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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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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인원 : 3,696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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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46[장하다! 반기련이여!]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4-02-11 (화) 09:04 조회 : 4821
*46[장하다! 반기련이여!]


한국 사람들 사이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특이한 정서에 정(情)이란 것이 있다. 정(情)이란 오랫동안 지내 오면서 생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하는 마음이나 친근한 마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고운 정, 미운 정"이라는 말도 있고, "정은 붙이기도 어렵지만, 떼기는 더욱 어렵다."는 말도 있듯, 정(情)은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대단히 의미심장(意味心藏)한 마음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한 마디로 간단하게 정의하기가 어려운 것이 정(情)이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것이어서 그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기가 어려운 의미라고도 한다. 
그러나, 정(情)을 보수성이 강한 성품, 길들어서 익숙해진 마음, 집착 등등이 합성된 고정 관념(固定觀念)의 한 가지 형태라고 정의하면 안 될까?

또한, 정(情)을 불교 용어의 습(習)과 일맥 상통하는 말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인간의 몸과 마음 속에 고착화(固着化)된 습(習=버릇?)을 벗어나는데는 3 아승기(지) 겁 동안을 용맹정진(씩씩하고 날래게 정성을 다하여 나아감)을 하더라도 벗어나기가 어렵다고 한다.
3 * 아승기(영원한 시간) * 겁(영원한 시간)이란 3 곱하기 영원한 시간 곱하기 영원한 시간을 의미한다. 영원한 시간을 제곱한 다음 또 거기에다 3을 곱한 시간을 말한다. 길고 긴 시간(영원한 시간)을 몇 번이고 강조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습(習=오랜 시간에 걸쳐서 심신에 길이 든 버릇)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길고 긴 시간을 두고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하더라도 그 목적을 이루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뜻이 되겠다. 

예를 들면, 수 백 년 또는 수 천 년에 걸쳐서 세뇌되고 길들여진 <남존 여비(男尊女卑)> 풍조는 좀처럼 깨지지 않는다. 남녀 평등을 실천하려는 운동의 최대 방해꾼은 남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여자들이라는 웃지 못할 말도 있다.
자신들의 품격과 처우를 높여 주겠다는데도 이것이 천만부당(전혀 이치에 맞지 않거나 옳지 않음)하다며 극구 저항하는 사람들이 바로 여자 자신들이다.
예수쟁이! 예수쟁이라는 것도 예수교의 교리(감언이설)로 심신이 세뇌되어 쇠귀신화되었거나 또는 반들반들 길이 들어 습(習)에 푹 절어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예수쟁이는 죽기 전에는 그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는 정신 상태에 갇히게 되어 있다. 이 정신 병(상태)이 바로 그 정(情=고착화되어 벗어나기 힘든 버릇 또는 집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쟁이들은 이런 자신의 고착화된 정(情)을 굳건한 신앙심으로 착각한다. 착각은 자유라는 우스개 말이 있지 않던가? 예수쟁이들 세계에서는 신앙심(종교)의 자유 = 착각의 자유가 성립되고 있으니 말이다.

굳건한 신앙심으로 착각되는 정(情=벗어나기 힘든 좋지 못한 버릇)은 죽어서나 겨우 고칠 수 있는 예수쟁이들의 고질병이라고 단정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예수쟁이의 그 고질적 고약한 질병(굳건한 신앙심)을 고칠 수 있는 약이나 의술은 없기 때문이다. 아멩 할렐루야!
고려 왕조와 조선 왕조는 나라가 창건된 후 500 년이 지나자, 나라 전체가 극단적으로 썩어 문드러져서 어떤 분야에도 희망이 전혀 없게 된다. 나라가 세워지고 100 년 또는 200 년이 지나고 나면, 기득권자들에 의한 부정 부패의 고착화 현상은 어떤 방법으로도 고쳐질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기득권자들은 나라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기득권을 양보하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어떤 나라(역사)라도 마침내 흥망 성쇠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범죄 이상의 기득권으로 고착화된 습(習=고약하게 길든 버릇)은 죄의식조차 없기 때문에 개선할 방법도 없다. 
결국, 도탄에 빠진 백성을 살려내는 길은 오직 하나, 썩어 문드러진 나라를 쓰러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진보 성향을 가진 몇 몇 극히 뛰어난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백성들은 나라가 쓰러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소위 충성심 또는 애국심을 발동시키게 되어 있다. 이 충성심( 또는 애국심)도 사실은 정(情=집착)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 여기서부는 너무도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라서 수 백 페이지의 책으로 엮더라도 부족할 것이기 때문에 거두절미하고 생략하기로 한다.)

습(習=고착화된 좋지 못한 나쁜 버릇)의 굴레는 3 아승기 겁 동안(영원한 시간)을 용맹 정진을 하더라도 벗어나기가 어렵다고 했다. 마찬 가지로, 사람의 마음과 몸을 옥죄는 인습(전통, 충성심, 정, 길든 버릇, 종교심 등등을 포함해서)의 굴레를 벗어버리는 일도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 걸은 더 나아가서, 특히 예수교의 끈질긴 굴레(세상에서 가장 질기고 못돼먹은 버르장머리)를 벗어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올가미이다. 예수교의 굴레는 죽어서야 겨우 벗어날 수 있는 지옥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정(情)은 붙이기도 어렵지만, 떼기는 어욱 어렵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예수쟁이로 둔갑된 종자를 정상으로 돌려 놓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역시, 세상에서 가장 질기고 못돼먹은 버르장머리 습(習=고착화된 집착)은 예수쟁이로 세뇌되어 있는 모습이다. 

이렇게 그 굴레를 벗어나기가 거의 불가능한 예수교를 박멸하려고 모여든 진보 성향의 선각자들의 자발적 집합체가 바로 반기련이다. 그러나,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반기련의 활동을 무모하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안팎으로 무수히 많았었다.
그런 속에서도 반기련은 본연의 목적을 향해서 엄청난 일들을 감행(무모하거나 어렵거나 비난 받을 만하더라도 과감하게 실행함)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결과는 어떤 것일까? 반기련 활동의 타겟(target=목표, 대상, 표적)이 되는 예수교의 현재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 반기련의 업적은 어느 만한 것일까?
오늘 날, 예수교를 허구, 모순, 궤변에다 악의 뿌리라고 알게 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직까지도 예수교 속에 남아 있으면서 예수쟁이 노릇을 계속하고 있는 멀대들은 과거의 오랜 시간 동안 길들여진 버릇(習=일종의 정)에 묶여서 그것을 벗어 날 힘이 없는 무리들일 것이다. 

예수교의 그 혹세무민질이 얼마나 길게 지속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이블이나 찬송가라는 것을 옆구리에 끼고서 자랑스레 활개를 치던 모습을 지금은 한 명도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예수교의 끝이 도래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겉으로 드러내 놓고 예수쟁이 노릇을 하기가 부끄러운 세상이 되었음을 예수쟁이들도 감지하게 된 것이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도 부끄럽고, 예수교가 저질러 놓은 역사도 부끄럽고, 각 계층의 예수쟁이들의 현재의 모습도 부끄럽고...이미 예수교의 모든 것은 속 빈 강정이 되어 가고 있다. 
죽은 후에나 고쳐질까 말까 한 예수쟁이들에게 쥐구멍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이 반기련의 활동이다. 이것이 반기련의 업적이 아니고 무엇일까? (여기에다 "ㅎㅎ...아멩 할렐루야!"를 불여 놓은면 안 될까?)
 
장하다! 반기련이여!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4-02-16 (일) 15:49
[예수교의 핵심이 되는 문젯점]


어떤 사람이 말했다.
"나는 사과나무를 싫어한다. 그 이유는 사과나무에 배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가? 되는 말 같은가?


그렇다면, 예수교를 신뢰하지 않는(싫어하는) 이유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면, 어떻게 생각되는가?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대표적으로 교회 지도자들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은 점과 교회 내부적 비리와 부정부패가 많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교회 지도자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다."면, 어떤 것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일치하지 않다는 말일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의 내용을 훑어 보면,
(1) 사람을 죽여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2) 동물도 죽여라. (피만 먹지 말라.)
(3) 심지어는 식물도 죽여라.
(4) 마귀도 죽여라. 
(5) 상대를 속여라. (말로는 평화를 외쳐대고, 뒤로는 도륙시켜라.)
(6) 계집질을 해도 좋다.
(7) 돈을 많이 벌도록 해 주겠다. (돈 버는 방법을 무수히 많이 나열하고 있다.)
(8)~(n) (여호와와 예수의 가르침을 어찌 다 열거할 수 있으랴!?)

그런데, 예수교 지도자(예수쟁이를 통틀이서)의 무엇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인지? 
그리고, 교회의 내부적 비리와 부정부패가 많다고 했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했을 때 비리이고 부정부패일까?

예수쟁이 중에 바이블이 가르치는 훈계를 실천하지 않는 자가 한 단 명이라도 있을까?
예수쟁이 중에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과 일치하지 안는 자는 없다.
그런데, 예수쟁이들의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무엇을 신뢰할 수가 없다는 걸까? ㅎㅎ...아멩 할렐루야!


* 참고;
모든 것을 다 양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자연 질서(우주 질서?)의 원칙을 적자생존이라고 한다면, 결국 생명 유지와 자손 번식을 위해서는 상대(동식물 등)를 속이고 죽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대 생명체를 속이고 죽여야만 자신이 생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따라서, 바이블 내용이 제시하는 죽이기, 속이기, 악질적 행패 부리기 등, 어떤 것이라도 양보하고 이해도 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러나, 바이블(예수교의 모든 것)이 비 논리, 비 과학적으로 엮어져 있어서 결국은 허구, 궤변, 모순이라면, 신뢰할 수가 없느니, 비리와 부정부패가 어떻느니 따위까지 갈 필요도 없다. 
그냥 그 즉시 예수교의 모든 것은 폐기처분되어야 하는 것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해? 

** 예수교의 가장 큰 문제는 예수쟁이들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예수교가 비리와 부정부패로 썩어 문드러졌더라도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에 앞서서 바이블과 예수교의 모든 것이 비 논리적, 비 과학적으로 뭉쳐저 있어서 허구, 궤변 그리고 모순이라는 사실이다.ㅎㅎ...아멩 할렐루야! 




제삼자 2014-02-25 (화) 10:09

[여호와(예수)와 맞장뜨는 용감무쌍한 마귀들]


** 맞장뜨다--우열을 가리기 위해 일대일로 싸우다.
    마귀(satan)--악(惡)의 우두머리. 여호와(예수)와 대립하는 악 또는 그 무리를 뜻함. (=악마) 


[(예수 가라사대) "사단(마귀)이 만일 사단(마귀)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마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마태 12; 26)
[예수께서 저희(제자들)를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단(마귀)이 어찌 사단(마귀)을 쫓아낼 수 있느냐?] (마가 3; 23)

* 예수의 말에 의하면, 사탄(마귀=악마)들도 자기들끼리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화목하게 지낸다는 뜻이다.
또, 사탄(마귀=악마)들끼리는 서로 힘도 비슷하기 때문에 어느 사탄(마귀)이 다른 사탄(마귀=악마)을 쫓아 낼 수도 없다는 말이다.
같은 의미에서, 여호와(예수)가 마귀들을 제압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호와(예수) 자체가 마귀와 동질(동급)의 마귀(악마)라는 뜻이 아닐까? 맞네! ㅎㅎ...아멩 할렐루야!

예수교(쟁이)쟁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마귀(악마)들은 분쟁과 분란을 일삼다."고 한다. 그런데, 위에서 예수는 말하고 있다. "마귀(악마)들끼리는 화목하다."고. 여기에 대하여 예수교(쟁이)는 무엇이라고 궁색한 병명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국가나 민족들도 대개 자기네끼리는 애국 또는 애족이라는 이름으로 의 좋게 살아가지만, 타 민족에 대해서는 대단히 악독한 짓을 자행해왔다.
특히, 선민이라고 말해지는 히브리 족속과 예수쟁이라고 일컬어지는 예수교는 세상에다 그렇게 악독한 짓, 더러운 짓을 할 수가 없었다. 

자기네끼리는 사랑이 넘쳐나면서(실제로는 그런지 안 그런지 따져 봐야 되겠지만), 이웃에게는 눈웃음을 살살 뿌리며 속임수와 악독한 짓을 쏟아내는 예수교(쟁이)야 말로 명실 공히 마귀(악마)가 아니고 뭘까? 이것도 아멩 할렐루야!


사단(마귀)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욥기 1: 9)
[사단(마귀)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한지라.] (욥기 2; 7)

* 예수교의 주신(主神)이신 여호와와 사탄(마귀=악마)이 대등한 입장에서 맞장을 뜨는 장면이다.
글을 짧게 줄이기 위해서 욥(사람)을 사이에 두고, 여호와와 사탄(마귀=악마)이 벌이는 어처구니없는 지랄발광하는 장면은 생략하기로 한다.

바이블(예수교)에 의하면, 사탄(마귀=악마)이 하는 일은 굉장히 많다.
사람들로 하여금 여호와(예수)를 믿지도 못하게 방해를 하고, 반기련 회원들에게는 예수교를 <개독> <먹사> 등등의 말로 개망신 주게 만들기도 한다.
어쨌든, 사탄(마귀=악마)은 예수교의 가장 큰 적(원수)이다. 그런데도 전지전능하다는 신 여호와(예수)는 그 큰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적(원수)를 단박에 무찌를 생각을 하지 않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싼 똥을 깔고 앉아서 우물쭈물 뭉개고 있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세상 끝날(말세)이 되면, 그 때에 그 사탄(마귀=악마)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다."라는 말로 변명을 늘어 놓기 바쁠 뿐이다. 

 우리 나라 속담에 "나중에 보자는 놈(사람) 무섭지 않다." 말이 있다.
"당장에 화풀이를 하지 못하고 나중에 두고 보자는 사람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 또는 "나중에 어떻게 하겠다고 말로만 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는 말이다. 
마치, 예수교의 신이라는 여호와란 작자와 예수란 녀석의 하는 짓을 빗대어서 만들어진 격언 같다. 
예수교(쟁이)에 크건 작건 간에 뭔가 잘 못된 것이 발생하면, "마귀가 하는 짓이다."라며 핑계를 대지 않는 때가 없다.

"조자룡의 헌 칼 휘두르듯"이란 말이 있다.
예수교 또는 예수쟁이들이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궁지(窮地)에 몰리기라도 할라치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가장 먼저 내세우고 보는 것이 조자룡의 헌 칼(보검?)에 해당하는 것이 마귀(악마)이다.
그래 봤자, 세상에 평화보다는 분란이 더 많아 보이고, 행복보다는 불행한 장면이 더 많아 보이는 등, 세상의 돌아가는 모양을 본다면, 여호와(예수)의 힘보다는 마귀(악마)의 힘이 훨씬 강력함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렇다. 예수쟁이 숫자보다는 그렇지 않은 비 예수교인이 몇 배로 더 많다는 사실도 여호와(예수)보다는 마귀(악마)의 작용이 수 십 또는 수 백 배 강력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예수교(쟁이)가 마귀(악마)를 조자룡의 보검(헌 칼) 휘두르듯 내세우고 있는 현상은 여호와(예수)가 존재하지 않는 허수아비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는 꼴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여호와(예수) 자체가 바로 사탄(마귀=악마)의 본체라는 뜻일 수도 있겠다. 셍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도 이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어떤가? 예수쟁이들이여! 아직도 변명할 게 남아 있는가? ㅎㅎ... 에이멩 헬렐레루우야! 

제삼자 2014-03-07 (금) 09:11

[증인(證人)]


 ** 신(神)의 몸뚱이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신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있을까? 신의 존재와 그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사람은 있을까?  더 나아가서 신의 증인(證人)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위의 의문에 "Yes"라고 대답할 수 있는 자라면, 정신 이상자이거나 사기꾼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현상일 것이다.


1) [(여호와 가라사대)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

(이사야 43;8)

여호와의 말(바이블)에 의하면, 사람으로 태어난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 신(여호와 또는 예수)에 관한 한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라고 선포되어 있다. 이보다 정확하고 올바른 정론이 달리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말을 하는 자는 모두가 정신 이상자이거나 사기꾼이 분명하다. 정직하고 양심적인 지성인이라면 유무식(有無識) 이전에 신(神)에 관해서는 입을 열 수가 없어야 정상이다.
따라서, 신앙(종교) 생활은 주관적인 문제로서 조용히 자신만을 닦는 지극히 제한적인 것이어야 될 것이다. 이것이 밖으로 또는 남에게 드러날 때, 그것은 이미 신앙(종교)이라기보다는 이웃을 속이는 악(惡)이 될 뿐이다.


2) [(여호와 가라사대) "열방(列邦)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會集)하였은들, 그들 중에 누가 능(能)히 이 일(신에 관한 것)을 고하며, 이전 일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그들로 증인(證人)을 세워서, 자기의 옳음을 나타내어, 듣는 자들로 '옳다' 말하게 하라."]

(이사야 43;9)

전세계의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이 다 모여 회집(會集)을 하여 평생 동안 갑론을박(甲論乙駁)을 하더라도 신(神=여호와)에 관한 일을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은 나올 수가 없다는 말이다. 여호와가 직접 떠들고 있는 말이다.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며, 여기에 잘못 된 것은 없는 것이다. 여호와도 직접 인정하고 있는 철칙의 말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여호와 쪽에서 이상한 궤변을 떠들어대고 있다. "인간들 속에서 증인(證人)을 세워 옳음을 나태 내어, 듣는 자들로 하여금 '옳다'고 말하게 하라."하고. 어느 누구를 증인(證人)으로 세워서 '옳음'을 나타낼 수 있다는 말이까?  방금 전까지도 여호와는 떠들어대고 있었다. "사람 중에는 신에 관한 한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한다." 또, "전 세계의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이 모여 갑론을박을 하더라도 신을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모두가 여호와 쪽에서 직접 떠들어 놓은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에게 신의 증인(證人)이 돼 달라는 것일까? 신에 관한 한 어떤 것도 전혀 감지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가 인간이란 사실을 여호와 쪽에서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능한 인간을 향해서 "신의 증인이 되어어 '옳다'를 말하게 하라."가 성립될 수 있는 말인가? 어떤가? 덮어 놓고 예수쟁이(여호와의 증인 포함해서)들처럼 아무렇게나 지지껄여대거나 떠들어대면 그것이 '옳음'을 나타낸 것이라는 뜻인가? 그리고, 그 지껄여대는 말을 듣고서 "옳다"고 말하면, 그것이 신(神)에 관하여 알게되고 믿어지는 결과인가? 이런 것을 언어 도단(言語道斷)이라고 하는 것이다.


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證人), 나의 종으로 택(擇)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여호와)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前)에 지음 받은 신(神)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後)에도 없으리라."]

(이사야 43;10)

여호와가 떠들고 있다. "너희(인간?)는 나의 증인(證人)이다."라고. 조금 전까지도 여호와는 떠들어대고 있었다. "어떤 인간이라도 신에 관한 한 전혀 알 수 없는 무능자이다."라고.
신(神)에 관한 한 모두가 소경이요, 귀머거리라고 정론(正論)을 펴다가 느닷없이 "너희는 나(여호와)의 증인(證人), 나의 종으로 택(擇)했다."라니, 이게 무슨 논법(論法)인가? 소경과 귀머거리라면, 본 것도 없고, 들은 것도 없을 텐데 어떻게 무엇을 위한 증인 노릇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종류의 인간이 여호와의 증인(證人)으로 택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한 마디도 건질 것이 없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일 뿐이다. 이것이 예수교(바이블)의 정체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4)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救援者)가 없느니라. 내가 고(告)하였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神)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證人)이요, 나는 신(神)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사야 43;11~12)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말이 있다. 위의 말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가 아니고 뭘까! 아니지. 여호와(예수) 역시 귀신의 한 종류이니까 그 녀석이라고 해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한다해서 이상할 것도 없을 것 같다.

결국, 본론(本論=근본)에는 접근조차 해 보지도 못하고, 거죽에서 빙빙 돌다가, "나는 전지 전능한 신 여호와이고, 너희는 증인이다."로 결론에 도달한다. 도대체, 이렇게 길게 떠들어 놓은 말 중에 신(神)을 보여 준 장면은 어느 것이고, 증인이 될 수 있는 증거는 어느 것인가? 그냥 말을 길게 늘어놓으면, 그 자체가 진리인가? 장난하는가? 이런 것에 말려들어 여호와의 증인도 되고 예수쟁이 노릇도 하고 돈과 몸뚱이까지 바치지 못해서 안달하는 인간들은 뭘까?



결론;

"나(여호와=예수)를 알 자(사람)가 누구냐?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너희(사람)는 나의 증인이라." 어느 누구도 여호와(예수)를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단정지어 놓고서, "너희는 나의 증인이다."라고 선포하고 있다.
논리의 비약치고서 예수교를 따라올 궤변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논리의 비약이 바이블이며, 이 바이블을 근거로 하여 태어난 어불성설이 예수교요 '여호와의 증인'이다. 아멩 할렐루야!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 나가도 샌다]

(1)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 나가도 샌다."  "집에서 안 새는 바가지는 들에 나가도 안 샌다"---당연한 말씀!

(2) "옛날에 시행됐던 기적질이라면, 오늘 날에도 그런 기적질은 실시될 수 있어야 된다."  "오늘 날 실시할 수 없는 기적질은 옛날에도 그런 기적질은 없었던 것이다."---역시 당연한 말씀!

(3) "옛날에 실시할 수 있었다던 기적질 중, 어떤 것은 오늘 날에도 실시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어떤 것은 실시 불가능하다면, 그 기적질들은 모두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말(言)로만 존재하는 순전한 사기행각이다."---이것도 역시 당연지사!

(4) "대개, 기적질이란 것이 누군가(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실시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사기행각을 벌이기 위한 꼼수이다."---너무도 뻔뻔한 종교적 사기행각이요, 영원히 용서될 수 없는 범죄행각이다.

(5) "예나 지금이나 각종 기적질로 도배를 하고 있는 예수교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고 최대의 악(惡)이다. 아멩 할렐루야!"---변명할 말이 남아 있는 예수쟁이가 있다면, 한 번 그 썰을 풀어 보도록 하라!

(6)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은 인간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적질을 실시하지도 않을 것이며, 아예 인간의 삶에 간여하지도 않을 것이다. 또,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은 일단 예수교의 신(예수와 여호와)은 아니다. 그 이유는 바이블(예수교의 모든 것)이 아주 자세하게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블은 여호와(예수)의 존재와 능력을 증거해주는 책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이 철저하게 허구(거짓)임을 증명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예수교의 종착역] 

반예수교의 운동 중에는 예수교를 박멸하기보다는 바르게 고쳐서 쓰자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예수쟁이들끼리도 예수교를 고쳐야 된다고 제법 무슨 큰 뜻을 품고 있는 것처럼 떠들기도 한다.
마치, 국가 기강이 해이해져 있거나 또는 어떤 조직이나 단체가 부패되고 문란해졌을 때, 그것을 개선해서 좋도록 해보자는 생각처럼 말이다. 

국가라는 것은 그 기강이 해이해졌어도 쓰레기처럼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군대 같은 조직도 그것이 설령 부패했더라도 없애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나 군대는 그 기강이 해이해지고 부패하면 좋도록 개선해서 유지시켜야 되는 것이 현재로서는 우리 인간의 운명이다. 

그러나, 예수교가 시궁창 냄새를 풍기고 있을 때, 그것을 고쳐서 쓰자는 의견에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우선적으로, 바르던 그르던 간에 예수교가 우리 인간 생활에 왜 필요한 것인지를 모르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지금 예수교가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이 바로 예수교의 가장 올바른 모습이라는 점이다.
전쟁을 포함한 무차별 살인 행각이라든지, 패륜적 만행질과 혹세무민질 등등은 바이블(여호와=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 예수교의 순기능이다. 

그런데, 예수교의 무엇을 고치자는 것일까?
예수교는 그 잔인성과 패륜적 사기 행각을 개선하면 그것은 이미 예수교라고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예수교 자체조차 필요가 없거늘, 예수교가 아닌 다른 그 무엇이 왜 필요하다는 말인가? 

좀 어색하고 안 된 현상이지만, 
교통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망자보다 부상자(특히 중상자) 문제에 대한 처리가 훨씬 어렵다고 한다. 
마찬 가지 의미에서, 어차피 시궁창 냄새와 함께 쓰레기와 다름 없는 예수교를 개선한다는 것은 그것을 박멸하는 일보다 훨씬 어려울 것으로 짐작된다. 

예수교를 개선하자는 말은 그 자체가 모순된 궤변이며, 또 불가능한 일이다.
예수교를 개선해서 쓰자는 의견은 일말(一抹)의 가치도 없는 착한 척하는 허울 좋은 궤변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예수교는 박멸되는 것만이 그 유일한 길이다.   

제삼자 2014-03-15 (토) 18:14

[계집질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특권을 획득한 자]


예수쟁이건 아니건을 불문하고 여호와(예수교의 주신)의 낯짝을 본(목격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이블 속에 등장하는 어느 누구도 여호와의 낯짝을 목격한 자는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영화 <십계>에서도 여호와의 목소리만 돼지 목따는 소리처럼 "괄괄"거리고 요란할 뿐, 여호와의 낯짝은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실제로(?), 바이블 속의 모세도 여호와를 직접 목격하는 장면은 없다. 그런데, 느닷없이 여호와는 이상한 말을 쏟아 놓는다.


바이블을 보기로 하자. (글을 짧게 줄이기 위하여 거두절미하고 바이블을 압축시키기로 한다.)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3 남매)에게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인간들?)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異像=이상하게 변형된 다른 모양?)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우주 전체? 여호와의 집은 우주 전체가 나니던가?)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직접)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민수기 12; 4~8)

(1) 선민(여호와가 특별히 선택한 백성)인 히브리 족속은 더러운 이방 여자와 혼인을 하면 안 되게 되어 있다. 여호와의 명을 받아 모세가 선포해 놓은 율법 조항이다. 거룩하고 깨끗한 혈통을 더럽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그런데, 위의 율법을 어긴 자가 나타났으니, 그 놈이 다름 아닌 모세였던 것이었다. 법을 만든 당사자가 그 법을 어겼던 것이다. 그러자, 형 아론과 누이 미리암이 비방하고 나섰던 것이다. "법을 만든 놈이 그 법을 어겨서야 될 말이냐?"하고. 이런 상황에서 위의 바이블 원문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2)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호와께서 직접 앞장을 서게 됐다고 한다. 여호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일단 세 연놈(모세, 아론 그리고 미리암)의 선지자를 불러 세웠다고 한다. 어떻게 불러 세웠을까? "이 연놈들아, 이리 오너라." 이렇게 소리쳐 불렀을까? 어쨌든, 여호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재주를 가진 연놈들이 있다고 해 두자.

(3) 여호와가 세 연놈에 들려 준 말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예수교에는 여호와의 뜻을 세상에 전달하는 중책을 맡은 선지자라는 것이 있다. 그들 선지자 중, 보통 선지자(아론과 미리암을 포함해서)에게는 여호와가 이상(異像=이상하게 변형된 허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꿈에 희미하게 나타나서 명백하지 않게 또는 알쏭달쏭 말로 종잡을 수 없게 일러 주기도 한다. 그러나, 모세에게는 여호와가 직접 대면하여 명명백백하게 일러주고 있다. 여호와와 직접 대면하여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에 모세는 여호와의 낯짝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모세에게 주어진 특혜(특권) 중에는 계집질을 마음대로(무진장으로) 할 수도 있고, 율법을 어기고 이방 계집을 차지할 수도 있는 등, 일반 선지자에 비하여 모세가 누릴 수 있는 권한은 막강한 것이다. 그런데, 모세가 이방 계집과 좀 놀아났다 하여 일반 선지자에 지나지 않는 하찮은 아론과 미리암이 감히 모세를 향하여 겁도 없이 비방을 했다는 말이냐? 고얀지고!"

(4) 모세의 계집질에 대한 비방 사건은 결국 미리암(여성 선지자-모세의 누이)에게 문둥병이 걸리는 벌로 끝을 맺게 된다. 모세의 계집질을 비방하는 짓에는 아론(남성 선지자-모세의 형)도 동참하고 있었지만, 여호와의 벌을 받게 된 것은 여성 선지자(미리암) 뿐이었다. 바이블 내용(예수교의 근본 교리)도 철저하게 남존여비 사상에 절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선택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고, 특권을 허락 받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얼치기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예수교의 근본 사상이다.

(5) 일반 다른 선지자에 비하여 모세에게는 어떤 이유에서 그와 같은 혜택(특권)이 주어지게 됐을까?  이에 대한 여호와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모세는 온 집(그러니까 우주 전체?)에 가장 충성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와! 대단하다. 우주 전체에서 여호와에 대한 충성으로는 모세의 것(충성)이 가장 크다! 그렇거늘, 조무래기 선지자(아론과 미리암) 따위가 모세를 몰라 보고 감히 비방을 했다고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ㅎㅎ...에이멩 헬렐레루우야!

아직도 예수교(바이블)의 근본 사상이 자유와 평등을 가르치는 공의로운(공명정대한) 종교라고 떠들어 댈 수 있는 자가 있는가? 어떤가? 현재의 썩어 문드러진 예수교의 모습은 예수교(여호오=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모습일까? 아니면, 여호와(예수)의 가르침은 훌륭하지만 예수쟁이들이 잘 못하고 있는 모습일까? 목사(신부)들이 계집질하는 사건이 터지면, 이구동성으로 그 잘 못을 성토하느라 야단법석이던데, 목사(신부)의 계집질은 여호와(예수)의 가르침과 시범에 비추어 볼 때, 잘하는 짓일까 아니면 잘 못하는 짓일까?


** 몇 십 년 전부터 필자는 말해 오고 있다. "예수교의 썩어 문드러진 모습은 예수교의 가장 올바른 모습이다."라고.

사람들은 예수교에다 "사랑의 종교" "평화의 종교" "평등의 종교" "희생 봉사의 종교" "인격을 중시하는 종교" "....." 등등의 멋진 단어들을 붙여 주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예수쟁이는 물론 예수쟁이가 아닌 사람들까지도 경쟁적으로 아부하기를 즐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교의 근본 가르침(바이블 내용)을 알고서 그 아부를 떨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아서라.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예수교가 극단적으로 썩어 문드러져 있지 않은 때는 없었거니와 그 추악한 모습 자체가 바로 예수교(바이블)의 가르침이 100 % 아주 잘 반영된 모습이라는 사실이다.

속임수, 무차별 대량 학살(전쟁 포함해서), 계집질, 노략질, 이간질,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금전 갈취, 남녀 차별 고취, 인격 모독 현상, 인간 경시 풍조, 악독을 동반하는 잔인성, 인간미를 반들반들하고 유들유들하게 만드는 환경 등등, 예수교(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중에 아름답지 않는 것은 없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제삼자 2014-03-26 (수) 18:32

[반기련이여! 여호와(예수)의 누명을 벗겨드리자]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악하거나 못돼 먹었을 리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봐도 무한한 사랑을 가지신 분이 사람(모든 생명체 포함해서)을 상대로 공갈 협박을 해대기도 하고, 실제로 무차별 대량 학살을 자행하시겠는가? 더구나, 여호와(예수)는 전지전능하시기까지 한 분이시라고 한다. 이런 분에게 무엇이 더 필요해서 천지를 창조하느니, 십일조 헌금을 거두느니, 어리석은 인간으로부터 칭송을 받아야 되느니, 자기의 점괘가 꼭 맞아 떨어졌느니 심지어는 화딱지가 나서 진노를 하느니...이런 짓을 왜 하시겠는가? 말이 성립된다고 생각되는가? 말이 안 되지? 그지? ㅎㅎ...아멩 할렐루야!

따라서, 지난 수 천 년 동안 여호와(예수)가 자행했다고 알려져 오고 있는 지랄맞은 언행(言行)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특히 예수쟁이들)가 여호와(예수)에게 덤터기를 덮어 씌운 억울한 누명일 것이 분명하다. 우선, 바이블 몇 구절을 음미해 보기로 하자. 여호와(예수)의 지랄맞은 말과 행동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지전능한 신이요 사랑이 많은 신이 되어 가지고 왜 저렇게 못된 짓만 골라서 하고 있을까? 역시, 누군가가 덮어 씌운 억울한 누명(또는 오명)일 것이다. 어쨌든, 바이블 몇 구절을 보기로 하자.


(1)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신(神)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나훔 1;2)---여호와는 질투하고, 보복하고, 진노한다는 말이다. 품격 있는 자의 모습 같아 뵈지는 않는다.

(2) [너희의 번제물과 친교제물과 십일조와 흔들어 바치는 예물과 서원제물과 자원제물과 소와 양의 맏배를 그리로(교회로) 가져다 바쳐야 한다.] (신명기 12;6)---여호와는 제물, 예물, 돈 따위를 무척 밝히는 존재라는 말이다. 더럽게 썩어 문드러진 탐관오리에게서나 발견할 수 있는 모습 같다.

(3) [사람이 감당할 시험(시련=고통)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여호와는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13)---여호와는 사람(모든 생명체 포함해서)에게 갖가지 크고 작은 고통을 안겨 준다는 말이다. 왜, 이런 짓을 할까?

(4) [나(여호와)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출애굽기 22;24)---여호와는 화가 풀릴 때까지 사람을 마구 죽여 버리겠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과부도 만들고 고아도 만들겠다고 으름장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5)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온역(전염병)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무론하고,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과 고통을 깨닫고 이 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역대하 6;28~29)--사람은 물론 동물, 식물을 가릴 것 없이 질병과 재앙과 고통은 필연이라고 한다. 이것이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의 섭리라고 한다. 전지전능한 놈은 재주가 많아서 좋겠다. 젠장!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마가 13;2)---어찌나 처참하게 파괴되고 죽여지는지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게 된다고 한다. 예수의 말솜씨는 말 그대로 보드랍고 사랑이 넘쳐난다고나 할 수 있을까!?

(7)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마태 24;6~7)--전쟁, 기근, 지진, 재난 등은 세상 곳곳에서 발생하는 게 신의 섭리라고 한다. 역시, 예수의 너그럽고 사랑스런 말씀이시다. 아멩 할렐루야!

(8)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 23;33)--예수의 아가리가 쏟아내는 독설이요 악담과 저주이다. 여호와의 아들답게 여호와=예수이다. 아멩 할렐루야!


여호와(예수)의 지랄맞은 말과 행동을 어떻게 여기에다 모두 나열할 수가 있겠는가? 자그마치 77,000 줄이나 되는 바이블 내용을 어찌 다 열거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여호와란 놈의 지랄발광 4 가지 장면과 예수란 녀석의 공갈협박 장면 4 가지만 요약해서 소개해 봤다. 이것만 가져도 여호와(예수)란 놈이 어떤 녀석이라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예수)라는 놈이 과연 저토록 못돼 먹은 녀석일까? 전지전능하다고도 알려져 있고, 사랑도 꽤 많이 가지고 있다는 녀석이 아니던가? 그런데, 무엇을 위해서 저런 지랄방광을 할까?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잖아? 그지?

그렇다. 여호와(예수)에게 저렇게 못돼 먹은 버르장머리가 있을 턱이 없다. 단지, 억울하게도 누군가에 의하여 누명이 씌워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 여호와(예수)에게 저렇게 악독하고 못돼 먹은 성품이 들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도 없고, 못하는 것도 없고, 모자라는 것도 없고, 거기에다 무진장의 사랑까지 가지신 신(神)께서 왜 저렇게 못돼 먹은 짓을 하겠는가? 말이 된다고 생각되는가? 그렇다.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진 여호와(예수)의 지랄맞은 말과 행동은 어떤 나쁜 사람(예수쟁이)들에 의하여 뒤집어쓰게 된 억울한 누명이 분명하다. 이보다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이 있을까? ㅎㅎ...아멩 할렐루야!

그러나, 여호와(예수)는 아예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은 무존재(無存在)이다. 이러한 <무존재>가 어떻게 악독하기도 하고 지랄발광을 할 수가 있겠는가? 허구, 모순, 궤변이 할 수 있는 것에 무엇이 있겠는가? 그렇다. 여호와(예수)의 모든 것은 예수쟁이들에 의하여 뒤집어 쓰게 된 억울한 누명(오명)이다. 그런데, 여호와는 <무존재>이기 때문에 손발도 없고 입도 없어서 자신의 억울한 누명(오명)을 벗을 방법이나 힘이 없다. 이렇게 기가 막힐 데가 있단 말인가!

천만 다행으로 <반기련이 등장한다>. 손도 없고 발도 없고 입도 없는 여호와(예수)를 대신해서 그 억울한 누명(오명)을 벗겨 주기 위하여 나타난 운동이 바로 <반기련>이다. 수 천 년 동안, 억울한 누명(오명)으로 분통이 터져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을 여호와(예수)의 억울한 누명(오명)을 벗겨 주기 위해서 나타난 것이 <반기련 운동>이다. 여호와(예수) 입장에서 보면, 반기련보다 더 반가운 존재는 없을 것이다. 반기련 말고 누가 있어서 여호와(예수)의 누명과 오명을 씻어 줄 수가 있겠는가? 반기련 회원들이여! 이왕지사, 여호와(예수)의 누명과 오명을 벗겨드리기 위해서 나선 것이라면, 끝을 볼 때까지 철저하게 그것을 벗겨드리도록 하자! ㅎㅎ...아멩 할렐루야!


참고;

글을 끝내려고 하다가 뭔가 빠진 것 같아서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독자들에게 꼭 알려 주어야 될 것 같은 여호와(예수)의 누명(오명)이 있어서 소개하기로 한다. 그 동안 이런 누명(오명)을 뒤집어 쓰고서 밥잠을 설쳤을 여호와(예수)의 억울한 고통! 생각만 해도 안타깝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이사야 45;7) 

** 이렇게 악독하고 더러운 누명(오명)을 여호와(예수)에게 덮어 씌워 놓은 예수쟁이들! 그 벌을 무엇으로 감당하려는지...!  여호와(예수)에게 덮어 씌워진 누명(오명)을 벗겨드리기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반기련! 여호와(예수)는 예수쟁이부터 챙길까 아니면 반기련 회원부터 천당으로 보내 주고 싶을까? ㅎㅎ...아멩구 할렐루야!

제삼자 2014-03-30 (일) 17:48
[타이타닉호와 예수교]


미국의 교포 사회에서는 한국의 유명한 일간지를 미국판으로 바꾸어서 보급하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뉴스 따위는 그대로 놔두고, 많은 부분을 삭제한 후, 그 자리에는 교포 사회에 필요한 정보와 광고를 편집해서...
국내의 신문들도 마찬 가지이겠지만, 미국의 교포 사회에 보급되는 신문들도 대부분 광고 수입으로 유지되는 모양이다. 미국 내의 교포 신문은 발행부수가 많을 수가 없기 때문에 오로지 광고 수입에 크게 의지할 것 같다.

그런데, 그 광고 내용들을 보면, 반 수 이상이 예수교에 관한 것들이다. 다시 말해서, 각각의 교회들이 자기 교회로 나와 달라고 떼쓰는 광고들이다.
재미있는 현상은, A교회 광고가 게재된 날의 신문에는 A교회 목사의 칼럼이 실려 있고, B교회 광고가 있는 날은 B교회 목사의 칼럼이 보인다.
신문사(지부)들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광고주를 찾아 내야 되고, 찾기 쉬운 광고주는 예수교(각 교회)이고...그러기 위해서는 목사에게 그의 칼럼을 실어 줄테니 광고 좀 달라고 부탁을 하는 모양이다.

목사들은 먹고 살 터전도 확장할 겸, 이름도 널리 알려 유명해지는 알 먹고 꿩 먹는 양수 겹장으로 칼럼을 쓰기 좋아하는 것 같다. 목사들도 명예욕은 대단하다. 지옥이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기꾼들의 전형적 모습이다.
그런데, 목사들의 글이라는 게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인, 그럴싸한 낱말을 쭉 길게 나열하는...독자들이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런 것들이다. 
그런 종류의 글로 유명해져 보겠다고 우쭐대는 목사들의 명예욕은 그것이 굴욕이요 시궁창이며 지옥이라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거의 20 년 전, 미국판 모모 일간지에 뉴욕에 살고 있는 박OO이란 목사의 칼럼이 게재된 것을 보게 되었다. 내용은 '타이타닉호의 침몰 사건'에 대한 것이었다.
역시, 그 날의 신문에는 그 박OO 목사가 소속되어 있는 교회의 광고도 대문짝 만하게 실려 있었다. 그 박OO 목사의 글에서 떠들어 놓은 낱말 몇 가지를 추려 보면,
** "타이타닉호는 절대로 부서질 수 없는 현대 과학의 총 집합체이다."
** "타이타닉호의 선장은 수 십년 동안 커다란 배만을 부리던 베테랑이다."
** "배 안의 승객들은 술과 춤으로 광란의 쾌락을 즐기고 있었다." 등등...
확실한 근거는 없으면서 상식적으로 또는 짐작으로 적당히 떠들어 놓으면 말이 되는(?) 그런 글이었다. 조금 쯤 유식해 보이는 낱말을 길게 쭉 나열하면 문장이 되는 줄 아는 그런 글이었다.

이 때, 박 OO 목사의 글은 느닷없이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교통 사고 쪽으로 방향이 바뀌더니, "다이애나의 비명횡사 사건"도, "타이타닉호의 비참한 침몰"도 모두 여호와(예수)를 버리고, 세상 것에 현혹된 탓에 벌어진 비극이라며 침을 튀기고 있었다.
못 생긴 갈보 <카밀라>를 보는 챨스 황태자의 눈에 콩꺼풀이 씌었다는 둥, 다이애나 황태자비는 뭇 남성들과 술집을 전전하는 갈보였다는둥, 타이타닉호의 승객들은 쾌락에 푹 빠져 있었다는 둥...
이 신문이 한글로 씌어진 교포 사회의 시시한(?) 신문이었기에 망정이지...영국의 왕실이나 정부가 쉽게 알아 볼 수 있는 신문이었다면, 문제가 대단히 커질 수도 있는 막가파 식의 글 내용이 분명했다.

그 다음 날로, 필자는 그 박OO 목사의 글을 반박하는 글을 써서 그 신문사로 발송했었다. 즉시, 그 신문사의 지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여러 가지 얘기가 있었지만, 결론은 "사정상, 필자의 글을 게재할 수가 없다. 미안하다." "그러나, 필자의 글을 그 박OO 목사에게 직접 보여 주겠다." "필자의 글(원고지)을 신문사에서 영구 보존 형식으로 보관하고 있겠다." 등등의 얘기를 알려왔었다.
그랬을 것이다. 필자의 글이란 것이 예수교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내용의 글이었으니, 그것을 기사화한다는 것은 신문사로서는 바로 밥줄이 끊어지는 행위와 다르지 않은 것이었을 것이다.

뉴욕 타임즈의 논설위원 에두아르도 포터가 쓴 책 <모든 것의 가격>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아니, 만약 타이타닉호의 침몰과 여호와(예수)의 조화(심술?)에 관계가 있는 것이라면, 여호와(예수)는 정말로 잡놈이며, 예수교는 박멸되어야 할 악마의 소굴이 분명하다. 아멩 할렐루야!

자, 그러면 이제부터 에두아르도 포터가 말하는 타이타닉호의 침몰 결과를 보기로 하자.

비운의 여객선 타이타닉호 침몰 당시 "승객의 생사(生死)를 가른 것은 각자가 산 티켓의 가격이었다."
이것이 미국 뉴욕 타임즈(NYT) 경제담당 논설위원 에두아르도 포터(Porter·43)의 저서가 밝히고(꼬집고) 있는 골짜 내용이다. 이름하여 이것을 "모든 것의 가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포터에 따르면, 타이타닉호가 1912년 빙산에 부딪혔을 때, 생존율은 승객들이 지불한 탑승요금과 비례한다고 했다.

승무원과 승객을 포함한 2224명의 탑승자 중, 생존자는 711명.
1등칸 승객의 63%(319명 중 200명),
2등칸 승객의 43%(269명 중 117명),
3등칸 승객의 25%(699명 중 172명)가 살아 남았다.

요금은
1등칸이 30파운드(오늘 날의 시세 환율로 약 375만원),
2등칸은 13파운드(오늘 날의 시세 환률로 약 165만원),
3등칸은 8파운드(오늘 날의 시세 환률로 약 100만원)였다.

1~2등칸 승객들은 갑판 가까이에 있어 재빨리 탈출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3등칸은 배의 이물(맨 앞) 족이나 고물(맨 뒤) 쪽에 위치해, 승객들이 갑판 밖으로 나오려면 미로와 같은 복도를 헤매야 했다. 그러는 사이 물이 선실 안으로 차올랐고 구명보트는 동났다.
포터는 "가격은 사회의 이면을 보여주는 도구"라면서 "타이타닉호의 요금 체계와 생존율 사이 관계는 '경제적 불평등'을 반영한다"고 했다.
부유한 사람의 생명은 (빈곤층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갖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2001년 9,11 테러(뉴욕 쌍둥이 빌딩 사건) 이후 피해자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도 불거졌다. '경제적 보상'을 따지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생전 연봉이 고려됐다.
죽기 전 연봉이 400만 달러 이상인 피해자 8명의 가족에게는 640만 달러의 보상금이, 최저 연봉의 희생자 유족에게는 25만 달러가 지급됐다. 26배 차이였다.
포터는 "상위 1%가 미국 전체 소득의 20%를 가져가는 미국의 소득격차가, '생명의 가격'을 통해 드러났다"고 했다.

사실상, 예수교(또는 바이블) 속에서도 돈을 많이 갸져다 바치는 사람(녀석?)부터 장로도 되고 따라서 천국행도 돈이 많은 순서대로 입성할 것이 분명하다. 아멩 할렐루야! 다시 한 번 더 아멩 할렐루야!


** 이상의 세상 현상이 신(여호와=예수)의 짓이라면, 그게 개잡놈 짓이 아니고 뭘까?
아니, 그보다도 더 웃기는 현상! 돈이 없어서 큰 돈을 교회에다 바치지 못해 푸대접을 받는 것이 억울해서 투덜대면서도 그 교회의 귀신 노릇을 벗어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치들은 뭐지?
그 못난이 짓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시궁창 속에서 허우적대는 치들은 도대체 뭐냐 말이다. 설명이 더 필요해? ㅎㅎ...아멩 할렐루야!
제삼자 2014-05-13 (화) 05:54

[깡패 두목의 2종류]


* 깡패 두목 중에도 2가지 종류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 하나는 자기 똘마니들 주머니를 털어 먹는 깡패 두목이 있고, 그 둘은 바깥에서 뜯어다가 자기 똘마니들을 먹여 살리는 깡패 두목이 그것이다. 그러면, 예수교의 두목(여호와, 예수, 목사, 신부, 신학자 등등)들은 전자와 후자 중, 어느 쪽에 속하는 두목에 속할까? 바이블에서 그 답을 찾아 보기로 하자.


1) [(...너희(예수교의 두목들)가 선(善)을 미워하고 악(惡)을 좋아하며,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남비와 솥 가운데 담을 고기처럼 하는 도다. 그 때에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응답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행위의 악하던 대로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우시리라.] 

(미가 3;2~4)

예수교의 두목들은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발라내며, 뼈를 바수며, 고기를 저미어 냄비에 끓이고, 살점은 가마솥에 삶아 먹는다고 한다. 자기 똘마니를 털어 먹는 깡패 두목의 행패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이렇게 극악스런 짓을 하면서도 예수쟁이(특히 두목)들은 여호와(예수)를 향해서 울부짖어가며 기도를 한다고 한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그러나, 이런 녀석들의 기도를 들어 줄 신(神)이 있을 턱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이다. 대단히 정확하게 진단된 예수교의 모습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실제로 기도에 구체적으로 응답을 들어 본 자가 있거든 손을 들어 보라. 없지? 제발 좀 솔직해 보자. 그리고 또, 이 기회에 정신도 좀 차리자. ㅎㅎ...아멩 할렐루야!



2)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깡패 두목?)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 도다.] 

(미가 3;5)

선지자(깡패 두목)들은 입에 먹을 것을 물려주면 아부의 말로 축복을 떠들다가도 입에 아무 것도 넣어 주지 않으면 트집을 잡아 저주를 일삼는다고 한다. 
예수교의 여호와(예수)와 목사(신부) 등등의 행패를 아주 썩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미 예수교 속에서 돈을 후려 먹고 살아가는 두목(여호와, 예수, 목사, 신부, 신학자 등등)들로서는 그 더러운 습성을 치료할 방법도 없다.

역시, 깡패 두목 중에는 자기 똘마니 호주머니를 후려내서 털어 먹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외부에서 강탈해다가 자기 똘마니를 먹여 살리는 깡패 두목이 있다. 전자나 후자나 어느 쪽도 훌륭하다고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그렇더라도 후자에 비하여 전자는 치졸하기 짝이 없다. 자기 똘마니의 호주머니만 털어 먹는 한심스럽고  졸렬하기 짝이 없는 깡패 두목의 대표 주자가 바로 예수교의 두목(여호와, 예수, 목사, 신부, 신학자 등등)들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 외부에서 뜯어다가 어떻게 해 볼 생각을 못하고, 자기 똘만니 호주머니를 털어서 먹는 깡패 두목은 결국은 재주(힘)가 없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예수)는 전지전능해서 천지(우주)도 창조한 녀석이다. 이렇게 막강한 재주(힘)을 가졌다는 작자가 제 새끼들 등이나 쳐 먹는 이유가 무엇일까? 
    긴 설명 필요 없이 여호와(예수)는 허구인 동시에 예수교 자체가 통째로 혹세무민 집단이기 때문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제삼자 2014-05-17 (토) 08:56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처리하나 보자]


[(예수 가라사대)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참새는 하찮은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여호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여호와) 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

(마태 10; 29~30)  


한 냥에 두 마리 씩 팔리는 값싼 참새(하찮은 존재)라도 여호와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땅에 떨어지는(죽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여호와는 각 사람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세어 놓고 계신다."는 것이 예수의 강력한 증언이다. 예수는 신(神)의 전권을 위임 받은 여호와의 독생자이다.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이 사람의 목숨이다."라고 설파한 자가 또한 예수이다. 그런데, 이번에 순천 앞바다에서 수 백 명의 귀한 생명들이 떼 죽음을 당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각 사람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세어 놓고 계시다는 여호와의 어떤 위대한 섭리가 숨어 있을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 숨은 위대한 섭리를 한 번 들어 보기로 하자. 어차피, 여호와(예수) 녀석은 예나 지금이나 오리무중으로 꼭꼭 숨어 있으면서 선지자, 제사장, 목사, 신부, 신학자 등등의 앞잡이를 통해서 뭔가를 떠들어 왔으니까, 이번 참사에 대해서도 그 앞잡이들을 통해서 뭔가 한 말씀하셔야 될 것이다.

자, 한 번 떠들어 봐라. 들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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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교의 어느 꼭대기 층 인사가 말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다. "하나님(여호와?)께서 위로할 것이다."  "다 같이 기도하자." 전자는 진도 앞바다 조난 사고를 향해서, 후자는 터키의 탄광 사고를 두고서 해놓은 말이라고 한다. 물론, 신(神)의 앞잡이이므로 여호와(예수)의 섭리를 대변한 것이리라.

그러나, 전지전능해서 못하는 것이 없다는 녀석!, 사랑이 많아서 세상을 사랑으로 다스린다는 녀석!,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시련을 준다는 녀석!(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온 천하보다도 귀중한 것이 목숨이다."라고 설파한 녀석! 각 사람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헤아리고 있다는 녀석!...이런 녀석의 하는 짓이 겨우 "위로 할 것이다." "다 같이 기도하자, 가 될 말인가?

이번 순천 앞바다의 비통한 사고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예수교(여호와 또는 예수 및 예수쟁이)는 조용히 이 세상에서 없어져 주어야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껄쭉하고 번들번들하고 미끌거리는 예수교의 악독하고도 더러운 모습은 여전히 활보를 하겠지? 이를 어쩔거나!


**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들의 아픔을 가늠할 방법이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피해보상을 못하는 무능한 신]


참고; 진도 앞바다의 참혹한 희생에 대하여 깨알만큼이라도 보상을 할 수 없는 무능한 신(神)이라면, 예수교의 여호와(예수)는 이제 조용히 이 지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다. 예수교의 혹세무민질은 이제 멈춰져야 마땅하다.


* 피해보상--국민이나 주민이 당한 손해나 손실(재산, 명예, 신체 따위)을 보충하기 위하여 국가 또는 공공 단체가 적법한 행위에 의하여 제공하는 대가.

[(사울)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이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그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85 인을 죽였고, 제사장들의 성읍(城邑)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사무엘상 22;18~19)

제사장은 여호와의 앞잡이(고급스럽게 말해서 사자)이다. 그렇다면, 따져 볼 필요도 없이 제사장은 여호와로부터 신임을 얻었을 것이 분명하며, 동시에 여러 가지 특혜도 주어져 있을 것이다.
그 특혜 중 하나에는 생명과 신체를 안전하게 보호 받을 수 있는 조건도 들어 있을 법하지 않은가?
그런데, 제사장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놉(지명)에서 제사장 종류에 속하는 85 명과 그 가족 남녀노소 전체와 가축까지도 억울하게 전멸을 당하는 참극이 벌어지고 있어도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로부터  보호를 받기는커녕 전혀 아무런 보상도 없다.
아니, 전현 아무 반응도 없다. 여호와의 앞잡이 노릇을 하다가 억울하게 전멸을 당했는데도 여호와에게는 눈구멍 귓구멍 콧구멍이 없는지 전혀 아무 반응이 없다.  

바이블에는 대단히 이상한 방향으로 초점(焦點)이 맞추어지는 것이 있다. 백발백중 예외가 없다.
예로서, 甲이라는 못된 사람이 여호와의 사람 乙을 죽이면, 甲은 나쁜 놈이라고 지적되면서 여호와의 벌(罰)을 받을 것이라는 예언 따위만 있을 뿐, 억울하게 희생된 乙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다.
위의 바이블 원문 내용도 그렇다. 도엑 또는 사울왕이란 놈은 나쁜 놈이요, 언젠가는 여호와의 벌을 받을 것 같은 암시만 보일 뿐, 제사장 85 명을 비롯하여 도륙된 남녀노소의 그 많은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 대책(보상)이 없다. 전지전능한 신(神) 여호와의 충성스런 앞잡이들인데도 말이다.
 
사전(事前)에 죽지 않도록 보호를 해 주다든지, 억울하게 죽여졌으면 살려 준다든지, 아니면 천당으로 보냈다든지, 무슨 말이 있어야 될 것 아닌가?
다시 말해서, 예수교(바이블) 속에 억울한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단 한 톨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럴 경우, 여호와(예수)에게 주어져 있다는 멋드러진 명칭 즉, 전지전능한 신, 사랑이 많은 신, 공의로운 신 등등의 타이틀은 무엇에 써 먹으려고 붙여진 이름일까?


1) 첫 살인 사건; 살인자 가인에게 벌을 주는 장면은 있지만, 가인에 의하여 억울하게 피살된 아벨에 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여호와가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자기에게 충성을 바치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아벨을 다시 살려 놓아야 될 것 아닌가?
예수교(또는 바이블) 속에 범죄자에 대한 처벌 시범은 보여 주면서, 억울한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전혀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신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 보상을 전혀 해 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실토할 의향은 없는가? 예수교는.


2) 예수가 태어났을 때: 예수를 죽이려던 헤롯왕에게 나쁜 놈이라는 암시만 주어져 있을뿐, 헤롯왕에 의하야 억울하게 죽여진 수 많은 아기들에 대한 말은 전혀 없다.
예수교의 여호와(예수)가 정말로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억울하게 죽여진 수 많은 아기들을 다시 살려 놨어야 될 것 아닌가?
신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 보상을 전혀 해 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실토할 의향은 없는가? 예수교는.


3) 욥(인명)을 시험할 때; 욥의 아들 딸 10 명이 마귀들에 의하여 억울하게 죽여진다. 이것은 여호와가 직접 살인한 것이나 다름 없다.
시험의 결과 욥은 대단히 훌륭한 합격품으로 판명되었다. 합격 보상으로 욥에게 새로운 자식 10 명을 다시 주어 축복하지만, 이미 죽여진 10 명에 대한 말은 어디에도 없다.
새로 태어나는 자식을 먼저 죽여진 자식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죽여진 자식 10 명을 다시 살려 놓아야 그것이 제대로 된 보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교에는 보상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전지전능한 신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므로 죽은 자식 10 명을 다시 살려 낼 수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뻔한 사실을 실토할 의향은 없는 것인가? 예수교는. 


4) 히브리의 북쪽 왕국 이스라엘의 제7 대 아합왕 때에는 여호와의 선지자들이 도륙되는 수난의 시대였다.
여기에서도 아합왕만 나쁜 놈이 되어 여호와의 벌을 받고 죽는 장면만 있을 뿐, 억울하게 죽여진 수 천 수 백 명의 선지자들에 대한 말이 단 한 줄도 없다.
바이블 내용 전체와 예수교 역사 전체를 통틀어 악(?)에 대한 처벌 시범만 보여지고 있을 뿐, 피해 보상에 대해서는 조금도 그 시범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신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는 현상이란 것을 실토해 볼 생각은 없는가? 예수교는.


5) 여호와의 성전(聖戰); 바이블(여호와=예수의 가르침) 내용과 예수교 역사 속에는 무수히 많은 성전(聖戰)이란 것이 감행된다.
아무리 여호와(예수)의 성전일지라도 여기에는 억울한 사상자(死傷者)가 무수히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있지도 않은 승리에 대한 이야기만 장황할 뿐, 분명히 있을 그 많은 억울한 사상자(死傷者)에 대한 보상 얘기는 어디에도 거론되는 바 없다.
전지전능하다면서도 억울하게 죽거나 부상당한 사람에 대하여 전혀 보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호와(예수)가 없는 존재이거나 아니면 아주 더럽게 고약한 나쁜 놈일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6) 다윗(왕)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을 때;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는 비참하게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또, 방금 태어난 어린 아이가 대용물(代用物)로 죽여졌다.
이때, 다윗과 밧세바에게는 벌(罰) 같지도 않은 벌이 내려졌을 뿐, 억울하게 죽은 우리아와 어린 아이에 대한 말(보상)이 없다.
전지전능한 신이란 녀석이 존재한다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결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되는가?
여호와(예수)는 차제에 "나는 없는 가짜 신이다."를 자백하고서 예수교를 박차고 뛰쳐나올 의향은 없는지?


7) 순교자(殉敎者)라는 것도 그렇다. 순교자들 덕분에 살아 남은 예수쟁이들만 종교 흡혈귀가 되어 각종 혜택을 누리며 신나게 살아갈 뿐, 순교자들에 대한 보상은 전혀 없다.
전지전능한 신(神)이요, 인간의 생사(生死)를 주관한다는 신(神)을 모시는 종교에서 순교자(殉敎者)의 존재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애굽 왕 바로에게 언감생심 핏대를 올리며 악담과 저주를 퍼부어 대고도 아무 탈 없이 모세는 살아 나올 수가 있었고, 통치자까지 되어 행복한 인생을 만끽한 것으로 되어 있다.
선지자 엘리야도 악독하기 짝이 없는 아합왕 앞에서 할 소리 못할 소리 모두 지꺼리고도 죽지 않고 나와서 행복한 인생을 구가한 것으로 되어 있다.

결국, 똘마니 예수쟁이들은 순교(殉敎)라는 이름으로 죽음을 당해야 되고, 지도자급 예수쟁이는 살아 남아서 호의호식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상에는 입으로는 온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애국자이지만, 아예 병역의무와는 거리간 먼 고관대작과 재벌 및 얌체족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예수교 속에도 순교를 당해 줘야 되는 바보 멍텅구리 멀대가 있는가 하면, 여호와(예수)의 이름을 팔아 호의호식하는 약삭빠른 종교 귀족(정확하게는 잡것들)도 있게 마련이다.
종교 귀족에게는 순교라는 것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보 멍텅구리 멀대 예수쟁이들의 억울한 순교는 언제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무엇으로 보상으로 받게 될까?


8) 예수교는 인류 역사(歷史) 속에다 너무도 많은 악(惡)과 불행을 배설해 놓았다. 결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여졌다.
이에 대하여 교황은 구교(舊敎)를 대표하여 입으로만(건성으로) 사과라는 것을 했다. 그런데, 개신교(改新敎) 쪽에서는 "그것은 이단(異端) 또는 사이비(似而非)가 저지른 일이다."로 발뺌만 하고 있다.
이 경우, 사과한 쪽이나 발뺌하는 쪽이나 모두들 저 잘낫다며 신나게 잘 살아 가고 있다. 반면에, 그(예수쟁이)들에 의하여 죽여진 그 많은 억울한 사람들에 대하여는 아무 대책(보상)이 없다.

악(惡)에 의하여 희생된 인명에 대하여 아무 대책(보상)이 없기는 여호와(예수)도 속수 무책이고, 현실적으로 예수쟁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능(能)치 못함이 없는 전지전능한 신(神)을 모신 종교는 무엇을 위하여 왜 존재하는 것일까?


[결론] 인간 세상에서는 각종 법률이란 잣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을 기준으로 인간들의 잘잘못에 대하여 처벌도 하고 보상도 한다.
범죄가 발생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도 있게 마련이다. 이 때, 각종 법률은 가해자에게는 처벌을, 피해자에게는 보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인간의 힘으로는 처벌이나 보상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특히, 보상 문제는 전혀 불가능한 것이 많다. 어떤 범죄의 피해가 살인일 경우, 인간의 힘으로는 그 피살자를 보상 차원에서 다시 살려 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하고, 그 신이 공명정대한 존재라면, 어떤 경우에도 처벌과 보상 문제를 조금도 차질 없이 시행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세상에서는 처벌과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도 없었다. (없다.) 
이는 왜일까? 이 세상에는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한다면, 그 신은 아주 고약하고 나쁜 잡놈일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이다. 어떤가? 이 결론이 틀렸다고 생각되는가?

예수교에는 여호와(예수)라는 전지전능한 신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그 신은 천지를 창조하고 그것을 임의로 주관한다(다스린다)고 한다.그런데,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진짜로 가관이다?!
그렇다면, 여호와(예수)는 존재하지 않는 가짜이거나, 아주 고약한 나쁜 잡놈이 분명할 것이다. 능력이 되는데도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면...

또, 다시 그렇다면, 예수쟁이들은 여호와(예수)를
1) "존재하지 않는 가짜 신이다."와
2) "성질머리가 아주 고약한 나쁜 잡놈이다." 중, 어느 하나를 택할 때가 됐다고 생각되지는 않는가?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 그럼, 한 번 깊이 생각해서 한 가지를 택해봐!
농담 또는 장난 말로 흘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 쯤을 알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쟁이들아! 
제삼자 2014-09-25 (목) 15:06
[산소 생산 공장을 견학하고 오다]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남아메리카 아마존강 유역의 열대 정글(jungle=밀림=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숲)이 급속도로 파괴되는 모습을 안타까워 하면서 사람들 특히, 과학자들은 말한다고 한다. 

"지구 위에 마지막 남은 산소 생산 공장이 파괴되고 있다."고.

200 년 전의 미국 다람쥐들은 피츠버그(Pittsburgh)에서 인디애나폴리스(Indianapolis)까지 600 km가 넘는 거리를 땅을 한 번도 밟지 않고 이동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미국의 동부 지방 펜실바니아 주에서 중부 지방 인디애나 주까지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었던 상황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말이 되겠다.
모르기는 해도 200 년 전의 미국 다람쥐들은 600 km가 아니라, 뉴욕에서 덴버까지 장장 2,800 km까지 땅을 밟지 않고 왕복 여행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지금은 그 넓은 대평원(내륙평원+대평원+캐나다 순상지)이 개간되어 거의 모두가 농지로 바뀌어 있다. 물론, 아직도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드넓은 숲(forest)과 수목원(arboretum)을 무수히 가지고 있는 거대한 나라가 미국이지만.

필자는 아직 아마존강 유역으로 여행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곳의 자연 파괴 현상을 실감하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6.25 사변을 겪으면서 우리 한반도가 벌거숭이 <민둥산>으로 흉상 맞은 모습을 하고 있던 시절을 잊지 못하고 있다.
우리 한반도에서도 200 년 전 아니, 100 여 년 전까지만 해도 백두산의 다람쥐가 지리산까지 땅을 한 번도 밟지 않고 왕복 여행을 할 수 있었으리라!
이러했던 우리의 삼천리 금수강산이 열강(주로, 일본과 러시아)의 침탈과 6.25 사변을 전후해서 전 국민이 땔감을 위하여 너도 나도 경쟁적으로 전 국토를 황폐화시킨 결과였었다. 끔찍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각설하고)

미국 뉴욕 주의 북쪽에 애더란댁(The Adirondacks)이라는 이름을 가진 국립공원이 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그랜드캐년, 엘로우스톤, 요세미테 등, 미국의 국립공원들의 이름을 들어보기도 하고, 직접 여행도 해보아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 애더란댁이라는 이름을 가진 국립공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 곳으로 직접 여행을 해 본 사람은 더 더욱 드물 것 같다.
그러나, 애더란댁 국립공원은 그랜드캐년과 요세미테 국립공원을 합친 것보다도 넓은 미국에서 가장 커다란 국립공원일 뿐만 아니라, 지구 위의 수 많은 자연 환경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시점에서 그 자연이 원형 그대로 고스란히 보존된 대단히 커다란 숲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애더란댁 국립공원은 현재 지구 위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거대한 산소 생산 공장 중 하나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이 거대한 산소 생산 공장을 필자가 지난 여름 여행에서 견학을 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던 것이다.
  
필자는 금년(2014년), 여름 석 달 동안(6월 12일~9월 12일) 미국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가 있었다. (사실은 부실한 몸뚱이에 대한 철저한 건강 검진을 위한 미국 방문이었지만)
60 대 중반까지, 필자는 대도시 또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명승지를 찾아다니는 여행을 했었다. 그러나, 60 대 중반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깡촌을 두루두루 찾아다니는 여행을 즐기고 있다. 
이러한 시골 여행을 보태주느라고 그렇게 됐던가? 지난 여름, 국립공원이면서도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미국 사람들은 많이 알고 있겠지만) 애더란댁 국립공원으로 3박 4일 동안 여행을 즐기게 될줄이야!!! 
필자의 가족을 실은 자동차가 시속 55 마일(약 90 km)로 달려서 이 거대한 숲을 관통하는 데는 5 시간도 더 걸린 것 같다. 물론, 중간에 멈춰서 음식도 사먹고, 휴식도 취하고 했지만.
애더란댁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길은 동서남북으로 여러 개가 뚫려 있었는데, 거의 모두가 Principal highway(지방 국도라고 번역하면 될까?))였다. 주로 시속 55 마일로 달리 수 있는 길들이다. 중간 중간에 마을을 만나거나 학교 등, 건널목이 있을 때는 25 마일 이하로 속도를 줄이기도 하고 멈춤도 해야 한다.
동쪽 변두리를 스쳐지나가는 특급 고속도로(Interstate 87)를 제외하고는 애더란댁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길들은 대부분 Principal highway(일반 고속도로)였다.

미국의 고속도로 종류에는 Interstate highway와 U.S. highway라는 것이 있다. 둘 다 비슷한 특급 고속도로이지만, 전자는 출발해서 끝까지 멈춤 없이 달리 수 있는 초특급 고속도로이고, 후자는 아주 드물게는 신호 대기를 해야 되는 경우도 나타나는 점이 다르다고나 할 수 있을까?
그 외에도 Other multilane highway, Principal highway, Other through highway 등, 일반 고속도로가 있다. 지방 국도 또는 지방 고속도로 쯤으로 여겨도 될 것 같다.
남북으로 달리는 길들은 홀수(5,15,75, 83, 395 등)로 명명되고, 동서로 달리는 길들은 짝수(90, 70, 20, 74, 694 등)로 이름이 지어져 있다.
예를 들면, I 80(Interstate 80)은 대서양 연안의 뉴욕에서 태평양 연안의 샌프란시스코에 이르는 특급 고속도로이고, I 95(Interstate 95)는 북쪽의 메인 주와 남쪽의 플로리다 주를 연결하는 특급 고속도로이다.

애더란댁 국립공원은 자그마치 그 넓이가 6,100,000 에이커(acres) 즉, 미터법으로 계산해서 24,700 km²나 된다. 익숙한 말로 표현하면, 직경이 400 리 쯤 되는 둥근 타원형 모양(남북으로 조금 긴)의 거대한 숲이 바로 애더란댁 국립공원이다.
이 국립공원에는 크고 작은 아름다운 200 여 개의 호수가 있고, 해발 400~1,600 m 높이의 서로 연결되지 않은 높고 낮은 100 여 개의 산봉우리들이 포함되어 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면서 빙하가 남긴 흔적이라고 한다.
** 애더란댁 국립공원은 애팔래치아 산맥(Appalachian Mts.)의 일부로 간주되기도 하고, 지질학에서는 캐나다의 로렌시아 순상지(지각 중에서 지질학적으로 가장 오래되어 안정된 땅)에 연결되어 있다고도 본다. 좀 더 복잡한 부연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지만, 여기서는 생략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숲(애더란댁 국립공원)으로 들어갈 때와 나올 때, 그리고 3박 4일 동안, 우리를 태운 자동차는 모두 다른 길들을 이용했는데, 달리는 차 안에서 우리 가족들은 "아!" "아!"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몇 십 년은 물론 백 년 또는 수 백 년 된 아름드리 거목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광경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게 하기에 충분했다. 수종은 가문비나무, 소나무 그리고 각종 활엽수(주로 단풍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전 세계의 모든 전봇대를 지금 당장 모두 교체를 해야 된다고 하더라도 이 곳의 나무 만으로도 충분하겠다." 필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소실(관리나 보관을 잘하지 못하여 없어짐)된 궁궐과 남대문을 복원하는데 필요한 목재 몇 개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부정으로 외국 목재를 사용했느니 어쨌느니 하며 아름답지 못한 말들이 무성한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서, 끝없이 펼쳐지는 애더란댁 국립공원의 빼곡하게 들어찬 거목들을 보게 된 필자의 눈과 마음은 "아!" "아!" 정도의 감탄사가 아니라 "가슴이 써늘하다못해 뻐근했다."고나 할까! 

우리 가족이 애더란댁 국립공원을 3박 4일 동안 두루 살펴보기 위해서 자리를 잡은 곳은 호반의 도시 레이크 플라시드(Lake Placid)에 있는 조금 쯤 값 비싼 호텔 방 2개였다. 말이 도시이지 인구가 겨우 2천 명 남짓한 조그만 마을이었다. 
시골 동네여서 마천루 같은 웅장한 건물은 없고, 호텔이나 공공 건물 등, 모두가 1~2층 짜리 뿐이었다. 그러나, 여행철이라서 사실상 모든 호텔들의 숙박비가 여간 비싼 게 아니었다.
필자의 가족이 머물던 호텔은 작으마한 호수(Mirror Lake, 크기가 일산 호수공원에 있는 호수의 5~10배 쯤 될까?) 가에 세워진 건물의 2층 방이었다. 
겉에서 보기에는 작은 건물이었지만, 내부는 침실, 응접실, dining room 그리고 호수를 한눈에 내다볼 수 있도록 큼직한 테라스까지 내어 달아 놓아서 제법 운치가 넘쳐나는 그런 고급(?) 호텔이었다. 침실은 10 명도 더 잘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랐다. 킹 사이즈 침대가 2개, 소파도 침대로 변형시킬 수 있는 것이고.
가족 전체가 호수에 들어가서 보트, 요트, 카누, 윈드서핑 등, 뱃놀이를 하는 동안 필자는 테라스의 탁자에다 몇 가지 다과를 배설해 놓고서 망중한을 즐길 수가 있었다. 아니다. 바쁜 가운데의 한가한 틈(망중한)이 아니라, 한가한 중에도 더욱 한가한 여유를 음미할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릴 수가 있었다.
복잡한 도시의 고층 빌딩 속에서 무한 경쟁으로 허덕이고 있는 요즈음의 젊은이들 중에는 나지막한 건물들이 드문드문 배치되어 있는 조용한 시골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늙은이의 느긋한 삶이 얼마나 평온하고 커다란 행복인지, 그 사실을 모르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Lake Placid 근처에 <Saranac Lake>와<Tupper Lake>라는 이름을 가진 두 개의 동네가 더 있는데, 이들 세 개의 도시(동네?)를 묶어서 하나의 행적 구역으로 다루는 것 같았다. 전화 번호부도 Tri-Lakes Area, NY(3개의 호반의 도시, 뉴욕주)라고 이름을 붙여 함께 수록해 놓고 있었다. 전화 번호부 두께는 50 페이지도 안 되었다. 세 동네의 인구를 모두 합쳐도 몇 명 안 된다는 증거이다.
6.25 전쟁 당시 격전지로 알려진 지도상의 개념인 <철의 삼각지>가 연상되었다. 김화(金化), 철원(鐵原) 그리고 평강(平康)을 잇는 세 도시를 <철의 삼각지>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이 조그만 세 개의 동네 중 하나인 Lake Placid(레이크 플라시드)에서는 1932년과 1980년, 이렇게 두 번에 걸쳐서 동계 올림픽이 개최되었다고 한다. 2018 년, 동계올림픽 개최 예정지인 평창의 인구가 9,000 명(평창군 전체 인구는 4 만 명) 정도라고 하니까, 하계올림픽과는 사뭇 달리 동계올림픽은 산간 벽지의 조그만 동네에서 치러지게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인구 2천 명 남짓한 작은 동네이지만, Lake Placid는 두 번의 동계올림픽의 유산을 오래도록 지속적으로 향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까지도 올림픽 전통이 살아 숨쉬는 명소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세계 최초로 동계올림픽 실내 경기장(올림픽센터)을 확보한 Lake Placid는  미국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더 많은 선수들을 배출하는가 하면, 각종 세계 선수권 대회도 유치하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사실상, 애더란댁 국립공원 특히, 레이크 플라시드(Lake Placid) 쪽으로 필자의 가족이 3박4일 동안 여행을 하게 된 대단히 커다란 목적은 따로 있었다.
애더란댁의 거대한 숲을 감상하는 목적이 20 %라면, 그 다른 목적은 80 %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다른 목적은 지극히 필자의 가족에게만 대단히 중요하고 경사스러운 일일 뿐,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중요할 수가 없는 것이기에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산소 생산 공장 견학] 이야기도 여기 쯤에서 거두절미하고 대 단원을 내리기로 한다........
제삼자 2014-09-25 (목) 15:08
[목사의 뱃속에다 보물(재물)을 쌓으라]


[(예수 가라사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銅綠)이 해(害)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목사(또는 신부)의 뱃속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아멩!

(마태 6;19~21)


* 참고; 예수교의 하늘=목사(신부)의 뱃속
* 위의 바이블 내용은 성령의 은사를 받은 후에 그 감동으로 씌어진 것이다.



[말이 많으면 빨갱이 또는 사기꾼이지 뭐]

한 때, 말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서, "너 빨갱이냐?" 또는 "너 예수쟁이로구나?"하고 핀잔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 말이 많은 자는 빨갱이 아니면 예수쟁이일 가능성이 높다.
말이 많다는 것은 뭔가 결함이 많은 것을 은폐하려는 수작이다. 그리고, 실제로 말이 많으면 쓸 데 있는 말이 별로 없는 법이다.
그래서 또, 말이 많은 사람을 향하여, "너 빨갱이냐?" 또는 "너 예수쟁이로구나?" 라고 했을 때, 이 말은 빨갱이와 예수쟁이는 이 세상에 써먹을 데가 없다는 말도 포함된 것이다.
특히, 예수쟁이들에게는 말 못하고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지 모를 지경이다. 귀신에 대해서 아는 체를 하며 떠들어대는 자체가 이미 사기꾼 행각이란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참고; 실제로, 공산주의는 그 태어난 뿌리가 예수교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이블 내용을 들춰가면서 그 사실을 나열하는 일은 여기에서는 일단 생략하기로 한다.)

바이블을 보자.

(1)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한 21;25)

예수가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행한 말이나 보여 준 시범이 많고도 많았다는 말이다. 이 얼마나 쪼잔한 녀석이요, 좁쌀영감탱이보다도 못나 먹은 행동거지인가? 
신(神)이란 녀석이 자신을 인간 세상에다 알리는 방법이 그렇게도 없어서 그토록 미주알고주알 될 소리 안 될 소리로 잡다하게 수다를 떨어댔어야 되었는가?
세상만큼 커다란 창고에다가도 들여 쌓을 수 없을 만큼 많이 떠들어 놓은 것들 중에서 중요한 것들만 추리고 추려서 모아놓은 것인데도 바이블 내용이 아직도 77,000 줄이나 되고 있다.

아니다. 바이블은 77,000 줄이 아니라, 실제로는 수 백 만 줄이나 된다. 그 많고 많은 잡다한 것들 중에서 추리고 추려서 모아 놓은 것이 바로 오늘의 바이블(77,000 줄)이다.
그렇게 많은 말을 떠들어 놓고도 뭔가 부족하고 미심적어서 추가적으로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예수의 말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요한(바이블)이라는 책 속에서 예수가 떠들어대는 말의 특징을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예수쟁이)게 이르노니..."라고 되어 있다. 얼마나 자신 없는 궤변이요 사기꾼 소리였으면, <진실로 진실로>를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을까?

결국, 말이 많다는 것은 쓸만한 건더기가 한 가지도 없다는 뜻이며, 동시에 빨갱이와 예수쟁이도 이 세상에 써먹을 데가 한 군데도 없다는 결론이 된다. 아멩 할렐루야!

(2) [모든 바이블은 여호와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여호와의 사람(결국은 예수쟁이를 지칭함)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후서 3;16~17)

세상 일이란 것이 여호와의 감동으로 되는 것이라면 바이블(예수와 여호와의 잔소리)이 무엇에 필요할까??
여호와의 감동이 미치는 곳에 해결되지 않을 것이 없을 텐데, 구태여 "이 세상이라도 기록된 책을 둘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많은 말과 행동을 쏟아 놓을 이유가 무엇일까?
그래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본보기 즉, 바이블(예수와 여호와의 가르침과 시범과 감동)이 있어서 예수교와 예수쟁이의 역사와 현실이 저토록 잔악(殘惡=잔인하고 악독함)하고 시궁창화되어 있는가?

바이블에다 글로 남기는 행위에는 감동을 주었다면서, 실질적인 예수쟁이들의 언행에는 그 흔한 감동을 주지 않는 모양이지? 예수교의 과거와 현재가 모두 썩어문드러지고 있는 것을 보면...
어떤가? 아직도 바이블이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의 언행이 담긴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바이블이 저렇게 두껍다는 것은 예수와 여호와가 가짜라는 사실을 곱빼기로 증거해 주고 있을 뿐이다. 거기에다 단 한 줄도 모순되거나 거짓되지 않은 내용이 없음에 이르러서야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으랴?  

누군가 필자의 진단을 변명하고 싶어 할 텐데, 이 변명이 또한 예수와 여호와가 철저하게 허구(虛構)임을 증명해 주는 아주 좋은 본보기가 된다.
예수교의 모든 것은 어떤 방향에서 조명하여도 허구, 모순, 궤변 아닌 것이 없으며, 여기에다 세상의 모든 잔악(殘惡=잔인하고 악독함)을 내포하고 있는 복마전(伏魔殿=온갖 못된 마귀들이 숨어 있는 곳)이 다름 아닌 교회라는 곳이다.
어쨌든, 떠들어 대거나 보여준 시범(행동)에 대한 기록이 세상만한 창고가 있어도 다 들여쌓을 수을 정도로 많다는 것은 예수(여호와)의 행적이 모두 거짓이요 허구라는 사실을 아주 명확하게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예수쟁이를 써먹을 곳은 한 군데도 없고, 동시에 예수교가 있는 곳에 평화는 없(었)다."



제삼자 2014-10-01 (수) 08:45
[핵심 생산 인구] 


(1) 얼마 전, 주로 70 대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단체의 회원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말이 있다. 
50대 후반의 어느 유명한 교수(과학자)의 말과 행동을 가리켜 "어린애의 불장난"이라고 성토하는 내용이었다. 
나서서 뭐라고 떠들어 볼만한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조용히 입다물고 듣고만 있었다. 

50 대 후반의 전문가의 활동이 "어린애의 불장난"이면, 7,80 대 늙은이의 망령(?)에 가까운 주책바가지 고집이 어른다운(?) 모습일까? 
50 대 후반의 원숙한 사람의 활동이 눈에 거슬리고, 못마땅해 뵈는 늙은이의 안목이야 말로 "어린애만도 못한 고리타분한 고집불통"이 아닐까? 
늙어 가면서 거죽만 우굴쭈굴해지는 게 아니라, 속까지도 우굴쭈굴 험상 궂은 모습으로 굳어지는 것은 아닐까? 

(2) 지난 달(2012 년 12 월), 미국에 살고 있는 70 대 부부가 한국으로 필자를 방문했었다. 
남편은 71 세이고, 부인은 72 세, 그러니까 부인 쪽이 1 살 더 많은 연상의 부부였다. 
그들 부부는 45 살된 딸과 41 살된 아들을 두고 있다. 딸은 한국에 살고, 아들은 미국(뉴욕)에 살고 있다. 

잠시, 한국을 방문 중인 아버지(71 세)가 하루는 45 살 먹은 딸과 대선 문제로 의견이 달라서 밤새도록 다투었다고 한다. 
그 부인의 표현을 빌리면, 딸과 싸울 때의 아버지의 얼굴은 불그락 푸르락 가관이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필자가 그 아버지(71 세)되는 사람에게 몇 마디 질문을 던져 봤다. 

"당신은 40 대 시절에 70 대 늙은이를 만나면, 사람 취급을 해주기는 했었소?" 
"당신은 당신 딸이 서울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틈만 나면 자랑을 해오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똑똑한 딸이 이제 45 살입니다. 그런데, 71 살 먹은 늙은이가 45 살 먹은 젊은 딸을 이겨보겠다고 악을 썼다 이거지요?" 

결국, 아버지되는 사람은 아무 대답도 못하면서 뭔가 깊이 생각을 해보는 것 같았다. 

(3) 벌써, 1 년이 되었다. 
김정일이 죽고 그 아들 김정은이 등장하자, 각 TV프로에서는 경쟁적으로 전문가들이 나타나서 김정은에 대해서 갖가지 진단도 하고 예측도 했었다. 
필자의 기억에 의하면, TV에 등장했던 전문가들은 대부분 5,60 대 또는 70 대들로 보였다. 

그 전문가들 대부분의 진단에 의하면, 김정은은 29 살 짜리 풋내기라서 정권 안착에 모종의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 때, 그 TV를 시청하면서 마누라에게 말했었다. 
"내 눈에는 29 살을 풋내기로 보는 저 6,70 대 늙은이들이 진짜 세상 물정 모르는 풋내기로 보이는구만..."이라고. 

1 년이 지난 지금, 김정은에 대해서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결국은 50~70 대 늙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질병적 기우(杞憂=쓸데 없는 걱정=자기 환경에 절어 있는 망령?)임이 밝혀진 셈은 아닐까? 
세종대왕은 21 살에 등극했고, 진흥왕은 6 살, 광개토왕은 17 살, 조선의 성종은 12 살에 임금에 올랐다. 
물론, 등극하자 마자 실권을 쥐고 모든 것을 처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광개토왕은 38 살에 죽었고, 조선의 대학자 율곡 이이와 22 대 왕 정조는 각각 48 살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상록수의 저자 심훈과 메밀꽃 필 무렵의 저자 이효석은 모두 35 살 때 죽었다. 
너무도 젊은 나이에 죽었기 때문에 \"어린애의 불장난\"도 못해 보고 인생을 마감했을 것 같다. 
그러나, 위의 인물들은 한국 역사 속에서 커도 너무 커다란 족적을 남겨 놓은 인물들이다. 

(4) 5,60 대 늙은이들 70 %는 저쪽, 2,30 대 젊은이 70 %는 이쪽... 
1~2 %의 다름이 아니라, 수십 %가 얼굴을 붉히면서 저 잘난 멋으로 당파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대단한 정치적 경륜을 가지고 있기나 한 것처럼 자신의 주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 서지 않고 싸운다. 

부모 없는 자식이 없을 것이고, 자식 없는 부모도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늙은이만 따로 있는 집도 없을 것이고, 젊은이만 따로 있는 가정도 없을 것이다. 
늙은이와 젊은이는 모두 1 촌 또는 2 촌으로 묶여 있는 피붙이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되는 가족이란 말이다. 

아니, 자식 쪽에서 효도하는 마음으로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여 부모 쪽에서도 똑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죽더라도 너(자식=젊은이)는 어떻게 하든 살아 남아야 한다."고 말해야 되고, 실질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되는 것이다. 
이것이 늙은이(부모)가 가져야 될 마음 자세이다. 

그런데, 그런데...50 대 또는 40 대의 자기 자식의 활동을 가리켜 \"어린애들의 불장난\"으로 몰아 붙이는가 하면, 제 자식(젊은이)을 상대하여 이겼다고 쾌재를 부르는 늙은이들이 많아 뵌다. 
뭔가 이상한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아서... 
앞으로 젊은이(자식)들이 살아 갈 세상에다 너무 삭막한 인간 관계 모형을 남겨 주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5) "아들이 가장 먼저 뛰어 넘어야 될 산은 아버지"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자식이 부모를 극복하지 못하는 가정이 있다면, 그 가족은 성공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늙은이 쪽에는 젊은이가 갖지 못한 기득권이란 것이 쥐어져 있어서 늙은이의 고집불통적 고정관념이 우세할 수밖에 없다. 

알렉산더 대왕의 부왕은 필리포스 2 세인데, 그도 스스로 정복 전쟁을 여러 번 감행했다고 한다. 
왕이 직접 진두지휘한 전쟁에서 승전을 하고 개선을 할 때, 그 국가적 환영행사는 대단했을 것이다. 
부왕이 보무도 당당하게 개선하는 장면을 볼 때 마다 어린 아들 알렉산더는 말했다고 한다. 

"저 늙은이가 왜 저러지? 나는 무엇을 하라고..." 
그렇다. 아버지가 다 했버리면, 아들이 할 일은 남아 있지 안게 될 것이다. 
하물며, 아들(젊은이)을 짓밟고 올라 서서 "내가 이겼다."고 으쓱대는 아버지(늙은이)가 있다면, 그 현상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될까? 

(6) 경제 전문 용어에 "핵심 생산 인구"라는 것이 있다. 
경제(생산) 활동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25 세로부터 49 세까지의 인구를 말한다. 
20 대, 30 대 그리고 40 대는 철부지 어린애들이 아니라, 한 나라의 지금 당장을 짊어지고 땀을 흘려야 되는 기둥이요 대들보들인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역사 이래 처음으로 "핵심 생산 인구" 비율이 줄어 붙었다고 한다. 
하기사, "불장난이나 해대는 어린애들"이 줄어들었다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5,60 대 늙은이들이여! 아니, 6,70 대 늙은이들이여! 아직도 뭔가 느껴지는 게 없을까? 

"원래 지구는 젊은이들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지구의 한 귀퉁이를 늙은이들이 잠시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더부살이하는 늙은이 주제에 주인(젊은이)을 닥달한다는 것은 적반하장(賊反荷杖) 바로 그 모양새이다. 
제자가 자기만 못하기를 바라는 스승, 자식이 자기만 못하기를 바라는 부모, 이런 어리석은 짓에 자기도 모르게 한 몫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차분히 따져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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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삼자 14/12/10 22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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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예수교의 핵심이 되는 문젯점]어떤 사람이 말했다."나는 사과나무를 싫어한다. 그 이유는 사과나무에 배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어떤가? 되는 말 같은가?…
제삼자 14/05/25 12902
723
*47[반기련이 가야 할 길]부창부수(夫唱婦隨);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이에 잘 따름" 부부 사이의 화합하는 도리를 비유적으로 나타낸 말이다.(1) "목적이 좋…
제삼자 14/04/02 5013
722
*46[장하다! 반기련이여!]한국 사람들 사이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특이한 정서에 정(情)이란 것이 있다. 정(情)이란 오랫동안 지내 오면서 생기는 사람과 사람 …
제삼자 14/02/11 4822
721
*45[예수교의 뿌리]** 예수교의 뿌리가 무엇(누구)인지 아는 예수쟁이가 있을까?   여호와를 세상에 최초로 소개한(발명해 낸?=만들어 낸?) 사람은 모…
제삼자 13/12/11 6172
720
*44[귀하디 귀한 내 자식의 친구로는?]   수 십 년 전(50 여 년 전) 일이다. 필자의 친구 중에 J라는 젊은이가 하나가 있었다. 그는 술과 여자…
제삼자 13/11/29 4065
719
*43[아주 커다란 착각(궤변)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일까?(1) 착한 일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일이 더 어려울…
제삼자 13/11/14 3931
718
*42[지상 최대의 사기극 제1막과 제2막 공연]* 참고; 시간이 없는 독자는 저 밑으로 가서 =====선 아래 <사기극 제1막>부터 읽어도 된다.[근거 제1]--구약…
제삼자 13/10/11 3892
717
*41[예수교는 예수도 감지 못한 자력 신앙(自力信仰)]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예수교는 타력(他力) 신앙이고, 불교는 자력(自力) 신앙이다."라고. 불교는 무슨 …
제삼자 13/08/30 4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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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예수일당은 3 년 동안 무엇을 한거야?] 예수쟁이의 으뜸되는 목표는 <믿음 생활>이다. 그래서, 예수쟁이의  다른 이름도 <신앙인(…
제삼자 13/08/26 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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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개망신]  * 개망신--아주 큰 망신.   망신--말이나 행동을 잘못하여 자기의 명예나 체면 따위가 손상을 입음.  영국 역사상 가장 중요…
제삼자 13/07/21 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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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혼인할 배우자를 찾음] 어느 일간지에 다음과 같은 구혼(求婚) 광고 3 개가 게재되어 있었다.  (A) [혼인(결혼)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소유…
제삼자 13/07/06 4613
713
*37[군자 삼변(君子三變)에 비춰 본 예수교]예수의 조상 중에 <유다>라는 사람이 있다. 이 유다가 며느리(다말)와 불륜으로 간음하여 자식이 태어나는데, …
제삼자 13/06/21 5422
712
*36[협잡질(挾雜-질)]협잡질(挾雜-질); 그릇된 행동으로 남을 속이는 짓.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난 사람이 하는 일(예: 나라를 다스림)을 가리켜 경-륜(經綸)이…
제삼자 13/05/14 5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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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보복(?)이 두려워 숨어 다니는 神]* 전지전능하다는 신(神)이 숨어 다니기도 하고, 도망다니기도 한다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1) [유대인들이 가로되,…
제삼자 13/04/30 4519
710
*34[두 연놈의 배때지를 꿰뚫어 죽이기] 여호와(예수교의 신이라 함)의 질투심이 발동했을 때, 초기 진화를 하지 않으면 한 나라와 민족이 송두리 째 없어질 수…
제삼자 13/04/09 4454
709
*33[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짓]"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속담(?)이 있다."무슨 일을 하려면 그에 걸맞은 실력과 견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 무슨 …
제삼자 13/03/25 4496
708
*32[예수의 산상수훈(山上垂訓)]고등학교 2 학년 때, 윤리 과목 선생이 결근을 하자, 교장 선생이 대신 교단에 나타난 적이 있었다.그 때, 교장 선생으로부터 처…
제삼자 13/02/12 4791
707
[논리 중의 논리-논리의 진수(眞髓)](가정) 부산 앞 바다에서 유난히 꽁치가 많이 잡히는 해가 있다고 하자.(결론) 그렇다면, 그 해에는 서울 사람들은 서대…
제삼자 13/01/28 4443
706
*30 [예수가 태어나던 날의 날벼락] 한 나라에 왕자가 태어나면, "대역 무도한 죄인을 제외하고, 모든 죄수들을 방면하라."는 임금님의 어명이 떨어지게 마련…
제삼자 12/12/23 5616
705
[축사(祝辭)] 반기련 회원 여러분! 오늘은 참으로 뜻 깊은 날입니다. 아니, 어쩌면 먼 훗날 역사의 한 페이지를 크게 장식할지도 모를 그런 감격스런 …
제삼자 12/09/13 4614
704
[무식과 용감무쌍은 이란성 쌍둥이]요즈음, 태풍 볼라벤과 덴빈으로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태풍이 몰려 오면, <호우 주의보>니, <…
제삼자 12/08/31 4068
703
[막중한 임무를 띤 반기련]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354~430)-초대 예수교의 가장 유명한(?) 교부신학자라 불린다.예수교의 기초와 근본 교리는 아우구스티…
제삼자 12/08/19 3892
702
[예수의 사상에 대한 고차원적 분석] A. 약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는 어렵다. B. 부자가 천당에 들어가기는 어렵다. 위의 2 가지 논제 중, A는 물리적(물질적)인…
제삼자 12/07/31 4663
701
[여호와(예수)의 만행(蠻行)질]다음의 말은 여호와(예수)가 전지전능한 신으로서 천지를 창조하고, 이것을 정의와 사랑으로 다스린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성…
제삼자 12/07/16 4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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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전도(主客顚倒)] 주객전도 :주인과 손의 처지가 뒤바뀐다는 뜻으로, 사물의 경중(輕重), 선후(先後), 완급(緩急) 따위가 서로 뒤바뀜을 이르는 말. (1…
제삼자 12/07/13 4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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