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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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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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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32[예수의 산상수훈(山上垂訓)]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3-02-12 (화) 09:41 조회 : 4584
*32[예수의 산상수훈(山上垂訓)]


고등학교 2 학년 때, 윤리 과목 선생이 결근을 하자, 교장 선생이 대신 교단에 나타난 적이 있었다.
그 때, 교장 선생으로부터 처음으로 <예수의 산상수훈>이란 말을 듣게 되었었다. 당시, 교장 선생은 예수쟁이였던 것 같다.
그 때, 교장 선생은 <산상수훈> 속에 이러 저러한 가르침이 들어 있다면서 마치 자기 것을 나누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으쓱거리며 자랑했었다.

그 때, 그 예수쟁이 교장 선생이 어떤 내용을 어떻게 풀이했었는지는 전혀 기억되는 것은 없다.
질문 시간 없이 교장 선생의 일방적 훈시 비슷한 강의가 전부였었다.

그 후, 수 십 년 동안 가끔 씩 불현듯 생각이 날 때면 <산상수훈>이란 것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고 찾아 보게 되었다.
그러나, 바이블과 예수교 속을 아무리 찾아 봐도 그 놈의 <산상수훈>이란 것이 보이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산상수훈>이란 명칭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40 살이 훨씬 지난 뒤에서야 그것이 신약(바이블) 속에 들어 있는 예수의 설교 중 일부분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쨌든, <산상수훈>은 바이블 전체에서 가장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내용이 담긴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쟁이들이 앉은뱅이 뭣 자랑하듯, 자기네 종교 예수교가 장해 보여서 자랑하는 짓도 따지고 보면 이 <산상수훈>에 들어 있는 몇 개(20~30 가지)의 가르침이 멋져 보여서 우쭐대는 모습이다.
그러나, 예수의 <산상수훈>은 공자나 석가의 가르침에 비하면 새발의 피만도 못한 어쭙잖은 말장난이요, 얼간이들의 어설픈 횡설수설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바이블 속에 <산상수훈>이 들어 있는 것과 예수쟁이들 각자의 인격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조선 시대의 고종 황제가 전주 이씨이고, 고종의 황후가 여흥 민씨라고 하더라도, 오늘 날의 전주 이씨와 여흥 민씨가 아무 상관이 없듯이 <산상수훈>과 <예수쟁이> 사이에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산상수훈>과 예수쟁이들의 인격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산상수훈>은 예수(여호와)의 존재와 능력하고도 아무 상관이 없는 별개의 것이다.

<산상수훈>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가 예수쟁이의 것이 될 수도 없고, 예수(여호와)의 것이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산상수훈>을 비롯하여 바이블 속의 어떤 것도 여호와(예수)의 존재와 능력과 신격(神格)을 보태 주지는 못한다.
부산 앞바다의 고깃배와 대전 근처의 대둔산이 아무 연관이 없듯이, 바이블 내용과 예수교(여호와=예수)도 아무 연관이 없는 궤변(모순, 허구 포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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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
(**여기에 그럴싸한 말들이 20~30 가지 쯤 들어 있다.)
........................................................"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태 5,6,7 장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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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태 5, 6, 7 장은 소위 예수의 산상수훈(山上垂訓)이라는 것이다.
이 <산상수훈> 속에는 "원수를 사랑하라", "소금과 빛이 되라", "이혼하지 말라",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남을 심판하지 말라", "먼저 대접하라" "7 번 씩 70 번이라도 용서하라." 등등, 제법 그럴싸한(?) 것들이 몇 가지 들어 있다.
그러나, 모두가 근본적 해설 없이 즉흥적으로 떠들어 놓은 <제목>에 준하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는 <제목>만 나열하는 설교(가르침?)를 했나 보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저도 모르는 말들을 좋게 느껴지기만 하면 아무 것이나 줏어다가 쭉 늘어 놓았던 것이다.
오늘의 예수쟁이들이 바이블 속에 좋은 말이 있기 때문에 예수교가 훌륭한 종교라고 우쭐대는 것이나, 좋게 느껴지기만 하면 뜻도 모르면서 아무 것이나 가져다가 쭉 나열해 놓은 예수나, 50 보 100 보라고나 할 수 있을까?

2) <산상수훈>은 다른 바이블 즉, 마가, 누가, 요한 등에서는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그런데, 마태에는 5, 6, 7 장에 집중적으로 모아져 있다. 이는 바이블(마태)이 후에 누군가에 의하여 편집되었음을 알려 준다.
또, 문제가 되는 것은 마태의 <산상수훈>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설교를 하려면 한 두 시간에 할 수 있는 분량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예수는 이 많은 분량의 <산상수훈>을 단 번에 떠들어 놓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상황들이 모두 바이블의 허구성(虛構性)을 증명하고도 남는다는 사실이다.


3) 특히, 유의할 점이 있다.
<산상수훈>이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스승(선배)이 제자(후배)에게, 이렇게 인간이 인간을 가르치는 내용이라면 훌륭할 수는 있어도, 신(神)이 인간을 가르치는 내용이라면, 그것은 커다란 악행(惡行)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남을 심판하지 말라." "먼저 대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오래 참아라." "....." "....." 따위는 선배(인간)가 후배(인간)에게 가르칠 수 있는 덕목(德目)이지, 신(神)이 인간을 가르칠 덕목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수 백 억의 재산을 가진 부모가 자기 자신은 호의호식하면서, 자립 능력이 없는 자식에게는 빌어 먹으며 살도록 내팽개쳐 놓는 짓보다도 더욱 못된 악행이라고 할 수 있다.
전지전능한 신이 다스리는 세상 속에 무지무능한 존재(사람)와 고통과 참아야 되는 불행이 깃들어 있다는 것은 영원히 용서될 수 없는 포악이다.

<산상수훈>에서 예수가 사람을 상대하여 가르치는 내용은 이 우주 속에서 가장 잔인하고 무책임한 행패에 지나지 않는다.
천지를 창조하고, 이것을 임의로 다스린다는 전지전능한 신(神)의 할 일은 무엇일까?
전지전능에는 불완전, 실수 또는 이유와 변명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수교적 신이란 작자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멋모르고 강제로 동원된(태어난) 무능한 인간이 수고하고 고통스러워 해야 될 세상이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인간의 뜻이 조금도 가미되지 않고, 오직 신(여호와=예수)의 일방적 뜻에 의하여 창조되고 태어난 인간이 고통을 감내해야 되는 삶을 가져야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우주 속에 뭔가 부족한 것이 있어서 인간(모든 생명체 포함해서)이 고통도 받아야 되고 참아야 될 일이 있다면, 이는 이유 불문 천지를 창조해 놨다는 신(神) 쪽에서 자기 직무에 태만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상은 전지전능한 신(神)이 있어 세상을 창조하고 이것을 다스리고 있다는 전제하에 되어지는 말들이다.
그런데, 실제의 세상은 절제하고, 참아야 하고, 땀을 흘려야 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들이 바로 전지전능한 신(神)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며, 예수의 가르침이라는 것도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헛소리임을 알려 주고 있다.
따라서, <산상수훈>이 신(神)의 가르침이라면 그것은 악행(惡行)에 지나지 않는다.

<산상수훈>은 어떤 종교 사기꾼에 의하여, 세상에 이미 내재(內在)되어 있던 말들을 줏어 모은 잡동사니라는 데에 문제가 크다.
더욱 무서운 현상은, 원래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좋게 느껴지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줏어 모아 편집시킨 것이 <산상수훈>이라는 점이다.


4) <산상수훈>은 그 내용이 말하듯, 신(神)의 할 일은 조금도 없고, 오직 인간 쪽에서만 "참아라.", "고생해라.", "굶어라.", "핍박 받아라.", "죽어라." 등등, 강요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신(神)이 할 일은 사람이 죽은 후에 천당과 지옥으로 보내겠다는 것이 전부이다. 악신(惡神)이라도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산상수훈(바이블)>은 신(神)의 말이 아니라, 종교 사기꾼이 더러운 목적을 겨냥하고서 써 놓은 글임이 확실해진다.

예수교(바이블)는 인류 사회에 존재하는 종교(서적) 중 가장 더럽고, 가장 무서운 악서(惡書)일 뿐이다.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3-02-13 (수) 09:48
[고정 관념과 계급 배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란 대단히 어려운 것 같다. 아니, 불가능한 일일 것 같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이미 자기 것으로 길들여진 버릇이나 생각을 고치기란 거의 불가능한 현상이라고 여겨진다.
어쩌면, 한 인생에 있어서 굳어진 고정관념은 그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고집불통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면, 우리 인간 사회에서는 수 천 년 동안 반역(역적)은 나쁜 것이고, 충성(충신)은 좋은 것이라고 누누이 길들여져 왔다.
수 천 년 동안 각종 왕조의 통치자와 기득권자들이 그렇게 세뇌시켜 왔기 때문에 인간으로 태어난 자 중에 저렇게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결과, 고려 말의 정몽주는 충신이라 하여 후세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다. 반면에, 이성계 일당(정도전, 조준, 하륜 등)은 나라를 빼앗은 역적이라 하여 실제로는 좋은 일을 많이 하고도 욕을 먹거나 별로 인기가 없다.

이성계 일당은 성공한 반역자들이어서 오랜 시간에 걸쳐서 업적(속임수일지라도)도 쌓고, 역사 기록도 자기네 쪽에 유리하도록 적당히 얼버무려 놓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그것이 수 백 년 전에 벌어졌던 일인데도 지금까지도 호감이 가지 않는다. 한 번 길들여진 고정관념(충성은 좋은 것이고, 역적은 나쁜 것이라는)은 수 백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좀처럼 씻어 내거나 고치기가 어렵다.

충성심의 가장 멋진 형태는 개(犬)의 성질이라고 할 수 있다. 강아지가 주인(사람)을 잘 따라 주는 현상을 보면서 여기에다 터무니 없는 충성 모습까지 섞어 격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주인을 무는(반역 행위) 개는 살려 둘 수 없다."는 격언이 생겨날 정도로 개의 충성심은 무조건적이요 극찬의 대상이다. '개'하면 '충성', '충성'하면 '개'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어쨌든, 개=충성심이다.

고려는 건국된 지 수 백 년이 지나자, 모든 분야가 썩을대로 썩어 문드러져 있어서 그 상태로는 어떤 것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라 전체가 썩었다는 것은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서 신음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에 정도전, 조준 등은 이성계를 중심으로 토지 개혁을 시작으로 마침내 역성 혁명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역성 혁명에 의한 새 나라의 건설은 고려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기득권(썩은 기존 세력)의 붕괴를 의미한다. 반면에, 반역(역성 혁명)은 신진 사대부 세력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말해 준다.

역성 혁명은 신진 사대부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도 직간접적으로 새롭게 여러 가지로 혜택이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몽주에게는 충신이라 하여 칭송을 보내고, 이성계 일당에게는 나라를 빼앗은 도둑놈이라 하여 미워하거나 인기가 없다.
꼭대기 층의 충성질이 성공하여 썩어 문드러진 왕조가 좀 더 길게 유지되면, 이로 인하여 더욱 형편이 어렵게 된 하층민(천민과 노예 등)까지도 그 충신(?)들에 대해서는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
여기에서 말해지는 충성질이란 완전히 썩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왕실을 멸망하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말한다.

이상의 현상 즉, 어처구니 없는 충성질을 향해서 박수를 쳐주는 어리석음을 가리켜 <계급 배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 날에도 자기가 어느 계급에 속하는지도 모르면서 좌충우돌 횡설수설, 이미 자신의 속에서 굳을대로 굳어 버린 고정관념으로 자신을 쓰레기통에 쳐 박아 놓고서 휘져어대며 계급배반을 하는 사람이 많다.
계급 배반의 가장 커다란 형태의 하나가 바로 이미 길들여져서 고치기 대단히 어렵도록 굳어진 고정관념에서 나오는 결과이다.

<삼국지연의>의 주인공들인 조조, 손권, 유비 등도 썩을 대로 썩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한제국 황실을 지켜낸 충신들이다.
조조, 손권, 유비등의 충성질(?) 활동이 성공하여 마침내 한나라는 멸망하지 않고 그 수명을 연장하게 되고, 대신에 고통스러움에서 벗어나 보려는 백성들의 꿈틀거림인 <황건적>은 일망타진되고 만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 <황건적>이란 것이 무엇인지 알아 차리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심지어는 삼국지 연의를 쓴 저자도 그렇고, 그 삼국지를 읽는 독자들도 그렇고, <황건적>은 나라를 망치는 도둑놈들의 떼거리라며 무조건 배척해야 될 악으로 몰아 세우는 사람이 거의 모두일 것이다.

그러나, <황건적>이야 말로 썩은 황실을 지키려고 수고하는 충신(조조, 손권, 유비 등등)들에 의하여 희생된 억울한 백성들의 꿈틀거림이요, 바로 우리 자신에 해당하는 실체이다.
<삼국지연의>를 읽으면서 "한제국이 멸망하면 어쩌나?"하는 생각으로 안타까워 사람, 조조, 손권, 유비 등의 충성질이 훌륭해 보이는 사람, <황건적>이 문자 그대로 도둑놈들로 느껴져서 그들이 일망타진된 것이 다행으로 여겨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고정관념에 몸과 마음이 푹 절어 있어서 자신의 계급 배반 행위를 감지하지 못하는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 분명하다.

계급 배반의 형태는 삼국지연의를 저술한 저자도, 그 삼국지연의를 옛날에 읽은 독자도, 수 백 년이 지난 오늘날의 독자들도 그 고정관념은 변하지 않고 지속된다.
어느 누구도 황건적이 누구인지 그것을 곰곰히 생각조차 해 보려는 사람은 없다. 덮어 놓고 충신질은 좋은 것이고 역적질은 나쁜 것이란 고정관념의 잣대에 절어 있어서 황건적은 나쁜 놈들이고, 그 황건적을 토멸시킨 조조, 손권, 유비 등은 충신이요 훌륭한 영웅일 뿐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자신을 위로 한다. "나는 악에 적극적으로 도전할 용기는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선과 악 또는 정의와 불의를 구별할 줄은 안다." 고.

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가당착(말이나 행동이 앞뒤가 서로 맞지 않고 모순됨)이요, 고집불통적 길들여진 고정관념인가! 재삼 언급하지만, 황건적이란 중국 한제국 말기의 배고프고 불쌍한 대다수 백성들이요 나 자신이란 사실이다.
나라가 세워지고 400 여 년이 지난 한제국 황실과 그를 둘러싼 기득권층은 썩을대로 썩어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건져 낼 아무런 의욕도 힘도 없는 상태였다. 이에, 스스로 자신들의 고통을 벗어나 보려고 일어선 백성의 무리가 바로 황건적이다.
한 번 살아 보려고 버둥거려 본 목숨을 건 투쟁이었지만, 실패로 끝난 백성의 움직임은 황건적이란 누명을 뒤집어 쓰게 되고, 역적 도당으로 낙인이 찍히게 마련이다. 백성(저자, 독자 등, 나까지 모두를 포함해서)들이 자신들 스스로를 향해서 황건적으로 매도(또는 배척)하고 있는 것이다.

한 번 길들여진 고정관념은 그 고정관념이 자신을 얽어 매는 올무가 되는데도 거기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오히려 두 꺼풀 세 꺼풀 연거푸 뒤집어 쓰기를 자처한다.
그런데, 가장 무섭고도 질긴 고정관념은 뭐니뭐니 해도 늙은이들의 막무가내식 고집불통과 종교인들의 무데뽀(無鐵砲=신중함이나 대책 없이 함부로 덤비는 사람이나 그러한 태도)식 믿음 행위가 아닌가 싶다.
사실상,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그 종교의 근본 가르침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꼭대기층 전문가 몇 사람 정도일 것이다. 그런 다음, 밑으로 99.99 % 이상은 "종교"의 '종'자도 모르는 얼치기들이 엉터리 교리를 수박 겉 핥기식으로 무장하고서 오랜 시간에 걸쳐서 길들여진 고정관념을 믿음으로 착각하며 우왕좌왕하는 무리가 바로 종교인들이다.

그런데도, 실제로는 꼭대기층보다 설익은 엉터리 종교 이론으로 무장한 하빠리(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별 볼 일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종교 얼치기들의 종교심이 훨씬 강력하기도 하고, 실제로 세상적 힘도 강하다.
여기에서 그 실례를 모두 열거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신학 대학교 교수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이론을 내 놓았다가, 일반 하빠리 신도들이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그 교수가 파면된 경우는 그 좋은 본보기에 해당한다.

신학대 교수는 어느 정도 종교의 내막을 훤히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먹고 살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직업이었을 테고, 하빠리 얼치기들은 순전히 길들여진 고집불통적 고정관념을 믿음으로 착각하는 얼빠진 전형적 종교인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보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비겁하게도 밥 먹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직업으로 선택한 교수 입장도 떳떳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종교 집단의 사기꾼 행각과 내막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로서 어떻게 막돼 먹은 막무가내식의 고집불통적 일반 신도들의 밀어 붙이는 신앙 활동을 이길 수가 있겠는가?

늙은이들도 종교쟁이들처럼 그 고집불통적 고정관념에 묶여 있으면서 쏟아내는 어처구니 없는 행패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대개의 경우, 늙은이(부모)에게는 젊은이(자식)가 아직 갖지 못한 기득권이 쥐어져 있고, 거기에다 젊은이는 늙은이에게 예의 또는 효도를 해야 된다는 굴레가 씌어져 있다. 젊은이들에게 씌어진 대단히 참기 어려운 굴레가 아닐 수 없다.
결국, 똥이 무섭다기보다는 더러워서 피하듯, 젊은이들은 늙은이들의 긴 시간으로 길들여진 고정관념으로 무장된 주책바가지 추태를 못 본 척하고 외면해 주는 것으로 감내하게 된다.

어쨌든, 가장 무섭고도 질긴 고정관념은 뭐니뭐니 해도 늙은이의 막무가내식 고집불통과 종교인의 무데뽀식 믿음 행위라고 결론을 내려야 될 것 같다.



유의 사항;

위에서 거론된 내용 속에 모든 늙은이와 모든 종교쟁이가 포함된 것은 아니다.
왜냐 하면, 모든 늙은이와 모든 종교쟁이들이 고정관념에 묶여서 어리석은 짓(계급배반)을 할 턱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을 해 놔야 혹시라도 필자의 썰(說)에 동의할 수 없어서 또는 억울해서 저항이 하고 싶은 사람의 입막음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지, 이렇게 말을 해 놓으면, 오히려 불난 집을 향해서 선풍기를 틀어 놓듯 더 열불나게 하는 걸까? 예라, 모르겠다. ㅎㅎ...


칡넝쿨 (119.♡.134.180) 2013-02-14 (목) 10:23
'고정관념'을 말씀하시니 1백수십년 전에 일어난 '동학 농민 봉기'가 생각납니다.
어렸을 때 학교 교과서에서는 이 사건을 "동학란(東學亂)" 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조선왕조 말엽의 썩어 문드러진 기득권층에서 바라본 시각대로 8.15 해방이 된 후에도 몇십년 동안이나 탐관오리를 척결하고 사회 제도를 바로잡아 백성들을 구제하겠다고 봉기한 사건을 가리켜 "동학교도의 반란"이란 뜻으로 "동학란"이라고 지칭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동학혁명(東學革命)" 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붙이게 된 것이지요.
각설하고,

한국땅에 상륙한 개독교를 "서양에서 건너온 종교" 라는 뜻으로 "서학(西學)"이라는 이름으로 호칭할때, 이 "개독교를 배척 타도하기 위하여 궐기하는 동방의 종교"라는 뜻으로 "동학(東學)"이라는 이름을 붙여 포교를 시작하신, 안티기독교의 선구자이시자 원조이신 수운 최제우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아울러 동학혁명군의 선봉장이셨던 녹두 전봉준 장군과, 이 산하에 피를 뿌리고 산화하신 혁명군에 종군하셨던 장졸 원혼들께도 명복을 빕니다.
제삼자 2013-02-19 (화) 15:52
[주객전도(主客顚倒)]


주객전도(主客顚倒); 주인과 손의 처지가 뒤바뀐다는 뜻으로, 사물의 경중(輕重), 선후(先後), 완급(緩急) 따위가 서로 뒤바뀜을 이르는 말.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야 될 일이 뒤바뀜.

일상 생활인 밥을 먹을 때에도 밥을 먼저 입에 넣은 다음 반찬(소금)을 먹어야 제대로 된 것이다.
이것이 뒤바뀌어 반찬(소금)을 먼저 입에다 넣고 그 다음에 밥을 먹는다면 입안이 짜게 느껴져서 괴로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순서가 있게 마련이다.

친구들과 화투 놀이를 하고 있을 때, 태풍 경보가 발해졌다는 뉴스 특보가 전해지면, 당장에 화투 놀이를 중단하고 태풍에 대비할 일을 서둘러야 될 것이다.
이 때, 화투 놀이와 태풍에 대비하는 일은 어느 쪽이 훨씬 더 중대한 문제인지 그 경중, 선후, 완급이 뚜렷해진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그 경중, 선후, 완급이 뒤죽박죽으로 되어 있어서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이 있다.

혼인을 약속한 젊은 남녀가 신혼 살림집으로 전세를 얻기로 했다면, 먼저 전셋집을 찾아 본 다음에 돈(전세금)을 준비해야 될까? 아니면, 먼저 돈을 준비한 다음에 그 돈의 한도에 맞는 전셋집을 얻으러 다녀야 될까?
돈을 한 푼도 준비해 놓지 않은 상태에서 전세집부터 얻으러 다니는 젊은이가 있다면, 우리는 그들 한 쌍의 젊은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왜? 나열된 예들이 너무 간단해서 누구를 어린애로 취급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쁜가?

그렇다면, 무조건 믿기로 작정을 한 다음, 그 놈의 신이란 것이 존재는 하는지, 어떤 능력을 갖고는 있는지, 사랑이 많다던데 정말로 사랑이란 것을 가지고는 있는지, 그 녀석이 정말로 정의롭기는 한지, 정말로 천당과 지옥이란 것이 있기는 한 건지 등등, 따져 봐야 되는 예수교의 모양새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되는 것일까?

예수교!?
아예, 송두리 째 앞뒤가 바뀌어 있는, 말 그대로 "주객이 전도되어 있는 집단"이 예수교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저런 궤변(모순=허구)을 끌어 안고 미쳐 돌아가는 예수쟁이들이야 말로 머리통 속이 비어 있는 괴물들이라고 해야 될 것이다.



[(여호와 또는 예수 가라사대)
"네 동포,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
너를 꾀어 이르기를....네 열조(조상)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다른)민족의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
너는 그를 좇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보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그는...네 신(神) 여호와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한 자니, 너는 `돌로 쳐 죽이라`..."]

(신명기 13;6~11)


위의 바이블 이야기(神의 가르침)는 사람을 돌로 쳐서 죽이라는 명령이다.
여호와(예수)를 배반하고 다른 신을 섬기자고 꾀는 사람이 있거든, 좇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애석하게 보지도 말고, 덮어 숨기지도 말고, 용서하지도 말고, 무조건 죽여버려야 된다는 명령이다.

화투 놀이를 하라는 말도 아니고, 밥을 먹으라는 말도 아니고, 도둑질을 해오라는 말도 아니고, 강도질을 해오라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덮어 놓고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이다.
그것도 남이 아닌 자기 부모 형제 처자식까지도 무자비하게 돌로 쳐 죽이라는 명령이다.
물론, 사람을 죽여야 될 경우가 없으란 법은 없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러면 무엇보다도 먼저 거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될 것이다.

부모, 형제, 처자식까지라도 인정 사정 볼 것 없이 무자비하게 돌로 쳐 죽여야 될만한 중대한 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인정 사정 볼 것 없이 사람을 죽여야 되는 일이라면, 그 사람 죽이는 일보다 먼저 그에 상당하는 중대한 어떤 문제가 주어져야 될 것이다.
그 먼저 주어지는 중대한 문제가 무엇일까?

위의 바이블 내용에 의하면, 여호와(예수)를 버리고 다른 신(神)을 받들자고 꾀는 사람은 무조건 때려 죽여야 된다고 되어 있다.
아직, 여호와(예수)의 존재 여부와 능력 여부가 분명하게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부모 형제 처자식부터 때려 죽이라고?
또, 여호와(예수)의 존재와 능력 여부가 밝혀졌더라도, 또, 사람들이 여호와(예수)를 알아 주건 말건 그것이 그 신이라는 녀석들에게 무슨 영향을 주기에 사람을 때려 죽여야 될까?

아직 밝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대를 위하여 사람을 죽여야 된다는 명령도 말이 안 되고, 설령 밝혀졌더라도 전지전능한 신이란 녀석들이 인간의 언행에 어떤 영향을 받게 되어 그 보복으로 살인을 강요하는 짓은 있을 수 없는 더러운 악행일 뿐이다.
여기서부터 필자의 글이 더 계속된다면, 아마도 여호와(예수)는 푸짐한 욕도 먹게 되고, 푸짐한 매도 맞아야 될 것이다.

또, 더 긴 말(글쓰기)을 하려다가는 입(정신)이 더러워질 것 같아서 여기에서 멈춰야 되겠다.
끝~~~~~!
아무튼, 예수교(쟁이)와는 상종을 말아야 돼! 안 그래?


참고; 참, 예수쟁이 중에 자기 부모 형제 처자식을 죽여 본 그런 종자는 있어 봤는지 모르겠네. 없었다면, 왜일까? 결국은 예수쟁이들 모두는 하나도 빠짐 없이 사기꾼이라는 것이네! 여기서도... 안 그래?
제삼자 2013-02-27 (수) 10:59
[열복사(熱輻射)와 예수복사(耶_?xml_:namespace prefix = daum ns = "http://dic.daum.net/" />輻射)]


예수가 살아서 활동하고 있을 당시에는 예수가 누구인지 알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2,000 여 년이 지난 지금, 예수를 알아도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자그마치 한국에 만도 1,000 만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처음이나 중간에는 아무도 모르던 예수를 수 백 년 또는 수 천 년이 진난 뒤에는 그 예수를 알게 된 사람이 엄청 많아졌다는 말이 된다. ㅎㅎ...

물리학 용어이던가? 열(熱=heat)이란 것이 있다.
열이란 물체의 온도 차이에 의해서 한쪽 물체에서 다른 쪽 물체로 이동하는 에너지를 이름이다.
열이 이동하려면, <열전도> <열대류> <열복사> 이렇게 3 가지 방법으로 이동하게 된다고 한다.

<열전도> <열대류> <열복사> 이 3 가지 방법 중에 재미있는 놈은 역시 <열복사(熱輻射)>가 아닌가 싶다.
"태양열은 어떤 방법으로 지구까지 이동되어 올까?" 우주 공간의 온도는 3K(켈빈) 즉, 섭씨 -273 도라고 한다. 또, 우주 공간은 진공 상태여서 <열전도>나 <열대류>가 발생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1 억 5,000 만 km나 멀리 떨어져 있는 태양의 뜨거운 열 에너지가 어떻게 지구까지 이동되어 올 수가 있을까?  

이럴 때, 열이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열복사>이다.
쉽게(?) 말하자면, 태양의 뜨거운 열이 중간의 어떤 것도 거치지 않고 직통으로 지구까지 껑충 뛰어서 건너오는 방식이 바로 <열복사> 이동 방식이라는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처음(태초?)에도 몰랐고, 중간(2,000 년 전?)에도 몰랐던 예수를 오늘(맨 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것은 복사(輻射) 현상이 아니고 뭘까?  

태양과 지구 사이에는 섭씨 -273 도라는 극한(極寒)과 진공 상태의 빈 공간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태양열은 <열복사> 작용에 의하여 그 뜨거운 열이 지구까지 껑충 뛰어 날아 올 수가 있는 것이다.
마찬 가지로, 신(神)과 인간 사이에는 수 천 년이라는 시간과 아무도 모르는 그 무엇(?)이 있었는데, 갑자기 어느 날(?)부터 예수(여호와)가 유일신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태양열 복사>         태양열----->진공 상태의 우주 공간---->지구
<예수존재 복사>    허무맹랑---->거지 발싸개 or 개 뼉따귀--->예수(여호와)

"귀신이 곡할 노릇"이란 격언(?)이 있다.
처음도 없고, 중간도 없는데 언제부터인가 예수(여호와)란 것이 인간들 속에 껑충 뛰어 들어와 있다. 이것이야 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니고 뭘까?
어쨌든, 태양열은 <열복사>에 의하여 지구로 건너 올 수가 있고, 예수(여호와)귀신은 <예수복사>에 의하여 인간 세상에 퍼진 것이 분명하다. ㅎㅎ... 

  
(1) [(예수가)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좇았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
 
(마태 8;23~27)


커다란 바다(사실은 호수)의 거센 바람과 파도가 예수의 꾸짖는 소리에 굴복되어 찍소리 한 마디 못해 보고 잠잠해 졌다고 한다.
이 엄청난 기적질을 목격하게 된 예수의 제자들이 기이하게 여기며 말한다.
"이 어떤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라고.

** 2012 년 8 월에 한반도에 불어 닥쳤던 태풍 볼라벤! 그 피해는 엄청나다.
    한국의 예수쟁이들은 나쁜 놈들었던 것 같다.
    예수에게 부탁만 하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가 있는데도 아무 짓도 안 했다니...
    어쨌든, 각설하고,

""이 어떤 사람이기에...""라는 반응은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여기 뿐만 아니라, 바이블의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예수의 제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예수가 누구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전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제자)들에 의하여 예수교(종교)가 태어난다. 모르는 자들에 의하여 신(神)의 전지전능과 진리와 절대가 태어난 셈이다.

40 년 전쯤의 일이다. 필자는 그 해 어린이날, 아이들 셋을 데리고 어린이 대공원을 찾았다.
공원 안은 인산 인해를 이루어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였다. 여기 저기 줄을 서고 있었다. 놀이터로 가는 길도 끝이 보이지 않는 줄서기요, 화장실로 가는 길도 줄이 길었다.
우리 가족 일행은 놀이터로 들어가는 줄 끝에 대어 섰다.

새치기하는 사람을 막으려고, 새끼줄도 치고, 경찰과 자원 봉사자들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 시간 이상이 흘렀어도 줄서기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가족을 그 자리에 세워 두고, 필자는 줄을 따라 앞으로 앞으로 좇아 가 보았다.

그런데, 이 어인 일인고? 그 줄은 중간에서 끊어져 있어, 어디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었다.
제 자리에 돌아와 보니, 경찰과 봉사자들은 여전히 새치기를 막으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부지런히 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명칭은 멋지게도 봉사 활동이었지만 누구를 위한 무슨 봉사 활동일까?

예수교 역시 어린이 대공원의 줄서기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예수교의 신(神) 역시 도깨비 방망이 두드림 같이 "神나와 뚝딱"하며 얼렁 뚱땅 생겨나서 어디에도 연결된 근거는 없이, 시간(세월)이 흐를 수록 질기고 또 굵은 줄서기를 하는 괴상한 활동이 예수교이다.
그러면서도 예수교의 활동은 대단하다.

천문학 숫자의 재물 갈취하기,
거대한 신당 짓기, (신의 집이 꺼적떼기 움막처럼 초라한 것도 많다.)  
무수한 사람 능멸하고 죽이기,
이름하여 봉사 활동과 희생 정신 키우기, (음흉한 발톱을 숨기고 벌이는 사기극이지만)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기, (예수쟁이가 가장 우쭐대는 무기?) 
굳센 신앙심 다지기 등등, 그 활동(?)은 가히 천지를 뒤흔든다.

3 년 동안 침식을 함께 했던 제자들도 모르던 예수(여호와)!
이렇게 아무 것도 모르는 제자들에 의하여 신(神)이란 것이 만들어진다. 원래 신은 아무 것도 모르는 야만인들에 의하여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은 <예수복사> 현상을 일으켜 마침내 한반도에도 1,000 만이 넘는 예수쟁이가 생겨나게 된다. ㅎㅎ... 


(2)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生水)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聖靈)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혹(或)은 "이(예수)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하며,
예수를 인하여 무리 중에서 쟁론(爭論)이 되니, .....]

(요한 7;37~43)


여기서도 예수가 큰 소리로 외치며 가르쳤지만, 그것을 듣는 무리 중에 예수에 대하여 짐작되는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을 직접 듣고도 예수가 누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의 예수쟁이들 중에는 예수(여호와)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 현상 역시 <예수복사> 현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귀신이 곡할 노릇일 뿐이다.

바이블 기자들은 예수(여호와)를 숨겨 놓고서, 두리 뭉실 적당히 초점(焦點)을 흐려 놓아, 종잡을 수 없도록 꾸며 놓는 것이 예수(여호와)를 무한대로 자라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예상했던 것 같다.
예상은 적중하여 마침내, 신학자(神學者)들과 선지자, 목사, 신부들의 바이블 해설에 의하여 예수(여호와)는 무한대로 자라나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호와(예수)는 더욱 커다랗게 자라고 있다. 마침내, 여호와(예수)는 무한대는 물론 전지전능한 것에까지 자라나게 되었다.

예수(여호와)보다 더 크고, 더 쎈 존재가 있거든 나와 보라구! 예수쟁이들만 살판났어! 아멩 할렐루야
제삼자 2013-03-04 (월) 09:08
[진리(眞_?xml_:namespace prefix = daum ns = "http://dic.daum.net/" />理)와 자유(自由)]


(1) "태양을 탐험하고 돌아오는 사람에게는 국왕의 자리가 보장되고, 1,000 조 달러의 현금이 상금으로 주어진다."는 국가적 대대적인 사업 계획이 있다면, 여기에 도전할 사람이 나타날까?
불가능한 태양을 탐험하기보다는 어렵기는 하지만 차라리 처음부터 1,000 조 달러 벌기와 조그만 가장(家長) 자리 굳히기를 위해서 움직이는 게 훨씬 더 유용할 것이다.

(2) "죽었다가 3 일만에 다시 살아나는(속임수 없이) 사람에게는 천당 들어가기가 보장되고, 1,000 조 달러를 상금으로 주겠다."는 예수교적 큰 행사가 열린다면, 여기에 응모할 예수쟁이가 나타날까?
불가능한 죽었다가 3 일만에 다시 살아나는 짓을 시도하기보다는 차라리 처음부터 건강한 신체 만들기와 1,000 조 달러를 직접 벌어 보려고 계획을 세우고 활동을 시작하는 게 훨씬 효과적인 일일 것이다.


(3) [(예수 가라사대)
"진리(眞理)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 8; 32)

"진리를 알게 되면, 그 진리가 인간을 자유롭게 해 줄 것"이란 말이다.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귀한 가르치심이다.
그래서, 자유를 획득하려고 진리를 찾아 나선 사람이 있다고 하자. 자유를 마다 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이럴 겨우, 과연 진리란 것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진리란 무엇일까?
사전을 찾아 보면, 진리란 "참된 이치" 또는 "우주 근원적 원리"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진리를 발견하려면, 그보다 먼저 "참된 이치" 또는 "우주의 근본적 원리"를 알아 내야 될 것이다.
어떤가? 위와 같이 풀이하면, "참된 이치"와 "우주의 근본적 원리"를 알아 내고, 마침내 그 진리란 것을 획득하여 그 좋다는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을까?

하기사, <진리>라는 것을 안다는 또는 터득했다는 사람을 여럿 만나 보기는 했었다.
뿐만 아니라, <진리>를 직접 가르치는 사람도 많다. ㅎㅎ...

"진리는 여러 개가 아니라 하나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고,
"진리는 예수교에만 있다."고 열을 올리는 예수쟁이도 많았고, 그것이 불교에도 있다는 불자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종교마다 진리가 들어 있지 않은 곳은 없었던 것 같다. ㅎㅎ...
"진리는 여호와(예수)를 믿고 따르는 것 자체"라고 열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고,
"진리는 깨달음이다."라고, 아직 깨달아 보지 못한 사람의 수박 겉 핥기 식 사람도 있었다.

결국, <진리>를 찾은 사람을 만날 수는 없었고, <자유>란 것을 얻은 사람을 만나 볼 수는 더 더욱 없었던 것 같다.
진리가 뭔지 아직 그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사기꾼 아니면 위선자들의 말장난만이 나무하는 세상일 뿐이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속담이 있다.
마찬 가지로 <자유를 획득하는 일>보다 <진리를 찾는 일>이 더 어려울지도 모를 일이다.

"진리(眞理)를 찾아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를 통해야 여호와에게 갈 수 있다." "여호와가 허락해야 예수를 믿을 수 있다."
이것들이야 말로, 똥창이 척척 맞아 떨어지기도 하고 쌍벽을 이루는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고 뭘까?
역시, 예수다운 가르침이로다. 과연, 명불허전(名傳)이로고!
제삼자 2013-03-04 (월) 21:44
[정의와 관대함]


<관대함>이란 상대를 대하는 마음이 너그럽고 큼을 이르는 말이다.
구체적인 상황을 대입하여 생각해 보면, 관대함이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성공한 사람이 실패한 사람에게,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베풀 수 있는 아량과 비슷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색하기는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는 있다. "쥐가 고양이를 생각한다."고나 할 수 있을까?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이 있다.
그렇다, 자기 형편이 어렵고 힘들면 남을 배려할 여유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반면에, 사람은 여유가 생기면, 그 다음 욕심으로 <명예>라는 가장 커다란 욕망을 쟁취하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명예를 쟁취할 수 있는 지름길이 바로 <관대함>을 나타내는 언행이다. 이때, 그 표출된 관대함이 참인지 거짓인지 구별하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사람이 목숨까지 바쳐 가면서 희생 정신으로 이웃을 돕는다고 하여도, 냉철하게 자기 속을 들여다 보면 100 % 모두가 철저하게 자기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의 숙명이다."석가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이 가르침에 비추어 본다면, 과연 인간의 속에 진정한 의미의 <관대함>이란 것이 들어 있을까!
그렇다. <관대함>은 결국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며, 오히려 자기를 한 차원 높이기 위한 들러리일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고을의 부잣집 가훈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 집에서 100 리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굶어 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느 선(線) 이상으로 출세한 사람으로서 관대하기는 그렇게 어려울 것이 없는 것이다.
아니, 그 관대함이란 것이 더 큰 것을 훔치기 위한 고단수의 권모술수라는 것을 발견할 때도 많다.
또, 관대한 일을 하면, 실질적으로 행복감이 얻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속임수 없이 행할 수 있는 일이 관대함이다.

법(法)이 제정되어 있어도 <운용의 묘미>가 없다면, 그 법은 사장되어 있으나 마나 하거나, 오히려 악용될 우려도 있게 된다.
마찬 가지로 <정의>라는 것도 자기 입맛에 맞도록 이리 저리 구부려 놓는다면, 정의가 아니라 악으로 전용되기도 한다.
사실상, 정의가 정의답게 씌어진 곳은 인류 역사 전체에다 견주어 봐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만약, 정의를 정의답게 해석도 하고 바르게 활용할 수만 있다면, 인류 사회 속에서 정의보다 값지고 큰 것은 없을 것이다.

<관대함>도 훌륭한 것이고, <정의>도 위대한 것이지만, 그 중에서 더욱 값진 것을 하나만 택하라고 한다면.....
사람(상대)에게 관대함을 베풀다가 욕을 먹거나 목숨에 위협을 받게 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관대함을 배풀다 보면, 칭송을 들을 때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정의를 실천한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라도 목숨도 담보해야 되고, 심지어는 가족까지도 불행 속으로 끌어 들일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언행이 바로 정의의 실천이다.

인류 역사 속의 모든 우여곡절은 바로 정의로우냐 그렇지 못하냐와 직결된 것이다.
또, 위대한 사람 중에는 비명횡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그 원인도 정의를 실천하다가 이를 시기하고, 자기의 불의를 감추려는 적들에게 당하는 비극이다.
따라서, 인류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정의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정의가 제대로 밝혀진 것은 1/100 아니 1/1,000도 안 될 것이다.
거의 모두가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쓰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가는 것이 정의이다.
그래서도 정의는 한량 없이 눈물 겹도록 위대함이다.
((정의와 선(善)을 가장 작게 축소시켜 놓은 것이 법(法)이다.))

얼른 생각하면, 관대한 사람은 부드러운 인격자로 느껴지고,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은 원리 원칙을 따지는 엄격주의자로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도, 정의로운 사람보다는 관대한 사람에게 좀 더 정이 가고, 인기가 더 높을 수도 있다.
그러나, 관대한 세종대왕(공자라도 좋다)이 다스리는 왕권 시대에 살고 싶은가, 아니면, 정의(法?)로 다스려지는 현대 민주주의 시대(가장 못돼 먹은 대통령의 이름을 명기하지 않음)에 태어나서 살고 싶은가?

참고; 게시판에서 회원 몇 분이 <정의>와 <관대함>의 우열을 놓고 논쟁하는 것이 보여서 잠시 생각해 본 글이다.
제삼자 2013-03-11 (월) 15:53
[위대한 신앙심의 최후 보루]


["내가 복음(福音=바이블)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救援)을 주시는 여호와의 능력이 됨이라..."]-바울/예수교 최고 최대의 사도/사실상의 예수교 창설자

(로마서 1;16)


1) 누가 뭐랬나? 도둑이 제 발이 저리다더니...저 깊은 마음 속에서는 부끄러웠던 모양이지?
혼자 이불을 쓰고 누워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믿어지지 않던가 보다.
허구(虛構), 궤변(詭辯), 모순(矛盾)을 억지로 합리화시키며 믿어 보려 하다 보니, 배운 자로서 부끄럽던가?

아니, 그보다도, 예수교(즉 허구)의 이름으로 아녀자들의 코 묻은 재물을 후려서 먹고 사는 일보다 더 부끄러운 짓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속일 수는 없었겠지?


2)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이 양복을 쭉 빼입고, 바이블을 옆구리에 끼고서, 대로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실소(失笑)를 금할 수가 없다.
그 바이블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 본 자라면, 돈을 주면서 시켜도 못할 것이다.

아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요일 날이면, 바이블과 찬송가라는 것을 소지하고 멋을 부리며 걸어다니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단 한 사람에게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게 된 것 같다.

무차별 잔인한 살인 만행질, 노략질, 포르노 이야기, 허구와 모순과 궤변을 뒤범벅시킨 내용으로 가득 채워진 책을 어떻게 옆구에 끼고서 그렇게 의젓할 수가 없게 된 것 같다.
정말로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아니, 분명히 많이 달라졌다. ㅎㅎ...

"무식(無識=바보?)이 태평(太平)"이란 말이 있다. 아주 제격으로 들어 맞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교회에 드나드는 짓, 바이블을 들고 다니는 짓을 멋(교양있는 척?)으로 여기던 시대는 이제 종말을 고했다고 여겨진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은 이제 정신 병자들의 발광이 된 지 오래 됐다.


3) 부끄럽지 않기로 따지자면, 불교인도 불경이 부끄러울 리 없고, 모슬렘은 코오란이 뿌끄럽지 않을 것이며, 유교인도 4 서 5 경이 부끄러울 턱이 없다.
물론, 학자에게 있어서는 연구 서적이 부끄럽지 않을 것은 당연지사이고...

바울은 무슨 연유로 복음(바이블)이 부끄럽지 않다느니 뭐니 했을까?
스스로 바이블(신약)의 거의 절반을 써서 삽입시켜 놓고는, 당사자로서 그 바이블이 부끄럽지 않다고 떠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인류 역사상, 바울보다 더 많은 전쟁과 살인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있을까?
지금도 부끄럽지 않은가? 아니, 후회되지 않는가?


4) 사람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일까? 살인일까? 도둑질일까? 폭력일까?
아니다. 가장 무서운 짓은 다름 아닌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다.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이라도, 훌륭하면 훌륭할수록 먼 훗날, 그 가르침에 세뇌되고, 마침내 습(習)으로 굳어진 사람들에 의하여 별별 만행질이 횡행하게 되어 있다.

특히, 그것이 정신 세계를 훔쳐 내는 종교 특히, 예수교의 가르침(믿음)에 이르러서는 수습되기에는 너무도 끔찍한 현상을 쏟아 놓게 되었다.
종교적으로 가장 옳다고 우기는 사람의 최종적 결단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순교 정신이 아닐까?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는 신앙심으로 무장하고서 자살 테러와 함께 전쟁을 감행하지 않던가!
제삼자 2013-03-14 (목) 09:11
[예수 가로대, "너희는 나를 안다."]-뭐라꼬?


甲이 와서 말했다. "일확 천금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라고.
<일확 천금>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甲의 말이 모두 거짓말이라면, <일확 천금>은 아무 의미가 없는 말장난이다.

예수가 말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그러나, 그런 말을 할 때의 예수의 말 속에 모순과 궤변이 숨어 있다면, 또, 예수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 <길>과 <진리>와 <생명>은 아무 쓸모가 없는 헛소리일 뿐이다.

이제, 예수의 말을 직접 들어 보기로 하자.



[(예수 가라사대)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여호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2)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3)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여호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 14;1~6)


(1) (예수 가라사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여호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천국의 존재를 인정(믿는=아는)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천국에 거할 곳이 없을 것 같아 이것을 근심하는 경우도 있을까?
등에 지고 있는 배낭 속에 먹을 것이 잔 뜩 들어 있고, 주머니 속에는 현금도 들어 있으며, 심지어 현금 카드까지 소지하고 있는 사람이 서울 시내를 구경하다가 굶어 죽을까봐 근심하는 사람도 있을까?

그런데, 예수는 말하고 있다. "천국에는 거할 곳이 많으니까 근심하지 말라."고.
천국을 설명할 때, 그 곳에 사람이 거할 곳이 있을까 없을까를 근심하게도 되는가?

그런데, 중간에 느닷없이 기상천외한 장면이 돌출하고 있다. "너희는 여호와를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예수의 말이다.
여기에서, 아직은 여호와를 믿는다고 말한 사람도 없으며, 앞으로 믿을 작정이라고 말한 사람도 없다.
그런데, "너희는 여호와를 믿으니 또, 나(예수)를 믿으라."가 성립될 수 있는 말일까?

어쨌든, 여호와를 믿는 사람은 자동으로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여호와를 믿는다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째서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일까?
믿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의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떠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2) 서두부터 "천국에 거할 곳이 충분하다."고 말한 것은 예수였다.
그런데, "그렇지 않으면...내(예수)가 가서 예비한 후에 너희를 영접하러 오겠다."는 것이다. 거할 곳이 충분하면 다 된 것이다. 그런데, 또 다시 무엇을 예비한다는 것일까?
아침 밥상 위에 밥과 국과 반찬이 올려져 있으면, 그냥 먹기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또 예비를 한다는 것일까?

말이 전혀 성립될 수 없는 궤변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얘기를 더 진전시켜 보자.

"거할 곳(천국?)이 예비가 되면, 예수쟁이들을 영접하여 데리러 오겠다."고 말을 해 놓은 자는 예수였다.
그러나, 예수는 2,000 년이 지나도록 오지 않고 오리무중으로 아직까지 감감 무소식이다.
천지를 창조할 때에도 6 일 밖에 걸리지 않은 예수(=여호와)였다.
그렇거늘, 천국에다 예수쟁이들이 거할 처소를 예비하는데 2,000 년으로도 끝이 나지 않았는가?

아직도, 예수의 말 속에는 인간이 터득할 수 없는 오묘한 섭리가 따로 있는 것인가?

(3) [(예수 왈) "내가 가는 곳(천국?)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예수의 제자)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천국 가는 길을 알고 있느니라."라고 단정적으로 통고하고 있다.
그러자, 제자 중 하나인 도마가 바른 말을 한다. "우리는 그 길을 모르는데요."라고. 어떤가? 말이 성립된 대화였는가?

예수쟁이들이 거처할 천국이 예비되면 영접하러 오겠다고 약속을 해 놓고서, 이제 와서 "너희가 그 길을 안다."가 무슨 말인가?
천국 가는 길을 알고 있으니, 너희들끼리 알아서 찾아 오라는 말인가? 약속이 틀리지 않은가?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더 확인을 해 보자.


(4) "천국에 거처할 곳이 없을까봐 근심하지 말라."-예수의 말이다.
그러나, 천국에 거할 곳이 없을까봐 근심하는 사람도 있던가?
천국이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게 문제이지, 일단 천국을 믿게 된 사람이라면, 거처할 곳 따위로 근심할 사람이란 없는 것이다.
결국, 예수의 말은 헛소리였음이 증명된 셈이다.

"여호와를 믿으니, 나(예수)를 믿으라."-역시 예수의 말이다.
예수와 여호와는 동떨어진 아주 다른 물건(?)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여호와를 믿으니까, 예수도 믿어야 한다."는 말일까?
어쨌든, 여호와를 믿는 이스라엘 족속 중에 예수를 믿는 사람은 없다. 어쩔 테냐?

"천국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러나, 만약 부족하면 내(예수)가 예비해 놓겠다."-이것도 예수(神?)의 말이다.
그러나, 이것도 신의 말일 수가 없다.
천지(천국도 포함해서)는 이미 6,000 여 년 전에 창조됐으며, 그 때, 여호와는 창조된 모든 것이 만족해서 아주 좋아했었다.
그런데, 무엇이 부족해서 또 <예비>하는 짓을 한다는 말인가?

"거처할 곳이 예비되면 영접하러 오겠다."-예수의 약속이다.
그러나, 2,000 년이 지나도록 오리무중이다. 전지전능자에게 그렇게 오래 걸릴 일은 없다.
천지(온 세상)을 창조하는 데도 6 일 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그까짓 거처 정도를 예비하는 일에 2,000 년이 걸리고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일까?

"너희는 천국 가는 길을 안다."-예수
"우리는 천국 가는 길을 모릅니다."-인간
어떤가? 성립되는 대화라고 여겨지는가?
무지한 인간을 상대하여 신(神)의 우격다짐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너는 안다."가 되는 말인가? 예수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는 반증이다.

"나(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예수의 명언이다.
이 말이 뭔 말인지 아는 예수쟁이는 손을 들어 보라.
문자주의 예수교로서는 풀 수 없는 말이다. 영지주의로 생각하려 해도, 위의 전제 조건들이 모두 궤변이므로, 이 말도 궤변일 수 밖에 없다.

입으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했다고 하여 길이 되고, 진리가 되고, 생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 예수의 언행 중에 길, 진리 그리고 생명을 상징할 만한 것은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다.
천지를 창조한 전지전능자라면서, 수 천년이 지나도록 인간이 터득할 수 있는 방법 하나 제시하지 못하고 입으로 말장난만 치는 예수(여호와)는 허구(虛構)일 뿐이다.

인간의 과학과 논리로 재단하여 어느 한 가지도 <거짓>아닌 것이 없는 바이블은 지독한 악서(惡書)일 뿐이다.
설령, 바이블이 <참>이라 해도, 예수(여호와)는 악신(惡神) 내지 악마(惡魔)에 속한다.
제삼자 2013-03-16 (토) 11:40

[싹싹 훑어서 착취해 먹어라]


요즈음, 새로 출범한 한국 정부에서는 노년층을 비롯한 각종 불우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취지로 분주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그러나, 불우 이웃을 돕는다는 것은 악행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특히, 그 불우 이웃 돕기는 예수(여호와)의 가르침을 거역하는 아주 못된 짓에 해당한다.

일단, 바이블(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을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마가 12; 42~44)


어떤가? 어느 예수가 불우 이웃을 도우라고 했는가?
오히려, 힘들게 살아 가는 과부의 몇 푼 돈까지라도 싹싹 훑어서 빨아 먹으라고 했지, 그 어려운 과부에게 보태주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불우한 이웃 즉, 가난한 사람은 <그 구차한 중에서도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교회에다 바쳐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불우한 이웃을 돕겠다고 재물을 준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렇다. 오히려, 불우한(어리석기까지 한) 이웃으로부터는 철저하게 싹 쓸어 훑어 빨아 먹어야 되는 것이다.

이 때, 가장 중요한 일은 돈 바치는 사람을 칭찬하며 추켜 주는 것이다.
바보도 칭찬과 명예를 좋아 할 줄을 알거든...

이상, 예수교의 교주 예수가 연보궤(돈 걷는 궤짝통) 옆에 앉아서, 돈 바치는 사람을 일일이 체크하면서 점수를 매긴 결과이다. 아멩!

참고 1; 제삼자의 바이블 해석이 지나치게 억지라고 들리는가?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다른 해석을 보여 주기 바란다.

참고 2; <고드란트>-현재 우리 한국의 하루 품삯이 5만 원이라면, 1 고드란트는 800 원 쯤 되는 돈이라고 한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의 총 재산 1 고드란트까지 훑어내는 짓이라니...
예수가 제대로 된 신(사람)이라면, "네가 재물을 바친다는 것은 남의 눈을 의식한 미친 짓이다."
이러면서, 과부의 철부지 짓을 제지시켰어야 되는 것이다.
제삼자 2013-03-18 (월) 12:05
[정말로 능력이 대단한 녀석]


[빛을 만든 것도 나(여호와)요,
어둠을 지은 것도 나(여호와)다.
행복을 주는 것도 나(여호와)요,
불행을 조장하는 것도 나(여호와)다.
이 모든 일을 나 여호와가 하였다.]

(이사야 45; 7)


** 할 말 없음.
    아니, 할 말 찾지 못함.
제삼자 2013-03-21 (목) 10:51
[인간은 3 가지 밖에 만들 수 없다]


아래 이야기는 예수교의 신 <여호와>를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한 모세 때의 사건이다.
우선, 바이블 몇 구절을 잠간 보기로 하자.


(1) [바로(애굽 왕)도 박사와 박수를 부르매, 그 애굽 술객(사람)들도 그 술법으로...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여호와 쪽)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출애굽기 7;11~12)

(2) [...애굽의 술객(사람)들도 자기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물로 피를 만들므로)...]  (출애굽기 7;20~22)

(3) [술객(사람)들도 자기 술법대로 이와 같이 행하여 개구리로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였더라.]  (출애굽기 8;7)


수 천 년 전의 애굽(이집트) 사람들이 뱀과 피와 개구리를 만들었다는 바이블 구절이다.
물론, 예수교의 신 여호와 쪽에서도 뱀과 피와 개구리를 만들었을 것은 뻔한 얘기이다.
여호와 쪽에서는 어려운 것을 포함해서 10 여 가지를 만들 수 있었지만, 사람 쪽에서는 아주 쉬운 것(?) 3 가지(뱀, 피, 개구리) 밖에는 만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 참고; 옛날 사람들이 저러했으니까, 요즈음 사람들이 뱀이나 개구리와 피를 만들어 내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쉽겠지? ㅎㅎ...

사람의 빈약한 재주에 비하여 예수교의 신 여호와가 얼마나 재주가 뛰어난 능력자인가를 알려 주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아멩!
그러나, 죽어서 말라 비틀어진 식물(지팡이)을 살아서 움직이는 동물(뱀)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또, <맹물>로 <피>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있을까? 또, 맑은 강물 속에서 무수히 많은 개구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있을까?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상의 내용은 예수교의 신 <여호와>를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했던 모세가 떠들어 댄 말(바이블 내용)이다.
그러나, 수 천 년 전의 미개 시대의 애굽 사람들이 무슨 재주로 죽은 식물(지팡이)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서 움직이는 동물(뱀)을 만들 수가 있겠는가?
물론, 맹물로 피를 만들 수도 없는 일이고, 맑은 강물 속에서 무수히 많은 개구리(양서류)를 만들어 낸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허구일 뿐이다. 

바이블을 기록한 사기꾼이 좀 더 머리가 돌아가는 인간이었다면, 인간 쪽에서는 단 한 가지도 만들지 못했다고 기록을 남겼어야 했다.
오직,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만이 온 우주 속의 오만 가지를 모두 만들었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런데, 쉬운 것(?) 3 가지는 인간 쪽에서도 만들 수 있었다고 떠들어 놓은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 실수가 되고 말았다.
 
바이블 기자는 그 시원찮은 잔머리를 굴리느라, 위대하신 여호와 쪽에서는 10 여 가지를 만들 수 있었고, 무능한 인간 쪽에서는 쉬운 것 3 기지 밖에 만들지 못했다고 너스레를 떠는 바람에, 바이블이 통째로 허구가 되고, 그 허구 속에서 소개된는 여호와(예수)도 허구가 된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던 것이다.

바이블 내용은 통째로 허구(거짓)이다.
따라서, 바이블 속에서 떠들고 있는 모세는 허구이며, 모세(허구=거짓)가 소개하는 <여호와>도 허구가 됨은 당연하다.
또, 스스로를 여호와(허구)의 독생자라고 큰 소리치는 예수도 허구(거짓)가 되는 것이다.

예수교는 허구끼리 서로 추켜 주며 짜고 치는 고.스톱이요, 사람의 눈을 속이기 좋은 종교의 탈을 쓰고서 재주 부리는 혹새무민 집단일 뿐이다.

출애굽기(허구)-->모세(허구)-->여호와(허구)-->예수(허구)-->예수교(허구)-->혹세무민 집단(이것만 실체임)
예수교는 오직 혹세무민(사기꾼)질을 하는 부분만이 실체이고, 나머지는 송두리째 허구(거짓)이다.


* 여기에서는 거론하기를 삼가하겠지만...
여호와가 실시했다는 10 가지 재앙은 뒤로 갈 수록 많은 재물과 인명을 파괴한다는 점에서는 거대하다고 할 수 있지만, 과학적 이론으로 따지자면, 오히려 앞부분에서 실시된 재앙들이 훨씬 불가능한 사건들이다.
다실 말해서, 과학적 이론으로 불가능한 앞부분의 기적질을 인간도 할 수 있었다고 하고, 겉보기에는 거대하지만, 과학적 이론으로는 여건만 갗추어진다면 인간도 할 수 있는 기적질을 인간은 할 수 없었고, 여호와 쪽에서만 할 수 있었다고 떠들고 있는 바이블 내용!
이 부분 한 가지만 가져도 바이블(예수교)은 통째로 허구, 모순, 궤변이 되는 것이다.

결국, 바이블(예수교)은 고대 미개인들이 생각해 낸 신관(神觀)에다 수천 년에 걸쳐서 종교 사기꾼들에 의하여 혹세무민술이 가미된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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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삼자 12/05/26 4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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