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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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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인원 : 3,879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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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40[예수 일당은 3 년 동안 무엇을 한거야?]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3-08-26 (월) 08:18 조회 : 5495
*40[예수일당은 3 년 동안 무엇을 한거야?] 


예수쟁이의 으뜸되는 목표는 <믿음 생활>이다. 그래서, 예수쟁이의  다른 이름도 <신앙인(信仰人)>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교의 그 믿음은 종류가 많다고 한다. 믿음의 종류가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좋은 믿음, 나쁜 믿음>,
<진짜 믿음, 가짜 믿음>,
<많은 믿음, 적은 믿음>,
<굳건한 믿음, 연약한 믿음>,
<겨자씨 만한 작은 믿음, 태산처럼 커다란 믿음>
<바람에 흔들리는 믿음, 바위처럼 굳건한 믿음>
<마귀가 농간하는 믿음, 성령이 감동을 주는 믿음>
심지어는 <자라는 믿음, 줄어드는 믿음>도 있다고 한다.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간질병 환자)가 그때부터 나으니라.
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예수)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태 17; 18~20)

(1) 예수를 비롯해서 그의 제자들은 각종 질병의 원인을 귀신 때문에 발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늘 날의 예수쟁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밝은 대명 천지에 실로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의 제자들이 간질병 환자를 고쳐 보려고 시도해 봤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사람의 몸에 들어가 있는 못된 귀신을 쫓아내려면 귀신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데, 예수의 제자들은 아직 귀신의 힘을 당해낼 만큼의 힘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은 예수가 귀신을 꾸짖자,  귀신들이 기겁을 해서 도망쳤다고 한다. 당연히, 간질병을 앓던 사람의 병이 고쳐졌음은 물론이다. 그럴 테지...ㅎㅎ...
예수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결정적 요인은 믿음이 적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수가 떠들고 있는 말이다. 그러나, 귀신 때문에 간질병 등의 질병이 발생한다고 믿는 예수쟁이가 있을까?
예수쟁이들도 병원 문턱을 부지런히 넘나드는 꼴을 보고 있자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예수쟁이들은 한 명도 빠짐 없이 왜 저렇게 가식적(假飾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그 인격을 가늠할 수가 없다.

(2) 믿음이 겨자씨 한 알갱이 만큼만 있어도 이 쪽에 있던 태산을 저 쪽으로 옮길 수가 있다고 한다. 인천에서 중국의 산뚱반도까지 바닷물을 가르고 8 차선 고속도로를 낼 수도 있다. 물론이다. 예수의 말이다. ㅎㅎ...
그렇다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예수의 제자들에게는 겨자씨 만큼의 믿음조차 없었던 것이다. 아니면, 귀신 한 마리의 무게가 태산보다 훨씬 무거운 물건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3 년 동안을 선생(예수)과 동거동락을 했는데도 예수의 제자들은 선생(예수)을 전혀 믿을 수가 없었다는 말이 된다. 3 년 동안 무슨 짓들만 하고 있었기에 겨자씨 만큼의 믿음조차도 만들지 못했을까?

예수는 자기 제자들의 믿음이 없음을 보고서 다음과 같이 짜증을 냈다고 한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아야 된다는 말이냐? (마태 17; 17)"
결국은 3 년 동안을 함께 하며 가르쳤는데도 겨자씨 한 알갱이 만큼의 믿음도 심어주지를 못했다는 결론이다. 전지전능한 신의 재주로도 믿음이란 것을 사람에게 심어 줄 수가 없는 것인가 보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해 본 적이 없는 패거리(예수와 그 제자라는 것들 모두)들끼리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한 가지도 빠짐 없이 종교 사기꾼들의 어설푼 사기 행각일 뿐이다. 이것이 바이블의 모든 것이다.

* 참고; 우리 인간 사회에서는 3 년이면,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를 이수하고, 군복무 또는 석사과정을 충분히 끝낼 수가 있다.
        그런데, 예수란 녀석은 3 년 동안 동고동락을 하고서도 제자들에게 그잘나빠진 믿음을 전수해 주지 못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정답은 간단하다. 예수(여호와)를 비롯한 예수교의 모든 것이 허구라는 사실이다.
        오늘 날은 어떤가? 평생 동안을 교회 문턱을 넘나들고도 믿지를 못해서 애걸복걸한다. 웃기는 짓일까? 아니면, 못된 짓일까? 달밤에 망부석 붙잡고 꼴값하는 곱사춤일까?

(3) "믿음이 없고 패역(도리에 어긋나고 순리를 거스름)한 세대여..." (마태 17; 17 일부)
왜 <믿음>이란 말과 <패역>이란 말을 섞어서 팔아 먹고 있을까? 어떤 재벌기업에서는 비 인기 상품을 인기 상품에다 강제로 끼워서 팔아 먹던데, 2,000 년 전의 예수는 벌써부터 그 짓거리를 알고 있었던가?
믿음이 없는 사람은 패역한 사람과 같다는 말일까? 또는 패역한 놈은 믿음도 없더라는 뜻의 말일까? 믿는다는 종자(예수쟁이)가 1,000 만이나 된다는 한국 사회가 저토록 시끄럽고 복잡한 이유는 뭘까?
이제라도 예수(교)는 <믿음>이라는 말과 <패역>이라는 말을 바이블 속에서 분리시켜 놓아야 될 것이다. 안 그래?

(4) "...내(예수)가 얼마나 너희(제자=사람)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아야 된다는 말이냐?" (마태 17; 17 일부)
예수는 여호와의 아들로써 인간을 죄의 고통에서 건져내어 천당으로 인도할 의무를 가지고 이 세상에 온 자라고 한다.
그런데, 겨우 3 년 동안 극히 일부의 사람을 만나서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말로 중언부언 떠드는 것이 전부였던 예수의 입에서 "내가 얼마나 더 참아야 된다는 말이냐?" 하며 사뭇 짜증을 내고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무엇인가 못나먹은 구석이 있더라도 그것을 예수쪽에서 시비를 걸 일이 아니다. 인간을 못나먹게 창조해 놓은 자가 여호와(예수)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언행은 "똥 싼 놈이 화내는 격"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뿐이다.

신(神)을 직접 만나서 체험을 한 사람은 신을 믿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냥, 신을 알면 되는 것이다.
부모의 사랑을 체험한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믿을 필요가 없다. 그냥, 부모의 사랑을 알고 있으면서 고맙게 받아들이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3 년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었기에 예수는 그 잘나빠진 신의 역할을 제자들에게 겨자씨 한 알갱이 만큼도 심어 주지를 못했을까?
그리고는 엉뚱하게도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아야 된다는 말이냐?" 이것이 되는 말일까?
사람을 향해서 저렇게 패악스레 떠들어 댈 수 있는 예수야 말로 "패역"한 존재가 아니고 뭘까? 맞다. 예수는 <패역무도한 자>였으며, <패륜아>이기도 했다.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3-08-26 (월) 08:20
[X=1, Y=1이면, X=Y이다]

[여러분이 무엇보다도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아무도 성경의 모든 예언을 제멋대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말씀을 받아서 한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 20~21)

바이블(예수교의 경전)은 성령에 이끌려 그 감동을 받은 사람(선지자=예언자)들이 기록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일점일획(一點一劃)도 하자가 없는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 같다. 전지전능한 신(여호와=예수=성령)으로부터 감동 감화를 받은 사람이 그 지시에 따라 기록(바이블)을 남겼다면, 그 기록 내용보다 더 정확하고 훌륭한 보물(가르침)은 없을 것이다.
어쨌든, 예수교의 경전(바이블)에는 조금도 잘못이 있을 수 없는 전지전능한 신(여호와=예수=성령)의 가르침과 뜻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한다. 아멩!
각설하고...

초대 예수교 시절에 서로 상대방을 죽이면서까지 옥신각신 자기 파의 신앙을 지키려고 별별 짓을 다 하던 이단 논쟁이 하나 있었다.
"가짜 교부(예수교의 지도자)가 베푸는 세례는 효력이 있다고 해야 하느냐? 또는, 없다고 해야 하느냐?"하는 문제로 대가리가 터지도록 싸웠다고 한다.
여호와(예수 또는 성령)가 결정해야 할 문제가 분명해 뵈는데도 예수쟁이(인간)들이 주제 넘게 왈가왈부 아우성이다.
어쨌든, 가짜가 나타나서 신(여호와=예수=성령)의 이름을 들먹이며 설교 같은 것도 떠들어대고, 세례라는 것도 베푼다면, 그 효력(결과)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누가 나타나서 "나는 진짜 지도자급 예수쟁이다."라고 선포했을 때, 이것이 진짜인지 또는 가짜인지 그것을 판가름(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나타나서 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세례를 베풀고 있다면, 그 세례를 베푸는 자가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구별해 내기는 불가능하다.
"나는 가짜이다."라고 떠들어댈 사람은 없을 것이며. "나는 진짜이다."라고 선포했다 하여 그 사람이 진짜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서로 잡아 죽이면서까지 이단 논쟁을 벌이게 됐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가짜와 진짜가 가려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속에서 또 다시, "가짜가 세례를 베풀면, 효력이 있는 것일까? 또는 없는 것일까?"
"진짜가 세례를 베풀어야 효력은 있는 것이다."라고 한다면, 진짜는 어느 누구이고, 그 진짜를 누가 어떻게 판가름(증명)할 것인가?
고양이 목에다 방울을 달아야 좋겠지만, 누가 그 방울을 달 수가 있느냐 말이다. 진짜가 세례를 베풀어야 효력이 있다고 해야 좋겠지만, 어느 누구를 진짜라고 해야 된다는 말이냐?  

마침내, "가짜가 세례를 베풀어도 효력이 있는 것으로 하자."고 합의를 보게 된다. "과부의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 고 한다. 같은 의미에서 사기꾼의 사정은 역시 사기꾼만이 아는 것이다.
서로가 자기만이 진짜이고 상대를 가짜라고 몰아 붙이다 보면, 공멸(共滅) 밖에 자기에게 돌아올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어차피, 어느 놈이 진짜 신의 앞잡이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마침내 "가짜가 세례를 베풀어도 그 효력이 있는 것으로 하자." 고 합의를 도출해 내게 되는 것이다. 가짜들끼리 자중지란으로 공멸하는 짓을 미연에 방지하여 공존(共存)할 수 있는 길을 열었던 것이다.

여러 사람들에게 설득력도 있고, 보여주기도 그럴싸한 이유로서 "세례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감동으로) 베푸는 것이지, 사람의 이름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었다.
예수교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 중 어느 한가지 이상의 이름이 들어간 말이나 사건이면 절대의 진리가 된다. 따라서, 가짜가 세례를 베풀더라도 일단 신의 이름으로 행하여진 것이기 때문에 세례의 효과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똑같은 이유에서, 바이블 내용도 성령(여호와=예수)의 감동으로 씌어진 것이기 때문에 일점일획도 하자가 없는 진리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아멩!

여기까지 짧지 않은 복잡한 이야기를 지루하게 전개하게 된 이유가 있다. 이상의 예수교의 <썰(說)>에 입각하여 유추해 낼 수 있는 대단히 중대한 결론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쟁이들 사회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 세례라는 것은 인간이 <거듭날 수>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거듭난 사람이라야 천당에도 갈 수가 있다고 한다. 예수의 가르침이다.
예수교에서 세례는 이렇게 중대한 것이며 또, 가짜가 세례를 베풀더라도 신의 이름으로 행하여졌기 때문에 그 효력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정이 내려진 상태이다.

이제, 결론을 말할 차례가 된 것 같다.

(1) 바이블 내용(예수와 여호와의 가르침)은 일점이획도 하자가 없다고 한다. 바이블은 성령의 감동을 받고서 씌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교 사회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 중 어느 한 가지 이상이 들어가면 절대적 진리가 되는 것이다. 하모!

(2) 목사, 장로는 물론 입교인(정식 예수쟁이)이 되려면, 안수와 함께 세례라는 것을 받아야 된다. 이 때의 안수와 세례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어진다.
한 개만 들어가도 절대적 진리가 되는데,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3 개가 다 들어간 안수와 세례이니까, 목사와 장로는 물론, 일반 예수쟁이들의 인격이 하늘 같이 높고 깨끗할 것은 두 말 필요가 없다. 이것도 물론 하모!

(3) 교회와 예수쟁이 입에서는 매일 매일 끊임 없이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이 쏟아져나온다. 그래서, 예수교와 예수쟁이 개개인의 언행은 항상 깨끗하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겸해서, 예수쟁이들의 삶은 언제나 축복 속에서 마냥 행복한 인생을 구가하게 되어 있다. 예수쟁이들은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게 되어 있다.  예수쟁이들 신났어. 이것도 역시 하모!



어떤가? 결론 부분 (1) (2) (3)이 자꾸 옆길로 새는 것 같지 않은가?
성부(여호와), 성자(예수), 성령(성신)의 이름으로 세례와 안수를 받았더라도 예수쟁이(목사와 장로도 포함해서)들도 시궁창 이상으로 썩어 있는 모습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바이블은 성령의 감동으로 씌어진 것이기 때문에 일점일획도 하자가 없다."고 미련스럽게 고집을 피울 수가 있는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와 안수를 받은 예수쟁이(목사, 신부 포함해서)들도 썩어문드러진 모습을 하고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감동을 받고서 써 놓았다는 바이블 내용도 더러움과 악독한 모습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는 잡서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의 세례(또는 안수)를 받은 자가 엉터리라면, 성령을 받고 바이블을 쓴 녀석도 엉터리일 가능성은 100 %가 아닐까? 안다스뗑? 


* 당연한 귀결(또는 이치)
수 천 년 동안 매년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4 철의 변화가 있었다면, 내년에도 4 철의 변화가 있을 것은 뻔한 자연의 이치이다.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3 개의 이름으로 세례(또는 안수)를 받은 예수쟁이들이 더러운 냄새를 풍긴다는 사실은, 성령(또는 예수와 여호와)의 감동과 지시를 받고서 써 놓은 바이블도 더러울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또는 모순과 궤변)인 내용으로 채워졌을 것은 뻔한 귀결이다.
바이블(예수교의 모든 것)은 모순과 궤변을 뭉쳐 놓은 허구이다. 거기에다 악독하기까지 하다.
제삼자 2013-08-26 (월) 08:22
[예수교가 있는 곳에 평화는 없(었)다]

한 때, 말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서, "너 빨갱이냐?" 또는 "너 예수쟁이로구나?"라고 핀잔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 말이 많은 자는 빨갱이 아니면 예수쟁이일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또, 말이 많다는 것은 뭔가 결함이 많은 것을 은폐하려는 수작이다.
실제로 말이 많으면 쓸 데 있는 말이 별로 없는 법이다. 그래서 또, 말이 많은 사람을 향하여, "너 빨갱이냐?" 또는 "너 예수쟁이로구나?" 라고 했을 때, 이 말은 빨갱이와 예수쟁이는 이 세상에 써먹을 데가 없다는 말도 포함된 것이다.

바이블을 보자.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한 21;25)


예수의 언행(업적)을 모두 기록하여 남긴다면, 세상(지구?) 만큼 커다란 창고를 짓더라도 그 기록물을 쌓을 수 없을만큼 많을 것이라 한다.
이 얼마나 쪼잔한 신(神)의 쪼잔한 지랄발광인가?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작자가 자신을 인간에게 알리는 방법이 그렇게도 없어서 그토록 많고 많은 수다를 쏟아내는가?

요한(바이블 중 하나)이라는 책에서 예수가 떠드는 말의 특징을 보면, "내(예수)가 진실로 진실로 네(인간에)게 이르노니..."라고 되어 있다.
얼마나 자신 없는 사기꾼 소리였으면, "진실로 진실로"를 거듭 거듭 강조하고 있을까?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못한다)"는 말이 있다.
"진짜다" "사실이다" "정확하다" "고급이다" "진실이다" 등등을 계속적으로 뇌는 사람의 말은 한 가지도 빠짐 없이 "가짜"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아직 자기 것을 만들지 못한 남의 것(설익은 지식이나 이론 등등)을 떠들 때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아 듣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자기 것(또는 자기가 납득한 것)을 설명할 때는 아무리 어려운 것이라도 상대 편에서 쉽게 쉽게 납득할 수가 있다.
바이블 내용은 100 %가 자기 것이 아닌 거짓과 허구, 궤변, 모순의 연속적인 나열일 뿐이다. 그래서, 바이블 내용은 어느 누구라도 알아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예수(여호와)는 세상만한 창고에도 다 들여 놓을 수 없을 만큼 끝 없는 수다를 펼쳐 놓았을까?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먹을거리(상품)에 아무 수식어가 따라다니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그들 먹을거리의 값도 저렴하고, 맛도 좋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고급> <최고급> <순수 자연산> <100 % 자연산> <유기농법> <진짜> 등등의 수식어가 붙으면서 값비싼 가짜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진실로"  "성스러운"  "사랑하는"  "거룩한"  "전지전능한"  "공의로운"  "진리"  "절대"  "완전"  "은혜"  "....." 등등의 수식어로 포장하고서 세상이 좁다고 좌충우돌하며 횡행하는 예수교보다 더 가짜요, 더럽고 위험한 것은 없을 것이다.


[모든 바이블은 여호와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여호와(예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후서 3;16~17)


세상 일이란 것이 여호와의 감동으로 되는 것이라면, 바이블(예수와 여호와의 수다 떨기)이 무엇에 필요할까?
여호와(예수)의 감동이 미치는 곳에 해결되지 않을 것이 없을 텐데, 구태여 "이 세상이라도 기록된 책을 둘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많은 수다를 쏟아 놓을 이유가 무엇일까?
그래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본보기(예수와 여호와의 가르침?) 즉, 바이블이 있어서 예수교의 역사와 현실이 저토록 잔인하고 시궁창 모습을 하고 있는가?

바이블에다 글로 남기는 행위에는 감동을 주었다면서, 실질적인 예수쟁이들의 언행에는 그 흔한 감동을 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가? 아직도 바이블 내용이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의 언행(또는 가르침)이 담긴 내용이라고 믿어지는가? 그러나, 바이블이 저렇게 두껍다는 것은 예수와 여호와가 가짜라는 증거일 뿐이다.
예수가 떠들어 댄 말을 모두 기록을 했더라면, 세상(지구)만한 창고일지라도 그것을 모두 들여 쌓을 수가 없을 것이고 했지만, 예수의 말이 많으면 많을 수록 예수교가 통째로 가짜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 이 필자의 진단을 변명하려고 할 텐데, 그 변명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자체도 바로 예수교의 모든 것이 허구(虛構)임을 증명해 주는 좋은 현상이다.
예수교의 말 많음은 한 마디가 첨가될 때마다 예수교의 허구, 모순, 궤변이 한 가지 씩 드러나게 될 뿐이다. 
예수교의 모든 것은 어떤 방향에서 조명하여도 허구, 모순, 궤변 아닌 것이 없으며, 여기에다 세상의 모든 극악(極惡)을 내포하고 있다는 무서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수교가 있는 곳에 평화는 없(었)다." 이것만이 예수교의 진실이다.
제삼자 2013-08-26 (월) 08:24
[여호와가 직접 자기 자신을 진단해 본 결과]
 

1) [...너희(예수쟁이 특히, 예수교 지도자들)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좋아하며,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남비와 솥 가운데 담을 고기처럼 하는 도다.
그 때에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응답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행위의 악하던 대로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우시리라.]

(미가 3;2~4)

예수교의 앞잡이들은 여호와가 택한 백성(히브리 족속=지금의 예수쟁이)의 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발라내며, 뼈를 바수며, 고기를 저미어 냄비에 끓이고, 살점을 가마솥에 삶아 먹는다고 한다.
여호와가 스스로(예수교)를 직접 진단해 보고서 화딱지가 머리 꼭대기까지 뻗쳤던 모양이다. 악을 쓰며 고래고래 소리치며 한탄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네 놈들이 부르짖는 기도를 내(여호와=예수)가 들어 줄 성싶으냐?"며 냅다 쏘아붙이고 있다. 
오늘 날의 더럽게 썩은 예수교, 냉혈동물적 극악스러움을 내포하고 있는 예수교의 행악을 제대로 전확하게 진단했다고 여겨진다.


2) [내(여호와)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 도다.]

(미가 3;5)

여호와(예수)의 앞잡이들은 입에 먹을 것을 물려주면 아부의 말로 축복을 떠들다가도, 입에 아무 것도 넣어 주지 않으면 트집을 잡아 저주를 일삼는다고 한다.
실제로, 악담질과 저주질을 빼버리면, 예수교(쟁이)에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예수교가 혹세무민으로 돈벌이에 써먹는 가장 큰 무기 중 하나가 바로 악담질과 저주질과 축복질 등등을 적당히 배합하여 똘마니 예수쟁이들에게 팔아먹는 짓이 아니던가?

그런데, 위에서 말해지는 여호와의 진단은 커다란 오해 아니, 오류가 있다. 왜냐 하면, 필자(제삼자)의 진단은 생판 다른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겉으로는 예수교의 악독하고 썩은 모습을 비판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호와(예수교의 지도자)의 속 마음은 예수교의 그 악독과 썩은 모습에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위에서 여호와의 입을 빌어 떠들고 있는 녀석의 발악은 기득권에서 멀리 밀려나 있어서 돈 맛을 전혀 볼 수가 없는 처지가 억울해서 부르짖는 발악이기 때문이다. 

오늘 날에도, 자립할 수 없는 가난한 작은 교회들이 떵떵거리는 대형 교회를 향하여 썩었느니, 제 길을 가지 못한다느니 하며 발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토색질이 서툴어서 먹을 것이 별로 생기지 않는 가난한 교회에서는 대형 부자 교회를 향하여 "예수교를 바르게 고쳐서 제대로 써먹야 된다."고 멋스러운 말로 공격을 퍼부어대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모두, 떼돈과 뭉칫돈 또는 눈 먼 돈이 굴러들어오는 기득권(대형 교회와 예수교의 요직)에서 밀려나 있는 얼치기 예수쟁이들이 샘이 나서 심술부리는 괜한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재차 말해 두지만, 위의 여호와의 자가 진단은 사실은 잘 나가는 기득권자를 향하여 배가 아파서 씹어 뱉는 한탄의 발악에 지나지 않는다.  

어쨌든, 이미 교회 속에서 신나게 밥을 벌어 먹고 살아가는 기득권자(지도자)들로서는 그 추악하고 더러운 모습이 예수교의 본래 모습이건 아니건을 불문하고 그 극악무도한 모습을 스스로 치료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종교가 아닌 세상의 어떤 분야일지라도 기득권을 양보하거나 썩은 부분을 도려내는 일을 기대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아니, 아예 없는 경우라고 해도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 위의 바이블 내용은, 종교적 실패자가 기득권자(종교적 성공자)를 시기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빌어 발악하는 모습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해서, 똑 같은 종교쟁이들끼리 물고 뜯는 모습이다.
같은 사기꾼이면서도 생기는 것이 없는 실패자는 기득권자(예; 대형교회 목사 따위)들을 곱게 보아 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죽을 먹는 자나 고깃국에 쌀밥을 먹는 자나 여호와(예수)의 이름을 팔아 혹세무민(사기꾼)으로 살아가는 모습에는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제삼자 2013-08-26 (월) 08:25
[맘 문 다 열어 놓고]

예수교가 신자들에게서 가장 크게 요구하는 의무 조항은 "예수(여호와)를 믿어야 하는 일이다."
믿어야 천당에도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예수쟁이를 가리켜 신자(信者) 또는 신도(神徒)라고 부르는 것이리라.
믿는 멍청이의 호주머니에서는 돈이 술술 흘러나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참고로, 불교에서는 신자나 신도보다는 불자(佛子)라는 명칭으로 즐겨 불려지는 같다.

"동해 바닷가에서 태양이 뜨는 모습을 보고 싶으면, 의심을 다 버리고 태양이 뜬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이런 말을 듣게 된다면,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태양이 뜬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도 있을까?
"태양이 뜨는 모습을 보고 싶으면, 이른 새벽에 동해 바닷가로 가서 직접 보면 된다."
말은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태양이 뜬다는 사실은 그냥 알면 되고, 그냥 보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교의 신 여호와(예수)는 우리 인간이 그냥 직접 알아야(볼 수 있어야) 되는 존재여야 되는 것이다.
여호와(예수)를 인간으로 하여금 믿음의 대상으로 남겨 놓는다는 것은 결국은 "인간은 여호와(예수)를 모른다."이며, 동시에 "여호와(예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이다."라는 강력한 의미일 뿐이다.
오직 바이블 속의 글자로만 말해지고 있을 뿐, 다른 어떤 것으로도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허구(가짜)가 여호와(예수)이다. 믿음의 대상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거짓이 여호와(예수)이다. 

결국, "믿는다."는 말은 "모른다."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동의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고 하자.

* "여호와(예수)는 천지를 창조하셨으며, 창조하신 천지를 큰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신이시다."

위의 말 즉, "천지를 창조하고, 큰 사랑으로 다스린다."는 말은 여간 좋은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위의 말이 명실 공히 제 값을 유지하며 그 빛을 발하려면, 여호와(예수)라는 신의 존재가 먼저 밝혀져야 되는 것이다.
1. 창조, 2. 사랑. 3.용서, 4. 구원, 5. 천당, 6. 절대, 7. 공의, 8. 영원, 9. 축복, 10. 소망, 11. 등등...
아무리 멋진 미사여구(美辭麗句)를 총동원하여 치장을 하고 추켜세워 봐도 여호와(예수)의 존재 여부가 밝혀지지도 못하고 증명도 되지 않는다면, 십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예수쟁이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가라는 것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죄 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네 맘속에 주(예수) 영접하며, 새 사람 되기를 원하거든 네 구주(예수)를 영접하라.
2.
정결케 되기를 원하거든 네 맘속에 주(예수) 영접하며, 생명수 마시기 원하거든 네 구주(예수)를 영접하라.
3.
진실한 친구를 원하거든 네 맘속에 주(예수) 영접하며, 네 맘에 평안을 원하거든 네 구주(예수)를 영접하라. 
4.
즐거운 찬송을 하려거든 네 맘속에 주(예수) 영접하며, 평안한 복지에 가려거든 네 구주(예수)를 영접하라.

<후렴> 의심을 다 버리고 구주(예수)를 영접하라. 맘 문 다 열어 놓고 네 구주(예수)를 영접하라.


(찬송가 해설)

찬송가 1. 2. 3. 4 절의 내용 모두가 불안하고 고달픈 인간의 심신을 포근하게 감싸 주고 있는 것 같아서 제법 그럴싸하다.
그런데, 마지막 후렴에서 "의심을 다 버리고 예수를 영접하라(믿어라). 맘 문 다 열어 놓고 예수를 영접하라(믿어라)."라는 묘한 말을 곁들여 놓고 있다.
1~4 절에서 아무리 좋은 말을 많이 떠들어대면 무얼하겠는가? 여호와(예수)의 존재 여부가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무엇을 덮어 놓고 믿으라(영접하라)는 것인지...?

예수쟁이들아! 그대들 중에 정말로 믿는 자가 한 명이라도 있을까?
저 찬송가라는 것을 열심히 소리쳐 불러대는 이유도 결국은 믿어지지 않아서 몸부림치는 결과물일 것이다. 아닌가? 
더 길다란 해설이 필요한가?


* 참고; 위 찬송가 마지막 부분에서 "맘 문 다 열어 놓고 예수를 영접하라."는 말이 보인다.

예수를 받아 들인 후, 세상의 어떤 것에도 눈귀코입 다 틀어 막고서 고집불통이 되어 악담질과 저주질을 쏟아내는 짓이 맘 문을 다 열어 놓은 모습일까?
아니면, 세상의 모든 것(예수교까지도 포함해서)을 향해서 눈귀코입을 활짝 열어 놓고 사리판단을 해보는 마음 자세가 맘 문을 다 열어 놓은 모습일까?
오직, 여호와(예수)를 향한 문만 쬐끔 열어 놓은 마음 자세가 맘 문을 다 열어 놓은 상태인가? 아니면, 세상의 어떤 것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대응하는 자세가 맘 문을 활짝 열어 놓은 통 큰 자세일까?

제삼자 2013-08-26 (월) 08:27
[쇠심줄]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
야들야들 보드랍고 아리땁던 처녀가 시집가서 자식 낳고 산전수전 다 겪다 보면 억척스런 쇠심줄로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 중반을 넘어선 남자들 중에는 마누라가 무서워서 뻘뻘(또는 벌벌) 기는 이름만의 가장(?)들이 많다고 한다. ㅎㅎ...

어느 교회에서 재정을 맡아 보던 정** 권사라는 여자 예수쟁이가 있었다.
처음에 그녀는 헌금으로 들어온 돈 중에 손으로 만지기조차 싫을 정도로 더러워진 헌 돈도 새 돈으로 교환하려 하지 않았다.
헌금으로 들어온 돈은 성스러운 것으로 생각되어 그것을 다른 돈으로 교체하는 것조차 죄로 여겼다.
하물며, 헌금으로 들어온 돈을 어떤 경우에도 입체(대체)하여 쓴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던 그녀가 아주 급박한 일에 헌금으로 들어온 돈 일부를 잠간 입체하여 쓰고 즉시 자기 돈으로 대체하여 채워 놓았다.
처음 한 번이 어려운 것이었던가? 그 후부터는 수시로 그 헌금을 급한대로 우선 차용하여 쓰고, 나중에 자기 돈으로 채워 놓는 일이 빈번해졌다.
마침내, 그녀는 교회 돈을 송두리 째 말아 먹고, 교회를 증축하려고 전 교인이 몇 년 동안 저축한 건축헌금과 열성 분자(광신자)들이 외부에서 빚내어 온 돈까지 싹쓸어 착복한 후 야반 도주를 해버렸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놈 됐다고 할까? 아리따운 여성이 쇠귀신화됐다고나 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 아니라, 그 권사는 그녀의 남편의 잘 되던 사업이 잘못되어 기울어지자 그것을 수습하려다가 그렇게 된 것이었다.
결국, 인간(모든 생명체 포함해서)은 좋든 싫든 환경(형편)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다.
아무리 믿음이 좋다는 예수쟁이일지라도 급한 경우를 만나면, 예수와 여호와를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치지 않을 예수쟁이는 없을 것이다. 
이는 예수쟁이 중에 정말로 여호와(예수)를 믿는 자는 없다는 증거가 된다. 천당에도 보내고 지옥에도 보내는 신을 속이고 거역할 그런 간덩이 부은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니까...

대개 초신자 예수쟁이들은 처음에는 모든 언행이 위의 권사처럼 우직스러울 정도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차츰 해이해지는 상태를 지나 대단히 뻔뻔하고도 질긴 쇠심줄로 바뀌게 된다. 이 쇠심줄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고약한 고정관념으로 변질되어 이 세상에서 가장 골치 아픈 고집불통으로 고착화하게 된다. 
이런 고약한 고집불통을 가리켜 예수쟁이들은 굳건한 신앙심이라고 자화자찬한다. 이 고집불통의 미련스러움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예수쟁이는 없는 것 같다.

참고; 골수분자 예수쟁이와 아주 비슷한 종류에 극우파라는 것이 있다.
머리통 속에 남을 배려하거나 진보적인 생각을 해볼 여유가 조금도 없어서 극단적으로 보수주의 적이거나 국수주의적인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골수분자 예수쟁이와 극우파적 사람(?)이 섞여 있는 사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 많다. "개 돼지라면, 잡아나 먹지"라는 한탄사가 저절로 나올 정도가 된다. 

교회를 들여다보면, 초신자나 직급이 낮은 예수쟁이는 뒷자리에 숨어 앉으려 하고, 목사급이나 장로, 권사 등 직급이 높은 예수쟁이는 앞자리에 앉는다.
이런 현상 때문에 부흥회 등등의 집회가 열리면 앞자리는 텅텅 비어 있고, 뒷자리는 몰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담임 목사나 부흥회 목사는 교인들을 앞자리로 끌어내려고 “앞자리는 금자리, 중간은 은자리, 뒷자리는 동자리(똥자리라고도 함)이다.”라며 넉살을 떤다. "금자리에 앉아야 은혜도 더 많이 받게 된다."고 떠든다.

그러나, 교회의 앞자리는 똥자리로서 닳고 닳아 있는 도둑놈과 사기꾼의 자리이며, 뒷자리는 뭣주고 뺨 맞는 바보들의 자리이다.
예수교의 모든 자리를 박차고 바깥으로 탈출을 시도해야만 마침내 마음 편한 지혜의 자리, 대자유의 자리가 보인다는 사실을 골수분자 예수쟁이와 극우파적 돌머들만 모르는 것 같다.
예수교 안의 모든 자리는 코 뚫린 소처럼 끌려다니며, 모든 것을 착취당하다가 마침내는 목숨까지 바쳐서 주인의 먹잇감이 되어야 하는 노비 생활과 다를 바가 없다.

교회 바깥이라고 해서 즉시 천당화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예수교를 벗어난 삶이라야 천당 맛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있는 것이다.
복권을 구입하면, 누구나 당첨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복권을 구입한 사람이라야 복권에 당첨될 기회도 오게 되는 것처럼, 예수교를 벗어난 사람이라야 대자유(大自由)를 기대해 볼만한 것이다.
천당은 예수교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교 바깥 세상 아니, 예수교와 멀어지면 멀어질 수록 천당은 그만큼 가까워진다.

필자의 말이 지나첬나? 그러나, 이 말이 들릴 때에야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제삼자 2013-08-26 (월) 08:28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어보도록] 

** 초중고만이 아니라, 대학 때까지도 수학 시험 문제(주로 객관식)에서 그 정답을 모를 경우, 주어져 있는 4 가지 답을 대입하여 즉, 역으로 계산하여 정답을 찾을 수 있을 때가 종종 있었다.
출제자의 실수로 빚어진 경우이지만 어쨌든, 머리가 둔한 고달픈 학생 입장에서는 덤으로 얻어질 수 있는 횡재 점수였었다.
마찬가지로,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예수)를 이해하는 데에도 거꾸로 대입하며 따져 봐야 정답을 얻을 수 있을 때가 있다.
 
(1) 여호와는 전지전능해야 된다.
    왜냐 하면, 전지전능하지 못하면 천지를 창조하고, 그것을 임의로 다스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호와는 전지전능해야만 되는 것이다.

(2) 예수는 죄가 없어야 된다.
    왜냐 하면,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죄 많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예수가 죄인이 아닌 지극히 깨끗한 종자여야 된다. 
    우리 인류를 위해서 예수에게 죄는 없으면서 은혜가 많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아멩!

(3) 인간은 포악(暴惡=사납고 악함)해야 된다.
    왜냐 하면, 여호와(예수 또는 예수쟁이)의 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사랑을 베풀어야 하고, 예수는 은혜를 베풀어서 인간을 구원해야 되는데, 만약, 인간이 포악해지지 않는다면 여호와(예수)의 그 사랑과 은혜를 써 먹을 곳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반드시 포악해져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여호와의 사랑, 예수의 은혜 그리고 인간의 포악이 한 통 속에 어울어져서 여호와(예수)에게는 할 일과 영광이 생산되고, 인간(특히, 예수쟁이)에게는 행복한 노비 생활이 펼쳐지는 것이다.

(4) 여호와(예수)는 사랑과 은혜가 많아야 된다.
    죄 많은 인류를 죄악에서 건져내어 천당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여호와(예수)에게 사랑과 은혜가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한 현상이다. 아멩!

(5)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특히, 예수쟁이)들은 서대문에서 동대문 쪽으로 걸어가야만 된다.
    왜냐 하면, 남해에서 꽁치가 많이 잡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해에서 꽁치가 잡히지 않게 되면 숙정문에서 숭례문 쪽으로 걸어가면 된다. 
    이것은 제삼자가 발견한 가장 자랑스럽고 위대한 논리의 한 분야이다.
 
(6) 한반도는 반드시 통일되어만 한다.
    왜냐 하면, 남북이 분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일된 뒤에는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고? 글쎄, 자세하게는 모르겠는데......

** 물어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어 보도록....
제삼자 2013-08-26 (월) 08:29
[피해보상을 못하는 무능한 신]

* 피해보상--국민이나 주민이 당한 손해나 손실(재산, 명예, 신체 따위)을 보충하기 위하여 국가 또는 공공 단체가 적법한 행위에 의하여 제공하는 대가.

[(사울)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이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그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85 인을 죽였고, 제사장들의 성읍(城邑)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사무엘상 22;18~19)

제사장은 여호와의 앞잡이(고급스럽게 말해서 사자)이다. 그렇다면, 따져 볼 필요도 없이 제사장은 여호와로부터 신임을 얻었을 것이 분명하며, 동시에 여러 가지 특혜도 주어져 있을 것이다.
그 특혜 중 하나에는 생명과 신체를 안전하게 보호 받을 수 있는 조건도 들어 있을 법하지 않은가?
그런데, 제사장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놉(지명)에서 제사장 종류에 속하는 85 명과 그 가족 남녀노소 전체와 가축까지도 억울하게 전멸을 당하는 참극이 벌어지고 있어도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로부터  보호를 받기는커녕 전혀 아무런 보상도 없다.
아니, 전현 아무 반응도 없다. 여호와의 앞잡이 노릇을 하다가 억울하게 전멸을 당했는데도 여호와에게는 눈구멍 귓구멍 콧구멍이 없는지 전혀 아무 반응이 없다.  

바이블에는 대단히 이상한 방향으로 초점(焦點)이 맞추어지는 것이 있다. 백발백중 예외가 없다.
예로서, 甲이라는 못된 사람이 여호와의 사람 乙을 죽이면, 甲은 나쁜 놈이라고 지적되면서 여호와의 벌(罰)을 받을 것이라는 예언 따위만 있을 뿐, 억울하게 희생된 乙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다.
위의 바이블 원문 내용도 그렇다. 도엑 또는 사울왕이란 놈은 나쁜 놈이요, 언젠가는 여호와의 벌을 받을 것 같은 암시만 보일 뿐, 제사장 85 명을 비롯하여 도륙된 남녀노소의 그 많은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 대책(보상)이 없다. 전지전능한 신(神) 여호와의 충성스런 앞잡이들인데도 말이다.
 
사전(事前)에 죽지 않도록 보호를 해 주다든지, 억울하게 죽여졌으면 살려 준다든지, 아니면 천당으로 보냈다든지, 무슨 말이 있어야 될 것 아닌가?
다시 말해서, 예수교(바이블) 속에 억울한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단 한 톨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럴 경우, 여호와(예수)에게 주어져 있다는 멋드러진 명칭 즉, 전지전능한 신, 사랑이 많은 신, 공의로운 신 등등의 타이틀은 무엇에 써 먹으려고 붙여진 이름일까?


1) 첫 살인 사건; 살인자 가인에게 벌을 주는 장면은 있지만, 가인에 의하여 억울하게 피살된 아벨에 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여호와가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자기에게 충성을 바치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아벨을 다시 살려 놓아야 될 것 아닌가?
예수교(또는 바이블) 속에 범죄자에 대한 처벌 시범은 보여 주면서, 억울한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전혀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신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 보상을 전혀 해 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실토할 의향은 없는가? 예수교는.


2) 예수가 태어났을 때: 예수를 죽이려던 헤롯왕에게 나쁜 놈이라는 암시만 주어져 있을뿐, 헤롯왕에 의하야 억울하게 죽여진 수 많은 아기들에 대한 말은 전혀 없다.
예수교의 여호와(예수)가 정말로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억울하게 죽여진 수 많은 아기들을 다시 살려 놨어야 될 것 아닌가?
신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 보상을 전혀 해 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실토할 의향은 없는가? 예수교는.


3) 욥(인명)을 시험할 때; 욥의 아들 딸 10 명이 마귀들에 의하여 억울하게 죽여진다. 이것은 여호와가 직접 살인한 것이나 다름 없다.
시험의 결과 욥은 대단히 훌륭한 합격품으로 판명되었다. 합격 보상으로 욥에게 새로운 자식 10 명을 다시 주어 축복하지만, 이미 죽여진 10 명에 대한 말은 어디에도 없다.
새로 태어나는 자식을 먼저 죽여진 자식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죽여진 자식 10 명을 다시 살려 놓아야 그것이 제대로 된 보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교에는 보상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전지전능한 신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므로 죽은 자식 10 명을 다시 살려 낼 수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뻔한 사실을 실토할 의향은 없는 것인가? 예수교는. 


4) 히브리의 북쪽 왕국 이스라엘의 제7 대 아합왕 때에는 여호와의 선지자들이 도륙되는 수난의 시대였다.
여기에서도 아합왕만 나쁜 놈이 되어 여호와의 벌을 받고 죽는 장면만 있을 뿐, 억울하게 죽여진 수 천 수 백 명의 선지자들에 대한 말이 단 한 줄도 없다.
바이블 내용 전체와 예수교 역사 전체를 통틀어 악(?)에 대한 처벌 시범만 보여지고 있을 뿐, 피해 보상에 대해서는 조금도 그 시범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신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는 현상이란 것을 실토해 볼 생각은 없는가? 예수교는.


5) 여호와의 성전(聖戰); 바이블(여호와=예수의 가르침) 내용과 예수교 역사 속에는 무수히 많은 성전(聖戰)이란 것이 감행된다.
아무리 여호와(예수)의 성전일지라도 여기에는 억울한 사상자(死傷者)가 무수히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있지도 않은 승리에 대한 이야기만 장황할 뿐, 분명히 있을 그 많은 억울한 사상자(死傷者)에 대한 보상 얘기는 어디에도 거론되는 바 없다.
전지전능하다면서도 억울하게 죽거나 부상당한 사람에 대하여 전혀 보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호와(예수)가 없는 존재이거나 아니면 아주 더럽게 고약한 나쁜 놈일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6) 다윗(왕)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을 때;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는 비참하게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또, 방금 태어난 어린 아이가 대용물(代用物)로 죽여졌다.
이때, 다윗과 밧세바에게는 벌(罰) 같지도 않은 벌이 내려졌을 뿐, 억울하게 죽은 우리아와 어린 아이에 대한 말(보상)이 없다.
전지전능한 신이란 녀석이 존재한다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결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되는가?
여호와(예수)는 차제에 "나는 없는 가짜 신이다."를 자백하고서 예수교를 박차고 뛰쳐나올 의향은 없는지?


7) 순교자(殉敎者)라는 것도 그렇다. 순교자들 덕분에 살아 남은 예수쟁이들만 종교 흡혈귀가 되어 각종 혜택을 누리며 신나게 살아갈 뿐, 순교자들에 대한 보상은 전혀 없다.
전지전능한 신(神)이요, 인간의 생사(生死)를 주관한다는 신(神)을 모시는 종교에서 순교자(殉敎者)의 존재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애굽 왕 바로에게 언감생심 핏대를 올리며 악담과 저주를 퍼부어 대고도 아무 탈 없이 모세는 살아 나올 수가 있었고, 통치자까지 되어 행복한 인생을 만끽한 것으로 되어 있다.
선지자 엘리야도 악독하기 짝이 없는 아합왕 앞에서 할 소리 못할 소리 모두 지꺼리고도 죽지 않고 나와서 행복한 인생을 구가한 것으로 되어 있다.

결국, 똘마니 예수쟁이들은 순교(殉敎)라는 이름으로 죽음을 당해야 되고, 지도자급 예수쟁이는 살아 남아서 호의호식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상에는 입으로는 온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애국자이지만, 아예 병역의무와는 거리간 먼 고관대작과 재벌 및 얌체족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예수교 속에도 순교를 당해 줘야 되는 바보 멍텅구리 멀대가 있는가 하면, 여호와(예수)의 이름을 팔아 호의호식하는 약삭빠른 종교 귀족(정확하게는 잡것들)도 있게 마련이다.
종교 귀족에게는 순교라는 것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보 멍텅구리 멀대 예수쟁이들의 억울한 순교는 언제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무엇으로 보상으로 받게 될까?


8) 예수교는 인류 역사(歷史) 속에다 너무도 많은 악(惡)과 불행을 배설해 놓았다. 결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여졌다.
이에 대하여 교황은 구교(舊敎)를 대표하여 입으로만(건성으로) 사과라는 것을 했다. 그런데, 개신교(改新敎) 쪽에서는 "그것은 이단(異端) 또는 사이비(似而非)가 저지른 일이다."로 발뺌만 하고 있다.
이 경우, 사과한 쪽이나 발뺌하는 쪽이나 모두들 저 잘낫다며 신나게 잘 살아 가고 있다. 반면에, 그(예수쟁이)들에 의하여 죽여진 그 많은 억울한 사람들에 대하여는 아무 대책(보상)이 없다.

악(惡)에 의하여 희생된 인명에 대하여 아무 대책(보상)이 없기는 여호와(예수)도 속수 무책이고, 현실적으로 예수쟁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능(能)치 못함이 없는 전지전능한 신(神)을 모신 종교는 무엇을 위하여 왜 존재하는 것일까?


[결론] 인간 세상에서는 각종 법률이란 잣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을 기준으로 인간들의 잘잘못에 대하여 처벌도 하고 보상도 한다.
범죄가 발생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도 있게 마련이다. 이 때, 각종 법률은 가해자에게는 처벌을, 피해자에게는 보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인간의 힘으로는 처벌이나 보상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특히, 보상 문제는 전혀 불가능한 것이 많다. 어떤 범죄의 피해가 살인일 경우, 인간의 힘으로는 그 피살자를 보상 차원에서 다시 살려 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하고, 그 신이 공명정대한 존재라면, 어떤 경우에도 처벌과 보상 문제를 조금도 차질 없이 시행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세상에서는 처벌과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도 없었다. (없다.) 
이는 왜일까? 이 세상에는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한다면, 그 신은 아주 고약하고 나쁜 잡놈일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이다. 어떤가? 이 결론이 틀렸다고 생각되는가?

예수교에는 여호와(예수)라는 전지전능한 신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그 신은 천지를 창조하고 그것을 임의로 주관한다(다스린다)고 한다.그런데,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진짜로 가관이다?!
그렇다면, 여호와(예수)는 존재하지 않는 가짜이거나, 아주 고약한 나쁜 잡놈이 분명할 것이다. 능력이 되는데도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면...

또, 다시 그렇다면, 예수쟁이들은 여호와(예수)를
1) "존재하지 않는 가짜 신이다."와
2) "성질머리가 아주 고약한 나쁜 잡놈이다." 중, 어느 하나를 택할 때가 됐다고 생각되지는 않는가?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 그럼, 한 번 깊이 생각해서 한 가지를 택해봐!
농담 또는 장난 말로 흘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 쯤을 알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쟁이들아! 
제삼자 2013-08-28 (수) 05:55
[나 자신이 존귀한 존재로 느껴질 때]


인간은 존엄(尊嚴)한 존재라고 한다. 존엄이란 함부로 범할 수 없이 높고 엄숙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정말로 함부로 범할 수 없이 높고 엄숙한 존재라고 할만한 것일까?
그러나, 극악스러운 중범죄는 차치(且置=내버려두고 문제삼지 않음)하더라도, 속임수에 능수능란한가 하면, 각종 잇속에 발빠르게 움직이는 인간!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 봐도 인간을 가리켜 존엄한 존재라고 하기에는 가당치가 않아 보일 때가 많다.
함부로 범할 수 없이 높고 엄숙한 존재가 인간이라면, 그 인간 자체 내에 고매한 품격이라고 할까, 아니면, 하다못해 진선미(眞善美) 등등을 대신할만한 어떤 가치가 담겨 있거나 보여야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공원이나 유원지에는 쓰레기 때문에 발디딜 틈도 없고, 휴가철이 지나간 강이나 산에는 역시 쓰레기가 수 십 수 백 톤 씩 쌓인다.
아주 간단한 규칙도 지키지 않는가 하면, 조금 전까지도 점잖을 뽐내며 좌중을 향하여 그럴싸한 말을 하던 신사 숙녀가 금방, 못본 척 눈을 지긋이 내리깔고는 새치기에 열이 올라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존엄한 존재라는 말이 무색할 뿐이다. 
필자 자신을 돌아다 봐도 존엄과는 거리가 먼 소인배 중에서도 소인배가 분명하다. 마음 속에서는 쉴 새 없이 못된 생각들이 와글대고 있다. 그냥 소인배가 아니라 상(上) 소인배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어쨌든, 인간을 존엄한 존재라고 인정해 주기에는 뭣인가 미흡한 점도 많고, 볼품 사나운 모습도 많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역시 존엄한 존재라고 말해진단다. 함부로 대해서도 안 되고, 높고 엄숙하여 귀한 존재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인간에게는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비행기로는 물론, 자동차로도 미대륙을 십 수 차례 횡단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는 커다란 짐차에다 이삿짐을 가득 싣고 동부에서 서부까지 7 일 동안을 달려 본 적도 있다.
횡단은 아니지만, 이틀이나 사흘 정도를 달리는 여행은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다. 하루에 1,000 마일(1,600 km)까지 달려 본 경험도 있다.
미국의 남서부 사막 벌판의 4 차선 또는 6 차 선(때로는 8 차 선)의 고속도로를 달릴 때, 또는 중부 지방의 대평원을 달릴 때는 마치 구름 위를 달리는 것 같아 "여기가 천국이 아닌가?" 하고 착각할 때도 많았다.
어떤 때는 오직 필자가 운전하고 있는 차 한 대만 달리고 있을 뿐, 앞뒤 사방으로 지평선 끝까지 아무리 둘러보아도 다른 차는 물론, 다른 사람도 전혀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시원하게 잘 닦인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 이 길을 동서남북으로 거미줄처럼 건설하려면, 엄청난 인력과 돈과 시간이 들어갔을 것이고 또,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도 기하급수적인 크기의 돈과 인력과 시간이 소모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 인력과 돈과 시간이 들어간 거대한 길을 마치 필자 혼자서 이용하기 위하여 전세를 얻은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거대한 액수의 세금을 납부해 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사회에다 이렇다할 공헌도 해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이 멋진 길과 대륙을 내 것처럼 마냥 이용해도 되는 자격이 내게 있는 것일까?"하고 미안한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 뿐이 아니다. 타이어 펑크(puncture), 엔진 고장, 각종 부품이 망가졌을 때 등등, 갖가지 문제가 발생하면, 누군가가 금새 나타나서 도움을 준다. 미국 내에서 30 년이 훨씬 넘도록 자동차 여행을 했지만, 필자의 손으로 자동차를 수리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은 함부로 범할 수 없이 높고 엄숙하여 존엄한 존재이며, 이 존엄함 속에 필자도 포함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나라와 사회 또는 이웃을 위하여 보탬이 되는 일을 해 본 적이 별로 없는 나를 세상은 이렇게 귀한 존재로 대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존엄한 존재로서의 나! 나를 둘러싸고 있는 역시 존엄한 이웃들과 자연 환경들! 어떻게 해야 이 존엄들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애지중지 보존시킬 수가 있을까?  

* 이 존엄한 존재를 한낱 여호와(예수)라는 귀신(또는 허구, 궤변, 모순)의 종으로 팔아 먹지는 말자.
제삼자 2013-09-04 (수) 00:14
[ 그 귀신은 존재한다는 게야 없다는 게야?]


甲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귀신을 봤다."고.
乙도 말했다고 한다. "나도 귀신을 봤다."고.
그런데, 확인해 봤더니 甲과 乙 두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허구였다.
그렇다면, 그 귀신은 존재한다는 게야 없다는 게야?


(1) [(예수 가로되)
"그러므로 너희(즉, 예수쟁이들)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호와 신)여. .........."]

(마태 6;9~13)

예수가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는 장면이다.



(2) [(바울 가로되)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로마서 8;26)

바울은 빌바(기도하는 방법)를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성령(神)이 인간을 대신하여 친히 간구(기도)해 준다고 한다.


위의 바이블(개역) 구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를 <합동>에서 다시 보자.
"어떻게 기도해야 될지도 모르는"이라고 되어 있다.


예수교에서 가장 위대한 사도(使徒)! 사실상 예수교를 창시한 사도! 이러한 어마어마한 사도가 기도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을 대신하여 성령이 간절히 기도해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대한 사도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바울도 모르는 기도 방법을 오늘 날의 예수교에서는 어떻게 알아내어 그 기도란 것을 하게 되었을까?
반면에, 예수교의 가장 중요한 행사인 기도를 바울이 몰랐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그것도 예수가 직접 자세히 가르친 대목을.
 
예수교에서 <기도>라는 것을 빼내면 남는 것이 무엇일까? 막 말로, 예수교에서 <기도>라는 것을 빼내면, 남는 것은 시체 밖에 없을 것이다.
바울이 모르는 기도 방법, 그 기도 방법을 아는 척하는 무리들은 예수교 집단이 맞는가?

이는 마태의 기록자와 로마서의 기록자가 서로 다르게 멋대로 기록했다는 반증의 한 가지이다.
바이블은 어떤 음흉하고 엉큼한 목적을 가진 사기꾼이 꾸며낸 무서운 악마적 글이란 말이다. 신(神)의 역사(役事)가 아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기록(로마서)이 허구(거짓)로 판명된 마당에 예수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반대로, 예수가 가르친 기도문을 기록한 마태가 허구로 판명된 것이라면 예수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귀신은 흰 옷을 입고 있었다."고 증언한 甲도 허구이고, "귀신은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고 증언한 乙도 허구라면, 그 귀신은 존재하는 게야 뭐야?

마태는 예수가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증언을 하고, 바울은 아예 기도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신(여호와, 예수, 성령)이 대신해서 그 기도를 해 준다고 증언을 하고 있다.
이럴 경우, 마태와 바울이 소개하는 예수교의 귀신(여호와, 예수, 성령)은 존재한다는 게야,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야?
예수교와 바이블 속의 모든 것은 몽땅 거짓말일지라도 오직 여호와(예수)만은 진짜라는 게야 뭐야? 이게 어느 세계의 어느 논법이라는 게야?
제삼자 2014-04-14 (월) 09:34
[솔로몬의 토목 공사:예수교의 토목 공사]


히브리 왕국의 제3대 왕 솔로몬은 여호와의 집(신전)을 짓는데 7년, 자기 집(궁궐)을 짓는데 13년 도합 20년의 토목 공사를 끝내고, 여호와에게 14일 동안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제사에 소모된 희생 제물은 다음과 같다.

[솔로몬이 화목제(제사 종류)의 희생을 드렸으니,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22,000 이요, 양이 120,000 이라...]

(열왕기 상 8;63)

소 22,000 마리+양 120,000 마리 = 도합 14 만 2,000 마리
여호와께서 14 일 동안에 쳐 잡수신 소와 양이 도합 142,000 마리라고라!

이만하면, 여호와의 밥통(재물)이 얼마나 큰 것인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여호와는 배가 불러지자 기분이 좋았던 게다. 돈을 많이 바친 솔로몬을 향해서 여호와는 침을 질질 흘리게 된다. 

바이블을 더 보자.


[...여호와께서...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永永)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열왕기 상 9;2~3)

여호와 역시 재물(돈)을 많이 바치는 사람에게 침을 질질 흘리며 좋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시, 여호와 앞에서도 무전 유죄(無錢有罪), 유전 무죄(有錢無罪)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어쨌든, 14 일 동안에 14 만 2 천 마리의 소와 양을 먹어치운 여호와의 식성은 놀랍기만 하다.
그러나 저러나, 수 십 년에 걸친 토목 공사로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폭군(솔로몬)을 감싸고 도는 여호와라는 녀석은 제대로 된 신(神)일까?

조선 말기, 임오군란으로 일본 공사관이 불타자, 조선과 일본 사이에는 '제물포 조약'을 체결하게 되고, 조선은 배상금을 물어야 했는데, 그 액수가 당시 소 600 마리 분(55 만 원)이었다고 한다.
이 돈이 없어서 조선 조정은 마침내 일본에서 차관을 얻어다가 그 빚을 갚는 어이없는 일을 저질렀었다고 한다.
500 년 뒷끝의 썩어 문드러진 기득권 세력이 저지른 안타깝고 더럽운 모습이다.  

그런데, 사막 벌판의 손바닥만한 히브리 왕국(사실은 마을)에서 14 만 2 천 마리의 가축이라니!
사기꾼(지도자)과 바보(일반 신도)가 어울려서 달밤에 망부석 붙잡고 돌아가는 예수교의 잔인하고도 더러운 꼽사춤(추태)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 참고;

요즈음, 은행 빚이건 뭐건 가리지 않고 걸터듬질해다가 수 백 억 씩 들어가는 교회 건물을 짓는 짓은 잘못된 현상이 아니라, 여호와(예수)의 가르침을 준수하는 지극히 올바른 모습이다. 여기에서는 생략하겠지만, 여호와가 침을 질질 흘리며 좋아라 했던 솔로몬의 토목 공사에 비하면 지금의 교회 짓기는 새발의 피만도 못하다. 예수교는 한참 더 썩어 문드러진 모습으로 전락되어야 마침내 여호와(예수)의 가르침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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