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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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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인원 : 3,879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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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42[지상 최대의 사기극 제1막과 제2막 공연]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3-10-11 (금) 08:55 조회 : 4152
*42[지상 최대의 사기극 제1막과 제2막 공연]


* 참고; 시간이 없는 독자는 저 밑으로 가서 =====선 아래 <사기극 제1막>부터 읽어도 된다.


[근거 제1]--구약에서

예수교의 경전 구약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은 누구 누구일까? 그것은 신약에 인용된 횟수를 보면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1) 모세---------80 회
2) 아브라함-----73 회
3) 다윗---------59 회
4) 엘리야-------30 회 
이상은 구약에 등장하는 인물 중, 신약에 가장 많이 인용된 횟수 순으로 4 명의 인물을 나열한 것이다. 
모세, 아브라함, 다윗 그리고 엘리야, 이렇게 4 사람은 예수교(바이블) 입장에서는 명실 공히 대단히 위대한 인물들이다.
  
* 아브라함은 여호와에게 바칠 제물이라면 자식까지도 희생시킬 정도로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믿음의 조상>으로 칭송되기도 하고, 여호와의 사랑을 듬뿍 받던 대단히 유명한 사람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모세가 꾸면 낸 가짜요 인류 역사 속에 존재한 적이 없는 허구 인물일 뿐이다. 모세조차도 허구이므로 아브라함은 허구가 꾸며 낸 허구 중의 허구라 하겠다.

* 다윗은 히브리 역사에서 최고 최대의 명군(名君)으로 알려져 있다. 
예수의 혈통도 다윗과 연결시켜 놓고 있으며, 예수교의 천당도 다윗의 히브리 왕국과 연결시켜 놓은 것으로 보아도 다윗은 예수(교)와 떼어 놓을 수 없는 대단히 중요한 상징적 인물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 학자들도 자기네 역사 속에 다윗의 시대는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위의 4 명의 인물 중, 아브라함과 다윗을 일단 제외하기로 한다. 
실제로, 예수교 입장에서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역시 <모세>와 <엘리야>이다. 물론, 모세와 엘리야도 실존하지 않았던 허구적 인물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근거 제2]--신약에서

신약에 등장하여 활동했던 사람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은 누구 누구일까? 따져 볼 것도 없이 예수와 그 제자 12 명 그리고, (세례)요한과 바울, 이렇게 15 명 정도가 가장 중요한 인물들일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선별하면, 예수, 세례요한, 베드로 그리고 바울, 이렇게 4 명이 중추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의 사기극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바울 이름은 제외된다.


[주요 cast(배역) 소개]

<사기극 제1막> 주연------------예수, (세례)요한, 여호와(효과음).
                     엑스트라(extra)---수 많은 군중.

<사기극 제2막> 주연------------예수, 베드로, 여호와(효과음), 모세(환상?), 엘리야(환상?).
                     엑스트라(extra)---예수의 12 제자 중 야고보와 (사도)요한, 이렇게 2 명.

(1) [모세]
[신(神)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또는 예수쟁이)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신(神)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또는 예수쟁이)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신 곧 아브라함의 신, 이삭의 신, 야곱의 신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출애굽기 3; 14~15) 

천지를 창조한 전지전능한 신(神)이 처음으로 모세에게 나타나서 자기 이름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장면이다. 여호와라는 신을 처음으로 조작해(만들어) 낸 사람이 모세라는 말이다.
따라서, 모세가 없다면 여호와는 물론 그 외아들임을 자처하는 예수와 예수교 자체가 통째로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모세는 예수교의 근본이며, 몸통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엘리야]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젊은)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열왕기 17; 8~9)

여호와가 자기의 으뜸가는 앞잡이로 엘리야를 선택하여 임명하는 장면이다. 엘리야는 히브리(예수교)의 가장 위대하고, 가장 무서운 예언자라고 일컬어진다.
그런데, 엘리야로 하여금 구태여 젊은 과붓집에게 가서 3 년 여를 공궤(윗 사람에게 음식을 드림) 받도록 각본을 짜는 여호와의 섭리(?)는 재미있다. 
어쨌든, 엘리야는 과붓집에 머무는 3 년 동안 한줌의 보리가루와 조금 담긴 기름병을 마르지 않게 하고, 죽은 과부의 아들을 다시 살려내는 기적질을 펼친다. 여호와(예수)의 앞잡이는 이런 짓을 하게 되어 있다.

엘리야(그 제자 엘리사도 포함해서)의 기적질 활동은 오밀조밀 엄청나게 많다. 나중에 예수는 이 엘리야(엘리사)의 기적질을 모방해서 흉내를 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장구한 긴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엘리야는 모세와 함께 히브리 사회의 양대 산맥이었다.
복잡한 교리에 속하므로 더 긴 해설은 여기에서 생략하겠지만, 엘리야는 예수 시대의 (세례)요한과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결론에 속하는 말이지만, "여호와는 모세가 만들어 낸 신"이고, "예수는 엘리야(세례요한)가 만들어 낸 구세주"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 정확한 말이다.


(3) [(세례)요한]=엘리야?
[여호와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요한)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예수)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그(요한)는 이 빛(예수)이 아니요, 이 빛(예수)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요한 1; 6~8)

(세례)요한은 예수를 증거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보내진 선구자라고 한단다. (세례)요한은 예수에게 세례를 베풀기도 한다. 그래서, (세례)요한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어쨌든, 예수를 증거하기 위하여 여호와로부터 파송된 자가 요한이라니까, 요한보다 예수에 대해서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독자들은 이 부분을 잊지 말고 이 글이 끝날 때까지 꼭 기억해 두기 바란다.)
어쨌든, 여호와를 모세가 만들어 낸 것처럼 예수는 (세례)요한이 만들어 낸 셈이다. 이것이 사기극의 골짜라고 할 수 있겠다.
[예수의 증언에 의하면, (세례)요한=엘리야이다. 여기서는 그 내막을 생략하기로 한다.]


(4) [예수와 그 제자 12 명]
예수와 그 제자 12 명에 대한 해설은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

<사기극 제1막>

[Narration(설명)]

(세례)요한은 예수가 여호와의 아들임을 증거하기 위해서 여호와로부터 인간 세상에 파송된 자라고 했다. 따라서, (세례)요한은 예수의 신분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아주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독자들은 이 사실을 잊지 말고 반드시 기억해 두기 바란다. 그런 다음, 예수와 (세례)요한이 무대에서 연출하는(짜고 치는 고우스톱?) 장면을 감상해 보기 바란다.


(1) [여호와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요한)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예수)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요한 1;6~7)

(2)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여호와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 이(여호와)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구세주)인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여호와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였노라." 하니라.]

(요한 1;29~34)


(세례)요한은 세상으로 파송되면서 다음과 같은 여호와의 명령을 하달 받았다고 한다.
"(세례)요한아, 네가 인간 세상에 나가면, 너는 누군가의 머리에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성령이 임하는 자가 바로 내 아들 예수이니라. 너는 그에게 물로 세례를 베품과 동시에 그가 여호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세상(많은 사람)에 큰 소리로 선포하도록 하라. 알겠느냐?"
마침내, 요단강에서 예수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알아 본 (세례)요한은 예수를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대신 지고 가는 여호와의 어린 양이로다."하고 군중을 향하여 예수의 신분(전지전능한 신 여호와의 아들)을 큰 소리로 외쳐 선포했다는 것이다.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로부터 직접 하달 받은 사명을 수행한 것이므로  (세례)요한의 선포는 터럭만큼의 오차도 없는 명명백백한 사실(진리)일 것이다.

(세례)요한이 군중 앞에서 예수를 향하여 "여호와의 아들이다."라고 선포가 있은 후,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 벌어지는 바이블의 다음 장면을 보기로 하자.


(3) [(세례)요한이 옥(獄)에서 그리스도(예수)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구세주)가 당신이오니이까?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세례요한의 제자들)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6)


시간이 한참 지나갔다. 선지자(훌륭한 사람?) 노릇을 해야 했던 (세례)요한은 헤롯왕의 불륜을 비난한 죄목으로 옥에 갇히게 되었다고 한다. (자세한 경위는 생략한다.) 
감옥에 들어앉아서 곰곰이 생각할수록 (세례)요한은 자기가 "여호와의 아들이다."라고 선포해 준 예수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 앞에서 선지자 흉내로 큰 소리를 쳤지만, (세례)요한도 사람인 이상 예수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의 목사(신부)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자기도 전혀 모르는 천당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짓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사기꾼 행각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세례)요한은 감옥으로 면회를 온 자기 제자들을 시켜 예수에게 실토를 하고 있다. "당신은 진짜 구세주입니까? 아니면, 다른 진짜를 더 기다려야 합니까?"
이 때, 예수는 비유적으로 대답하고 있다. "각종 질병을 고쳐 주고, 죽은 사람을 살려 내는 것을 보고도 모르겠느냐?" 예수는 자기가 진짜 여호와의 아들이며 구세주라고 간접적으로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날의 교회와 기도원이란 곳에서 벌이는 혹세무민질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사기꾼 행각이다. 예수교의 구석구석에서는 각종 기적질을 시행하면서 예수와 여호와를 전도한다고 하지 않던가? 
이렇게 신의 이름을 팔아 사기질 행각을 벌이면, 재물과 음탕한 짓을 할 기회는 저절로(부수적으로) 굴러 들어오게 되어 있다. 이것이 예수교의 처음이요 마지막이며, 예수교의 모든 것이다.


[결론=사기극 제1막 관람 후기]

(세례)요한은 예수가 여호와의 아들이며,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라는 사실을 여러 사람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여호와로부터 파송된 자라고 되어있다.
마침내, (세례)요한은 군중 앞에서 예수를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여호와의 어린 양이로다."하고 선포함으로써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 한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세례)요한은 다음과 같은 말을 실토한다. "오실 그 이(구세주)가 당신이오니이까? 아니면,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하고. (세례)요한은 예수에 대하여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는 말이다.
이런 것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표현해서 "사기극"이라고 하는 것이다. 동시에 바이블 내용과 예수교의 모든 것도 100 % 사기 행각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

<사기극 제2막>

[Narration(설명)]

모세는 예수가 태어나기 1,300 년 전에 이미 죽은 사람이고, 엘리야는 예수가 태어나기 800 년 전에 죽은 사람이다. 그런데, 모세와 엘리야는 종교적으로 히브리 사회에 너무도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런 커다란 덩치를 무시하고서는 종교적으로 승산이 없음을 예수 일당은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1,300 년 또는 800 년 전에 이미 죽은 모세와 엘리야를 불러다 배석시킨 자리에서 예수는 자신이 여호와의 아들임을 세상에 발표하는 쇼를 연출하게 된다.
그러나, 모세와 엘리야는 실존 인물도 아니며, 실존 인물이라 하더라도 이미 죽어서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죽은 2 사람을 불러다 배석시켰다는 말도 언어도단일 수밖에 없는 사기극일 뿐이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1) 베드로와 2) 야고보와 3)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 되사, 그(예수)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3)을 짓되, 하나는 주(主=예수)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예수)는 내(여호와)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마태 17; 1~8) 


어느 날, 예수가 12 명의 제장 중 대표격인 베드로, 요한, 야고보, 이렇게 3 명만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갔었다고 한다. 이 산 꼭대기에서 예수가 1,300 년 전에 죽은 모세와 800 년 전에 죽은 엘리야를 불러다 놓고는 이런 저런 담론을 했다는 것이다. 
이 때, 홀연히 빛난 구름 속에서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의 옥음이 낭랑하게 들렸다고 한다. "여봐라. 예수는 내(여호와)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니라. 그러니, 너희는 내 아들되는 예수의 말을 고분고분 따라야 되느니라. 알겠느냐?"라고.
상황이 이러했으니, 예수를 대동했던 3 명의 제자들이 기절초풍을 했을 것은 당연지사! 아멩 할렐루야! ㅎㅎ...그러나, 사기행각을 이렇게까지 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결론=사기극 제2막 관람 후기]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 모세와 엘리야는 종교적으로 너무도 커다란 양대 산맥이었다. 따라서, 예수 일당은 모세와 엘리야를 등지고서는 어떤 승산도 없음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에 착안된 것이 이미 죽어서 없어진 모세와 엘리야를 배석시킨 자리에서 "예수를 여호와의 아들로 승격시키는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렇게까지 대범하게(?) 사기를 칠 수도 있는 것이구나 하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리 먹고 살기가 힘들기로서니, 이렇게까지 뻔뻔하게 얼굴 색 하나 변함없이 사기를 친다는 말인가?

하기사, 오늘 날도 예수교의 목사(모든 예수쟁이들 포함)들이 벌이는 쇼를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조금도 없다.
그리고, 이왕에 사기를 칠 것이면, 아주 커다란 것으로 한 방을 터치는 게 중요하다. 병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고, 방언을 하고, 등등으로 큼직큼직하게 놀아야 효과가 크다.
상품도 고가(高價) 정책을 써서 성공하는 사례가 많듯, 예수교도 예수 때부터 벌써 고가정책(아주 큰 덩치로 사기치기질)의 묘미를 알고 있었다고나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종교의 혹세무민이란 것이 이렇게까지 얼굴에다 철판을 깔아야 되는 뻔뻔함이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두렵기까지 하다. 
신(神)의 이름을 팔아서 사기를 치는 인간보다 더 뻔뻔하고 간덩이가 부어 터진 망나니 인간말종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

이상으로, 우리는 2 편의 사기극을 관람했다. 예수교의 경전이라는 바이블 내용은 사기극(사기행각) 각본임을 알 수 있다.
아니, 인류 역사 속에서 바이블보다 더 큰 사기극 대본은 없을 것이다. 예수교의 모든 것이 허구, 궤변, 모순이요, 인류의 등가죽을 벗겨 먹기로 작정한 잔인하고도 악독한 혹세무민 집단이라는 말이다.


* 여호와(예수)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기도 하고, 사명을 직접 하달 받기라도 한 것처럼 떠벌이는 바이블 내용(사기극)이나, 현재의 예수교 속에서 벌어지는 사기극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은 더러운 시궁창의 극치 그대로이다. 
그러고 보니, 인류 사회 속에서 종교 특히 예수교의 사기 행각보다 더 큰 사기 행각은 없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전지전능, 천당, 용서, 사랑, 구원 등등의 달콤한 감언이설을 앞세우고서 벌이는 예수교의 사기 행각!
이만하면, 발본색원하여 퇴치시켜야 할 인류의 가장 큰 적(敵 또는 賊) 제1호가 바로 예수교라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3-10-11 (금) 09:06
[예수교의 원죄설과 대속설을 논함]

예수교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이 되는 교리는 뭐니뭐니 해도 속량(贖良) 또는 대속(代贖)에 대한 궤변일 것이다.
속량은 몸값을 받고 노비의 신분을 풀어 주어서 양민이 되게 하던 일을 말한다. 그리고, 대속은 남의 죄를 대신하여 당하거나 지은 죄를 물건이나 다른 공로 따위로 비겨 없애 줌을 뜻한다.
그런데, 바이블(예수교)에서는 속량과 대속을 한 데 묶어서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포로나 노예를 댓가를 주고 사서 자유롭게 해 주거나, 지옥으로 갈 죄를 탕감하여 구원해 주겠다는 뜻이다.

잃어 버렸거나 속박된 자유를 찾아 주기 위한 속량(대속)물에는 금전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으로 대신 지불해야 된다고 한다.
희생제물(犧牲祭物)이란 어휘의 희생(犧牲)에 牛(소우)자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대속물로는 소나 양 같은 동물의 생명으로 대신하여 지불할 수 있음도 알 수 있다.
그러면, 여호와는 인간을 속량(대속)해 주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동물의 고기를 요구하는지 그 예를 하나만 보기로 하자.

[솔로몬이 화목제(제사 종류)의 희생을 드렸으니,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22,000 이요, 양이 120,000 이라...]

(열왕기상 8; 63)

히브리 왕국의 제3대 왕 솔로몬은 여호와의 집을 짓는데 7 년, 궁궐을 짓는데 13 년, 도합 20 년의 토목 공사를 끝내고, 여호와에게 14 일 동안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제사에서 여호와에게 제물로 바친 소가 22,000 마리, 양이 120,000 마리, 도합 142,000 마리였다고 한다. 여호와는 14 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자그마치 142,000 마리의 소와 양고기를 쳐 잡수신 것이었던 것이었다.
여호와의 밥통이 얼마나 큰가를 짐작할 수도 있고, 육식을 무척 좋아하는 신이라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천지 창조 직후, 여호와는 <가인>의 곡물 제사는 거절하고 <아벨>의 육류 제사만 받아들였었다. 이에 분개한 형 <가인>은  동생 <아벨>을 쳐 죽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그런데도, 여호와는 편식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초식보다는 계속해서 육식을 무척 좋아한다. 어쨌든, 예수교의 신(神) 여호와는 제물(祭物)로 곡물과 동물은 물론, 사람의 고기(생명)도 매우 즐겨 쳐 잡수신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고기(생명)도 즐겨 쳐 잡수시는 장면을 바이블에서 찾아 보기로 하자.

[대저 나는 여호와 네 신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히브리 족속)의 속량물로, 구스(에디오피아)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이사야 43; 3~4)

여호와는 히브리(또는 예수쟁이) 족속의 거룩한 신이라고 한다. 이 신은 히브리 족속을 속량(대속)하기 위해서 애굽과 에디오피아와 스바 사람들의 생명을 대속물로 죽여 버렸다는 뜻이다.
히브리 족속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기 위해서 그 댓가로 다른 민족의 고기(생명)를 희생제물로 삼아 그들의 고기를 즐겨 잡수셨다는 뜻이다.

위의 바이블 구절을 신학자 <J. Burnier>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그는 바이블 백과사전도 편찬한 소위 유명한 신학자이다.
"본문에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속량물로 주셨다(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구절은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사야(여호와의 선지자)는 단순히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구원과 그리고 속량의 상징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뿐이다..."
신학자 <J. Burnier>감각에도 여호와의 잡놈 짓, 망나니 짓을 실감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위와 같이 <상징>이니, 어쩌느니,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느니 하며 두리뭉실 얼버무리게 됐으리라.
평생 동안 바이블을 연구하고, 예수교 속에서 밥을 먹고 살아 가는 방법 밖에 다른 재주가 없는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변명이었을 것이다.
 
이상에서, 예로 든 곡물, 동물 고기 및 사람의 고기는 오직 히브리 족속을 속량(대속)하여 구원하려는 희생 제물이었다. 물론, 이 제물들을 여호와께서 모두 쳐 잡수셨을 것이다. 제물이란 신(神)의 식량일 테니까 말이다.   
바이블(예수교)에서는 마침내 "여호와의 독생자 예수가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제물로 대신 죽여졌다."는 교리를 만들어 내게 된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는 짓이 어떻게 해서 다른 사람의 죄를 갚아 주는 일이 되는지는 이해가 되지도 않지만,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작자가 왜 그렇게 복잡하고 이해되지도 않는 방법으로 세상을 이끌어 갈까?

또, 죽어서 끝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서 먼저보다 더 멋진(?) 삶을 향유하는 것도 죽음이라고 하는가?
예수는 다시 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우편에 앉아서 세상에 군림하여 영광을 만끽하고 있대서 하는 말이다.
그리고, 제물은 신(神)께서 쳐 잡수시는데에 의의가 있는 것일 게다. 그런데, 제물로 바쳐진 예수의 고기를 여호와는 먹지 않은 모양이다.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예수의 고기(몸뚱이)를 여호와가 먹어 없애버리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닐까? 글쎄, 도통 어려운 내용의 문제라서 자세하게는 모르겠다. 역시, 신의 섭리는 인간이 가늠하기가 어렵도다.


그러나 저러나, 여기 쯤 해서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호와(예수) 쪽에서 사람을 향하여
"용서해 주겠다."
"속량해 주겠다."
"대속해 주겠다."
"구원해 주겠다." 등등, 이런 말들을 하려면, 사람 쪽에서 여호와(예수)에게 그에 상당하는 범죄를 저질렀어야 될 것이다.
그러나, 바이블 전체를 아무리 뒤져봐도 또, 인류의 역사를 아무리 뒤져봐도, 사람 쪽에서 여호와(예수)에게 피해(被害)나 위해(危害 )를 준 사실은 어디에도 없다.

범죄란 상대에게 어떤 종류의 피해나 위해를 주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일컬음이다. 따라서, 상대에게 피해나 위해를 주지 않는 것이라면, 사람의 말과 행동 중에 어떤 것이라도 범죄가 성립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거늘, 인간의 죄를 탕감해 주겠다느니, 대속해 주겠다느니, 천당으로 보내 주겠다느니 하며 추근추근 접근해 오는 여호와(예수)의 그 찰거머리 같은 행패를 우리 인간은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 것일까?
도대체, 우리 인간이 여호와(예수)로부터 용서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죄목이 무엇일까?

이 죄목을 바이블에서 찾아 보기로 해 보자.

[여호와라는 신이 그 사람(아담과 하와)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라는 신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 15~17)

"각종 나무의 열매는 마음대로 먹어도 좋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라는 것도 있는가?
그렇다면, 마음씨 착하게 만드는 열매, 사기꾼 기질로 바뀌게 하는 열매, 덮어 놓고 예수을 믿을 수 있는 멍텅구리를 만드는 열매 등등, 에덴동산에는 별별 종류의 나무 열매들도 모두 있어야 될 것이다. ㅎㅎ...아멩! 
그런데, 이상도 하다. 다른 모든 종류의 열매를 먹어도 된다면서, 오직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만 먹지 말라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
인간 쪽에서 선악과를 따 먹으면, 여호와(예수)의 다리가 부러진다던지, 애꾸가 된다던지 또는 재산상의 어떤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던지...이러한 일이 발생하기라도 하는가? 

하다 못해,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땅깨비(메뚜기)의 다리가 부러진다거나, 여우의 눈이 멀기라도 하는가?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소나무가 말라 죽거나, 여호와(예수)의 몸뚱이가 근질거리기라도 하는가?
그런데, 어떻게 해서 선악과를 따먹는 일이 죄가 되는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여호와가 에덴동산에다 처음으로 만들어 놓은 인간(아담과 하와)은 몇 살 짜리들이었을까?
갖 태어난 아기 모습이었을까? 1 살 미만의 유아였을까? 탁아소나 유치원생 정도의 연령이었을까? 아니면, 소년이나 청년이었을까, 장년이나 늙은이 모습이었을까?

선악과를 따 먹지 않았다면, 인간은 에덴동산 안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되어 있었다. 이럴 경우, 인간은 몇 살 짜리 모습으로 영원히 살아 가도록 되어 있었을까?
아기 모습으로 영원히 살아가는가? 청소년 모습으로 영원히 사는가? 아니면, 늙은이 모습으로 영원히 살아가게 되는가?
좋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기 모습도 됐다가, 청소년 모습도 됐다가, 노장년도 됐다가, 다시 청소년이 됐다가...이렇게 각 층의 연령대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영생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러나, 돌대가리였던 여호와가 이렇게 재미있는(?) 상상까지 해 봤을 리는 없었을 것 같다.

결국, "인간은 그 놈의 선악과를 따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영생 복락을 누리지 못하고 죽게 됐다고 한다. 이것을 <원죄>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에, 사랑이 많은 여호와는 자기 아들 <예수>를 대속물로 희생시켜서 인간을 구원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상의 <궤변>이 예수교의 근본 교리라고 할 수 있는 <원죄>와 <대속>의 개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궤변은 어디까지나 궤변일 뿐이며, 바이블(예수교)의 어떤 것에서도 제대로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쓰거든, 떫지나 말 것이지!"라는 우스개 말이 있다. "허구, 모순, 궤변이거든, 악독하지나 말 일이다." 예수교(바이블)를 두고서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이다.

결론 삼아 여담을 한 가지만 소개하려고 한다.
몸이 아플 때, 치료약은 식전에 복용할 수도 있고 식후에 복용할 수도 있다.
식전에 복용해야 약효가 더 좋은 약도 있고, 식후에 복용해야 부작용이 덜한 약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식전에 복용을 하던 식후에 복용을 하던 치료약의 효과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선악과(죽는 약)를 먹었더라도, 생명과(영생약)를 먹기만 하면 죽지 않고 영생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생명과(영생약)를 먼저 먹고, 나중에 선악과(죽는 약)를 먹어도 죽지 않고 영생하게 될 것이다. 치료약을 식전에 복용하거나 식후에 복용하거나 마찬 가지 결과에 도달함과 같은 의미이다.

바이블을 보자.

[여호와라는 신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라는 신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

(창세기 3; 22~23)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서 여호와처럼 선악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그 <선악을 아는 지능>은 여호와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 영역(권한)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언감생심(焉敢生心=감히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없음), 인간이 여호와의 권한을 침범했던 것이다. 그러자, 여호와들(여호와는 여러 명이었던 것 같음)이 이구동성으로 열을 내고 있다.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인간 쪽에서 선악과를 먹고 죽게 됐더라도, 생명과만 따먹게 되면 죽지 않고 영생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영생과를 따먹지 못하게 하려고, 에덴동산에서 사람을 쫓아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여호와들의 돌대가리만이 떠들 수 있는 말이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이미 <생명과>를 먹어도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서 생명과는 인간에게 먹이로 허락된 가장 아름다운 열매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는 생명과를 너무도 많이 먹었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더라도 죽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 안에서 몇 달 또는 몇 년을 살다가 쫓겨났을까? 4 시간을 살다가 쫓겨났어도, 에덴동산 중앙에 가장 멋지게 서 있던 생명나무 열매부터 먹었을 것이 분명하다. 사람의 밥통은 4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프니까...
하물며, 4 시간 만에 쫓겨나기야 했겠는가? 적어도 몇 년 또는 몇 십 년을 그 동산에서 살았을 것 아닌가?
역시, 바이블 내용(예수교의 모든 것)은 여호와나 예수 같은 돌대가리들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궤변, 모순, 허구로 엮어진 악독하고도 수준 낮은 저질의 사기극일 뿐이다.
제삼자 2013-10-11 (금) 09:10
[제주도 삼다수+참기름=고소한 휘발유]


예수교의 신 여호와(예수)는 전지전능해서 그의 모든 것은 영원 불변이라고 한다. 바이블 속에서 그것을 누누히 역설한다. 그러나, 여호와(예수)는 자기가 해 놓은 말(약속)이나 행동에 대하여 후회와 한탄을 반복하면서, 그것을 뒤집고 변개하기를 식은 죽 먹듯한다. 
여호와(예수)의 언행 즉, 바이블 내용이란 것이 자연 질서(법칙)를 전혀 모르던 미개인이 떠들어 놓은 말이므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영원히 불변의 진리여야 할 여호와(예수)의 언행(발자취, 유적 등 포함해서) 중에 폐허가 되지 않은 모습도 없고, 변개되거나 없어지지 않은 것도 없다.
   
(1) [신(여호와)께서는 약속의 상속자(예수쟁이)들에게 자신의 뜻이 불변(不變)함을 명확히 보여 주시려고 맹세로 보증하셨습니다.] (히브리서 6; 17)-우리말성경

(2) [그래서, 신(여호와)께서는 그 약속을 상속받는 사람(예수쟁이)들에게 여호와의 뜻이 불변(不變)함을 더욱 밝게 나타내 보이시려고, 맹세로써 보증해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6; 17)-표준새번역

(3) [내(예수)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世代)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말세)이 다 이루어지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예수)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태 24;34~35)-개역


여호와(예수)의 말이나 약속 또는 해 놓은 일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가 된다는 내용의 기록이다. 천지(우주?)보다도 더 크고 단단하고 무거울 만큼 여호와(예수)의 언행은 영원 불변이라고 열을 내며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지적한대로 예수(교)의  말(약속) 과 유물(유적) 중에 변하지 않은 것은 단 한 가지도 없고, 폐허가 되지 않은 것도 단 한 가지가 없다.
이 우주의 모든 것은 쉴 사이 없이 변하고, 마침내 한 가지도 남김 없이 없어진(소멸된)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하는 얼치기 바보 멍텅구리가 다름 아닌 예수교의 신 여호와(예수)였던 것이다.
영생, 불변, 절대, 사랑은 사기꾼(여호와 또는 예수)의 4 대 미끼(신기루)로서 여기에 걸려든 멀대들이 바로 예수쟁이들이다.


참고로, 불교의 입장(교리)에서는 예수교와는 꽤나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불교의 기준이 되는 교리에는 삼법인(三法印)이란 것이 있다고 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
이것을 삼법인(三法印)이라고 하는데, 불교의 기준이 되는 3가지의 법(진리)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법인(法印)이란 <기준> <표식> <특징> <확인>을 의미하는 뜻이라고 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우주의 모든 사물은 늘 돌고 변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제법무아(諸法無我)-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인연으로 생겼으며, 변하지 않는 참다운 자아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체개고(一切皆苦)-사람이 무상(無常)함과 무아(無我)를 깨닫지 못하고, 영생 복락에 집착하여 온갖 고통에 빠져 있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통 큰(?) 목사(신부)와 통달한 중들 중에는 두 종교가 공존하자며 손을 맞잡았다고 한다. 영생 복락과 제행 무상이 어깨동무를 한 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쉬운 말로 물과 기름이라는 말도 있지만. 
암! 제주도 삼다수에다 참기름을 섞어 놓고 한참을 흔들다 보면, 고소한 휘발유가 만들어질지도 모르지 뭐...망둥이가 뛰면 꼴뚜기도 뒤어야지 뭐...ㅎㅎ... 

* 소가 뒷걸음질치다가 쥐를 잡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불교의 문외한이 종교에 관한 개똥철학을 떠들어대다가 2 단 옆차기질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ㅎㅎ...



[팔불출(八不出)]

* 우스갯말인지 진담인지는 모르겠으나, <팔불출>이란 것이 있다고 한다.
   제 자랑하는 녀석, 제 마누라 자랑하는 녀석, 제 자식 자랑하는 녀석,...이런 덜 떨어진 멀대를 지칭하는 말이 팔불출인 모양이다.


<팔불출 이야기 제 1>

40여 년 전에 있었던 실화이다. 당시, 甲은 미국의 OO대학교에서 종교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의 어느 신비주의 목사의 업적(?)에 대한 연구(?)로 받은 박사 학위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甲은 조국 한국으로 돌아올 때, 자기 딴에는 목표를 달성하고 금의환향하는 큼직한 자랑으로 여겨졌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저 멀리 시골에 살고 있는 자기 가족(부모, 형제, 처자식) 외에는 그 박사(학위)를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사실상, 남의 일에 누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함께 기뻐해 주기도 하고 칭송도 해주겠는가?

甲은 마침내 OO일보사를 찾았다. 자기의 <금의환향>을 신문에서 대서특필로 다루어주었으면 싶었던 게다. 그러나, 그 값싼 종교철학 박사 쯤 되는 것을 대서특필해 줄 신문사가 어디에 있겠는가? 역시, 언론기관에서도 그 종교철학 박사를 몰라 보기는 마찬가지였다.
甲은 신문사의 급사(잔심부름을 위해 고용된 사람) 쯤으로 보이는 아가씨에게 말을 걸었다. 묵직해 뵈는 어른에게는 감히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게다.

"아가씨, 나 미국에서 박사학위 받은 OOO이라는 사람이요. 편집국장님 좀 만나 볼까해서 왔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국장님이 자리에 계신가 봐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한참 있다가 돌아온 아가씨가 甲에게 말을 전했다.
"박사님, 국장님께서 들어오시랍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甲은 아가씨를 따라가면서 말했다. "아니, 아가씨! 내가 박사인 걸 어떻게 알았지? 신기하네."

독자들도 아는 바와 같이 조금 전에 甲 자신이 제 입으로 아가씨에게 말해주지 않았던가?
"아가씨, 나 미국에서 박사학위 받은 OOO이라는 사람이요."하고 말이다.
甲은 그 후로도 줄기차게 "나 미국에서 박사학위 받은 OOO입니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고는 또 말하곤 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내가 박사인 걸 알았지?..."
다음 날, 그 일간지에는 가로 세로 각각 5 cm 쯤 되는 甲에 대한 기사가 사진 없이 간단하게 실렸있었다.


<팔불출 이야기 제 2>

(1) [내가 바로(애굽 왕)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출애굽기 14; 18) 

*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애굽 장병(병거와 마병)을 모두 바다 밑으로 쳐 넣어 익사시키겠다는 악담.

(2)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 8)

(3)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3 대에까지 갚는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여 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 후손 수 1,000 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

(출애굽기 20; 3~6)

(4) [여호와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 3; 16)

위의 (1) (2) (3) (4)는 여호와(예수)가 자기를 제발 알아 달라고 세상을 향해서 떼를 쓰는 장면들이다. 아니, 떼를 쓴다기보다는 발악을 하기도 하고, 갖은 감언이설로 사탕발림도 했다가 공갈 협박을 해대기도 한다.
전지전능하다는 녀석이 그렇게도 방법이 없어서 저렇게 지랄발광을 해야만 되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지랄발광인지 제 자랑인지를 제 입이나 제 손발로 하지를 못하고, 왜 남(모세, 엘리야, 베드로, 바울 그리고 목사나 신부 등등)의 손발과 남의 입을 통해서 해야만 되는지를 도무지 모르겠다.

어쨌든, 제 자랑을 하는 녀석을 팔불출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어떤가? 여호와(예수)는 팔불출에 포함되는가? 안 되는가?
여호와(예수)의 하는 짓과 종교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甲이 하는 짓에 다른 점이 있을까?
甲과 여호와(예수)의 하는 짓이 어쩌면 저리도 "형님 먼저, 아우 먼저"하면서 똥창이 척척 맞아 떨어지는지...ㅎㅎ...아멩 할렐루야다!
아니지. 甲이야 무능한 인간 주제니까 팔불출 노릇을 하게 됐지만, 소위 전지전능하다는 녀석들(예수와 여호와)이 돼 가지고 자기를 알아 달라고 생떼를 쓰기도 하고, 여의치 않자 공갈 협박과 폭력을 휘두르는 꼬락서니는 팔불출 정도로는 그 명칭이 약하다. 참으로 못난 녀석들이요, 구제 불능의 불쌍한 녀석들이로다.


<팔불출 이야기 제 3>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여호와(예수)는 당신을 사랑하신다.]
[자연재해는 여호와(예수)를 믿지 않아서 받는 벌이다.]
[구미 각국들은 예수 믿어서 잘 살고, 남부아시아 및 동남아시아는 예수를 믿지 않아서 못 산다.]
  

이것은 파불출이라기 보다는 "나는 실질적인 바보 멍텅구리이다."를 표방하는 예수쟁이들의 멀대 짓이 분명하다.
아니, 자신이 지금 악담질과 저주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감지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바보 멍텅구리하고도 다른 그 무엇일 것도 같다.
글쎄, 그 다른 무엇을 무엇인지 아는 일은 너무도 어려운 문제라서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예수) 밖에는 모르겠지?
하기사, 내(제삼자)가 나(제삼자)도 제대로 모르는 판에 어떻게 예수쟁이들의 그 오묘한 멍텅구리 기질(타고난 기품과 성질)을 알 수 있겠는가! 


* 참고; 단돈 100 원이라도 자기에게 손실이 되는 것이라면, 몸을 사리게 되어 있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또, 남 잘 되는 꼴을 보아주지 못하는 짓도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게다. 
          그런데, 천당(우주보다도 크고 값진 것)을 다른 사람에 넘겨 주려고 불철주야 애쓰는 예수쟁이들!
          이렇게 돈과 명예와 권력보다 훨씬 좋은 것(천당)을 남에게 거져 주려고 수고하는 예수쟁이들!
          역시, "예수쟁이들의 인품은 비단결보다도 곱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그지? 아멩 할렐루~야!



[포괄적으로 생각하고 포괄적으로 살기]?


포괄(包括); 일정한 범위나 한계 안에 모두 휩싸서 하나로 묶이다.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일정한 범위나 한계 안에 모두 휩싸서 하나로 묶음.
포괄적(包括的; 어떤 사물이나 현상 따위를 온통 휩싸서 한 테두리에 넣는 것.


몇 년 전부터, 정치, 경제, 사회, 법조, 문화, 외교 등등, 모든 분야에서는 <포괄적>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쏟아져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포괄적>이라는 단어를 포괄적으로 생각해 봤더니, 이 포괄적보다 더 멋지고 훌륭하게 포괄적으로 휘뚜루마뚜루 잘 어울리는 그런 단어는 달리 없을 것 같기도 하다고 포괄적으로 여겨졌다.
이 세상에 포괄적 범위(한계) 안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있을까? "포괄적으로 생각하면, 예수교, 이슬람교, 불교 등등, 모든 종교는 포괄적으로 생각하면 모두가 같은 것이다." 어때? 말 되지?

일제 때, 강제로 끌려간 처녀들이 위안부로 전락한 사실을 두고서 "자기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일본군을 따라다닌 것이다."라고, 말 그대로 망언을 쏟아 내는 일본 녀석들이 있다고 한다. 어때? 이것도 말 되잖아!
한 발 더나아가서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를 36 년간 착취한 사실은 결과적으로 한국이 근대화할 수 있는 기초를 닦아 준 좋은 일이었다."라는 식으로 망발을 떠들어대는 녀석들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일본 녀석들만이 아니라, 그 일본 녀석들이 떠들어 대는 망발에 동조하는 한국 사람들, 아니 한국 녀석들도 있다고 들린다. 그렇지만, 이 현상도 포괄적으로 생각하면 틀린 말이 아니잖아?

그렇다. 일본 녀석들의 망언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범위나 한계를 최대한으로 크고 넓게 잡아서 말마따나 <포괄적>으로 계산해 보면, 일본 녀석들의 망언이 망언이 아니라 아주 제격으로 어울리는 훌륭한 업적 같기도 하다.
상전(주인)의 몽둥이 매를 견디지 못한 종이 도망을 친 후,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노력한 덕택에 크게 출세를 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상전의 모진 몽둥이 매는 복수해야 할 원수가 아니라, 종으로 하여금 크게 출세할 수 있는 길을 터 준 은혜였다는 설화도 있지 않던가!

일제 침략은 한국 사람들로 하여금 일본을 물리치고 이겨야 되겠다는 경각심을 심어 주어 마침내 세계 10 대 경제대국을 건설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고마움이기도 하다.
위안부를 상대로 사과하기보다는 모르쇠로 버티기도 하고, 심지어는 능멸 이상의 망언을 쏟아내는 짓은 결과적으로  한국 사람(특히, 강제로 위안부가 됐던 장본인)들에게 분개심을 촉발시켜 한국에 어떤 더 큰 효과를 낳게 할 고마운 은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포괄적으로 생각하고 계산도 하면, 이 세상에 은혜롭거나 고맙지 않은 것은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 쯤에서 바이블을 보기로 한자. (예수쟁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바이블 구절이다.)


[여호와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예수)를 주셨으니, 이는 저(예수)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호와가 그 아들(예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요한 3; 16~17)

(1) "여호와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예수)를 주셨으니"
우리 인간은 여호와(神?)가 세상을 사랑하는지 어떤지를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은 신의 어떤 것도 감지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포괄적으로 생각해보면, 여호와(神?)가 존재한다는 것도 알 수 있고, 그 신이 인간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짐작할 수가 있다.
꼬치꼬치 캐묻고 따지면, 신(특히, 여호와=예수)은 없다는 판단이 나온다. 그러나, 꼬치꼬치 캐묻고 따지는 짓은 좀스러운 짓일 뿐, 포괄적인 말과 행동이 될 수가 없다.  
따라서, 예수교는 포괄적으로 넓게 그리고 적당히 얼버무리기를 잘 하는 멀대들이 드나들기 안성마춤인 아주 좋은 곳임을 알 수 있다.

(2) "이는 저(예수)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멸망해야 될 인간(세상의 모든 존재 포함해서)이 왜 태어나게 됐는지, 예수를 믿으면 왜 멸망하지 않게 되는지, 영생을 얻으면 구체적으로 우리 인간에게 무슨 이익이 되는지...등등, 우리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두리뭉수리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즉, 포괄적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좋자고 떠들어지는 말이구나 하고 짐작할 수가 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적당히 포괄적으로 생각해서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는 것이 득이 될 것 같다. 역시, 포괄적으로 생각해서 나쁠 것은 없을 것 같다. 아멩 할렐루야!

(3) "여호와가 그 아들(예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여호와(神)에게 아들이 있다는 말은 뭔 말이고,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낸다는 말은 뭔 소리이고, 세상을 심판하지 않는다는 소리는 뭔 말일까? 세상이 뭘 잘 못했기에 심판 운운하게 됐을까? 그리고,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말은 무슨 소리일까?
뭐가 그렇게 얼기설기 복잡하고 조건이 많을까? 어차피 인간 쪽에서는 어떻게 해 볼 수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형편인데 무슨 사설이 저렇게 복잡할까?

그런데, 그 복잡하고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하는 이유가 포괄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생각하고 포괄적으로 받아들여 보기만 해봐라. 어렵고 복잡할 것이 조금도 없다.
그렇다. 포괄적으로 생각하고 포괄적으로 움직여 보라. 어느 누구라도 예수쟁이 노릇을 하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쉽고 간단할 것이다. 포괄적으로 생각하면, 자기 집의 기둥뿌리를 뽑아다 교회에다 바치는 일도 아주 간단하게 처리될 수 있을 것이다. 아멩 할렐루야!

이상, 필자도 뭔 소리를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독자들이 포괄적으로 읽고 포괄적으로 해석하다 보면, 뭔 말인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건지 포괄적으로 알게 되리라 포괄적으로 믿는다.
ㅎㅎㅎ.....역시, 포괄적으로 생각하며 포괄적으로 살아가다 보면 웃을 일이 많아진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면서 실망하다]
 

남산 위에서 서울역 청사를 내려다 보면 성냥갑보다도 작게 보인다. 서울역으로 드나드는 기차(열차)는 성냥 개피만하게 보이기도 한다.

이 지구에는 지평선(地平線)과 수평선(水平線)이란 것이 있다. 요새는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운평선(雲平線)이란 것도 볼 수 있다?

미국 일리노이주에 샴페인(Champaign=땅이 평평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함)이라는 조그만 도시가 있다. 인구가 겨우 10 만이 조금 넘는 조그만 마을(?)이다. 여기에 명문 일리노이 주립 대학교(University of Illinois)가 자리잡고 있다.
이 곳 샴페인에서 동서남북 어느 쪽으로든 10 시간 이상 고속도로를 달려도 낮은 산조차도 볼 수 없는 지평선만 보게 된다.
땅이 어찌나 평평한지 높낮이(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가 겨우 12 feet 밖에 안 된다고 한다.

이런 미국의 일리노이 주를 출발하여 미시간주를 거쳐 국경을 넘어 캐나다의 Ontario주 쪽으로 한 없이 펼쳐지는 지평선만을 보며 질주 또 질주하는 통쾌한 여정이 이번의 여행이었다.
미국의 일리노이주---> 미시간주--->캐나다의 Ontario주---> 다시 미국의 뉴욕주---> 펜실바니아주---> 오하이오주---> 인디애나주--> 그리고 다시 일리노이주.

이들 중 가장 작은 주(실제로는 국가임)라고 하여도 남한만하고, 큰 것은 한반도의 2 배 이상되는 7 개의 주를 일주했지만 산(맥) 하나 없는 지평선만 보면서 달리고 또 달리는 그래서 가슴 속이 툭 터지는 통쾌(痛快)한 여행이었다.

어떤 사람은 미국이 50 개의 주로 이루어진 나라라고 알고 있다. 이 때, 주를 우리 한국의 경기도, 강원도 같은 행정구역 쯤으로 오해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미국은 50 개의 나라가 뭉쳐진 합중국(合衆國=聯)이다.

필자의 가족은 거의 30여 년 전 나이아가라 폭포를 미국 쪽에서 구경했었는데, 이번에는 캐나다 쪽에서 보기 위하여 떠난 여행이기도 했다.
30여년 전,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면서 필자는 몇 가지 두려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었다.
그 중 하나, 저 거대한 나이아가라 폭포가 저렇게 세차게 강 바닥을 침식해 가면 머지 않아 미대륙 전체가 모두 없어지지 않을까? 지구의 육지를 모두 바다 속으로 밀어 넣으면 지구 전체가 바다물로 덮인다고 하지 않던가?

나이아가라 폭포는 필자의 눈에 그렇게 두려울 정도의 거대함 자체였었다. 배(Maid of the Mist)를 타고 폭포 바로 밑에까지 가서 볼 때는 내 생애 최대의 두려움을 경험하는 기분이었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바로 곁에서 보면 그렇게 엄청난 위력이었던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필자의 가족 일행은 나이아가라 폭포가 정면으로 보이는 호텔(Hilton) 22 층 방에다 여정을 풀었다. 호텔에서 폭포까지는 눈 짐작으로 800 m 내지 1,000 m 쯤 되어 보였다.
그런데, 이 무슨 변괴인가? 미국 쪽 폭포는 한 뼘 정도로 보이고, 캐나다 쪽 폭포는 두 뼘 정도 될까 말까?
폭포의 높이는 가운데 손가락 한 마디 쯤 되어 보이는 게 아닌가!

나이아가라 폭포 중 미국 쪽의 것은 그 높이가 56 m, 폭이 335 m라고 한다. 그리고, 캐나다 쪽의 것은 그 높이가 54 m이고 폭이 610 m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을 1,000 쯤 떨어진 호텔 22 층 높이에서 볼 때, 겨우 한 뼘 내지 두 뼘 정도요 손가락 한 마디 될까 말까였을 뿐이었다.
저 폭포가 아무리 열심히 침식 작용을 하더라도 미대륙을 바다 밑으로 밀어 넣으려면 영원한 시간을 주어도 불가능 또 불가능일 것이다.

호텔의 동서남북(360 도)으로 뚫린 창문을 통하여 보이는 까마득한 지평선!
끝 없이 펼쳐지는 거대한 대륙의 까마득한 지평선 속에 파묻힌 나이아가라 폭포, 그것은 어린 아이 장난감도 못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음 날 배를 타고 폭포 밑에까지 접근했을 때도 시시하기만 했다.

사람은 자기 손으로 대궐이나 신전(神殿)을 웅장하게 지어 놓고는 그 속에 들어가서 그 거대함에 눌리어 종 노릇하기를 자처하게 된다.
나이아가라 폭포나 에베레스트산의 위력에 눌리어 신(神)을 찾아(만들어) 종 노릇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만 멀리서 보면, 대궐, 신전 그리고 나이아가라 폭포나 에베레스트산 따위는 어린 아이 장나감도 못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니, 지구를 통째로 수 백 수 천 또는 수 만 km 떨어진 곳에서 보면 그것은 조그만 공(또는 먼지)일 뿐이다.

신의 감각이 아닌 사람의 눈으로 보는데도 나이아가라 폭포는 어린 아이 장난감만도 못한 그런 것이었다.
그렇다. 세상의 어느 무엇이라도 조금만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별 것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가 있다. 
이번 여행은 말 그대로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면서 실망하다."였다. 




[4 박 5 일 여행을 다녀와서]

이번에는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의 호텔에다 근거지를 마련해 놓고, 캘리포니아주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Death Valley National Park>와 유타주 남쪽에 있는 <Zion National Park> 등, 2 곳을 돌아보는 여행이었다.
수 천 km 장거리 여행의 피곤을 줄이기 위하여 라스베가스의 유흥지에서 충분한 휴식을 즐길며 끝없이 펼쳐지는 긴장 또 긴장이 연속되는 사막의 장엄한 여행이었다.

첫날은 라스베가스에 일찍 도착하여 슬.롯.머신을 당겨도 보고, 뷔페 식당에 들러 포식하는 것으로 휴식을 취했다. 라스베가스는 이번이 세 번 째 여행이다.
첫 번 째는 우리 부부만의 여행 때의 일이었고, 두 번 째는 조카(동생의 아들) 내외를 구경시켜 주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번에는 둘째 딸 내외가 우리를 구경시켜 주는 여행이었다.
그 중에서도 이번 여행이 가장 편안하면서도 웅장한 경험을 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모두가 젊음을 만끽하고 있는 딸과 사위의 주도 면밀한 계획과 안내를 받으면서 단행된 여행이었기 때문이었다.

<Death Valley National Park>는 말 그대로 <죽음의 계곡>이었다.
우선, 이 국립공원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Tumble Weed(굴러다니는 잡초=서부극 영화의 음산한 장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만이 드문드문 있을 뿐인 사막 벌판을 100 도(화씨)가 넘는 땡볕 속을 5~6 시간 달려야 된다.
몇 시간은 끝이 보이지 않는 벌판을 달려야 되고, 몇 시간은 계속 구불구불 올라가는 길이 이어진다.

해발 1,010 m 고지에 다다르자 비로소 우리를 실은 자동차는 깎아지른 절벽을 내리 달리기 시작하게 된다. <죽음의 계곡>에 접근하려면 가장 낮은 고개가 바로 해발 1,010 m 고지를 넘어야 되는 것이다.
3,368 m나 되는 가장 높은 산(Telescope Peak=Panamint Range)을 필두로 2,000~3,000 m 높이의 산(맥)들로 빙 둘러싸인 깊은 계곡이 바로 <Death Valley National Park=죽음의 계곡>이었던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 <Badwater>라는 지명이 붙어 있었다. 거기에 <해발 -86 m>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바다(海面)보다 86 m나 낮은 땅이라는 말이다. 이 Badwater는 서반구에서 가장 낮은 땅(육지)이라고 한다.
그 바로 옆에 3,368 m 높이의 산이 있어서 총 높낮이가 3,454 m나 되어 지구 전체에서 땅의 높낮이가 가장 큰 곳이라고 한다.

2 만 년 전까지는 폭 10~18 km, 길이 145 km의 커다란 호수였었다고 한다. 남북으로 거의 400 리나 되던 거대한 호수였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 만 년 전에 그 물이 모두 말라버렸다고 한다.
기후 변화로 비가 전혀 오지 않는 땅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현재, 이 <죽음의 계곡>에 내리는 강우량은 연 평균 2 inch(약 5 cm)가 못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정확히 1.76 inch 내외)
옛날에 호수 물에 의하여 침식 작용으로 만들어진 지층 모습을 보여 주는 장소가 몇 군데 있었다. 계곡 중앙에는 풀 한 포기 없었다. 물론, 물기도 전혀 없었다. 하얀 소금적만 넓게 깔려 있었다. 명실 공히 <죽음의 계곡>이었다.

우리 가족을 실은 자동차는 <죽음의 계곡> 남쪽으로 넘어 들어가서 북쪽으로 넘어 나왔다. 그러니까 <죽음의 계곡> 안에서 장장 400 리 이상을 달린 셈이다.
소금적이 깔린 벌판에 잠시 내려 그 소금 적을 입에 넣어 보았다. 과연 짜디짠 소금이 분명했다.
중동의 팔레스타인 지방의 사해(Dead Sea)의 물이 말라버린다면 이 <Death Valley National Park>와 비슷해질 것이라고 상상해 봤다.
(참고; 사해의 수면은 해발 -420 m 이하이므로 만약 물이 말라버린다면, 죽음의 계곡보다 훨씬 깊은 골짜기가 될 것이다.)

<죽음의 계곡> 안에 <Furnance Creek>라는 조그만 오아시스가 있었다. 여기에서는 약간의 샘물이 솟아나고 있었다.
풀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으며, 여기에 음식점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늦은 점심을 간단히 먹을 수 있었다.

양쪽에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계곡 사이를 달리는 몇 시간 동안 우리 모두의 입에서는 <아!> 소리만 나왔다. 무엇이라고 설명해 낼 수 있는 재주가 내게는 없다. 차라리 꿀 먹은 벙어리 행세가 더 좋을지도 모를 일이다.
풀과 나무는 없었지만, 수 만 년 동안 갖가지로 침식을 당한 끝없이 높은 산들의 깎아지른 절벽 또는 단층들은 울긋불긋 마치 단풍이 만발한 숲 속을 달리는 듯했다.

계곡을 달리는 몇 시간 동안 우리는 10 여 대 정도의 다른 차를 본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물론 동식물도 없는 괴괴한 사막이요, <죽음>만이 있는 웅장하고도 장엄한 지옥을 지나온 기분이다.
어디쯤에선가는 <일방 통행>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곳으로 들어가 한 시간 이상을 지나기도 했다. 불안하면서도 좀 더 모험이 하고도 싶어졌었다. 그 곳에는 <Artists Palette> 또는 <Artists Drive>라는 안내판이 말해 주듯 경치 또한 장관을 이루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안목이 없는 사람에게 Grand Canyon이나 <죽음의 계곡> 같은 경관을 구경시켜 주면 그 진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 중에는 20~30 층 짜리 빌딩에 올라가서는 그 높이에 아찔해 하며 감탄하지만, 수 천 m 높이의 자연을 볼 때는 전혀 실감하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상상을 불허하는 너무 크고 장대한 것은 감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필자의 집사람도 Grand Canyon에 처음 갔을 때는 별로 신통치 않게 보는 기색이더니, 두 번 째 다르고 세 번 째 다르더니, 이제는 누구보다도 그 웅장함에 감탄을 아끼지 않게 되었다.
몇 차례 경험을 쌓아서 그런가? 이번 <Death Valley National Park>를 달리는 동안에도 집사람의 입에서는 여러 가지로 감탄사가 연발되고 있었다. 거대한 자연 경관을 실감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겨난 것이리라.



북한산에서 가장 높은 백운대가 해발 837 m라고 되어 있다. (서울 남산은 262 m이고.) 인수봉은 804 m로 알고 있다. 그런데, 독자들이여! 그 인수봉을 바라볼 때, 기분(마음 상태)이 어떠한가?
항아리를 엎어놓은 모양을 한 거대한 바위산 인수봉을 바로 밑에까지 접근하여 올려다보면 어떨 것 같은가?
그러면, 인수봉처럼 생겼고, 그 높이가 인수봉의 두 배가 넘는 높이의 바위산들 수 십 개의 봉우리가 폭 100~200 m 쯤 되는 협곡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쭉 늘어서 있다면 어떨 것 같은가?
그런 계곡이 자그마치 12 km(30 리)나 되며, 어떤 곳은 그 계곡의 폭이 50 m도 안 되는 것 같았으며, 거기에서 올려다 본 하늘은 한 뼘도 안 돼 보이는 것 같았다.
이것이 유티주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Zion National Park>의 일부인 <Zion Canyon>의 웅장한 모습이었다.

승용차 한 대의 입장료는 20 불이었다. 그리고, 공원 안의 Shuttle Bus 이용은 무료였다. 이 Bus를 이용하여 가슴이 서늘해지는 30 리 거리의 협곡을 왕복하며 구경할 수가 있었다.
그 버스로 협곡을 왕복하는 시간은 약 한 시간 반이나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중간에서 하차하여 좀 더 긴 시간 동안 구경할 수 있는 곳이 8 곳이나 있어서 실제로는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공원의 규칙에 이 Zion Canyon이라는 협곡에 Shuttle Bus 외의 다른 개인의 차는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이 국립공원에서 가장 높은 산 Horse Ranch Mountain은 2,659 m로서 백두산의 높이(2,744 m)와 거의 비슷하며, 한라산 높이인 1,950 m 내지 2,000 m가 넘는 산들이 수두룩했다.
이런 산들의 2~3 부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오솔길이 만들어져 있는 곳도 있었다.
우리 가족은 Shuttle Bus에서 내려 이 오솔길을 한 시간 이상 걷기도 했다. 거대한 바위산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덮칠 것 같은 불안을 떨칠 수가 없는 아슬아슬한 산책이었다.

<Weeping Rock>이라고 이름 불리는 바위산에서는 추녀에서 물이 쏟아지듯 낙수 물이 폭포수를 이루고 있었다. 그 밑으로 산책로가 뚫려 있어서 우리는 그 곳을 통과할 수 있었다.
바위산, 바위 계곡이었지만, 곳곳에서 물이 샘솟고 있어서 계곡의 가운데에는 맑은(?) 물이 내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식수로 사용할 수 없는 물이라고 했다.

Shuttle Bus 여행이 끝난 다음 우리는 승용차로 <Zion-Mount Carmel Highway>라는 길을 달려 보았다.
마치, 대관령을 넘는 기분인데, 다른 점이 있다면 대관령보다 훨씬 높은 곳을 짧은 거리로 길을 뚫어 놓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길은 ㄹ자보다도 더 극심하게 굽어 있었으며, 해발 1,562 m 지점에서는 바위산을 뚫어 약 2.5 km의 터널을 통과해야 됐다.
터널은 구불구불 뚫려 있었으며, 특이 한 것은 전등 시설이 없었던 것이다. 일반 터널과 색다른 점은 터널 중간 중간에 창문을 만들어 채광을 하고 있었다.
창문을 만들 수 있는 것을 미루어 짐작되는 것은, 바위산 둘레를 돌아가면서 거죽 가까이 뚫어 놓은 터널이 분명했다.
 
일반적으로 산 중턱에 길을 내려면 산을 깎아내려 길을 닦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뻘건 흙이 노출되어 보기도 흉하고, 비가 올 때 산사태라는 위험도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항아리처럼 생긴 바위산을 깎아 내리고 길을 만들기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바위산 중턱의 거죽 가까이 돌아가면서 터널을 만들어 차량이 통과할 수 있게 한 것 같았다.
창문이 있는 터널이요, 통행 차량은 전조등을 밝히고 통과하게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터널 속은 어두웠다.

이 <Zion National Park>는 1,300 만 전부터 물(비)의 침식 작용으로 만들어진 현상으로 오늘에 이른 것이라 한다.
역시, 필자의 재주로는 더 이상 설명해 낼 재주가 없어서 4 박 5 일 간의 여행 얘기는 여기에서 끝을 내기로 한다.
제삼자 2013-10-17 (목) 14:14
[숫자 계산(數理)은 누구나 싫어 한다?]


** 바이블 속의 숫자 계산(數理=수학의 이론이나 이치)이 엉망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숫자(數理)가 엉망이라는 사실은 바이블 내용이 신(여호와=예수)의 뜻이 조금도 담겨 있지 않은 두뇌 조직이 엉성했던 고대 미개인들의 조작극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옛날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아니, 고대 미개인들까지도 사기쳐서 먹고 살아야 직성이 풀리던 못된 종자들은 있었던 것이다. 예수교의 바이블은 그런 종자들에 의해서 태어난 것이고, 그 바이블로 장사를 해 먹는 사람도 같은 종류의 종자들이다.
(각설하고) 


아들이나 딸에게 혼인 중신(중매)이 들어오면, 반드시 상대 가정에 대하여 궁금한 것 몇 가지 쯤은 물어 볼 것이 있게 마련이다. 
"신랑(신부)감의 부모(父母)는 현재 생존해 계시는가?"하고 물어 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신랑(신부)감의 조부모(祖父母)도 현재 생존해 계시는가?"하고 묻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것이다.
그런 다음, "신랑(신부)감의 증조부모(曾祖父母) 또는 고조부모(高祖父母)도 현재 생존하시는가?"하고 묻는 일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이유야, 신혼 부부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물으나 마나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수명이 다소 길어져서 좀 다르기도 하겠지만)

그런데, 만약, 인간의 평균 수명이 500 세를 넘는 시대가 되어 증손(曾孫)은 물론, 고손(高孫) 또는 현손(玄孫=손자의 손자)이 태어날 때까지 생존하는 사람이 흔한 시대가 도래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신랑(신부)감의 부모는 생존해 계시는가?"하고 묻는 것을 넘어서 <조부모>와 <고조부모>의 생존 여부까지도 물어보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바이블에는 인간의 나이를 수 백 살 대로 늘여 놓고는 그 사실을 까먹고(잊고) 현실 상황으로 돌아와 실수하는 장면이 많다. 또, 숫자 계산은 골치도 아픈 것이다. 허풍 또는 사기(詐欺)치는 데는 도사이지만, 그 허풍 내용이 숫자일 경우, 그것을 그렇싸하게 수습하기에는 아둔한 머리로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이쯤에서 바이블 내용 중, 숫자 계산(數理)에 대한 것을 한 가지만 보기로 보자.
아니다. 바이블에는 숫자 계산(數理)이 없다. 그럴 능력이 없었을 것이다. 그냥, 저 떠들고 싶은대로 아무렇게나 지껄여 놓은 것이 바이블 속의 숫자일 뿐이다.


* 노아 때에 홍수로 모든 사람이 다 몰사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인류의 조상은 노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랬던가? 바이블에는 노아를 제1대 조상으로 하여 족보가 기록되고 있다. 아래는 그 족보의 대략이다.

(1) 노아는 500 세에 첫 아들 셈을 낳고, 950 세에 죽는다.
(2) 셈은 100 세에 첫 아들 아르박삿 낳고, 600 세에 죽는다.
(3) 아르박삿, 35 세에 첫 아들 셀라를 낳고, 438 세에 죽는다.

(4) 셀라는 30 세에 첫 아들 에벨을 낳고, 433 세에 죽는다.
(5) 에벨은 34 세에 첫 아들 벨렉을 낳고, 464 세에 죽는다.
(6) 벨렉은 30 세에 첫 아들 르우를 낳고, 239 세에 죽는다.

(7) 르우는 32 세에 첫 아들 스룩을 낳고, 239 세에 죽는다.
(8) 스룩은 30 세에 첫 아들 나홀을 낳고, 230 세에 죽는다.
(9) 나홀은 29 세에 첫 아들 데라를 낳고, 148 세에 죽는다.

(10) 데라는 70 세에 첫 아들 아브라함을 낳고, 205 세에 죽는다.
(11) 아브라함, 100 세에 아들 이삭을 낳고, 175 세에 죽는다.

(이상, 창세기 11 장에 있는 족보의 내용이다.)


1) 950-500=450-----노아는 아들 셈을 낳고도 450 년을 더 생존했다는 계산이다.

2) 셈100+아르박삿35+셀라30+에벨34+벨렉30+르우32+스룩30+나홀29+데라70(아브라함 태어남)=390
   노아의 아들 셈부터 제 10 대 손자 아브라함이 태어날 때까지 390 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계산이다. (평균 1 세대 39 년) 

3) 500+390=890-----노아의 나이 890 세 되던 해에 그의 제 10 대 손자 아브라함이 태어난다.
    950-890=  60-----아브라함의 나이 60 세 때, 그의 제 10 대 조부 노아가 죽는다.


*** 아브라함이 태어났을 때, 그 조상 10 명의 나이는 다음 같다. (계산하기 편하게 연이은 숫자를 더하고 빼기함)

(1) 노아-------------------890 세
(2) 셈---------------------390 세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도 35 년을 더 삶)
(3) 아르박삿---------------290 세 

(4) 셀라-------------------255 세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도 3 년 더 삶)
(5) 에벨-------------------225 세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도 64 년 더 삶)
(6) 벨렉-------------------191 세 

(7) 르우-------------------161 세
(8) 스룩-------------------129 세 (230-129=101 즉, 아브라함 나이 101 세 때 죽음)
(9) 나홀--------------------99 세

(10) 데라(아브라함의 아비)-70 세 (205-70=135 즉, 아브라함 나이 135 세 때 죽음)    

  *  (아브라함은 175 세에 죽음)
  *  (아브라함의 나이 41 세가 될 때까지는 그의 직계 조상 10 명이 모두 살아 있었다.) 
  *  (심지어는 셈, 셀라, 에벨등, 3 명은 노아의 10 대 손자인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도 더 산다.) 

"오래 사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자식(또는 후손)을 앞세우는 수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브라함이 가나안(팔레스타인) 지방으로 이주했다는 75 세 때까지 살아 있는 조상은 10 명 중 7 명이나 된다.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명을 따른다는 핑계를 대고 수 백 세 된 직계 조상 7 명을 나 몰라 버리고 집(고향)을 떠난다. 지금 말로 직계 존속 유기(遺棄)가 되는 셈이다. 
이때, 바이블 기자는 아브라함의 조상들은 이미 죽어서 없으려니 여기고,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바이블 기자가 살던 시대에는 조부모나 증조부모는 으레 죽어서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엉성한 두뇌 조직을 가진 자에 의하여 조작된 내용이 바로 바이블임을 증명해 주는 대목인 것이다. 


바이블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이주해 왔을 때가 그의 나이 75 세라고 한다(창 12;4). 그리고,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35 세가 된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기의 아들 이삭의 나이 40 세(아브라함은 140 세) 때, 혼인시키기 위하여 며느리감을 찾아 자기 종을 아버지 집에 보내는데, 그 때에 아버지 데라에 대한 안부를 묻는 이야기가 없다(창 24;1~67).
아니, 양쪽 집안의 다른 혈액붙이에 대해서는 왁자지껄 요란스럽게 안부가 전해지고 있는데, 오직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에 대한 안부만 쏙 빠져 있다. 왜일까?
수명이 200 세 씩이나 되던 시절에 아직 죽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있는 아비의 안부를 묻지 않고 있다. 왜, 아비에 대한 안부를 묻는 대목이 없을까?
그 이유를 몇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가 있겠지만,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예수쟁이(바이블 기자를 포함해서)들의 좀비적 엉성한 두뇌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는 수리(數理) 계산이었던 것이다. 

가뜩이나 숫자 계산은 누구나 싫어하는 것인데, 하물며 무뇌충(無腦蟲)이라고 불리는 예수쟁이들의 두노로는 어림도 없는 사건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으로 모든 것이 다 되는 판에 골치 아픈 숫자 놀음을 예수쟁이들이 왜 하겠는가? 미쳤나? ㅎㅎ...아멩 할렐루야!

다른 한 가지 예측.
아브라함은 자기 아비가 죽은 후에 집을 떠나 가나안 지방으로 이주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는 아비에 대한 안부를 물어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135 세 이후에 이주를 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바이블에서는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섰을 때가 75 세였다고 되어 있다. (창세기 12; 4) 
그렇게 되면, 아브라함은 135 세 때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지방으로 이주했을 때는 나이가 75 세로 줄어 붙었다가 다시, 100 세가 되었을 때 아들 이삭을 낳았다는 계산이 된다.
바이블 내용을 조작하고 있는 사람의 능력으로는 애당초부터 속수무책의 분야가 숫자 계산(數理)이었던 것이다.  
결국, 바이블 기자는 자기가 길게 늘여 놓은 인간의 수명과 이를 보기 좋게 꿰어 맞추는 예리함이 부족했다. 바이블 내용이 신(神)의 것이 아니라 두뇌 조직이 엉성한 고대 미개인의 조작극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모순과 궤변을 찾아 낼 수야 있지만...생략하기로 한다.
공연히 숫자 놀음에 들어왔다가 필자도 골치가 아프다.
제삼자 2013-10-19 (토) 11:17
[전염병의 원인]

몇 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지구 위의 구석구석에서는 각종 전염병으로 떼죽음을 당하곤했었다. 중세(1300 연대) 유럽을 강타한 전염병(흑사병)은 전 유럽 인구의 1/3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공포의 대재앙이기도 했다.
우리 나라 조선왕조의 실록에도 200 번이 넘는 역병(전염병)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영조 때에 발생한 역병으로 죽은 사람은 자그마치 10 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무서운 전염병이란 것이 모두 예수교의 신(神) 여호와의 조홧속(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알 수 없는 신통한 일의 속내)이라고 한다.

이제, 바이블을 볼 차례가 된 것 같다.

[이스라엘(예수쟁이들의 조상)이 싯딤(지명)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잡신 또는 우상)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예수쟁이들 조상)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잡신 또는 우상)에게 부속(결합)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예수쟁이들 조상)에게 진노하시니라.
...............................................................................
....................................................
그 이스라엘(예수쟁이들 조상)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그 염병(장티푸스-법정 전염병)으로 죽은 자가 24,000 명이었더라.]

(민수기 25; 1~9)


히브리 족속이 애굽을 탈출한 후, 여호와가 허락해 주었다는 가나안 땅(팔레스틴 지방)을 향해서 40 년 동안 행군하고(사실은 배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 백 만이나 되는 군중이 쉬지 않고 매일 행군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얼마 동안 싯딤이라는 동네에 머물고 있을 때도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 동네에서든 오래 머물다 보면, 원주민(모압 족속)들과 친분도 생기게 되고 갖가지 이유로 왕래가 있게 마련이다. 왕래가 잦다 보면, 남녀 문제도 발생하게 되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묻지 않아도 빤히 알 수 있음)!

그러던 어느 날, 원주민인 모압 족속 사회에서 그들이 받드는 신(바알브올)에게 제사를 드리는 절기가 도래했던 모양이다. 
원주민들은 이 제사(축제?)에 히브리 족속들도 초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며 신나게 돌아갔던 모양이다. 어떤 남녀 사이에서는 소위 짝짓기(음행?)도 벌어졌던 모양이다.
이에, 화따지가 상투 끝까지 오른 여호와는 지랄발광을 시작한다. 여호와가 히브리 족속 사회 속에다 염병(장티푸스)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삽시간에 24,000 명의 사람이 염병으로 죽여졌다고 한다.

이 때, 여호와의 제사장(앞잡이) 직책을 가지고 있던 비느하스라는 사람이 짝짓기(음행?)했던 남자와 여자의 배때지(배때기의 방언)를 꿰뚫어 죽여버렸다고 한다.
어떻게 생긴 무슨 연장(무기?)이 있어서 사람의 배때지를 그렇게 손쉽게 꿰뚫어 죽일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남자와 여자의 배때지가 꿰뚫어져서 뒈지는 모양을 보고서야 여호와의 그 지랄발광짓이 멈추었졌다고 한다.

이 때, 여호와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쏟아냈다고 한다.
[제사장...비느하스가 나(여호와)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민수기 25; 11) 
말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가? 그러면, 표준새번역으로 된 바이블을 더 보기로 하자.
[...제사장 비느하스가 한 일을 보아서, 내(여호와)가 더 이상 이스라엘 자손에게 화를 내지 않겠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이 나 밖의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이스라엘 자손을 홧김에 멸하는 일은 삼갔다.] (민수기 25; 11) 

여호와의 앞잡이 비느하스가 짝짓기(음행?)했던 남자와 여자를 죽여버리지 않았더라면, 여호와의 화딱지가 풀어지지 않아서 24,000 명 만이 아니라, 히브리 족속 전체를 진멸시키려고 했었다는 말이다.
다행히도,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가려운 곳을 즉시 알아서 긁어 주었던 것이다. 짝짓기한 남녀의 배때지를 꿰뚫어 죽이는 짓이 여호와의 가려운 것이었던 것이었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그런데, 조선왕조 21 대 영조 시절, 조선 땅에서는 여호와가 지랄발광을 하고 있을 때, 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호와(예수)의 이름이 아직 알려지지도 않았었고, 따라서 여호와(예수)의 앞잡이 역할을 할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조선 땅에서는 24,000 명이 아니라, 자그마치 100,000여 명이라는 백성이 죽여지게 되었던 것이다.

오호통재라! 어쩌다가 한반도 땅에는 그 여호와(예수)의 이름이 그렇게 늦게 알려졌단 말인가!
좀 더 일찍 예수쟁이 나라가 됐더라면, 100,000 명까지 죽여질 불행을 당하지는 않고, 단만 24,000 명 정도만 죽여질 수 있는 은혜를 맛볼 뻔하지 하지 않았던가! 아, 안타깝도다! 아멩 할렐루야!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대한민국도 예수쟁이 나라 비슷해져서 10여 만 명 씩 죽어 나가는 전염병이 창궐하지는 않게 되었다. 이 모두가 여호와(또는 예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쨌든, 지금은 수 십 만 단위가 아닌 수 십 명 또는 수 백 명 단위의 사람이 죽는 그런 세상이 됐다. 이 현상이 모두 예수교의 신(神) 여호와(예수)의 크신 은혜임을 알 수 있다. 역시, 아멩이요 할렐루야이다!


마지막으로, 숙제 한 가지만 던져 놓고, 이 글을 끝내기로 하자.

전근대 이전의 인류 사회에서는 그 곳이 어디이고 간에 전염병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해야 했었다.
그러나, 오늘 날은 그 전염병이란 것으로부터 거의 해방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퍼박테리아 등, 무서운 질병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은 했지만)
그렇다면, 여호와의 힘(능력)이 현대 첨단 과학(의술)의 힘에 밀리다 못해 아예 쪽을 못쓰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인가? 
고대 원시 미개시대에는 직접 나타나서 활동을 했었으나, 인류의 문명이 발전한 뒤에는 전혀 나타날 생각을 못하고 있는 여호와이다. 
마찬 가지로, 옛날에는 인류 사회에다 전염병을 퍼붓는 짓을 했었으나 현대 사회에서는 그 짓을 못하고 있는 여호와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제삼자 2013-10-22 (화) 08:57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매년 가을철면, 전교생이 청군 백군(또는 청군 홍군)으로 나뉘어 소위 운동회라는 것이 열렸었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우리 편아 이겨라. 저쪽 편도 이겨라!" "......" 정말로 재미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선의의 경쟁으로 승패를 가리는 즐거운 운동이었지, 어느 누구를 죽이거나 골탕먹이는 짓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상대를 골탕먹이고,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편가르기가 있다고 한다. 그것도 웃는 낯짝으로 달콤한 말과 함께 접근해 오면서 그런 짓을 한다.
그런 게 어디에 있느냐고? 그러면, 지금부터 예수교(바이블) 속을 들여다 보기로 하자.


1) 여호와는 우주를 창조 전과 창조 후로  이쪽 편과 저쪽 편으로 나누었다. 창조 후를 보면서 "보시기에 좋았다." 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며 스스로 감격해 했다.
창조 전은 어둠과 무(無) 비슷한 것들만 존재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보시기에 좋았다."는 말이 없다. 창조 전의 천지(우주?)는 "보시기에 대단이 기분이 나빴다."였을 것이 분명하다.
창조 전과 창조 후를 다른 말로 표현해 보면, "보기에 좋은 세상"과 "보기에 좋지 않은 세상"으로 편을 갈라 놓은 셈이다.
전지전능한 재주가 있어서 그런지 어쨌든, 여호와(예수)는 천지까지도 이쪽과 저쪽으로 편 가르기를 해 놓았던 것이다. 역시, 여호와(예수)는 편 가르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참고; 유(有)와 무(無)는 어느 쪽이 던 완전한 현상일까? 빛과 어둠은 어느 쪽이 더 완전할까? 
빛은 머지 않아 소멸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둠은 영원히 변치 않고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빛은 그 속성상 불완전이고, 어둠은 그 속성상 영원 불멸의 완전이다.
그렇다면, 예수교의 신 여호와(예수)의 작품은 완전한 어둠에다 불완전한 빛을 섞어 놓은 못된 짓은 아닐까? 유(有)와 무(無)도 마찬가지이다. 완전한 무에다 불완전한 유를 억지로 섞어 놓고는 그것을 "창조했다"고 우쭐대는 꼴이다. 
전지전능하다고 우쭐대고 있는 신이라기에 더 더욱 못된 짓이 분명하다. 안 그래? 
 
2) 여호와는 에덴동산과 바깥 세상으로 나누어 놓았다. 에덴동산이 바깥 세상보다 더 좋다고 한다. 이 보다 더 못돼 먹은 심술이 있겠는가!
그런데, 그 더 좋다는 에덴동산에서 <죄>라는 것이 발생한다. 이 건 또 무슨 심술이지? 사람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의구심을 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저러나, "더 좋은 것" "덜 좋은 것" 또는 "좋은 것" "나쁜 것"으로 편을 가르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여호와(예수)의 성질! 이 짓보다 못돼 먹은 심술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3) 여호와(예수)는 시간도 편가르기를  해 놓았다. 안식일(지금은 일요일?)과 평일이 그것이다.
안식일을 향해서는 축복까지 베풀어 놓았다. 축복 받은 안식일과 그렇지 못한 평일은 무엇이 다른 것인지 그것은 아직 모르겠다.
축복이 베풀어져 있는 안식일에는 교통 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몸이 아파서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람도 없고...등등, 나쁜 일이 발생하지 않고 좋은 일만 생겨나는가?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 봐도, 안식일에 예수쟁이들이 교회로 끌려가서 돈 빼앗기고, 시간과 수고를 빼앗기는 것 말고는 별로 신통해 뵈는 것이 없어서 하는 말이다.

4) 여호와(예수)는 사람도 택한 백성과 원수(이방 민족)로 나누어 놓았다.
택함 받은 백성은 축복의 대상이고, 원수로 분류된 이방 민족은 이유 불문 도륙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이블의 헛소리일 뿐이고, 여호와의 택한 백성 히브리(이스라엘)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살아갈 땅도 없다. 세상이 인정하는 땅이 언제 마련될지 그것도 막연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택한 백성(예수쟁이 포함해서)은 안식일도 지켜야 되고, 재물도 바쳐야 되고, 변덕스런 여호와(예수)의 가르침(?)을 따르자면, 마음과 몸이 10 개라도 모자를 지경이 된다. 택함을 받지 못한 이방인에게는 없는 고통이 아닐 수 없다.

4) 여호와는 동물(動物)도 정(淨=깨끗한 것)한 것과 부정(不淨=더러운 것)한 것으로 나누어 놓았다.
그런데, 사람이 잡아 먹기도 하고, 여호와에게 드리는 제물은 정(淨)한 동물이어야 한다. 따라서, 생명을 유지하는데는 정한 것보다 부정한 쪽이 유리하다. 더러운 것이 더 좋다는 말이다.
그러나 저러나, 그 깨끗함과 더러움의 기준은 무엇일까? 전지전능하다는 녀석의 하는 짓 치고는 치졸하기가 짝이 없다. 밥 처먹고 되게 할 일 없는 녀석이 여호와(예수)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5) 여호와는 공간(空間)도 구별해 놓았다. 지옥과 천당이 그것이다.
천당은 완전한 곳으로서 영생 복락만 있다고 한다. 반면에, 지옥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뜨거운 유황불이 이글거리는 곳이라고 한다.
아마도, 지구는 천당과 지옥의 중간 위치 쯤 되는 것 같다. 여기(지구)는 천당 갈 사람과 지옥 갈 사람을 골라내기 위해서 테스트하는 정거장인 것 같다. (예수교 교리를 몰라서 지구가 뭘하는 곳인지 자세히는 모르겠다.)

6) 그런데, 천당에 들어 갈 사람들도 여러 계급으로 편가르기가 되어 있다고 한다.
지금의 세상(지구)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더 큰 상(賞)과 작은 상을 받을 사람(예수쟁이)이 구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천당은 지금의 세상(지구)보다는 좀 더 정화된 세상인 것 같다. 그러나, 천당도 여전히 계급 사회이며, 거기에서도 영원토록 여호와(예수)를 받들어야 되는 종 신세는 면할 수가 없을 것이 분명하다.
예수의 직제자 12 명은 여호와의 보좌 옆자리를 차지하여 대단히 높은 계급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우리 한국의 예수쟁이들은 핍박 시대를 경험하지 못하고 중간에 편입된 예수쟁이(이스라엘)들이라서 아주 높은 자리는 얻지 못할 것 같다.

7) 여호와(예수)는 인간과 약속이란 것을 해 놓았다고 한다. (필자는 그 약속이란 것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기억이 없지만...) 그런데, 그 약속이 진행되는 시기와 그 약속이 실현되는 시기가 이쪽 저족으로 나누어져 있다.
무슨 말이냐고? 바이블 내용은 모두가 여호와의 약속 내용이라고 한다. (여호와의 일방적 통고이지만...) 현재의 우리 인생은 그 약속의 진행 과정 즉, 약속만 되어 있을 뿐, 아직 그 열매를 따먹을 수 없는 막간(幕間) 인생들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언제 쯤이 될 지 모르는 먼 훗날, 그 약속들이 결실을 맺게 될 그 때의 사람들이라야 그 열매를 따먹을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여기에 재수가 억세게 없는 중간의 막간(幕間) 인생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말세의 환난 시대를 살아갈 사람들이다. 말세의 그 환난(患難)은 전무 후무(前無後無)한 큰 고통이라니까, 그 말세 시대에 태어나는 인간(모든 생명체 포함해서)은 정말로 억세게 재수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8) 여호와(예수)에 의하면, 편 가르기 중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것이 별도로 있다고 한다. <믿음을 가진 사람>과 <믿음은 갖지 못한 사람>이 그것이다.
그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은 악(惡)하고 교만(驕慢)해서 그렇다고 한다. 따라서, 믿음을 가진 예수쟁이들은 선(善)하고 겸손(謙遜)한 사람들이 되는 셈이다. 신(神)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예수쟁이들은 선하고 겸손한 자들이며, 비 예수쟁이와 타종교인들은 악하고 교만한 자들이다. 그리고, 결론은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다. 아멩 할렐루야!

9)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디모데후서 2; 20)
 
사람도 금그릇으로 쓰일 사람, 은그릇으로 쓰일 사람 그리고, 나무그릇 또는 질그릇으로 쓰일 사람으로 나뉘게 된다고 한다.
자기 의지 없이 멋 모르고 태어나는 것이 인생인데, 왜 금그릇으로 쓰일 사람이 있고 또 질그릇으로 쓰이는 사람이 타의에 의해서 결정돼야 할까? 실제로 세상은 그렇게 굴러가고 있다?
세상을 이렇게 억울하고 불행하게 이끌고 있는 예수교의 신 여호와(예수)를 몇 점 짜리로 봐줘야 될까? 반기련의 안목 즉, "박멸"이 가장 올바른 안목이겠지?! 아멩 할렐루야!

10) ........................................................

** 예수교(여호와=예수)의 편가르기 짓을 어떻게 다 말로 할 수 있을까! 아멩 할렐루야!
제삼자 2013-10-25 (금) 12:31
[예수가 물 위를 걸었다고?]


얼마 전, 파나마 선적의 8,000 t급 짜리 대형 선박이 영일만 해상에서 침몰 좌초됐다는 TV 뉴스가 방영됐었다. 파도 때문에 배가 물 속에 잠겼다 다시 떠오르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좌초되고 있었다.
파도는 상하 운동이기 때문에 그 큰 배도 파도에 따라 상하 운동을 하고 있어서 물 속에 잠겼다가 떠오르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만약, 사람이 물 위를 걷는다면, 잔잔한 물에서는 운동장에서 걷는 모양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센 파도 위에서 걷는다면, 사람도 상하 운동을 하기 때문에 물에 잠겼다가 솟구쳤다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예수가 물 위를 걸었다는 그 때에도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가 위험할 정도로 심한 역풍이었다고 한다. 시간도 사경(밤 1~3 시 사이)이였다고 한다.

바이블을 보자.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밤 1 시에서 3 시 사이)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여호와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마태 14; 24~33)


어떤가?
깜깜한 밤(1~3 시 사이)에 커다란 파도를 헤치고 걸어오는 사람(예수?)을 발견할 수가 있을까?
사실 얘기라면, "예수가 물 위를 걸어왔다."고 표현하지 않고, "예수가 물 위를 날아왔다."고 기록해 놓지 않았을까?
그렇게 했어도 말은 안 된다. 깜깜한 밤 중에는 바로 옆 사람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예수와 베드로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떠들고 있는 장면은 정말로 웃긴다.
저런 말 같지도 않은 말에 홀딱 반해서 그 속에 스스로 빠져들어 헤어나지를 못하는 예수쟁이들! 정말로 어떻게 된 인간들 아니야? 아니, 인간이긴 한 게야?
제삼자 2013-10-27 (일) 08:15
[멋진 말 뒤에는 멋진 내용이 있는가?]
 

겉으로 드러낸 말이 아름다우면, 그 아름다운 말에 해당하는 내용 또는 당사자의 실질적 결과도 아름다운 것일까?

김소월의 시! 얼마나 감미롭고 아름다운가? 그러나, 그 아름다운 시를 세상에 드러낸 당사자는 비참한 삶을 이겨내지 못하고 33 세라는 젊은 나이에 음독 자살을 하고 있다.
피아노 곡, <소녀의 기도>는 얼마나 김미롭고 희망적인가! 새로운 희망을 찾아 모스크바를 향해 떠나려는 소녀의 갈망어린 기도를 진지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노래라고 한다. 
폴란드의 여류 작곡가 바다르체브스카(T. Badarzewska)가 남긴 피아노곡이다. 그러나, 진지하고 아름답게 표출된 내용과는 달리 당사자(작곡자)는 23 세라는 어린 나이에 요절한다. 

투탕카멘(Tutankhamun)은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왕)였다고 한다. 수 천 년 전의 고대 이집트 시대의 모습을 연구하는데 대단히 커다란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고대 역사를 연구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그러나, 투탕카멘 장본인은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불치의 불구로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병자였으며, 9 세에 등극하여 18 세에 죽은 좀비(살아 있는 시체?)나 다름 없던 불쌍한 인간이다.
수 천 년 전의 고대 이집트를 연구하는 데는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지만, 장본인은 가장 불행하고 가장 쓸모 없는 인간이 투탕카멘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 용서, 은혜, 구원, 천당, 영생복락, 전지전능, 절대, 정의, 공의, 공명정대, 순결, 회개, 희생봉사, 친절봉사, 사회사업, 교육사업, 등등, A4 용지에 가득 채워도 모자랄 정도의 좋은 말, 아름다운 말, 희망적인 말들을 세상이 떠나가도록 수 천 년 전부터 쏟아내고 있는 예수교!
예수교가 겉으로 드러내며 마구잡이로 사람을 가르치려고 쏟아낸 언행들이 아름답다고 할 때, 그 언행을 쏟아 낸 당사자인 예수교의 모양새도 과연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 겉으로 드러낸 언행과 그 내용(결과물)은 사뭇 다른 것이다. 특히,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는 예수교의 모든 감언이설(甘言利說)이야 말로 세상의 좋은 말이란 말을 모두 훔쳐다 깔고 앉아서 벌이는 사기행각의 대표적인 표본이다.

바이블을 보자.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천국의 상징?)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신(神=여호와)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이사야 52;7)

예수가 나타나기 오래 전, 장차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즉, 예수)가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의 시(노래)라고 한다.
얼마나 멋지고 포근하고 그리고 아름다운 말인가! 그러나, 말(言)이 멋지다고 해서 그 실질적 알맹이도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사기꾼의 말, 얼마나 멋지고 근사한가? 그러나, 그 결과는 삶을 파괴한다.

예수교(쟁이)는 바이블 속에서 그럴싸하게 생긴 말들을 용케도 찾아내어 자랑하기를 즐긴다. 위의 바이블 구절도 그 한 가지 예이다.
그러나, 알맹이 없는 사기꾼의 말은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인생을 망치는 치명적 올가미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모래 위에 지은 누각은 나름대로 기초에 모래라도 있지만, 바이블이 말하는 허구(虛構)는 기초는커녕 1~2 층 없는 3 층이라고나 할까? 여기에 한 번 걸려들면, 죽기 전에는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된다. 마약도 이런 마약이 없다.

금방이라도 세상의 모든 행복과 천당을 안겨 줄 것처럼 매끈한 말, 그러나, 돈 빨아 먹고, 심신을 얽어 매는 굴레일 뿐이다.
멋지고 포근하고 희망적이고 아름다우면 뭘하는가? 예수교의 모든 것은 하나도 빠짐 없이 모두가 사기꾼의 말처럼 알맹이가 없는 공수표인 것을!
제삼자 2013-11-14 (목) 21:40
[여호와의 주특기 흉계(凶計)=음흉하고 악독한 꾀]

 
예수교의 신(神) 여호와는 애굽(이집트)에서 종살이로 고통 당하는 자기 백성 히브리(예수쟁이 조상) 족속을 탈출(해방)시켰다고 한다.
이것이 소위  예수교(바이블)가 말하는 <出애굽>이라는 것이다. 이 때의 지도자(여호와의 앞잡이)가 그 유명한(?) 모세이다.
 
애굽을 탈출한 히브리 족속은 가나안(중동의 팔레스틴) 땅에 자리 잡고 살도록 여호와로부터 약속되어 있었다고 한다.
애굽을 탈출한 후, 여호와가 허락했다는 가나안 땅을 향하여 이동하는 히브리 족속의 인구수는 적어도 300 만이 넘었으며(필자의 계산법으로는 1,000 만이 넘지만), 가축도 함께 하고, 금 은 보화는 물론 가재 도구까지 포함된 이동이었다.  
이러한 거대 집단이 이동하자면, 그 부수적인 광경이란 대단했을 것이다.

특히, 어떤 나라의 국경을 통과하는 문제는 쉽지가 않았을 것은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서 다루려는 것은, 바로 그 거대 집단 히브리 족속이 <헤스본>이라는 나라(조그만 마을?)를 통과하는 장면이다.
특히, 말해 둘 것이 있다. 여호와의 속셈은 <헤스본>을 아예 박살내기로 계획을 세우고서 일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를 아예 박살 내기로 작정하고서 그 상대와 협상을 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것을 잊지 말고 다음을 보기로 하자. 왜국(일본)의 풍신수길이 조선을 향하여 "명나라를 치려고 하니 길을 빌리자."고 시비를 걸어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상황을 상기하며 다음 글을 읽으면 된다.

 
(A) [내(모세)가 그데못 광야에서 <헤스본> 왕 시혼에게 사자(使者)를 보내어 평화(平和)의 말로 이르기를, ...]

(신명기 2;26)

<헤스본> 땅을 통과하려면 사전에 <헤스본> 왕 시혼의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모세는 헤스본 왕 <시혼>에게 협상 사자(使者)를 보낸다. 그리고, 평화(平和)의 말로 협상에 임했다고 한다.
전쟁을 발발시켜 상대방을 도륙하려는 악락한 칼날을 숨기고 있으면서 평화를 운운하다니! 이것이 여호와(예수)요, 예수교의 본래 모습이다.
500 여 년 전, 유럽 열강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예수의 이름을 앞세워 한 쪽으로는 눈웃음을 치며 협상을 벌이고, 한 쪽으로는 무자비한 초토화 작전으로 원주민을 박살내던 역사는 예수교의 가르침을 아주 정확하게 실천한 모습니다. 


(B) [나(모세 즉 이스라엘 족속 전체)를 네 땅으로 통과하게 하라.
내가 대로(大路)로만 행(行)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라. 너는 돈을 받고 양식을 팔아 나로 먹게 하고, 돈을 받고 물을 주어 나로 마시게 하라.
나는 도보로 지날 뿐인즉,...그리하면, 내가 요단(강)을 건너서 우리 신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르리라...]

(신명기 2;27~29)


모세(여호와) 쪽에서 헤스보 왕 시혼에게 평화(平和)의 말로 내놓은 협상안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1) 대로(大路)로만 지날 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겠다.
 2) 식량과 물은 돈을 주고 사서 먹고 마시겠다.
 3) 도보로만 행군하여 지나가겠다. 그런 다음, 여호와가 허락한 땅에 가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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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떻게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대로(大路)로만 지나가겠다는 것일까?
300(또는 1,000) 만이 넘는 사람에다, 수 많은 가축과 가재 도구가 포함된 행군인데, 무슨 재주로 대로로만 지나갈 수가 있는가?
통치자 한 사람의 약속으로 한 나라의 국민 전체가 일치 단결된 행동(모습)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인가?
엄청난 철권통치를 감행하는 무시무시한 독재 국가에서조차도 통치자 한 사람의 명령으로 국민 전체가 하나로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다.

2) 왜 돈을 주고 식량과 물을 사서 먹고 마시는가? 당시 이스라엘 족속은 여호와가 하늘로부터 내려 주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살았다.
물도 반석에서 샘솟게 하여 마시게 해 주고 있었다. 입은 옷도 40 년 동안 떨어지지 않았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무엇을 돈을 주고 사서 먹고 마시는가? 허구가 아닌 사실이었다면, 상대에게 제신된 협상 안은 다르게 되었을 것이다.
 
"음식은 우리의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가 해결해 주시므로 그 문제는 귀하(헤스본 왕)가 심려할 필요는 없다." 이런 협상안이 나왔으리라.
 
좁은 시내(시나이) 반도에서 40 년 동안 저런 기적질을 하고 돌아다녔다면, 중동 지방 일대에서 그 소문을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그만 헤스본 나라(마을?)의 왕이 모세의 평화(平和) 협상을 결렬시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3) "도보로만 행군하여 지나가겠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되는가? 300(또는 1,000) 만 군중 속에는 병자, 노인, 임신부(출산부), 불구자 등등, 걸을 수 없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인가?
하는 말마다 모순과 사기꾼의 음모와 흉계가 들어 있다. 아니, 바이블(예수교) 자체가 통째로 허구인 동시에 잔인한 악독을 내포하고 있다.

4) "여호와가 허락한 땅(가나안=팔레스틴)에 가서 살겠다?"
여호와가 허락한 땅이 어디에 있는가? 가나안 지방에는 이미 10 여 개의 원주민 족속들이 자리 잡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땅을 여호와가 이스라엘 족속에게 허락하는가?  
당시(지금도)에는 지구 위에 텅 빈땅도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구태여 원주민을 모조리 도륙시켜야 들어 갈 수 있는 땅을 허락한 여호와를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이스라엘은 예나 지금이나 제 땅이 없다. 그래서, 중동 지방은 잠잠할 때가 없다. (이 문제는 "히브리 역사" 편에서 자세히 설명된다.)

 
(C) [헤스본 왕 시혼이 우리(이스라엘)의 통과하기를 허락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이스라엘)의 신 여호와께서 그(헤스본)를 네 손에 붙이시려고(지배 아래 두시려고), 그 성품을 완강(頑剛)케 하셨고, 그 마음을 강퍅(剛愎=성질이 깐깐하고 고집이 셈)케 하셨음이라...]

(신명기 2;30)


평화(?)의 협상 안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음모와 흉계였지만), 
(1) 헤스본 왕은 이스라엘의 통과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2) 협상이 결렬된 이유인즉, 여호와가 헤스본을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 두려고, 헤스본 왕의 성품에다 완강과 강퍅을 집어넣어, 협상이 결렬되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협상이 결렬되어야 그것을 트집 잡아 전쟁을 일으켜 도륙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애굽 왕 바로의 마음에다 강퍅을 13 번씩이나 집어넣고서, 그 때마다 트집을 잡아 재앙(災殃)을 퍼부은 전력도 있다. 
사울왕의 마음에다 악신(惡神)을 집어 넣어 미치광이 짓을 하게 하고(왕 자리에서 쫓아내려고), 가룟유다에게는 마귀를 집어넣어 예수를 팔아 먹는 짓을 하게 한 전력도 있다. 
사람의 마음 속에다 못된 성품을 집어 넣고서, 그로 인하여 벌어지는 못된 짓의 결과를 트집 잡아 징벌을 가하는 신(神)! 이런 잡놈이야말로 극악신(極惡神)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D) [...때에, 여호와께서 내(모세)게 이르시되,
"내가 비로소 시혼과 그 땅을 네게 붙이노니, 너는 이제부터 그 땅을 얻어서 기업(基業)을 삼으라."
...우리 신 여호와께서 그를 우리에게 붙이시매, 우리가 그(헤스본 왕 시혼)와 그 아들들과 그 모든 백성을 쳤고, 그 때에 우리가 그 모든 성읍을 취하고,
...그 남녀와 유아와 함께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진멸하였고, 오직 그 육축과 탈취한 것은 우리의 소유로 삼았으며...]

(신명기 2;31~35)


여호와의 명에 따라서 모세(이스라엘 족속)는 헤스본 땅에서,
(1) 남녀, 노유를 불문하고 싹 쓸어 진멸시켰다고 한다.
(2) 헤스본 땅과 성읍을 탈취하여 이스라엘의 기업(基業)을 삼았다고 한다.
(3) 가축을 비롯하여 탈취한 모든 재물은 이스라엘의 소유로 삼았다고 한다.

결론을 말해야 되겠지?

여호와(히브리 족속=예수쟁이 조상)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흉계와 음모로서 속임수는 주특기이다.
이런 극악무도한 신(神)을 섬기고 있는 예수교를 우리는 무엇이라 해야 되겠는가?

어쨌든, 이 후부터 여호와가 히브리(예수쟁이 조상) 족속에게 허락했다는 땅, 가나안 지방에서 만고잡놈들의 정복 전쟁이 시작된다. "가나안 정복 전쟁" 편에서 자세히 설명된다.

제삼자 2013-11-14 (목) 21:42
[어떤 할머니의 우주론]

예수교(바이블)에서는 사람이 악(惡)하고 교만(驕慢)해서 여호와(예수)를 믿지 않고 거역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런 것을 궤변(詭辯)이라고 한다. 궤변이란 억지로 꾸며대는 말 또는 하나의 전제(前提)에 대하여 그릇된 결론을 이끌어 내는 논법을 뜻한다.
신(神)을 아는 존재가 있다면, 상황은 대번에 달라져서 거기에는 남녀, 노소, 상하, 귀천, 선악, 마귀와 천사 등등, 어떤 존재라도 교만과 악함의 여부에 상관없이 즉시 신(神)에게 굴복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호와(예수)를 믿지 않는 것과 또, 여호와(예수)를 믿는다면서도 예수쟁이들이 시궁창 같이 썩어지는 이유는 악하고 교만해서가 아니라, 신을 도저히 믿을 수 없기 때문일 뿐이다. 
이상의 결론에 대하여 이의(異義=어떤 일에 의견이나 의사를 달리함)를 나타낸다면, 그것은 무조건 궤변이 되는 것이다.

악과 교만을 칭찬할 것까지는 못되지만, 그것 자체는 경쟁 사회에서 나름대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장치(裝置)일 뿐, 신(神)과 연결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는 생명체의 본질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미래가 불안하다. 이에 절대자를 생각해 보게 되며, 신(神)에게 의지해 보려는 희망 사항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신(神)을 믿는다는 사람도 그 신에 대해서 모르기는 마찬가지이다.
물론, 신(神)을 믿지 않는다는 사람도 신에 대하여 모르기는 마찬가지이다. 신의 경지(境地)는 인간의 능력 밖의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신을 믿는다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다는 사람이나 신에 대하여 모르기는 매한가지이다.
또, 모르고서 하는 언행(言行)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신을 모르는 사람이 신을 받드는 짓이나 받들지 않는 짓에 차등이 있을 수도 없으며 하등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신을 모르는 사람이 신을 경배했다 해서 그것이 신에게 영광이 될 수도 없는 것이며, 신을 모르는 사람이 신을 배척했다 해서 그것이 신에게 욕으로 돌아 갈 리도 없는 것이다.
집에서 금붕어나 개를 기른다 해서 그 금붕어와 개가 사람에게 영광이나 명예를 가져다 줄 수 없듯, 차원이 다른 인간의 어떠한 것도 그것이 신(神)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는 없는 것이다.
(각설하고)

태양(太陽)은 눈에 보이는 신(神)이라 할 수 있다. 태양은 인간을 비롯하여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즉, 모든 것의 생사(生死) 여탈권(與奪權)을 쥐고 있는 신(神)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구 위의 60 억 인간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 태양은 아무 반응 없이 조용히 자기 일만 한다. 그런데, 이런 어마어마한 태양도 따지고 보면, 이 우주에서 있으나 마나 한 보잘 것 없는 아주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여호와(예수)는 우주보다도 더 커다란 녀석이 아니던가? 바이블 얘기가 정말이라면 말이다.
그런 그 신이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이며, 그 결과에 따라 무엇을 어떻게 반응할까? 어림없는 말장난일 뿐이다.
(또, 각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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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허구(虛構), 모순(矛盾) 또는 궤변(詭辯)으로 판명이 나면, 예수교(여호와 및 예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필자(제삼자)가 어렸을 때, 어떤 할머니께서 들려주신 우주의 운행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에서 소개할까 한다.

"태양은 아침에 동쪽 하늘에서 떠서 저녁 때, 서쪽 하늘에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이 때, 어떤 할머니가 서쪽 하늘 밑에서 커다란 배를 대기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다.
태양이 저녁 때, 서쪽 하늘에서 떨어지면 기다리고 있던 할머니는 얼른 배에다 그것을 싣고, 밤새도록 노를 저어 새벽 녘에 동쪽 하늘 밑에 도착한다. 그런 다음 싣고 온 태양을 하늘 높이 던져 올린다. 태양은 또 다시 서쪽 하늘을 향해서 날아간다.
이렇게 해서 태양은 매일 아침 동쪽에서 뜨고, 저녁 때 서쪽에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상이 어떤 할머니께서 필자에게 들려주신 우주론이다.

어떤가? 이상, 어떤 할머니께서 필자에게 들려주신 우주론이 맞는 학설(이론)일까?
더욱 중요한 사실! 필자가 소개하는 <어떤 할머니>는 필자가 꾸며낸 가짜(허구)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할머니>가 실존 인물이라 하더라도 위의 우주론은 허구이지만, <어떤 할머니>조차 허구라면, 그 할머니가 소개한 이상의 우주론은 여지 없는 허구 중의 허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따져보자.
모세가 허구(虛構), 모순(矛盾) 또는 궤변(詭辯)으로 판명이 나면, 예수교(여호와 및 예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모세는 여호와(예수교의 신)를 처음으로 발견하여(만들어) 세상에 소개한 자이다. 이런 모세 자체가 통째로 허구이면, 여호와는 어떻게 되는 것이며, 이어서 예수교는 무엇이 되는 것일까?

이제, 바이블을 봐야 될 차례이다.

[백성(히브리 족속)이, 모세가 산(호렙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神)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아내와 자녀의 귀의 금(金)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오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刻刀)로 새겨 금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금송아지)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神)이로다." 하는지라.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壇)을 쌓고, 이에 공포(公布)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節日)이니라." 하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燔祭=제사 종류)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출애굽기 32;1~6)

1) 출애굽(애굽에서 탈출) 직후, 모세가 여호와로부터 10 계명을 받으려고 호렙산에 들어간 사이에 백성(히브리=이스라엘)들이 금(金)을 모아 송아지(우상)를 빚어 놓고, 그것을 신(神)이라 부르면서 제사지내고 먹고 마시며 뛰놀았다는 이야기이다.

2) 히브리 백성들은 신(神=여호와)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사람들이다.
애굽 내에서 10 가지나 되는 기적(재앙=핵폭탄보다 더 큰)들이 실시되는 것을 보았고, 출애굽 과정에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으며, 홍해 바다가 갈라져 그 사이로 걸어서 행진했으며, 애굽 장병들이 그 바다물에 떼죽음 당하는 장면도 직접 보았고, 사막 벌판의 반석에서 물이 솟아올라 그 물을 먹었다.
또, 그들은 당시 하늘에서 여호와가 내려주는 메추라기(고기)와 만나라(빵)를 매일 먹으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입고 있는 의복도 40 년 동안 떨어지지를 않고 있었다.

상황으로 보아, 물은 항시 필요한 것이매, 반석에서 솟아오르는 물 기적은 한 두 차례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만하면, 어떤 종류의 인간이라도 감히 여호와를 거역하고 우상을 만들어 받들 사람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악(惡)하고 교만(驕慢)하더라도 신(神)을 거역할 존재는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인간의 100 만 배에 달하는 능력을 가진 수퍼맨이 있다고 하더라도 신(神)을 거역할 수는 없는 것이다.

3) 아론은 모세의 친형이며, 그 때까지 여호와가 시키는 대로하여 모든 기적질을 손수 시행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자기들 귀에 달려 있는 금붙이 장식품을 떼어다가 우상을 만들고 거기에다 제사를 지내면서 여호와를 거역한다는 말인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현상을 궤변(詭辯)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이의(異議)를 달면 달수록 더욱 깊은 궤변의 늪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4) 궤변은 모순(矛盾)을 낳고, 마침내 허구(虛構)에 귀결되는 것이다.
모세는 허구이며, 모세가 만든 여호와도 허구이며, 여호와의 아들 행세를 하는 예수도 허구이며, 허구 위에 세워진 예수교도 허구인 동시에 복마전(伏魔殿=마귀가 숨어 있는 소굴. 나쁜 일을 꾀하는 무리들이 의 소굴)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실은 예수교의 역사(歷史)가 명명백백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간혹, 예수쟁이 중에 그런 대로 착한 모습을 보여 주는 장면이 있으나, 이는 그 개인의 문제로서 예수교와는 별개로 논해질 현상이다.
제삼자 2013-11-14 (목) 21:43
[개망신(또는 개굴욕)의 연속]


어느 젊은이가 도올 김용옥에게 질문을 던졌다. "젊음이란 무엇인가?"라고.
도올 왈, "절망의 연속!" 어떤가? 명답 같지 않은가?
그래서, 제삼자도 제삼자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전지전능하다는 예수교의 신 여호와(예수)는 어떤 존재인가?"라고.
제삼자 가로데, "개망신의 연속!" 그렇다. 여호와(예수)가 정말로 존재하는 신이라면 "개망신의 연속일 뿐이다."
(각설하고)


옆구리 찔러 절 받기는 영광인가 개망신인가? 그러면,  엎드려 절 받기는 영광인가 (개)굴욕인가? 
전지전능한 신(神)이 창조해 놓은 천지(자연) 속에 결함도 있고, 참을 수 없는 고통도 있다면, 그것은 신의 영광인가 개망신(개굴욕)인가?

여호와(예수)는 현재, 지구 위에다 60 억이나 되는 인간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 중, 100 %가 아닌 1/4 쯤 되는 15 억 정도의 인간으로부터만 여호와(예수)가 칭송을 받고 있다면, 아니, 그 칭송이라는 것도 건성으로 시늉만 하고 있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이라면, 이런 경우, 여호와(예수)는 영광일까 아니면 개망신일까?

히브리(이스라엘) 족속은 여호와로부터 특별히 택함을 받은 백성이라고 한다. 유식하게 말해서 선민(選民)이라고 한다던가? 히브리(이스라엘=예수쟁이)는 여호와로부터 특별히 돌봄을 받는 족속이라는 의미이다. 
이 때, 히브리(이스라엘=예수쟁이) 족속이 제대로 된 삶을 가질 수 없다면, 그 현상은 여호와(예수)의 영광일까? 아니면, 여호와(예수)의 개망신이라고 해야 하나? 
이유야 어찌되었든, 히브리(이스라엘) 족속이 수 천 년 동안 나라 없이 극단적인 고난의 삶을 가졌다면, 그것은 여호와(예수)의 영광인가 (개)굴욕인가?
(여기도 각설하고)


1) [이에 바로(왕)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아브라함)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 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창세기 12;16)

여호와의 명이라면 자식까지도 바치던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이 자기 계집을 애굽의 바로왕에게 얼마 동안 빼앗긴(빌려준?) 대가로 많은 재물을 벌게 된 장면이다.
이렇게, 여호와의 대표 앞잡이가 애굽 왕에게 자기 계집을 빼앗겼던 대가로 많은(?) 재물을 벌게 된 사실은 여호와(예수)의 영광에 해당하는 사건인가 아니면, 개망신에 해당하는 굴욕인가?


2) [바로(애굽 왕)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總理)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바로가 그로 애굽 전국을 총리하게 하였더라.]

(창세기 41;41~43)

여호와가 택한 백성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 요셉이 여호와의 능력에 힘 입어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는 장면이다.
애굽은 여호와(예수)가 아닌 태양신을 받들던 민족이다. 그런데, 여호와가 택한 백성의 우두머리가 태양신의 나라에 들어가서 우두머리(왕)가 아닌 총리가 된다. 이 사실은 전지전능하다는 신 여호와의 영광일까 아니면 개망신(굴욕)일까?


3)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役事)를 엄하게 하여, 고역(苦役)으로 그 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엄하였더라.]

(출애굽기 1;12~14)

여호와의 택한 백성 히브리 족속이 애굽에서 종살이로 고생하는 장면이다. 430 년 동안 이런 종살이로 갖은 고역을 치르면서도 그 자손 만은 크게 번성을 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이런 식의 우쭐거리는 자랑은 여호와(예수)의 영광일까 개망신에 해당하는 못난이 짓일까?


4)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金)고리를 빼어 아론(모세의 형)에게로 가져 오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神)이로다." 하는지라.]

(출애굽기 32;3~4)

여호와는 기껏(죽을 힘을 다 기울여) 히브리(이스라엘) 족속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내었건만, 구출 받은 그들은 엉뚱하게도 여호와가 아닌 금송아지를 빚어 놓고, 이것이 자기네들의 신(神)이라며 받들고 있다.
이 사실은 여호와(예수)의 영광인가 굴욕인가? 아니, 이것보다 더 큰 개망신과 열나는 일은 없겠지? 아닌가?


5) [여호와께서 유다(이스라엘의 한 지파)와 함께 하신고로, 그가 산지(山地)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鐵兵車)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사사기 1;19)

여호와가 허락한 땅을 히브리 족속이 정복할 때, 철병거(鐵兵車)로 무장한 강력한 원주민은 몰아낼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아이구 창피해라. 이것은 여호와(예수)의 영광일까 아니면, (개)굴욕일까? 이것이 천지를 창조하고 다스린다는 신(神)의 모습(능력)이란 말인가?

** 참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며 여호와가 히브리 족속을 안내한 땅은 척박하기 짝이 없는 돌짝밭이요, 황량한 모래 벌판이다. 근처에서 펑펑 쏟아져 나오는 석유조차 한 방울 나지 않는 불모지이다.
이러한 사실은 전지전능하다는 신에게 영광에 해당하는가 아니면, 개망신이라고 해야 되는가?


6)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滅)할 때에...] (열왕기상 18;4)

이세벨은 이스라엘 왕국의 제7대 왕 아합의 왕후이다.
그 녀는 시집 올 때, 친정(페니키아) 쪽에서 가져온 신(神) 바알과 아세라상만을 받들며 그 선지자들을 극진히 아낀다. 반면에, 그 녀는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보이는대로 잡아 진멸시킨다.
이럴 때, 여호와는 자기 앞잡이 엘리야를 통하여 엉뚱한 기적질만 쏟아내고 있다. 아니, 그보다 엘리야도 결국은 잡혀 죽임을 당할 것이 겁나서 멀리 야반도주를 한다.
이럴 경우, 여호와에게는 영광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 것을 (개)굴욕이라고 하는 것일까?


7) [...앗수르(앗시리아) 왕이 곧, 은 300 달란트와 금 30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로 내게 한지라. 히스기야가 이에 전(殿=여호와의 집)과 왕궁 곳간(庫間)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또 그 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전문(殿門)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열왕기하 18;14~16)

앗수르(앗시리아) 왕이 유다에 쳐들어와서 신전(여호와의 집) 곳간의 은(銀)과 신전의 기둥에 입혀 놓은 금(金)을 모두 벗겨 갔다는 말이다.
이런 경우를 여호와의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여호와의 개망신이라고 해야 하나?


8) [요시야(왕) 당시에 애굽 왕 바로느고가 앗수르(앗시리아)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하수로 올라가므로 요시야왕이 나가서 방비하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나본 후에 죽인지라.]

(열왕기하 23;29)

유다 왕 요시야는 율법책(여호와의 말씀)을 발견해 내고, 이것을 백성들에게 읽어 주고, 전무후무한 유월절(여호와의 명절)을 성대하게 개최하고, 전국에 있는 잡신의 신당과 우상을 혁파하여 가루로 만든 여호와의 위대한(?) 일꾼이었다.
이렇게 훌륭한 업적을 남기 여호와의 앞잡이 요시아왕을 애굽왕 바로느고가 손쉽게 잡아 죽여버렸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여호와의 영광인가 (개)굴욕인가? 아니면, 여호와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강 건너 불구경하기인가?


9) [그 때에 바벨론(新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수살렘에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
...저(느부갓네살왕)가 여호와의 전(殿)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전의 금기명(金器皿=온갖 그릇)을 다 훼파하였으니...
저(바벨론 왕)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방백과 모든 용사 합(合) 10,000 명과 모든 공장(工匠)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빈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열왕기하 24;10~14)

여호와의 백성 히브리(이스라엘) 족속이 완전히 멸망하여 이후 2,500 년 동안 인류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는 장면이다.
바벨론(新바빌로니아)의 왕에 의하여 여호와의 신전(神殿)이 박살되고 있다. 그 때, 히브리 족속 중, 빈천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이 사로잡혀간다.
어떤가? 이런 경우는 여호와에게는 여전히 영광인가 아니면, 개망신 중에서도 (개)굴욕일까?


10)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칙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神)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殿=여호와의 집)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에스라 1;1~2) (역대하 36;22~23)

여호와의 택한 백성 히브리(이스라엘) 족속은 완전히 멸망하여 없어졌음을 이미 언급했었다. 히브리 족속이 멸망하게 된 이유는 여호와를 등지고 잡신(또는 우상)을 받든 벌이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자기 이외의 잡신(우상)이라면 치를 떠는 여호와가 잡신(아후라마즈다)을 섬기는 바사 왕 고레스에게 천하 만국을 주고, 예루살렘에다 여호와의 신전을 재건축하라는 명을 내렸다고 한다.
자기의 백성이 세운 나라와 신전은 지켜내지 못하고, 남의 나라, 다른 신의 자손에게 자기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는 말이다. 마치, 일제(日帝) 때, 예수쟁이들의 신사(神社) 참배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어떤가? 이런 경우, 여호와의 영광이라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쥐구멍을 찾아 들어가야 될 개망신이라고 해야 되는가?


** 현재, 우리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예수교(쟁이)는 하나도 빠짐 없이 구석구석 썩어문드러져 있다. 아니, 사실은 그 썩어문드러진 모습이 바로 바이블(예수와 여호와의 가르침)과 완전히 일치하는 모습이지만.
이럴 경우, 그 예수교(쟁이)의 썩어문드러진 모습은 여호와(예수)의 개망신일까 아니면, 여전히 영광일까? 어쨌든, 아멩 할레루야는 해두기로 하자. ㅎㅎ...
제삼자 2015-10-14 (수) 10:03

[콩밭 사이로 달리는 기분 통쾌도 하다]--미완성


"흰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 연말연시가 되면 불러대는 외국 노래를 적당히 번역해 놓은 노랫말이다.
글쎄? 기분이 상쾌할 정도로 흰눈 사이를 빠른 속도로 달리는 방법이 있을까?
잘 닦여진 산비탈에 쌓인 흰 눈 사이로 스키(한국 식 썰매가 아님)를 타고 내리달리는 방법이 아니라면, 평지에 내린 흰눈 속에서 기분이 상쾌할 정도로 달리는 썰매 타기 방법은 북극 지방의 개썰매 외에는 없을 것 같다. 

천지 사방이 온통 지평선만 보이는 광활하고 거대한 대지가 온통 흰눈으로 덮여 있을 때, 좀처럼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너른 평원을 썰매가 아닌 자동차를 몰고 몇 시간이고 달려본 적이 있다.
어떤가? 이럴 때, 사람의 기분(마음)을 상쾌하다고 하면 제대로 된 표현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북극 지방의 개썰매보다도 훨씬 속도감이 있어 정말로 상쾌할 것 같지?
그러나, 눈길이 미끄러워서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상쾌는커녕 추운 겨울인데도 진땀이 흐를 정도이다.

눈이 많이 온 길을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릴 수도 있다. 제설 작업이 끝난 길, 눈이 어느 정도 녹은 길....
그러나, 눈이 녹은 길, 제설 작업이 끝난 길보다 더 더럽고 질척거리는 모습은 없다. 그렇다. 이렇게 더렵혀진 눈 녹은 길을 아름답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더러워진 눈 사이를 달리면서 "상쾌도 하다"고 여길 사람도 없으렷다. 그 하얗던 눈길! 그러나, 눈 녹은 길보다 더 더럽고 지저분한 현상도 없을 것이다.
결국, "흰눈 사이로 썰매(스키가 아닌)를 타고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는 노랫말은 경험이 없는 사람이 상상으로 꾸면 낸 허구일 가능성이 크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것 같다.
  
그런데, 지난 여름 석 달 동안에는 매주 토요일(가끔은 일요일)마다 상쾌함보다도 훨씬 강렬한 통쾌한 질주 여행을 즐길 수가 있었다.
자동차로 몇 십 분 씩 질주를 해도 끝나지 않는 콩밭 사잇길....."콩밭 사이로 달리는 기분 통쾌도 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콩밭 평원에서 통쾌한 질주 여행을 하며 필자는 가수 주병선의 <칠갑산>을 중어거려 보게 되었었다.

* 참고; 땅끝과 하늘이 맞닿은 곳을 <지평선>이라 하고,바닷물과 하늘이 맞닿은 곳을 수평선이라 한다.
        그렇다면, 콩밭과 하늘이 맞닿은 곳은 무엇일까? <콩밭평선>? 아니면 그냥 <콩평선>? ㅎㅎ....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훔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 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늙은 한국 사람이라 그런가? 역시, 애잔하고 구성지게 불려지는 노래가 마음을 울리는 것 같아 좋다.
칠갑산이 있다는 충청남도 청양군에는 콩밭이 많은 고장인가 싶어서 인터넷에 들어가 봤더니.....글쎄, 콩밭은 별로 없는 고장 같았다.
차라리, 강원도 대관령 쪽의 고랭지 배추밭 쪽이 광활하고도 새롭게 나타난 광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동차로 몇 십 분 또는 몇 시간을 달리면서 <통쾌한 기분>을 맛볼 수 있는 곳은 콩밭 평원만이 아니다.
"밀밭 사이로 달리는 기분 통쾌도 하다." 이런 곳도 있고, "목화밭 사이로 달리는 기분 통쾌도 하다." 이런 곳도 있다.
"옥수수밭 사이로 달리는 기분 통쾌도 하다."
옥수수의 키가 50 cm미만인 봄철에는 옥수수밭 사잇길을 달리면서 광활한 대지의 지평선을 볼 수도 있지만, 7~9월이 되면 옥수수의 키가 2~3m 이상 자라 있기 때문에 마치 숲 속을 달리는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키가 수 십 m나 되는 거목 밀림 속을 몇 십 분 또는 몇 시간 씩 달리는 기분은 "통쾌 통쾌도 하다."이다. 

빼 놓을 수 없는 통쾌!
단풍철(10월 경)에 뉴잉글랜도 쪽의 단풍나무(한국 단풍나무와는 다른 거목) 숲속길을 달리는 기분은 "통쾌 통쾌 또 통쾌도 하다."라고 몇 번을 반복해도 제대로 된 표현이 될 수가 없다.
그 뿐인가? 펜실바니아 주를 동서로 관통하는 고속도로(I-76=펜실바니아 턴파이크)에서는 단풍철에 온 천지가 울긋불긋 불타오르는 거대한 단풍숲 속을 몇 시간이고 달릴 수가 있다.
펜실바니아 턴파이크(I-76) 중간 쯤에서는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게 되는데, 그 산맥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광활한 단풍 숲은 과연 천하 일품 <통쾌함>이다!

그 뿐인가! 사막 벌판 가운데에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꾸어 놓은 드넓은 귤밭, 포도밭, 알몬드밭....이런 과수원길(?)을 달리는 기분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해서 좋다? 
아니, 정말로 필자의 가슴을 울리는 멋진 곳은 다른 곳에 있다.
"사막 벌판 사이로 무한히 뻗어 있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 괴괴도하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벌판 사이로 뻗은 고속도로를 질주할 때는 마치 천국을 통과하는 길 또는 구름 위에 닦아 놓은 길을 달리는 것처럼 포근하고 평화스럽다고나 할까?

이상은 은퇴 후, 필자가 지난 10여 년 동안 미국을 여행하면서 겪은 상쾌함이요 통쾌함이다, 
그런데, 어떤 나라를 여행할 경우, 그 나라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전통시장이나 뒷골목을 가 봐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미국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어디를 가 봐야 될까?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미국을 알기 위해서는 전통 시장이나 뒷골목이 아닌 다른 두 곳을 가 봐야 된다고 여겨진다.

(미국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다음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올리기로 한다. 미국에서 40년 이상을 살아 낸 사람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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