러 왔다는 예수의 말은 어폐가 있다.
왜냐 하면, <병자>와 <죄인>은 비교될 수 없는 아주 다른 성격의 내용이며 또, 바이블(여호와의 가르침)에 의하면 인간 중에 죄인 아닌 사람은 없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신에 <원죄>라는 것을 뒤집어 쓰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의원(의사)은 건강한 사람을 빼고 병자만 골라서 치료하겠지만, 인간 중에 예수가 구원하지 않아도 될 의인은 하나도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떠들어 댄 자가 바로 예수(교)이기 때문이다.

예수(神)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 중에 의인은 없다. 그런데, 존재하지도 않는 의인을 들먹이며,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말은 다음과 같이 되어야 한다. (어차피 엉터리 얘기이지만)

질문; "너(예수)는 왜 죄인들과 어울려시 히히덕거리느냐?"
대답; "나(예수)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그런다."

근본적으로 더 큰 문제가 있다.
예수 입장에서 보면, 질문(비방)하고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이야 말로 죄인(?) 중의 죄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란 사실이다.
그런데, 예수는 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구원할 생각은 하지 않고 엉뚱하게도 세리와 다른 죄인(누굴까?)들만을 가리키며 구원시켜야 될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다.

죄인 중의 죄인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구원의 대상이기는커녕 오히려 예수의 저주 대상이다.
"화(禍) 있을진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여!...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하며 예수는 악담을 퍼붓고 있다. (마태 23;13~33)
죄인을 불러서 구원하기는커녕,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악담과 저주를 퍼부은 자가 예수였다.
그런데,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떠든다. 헐!

어쨌든, 인류를 구원하러 왔다는 신으로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따위는 있을 수 없는 말이다.
자기(예수)의 말에 고분고분 따라 주는 사람(바보)만을 추켜 세워 뭔가를 착취하려는 얄팍한 술수(속임수)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바보들의 왕초였던 것이다.
허구와 궤변으로 뭉쳐진 속에서도 영생 복락을 나누어 주겠다는 꾐수에 넘어가는 무뇌아들의 총수가 예수였던 것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백성의 고혈을 빨아 먹던 간악한 자들이어서 좋게 보아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예수의 허황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예수의 말에 넘어가는 사람이야 말로 바보에다 욕심을 겹쳐 놓은 구제 불능의 쓰레기들이다.
바보에게는 약이 없고, 욕심에 눈이 멀면 이것도 약이 없다.

제삼자 2016-05-31 (화) 15:48
[안식일? 젠장할! 헐!]--미완성


"제 배부르면, 남의 배고픔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있다 마다.
같은 맥락에서, 예수쟁이들은 자기네 믿음 생활이 중요하게만 여겨질 뿐, 이웃이 당해야 되는 고통은 보이지 않는다. 헐!


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安息日)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마태 12;1~2)


예수 일당이나 바리새인들이나 그 주장이 조금 다를 뿐, 내용은 같은 줄기 즉, 여호와를 받드는 종교쟁이들이라는 사실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들이 믿는 율법(바이블)에 의하면, 안식일에는 일을 해서는 안 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예수와 그 제자들이 안식일에 길을 가다가 배가 고프므로 남의 밭에서 밀 이삭을 잘라 먹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일러바친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여기에서,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이란 것이 무엇일까?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아니면 "남의 재물(밀)을 주인의 허락도 없이 먹어 치우는 일일까?" 
도둑질 또는 강도질은 안식일, 평일에 관계 없이 해서는 안 될 일일 것이다. 안 그래? 

여기에서 여호와를 받든다는 종교쟁이들은 그 말도 안 되는 종교적 가르침에 대한 논쟁에만 정신이 팔려, 
남의 재물이 파손(침해)되는 사건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있다. 헐!
사회의 질서가 파괴되고(도둑질) 있어도, 예수와 종교쟁이들은 아무 감각이 없다. 이것도 헐!

바리새인들이 일러바친 말에 대한 예수의 대답을 들어보자. (바리새인이나 예수나 모두 같은 여호와 종교쟁이들이다.)

2)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히브리 왕국의 최고 최대의 명군)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바이블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다윗)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陳設餠)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마태 12;3~4)

예수의 대답은 이러하다.
"다윗은 제사장 외에는 누구도 먹을 수 없는 진설병(제사 때에 차려 놓은 떡)을 먹었다는 기록(바이블 내용)이 있다. 
그렇거늘, 내 제자들이 밀 이삭을 좀 먹었기로 문제될 것이 무엇이냐?"

너무도 어이없는 대답이다.

율법에 의하면, 여호와에게 제사를 지낸 후의 음식물들은  아무도 먹을 수 없는 제사장만의 소득이라고 했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다윗 일행은 제사장의 허락을 받고서 그 진설병을 먹었다는 것이다 것이 예수의 해명이다. (복잡한 경위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러나, 지금의 예수 일당은 주인의 허락 없이 남의 밀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이다. 

그런데, 예수 녀석이나 바리새인이나 남의 재물이 파손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여호와의 율법인 "안식일에 일을 할 것인가 아니할 것인가?"에만 초점(焦點)을 맞추고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헐!
계속해서 예수는 안식일에 대한 논설(?)을 떠들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생략하겠다. 궤변만 늘어 놓고 있을 뿐, 자기들이 벌이고 있는 "도둑질 행각"에 대한 말은 없다. 잡놈들의 잡놈 짓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가 있겠는가? 헐!

도둑질 행각이 종교쟁이들(예수일당과 바리새인)의 눈과 감각에 보이거나 느껴질 리가 없다. 
아무 쓸데도 없는 "교리 논쟁"만 짖어대며 즐기면 되는 것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헐!


(참고); 
["안식일(安息日)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7일은 너의 신(神)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留)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애굽기 20;8~10)

저축된 재물이 많고 배만 부르면, 
안식일만이 아니라 7일 동안을 모두 놀면서 안식하고 싶은데, 이 점을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대박!
사람마다 심신의 조건과 재물의 형편이 다르거늘 무조건 같은 날 안식을 하라는 말인가? 되는 말을 해야지. 안 그런가? 헐!

또, 전지전능하다는 여호와란 놈도 6일 동안 일하고서 하루를 쉰다면서, 
무지무능하고 연약한 인간이 어떻게 여호와처럼 6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라고 하는가? 헐!
인간에게는 격일제로 안식하게 하실 의향은 없으신지? ㅎㅎ...아멩 할렐루야!

여호와시여! 인간의 재물을 작작 착취하십시오. 
그래야, 안식인지 뭔지를 할 것 아닙니까? 재물이 조금이라도 모여 있어야 좀 쉴 것 아닙니까? 안 그래요? 헐! 젠장할!


* 젠장할(젠장맞을) : 아주  나쁘고 재수가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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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6
*50[예수교(바이블)에서 가장 큰 사기극]** 예수교(바이블)의 활동 중에 사기 행각 아닌 것이 없지만, 필자는 다음 사건이 예수교(바이블)에서 가장 큰 사…
제삼자 15/04/09 2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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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돈을 많이 바쳐야 된다."는 말만 있는 예수교!]예수교(또는 바이블)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어느 것일까?"지난 일요일, 달나라에 …
제삼자 14/12/10 17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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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예수교의 핵심이 되는 문젯점]어떤 사람이 말했다."나는 사과나무를 싫어한다. 그 이유는 사과나무에 배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어떤가? 되는 말 같은가?…
제삼자 14/05/25 12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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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반기련이 가야 할 길]부창부수(夫唱婦隨);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이에 잘 따름" 부부 사이의 화합하는 도리를 비유적으로 나타낸 말이다.(1) "목적이 좋…
제삼자 14/04/02 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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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장하다! 반기련이여!]한국 사람들 사이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특이한 정서에 정(情)이란 것이 있다. 정(情)이란 오랫동안 지내 오면서 생기는 사람과 사람 …
제삼자 14/02/11 4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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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예수교의 뿌리]** 예수교의 뿌리가 무엇(누구)인지 아는 예수쟁이가 있을까?   여호와를 세상에 최초로 소개한(발명해 낸?=만들어 낸?) 사람은 모…
제삼자 13/12/11 5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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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귀하디 귀한 내 자식의 친구로는?]   수 십 년 전(50 여 년 전) 일이다. 필자의 친구 중에 J라는 젊은이가 하나가 있었다. 그는 술과 여자…
제삼자 13/11/29 3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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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아주 커다란 착각(궤변)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일까?(1) 착한 일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일이 더 어려울…
제삼자 13/11/14 3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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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지상 최대의 사기극 제1막과 제2막 공연]* 참고; 시간이 없는 독자는 저 밑으로 가서 =====선 아래 <사기극 제1막>부터 읽어도 된다.[근거 제1]--구약…
제삼자 13/10/11 3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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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예수교는 예수도 감지 못한 자력 신앙(自力信仰)]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예수교는 타력(他力) 신앙이고, 불교는 자력(自力) 신앙이다."라고. 불교는 무슨 …
제삼자 13/08/30 4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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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예수일당은 3 년 동안 무엇을 한거야?] 예수쟁이의 으뜸되는 목표는 <믿음 생활>이다. 그래서, 예수쟁이의  다른 이름도 <신앙인(…
제삼자 13/08/26 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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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개망신]  * 개망신--아주 큰 망신.   망신--말이나 행동을 잘못하여 자기의 명예나 체면 따위가 손상을 입음.  영국 역사상 가장 중요…
제삼자 13/07/21 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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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혼인할 배우자를 찾음] 어느 일간지에 다음과 같은 구혼(求婚) 광고 3 개가 게재되어 있었다.  (A) [혼인(결혼)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소유…
제삼자 13/07/06 4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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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군자 삼변(君子三變)에 비춰 본 예수교]예수의 조상 중에 <유다>라는 사람이 있다. 이 유다가 며느리(다말)와 불륜으로 간음하여 자식이 태어나는데, …
제삼자 13/06/21 5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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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협잡질(挾雜-질)]협잡질(挾雜-질); 그릇된 행동으로 남을 속이는 짓.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난 사람이 하는 일(예: 나라를 다스림)을 가리켜 경-륜(經綸)이…
제삼자 13/05/14 4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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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보복(?)이 두려워 숨어 다니는 神]* 전지전능하다는 신(神)이 숨어 다니기도 하고, 도망다니기도 한다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1) [유대인들이 가로되,…
제삼자 13/04/30 4117
710
*34[두 연놈의 배때지를 꿰뚫어 죽이기] 여호와(예수교의 신이라 함)의 질투심이 발동했을 때, 초기 진화를 하지 않으면 한 나라와 민족이 송두리 째 없어질 수…
제삼자 13/04/09 4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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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짓]"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속담(?)이 있다."무슨 일을 하려면 그에 걸맞은 실력과 견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 무슨 …
제삼자 13/03/25 4140
708
*32[예수의 산상수훈(山上垂訓)]고등학교 2 학년 때, 윤리 과목 선생이 결근을 하자, 교장 선생이 대신 교단에 나타난 적이 있었다.그 때, 교장 선생으로부터 처…
제삼자 13/02/12 4361
707
[논리 중의 논리-논리의 진수(眞髓)](가정) 부산 앞 바다에서 유난히 꽁치가 많이 잡히는 해가 있다고 하자.(결론) 그렇다면, 그 해에는 서울 사람들은 서대…
제삼자 13/01/28 4080
706
*30 [예수가 태어나던 날의 날벼락] 한 나라에 왕자가 태어나면, "대역 무도한 죄인을 제외하고, 모든 죄수들을 방면하라."는 임금님의 어명이 떨어지게 마련…
제삼자 12/12/23 5187
705
[축사(祝辭)] 반기련 회원 여러분! 오늘은 참으로 뜻 깊은 날입니다. 아니, 어쩌면 먼 훗날 역사의 한 페이지를 크게 장식할지도 모를 그런 감격스런 …
제삼자 12/09/13 4255
704
[무식과 용감무쌍은 이란성 쌍둥이]요즈음, 태풍 볼라벤과 덴빈으로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태풍이 몰려 오면, <호우 주의보>니, <…
제삼자 12/08/31 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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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중한 임무를 띤 반기련]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354~430)-초대 예수교의 가장 유명한(?) 교부신학자라 불린다.예수교의 기초와 근본 교리는 아우구스티…
제삼자 12/08/19 3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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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사상에 대한 고차원적 분석] A. 약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는 어렵다. B. 부자가 천당에 들어가기는 어렵다. 위의 2 가지 논제 중, A는 물리적(물질적)인…
제삼자 12/07/31 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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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예수)의 만행(蠻行)질]다음의 말은 여호와(예수)가 전지전능한 신으로서 천지를 창조하고, 이것을 정의와 사랑으로 다스린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성…
제삼자 12/07/16 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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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전도(主客顚倒)] 주객전도 :주인과 손의 처지가 뒤바뀐다는 뜻으로, 사물의 경중(輕重), 선후(先後), 완급(緩急) 따위가 서로 뒤바뀜을 이르는 말. (1…
제삼자 12/07/13 3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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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名譽)]명예(名譽)란 무엇일까? 국어 사전에서 찾아 보자.명예--세상에 널리 인정받아 얻은 좋은 평판이나 이름.세상에서는 이 명예를 획득하려고 혈안이 …
제삼자 12/05/26 4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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