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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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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인원 : 3,696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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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48[예수교의 핵심이 되는 문젯점]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4-05-25 (일) 14:17 조회 : 12902
*48[예수교의 핵심이 되는 문젯점]


어떤 사람이 말했다.
"나는 사과나무를 싫어한다. 그 이유는 사과나무에 배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가? 되는 말 같은가?


그렇다면, 예수교를 신뢰하지 않는(싫어하는) 이유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면, 어떻게 생각되는가?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대표적으로 교회 지도자들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은 점과 교회 내부적 비리와 부정부패가 많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교회 지도자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다."면, 어떤 것을 기준으로 했을 때 무엇이 일치하지 않다는 말일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의 내용을 훑어 보면,
(1) "사람을 죽여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멸시켜라." "진멸하라." 등등...)
(2) "동물도 죽여라." ("피는 먹지 말라.")
(3) 심지어는 "식물도 죽여라."
(4) "마귀도 죽여라." 
(5) "상대를 속여라." (말로는 "평화를 외쳐라." 뒤로는 "도륙시켜라.")
(6) "계집질을 해도 좋다." 
(7) "돈을 많이 벌도록 해 주겠다." (돈 버는 방법을 무수히 많이 나열하고 있다.)
(8)~(n) (여호와와 예수의 가르침을 어찌 다 열거할 수 있으랴!?)

그런데, 예수교 지도자(예수쟁이를 통틀이서)의 무엇이 어디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인지? 
그리고, 교회의 내부적 비리와 부정부패가 많다고 했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했을 때 무엇이 비리이고 부정부패일까?

예수쟁이 중에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이 가르치는 훈계를 실천하지 않는 자가 한 단 명이라도 있을까?
예수쟁이 중에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자가 있을까? 
그런데, 예수쟁이들의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무엇을 신뢰할 수가 없다는 걸까? ㅎㅎ...아멩 할렐루야!


* 참고;
모든 것을 다 양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자연 질서(우주 질서?)의 원칙을 적자생존이라고 한다면, 결국 생명 유지와 자손 번식을 위해서는 상대(동식물까지 포함해서)를 속이고 죽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대 생명체(사람도 포함해서)를 속이고 죽여야만 자신이 생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따라서, 바이블 내용이 제시하는 죽이기, 속이기, 악질적 행패 부리기 등, 어떤 것이라도 양보하고 이해도 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러나, 바이블(예수교의 모든 것)이 비 논리, 비 과학적으로 엮어져 있어서 결국은 허구, 궤변, 모순 아닌 것이 없다면, "신뢰할 수가 없다."느니, "비리와 부정부패가 어떻다."느니 따위까지 갈 필요도 없다. 
그냥, 그 즉시 예수교의 모든 것은 폐기처분되어야 하는 것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 예수교의 가장 큰 문제는 예수쟁이들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예수교가 비리와 부정부패로 썩어 문드러졌더라도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에 앞서서 바이블과 예수교의 모든 것이 비 논리적, 비 과학적으로 뭉쳐저 있어서 허구, 궤변 그리고 모순이라는 사실이다.ㅎㅎ...아멩 할렐루야!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4-05-27 (화) 05:28

[세월호 참사와 예수교(쟁이)의 사랑]

(1) 몇 십 년 전, 미국 교포 사회에서 발생했던 일이다. (오래 전 일이라 내용 전개에 100 % 정확성은 없다.)
미국은 법으로 보호자 없이 어린 아이를 집에 홀로 있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먹고 살기 힘든 어느 교포 가정에서 어린 아들을 집에 홀로 놔두고 일터로 나갔다.
집에 혼자 남아 있던 아이는 방안의 가구에 매달리기도 하고, 기어 올라가기도 하면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가구가 넘어지면서 그것이 아이를 덮쳐 끝내 아이가 죽고 말았다.

죽은 아이의 엄마가 울부짖었다. "내가 아들을 죽였다. 내가 아들을 죽였다...."고.
여러가지 정황도 그렇고, 아이의 엄마 입에서도 직접 "내가 아들을 죽였다." 고 자백도 하고...미국의 현지 수사 기관(검사, 판사 및 배심원 등등)은 마침내 그 죽은 아이의 엄마를 살인자로 판결을 내리게 되었다.
이리하여 죽은 아이의 엄마는 살인자로 누명을 쓰고, 수 십 년이라는 징역형이 선고되어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미국의 법조인이나 배심원들이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을 알 턱이 없었다.

그러나, 그 엄마는 자기 아들을 죽이지도 않았고 따라서 살인자도 아니었다.
한국의 부모들은 어떤 사고로 자식이 죽게 되면, 그 잘못이 자기에게 있다고 여겨서 "내가 자식을 죽게 만들었다."면서 자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진도 앞바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도 "내가 아들(딸)을 죽였다."고 자학을 하는 부모가 많았을 것이다. 이것이 한국 부모들은 물론 일반인들의 생각이요 정서요 사랑이다.
그런데 말이다. 사랑이 홍수처럼 범람하는 예수교라는 종교 속에서 매일 매일 사랑(?) 목욕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예수쟁이들은 진도 앞바다의 세월호 참사에 대하여 어떤 마음 자세를 가지고 있을까?

(2) 종교(특히, 예수교)쟁이의 자세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예수쟁이의 가장 큰 덕목은 희생 정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수의 가장 커다란 가르침이요, 예수가 직접 시범을 보여 준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쟁이에게 직접적인 잘못이 있건 없건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국가에 크고 작은 재난이 발생하면, 예수쟁이들은 마땅히,
"아! 내가 잘못 살았구나!"
"내가 입으로만 좋은 소리를 나불대고 있을 뿐, 행동으로는 제 구실을 못하고 있구나!"
"어떻게 해야 저 불행을 조금이라도 내가 나누어 질 수 있을까?"
"................................"
"................................................."
"........................." 등등으로 고민도 하고 안타까워해야 그것이 예수쟁이의 바른 자세일 것이다.


이런 자세와 정신이 없는 예수쟁이가 있다면, 예수교는 빛 좋은 개살구요, 온갖 못된 짓을 자행하는 사기꾼 집단이며, 명실 공히 복마전(伏魔殿=마귀들이 숨어 있는 곳)이 아니라고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예수교를 가리켜 종교라는 간판 뒤에 숨어서 세상의 좋은 말들을 모두 훔쳐다 깔고 앉아서 사랑을 팔아 먹고 살아가는 더러운 사기꾼 집단이라고 단정해도 지나친 말(표현)이 아닐 것이다.
 
예수교(쟁이)는 우쭐대며 큰 소리쳐서 말한다. "여호와(예수)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특히, 모성애)보다도 훨씬 크다."고.
부모의 자식 사랑은 보답을 바라는 사랑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부모의 자식 사랑은 장차 자식이 잘 될 것을 기대하는 조건을 가진 사랑이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교(쟁이)가 말하는 여호와(예수)의 사랑은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즉, 조건이 없는 무조건의 사랑이라고 한다. 따라서, 예수교의 사랑이 부모의 사랑(특히, 모성애)보다도 뛰어난 것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그렇다면, 부모의 사랑보다도 더욱 커다란 사랑을 휘감고 살아가는 예수쟁이들은 이번 세월호 참사에 대하여 어떤 종류의 마음 자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처신을 하고 있을까?

(3) 지금 한국 사회 전체는 침통한 늪에 빠져 있는 분위기이다. 진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세월호 참사 때문이다. 10대(고등학생)의 어린 생명(일반 승객을 포함해서) 수 백 명이 죽었다.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갖가지 고통(고난)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어 있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가르치는 종교도 있는 것 같다. 이런 경우, 예수교에서는 "여호와(예수)는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시련(고통)을 안겨 주신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렇다면, 예수쟁이들에게는 이번 세월호 참사도 인간이 감내할 만한 정도의 간단한 시련(고통)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지? 이럴 때, 어떤 녀석들을 잡놈이라고 호칭해야 되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그러나, 그리고 또 그러나, ................!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받는 충격이 100이라면, 자식이 죽었을 때 받는 충격이 바로 100에 해당한다는 연구 결과를 본 것 같다.
따라서, 직접적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와 그 가족은 물론, 자식을 두고 있는 한국인 전체가 직간접적으로 받는 충격은 엄청난 것이다.
이러한 비극적 충격이 발생하면 유가족은 물론 국민 전체가 소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또는 트라우마(trauma=재해를 당한 뒤에 생기는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당하여 부모의 사랑보다도 훨씬 더 큰 사랑을 가진 예수교(쟁이)는 어떤 충격을 받았으며, 어떤 장애에 시달리고 있어야 되는 것일까?
역시, 부모의 사랑보다도 더 큰 사랑으로 무장하고 있는 예수쟁이들의 심신은 칼로 에는 듯한 아픔에 동참하고 있겠지? 안 그래? ㅎㅎ...아멩 할렐루야를 외쳐도 되겠지?

그런데, 세월호 참사에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어 보이는 예수쟁이 집단의 우두머리는 법망을 피해 보려고 숨어다니고 있단다.
또, 그 예수쟁이 집단의 무더기 떼거리들은 "종교 탄압이다." "순교도 불사하겠다."를 외쳐대며 수사기관의 업무를 방해하는 데모를 한다던가?
더욱 재미있는(?) 현상은...세월호 참사와 직접 연관이 있는 예수쟁이 집단을 가리켜 다른 예수쟁이 집단(정통파?)에서는 이단으로 매도하며서 "세월호 참사는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발뺌을 하고 있다던가? 암, 맞는 말이다 마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그런데, 이러한 예수쟁이들의 철면피적 무대뽀 정신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가짜 신, 가짜 지도자,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가르침...등등으로 억울하게 당한 피해를 보상 받을 곳을 찾을 수 없는 예수쟁이들!
어뚱한 곳(세상의 모든 사람)에서 그 피해 보상을 받으려는 어처구니 없는 현상이 바로 예수교(쟁이)의 그 번들번들하고, 미끌미끌하고, 끈적끈적하고, 뻔뻔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필자가 잘 못 본 것일 수도 있다. 예수쟁이는 원래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기도를 할 때에도 골방이 숨어서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세월호 참사 문제도 아무도 모르게 회개도 하고, 아무도 모르게 눈물도 흘리고, 아무도 모르게 가슴도 치고, 아무도 모르게 동참도 하고, 아무도 모르게 뼈를 깎는 아픔고 겪어 보고...
그러기 위해서는 현상금을 걸고 체포하려고 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꼭꼭 숨어서 그 모든 것을 실천하고 있는 예수교 지도자들이렷다!

그리고 또 예수쟁이들 수 백 명 또는 수 천 명씩이나 떼거리로 모여들어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다."며 아우성치는 모습을 보노라면, "아! 역시, 예수쟁이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고굉(股肱=팔과 다리)이요, 간뇌도지(肝腦塗地=참혹한 죽음을 당하여 간과 뇌가 땅바닥에 으깨지는 수고)로써 인류를 위하여 희생 봉사하는 무리가 바로 다름 아닌 예수쟁이들이로구나!" 하고 깨달아지는 바가 크도다!
역시, 예수교(쟁이)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특히 모성애)보다도 훨씬 더 큰 사랑을 실천하는-그것도 현상금을 걸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숨어서 아무도 모르게-숭고한 집단임을 알겠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 "개독 박멸" ***


[신학(神學)? 뭐락꼬? 신학이락꼬?]

신학(神學)을 어학 사전에서 찾아 봤더니,
"예수교의 신(神)과 교리(敎理)와 신앙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을 이른다."고 되어 있다.
ㅎㅎ...정말 육낀다. 신(神)을 어떻게 연구를 할 수가 있다는 말일까?
교리(敎理=신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또 어떤 방법으로 연구를 한다는 말일까? 

신앙이라는 것도 그렇다. 자기 몸뚱이와 마음도 제대로 모르는 무능한 존재가 인간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능한 인간이 신(神)에 관해서 무엇을 알고 있기에 무엇을 믿는다는 말일까?
사기꾼이 아니라면, 신을 연구한다느니, 교리를 연구한다느니, 신앙을 연구한다느니...이런 말을 얼굴색 하나 변함 없이 어떻게  할 수가 있다는 말일까?

신학(神學)!? 얼굴에다 철판을 깔아 놓은 사기꾼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육끼는 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제삼자 2014-06-08 (일) 05:47
[예수쟁이들의 기도질이 해놓은 멋진(?) 결과]

[(예수 가라사대)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 18;19~20)

위의 바이블 내용에 의하면, "두 세 사람이 합심해서 무엇이든지 구하면(기도하면), 여호와(예수)가 다 이루어 주신다."고 한다. 예수쟁이들에게 있어서 기도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결론이 되겠다. 
사실상, 예수쟁이들 사회에서는 첫째도 기도, 둘째도 기도, 셋째도 기도...기도질로 시작해서 기도질로 끝을 보아야 되는 생활이 예수쟁이들의 모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쟁이들 사회에 대단히 의심스러운 문제가 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또는 여호와) 녀석이 사기꾼이거나, 예수쟁이들이 사기꾼이거나, 적어도 둘 중에 하나는 사기꾼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만약, 여호와(예수) 녀석을 포함해서 예수쟁이들이 사기꾼이 아니라면, 예수교  전체는 하나도 빠짐 없이 아주 못돼 먹은 고약한 성품의 소유자들일 것이 분명하다.

많은 사람을 동원할 필요 없이 두 세 사람만 합심하여 구하면(기도하면) 여호와 쪽에서 무엇이든지 이루어 주신다고 했다. 그렇다면, 1,000만이 넘는다는 예수쟁이들의 기도질 덕택에 의하여 우리 대한민국은 이미 오래 전에 천국 다음 동네 쯤 되는 아름다운 사회로 바뀌어 있어야 옳다.
시도 때도 없이, 장소도 가리지 않고 벌이는 눈물의 기도, 조국 통일 염원 기도, 울부짖는 기도, 통성 기도, 대표 기도, 새벽 기도, 조찬 기도, 골방 기도, 금식 기도, 대리 기도 등등...그러나, 그 많고 많은 예수쟁이들의 기도질에 의한 결과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가?

남북이 분단된 상태로 70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있으며, 
그 사이에 비참한 6.25 사변(전쟁)이 있었고, 
비극적 1,000만 이상의 이산 가족이 있고, 
KAL기 피침 사고, 삼품백화점 붕괴 사고, 세월호 침몰 참사와 같은 참혹한 사건이 수시로 발생하는 현상 등등, 말로는 설명 할 수 없는 비극들이 바로 예수쟁이들이 그토록 빌어대는 기도질의 결과란 말인가?  
"두 세 사람이 합심해서 구하면(기도하면), 전지전능한 여호와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신다."는 약속은 어떻게 된 것일까?

예수쟁이들의 더럽고도 간악한 성품은 겉으로는 눈웃음을 살살 뿌리면서-사회가 잘 되도록 구하는 척하면서-속으로는 오히려 점점 더 힘들어지고 고통스러운 사회가 되도록 빌었다는 결론 밖에 더 되는가?
아니라면, "두 세 사람만 합심해서 구하면(기도하면)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주겠다."는 여호와(예수)의 그 전지전능한 약속은 어떻게 된 것일까?

겨우, 요즈음에서야 겉으로 드러나고 있는 괴물(?) 중에 <관료마피아>라는 것도 있고, <적폐(積弊)>라는 것도 있다고 한다. 이런 것들 때문에 세상 구석구석이 썩은 냄새로 진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야 말로 세상이 좋아지록 구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예수쟁이들 전체가 통째로 전력 투구해서 세상이 비뚜로 굴러가게 해달라고 구한(기도한) 결과가 아닐까? 

"두 세 사람만 합심해서 기도를 하더라도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주겠다." 그런데 말이다...
수 십 만의 예수쟁이가 모여서 기도질을 해대는 교회도 있고, 
여의도 광장에서는 한꺼번에 100만 명의 예수쟁이가 모여서 통성기도질이라는 것을 벌이기도 하고, 
시청 앞 광장에서는 수시로 수 천 수 만 명의 떼거리 예수쟁이들이 모여 시국 선언 기도질도 벌이고,
전국의 수 천 수 만의 교회에서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가정의 안녕과 국가의 평화를 위한 기도질을 해대고...
그러나...그 동안 예수쟁이들은 세상이 잘 되기를 빌었는가? 아니면, 세상이 썩어 문드러지라고 빌었는가? ㅎㅎ...아멩 할렐루야!

혹시... 단 두 세 사람도 합심되는 예수쟁이가 없다는 말은 아닐까? 아니면, 나라가 잘 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는 예수쟁이가 단 두 세 녀석도 없다는 말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 세상에 예수쟁이보다 나쁜 놈들은 없다는 얘기가 아닌가? 

바이블 내용(여호와 또는 예수의 약속)처럼 온 세상의 예수쟁이들도 다음과 같은 기도질을 해오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면 어찌해서 세상이 이처럼 더럽고 비참하게 굴러가고 있을까? 예수쟁이들의 저주질이 아니라면, 세상이 왜......"두 세 사람이 합심해서 구하면,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주겠다."는 여호와(예수) 녀석의 전지전능한 약속은 어디로 간 것일까?

예수쟁이들은 다음과 같은 기도질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겉으로는 눈웃음을 살살 뿌리면서 세상의 평화를 외치는 척하지만, 진짜 속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도질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또한 예수교 역사의 실체이기도 하다.

[청년을 칼날로 죽이고, 
어린 아이를 메어쳐 죽이며, 
임신부의 배를 갈라 죽이고, 
성을 부수고(사람이 살 수 있는 건물을 싹쓸어 모두 파괴하고), 
우물을 메우고(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마실 수 있는 물을 싹쓸어 모두 없애고), 
밭에 돌을 던져 넣고(농사를 지을 수 없도록 토지를 싹쓸어 모두 황폐화시키고), 
나무를 베어 완전 폐허로 초토화시켜라.] ㅎㅎ...아멩 할렐루야! 

(왕하 8;12, 3;24~25)

"개독 박멸" ㅎㅎ...아멩 할렐루야!



[주는 쪽과 받는 쪽 중 어느 쪽이 더 즐거울까]

나이 지긋한 중견 회사 사장이 있었다.
그는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는 출근하기 위하여 집에서 매일 아침 7 시 정각에 회사를 향해서 출발하곤 한다. 
커다란 대문이 열림과 동시에 사장을 태운 차가 미끄러지듯 대문 밖으로 모습이 나타난다.
그러면, 대문 밖에는 어김 없이 깡통을 든 거지 하나가 서서 기다리고 있다.

사장은 차를 멈춤과 동시에 차 창문을 내리고 거지에게 지폐 한 장을 건네 준다. 
건네지는 돈은 천 원 짜리 지폐일 때도 있고, 가끔 씩은 만 원 짜리 지폐일 때도 있다. 
이러기를 3 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그런데, 사장은 그 거지로부터 "고맙다."는 인삿말을 단 한 차례도 들어 보지를 못했다.

괴씸한 생각이 발동한 사장이 하루는 그 거지에게 꾸중 섞인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자네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에게서 돈을 얻어가면서도 '고맙다'는 말 한 마디가 없으니,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는 것인가?"
그러자, 거지는 별 이상한 소리를 다 듣는다는 식으로 사장을 한 참 동안 째려보는 것이었다.

마침내, 거지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장만을 향해서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세상 사람이 다 들어보라는 식의 말이었다.
"참 나, 살다 살다 별 꼴 다 보겠네. 돈을 베푸는 놈과 그 돈을 받는 놈 중, 어느 쪽 놈이 더 즐거움을 맛보게 될까? 
근본적으로 어느 쪽 놈이 어느 쪽 놈에게 "고맙다"고 치하를 해야 되는 경우일까? 
3년 동안 행복을 안겨 준 쪽이 누구인데 누가 누구더러 "고맙다"는 말을 안 한다고 지.랄이야. 별꼴 다 보겠네!" 
제삼자 2014-10-29 (수) 10:37
[여호와(예수) 규탄 대회]
 
 
요즈음, "예수교가 썩었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일반인들만이 아니라, 예수쟁이들 중에도 그런 자들이 많다.
좀 더 장황한 말도 많다. "교회가 돈을 너무 밝히고, 목사와 예수쟁이들이 도덕적으로 너무 타락해 있다." 고 한탄하는 소리도 높다.
 
그러나, 예수교가 궤도를 벗어나서 제 길을 가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그것이 바로 여호와(예수)에 대하여 정면으로 거역하는 규탄(성토) 대회란 것을 모르고 있다.
왜냐 하면, 지금은 물론 예수교 역사상 예수교가 제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 때는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교의
더러운 모습,
잔인한 모습,
타락한 모습 등등,
예수교(쟁이)가 쏟아내고 있는 모습 중에서 예수교의 진짜 모습이 아닌 것은 없(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예수)의 가르침은 하나도 빠짐 없이 바이블 속에 들어 있는데, 예수교가 나타내고 있는 모습 중에서 바이블 내용과 일치하지 않은 때는 없(었)다는 말이다.
심지어, 목사와 신부는 물론, 예수쟁이들이 돈을 지독하게 밝히는 모습, 계집을 지독하게 밝히는 모습, 지독하게 뻔뻔한 모습, 지독한 사기 행각, 등등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예수)의 가르침과 몸소 보여 준 시범에서 벗어나는 것은 없다.
 
지금까지의 예수교의 모습 중에서 예수교의 본래 모습이 아닌 것은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새삼스레 "예수교는 썩었다. 그러니 제 모습으로 돌아가자."고 떠드는 짓 자체가 벌써 여호와(예수)를 정면으로 거역하는 규탄(성토) 대회가 된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예수교의 잘못을 고치겠다는 생각이야 말로 여호와(예수)에 대한 가장 커다란 배반 행위일 뿐이다.
예수교의 비리와 악행 중에 여호와(예수)의 뜻 아닌 것이 있을까?  ㅎㅎ...아멩 할렐루야!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은 바이블 내용(여호와 및 예수의 가르침)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블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예수교에 대해서 떠드는 모습보다 더 웃기는 난센스는 없으리라.



[벽에다 똥칠할 때까지보다도 더 오래 살면]


(1) [여호와가 그들(물고기와 새)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창세기 1; 22~23)

창조 과정 제 5 일은 물고기와 조류를 창조한 날로 되어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여호와가 이들 물고기와 새들에게 <축복>을 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바다와 물에 충만하라. 땅에 번성하라."

통계 자료에 의하면, 1 년에 인간의 먹잇감으로 도살되는 동물이 600 억 마리나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결국, 여호와의 축복을 받아 동물들이 생육하고 번성해야 되는 이유는 많이 번식해서 많이 잡혀 먹히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끔찍하고도 놀라운 여호와의 축복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2) [여호와가 자기 형상 곧 여호와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여호와가 그(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 27~28)


여호와는 인간에게도 특별한 축복을 해 주신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현재, 북한에서는 $1만 있으면, 5 식구가 3 일 동안 배불리 먹을 수가 있다고 한다.
동남아, 서남아,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굶어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결국, 인간에 대한 축복이란 것도 "많이 번성하여 비극 속에 쳐 박혀 고생 고생 또 고생 좀 해 봐라." 이런 뜻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


(3) [여호와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여호와가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가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세기 2; 2~3)


하다 하다 별 짓을 다 하신다. 날짜에다가도 축복을 해 주신다.
허기사,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죽을래야 죽을 수 없이 살고 또 살고 그리고 또 살아야 하니, 여호와의 처지로서는 그 얼마나 답답하고, 미치고 팔짝 뛸만큼 환장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마침내 천지라는 것도 창조를 해보게 되고, 날짜에다가도 축복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살다 살다 벽에다 똥칠을 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면 다행일 터이다.

절대 왕권 시대에, 왕이 실성을 하면 그 다음에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대책이 참으로 어려운 법이다.
조선 제 21대 임금 영조는 겨우 82해를 살았지만, 자기 아들을 뒤주 속에 넣어 죽이는 짓도 한다.
82해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영원히 죽지 못하고 살아 내야 하는 여호와(예수)가 무슨 짓을 안 할까?


참고; 재미있는(?) 것은, 여호와로부터 축복은커녕 거명조차 돼 보지 못한 곤충 종류는 자그마치 200 만 종이 넘어 그 숫자가 어마 어마하다.
        이 곤충들이 얼마나 많이 잡혀 먹히느냐에 따라, 그 상위 개체의 수가 결정되게 되어 있다. 
        곤충들이 없다면, 먹이사슬의 단절로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는 종말을 고하게 되겠지? 

        역시, 여호와의 세상 다스리는 재주는 멋져 부렸다!  그러나, 여호와(예수)가 곤충이라는 생명체에 대하여 알고는 있었을까? 
        지구상에서 최후의 승자는 <바이러스>가 될 것이라던데, 이것은 알고 있었을까? 여호와(예수)는.
        요즈음, 극속도로 퍼지는 신종플루(또는 수퍼 박테리아)는 어떻게 할거냐? 얘야! 아니 여호와(예수) 녀석아! ㅎㅎ...아멩 할렐루~야!
제삼자 2014-12-24 (수) 17:34

[예수가 누구인지 그 제자들도 몰랐다]


[(예수가)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좇았더니, 바다에 큰 놀(풍랑)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잠잠하게 되거늘,

그 사람(제자=배 안에는 예수와 그 제자들만 있었다)들이 기이(奇異)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떤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

(마태 8;23~27)

거센 바람과 파도가 예수의 꾸짖는 소리에 잠잠해 졌다고 한다. ㅎㅎ...아멩 할렐루~야다!

그러자, 예수의 제자들이 말한다. "이 어떤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다시 말해서,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말이다. 
바이블의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예수의 제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예수가 누구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예수를 모르는 자)들에 의하여 예수교가 태어난다. 예수(또는 여호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자들에 의하여 신(神)의 전지전능과 진리와 절대가 태어난 셈이다. ㅎㅎ...이것도 아멩 할렐루~야!

사실상, 인간(목사, 신부, 기타 모든 예수쟁이들을 포함해서) 중에 예수(여호와)가 무엇을 하는 누구인지 아는 자가 있을까? 안다는 자가 있다면, 그게 바로 뭔가를 노리는 사기꾼이 아니고 뭘까?


[1,500년 전의 정확한 안목]


[(모슬렘) 신앙을 가진 자들이여! 너희들은 유대교도와 예수교도들을 벗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그들은 서로 한 패이다. 만약, 너희들 중에 그들을 벗으로 삼는 자가 있으면, 그는 그들과 한 패이다. 알라(신)가 무법(無法)한 패거리를 인도하시는 일은 없으리라."] (코오란 5;51)

알라(신)의 가르침에 의하면, 바이블을 경전으로 하는 유대교도와 예수쟁이들은 모두 무법자(無法者)들이라 한다.
1,500 년 전에도 이렇게 정확한 안목을 가지고 있었거늘, 오늘의 우리 한국 사람들은 무엇이 잘못 된 것일까?
예수교 전래 100 년 만에 예수쟁이가 1 천만을 넘어 섰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제가 큰 민족이 아닐 수 없다.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민족(나라)이 아닌가 걱정된다.

** 이슬람교의 알라(코오란)의 가르침이 억울하게 생각되는 예수쟁이가 있다면, 그 잘못된 점을 찾아내 보기 바란다.


[지록위마 (指鹿爲馬)]-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다

교수 신문은 2014년을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사실이 아니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서 강압으로 인정하게 하거나 또는,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함을 이컷는다.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記)에 나오는 말이다.

진시황제가 죽자 측근 환관인 조고(趙高)가 거짓 조서를 꾸며 태자 부소(扶蘇)를 죽게 만들고, 어린 호해(胡亥)를 제2대 황제로 삼는다.

조고가 부소를 죽이고 호해를 위에 올린 이유가 바로 여러가지로 어리석은 호해를 황제로 삼아 자기 마음대로 전횡하기 위해서였다. 

조고는 어리석은 황제를 조종하여 경쟁자인 승상 이사(李斯)와 여러 구신(舊臣)들을 죽이고, 자신이 승상이 되어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다. 

마치내, 역심이 생긴 조고는 중신들 중에 자기를 반대하는 세력을 가려내기 위하여 한 가지 방법을 시도하게 된다.

조고는 황제 호해에게 사슴 한 마리를 바치면서 말한다. "폐하, 말(馬)을 바치오니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그러자, 황제가 말했다. "승상은 농담도 잘 하시오. 사슴을 가지고 말이라고 하다니(指鹿爲馬)...어떻소? 그대들 눈에도 말로 보이오?" 

황제의 하문을 받는 신하들 중에 "그렇다"고 긍정하는 사람과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고는 부정하는 사람을 나중에 죄를 씌워 모두 죽여 버린다. 그 후, 궁중에 조고의 뜻을 거스리는 자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마침내, 천하는 오히려 혼란에 빠져들고 만다. 각처에서 진(秦) 나라를 타도하려는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항우와 유방의 군사가 도읍 함양을 향해 좁혀 오자 조고는 호해를 죽이고, 다시 부소(진시황제의 태자)의 아들 자영을 3대 황제로 옹립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고가 자영에 의하여 주살 당한다. 그러나, 결국 진 나라는 건국되고서 겨우 15년(자영이 황제가 되고서 46일) 만에 멸망한다.

이상이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결말이다.

제삼자 2015-03-26 (목) 19:03
[예수쟁이라면 누구나 껌뻑하는 기적질 이야기]


[....
예수께서 가라사대,
"...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 뿐이니이다."
 
(예수)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12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5,000명이나 되었더라.]

(마태 14;13~21)


이것이 소위 예수가 시행했다는 저 유명한 5병 2어(五餠二魚)의 기적질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떡 5덩이와 생선 2마리로 여자와 아이는 계산하지 않고, 장정 5,000명을 먹이고도 12바구니가 남았다고 한다. 역시 아멩 할렐루~야!


1) 기적질 현상이 예수의 앞에서 벌어졌을까, 예수의 손에서 벌어졌을까? 아니면, 배식(配食)을 하고 있던 예수의 제자들의 손안에서 벌어졌을까?

한 사람에게 배식을 하고 나면, 연속적으로 또 한 사람 분의 떡(생선)이 생겨났을까? 아니면, 한꺼번에 많은 양의 떡(생선)이 쌓인 것을 한 사람 분 씩 떼어다가 배식을 했을까?

어떤 경우일지라도, 배식하는 사람이나 배식을 받는 사람이나,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적질 현상에 놀라워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먹는 일에 바쁠까, 아니면 그 기적질 현상에 놀라 정신이 없었을까?

배식하는 사람의 손에서, 한 사람 분이 주어지고 나면, 또 한 사람 분이 생겨날 때마다,
사람들의 눈과 입에서는 "저런저런 또 생겨나네. 저것 봐, 저걸 보라구. 또 생기네." 등등의 수라장적 현상이 벌어졌을 것이다.

또, "먹고 남은 것이 12바구니가 남았다."는 따위를 기록으로 남길 여지는 없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 기적질이 사실이라면 그 부수적 장면은 책 한 권으로는 부족하리 만큼 쏟아져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배불리 먹었다."는 말도 쓸 자리가 없어야 되는 경우이다. 왜냐 하면, 먹는 일은 다들 잊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두들 정신이 빠져서 먹는 일을 잊어 버리고 있었다."고 기록됐어야 말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엄청난 기적질 내용이 맹물에 몽둥이 삶은 맛처럼 심심하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5병 2어> 기적질은 없었던 것이라는 말이다.
바이블 기자 정도의 두뇌가 골방에 앉아서 상상으로 꾸미다 보니 이런 엉터리 구상이 나온 것이리라.
소문만 풍성한 지금의 교회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비교해 보라. 실제로 저렇게 엄청난 기적질이 벌어졌었다면 어떠했을까를.


2) 모여 있는 장정이 5,000명이라 했다. 그렇다면, 여자와 아이들을 합치면 적어도 10,000명은 되지 않았을까?
 
여기에서 필자는 <수수께끼> 문제를 하나 내겠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군중 집회를 가지려면,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독자들은 무엇이라고 생각되는가?
대규모 군중 집회 장소에서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화장실>이다. 그런데, 5병 2어 기적질 장소에서 화장실 설치 이야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 가장 중요한 화장실이 없다.
여기의 기적질 장소는 <빈 들>이라고 했다. 
사막과 돌짝밭으로 이루어진 중동 지방이므로 나무 하나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 있지 않았을 것이다.
자. 이제 배불리 먹기까지 했다. 10,000명 정도가 그런 곳에서 작은 일, 큰 일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상상이 되는가?
바이블 기자는 커다란 집회라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그 세계에 대한 경험도 계획도 짤 수 없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결국, <5병 2어> 기적질은 없었던 것이란 말이다.


3) 바이블 기자는 예수 이름으로 종교가 성공하려면, 모세와 엘리야를 등에 업어야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여호와쟁이들의 나라이므로 당연하다.
그런데,
모세와 엘리야에게서 전해 내려오는 기적질은 꽤나 많다. 따라서, 예수도 여기에 준하는 기적질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아니, 예수를 여호와의 아들로 만들기 위해서는 예수가 그들보다 더욱 멋지고 큼직한 기적질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모세가 바다를 가르고, 엘리야가 강을 갈랐다니까 예수는 아예 바다(호수) 물 위를 걸어가는 것으로 만드는 것처럼.
그러나, 당시 바이블 기자들의 아이디어들은 그만그만해서,
모두가 비슷비슷할 뿐, 파격적으로 '꽝'하고 터져 나오는 그런 기적질을 만들 아이디어는 만들지 못했던 것이 었다.

기적질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바이블 기자들의 머리에는 새롭고도 뛰어난 아이디어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엘리야(엘리사)가 조금의 음식으로 100명을 먹이는 기적질을 시행했다니까, 예수 쪽에서는 어린 아이와 여자를 빼고도 5,000명을 먹였다고 뻥을 좀 크게 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새롭고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없었던 것이다.
예수가 시행했다는 <5병 2어> 기적은 없었다. 없었기 때문에 내용 기록이 맹물에 몽둥이 삶은 맛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실시된 기적질이었다면, 그 5,000명(아니, 10,000명)의 난리 법석으로 세상이 떠나가고, 그 상황에 대한 기록은 상상을 불허하는 다른 모양을 하게 됐을 것이다.
제삼자 2015-04-03 (금) 08:55
[늙은이의 고집불통과 예수쟁이의 믿음질]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란 대단히 어려운 것 같다. 아니, 불가능한 일일 것 같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이미 자기 것으로 길들여진 버릇이나 생각을 고치기란 거의 불가능한 현상이라고 여겨진다.
어쩌면, 한 인생에 있어서 굳어진 고정관념은 그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고집불통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면, 우리 인간 사회에서는 수 천 년 동안 반역(역적)은 나쁜 것이고, 충성(충신)은 좋은 것이라고 누누이 길들여져 왔다.
수 천 년 동안 각종 왕조의 통치자와 기득권자들이 그렇게 세뇌시켜 왔기 때문에 인간으로 태어난 자 중에 저렇게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결과, 고려 말의 정몽주는 충신이라 하여 후세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다. 반면에, 이성계 일당(정도전, 조준, 하륜 등)은 나라를 빼앗은 역적이라 하여 실제로는 좋은 일을 많이 하고도 욕을 먹거나 별로 인기가 없다.

이성계 일당은 성공한 반역자들이어서 오랜 시간에 걸쳐서 업적(속임수일지라도)도 쌓고, 역사 기록도 자기네 쪽에 유리하도록 적당히 얼버무려 놓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그것이 수 백 년 전에 벌어졌던 일인데도 지금까지도 호감이 가지 않는다. 한 번 길들여진 고정관념(충성은 좋은 것이고, 역적은 나쁜 것이라는)은 수 백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좀처럼 씻어 내거나 고치기가 어렵다.

충성심의 가장 멋진 형태는 개(犬)의 성질이라고 할 수 있다. 강아지가 주인(사람)을 잘 따라 주는 현상을 보면서 여기에다 터무니 없는 충성 모습까지 섞어 격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주인을 무는(반역 행위) 개는 살려 둘 수 없다."는 격언이 생겨날 정도로 개의 충성심은 무조건적이요 극찬의 대상이다. '개'하면 '충성', '충성'하면 '개'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어쨌든, 개=충성심이다.

고려는 건국된 지 수 백 년이 지나자, 모든 분야가 썩을대로 썩어 문드러져 있어서 그 상태로는 어떤 것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라 전체가 썩었다는 것은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서 신음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에 정도전, 조준 등은 이성계를 중심으로 토지 개혁을 시작으로 마침내 역성 혁명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역성 혁명에 의한 새 나라의 건설은 고려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기득권(썩은 기존 세력)의 붕괴를 의미한다. 반면에, 반역(역성 혁명)은 신진 사대부 세력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말해 준다.

역성 혁명은 신진 사대부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도 직간접적으로 새롭게 여러 가지로 혜택이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몽주에게는 충신이라 하여 칭송을 보내고, 이성계 일당에게는 나라를 빼앗은 도둑놈이라 하여 미워하거나 인기가 없다.
꼭대기 층의 충성질이 성공하여 썩어 문드러진 왕조가 좀 더 길게 유지되면, 이로 인하여 더욱 형편이 어렵게 된 하층민(천민과 노예 등)까지도 그 충신(?)들에 대해서는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
여기에서 말해지는 충성질이란 완전히 썩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왕실을 멸망하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말한다.

이상의 현상 즉, 어처구니 없는 충성질을 향해서 박수를 쳐주는 어리석음을 가리켜 <계급 배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 날에도 자기가 어느 계급에 속하는지도 모르면서 좌충우돌 횡설수설, 이미 자신의 속에서 굳을대로 굳어 버린 고정관념으로 자신을 쓰레기통에 쳐 박아 놓고서 휘져어대며 계급배반을 하는 사람이 많다.
계급 배반의 가장 커다란 형태의 하나가 바로 이미 길들여져서 고치기 대단히 어렵도록 굳어진 고정관념에서 나오는 결과이다.

<삼국지연의>의 주인공들인 조조, 손권, 유비 등도 썩을 대로 썩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한제국 황실을 지켜낸 충신들이다.
조조, 손권, 유비등의 충성질(?) 활동이 성공하여 마침내 한나라는 멸망하지 않고 그 수명을 연장하게 되고, 대신에 고통스러움에서 벗어나 보려는 백성들의 꿈틀거림인 <황건적>은 일망타진되고 만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 <황건적>이란 것이 무엇인지 알아 차리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심지어는 삼국지 연의를 쓴 저자도 그렇고, 그 삼국지를 읽는 독자들도 그렇고, <황건적>은 나라를 망치는 도둑놈들의 떼거리라며 무조건 배척해야 될 악으로 몰아 세우는 사람이 거의 모두일 것이다.

그러나, <황건적>이야 말로 썩은 황실을 지키려고 수고하는 충신(조조, 손권, 유비 등등)들에 의하여 희생된 억울한 백성들의 꿈틀거림이요, 바로 우리 자신에 해당하는 실체이다.
<삼국지연의>를 읽으면서 "한제국이 멸망하면 어쩌나?"하는 생각으로 안타까워 사람, 조조, 손권, 유비 등의 충성질이 훌륭해 보이는 사람, <황건적>이 문자 그대로 도둑놈들로 느껴져서 그들이 일망타진된 것이 다행으로 여겨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고정관념에 몸과 마음이 푹 절어 있어서 자신의 계급 배반 행위를 감지하지 못하는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 분명하다.

계급 배반의 형태는 삼국지연의를 저술한 저자도, 그 삼국지연의를 옛날에 읽은 독자도, 수 백 년이 지난 오늘날의 독자들도 그 고정관념은 변하지 않고 지속된다.
어느 누구도 황건적이 누구인지 그것을 곰곰히 생각조차 해 보려는 사람은 없다. 덮어 놓고 충신질은 좋은 것이고 역적질은 나쁜 것이란 고정관념의 잣대에 절어 있어서 황건적은 나쁜 놈들이고, 그 황건적을 토멸시킨 조조, 손권, 유비 등은 충신이요 훌륭한 영웅일 뿐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자신을 위로 한다. "나는 악에 적극적으로 도전할 용기는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선과 악 또는 정의와 불의를 구별할 줄은 안다." 고.

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가당착(말이나 행동이 앞뒤가 서로 맞지 않고 모순됨)이요, 고집불통적 길들여진 고정관념인가! 재삼 언급하지만, 황건적이란 중국 한제국 말기의 배고프고 불쌍한 대다수 백성들이요 나 자신이란 사실이다.
나라가 세워지고 400 여 년이 지난 한제국 황실과 그를 둘러싼 기득권층은 썩을대로 썩어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건져 낼 아무런 의욕도 힘도 없는 상태였다. 이에, 스스로 자신들의 고통을 벗어나 보려고 일어선 백성의 무리가 바로 황건적이다.
한 번 살아 보려고 버둥거려 본 목숨을 건 투쟁이었지만, 실패로 끝난 백성의 움직임은 황건적이란 누명을 뒤집어 쓰게 되고, 역적 도당으로 낙인이 찍히게 마련이다. 백성(저자, 독자 등, 나까지 모두를 포함해서)들이 자신들 스스로를 향해서 황건적으로 매도(또는 배척)하고 있는 것이다.

한 번 길들여진 고정관념은 그 고정관념이 자신을 얽어 매는 올무가 되는데도 거기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오히려 두 꺼풀 세 꺼풀 연거푸 뒤집어 쓰기를 자처한다.
그런데, 가장 무섭고도 질긴 고정관념은 뭐니뭐니 해도 늙은이들의 막무가내식 고집불통과 종교인들의 무데뽀(無鐵砲=신중함이나 대책 없이 함부로 덤비는 사람이나 그러한 태도)식 믿음 행위가 아닌가 싶다.
사실상,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그 종교의 근본 가르침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꼭대기층 전문가 몇 사람 정도일 것이다. 그런 다음, 밑으로 99.99 % 이상은 "종교"의 '종'자도 모르는 얼치기들이 엉터리 교리를 수박 겉 핥기식으로 무장하고서 오랜 시간에 걸쳐서 길들여진 고정관념을 믿음으로 착각하며 우왕좌왕하는 무리가 바로 종교인들이다.

그런데도, 실제로는 꼭대기층보다 설익은 엉터리 종교 이론으로 무장한 하빠리(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별 볼 일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종교 얼치기들의 종교심이 훨씬 강력하기도 하고, 실제로 세상적 힘도 강하다.
여기에서 그 실례를 모두 열거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신학 대학교 교수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이론을 내 놓았다가, 일반 하빠리 신도들이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그 교수가 파면된 경우는 그 좋은 본보기에 해당한다.

신학대 교수는 어느 정도 종교의 내막을 훤히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먹고 살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직업이었을 테고, 하빠리 얼치기들은 순전히 길들여진 고집불통적 고정관념을 믿음으로 착각하는 얼빠진 전형적 종교인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보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비겁하게도 밥 먹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직업으로 선택한 교수 입장도 떳떳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종교 집단의 사기꾼 행각과 내막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로서 어떻게 막돼 먹은 막무가내식의 고집불통적 일반 신도들의 밀어 붙이는 신앙 활동을 이길 수가 있겠는가?

늙은이들도 종교쟁이들처럼 그 고집불통적 고정관념에 묶여 있으면서 쏟아내는 어처구니 없는 행패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대개의 경우, 늙은이(부모)에게는 젊은이(자식)가 아직 갖지 못한 기득권이 쥐어져 있고, 거기에다 젊은이는 늙은이에게 예의 또는 효도를 해야 된다는 굴레가 씌어져 있다. 젊은이들에게 씌어진 대단히 참기 어려운 굴레가 아닐 수 없다.
결국, 똥이 무섭다기보다는 더러워서 피하듯, 젊은이들은 늙은이들의 긴 시간으로 길들여진 고정관념으로 무장된 주책바가지 추태를 못 본 척하고 외면해 주는 것으로 감내하게 된다.

어쨌든, 가장 무섭고도 질긴 고정관념은 뭐니뭐니 해도 늙은이의 막무가내식 고집불통과 종교인의 무데뽀식 믿음 행위라고 결론을 내려야 될 것 같다.



유의 사항;

위에서 거론된 내용 속에 모든 늙은이와 모든 종교쟁이가 포함된 것은 아니다.
왜냐 하면, 모든 늙은이와 모든 종교쟁이들이 고정관념에 묶여서 어리석은 짓(계급배반)을 할 턱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을 해 놔야 혹시라도 필자의 썰(說)에 동의할 수 없어서 또는 억울해서 저항이 하고 싶은 사람의 입막음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지, 이렇게 말을 해 놓으면, 오히려 불난 집을 향해서 선풍기를 틀어 놓듯 더 열불나게 하는 걸까? 예라, 모르겠다. ㅎㅎ...
제삼자 2015-04-03 (금) 09:50

[간덩이가 부어터져 배 밖으로 튀어나온 사람들]



히브리 족속(예수쟁이 조상)은 애굽에서 탈출하기 직전, 모세의 예언에 따라 여호와의 엄청난 기적질들을 여러 번 직접 체험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으며, 홍해 바다가 갈라지고 그 사이로 직접 건너 온 사람들이다. 40년 동안 매일 여호와가 하늘에서 음식(만나와 메추라기) 까지 눈 오듯 내려주어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입고 있는 옷도 40년 동안 떨어지지 않는 기적도 체험하고 있으며, 광야의 생활 속에서 여호와의 커다란 기적들을 계속적으로 직접 목격한다.
이렇게 여호와의 기적질들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라면, 그가 학박사이건, 타종교 신봉자이건, 남녀노소, 상하 귀천을 불문하고, 그 자리에서 즉시 즉시 여호와 앞에 부복하여 쪼그라들지 않을 사람은 없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자 중에 감히 여호와에게 항명(抗命)도 하고 거역도 할 그런 간덩이 부은 사람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재주와 능력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귀신으로 태어난 자들도 여호와를 거역할 수 있는 종자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바이블에는 그 사람들(여호와의 무시 무신한 기적질을 직접 체험하면서 출애굽에 직접 동참했던 히브리인들)이 한 두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여호와를 거역하고 믿지 못하여 전전긍긍하는 장면이 연속되고 있다.

바이블(예수쟁이들 사회)에서는 그것을 인간이 악(惡)해서 그런 것이라고 장소와 때와 경우를 가리지 않고 말해지고 있다. 말이 되는 현상일까? ㅎㅎ...아멩 할렐루~야!



여기에서 히브리인(예수쟁이 조상)들이 여호와를 거역하는 장면을 한 가지만 소개하려 한다.

출애굽에 동참한 사람은 장정만 헤아려도 60만이었다고 한다. 젊은 장정이면 부모가 있을 것이고, 늙은 장정이면 자식이 있을 것이다.
히브리인들이 말하는 장정이란 노략질 전투에 동원될 수 있는 남자를 말한다. 따라서, 장정 한 사람의 가족이 5인이라면 히브리 인구는 적어도 300만은 된다고 할 수 있다.
또, 가축들도 모조리 끌고 나왔다 했다. 그렇다면, 생면체가 1,000만은 되지 않았을까? 이 생명체들을 염두에 두고서 다음 얘기를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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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히브리 족속=예수쟁이 조상)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여호와의 앞잡이)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는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磐石)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의 장로들의 목전(目前)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출애굽기 17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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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브리 족속은 모세(여호와)를 원망하면서 "우리를 공연히 애굽에서 끌어내어 여기서 목말라 죽일 작정이냐?" 하고 다투었다고 한다.

(2) 이에 모세가 여호와의 명에 따라 지팡이로 반석(磐石)을 쳤더니 거기에서 물이 나와 마셨다고 한다.

(3) 중동 지방에는 와지(wadi=wady)라는 강들이 있다. 우기(雨期)에만 잠시 물이 흐르다가 이내 말라 버리는 강이다. 사막 벌판이어서 물은 곧 모래 속으로 스며든다.

(4) 60만, 300만 또는, 1,000만에 달하는 생명체들이 마실 수 있는 물이 솟아나려면 어떤 상태의 물줄기여야 할까?

(5) 서울 시민이 1,000만 내외로 알고 있다. 수 십 층 빌딩에 살아도 그 지역을 벗어나려면 몇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면, 천막 생활을 하는 사람의 1,000 만 집단의 지역 범위는 어느 만할까?

(6) 소설(삼국지 연의)이지만, 조조의 100만 대군이 진을 쳤던니 그 범위가 100여 리에 달했다고 했다. 이것은 팔팔 날고 기는 청년들 만의 간편한 무장 집단이다.

(7)) 와ㅈ니(wadi) 뿐인 사막 벌판에서 물이 어떻게 솟아올라와야 그 많은 생명체들이 마실 수 있을까? 물이 단번에 지경 100m의 물기둥이 1,000m 높이로 솟아오르면 될까? 그래도, 저 끝까지 흐르기 전에 다 땅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물이 솟아오른 주위의 생명체들은 모두 익사(溺死)하게 되지는 않았을까?

(8) 바이블의 물 기적질이 사실이라면, 그 상황으로 보아 그 기적질로 인하여 발생한 부수적인 기적이 더 요란했을 것이며, 그 기록 또한 요란할 것이다. 그러나, 바이블의 기적 이야기들은 맹물에 몽둥이 삶은 맛보다 더 심심하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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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1)~(8)의 현상(전지전능한 신이 벌이는 기적질)을 직접 체험하고도 그 신을 거역하기도 하고, 다른 신을 받들기 위해서 배반하기도 하고, 그 신의 가르침을 까먹기도 하고, 등등....

이런 종류의 인간이 있다면, 그런 종류의 인간이야 말로 간덩이가 부어터지다 못해 배 밖으로 튀어나온 사람이 아닐까? 다시 말해서, 여호와(예수)의 가르침을 헌 신짝 내치듯하는 히브리 족속과 예수쟁이들이야 말로 간덩이가 부어터진 종자들이 아니고 뭘까?

여호와(예수)의 내막을 그렇게 꿰뚫어 알고 있다는 종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악독한 짓, 더러운 짓만 골라서 쏟아 낼 수가 있단 말인가? 


말이 길어져서 이만 줄인다. 과학이다 논리다 뭐다를 다 그만 두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상황들이다. 바이블(예수쟁이 전체를 통틀어서)이 통째로 허구(거짓말)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예수교는 사기꾼 집단일 뿐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제삼자 2015-04-03 (금) 17:38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서도 샌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 나가면 아니샐까?" 마찬 가지로, "현세에서 못돼 먹은 여호와(예수), 내세에는 달라질까?"
여호와는 자기가 택한 백성 히브리 족속(예수쟁이 조상)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살도록 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이 약속은 수 백 년이 지난 후에, 히브리 족속 스스로 원주민을 진멸시키고서 쟁취한다. 그러나, 쟁취한 땅은 <젖과 꿀>이 아닌 사막과 돌짝 밭이다.

이웃 나라에서 쏟아져 나오는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 황무지이다. 여호와의 선민에게 약속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돌짝 밭 또는 사막으로 판명되었다.
그나마, 마음 편하게 다리를 뻗고 잘 수도 없는 땅이다. 지금도 전쟁으로 지새워야 되는 땅이다.
장차, 예수쟁이(히브리 족속의 후손)들에게 약속된 <영생 복락만이 있다는 천당>은 어떤 모양일까? 이 <천당> 역시 헛소리의 남발로 끝날 것이 틀림 없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돌짝 밭이요 전쟁터이듯, <천당>도 지옥과 다르지 않은 시궁창일 것이 분명하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서도 새듯, 현세에서 헛소리로 뭉쳐진 여호와(예수), 내세에 대한 약속도 헛소리일 것이다.
예수쟁이들이여! 냉수 마시고 정신 차리자. ㅎㅎ...아멩 할렐루~야!


여호와가 허락해 주었다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 하기 위하여 벌이는 정복 전쟁을 보기로 하자.

1) [그 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아낙(거인족) 사람을 멸절(滅絶)하고, 그가 또 그 성읍들을 진멸(殄滅)하였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의 땅 안에는 아낙 사람이 하나도 남음이 없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약간 남았더라.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基業)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여호수아 11;21~23)


원주민을 멸절 또는 진멸시키고, 히브리 족속 12 지파에게 그 땅을 분배하여 기업(基業)으로 주었다는 말이다.
"원주민을 멸절시켰더니,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고 한다. 여호와의 말이다. 그러나, 그 땅(중동 지방)에서 전쟁은 21 세기를 접어든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더 긴 설명을 생략하겠다.


2)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강) 저편 해 돋는 편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산까지의 동방 온 아라비아를 점령하고, 그 땅에서 쳐 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도합 31 왕이었더라.]

(여호수아 12;1~24)


여호와의 약속대로 히브리 족속이 기업(基業)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원주민을 도륙 또 도륙, 자그마치 31 명이나 되는 원주민의 왕을 죽였다는 것이다.
죽이고 또 죽이고, 또 죽이면서 수 천 년을 보냈거늘, 아직도 그 숫자가 모자라서 더 죽여야 될 모양이다. 21 세기 벽두부터 중동 지방은 요란하다. 지금도 IS인지 뭔지와 피터지게 싸움판이 벌어지고 있다.
역시,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위대하셔? 안 그래?

어쨌든, 여호와가 이 세상에서 허락해 준 땅이 저 모양이라면, 장차 천당에서 허락해 주겠다는 <영생 복락>인들 그대로 믿을 수가 있는 것일까?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서도 샌다는 사실을 명심할찌어다. 현세에 새는 바가지, 내세에는 새지 않을까? ㅎㅎ...아멩 할렐루~야!

제삼자 2015-04-05 (일) 07:41

[오래 참는 여호와, 금방 올 예수]--미완성


1) ["인자(예수)가 아버지(여호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예수)가 그 왕권(王權)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마태 16;27~28)


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世代)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말세)이 다 이루어지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예수)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태 24;34~35)


3) [(바울이 가로되) "혹, 네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로마서 2;4)


4) [(바울이 가로되) "만일 여호와가 그 진노(震怒)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滅)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寬容=너그럽게 용서함)하시고, ....."]

(로마 9;22)


이상은 금방 오겠다는 예수와 진노하기를 천 년을 하루 같이 참으신다는 여호와에 대한 말들이다.
예수 당시의 사람들이 다 죽기 전에 다시 와서 말세의 심판을 주관하겠다던 예수는 2,000 년이 넘도록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인간을 향하여 진노하기를 천 년을 하루 같이 참는다는(?) 여호와는 과연 수 천 년을 넘기고 있다.

"천지는 없어져도, 예수의 말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니, 한 번 믿어 볼까? 그런데, 참으로 이상도 하다.
예수 당시의 세대(世代)가 지나가기 전에 오겠다던 예수와 그 말세는 어째서 아직도 감감 무소식일까?
금방 오겠다던 예수는 오지 않고, 그 오랜 세월 동안 예수교는 돈 벌기에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아니라고 할 텐가?
이런 현상을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던가?

진노하기를 천 년을 하루 같이 오래 참는 여호와라고 한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오래 오래 참으실까?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사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할 기회를 주자는 깊은 뜻이 숨어 있는가? 그렇다면, 그 참는 짓은 100 년으로 족할 것 같은데 .....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2,000 년 전에는 살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수 천 년 전부터 지금의 인간이 불쌍하여 하나라도 더 구원하려고 진노하기를 지금까지 참고 있다는 말인가?
수 천 년 전에는 태어나지도 않은 오늘의 사람들이 불쌍했는가? 그래서, 구원해야겠다는 마음을 일으켰는가? 그런 것도 사랑인가?

지금은 2,000 년 전보다 예수쟁이가 많아졌으므로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당으로 갈 종자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쟁이보다 훨씬 더 많은 수로 불어난 비 예수교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려는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뜨거운 유황불 지옥에 들어가서 영원토록 이를 갈고 있어야 되는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오래 참고' 있는가? 여호와가 참으면 참는 만큼 지옥으로 갈 사람이 기하 급수로 불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여호와의 수 천 년에 걸친 참음으로 지옥으로 간 사람이 그 얼마일까?
인류 전체가 모두 천국으로 가고, 단 한 사람만이 지옥으로 갔다고 하자. 이 한 사람의 비극에 대한 책임을 여호와(예수)는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가? 어림도 없는 착각이다.

자기 의사(意思) 없이 멋모르고 동원됐다가 비참한 삶을 당한 그 사람의 불행을 무엇으로 보상하려는가?
전지전능 아니라 그 이상의 재주를 가져와 보라. 그 재주가 한 사람의 불행한 삶을 보상할 수 있는가?

여호와(예수)는 인간의 불행이 어떤 것인지 알기는 하는가?
여호와(예수)는 영원히 용서 받을 길이 없는 악신(惡神)일 뿐이다.

제삼자 2015-04-05 (일) 12:24

[우상(또는 잡신)과 참신(여호와 및 예수)의 다른 점]


(A) 우상(또는 잡신)

[그 위하는 것(미신 또는 우상)은 삼림(森林)에서 벤 나무요, 공장(工匠=목수)의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그들이 금과 은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요동치 않게 하나니, 그것이 갈린(서 있는)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에게 메임을 입느니라. 그것이 화(禍)를 주거나 복(福)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하셨느니라.]

(예레미야 10;3~5)


우상(잡신)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1. 우상(잡신)은 삼림(森林)에서 벤 나무로 만든 것이다.
2. 우상(잡신)은 목수가 그 연장을 사용하여 만든 것이다.
3. 우상(잡신)은 기술자들이 금(金)과 은(銀)으로 도금한 것이다.

4. 우상(잡신)은 못을 장도리로 박아서 든든하게 세워 놓은 기둥과 같은 것이다.
5. 그래서, 우상(잡신)은 말도 못하고,
6. 걸어다니지도 못하기 때문에,
7. 어디를 가려면, 사람이 메고 다녀야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우상(잡신)이란다.

8. 그래서, 우상(잡긴)은 사람에게 화(禍)를 줄 수도 없고, 복(福)도 줄 수 없는 허수아비라는 것이다.
9.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상(잡신)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B) 참신(여호와 및 예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사브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여호와의 신(神)을 그에게 충만(充滿)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가지 재주로 공교(工巧)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겨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고,...무릇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로 내가 네게 명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 곧 1. 회막(會幕=교회)과 2. 증거궤(證據櫃=궤짝=여호와)와 그 위의 3. 속죄소(贖罪所)와 회막의 모든 4. 기구(器具)와 5. 상(床)과 그 기구와 6. 정금 등대(精金燈臺)와 그 모든 기구와 7. 분향단(焚香壇)과 8. 번제단(燔祭壇)과 그 모든 기구와 9. 물두멍과 그 받침과 제사직(祭司職=목사, 신부)을 행할 때에 입는 정교히 짠 의복 곧 제사장 아론의 10. 성의(聖衣)와 그 아들들의 옷과 11. 관유(灌油)와 성소(聖所)의 향기로운 12. 향이라. 무릇 내가 네게 명한대로 그들이 만들지니라."]

(출애굽기 31;1~11)


1) 우상(잡신)은 공장(목수)이 만드는데 비하여, 여호와(궤짝 및 예수)는 신(神)이 충만하고,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그리고 여러 가지 재주를 가진 사람이 만들고 있음이 다르다.
2) 우상(잡신)은 나무와 금과 은으로 만들어지는데 비하여, 여호와(궤짝 및 예수)는 놋쇠가 더 들어가서 나무, 금, 은, 놋쇠로 만들어짐이 다르다.

** 우상(잡신)은 볼품 없이 단순하게 만들어지는 데 비하여 여호와(궤짝 및 예수)는 꽤나 복잡하고 값진 보물들로 요란하게 치장되고 있음이 다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그렇다면, 우상(잡신)과 여호와(궤짝 및 예수)는 무엇이 다른 것일까? 오늘날의 교회 건물과 그 속의 모든 장식품들은 모두 우상(잡신)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일까?
역시 '똥 묻은 돼지, 겨 묻은 돼지 나무라는 격'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예수가 누구인지 그 제자들도 몰랐다]

[(예수가)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좇았더니, 바다에 큰 놀(풍랑)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잠잠하게 되거늘,

그 사람(제자)들이 기이(奇異)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떤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

(마태 8;23~27)


거센 바람과 파도가 예수의 꾸짖는 소리에 잠잠해 졌다고 한다. ㅎㅎ...아멩 할렐루~야다!

그러자, 예수의 제자들이 말한다. "이 어떤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다시 말해서,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말이다. 
바이블의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예수의 제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예수가 누구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예수를 모르는 자)들에 의하여 예수교가 태어난다. 예수(또는 여호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자들에 의하여 신(神)의 전지전능과 진리와 절대가 태어난 셈이다. ㅎㅎ...이것도 아멩 할렐루~야!

사실상, 인간(목사, 신부, 기타 모든 예수쟁이들을 포함해서) 중에 예수(여호와)가 무엇을 하는 누구인지 아는 자가 있을까? 안다는 자가 있다면, 그게 바로 뭔가를 노리는 사기꾼이 아니고 뭘까?


[1,500년 전의 정확한 안목]


[(모슬렘) 신앙을 가진 자들이여! 너희들은 유대교도와 예수교도들을 벗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그들은 서로 한 패이다. 만약, 너희들 중에 그들을 벗으로 삼는 자가 있으면, 그는 그들과 한 패이다. 알라(신)가 무법(無法)한 패거리를 인도하시는 일은 없으리라."] (코오란 5;51)


알라(신)의 가르침에 의하면, 바이블을 경전으로 하는 유대교도와 예수쟁이들은 모두 무법자(無法者)들이라 한다.
1,500 년 전에도 이렇게 정확한 안목을 가지고 있었거늘, 오늘의 우리 한국 사람들은 무엇이 잘못 된 것일까?
예수교 전래 100 년 만에 예수쟁이가 1 천만을 넘어 섰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제가 큰 민족이 아닐 수 없다.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민족(나라)이 아닌가 걱정된다.


** 이슬람교의 알라(코오란)의 가르침이 억울하게 생각되는 예수쟁이가 있다면, 그 잘못된 점을 찾아내 보기 바란다.


제삼자 2015-04-07 (화) 18:25
[예수교의 신은 자기 자식도 지키지 못한다]--미완성


히브리 왕국의 초대 왕은 사울이다. 사울은 겸손해서 왕이 되는 것을 사양하던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교의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에 의하여 강제로 왕위에 오르게 된다.
여호와의 명을 받은 선지자 사무엘이 여호와의 명에 따라 모든 것을 대행하여, 사울에게 기름부어 등극시킨다.

그런데,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는 사람을 잘못 보았다. 왜냐하면, 사울은 즉시 여호와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악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여호와는 화가 나서 역시 선지자 사무엘을 통하여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한다. 사울을 버리고 다윗으로 교체하려는 것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사울왕은 아직 건재(健在)하여 있고, 다윗에게는 다음 왕으로 발표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사울왕은 정적(政敵)인 다윗을 그대로 놔두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목숨이 위태롭게 된 다윗은 부하 600명을 데리고 망명 생활을 하게 된다. (다윗은 사울왕의 부마이기도 함)

궁지에 몰린 다윗 일당은 어느날, 제사장들(여호와의 자식들)이 모여 사는 놉(지명)이란 곳을 지나게 된다.
제사장은 일의 내막은 모른 채, 왕의 부마(사위)가 왔으므로 어려운 자세로 정성껏 돌보아 준다. 이
사실이 사울왕에게 알려지자, 제사장들은 사울왕의 칼날의 이슬로 사라진다.



[(사울)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이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그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85인을 죽였고, 제사장들의 성읍(城邑)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사무엘상 22;18~19)








바이블에는 대단히 이상한 방향으로 초점(焦點)이 맞추어지는 것이 있다. 백발백중으로 예외가 없다.

예로서, 甲이라는 사람이 여호와의 사람 乙을 죽이면, 甲을 나쁜 놈이라고 지적하면서 여호와의 벌(罰)을 받을 것이라는 예언 따위만 있을 뿐, 억울하게 희생된 乙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다.



위의 원문 내용도 그렇다.

도엑 또는 사울왕이란 놈은 나쁜 놈이요, 언젠가는 여호와의 벌을 받을 것 같은 암시만 보일 뿐, 제사장 85 명을 비롯하여 도륙된 남녀노소의 그 많은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 대책(보상)이 없다.

전지 전능한 신(神)의 자식들인데도 말이다.

사전(事前)에 죽지 않도록 보호를 해 주든지, 죽었으면 살려 주든지, 아니면 천당으로 보냈다든지, 무슨 말이 있어야 될 것 아닌가?



1) 첫 살인 사건; 살인자 가인에게 벌을 주는 장면은 있지만, 억울하게 죽은 아벨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2) 예수가 태어났을 때: 예수를 죽이려던 헤롯왕만 나쁜 놈일 뿐, 억울하게 죽여진 수많은 아기들에 대한 말이 없다.



3) 욥을 시험할 때; 욥의 아들 딸 10 명이 죽여진다.

이것은 여호와가 직접 살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시험의 결과 욥은 합격품으로 판명되었다.

욥에게 새로운 자식 10 명을 다시 주어 축복하지만, 이미 죽여진 10 명에 대한 말은 어디에도 없다.



4) 히브리의 북쪽 왕국 이스라엘의 제7대 아합왕 때에는 여호와의 선지자들이 도륙 되는 수난의 시대였다.

여기에서도 아합왕 만 나쁜 놈이 되어 여호와의 벌을 받고 죽는 장면만 있을 뿐, 억울하게 죽여진 선지자들에 대한 말이 단 한 줄도 없다.



5) 여호와의 성전(聖戰); 아무리 여호와의 성전(聖戰)일지라도 여기에는 억울한 사상자(死傷者)는 무수히 많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승리에 대한 이야기만 있을 뿐, 분명히 있을 사상자(死傷者)에 대한 말은 어디에도 거론되는 바 없다.



6)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을 때; 우리아는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또, 방금 태어난 어린아이가 대용물(代用物)로 죽여졌다.

이때, 다윗과 밧세바에게는 벌(罰) 같지도 않은 벌이 내려졌을 뿐, 억울하게 죽은 우리아와 어린아이에 대한 말(보상)이 없다.



7)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 한다.

그렇다면, 예수가 오기 전에 살아간 사람들과 예수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은 무엇인가?

예수를 믿고 천당 간다는 말만 있을 뿐, 예수의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또, '여호와(또는 성령)의 감동과 허락 없이는 예수를 믿는 일은 불가능한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믿지 않는 사람은 본인의 책임이 아니다. 이 책임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8) 순교자(殉敎者)라는 것도 그렇다.

살아 남은 자들만 신나게 살아갈 뿐, 순교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다.

전지 전능한 신(神)이요, 인간의 생사(生死)를 주관한다는 신(神)을 모시는 종교에서 순교자(殉敎者)의 존재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애굽 왕 바로에게 핏대를 올리며 악담과 저주를 퍼부어 대고도 아무 탈없이 모세는 살아서 나왔다.

그렇다면, 똘마니 예수쟁이들이나 순교(殉敎)라는 것을 하는 것인가?



9) 예수교는 인류 역사(歷史) 속에다 너무도 많은 악(惡)을 배설해 놓았다.

결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여졌다.

이에 대하여 교황은 구교(舊敎)를 대표하여 입으로만(건성으로) 사과라는 것을 했다.

개신교(改新敎) 쪽에서는 "그것은 이단(異端) 또는 사이비(似而非)가 저지른 일이다."로 발뺌만 하고 있다.



이 경우, 사과한 쪽과 발뺌하는 쪽의 사람들은 저 잘 낫다며 신나게 잘 살아가고 있다.

반면에, 그들에 의하여 죽여진 그 많은 억울한 사람들에 대하여는 아무 대책(보상)이 없다.

역시 바이블 내용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악(惡)에 의하여 희생된 인명에 대하여 아무 대책(보상)이 없기는 여호와(예수)도 속수 무책이고, 현실적으로 예수쟁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능(能)치 못함이 없는 전지 전능한 신(神)을 모신 종교는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일까?



10) 일제(日帝) 강점기 때, 거의 대부분의 예수교 지도자들은 일본의 신사(神社=잡신)에 참배했다(받들었다).

바이블에서는, 페르시아(바사) 대제국의 왕들을 칭송하는 장면이 많다.

즉, 조로아스터교의 신(神) 아후라마즈다(Ahura Mazda)를 대리하여 신권(神權) 정치를 단행하던 왕들을 칭송하고 있다.

고레스(Cyros)왕에게는 14 번, 다리오(Darius I)에게는 13 번, 아하수에로왕과 아닥사스다왕에게는 각각 7 번씩이나 칭송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 신사에 참배했던 목사들과 조로아스터교를 칭송했던 바이블 속의 무리들은 승승장구 신나는 인생을 살아간다.

뿐만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한 자는 잘 살고,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사람은 대개 고달프다.

여호와(예수)도 대개 승자의 편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고달픈 사람에 대한 보상은 어디에도 없다.



* 결론; 결국, 이 세상은 뜻 있는 지성인들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독하고 힘든 일이지만, 의지할 것은 오직 오염(汚染)되지 않은 인간의 양심과 지성뿐이다.

예수교는 인간의 모든 것을 가장 크게 오염시키고, 몸과 마음을 마비시키는 종교라고 단정지어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제삼자 2015-04-11 (토) 13:46
[4박 5일 여행을 다녀와서]


첫날은 네바다주의 라스베가스에 일찍 도착하여 슬롯머신을 당겨도 보고, 뷔페 식당에 들러 포식하는 것으로 휴식을 취했다. 
이 번 여행은 라스베가스의 호텔에다 근거지를 마련해 놓고, 캘리포니아주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Death Valley National Park>와 유타주 남쪽에 있는 <Zion National Park> 등, 두 곳을 주로 구경했다.
수 천 km 장거리 여행의 피곤을 줄이기 위하여 라스베가스의 유흥지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즐길 수 있는, 끝없이 펼쳐지는 긴장 또 긴장이 연속되는 사막의 장엄한 여행이었다.

라스베가스는 이번이 세 번 째 여행이다.
첫 번 째는 우리 부부만의 여행 때의 일이었고, 두 번 째는 조카(동생의 아들) 내외를 구경시켜 주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번에는 둘째 딸 내외가 우리를 구경시켜 주는 여행이었다.
그 중, 이번 여행에서 가장 편안하면서도 웅장한 경험을 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모두가 젊음을 만끽하고 있는 딸과 사위의 주도 면밀한 계획과 안내를 받으면서 단행된 여행이었기 때문이었다.

<Death Valley National Park>는 말 그대로 <죽음의 계곡>이었다.
우선, <Death Valley National Park>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Tumble Weed(굴러다니는 잡초=서부극 영화의 음산한 장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만이 드문드문 있을 뿐인 사막 벌판을 화씨100도(섭씨48도)가 넘는 땡볕 속을 5~6시간 달려야 된다.
몇 시간은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 벌판을 달려야 되고, 몇 시간은 계속 구불구불 올라가는 길이 이어진다.

해발 1,010m 고지에 다다르자 비로소 우리를 실은 자동차는 깎아지른 절벽(?)을 내리 달리기 시작하게 된다. <죽음의 계곡>에 접근하려면 가장 낮은 고개가 바로 해발 1,010m 고지를 넘어야 되는 것이다.
해발 3,368m나 되는 가장 높은 산(Telescope Peak=Panamint Range)을 필두로 2,000~3,000m 높이의 산(맥)들로 빙 둘러싸인 깊은 계곡이 바로 <Death Valley National Park=죽음의 계곡>이었던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 <Badwater>라는 지명이 붙어 있었다. 이 곳은 해발 -86m라고 한다. 바다(海面)보다 86m나 낮은 땅이라는 말이다. 이 Badwater는 서반구에서 가장 낮은 땅(육지)이라고 한다.
그 바로 옆에 해발 3,368m 높이의 산이 있어서 총 높낮이가 3,454m나 되어 지구 전체에서 땅의 높낮이가 가장 큰 곳이라고 한다.

2만 년 전에는, 폭 10~18km, 길이 145km의 커다란 호수였었다고 한다. 남북으로 거의 400리나 되던 거대한 호수였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1만 년 전에 그 물이 모두 말라버렸다고 한다.
현재, 이 <죽음의 계곡>에 내리는 강우량은 연 평균 2 inch가 못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정확히 1.76 inch 내외)
옛날, 호수 물에 의하여 침식 작용으로 만들어진 지층 모습을 보여 주는 장소가 몇 군데 있었다. 계곡 중앙에는 풀 한 포기 없었다. 물론 물기도 전혀 없었다. 하얀 소금적만 넓게 깔려 있었다. 명실 공히 <죽음의 계곡>이었다.

우리 가족을 실은 자동차는 <죽음의 계곡> 남쪽으로 넘어 들어가서 북쪽으로 넘어 나왔다. 그러니까, <죽음의 계곡> 안에서 장장 400리 이상을 달린 셈이다.
소금적이 깔린 벌판에 잠시 내려 그 소금 적을 입에 넣어 보았다. 과연, 짜디짠 소금이 분명했다.
중동 팔레스타인 지방의 사해(Dead Sea)의 물이 말라버린다면 이 <Death Valley National Park>와 비슷해질 것이라고 상상해 봤다.
(폭은 사해와 죽음의 계곡이 비슷하지만, 길이는 사해보다 죽음의 계곡이 2배 쯤 길다.)  

<죽음의 계곡> 안에 <Furnace Creek>라는 조그만 오아시스가 있었다. 여기에서는 약간의 샘물이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풀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으며, 여기에 음식점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늦은 점심을 간단히 먹을 수 있었다.

양쪽에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계곡 사이를 달리는 몇 시간 동안 우리 모두의 입에서는 "아!" "저런 저런!" 소리만 나왔다. 무엇이라고 설명해 낼 수 있는 재주가 내게는 없다. 차라리 꿀 먹은 벙어리 행세가 더 좋을지도 모를 일이다.
풀과 나무는 없었지만, 수 만 년 동안 갖가지로 침식을 당한 끝 없이 높은 산들의 깎아지른 절벽 또는 단층들은 울긋불긋 마치 단풍이 만발한 숲 속을 달리는 듯했다.

계곡을 달리는 몇 시간 동안 우리는 10여 대 정도의 다른 차를 본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물론 동식물도 없는 괴괴한 사막이요, <죽음>만이 있는 웅장하고도 장엄한 지옥을 지나온 기분이다.
어디쯤에선가는 <일방 통행>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곳으로 들어가 한 시간 이상을 지나기도 했다. 불안하면서도 좀 더 모험이 하고도 싶어졌었다.
그 곳에는 <Artists Palette(미술가들의 화판)> 또는 <Artists Drive>라는 안내판이 말해 주듯 경치 또한 장관을 이루었다.

여행 경험이 적은 사람이나, 안목이 없는 사람에게 Grand Canyon이나 <죽음의 계곡> 같은 경관을 구경시켜 주면 그 진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 중에 20~30층 짜리 빌딩에 올라가서는 그 높이에 아찔해 하며 감탄하지만, 수 천 m 높이의 자연을 볼 때는 전혀 실감하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너무 많거나 너무 큰 것에 대해서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마누라도 Grand Canyon에 처음 갔을 때는 별로 신통치 않게 보는 기색이더니, 두 번 째 다르고 세 번 째 다르더니, 이제는 누구보다도 자연 현상의 웅장함에 감탄(실감?)을 아끼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런데, 필자도 심신이 서늘하고 오싹해질 정도로 웅대한 자연 현상을 제대로 음미하거나, 그것을 설명할 재주가 없기는 마누라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따라서, <Death Valley National Park> 여행 이야기도 여기 쯤에서 그냥 접는 게 좋을 것 같다.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거대하고 신비로운 자연 현상을 인간의 무슨 재주로 설명해 낼 수가 있단 말인가!

(Zion National Park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된다.)
제삼자 2015-04-11 (토) 15:30

[Zion National Park]--미완성


삼각산은 북한산의 다른 이름이다. 백운대, 인수봉 그리고 만경대, 이렇게 세 봉우리는 마치 뿔 3개를 엎어 놓은 것 같다해서 삼각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삼각산에서 가장 높은 백운대가 해발 837m(서울 남산은 262 m), 그 옆에 항아리를 엎어놓은 것처럼 생긴 인수봉은 811m 그리고, 만경대의 높이는 799m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독자들이여! 그 인수봉을 바라볼 때, 기분(마음 상태)이 어떠한가?
항아리를 엎어놓은 모양을 한 거대한 바위산 인수봉을 바로 밑에까지 접근하여 올려다보면 어떨 것 같으냐는 말이다.
그러면, 모양이 인수봉과 거의 비슷하게 생겼으면서 그 높이가 인수봉의 두 배가 넘는 높이의 바위산들 수 십 개의 봉우리가 폭 100~200m(?) 쯤 되는 협곡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쭉 늘어서 있다면, 그것들을 올려다 보는 기분은 어떨 것 같은가? 

그런 계곡이 자그마치 12km(30리)나 되며, 어떤 곳은 그 계곡의 폭이  수 십 m도 안 되는 것 같았으며(?), 거기에서 올려다 본 하늘은 한(?) 뼘도 안 되는 것 같아 보였다. (거짓말을 조금 보탰을 때의 말이다?)
이것이 미국의 유티주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Zion National Park>의 일부인 <Zion Canyon>의 웅장하고도 아찔한 경관이었다.

<인수봉이 항아리처럼 둥그렇고 매끈하게 생긴 바위산이라면, 미국의 Zion National Park는 뾰쭉 뾰죽하게 생긴 바위산들이다. 아마도, 알프스와 에베레스트처럼 습곡산맥(?)의 일부인 것 같았다.> 

승용차 한 대의 입장료는 20불이었다. 그런 다음, 공원 안에서 Shuttle(Bus) 승차는 무료였다. 이 Bus를 이용하여 가슴이 서늘해지는 30리 거리의 협곡을 왕복하며 구경할 수가 있었다.
그 버스로 협곡을 왕복하는 시간은 약 한 시간 반이나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중간에서 하차하여 좀 더 긴 시간 동안 구경할 수 있는 명소가 8곳이나 있어서 실제로는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공원의 규칙에 이 Zion Canyon이라는 협곡에서는 Shuttle Bus 외의 다른 개인의 차는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이 국립공원에서 가장 높은 산 Horse Ranch Mountain은 해발 2,659m로서 백두산의 높이(2,744m)와 거의 비슷하며, 한라산 높이인 1,950m 내지 2,000m가 넘는 산들이 수두룩했다.
이런 산들의 2~3부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오솔길이 만들어져 있는 곳도 있었다. 우리 가족은 Shuttle Bus에서 내려 이 오솔길을 한 시간 이상 걷기도 했다.
거대한 바위산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덮칠 것 같은 불안을 떨칠 수가 없는 아슬아슬한 산책길이었다.

<Weeping Rock>이라고 이름 불리는 바위산에서는 추녀에서 물이 쏟아지듯 낙수 물이 폭포수를 이루고 있었다. 그 밑으로 산책로가 뚫려 있어서 우리는 그 곳을 통과할 수 있었다.
바위산, 바위 계곡이었지만, 곳곳에서 물이 샘솟고 있어서 계곡의 가운데에는 맑은(?) 물이 내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식수로 사용할 수 없는 물이라고 했다.

Shuttle Bus 여행이 끝난 다음, 우리는 승용차로 <Zion-Mount Carmel Highway>라는 길을 달려 보았다.
마치, 대관령을 넘는 기분인데, 다른 점이 있다면 대관령보다 훨씬 높은 곳을 짧은 거리로 터널을 뚫어 놓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길이 ㄹ자보다도 더 극심하게 굽어 있었으며, 해발 1,562m 지점에서는 바위산을 뚫어 약 2.5km의 터널을 통과해야 됐다.
터널은 구불구불 뚫려 있었으며, 특이 한 것은 전등 시설이 없었던 것이다. 일반 터널과 달리 터널 중간 중간에 창문을 만들어 채광을 하고 있었다.


여러 개의 창문을 만들어 놓을 수 있는 것을 미루어 짐작되는 것은, 바위산 둘레를 돌아가면서 거죽 가까이 뚫어 놓은 터널이 분명했다.
일반적으로 산 중턱에 길을 내려면 산을 깎아내려 길을 닦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뻘건 흙이 노출되어 보기에도 흉하고, 비가 올 때 산사태라는 위험도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항아리처럼 생긴 바위산을 깎아 내리고 길을 만들기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바위산 중턱에서 거죽 가까이 돌아가면서 터널을 만들어 차량이 통과할 수 있게 한 것 같았다.

필자의 글 재주로는 그려 낼 수 없는 자연 경관의 극치가 Zion National Park였다. 거의 서울 크기(605 ㎢)만한 거대한 자연 작품을 어떻게 설명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냥 여기 쯤에서 글 쓰기를 포기해야 될 것 같다. 

제삼자 2015-04-20 (월) 17:04
[반기련이 존재하는 이유]
 
 
미국의 학자들 사이에서는 <Political Correctness & Political Incorrectness>에 대해서 이론이 분분하다고 한다.
편의상 Political Correctness를 Pc 또는 Political Incorrectness를 Pi라고 하자.
필자는 Pc와 Pi를 한국 용어로 무엇이라 하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그 뜻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은 알고 있다.

"인종 차별을 없애자." "
동 식물을 애호하자."  "남녀는 평등해야 한다." "사형제도를 폐지하자."  "소파수술 절대 반대" 등등, 이런 종류, 즉 사실상 듣기 좋고, 보기에 좋고, 대의 명분 서고, 인기 있고, 얼른 생각해서 옳다고 판단되는 이론 또는 그런 활동을 가리켜 Pc라 한다.

반면에, Pc의 반대편에 서거나 그런 생각과 이론을 가진 사람을 Pi라 하겠다.
Pc 쪽의 사람들은 목소리가 크고 적극적이다.
반대로 Pi 쪽의 사람들은 조용히 관망만 한다. 어쩌다가 소리를 냈다가는 망신, 폭행, 심지어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된다.

모피를 팔던 영국의 어느 백화점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하기도 하고,
소파수술 찬성 의사가 시체로 발견되기도 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등장한 복지국가 이념은
어느 사이에 무위도식하는 거지들의 천국을 만들기도 했다.

Pc가 최악의 불행을 초래할 때까지 Pi들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게 마련이다.
자연을 사랑하자는 운동이 사람 죽이는 운동으로 바뀌고,
소파수술 반대 시위도 사람 죽이는 운동으로 바뀌고, 여권 신장 내지 남녀 평등 이론이 마침내 가정을 파괴하고, 그런 가정에서 설명될 수 없는 결함 속에서 자란 세대가 장성하여 사회의 평화와 질서와 정감을 크게 위협할 때까지도 Pi들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조용히 살아갈 수밖에 없다.

지난, 25년 동안 한국에서 자행된 군부 독재도 일종의 Pc 였다.
그 독재 정부가 내세우는 말(내용)이 그러하다. (각설하고)

지금, 한국에서 가장 커다란 Pc는 바로 예수교이다.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자세는 곧
나쁜 놈, 도둑놈, 사기꾼, 마귀, 질서 파괴자, 원수 맺으러 다니는 놈이 되겠다는 말과 같은 뜻이 된다.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 내주는 사람이 일 천 수백 만이고 보면, 예수교는 당연히 Pc이고 나머지는 Pi로서 지옥 자식일 수밖에 없다.

Pi가 입을 벌려 소리를 내게 됐을 때는
Pc의 독소가 더 이상 퍼져서는 안되겠다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이 바로 Pi가 일어 설 때이다.
자칭 Pc 예수교의 모순, 허구, 가면을 벗겨야 할 때이다.

그러나, 엄청난 힘과 기득권을 확보한 예수교가 순순히 귀를 기울일 형편이 아니다. 따라서, Pi(반기련)의 활동은 대단히 힘든 것이다.
이에 Pi(반기련))들의 언어 구사 범위는 확대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심지어는 욕설도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철통 같이 무장되고 세뇌된 예수교의 무뎌진 마음 문이 좀처럼 열려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의 글
[神의 만행은 누가 벌주나?] [쇠귀신들의 행진][神의 이야기 사람 이야기] 등은 이런 연유에서 씌어진 것들이다.
책 광고가 아니다.
이미 오래 전에 시중에서 품절 된 책들이다. 다만 반기련 회원들에게 용기를 주자는 의미에서 써 보는 글이다.

반기련 만만세! 머지 않아 예수교는 무너진다.
사실 반기련이 없더라도 예수교는 문을 닫게 되어 있다. 뻔한 장래의 현상이다.
예수교는 인간이 저지른 실수(또는 죄악) 중에서 가장 큰 비극의 잔해일 뿐이기 때문이다.
제삼자 2015-04-21 (화) 16:34

[예수교와 종교의 자유]


(1) 오늘날 전세계 모든 나라의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라는 조문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종교의 자유>라는 낱말을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자들이 예수쟁이들일 것이다.
예수교의 모순과 궤변과 허구성을 변명하고, 혹세무민을 위한 사기행각을 숨기고, 반 인륜적 만행질을 호도하기 위해서 얼버무리기 좋은 방패막이가 바로 <종교의 자유>라는 낱말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2) 종교의 자유는 예수교를 믿어도 좋고, 불교나 모슬렘 또는 힌두교를 믿어도 좋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법률 장치가 아니다.
바이블의 내용에 입각해서 태어난 예수교의 각종 종파들이 자기만이 정통이고 다른 것을 이단으로 매도하여 잡아 죽이고, 심지어 죽기 살기 식의 전쟁도 불사하는 작태가 인류의 불행과 직접 연결되고 있으므로 부득이 만들어진 법조문이 바로 <종교의 자유>이다.

(3) 더구나 이 <종교의 자유>는 예수교의 힘으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예수교 밖의 사람(특히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만든 장치이다.
그것도 목슴을 걸고 투쟁하여 만든 법조문이다. 누구 때문에 목숨을 걸어야 됐을까? 바로 예수교의 핍박 때문이었다.

예수교가 악착 같이 방해하고 핍박한 것이 어디 한 두 가지 뿐이던가?
과학 발전, 인권 쟁취, 여권 신장 및 남녀 평등 문제, 노예 제도 폐지, 자유(종교의 자유 포함해서) 등등, 인류 사회의 어떤 분야를 불문하고 가장 커다란 걸림돌은 바로 예수교였다. 요즈음은 동성애의 자유를 방해하느라 예수교는 매우 바쁘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재미있는(?) 현상은 예수와 여호와에게 반기를 들고 똥물을 먹이는 걸림돌도 예수쟁이들이라는 점이다.
예수를 잡아 죽인 자도 그(여호와쟁이)들이며, 예수교를 가장 괴롭히는 자도 바로 예수쟁이들이다. 예수쟁이들을 가장 많이 잡아 죽인 자도 예수쟁이들일 것이다. 이보다 더 재미있는(?) 현상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4) <종교의 자유>는 예수교와 가장 크게 대치되는 사건이다. 바이블(여호와 및 예수의 가르침) 어디에도 종교의 자유라는 말은 없다.
오히려, <종교의 자유>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여호와의 명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것이 된다.
불교를 믿어도 좋고, 힌두교를 믿어도 괜찮고, 종교를 가지지 않아도 좋다는 의미의 <종교의 자유>란 여호와(예수) 앞에서는 어림도 없는 짓일 뿐이다.

(5) 그렇다면, 예수쟁이들의 입에서 <종교의 자유>가 말해져서 되는 경우인가? 여호와(예수) 앞에서 이보다 더 큰 이단 또는 사탄 마귀가 있을까?
<종교의 자유>라는 말은 목에 칼이 꽂혀도 입에 올려서는 안 될 종자들이 바로 예수쟁이들이어야 된다.
예수쟁이는 <종교의 자유>를 입에 담는 순간 아니, 머리에 떠올리는 순간 즉시 그 자손 3~4 대까지 지옥불에 떨어질 이단(마귀)으로 낙인 찍히는 중차대한 것이다.

(6) 결론;
예수쟁이들은 죽으면 죽을지언정 단 한 번이라도 <종교의 자유>를 운운해서는 안 된다.
<종교의 자유>는 예수교의 반 인륜적 만행질을 막아 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종교의 자유>는 예수교가 만든 것이 아니라, 예수교 밖의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하여 쟁취한 법조문이다.
<종교의 자유>를 뇌는 자는 가짜 예수쟁이들이다. 그렇다면, 진짜 예수쟁이들이 해야 될 일은 무엇일까?

진짜 예수쟁이는 다음에 열거하는 일만 정성을 다 하여 열심히 실천하면 될 것이다.


(강령) "돌로 쳐 죽이자 부수자"


이 세상에는 느닷없이 착한 사람, 덮어 놓고 의로운 사람, 똑똑한 사람 등등이 많아서 날이 갈수록 사회가 정화되는 모습을 볼 때 여간 마음 든든한 게 아니다.
그래서, 여기에 그 정화 운동의 일환으로 예수교(여호와)의 실천 강령 을 첨부하여 강력히 제언하는 바다.

먼저 전지전능하신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구체적 강령을 준행하기로 하자.


[(여호와 가라사대)
"네 동포,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너를 꾀어 이르기를...
네 열조(조상)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곧...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있는 민족(모든 민족)의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 너는 그를 좇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보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지금은 예수교인)이 손을 대라.

그(다른 종교인)는 ........ 네 신(神) 여호와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한 자니, 너는 `돌로 쳐 죽이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예수쟁이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같은 악을 다시는 너희 중에서 행하지 못하리라."]

(신명기 13;6~11)

* 위의 성구(聖句)를 3 번 이상 자세히 읽자.

여호와(예수) 외의 다른 신(종교)을 섬기는 자는 애비, 에미, 처자식 모두(구구든지)를 돌로 쳐서 죽이라는 말이다.


[강령]

1. 타종교인을 모조리 돌로 쳐 죽이자.

1. 지금은 옛날과 달라 총, 칼도 있다.
타종교인을 모조리 총으로 쏴 죽이자.

1. 기독교의 가정에도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 중에는 타종교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도 모조리 쏴 죽이자 쳐 죽이자.

1. 처(남편) 자식 중에도 타종교에 관심을 두거든 애석히 보지도 말고, 긍휼히 여기지도 말고, 덮어 감추지도 말고, 총으로 쏴 죽이자 쳐 죽이자.

1. 타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예수교의 전도가 먹혀들지 않거든 구하기 쉬운 회칼로 쑤셔 죽이자. 또 죽이자.

1. 돌로 쳐 죽이거나, 총으로 쏴 죽일 때, 서로 앞을 다투어 먼저 행동을 개시하자.
천국이 그의 것이다.

1. 누군가 행동을 개시하면, 모든 예수교인들은 벌떼 같이 일어나 죽이는 일에 동참하자.
천국에서 큰 상이 주어진다.

1. 대도시에 살고 있어서 돌을 구하기 어렵거든 부엌칼이나, 면도칼을 들고 나가서 찔러도 좋고 그어도 좋다.
(가족이 이단일 경우에는 면도칼을 밖으로 들고 나갈 필요가 없다. 그냥 집 안에서 긋자. 박박 거미줄 처럼 긋자.)

1. 단군상이나 불상도 모조리 죽이자. 아니 부수자.
(이럴 때는 탱크의 직사포를 동원하면 능률적이다.)

1. 절, 사당, 향교 등과 각종 조형물(우상)과 무덤을 죽이자. 아니 부수자.
(이럴 때는 폭격기를 동원해야 효과적이다.)

1. 100년 전의 우리 조상은 모두 마귀이다. 조상들의 모든 무덤을 파헤쳐, 부관 참시하자.
(이럴 때는 불도자를 동원하면 더욱 좋다.)

1. 제사 지내는 사람을 보거든 그 자리에서 돌로 쳐 죽이자.
(초상집을 들여다 보거나, 명절에 남의 집을 기웃거려 보면 쉽게 우상과 잡신을 섬기는 자를 찾아 낼 수 있다.)
죽여 마땅한 자들이다.

1. 어쨌든 모조리 돌로 쳐 죽이자. 모조리 부수자.

* "그리하면 온 한국 국민들이 듣고 보고 두려워하여, 이같은 악(예수교를 비방하거나 타종교를 믿는 일, 제사 등)을 다시는 너희 중에서 행하지 못하리라. 아멘"

(신명기 13;6~11)

* 시간을 끌 것도 없고, 구질구질하게 일일이 말대꾸할 것없이, 죽이자 부수자 진멸하자 도륙하자.

십자가 군병들아! 예수교 성도들아!
돌멩이 들고 총칼 들고 용감하게 일어서자.

천국이 가깝다. 시간이 없다.
어서 빨리 여호와(예수)의 가르침을 준행하자.
예수교 밖의 모든 마귀들을 죽이자 부수자.

1. 어서 매혼노, 매국노 그리고 잡놈되자.

ㅎㅎ...아멩 할렐루~야! 암, 아멩 할렐루~야!

제삼자 2015-05-11 (월) 18:29
[바이블의 갑질(행패)]--미완성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디도서 1;15)


(1)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다."고 한다. 

별로 무리하지 않은 말 같아 보인다. 그러나, 궤변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깨끗한 자이고, 모든 것이 왜 깨끗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2)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

앞에서 "깨끗한 자"라고 말을 했으면, 여기에 상대되는 말도 "더러운 자"란 용어만 있어야 한다.
그런데, "더러운"에다 "믿지 아니하는"을 슬쩍 덧붙이고 있다.
어느 악덕 기업의 상술처럼 인기 상품에다 비인기 상품을 슬쩍 끼워서 강매하는 수법과 동일하다. 흔한 말로 강자의 <갑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까?


(3) 결국, "믿지 아니하는 자"는 "마음과 양심이 더럽다"는 데로 연결되고 있다.


깨끗한 자=모든 것이 깨끗하다(서론?)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더럽다(본론?)

믿지 아니하는 자=마음과 양심이 더럽다(결론?)

말을 이끌어 가는 수법부터가 벌써 더러운 사기꾼의 갑질이다.


(4) 그러나, 예수(여호와)를 믿는다는 자들은 신(神)도 속이고, 사람(남)도 속이고, 자신도 속이는 더러운 자들이며, 양심은커녕 속이 시커먼 자들이다.
돈에 눈이 멀어 사람 죽이는 전쟁도 불사하는 악독한 사기꾼에게 양심이란 것이 있을까?

예수교의 역사와 예수쟁이들의 현실과 현재의 한국 모습을 보라. 1,000만 예수쟁이들이 구석구석에서 이끌고 있는 한국이다. 
어느 구석 한 곳이라도 제대로 굴러가는 곳이 있는가? 필자의 지적이 지나치다고 생각되는가?
IMF 때, "좀 더 당해야 돼."라는 말을 많은 사람으로부터 들었다. 많은 사람 즉 민심이 천심임을 알아야 한다.
제삼자 2016-01-31 (일) 10:03
[바이블은 무엇을 증명할까?]


** 참고;지적설계설이 <참>으로 판명되어 천지를 창조한 <신>이 존재하는 것으로 증명되었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그 <신>은 여호와(예수)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여호와(예수)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바이블에서 여호와(예수)가 철저한 가짜임을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여호와(예수)는 없는 존재이다. 지적설계 얘기를 논하기 이전에 이미 거론의 가치조차 없는 가짜들이다.


"신은 존재한다.”는 명제를 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서로 “증거를 대라.” 또는 “증명해 봐라.”라며 치열하다.
그러나, 이럴 때, "신은 존재한다.”는 사람은 이를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람은 증명할 필요가 없다.

없는 현상(상태) 자체가 증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방법도 없다.)

"우리 집에는 냉장고가 있다.”는 사람과
"우리 집에는 냉장고가 없다.”는 사람의 경우,

냉장고가 없는 사람은 “냉장고가 없는” 자체가 바로 그 증명이다.
그러나, 냉장고가 있다는 사람은 반드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실물을 보여 주던지, 냉장고를 구입한 영수증을 보여 주던지, 하다 못해 증인이라도 데려와야 된다.
그러나, 냉장고가 없는 사람은 “냉장고가 없는” 그 자체로서 모든 것이 확실한 증거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만약 “신은 존재한다.”는 명제가 참으로 증명되는 경우가 나타났다고 하자.
이 때의 신은 여호와(예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여호와(예수)에 대하여는 이미 바이블에서 그 존재가 허구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블은 여호와(예수)의 존재와 그 능력을 증명해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이 허구라는 사실을 너무도 자세히 증명해 주는 귀한(?) 책이다.

신학자, 예수교인 등등은 “신은 존재한다.” 고 열을 올린다.
그러나, 그들은 바이블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떠들고 있을 뿐이다.

이미 바이블은 여호와가 허구임을 너무도 자세히 증거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신의 존재가 증명된다면 이는 우리 한국 전래의 <하느님(하나님)>일 것이다.
신의 존재가 증명될 리도 없겠지만.

또, 예수교 쪽에서는 <진화론>이 거짓 명제가 되기를 대단히 기대한다.
그런 다음, 그 <진화론의 거짓 명제>를 곧 바로 <창조설>로 연결하려고 덤벼든다. 어림없는 이론이다.
진화론이 거짓 명제로 판명되어도 그 자체가 창조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또, 창조설이 참으로 판명되더라도 그 창조 역시 여호와의 것은 아니다.
이것 역시 바이블이 확연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기초가 허구이면, 그 위에 세워진 1 층, 2 층, 3 층, ……은 모두 허구일 뿐이다.
여호와가 허구이기 때문에, 그 뒤에서 떠들어지는 말들 즉,
여호와의 독생자 예수,
처녀 임신설,
각종 선지자들의 업적,
각종 기적 등등, 모든 것이 허구에 귀착될 뿐이다.

좋은(?) 말 즉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예수교의 봉사활동>등등의 내용은 여호와(예수)의 존재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종교로서의 자격을 갖추자면 그런 정도의 미사 여구는 준비해야 될 것이다.



예수교는 우리 한국의 생리에 맞지 않는 무서운 조직일 뿐이다.
아니, 인류 사회 어디에도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무서운 마귀 집단이다.
이미 서구 사회에서도 사양 사업으로 치부되고 있다.

목사질로는 밥을 먹고살아 갈 수가 없다.
모든 교회 건물들이 텅텅 비어 있다.

내 민족 한국 사람들이여! 민족의 품으로 돌아 오라.
이 땅을 이스라엘 씨족 신의 놀이터로 만들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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