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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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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인원 : 3,495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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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41[예수교는 예수도 감지 못한 자력 신앙(自力信仰)]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3-08-30 (금) 05:39 조회 : 4537
*41[예수교는 예수도 감지 못한 자력 신앙(自力信仰)]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예수교는 타력(他力) 신앙이고, 불교는 자력(自力) 신앙이다."라고.
불교는 무슨 수를 쓰든 결국은 자신의 노력으로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종교이며,  예수교는 자기가 아닌 남(여호와 또는 예수)에게 의지하여 돈도 많이 벌고, 출세도 하고, 천당에도 가려는 욕심 덩어리 신앙임을 알 수 있다.
예수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도생활이라는 것도 다른 것이 아니라, 여호와(예수)에게 "나 좀 도와주십시오."하며 매달리는 타력신앙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교 전체가 한 명도 빠짐 없이 크게 착각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예수교가 100 % 완전히 자력신앙이라는 사실을 예수쟁이 중 누구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언론에까지 등장해서 "바이블을 300 번 이상 독파했다."고 떠벌이던 목사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는 있지만, 예수쟁이 중에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예수교의 가르침이 <자력신앙>이라는 사실을 감지하고 있는 자는 전혀 없는 것 같다.
예수쟁이 중에 여호와(예수)에게 아무리 매달려 봐야 고린전(보잘것없는 푼돈) 한 푼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도 없을 것이다.
  
자, 이제부터 예수교가 자력 신앙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몇 군데만 훑어 보기로 하자.


(1) [인자(예수)가 아버지(여호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마태 16; 27)

말세의 심판 때가 되면, "그 동안 행한대로 각 사람에게 갚아 주겠다."는 예수의 약속이다. 그러니까, 행한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받을 것이 한 푼도 없을 것은 당연한 일이 되겠다.
사기꾼, 혹세무민하던 자, 위선자, 이중 인격자, 입만 나불대던 자, 사랑이란 낱말을 팔아먹던 자 등등, 이런 자들에게도 그에 상당하는 값이 치러지겠지?
그렇다면, 행한대로 받은 대가(代價)는 자기가 노력을 하여 얻은 보답인가 아니면, 남에게서 거저 얻은 은혜인가?
어떤가? 자기가 행한대로 받게 된다는 종교의 가르침은 타력신앙인가? 자력신앙인가?  

예수쟁이들아! 기도를 합네, 찬송가를 부릅네, 돈을 바칩네 하며 아무리 발버둥을 쳐 봐라. 아무 것도 얻어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예수가 말했다. "행한대로 갚겠다." 천당이든 돈이든 얻고 싶거든 무슨 일이든 해야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의 말도 틀렸다. 각자가 행한대로 자기 것을 자기가 쟁취하고 있는데, 예수가 갚아 주겠다는 말 자체가 궤변이다. 봉급은 자기가 일을 하고서 자기 것을 챙긴 것이지 사장이 베푼 공짜 은혜가 아니다.
어쨌든, 예수교의 가르침도 자력신앙으로서 자기 노력으로 목적지에 도달해야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실! 예수도 자기가 떠들고 있는 말이 <자력신앙>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ㅎㅎ...아멩!

* 참고; 대가--어떤 일에 들인 노력이나 희생에 대해 받는 값. 
          거저(또는 은혜)--아무런 노력이나 치르는 대가가 없이 (얻음).


(2) [여호와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성냄)와 분(=분노)으로 하시리라.]

(로마서 2; 6~8)

예수의 아비 여호와도 역시, "행한대로 갚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틀림 없는 여호와의 말이다.
참는 일, 선을 행하는 일, 영광을 구하는 일, 존귀를 구하는 일 등등, 어떤 것이라도 사람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얻어질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또, 당을 지어 진리(의?)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짓도 사람 스스로가 하는 짓일 뿐이다.

그런데, 여호와는 말하고 있다. "전자에게는 영생을 주고, 후자에게는 노(怒)와 분(憤)을 주겠다."고. 
사람 쪽에서 스스로 노력한 만큼 받아가는 결과를 가리켜 마치 제 녀석 쪽에서 공짜로 은혜를 내려주는 척하는 꼴이라니!  
어떤가? 예수쟁이들이여! 예수교는 타력신앙인가 아니면, 자력신앙 같은가? 자기 노력으로 먹고 살면서, 여호와(예수)에게 매달려 무엇을 어쩌자는 것인가? 아니지, 목사(신부)에게 매달려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일까?


(3)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예수)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디모데후서 4; 7~8)

위의 바이블 내용에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 갈 길을 마친 자는 사람인가 아니면, 여호와(예수)인가? 분명히 사람 각자가 달려간(행한)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날의 의(義)의 면류관은 사람이 자기가 행한만큼 쟁취한 것인가 아니면, 여호와(예수)가 공짜로 선심을 베푸는 것인가? 
사람 각자가 행한대로 즉, 행한 사람에게는 면류관이 주어지고, 행함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면류관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재판장(여호와=예수)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다." 재판장이 주기는 뭘 주는가? 재판장은 옳고 그름만 판단하면 족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각자가 행한 만큼 자기 몫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다.
어떤가? 행한대로 받는 것이라면, 이런 현상을 가리켜 자력신앙이라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타력신앙이라고 해야 되는가?

예수쟁이들아!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자세히 읽어 보라. 그런 다음, 그것(예수교)이 타력신앙인지 또는 자력신앙인지를 판단해 보라.
어떤가? 예수교 속에 거저(공짜로) 얻어질 것 같은 것이 한 가지라도 있다고 생각되는가? 도둑놈도 도둑질(행함)을 해야 얻어지는 것이 있는 것이다.
여호와(예수)에게 매달리면 뭔가 얻어질 것이라는 말은 바이블을 전혀 모르는 속 빈 깡통(예수쟁이)들의 헛된 망상이요 허욕일 뿐이다. 
그렇다. 예수교 속에도 공짜 또는 은혜는 단 한 가지도 없다. 무엇이나 자기가 노력한(행한) 만큼만 가질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 우주 속에 공짜는 없다. 따라서, 혹시라도 거저 얻어 보려는 타력신앙(예수교)은 애시당초부터 혹세무민을 노리는 사기꾼의 사기행각이다.

* 재미있는 결론; 결국, 일반 못난이 예수쟁이는 자력으로 노력해서 돈을 벌어 목사(신부)에게 바쳐야 되고, 스스로는 타력(여호와=예수)에게 매달려서 천당(빈 깡통)을 얻어 가는 셈이다. 재밌네. ㅎㅎ...아멩! 


[오색(오사리)잡놈의 자기 자랑]

* 오색(오사리)잡놈; 온갖 못된 짓을 거침없이 하는 잡놈.
   잡놈; 행실이 잡스러운 남자를 욕하여 이르는 말.
   잡스럽다; 여러 가지가 뒤섞여 순수하지 못한 데가 있다.
 
 
[빛을 만든 것도 나요, 어둠을 지은 것도 나다.
행복을 주는 것도 나요, 불행을 조장하는 것도 나다.
이 모든 일을 나 야훼가 하였다.] ㅎㅎ...아맹!
 
(이사야 45; 7)
 
저렇게 재주가 있고 능력이 있으면서도 세상을 이 지경으로 이끌고 있는 저 자(者)!
우리는 저 자(者)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될까?
저런 오색(오사리)잡놈을 좋아라 따라 다니는 예수쟁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까?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3-09-02 (월) 01:32
[?=이것은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다]

 [내(예수)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田土)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培)를 받고 또, 영생을 보상하리라.]  

(마태 19;29)

(1) 지구 위에 예수교쟁이가 12 억이라고 한다. 한국에는 1,000 만? 그 중에 어느 예수쟁이가 예수의 가르침대로 움직이고 있을까?
어느 예수쟁이가 있어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田土)를 버리는 시범을 보이던가?"
예수의 가르침대로 실천을 해야 천당(영생 복락)이 보장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예수쟁이 중에 천당에 골인할 수 있는 자가 과연 한 명이라도 있을까?
천당에 가고 싶은 예수쟁이가 없는 모양이지? 부모, 형제, 처자식 그리고 돈을 버리는 예수쟁이가 없는 것을 보면!

(2) 예수의 '버린다'는 말은 쓰레기통에다 버리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이웃을 돕기 위하여 그렇게 하라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12 억이나 되는 예수쟁이들이 버린 재물과 봉사 활동 등등의 혜택으로 세상은 온통 천국비스름하게 정화된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이 보이던가? 천국비스무리하게 보이는 것이 있던가? 오히려, 버리기는커녕 예수쟁이들의 아귀 같은 걸터듬질 때문에 세상(역사)은 피비린내로 진동하고 있지 않던가?
멀리까지 볼 것도 없다. 오직 예수교 속만을 들여다보기만해도 그렇게 더럽게 썪은 시궁창 냄새는 이 세상 어디에도 비교할 곳이 없을 것이다.

(3) 필자는 말해 왔다.
"예수쟁이는 잘하면 본전, 잘 못하면 징벌 대상이다."라고. 반면에, "비 종교인은 잘하면 칭찬, 잘 못하면 용서의 대상이다."라고.
예수쟁이는 스스로 종교인임을 자처(자랑)하면서 "바르게 살겠다."고 약속한 자들이다. 따라서, 예수쟁이가 바르게 살고 있다면 그것은 본전이다. 그러나, 예수쟁이가 바르게 살지를 못하다면, 이는 신을 속이고 또 이웃을 속이고 능멸하는 위선자요 불한당으로서 징벌 대상이 분명하다.
비 종교인들은 어느 신이나 어느 이웃(사람)에게 어떤 종류의 약속도 한 일이 없다. 따라서, 비 종교인들은 스스로 사람다운 일을 했을 경우 칭찬 받아 마땅하다. 혹, 잘못된 일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용서의 대상이다.

이는 어중이떠중이 아무나 제 기분 내키는대로 종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한다. 종교(특히, 예수교)는 그 문이 활짝 열려 있다고 해서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그런 경지가 아니다.
확실하게 말해 두지만, 예수쟁이가 된다는 것은 지옥으로 들어 갈 각오가 되어 있는 바보스러운 강심장을 가진 사람들만 허락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예수쟁이가 된다는 것은 사실상 평생토록 입만 나불대면서 거짓과 위선과 독선으로 살면서 신과 사람과 자신을 속이기로 작정하는 잡놈되기 맹세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위에 나열된 예수의 가르침(부모, 형제, 처자식 그리고 돈을 버리기)은 신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불가능한 가르침이다.
따라서, 예수는 가르침을 베풀기 전에 먼저 인간으로 하여금 신을 믿을 수 있는 방법부터 베풀었어야 옳았다. 세상일이란 선후(先後), 완급(緩急), 경중(輕重)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지전능하다는 작자(여호와=예수)는 무능한 인간을 상대로 선후(先後)를 뒤바꿔서 인간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만행질부터 하고 있다.

현재의 자연 질서 형태로는 인간이 신을 믿는다는 행위는 절대로 불가능한 경지이다. 예수쟁이들이 말하는 그 '믿음'이라는 것은 자신과 사람과 신을 속이는 거짓과 위선에 불과하다.
그 따위 '믿음'은 비 종교인들도 가지고 있는 말장난일 뿐이다. 그 것은 '믿음'이 아니다. 종교인 특히, 예수쟁이들이 세상에다 쏟아내는 모든 언행을 보면 알 수 있다.
<믿음>이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것 중에서 최상의 경지이다. 아니,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불가능의 경지가 바로 "신을 믿는 짓"이다.
 
종교인이든 비 종교인이든 "믿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값싸게 떠들어질 그런 경지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해 둔다. 
특히, 예수교(바이블)에는 그 어디에도 '믿음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 예수교(바이블) 속에는 궤변과 모순과 허구로 엮어진 혹세무민 만이 있을 뿐이다.

(5) 여기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될 문제가 있다. 위에서 예수는 말(강요)했다. "부모, 형제, 처자식, 전토(돈)를 버려야 영생을 보장 받을 수 있다."고.
부모 형제 처자식을 버리고 마침내 천당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한 잡놈(후레자식)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천당을 획득한 잡놈(후레 자식)에 의해서 버려진 부모 형제 처자식의 처참한 불행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버려진 부모, 형제, 처자식"은 의질 할 곳이 없어져서 비참한 인생을 살다가 마침내 지옥으로 가는가? 이 부분, 예수교의 답변을 듣고 싶은데...누가 답변 좀 해 주려나? 

세상 현상은 유기적(有機的=생물체와 같이 조직이나 구성 요소 등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떼어 낼 수 없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가족 중 어느 한 사람이 이탈을 하면, 그 여파는 가족 또는 사회 전체에 엄청난 파급 효과를 초래하게 되어 있다.
잡놈 하나가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한답시고 부모, 형제, 처자식을 나 몰라라 하고 버린다면, 이보다 끔찍한 사건(참혹한 불행)은 없을 것이다.
여호와(예수)의 가르침(바이블)은 실로 잡놈들의 세계에서도 있을 수 없는 패륜(悖倫=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남)이다.   

(6) 중동 지방의 잡귀(예수 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게 된 우리 나라의 정신 세계의 파괴현상이 안타깝다.
도둑은 재물 정도의 빼앗음이고, 살인범은 목숨 정도의 빼앗음이지만, 예수교(잡귀)는 인간의 정신을 훔쳐내는 아주 고약한 현상이다.  
정신(인간의 원형)이 파괴된 사람(?=이것은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다)의 언행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는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억울하고 치욕적인 사건일까?]

(1) 1) 일제 때, 일본 군대 및 탄광 등으로 강제징용되어 동물처럼 혹사당하다가 죽임을 당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2) 해방도 되고, 당당한 대한민국 정부도 수립된 후,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빨갱이로 몰려 죽은 사람도 많다.

     1)과 2)의 경우, 어느 쪽이 더 억울하고 치욕적인 사건일까? 

(2) 1) 일제 때, 광주학생 항일운동을 하다가 일제의 경찰에 의하여 희생된 사람이 많다.
     2) 당당한(?) 대한민국 영토의 광주에서 5.18 민주화운동 때, 국군에 의하여 많은 사람이 죽여졌다.

     1)과 2)의 경우, 어느 쪽이 더 억울하고 치욕적인 사건일까?

(3) 1) 일제 때, 일제의 수탈과 착취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허덕였던 사람이 많았다.
     2) 당당한(?) 대한민국에서 기득권자들의 탈법행위로 기회를 박탈당하고 허덕이는 사람이 많다.

     1)과 2)의 경우, 어느 쪽이 더 억울하고 치욕적인 사건일까?

(4) 1) 일제 때, 한반도의 많은 어린 여자들이 정신대로 끌려가서 종군위안부 노릇을 했다.
     2) 밝은 대명천지 대한민국에서 목사와 신부의 성노리개로 전락하는 여자들이 많다.

     1)과 2)의 경우, 어느 쪽이 더 억울하고 치욕적인 사건일까? 아니, 어느 쪽이 더 천인공로할 사건일까?

(5) 1) 우민정치(愚民政治 또는 衆愚政治=Mobocracy); 백성을 어리석고 무식하게 만들어 통치해야 한다는 폭력이다.
     2) 원죄(原罪); 인간은 태어나면 덮어 놓고 죄인이기 때문에 여호와(예수)의 용서를 받아야 된다는 폭력이다.

     1)과 2)의 경우, 어느 쪽이 더 억울하고 치욕적인 사건일까? 아니, 어느 쪽이 더 막돼 먹은 폭력적 행패일까?

(6) 1) 퇴직금 전부를 투자하면, 매월 150 만 원의 수익이 보장되고, 원금도 고스란히 보호된다는 꾐에 속아서 노년이 불행해진 사람이 많다. 
     2) 영생 복락만 있는 천당에 갈 수 있다는 꾐에 속아서 평생 동안 십일조와 각종 헌금 그리고, 시간과 노력을 예수교에 바친 사람이 많다. 

      1)과 2)의 경우, 어느 쪽이 더 분통이 터지는 바보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7) 14 세기 이후, 예수교를 앞세우고서 눈웃음치며 신대륙에 나타난 유럽 열강의 총부리는 자기 어머니의 남편을 사살했다.
    그런 다음, 그 예수교 앞잡이는 자기 어머니를 겁탈했다. 그렇게 해서 자기가 태어났다.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는가?
    그렇다면, 그 예수교 앞잡이는 자기의 원수인가? 아니면, 자기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고마운 생부인가?

    이 경우, 세상을 섭리로 다스린다는 예수교의 신 여호와(예수)는 거룩한 존재일까? 더러운 잡놈일까?
제삼자 2013-09-03 (화) 06:38
[예수교의 독선(獨善)과 배타(排他) 정신] 
 

아마도 30~40 여 년 전의 일로 기억하고 있다.
미국의 명문 대학 교수들 수 십 명이 모여 예수교에 대한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미국이 현대 및 미래에 맞도록 새롭게 정신을 무장하기 위해서는 예수교를 현대화시켜서(바르게 고쳐서) 재무장할 것인가, 아니면 어떤 다른 사상(또는 종교)으로 대체하여 무장할 것인가?"
 
결론을 말하자면, "예수교는 그 독선과 배타성 및 공격성 때문에 인류의 평화와 공존에는 어림도 없다. 또, 그 교리를 수정한다면, 그것은 이미 예수교가 아니다. 따라서, 현대와 미래의 인류가 정신 세계에 재무장해야 할 조건은 동양의 그 어떤 다른 것이어야 된다." 라는 것이었다.

애국심이 지나쳐 <국수주의>에 빠지면 문제는 대단히 복잡해진다. 국수주의(또는 극우파)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그와 함께하는 주위의 사람들은 꽤나 힘들 것이다.
마찬 가지로, 자신만이 옳다고 독선에 빠져 독불장군 식으로 활개치는 미친 종교(쟁이)가 있다면, 세상은 참으로 어려운 수렁에 빠져 허덕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상에서 거론한 모든 성격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종교가 바로 예수교이다. 예수교가 있는 곳에 평화를 기대할 수가 없고, 분쟁과 살육만 있게 되는 것이다.
국수주의적, 극우파적 독선과 독불장군 식의 아주 고약한 성격의 예수교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예수교에서 가장 위대한 사도 2 명을 꼽으라면, 단연코 <베드로>와 <바울>을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예수교는 위의 두 사람의 이름으로 시작됐다고 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 두 사람이 예수교 속에다 깊이 깊이 심어 놓은 위대한(?) 가르침을 알아 보기로 하자.
 
 
1) [이에 베드로가 성령(聖靈)이 충만(充滿)하여 가로되,
"...다른 이(예수 말고 다른 사람)로서는 구원(救援)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 12)
 
바이블은 성령의 감동(感動)으로 씌어져서 일점 일획도 하자(瑕疵)가 없는 진리의 말씀이라고 한다.
거기에다, 위의 말은 베드로가 또 다시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선포한 말이므로, 성령이 이중(二重)으로 감동시키면서 남긴 내용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베드로는 명실 공히 예수의 수제자(首弟子)이다. 이런 자가 이중(二重)으로 여호와(성령)의 감동을 받고서 선포한 진리이므로 진짜 중의 진짜 진리일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가 성령(여호와)의 감동을 받고서 해 놓은 말을 음미해 보기로 하자.
"예수 이외의 다른 어떤 이로서는 구원(救援)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天下) 인간(人間)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예수뿐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 세상의 어떤 종교라도 모두 다 없애 버리고 오직 예수교만 존재해야 된다는 말이다.
여호와는 "자기 외에 다른 신(神)을 두지 말라." 했고, 예수는 "자기 외에 다른 구원자(救援者)가 없다."고 단호히 선포해 둔 셈이다.
 
그리하여, 예수교는 이에 준하는 일들을 역사 속에다 쏟아 놓았다. 긴 설명 필요 없이, 예수교는 세상을 향하여 <믿음이냐> <죽음이냐> 또는 <지옥>이냐 <천국>이냐, 이 둘 중에 하나 만을 택할 것을 요구하는 종교이다.
예수교가 혹시라도 다른 주장 즉, 다른 종교와 공존 운운하는 일이 있다면, 이는 철저한 속임수일 뿐이다.
만약, 속임수가 아니라면, 그것은 이미 예수교가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교의 갈 길은 오직 하나 뿐이다. 인류 사회로부터 격리 또는 도태되는 길 뿐이다. 이미 서구(西歐) 사회에서는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

바이블(예수교)의 내용은 모두가 비윤리적이고, 살인마적이며, 독선과 배타적이어서, 인류를 제도하기에는 가당치도 않다.
 
 
2)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고린도전서 3; 11)
 
위의 말은 바울이 떠들어 놓은 말이다. 베드로의 주장과 같은 내용의 말이다. 구원(救援)의 길은 오직 예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와 신약(바이블)을 가장 먼저 쓰기 시작했고, 또 그 신약의 거의 절반을 쓴 바울, 이렇게 두 사람이 선수쳐서 떠들어 놓은 말이므로, 이 세상에는 오직 예수뿐이며, 타종교 또는 비 예수교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교는 그 경전인 바이블을 수정해도 의미가 없고, 근본주의 정신 그대로를 고집해도, 이미 때는 늦어 오직 인류 사회로부터 도태되는 방법밖에는 남은 길이 없다.
바이블(예수교)은 폐기 처분되어야 한다. 예수교는 그 교리와 성격이 생리적으로 타(他)와 공존할 수 없는 무서운 집단이다.
제삼자 2013-09-05 (목) 00:20
[성전(聖戰)-정신 차리고 읽어야 할 좀 지루한 글]


성전(聖戰)이란 무엇일까? 성전(聖戰)이란 종교적 이념에 따라 수행되는 전쟁이라고 한단다.
이 얼마나 웃기는(?) 전쟁인가? 사람을 죽이는 전쟁에 성스러운 전쟁이란 것이 있다니, 이것이 웃기는 전쟁이 아니고 뭘까?
성전 즉, 여호와가 진두 지휘하는 성전(聖戰)에서는 '칼날로' '진멸(殄滅)' '도륙(屠戮)'은 필수 용어이다. 이 또한 얼마나 웃기는 어휘들인가?
칼날로 목을 뎅겅뎅겅 잘라 죽이는 짓도 재미있겠지만 또, 한 민족의 씨를 말려서 없애 버리기 위하여 진멸 또 진멸하고, 도륙 도륙 또 도륙을 시켜 버리는 전쟁! 성전(聖戰)은 말 그대로 성스럽고 그리고 재미있는(?) 전쟁임에 틀림 없는 것 같다. ㅎㅎ...아멩 할레루야!

여기에서 여호와의 성전(聖戰)을 몇 가지만 잠깐 보려고 한다. 중세와 현대의 성전 이야기는 생략하겠지만, 고대 성전에서 명성을 날리는 총대장은 여호수아이다.
여기에서 거론되는 성전(聖戰)은 600 여 년 전에 여호와가 계획을 짜고, 아브라함을 통하여 예언해 두었던 것이 마침내 600 여 년 뒤에 실제로 벌어졌던 전쟁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가 히브리 족속(이스라엘)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던 땅 즉,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여러 개의 원주민이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땅을 여호와 쪽에서 히브리 족속에게 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미 자리잡고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모조리 때려 죽이지 않고는 히브리 족속이 들어 갈 수가 없는 땅이다.
결국, 원주민을 박살내고, 그 땅과 기업을 송두리 째 탈취하는 전쟁이 바로 성전(聖戰)이었던 것이다. 
쉽고 짧게 말해서, 성전(聖戰)이란 노략질(떼를 지어 다니면서 사람을 마구 죽이고, 잡아가거나 재물을 빼앗아 가는 짓)의 다른 이름이다. 
역시, 성전(聖戰=성스러운 전쟁)은 웃기는 전쟁이요, 재미있는 전쟁이다. 그지? ㅎㅎ...아멩 할레루야!

아래의 성전은 사방 100 리 쯤 되는 조그만 땅에 옹기 종기 모여 사는 아모리 족속의 5 개국 연합군을 도륙 또는 진멸시키는 전쟁을 말한다.
5 개국이란 1 예루살렘, 2 헤브론, 3 야르뭇, 4 라기스 그리고, 5 에글론이라는 조그만 나라(마을?) 5 개를 말한다.
그러면, 지금부터 여호와가 진두지휘하는 성전(聖戰=성스러운 전쟁)을 관전해 보기로 해 볼까!


1) [(여리고) 성중(城中)에 있는 것을 다 멸(滅)하되, 남녀(男女) 노유(老幼)와 우양(牛羊)과 나귀를 칼날로 멸(滅)하니라.]

(여호수아 6;21)

* 서두부터 칼날로 남녀 노소는 물론 동물(가축)까지도 모조리 싹쓸어서 진멸시켰다고 한다. 이 짓보다 더 재미있는 지랄이 또 있을까?
이것이 여호와가 진두지휘하는 거룩한 성전(聖戰)이다.


2) [여호수아가 아이(城 이름)를 취하여 진멸(殄滅)하되,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여호수아 10;1)

* 역시 아이성 전투에서도 진멸시켰다고 한다. 여리고성 전투에서처럼. 그러니까 이미 여리고성에서도 저런 지랄발광을 했었다는 뜻이다. 
[...백성(히브리 군대=여호와의 앞잡이)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여리고)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성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와 우양(牛羊)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여호수아 6;20~21)
역시, 여호와가 진두지휘하는 노략질 전투는 대단히 재미있는 성전이라고 불릴만 하다고 하겠다.


3) [여호와께서 그들(5 개국 연합군)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도륙(屠戮)하고,]

(여호수아 10;10)

* 도륙했다고 한다. 도륙 중에서도 크게 도륙했다고 한다. ㅎㅎ... 얼마나 흥미진진했을까! 역시, 성전답다.!


4) [그들(5 개국 연합군)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우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

(여호수아 10;11)

* "큰 덩이 우박"이란 말을 들어 본 사람이 있는가? 아마도 우박의 크기가 커다란 수박만 했었다 보다.
지금은 한국에서 생산되는 수박도 꽤나 커졌다. 그러나, 미국 쪽에서 생산되는 수박보다는 아직 어림 없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수박 중에는 40 대 젊은 시절의 힘으로도 끙끙대며 겨우 들어올릴 수 있는 크기의 수박이 많다. 그것을 단 돈 5 불 씩을 지불하고서 사 먹었었다.

여호수아 시대의 중동 지방에서 생산되는 포도 송이는 어찌나 큰지, 포도 1 송이를 운반할 때에도 작대기에 끼워서 장정 2 사람이 어깨에다 메고 운반을 했다니까(민수기 13; 23), 그 때의 수박은 지금 미국에서 생산되는 수박보다도 훨씬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니까, 여호수아 시대에 벌어졌던 성전(聖戰)에서 적군(원주민) 진영에게 폭탄처럼 쏟아져 내린 큰 덩이 우박이란 것은 적어도 그 당시의 수박의 크기는 됐으리라 짐작된다.
그 큰 수박 덩이 크기의 우박에 직접 얻어 맞은 사람은 박살이 났을 것이고, 우박이 터지면서 튀는 파편에 얻어 맞은 사람도 직사했으리라.

오죽하면, 적군(5 개국 연합군)은 이스라엘 군이 휘두르는 칼날에 목이 잘려 죽은 자보다 우박 덩이에 맞아서 죽은 자가 더 많았다고 하겠는가?
그 큰 우박 덩이를 여호와가 직접 쏟아 내렸다니까, 여호와가 진두지휘한 성전(聖戰)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성전 이야기를 잠시 멈추어야 될 것 같다. 왜냐 하면, 여호와를 잡놈 악신이라고 한 번 불러 주어야 되지 않을까? "잡놈 악신!" 이렇게. ㅎㅎ... 아멩 할렐루야!


5) [여호와께서 아모리(민족 이름)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目前)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지명)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스라엘)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여호수아 10;12~14)

* 여기의 성전(聖戰)은 아모리 족속의 씨를 말리려는 전쟁인데, 그렇게 하자면, 하루의 전투로는 시간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여호와에게 기도를 했던 모양이다. "전지전능한 여호와시여! 오늘 하루는 태양과 달이 중천에서 오래 머물도록 해 주십시오."하고. 
그러자, 여호와는 여호수아(인간)의 요구에 응하여 태양과 달을 중천에 며칠 동안을 머물러 있게 하였던 모양이다. 마침내, 이스라엘 군은 적(아모리 족속)을 전멸시킬 수가 있었다고 한다.
전지전능한 신이 진두지휘를 하면, 전과가 이렇게 막강한 것이다. 아멩 할렐루야! 그렇지만, 여호와는 잡놈이 맞지? 안 그래?


6)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5 개 국 연합군)을 크게 도륙하여 거의 진멸시켰고...]

(여호수아 10;20)

* 지금까지의 성전(聖戰)에서 전투 때마다  계속해서 적군을 도륙, 진멸, 전멸시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아직도 "거의 진멸시켰고..."라는 말을 하고 있다.
여기 만이 아니라 바이블 내용에 의하면, 중동 지방에서 히브리 족속을 제외한 여타 족속들은 여호와에 의하여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한도 끝도 없이 진멸(또는 전멸)되어 왔다.
그런데도 오늘 날, 여타 족속들에 의한 이슬람 교도는 18 억이 넘으며, 여호와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는 순수 히브리 족속은 600 만에 불과하다. 

이스라엘 영토 안에서만 헤아려도 2020 년이면, 순수 히브리 족속은 690 만, 아랍인은 720 만이 되어 아랍인이 히브리인을 앞지를 것이라 한다.
진멸(또는 전멸)됐다던 여타 족속들이 없어지기는커녕 여호와의 보호를 받는 히브리 족속의 10 배 20 배로 번성하는 이유가 뭘까?
지금 여호와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낮잠을 주무시나?  


7) [여호수아가 군장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희가 더불어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

(여호수아 10;25)

* 히브리 족속(그러니까 예수쟁이들의 조상)이 대적하여 싸우는 전쟁은 모두가 성전(聖戰)이며, 성전은 언제나 여호와가 함께 하며 진두지휘한다는 말이다.
여하간, 히브리 족속(또는 예수쟁이)은 신났어! 여호와가 함께 하고 있으니, 무엇인들 운수 대통하지 않을 것이 있겠는가?
어쨌든, 예수쟁이는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야 할 것이다." 항상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게 다 무엇을 하는 지랄인지 모르겠다. 


8)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 죽여, 다섯 나무에 매어 달고 석양까지 나무에 달린대로 두었다가, 해 질 때에...그 시체를 내리어...굴에 들여 던지고...]

(여호수아 10;26~27)

* 이제 겨우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진 모양이다. "석양"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마침내, "5 개 국 왕들을 모조리 잡아서" "쳐 죽이고" "석양까지 나무에 매달았다가" "해질 녘에 그 시체를 내려" "시궁창에 던져 버렸다"고 한다.
여호와께서 진두지휘하시는 성전(聖戰=성스러운 전쟁)답게 전쟁의 끝 장식도 멋져 버렸다. 그지?


9) [그 날에 여호수아가 막게다를 취하고, 칼날로 그 성읍과 왕을 쳐서 그 성읍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수아 10;28)

* 지금까지 꽤나 긴 시간 동안 전투 장면을 설명했는데, 이 모든 것이 하룻동안에 벌어진 성전(聖戰)이었다고 한다.
태양과 달이 움직이지 못하고 중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실제의 시간으로는 어쩌면 달포 동안을 쉬지 않고 전투를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날에 칼날로 그 성읍과 왕을 쳐서 그 성읍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와! 대단한 전과다! 아멩 할레루야! 
이럴 때 아멩 할레루야를 부르짖지 않고 언제 그 짓을 하겠는가? ㅎㅎ...


이상에서, 히브리 족속(예수쟁이 조상)이 여호와 신과 함께 원주민 아모리 족속(5 개국)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남의 땅을 빼앗는 장면 즉, 성전(聖戰) 일부를 관람했다.
조그만 마을을 '나라'로 보고, 추장을 왕(王)으로 그려낸 바이블, 바이블 기자는 자기의 조국 땅이었던 팔레스틴 지방에 단 한 번도 가 본적이 없었을 것이며, 이미 페르시아 대제국 같은 나라를 경험한 그로서는 자기의 조상들도 그렇게 살았으려니 하는 생각으로 바이블을 쓴 것이다.

여기에다 자기네 조상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터무니없는 허풍과 자기의 무식한 신앙심이 보태져서 엄청난 악(惡)의 모습을 탄생시킨 것이다.
나라(왕)가 무엇인지, 전쟁이 무엇인지, 신(神)이 왜 존재해야 되는지도 모르는 무식한 자가 신(神)의 이름을 내어 걸고 있으면, 우매한 무리가 몰려들어 재물을 바치는 것은 알아서, 그 재미(?)에 맛이 붙은 자가 만들어 낸 책(여호와)이 바이블이다. 그리고, 이 바이블이 바로 예수교의 기본이 되는 교리이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는 전쟁에서 자기 나라가 승리를 거두면 덮어 놓고 마냥 신나는 법이다.
어린 아이로서는 전쟁이 무엇인지, 사람의 떼죽음이 무엇인지 알 턱이 없다. 덮어 놓고 자기 나라가 이겼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좋은 것이다.
바이블 기자는 이런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던, 오직 종교로 돈 버는 재미 밖에는 아무 것도 모르던 악마(惡魔)였던 것이다.
제삼자 2013-09-10 (화) 08:04
[예수 가라사대 "곡식 밭의 김을 매지 말라"]


* 김매다; 논밭의 잡풀을 뽑아 없애다.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다가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과 같다.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에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 
밀이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도 보였다.

그래서, 주인의 종들이 와서, 그에게 말하였다.
'주인 어른, 어른께서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에서 생겼습니까?'
 
주인이 종들에게 말하기를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였다.
종들이 주인에게 말하기를 '그러면, 우리가 가서, 그것들을 뽑아 버릴까요?' 하였다. 

그러나, 주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가라지와 함께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추수할 때에, 내가 추수꾼에게, 먼저 가라지를 뽑아 단으로 묶어서 불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들이라고 하겠다.'"] 

(마태 13; 24~30)

이상의 이야기는 소위 "가라지 비유"라고 해서 예수의 유명한 설교(가르침) 중 하나에 속한다.
예수의 가르침에 의하면, "곡식 밭에서 김을 매서는(풀을 제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ㅎㅎ...

예수의 설교가 더욱 값지고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점은 "곡식 밭에서 김을 매지 말라."고 가르치는가 하면,  "제자는 스승보다는 못나야 된다. (마태10;24)"고 역설하는 데에 그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멩 할렐루야!
어떤가? "곡식 밭에 김을 매지 말라." 또는 "제자는 스승보다 못나야 된다."는 설교가 온당한 가르침이라고 생각되는가?

(1) 어쨌든, "추수할 때까지 곡식 밭의 김을 매지(잡풀 제거 작업) 말라."는 가르침과 "제자는 승승보다 잘 나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은 이 세상에 바이블 외에는 없다
(2) 가라지를 비롯한 잡풀들은 곡식보다 먼저 여물게 되어 있다. 추수 때가 되면, 가라지는 이미 여물어 밭에 떨어진 뒤가 된다. 따라서, 추수 때 곡식과 가라지의 구별 작업은 이미 물 건너 간 일이 되고 만다.
"추수 때에 가라지는 따로 묶어서 불태워 버리고, 알곡(밀)은 곳간에 거두어들이겠다."는 예수의 말(계획)은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3) 더욱 중요한 문제는 가라지(잡풀)를 제거하지 않은 밭에서는 곡식이 자라지 못한다. 추수 때를 기다려 봐야 얻어지는 것은 알곡은커녕 쭉정이도 없다.
(4) 세상에는 곡식(예수쟁이들)도 있고, 가라지(예수쟁이를 제외한 원수들)도 살고 있는데, 그 원수(가라지)들이 멸망하지 않고 잘 살아가는 현상을 변명하려고, 어거지로 예수교 식으로 뚜드려 맞추어 놓은 악질적이고도 언어도단의 비유임을 알 수 있다.
전지전능한 신(神)의 말은 모순 없이 자연 섭리에 맞아야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자연 섭리도 모르는 자가 어떻게 세상을 다스리겠는가?

(5) 그런데, 예수는 왜 비유로 설교를 했을까? 그 이유를 바이블에서 찾아 보자.

[(예수)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예수쟁이들)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예수쟁이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저희(예수쟁이가 아닌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마태 13; 11~13)

예수쟁이들에게는 천국 비밀을 알도록 허락되어 있지만, 예수쟁이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천국 비밀을 알도록 허락되어 있어 있지 않다고 한다. 예수의 말이다.
그래서, 예수는 비유로 사람들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예수쟁이가 아닌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여 마침내 지옥으로 풍덩 빠져서 영원히 허우적대며 신음하게 될 것이라 한다. 

재미있는 사실을 한 가지 더 첨부하자면, 천국 비밀을 알도록 허락되어 있는 사람들은 있는 것에다 더욱 많은 것을 받게 되어 넉넉해 지지만, 천국 비밀을 알도록 허락되어 있지 않은 미운 털 박힌 놈들은 조금 있던 것까지 모두 빼앗겨 마침내 거지 신세가 될 것이라 한다. 예수의 말이므로 불변의 진리일 것이다.  

이상, 예수(교)의 진리의 말씀(가르침)이었다. 아멩 할렐루야 또 아멩!
예수교를 고쳐서 쓰려면, 위에서 어느 것을 고쳐야 될까? 아는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어 보도록!
제삼자 2013-09-15 (일) 08:46
[타이타닉(Titanic)호 참사와 예수쟁이들]


영화 <타이타닉(Titanic)>에서 배가 침몰하고 있는 긴박한 순간에도 악사들은 연주를 계속하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당시에도 악사들이 연주를 계속했는지 어떠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긴박한 순간, 공황 상태에 빠져서 정신이 없을 때, 악사들이 희생정신으로 맡은 바 소임을 발휘하여 연주를 해 본들 그 노래가 귀에 들어오는 승객이 있었을까?

더욱 가관인 것은, 그 때에 연주되던 노래가 예수교의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이라고 해서 우쭐대며 자랑하는 예수쟁이가 하나 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객선이 침몰하는 긴박한 상황일 때는 직업이 악사일지라도 찬송가를 연주하기보다는 승객을 구출할 방법을 찾든가, 하다못해 자기 자신의 생존을 궁리하는 것이 더 훌륭한 행동이 아닐까? 

그 찬송가인지 악담가인지가 귀에 들리는 자는 타이타닉호의 승객이 아니라, 극장 안에서 영화를 구경하면서 팝콘을 신나게 씹어대고 있는 예수쟁이들의 귀에나 들렸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예수쟁이들 중에 "삶은 무엇인가?"하며 심각하게 고민해 보는 그런 종자가 있기는 한 건지 의심을 해 보지 않을 수가 없게 할 때가 많다.

일단,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 연주됐다는 그 찬송가라는 노랫말의 1 절만이라도 음미해 보기로 하자.


<예수교 찬송가 364 장 (새찬송가 338 장)>

내 주(예수)를 가까이 하려(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고생이지만),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예수)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노랫말을 아무리 음미해 봐도 목숨이 1 시간도 남아 있지 않은 급박한 상황에서 불려질 노래 같지는 않다.
다음과  같이 가사를 바꾸어 부르면 속이 좀 시원해질려나?

지금, 예수 이름을 이를 갈며 울부짖고 있음은
다른 쓸 데 없는 너절한 얘기 다 필요 없고,
한 시간도 남지 않은 내 생명 어찌할거나!
그 동안 예수 한테 속은 걸 생각하면 이가 갈리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는 예수교 전체를 통틀어 그 효력이 통하지 않는 곳은 없다.
바이블 속과 예수교 역사 속은 물론, 현재의 교회 속에서도 돈의 크기에 따라 인간의 낯짝도 그 크기가 결정되고, 타이타닉호가 침몰될 때에도 유전 생존, 무전 익사로 직결된다.
예수쟁이들이 껌뻑하며 미쳐 돌아가는 그 멋진(?) 찬송가가 울려퍼지는 속에서도 돈 없는 인간은 우선적으로 죽음의 구렁텅이(여기서는 대서양 바닷속)로 쳐 박히고 있다.

타이타닉호 당시의 뱃삯을 요즈음의 액수로 환산해 보면,
특등실     $99,000
1 등실       $3,400
2 등실       $1,400
3 등실         $910   

여기에서 복잡한 내용의 이야기는 생략하겠지만, 승객 2,200 명 중 구명 보트에 옮겨 탈 수 있었던 사람은 겨우 711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모두가 특등실과 1 등실의 부자들이었다.
자기 나라에서는 살 수가 없어서 어떻게 하든 한 번 살아 보려고 겨우겨우 뱃삯을 마련, 신천지(미국)를 향하여 타이타닉호를 탔던 2~3 등실의 불쌍한 사람들(1,500 여 명)이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참하고 처절한 모습에다 대고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예수께 더 나아가 돈 바치고 몸뚱이 바치기 원합니다."하고 연주를 해댔다는 것이다. 

역시, 찬송가라는 것은 가난하고 무식한 쓰레기 인생(그러니까 아주 정상적인 인간)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딴 세계의 사치품임을 알 수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많이 번 자, 역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를 한 자, 동시에 머리통 속에는 두부(정확하게 표현해서 똥?)만 가득하게 채워져 있는 사람에게만 들리는 멋진 노래가 예수교의 찬송가라는 것이다.
그 찬송가라는 것이 아주 제격으로 연주되어 울려 퍼진 곳이 바로 침몰되고 있을 때의 타이타닉호였던 것이다. 아멩이다. 할렐루야다.     


내 주(예수)를 가까이 하려(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고생이지만),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예수)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역시, 은혜롭고 멋진 노래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지?
1,000 만 바이블 금서 운동 대신에, 1,000 만 찬송가 불러대기 운동을 벌여 보면 어떨까?
칭찬인줄 알고서 예수쟁이들, 입 째지겠다. 그지?
제삼자 2013-09-16 (월) 14:27
[비둘기 똥 값]  


鴿糞太(합분태)--비둘기똥. 鴿糞太는 '합분태'라고 읽는다. 뜻은 '비둘기똥'이란다.
그런데, 물가가 급등을 하면, 비둘기똥 값도 덩달아 오르는 세상이 있다고 한다. 여호와가 직접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그렇다고 한다.
곡물 값이 급등하여 마침내 굶어 죽을 현편이 되면, 이제까지 애지중지 보물로 간직하고 있던 금덩이도 헐값에 팔아 곡식을 구입하여 일단 급한대로 연명하기에 급급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곡물가가 급등하고 있을 때, 필요하지도 않은 똥을 구입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가 직접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곡물 값이 폭등을 하면, 똥 값도 덩달아 폭등을 한다고 한다. ㅎㅎ...아멩이다!

예수교의 실질적 최고 최대의 선지자(여호와의 뜻을 세상에 전달하는 직책)는 엘리야이다. 그 엘리야의 수제자가 바로 엘리사이다.
여호와의 앞잡이에 걸맞게 엘리야와 엘리사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밀조밀 재미있는(?) 기적질들을 많이 베푼 자들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예수 일당들도 엘리야와 엘리사의 기적질들을 적당히 변형시켜 그것을 기적질이랍시고 흉내를 냈겠는가?
그 유명한 여호와의 앞잡이 엘리사 시절에 이 합분태(鴿糞太=비둘기똥) 이야기가 나온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히브리 왕국이 둘로 나누어져, 북쪽은 이스라엘, 남쪽은 유다라 했다. 마치 오늘 날의 한반도 정세(남한과 북한의 분단 상태)와 비슷했다고 한다. 
남쪽 유다는 그런대로 정통성이 있어 정치적으로 비교적 안정을 유지했으나, 북족 이스라엘은 정통성이 없어 정치적으로 대단히 불안정했다. 북쪽 이스라엘의 역대 19 명의 왕들 중에 절반에 해당하는 9 명이 유혈 쿠데타로 정권을 쟁탈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여호와가 끼어 들어 무엇인가 활동하기 좋은 곳이 이스라엘이었다. 여호와의 유명한 앞잡이 엘리야와 그 제자 엘리사가 활동한 곳도 바로 이스라엘이었다.

여호와(예수)는 어수선하고 뒤죽박죽 같은 수라장(싸움이나 기타의 이유로 혼란에 빠져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된 곳)을 좋아한다. 그래야, 끼어 들어 감 놔라 배 놔라 하기가 좋은 것이다.
뱀(구렁이)이 살아서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을 때는 건강하여 윤기가 흐른다. 그러나, 그 뱀(구렁이)이 죽어지면, 각종 벌레와 세균이 침범하여 삽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건강한 사회에는 여호와(예수) 따위가 감히 범접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사회 또는 나라가 어수선해지면, 때를 만난 듯 여호와(예수) 따위의 좀 벌레가 들끓게 되어 마침내 세상이 마귀소굴화되고 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내부적으로 정정만 불안한 게 아니라, 북쪽의 아람(시리아)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자고 새면 전쟁을 치러야 하는 지옥 같은 세상이었다. 여호와가 끼어들어 감놔라 배놔라 하기 아주 좋은 사회였다.  
역시나, 이스라엘에는 여호와의 앞잡이 엘리사가 있어, 그 작전 명령에 의하여 백전백승을 하게 됐다고 한다.
여호와(예수)가 끼어들어 도움을 주면, 으례 쏟아져 나오는 큰 은혜와 함께 백전백승의 결론이 나오게 마련이다. ㅎㅎ... 아멩!

엘리사는 장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족집게 점을 잘 쳤는데 그 중 하나가, 언제 쯤 기근으로 물가(物價)가 천장 부지로 치솟을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하고 또, 언제 쯤에는 물가가 똥값이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위의 합분태(鴿糞太=비둘기 똥) 이야기는 소위 물가 상승 예언 때의 일이다. 역시, 여호와의 앞잡이는 그 위력이 대단해서 못하는 게 없는 것이다. 아멩 할렐루야!


[이 후에, 아람(시리아) 왕 벤하닷이 그 온 군사(軍士)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이스라엘의 도성)를 에워싸므로 성중(城中)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銀) 80 세겔(화폐 단위)이요, 합분태(합糞太) 1/4 갑(용적 단위)에 은 5 세겔이라.]

(열왕기하 6; 24~25)--개역

이스라엘과 아람(시리아)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자, 사마리아성 안에서는 심각한 기근으로 자식까지 잡아 먹었다고 한다. 
그러한 형편이었으니까 당나귀 머리 값도 치솟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비둘기똥 값도 폭등하는가? 왜? 물가(物價)가 오르면, 비둘기 똥값도 오르게 되어 있는 것인가?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비둘기똥이 당나귀 머리의 친구라도 되남?

당시, 사마리아성 안에서는 기근이 어찌나 심했던지 "오늘은 네 자식 잡아먹고, 내일은 내 자식 잡아 먹기로 하자."며 실제로 그런 상황이 벌어졌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호와는 사람이 굶어 죽는 상황에서도 장난을 좋아하시나 보다. 역시 여호와는 재미있으신 분이셔. 그래서, 세상이 이렇게 유머러스(humorous)한가 봐.

비둘기 똥 1/4 갑에 5,000 원이래! 여호와(예수)에 대한 예배 제물로 쓰면 좋겠다. 야구 시합장에 구경 가서 심심풀이 땅콩(=비둘기 똥)으로 잡수시게...
여호와는 없는 곳이 없다니까, 비둘기 똥 속에도 계시겠지? 그래서, 그렇게 비둘기똥을 좋아하시나? 여호왓님은!
제삼자 2013-09-23 (월) 13:11
[예수교의 천지는 우주인가 다른 것인가?]


예수교(바이블)가 말하는 <천지>는 <우주>와 같은 개념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일까? 몇 십 년 전부터 새롭게 개량종으로 출간되는 바이블에서는 천지 대신에 우주라고 기록되어 있기는 하다.
만약, 천지(天地)가 우주(宇宙-시간과 공간)와 같은 개념이라면, 천지가 창조되기 전에는 시간과 공간이 없었다는 뜻이 된다.

10 의 1/2은 5이고, 100의 1/2은 50이다. 그러나, 무한대의 1/2은 역시 무한대이다.
10 년의 절반은 5 년이고, 100 년의 절반은 50 년이다. 그러나, 영원의 절반은 역시 영원이다.


[태초(太初)에 여호와가 천지(天地=宇宙?)를 창조(創造)하시니라.] (창세기 1;1)

예수교의 신(神) 여호와는 태초(시간의 어느 시점)에 천지를 창조했다고 한다. 여호와는 천지를 창조하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를 5 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를 1 번, 도합 6 번을 외친다.
바이블의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천지를 창조한 이유는 여호와가 영광을 받기 위해서 저지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천지를 창조하기 전 즉, 태초 이전에는 여호와에게 영광이란 것이 없었다는 말이 된다.

예수쟁이들이 밑도 끝도 없이 떠들어대는 말이 있다. "여호와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고. 그러나, 창조 전에도 혼돈, 공허, 흑암(黑暗)과 수면(水面)이 있었다고 되어 있다. (창세기 1;2)
따라서, 바이블의 창조라는 어휘는 잘못 선택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창세기 1;1은 "태초에 여호와가 천지를 개량하시니라."라고 고쳐져야 옳다.
창조 사업을 개량 사업으로 격을 조금 낮추더라도 여호와의 전지전능성에 흠집이 생기지는 않겠지? 안 그래? 그러나, 편의상 개량을 제쳐두고 창조를 그대로 쓰기로 한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각설하고...

예수교(바이블)에서 말하는 <태초>란 천지가 창조된 시점(時點=시간의 흐름 위의 한 순간)을 가리키는 시간 개념의 말이다. 그리고, 시간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태초>라는 시각을 중심으로 그 전에도 영원한 과거 시간이 있을 것이고, <태초>라는 시각 후에도 영원한 미래 시간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무한대(영원)의 특성상 무한대(영원)의 절반(1/2)도 무한대(영원)라는 말이다.

<------------(과거 영원)------------(태초)------------(미래 영원)------------->
<------------------------------------*-------------------------------------->

위의 도표에서, 천지가 창조된 태초라는 시점(時點)을 중심으로 태초 전(왼쪽)에도 영원한 시간이 있을 것이고, 태초 후(태초 오른쪽)에도 영원한 시간이 있을 것이다. 
예수교(바이블)의 기록과 주장에 의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은 태초로부터 6,000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간 시점이다.
그렇다면, 겨우, 6,000 년 전을 가리켜 <태초>라는 거창한 용어를 쓴 것은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이 아닐 수 없다고 하겠다. 
시간은 앞으로도 천 년, 만 년, 억 년, 그리고 영원이라는 시간이 지나 갈 것이다. 그리고, 태초 이전에도 천 년 전, 만 년 전, 억 년 전, 그리고 영원 년 전에 해당하는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다음에 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한 이유는 전지전능한 신(神) 여호와가 영광을 받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렇다면, 창조가 되기 이전의 영원한 과거 시간 동안 여호와는 무(無) 아니면, 혼돈과 공허와 흑암 뿐인 곳(?)에서 무엇을 하며 견디고 있었을까?
전지전능하다는 작자가 재미난 것도 없이, 영광도 없이 영원한 시간 동안을 참고 견디고 그리고, 또 참고 또 견디고 그랬다는 말인가?
천 년도 아니고 만 년도 아니고 108 억 년도 아닌 창조 이전의 영원한 시간 동안(과거 영원)을 영광 없이 참고 견뎠단 말인가? 맙소사!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숨어 있다. 천지(우주=시간과 공간)가 창조되기 이전이라면, 거기에는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없는 곳(?)에서 어떻게 태초라는 시간 개념을 사용할 수가 있었으며, 공간이 없는 곳에서 여호와라는 신은 어떤 형태로 존재할 수가 있었을까? 
여호와(예수)는 형이상(形而上)으로도 불가능한 세계를 짐작이라도 하면서 천지창조 얘기를 떠들었을까? "그냥 덮어 놓고 전지전능한 신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떠들어대면 되는 줄 알았겠지? 소가 들어도 웃겠다. 안 그래? ㅎㅎ...아멩 할렐루야!

아직도 큼직한 문제가 남아 있다. 
여호와가 창조했다는 <천지>는 <우주>가 아니라, 우주 속에 존재하는 <천체와 물질>들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변명할 예수쟁이가 없으란 법은 없을 것이다.
이럴 경우, 좀 어려운 내용의 이론이 되겠지만, 창조 전후에 관계 없이 여호와(예수)도 우주(시간과 공간)에 꽁꽁 갇혀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어떤 틀(여기서는 우주 속)에 꼼짝 못하고 꽁꽁 갇혀 있는 신세를 가리켜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일까? 어떤가? 여호와(예수)도 시간과 공간 앞에서는 속수무책의 무능자가 분명하지? 안 그래?

여전히, 대단히 중대한 문제가 하나 더 남아 있을 것 같다.
우주(시간과 공간)는 그 특성상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라 했다. 따라서, 필자가 말하는 <과거 영원>이나 <미래 영원>이나 모두 영원한 시간(영원의 절반도 영원이니까)이므로 역시 시작도 없고 끝도 없어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교(바이블)가 말하는 <태초>는 과거 영원의 끝 점인 동시에 미래 영원의 시작 점이 겹쳐진 시점이다. 얘기를 하다 보니까, 지작과 끝이 없어야 될 영원이라는 시간에 끝나는 점도 있고 시작하는 점도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시작이 없어야 될 저 먼 시점(영원 전)에서 출발하여 과거 영원의 끝 점(태초)에 도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끝이 없어야 될 끝(태초)에 여호와는 도착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시작 점인 태초를 출발한 여호와는 언제인가는 또 다시 미래 영원의 끝 점에 도달할 것이 분명하다. 영원이란 시간에도 끝에 도달할 날이 있다는 말이 된다.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존재한다는 예수교의 신 여호와도 끝 점(죽음)에 도달하여 없어질 끝날이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래서, 니체는 말했나? "신은 죽었다."고. ㅎㅎ...이거야 말로 진짜 아멩이다!

문제가 또 남았다.
예수교(바이블)가 말하는 태초는 과거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미래의 시간만을 계산하는 방식이 아닐까?
그러니까, 시간 속에 태초 이전의 과거 시간은 없는 것이고, 태초 이후의 시간만 있는 것이어서 영원이란 것도 6,000 년 전(태초?)부터 시작해서 오늘을 거쳐 천 년 후, 만 년 후, 억 년 후, 마침내 영원한 시간... 
이렇게 예수교(바이블)가 말하는 영원은 6,000 년 전에 출발하여 미래 쪽으로만 계산되는 시간 개념이 아닐까? 과거 6,000 년+현재+미래=영원. 이것이 예수교(바이블)가 말하는 영원이 아닐까?

얘기를 하다 보니까 맞네! 영원이란 것도 별 것이 아니네.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한 6,000 년 전부터 앞으로 오는 시간만 보태면 그것이 영원 맞네! 그지? 
그런데, "태초에 여호와가 천지(우주=시간과 공간)를 창조하시니라." 이 한 마디를 해설한다는 것이 어디까지 온 거야? 오늘 필자의 머리가 돌았나?
어떤가? 예수교(바이블) 속에서 굴러다니는 얘기들 중에 단 한 가지라도 건질만한 건더기가 있어 보이는가?


* 두 기둥 사이에 매어 놓은 빨랫줄은 움직일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영원 전의 기둥과 영원 후의 기둥, 이렇게 양쪽 기둥에 단단히 묶여 있는 시간줄도 전혀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시간줄은 굵기가 1 cm 또는 2 cm 되는 그런 줄이 아니라, 그 굵기와 길이가 무한대여서 우주에 꽉 들어차 있다.
공간도 시간과 마찬가지로 우주에 꽉 들어차 있어서 전후 좌우 위아래 어느 쪽으로도 점혀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다. 재차 말해서, 시간과 공간은 우주에 꽉 들어차 있어서 어떤 움직임도 있을 수가 없다. 

사람의 감각으로는 "시간은 흐른다."고 느낀다. 그러나, 시간은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에 "흐른다." "지나간다." 따위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감각으로는 "기차나 비행기는 빠른 속도로 공간을 이동한다"고 느낀다. 그러나, 공간의 이쪽 무한대 끝과 저쪽 무한대 끝에서 재어 보면, 기차(비행기)까지의 거리는 항상 일정하다. 아무리 빠른 기차(비행기)라도 제 자리에 있을 뿐, 움직인다고 할 수가 없다.  
다만, 우주(시간과 공간) 사이에 벌여 있는 삼라만상(森羅萬象=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이 끊임 없이 변화를 하는 현상을 보고서 그것을 움직인다고 착각할 뿐이다.   

* 참고; 우주(시간과 공간)는 점(點=위치만 있고 크기와 무게가 없다)이 되기도 하고, 무한대(영원)의 크기(길이)가 되기도 한다.
아무리 큰 것도 무한히 먼 곳에서 보면 점일 뿐이고, 아무리 긴 시간도 무한히 먼 곳(시간)에서 보면 점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주(시간과 공간)는 점인 동시에 무한대(영원)의 크기(길이)가 된다. 이상을 "개똥철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ㅎㅎ...
제삼자 2013-09-27 (금) 07:05
[허구(예수교)의 굴레만 벗어난다면]

 
나라가 세워지면 대개 100 년 이내에 전성 시대가 온다. 건국의 이념과 정신이 아직 살아 있고, 모든 제도가 나름대로 완비되어 전성시대 또는 태평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그러나, 곧 심각한 부패(腐敗)가 동반되는 사회로 바뀐다. 때를 맞추어 주위에 강대국이 있어 그 침범을 받아 멸망하거나, 자체 국내의 반대 세력에 의하여 그 나라는 멸망한다.
이런 멸망주기가 200 년(또는 150년) 이내에 반복되는 민족(또는 국민)이 있고, 그것이 500 년 주기로 되어 있는 민족이 있다.

대개 종주국(宗主國) 입장의 민족은 150년 내지 200 년 주기로 흥망성쇠를 반복하고, 주변국(周邊國)들의 경우는 그것이 500 년 경우일 때가 많다.
종주국의 위치에 있는 나라는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네 정권이 썩었을 때 기득권 세력만 제거하면 새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
그러나, 주변국의 경우, 자국 내의 부패 정권만 무너뜨리고서는 새 세력이 들어서기 어렵다. 종주국의 허락 없이는 성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200 년(또는 150년) 주기의 종주국에 속하고, 우리 한국은 500 년 주기의 주변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고대 로마는 종주국이면서도 1000 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실제로 그 내부에서는 왕정--귀족 공화정--민주 공화정--제정--전제 군주정 등으로 200 년 주기를 반복한다. 
미국은 현대 종주국이다. 이 나라도 건국 후 150 년만에 경제 대공황으로 기득권 세력이 몰락(정확하게는 양보?)한다. 거부들의 주식이 하루아침에 휴지로 바뀐 사건이다.

그러면, 200 년 주기의 나라와 500 년 주기의 민족(또는 국민)은 무엇이 다를까? 200 년을 주기로 멸망을 거듭하는 나라는 부패 정권과 사회의 암적인 기득권 조직이 극도로 부패되기 전에 교체되기 때문에 백성의 고통이 그만큼 적고 짧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500 년 주기 민족의 그것은 도탄(塗炭) 또 도탄에 빠져 백성의 참상을 말로 다 할 수 없다.
500 년 주기에 해당하는 고려(高麗). 고려 말기의 개성 수창궁에 불이 나서 건물 몇 채가 타버렸다. 그러나, 나라에 돈이 없어 그것을 복구할 힘이 없었다.
그러나, 왕권이 교체되자마자 조선왕조는 짧은 시간에 한양성을 쌓고 경복궁도 지을 수 있었다. 외국에서 차관을 들여와 이루어낸 것이 아니다. 자체 내에 충분한 힘이 있어도 건국 후 500 년 되어 썩은 사회(정신)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나라가 세워지고 500 년이 지나 썩을 대로 썩어진 조선왕조의 말기, 흥선대원군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경복궁을 다시 세우려고 별별 짓을 다 했다. 결국, 그 자신이 정권에서 밀려나는 원인의 하나가 된다.
건국 초에는 그렇게도 쉽던 일이 500 년 뒤끝에는 되는 일이 없다. 썩은 기득권이 버티고 있는 사회에서는 되는 것이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기득권 세력(어떤 세력을 불문하고)은 나라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양보하는 경우는 없다. 인류 역사가 100% 그러하다. 만약, 그 기득권 세력들이 조금 씩이라도 양보의 미덕을 보였다면 멸망하는 나라(여하한 조직도 포함)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양보는커녕 오히려 자기 위치를 고수하기 위해서는 외세(外勢)도 상관하지 않고 끌어들여 자기 일신을 지키려 한다.

우리의 근세조선은 517년을 버텨낸 나라이다. 그 나라의 말기 현상이 어떠했을까는 설명이 필요 없다. 이럴 때 서구(西歐)의 고도 문명이 들이닥친다.
우리 민족은 지구 위에서 가장 재수 없는 민족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나라가 건설되고서 500 년이 지나, 극도로 썩어져 있을 때에 서구의 현대 문명을 만난 사실이 그것이다.
사람은 먼 과거도 잊기 잘하고, 먼 미래도 계산하기 싫어한다. 지금 당장의 현상이 급한 것이다. 500 년 뒤끝을 살아가던 우리 민족의 감각에는 우리의 것은 모두 틀렸거나 썩은 것뿐이었다.
조상이 물려준 것은 가난과 허탈과 절망뿐이었다. 이럴 때, 서구 문명을 만나게 된다. 
 
서구 문명을 만난 지 100 년만에 내 것이라곤 한 가지도 없이 다 팔아먹게 된 동기이다. 조상까지도 다 팔아먹었다. 살아 있는 부모 형제 사이에도 척을 져야 되는 시대가 됐다. 
세종 임금이나 성종 임금 시절 즉, 건국 정신이 살아 있고 전성 시대를 구가할 때라면 초현대 첨단 문명을 만나더라도 취사선택할 능력이 있어 지금 같은 우리의 현상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안타까운 사태는 벌지고 말았다. 나라가 세워지고 500 년이 지난 뒤끝, 썩을대로 썩어 문드러진 세상, 그래서 내 조상이 세상에서 가장 못나게 보일 때, 서구 문명과 예수교가 들이닥친 것이다. 이보다 더 재수 없는 현상이 또 있겠는가?

지금은 정권과 경제적 기득권을 움켜쥐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몇 몇 무리를 제외하면(실제로는 학자, 자칭 지식인 등등 좀 더 많지만) 외세와 외제 사상 따위에 의존하지 않아도 내 나라를 이끌어 갈만한 시대가 도래했다고 판단된다.
특히, 중동 지방의 노략질 신(神)의 독선적이고 흑백 논리로 똘똘 뭉쳐진 허구(예수교)의 굴레만 벗어난다면, 반만 년의 찬란한 역사 속에 내재(內在)된 우리의 지혜를 잘 다듬고, 국제적 건설적인 사상을 여기에 조금 씩 접목시키면, 내 조국 한국을 살맛 나는 세상으로 만들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울 것이라고 여겨진다. 
아니, 이미 예수교의 탈을 벗어나서 살맛나는 세상(한국)은 이미 시작됐다고 판단된다.
제삼자 2013-09-30 (월) 08:24
[각자 자기 입을 자물쇠로 잠가라!]


[(예수 가라사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남)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外飾)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남)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태 7;1~5)

위의 예수의 말은 얼른 듣기에는 대단히 훌륭한 가르침 같아 보인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엄격한 전제 조건 없이 이 말이 굴러 다닐 때,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피가 끓듯 분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득권을 먼저 확보한 못된 인간들의 만행질을 당하면서도 두 눈과 두 귀를 뜬 상태로 두 손과 두 발을 묶고 앉아서, 조용히 있어 달라는 말 밖에 더 되는가?


(1) 가장 먼저, 예수교(쟁이)의 만행질과 혹세무민 또는 더러운 짓을 비판하지 말라는 소리로 들린다.
목사(신부) 이하 예수쟁이들도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인간이다. 따라서, 예수쟁이(그러니까 사람?)들로 구성된 예수교에도 잘못이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예수교를 헐뜯지 말라. 비판하는 너는 잘못하는 게 없느냐? "너는 잘못하는 게 없느냐?" 이런 말이렷다. 요샛말로 "너나 잘하세요."인가?

(2) 다음, 바이블 내용(예수와 여호와의 가르침)을 비판하지 말라는 소리로 들린다. 예수쟁이 즉, "인간의 잘못도 비판해서는 안 되거늘 감히 거룩한 여호와(예수)의 섭리(신의 언행?)를 헐뜯어서야 되겠는가?" 이런 말이렷다.
예수쟁이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언감생심 바이블(여호와=예수)을 비판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 볼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바이블이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수 천 년 전의 미개인들이 생각했던 어처구니 없는 쓰레기로 가득한 신관(神觀)이 바이블이 아니고 무엇일까?

(3) 예수의 말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선생보다 제자가 클 수 없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클 수가 없다."
이 말은, 제자가 선생의 잘못을 지적해서는 안 되며, 인간(보냄을 받은 자)이 여호와(보낸 자)를 비판해서도 안 된다는 말이 된다.
결국, 힘 없는 일반 백성은 모든 기득권자 특히, 권력자와 종교(특히 예수교) 지도자들의 기득권에 대항하여 바른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된다.

다른 말로 더 솔직하게 말하면, 기득권을 확보한 자들과 종교(특히 예수교)는 위선(僞善)과 갖은 악랄한 수단으로 착취와 인권을 유린하게 되는데, 이를 탓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로 해석하면 된다.
"너의 비판으로 네가 비판을 받는 것도 문제이지만, 네 눈에는 들보가 들어 있지 않느냐? 입 다물고 국으로 조용히 있는 게 신상에 좋다." 이런 말이렷다.

(4) 재미 있는 것은, 예수 자신이 세상을 비판하다가 뒈진 자이다. 물론, 그 비판이란 것이 자기에게 고분고분 따라주지 않는 상대에게 악담과 저주를 배합하여 퍼부어대는 짓이었지만. 
비판에는 기준이 되는 잣대가 있어야 되는데, 예수의 잣대는 족보가 없는 허황된 소위 천국(?)의 것이었다.
따라서, 예수의 잣대는 검증된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다.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이치에 합당한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다. 이런 경우에, 세상을 비판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예수야 말로 자신의 눈에 들보가 들어 있으면서 남의 눈에 들어 있는 티를 보고 악담과 저주를 퍼부은 자였던 것이다.

(5) 여호와, 예수 및 바이블이 세상을 향하여 쏟아내는 비판(악담, 저주 및 포악)만 제외시키면, 이 세상에 비판이 없어서는 안 될 일이다.
예수교의 만행질, 권력의 횡포질, 언론 매체의 오도질(誤導-), 우매한 인습 등등,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인간을 얽어 매던 굴레들을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은 바로 비판 정신의 결실이다.
비판 정신이 없다면, 언론 출판의 자유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언론이 제 길을 걷고 있을 때에 한하는 것이지만.

(6) 조금 어색한 것이기는 하지만, 중산층의 기준에 대해서 몇 가지 재미있는 말이 오고 간 적이 있었다.
한국 사람의 중산층은 월급여 500 만 원 이상에다 자동차는 중형(2,000 cc?) 이상을 소유해야 되고, 아파트는 30 평 이상 소유 그리고, 예금 잔고는 1 억 이상을 보유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구미 선진국의 중산층은 공분에 의연히 참여할 것, 불의 불평에 의연히 대처할 것, 부정과 불법에 저항할 것 그리고,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받아 보는 비평지가 놓여 있을 것 등등이었다.

"비판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네가 비판을 받을 것이다."
"어찌하여 남의 눈 속에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대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어떤가? 예수의 가르침이 정당한 것이라고 여겨지는가? 아니지. 세상을 공의로 다스린다는 신(神)이란 작자가 비뚤어진 세상을 바로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무엇이 어째? "입 다물고 국으로 조용히 있으라고?"

(7) 결론; 예수의 말은 예수교의 이름으로 한 편으로는 포악한 권력에 아부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혹세무민과 온갖 못된 짓을 자행하는 무리들을 보호해 주는 역할과 인류 사회의 과학 문명을 저지하여 <암흑 시대>를 연출하는 구실과 조금이라도 자기의 마음에 걸리적 거리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짓에 크게 공헌(?)하였을 뿐이다.
"비판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어떤 의미에서는 좋은 가르침이 될 수도 있으나, 예수교 쪽에서 떠들 수 있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구태의연한 세상의 독재자와 여호와, 예수, 바이블, 예수교, 예수쟁이는 철저하게 비판 받아야 될 대상이다.

"비판하지 말라." 좋은 말이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아무에게나 주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특히, 이것이 예수교(쟁이)에게 주어졌을 때,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일이다. 착취 대상의 입을 봉하기 위하여 강요될 무기이기 때문이다.
허구(虛構=여호와 및 예수)가 등장하여, 인간의 입을 봉해 놓고서 그 동안 저질러 놓은 만행질들을 보라.
오직 길은 하나. 안티들의 정정당당한 <비판>에 의하여 예수교를 인류 사회로부터 몰아내는 일 뿐이다.
제삼자 2013-10-01 (화) 08:31
[자기만은 천당에 영원히 거하겠단다] 

예수교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들은 "바이블의 시편(詩篇)에 실려 있는 시(詩)들은 참으로 아름답다."며 침을 튀기며 설교에 인용하며 떠들어댄다. 예수도 시편의 구절을 율법(?)이라며 인용하기를 즐긴다. 
그러나, 세상에 나타난 어느 시에 노골적으로 상대를 저주하고 미워하는 그런 시가 있던가? 시가 무엇인가? 시를 짓는 시간 또는 음미하는 동안의 인간의 마음보다 더 아름다운 때가 있을까?
반면에 바이블(여호와의 말씀)의 시는 어떤 것들일까? 어쨌든, 바이블의 시편에 있는 시는 모두 150 편이다.

그 중에 제 1편과 제 23편은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예수교(쟁이)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우선 예수교(쟁이)가 그토록 자랑하는 시편 제 23편을 음미해 보기로 한다.
시편 제 23편은 히브리 왕국 최고 최대의 명군이요, 여호와가 가장 사랑했던 다윗이 지은 시라고 한다. 교회에 발을 들여 놓고 1 년 이내에 예수쟁이라면 누구나 알게 되는 명시 중의 명시이다.


<시편 제 23 편>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草場)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義)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害)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主=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고대 히브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무기-필자 주)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安慰)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床)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편 23; 1~6)


감상;

(1)~(4) 사막 벌판에서 노략질 전투로 하루 하루를 마음 졸이며 살아가는 모습,
당시의 가장 중요한 무기였던 지팡이와 막대기의 대입,
척박한 사막 벌판의 유목민에게 간절하게 필요한 푸른 초장과 물 가를 적당히 배합하여 멋지게 그려낸 싯귀라고 할만 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해지는 여호와의 의(義)는, 안중근 의사는 한국 쪽에서 의요, 이등박문은 일본 쪽에서 의임과 같다. 신이라는 녀석의 보편적 의라고 할 수가 없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예수)의 대표 간판에 속하는 보편, 공의, 공명정대, 아가페(agape=신의 사랑?) 따위는 그림자도 없고, 여호와(예수)는 편을 가른 다음, 자기 편만 역성드는 똘마니 대장(?)에 지나지 않는다.
소위 깡패 두목들 중에서도 제법 뛰어난 자는 외부에서 돈을 뜯어다가 자기 똘마니들을 먹여 살린다. 그런데, 지지리 못난 두목은 자기 똘마니들의 주머니를 털어 먹는 짓을 한다.

여호와(예수)가 바로 자기 똘마니(주로 범죄 집단에서 부하나 하수인을 속되게 이르는 말=예수쟁이)들의 주머니를 털어 먹는 지지리도 못나 먹은 치사한 잡놈 중의 잡놈 두목이다. 
예수쟁이치고 자기 두목[여호와(예수)의 앞잡이]에게 돈과 시간과 노력과 심지어 여신도의 경우 몸뚱이까지 뜯기지 않는 똘마니가 있던가?
평생을 두고 일방적으로 뜯기기만 하면서도 두목의 그늘(은혜?)에서 평안을 누리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어리석은 종자들이 바로 예수쟁이들이다. 못 말려요!

(5)~(6) 신(神)이란 작자가 원수(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기 편 앞에다 상을 배설하고, 자기 편 사람(예수쟁이)들의 머리에다 기름을 발랐다고 한다.
자기 편 사람들을 선별하여 택하고, 다른 편은 버렸다는 뜻이다. 서양 사람(예수쟁이)들이 즐겨 쓰는 욕말 중에 "God damn"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 저주의 말이다. 
신(神)의 버림을 받은 상대(원수=적)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세상의 어느 시 속에 상대를 저주하고, 편을 가르고, 상대가 멸망하기를 바라는 내용이 담겨 있던가?
이런 수랑장 세상에서도 여전히, 선하시고 인자하신 여호와의 집(천당?)에 자기만은 영원히 거하겠단다. 예수쟁이들은 좋겠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이왕 시편 얘기가 나왔으니까, 시편 제 1 편도 잠깐 음미해 보기로 하자.
이렇게 되면, 예수교(쟁이)가 자랑하는 시편 1 편과 23 편 모두를 살펴보게 되는 셈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예수쟁이)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그렇지 않음이여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예수쟁이)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비 예수교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1; 1~6)

인류 역사상 <사랑>을 가르친 성현(聖賢)은 많다. 사람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한 위인(偉人)도 많다.
그런데, 예수교라는 곳에서도 그럴싸한 말 몇 가지를 나열해 놓서 그것이 장해서 우쭐댄다. "앉은뱅이 뭣 자랑하듯 한다."는 말이 있거니와, 마치 예수교(쟁이)를 빗대고서 만들어진 격언 같다.

그래서, 예수쟁이들이 자랑하는 바이블 내용 중에서 한 가지(시편 1 편)를 다른 각도에서 음미해 보기로 한다. 
말(言)로는 못할 것이 없는 것이다. 예수쟁이들만 입이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말했다 하여 그 말의 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필자도 시편 1 편을 다르게 만들어 봤다. 


[복 있는 사람은 예수(여호와)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예수(여호와)쟁이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예수(여호와)의 가르침으로 세뇌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우주의 자연 질서를 즐거워하여,
그 자연의 이치에 거스르지 않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스르르 즐기는도다.

저(비 예수교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지 않을 수가 없도다.

예수쟁이는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머잖아 예수쟁이는 많은 사람의 조소를 면치 못할 것이며, 
예수쟁이는 일반 대중의 모임에도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일반 대중의 길은 자연 질서의 보이지 않는 손이 인정하시나, 
예수쟁이의 길은 자기가 없고 줏대도 없는 멀대들의 행진이 되리로다.]

 (시편 1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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