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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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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인원 : 3,809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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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53[여호와(예수)의 축복을 받고 태어나면]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7-09-10 (일) 05:15 조회 : 258
*53[여호와(예수)의 축복을 받고 태어나면]

미인박명(美人薄命)이란 말이 있다. 미모가 뛰어난 여자는 운명이 기박하다는 말이다. 흔한 말로 미인은 팔자가 좋지 못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교의 바이블에 의하면 여호와(예수)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사람도 박복(薄福)한 인생을 살아감을 알 수 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예수이다.

예수는 임신 과정에서부터 태어날 때까지 그 축복이 대단하다.
심지어 천군(天軍)과 천사(天使)들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여호와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는 찬송을 받으며 태어난다.
그러나, 예수는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무식한 인생으로 30대 초반에 십자가에 달리는 극형으로 인생을 마감한다.

세례요한, 이 사람 역시 여호와의 극진한 사랑과 축복으로 임신되고 태어나지만 예수보다 어린 나이에 목이 잘려 죽는다.
여기에서 잠시 생각할 것이 있다.
여호와(예수)의 축복으로 임신되고 출생하는 사람은 특별히 쓰이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어떤 특수 목적을 위하여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일찍 죽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여호와(예수)의 사랑을 뜸뿍 받고 있는 목사(신부) 및 예수쟁이들은 일반인들보다 무엇인가를 위하여 일찍 죽어야 되는 것 아닐까?
진정한 예수쟁이라면 일찍 죽어야 될 어떤 특수한 사명(일)을 찾아야 될 것이다. 그래야 그것이 예수나 세례요한을 닮는 삶일 것이다.
그래야만 천당인지 뭔지에도 갈 수 있을 것 아닌가?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식의 말장난으로 거저 먹으려는 예수쟁이들은 한 번 곰곰 생각해 봐야 될 것이다.

이 세상에 목숨을 던져야 겨우 해결될똥 말똥한 일들이 어디 한 두 가지 뿐이던가?
(예수와 세례요한이 축복을 받으며 임신되고 출생되는 바이블 내역은 여기에서 생략하기로 한다. 관심 있는 사람은 직접 찾아 보기 바란다. 신약의 앞 부분에 있으므로 찾기는 쉬울 것이다.)




[예수교를 개독(?)이라 칭하면 잘못 된 것일까?]

[너희(예수쟁이들)는 너희 여호와의 성민(聖民)이라. 
무릇 스스로(병들어) 죽은 것은 먹지 말 것이니, 
그것을 성중(城中)에 우거(寓居)하는 객(손님)에게 주어 먹게 하거나, 
이방인(타인)에게 팔아도 가하니라.]-헐! and 대박! 

(신명기 14 ; 21) 

* 동서고금 전인류(全人類) 역사를 망라하여 가장 빛나는 위대한 가르침이라고 해도 조금도 틀리지 않는 말일 것이다. 헐!
  역시 예수교야. 아니, 개독이라 해야 맞는 말 아닐까? 대박! ㅎㅎ...아멩 할렐루야!



[안식 같은 소리하고 있네]

[안식일(安息日)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7일은 너의 신(神)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留)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애굽기 20;8~10)

저축된 재물이 많고 배만 부르면, 
안식일만이 아니라 7일 동안을 모두 놀면서 안식하고 싶은데, 이 점을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사람마다 심신의 조건과 재물의 형편이 다르거늘, 무조건 똑 같은 날을 정해 놓고 안식을 하라는 말인가? 되는 말을 해야지...

또, 전지전능한 제 녀석도 6일 일하고서 하루를 쉰다면서, 
무지무능하고 연약한 인간이 어떻게 제 녀석처럼 6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는가?
인간에게는 격일제로 안식하게 하실 의향은 없으신지...?

여호와시여! 인간의 재물을 작작 착취하십시오. 
그래야, 안식인지 뭔지를 할 것 아닙니까? 재물이 조금이라도 모여 있어야 좀 쉴 것 아닙니까? 안 그래요?




[인간이 잘 되고 행복해 지는 게 싫은 여호와]

 

 

대개의 경우예수교의 신 여호와(예수)를 가리켜 <사랑> <은혜>가 많다고 말해진다.

그런가그렇지 못한가를 따져 보자.

 

[여호와 신이 가라사대,

“보라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여호와들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하시고,

여호와 신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그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창세기 3; 22)

 

(1) 바이블 문맥으로 보아<선악>을 아는 일 즉 지식 따위는 여호와들끼리 만 알고 있어야 되는 특권이었다.

그런데인간이 <선악과>라는 것을 따먹고여호와들처럼 선악을 알게 된 것이다.

(여호와는 유일신이 아니라여러 명임을 말해 주고 있다.)

 

(2) “…영생할까 하노라.”즉자기네들(여호와들)처럼 영생할까 걱정된다는 말이다.

애초부터여호와들은 인간이 선악을 아는 지식을 가지는 것과 영생하는 것을 싫어했던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제까짓 것들이 사랑은 무슨 사랑이야.

 

(3)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생명나무 열매만 따먹으면 영생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문제가 복잡하다사람(아담과 하와)은 이미 <생명과>를 따먹었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안에는 <생명과>, <선악과>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실과 나무가 있었다.

사람에게는 <선악과>를 제외하고는 어떤 실과라도 따먹도록 허락되어 있었다.

그렇다면사람은 이미 <생명과>를 따먹었을 것이며사람은 영생해야 옳다.

 

<생명과> <선악과>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실과였으며에덴동산의 중앙에 있었다.

다시 말해서, <생명과>는 가장 중요한 먹을거리였고가장 아름다운 열매였다.

따라서사람은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부터 이미 <생명과 >를 따먹었을 것이다.

 

(4) 심심 풀이 여담이지만,

아담과 하와는 몇 살짜리로 창조되어 에덴동산에서 얼마 동안 살다가 쫓겨 났을까?

양육시켜 줄 부모 없이 세상에 생겨난 아담과 하와!

처음부터 몇 살짜리여야 생존 능력을 가질 수가 있었을까?

 

갓난 아기, 1살짜리, 2살짜리…소년청년중년 그리고 노년어떤 연령 층으로 창조됐을까?

그리고에덴동산에서는 얼마 동안 살다가 쫓겨났을까하루한 달, 1, 10, 100년?

아담과 하와가 창조됐을 연령 층과 에덴동산 생활을 상상해 보면 재미있는 장면이 많다. (독자들이 한 번 상상해 보길...)

 

(5) 여호와는 세상을 창조하면서 그 때마다 "좋았더라." "심히 좋았더라."를 연발한다.

전지전능한 신의 감각으로 좋은 것이면 <완전> <완벽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런데그 완전 속에서 다시 <더 좋은 에덴동산>을 창설한다.

 

다실 말해서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면 갈 곳,(지옥 같은 바깥 세상)도 이미 창조했던 것이다.

이러한 지옥 세상을 창조하면서 여호와는 <좋았더라>를 연발했던 것이다.

어떤가이럴 때여호와는 어떤 욕을 쳐 잡수셔야 되겠는가?


그렇지만, 예수쟁이들만 위의 바이블 이야기를 알아 듣지 못할 껄? ㅎㅎ...아멩 할렐루야!





[인간은 여호와보다 조금 무능하단다-헐!]

인간은 여호와(신?)보다는 몇 가지에서 조금(?) 무능하다고 한다. 그럴 테지. 헐! 

아래 이야기는 예수교의 신 <여호와>를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한 모세 때의 사건이다. 
우선, 바이블에서 3구절을 잠간 보기로 하자. 


(1) [바로(애굽 왕)도 박사와 박수를 부르매, 
그 애굽 술객(사람)들도 그 술법으로....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여호와 쪽)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출애굽기 7;11~12) 


(2) [....애굽의 술객(사람)들도 자기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물로 피를 만들므로)...] (출애굽기 7;20~22) 


(3) [술객(사람)들도 자기 술법대로 이와 같이 행하여 개구리로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였더라. (만들었더라.)] (출애굽기 8;7) 


수 천 년 전의 애굽(이집트) 사람들이 뱀과 피와 개구리를 만들었다는 말이다. 
전지전능한 여호와(예수교의 전지전능한 신) 쪽에서는 13가지 모두를 만들 수 있었는데, 
무능한 애굽 사람들은 3가지(뱀, 피, 개구리) 밖에는 만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여호와는 쉬운 것에서부터 지극히 여려운 것까지 모든 것(13가지)을 만들 수 있었지만, 
인간의 능력은 지극히 미약해서 아주 쉬운 것(3가지)만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저런!
예수교의 신 여호와가 얼마나 재주가 뛰어난 능력자인가를 알려 주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대박!

그러나, 죽어서 말라 비틀어진 식물(지팡이)을 살아서 움직이는 동물(뱀)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맹물>로 <피>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있을까? 
또, 아무 것도 없는 강물 속에서 무수히 많은 개구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상의 내용은, 예수교의 신 <여호와>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 준 모세가 계속해서 떠들어 댄 말(내용)이다. 
그러나, 수 천 년 전의 미개 시대의 애굽 사람들이 죽은 식물로 살아 있는 동물을 만들 수도 없는 현상이고, 맹물로 피를 만들  수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데서 무수히 많은 개구리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현대의 첨단 과학도 아직은 뱀과 피와 개구리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래 안 그래?  

다시 말해서, 위의 바이블 내용(모세 이야기)은 허구(거짓)라는 말이다. 
따라서, 모세(허구=거짓)가 소개하는 <여호와>도 허구가 됨은 당연하다. 
또, 스스로를 여호와(허구)의 독생자라고 떠드는 예수도 허구(거짓)가 되는 것이다. 

예수교(바이블) 속에 모순, 궤변 그리고 허구(거짓) 아닌 것이 단 한 가지라도 있을까?

예수교는 허구끼리 서로 추켜 주며 짜고 치는 고우스톱이요, 
사람의 눈을 속이기 좋은 종교 탈을 쓰고 있는 혹새무민 집단일 뿐이다. 


출애굽기(허구)-->모세(허구)-->여호와(허구)-->예수(허구)-->예수교(혹세무민 집단-이것만이 허구 아닌 실체)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7-09-11 (월) 03:25
[탁구공]


탁구공은 지름이 40 mm, 무게는 2.5 g 정도 된다.
탁구공! 요새 사람이 보기에도 예쁘고 깜찍하고 멋지지만, 그것을 5,000 년 또는 10,000 년 전의 사람이 보게 됐다면 얼마나 놀라워하게 됐을까? 
그 때, 어느 누군가가 그것을 손에 넣었다면, 조그만 백색 공이 더러워질까 봐 겉을 무엇인가로 포장하지 않았을까?

그 탁구공은 얼마 동안은 보물처럼 아껴지게 되고, 몇 대에 걸쳐서 대물림하며 가보가 될 것이다.
마침내, 이런 저런 설화가 첨가되면서 신격화되기에 이르게 될 것이다.
시대가 점점 발전하면서, 그 보물(신격)은 각종 종이와 헝겁으로 덧 포장되고 또 포장되고 그리고 또 포장된다.

종이나 헝겁 심지어는 가죽과 금으로도 포장될 뿐만 아니라 그 포장지에는 그림도 그려지고, 글씨도 씌어지게 된다.
글쟁이의 글, 시쟁이의 시도 씌어지게 되고 그림쟁이의 그림도 그려지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글과 시와 그림을 해석하는 전문쟁이도 등장하여, 그들이 연구한 내용도 포장지에 첨가된다.

5,000 년 또는 10,000 년 이라는 시간이 지나가자 탁구공은 그 지름이 자그마치 12,000 km 짜리가 된다.
무게는 대략 60 조 톤!
시작부터 얘기가 됐으니까 그 속이 탁구공이지, 지금 사람들은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르고 있다.

그 속에 여호와(예수)가 들어 있다는 사람도 있고, 전지전능과 사랑이 들었다고 악을 쓰는 사람도 있다.
그 속에는 히브리만 들어 있다고도 하고, 시리아, 페르시아, 인도, 그리스 등등도 들어 있다고도 한다.
각계 각층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그 커다란 공에서 한 꺼풀을 벗겨 보기도 하고, 2~3 꺼풀을 벗겨 보고는 뭔가 전문적인 이론을 전개시키기도 한다.

어떤 사람(특히 목사와 신부)은 어떤 구석에서 가로 세로 각각 0.5 mm 짜리 종이 쪽지를 떼어 내어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고는 그것을 설교에 유창하게 인용하기도 한다.
지름 12,000 km, 무게 60 조 톤 짜리 예수교(겨우 속 빈 탁구공)를 밝히려고 그 커다란 껍데기와 군더더기를 다 벗기려면 수 천 년이 걸려도 불가능이다.

예수교의 실체를 알려면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떠들어 놓은 저 두껍고 무거운 껍데기와 군더더기를 보지 말고, 직접(direct) 예수교 자체(바이블) 속으로 직행해야 좋다. 
그래 봐야, 예수교는 지름 4 cm, 무게 2.5 g 짜리 찌그러진 속 빈 탁구공일 뿐이지만...
할렐루야 아멩!




[시꺼먼 비리와 시궁창 냄새] 


이 세상의 어느 교회를 막론하고 시꺼먼 비리와 시궁창 냄새를 풍기지 않는 교회는 없을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인간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집단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 시꺼먼 비리와 시궁창 냄새에 대하여 목사 이하 예수쟁이들 사이에서 흔히 주고 받는 얘기가 있다. 
"이 문제(비리 또는 시궁창 냄새)가 알려지면 덕 될 것이 없으니 덮어 두기로 하자."고. 

얼른 듣기에는 좋은 뜻으로도 들린다. 
마치, 다른 사람을 위해서(사랑해서) 수고도 하고 참아 주자는 속 깊은 뜻이 담긴 소리로도 들린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들 비리와 시궁창 냄새가 널리 알려지면, 일반 여러 예수쟁이들의 신심(信心)이 식어질 위험이 있으니, 쉬쉬하자는 우려의 소리이다. 

그러나, 생각을 좀 해 보자. 

첫째로, 예수교 속에서 횡행하는 그 비리와 시궁창 냄새라는 것이 주로 목사 신부를 비롯한 소위 지도자급의 예수쟁이들이 만들어 내는 더러움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더러운 작자들이 자기 입으로 "이 문제가 알려지면 덕 될 것이 없으니 덮어 두기로 하자" 고 떠들고 있다는 점이다.
낯짝에다 두꺼운 가죽과 철판을 깔아 놓은 뻔뻔이 집단이 예수교임을 알 수 있다.

둘째로, 비리와 시궁창 냄새는 발본색원하여 그 싹을 철저하게 도려내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어느 조직보다도 솔선수범하여 실천해야 될 것 같은 종교라는 조직에서 오히려 그 비리와 시궁창 냄새를 쉬쉬하며 두리뭉실 덮어 두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낯짝에다 철판을 두 겹 세 겹 깔아 놓은 파렴치한 치들의 집단임을 알 수 있다.

셋째로, 이상으로 미루어 보면, 예수교에 신(神)이란 존재는 없고, 오직 인간만의 조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일반 신도들의 신심(信心)이 떨어질 것이 걱정되어 쉬쉬하는 것을 보면,
예수쟁이들의 그 <믿음>이란 것이 전혀 가치가 없는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겸하여, 목사 이하 지도자급 예수쟁이들은 신(神)도 속이고, 이웃도 속이고, 자신도 속이는 순전한 사기꾼들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 곡식 밭에서 곡식이 상할까봐 <김>을 매지 말라고 가르친 예수. 
일반 신도들의 신심이 떨어질까봐 <비리와 시궁창 냄새>를 쉬쉬하며 덮어 두기로 하자는 지도자급 예수쟁이들의 소리. 
이 모두가 조금도 기울지 않는 잡놈들의 사기꾼 놀음이 분명하다. 

밖으로 드러난 예수교의 비리와 악행은 예수교가 가지고 있는 비리와 시궁창 냄새 중에서도 빙산의 일각에 해당하는 것이다. 
"덕 될 것이 없으니 덮어 두기로 하자" 면서 거의 모두가 예수교 속에서 안으로 곪아 터져 자기 네끼리 지지고 볶는다.
바이블 내용에 악독하고 잔인하고 더러운 부분이 나타나면, "그것은 그렇게 해석하는 게 아니다" 또는 "바이블은 전체적 흐름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등등으로 오리발을 내밀려고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덕 될 것이 없으니 적당히 덮고 지나가자"는 음흉한 수작일 뿐이다.
예수교의 모든 것이 그런 것이다.

이 게시판에 들어오는 예수쟁이들은 누구나 우선적으로 뱉어 내는 말이 있다. "교회에서 무슨 상처를 받았느냐?"고. 
어느 교회를 막론하고 그 안에는 사람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극심한 비리와 시궁창 냄새가 코를 진동하고 있음을 스스로 반증해 주는 말이다. 
그런데도 그 소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그 속에서 서로 못잡아 먹어 으르렁 거린다.

어쨌든, 예수교는 어떤 방향에서 조명하여도 인류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된다는 결론 밖에 나올 것이 없다. 
예수교는 반드시 인류 사회로부터 몰아 내야 될 시꺼먼 비리와 시궁창 냄새이다. 
매혼노와 매국노를 양산해 내는 백해 무익의 집단이 예수교이다.





[여호와(예수)의 만행(蠻行)질]


다음의 말은 여호와(예수)가 전지전능한 신으로서 천지를 창조하고, 
이것을 정의와 사랑으로 다스린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성립될 수 있는 이론이다. 

(1) 인간(모든 생명체 포함)을 창조할 때, 여호와(예수)는 당사자인 인간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것은 만행질이다.
생의 조건이 아무리 행복한 것일지라도 그 생(삶)을 거부할 사람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 
전지전능을 훨씬 뛰어 넘어, 여호와(예수)를 주물러 터뜨릴 만한 권한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생(生)을 받겠느냐고 물어 왔다면 즉석에서 사양했을 것이다. 
더구나, 신의 종노릇이나 해야 되고, 무지무능한 이런 모습을 왜 수락하겠는가? 
여호와(예수)는 만행자(蠻行者)이다.


(2) 여호와(예수)는 인간을 창조할 때, 
자신과 똑 같은 전지전능자를 창조하지 않고, 현재와 같은 무지무능하고 여러 가지로 연약한 인간을 창조해 놓은 짓은 만행질이었다.
자신(예수와 여호와)이 정말로 정의와 사랑이라면, 인간을 자신과 똑 같게 만들었어야 옳다. 
그래야, 스스로도 영광스럽고 보람이 있을 것이다.

자신보다 어림없이 무능한 인간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 군림하는 자는 대단히 어리석고 야비한 신(神)이다. 
이는 여호와(예수)도 자신을 믿을 수 없었던 악마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여호와(예수)는 만행자이다.


(3) 전지전능자는 못하는 것이 없는 존재(神)이다. 
그런데, 여호와(예수)는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을 먹이사슬로 연결시켜 놓았다. 
여타 모든 생명체는 물론, 인간도 다른 생명체(세균 따위)의 먹이가 되어 시달려야 되고, 같은 인간끼리도 치열한 경쟁으로 고통의 극을 달린다.

전지전능자에게는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터인데도 무시무시한 먹이사슬로 모든 생명체들을 묶어 놓았다. 
이보다 더 큰 악질적이고도 잔인한 만행질이 있을까? 여호와(예수)는 만행자이다.


(4) 여호와(예수)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살아서 활동한다고 한다. 
이는 조금 잘 못된 해석이다.
전지전능한 신은 먼 과거의 시간에 현재에도 와 있었고, 먼 미래에도 동시(同時)에 왕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한 자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그 모든 시간대를 항상 동시에 왕래하면서 활동하는 존재가 전지전능한 신이다. 
따라서, 태초의 창조 때에 오늘에도 와서 활동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태초에 사람(아담과 하와)을 창조하면서 동시에 오늘의 인간 세계에도 와 있으면서 모든 것에 동참하고 가르치고 간섭하고 조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호와(예수)는 태초에 인간을 창조함과 동시에 오늘에도 나타나서 인간과 함께 죄악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 죄의 책임을 인간에게만 묻고 있으며, 또 인간만이 그에 대한 벌을 짊어져야 한다.
모든 원인의 제공자는 여호와(예수)이거늘, 책임이 인간에게만 돌려지고 여호와(예수)는 오리발만 내밀고 있다. 
이렇게 고약한 악신이 있을 수 있는가? 여호와(예수)는 만행자이다.


(5) 여호와(예수)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가르침(바이블)을 남겨 놓았다. 
문제는 그 달리 해석됨에 따라 모두가 이단이나 사이비 예수쟁이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단(사이비)으로 몰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여졌는가?  

그러면서도 예수쟁이들은 여전히 바이블을 잘 보아야(해석해야) 된다는 말만 반복한다. 
이런 현상을 멀리서 권투 시합쯤 구경하듯 나 몰라라 즐기는 자가 여호와(예수)이다. 
이렇게 못돼 먹은 자가 있을 수 있나? 여호와(예수)는 만행자이다.


(6) 전지전능한 신에게는 발전과 퇴보가 있을 수 없다. 
항상 완전 무결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전지전능한 여호와(예수)를 모시고 있다는 예수교는 태동기, 발전기, 전성기(?), 와해기 등등으로 그 변화가 죽 끓듯 한다. 

영원 불변이라는 여호와의 섭리라는 것도 그 변화가 죽 끓듯 한다. 
이런 모순과 변덕을 인간 세계에다 던져 놓은 여호와(예수)는 지독한 악신이다. 
여호와(예수)는 만행자이다.


(7) 인간은 무지무능을 지나 신(神)을 알아 낼 능력이 전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여호와(예수)는 꼭꼭 숨어 있으면서, "나를 찾아 봐라. 찾지 못하는 자는 지옥으로 보내겠다." 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권한(능력)은 주지 않고 책임(믿음과 행)만 묻고 있다. 
이렇게 고약한 잡놈 짓이 있나? 여호와(예수)는 만행자이다.


(8)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즉, 형이상학적이건 형이하학적이건 모두가 창조주라는 여호와(예수)의 작품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선하고 정의로운 것은 실행하기 어렵거나 하기 싫은 것들로 채워져 있으며, 악하고 불의스러운 것들은 호기심이 일어나고 거기에 빠져들기 쉽게 되어 있다. 

마치, 인간에게 함정 수사를 펼치고 있는 형국이다.
자신(여호와=예수)은 전지전능하여 무엇에나 자유롭고 여유로우면서, 피조물인 모든 생면체들에게는 인내하고 아끼고 조심하지 않으면 큰 불행을 만나게 만들어 놓았다. 
이런 못된 짓이 또 있겠는가? 여호와(예수)는 만행자이다.


(9) 전지전능하다는 여호와(예수)는 스스로 움직여서 영광인지 권위인지를 쟁취할 생각을 하지 않고, 언제나 무지무능한 인간의 활동을 통하여 그것들을 얻어내려고 한다. 
될 법이나 한 일인가? 그게 경우인가?

거기에다 더욱 괴상한 일은, 여호와(예수)는 인간 개개인에게 어떤 일을 부탁하지 않고, 언제나 일부 몇 몇 녀석(모세, 엘리야, 목사, 신부 등)에게만 나타나서 어떤 일을 명해 놓고, 대다수 일반 사람들은 그 몇 몇 녀석들로부터 간접적으로 그 명을 하달 받도록 한다.

인간의 천국이냐 지옥이냐 하는 중차대한 문제를 그렇게 희미하고 의심스럽게 처리해도 되는가? 여호와(예수)는 만행자이다.


(10) 예수교의 유능한 지도자(신학자, 목사, 신부 등)가 되려면, 잡놈 어거스틴과 살인마 칼뱅의 신학 이론을 모르고서는 불가능하다.
이들은 소위 '원죄'라는 것과 '예정론'이라는 이론(여호와의 철칙)을 만들어 낸 자들이다.

인간에게 터무니없는 '굴레(원죄)'를 씌워 놓고, 
태초부터 모든 인간에게 지옥으로 갈 사람과 천당으로 갈 사람으로 결정되어서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예정론'이 예수교의 기본 교리이다.

전지전능하다는 자가 무능하고 애처로운 인간을 상대하여 할 짓이 그런 것 밖에는 없는가? 
전지전능은 이런 일에 써먹으라고 주어진 것인가? 
역시 여호와(예수)는 대단히 못돼 먹은 만행자이다.


(11) 우주를 보면, 별과 별 사이는 너무 멀다. 
다시 말해서, 사람을 비롯하여 생명체들에게 별로 필요할 것 같지 않은 쓸모 없는 공간이 너무 멀고 많다는 말이다.
또, 별들의 대부분은 사람(생명체)이 살아갈 수 없는 것들 뿐이다.

이미, 창조된 생명체들의 환경이 여유롭고 안락하다면 아무러면 어떻겠는가?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인간(생명체)에게 주어져 있는 여건은 어느 것 한 가지라도 여유 있는 것이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모 없는 빈 공간과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는 별들로 우주는 꽉 차있다.

전지전능과 사랑과 은혜와 공의의 타이틀을 달고 있으면서, 여호와(예수)는 겨우 이런 세상을 창조했다는 말인가? 
아서라. 여호와(예수)는 아주 인색하고 치사한 만행자이다.


(12)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들은 먹이를 사냥할 때, 사력을 다 하여 달리며 공격한다. 
조그만 쥐 한 마리를 잡으려 해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런 현상을 다른 방향에서 조명하면, 
맹수의 먹이가 되는 초식 동물들은 목숨을 지키기 위하여 역시 사력을 다 하여 도망다니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들에게 생(生)에 대한 무한대의 애착심이 주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세상 질서에서는 어떤 생(生)이라도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결국, 여호와(예수)는 생명체에다 생의 애착심을 무한대로 주어 놓고서,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행복한 생을 누린 자라도 '죽음'과 상쇄시키면,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비참한 마이너스 생이 되고 만다. 
전지전능한 자로서 이런 끔찍한 질서를 창조했다는 것은 용서될 수 없는 악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호와(예수)는 잔인과 악독의 극을 달리는 만행자이다.

결국, 예수교는 인간의 이와 같은 생에 대한 애착심을 백분 이용하여 착취의 도구로 활용하는 악마의 집단이다.


* 이상 12 가지는 바이블 밖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여호와(예수)의 만행질(악행)을 열거해 본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예수)는 허구이기 때문에 위의 이론도 결국 허구에 불과하다. 
예수교의 '인간 원형(인성) 파괴' 현상을 조금이라도 막아 보려는 의도에서 씌어진 글이다.
서구 사회에서처럼 머지 않아 우리 한국 사회에서도 예수교가 격리 처리될 날이 올 것을 확신한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 바이블에는 [공갈], [협박], [사기(詐欺)], [허구], [독선], [살인(살생) 교사], [편애(편가르기)], [비 과학], [비 논리], [남녀 차별 고취], [인신 매매], [전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쟁], [인간 능멸], [근친 상간], [종잡을 수 없이 변덕스러운 여호와(예수)의 명], [속임수], [노략질], [도둑질], [폭력], [파렴치], [미개인들의 율법], [혹세무민], [타민족 도륙시키기], [입만 가지고 살기], [위선] 등등을 가르치고 고무하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이만하면, 여호와(예수)는 철저한 극악신(極惡神)이요, 만행자(蠻行者)요, 허구(虛構)이다. 여호와(예수)의 본격적인 만행질과 허구성은 바이블과 예수교 역사 속에 고스란히 다 들어 있다. 




[뒤죽박죽으로 다스려지는 예수교의 천당] 

 [사람(제자)들이 예수에게 물었던 모양이다. 
 "천당이 어떤 곳이냐?" 고. 
 그러자 예수가 비유로 설명했다. 

 (1)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 
 (2) 임금은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청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혼인 잔치에 오기를 싫어 했다고 한다. 

 (3) 임금은 다른 종들을 다시 보내어 사람들을 청했다. 
 "소와 살진 짐승을 잡아 오찬을 준비하고 모든 것을 준비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라고. 
 그러나, 청함 받은 사람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가고,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어떤 사람들은 임금의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였다고 한다. 

 (4)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리를 불살랐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시 종들을 보내며 일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5) 종들이 길에 나가서 악(惡)한 자나 선(善)한 자나 만나는대로 모두 데려와 혼인 잔치 자리를 가득 메웠다고 한다. 
 (6) 그런데, 그 불려온 손님 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러자, 임금은 그 사람의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했다고 한다. 

 (7)그런 다음, 예수는 결론을 장식한다. 
 "청(請)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擇)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라고.] 

(마태 22; 1~14)
*********************************************************** 

 (해설) 

 (1) 임금이 자기 아들(왕자)의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청했을 때, 일반적으로 이 사실을 싫어 할 사람이 있을까? 
 오히려 임금의 초청을 받으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게 일반적 현상이 아닐까? 

 (2) 청함 받은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으며,
어떤 사람은 자기 밭으로 나가고, 어떤 사람은 상업차로 나가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임금이 보낸 종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잔치에 초청 받는 일이 그렇게 괴로운 것인가? 초청하는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거절할 문제인가? 
 아무리 비유라 하더라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3) 화가 난 임금은 군대를 보내어 그 동리 사람들을 진멸시켰다고 한다. 
 그런 다음, 사거리에 나가서 아무나 닥치는대로 데려다가 혼인 잔치 자리를 채웠다고 한다. 
 잔치의 손님 중에는 악한 사람도 있고 선한 사람도 있었으나, 이것을 문제 삼지는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아들의 혼인 잔치를 앞 두고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되는 현상(그것도 진멸)이 천국의 비유라니 이상한 일이다. 
 또, 구태여 선한 사람, 악한 사람 이야기가 여기에서 왜 튀어 나와야 될까? 
 혼인 잔치에는 친분 관계를 기준으로 초청하는 것이지, 선악을 따져서 초청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선악에 대한 기준도 애매모호할 뿐이다. 

 (4) 그런데, 손님 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의 수족을 묶어 어두운 바깥으로 내쳐서, 그 사람은 거기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았다고 한다. 

 사거리 시장바닥에서 닥치는대로 잡혀 오다시피 불려온 잔치 손님 중에 오직 한 사람만이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하다. 
 사거리의 시장바닥에 나오는 사람들은 예복을 입게 되어 있는가? 
또, 예복을 입지 않았다고 벌을 받게 되는 현상도 납득하기가 어렵다. 

 (5) 결론 부분에서, 예수는 강조하며 말한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이게 무슨 말일까? 
 <청함 받은 자>와 <택함 입은 자>는 무엇이 다른 것일까? 말 장난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또, <청함 받는 일>이나, <택함 입는 일>은 자신이 좌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직 상대 쪽(여호와=예수)의 마음이 정하기에 딸린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청하는 일이나, 택하는 일은 여호와(예수) 쪽의 권한이다. 
 그렇거늘, 인간으로 하여금 무엇을 어쩌라고 예수(여호와) 쪽에서 떠들고 있다. 되는 경우인가? 

** 제목으로 설정한 것처럼, 예수교에서 말하는 천당은 원칙 없이 <뒤죽박죽으로 다스려지는 곳>임을 알 수 있다. 
 도무지 말 같지도 않아서 해설하기도 힘들다. 
 이것이 신(神)의 자격을 가진 예수의 말이라고 할 때,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저희가 돌아 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임금의)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리를 불사르고,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태 22; 1~14)
제삼자 2017-09-11 (월) 13:47
[예수교의 순교자들의 의미] 

 예수교적 순교에는 세 가지가 있다. 

(1) 전도하다가 적(敵)을 만나 당하는 죽음 
(2) 신앙심은 강철 같이 굳쎈데, 바이블을 잘못 해석하여 비뚤어진 신앙을 가졌다고 당하는 죽음 
(3) 다른 나라에 대하여 노략질을 하다가 당하는 죽음. 

이 세 가지가 바이블과 예수교 역사가 만들어 낸 순교이다. 

(1) 전도를 하자면 자연히 적을 만나게 되어 있다. 
적에는 타종교, 그 나라의 전통, 풍속, 사상, 정서 등등 얼마든지 많다.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자기네 종교와 전통 등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서 가만히 있을 국가나 사람이란 없다.
많은 사람이 죽여졌다. 

이럴 때, 예수교는 자기네 쪽 순교자만 계산하여 예수교가 진리라고 떠든다. 
그러나 상대 쪽에도 순교자는 많다. 오히려 예수교보다 상대 쪽이 훨씬 많다.
순교자가 많은 것으로 그 종교의 진리를 나타내려고 한다면, 예수교보다는 여타 다른 종교가 진리에 더 가깝다. 

예수교에 의하여 씨를 말린 종교도 많은데, 이 씨가 마를 때까지 철저하게 순교를 당해준 종교는 엄청난 진리를 가졌던 종교였으리라.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린다면, 예수교는 순교자의 많음을 자랑하지 말라.  <얼>이 빠져 죽을 짓을 했을 뿐이다.

(2) 예수교는 타종교와 전통이 다른 사회에 전도하려다가 순교 당한 것보다는, 자기네끼리 <이단>으로 몰아 죽이는 짓을 더 많이 했다. 
자기들끼리 만들어내는 순교자들이다. 
순교자가 많아야 그 속에 진리가 많은 것이라면, 부지런히 죽일 일이다.  여기서 "아멘, 할렐루야"를 소리쳐야 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이단>이란 바이블을 잘못 해석하거나 너무 잘 믿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 때문에 종파가 수없이 늘어난다.
 <이단> 중에서도 가장 강력했던 것은 <영지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지주의>를 몰아내고, 문자주의(근본주의)가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진시황제처럼 무자비한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실시해야 됐다.
 
그러나, <영지주의>를 몰아냈지만 예수교는 현재 30,000 가지 이상의 종파로 쪼개져 있다.
그리고, 쪼개진 종파들은 서로 간에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게 일이다. 

이 싸움(전쟁)은 10년 20년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이래서 서구(西歐)에서 <종교의 자유>가 법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그 법의 취지가, 불교를 믿어도 좋고 회교를 믿어도 괜찮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오로지 바이블에 의하여 태어난 종파끼리 허구헌날 죽기 살기로 쌈박질하는 짓이 지겨워서 울며 겨자씨 먹기 식으로 만든 법이 소위 <종교의 자유>라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라는 말이 나오면, 예수교인들은 쥐구멍을 찾아 들어야 하거늘, 그 게 무슨 벼슬이나 되는 듯 떠들고 다닌다. 
몰라서 그러는 겐지 얼굴 가죽이 두꺼워서 그런 겐지.

여호와는 무슨 심사(心思)로 그 어려운(?) 글(바이블)을 인간에게 주었을까? 
서로 제가 옳다고 우기다가 싸우고 죽이는 모습이 그렇게도 영광이 되던가? 
예수교의 말을 빌리면,
필자는 바이블을 잘못 해석하기 때문에 꼭 지옥으로 갈 것이라던데, 그렇게 해서 여호와에게 무슨 이득이 있으실까?  할 짓이 그렇게도 없는가? 

(3) 예수교의 순교 중에는 노략질(강탈, 약탈)하다가 뒈진 순교도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다. 
하기사 바이블 내용은 온통 노략질 전쟁 교과서이다.  배운대로 써먹은 예가 바로 근세의 <제국 주의>이다. 
공산 주의는 예수교를 역동적으로 써먹은 예이다. 

바이블에 <적(敵) 그리스도>라는 말이 있다. 
즉, 예수를 믿지 않고 적대시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볼 때, 못된 짓은 예수쟁이들이 도맡아 해내고 있는 사실이다. 

이를 발견한 <여호와의 증인(예수교의 한 종파)> 쪽에서는 <거짓 그리스도의 친구>라는 새 용어를 만들었다. 
다시 말해서, 못된 짓만 골라서 쏟아내는 예수교는 예수의 가짜 친구라고 지목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호와의 증인> 쪽에서 바이블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의 비참한 역사, 
예수교의 잔인하고도 파렴치한 역사, 
현재의 사납고도 뻔뻔한 기독교인들의 모습 
등등은 지극히 여호와(바이블 내용)를 쏙 빼닮은 모습 그대로가 아닌가?

예수교의 
사납고, 
잔인하고, 
더럽고,
뻔뻔하고,
사기성으로 똘똘 뭉쳐진 모습은 여호와(예수)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실천하고 있는 모습일 뿐이다.

참고;
바이블 속의 주인공들은 120~180세, 또는 900세까지 잘도 살아냈다.
모세와 엘리야 같은 자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을 향해서 악담과 저주를 퍼붓고도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그 후의 예수교인들은 순교자를 만드는가?
여호와(예수)는 제 자식들을 보호하지 않고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모든 것을 도둑질한 것으로]

 

 (1) 성경(聖經);

성경이란 성현들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뜻하기도 하고종교의 최고 법전이 되는 책이다불교의 대장경유교의 사서 오경회교의 코오란 등이 다 성경이다그런데예수교는 자기네 구약과 신약을 아무 설명 없이 <성경>이라 하고 있다이것이 예수교가 인류 역사 속에서 행하여 오던 못된 짓의 버릇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예수교의 경전은 <바이블>이다꼭 성경이라고 하고 싶으면 <예수교의 성경>이라고 해야 한다이도 저도 싫으면 고대 히브리 말이나 희랍 말로 사용하던지그것은 자유일 수 있다.

필자의 이 말이 들리지 않는다면그것이 바로 예수교가 인류 사회에서 지탄받아 마땅한 이유 중 하나라 할 수 있다예수교는 공존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판단되는 셈이다.

 

(2) 하느님(하나님);

<하느님(하나님)>은 우리 나라의 고유한 민속 신()이다종교를 가진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누구를 막론하고 수시로 자신의 잘 잘못을 비추어 보는 거울 같은 신이 <하나님(하느님)>이다. <하나님(하느님)>은 한국의 민속 신이기 때문에한국 사람은 그 말을 들으면 거부 반응 없이 무조건 선()을 떠올리게 되어 있다.

예수교가 짧은 시간에 크게 자란 것도 <하나님(하느님)>을 자기네 신으로 도용(盜用)했기 때문이다연약하고 불안한 인간이기에바이블의 내용은 아는바 없이, <하나님(하느님)>이란 말에 솔깃하여 빠져들고마침내 세뇌되어 쇠귀신화하고 만다.

예수교는 애국가에 나오는 <하느님>까지도 자기네 신이라고 훔쳐서 선전하고 있다.

<하나> <하늘> <할아버지> <한아버지> <하느님(하나님)> <하늘님등의 말은 <(크다많다)>에서 파생한 순수한 우리 한국말이다.

예수교의 신은 <하나님(하느님)>이 아니다야훼(여호와)이다명심하도록실제로는 자음만으로 4 (YHWH)가 진짜 이름이다그래서소리 내어 부를 수도 없는 신이다그러니까 <하나님>만 빼고 맘대로 부르도록...

더구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히 부르지 말라."고 경고하지 않았던가그런 신의 이름을 <하나님>이라고 불러서야 되겠는가그러고도 여호와를 믿고 따르는 신도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3) 헌법(憲法);

<헌법>은 국가의 통치 조직과 통치 작용에 관한 근본 원칙을 정한 기본법이다그런데예수교는 자기네 회칙을 <헌법>이라 하고 있다.
 
() <하나님(하느님)>을 도용(盜用)하고교리 책은 <성경(聖經)>을 도용하고회칙은 <헌법(憲法)>을 도용하고 있다으뜸을 뜻하는 의미의 용어는 모조리 도둑질하여 제 것으로 만드는 조직이 바로 예수교이다.

반면에자기네 조직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될 듯 싶으면벌떼처럼 일어나 배척한다악담과 저주폭력과 협박이 그들의 주무기이다단군(檀君문제도 자기네 종교에 이득이 안 된다고 해석되므로 저렇게 악을 쓰며 부수고 저지한다.

 

(4) 종교의 자유;

세계 각국이 헌법으로 보호하는 <종교의 자유>예수교를 믿어도 좋고유교를 믿어도 상관 없고불교 신앙을 가져도 좋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법이 아니다오로지 바이블에 의하여 태어난 종파끼리 서로 간에 죽기 살기로 싸우는 모습이 지겹고더러워서 울며 겨자씨 먹기로 만들어 놓은 법이다.

이 예수교의 종파끼리 벌이는 전쟁은 10, 20년으로는 끝이 나지 않는다이렇게 사납고 잔인한 예수교의 콧대를 어느 정도 꺾어 놓은 사람들이 바로목숨을 걸고 투쟁한 계몽주의(啓蒙主義사상가들이었다그 후에겨우 만들 수 있었던 게 <종교의 자유>라는 것이다.
 <
종교의 자유>라는 말이 나오면 예수교인들은 쥐구멍을 찾아야 옳거늘고개를 바짝 쳐들고 그 말을 인용하며 떠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5) 설교 내용;

목사들의 <설교>를 들어보면그 게 예수교의 가르침인지불교 또는 유교나 도교의 가르침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처음에 바이블을 한 두 구절 읽고서그것에다 얼기설기 엮어내는 예화들은 모두가이미 우리 나라에 내재(內在)되어 있는 가치관 즉유교불교도교 등의 가르침들을 출처도 모르면서잘도 떠들어댄다그것들이 어째서 여호와(예수의 것인가?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성경>, <하나님(하느님)>, <헌법>, <종교의 자유>, <설교 내용등등우리 나라에서 그럴듯한 것 중에 예수교가 도용(盜用)하지 않는 것이 없다도용으로 끝나지 않고그것들을 모두 예수교의 독점 물로 만들어 놓는다그 재주는 가히 뛰어나다고 하겠다도대체 예수교가 훔쳐 쓰지 않는 것에 무엇이 있는가?

제삼자 2017-09-11 (월) 13:50

[예수교(여호와=예수)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1]

 

입을 다물고 있으면 중간은 간다. 또는

입을 다물고 있으면 면무식(免無識)은 할 수 있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 말이 있다.

 

사실상무식한 사람이 말을 많이 하다 보면자신의 모자람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꼴이 되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의미에서바이블(예수교의 기초)은 쓸데 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느라자신이 허구(虛構), 궤변(詭辯), 모순(矛盾)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자세히 증명해 주고 있다.

 

심지어여호와(예수)의 악독성(惡毒性), 잔인성(殘忍性), 사기성(詐欺性), 배타성(排他性따위를 적나라(赤裸裸)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입을 다물고 있거나 말 수가 적으면 자신의 약점이 감추어 질 수도 있으련만쓸데 없는 말을 너무도 많이 하다가 마침내 자신의 치부를 만천하에 알리게 된 바이블(예수교)!

 

예수교의 경전이라 불리는 <바이블>은 예수교가 <>임을 증거해 주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거짓>임을 철저하게 증명해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는 바이블(여호와=예수)이 입을 다물고 있지를 못하고 계속해서 아는 체를 하며 떠들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마침내바이블 내용은 스스로 신의 말이 아니라고대 미개 시대의 미개인들이 떠들어 놓은 헛소리라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게 되는 것이다.

 

          [2]

 

<태초에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예수는 여호와의 아들이다.>

<여호와(예수)는 전지전능한 신이다.>

<여호와(예수>는 인간을 사랑한다.>

<모세엘리야베드로바울 등은 실존하던 선지자이다.>    등등,

 

바이블에는 위의 말들만 아무 설명 없이 간단 명료하게 기록되어 있어야 했다.

그래야그 진부(眞否)에 대하여 논쟁을 벌이기가 그럴싸할 것이기 때문이다.

 

<태초에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런 말이 세상에 굴러다니면이 말을 믿는 예수쟁이들도 있을 수 있고이 말을 믿지 않는 비 예수교인도 있게 될 것이다.

 

이 경우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그 증거를 제시하기가 어렵다.

따라서목소리가 크고고집 불통으로 박박 우기는 쪽이 이길 가능성이 많다(?)

바보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바이블(여호와)은 <태초에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 하니라.> 이 말만 간단히 써 놓는 것으로는 견디지를 못한다.

입이 근질근질해서 창조 과정을 쭉 떠들어 대게 된다.

 

마침내그 창조 과정 설명이 서로 모순되기도 하고비 과학 비 논리로 점철되고 있어서, <창조설자체가 송두리 째 허구라는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증거해 주고 있게 되는 것이다.

 

<모세엘리야베드로바울 등은 실존하던 선지자이다.>라고 간단하게 씌어 있지를 못하고이들 역시 그 활동 내역이 너무도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활동 내역이 모두 신의 것이 아니라미개 시대의 미개인들이 가질 수 있는 생각과 행동임을 훤히 보여 주고 있다.

모세엘리야베드로바울 등은 선지자라는 타이틀을 붙여 주기에 앞서서 아예 실존 인물이 아님을 증명해 주고 있다.

 

이런 현상들이 모두 바이블이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지를 못하고 줄기차게 입을 열어 떠들고 있어서 벌어지는 결과이다.

 

바이블의 말 많음은 결국바이블 내용이 스스로 신의 말이 아니라고대 미개 시대의 미개인이 떠들어 놓은 헛소리라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는 여호와의 아들이다.>,

<여호와(예수)는 전지전능한 신이다.>,

<여호와(예수>는 인간을 사랑한다.>

등등의 내용도 말을 아껴서 입을 다물고 있지를 못하고미주알고주알 떠들어 대느라 모두가 헛소리임을 밝혀 주고 있다.

 

바이블은 스스로 예수와 여호와가 허구(虛構)임을 너무도 자세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3]

 

자연질서과학논리 등등은 천지 창조와 동시에 우주 속에 내재(內在) 법칙(法則)일 것이다.

천지(우주?)가 없다면자연질서과학논리 등은 존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예수교의 주장대로천지가 여호와에 의하여 창조된 것이라면자연질서 등등도 여호와가 창조하여 천지(우주속에다 집어 넣은 법칙일 것이다.

 

그런데바이블의 내용 중에서 자연질서과학논리 등에 대입했을 때모순과 궤변에 귀착되지 않는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호와는 스스로 철저하게 어긋나게 하기 위하여 자연질서와 과학과논리를 창조했다는 말인가?

스스로 단 한 가지도 지키지 않고 파괴할 자연질서와 과학과 논리를 왜 창조했을까?

 

          [결론]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지를 못하는 바이블!

그래서중간도 할 수가 없고면무식(免無識)도 할 수 없는 여호와(예수)!

 

자기가 창조했다는 법칙(자연질서과학논리)에 단 한 가지도 어긋나지 않는 것이 없는 예수교(바이블여호와예수)!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예수교의 모든 것(바이블여호예수모든 선지자)은 허구(虛構), 모순(矛盾), 궤변(詭辯)임을 확실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거기에다예수교(바이블)는 독선악독저주악담위선 등등으로 철옹성을 쌓고 있는 혹세무민 집단이다.





[바이블(예수교의 모든 것)은 모순과 궤변을 뭉쳐 놓은 허구]


[여러분이 무엇보다도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아무도 성경의 모든 예언을 제멋대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말씀을 받아서 한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 20~21)

바이블(예수교의 경전)은 성령에 이끌려 그 감동을 받은 사람(선지자=예언자)들이 기록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일점일획(一點一劃)도 하자가 없는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 같다. 전지전능한 신(여호와=예수=성령)으로부터 감동 감화를 받은 사람이 그 지시에 따라 기록(바이블)을 남겼다면, 그 기록 내용보다 더 정확하고 훌륭한 보물(가르침)은 없을 것이다.
어쨌든, 예수교의 경전(바이블)에는 조금도 잘못이 있을 수 없는 전지전능한 신(여호와=예수=성령)의 가르침과 뜻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한다. 아멩!
각설하고...

초대 예수교 시절에 서로 상대방을 죽이면서까지 옥신각신 자기 파의 신앙을 지키려고 별별 짓을 다 하던 이단 논쟁이 하나 있었다.
"가짜 교부(예수교의 지도자)가 베푸는 세례는 효력이 있다고 해야 하느냐? 또는, 없다고 해야 하느냐?"하는 문제로 대가리가 터지도록 싸웠다고 한다.
여호와(예수 또는 성령)가 결정해야 할 문제가 분명해 뵈는데도 예수쟁이(인간)들이 주제 넘게 왈가왈부 아우성이다.
어쨌든, 가짜가 나타나서 신(여호와=예수=성령)의 이름을 들먹이며 설교 같은 것도 떠들어대고, 세례라는 것도 베푼다면, 그 효력(결과)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누가 나타나서 "나는 진짜 지도자급 예수쟁이다."라고 선포했을 때, 이것이 진짜인지 또는 가짜인지 그것을 판가름(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나타나서 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세례를 베풀고 있다면, 그 세례를 베푸는 자가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구별해 내기는 불가능하다.
"나는 가짜이다."라고 떠들어댈 사람은 없을 것이며. "나는 진짜이다."라고 선포했다 하여 그 사람이 진짜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서로 잡아 죽이면서까지 이단 논쟁을 벌이게 됐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가짜와 진짜가 가려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속에서 또 다시, "가짜가 세례를 베풀면, 효력이 있는 것일까? 또는 없는 것일까?"
"진짜가 세례를 베풀어야 효력은 있는 것이다."라고 한다면, 진짜는 어느 누구이고, 그 진짜를 누가 어떻게 판가름(증명)할 것인가?
고양이 목에다 방울을 달아야 좋겠지만, 누가 그 방울을 달 수가 있느냐 말이다. 진짜가 세례를 베풀어야 효력이 있다고 해야 좋겠지만, 어느 누구를 진짜라고 해야 된다는 말이냐?  

마침내, "가짜가 세례를 베풀어도 효력이 있는 것으로 하자."고 합의를 보게 된다. "과부의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 고 한다. 같은 의미에서 사기꾼의 사정은 역시 사기꾼만이 아는 것이다.
서로가 자기만이 진짜이고 상대를 가짜라고 몰아 붙이다 보면, 공멸(共滅) 밖에 자기에게 돌아올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어차피, 어느 놈이 진짜 신의 앞잡이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마침내 "가짜가 세례를 베풀어도 그 효력이 있는 것으로 하자." 고 합의를 도출해 내게 되는 것이다. 가짜들끼리 자중지란으로 공멸하는 짓을 미연에 방지하여 공존(共存)할 수 있는 길을 열었던 것이다.

여러 사람들에게 설득력도 있고, 보여주기도 그럴싸한 이유로서 "세례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감동으로) 베푸는 것이지, 사람의 이름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었다.
예수교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 중 어느 한가지 이상의 이름이 들어간 말이나 사건이면 절대의 진리가 된다. 따라서, 가짜가 세례를 베풀더라도 일단 신의 이름으로 행하여진 것이기 때문에 세례의 효과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똑같은 이유에서, 바이블 내용도 성령(여호와=예수)의 감동으로 씌어진 것이기 때문에 일점일획도 하자가 없는 진리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아멩!

여기까지 짧지 않은 복잡한 이야기를 지루하게 전개하게 된 이유가 있다. 이상의 예수교의 <썰(說)>에 입각하여 유추해 낼 수 있는 대단히 중대한 결론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쟁이들 사회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 세례라는 것은 인간이 <거듭날 수>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거듭난 사람이라야 천당에도 갈 수가 있다고 한다. 예수의 가르침이다.
예수교에서 세례는 이렇게 중대한 것이며 또, 가짜가 세례를 베풀더라도 신의 이름으로 행하여졌기 때문에 그 효력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정이 내려진 상태이다.

이제, 결론을 말할 차례가 된 것 같다.

(1) 바이블 내용(예수와 여호와의 가르침)은 일점이획도 하자가 없다고 한다. 바이블은 성령의 감동을 받고서 씌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교 사회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 중 어느 한 가지 이상이 들어가면 절대적 진리가 되는 것이다. 하모!

(2) 목사, 장로는 물론 입교인(정식 예수쟁이)이 되려면, 안수와 함께 세례라는 것을 받아야 된다. 이 때의 안수와 세례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어진다. 
한 개만 들어가도 절대적 진리가 되는데,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3 개가 다 들어간 안수와 세례이니까, 목사와 장로는 물론, 일반 예수쟁이들의 인격이 하늘 같이 높고 깨끗할 것은 두 말 필요가 없다. 이것도 물론 하모!

(3) 교회와 예수쟁이 입에서는 매일 매일 끊임 없이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이 쏟아져나온다. 그래서, 예수교와 예수쟁이 개개인의 언행은 항상 깨끗하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겸해서, 예수쟁이들의 삶은 언제나 축복 속에서 마냥 행복한 인생을 구가하게 되어 있다. 예수쟁이들은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게 되어 있다.  예수쟁이들 신났어. 이것도 역시 하모!


어떤가? 결론 부분 (1) (2) (3)이 자꾸 옆길로 새는 것 같지 않은가?
성부(여호와), 성자(예수), 성령(성신)의 이름으로 세례와 안수를 받았더라도 예수쟁이(목사와 장로도 포함해서)들도 시궁창 이상으로 썩어 있는 모습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바이블은 성령의 감동으로 씌어진 것이기 때문에 일점일획도 하자가 없다."고 미련스럽게 고집을 피울 수가 있는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와 안수를 받은 예수쟁이(목사, 신부 포함해서)들도 썩어문드러진 모습을 하고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감동을 받고서 써 놓았다는 바이블 내용도 더러움과 악독한 모습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는 잡서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의 세례(또는 안수)를 받은 자가 엉터리라면, 성령을 받고 바이블을 쓴 녀석도 엉터리일 가능성은 100 %가 아닐까? 안다스뗑? 


* 당연한 귀결(또는 이치)
수 천 년 동안 매년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4 철의 변화가 있었다면, 내년에도 4 철의 변화가 있을 것은 뻔한 자연의 이치이다.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3 개의 이름으로 세례(또는 안수)를 받은 예수쟁이들이 더러운 냄새를 풍긴다는 사실은, 성령(또는 예수와 여호와)의 감동과 지시를 받고서 써 놓은 바이블도 더러울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또는 모순과 궤변)인 내용으로 채워졌을 것은 뻔한 귀결이다.
바이블(예수교의 모든 것)은 모순과 궤변을 뭉쳐 놓은 허구이다. 거기에다 악독하기까지 하다.
제삼자 2017-09-14 (목) 21:02
[여자가 혼인 상대로 금기해야 할 남자]


참고; 결혼보다 혼인이란 용어가 더 맞는다고 함.
      그래서, 필자는 가능한 한 결혼이란 말을 피하고 혼인이란 말을 씀.


거의 40여 년 전의 일로 기억하고 있다. 
미국의 어느 주요 일간지에 "혼인 상대로 가장 금기해야 할 남자 10가지"라는 기사가 실렸었다. 
지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여자가 혼인 상대로 조심해야 할 남자 제1조> 뿐이다. 


여자가 혼인 상대로 금기해야 할 남자 제1조 ; 독실(篤實)한 종교인 남자. 
다시 말해서, 여자 입장에서 혼인 상대로 금기해야 할 남자 제1조는 독실한 예수쟁이 남자였던 것이다.
어쨌든 여기에서 말하는 종교는 예수교적이다. 연구하여 통계를 만든 곳이 미국이기 때문이다. 

그 기사를 보았을 당시, 필자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본 것 같다.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을 받들고, 그 계명을 지키려고 애쓰며, 수시로 회개하는 삶을 가진 젊은이가 무엇 때문에 혼인 상대로 결격 사유일까? 

너무 깨끗하기 때문에 재미가 없어서일까? 헐!
너무 맑은 물에서는 고기가 살 수 없다는 말처럼. (각설하고)

수 십 년 전, 미국의 국무장관을 지낸 덜레스가 장난 삼아 수수께끼를 냈었다고 한다. 
상금도 걸고서. 단, 가장 그럴싸한 정답은 덜레스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문제.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제출된 답 중에는, 핵무기 전쟁 인간 범죄 무지 심지어 호랑이 사자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상금을 가져간 정답은 스위스의 어느 시골 초등학교 여교사였다고 한다. 

정답은 <설익은 지식을 가진 사람의 말과 행동>이었다고 한다. 
이상의 얘기는 물론 누군가가 지어낸 말일 것이다. 그러나, 한 번쯤 생각하게 하는 얘기임에 틀림없다. 
예수쟁이들은 평생 바이블 한 권으로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실은 바이블도 읽지 않는다.


여자가 혼인 상대를 고를 때, 왜 독실한 예수교 청년을 조심(금기시)해야 될까? 

(1) 예수쟁이들은 아무리 커다란 죄(범죄)를 지었더라도 즉시 용서를 받는다. 
무진장의 사랑과 용서를 가진 신(神=여호와)을 보유하고 있어서, 무엇이든지 용서받고 마음이 편안해 진다. 대박!

(2) 예수쟁이들은 피해자에게 용서를 빌지 않고, 신(여호와 또는 예수)에게 용서를 빌고 그리고 용서를 받는다. 
피해자는 가슴을 치면서 통곡을 하고 있어도, 여호와(예수)에게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마냥 행복하다. 저런!

(3) 예수쟁이들은 속으로 조용히 여호와에게 회개하면 되기 때문에, 어떤 부끄러움이나 망신당하는 일없이, 참회도 할 수 있고 용서도 받고 마음이 편안해져 마냥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헐!

(4) 마침내, 예수쟁이들은 심신(心身)이 마비되어 자신의 언행에 무책임해진다. 
손해 되는 일, 부끄러움 당하는 일없이 얼마든지 회개도 할 수 있고, 용서받을 수도 있고, 오히려 무진장의 복(福)을 내려주시는 신(神)을 모시고 있어서 항상(?) 즐거울 수 있다. 대박!

이런 식으로 심신이 마비된 청년이 있다면, 여자 입장에서 혼인 상대로는 절대로 금기시해야 될 상대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래? 안 그래? ㅎㅎ...아멩 할렐루야!

전국 아니, 전세계의 여성들이여! 알겠는가?
독실한 예수쟁이 남자와 혼인을 한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헐!
제삼자 2017-10-16 (월) 16:37
[불공대천지수(不共戴天之讐)]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자기 똘마니들이 하루라도 전쟁없이 평화롭게(또는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못 봐준다. 대박! 
그런 과정에서, 히브리 족속(이스라엘=예수쟁이들의 옛 조상)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홍해 바다 쪽으로 돌출한 시내(시나이) 반도를 배회하고 있을 때, 아말렉 족속을 만나 전쟁을 하게 된다.
이런 전쟁을 성전(聖戰)이라고 한단다. 얼쑤! 

이 전쟁(성전)에서 모세는 두목(頭目) 격이고, 여호수아는 총대장(總大將) 격이다. 
여기에 <아론>과 <훌>이라는 두 늙은이가 조연으로 등장한다. 아니, 주연으로 승격시켜 주자. 그래서, 주인공은 4명이다. 

성전(성스러운 전쟁)이 어떻게 베풀어지는 것인지 구경해 보기로 하자. 헐!


1) [때에, 아말렉이(이스라엘의 원수)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군인=장정)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여호와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출애굽기 17;8~9)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아군 적군을 불문하고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이는 전쟁이지만, 여호와(예수)가 진두지휘하는 전쟁은 성전(聖戰)이라고 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성전(聖戰)은 그 방법부터가 여늬 전쟁과는 사뭇 다르다. 
우선, 성전이 시작되면 여호와의 지팡이를 잡은 모세가 산꼭대기로 올라간다고 한다. 웬 일이니!

좀 더 보기로 하자. 

참고; 바이블에서 말하는 <사람>이란 노략질 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장정 즉 군인을 뜻한다. 
      히브리 족속(여호와의 백성)은 인구를 조사할 때에도 여자와 아이들을 뺀 사람 즉, 장정(군인)만을 헤아리게 되어 있다. 


2)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여호와의 군대)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破)하니라.] 

(출애굽기 17;9~13) 


모세의 팔이 올라가 있으면 아군(이스라엘)이 이기고, 그 팔이 내려가 있으면 적군(아말렉)이 이기더란다. 
모세가 팔을 내리고 있을 때(편한 자세를 하고 있을 때), 아군이 이기도록 하면 안되는가? 
그렇게 하면, 여호와의 기적질에 의해서 승리를 하게 된 것인지, 여호수아의 작전(인위적인 작전)에 의해서 이긴 것인지 구분하기가 어렵겠지?
전지전능하다는 녀셔석이 이렇게까지 웃기는 짓을 하며 생색을 내려고 하다니...부끄렇지도 않은가? 대박!  

여호와의 기적질에 의하여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현상을 보여 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은 비굴할 정도이다. 
그 당시, <모세>를 비롯하여 <아론>과 <훌>은 모두 100살이 넘은 늙은이들이었다. 
그런데도, 편한 자세가 아닌, 팔을 들고 있어야 아군이 이기는 것으로 꾸민 것은 재미 있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전지전능하다는 녀석이 이런 이상한 짓만 골라서 하고 있대서야 체면이 서겠는가? 헐!

이런 이상한 짓만 골라서 하고 있는(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녀석을 죽어라 하고 따라 다니는 사람들은 또 뭘까? 저런!


처음 얼마 동안은 아군과 적군이 엎치락 뒤치락 했다고 한다. 늙은 모세의 팔이 피곤해서 올라갔다 내려왔다 했으니 말이다. 
모세의 팔이 내려와 있을 때, 적군이 이기고 있다는 말은 아군 쪽에서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모세의 팔이 올라가 있을을 때는 적군이 무수히 죽여지고..... 

그런데, 문맥으로 보면  바이블에는 히브리(여호와의 백성) 쪽에서는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다. 오직 아말렉(적군) 쪽만 전멸된다. 
성전(聖戰)은 이렇게 그려져야 되겠지! 적군 아말렉은 바지 저고리만 몰려 다닌 모양이다. 헐!


나중에서야,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모세의 팔을 부축한다. 그런데, 전쟁은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100살이 넘은 3늙은이가 과연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팔을 들고 있었을까? 
이런 것이 다 없었던 허구를 사실처럼 만드느라 미쳐 생각지 못한 헛점이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은 고대의 미개인들이 어설프게 꾸면 낸 허구(거짓)란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위협 속에는 "칼날에 삼키우리라" 따위의 소름끼치는 표현들이 많은데, 
여기서도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破)했다."고 한다. 대박! 


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성전)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塗抹)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모세가 단(壇)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代代)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출애굽기 17;14~16) 


여기에도 바이블 기자의 실수가 많다.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여호수아는 이 전쟁을 직접 지휘한 대장이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어느 누구보다도 이 전쟁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려 주라."가 되는 말인가? 
여호수아를 전쟁에 직접 참가한 대장으로 꾸며 놓고서, 그것을 잊고 현실로 돌아와 착각하고 쓴 글임을 알 수 있다. 


"아말렉을 도말(塗抹)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여호와의 독설(毒舌)이다. 잡녀석이나 할 수 있는 악담이다.
아말렉 족속들도 여호와가 창조한 인간일 것이다. <도말(塗抹)> 이 웬 말이며, "천하에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가 할 수 
있는 말인가? 헐!

인간 중에 태어나고 싶어서 또는 태어나겠다는 의견을 말하고서 이 세상에 온 자가 있는가? 
인간의 의견은 전혀 수렴하지 않고 제녀석 기분 내키는대로 동원시켜 놓고서, 사람을 이렇게 무지막지(無知莫知)하게 
다뤄도 되는가? 
고장난 장난감이라도 이렇게 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호와보다 더 악독한 악마가 있을까?


여호와(예수교의 신)가 맹세했다고 한다.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代代)로 싸우리라." 헐!

도대체 신(神)이란 작자가 인간과 무슨 원수를 졌기에 "대대로 싸우겠다."는 것일까? 
차라리, 그 전지전능하다는 재주로 노아의 홍수 때처럼, 단번에 인류를 멸종시키는 것이 백 번 옳다. 

여호와(예수교의 신)는 인간과 불공대천지수(不共戴天之讐)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는 인간과 한 하늘 아래에서는 더불어 살 수 없는 원수라는 말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제삼자 2017-10-17 (화) 05:23
[예수(쟁이)와 대화를 하느니 담벼락에 대고]

 
예수는 <동문서답>의 귀재(鬼才)라고 할만하다. 
아니, 예수는 전혀 말귀를 알아 듣지 못하는 괴상한 종자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그 한 가지 예를 보려고 한다.

우선 바이블 한 구절을 보기로 하자.

[사도(예수의 직제자?)들이 주(예수)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누가 17;5~6)


(1) 제자들이 믿음을 더 보태 달라고 예수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이런 요구가 성립될 수 있는 경우인지 모르겠다.
믿는 행위(또는 마음 자세)는 제자(사람)들 자신의 몫이다.
그런데, 이런 믿음(마음 자세)을 다른 사람(예수)에게 보태 달라는 요구가 되는 경우일까?

甲이라는 사람이 乙이라는 사람에게 말했다.(부탁했다.)
"나에게 착하고 유순한 성품을 달라." 고. 이럴 경우, 이것이 될 수 있는 현상인가?

마찬가지로, 
사람 쪽에서 예수에게 "나에게 믿음(마음 자세)을 더 보태 주십시오." 하고 부탁했다면 이것이 되는 경우일까?

허기사,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말)에 의하면, 
예수교의 <믿음>은 여호와(예수) 쪽에서 허락해 주어야 가능하다고 되어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인간의 믿음(마음 자세) 여부는 인간의 책임이 아니라, 그 모든 책임이 여호와(예수)에게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그 믿음의 여부를 인간에게 강요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믿고 안 믿고의 모든 책임은 결국 예수(또는 여호와) 쪽에서 보태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는 그런 것인가 본데, 이 믿음 여부에 따라 천당으로 갈 사람과 지옥으로 갈 사람이 갈린다는 게 경우에 맞는 일인가? 헐!


(2) 제자(사람)들이 믿음을 보태 달라고 부탁을 했으면, 예수는 가부간에 거기에 관한 대답을 해 주어야 옳다.
"믿음을 보태 줄 수 있다."든지, 아니면 "믿음을 보태 줄 수 없다."든지, 거기에 합당한 대답을 해 주어야 옳다. 그래 안 그래?
그런데, 예수의 대답은 동문서답(東問西答)도 못되는 엉뚱한 소리만 쏟아 놓는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겨져라.'
하고 명령을 하면, 그렇게 됐을 것이다."
어떤가? 믿음을 보태 달라는 제자들의 요구에 상응하는 대답이라고 생각되는가? 웬 일이니!

또, 믿음이 있어서 기적을 일으킬 능력을 가지게 되면,
"사하라 사막아, 옥토로 바뀌어라."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 되거라."
"질병 없는 아름다운 세상 되거라."
"좀 더 정화된 인류 사회로 변화되거라" 등등의 할 일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뭐가 어째? 한다는 짓이 겨우 "뽕나무야,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이런 것인가? 헐! 또 헐!
예수(여호와)야, 너는 정말 이런 짓만 골라서 할 테냐?

바다를 가르고,
강을 가르고,
물위를 걸어가고,
죽은 사람을 살리고( 그것도 한 두 명),
귀신을 내쫓고,
나무를 말려 죽이고,
애매한 동물도 죽이고,
점이나 치고(점괘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고 우쭐대기나 하고),
예언이 맞아 떨어졌다고 출썩거리고,
뱀이나 말이 말을 하게 하는 짓이나 하고,
...................
...............................
정말, 이런 짓들만 골라서 할 테냐? 세상에나!


(3) 더 설명하려면, 복잡해지고 골치가 아파진다.
그래서, 나머지는 독자들의 사유 세계에 맡기고 이만 끝낸다.
골수분자 예수쟁이가 아니라면,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말) 속에서 수 백 수 천 갈래의 모순과 궤변 또는 허구(거짓)를 찾아 낼 수가 있을 것이다. 대박!





[제삼자가 발견한 위대한 논리(업적)]
 

* 몇 십 년을 두고 아무리 거듭 생각을 거듭해봐도 
제삼자가 발견한 다음 논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이 분명한데도 여기에 공감하는(칭찬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더 이 게시판에다 올려본다. 아맹!

어떤 반응들을 보일려나!


(가정) 2017년 겨울에는 부산 앞 바다에서 꽁치가 많이 잡힐 것이라 한다. 대박!

(결론) 그러므로, 서울 사람들은 서대문 쪽에서 동대문 쪽으로 부지런히 걸어가야 된다.
       
(증명) 왜냐 하면, 부산 앞 바다에서 꽁치가 많이 잡힐 것이기 때문이다. 헐! 


** 바이블(예수교의 근본 또는 모든 것)에서 위와 같은 말(논리=궤변) 외에 다른 것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봐. 없지? 거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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