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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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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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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30[예수가 태어나던 날의 날벼락]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2-12-23 (일) 10:34 조회 : 5882
*30 [예수가 태어나던 날의 날벼락]


한 나라에 왕자가 태어나면, "대역 무도한 죄인을 제외하고, 모든 죄수들을 방면하라."는 임금님의 어명이 떨어지게 마련이었다.
나라에 경사가 나면 옥중의 죄인들에게도 은혜와 혜택이 돌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교의 신 여호와의 아들 예수가 구세주(救世主)라는 이름을 달고 태어나던 날, 2살 이하의 사내 아기들이 도륙을 당했다고 한다.

이 비극은 오래 전에 여호와가 계획을 세우고,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예언을 해 두었던 것이 "이루어진 것이다."라며 바이블(예수교)은 우쭐거리고 있다.
장차 인간에게 있을 불행을 미연에 예방해 주는 게 아니고, 그 불행을 계획하고 예언까지 해 주고서, 그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출썩대며, 자기의 점괘가 맞아 떨어졌다고 자랑하는 여호와!
세상에 이런 못돼 먹은 악신(惡神)이요 잡놈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헤롯(왕)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그 때를 표준하여, 2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더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마태 2;16~18)


(1) 예수가 태어나던 날, 베들레헴과 그 원근 일대의 2살 이하 사내 아이들이 국왕 헤롯에 의하여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이것이야 말로 날벼락이 아니고 무엇인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사건은 태초에 여호와가 계획을 세우고, 이것을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예언해 놨던 것이 이루어진 것이라 한다.

(2) 지금은 여자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 세상이 됐지만, 옛날의 인간 세상은 어디나 집집마다 어린 아기가 없는 집이 별로 없었다.
따라서, 당시 베들레헴 일대에서 자식이 죽임을 당하지 않은 집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죽은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소리가 천지을 진동했다는 것이다.
죽은 아기들도 불쌍하지만, 그 유가족들의 슬픔은 무엇일까?
여호와(예수)는 인간이 감당할만큼만 시련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비극들이 인간이 감당할만한 시련들일까?

(5) 사랑의 신이라고 말해지는 여호와는 세상을 이런 식으로 다스려야 되는 것일까? 여기에서 우선적으로 여호와는 욕을 한 번 더 얻어 먹어야 될 것 같다.
"여호와를 가리켜 악마(惡魔)요 잡놈이라고 하면 제대로 된 표현이 될까?"


여기 쯤에서 바이블을 더 보기로 하자.

[(천사가 이르되)
"오늘날 다윗의 동리에 너희를 위하여 구세주가 나셨으니, 그리스도 주(主)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허다한 천군(天軍)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신(神=여호와)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천국?)에서는 신(神=여호와)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 2;11~14)


(1) 예수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지극히 높은 곳(천당?)에서는 여호와에게 영광이 되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한다.

(2) 그렇다면, 베들레헴 원근 일대에서 도륙된 2 살 이하 사내 아이들과 불행 속으로 빠져 든 그 유가족들이 바로 "여호와로부터 기뻐하심을 입지 못한 미운 털 박힌 종자"들이었던 셈이다.

(3) 2 살 이하의 아기라면, 자기 의지가 없을 때이다. 따라서, 그 아기들에게 <죄의식>이란 것이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도륙된 아기들이 여호와로부터 "기뻐하심을 입지 못한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4) 여기에서 여호와는 부득이 또 한 번 욕을 더 얻어 먹어야 되지 않을까?
"신(神) 아니라 신의 할애비라 하더라도 여호와는 미친 잡놈이다."
"기준과 원칙이 없는 불한당 같은 악마 새끼라고 불러도 그 호칭이 부족하다 하겠다."

그러나, 위의 모든 것(바이블 내용)은 허구(虛構)일 뿐이다.
그 사실을 바이블에서 찾아 보기로 하자.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베들레헴에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마태 2;1~3)


(1) 옛날 왕권 시대에 어떤 아기가 하나 태어났다고 하자.
이 때, 어느 점쟁이나 도인이 나타나서 "이 아기는 장차 임금이 될 상이다"라고 선포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아기는 무슨 일을 당하게 될까? 이유 불문 그 아기는 죽여지게 되어 있다.

(2) 동방으로부터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왔다는 박사들은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천치 바보들이었던가?
동방박사들은 유대의 국왕이 머무는 도성인 예루살렘성에 들어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이렇게 공표해 버리면, 그 결과는 예수를 경배하러 온 것인가 아니면 죽이려고 온 것인가?

이렇게 상황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동방박사>라는 칭호도 어울리지 않고, 별을 보고 먼 동방으로부터 왔다는 말도 웃기는 상황이 되고 만다.

(3) 북쪽 지방 멀리(약 150 km) 나사렛이란 동네에 살고 있는 마리아 부부가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예수를 낳게 된 것은, 로마 황제의 명을 따라 호적을 하기 위하여 여행 중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베들레헴은 잠간 동안 머문 곳으로 여기에서 예수가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이 이 곳 베들레헴으로 경배를 하러 왔다는 것이다.
그러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그 <동방>이란 것이 베들레헴 <건너 동네>라는 뜻인가? <건너 동네>에서 온 사람을 가리켜서 <동방>에서 왔다고 하는가?

(4) 미국에 살고 있는 A라는 사람이 한국에 살고 있는 친구 乙이라는 사람을 만나러 가게 되었다.
그래서, A는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乙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마침 乙은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기 위하여 동사무소에 가고 집에 부재 중이었다.
그래서, 전화는 乙의 아내가 대신 받았다.

이럴 경우, 미국에서 한국으로 출발하는 A는 乙을 만나기 위하여 乙의 집으로 가야 하는가, 아니면 동사무소로 찾아가야 되는가?
같은 의미에서, 예수의 출생을 축하 하러 오는 동방박사들은 예수 부모의 본거지인 나사렛으로 가야 되는가, 아니면 호적 신고를 하기 위하여 잠시 여행 중인 베들레헴으로 찾아가야 되는가?

(5) 동방박사라고 할 때, <동방>은 적어도 바로 이웃인 건너 동네는 아닐 것이다.
상당히 먼 곳일 것이며, 걸어서 왔거나 낙타나 나귀 따위를 타고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동방박사들은 베들레헴이 아닌 나사렛으로 찾아 왔다고 했어야 되는 말이다.

특히, 유의할 것이 있다.
헤롯왕이 2 살 이하 사내 아이들을 도륙시켰다는 말은 이 사건이 적어도 2 년에 걸친 사건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더 더욱 동박박사들은 여행지 베들레헴이 아닌 예수의 고향인 나사렛으로 경배를 왔어야 된다.
호적을 하기 위한 여행이 1~2 년 씩 걸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6) 또, 동방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으며 따라왔다고 한다.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서울에서 머리 위에 떠 있는 별은 대전이나 부산에서도 머리 위에 떠 있는 별이 될 것이다.
별이 머문 곳에서 예수가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예수가 태어난 집을 찾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별이 낮게 떠다닐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변명하는 예수쟁이가 없으란 법은 없다.
그러나, 낮게 떠 다니는 불을 별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것을 사람들은 <불똥>이라고 하는 것이며, <별>과 <불똥>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7) 헤롯왕은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고 태어난 정적(政敵)을 찾아 내어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좀 더 고도의 추리력이 필요하다.

(a) 만약, 헤롯왕이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믿었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그 예언은 전지전능한 신(神=여호와)의 예언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약한 인간인 헤롯왕이 감히 여호와의 아들인 예수를 죽일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신을 믿는 사람으로서 신을 죽이겠다고 덤벼드는 그러 간덩이 부은 사람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b) 반면에, 헤롯왕이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믿지 않았다고 하자.
이럴 경우, 금방 태어난 아기가 죽여야 될 정적(政敵)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예수 하나만을 쉽게 찾아 낼 수 있다면, 국왕의 권세로서 어린 생명 하나 쯤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베들레헴과 그 원근 일대의 2 살 이하 사내 아이들을 모조리 죽여야 되는 일을 감행한다는 말인가?
실성한 미치광이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이라는 신(神=여호와)의 예언을 믿어도 또는 믿지 않아도, 헤롯왕은 예수를 죽여 없애 버릴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신을 거역할 인간이란 없는 것이며, 믿어지지 않는 허무맹랑한 유언 비어 때문에 하나 둘도 아닌, 수 천 수 만의 생명을 무차별로 죽일 그런 망나니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말로라도 그렇게 무수한 사람을 죽이기를 즐기는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이 바로 <여호와>라는 악신(惡神)이다.

예수가 태어나던 날에 벌어진 일은 더 많이 있지만, 오늘은 여기에서 줄이기로 한다.
그러나, 예수가 태어나던 날 벌어졌다는 사건들은 어느 한 가지도 허구(虛構) 아닌 것이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와 여호와의 얘기는 한 가지도 빠짐 없이 허구(虛構)이다.

따라서, 예수교의 모든 것은 허구(虛構) 위에 세워진 마귀 소굴이요 혹세무민 집단일 뿐이다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2-12-25 (화) 10:01
[예수교를 바르게 고쳐서 쓰자고?] 

 반예수교의 운동 중에는 예수교를 박멸하기보다는 바르게 고쳐서 쓰자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마치, 국가 기강이 해이해져 있거나 또는 어떤 조직이나 단체가 부패되고 문란해졌을 때, 그것을 개선해서 좋도록 해보자는 생각처럼 말이다.

국가라는 것은 그 기강이 해이해졌어도 쓰레기처럼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군대 같은 조직도 그것이 설령 부패했더라도 없애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나 군대는 그 기강이 해이해지고 부패하면 좋도록 개선해서 유지시켜야 되는 것이 현재로서는 우리 인간의 운명이다.

그러나, 예수교가 시궁창 냄새를 풍기고 있을 때, 그것을 고쳐서 쓰자는 의견에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우선적으로, 바르던 그르던 간에 예수교가 우리 인간 생활에 왜 필요한 것인지를 모르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지금 예수교가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이 바로 예수교의 가장 올바른 모습이라는 점이다.
전쟁을 포함한 무차별 살인 행각이라든지, 패륜적 만행질과 혹세무민질 등등은 바이블(여호와=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 예수교의 순기능이다.

그런데, 예수교의 무엇을 고치자는 것일까?
예수교는 그 잔인성과 패륜적 사기 행각을 개선하면 그것은 이미 예수교라고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예수교 자체조차 필요가 없거늘, 예수교가 아닌 다른 그 무엇이 왜 필요하다는 말인가?

좀 어색하고 안 된 현상이지만,
교통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망자보다 부상자(특히 중상자) 문제에 대한 처리가 훨씬 어렵다고 한다.
마찬 가지 의미에서, 어차피 시궁창 냄새와 함께 쓰레기와 다름 없는 예수교를 개선한다는 것은 그것을 박멸하는 일보다 훨씬 어려울 것으로 짐작된다.

예수교를 개선하자는 말은 그 자체가 모순된 궤변이며, 또 불가능한 일이다.
예수교를 개선해서 쓰자는 의견은 일말(一抹)의 가치도 없는 착한 척하는 허울 좋은 궤변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예수교는 박멸되는 것만이 그 유일한 길이다.  


[개똥철학도 못되는 헛소리]

1)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 두 제자로 더불어, 그 비유(譬喩)들을 묻자오니, 이르시되,

"여호와 나라의 비밀을 너희(제자와 측근)에게는 주었으나, 외인(外人)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赦)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마가 4;10~12)

예수가 혼자 있을 때,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12 제자와 함께 찾아가서 왜 비유(譬喩)로 설교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예수 왈,
"너희(측근자들)에게는 하늘 나라의 비밀을 알도록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말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그들이 돌이켜 용서받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알아듣지 못하게 할 비유를 무엇 때문에 쓰고 가르칠까?
어차피 자기네들끼리는 여호와의 감동으로 말 없이도 다 알고 있을 것이므로 더 가르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비유는 무엇일까? 버린 자식들을 약올리자는 짓인가?

바이블이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렇게도 해석되는 현상과, 예수쟁이들의 주장을 미루어 생각할 때, 바이블 내용은 모두가 비유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바이블 내용은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용서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직행될 사람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예수쟁이들은 억지로 전도하려고 애쓴다.
여호와(예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불충스런 행동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면, 그(예수쟁이)들도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도록 결정된 자들이 자신의 위치도 모르고서 헛물켜는 어리석은 짓이 아닐까?

자기네(예수쟁이)들의 바이블 해석이 맞는다고 누가 그러던가?

예수의 가르침을 한 가지만 더 들어보자.

2) [예수께서...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예수)를 믿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審判)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요한 9;35~39)

1) 예수와 사람의 대화를 자세히 음미해 보자.

"너는 나(예수)를 믿느냐?"
"누구신지요? 내가 믿고 싶습니다."

사람이 신(神)에 대하여 '믿고 싶으면' 믿어지는 것일까?
또, 그런 마음 자세로 믿었을 경우, 그 신(神)의 존재 여부가 밝혀진 것일까?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믿고 싶습니다."로 시작해서 믿는 행위가 신(神)에게 영광은 될까?

여기에서, 필자는 재주가 없어 제대로 된 해설을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의 분석으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더 긴말을 하더라도 알아듣지 못할 사람일 것이라고 여겨진다.

예수교의 전도 행각이 바로, 이 "믿고 싶다"는 인간의 희망 사항에서부터 시작되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다시 말해서, 아는 것은 없으면서, 어떤 절대자에게 의지하려는 인간의 어리석은 희망 사항이 반영된 종교가 바로 예수교라는 말이다.

2) 또, 예수는 말하고 있다.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이 되게 하겠다."

도대체, 예수의 심보짝은 그 목적(행패)이 무엇일까?
"보아도 보지 못하게 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용서받지 못하게 하겠다."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이 되게 하겠다."

전지전능하다는 신(神)이 되어 가지고, 무능하고 불쌍한 인간을 상대하여 못하는 짓이 없다.
아무리 깊은 뜻(?)이 담겨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을 향하여 신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더구나 깊은 뜻은 고사하고, 개똥 철학도 들어 있지 않은 헛소리임에랴.


[예수교가 훌륭한 이유]

명불허전(名不虛傳); 명성이 헛되이 퍼진 것이 아니라 이름이 날 만한 까닭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예수교가 공연히 유명한 종교 노릇을 하게 된 게 아니다. 다 그 이유가 있는 법이다.

예수교는 정말로 훌륭하다.
왜냐하면, 예수교 속에는 훌륭한(?) 말들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1) 여호와(예수)는 전지전능하시다.
(2) 여호와(예수)는 사랑이 많으시다.
(3) 여호와(예수)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살아계신다

(4) 여호와(예수)는 천지(우주?)를 창조하셨다.
(5) 여호와(예수)는 세상을 임의로 주관하신다(다스리신다).
(6) 여호와(예수)는 선하시다.

(7) 여호와(예수)는 모르는 것도 없고, 못하는 것도 없으시다.
(8) 여호와(예수)는 말세 때가 되면, 세상을 심판하신다.
(9) 여호와(예수)는 초식보다 육식을 좋아하신다. 

(10) 여호와(예수)는 사랑이 많으시다.
(11) 여호와(예수)는 공명정대하시다.
(12) 여호와(예수)는 공의로우시다.

이상의 말들이 많기 때문에 예수교는 분명 훌륭한 종교임에 틀림 없다.
특히, 다음과 같은 말들이 있어서 예수교는 더욱 빛을 발한다.

(13) 여호와(예수)는 시기심과 질투심이 많으시다.
(14) 여호와(예수)는 병자를 "더러으니 추방시켜라"하고 명하신다.
(15) 여호와(예수)는 인간을 향하여 돌격하여 죽여 버리신다.

(16) 여호와(예수)의 말은 모순되지 않은 것이 없다.
(17) 여호와(예수)의 말은 궤변 아닌 것이 없다.
(18) 여호와(예수)의 말은 허구 아닌 것이 없다.

(19) 여호와(예수)의 말은 수 천 년 전의 미개인들이 떠들던 내용들이다.
(20) 여호와(예수)의 말은 한 가지도 써 먹을 데가 없는 잡소리이다.
(21) 여호와(예수)의 말은 말만 있을 뿐, 실체는 전혀 없는 뜬 구름이다. 

어찌, 예수교를 훌륭한 종교라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원수를 사랑하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네 꺼도 내꺼, 내 꺼도 내 꺼"와는 분명 다른 말이겠지?
여기에 이르르면, 할 말 더 없지 뭐!
예수교는 정말로 위대해!

이것이 명불허전이 아니고 뭘까? 암! 
제삼자 2012-12-28 (금) 12:37
[궤변 그리고 또 궤변의 궤변]


인간이 생각해 낸 신(神)이란 존재는 어차피 허황된 말장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에서 지나는 것은 모두 사기꾼의 혹세무민(惑世誣民)질일 수밖에 없다.


1) [예수께서...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예수)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하나라 하나이다."]

(마태 16;13~14)

예수 당시의 히브리 사회는 현대의 어느 사회보다도 종교적 습성이 만연되었던 그런 사회였을 것이다.
미개 시대의 사회라는 것이 다 그러했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런 사회에서 예수가 '여호와의 아들' 행세를 하고 다녔다면, 그 반응은 심각할 정도로 구구했을 것이다.

우선, 기존 종교의 지도자들 쪽에서는 예수를 이단 또는 마귀로 판단하여 죽이려 할 것은 당연하다.
종교 속에서 밥을 벌어 먹고 있던 기존 종교쟁이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가만히 앉아서 빼앗길 그런 멍청이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지몽매한 일반 대중들도 그들 나름의 엉뚱한 계산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답이
1. 세례 요한이라는 둥,
2. 엘리야라는 둥,
3. 예레미야라고도 하는 둥,
4. 선지자 중 하나라는 둥,
새롭게 종교쟁이 행세를 하며 떠들어대는 예수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을 것은 당연하다.
고대 히브리 사회의 인간들이 아는 것이라곤 이런 종교 이야기가 전부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아무리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고 떠들며 돌아다니더라도, 사람 쪽에서 그 실체를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인간은 신(神)에 대해서 어떤 것도 알 수가 없는 존재이다.
사람은 신에 대한 것만 모르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인간이다.

인간이 종교에 빠져들어 돈과 노력과 시간,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기는 이유도 결국은 인간은 신(神)을 알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불행이다.


2) [(예수) 가라사대,
"너희(제자들)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主=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여호와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베드로)아, 네가 복(福)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여호와)시니라."]

(마태 16;15~17)

소위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구세주(救世主)이며, 살아서 움직이는 여호와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몇 년 동안 스승과 동거동락(同居同樂)하고 있는 예수의 12 제자들도 알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도 베드로의 것이 아니라, 여호와 쪽에서 알려 주고 조종한 것이라 한다.
따라서, 신(神)에 관한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예수교의 교리에 의하면, 신(神) 쪽에서 시키는 대로 꼭두각시놀음을 해야 되는 게 인간이다.

그나마도, 신의 복(福)을 받은 자 즉, 신의 꼭두각시놀음을 해야 되는 자는 오직 베드로 한 사람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베드로의 입에서 나온 말만을 의지해서 천당 길과 지옥길 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
어찌하여, 여호와는 베드로에게만 가르쳐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을까?


3) [베드로가 바깥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婢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否認)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마태 26;69~70)

예수가 체포되어 대제사장 앞에서 신문(訊問=재판)을 받는 동안, 일의 귀추가 궁금해진 베드로가 법정(?) 바깥마당에 왔다가 사람들에게 발각이 되자,
"나는 예수를 모른다."고 변명하는 말이다.

베드로는 여호와로부터 직접 예수가 누구라는 것을 배운 자이다. 이것보다 더 정확한 알음알이 또는 믿음이란 없는 것이다.
이런 알음알이와 믿음을 가진 자는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것이다.
전지전능한 신을 배경(background)으로 가진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서 무서울 것이 없을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죽음이 두려워서 변명하기에 급급하다.
이런 경우, 예수교는 말한다.
"인간은 연약하고 믿음이 약해서 넘어질 수 있다."고. 그러나 궤변일 뿐이다.
전지전능한 신 쪽에서 가르쳐 준 지식과 믿음이 연약하다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넘어질 수도 있다는 경우도 있을 수 없는 엉터리 이론이다.

실험(實驗)해 볼 수 없는 현상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것을 아무 데나 마구 써먹는 이론(?)들이 예수교의 주무기(主武器)이다.
그러나, 실험(實驗)을 해 볼 수 없더라도 신(神)을 아는 자나, 확신(確信)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과 근심 걱정이 없는 것이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가 급한 상황을 만나자, 예수를 부정하는 거짓말을 쏟아내게 됐다는 사실은 베드로가 예수에 대하여 전혀 아는 것이 없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오늘의 예수쟁이들이 극도로 썩은 모습을 보여 주는 짓도 결국은 예수(여호와)를 믿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기 때문에 보여 주는 더러운 모습이다.

그래서, 급한 상황을 만나면 일단 변명으로 자신부터 보호하게 되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자신의 목숨과 계집을 지키려고 '속임수'를 동원한 짓도 실제로는 신(神=여호와)을 믿지 못한 결과이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 예수의 행위 즉,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라든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따위의 언행도,
예수가 신(神)의 아들은커녕, 신(神)의 속성조차 전혀 모르던 무식쟁이였음을 백일하에 드러내 주고 있을 뿐이다.

바이블 속의 주인공인 예수(여호와)의 언행을 비롯하여,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다윗, 베드로, 바울 등등, 예수교 거물급들의 모든 언행들은 신(神)을 모르고서 떠들어지는 궤변들이다.
바이블 속에서 거론되는 어떤 인물이라도 지금의 예수쟁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얼 빠진 자들이요 무식쟁이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과거 미개 시대의 인간의 어리석은 언행이 글씨(바이블)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자신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옛 사람들의 어리석었던 언행(바이블 내용)에 매달려 골수 분자로 세뇌되는 현상을 어찌 "재미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문제는, 그 모든 것이 저 멀리 중동 지방에서 고대 시대에 벌어졌던 미개인들의 씨족 신 내지 미신이라는 점이다.
이제라도 제 정신을 차릴 때이다.
여기는 찬란한 역사(歷史)를 가진 배달 민족의 대한 민국(大韓民國)이기 때문이다.


참고; 첫째,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예수와 베드로가 짜고서 벌이는 <고우스톱)일 수도 있고,
둘째, 베드로는 간사한 자로서 아부를 잘했으며, 이런 입 발린 칭찬도 즐기던 예수였거나,
셋째, 그래서, 현재도 예수와 베드로를 쏙 빼닮은 자(예수쟁이)들이 똑 같은 짓을 벌이며, 교세를 확장하는 모습을 수시로 볼 수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기]


(1) [(예수 가라사대)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마태 19;29)
 

예수(교)에 미쳐서 부모 형제 처자식을 버린 예수쟁이는 천당에 갈 수 있다는 말이다.
예수에 미친 놈(또는 년)은 천당을 얻어서 좋겠지만, 그 미친 놈 때문에 버려진 부모 형제 처자식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버려진 부모 형제 처자식들은 고생 고생 비참한 인생을 살다가 마침내 죽어서는 지옥으로 가게 되는가?
이게 뭐야! 이렇게 막돼 먹은 더러운 세상도 있을 수 있는 거야?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더니, 이게 그 짝이네!


한 가지 더 볼까?

지옥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뜨거운 유황불의 이글거림이라고 한다.
그리고, 예수쟁이가 아닌 사람은 예수(여호와)를 믿지 않은 벌로 이 지옥으로 보내져서 영원토록 이를 갈며 신음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지옥에는 구더기도 있다고 한다.
이 구더기도 사람처럼 익거나 타 죽는 일 없이 영원토록 꿈틀거리면서 견뎌야 된다고 한다.
구더기는 어떻게 생긴 이빨을 갈며, 어떤 식으로 신음을 하게 될까?
 
구더기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 무서운 지옥으로 보내져서 죽지도 못하고 고생을 하게 됐을까?
진작에 예수(여호와)를 믿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옥으로 쳐 넣어진 뒤에 후회를 해 봐야 무슨 소용인가?
 
 
(2) [(예수 가라사대)
거기(유황불이 이글대는 뜨거운 지옥)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마가 9; 48)


더러운 놈들 놀이(신앙질)에 지렁이 등 터지는 격이잖아?
 
 
참고; 마가 9장에는 예수교의 무시무시한 지옥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44절과 46 절이 빠져 있다.
        사람에게 그 무서운 지옥을 가르치는 절대 절명의 중차대한 순간에 빼 먹은 말이 있다니...
        이렇게 무책임할 수가 있는가?
        예수는 사람과 장난하고 있는가? 지옥이 장난감인가? 못된 놈 같으니라구.
제삼자 2013-01-04 (금) 09:51
[필자에게 주어지는 질문]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귀하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필자는 수십 년 전부터 무수히 많은 예수쟁이들과 면담을 해 오고 있다.
면담이 끝날 때 쯤이면, 으례 상대로부터 필자에게 던져지는 질문이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너는 신을 그렇게 깔아뭉게고도 겁나지 않느냐?"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너는 분명히 큰 벌을 받게 될 텐데,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너는 천당과 지옥 중, 어디로 가게 될 것 같으냐?"

그러면 일단, 필자는 결론부터 말해 준 다음, 각론 삼아서 이것 저것 해설해주 곤한다.


결론;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모든 인류 중에서 필자가 가장 먼저 천당으로 가게 될 것이다."


각론;
(1)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의 반열에 여호와(또는 예수)는 포함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여호와(예수)는 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바이블이 자세히 밝혀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블은 여호와(예수)가 가짜 신이요, 악신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말해주는 좋은 자료이다.
 
(2)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은 억울해서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왜냐하면, 바이블(예수교)은 신의 얼굴에다 똥칠로 범벅을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은 예수쟁이들의 간을 씹어 먹어도 시원하지 않을 것이다.

(3) 만약, 신이 존재하다면, 그 신은 공의롭고, 사랑도 많고...어쨌든 훌륭할 것이다.
    그런데, 바이블과 예수쟁이들에 의하여 그 신은 극악스러운 악신 노릇을 하게 되었다.
    지금, 그 신은 분하고 억울해서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4)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은 필자를 업어주고 싶도록 고마워 할 것이다.
    신의 이름으로 돈도 벌고, 자신의 위치도 확보하고, 상대를 핍박도 하는 예수쟁이들...
    마침내, 예수쟁이들은 바이블도 써 놓고, 예수교도 만들어 놓고, 신을 잡놈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필자가 나타나서 신의 억울함과 누명을 벗겨 주게 된 것이다.
    바이블 내용과 예수쟁이들은 신의 모습도 아니고 가르침도 아니다. 
    고약한 놈(년)들이 감히 신의 이름을 훔쳐다가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5) 이럴 때, 필자가 나타나서 바이블이 허구, 궤변, 모순임을 밝혀 주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예수)가 가짜임도 밝혀서 그가 뛰집어 쓰고 있는 억울한 누명도 벗겨 주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예수) 입장으로서는 필자(제삼자)가 얼마나 고맙겠는가? 얼쑤!  
    업어 주는 것으로는 안 되겠지? 그러니까, 필자는 천당에 들어 갈 자격 0 순위가 맞지?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모든 인류 중에서 필자가 가장 먼저 천당으로 가게 될 것이다."
     이 말(결론)에 결함이 있거든 한 번 <썰>을 내놔 보라구!     
제삼자 2013-01-05 (토) 10:31

[핵심 생산 인구]


(1) 얼마 전, 주로 70 대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단체의 회원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말이 있다.
50대 후반의 어느 유명한 교수(과학자)의 말과 행동을 가리켜 "어린애의 불장난"이라고 성토하는 내용이었다.
나서서 뭐라고 떠들어 볼만한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조용히 입다물고 듣고만 있었다.

50 대 후반의 전문가의 활동이 "어린애의 불장난"이면, 7,80 대 늙은이의 망령(?)에 가까운 주책바가지 고집이 어른다운(?) 모습일까?
50 대 후반의 원숙한 사람의 활동이 눈에 거슬리고, 못마땅해 뵈는 늙은이의 안목이야 말로 "어린애만도 못한 고리타분한 고집불통"이 아닐까?
늙어 가면서 거죽만 우굴쭈굴해지는 게 아니라, 속까지도 우굴쭈굴 험상 궂은 모습으로 굳어지는 것은 아닐까?

(2) 지난 달(2012 년 12 월), 미국에 살고 있는 70 대 부부가 한국으로 필자를 방문했었다.
남편은 71 세이고, 부인은 72 세, 그러니까 부인 쪽이 1 살 더 많은 연상의 부부였다.
그들 부부는 45 살된 딸과 41 살된 아들을 두고 있다. 딸은 한국에 살고, 아들은 미국(뉴욕)에 살고 있다.

잠시, 한국을 방문 중인 아버지(71 세)가 하루는 45 살 먹은 딸과 대선 문제로 의견이 달라서 밤새도록 다투었다고 한다.
그 부인의 표현을 빌리면, 딸과 싸울 때의 아버지의 얼굴은 불그락 푸르락 가관이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필자가 그 아버지(71 세)되는 사람에게 몇 마디 질문을 던져 봤다.

"당신은 40 대 시절에 70 대 늙은이를 만나면, 사람 취급을 해주기는 했었소?"
"당신은 당신 딸이 서울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틈만 나면 자랑을 해오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똑똑한 딸이 이제 45 살입니다. 그런데, 71 살 먹은 늙은이가 45 살 먹은 젊은 딸을 이겨보겠다고 악을 썼다 이거지요?"

결국, 아버지되는 사람은 아무 대답도 못하면서 뭔가 깊이 생각을 해보는 것 같았다.

(3) 벌써, 1 년이 되었다.
김정일이 죽고 그 아들 김정은이 등장하자, 각 TV프로에서는 경쟁적으로 전문가들이 나타나서 김정은에 대해서 갖가지 진단도 하고 예측도 했었다.
필자의 기억에 의하면, TV에 등장했던 전문가들은 대부분 5,60 대 또는 70 대들로 보였다.

그 전문가들 대부분의 진단에 의하면, 김정은은 29 살 짜리 풋내기라서 정권 안착에 모종의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 때, 그 TV를 시청하면서 마누라에게 말했었다.
"내 눈에는 29 살을 풋내기로 보는 저 6,70 대 늙은이들이 진짜 세상 물정 모르는 풋내기로 보이는구만..."이라고.

1 년이 지난 지금, 김정은에 대해서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결국은 50~70 대 늙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질병적 기우(杞憂=쓸데 없는 걱정=자기 환경에 절어 있는 망령?)임이 밝혀진 셈은 아닐까?
세종대왕은 21 살에 등극했고, 진흥왕은 6 살, 광개토왕은 17 살, 조선의 성종은 12 살에 임금에 올랐다.
물론, 등극하자 마자 실권을 쥐고 모든 것을 처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광개토왕은 38 살에 죽었고, 조선의 대학자 율곡 이이와 22 대 왕 정조는 각각 48 살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상록수의 저자 심훈과 메밀꽃 필 무렵의 저자 이효석은 모두 35 살 때 죽었다.
너무도 젊은 나이에 죽었기 때문에 "어린애의 불장난"도 못해 보고 인생을 마감했을 것 같다.
그러나, 위의 인물들은 한국 역사 속에서 커도 너무 커다란 족적을 남겨 놓은 인물들이다.

(4) 5,60 대 늙은이들 70 %는 저쪽, 2,30 대 젊은이 70 %는 이쪽...
1~2 %의 다름이 아니라, 수십 %가 얼굴을 붉히면서 저 잘난 멋으로 당파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대단한 정치적 경.륜을 가지고 있기나 한 것처럼 자신의 주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 서지 않고 싸운다.

부모 없는 자식이 없을 것이고, 자식 없는 부모도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늙은이만 따로 있는 집도 없을 것이고, 젊은이만 따로 있는 가정도 없을 것이다.
늙은이와 젊은이는 모두 1 촌 또는 2 촌으로 묶여 있는 피붙이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되는 가족이란 말이다.

아니, 자식 쪽에서 효도하는 마음으로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여 부모 쪽에서도 똑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죽더라도 너(자식=젊은이)는 어떻게 하든 살아 남아야 한다."고 말해야 되고, 실질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되는 것이다.
이것이 늙은이(부모)가 가져야 될 마음 자세이다.

그런데, 그런데...50 대 또는 40 대의 자기 자식의 활동을 가리켜 "어린애들의 불장난"으로 몰아 붙이는가 하면, 제 자식(젊은이)을 상대하여 이겼다고 쾌재를 부르는 늙은이들이 많아 뵌다.
뭔가 이상한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아서...
앞으로 젊은이(자식)들이 살아 갈 세상에다 너무 삭막한 인간 관계 모형을 남겨 주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5) "아들이 가장 먼저 뛰어 넘어야 될 산은 아버지"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자식이 부모를 극복하지 못하는 가정이 있다면, 그 가족은 성공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늙은이 쪽에는 젊은이가 갖지 못한 기득권이란 것이 쥐어져 있어서 늙은이의 고집불통적 고정관념이 우세할 수밖에 없다.

알렉산더 대왕의 부왕은 필리포스 2 세인데, 그도 스스로 정복 전쟁을 여러 번 감행했다고 한다.
왕이 직접 진두지휘한 전쟁에서 승전을 하고 개선을 할 때, 그 국가적 환영행사는 대단했을 것이다.
부왕이 보무도 당당하게 개선하는 장면을 볼 때 마다 어린 아들 알렉산더는 말했다고 한다.

"저 늙은이가 왜 저러지? 나는 무엇을 하라고..."
그렇다. 아버지가 다 했버리면, 아들이 할 일은 남아 있지 안게 될 것이다.
하물며, 아들(젊은이)을 짓밟고 올라 서서 "내가 이겼다."고 으쓱대는 아버지(늙은이)가 있다면, 그 현상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될까?

(6) 경제 전문 용어에 "핵심 생산 인구"라는 것이 있다.
경제(생산) 활동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25 세로부터 49 세까지의 인구를 말한다.
20 대, 30 대 그리고 40 대는 철부지 어린애들이 아니라, 한 나라의 지금 당장을 짊어지고 땀을 흘려야 되는 기둥이요 대들보들인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역사 이래 처음으로 "핵심 생산 인구" 비율이 줄어 붙었다고 한다.
하기사, "불장난이나 해대는 어린애들"이 줄어들었다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5,60 대 늙은이들이여! 아니, 6,70 대 늙은이들이여! 아직도 뭔가 느껴지는 게 없을까?

"원래 지구는 젊은이들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지구의 한 귀퉁이를 늙은이들이 잠시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더부살이하는 늙은이 주제에 주인(젊은이)을 닥달한다는 것은 적반하장(賊_?xml_:namespace prefix = daum ns = "http://dic.daum.net/" />杖) 바로 그 모양새이다.
제자가 자기만 못하기를 바라는 스승, 자식이 자기만 못하기를 바라는 부모, 이런 어리석은 짓에 자기도 모르게 한 몫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차분히 따져 볼 때이다.

제삼자 2013-01-09 (수) 10:35
[쪼다]

콩알 만하게 쫄아 붙은 제자 위에 군림하여 우쭐거리는 스승,
주눅이 들어 얼어 붙은 자식 위에 군림하여 큰 소리 탕탕 쳐대는 부모,
바보 병신이 되어 두 손 싹싹 빌어대는 인간 위에 군리하여 기세 등등한 여호와(예수),
조금도 기울지 않는 한 통 속의 지극히 어울리는 쪼다들 같다.


[청출어람(靑出於藍)]

청출어람--쪽(마디풀과에 속하는 1년생풀)에서 뽑아 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도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훌륭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순자(荀子)의 권학(勸學) 편에 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제자가 자기만 못하기를 바라는 스승,
자식이 자기만 못하기를 바라는 부모,
인간이 자기만 못하기를 바라고, 자기 앞에서 설설 기는 인간을 바라는 신,
이런 스승과 부모와 신이 있다면 어떻게 생각되는가?


[이 동리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리로 피하라.
내(예수)가 진실로 너희(12 제자)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예수)가 오리라.
제자(弟子)가 그 선생(先生)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

(마태 10;23~25)


위의 바이블 내용은 제자들에게 전도 여행을 보내면서 예수가 들려주는 말이다.
'진실(眞實)로'라는 접두사(?)를 들이밀며 떠드는 말이므로 틀림없는 말일 것이다?
아니, 사기꾼일수록 <진짜>라는 말을 거듭 거듭 강조하게 마련이다.


1. 전도 여행을 다니다가 상대가 핍박을 하거든 도망가라.

2. 전도 여행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동리를 다 돌기 전에 예수가 재림하리라. (마지막 심판 날이 온다는 뜻)

3. 제자가 선생보다, 자식이 부모보다, (예수도 여호와보다) 더 높아 질 수 없다.


천방지축 술취한 사람처럼 떠들어대는 말의 내용을 모두 끌고 가고 싶지는 않다.
(도망 다니기를 즐기는 신, 이스라엘을 다 돌기 전에 오겠다고 장담하던 신의 말은 나중으로 미루자.)

제자가 선생보다 못해야만 되는 세상이라면,
끽해야 제자가 선생만큼만 되어야 하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의 결말은 무엇이 될까?

'곡식 밭의 김을 매지 말라'(마태 13;29)는 가르침과
'제자가 선생보다 더 크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은 예수교(바이블) 말고는 없다.

결국,
예수(여호와)는 인간 위에 군림하여 영원히 인간의 코를 뚫어 끌고 다니며 부려먹고 착취하겠다는 의도인데, 실로 무서운 발상이다.
아니, 지극히 사리에 맞지 않는 엉터리 말이다.

10 년, 20 년, 아니 평생을 드나들면서도 졸업을 못하고, 그 더럽고 악질적인 시궁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예수교의 무리들! 과연 약이 없는 병자들인가?
제삼자 2013-01-14 (월) 10:14

[반기련의 사명-계사년 신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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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이 2 m 쯤 되고, 깊이가 1 m 쯤 되는 더러운 시궁창이 있다.

동네 아이들이 이 시궁창에서 건너 뛰기를 하며 놀고 있다. 아이들이란 그런 것이다. 

대개의 아이들은 2 m보다도 훨씬 넘게 뛰고 있어서 아무 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만약 1.5 m 밖에 뛸 수 없는 아이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 아이는 1 m 깊이의 더러운 시궁창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이 경우, 몸과 옷이 더러워지는 것 외에는 더 이상의 커다란 사고는 여간해서 발생할 염려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2 m보다 조금 더 되는 2.1 m 쯤 뛸 수 있는 아이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 아이는 건너 편에 앞발굼치 만 살짝 걸리게 되어 뒤로 자빠질 뿐만 아니라, 1 m 깊이의 더러운 시궁창에 거꾸로 쳐 박힐 수도 있을 것이다.
2 m 넓이의 시궁창에서 건너 뛰기를 하며 놀기로 했다면, 2 m 이상을 훨씬 넘게 뛰든지 아니면, 2 m 보다 훨씬 적게 뛰어야 한다.
 

겨우 2 m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는 시궁창에 거꾸로 쳐 박히는 위험이 기다리게 된다.
마찬가지 의미에서 사람이면 완전하게 사람이어야 하고, 반면에 사람이 아닌 동물이면 완전한 동물이어야 한다.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물도 아닌 괴물은 참으로 다루기 힘든 존재가 되고 만다. 

껍데기는 분명히 사람 같아 뵈는데, 나사가 한 두 개쯤 빠져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물도 아닌 뭔가 괴상한 요물은 참으로 세상을 힘들게 만든다.
 

2 m, 깊이 1 m의 시궁창 둑에 앞발굼치 만 살짝 걸려서 뒤로 자빠져 마침내, 그 더러운 시궁창에 거꾸로 쳐 박히게 될 운명의 사람들!

껍데기를 봐서는 분명히 사람인데, 아주 사소하게 살짝 모자라는 겉모양 만의 사람들! 아니지, 아무리 따져 봐도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다. 

아무리, 따져 봐도 예수쟁이들은 뭔가 나사 한 두개가 빠져 있거나 겉돌고 있어서 상대방(사람)의 말을 알아 듣지를 못하는 괴물들이다.

그래서 그런가?
평생 동안 돈과 시간과 노력과 심지어 육체까지 착취(강간) 당하고도 그것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전혀 감각이 없는 멀대 생활로 인생을 끝낸다.
이것이 시궁창에 거꾸로 쳐박히는 신세가 아니고 뭘까?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나름대로 노력을 해 왔다.

20 년 동안, 생일날마다 오늘이 네 생일이란다 하고 어머니는 일러 줬지만, 그 때마다 아들 입에서는 엄마, 오늘이 무슨 날이야? 하고 묻더란다.

이 때, 옆에서 듣고 있던 아버지 왈, 저런 바보 자식, 이제 가르쳐 주지 말아요.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말하곤 했단다.

그러지 마세요. 오늘 안 가르쳐 주면, 지난 20 년 동안 가르쳐 준 게 헛수고가 되잖아요!

예수쟁이들이 더러운 시궁창에 거꾸로 쳐 박히지 않게 하려면 또, 멀대 생활을 청산하게 하려면, 아무리 지루하고 힘들더라도 또 설명 또 설명을 거듭해야 될 것이다.
이것이 반기련의 사명이다.
 

제삼자 2013-01-14 (월) 15:45
[오래 살고 싶으냐? 그렇거든...]

필자는 10 년이 넘도록 오랜 시간 동안 88 서울 올림픽 세레모니를 반복해서 보고 또 보아왔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테이프가 끊어져서 보지 못하고 있다.
지루해서 보기가 역겨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내 민족의 큰 잔치라서 가끔 씩 보곤 했었다.

일반 연속극이나 영화 또는 소설 따위를 두 번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삼국지연의처럼 가끔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River Dance의 주인공 Collin Dunne이란 청년의 탭댄스는 몇 년에 걸쳐서 수 십 번을 볼 수가 있었다.
그가 춤을 출 때는 발(몸)이 땅에 닿아 있는 순간보다 공중에 떠 있는 순간이 더 많은 것 같고, 너무도 빠르고 완벽해서 역시 오랜 시간 동안 반복해서 감상하기에 실증이 나지 않고 있었다.

어쨌든,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칭찬도 3 번 이상 들으면 싫다."는 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40 여 년 전, 만화가 이영우(?)의 그림이던가?
가난하던 시절에는 내기 장기를 두어도 이기려는 마음에 긴장되어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재미도 있더니, 돈 좀 벌고 안정이 되자, 내기를 해도 재미가 없고, 이것도 저것도 별로 흥미가 없다는 내용을 풍자한 만화가 있었다.

제대 말년의 고참병은 할 일은 없고, 시간은 가지 않아 따분한 시간을 메꾸려고 신참병들을 상대로 장난 아닌 장난을 치다가 큰 사고를 일으켜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필자가 가끔 농담으로 하는 말이 있다.
"오래 살고 싶으냐? 그렇거든 불행한 삶을 살아라." 라고.
행복한 삶은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에 시간이 짧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반면에, 불행한 삶에서는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처럼 시간이 좀처럼 흐르지 않는다.

1 초를 3 년 만큼이나 지루하고 길게 느껴지도록 살아 낸 삶은 얼마나 오래 살아가는 셈일까?
그러니, 오래 살고 싶은 사람에게는 불행한 삶을 살아 보라고 일러 줘도 되지 않을까?

불교의 천국은 33 곳이나 된다고 한다던가?
천당의 하나인 사왕천의 하루는 인간 세상의 50 년이고, 그 곳의 천상인은 500 년을 산다고 한다.
또, 다른 천당 도리천의 하루는 인간 세상의 100 년, 그 곳의 천상인은 1,000세를 누린다고 한다.
뭐라더라? 타화자재천이라던가? 그 천당의 하루는 인간 세상의 1,600 년이나 된다고 하며, 여기의 천상인들은 16,000 살을 산다고 한다. 지구상의 나이로 계산하면 9,344,000,000 년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불교에서 말하는 천당이야 말로 지옥이 아닐까? 1 초가 3 년 같이 느껴지는 곳이라면 그 곳이 지옥일지도 모를 일이다.
각설하고...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인생, 두 번을 살아 볼 수 없는 인생, 이를 모험하고 개척하려는 마음과 활동은 인간이 살아 보려고 꿈틀거리는 원동력이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자가 아니면 인생의 맛을 모른다."는 말도 그래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의 과정이 모두 생략된 전지전능자(全知全能者)의 생(生)은 어떤 것일까?

어린 아이들은 장난감을 꽤나 좋아들 한다.
사고력이 아직 짧은 아이들은 단순한 상상의 세계를 펼치며 장난감을 즐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장성한 사람은 그 장난감이 별로이다.
결론이 뻔한 장난감으로는 모험과 사고력을 확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한 신(神)은 우주 속의 모든 것의 결론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시들하고 지루할 것이다.
뭐든지 할 수 있으므로 모험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뻔히 알고 있는 삶을 곱삶으면서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견뎌내야 한다는 것은 고역과 지옥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결론을 이미(미리) 아는 일을 두 번 세 번 하기는 여간 지겨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짓을 영원토록 반복 또 반복 또 반복을 해야 되는 신, 그 얼마나 고역일까? 미치고 팔짝 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리라.
그래서, 그 미치고 팔짝 뛰어도 풀리지 않을 지옥에서 벗어나 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바로 예수교의 신 여호와(예수)의 모습이다.

성질 못된 제대 말년의 고참병과 여호와(예수)의 고약한 행패는 비슷할 때가 많다. 마치 미친 년 널뛰는 형상이다.

여기에서 바이블을 모두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더라도 쬐끔만이라도 읽어 보라.
미치고 환장을 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짓들이 가득함을 알게 될 것이다.
얼마나 지루하고 고통스러우면 저 지랄발광일까 싶어 동정이 갈 때도 많다.
그런데, 신(神)의 그 행패질 상대가 인간을 비롯하여 수 없이 많은 생체(生體)들이기에 좌시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장차, 천당에 들어가서 살아 갈 사람(예수쟁이?)들은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지게 될까?
여호와(예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전지전능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100 년이나 1,000 년을 내다 볼 힘은 있을 것이고, 자신이 당장 어떤 형편에 놓이게 될는지 따위 정도는 점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알게 된 100 년 또는 1,000 년 동안을 지겨워서 어떻게 무엇으로 즐기며 시간을 보내게 될까?
그냥 덮어 놓고 행복한가? 천당에서는 인간을 정신 박약아(薄弱兒)로 강등시키려나?
달밤에 망부석 붙자고 얼씨구 절씨구 돌아가는 멀대들의 집합소가 바로 여호와(예수)를 모시고 살아가는 예수쟁이들의 천당이 될 것은 뻔하다. ㅎㅎ...

이제, 여호와(예수)는 인류 사회에서 물러나 주기 바란다.
전지전능하다니까, 스스로 무(無)로 돌아가기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생(生)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없어지기 바란다. 못난 짓 그만 하자.

무지무능(無知無能)한 인간들도 때가 되면, 아무 미련 없이 생(生)을 버릴 줄 안다.
신이란 작자가 앞 뒤 계산을 못하고 발광을 해서야 되겠는가? 체통을 지켜야 옳다.
전지전능에는 시간을 끌어 보야 더 나올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제삼자 2013-01-16 (수) 16:14
[예수교는 통째로 가짜]


(1) 노아 때의 홍수 사건에서 가장 큰 실수는 여호와(바이블 기자)가 식물(植物)도 <호흡>을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여호와는 "모든 기식(氣息)이 있는 동물들을 방주(배)에 넣어 생명을 보존케 하라."하고 명한다.
"동물은 물에 빠지면 호흡을 할 수 없어서 질식사하게 될 것이므로 배에다 태워 생명을 보존케 하라."는 뜻이다.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는 식물도 호흡을 해야 된다는 사실을 몰랐거나, 식물은 동물과는 달리 물 속에서도 호흡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았던 게다.

어쨌든, 바이블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노아의 홍수 때에 방주(배)에 들어가지 못한 모든 식물들은 전멸됐을 것이며, 유기물을 합성할 수 없어서 먹이사슬의 단절로 마침내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는 멸절됐어야 말이 된다.
바이블 기자(여호와)가 식물도 호흡한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바이블이 근본적으로 철저하게 허구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증명하고도 남는다.


(2) 노아 때의 홍수 수위는 가장 높은 산을 덥고도 15 규빗(어른의 팔꿈치에서 장지 손가락까지의 길이)이 더 높았다고 한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이 8,848 m 이므로, 그 때의 수위는 거의 9,000 m 즉 기상 변화를 일으키는 높이와 같다는 말이다.

홍수 수위와 대기권(공기)의 높이가 같다는 말이다.
따라서, 지구 위의 공기가 아무리 포화 상태로 수분을 가지고 있어도 노아의 홍수는 만들 수가 없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바이블 기자)는 역시 대기권이란 것도 몰랐으며, 수분의 포화 상태 등 기상 변화도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연하다.


(3) 지상 9,000 m 상공은 섭씨 영하 60 도 쯤 된다.
노아 때의 홍수는 지구 모양이 약간 변형된 모양과 같은 상태이므로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방주(배)가 홍수 기간(375일) 동안 9,000 m 상공에 떠 있었다면, 모든 생명체는 얼어 죽어 동태 같이 되었을 것이다.

역시, 예수교의 전지전능한 신이란 녀석은 9,000 m 상공의 기온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는 천지도 창조했던 것이다? ㅎㅎ...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지 않던가?


(4) 수위(水位)가 9,000 m 상승하면 공기도 그만큼 상승하겠지만, 9,000m 상공은 아무래도 공기가 희박하여 방주 안의 동물들은 모두 질식사(窒息死)하게 될 것이다.
역시, 여호와는 고공(高空)의 온도와 밀도(또는 기압)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바이블 내용은 신(神)의 가르침이 아니라, 미개 시대의 종교 사기꾼의 사기행각임을 알 수 있다.


(5) 바이블에는 <열과 그 전도 방법>, <기압과 대류 현상>, <물과 그 존재 형태>, <적도와 양 극지방>, <천체와 그 운행> 등등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못하고 있다.
바이블이 기록될 당시의 인지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세계이며 따라서, 바이블 내용은 신의 뜻이 담긴 글이 아니라, 미개인의 어리석은 신관(神觀)과 종교 협잡꾼의 이야기가 담긴 글임을 알 수 있다.


(6) 노아 때의 홍수 사건은 허구(거짓)이다.
자세한 것은 필자의 저서 [신(神)의 이야기 사람 이야기]를 참고할 수 있다.

노아 때의 홍수가 허구(거짓)이면, 이것을 기록했다는 모세가 허구이며, 모세가 허구(거짓)이면, 모세가 처음으로 소개했다는 여호와도 허구(거짓)이며, 여호와가 허구이면, 여호와의 아들을 자처하는 예수도 허구요, 예수교도 혹세무민 집단일 뿐이다.
예수교는 깡그리 허구이며, 사기꾼 집단일 뿐이다.


(7)노아 때의 홍수는 40 일 동안에 쏟아진 빗물로 9,000 m(900,000 cm) 깊이(높이)의 홍수를 만든 사건으로 되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시간 당 거의 10 m 즉, 시간 당 1,000 cm의 폭우가 쏟아졌다는 계산이다.
어떤가? 빗방울 1 개가 농구공 만 한 걸로 쏟아 부으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을 실은 방주, 나무로 만든 커다란 배가 그 큰 빗방을 얻어 맞고도 부서지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1 시간 이내에 모든 것이 끝날 텐데, 40 일이 어떻고, 1 년이 저쩌고가 왜 필요했을까?
없었던 일을 미개인의 대가리로 뻥튀기를 하다 보니, 이런 엉터리 허구를 만들 수가 있었던 것이다.


(8) 설령, 신(神)이 존재한다는 증명이 나오더라도, 그것은 예수교의 것은 될 수가 없다.
바이블은 여호와(예수와 예수교)를 증명해 주는 자료가 아니라, 예수교가 통째로 가짜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제삼자 2013-01-21 (월) 09:02
[욱(?)기는 세상이야]


(1) 남녀 노소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나 잘못이 있을 수 있다.

40 대의 중년 부부에게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딸이 있다고 하자.
이런 가정에서, 자식이 저지른 말썽을 부모가 책임을 지고 수습해야 되는가?
아니면, 부모가 저지른 말썽을 자식이 책임을 지고 수습해야 될까?

부모와 어린 자식 사이에 어떤 모습이 형성되어야 제대로 된 가정일까?


(2) 공무원을 비롯한 대통령을 공복(公僕)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나라(국민)에는 복잡한 일들이 계속 발생한다.
이럴 때, 국민들이 저지르는 말썽을 공무원(대통령 포함)이 책임을 지고 수습해야 되는가?
아니면, 공무원(대통령 포함)이 저지른 말썽을 국민들이 참고 책임을 지고 수습해야 되는가?

정부와 국민 사이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 제대로 된 국가일까?


(3) 종교 특히, 예수교(神)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예수교의 신(여호와=예수)은 전지전능하고, 사랑도 많다고 한다.
이 경우, 일반 대중들이 저지르는 말썽을 종교(교회)가 품어 안고 수습을 해야 될까?
아니면, 교회(목사나 신부가 포함된 예수쟁이들)가 저질러 놓은 말썽을 일반 대중들이 책임을 지고 수습을 해야 될까?

다른 말로 해서, 인간(자연인)이 저지른 잘못을 신(여호와=예수))이 책임을 지고 수습을 해야 될까?
아니면, 신(神)이란 작자가 저질러 놓은 잘못을 인간(자연인)이 책임도 지고 그것을 수습해야 될까?

신(종교)과 인간 사이에 어떤 관계가 맺어져 있어야 제대로 된 모습일까?


(4) 이런 저런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계속 말썽을 일으키는 예수교!
썩어 문드러진 예수교와 그 신(神)의 행패를 사람들이 참고 기다려 주어야 될까? 왜?
여호와(예수)는 사람의 잘못(무엇이 잘못일까?)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진멸 또는 지옥으로 보내겠다고 위협하는 신이다.

그렇다면, 교회와 여호와(예수)의 시궁창 모습은 어떻게 처벌해야 되는 것일까?

인간의 잘못을 신(神=예수교) 쪽에서 참고 기다리면서 수습해야 될까?
아니면, 신(神=예수교)의 사기성과 썩은 모습 그리고 잔인한 행패를 인간 쪽에서 참고 기다리며 용서하고 또 수습까지 해야 되는 것일까?
이거 욱(?)기는 거시기 아니야?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주객이 전도됐다."고 하던가?


(5) 욱(?)기는 세상이야. 종교(신)의 말썽을 일반의 자연인(사람)들이 참고 수습해야 되다니...

왜 종교가 있어야 하고 신(神)이 왜 있어야 되는 걸까?
종교가 인간을 위하여 있는 걸까? 아니면, 인간이 종교를 위하여 있는 걸까?
낯짝에다 철판을 깔지 않고서는 존재시킬 수 없는 현상이 종교(예수교)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이게 욱(?)기는 세상이 아니고 뭐야? ㅎㅎ...
제삼자 2013-01-24 (목) 09:15

[불합격 : 지옥행]


상대를 향하여
대학교 입학 시험에서 "너는 불합격이다."라고 소리쳐 알려 주는 행위와
인생 행로 과정에서 "너는 지옥행이다."라고 이죽거리며 통고해 주는 짓 중,
어느 쪽의 언행이 아주 못돼 먹은 잡놈의 행패일까?
두 놈들의 짓이 모두 잡놈보다도 더욱 못돼 먹은 치들의 짓이기는 하지만...
 

_?xml_: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 , 3 명은 졸업을 앞 둔 고등학교 3 학년 학생들이다.

甲과 乙은 그런대로 가정 형편이 좋아서 대학으로 진학을 할 예정이지만, 丙은 형편이 어려워서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하기로 결심을 한다.

甲과 乙은 대학 입학 시험에 필요한 소정의 모든 절차를 끝내고 마침내 시험을 치렀다.

丙은 취직을 하려고 백방으로 뛰었지만, 아직 그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마침내, 대학 입학 합격자 발표 날이 왔다.

丙은 딱히 할 일도 없어서 2 명의 친구들과 어울려서 대학교를 방문하게 됐다.

합격자 발표는 수험생을 일일이 불러서 개별 면담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甲이 불려 들어갔다. 그러자, 입학 사정관이 너는 합격이다하고 통보를 해 주는 것이었다.

甲은 함성을 지르며 뛸 듯이 기뻤다.

다음, 乙이 호명되어 들어갔다. 사정관이 말했다 너는 불합격이다.”

이 때, 乙의 기분은 어떤 것일까?

<불합격>이라는 통보는 대단히 신중하게 아픈 마음으로 해도 부족한 것이다.

아니, 합격자에게만 통보하고, 구태여 불합격자까지 큰 소리로 떠버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입학 원서도 제출하지 않은 丙의 이름도 호명되었다.

불려 들어 간 丙을 향하여 입학 사정관이 말했다.

너는 불합격이다. 이 대학에 다닐 자격이 없다라고.

이 때, 丙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렇잖아도 취직도 안 되어 죽을 맛 뿐이던 차에어떤 언행이 쏟아져 나오게 될까?

입학 원서를 제출한 사람에게도 <불합격> 통보는 신중해야 한다.

하물며, 전혀 입학을 원하지도 않고 어떤 요구도 하지 않은 사람을 상대로, 너는 불합격이다. 이 대학에 다닐 자격이 없다고 호통까지 친다면, 뺨떼기가 날아 갈 정도로 몇 대 얻어 맞게 될 것이다.

각설하고,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지원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희망 사항 없이 멋 모르고 태어났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교(바이블)는 악을 쓰고 있다.

예수 믿고 교회에다 돈을 바치면 천당 가고, 그렇지 않으면 지옥불에 떨어진다.


입학 지원서도 제출하지 않은 젊은이에게
너는 불합격이다. 이 대학에 다닐 자격이 없다고 통보하는 짓과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의견을 제시한 바 없는 사람들에게 "너는 지옥불에 떨어져야 된다고 협박하는 짓 중, 어느 짓이 더 못된 잡놈 짓이요 행패일까?

예수교의 모든 것은 인간이 저지른 실수(잘못) 중에서도 최악만을 모아 놓은 더러움이다.

따라서, 예수교의 도태(도말) 없이는 인류의 평화는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교가 없어진다고 하여 금방 좋은 세상이 도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예수교만이라도 없어져 주어야 인류 평화의 시작은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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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9
*33[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짓]"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속담(?)이 있다."무슨 일을 하려면 그에 걸맞은 실력과 견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 무슨 …
제삼자 13/03/25 4732
708
*32[예수의 산상수훈(山上垂訓)]고등학교 2 학년 때, 윤리 과목 선생이 결근을 하자, 교장 선생이 대신 교단에 나타난 적이 있었다.그 때, 교장 선생으로부터 처…
제삼자 13/02/12 5065
707
[논리 중의 논리-논리의 진수(眞髓)](가정) 부산 앞 바다에서 유난히 꽁치가 많이 잡히는 해가 있다고 하자.(결론) 그렇다면, 그 해에는 서울 사람들은 서대…
제삼자 13/01/28 4681
706
*30 [예수가 태어나던 날의 날벼락] 한 나라에 왕자가 태어나면, "대역 무도한 죄인을 제외하고, 모든 죄수들을 방면하라."는 임금님의 어명이 떨어지게 마련…
제삼자 12/12/23 5883
705
[축사(祝辭)] 반기련 회원 여러분! 오늘은 참으로 뜻 깊은 날입니다. 아니, 어쩌면 먼 훗날 역사의 한 페이지를 크게 장식할지도 모를 그런 감격스런 …
제삼자 12/09/13 4832
704
[무식과 용감무쌍은 이란성 쌍둥이]요즈음, 태풍 볼라벤과 덴빈으로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태풍이 몰려 오면, <호우 주의보>니, <…
제삼자 12/08/31 4307
703
[막중한 임무를 띤 반기련]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354~430)-초대 예수교의 가장 유명한(?) 교부신학자라 불린다.예수교의 기초와 근본 교리는 아우구스티…
제삼자 12/08/19 4134
702
[예수의 사상에 대한 고차원적 분석] A. 약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는 어렵다. B. 부자가 천당에 들어가기는 어렵다. 위의 2 가지 논제 중, A는 물리적(물질적)인…
제삼자 12/07/31 4926
701
[여호와(예수)의 만행(蠻行)질]다음의 말은 여호와(예수)가 전지전능한 신으로서 천지를 창조하고, 이것을 정의와 사랑으로 다스린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성…
제삼자 12/07/16 5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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