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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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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인원 : 3,879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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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39[개망신]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3-07-21 (일) 07:08 조회 : 4813
*39[개망신] 

* 개망신--아주 큰 망신.
   망신--말이나 행동을 잘못하여 자기의 명예나 체면 따위가 손상을 입음.
 
영국 역사상 가장 중요했던 식민지는 아무래도 인도(India)였을 것이다. 그런데, 영국이 그 인도 땅을 가지고 있기가 대단히 힘들었다.
특히, 간디를 중심으로 뭉쳐서 벌이는 줄기찬 인도의 독립 운동은 영국의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마침내, 영국 여왕이 간디를 직접 만나서 협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간디가 영국 여왕을 만나기 위하여 런던에 오던 날, 영국 사람 수 십 만이 연도로 쏟아져 나왔다. "도대체, 간디가 어떤 사람이기에 여왕까지 나서서 다루어야 된다는 말인가?" 전 세계 사람들이 궁금해 했다.
그런데, 영국 여왕과 영국 국민들 앞에 나타난 사람은 달랑 빤스 하나 만 입은 거무잡잡한 미개인(?)이었던 것이다.
 
영국의 모든 일간지에는 "빤스만 입고 대로를 활보하는 미개인"이란 제목이 대문짝 만하게 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자 "대영제국 여왕의 망신"이란 제하의 글이 앞 다투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숙녀가 벌거벗은 남자를 만난다면, 숙녀 쪽의 망신인까? 벌거벗은 남자 쪽의 망신일까?  
마찬가지 의미에서, 전지전능한 신이 사람을 창조해 놓고, 그 사람으로부터 칭송을 받으려는 욕심을 내고 있을 때, 옆구리 찔러 절 받기를 하고 있는 형편이라면, 그것은 "여호와(예수)에게 영광인가?" 아니면, "여호와(예수)의 개망신일까?"

대통령이나 재벌 총수가 된다는 것은 대단히 큰 영광이 아닐 수가 없을 것이다. (실질적으로 과연 영광이 있었는지는 어떠했는지는 별개이지만.)
그러나, 취직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힘든 요즈음, 대통령 또는 재벌 총수까지 논할 필요 없이, 평직원이 아닌 과장이나 부장 또는 사무관이나 이사관 급에 오르기만 해도 그것은 가문의 큰 영광이 될 것이다.
아니, 조그만 회사(단체)에 일 자리 하나만 얻더라도 그것만으로도 서민으로서는 영광 이상의 커다란 큰 축복이요 행복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전지전능하다는 신(여호와=예수)의 경우는 사람의 세계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지구 위의 인구가 60 억이라고 할 때, 5,999,999,999 명은 여호와(예수)를 믿고 또 받들고 있으나,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그 여호와(예수)를 믿지도 않고 거역하고 있다면, 그 사실은 여호와(예수)에게는 씻을 수 없는 개망신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절대와 완전 속에 0.00000000001 %의 오점인들 용납될 수가 없을 테니 말이다. 안 그런가?
하물며, 한(1) 명이 아니라, 60 억 명 중 45 억 명 이상이 여호와(예수)를 원수처럼 여기고 있다면, 이 현상은 여호와(예수)의 영광인가 아니면 개망신인가?

한 술 더 떠서, 예수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는 있지만, 무늬만 예수쟁이일 뿐, 여호와(예수)를 제 집 종놈 부리듯하면서 똥통보다도 더 더럽게 썩은 냄새를 풍기고 있는 종자들의 거짓 칭송(아니, 아부도 못되는 것?)으로도 영광이란 것이 나올 수가 있을까?
여호와(예수)를 이웃집 개만큼도 여기지 않는 45 억 명에게서는 물론, 소위 예수쟁이라고 일컬어지는 종자 15(?) 억 명으로부터도 영광이란 물건은 냄새도 안 날 것이다. 
아무리 따져 봐도,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이 우주 속에 여호와(예수)에게 영광이 될만한 것은 터럭만큼도 없다. 이 우주 속에는 여호와(예수)를 위하여 오직 개망신 밖에는 나올 것이 없을 것이다. 
창조해 놓은 인간들에게서 무엇인가 잘못된 점이 발견되어 홍수로 전멸시켜야 될 일이 발생했다면, 이는 전지전능자의 영광일까 아니면, 전지전능에 흠집이 생기는 개망신일까?
절대와 완전을 자랑하는 전지전능자가 만들어 놓은 세상이 못 마땅하여 결국은 멸망시켜 버리고 새로이 천당이란 것을 만들기로 했다면, 이는 전지전능자의 영광인가, 개망신인가? 
이유야 어떠하던, 인간의 비극적인 삶이 하나라도 존재하는 세상이라면, 이는 전지전능한 창조자의 영광에 해당할까? 아니면, 개망신에 해당할까?

* 이상, 예수쟁이 같이 딱딱한(딴딴한) 돌대가리를 가진 종자들에게는 뭔 말인지 감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말이다. 그지?


(1) 여호와(예수)의 백성 히브리(또는 예수쟁이)가 제대로 된 삶을 가질 수 없는 불행한 환경에 처해 있다면, 이는 변명의 여지 없이 여호와(예수)의 개망신이 아닐 수 없다.
히브리가 나라 없이 극단적인 고난의 삶을 가지게 된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잡신(雜神)을 섬긴 죄 값이라는 이상한 말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여호와의 구차한 변명이요 궤변이다.
왜냐 하면, 히브리를 쓸어 박고 못살게 괴롭히는 사람들이 바로 잡신을 섬기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히브리의 불행이 잡신을 섬기기 때문에 받는 벌이라면, 히브리를 벌 주기 위하여 군림하는 타민족들의 복(福)된 삶은 무엇일까?
그 타민족들은 여호와가 아닌 잡신을 섬기면서도 여호와의 백성에게 벌(罰)까지 시행하면서 잘만 살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2) [이에 바로(왕)가 그(아브람의 처를 빼앗은 짓)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 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창세기 12;16)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이 자기 계집을 애굽의 바로왕에게 얼마 동안 빼앗긴(빌려준) 대가로 많은 재물을 벌게 된 장면이다.
흉년을 피하여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명에 따라 애굽으로 피난을 가게 되는데, 이 때, 아브라함은 속임수를 쓰다가 오히려 계집을 애굽 왕 바로에게 빼앗기게 된다. 제 새끼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여호와의 개망신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호와는 엉뚱하게도 바로왕에게 벌을 주려고 한다. 속임수를 쓴 자는 분명히 아브라함인데도 말이다. 여호와의 행패(변명)는 "똥 싼 놈이 화내는 격"으로 나타난 셈이다.
자세한 내용은 "계집 대여 사업" 편에서 논했다. (참고 바란다.)


(3) [바로(왕)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總理)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바로가 그로 애굽 전국을 총리하게 하였더라.] (창세기 41;41~43)

여호와가 택한 백성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 요셉은 여호와의 능력에 힘 입어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됐다는 이야기이다.

애굽은 여호와 아닌 태양신을 받들던 민족이다. 그런데, 여호와가 택한 백성의 우두머리가 태양신(잡신)의 나라에 들어가서 왕이 아닌 총리가 된 것을 자랑하고 있다.
전지전능한 신이 택한 백성의 우두머리라면, 지구 전체를 대표하는 왕 노릇을 하더라도 석연치 않은 일이거늘, 애굽이라는 별 볼 일 없는 나라의 왕이 아닌 <총리>가 된 것을 자랑하고 있다는 것은 여호와의 개망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4)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役事)를 엄하게 하여, 고역(苦役)으로 그 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엄하였더라.] (출애굽기 1;12~14)

여호와의 택한 백성 히브리가 애굽에서 종살이로 고생하는 장면이다. 430 년간 이런 종살이를 했다고 한다.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좋은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텐데 자기 백성을 이렇게 불행하게 이끌고 있다는 것은 개망신이 아닐 수 없다.
종살이 환경에서도 여호와의 백성이 번식하고 창성했다고 자랑이 대단하던데, 이것이야 말로 "앉은쟁이 뭣 자랑하기" 이상 가는 웃기는 일이요, 여호와의 개망신이다.

종살이의 이유가 히브리에게 주기로 약속한 땅에 아직은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이것을 변명이라고 하는가? 사막과 돌짝밭 뿐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속이면서 벌이는 여호와의 변명이다. 궤변이 아니고 무엇인가?
여호와의 택한 백성이 잡신을 섬기는 남의 나라에 들어가서 430 년 동안 종살이라니, 어떤 변명을 늘어 놓아도 개망신일 뿐이다.


(5)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金)고리를 빼어 아론(모세의 형)에게로 가져 오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神)이로다." 하는지라.] (출애굽기 32;3~4)

여호와는 죽을 힘을 다 기울여 자기 백성 히브리를 애굽에서 구출하여 내었건만, 히브리 족속은 엉뚱하게도 금송아지를 빚어 놓고, 이것이 자기네들의 신(神)이라며 받들고 있다. 이것이 여호와의 대 개망신이 아니고 무엇인가?
여호와는 변명한다. "히브리가 악(惡)하고 교만(驕慢)하다."고. 말도 안되는 궤변이다. "뭣 주고 뺨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여호와가 바로 그 짝이다.
여호와는 히브리 족속을 종 살이에서 건져 주는 큰(?) 일을 했지만, 히브리 족속은 그 고마운 여호와의 은덕을 외면하고, 엉뚱한 금송아지를 받들어 모시기로 했다고 한다. 이보다 더 큰 여호와의 개망신살이 있을까? ㅎㅎ...


(6)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고로, 그가 산지(山地)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鐵兵車)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사사기 1;19)

여호와가 허락한 땅을 히브리가 정복할 때, 철병거(鐵兵車)로 무장한 강력한 원주민은 몰아낼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아이구 창피해라. 여호와의 전지전능은 어디로 갔나?
여기에서도 여호와의 변명은 구구한데, 그 한 가지는 다음과 같다.
"먼 훗날, 전쟁을 모르는 히브리의 후손들에게 전쟁 교육을 시켜 주기 위하여 열국을 멸망시키지 않고 남겨 두었다."고. 신(神)이라는 작자가 할 수 있는 변명인지 모르겠다. 여호와의 대망신일 뿐이다.


(7)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滅)할 때에...] (열왕기상 18;4)

이세벨은 이스라엘 왕국의 제7대 왕 아합의 왕후이다.
이세벨은 친정(페니키아) 쪽의 신(神) 바알과 아세라상만을 받들고 그 선지자들을 극진히 아낀다. 반면에, 그녀는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보이는대로 잡아 진멸시킨다.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의 대망신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도 여호와는 변명을 한다. "아합(왕)은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惡)을 더 많이 행하였다."고. 경우에 어울리지 않는 궤변이다.
전지전능한 신이라면서, 제 자식들을 지키지 못하는 여호와, 지금까지도 순교자(殉敎者)라는 이상한 것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이는 여호와(예수)의 무능을 나타내는 좋은 보기이다.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를 보이는 대로 잡아 죽인 일이나, 예수교 역사 속에 무수히 보여지는 순교 현상은 여호와(예수)의 씻을 수 없는 죄요, 개망신일 뿐이다.


(8) [...앗수르(앗시리아) 왕이 곧 은 300 달란트와 금 30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로 내게 한지라.
히스기야가 이에 전(殿=여호와의 집)과 왕궁 곳간(庫間)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또 그 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전문(殿門)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열왕기하 18;14~16)

앗수르(앗시리아) 왕이 유다에 쳐들어와서 여호와의 집인 신전 곳간의 은(銀)과 신전 기둥에 입혀 놓은 금(金)을 모두 벗겨 갔다는 말이다. 전지전능한 신으로서 이보다 더 큰 개망신이 어디에 있겠는가?

여기에서도 여호와의 변명은 있다. "유다가 여호와 앞에서 악(惡=여호와를 버리고 잡신 섬김)을 행하여 내리는 벌이다."라고.
그러면, 여호와가 아닌 잡신만을 섬기고 있는 앗수르(앗시리아)는 무엇인가? "잡신이 여호와의 신전에 꾸며 놓은 보물들을 모두 훑어 갔다." 이보다 더 큰 여호와의 개망신이 또 있을까? 어쨌든, 멋진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여호와는 "앗수르도 결국은 망할 것"이라고 둘러대지만, 이것도 궤변이다. 여호와의 신전, 예수의 몸이라는 교회, 예수교의 기념비 등등, 예수교의 어떤 것이라도 멸망당하고 폐허가 되지 않는 것은 없다.
따라서, 여호와(예수) 쪽에서 어떤 상대를 지칭하며 "너는 결국 멸망할 것이다."하고 예언을 해 봤자, 그것은 우주의 질서(진리)를 대신 떠들어 댄 궤변일 뿐, 여호와(예수)가 예언을 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나타날 자연의 철칙이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이 멸망되는 과정을 막지도 못하고, 폐허가 되는 것도 막지 못하는 여호와(예수)의 무능! 이것보다 더 큰 개망신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전지전능한 신이신가? ㅎㅎ... 


(9) [요시야(왕) 당시에 애굽 왕 바로느고가 앗수르(앗시리아)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하수로 올라가므로 요시야왕이 나가서 방비하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나본 후에 죽인지라.]

(열왕기하 23;29)


애굽 왕이 유다 왕 요시야를 죽여 버렸다는 말이다. 태양신의 자식이 여호와의 자식을 죽여 버렸다는 말이다.

유다 왕 요시야는 율법책(바이블-어디에 왜 숨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을 발견해 내고, 이것을 백성들에게 읽어 주고, 전무후무한 큰 명절로 유월절(여호와의 명절)을 개최하고, 전국에 있는 잡신의 신당과 우상을 혁파하여 가루로 만든 여호와의 위대한(?) 일꾼이었다.
이만하면 요시아왕은 여호와에게는 1등 공신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한 여호와의 1등 공신이 잡신을 섬기는 애굽 왕에게 힘 없이 잡혀 죽임을 당한 것이다. 여기에도 여호와의 변명은 있다.
"요시야왕의 할애비 므낫세왕의 악(惡)이 워낙 커서 그 손자인 요시야왕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고. 웃기는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할애비의 잘못을 손자에게 뒤집어 씌워서 죽인다는 게 말이 되는 법인가?
이런 궤변으로 변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됐던 당시의 여호와의 개망신살이 눈에 선하다. ㅎㅎ...

* 망신살(亡身煞)--망신을 당할 운수.


(10) [그 때에 바벨론(新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수살렘에 올라(쳐들어)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
...저(느부갓네살왕)가 여호와의 전(殿)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전의 금기명(金器皿=온갖 그릇)을 다 훼파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저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방백과 모든 용사 합(合) 10,000 명과 모든 공장(工匠)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빈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열왕기하 24;10~14)


여호와의 백성 히브리가 완전히 멸망하여 인류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추는 장면이다.
바벨론(新바빌로니아)의 왕에 의하여 여호와의 신전(神殿)이 박살되고, 여호와가 보호해 주고 있다는 히브리 왕국도 거덜이 난다. 아이구 창피해라. 여호와의 개망신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 때, 빈천한 사람 또는 못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특히, 각종 기술자와 뛰어난 사람)을 사로잡아갔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도 여호와의 변명은 있다. "히브리 족속이 여호와를 배반했기 때문이다."라고.

그러나, 이 때 히브리를 멸망시킨 바벨론(新바빌로니아)은 여호와가 아닌 잡신을 섬기는 나라였다. 히브리 왕국이 여호와를 배반했기 때문에 멸망당한 것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여호와가 아닌 잡신을 섬기던 바벨론의 융성은 그 이유가 무엇일까?
더욱 재미 있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 같이 되었더라."라는 변명 아닌 변명이다. (개망신을 당하면서도 자기 점괘가 쪽집게처럼 정확했다고 자랑을 해대는 여호와! 원문이 길어져서 생략했음)
여호와의 어떤 다른 방법(능력)으로 히브리 왕국이 멸망했다면 모를까, 잡신을 섬기는 민족이 여호와의 백성을 멸망시키고 포로로 잡아갔다는 것은 여호와의 어떤 변명으로도 설득력이 없는 개망신일 뿐이다.


(11)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칙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神)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殿=여호와의 집)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에스라 1;1~2) (역대하 36;22~23)


여호와는 잡신(아후라마즈다)을 섬기는 페르시아 왕 고레스에게 천하 만국을 주고, 예루살렘에다 여호와의 신전을 재건축하라는 명을 내렸다는 말이다.
자기의 백성이 세운 나라와 신전은 지켜내지 못한 여호와가 겨우 남의 나라의 다른 신의 자손에게 자기 신전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꼴이다. 이것이 여호와의 개망신이 아니고 무엇인가?
자기 백성이 다른 신을 섬기면 이것을 참지 못하고 길길이 날뛰는 녀석이요, 극렬한 진노와 격노를 발하는 여호와가 아니던가?
그런데, 배화교(아후라마즈다신)의 신자인 고레스왕에게 천하 만국을 주었다는 게 되는 말인가? 정말 여호와가 그것을 주었는가?

일제(日帝) 때, 여호와의 자식(예수쟁이)들이 신사(神社) 참배를 했다던데, 위에서 여호와가 배화교의 왕에게 아부하던 짓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이쯤에서 여호와(예수)는 쥐 구멍을 찾아야 되는 경우가 아닐까?
여기에선 여호와의 별다른 변명이 없던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아니, 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라고.
"빈대를 잡느라 초가 3간 다 타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바이블은 "여호와의 말씀이 이루어졌다."를 나타내려고, 여호와가 잡놈(또는 마귀)으로 추락되어 개망신을 당하고 있음을 모르고 있다.


(12) 오늘 날에도 전 세계적으로 예수교(목사, 신부를 비롯해서 예수쟁이 전체)의 구석구석에서는 별별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긴 말 필요 없이, 이 썩어 문드러진 예수교의 더러운 모습은 여호와(예수)의 영광일까, 아니면 개망신일까?
바이블 내용(예수와 여호와의 가르침)은 온통 잡놈 짓을 권장하고 있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면, 영광이 곱배기로 우러날 것도 같고!
글쎄, 아리송해서 잘 모르겠는데? 맞아! 여호와(예수)의 오묘한 섭리를 감히 어떻게 짐작인들 할 수가 있겠는가! 이럴 때는 우선적으로 할렐루야~아멩부터 해야 되지 않을까? 아멩! ㅎㅎ...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3-07-21 (일) 10:29
[예수쟁이와 기도 생활]

예수교의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기도 생활>일 것이다. 오죽하면, 예수가 직접 그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쳤을까!
기도는 중요함을 지나서 아예 예수쟁이들의 삶 자체라고 해야 옳다. 밥을 먹을 때에도, 잠을 잘 때에도, 좋은 일을 만났을 때에도, 나쁜 일을 만났을 때에도, 심지어는 죽을 때에도...어쨌든, 예수쟁이의 모든 것은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을 내야 되는 것이다.


[예수가 가르친 기도하는 방법]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여호와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호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시련)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멩)"]
 

(마태 6; 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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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제, 예수가 가르친 기도문 내용을 하나 하나 음미해 보기로 하자.


(1)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해설]
중언부언이란 이미 한 말을 되풀이해서 자꾸 반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점잖은 신에게 같은 말을 자꾸 되풀이해서 주워섬긴다면 실례가 되겠지?
그러나, 중언부언이건 짧은 토막 말이건 그것이 전지전능한 신에게 왜 필요할까?
여호와(예수)는 인간이 구하기 전에 미리미리 알아서 채워주는 신이리고도 했고, 골방에서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기도하라고도 했다.

구태여 사람 쪽의 애걸복걸하는 기도 행위가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일까?
한 술 더 떠서, 눈물의 기도, 울부짖는 기도 또는 간절히 매달리는 기도, 여러 명이 합심해서 하는 기도 등등에다 큰 값을 쳐 주던데, 꼭 그런 짓을 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냥, 인간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아무 조건 없이 도와 주고 보태주면 무엇이 잘못 되는가?
기도를 하지 않더라도 다 알고 있다면서 여호와(예수)의 하는 짓은 아무래도 미친년 널뛰는 모습과 흡사게 보여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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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이방인)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아느니라."

[해설]
이방인이 기도를 하면 어느 신이 들으신다는 말일까? 이방인도 중언부언하지 않고 잛게 기도를 하면 여호와(예수)가 응답을 한다는 뜻인가?
이방인이 기도를 하면, 이방인의 신이 들어줄 것이 아니던가? 그 이방인의 신이 길다란 기도를 좋아하는지 짧은 기도를 좋아하는지 예수가 어떻게 알아서 간섭하는가?
"저희(이방인)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나느니라." 이 말은 남의 제사에 감 놔라 해 놔라 하는 식의 주제 넘은 간섭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참고;
"저희(이방인)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나느니라." 제법 겸손하게 존댓말로 번역이 되어 있다.
이방인이 기도할 때에는 여호와(예수)가 아닌 이방인의 신에게 빌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었던 것이다.
이방인도 여호와(예수)에게 기도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서 "...들으실줄 아느니라"하고 존댓말을 했던 것이다.
바이블을 기록할 때, 성령이 감동을 주었는니 어쨌느니 따위는 궤변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예수쟁이 습성상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됐어야 맞는 것이다.
"저희(이방인)는 말을 많이 하여야 자기네 신이 들어 쳐 먹는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이렇게 씌어졌어야 말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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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러므로, 저희(이방인)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여호와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저희(이방인)를 본받지 말라."

[해설]
예수교의 신 여호와(예수)는 귀가 밝아서(전지전능하니까) 중언부언하지 않고 짧게 토막말로 단 한 번만 기도를 해도 잘 알아 듣는 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이방인의 신은 여호와(예수)보다 무능해서 중언부언 자꾸 반복해서 매달려야 겨우 알아 듣는 둥 마는 둥하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어쩔 수 없이 길게 기도를 해야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예수는 오지랖 넓게 이방인의 기도 방법까지 걸고 넘어지는 물귀신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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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기(기도하기) 전에 너희(예수쟁이)에게 있어야 할 것을 여호와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해설]
중언부언만이 아니라, 짧은 토막 기도조차도 할 필요가 없어야 될 것 아닌가? 구하기 전에 이미 인간(특히 예수쟁이)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 분이 여호와(예수)이기 때문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누군가가 또 설명을 한다면, 아무리 짧은 말이라도 그것은 중언부언이 될 것이다.
또, 작년에 했던 기도 내용, 지난 일요일에 했던 기도 내용 그리고, 어저께 했던 기도 내용을 오늘 또 반복한다면, 그것도 듣기 골치 아픈 중언부언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평생을 두고 반복 반복 또 반복 또 반복하여 중언부언하지 않는 예수쟁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던가?
예수쟁이는 평생에 단 한 번만 아주 짧게 기도를 해야 옳다. 구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신을 모시고 있는 종교에서 한 번도 많거늘, 수 천 수 만 번 씩 반복해서 중언부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못된 짓이다.

따라서, 예수쟁이는 예수가 가르치는 내용으로 평생에 단 한 번만 기도라는 것을 하기 바란다. 사실은 한 번도 필요 없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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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러므로, 너희(예수쟁이)는 이렇게 기도하라."

[해설]
이렇게 건, 저렇게 건, 기도라는 것은 필요 없는 것이다. 구하기 전에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여호와(예수)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을 재차 삼차 계속해서 신에게 보고(기도)를 한다는 것은 시간 낭비요, 골치도 아프고 대단히 귀찮은 번거러움일 것이다.
어쨌든, 중언부언 길게 반복해서 기도를 하든, 짧게 요점을 정리해서 기도를 하든, 여호와(예수) 쪽으로부터 무슨 응답을 받아 본 작자가 있거든 손들어 봐봐! 단 한 사람도 없지? 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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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해설]
글쎄? 누가 언제 어디에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신다."는 걸까?

어떤 물리학자가 대단히 어려운 물리학 이론을 전개하여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었다고 하자.
그런데, 자기 수준급의 학자들로부터는 외면을 당하고, 초등학교 문턱에도 가 보지 못하여 물리학의 <물>자도 모르는 80~90 대의 촌노파들에게서 환영을 받았다고 하자. (사실은 동서남북도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와와대는 뜻없는 소리지만...) 
그러면, 이 물리학자에게 영광스러움이 생겨날까? (필자가 만든 이 예화가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여호와(예수)는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천지와 우주 만물을 창조해 놓고 이것들을 운행시키고 있다고 한다.
반면에, 인간은 그 전지전능에 비하여 아무 것도 아닌 무존재(無存在)일 뿐이다.
유명한 물리학자와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한 촌노파 정도의 거리가 아니라, 무한대와 무존재의 거리이다. 이런 무존재들이 영광을 돌린답시고 돈도 바치고, 찬송가도 불러대고, 예배도 드리고, 순종이란 것도 하고...그렇게 하면, 여호와(예수)에게 거룩인지 영광인지가 주어질까?

더구나, 예수쟁이 수준의 덜 떨어진 무리의 칭송으로 신(神)의 품격이 더 높아질 수가 있을까? (품격이나 영광이란 것이 남이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닐 테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호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어떤가? 가당치도 않은 궤변이요, 애초부터 물 건너간 헛소리가 됐음을 알겠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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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해설]
인간은 자기 자신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이다.
그렇거늘, 이렇게 무능한 존재에게 하늘 뜻, 땅(지구)의 얘기까지 들먹이며 기도(요구)를 하라니 놀랍다.
지구 위의 커다란 문제는 고사하고, 조그만 가정사 한 가지를 가지고도 어쩔 줄을 몰라서 쩔쩔매는 인간에게 하늘 나라에 대해서 무엇을 어쩌라는 말일까?

그러나, 이왕 주어진 기도 제목이라니까, 한 번 따져 보기는 하자.

"나라이 임하옵시며(그 나라가 오게 하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예수가 2,000여 년 전에 가르쳐 준 기도 제목(내용)이니까, 예수쟁이들에 의하여 2,000여 년 동안 줄기차게 울부짖어진 기도 내용일 것이다. 
따라서, 저 기도 내용은 이루어지고, 이루어지고 또, 이루어지고, 골백번 골천번 아니 골만번 이루어졌을 것이다.
다실 말해서, 현재 지구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모습이 바로 하늘 나라에서 형성된 모습이 옮겨져 온 것일 것이렷다.
간단하게 표현해서, <하늘 나라의 모습 = 현재의 지구 모습> 이런 현상이 아닌가?
구하지 않더라도 미리미리 알아서 이루어 주시는 여호와(예수)요, 지난 수 천 년 동안 예수쟁이들이 저리도 간절하게 울부짖어 댄 기도 내용이 아니던가?

어떤가? 지금의 지구 모습은 하늘(천당)과는 같은 모습인가, 아니면 다른 모습인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수 천 년 동안 수 십 억 명이 울부짖어댄 기도의 결과가 이런 것인가?
결국, 길다란 기도이건, 짧은 기도이건, 예수쟁이들이 수 천 년간 주워섬긴 기도란 것이 말짱 도루묵이란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아멩! 뭔가 더 설명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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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해설]
누구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빌어대는가? 의식주가 누구의 수고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누구에게 달라고 조르는가?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예수쟁이들보다 더 큰 배은망덕이 있을까?
농어민과 곳곳에서 피와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예수쟁이들의 하는 짓의 내막을 정확하게 파악하게 된다면, 억울해서 피를 토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한 번 더 읊어보자.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어떤가? 누구에게 빌어야 되고, 누구에게 감사함을 표해야 될 것 같은가? 예수쟁이들아,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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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해설]
한 번 더 읽어 보자.
"우리(예수쟁이)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용서)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물어 보자. 예수쟁이들아, 상대를 용서해 주어 본 적이 있는 자가 있거든 한 번 손을 들어 보라.
감히, 손을 들어 볼만한 종자는 없을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게시판 앞에서 자기가 자기만을 상대로 손을 들어야 되는데도 손을 들수가 없을 것이다. 위선(僞善) 따위는 통하지 않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어떤가? 내 쪽에서 남을 용한 적이 없는 마당에 내 쪽도 용서 받기는 영 글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떠들고 싶겠지? 그러나, 그런 짓이 바로 여호와(예수)를 제 집 종놈 부리듯하는 예수쟁이들의 더러운 행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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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시험(시련)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해설]
"우리(예수쟁이)를 시험(시련)에 들지 않도록 해달라."니? 예수교의 교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못돼 먹은 기도 내용이다.
여기에서 시험(시련)이란 것이 예수쟁이에게 얼마나 중요한 교리인지 한 번 보기로 하자.
 
[사람이 시험(시련)을 받을 때에 내가 여호와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여호와는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야고보 1;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시련)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여호와는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 13)

어떤가? 위에 인용한 바이블 2 구절이 해독하기 어려운가? 그렇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우리를 시험(시련)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어쩌고...저쩌고..." 따위의 기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쯤을 알았을 것이다.
기도를 중언부언하지 말고 가능한 한 짧게 해야 됨은 물론, 작년이나 지난 주나 어제 했던 말(내용)을 곱삶아서도 안된다는 사실도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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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악(惡)에서 구하옵소서."

[해설]
이것도 기돗말에 넣어서는 안 되는 내용이다. 왜냐 하면, 악(惡)도 세상에 필요해서 여호와가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악이 없다면 여호와(예수)의 할 일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호와(예수)가 악을 없애려고 수고할 것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다만, 이 세상에서 악이 없어진다면, 여호와(예수)는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구더기에게는 똥통과 똥이 필요하듯 여호와(예수)에게도 악과 예수쟁이(덜 떨어진 인간)가 꼭 있어야 되는 것이다. 그래야, 영원히 살아가는데 지루하지 않고 재미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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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해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여호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멩"ㅎㅎ...
여태, 여호와, 예수 그리고 예수쟁이들의 말도 안 되는 악독하고도 더러운 궤변과 모순과 허구를 누누이 설명해 주었는데도 여전히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뇌다니...역시 "여호와(예수)답다." "예수쟁이답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멩이다! 암, 아멩이지!

참고;
우리 민족의 전통에 의하면, 가족 중에 누군가가 아프거나 죽거나 하면, 그렇게도 중요하게 여기는 조상에 대한 제사나 차례 따위는 정지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자손의 아픔이나 불행을 딛고서 조상의 기쁨과 영광은 없었던 것이다.
인류(우주 속의 모든 존재 포함해서)의 해결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줄기차게 "영광과 거룩을 내놓으라."고 공갈 협박을 해대는 예수교(여호와=예수)는 박멸시켜야 마땅하다.
한 술 더 떠서, 돈과 노력과 시간과 심지어는 계집까지 바치라는 데에는 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인류 최대의 악이 바로 예수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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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삼자 2013-07-21 (일) 10:37

[예수쟁이의 근본 출신 성분]

세상에는 예수쟁이도 있고, 불자도 있고, 모슬렘도 있고, 소위 미신을 신봉하는 사람도 있고, 종교가 없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 많고 많은 종류 중에 어떤 종류의 사람이 예수쟁이로 전이(轉_?xml_:namespace prefix = daum />移=transfer)되는 것일까? 다른 말로 표현해 보면, 예수쟁이의 근본 출신 성분은 무엇일까?

바이블(여호와의 말씀)을 보기로 하자.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명 가량이었더라.]

(사무엘상 22; 1~2)

여기에서 일일이 다 설명을 할 수는 없는 일이고...
다윗은 사울왕의 미움을 받아서 결국은 사울왕의 눈을 피하여 망명 생활을 하게 됐다고 한다..
이 때, 다윗과 생사 고락을 함께하는 400 명의 무리가 있었다고 한다.

다윗은 인류 역사상 여호와의 사랑을 가장 크게 받은 자이다. 그리고 또, 다윗은 신학적으로는 장차 예수쟁이들이 들어가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될 <천당>의 상징이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다윗이 망명 생활을 할 때, 그와 함께하던 400 명은 현대의 예수쟁이들에 대한 상징이 되는 셈이다.
결국, 다윗과 함께한 무리 400 명이 바로 예수쟁이의 근본 출신 성분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다윗과 한 패거리 노릇을 했던 <환난 당한 모든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 이런 망나니들이 바로 예수쟁이의 근본 출신 성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호와(예수)의 오묘한 섭리에 파묻혀서 돌아가는 예수교의 진리이기 때문에 무뇌충에 가까운 일반 예수쟁이들은 전혀 터득할 수 없는 경지에 해당하는 말이 되겠다. 아멩!

어쨌든, <환난 당한 모든 자>, <빚진 자>, 그리고, <마음이 원통한 자>와 연결 고리가 단단하게 얽혀 있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쟁이로 편입되는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이상이 아마추어 신학자의 신학적 풀이였다. 역시 할렐루야 아멩이다! 
제삼자 2013-07-21 (일) 13:05
[대자유]

* 다음 이야기는 죽음을 앞에 둔 20 대 청년과 그 가족에게 몇 번에 걸쳐서 들려주었던 말을 요약한 것이다.

몇 년 전, 그러니까 2006 년, MBC TV에서 <주몽>이라는 역사 대하드라마가 상영됐었다. 동시에 그 해, KBS 1 TV에서도 <대조영>이라는 역사 대하드라마가 방영되었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주몽은 고구려를 건국한 시조이고, 대조영은 고구려가 멸망한 후, 그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발해를 건국한 사람이다.
그 두 사람은 700 여 년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태어났다가 죽은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TV 드라마를 보면서 실감하는 것은 주몽이나 대조영이나 거의 비슷한 시기의 고대 사회에서 활동했던 사람들로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700 년이라는 커다란 시차가 있는데도 같은 시간대의 동일 선상에서 활동하던 사람들로 느껴진다는 말이다. 장장 500 년의 역사를 가진 고려 왕조나 조선 왕조를 통째로 집어 넣어도 풍덩 들어가고도 남을 700 년이라는 길고도 긴 시간 간격인데도 시차가 없는, 같은 시대의 사람들처럼 실감이 되고 있다.
어떤 사건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돌아보면, 먼저의 사건이나 나중의 사건이나 모두 같은 시대의 시간 선상에 놓여지게 된다. 불과 1~2 천 년의 시간이 지나갔을 뿐인데도 그렇다. 시차를 두고 발생했던 모든 사건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은 같은 시대 또는 같은 시간대로 응집됨을 알 수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고려와 조선 등, 어떤 나라도 500 년 내지 1,000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 왕조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말로는 다 그려 낼 수 없는 파란만장한 역사와 우여곡절이 들어 있다. 수 없이 많은 사람이 태어나서 수 없이 많은 사건을 만들며 살다가 수 없이 많은 사연(또는 한)을 안고서 죽어 간 역사! 여기에서 그 역사를 다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파란만장이라는 말 한마디로 압축하기에는 너무 아쉽기도 하고 억울하다는 느낌도 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등등, 아무리 긴 역사를 품고 있어도 우리 머리 속에서는 파란만장은커녕 오히려 몇 개의 점(點=작은 흔적)으로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것도 불과 1~2 천 년 밖에 지나지 않은 경우일 때 한하는 것이다. 앞으로 만 년 또는 10만 년의 세월이 지나가고 나면, 500 년 내지 1,000 년 따위는 진짜 점으로만 남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점은 위치만 있을 뿐, 모양이나 크기가 없는 것이다.
하물며, 만 년이나 10만 년 정도가 아니라, 무량대수의 세월 내지는 무한대(영원)의 시간 속에다 우리 인간이 향유하는 짧디 짧은 역사를 섞어 놓으면 어떤 것이 될까? 아무리 큰 사건이나 긴 역사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하나의 점으로 결집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명이 길어졌다는 오늘 날에도 90 살까지 산 사람이 있다면 장수한 사람일 테고, 미처 40 세를 넘기지 못했다면 단명한 사람이라고 말해질 것이다. 우리 인간의 감각이 현세적으로 느낄 때, 90 살과 40 살은 그 수명의 시간적 간격을 매우 크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90 살이 넘은 어느 노인(또는 노파)이 죽으면, 소위 호상(好喪)이라 하여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40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있다면, 현실적으로 유가족을 비롯하여 그 둘레의 슬프고도 비극적인 상황을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은 자명하다.
고구려의 19 대 광개토대왕은 38 세에 죽었고, 20 대 장수왕은 97 세까지 살았다. 광개토대왕은 지극히 단명한 사람이고, 장수왕은 노령화 사회인 오늘 날에 견주어도 장수한 사람이 분명하다. 그러나, 1,500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의 감각으로 뒤돌아보면, 광개토대왕의 짧은 수명이나 장수왕의 길다란 수명이나 도토리 키 재기 식으로 그게 그것일 뿐이다. 아니, 두 사람 중, 어느 쪽의 것이 더 행복했느니 또는 불행했느니 하고 겨루어 볼만한 아무런 건더기조차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감각으로는 기쁨도 되고 슬픔도 되는 장수한 사람의 긴 시간이나, 단명한 사람의 짧은 시간이나, 그 수명의 길이에 하등의 별다른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장수한 사람이 향유한 긴 시간이나, 단명한 사람이 누린 짧은 시간이나,1,000 년은 고사하고 100 년도 되기 전에 기쁨이나 슬픔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들 모두는 잔잔하고 고요한 너른 바다처럼 평화로운 곳에 안착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계 지도를 펴 놓고 보면, 인구 1,000 만을 넘는 뉴욕, 멕시코시티, 상하이, 뭄바이, 런던, 서울 등등의 대 도시가 조그만 점으로 표시되어 있다.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4.3 광년) 별이라고 알려진 센타우루스(Centaurus) 자리의 프록시마(별)에서 보게 되면, 대 도시는 고사하고 아예 지구 자체가 보이지도 않는다. 지구 뿐만이 아니라, 지구의 130 만 배나 더 큰 태양조차도 먼지 크기로 겨우 보일까 말까 할 것이다. 심지어는 별을 1,000 억 개나 포함하고, 지름이 10 만 광년이나 되는 원반 모양의 <우리 은하계>조차도 200 억 광년이나 되는 먼 곳에서는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공간이 200 억 광년으로 끝나던가?
이상의 계산은 공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도 적용이 된다. 따라서, 몇 천만 년 또는 몇 백억 년이라는 시간 속에다 인간이 겨우 향유할 수 있는 50 년이나 100 년의 시간을 섞어 놓아 봐야 아무런 흔적도 없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주(宇宙)는 시작과 끝이 없는 무한대의 시간과 무한대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 속에서는 아무리 긴 시간도, 아무리 큰 부피도, 아무리 심각한 사건도, 속된 표현을 빌면 조족지혈(새발의 피)만도 못한 하찮은 것이 되고 만다.
우리 인간이 몸 담고 있는 우주 속에서는 크고 작음, 길고 짧음, 깨끗하고 더러움, 좋고 나쁨,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 따위를 모두 초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우주 속에서는 삶과 죽음이 따로 없으며, 기쁨과 슬픔도 사실상 따로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나 자신이 바로 우주의 일부요, 우주를 구성하는 한 요소라는 사실만 자각한다면, 죽음을 비롯한 어떤 경우라도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 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커다란 물체라도 무한히 먼 곳에서 보면 점에 불과하다. 아무리 긴 시간도 무한히 먼 시간 후에 보면 점에 불과하다. 앞에서도 거론했지만, 점은 위치만 있을 뿐, 크기도 모양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점 속에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어떤 것도 들어 있을 수가 없다. 모양과 크기가 없는 속에는 어떤 것도 들어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점과는 달리 우주는 한 없이 긴 시간과 무한히 큰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아무리 큰(긴) 것이라도 우주 속에 들어가면 지극히 작은 점이 될 수 밖에 없다. 다른 말로 하면, 우주 속에는 모양과 크기가 없는 점들만 가득하다는 말이다.
밤 하늘을 보면, 별이 가득함을 볼 수 있다. 이는 아직 그 별들이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이다. 좀 더 멀리에서 보면, 마침내 그 별들은 점으로 바뀌어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결국, 우주 속에는 모양과 크기가 없는 점들만 있는 것과 마찬 가지가 된다. 없는 것이 가득하다는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다.
점 속에는 아무 것도 들어 갈 수 가 없어서 아무 것도 없는 경우이고, 우주 속에서는 어떤 것이라도 점과 같이 작아지기 때문에 역시 우주 속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과 마찬 가지이다. 무한히 작은 점과 무한히 큰 우주가 결과적으로는 똑 같은 개념에 도달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점이 우주요, 우주가 바로 점이다.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것(시간, 사건, 사람) 중에 우주(또는 점) 속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 있던가? 결국, 우주(또는 점) 속에서는 있다 없다, 좋다 나쁘다, 또는 삶과 죽음 등등 모든 것을 초월한다고 말해지는 것이다.

어느 종교의 최상위(最上位) 가르침 중 하나에 해탈이란 것이 있다. 해탈이란 속박이나 번뇌 따위의 굴레에서 벗어나 편안한 대자유의 경지에 도달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해탈과 같은 뜻을 가지는 열반이란 것도 있다. 그런데, 열반은 죽음과 동의어이다. 다시 말해서, 죽음이 바로 대자유의 경지에 들어서는 해탈이라는 말이다.
해탈을 방해하는 굴레(속박과 번뇌)는 나쁜 것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에서도 만들어진다.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사랑의 굴레가 씌워지고, 미워하는 사이에서는 미움의 굴레가 씌워진다. 성공자는 유지해야 하는 굴레가, 실패자는 재기해야 하는 굴레가 씌워진다. 그런데,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커다란 굴레는 역시 죽음에 대한 공포의 굴레일 것이다. 죽음을 전제로 하는 삶 자체가 이미 굴레이다. 일체개고(一切皆苦)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참고; 일체개고(一切皆苦)-인간이 무상, 무아를 깨닫지 못하고 영생에 집착하여 그로써 온갖 고통에 빠져 있슴을 이르는 말.

제사(祭祀)는 4 대조(高祖)까지 받드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한 세대를 25 년으로 계산하여 4 대는 100 년이다. 즉, 사람이 죽고서 100 년 정도가 지나면, 다른 사람들은 물론 후손들의 기억에서조차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까지 얽혀 있던 굴레 마저 벗어 던질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 죽어서 100 년이 지나면, 세상과 얽혀 있던 모든 굴레로부터 완전히 풀려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은 마침내 우주 속으로 스며들어 우주와 하나가 되거나, 우주화(宇宙化)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굴레와 다름 없는 나의 실체가 없어지고 우주와 하나가 되었을 때 또는 우주화 되어야 시간과 공간과 사람 등,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대자유의 해탈 경지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우주가 모든 것을 초월하듯, 사람이 우주와 동체(同體)가 될 때, 사람도 비로소 모든 것에서 초월하게 되어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 마침내 죽음 자체가 두렵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오고 감의 순서가 조금 씩 뒤바뀌는 것처럼 보여지면서, 늙은이와 젊은이, 부모와 자식, 애틋한 사랑으로 얽어 매인 연인(부부)은 물론, 세상의 모든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무한대의 대자유(안식처)를 향해서 물 흐르듯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지금 당장은 먼저 가는 사람으로 해서 서로가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잠시 후에는 우리 모두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한 가지도 차질 없이, 그 곳으로 뒤따라가서 하나(우주화)되는 기쁨과 평화를 맛보게 되어 있다. 이것이 죽음이요 필연이라고 하는 것이다.
<시사여귀(視死如歸)>라는 말이 있다. "볼 시", "죽을 사", "같을 여", "돌아올 귀", 이렇게 넉 자로 이루어진 사자성어(四字成語)이다. "시사여귀!--죽음을 고향에 돌아가는 것처럼 여긴다."는 뜻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 설익은 인간의 감각으로는 슬프고 안타깝고 두려운 것일 수도 있지만, 사실상 죽음이란 영원히 평화롭고 안온한 고향(안식처)으로 돌아가는 것이요, 대자유(大自由)를 완전하게 획득하는 일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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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맣게 옹크리고 살아가야 할 몸과 맘]


오전 중에 호수공원 주위에서 걷기를 즐기는 때가 많다. 그런 다음 아예 외출한 김에 복지관 식당에 들러 점심 식사까지 하고 귀가하게 된다.
오늘도 공원에서 걷기를 하다가 복지관에 들러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꽤 큰 식당인데도 매일 평균 1,000여 명 정도가 이용을 한다고 하니까, 점심 시간이면 언제나 북새통까지는 아니더라도 꽤나 붐빈다.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배식하기 수 십 분 전부터 줄서기를 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 흔한 새치기는 물론이고, 10여 년 전부터 안면을 다진 동아리(소위 터줏대감?)들끼리 죄의식 없이 봐주기 식 새치기는 여러 사람의 누살을 찌프리게 하기도 한다.
수명이 길어진 시대라 그런지, 늙은이들 모임인데도 세대가 바뀌지 않고 있어서 유난히 터줏대감들이 많은 것 같다.

터줏대감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새 사람과 낮선 사람을 괴롭히고 왕따시키는 일을 하기 일쑤이다.
그래서, 각종 시설물을 이용할 때에도 기존의 동아리들끼리 나눠 먹기식으로 이용하고 있어서 신참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역시, 고참(기존 회원 또는 터줏대감)들은 자기들의 언행에서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그것을 감지할 힘이 없어 보일 때가 많다.

오늘도 점심 식사를 하는데 옆 사람이 다리도 쩍 벌리고 앉아 있고, 양 팔도 쩍 벌린 상태로 식사를 하고 있어서 옆에 앉은 사람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탁자는 2 사람 씩 마주 앉아서 4 사람이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때, 각 사람은 가능한 한 몸을 작게 하고서 식사를 해야 옳다.
그런데, 오늘 자기 마음껏 식탁과 공중을 넓게 점령하고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사람의 행동 반경 때문에 그 옆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해야 됐던 사람은 탁자 바깥 쪽으로 몸(상체)을 기울이고서 상당히 불편한 자세로 밥을 먹어야 됐었다. 

아직까지도 완전하게 해결된 상태는 아니지만, 10여 년 전, 아직 한국 생활이 꽤나 서툴 때였다. 어느 전철역을 걸어서 찾아가고 있었다. 그 전철역 역사(驛舍)가 수십 m 앞에 보였다.
그런데, 도무지 그 역사 쪽으로 뚫린 길이 없었다. 이 쪽 저 쪽으로 수백 m 씩 왔다 갔다 해 보았지만 역시 길이 없었다. 결국은 택시를 불러 타고서야 그 전철역사를 찾아 갈 수가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택시가 일단 고속도로 쪽으로 나갔다가 다시 주택가로 들어서더니 그 전철역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전철역으로 뚫린 길이 없었던 것이다.
40~50 년 전에는 그 곳이 허허 벌판 평야지대였었다. 그런데, 몇 십 년 사이에 길도 남겨 놓지 않고 소위 난개발(亂開發)로 건물만 가득한 동네로 바뀌어 있었다.

"집을 크게 지으면, 마당이 작아진다." 채근담에 있는 말로 알고 있다.
당연하다. 집을 크게 지으면, 당연히 마당이 작아진다. 마당이 작아지면 마침내 길이 없어지게 된다. 길이 없는 집도 집일까?
그러나, 문제는 집이 아니다. 집 문제는 껍데기 이야기일 뿐이다. 집을 크게도 짓고 작게도 짓고 어디에다 어떻게 지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마음이 정하는 것이다.

난개발도 사람의 마음이 한 짓이고, 길이 없는 건물도 사람의 마음이 해 놓은 짓이다.
몸과 맘을 자그마하게 <옹크리지 못하고> 세상을 자기 마음껏 점령하고서 자유자재(이런 것을 방종이라고 헤도 될 듯)로 활개를 친다면, 세상과 자연은 금방 파괴되고, 곧 이어 그 결과는 자기 불편(또는 화근)으로 돌아오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7,80 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체험한 늙은이들 집단인데도 아직 자기의 몸과 맘을 조그맣게 옹크릴 줄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인가 잔뜩 구입하여 집안에 들여 놓으면, 마침내 집안이 좁아져서 운신을 하기도 힘들어지게 된다.
그렇다. 소유한 것이 많을 수록 더욱 가난해지고 몸과 맘은 부자유스럽게 속박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몸과 맘을 조그맣게 옹크릴 줄 아는 그런 지혜를 닦아야 옳다. 이것이 가장 커다란 행복과 자유를 맛볼 수 있는 첩경이 아닐까
제삼자 2013-07-23 (화) 13:23
[가불(假拂)]

* 가불(假拂)--정해진 기일 이전에 미리 앞당겨 받음.
                   앞으로 받을 임금 따위의 일부 또는 전부를 미리 앞당겨 받음.

예수교에서는 천당행 표를 가불하여 미리 받아 둘 수도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천당행 표는 인생을 다 살고 나서 죽은 다음에, 살아생전의 업적(행적)에 따라 주어지는 보답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죽기 전에 미리 그 천당행 표를 획득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가불이 앞으로 받을 임금 따위를 미리 앞당겨 받는 경우이듯, 예수교의 천당행 표도 가불하여 미리 챙길 수가 있다는 뜻이다. 아멩! ㅎㅎ...

우선,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예수께서 여리고(지명)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稅吏長)이요 부자(富者)라.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서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삭개오가 서서 주(主=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討索)한 일이 있으면 4 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救援=천당)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누가 19;1~10)

예수 당시, 히브리 사람들은 세리(稅吏)를 죄인(罪人)으로 간주했던 모양이다. 백성의 피를 빨아 먹는 짓은 지금이나 그 때나 비슷했던 모양으로, 세리를 매우 나쁘게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가 여리고(지명)에 들어서면서 세리장 <삭개오>를 반갑게 부르고, 이에 <삭개오>가 예수를 즐거이 영접했다고 한다. 이를 목격한 군중들은 "예수가 죄인(罪人)과 함께 먹으며 즐긴다."고 쑤군거렸다고 한다.
 
역시, 예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온 사랑 많은 구세주(누가 5;31~32)"가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주장이 예수교의 관점이므로, 전혀 존재할 수 없는 "의인"을 들먹이며 멋진 말을 한 것처럼 우쭐대는 예수의 말은 오류로 범벅이 된 궤변일 뿐이다. 
예수(교)의 안목으로는 이 세상에 100 % 구원 대상으로 취급해야 할 죄인만 있어야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예수의 말은 성립될 수 없는 모순이다. 안 그래?

이 때, <삭개오>가 예수에게 말한다. "주(예수)여, 내 재산의 절반을 불우 이웃 돕기에 내어놓겠습니다.
그리고, 토색질한 것이 있으면 그 4 배를 갚겠습니다."

이에 감격한 예수가 화답한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1) 삭개오는 아직 실천 단계가 아닌 입으로만 떠들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결과에 관계 없이 구원이 미리 오는가? 만약, 삭개오의 말(예수와의 약속)이 공수표의 남발로 끝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어쨌든, 삭개오만이 아니라, 세계 도처의 모든 예수교에서는 얼빠진 자들이 모여 "주여, 믿습니다."를 뇌면서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말 잔치가 풍성하던데, 여호와(예수)의 구원을 가불(假拂) 받고서 미리 즐기는 꼴값떨기인가?

*꼴값떨다(하다)--생김새에 어울리지 않는 볼썽사나운 짓(행동)을 하다.

필자가 아는 어느 예수쟁이(치과의사 부부)는 건축 헌금, 추수 감사 헌금 등, 큰 행사 때의 헌금 철이 되면, 약속 헌금(수표=액수만 적힌 종이 쪽지)으로 그 교회의 교인 중에서 가장 많은 액수를 바친다.
그러면, 목사의 특별 축복 기도가 만발하고, 온 교인들 입에서 칭찬이 자자하다. 그 치과의사 부부는 벌써부터 천당에 입성한 것이나 마찬가지 기분이 되어 우쭐댄다. 인근의 다른 교회에까지 그 소문은 쫙 퍼진다.
그러나, 그 약속 헌금(수표)은 한 번도 이행된 적 없이 흐지부지 되고 만다. 그 약속됐던 돈이 교회로 들어 온 적은 없다. 가불(假拂)되어 미리 주어졌던 축복과 천당행 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2) <삭개오>는 말한다.
"예수님, 내 재산의 절반을 불우 이웃 돕기에 내어놓겠습니다. 그리고, 토색질한 것이 있으면, 그 4 배를 갚겠습니다."

그러나, 가진 재산의 절반을 불우 이웃에 쓰고도, 토색질한 것의 4 배를 갚을 방법이 있는 사람도 있을까?
토색질을 좀 더 계속해서 갚겠다는 말인가? 예수는 이런 곳에도 구원을 주는가? 그것도 아직 실천 단계가 아닌 입으로만 떠들고 있는 사람에게 천당행 표를 미리 가불하여 지급하는가?

현대 산업 사회에서 확대 재생산 및 발명 특허에 의한 부(富)의 축적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노동 착취와 토색질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필자의 경제 논리임)
하물며, 예수 당시의 세리장(稅吏長)이라면 어떤 방법으로 부자가 됐을까? 이 세상에 착취와 토색질 없이도 부자가 되는 방법이 있을까?
예수는 경제 논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을까? 신(神) 노릇을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했어나 보지? 예수는. 

예수는 사람 구실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부랑자(하는 일없이 떠돌아다니면서 난봉이나 부리는 자)였었다.
부모 형제도 몰라보고, 일도 하기 싫어서 젊은 것들 몇 놈들이 몰려다니며 사회 질서를 교란시키던 떼거리들이었다.
세리장 <삭개오>는 깡패(예수 일당)들이 자기 집에 들이닥치자 미운 놈 떡 한 개 더 주는 식으로 살살 구슬렀을 것이다. 일단 위기를 모면하려고...


* 필자도 필자 자신이 예수교의 한 종파라고 생각하면서, 내 마음 굴러가는 대로 예수의 행적을 해석해 봤다. 예수쟁이들 중에는 입맛이 떫은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바이블은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던가? 필자가 "나는 성령을 받고 이 글을 썼노라."하고 선언하더라도, 예수교는 사실상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예수교 속에서 밥벌이하는 자들만 바이블을 해석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바이블을 해석할 수 없다면 말이 안 되지. 오히려, 예수교와 전혀 상관이 없는 <제삼자>의 바이블 해석이 가장 바를 껄! 안 그래?
  

* 위에서 가불(假拂) 얘기를 했지만, 예수교에서 횡행하는 축복이나 천당행 표에 대한 가불 행위는 어차피 입으로만 떠들어지는 실속 없는 빈 깡통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일 뿐이다.
여호와도 자기 백성 히브리 족속에게 무수히 많은 축복을 쏟아 붓는 척 떠들어댔지만, 어느 한 가지라도 그 축복이 베풀어진 적은 없다.
예수도 예수쟁이들을 향해서 당대에 즉시 천당행 표를 줄 것처럼 떠들어댔지만, 이것 역시 2,000 년이 넘도록 감감 무소식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교의 축복과 천당행 표는 이쪽 입구멍과 저쪽 귓구멍 사이를 오고가는 공기의 움직임일 뿐, 가불도 아니고 직불도 아닌 거짓뿌렁이다.
좋은 놈 되는 척하는 것이나, 천당행 표를 줄 것처럼 축복을 하는 놈이나, 예수교 속에 신(神)이 건 사람이 건 공수표를 남발하지 않는 녀석은 없다. 
이것이 예수교의 모든 것이다. 아멩!       
제삼자 2013-07-25 (목) 05:47
[교묘한 궤변; 죄인을 부르러 온 예수]

* 이 세상에 굴러다닌는 말 중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제대로 된 말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매우 힘든 교묘한 궤변이 있다.
  다음에 거론하려는 예수의 말이 바로 정신을 바짜 차리지 않으면, 복잡한 미궁으로 빠져들 수 있는 궤변인 동시에 허구이다.
  머리가 좋아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꾸며낸 말이 아니라, 아무렇게나 떠들다 보니 결과적으로 교묘한 궤변이 된 유명한 말이다. 


[(예수가) 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예수)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누가 5;27~32)


위의 예수의 말을 다시 살펴보기로 하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 일당에게 비방하여 말했다고 한다.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고.
예수 일당이 죄인들과 어울려 히히덕거림을 비방하는 말이다. (예수 당시, 세리는 일반인들에 의하여 죄인과 동급으로 지목되어 쑤군거려지던 대상이었던 것 같다.)
사실상, 세리를 포함해서 공무원이란 것이 본래의 자격대로 공복(公僕) 노릇을 하기보다는 백성 위에 군림하려는 꼴값 때문에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미움의 대상이 되어 오기는 한다.

이에 대한 예수의 변명(대답)을 들어 보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예수의 입이 직접 해놓은 말이다.
얼른 듣기에는 비교법을 인용하며 떠들어 놓은 제법 멋진 말이다. 예수교에서 자랑스럽게 수시로 인용되는 유명한 가르침이다. 그러나, 이것은 제대로 된 말이라고 할 수 없는 모순된 교묘한 궤변이다.

의원(의사)은 건강한 사람보다는 병자에게 더 필요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과 의인을 대비시키고, 병자와 죄인을 대비시켜서 떠들어 댄 예수(神?)의 말은 전혀 비교될 수 없는 기름과 물 같은 관계이다.
왜냐 하면, <병자>와 <죄인>은 비교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성질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병자는 주로 육체적이며 또 죄와는 상관이 없는 현상이다. 반면에 죄인은 주로 정신적인 현상이며 질병과는 아주 다른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원은 건강한 사람은 빼고 병자만 골라서 치료하겠지만, 의인을 제외하고 죄인만 골라서 구원하겠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는 말이다. 예수(교) 입장에서 보면, 인간 중에 의인은 없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존재하지도 않는 의인을 들먹이며,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예수의 말은 어불성설이다. 100 %가 죄인 뿐인 세상에다 대고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는 궤변이다.

신의 말은 언제나 <거짓> 아닌 <참>이어야 한다. 따라서, 예수의 말은 다음과 같이 되어야 한다. (어차피 엉터리 얘기지만)

질문; "너(예수)는 왜 죄인들과 어울려 히히덕거리느냐?"
대답; "나(예수)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그런다." (예수의 안목으로 볼 때,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의인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더 큰 문제가 있다.
예수 입장에서 보면, 질문(비방)하고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이야 말로 예수를 적대시하며 죽이려고까지 설쳐대는 죄인(?) 중의 죄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란 사실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의 말이라면 사사건건 걸고넘어지는 악당이요 죄인 중의 죄인들이다. 
그런데, 예수는 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구원할 생각 없이 엉뚱하게도 세리와 다른 죄인(누굴까?)들만을 가리키며 구원시켜야 될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다.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녀석이 죄인 중의 죄인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서 악담과 저주를 퍼붓고 있는 것이다.
"화(禍) 있을진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여! ...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마태 23;13~33)
죄인을 불러서 구원하기는커녕, 자기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악담과 저주를 퍼부은 자가 예수였다. (어쩌면, 오늘의 예수쟁이들이 쏟아내는 언행과 저리도 닮아 있을까!)
어쨌든, 인류를 구원하러 왔다는 신으로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따위는 있을 수 없는 말이다.

자기(예수)의 말에 고분고분 따라 주는 사람(바보)만을 추켜 세워 뭔가를 착취하려는 얄팍한 술수(속임수)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바보들의 왕초였던 것이다.
허구와 궤변으로 뭉쳐진 속에서도 영생 복락을 나누어 주겠다는 꾐수에 넘어가는 무뇌아들의 총수가 예수였던 것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백성의 고혈을 빨아 먹던 간악한 자들이어서 좋게 보아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예수의 허황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예수의 말에 넘어가는 사람이야 말로 바보에다 욕심을 겹쳐 놓은 구제 불능의 쓰레기들이다. 바보에게는 약이 없고, 욕심에 눈이 멀면 이것도 약이 없는 것이다.
제삼자 2013-07-31 (수) 07:58
[누가(무엇이) 만들었을까?]


아프리카의 이집트, 유럽의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무엇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구경하게 될까?
긴 말 필요 없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폐허(주로 신전이나 궁전 또는 경기장 등등)들을 구경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 폐허(廢墟)는 누가(무엇이) 만들었을까?         시간(세월)이 만들었다. (사람이나 신이 만든 것이 아니다.)
예수교의 천지(天地)는 누가(무엇이) 만들었을까?           무지한(비겁한) 인간이 만들었다. (신이 만든 것이 아니다.)

벼(또는 농작물)는 무엇이 자라게 할까?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라나고 마침내 여문다.
인간의 올바른 지성 세계는 무엇에 의하여 완성 될까?    반기련의 줄기찬 활동에 의하여 지성인(知性人)은 완성된다.

예수교(바이블)를 정확하게 배울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어디긴 어디야, 반기련이지!
이 외에도 세상살이에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반기련에 문의하면 된다. ㅎㅎ...

내가 근거도 없이 너무 푸짐한 허풍(虛風)을 떨은 걸까!
제삼자 2013-08-01 (목) 09:42
[후손에게 물려 주어야 될 대한민국]


10 살 미만의 자녀에게 저축 습관을 길러준답시고 그 목표액을 100 억 원으로 설정해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이런 부모가 있다면, 그 가정에서 성장한 자녀에게 바람직한 저축 습관이 길러지게 될 수 있을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녀에게 도덕심과 종교심(?)을 길러준답시고 "원수를 사랑하라." "신을 믿어야 된다." "가족(부모 처자식)과 재산을 다 버리고 예수만을 따르라." 따위를 부지런히 주입시킨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어차피 실천될 수는 없고(불가능하니까), 말장난으로만 존재하는 위선자를 양산해 내는 가르침이 될 것이 분명하다.
결국, 저런 엉터리 말장난과 무책임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사람은, 좋은 말(윤리, 도덕, 질서 등등)을 주둥이로만 즐기면 되는, 그래서 실천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림의 떡을 즐기는 이상한 정신 병자를 길러내게 될 것이다. 
이런 이상한 정신 병자가 바로 예수쟁이들이며, 이런 예수쟁이가 자그마치 이 한반도에 1,000 만이나 된다고 하니, 나라 전체가 시끄럽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이 불교에는 없고, 예수교에만 있다면서 그것을 자랑하는 군목(대령)도 있었다.
실천되고 안 되고는 상관 없이 입으로 떠들며 즐길 수 있는 멋진 내용의 말을 소유하고 있는 예수교는 진짜로 좋은 종교라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신 여호와(예수), 감지할 수 없는 신 여호와(예수), 논리적 과학적으로 황당한 신 여호와(예수), 사실상 악독하기 이를데 없는 신 여호와(예수), 이런 신 여호와(예수)를 믿도록 세뇌(강요)되고, 이런 신에게 책임(부끄러움이나 고통 포함)이 따르지 않는 회개를 반복하고... 이런 인간은 결국 어떤 모습이 될까?

예수쟁이들 중에, 여호와(예수)를 진짜로 믿는 얼간이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는 전혀 믿을 수 없어서 당장에 천당에 가는 일보다는 이 힘든 세상에 하루라도 더 머무르려고 발버둥치지 않는 예수쟁이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말과 행동이 180 도로 다른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예수교, 이런 위선자 예수쟁이가 가득한 나라가 현재의 한국이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이 나라를 지옥 다음 동네라고 표현하면 지나친 말일까?

비율로 따져서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도 지식인(?)이 많은 나라이면서도 가장 시끄러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 나라가 한국이다.
인터넷 인구가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IT 강국"이라는 말을 듣는 한국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실천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냥 말만 떠들어대면 되는 괴상한 나라로 이미 틀이 잡힌 나라가 한국이다.
질서를 지키고 양심을 지키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전부라는 통계 자료도 본 것 같은 나라가 한국이다. 왜 이런 나라가 됐을까?

왜 이런 나라가 됐을까?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뇌면서 제 집 기둥뿌리까지 뽑아다 바치지 못하여 안달하는 훌륭한 인격자(?)들이  10,000,000이나 되는 나라에서 무엇이 부족하여 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가고 있을까?
보수를 받는 당원을 10,000,000 명 확보한 당이 있다면, 그 당은 대권 창출 정도는 식은 죽 먹기요, 아마도 그런 당을 이끄는 사람은 전제 왕정으로 전환시키고 자신이 왕위에 등극하는 일도 간단할 것이다.
하물며, 보수를 받는 당원이 아니라 제 집 기둥뿌리까지 뽑아다 바치지 못하여 안달하는 당원 10,000,000을 확보한 당이 있다면 무엇을 더 첨부하여 할 말이 있겠는가?

그런데, 그런 당원(예수쟁이)을 10,000,000이나 확보하고,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죄를 지으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 지옥에 간다." 등등을 가르치며 뇌고 믿는 예수쟁이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나라의 모습이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게 됐을까?
대한민국 국민들이여! 가슴에 손을 얹고 냉정히 생각해 보자. 이런 나라를 내 후손에게 물려주려는가? 이런 나라를 내 아들딸에게 물려주려는가?
제삼자 2013-08-03 (토) 09:46
[그 하체(下體)를 범(犯)치 말라]

"살인하지 말라." 또는 "도둑질하지 말라."는 가르침과 법이 있는 사회 속에는 '살인'이나 '도둑질'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孝는 百行의 根本"이라는 가르침이 생겨났다는 것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식이 많지 못하다."는 뜻이 담겨 있음을 강조하는 안타까운 말이다.
"믿음"을 강조하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예수교는 왜 그런 짓을 하게 됐을까? 결국,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믿음"이란 것을 가질 수가 없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인정하는 꼴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아래 여호와의 가르침은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 말일까?

1) [(여호와 가라사대)
"너희는 골육지친(骨肉之親)을 가까이 하여, 그 하체(下體)를 범(犯)치 말라...
네 어미의 하체를 범치 말라. 너는 계모의 하체를 범치 말라.
너는 네 자매...그들의 하체를 범치 말라. 너는 손녀나 외손녀의 하체를 범치 말라...
너는 고모의 하체를 범치 말라...너는 이모의 하체를 범치 말라...
너는 백숙모의 하체를 범치 말라...너는 자부의 하체를 범치 말라...
너는 형제의 아내의 하체를 범치 말라. 너는 여인과 그 여인의 딸의 하체를 아울러 범치 말며..."]
 
(레위기 18; 6~18)

여호와의 택한 백성 히브리는 노략질과 약간의 유목으로 생업을 삼으며, 사막 벌판에서 천막 생활을 하던 족속이다.
생활 방식과 가옥 구조 등, 그들의 모든 생활 환경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그들의 남녀간의 성적 문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따라서, 남녀 간의 성적 문란이 극에 달한 사회에서는 위와 같은 율법(바이블)이 만들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여호와의 입을 빌어 위와 같은 가르침을 남겨 놓았다는 것은 히브리 족속 사회의 남녀 문제가 얼마나 난잡했었는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 날, 예수교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성범죄를 개탄하면서 그 개선책을 떠들어대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호와가 직접 간여하던 고대 히브리 사회나, 예수의 몸뚱이라고 일컫는 현재의 예수교 속이나 피장파장(양 쪽이 낫고 못함이 없이 같은 처지)인데, 어느 쪽의 무엇을 고쳐서 쓰자는 뜻일까?   

"예수교의 근본 가르침과 본래의 모습은 훌륭했었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곁길로 가게 됐었다. 따라서, 예수교는 근본 가르침과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한다."
이렇게 "예수교를 바르게 고쳐서 쓰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예수교 안팎이 따로 없다. 예수쟁이 건 예수쟁이가 아니 건을 불문하고 예수교의 썩은 모습은 예수교의 본래 모습이 아니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더러운 모습, 썩은 모습, 악독한 모습 등등, 이런 모습이 바로 예수교(바이블)의 본래 모습임을 알아야 한다. 바이블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위에 제시한 바이블 내용이 그 중 하나이다.


2) [너희(예수쟁이들) 중에 심지어 음행(淫行)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즉, 어미)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고린도전서 5; 1)


어느 예수쟁이가 자기 어미(또는 계모)와 흘레를 했다는 말이다. 바울이 고린도(지명) 교회에 대고 하는 말이다. 
"심지어"라는 말을 보아, 여타 음행은 일일이 다 말로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방인(예수쟁이가 아닌 사람)에게는 없는 음행임을 바울도 인정하고 있다.
모세 시대로부터 바울 시대까지도 동물과 다름 없는 남녀 문제가 일반화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롯>은 자기 딸들과 붙어서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을 태어나게 했으며, 아므람은 자기 고모 요게벳과 붙어서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 이렇게 3 남매를 낳는다.

물론,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불문하고 탈선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들어오기까지 예수교(바이블 내용)처럼 그렇게 심각한 사회는 없었다.
간단한 불문율(不文律=도덕율)만으로도 거의 완벽한 질서는 유지되어 왔다. 아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아주 자연스럽게 저절로 지켜지던 풍습들일 뿐이었다.
현재, 한국 예수교가 자기 것인 것처럼 설교에서 떠들어지는 윤리적인 말들은 예수교의 가르침이 아니라, 이미 우리 나라에 내재(內在)되어 있는 척도(尺度)와 가치관일 뿐이다, 그런 것들이 결코, 예수교의 것이 아니다.

한국적 윤리관은 인성(人性)이 파괴된 예수쟁이들에게 있어서 우이 독경(牛耳讀經)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예수쟁이 1,000 만 이상이 와글대는 이 나라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예수교의 더럽게 썩은 모습은 예수교 본래의 태생적 모습으로서 고쳐지기는커녕 오히려 우리 한국인의 인간성을 완전히 파멸시킬 것이다.
"예수교를 바르게 고쳐서 쓰자."는 발상 자체가 아예 근거 없는 궤변이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 정답은 예수교 자체를 박멸(撲滅)시키는 것만이 인성(人性=사람)을 되찾고 또, 평화를 되찾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제삼자 2013-08-06 (화) 08:28
[맹인(장님)들의 기습 작전]


두 눈이 멀쩡한 사람과 두 눈이 모두 보이지 않는 맹인(장님)이 전투를 하면 누가 이길까? 그렇다면, 애꾸 1 명과 두 눈이 모두 보이지 않는 맹인 1,000 명이 전쟁을 하면 어느 쪽에 승산이 큰가? 
더구나, 상대할 적군은 전지전능한 신(神)이 진두지휘하는 군부대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 적군을 상대하여 두 눈이 모두 멀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장님들이 군작전을 감행할까?
아니,
두 눈이 멀쩡한 정상적인 청년들만으로 조직된 군부대라고 하더라도, 적군을 전지전능한 신(神)이 진두지휘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대항하여 전쟁을 할 생각을 일으킬 수 있을까?

각설하고.......

옛날 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 이스라엘과 아람(시리아)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지전능한 신(神) 여호와가 적군(아람)의 모든 작전을 미리 알고 있어서,
이것을 이스라엘 쪽에 알려주고 있어서 이스라엘군은 백전백승을 거두게 된다.
적군(아람)의 작전 내용을 여호와로부터 알아내어 이스라엘군 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한 사람은 선지자 엘리사(엘리야의 제자)였다고 한다.
엘리사는 적군의 통수권자인 아람 왕이 안방에서 그 부인(왕후)과 귓속말로 소근거린 내용까지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럴 테지. 전지전능하니까... 전지전능한 신(神) 여호와가 함께 하고 있었으니 무엇인들 할 수 없는 것이 있었겠는가?

아람 왕은 엘리사를 제거하지 않고는 그 전쟁에서 승산이 없음을 알게 된다.
실제로는 여호와를 제거해야 될 테지만... 아직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마침내, 아람 왕은 엘리사를 잡아 죽이기 위하여 기습공격대(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도단성>으로 파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엘리사가 도단성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람 왕과 그 각료들은 멍텅구리였던가? 왜냐 하면,
전지전능한 신(神) 여호와가 선지자 엘리사를 통하여 이스라엘군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람 왕은 물론 그 각료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호와가 전지전능한 신(神)이란 것을 알면서도 이에 대항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인가? 안방에서 자기 마누라와 귓속말로 소근거린 내용까지도 알아내는 능력을 가진 신(神)을 잡아 죽이려고 시도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인가?
엘리사(여호와) 쪽에서는 아람 왕이 엘리사를 잡아 죽이려는 계획도 이미 알고 있을 것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도 상대(엘리사=여호와)를 잡아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는가?


여기에서 잠시 바이블을 보기로 하자.

[왕(아람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저희가 밤에 가서 그 성(도단)을 에워쌌더라...
아람 사람(군사)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멀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멀게) 하신지라.

엘리사가 저희(적군=장님)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도 아니니,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의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저희를 인도하여 사마리아(이스라엘의 도성)에 이르니라.]

(열왕기하 6;14~19)

1) 엘리사가 여호와에게 기도했다고 한다.
자기를 잡아 죽이려고 몰려온 많은 적군들의 눈을 멀게(어둡게) 해 달라고.
그러자, 여호와는 엘리사의 편을 들어 많은 아람 군사들의 눈을 멀게 했다고 한다.
이제 아람 군사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맹인(장님)들이 된 것이다.


2) 엘리사가 적군(장님)들 앞에 나아가서 말했다.

엘리사; "당신들은 여기에 무엇을 하려고 왔습니까?"
장님들; "우리는 엘리사를 잡아 죽이려고 왔다."

엘리사; "당신들은 길을 잘못 찾았습니다. 이 길은 그 길도 아니며, 그 성도 아닙니다.
             내가 당신들을 인도할 테니 나를 따르시오. 내가 당신들이 찾는 사람에게로 인도하겠습니다."

장님들; "............"

3) 장님(아람 군사)들은 엘리사를 따라 이스리엘의 도성 사라마리아로 들어가서 모조리 체포되었다고 한다.
도단성에서 사마리아성까지는 적어도 50 리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눈이 멀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님들이 무엇을 하려고 엘리사를 따라 먼 거리를 행군했을까?

4) 지루할 것 같아 여기서는 생략했지만, 여호와는 이 때 무수히 많은 불말(馬)과 불병거(兵車)를 엘리사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불말과 불병거는 엘리사와 그 사환(종)의 눈에만 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또, 이 불말과 불병거는 어디에도 사용되지 않는다. 또, 장님 군대와 상대하기 위하여는 불말과 불병거 따위는 필요치도 않다.
그렇다면, 여기에 불말과 불병거가 왜 등장했을까? 여호와의 장난인가?

이상에서 잠시 살펴 보았지만,
두뇌 조직이 엉성한 사기꾼이 꾸며내는 허구(虛構)이다 보니, 모순과 궤변으로 버무려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사>의 기적 이야기는 없었던 허구(거짓)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호와, 예수 및 예수교는 허구이며, 혹세무민 집단이 되는 것이다.

어때? 할 말 있었? 없지? 아직도 할 말이 남아 있다면, 바이블 속의 인간(사실은 동물?)들보다 더욱 엉성한 두뇌를 가진 멍청이에 속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 두도록! 

**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들은 열왕기하 6; 8~19을 읽어 보면 된다.
제삼자 2013-08-09 (금) 09:35
[가짜 신 우상과 진짜 신 여호와(예수)]


["그(예수교가 아닌 타종교) 위하는 것은 삼림(森林)에서 벤 나무요, 공장(工匠=목수)의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그들이 금과 은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요동치 않게 하나니, 그것이 갈린(서 있는)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에게 메임을 입느니라.
그것이 화(禍)를 주거나 복(福)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하셨느니라.]

(예레미야 10;3~5)


예수교의 왕초 신 여호와가 말하는 우상(잡신)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1. 우상(잡신)은 삼림(森林)에서 벤 나무로 만든 것이다.
2. 우상은 목수가 그 연장을 사용하여 만든 것이다.
3. 우상은 기술자들이 금(金)과 은(銀)으로 도금한 것이다.

4. 우상은 못을 장도리로 박아서 든든하게 세워 놓은 기둥과 같은 것이다.
5. 그래서, 우상은 말도 못하고,
6. 걸어다니지도 못하기 때문에,
7. 어디를 가려면, 사람이 메고 다녀야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우상이란다.

8. 그래서, 우상은 사람에게 화(禍)를 줄 수도 없고, 복(福)도 줄 수 없는 허수아비라는 것이다.
9.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상(잡신)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 예수교의 참신이신 여호와(예수)는 말을 할 수도 있고, 걸어 다니기도 한다는 말인까?
돈(교회의 운영 자금 등등)이 필요할 때, 사람들의 헌금(獻金)이란 것 없이 스스로 돈을 벌어 본 적은 있는가?
여호와(예수)는 자신의 능력으로 자기의 집(신전 또는 교회)을 지어 본 적은 있는가?
여호와는 인간에게 벌(罰)도 주고, 복(福)도 줄 수 있는 자이므로 오직 여호와(예수)만 무서워하라 이런 말이렷다. 먼저 말하면 그 말의 주인이신가?


어쨌든, 예수교의 참신이신 여호와(예수)는 다음과 같은 분이시란다.

[여호와께서 그 능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그가 목소리를 발하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하게 하시며,
그 곳간(庫間)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사람마다 우준(愚蠢=우둔)하고 무식(無識)하도다.]

(예레미야 10;12~13)


여호와는
1. 땅을 짓고,
2. 세계를 세우고,
3. 하늘을 펴고,
4. 목소리로 물과 구름과 번개를 만들고,
5.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는 분이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우둔하고 무식해서 여호와를 몰라 본다는 것이다.
형편이 이러하니, 여호와는 미치고 팔짝 뛸 만큼 억울하고 답답하시겠다.

사람들이여! 어서 우둔과 무식에서 벗어나 여호와(예수)의 그 훌륭한 재주를 인정해 드리자.
그리하여 여호와(예수)의 그 억울하고 미치고 팔짝 뛸 만큼 답답한 심정을 풀어 드리도록 하자.


이상은 여호와가 우상(偶像=잡신)에 대하여 설명한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여호와가 자신에 대하여 어떤 설명을 하는가 보기로 하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사브렐(인명)을 지명하여 부르고,
여호와의 신(神)을 그에게 충만(充滿)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가지 재주로 공교(工巧)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겨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고,
... 무릇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로 내가 네게 명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 곧
1. 회막(會幕=교회=예수와 여호와의 집)과
2. 증거궤(證據櫃=궤짝=여호와)와 그 위의
3. 속죄소(贖罪所)와 회막의 모든
4. 기구(器具)와
5. 상(床)과 그 기구와
6. 정금 등대(精金燈臺)와 그 모든 기구와
7. 분향단(焚香壇)과
8. 번제단(燔祭壇)과 그 모든 기구와
9. 물두멍과 그 받침과
10. 제사직(祭司職=목사, 신부)을 행할 때에 입는 정교히 짠 의복 곧 제사장 아론의
11. 성의(聖衣)와
12. 그 아들들의 옷과
12. 관유(灌油)와
13. 성소(聖所)의 향기로운 향이라.
무릇 내(여호와)가 네(모세)게 명한대로 그(기술자=결국 사람이네!)들이 만들지니라."]

(출애굽기 31;1~11)


1) 가짜 신(우상 또는 잡신)은 목수((공장)가 만드는데 비하여, 여호와(궤짝 신)는 신(神)이 충만하고,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그리고 여러 가지 재주를 가진 사람이 만들고 있음이 다르다.
결국, 가짜 신도 사람이 만들고, 여호와(예수)도 사람이 만든 것은 똑같다는 결론이다. 안그런가? ㅎㅎ...


2) 가짜 신(우상 또는 잡신)은  나무와 금과 은으로 만들어지는데 비하여, 여호와(궤짝 신)는 놋쇠 한 가지가 더 보태져서 나무와 금과 은 그리고 놋쇠로 만들어짐이 다르다.
다시 말해서, 가짜 신에다 놋쇠라는 쇠붙이를 한 가지 더 보태기만 하면 진짜 신이신 여호와(예수)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럴 테지! 진짜 신은 가짜 신에 비하여 뭐가 달라도 다르기는 해야 될 것이다. 아멩! ㅎㅎㅎ...

그렇다면, 가짜(우상 또는 잡신)와 진짜(여호와 즉, 궤짝 신)는 궁극적으로 무엇이 다르다는 것일까?
오늘날의 교회 건물과 그 속의 모든 장식품들은 모두 우상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일까?
어떤가?  여호와가 떠들어 놓은 말을 가리켜 "똥 묻은 돼지, 겨 묻은 돼지 나무라는 격"이라고 하면 똥창이 척척 맞아 떨어지는 말이 되지 않을까??

(3) 그런데 말이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예수)는 육체가 없는 헛개비라는 말도 있고, 고급스럽게 말해서 영(靈)이라는 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육체가 없는 영에게 위에 열거한 13 가지나 되는 치장(화장?)은 무엇에 필요한가? 미친 놈(또는 년) 아니야?
코티분, 콜울드크림, 루즈, 머리핀, 각종 악세사리 등등, 이런 것을 왜 요구하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네!
금붙이 은붙이 그리고 각종 화려하고 값비싼 의복을 요구할 것이라면, 각종 장신구와 화장품 종류도 요구했어야 구색이 맞을 것 아닌가? 안 그래?

** 이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가짜 중의 가짜는 어느 종교의 어느 신일까?
똥인지 된장인지 맛을 보고도 구별 못하는 예수쟁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기적 중의 기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제삼자 2013-08-17 (토) 13:02
[정의와 관대함]


<관대함>이란 상대를 대하는 마음이 너그럽고 큼을 이르는 말이다.
구체적인 상황을 대입하여 생각해 보면, 관대함이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성공한 사람이 실패한 사람에게,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베풀 수 있는 아량과 비슷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색하기는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는 있다. "쥐가 고양이를 생각한다."고나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역시 <관대함>이란 강자가 약자를 배려하는 언행이라야 제격으로 어울리는 모습이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이 있다.
그렇다, 자기 형편이 어렵고 힘들면 남을 배려할 여유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반면에, 사람은 여유가 생기면, 그 다음 욕심으로 <명예>라는 가장 커다란 욕망을 쟁취하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명예를 쟁취할 수 있는 지름길이 바로 <관대함>을 나타내는 언행이다. 이때, 그 표출된 관대함이 참인지 거짓인지 구별하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사람이 목숨까지 바쳐 가면서 희생 정신으로 이웃을 돕는다고 하여도, 냉철하게 자기 속을 들여다 보면 100 % 모두가 철저하게 자기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의 숙명이다."석가의 말(가르침?)이라고 한다.
이 말에 비추어 본다면, 과연 인간의 속에 진정한 의미의 <관대함>이란 것이 들어 있을까!
그렇다. <관대함>은 결국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며, 오히려 자기를 한 차원 높이기 위한 들러리 또는 속임수일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고을의 부잣집 가훈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 집에서 100 리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굶어 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느 선(線) 이상으로 출세한 사람으로서 관대하기는 그렇게 어려울 것이 없는 것이다.
아니, 그 관대함이란 것이 더 큰 것을 훔치기 위한 고단수의 권모술수라는 것을 발견할 때도 많다.
또, 관대한 일을 하면, 실질적으로 행복감이 얻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속임수 없이 행할 수 있는 일이 관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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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이 제정되어 있어도 <운용의 묘미>가 없다면, 그 법은 사장되어 있으나 마나 하거나, 오히려 악용될 우려도 있게 된다.
마찬 가지로 <정의>라는 것도 자기 입맛에 맞도록 이리 저리 구부려 놓는다면, 정의가 아니라 악으로 전용되기도 한다.
사실상, 정의가 정의답게 씌어진 곳은 인류 역사 전체에다 견주어 봐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만약, 정의를 정의답게 해석도 하고 바르게 활용할 수만 있다면, 인류 사회 속에서 정의보다 값지고 큰 것은 없을 것이다.

<관대함>도 훌륭한 것이고, <정의>도 위대한 것이지만, 그 중에서 더욱 값진 것을 하나만 택하라고 한다면.....
사람(상대)에게 관대함을 베풀다가 욕을 먹거나 목숨에 위협을 받게 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관대함을 배풀다 보면, 칭송을 들을 때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정의를 실천한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라도 목숨도 담보해야 되고, 심지어는 가족까지도 불행 속으로 끌어 들일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언행이 바로 정의의 실천이다.

인류 역사 속의 모든 우여곡절은 바로 정의로우냐 그렇지 못하냐와 직결된 것이다.
또, 위대한 사람 중에는 비명횡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그 원인도 정의를 실천하다가 이를 시기하고, 자기의 불의를 감추려는 적들에게 당하는 비극이다.
따라서, 인류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정의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정의가 제대로 밝혀진 것은 천에 하나 만에 하나도 찾아 보기가 어려울 것이다.
거의 모두가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쓰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가는 것이 정의이다. 그래서도 정의는 한량 없이 눈물 겹도록 위대함이다.
"정의와 선(善)을 가장 작게 축소시켜 놓은 것이 법(法)이다."
------------------------------------------------------------------

얼른 생각하면, 관대한 사람은 부드러운 인격자로 느껴지고,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은 원리 원칙을 따지는 엄격주의자로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도, 정의로운 사람보다는 관대한 사람에게 좀 더 정이 가고, 인기가 더 높을 수도 있다.
그러나, 관대한 세종대왕(공자라도 좋다)이 다스리는 왕권 시대에 살고 싶은가, 아니면, 정의(法?)로 다스려지는 현대 민주주의 시대(가장 못돼 먹은 통치자의 이름을 명기하지 않기로 함)에 태어나서 살고 싶은가?
제삼자 2013-09-26 (목) 14:10
[400년 전의 思夫曲]

사부곡(思夫曲)은 죽은 남편을 못 잊어 그리워하는 아내의 가슴 도려내는 그리움의 읊음이다.
지난 1998년 4월, 경북 안동시 정상동의 한 양반가의 오래 된 묘지를 이장하던 중 무덤 안에서 조선 중기에 쓴 한 여인의 한글 편지가 한 통 발견되었다.

412 년이라는 세월을 넘어서 세상에 알려진 이 편지는 조선조 명종과 선조 때 살았던 경남 고성 이씨(固城李氏) 이응태의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나간 남편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사랑의 마음을 편지 형식으로 써서 죽은 남편의 품에 넣어준 만사(輓詞)이다.

※만사(輓詞)-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심정을 적은 글. 輓-수레끌만


『원이 아버지에게』...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어찌 나를 두고 당신이 먼저 가십니까?...당신은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몰래 와서 당신모습 보여 주세요..."라며 남편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과 생전의 각별했던 부부애를 애틋한 필체로 표현하고 있는 죽은 남편을 그리는 사부곡(思夫曲)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6년 전인 1586년 서른 한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남편을 위해 임종 후, 장례 전날까지의 짧은 시간에 써 내려간 이 글은 원지 절반 크기의 한지에 촘촘하게 적혀 있다.
하고픈 말이 더 있는데 쓸 종이의 지면이 부족하자 종이를 옆으로 돌려 상단 남은 부분에 다시 빼곡하게 적을 정도로 지아비를 그리는 아내의 애절한 마음이 곳곳에 담겨 있다.

또, 무덤 안에는 저승 갈 때 신고 가라고 이 씨 부인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삼줄기와 함께 정성껏 엮은 미투리와 남편이 소중히 여겼던 아직 태어나지 않는 복 중의 아이에게 줄 배냇저고리까지 함께 들어 있어 죽은 남편의 넋을 위로하려는 각별했던 정성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토록 남편을 그리워한 이 씨 부인이 정작 어디에 묻혀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이 기사는 전하고 있다.

이 편지는 당시 엄격한 남녀유별의 유교사상 속에서 이처럼 때 묻지 않고 허물없는 애정 표현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뜻밖이지만, 무엇보다도 아내와 남편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또 존중했던 당시 조선 사회의 남녀 평등한 사고관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죽음이 서로를 갈라 놓았지만 정신만은 영원히 함께 하고자 소망했던 이응태 부부의 사랑이야기는 툭하면 이혼하고, 자기만 위로 받으려는 이기주의 생각으로 나날이 엷어지고 있는 현대사회의 부부와 가족 간에 대한  사랑의 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400년 전, 진실로 서로 사랑하며 백발이 될 때까지 함께 해로하고자 소망했던 이응태 부부! 비록 육신은 떨어져 있을지언정 그들의 영혼만은 지난 400 년 동안에도 줄곧 함께였을 것이다.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었던 이응태 부부의 사랑, 긴 어둠의 세월 속에서 이 사랑을 지켜온 것은 아내가 써서 가슴에 고이 품어주었던 마지막 편지였다.



원이 아버지에게.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을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 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 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 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 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 들 내 마음 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 병술년(1586)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



[孔子 曰]

"사람의 마음은 그 험하기가 산천보다도 더 하고, 알기는 하늘보다 더 어려운 것이니라.
하늘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과 아침 저녁의 구별이 있지만, 사람은 꾸미는 얼굴과 깊은 감정 때문에 알기가 어렵다.
외모는 진실한 듯하면서도 마음은 교활한 사람이 있고,
겉은 어른다운 듯하면서도 속은 못된 사람이 있으며,
겉은 원만한 듯하면서도 속은 강직한 사람이 있고,
겉은 건실한 듯하면서도 속은 나태한 사람이 있으며,
겉은 너그러운 듯하면서도 속은 조급한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을 쓸 때에는

1. 먼 곳에 심부름을 시켜 그 충성심을 보고,
2. 가까이 두고 써서 그 공경심을 보며,
3. 번거러운 일을 시켜 그 재능을 보고,
4. 뜻 밖의 질문을 던져 그 지혜를 보며,
5. 급한 약속을 하여 그 신용을 보고,
6. 재물을 맡겨 그 어짐을 보며,
7. 위급한 일을 알리어 그 절개를 보고,
8. 술에 취하게 하여 그 절도를 보며,
9. 남녀를 섞여 있게 하여 그 이성에 대한 자세를 보는 것이니,

이 9 가지 결과를 종합하여 놓고 보면, 사람을 알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천인혈(千人血) 만성고(萬姓膏)]


* 千人血--1,000 사람의 피
   萬人膏--10,000 사람의 기름


[金樽美酒 千人血; 금준미주 천인혈] 매미채로 거두어들인 헌금은 수 많은 사람의 피요,
[玉盤佳爻 萬姓膏; 옥반가효 만성고] 목사 신부 타고 다니는 승용차는 천만 사람의 기름이라.

[燭淚落時 民淚落; 촉루락시 민루락] 십자가 위에 설치된 닭발은 무지한 사람의 손발 수고요,
[歌聲高處 怨聲高; 가성고처 원성고] 찬송가 소리 높은 곳에 백성의 원망소리 하늘을 찌른다.

               
-춘향전(春香傳)에서-
제삼자 2013-10-02 (수) 14:14
["웃겼어!"-어느 인생 회고담]


한 늙은이가 죽으려 하고 있다.
병원의 침상 위에 며칠 째 눕혀진 채로 눈은 감겨 있다.
아들 딸들은 물론 손자 손녀 며느리와 마누라까지 빙 둘러 서서 심각한 모습들을 하고 내려다 보고 있다.

아무리 수명이 길어진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89 년을 살아낸 늙은이의 수명은 길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으로 89 세이니까, 한국식으로 계산하면 90 세라고들 말해지는 것 같다.
높은 벼슬도 두루 거치고, 명성도 얻을 만큼 얻었으니, 세상이 말하는 출세도 했다고 할 수 있다.

뻔한 얘기지만, 막강한 권력은 돈도 가질만큼 굴러 들어오게 했다.
아들 딸 6 남매를 낳아 길러냈고, 다시 그 자식들에 의하여 손자 손녀는 물론 증손들까지 수 십 명이나 되었다.
이만하면,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인생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는 뜨지 않을 것 같던 늙은이의 눈이 띄어졌다.
무슨 중대한 유언이라도 있을 것 같아 모두들 숨을 죽이고 서 있다.
5 초 전, 4 초 전, 3 초 전 그리고 2 초 전..."웃겼어!"

출세한(?...) 인생 90 년의 회고담은 "웃겼어" 세 마디 뿐이었다.
그리고, 인생 90 년을 돌아 보는데는 1 초(秒)의 시간으로 충분했다.

"웃겼어!" 이거면 충분하지 뭐. 더 떠들면 잔 소리지 뭐. 안 그래?
제삼자 2013-10-11 (금) 09:38
[가난한 늙은 농사꾼 부부]


옛날 옛날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던 시절, 어느 농촌에 가난한 늙은이 부부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 늙은 부부는 손수 열심히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에게는 아들은 고사 하고 딸도 없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그들 늙은 부부는 일점혈육도 없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였다.

늙은이 내외는 집 안 일이 건, 집 바깥 일이 건, 어느 한 가지라도 손수 일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 갈 수가 없었다.
자연히, 매일 매일이 고달프고 피곤한 생활이었다. 그래서, 늙은이 부부는 밤만 되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 자게 되었다.
대개, 늙은이들은 깊게 또는 길게 충분히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늙은이 부부는 매일 밤 깊은 잠을 길게 푹 잘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늙은이 부부는 깊은 잠이 들기만 하면, 할아버지는 황제가 되고, 할머니는 황후 노릇을 하는 꿈을 꾸게 되는 것이었다.
더욱 희한한 일은 꿈은 언제나 전 날 밤에 꾸던 꿈에 연이어서 계속되는 것이었다.
전 날 밤 꿈에서 미해결된 정사(政事)는 다음 날 밤 꿈에서 해결하고...이런 식으로 꿈 속에서도 매일 매일의 사건이 연결되고 또 연속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낮에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농사꾼 신세였지만, 꿈 속에서는 대단히 박학 유식한 황제 부부가 되어 나라와 백성을 이끌고 다스리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었다.
또, 늙은이 부부는 낮에도 금슬(실) 좋기로 이름이 나 있었지만, 꿈 속에서도 역시 금실 좋은 황제요 황후였다.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 가고 있던 어느 날,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그럴싸한 아이디어를 한 가지 내놓았다.

"영감! 우리가 살아 가는 방법을 조금 바꿔 보지 않을래요?""
"바꾸다니...어떻게 말이요?"

"우리가 낮에는 가난한 농사꾼 신세이지만, 밤에는 어엿한 황제 황후가 아닙니까?"
"그거야 그렇지..."

"그러니까, 공연히 낮에 땡볕에 나가서 고생스럽게 땀 흘리며 일을 할 게 아니라, 낮에는 그럭저럭 그늘에서 쉬기도 하고, 낮잠을 자기도 하면서 시간을 때우다가 밤에 대궐로 들어가서 임금 노릇을 하면 될 게 아닙니까!"
"그거 마누라 생각이 멋지구려. 당장, 오늘부터 마누라의 생각대로 합시다. 차라리, 낮을 밤이라 여기고, 밤을 낮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구만...!""

이리하여, 그 날로 당장 늙은이 부부는 시원한 그늘에서 쉬기도 하고, 낮잠도 즐기면서 낮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며칠이 지나자 식량을 비롯해서 먹을 것이 모두 떨어졌다. 뻔한 결과였다. 배가 고팠지만 굶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금만 참고 시간을 보내면, 밤에 대궐로 들어가서 산해진미의 진수성찬을 맛나게 먹을 수가 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울 것까지는 없었다.

며칠의 시간이 지나갔다. 참으로 편안하고 행복한 나날이었다. 몸과 마음이 마냥 태평하고 즐거웠다.
그러나,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하루 해가 조금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굶는 일도 하루 이틀이지 배 고픈 문제는 역시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어서 밤이 되어 대궐로 들어가서 진수성찬을 먹을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런데, 밤이 되었으나 잠이 오지를 않았다. 몸과 마음이 편하니까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잠이 들어야 황제와 황후도 되고, 진수성찬도 먹을 수가 있을 텐데, 잠은 오지 않고 오히려 정신이 말똥 말똥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며칠 동안 먹지도 못해서 움직일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은 지경이 되었다.

"이러다간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굶어 죽을 판입니다. 영감, 안 되겠습니다. 우리 다시 땡볕으로 나가서 일하며 삽시다. 그래야, 먹고 살 수도 있고, 밤에 대궐 생활도 할 수 있을 게 아닙니까!"
마침내,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언제 마누라 생각에 틀린 적이 있었소? 그럽시다. 마누라 뜻대로 합시다."

이리하여 늙은이 부부는 다시 열심히 일하는 가난한 농부로 돌아가게 되었다.
마침내, 또 다시 몸과 마음이 피곤해진 늙은이 부부는 밤마다 깊은 잠을 잘 수가 있게 되었고, 그 때마다 만승 천자(萬乘天子=황제) 부부가 되어 행복을 만끽하며 여생을 살았다고 한다.
제삼자 2014-02-23 (일) 18:14
국력 10대국의 순위는 다음과 같다.
순위
나라
평균값
1
미국
90.69
2
영국
65.04
3
러시아
63.03
4
프랑스
62.00
5
독일
61.93
6
중국
59.10
7
일본
57.84
8
캐나다
57.09
9
한국
53.20
10
인도
50.43

 

제삼자 2016-01-20 (수) 06:21
이곳의 정보가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글쓴이 : 복덩이  (121.♡.167.252) 날짜 : 2016-01-01 (금) 04:33 조회 : 425 추천 : 11 비추천 : 0  
방금 42살이 된 아줌마입니다.
약 6개월 전부터 이곳을 알게됐습니다. 일을 마치고 아이들 재우고 늦은 밤마다 틈만나면 들어와서 제삼자님과 고 스테어님의 칼럼을 탐독했습니다. 두분의 글은 인쇄해서 두고두고 읽을 작정입니다.  

궁금증이 많고 한번 알고싶은 것은 날밤새서라도 알아내야하는 성격이지만 반기련 홈페이지가 있다는 것을 진즉에 알고 난 이후에도 이곳에 들어오길 참 망설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 제가 이렇게 될 줄 알고 그랬겠지요. 성경에는 제가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으니까요. 하나님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하지 못했고 불면증과 남들이 모르는 우울증을 달고 살았습니다. 고뇌가 많았지요. 지금도 새벽 5시를 향해 가고 있네요.. 곧 나아질거라 생각합니다.

고 3때 신앙생활을 시작한 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위해 노력해온 사람입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대부분 안티분들이 말씀하시는 개독과는 좀 달랐어요.
대학 기독동아리에서 전도, 해외선교 등 열심히 활동하면서도 늘 성경의 기록이 마음에 들지 않아 목사님께 간사님께 선배들에게 많이 따졌었지요. 특히 욥의 두배의 축복이 저로서는 도저히 축복이라 생각되지 않았고 (스테어님의 글에서 똑같은 글을 읽고 어찌나 반갑던지요), 예정설도 짜증났으며 기복신앙 또한 저질스러웠고 천국에 있다는 황금집과 정금길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요. 천국에 보물에 왜 필요하지...찬송가에서 순황금길을 거닌다는 가사가 있는데 상상만해도 도리질이 나올 풍경이었죠. 그저 천국은 예전 살던 시골집 앞마당같은 곳이었으면 좋겠다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환경을 전혀 흠모하지 않았어요. 면류관 던지면서 맨날 찬양이라니.. 목 안플까.. 난 조용히 산책하고 싶고 햇볕아래서 좋아하는 책 읽다가 어릴 적 죽었던 개랑 다시 만나 놀고싶다... 늘 자신을 찬양하고 칭찬해주길 바라는 허영심 많은 사람을 어린왕자가 참 이상하게 생각하는 장면에서 "이 사람... 그러고보니 하나님같은데?" 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 불경스러운 생각을 지워버리려 애쓰기도 했지요. 그럼에도 그 생각은 없어지질 않았네요. 지금 딱 떠오르는 걸 보면...

가끔은 지옥이 없을지도 모른다. 지옥은 하나님이 우리 겁주려고 지어낸 이야기다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때 돌아가신 사랑하는 외할머니가 지옥에 계신다는 상상은 끔찍했으니까요. 외할머니 뿐이겠습니까. 저는 누구라도 싫습니다. 악인중의 악인이라도 누군가에게는 귀한 사람일 수 있으니까요. 내가 창조자라면 차라리 교화소를 만들었을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일성수와 십일조는 당연하고 외국의 아이들을 위해 후원하는 것과 장애인시설이나 고아원 후원, 선교헌금 등을 "왜 그렇게 사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제 쓸 것 아껴가면서 냈는데요..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겠다는 생각으로 하지 않았고 십일조는 의무요 구제나 후원은 그저 누군가에게 필요하니까 나눈 것 뿐이었습니다.
성경의 기록이 백프로 마음에 들지 않아도, 기가막힌 사건들이나 재난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면서도 신앙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천국에 가면 모든 의심이 풀릴 것이라는 믿음때문이었죠.  기가막힌 반전을 보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말이죠..
나니아연대기로 유명한 cs루이스의 다양한 책들과 잔느귀용의 신앙서적들이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주기도 했습니다. 어떤 크리스챤은 잔느귀용과 루이스도 굉장히 싫어하더라만은...

교회나 목사들과 관련한 추악한 사건들은 저의 믿음을 전혀 흔들지 못했어요. 그건 인간이 저지른 일이지요. 소위 말하는 말세지말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하나님도 개탄하시고 미워하시니까요.
이곳에 그런 기사거리가 많이 올라오지만 그런 글들은 저같이 생각하는 크리스챤들을 돌이키기 어려워요.

저를 돌이킨 글들은 제삼자님과 고 스테어님의 칼럼이 백프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이블의 기록에 대해 놀랍고 창의적인 접근법으로 알기쉽게 풀어주신 제삼자선생님과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논리적인 글을 써주신 스테어님 덕분에 제가 뒤돌아보지 않고 교회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요..띠엄띠엄 다니다가 완전히 마음을 접은 지는 3개월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여동생과 이곳의 글을 함께 읽고 토론하면서 여동생 또한 신앙을 접었습니다. 남편은 안넘어오네요. 인간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워낙 특이한 사람이라... 설명하자면 대하드라마 될 것 같아서 넘어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곳의 소중한 정보에 감사드리며 이제 자유롭게 살겠습니다.  하나하나 죄책감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고 바이블 읽고 기도하는 수고로움과 전도해야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단이니 음모론이니 적그리스도니. 선교지 소식이니, 이스라엘소식이니 이런 쓰잘데기 없는 고민과 자료수집 등으로 시간낭비 하지 않아도 되고요.

제가 하고 있던 선교헌금은 다 취소했습니다. 아직 교회사람들은 제가 이런 상태인지 전혀 모릅니다. 유명한 대형교회라 당분간은 모르실 것 같네요.. 크리스챤 친구들도, 이웃들도... 심지어 남편과 여동생을 제외한 가족들도 아직 모릅니다... 어떻게 말해야할까요. 따지는 것은 많았지만 나름 골수크리스챤으로 살아온 저인지라 주위반응이 심상치 않을 거라는 예상을 해봅니다.  대부분 목사, 선교사인 친구들 뿐 아니라 교회 집사님들까지 우루루 달려와 눈물로 기도하고 권면하며 강권하겠지요... 분명 마귀의 꼬임에 넘어간거라 생각할텐데... 
응원해주는 무신론자 친구 두명이 있긴합니다. 그 친구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겪더라도 예수믿을 일은 없겠지요. 이곳의 정보에 의거하여 수시로 분통을 터뜨리며 열 올리는 제 모습을 너무 자주 봤으니 말이죠. 바이블의 내용이 지독하긴 하구나 싶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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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삼자 14/04/02 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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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장하다! 반기련이여!]한국 사람들 사이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특이한 정서에 정(情)이란 것이 있다. 정(情)이란 오랫동안 지내 오면서 생기는 사람과 사람 …
제삼자 14/02/11 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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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예수교의 뿌리]** 예수교의 뿌리가 무엇(누구)인지 아는 예수쟁이가 있을까?   여호와를 세상에 최초로 소개한(발명해 낸?=만들어 낸?) 사람은 모…
제삼자 13/12/11 6434
720
*44[귀하디 귀한 내 자식의 친구로는?]   수 십 년 전(50 여 년 전) 일이다. 필자의 친구 중에 J라는 젊은이가 하나가 있었다. 그는 술과 여자…
제삼자 13/11/29 4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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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아주 커다란 착각(궤변)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일까?(1) 착한 일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일이 더 어려울…
제삼자 13/11/14 4181
718
*42[지상 최대의 사기극 제1막과 제2막 공연]* 참고; 시간이 없는 독자는 저 밑으로 가서 =====선 아래 <사기극 제1막>부터 읽어도 된다.[근거 제1]--구약…
제삼자 13/10/11 4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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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예수교는 예수도 감지 못한 자력 신앙(自力信仰)]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예수교는 타력(他力) 신앙이고, 불교는 자력(自力) 신앙이다."라고. 불교는 무슨 …
제삼자 13/08/30 5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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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예수일당은 3 년 동안 무엇을 한거야?] 예수쟁이의 으뜸되는 목표는 <믿음 생활>이다. 그래서, 예수쟁이의  다른 이름도 <신앙인(…
제삼자 13/08/26 5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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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개망신]  * 개망신--아주 큰 망신.   망신--말이나 행동을 잘못하여 자기의 명예나 체면 따위가 손상을 입음.  영국 역사상 가장 중요…
제삼자 13/07/21 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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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혼인할 배우자를 찾음] 어느 일간지에 다음과 같은 구혼(求婚) 광고 3 개가 게재되어 있었다.  (A) [혼인(결혼)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소유…
제삼자 13/07/06 4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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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군자 삼변(君子三變)에 비춰 본 예수교]예수의 조상 중에 <유다>라는 사람이 있다. 이 유다가 며느리(다말)와 불륜으로 간음하여 자식이 태어나는데, …
제삼자 13/06/21 5692
712
*36[협잡질(挾雜-질)]협잡질(挾雜-질); 그릇된 행동으로 남을 속이는 짓.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난 사람이 하는 일(예: 나라를 다스림)을 가리켜 경-륜(經綸)이…
제삼자 13/05/14 5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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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보복(?)이 두려워 숨어 다니는 神]* 전지전능하다는 신(神)이 숨어 다니기도 하고, 도망다니기도 한다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1) [유대인들이 가로되,…
제삼자 13/04/30 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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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두 연놈의 배때지를 꿰뚫어 죽이기] 여호와(예수교의 신이라 함)의 질투심이 발동했을 때, 초기 진화를 하지 않으면 한 나라와 민족이 송두리 째 없어질 수…
제삼자 13/04/09 4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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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짓]"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속담(?)이 있다."무슨 일을 하려면 그에 걸맞은 실력과 견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 무슨 …
제삼자 13/03/25 4732
708
*32[예수의 산상수훈(山上垂訓)]고등학교 2 학년 때, 윤리 과목 선생이 결근을 하자, 교장 선생이 대신 교단에 나타난 적이 있었다.그 때, 교장 선생으로부터 처…
제삼자 13/02/12 5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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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 중의 논리-논리의 진수(眞髓)](가정) 부산 앞 바다에서 유난히 꽁치가 많이 잡히는 해가 있다고 하자.(결론) 그렇다면, 그 해에는 서울 사람들은 서대…
제삼자 13/01/28 4682
706
*30 [예수가 태어나던 날의 날벼락] 한 나라에 왕자가 태어나면, "대역 무도한 죄인을 제외하고, 모든 죄수들을 방면하라."는 임금님의 어명이 떨어지게 마련…
제삼자 12/12/23 5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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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祝辭)] 반기련 회원 여러분! 오늘은 참으로 뜻 깊은 날입니다. 아니, 어쩌면 먼 훗날 역사의 한 페이지를 크게 장식할지도 모를 그런 감격스런 …
제삼자 12/09/13 4832
704
[무식과 용감무쌍은 이란성 쌍둥이]요즈음, 태풍 볼라벤과 덴빈으로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태풍이 몰려 오면, <호우 주의보>니, <…
제삼자 12/08/31 4308
703
[막중한 임무를 띤 반기련]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354~430)-초대 예수교의 가장 유명한(?) 교부신학자라 불린다.예수교의 기초와 근본 교리는 아우구스티…
제삼자 12/08/19 4134
702
[예수의 사상에 대한 고차원적 분석] A. 약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는 어렵다. B. 부자가 천당에 들어가기는 어렵다. 위의 2 가지 논제 중, A는 물리적(물질적)인…
제삼자 12/07/31 4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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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예수)의 만행(蠻行)질]다음의 말은 여호와(예수)가 전지전능한 신으로서 천지를 창조하고, 이것을 정의와 사랑으로 다스린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성…
제삼자 12/07/16 5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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