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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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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인원 : 5,798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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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57[여호와(=예수)와 맞장뜨는 똘마니 마귀들]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9-04-09 (화) 12:39 조회 : 3197

*57[여호와(=예수)와 맞장뜨는 똘마니 마귀들]


* 맞장뜨다--우열을 가리기 위해 일대일로 싸우다. (누가? 예수교 신과 마귀가?)
   마귀(satan)--악(惡)의 우두머리. 여호와(또는 예수)와 대립하는 악 또는 그 무리를 뜻함. (=악마) 


[(예수 가라사대) "사단(마귀)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마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마태 12; 26)

[예수께서 저희(제자들)를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단(=마귀)이 어찌 사단을 쫓아낼 수 있느냐?] (마가 3; 23)


* 예수의 말에 의하면, 사탄(마귀=악마)들도 자기 편끼리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화목하게 지낸다는 뜻이다. 또, 사탄들끼리는 서로 힘도 비슷하기 때문에 어느 사탄이 다른 사탄을 쫓아 낼 수도 없다는 말이다. 

같은 의미에서, 여호와(또는 예수)가 마귀들을 제압하지 못하는 이유도 예수교의 신 자체가 마귀와 동질(동급)의 마귀라는 뜻이 아닐까? 맞네! 그래 안 그래?

그런데, 예수교(쟁이)의 주장에 의하면, "마귀(악마)들은 분쟁과 분란을 일삼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말을 해 보지 않은 예수쟁이가 있으면 손 들어봐. 없지? 헐!

대부분의 교회 내부에서는 분란이 멈추지 않고 줄기차게 발생하는데, 이에 대해 목사들은 힘 주어 말한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마귀가 씌어서 저런다."고. 이런 말 해 봤어, 안 해 봤어? 정말로 해봤어 안 해봤어? 대박!

그러나, 예수는 분명히 말했다. "마귀(악마)들끼리는 화목하다."고. 이 예수 녀석의 말에 대하여 예수교(쟁이)는 무엇이라고 병명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헐!

국가나 민족들도 대개 자기네끼리는 애국 또는 애족이라는 이름으로 의 좋게 살아가지만, 타 민족에 대해서는 대단히 악독한 짓을 자행해왔다. 
특히, 선민이라고 말해지는 히브리 족속과 예수쟁이라고 일컬어지는 예수교는 세상에다 별별 악독한 짓과 더러운 짓을 무수히 자행해 오고 있다. 그래 안 그래?

자기네끼리는 사랑이 넘쳐나면서(실제로는 그런지 안 그런지는 따져 봐야 되겠지만), 이웃에게는 눈웃음을 살살 뿌리며 속임수와 악독한 짓을 쏟아내는 예수교(쟁이)야 말로 명실 공히 마귀(악마)가 아니고 뭘까? 이것도 그래 안 그래?


[사단(마귀)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 욥이 어찌 까닭 없이 여호와(예수교 주신)를 경외하리이까?"] (욥기 1: 9)

[사단(마귀)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한지라.] (욥기 2; 7)


* 위 2개의 바이블 구절은 예수교의 주신(主神)이신 여호와라는 녀석과 사탄(마귀)이 대등한 입장에서 맞장을 뜨는 장면이다. 헐!

<글을 짧게 줄이기 위해서 욥(바이블 속의 주인공)을 사이에 두고, 여호와 녀석과 사탄(마귀=악마)이 벌이는 어처구니없이 지랄발광하는 장면은 생략하기로 하자. 그러자.>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탄(마귀)이 하는 일은 굉장히 많다.
사람들로 하여금 여호와(또는 예수예수)를 믿지 못하게 방해를 하기도 하고, 반기련 회원들에게는 예수교를 향하여  <개독> <먹사> 등등, 예수교의 각종 명칭에 개망신을 주게 만들기도 한다. 이것이 마귀가 하는 일이 아니고 뭘까? 웬 일이니!

어쨌든, 사탄(마귀)은 예수교의 가장 큰 적(원수)이다. 그런데도, 전지전능하다는 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그 큰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적(원수=마귀)를 단박에 무찌를 생각을 하지 않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싸 놓은 똥을 깔고 앉아서 우물쭈물 뭉개고 있다. 헐!

기껏, 한다는 소리가 "세상 끝날(말세)이 되면, 그 때에 그 사탄(마귀)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다."라는 말로 변명을 늘어 놓기 바쁠 뿐이다. 

 우리 나라 속담에 "나중에 보자는 놈(사람?) 무섭지 않다."는 속담이 있다.
"당장에 화풀이를 하지 못하고 나중에 두고 보자는 사람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 또는 "나중에 어떻게 하겠다고 말로만 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는 말이다. 
마치, 예수교의 신이라는 여호와란 작자와 예수란 녀석의 하는 짓을 빗대어서 만들어진 격언 같다. 대박!
예수교(쟁이)에 크건 작건 간에 뭔가 잘 못된 것이 발생하면, "저것은 마귀가 하는 짓이다."라며 핑계를 대지 않는 때가 없다.

"조자룡의 헌 칼 휘두르듯 한다."는 말이 있다.
예수교 또는 예수쟁이들이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궁지(窮地)에 몰리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가장 먼저 내세우고 보는 것이 조자룡의 헌 칼(보검?)에 해당하는 것이 마귀(악마)이다. 그래 안 그래?
그래 봤자,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평화보다는 분란이 더 많아 보이고, 행복한 일보다는 불행한 장면이 훨씬 더 많아 보이는 등등, 세상의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여호와( 또는 예수) 녀석의 힘보다는 마귀(악마)의 힘이 훨씬 강력함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래 안 그래? 헐!

그렇다. 이 세상을 보더라도 예수쟁이 숫자보다는 그렇지 않은 비 예수교인이 몇 배로 더 많다는 사실도 여호와(=예수) 녀석보다는 마귀(악마)의 작용이 수 십 또는 수 백 배 강력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박!


결론은 간단하다. 
예수교(쟁이)가 조자룡의 보검(헌 칼) 휘두르듯 내세우고 있는 <마귀>의 존재 현상은 여호와(또는 예수)가 존재하지 않는 허수아비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도 남을 것이다. 저런!
그게 아니라면, 여호와(또는 예수) 자체가 바로 사탄(마귀)의 본체라는 뜻일 수도 있겠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도 이를 부정할 수 있는 예수쟁이가 있을까? 

어떤가? 예수교(쟁이)는 아직도 변명할 게 남아 있을까?



[반기련과 1,000만인 서명 운동]


반기련이 <1,000만인 서명 운동>을 시작한 지 어언 10년하고도 2년 여의 세월이 더 흐른 것 같다.
그런데, 1,000만 인에는 어림도 없고, 겨우 1만 천여 명 정도의 서명을 얻은 것 같다. 10여 년에 겨우 1만 명이라!
500만이나 100만도 아니요, 그렇다고 20만이나 10만도 못되는 겨우 1만이라! 목표가 1,000만인데, 1만은 참패 중의 참패요 굴욕 중의 굴욕이 아닐 수 없는 숫자 같다.
목표 치의 1/1,000 즉, 0.1%는 분명 실패작으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반기련의 실력(實力)은 ..... .>

그래서 그랬던가? 일찌감치 <반기련의 실패>를 결론지으면서 반기련의 뻔한(?) 장래를 점치는 글을 남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반기련은 이제 겨우 명맥만 이어가는 그래서, 머지 않아 없어질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는 듯한 글을 만나 본 적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과연, 반기련의 <1,000만 인 서명 운동>은 실패작이요, 그래서 반기련은 겨우 명맥만 이어가다가 머지 않아 마침내 그 존재 자체가 없어질 그런 보잘 것 없는 존재일까?


여기 쯤에서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몇 개의 명언들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一當百(일당백)"-혼자서 능히 백 사람을 당한다는 뜻으로, 매우 용감하거나 능력이 많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一夫當逕,足懼千夫(일부당경,족구천부)"-"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람도 두렵게 만들 수 있다."--충무공 이순신

(3) "一騎當千(일기당천)"-한 사람의 기병이 천 명을 당한다는 뜻으로, 무예나 능력이 아주 뛰어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4) "一夫當關, 萬夫莫開(일부당관, 만부막개)"-"한 사내가 막아 서면, 만 사람도 뚫지 못한다." 중국 詩仙 이백의 "촉도난"에서.
    한 사내가 관문을 지키니, 천군만마도 벌벌 떨게 된다. 천험의 요해지 또는 용감한 장수의 용맹 및 중요한 직책을 의미함.


그렇다면, 반기련의 <1,000만인 서명 운동>에 서명을 한 1만 1천 여명은 어느 정도의 사람들일까?

(이야기를 조금 쯤 곁길로 옮겨 보자.)

2,30년 전만 해도, 서울을 비롯한 웬만한 도시의 거리에서는 일요일만 되면, 제법 삐까뻔쩍하는 양복을 쭉 빼입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과 찬송가라는 것을 옆구리에 끼고서 활보하는 모습을 자랑스레 내보이 곤했었다.
아니, 평일에도 남녀 예수쟁이들 여러 명으로 구성된 집단이 그 바이블과 찬송가라는 것을 옆구리에 끼고서 소위 심방(예수쟁이 일반 가정을 찾아다니며 만남)을 하기 위해서 자랑스레 웅성웅성 몰려다니 곤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제삼자(필자)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즈음은 그 바이블과 찬송가라는 것을 자랑스레 또는 겉으로 보이게 들고 다니는 예수쟁이가 거의 없어진 것 같다. 왜일까? 

"고슴도치도 제 새끼를 추듯" 
어디까지나 예수쟁이들의 착각이었지만, 예수쟁이들도 자기들끼리 예수쟁이 노릇이 자랑스럽게 여겨져서 세상이 좁다며 휘졌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쟁이 노릇을 하기가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부끄러운 세상이 된 것이다.
바이블과 찬송가라는 것이 예전처럼 자랑스러운 소지품이 아니라, 이제는 숨기고 싶은 흉물이란 것을 많은 예수쟁이들도 알게 된 것이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또,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현상!
오늘 날, 예수교에 불어닥친 가장 큰 문제는 <전도 행각>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현상일 것이다.
감언이설과 각종 선물 공세를 펴면서 아무리 사람을 꾀려 해도, 요즈음의 한국 사람 중에는 <예수교의 사기 행각>에 말려드는 사람이 거의 없게 됐을 것이다.

예전과는 사뭇 다른 커다란 장벽이 예수교의 각종 활동을 가로막고 있을 것이다. 그래 안 그래? 
그만큼 사람들이 예수교의 내막과 사기 행각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됐다는 말이다. 이를 어쩌지?  

이 모든 현상이 누구 때문일까? 물론, 무수히 많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가 있어서 "예수쟁이 노릇이 부끄러운 짓"이란 것을 빠른 속도로 홍보하는 위대한 일을 해낸 것일까? 대박!

반기련의 <1,000만인 서명 운동>이 10년 동안에 겨우 1만 1천 명이라며, 힘이 아주 미약한 존재로 치부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一夫當關, 萬夫莫開 (일부당관, 만부막개)"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 사내가 관문을 지키니, 천군만마도 벌벌 떨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 반기련의 <1,000만인  서명 운동>에 서명한 1만 1천 여 명은 1,000만 예수쟁이들을 부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한 숫자이다.
반기련의 <1,000만인 서명 운동>은 벌써 그 목적을 달성했다. 반기련의 힘은 一騎當千(일기당천)을 훨씬 능가하여 一夫當關, 萬夫莫開(일부당관, 만부막개)를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기련은 10,000명 *1,000=1,000만 명 이상의 위력을 가진 활동 조직이다.

반기련의 <힘>은 지구 위 인류 역사 속의 어느 조직보다도 강력한 힘과 깨끗함을 견지(어떤 견해나 입장을 굳게 지니거나 지킴)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조직 중의 조직이다.
그러면서도, 반기련(反基聯=Antichrist.or.kr)은 아주아주 깊게 그리고 아주아주 조용히 천천히 흐르는 대하(大河)이다.  


**참고; 반기련의 <바이블 19금 지정 촉구를 위한 1,000만인 서명운동>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읽지 못하게 하자."는 운동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바이블을 제대로 읽고서 예수교의 정체를 바르게 알자."는 운동이다.
       만약, 바이블을 제대로 읽은 사람을 1,000만 명 확보하는 날이 온다면, 그 날이 바로 예수교의 문도 완전히 닫게 되는 날을 겸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의 전문가]


** 전문가(專門家)--특정 분야의 일을 줄곧 해 와서 그에 관한 풍부하고 깊이 있는 지식이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

세상에는 누구에게나 선배 또는 스승이 있게 마련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어떤 분야에도 선배와 스승은 있다. 
젊은이들은 이들 선배와 스승으로부터 기초를 배우게 되고, 여기에다 자기 재능과 노력을 보태어 자기 발전을 이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참으로 이상한 분야가 있다. 신학(神學=어떤 종교의 신, 교리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그것이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 의하면, 소위 선지자(신의 앞잡이)라는 것도 교육 기관에서 교육을 시켜서 배출하고 있다.
또, 예수교에서는 신학교라는 교육 기관에서 교육을 시켜 목사, 신부 또는 신학자 등등을 배출시키고 있다.
세상의 어떤 분야라도 가르치고 배우고, 자기 재능과 노력을 첨가하여 마침내 전문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신(神)의 분야에서도 가르치고 배우고, 재능과 노력을 보태면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사람이 어떻게 신(神)에 대해서 어떻게 무엇을 가르치고 배울 수가 있으며, 여기에서 무슨 노력을 보탤 수가 있을까?


(1) 누군가가 유리를 발명하면, (2)그 다음 사람이 확대경을 발명하고, (3) 그 다음 사람은 확대경으로 세균을 발견하고, (4) 그 다음 사람은 질병 원인을 알아 내고, (5) 그 다음 사람은 질병 퇴치 법을 찾아 내고, (6)그 다음 사람은 예방 백신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다. 
(7) 마침내, <코로나19>라는 역병의 커다란 어려움을 당해서도 우리 한국의 방역 대책(또는 의술)이 세계적으로 큰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가르치고 배우고 그리고 자기 노력을 보태어 세상을 발전시킨 결과이다.

마찬 가지로, 예수교에서는 (1)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은 이름도 모르는 신을 덮어 놓고 받들다가, 
(2) 모세라는 사람이 마침내 그 신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신(神)을 발견해 내고, 
(3) 다윗 때에 이르러서 여호와에게 사랑이 많음을 알게 되고, 

(4) 엘리야와 엘리사에 이르러 여호와의 갖가지 재주를 알아 내고, 
(5) 예수에 이르러서는 여호와가 자기 아비임을 깨닫게 되고, 
(6) 비로소, 바울에 이르러서야 예수교라는 집단을 만들면 돈이 된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되고, 

(7) 마침내, 신학(神學)이란 것이 하늘 꼭대기까지 발전하여, 예수교으의 신이신 여호와(또는 예수)를 똥값에 팔아 먹어도 별 탈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까지 이르렀다. 
(8) 뿐만 아니라, 예수쟁이 탈을 쓰고서 몇 달 만 지나면, 어느 누구나 신의 세계를 훤히 아는 박사급 전문가에 도달한다? 
(9) 그래서, 예수쟁이들은 어느 누구를 불문하고 하나도 빠짐 없이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에 관한 한 모르는 것이 없는 전문가로 우뚝 서게 되는 것이다. 

(10) 마침내,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의 뜻에 의하여 발생하는 <코로나19>라는 역병"이 창궐하자, 
"역학 조사를 방해하기" "사회적 거리 두기에 역행하기" 등등으로 세상 질서를 파괴하는 예수(교)쟁이들의 행패는 신학적(또는 예수교적) 전문가가 아니면 감히 감행할 수 없는 작태(하는 짓거리)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박!

어떤가? 
이렇게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의 분야도 가르치고 배워서 발전시키고 전문가를 배출할 수 있는 분야인가? 그런 다음, 여기기에다 자기 노력과 재능을 더하면 마침내 박사급 수준으로 발전하여 신의 세계를 훤히 알게 되는가? 
마침내, 이 전문가적 재주로 교회를 세워서 사람들을 꼬여 들이고, 재물을 갈취하여 먹고 살면 이것이 신의 앞잡이 자격이 되는 것인가? 

아니라면, 신의 세계를 누가 어떻게 가르칠 수도 있고 배울 수도 있다는 말인가?
이 신의 지식에다 무엇을 보태고 노력하여 무엇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신학교(神學校)라는 곳에서는 목사와 신부도 배출시키고, 신학자라는 것도 만들어 낸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처음으로 기록한 자들과 신의 섭리를 알아 내어 일반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선지자(신의 앞잡이)들도 교육으로 배출하고 있다. 
어떤가? 되는 말이라고 생각되는가? 

결국, 신(神)의 세계를 가르치는 자도 사기꾼, 배우는 자도 사기꾼, 여기에다 어떤 노력을 보태서 전문가(목사, 신부, 신학자 등등) 노릇을 하는 자도 모두 사기꾼일 뿐이다. 
예수교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통째로 사기꾼과 여기에 말려 든 바보 천치들의 집합체일 뿐이다.


어쨌든, 신학교(神學校)라는 곳에서는 신의 전문가(목사, 신부, 신학자)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킨다. 
아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구절들은 <선지자 생도> 또는 <예언자 수련생>을 모아 놓고 교육시키던 흔적이다. 
다시 말해서,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의 세계를 알아 내는 재주를 교육이나 훈련으로 취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제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아래의 바이블 구절은 신학교를 만들어 놓고서 신학생(선지자 생도, 예언자 수련생)들을 교육시키던 흔적이다. 
이 신학교에서 배출된 선지자(신의 앞잡이)들이 바이블도 쓰고, 여호와(예수)의 섭리도 찾아 내어 풀어냈던 것이다. 
학교라는 교육 기관을 차려 놓고서 신의 세계를 가르치기도 하고 배우기도 했다는 것이다? 정말로 귀신이 곡을 할 일이다. 헐!


**1)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개역 (열왕기하 9;1)
**2) [예언자 엘리사가 한 예언자 수련생을 불러 일렀다.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가지고 라못길르앗으로 가거라."]--공동 (열왕기하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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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지자의 생도 오십(50)인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엘리야와 엘리사)이 요단가에 섰더니]--개역 (열왕기하 2;7)
**2) [예언자 수련생 오십 명이 뒤를 따라가다가 두 사람이 요르단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는 것을 멀찍이 서서 보고 있었다.]--공동 (열왕기하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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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지자의 생도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한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개역  (열왕기하 6;1)
**2) [예언자 수련생들이 엘리사에게 와서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을 모시고 사는 이 곳이 너무 좁습니다."]--공동 (열왕기하 6;1)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9-04-09 (화) 14:26

[톨스토이, 간디 및 정약용을 홀려 놓은 예수교]

** 홀리다--넘어가 마음을 빼앗겨 정신을 차리지 못하거나 산만해지다. 유혹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다.


우리 인간이 범하는 오류(그릇되어 이치에 어긋남) 중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권위에 호소하거나 의지하는 오류"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예수교는 미국(세계 최강국?)으로부터 전래되었다. 따라서, 예수교는 참이고 좋은 종교이다." 
또는, "링컨(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대통령)은 예수를 믿었다. 따라서, 예수교는 믿을 만한 좋은 종교이다." 등등은 "권위에 호소하거나 의지하는 오류"들 중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각설하고) 


[1] 인도의 간디가 말했다고 한다.
"나는 예수를 존경하지만 예수쟁이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와 전혀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고.
어떤가? 간디의 예수교에 대한 진단은 오른 것일까? 간디는 예수교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을까?

인도에서 간디보다 더 유명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다! 세계 전체를 놓고 계산하더라도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 마하트마 간디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말일 것 같다.
따라서, 간디 정도되는 유명한 사람이 그 이름(지위 또는 권위)으로 예수교를 평해 놓은 말 "나는 예수를 존경하지만 예수쟁이들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그 권위에 눌리어 "맞아! 맞아"하면서 맞장구를 치는 사람이 많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 안 그래?

그러나, 간디는 예수교(실제로는 바이블)를 조금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읽어봤는지는 모르겠으나, 간디는 바이블 내용을 전혀 터득하지 못한 사람이 분명하다. 
간디의 예수교 진단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궤변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예수교의 역사(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예수쟁이들의 그 썩어 문드러진 모습은 바이블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예수를 쏙 빼닮은 본연의 모습일 뿐이다. 예수쟁이와 예수는 100% 닮은 꼴일 뿐이다.

간디가 예수교를 제대로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그에 의한 예수교 진단은 달리 말해져야 옳다. 
"나는 예수도 좋아하지 않고, 동시에 예수를 쏙 빼닮은 예수쟁이들도 좋아할 수가 없다."고. ㅎㅎ...아멩 할렐루야! 대박!


[2] <부활>은 <전쟁과 평화> 및 <안나 카레니나>와 함께 톨스토이의 3대 걸작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면, 톨스토이는 누구인가?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대문호로 지칭되는 동시에 세익스피어, 괴테와 함께 "세계 3대 문호"로도 불리는 유명 또 유명한 사람이다.
이렇게 유명한 톨스토이가 예수교적으로 유명한 말을 남겼다면, 세상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나타낼까?

톨스토이는 <부활>이라는 소설을 통하여 "주인공이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의 감동에 의해서 정신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부활하는) 장면을 그려내는 소설 <부활>을 창작해 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활>을 읽는 독자들은 톨스토이의 권위에 압도되어 "예수교(또는 바이블)는 좋은 종교로구나."라며 예수교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이런 현상이 바로 "권위에 호소하거나 의지하는 오류"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소설 <부활> 속의 주인공 네흘류도프는 친척(고모) 집에 놀러갔다가 예쁜 하녀 카튜샤를 유혹하여 임신을 시키게 된다. 그러나, 돈 몇 푼을 쥐어 주고는 헌 신짝처럼 버린다. 결국, 카튜샤는 창녀로 전락하게 된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네흘류도프가 어느 지방 법원의 배심원이 되어 법정에 나가게 된다. 재판은 어느 매춘부가 손님을 독살하고 돈과 반지를 훔친 사건이었다.
알고 보니, 그 매춘부는 네흘류도프가 유혹하여 임신시킨 후, 팽개쳐버린 바로 그 카튜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서 받는 재판이었다.

종국에는, 카튜샤가 4년이라는 중형을 받고서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게 된다.
네흘류도프는 자기 때문에 한 여자가 파멸했다는 사실에 깊은 죄의식을 느껴 어떻게 해서든 그 카튜샤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모두 허사가 된다.
네흘류도프는 직접 카튜샤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시베리아까지 따라간다. 마침내, 시베리아에서 카튜샤 사건에 대한 판결 취소 명령이 내려지고 그 녀는 자유의 몸이 된다. 

(네흘류도프와 카튜샤의 복잡한 사랑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하자.)
두 남녀의 흥미로운 사랑 이야기 중간 중간에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읽으면서 그 속에 나타나 있는 무한한 사랑(?)으로 진실을 찾아간다는 줄거리가 바로 <부활>이다. 헐!
매춘부로 타락한 뒤에도 영혼의 저 밑바닥에 있는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카튜사, 여기에 감동을 받은 네흘류도프도 새로운 인생으로 부활한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 유명한<부활>이라는 소설이다. 세상에나!


[3] 정약용! 한국 국민 중에 저 유명한 대학자 정약용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따라서, 정약용의 이름으로 무엇인가 말해진다면, 그 권위에 압도되어 감히 저항해 볼 생각을 일으킬 사람이 별로 없지 않을까?

정약용은 명실 공히 천재였던 것 같다. 그는 이미 22세 때에 소과에 합격하고, 28세 때 대과에 차석으로 합격하여 34살에 이미 당상관인 정3품 부승지(임금 비서관)에 올랐다고 하니까....
이 정약용이 천주실의(천주교에 대한 책자-결국 이것도 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 빠져서 마침내 예수교에 걸려들었다고 한다. 세례명은 <요한>으로 알려져 있다. 헐! 

결국, 정약용은 배교를 한 것으로 전해지는 것 같다. 고문에 의한 죽음이 무서워서?
그러나, 저렇게 똑똑한 천재도 예수교에 빠져들어 코가 뚫려 끌려다니기도 하고 착취를 당하며 허덕이는 꼴을 보노라면 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긴 말은 줄이기로 하자. 그 긴 말을 어찌 다 말 할 수 있으랴!)


그런데, 말이다. 
간디, 톨스토이 그리고, 정약용처럼 똑똑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의 어디를 읽었기에 어떤 대목에서 무슨 감동을 받고서 예수교에 코가 뚫려 끌려다닌 걸까? 세상에나!

간디는 뭐에 눈이 멀어 "나는 예수를 존경하지만, 예수쟁이들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게 됐고,
톨스토이는 어떻게 해서 그토록 더럽게 타락한 두 남녀로 하여금 갱생할 수 있는 모법 답안을 바이블에서 찾을 수 있었다는 겐지?
정약용은 무엇에 홀려서 예수교에 현혹됐었던 것인지...세상은 역시 요지경이로다!

세계에서 두 번 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의 위인(?) 간디도, 대문호 소리를 듣는 톨스토이도 그리고 대학자 정약용도 여늬 예수쟁이들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엉터리꾼임을 알려주고 있는 사실이 아닐까?
유명하디 유명한 인도의 간디나,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나, 우리 한국의 대학자 정약용이나, 그 명성과 권위를 가지고 뭔가를 떠들어 놓으면 어느 누구도 감히 그것에 저항해 볼 수가 없는 진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헐! 

그러나, 인도의 그 유명한 지도자 간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그리고 정약용 같은 유명인이 그 이름(또는 권위)으로 아무리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추켜 세우더라도 그 바이블 내용이 훌륭해질 수는 없다. 그렇다!

인류의 역사 속에는 허명(虛名)과 허세(虛勢)가 참으로 많다. 물론, 그 허명과 허세에서 여호와(또는 예수)를 따를 자는 없지만 말이다. 물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기련이 인류 역사상 가장 허명과 허세 없이, 거품도 없이 액면 그대로의 깨끗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닐까 싶다. 아! 기분 째져!

역시, 반기련 최고!
제삼자 2019-04-14 (일) 05:37
[모든 순서를 뒤바꿔서 가르치는 예수교]

사람을 훈육할 때, 
(1) 먼저, 알 수 있도록 가르쳐 준 후에 "스스로 하도록 하는 방법"과 
(2) 전혀 아무 것도 모르게 숨겨 놓고서 "덮어 놓고 하라"고 윽박지르는 방법 중, 어느 것이 효과적이고 제대로 된 방법일까?

그러면, 사람으로 하여금 
(1) 신(여호와 또는 예수)의 존재와 능력을 잘 알 수 있도록 밝혀 놓은 다음, 신의 가르침을 받도록 하는 방법과 
(2) 신의 존재와 능력을 조금도 알 수 없게 숨겨 놓고서 "덮어 놓고 믿고 따르라"고 윽박지르는 방법 중, 어느것이 제대로 된 방법일까?  
(각설하고)  


일당을 5만 6천 7백 8십 원 90전 씩 주기로 하고, 연인원 321명에게 12일 동안 일을 시켰다면, 지불해야 할 품삯의 총액은 얼마일까? 
구구단을 아직 배우지 않은 사람에게 이 품삯의 총액을 산출하게 한다면 대단히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구구단을 배운 사람이라면, 이런 계산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울 것이 분명하다. 

여호와(또는 예수)의 존재와 능력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을 상대로 "여호와(또는 예수)를 믿고 따르라."하고 강요를 한다면, 이를 속임수(거짓) 없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신(神)의 존재와 그 능력을 전혀 알아 낼 능력과 방법이 없는 사람이 "신을 믿고 따르는 짓"은 속임수(또는 것짓) 없이는 전혀 불가능한 경지일 뿐이다. 그래 안 그래?

하물며, 한 술 더 떠서, 신의 세계를 설명하며 풀어내기도 하고, 전도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보다 더 커다란 사기꾼(또는 거짓말쟁이)이 있을까? 헐!

여기 쯤에서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한 구절을 보기로 하자. 

[(예수가 어떤 관원에게 말했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관원이)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관원)이 큰 부자인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누가 18; 20~23) 

위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구절은 예수와 어떤 관원이 주고 받는 대화 내용이다. 
한 구절 한 구절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한 번 따져 보기로 할까?

** (1) [(예수가 말했다) 
"'네(어떤 관원)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하였느니라.] 

위의 말은 예수가 아니더라도 인류 사회 어디에서나 가르치는 도덕률이요 법이다. 저런 가르침이 없는 곳이 있다면, 그런 경우는 동물이나 식물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위의 바이블 내용 정도의 가르침은 예수교와 연관 지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 몰라서 실천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덕목을 3차 4차 곱 삶아가며 우격다짐으로 떠들(가르칠) 필요가 없다.
결국, 예수(또는 여홍와) 녀석이 순서를 뒤바꿔서 일을 꾸미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현상일 뿐이다. 안다스뗑 모른다스뗑?


** (2) [(관원이)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예수가 우쭐대면서 몇 가지 도덕률을 예시하자, 대화의 상대는 자신있게 대답하고 있다. "그런 정도 쯤이야 어려서부터 모두 지킨 것들이다."라고. 
그렇다. 세상에는 <간음> <살인> <도적질> <거짓 증거> 등등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은 많다. 그리고,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경우, 오히려 예수와 그 쟁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너나 잘 하세요." 어때? 말 되지? 헐!


** (3) <사기꾼>이란 무엇일까? 
"100만 원만 투자를 하면, 50년 동안 매 달 1,000만 원 씩 수익이 보장되는 사업이 있으니 돈을 가져 오라."고 꾀는 사람이 있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의심해 봐야 될까? 
사기꾼 말고 다른 것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거든 손을 들어봐. 없지? 

자, 그렇다면, 다음 가르침을 만난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무엇을 의심을 해봐야 제대로 된 사람일까? 

[(예수 녀석 가라사대)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헐!

여호와(또는 예수)의 존재와 능력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고, 믿어지지도 않는 사람에게 "전 재산을 팔아 남에게 주어라. 그렇게 해야 천당에 가서 영생 복락을 누릴 수 있다." 고 가르친다면, 이 가르침을 따를 사람이 있을까? 
긴 말 필요 없이, 예수쟁이들 개개인을 살펴 보라. 금전욕, 명예욕, 권력욕 등에 푹푹 절어 있지 않은 자가 있던가? 그래 안 그래?

여기에서도 예수쟁이들에게 꼭 물어 보고 싶은 말이 있다. 
"여호와(또는 예수)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고 있다면서도(믿는다면서도) 세상 욕심을 버리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아직도, 자신이 사기꾼(또는 바보)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예수쟁이가 있는가?" 


** (4) [그 사람(어떤 관원)이 큰 부자인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심히 근심하더라?--어불 성설이다.) 

큰 부자이건, 작은 부자이건, 아예 아주 가난한 사람이건, 전 재산을 팔아서 남에게 주라는 가르침을 따를 사람이 정신 병자 말고 누가 있을까?
실제로, 목사 신부를 포함해서 일반 예수쟁이 전체를 통틀어도 자기 전 재산을 모두 이웃에기 나누어 준 다음 예수를 따를 그런 예수쟁이는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로 착취에 혈안이 되어 눈이 벌걸 껄? 그래 안 그래?

결론:
예수교의 모든 것은 거꾸로 되어 있다. 앞뒤 순서가 모두 틀려 먹었다.

여호와(또는 예수)의 존재와 능력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밝혀 놓지 않고, 모든 것을 꼭꼭 숨겨 놓은 상태에서 
"이것을 해라." "저것도 해라."하면서 자그마치 77,000줄이나 되는 가르침(바이블)을 우격다짐으로 제시해 놓은 예수교! 
모든 것의 앞뒤를 거꾸로 늘어 놓고서 자기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을 모두 "뜨거운 유황불 지옥으로 보내겠다."며 저주와 악담 그리고 공갈과 협박을 쏟아내는 예수교!

여호와(또는 예수)는 가장 먼저 자신의 정체(존재와 능력)를 사람들이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밝혀라.
그런 다음, 자신이 바라는 요구 사항을 제시하라. 그러면, 77,000줄이나 되는 그런 수고(두꺼운 바이블)가 필요 없을 것이다.
아니. 단 한 마디를 가르치지 않더라도 여호와(또는 예수)의 존재와 능력을 밝혀 놓기만 하면, 그날로 인간의 과잉 충성 때문에 여호와(또는 예수)는 영광이 넘쳐 날 뿐만 아니라, 지금 쯤 그 영광에 넌더리를 치고 있을 껄? 그래 안 그래?

* 넌더리--몹시 싫어서 생기는 귀찮고 지긋지긋한 느낌이나 생각.




[예수에게 똥물을 먹이는 쪽은 어느 쪽일까?]
 
甲, 乙 두 젊은 승려가 같은 절에서 수행 정진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의 귀에 그 곳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의 큰 절에 대덕(大德=덕이 높은 스님)이 묵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젊은 두 승려는 논의 끝에 그 대덕을 찾아 뵙고 가르침을 받기로 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즉시 대덕을 만나 보기 위하여 길을 떠났다. 
한참을 가다가 보니 커다란 시내가 그들 앞을 가로 막았다. 상류 쪽에 비가 많이 왔는지 물이 꽤나 불어 있었다.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올리지 않고는 건널 수 없을 정도로 물이 깊기도 하고 또 물살이 세게 흐르고 있었다. 
때 마침, 예쁘장하게 생긴 아가씨(젊은 여자)가 같은 방향에서 나타났다. 그 녀는 뭔가 급한 일로 길을 떠난 사람 같았다. 

젊은 아가씨는 물이 불어난 깊은 냇물을 건널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음에 발을 동동 구르며 아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甲, 乙 두 젊은 승려는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린 후, 물살이 센 내를 건너기 시작하려고 했다. 젊은 아가씨는 여전히 발을 구르며 안절부절 상태였다. 

이 때, 두 젊은 승려 중 하나(甲)가 건너기를 잠시 주저하더니 아가씨를 돌아다 보며 말했다. 
"자, 내 등에 업히시오." 하면서 자세를 낮추는 것이 아닌가! 

젊은 아가씨는 한참을 주저하다가 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자, 곧 젊은 중의 등에 업히는 것이었다. 마침내, 세 사람은 함께 내를 건너게 되었다. 
甲의 등에 업혀 내를 건넌 젊은 아가씨는 미처 고맙다는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이내 딴 길로 휑하니 떠나고, 두 젊은 승려도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시냇물을 건넌 甲, 乙 두 젊은 승려 역시 침묵 속에 아무 말 없이 계속해서 길을 걸었다. 
원래, 수행승은 말을 적게 한다. 묵억(默言=말을 하지 않음)도 하나의 공부(수행)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고 있다 해서 정말로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걸까? 아마도, 겉으로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뿐, 속으로는 세상이 좁다고 떠들어 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침내, 두 젊은 승려는 대덕(大德)이 머물고 있다는 목적지의 일주문(절의 정문) 앞에 다다랐다. 
일단, 일주문을 들어서면 그 절의 경내가 되는 것이다. 

그 일주문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승려 乙이 승려 甲에게 말했다. 
"스님, 이 일주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지 마시오. 스님은 이미 파계(破계=계를 받은 사람이 그 계율을 어김)하셨소. 따라서, 스님은 이 일주문으로 들어갈 자격이 없소이다." 

이 말을 들은 승려 甲은 놀랍기도 하고 어이없다는 듯이 한참 동안 승려 乙을 쳐다보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이구, 스님. 아직까지도 그 무거운 짐을 지고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지금 이라도 어서 그 짐을 내려 놓으십시오." 


독자들은 甲, 乙 중 두 승려 중에 누가 시내를 건널 때부터 무거운 짐(젊은 여자)을 지고서 일주문 앞에까지 걸어왔다고 생각되는가? 
같은 의미에서, 예수쟁이와 반기련 회원 중, 어느 쪽에서 신(여호와 또는 예수)에게 더 많은 <똥물>을 쳐 먹이고 있다고 여겨지는가?
제삼자 2020-01-04 (토) 14:23
[잡놈의 행패]


1) "빵이 없으면 고기(또는 과자)를 먹으면 되지." 프랑스의 왕 루이 16세의 왕후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 말이라고 한다.

2) "왜들 밥을 굶지? 하두들 굶는다는 소리가 들리기에 나도 딱 한번 굶어 봤네. 왜들 밥을 해 먹지 않고 굶지. 배고프게?" 
흉년이 들어 전국이 기근으로 몹시 허던이던 조선 시대의 어느 지방관이 뱉어 놓은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에서 거론된 1)과 2)의 말은 꾸며낸 말이라고 한다. 그럴 테지. 사람 껍데기를 쓰고 있다면, 아무리 못된 성품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그럴 수는 없었을 게다. 그래 안 그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바이블(또는 예수교)의 내용은 전지전능한 신의 가르침이라 일점일획도 하자(잘못)가 없는 진짜만을 모아 놓은 것이라 한다. 대박!
 
 
1) [사람이 감당할 시험(시련)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여호와는 미쁘사(믿음성이 있어서),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어떤 일이나 사실을 견디어 내거나 받아들임)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 10;13)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는 미쁘사 즉, 신의가 있으셔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시험(시련)만을 내리신다고 한다. 얼쑤!
여호와는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어렵고 힘든 시험(시련)은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한다. 대박!

여호와는 사람에게 시험(시련)을 내릴 때에, 피할 수 있는 길도 열어 놓으셔서, 사람이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이럴 경우, 사람 쪽에서는 여호와의 은혜에 고맙다고 해야 할까? 헐!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이든,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든, 시련이란 것을 인간에게 덮어 씌우는 여호와의 이유가 무엇일까? 이해되는 사람 있어?
"인간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희망 사항을 제출하고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없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태어나지 않고는 오로지 여호와(또는 예수)의 일방적이고도 독불장군 식의 결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태어난 사람들을 동원(창조?)시켜 놓고서 이게 뭣하는 짓일까?

 
신(神)의 간여가 없는 자연 질서 속에서 태어나 적자생존을 위하여 시련을 당하기도 하고, 경쟁도 하는 것이라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한 신(神)이 목적을 가지고 창조해 놓은 세상에서 자기 의지 없이 동원된 인간이 크든 작든 간에 시련(시험)을 당해야 될 이유가 무엇일까?

 
이 세상의 돌아가는 모습으로는 불쌍하고 무능한 인간(모든 생명체 포함해서)에 대한 여호와의 잔인한 횡포가 아닐 수 없다. 악마라도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하루 속히 자신이 허구(가짜=거짓)임을 만천하에 밝혀 자신이 뒤집어 쓴 악마적 누명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위에서 거론된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와 조선 시대의 지방관 이야기는 꾸며낸 말이라니까 그런대로 재미있는 일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바이블이(또는 예수교)이 정말로 일점일획도 하자가 없는 신의 가르침이라고 박박 우긴다면, 이것이야 말로 "잡놈의 행패"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헐! 


 
"인간에게 시련(시험)을 내릴 때,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는 길도 열어주신다는 여호와(또는 예수), 이런 궤변도 있을 수 있는가?"
이 세상에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남겨 놓고, 암에 걸려 갖은 고생을 하다가 죽어가는 시련도 있다. 이것이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인가?

한 가정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던 남편 또는 아버지가 교통 사고를 만나 시체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남은 유가족이 겪는 고통과 슬픔이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인가?
젊은 나이에 질병으로 죽는 사람도 많다. 그 죽은 사람에게 여호와(또는 예수)가 마련해 준 시련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어느 것인가? 죽은 뒤에 천국의 복락을 준다는 말인가?


크든 작든, 인간에게 주어진 시련을 벗어난 사람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인간은 주어진 모든 시련을 극복한 셈이다. 이것이 여호와(또는 예수)가 마련해 준 피할 수 있는 길인가? (이런 경우를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자에게는 없다.)

 
어떤 주부가 콩을 가마솥에 넣고 볶고 있을 때, 콩들은 이유 불문 꼼짝 못하고 볶아지게 되어 있다. 콩들이 그 주부의 뜻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방법)은 없다. 크든 작든, 콩이 시련(볶아지기)을 극복하는 길은 그냥 볶아지는 것 뿐이다.
마찬 가지로, 여호와(또는 예수)로부터 주어진 시련을 벗어난 사람은 없다. 최종적으로, 모든 생명체는 각종 시련으로 시달리다가 총착역은 죽음으로 통하는 길 뿐이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느니, 시련을 줄 때에 피할 수 있는 길도 열어 준다느니 따위는 신(神)의 이름을 빙자한 궤변이요 "잡놈의 행패"라고 욕을 쳐 먹어야 되는 현상일 뿐이다.
신(神)의 이름을 빙자해서 손쉽게 남의 재물을 갈취하여 살아가는 종교 사기꾼들이, 인간의 수고와 고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기꾼들이, 혹세무민하기 위하여 꾸며낸 궤변이 바이블(또는 예수교)이다. 그래 안 그래?


 
**참고; 위의 바이블 구절과 비교하며 다음 글을 음미해보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예수)게로 오라. 내(예수)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예수의)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태 11;28~30)


원인을 알 수 없는 각종 시련으로 허덕이는 인간에게 달콤하기 이를 데 없는 멋진 말이다. 사기꾼의 말은 이렇게 멋진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수고, 자기의 무거운 짐, 자기의 멍에를 가볍게 해 주거나 벗겨줄 자(신)는 없는 것이다.
예수교의 모든 것은 혹세무민을 위한 달콤한 미끼일 뿐이다. 여기에 한 번 말려든 사람은 모든 것을 빼앗긴 얼빠진 종자가 되고 만다.

좀 냉혹한 말이지만, 자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사람은 자신 뿐이다.
여호와(또는 예수) 아니라 그 할애비가 나타나더라도,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대신 걸머져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생명체는 죽는다는 사실과 함께 우주의 진리(眞理)이다. 이 엄연한 진리를 엉뚱한 곳에서 찾으려고 시도하는 허욕이 바로 시련이요 불행이다.





[완전(完全)과 절대(絶對) 그리고 전지전능]


* 완전(完全)--필요한 요소를 모두 갖추어 부족함이나 결함이 없음.
* 절대(絶對)--그 자체로서 아무런 제약이나 구속을 받지 않고 어떤 조건에도 붙지 않는 상태. 견주어 맞설만한 것이 없음.
* 전지전능(全知全能)--모든 것에 대하여 다 알고 있으며 행하지 못하는 일이 없음.


그런데, 말이다.
완전(完全)과 절대(絶對) 그리고 전지전능(全知全能) 등등의 현상에서도 아직 무엇인가 모자라서 발전도 하고 퇴보도 하며, 결함도 있고 미비점이 있어서 이를 보완도 하고 때를 기다려 완성시키기도 하고 그러는가?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전지전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녀석들은 완전(完全)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 존재(絶對的 存在)라고도 일컬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또는 예수)에게는 견주어 맞설만한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서 아무런 제약이나 구속을 받지 않고 어떤 조건에도 얽매이지 않는 그런 존재가 바로 여호와(또는 예수)라는 것이다. 헐!
오죽하면, 이 녀석들은<천지를 창조하는 어처구니없는 짓>까지 저질러 놓았을까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신(神=여호와)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 2;52)


 
예수는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아들로서 삼위일체(三位一體) 중 하나라고 한다.
즉, 성부(여호와)와 성신(성령) 그리고 성자등, 이렇게 삼위(三位) 중에서 성자에 해당하는 녀석이 바로 예수라고 한다.
그렇다면, 위의 바이블 내용에서 보듯, 전지전능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이고 완전한 신이라는 예수 녀석도 지혜가 자라기도 하고 발전도 하고 완성되는 과정도 있고 그러는가?

"키(몸뚱이)도 자란다."던데, 그러면, 나이도 먹는가? 그렇다면, 예수(또는 여호와)는 어떤 모습(연령 층)으로 영생하는가?
늙은 모습으로 영생하는가? 젊은 모습으로 영생하는가? 아니면, 어린 아이 모습으로 영생하는가?
사람이나 신(神)이나 영생하려면, 어느 연령 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가장 이상적인가? (궁금하지 않아?)

 
"예수(여호와의 아들)는 성장하면서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라고 한다. 예수가 사람으로부터 받는 사랑도 점점 더 크게 자란다는 뜻이다.

그런데, 예수의 일생 동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예수는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서 엄청 커다란 배척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낭떨어지에서 밀쳐 죽이려고까지 할 정도로 극심한 미움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예수는 마침내 고향 사람들에 의하여 체포되고 결국은 십자가에 처형된다.
이런 현상들이 완전이요, 절대인가? 그리고, 이런 현상이 예수가 성장하면서 받은 고향 사람들의 사랑인가? 헐!

무슨 변명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이상의 현상들은 전지전능에 포함될 현상은 아닐 것이다.


정말로 한 가지만 물어보자.

 
예수교는 (1) 이단으로 취급되던 태동기가 있고 (2) 발전하던 시기가 있고 (3) 전성기를 누리다가 (4) 쇠퇴기를 지나 (5) 마침내, 와해기에 접어들고 있다. 그래 안 그래?
그렇다면, 전지전능하고 완전과 절대를 겸비한 신이란 녀석이 주관하는 예수교에도 발전과 퇴보라는 그러한 순서가 있는 것인가?
 
일점일획도 하자(잘못)가 없고, 진리만 담겨 있다는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도 수시로 재해석도 하고 정비를해야 된다고 한다.
바이블에 대한 재해석은 발전인가 퇴보인가? 그리고, 예수교의 변명은 발전인가 퇴보인가?


시작할 때나 마지막이나 항상 완성된 상태의 완전만이 있어야 그것이 전지전능과 절대라고 해야 될 것이다. 
아니, 시작도 끝도 없이 항상 완전과 절대만 있어야 그것이 여호와(예수)의 할 일과 모습이어야 될 것이다. 그래 안 그래?

그런데, 바이블(=예수교)을 보면, 완전과 절대 속에서도 무엇인가 할 일이 남아 있는 예수교(여호와=예수)이다. 
완전과 절대 속에서도 무엇을 더 완성(완전)하려고 활동하는 여호와(=예수)! 이런 현상이 성립되는 말인가?

예수교(여호와=예수)의 존재 자체는 참인가 아니면, 모순(거짓=가짜)인가?
아직도, 예수교를 혹세무민의 집단 또는 복마전(마귀가 숨어 있는 소굴)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예수교가 완전하고 전지전능한 신(神)이 인도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헐!



지금 그 회사 이름을 잊었지만, 미국에 유태인이 운영하는 회사가 있었다.
그 회사의 사훈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이미, 알고 있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사 훈>

(1) 고객은 항상 옳다.
(2) 만약, 고객이 틀렸다면 역시 (1)을 보라.


제삼자(필자)도 장사꾼으로 생업을 삼고 있던 때가 있었다. 그 때,
"고객은 항상 옳다."와 "고객은 왕이다."를 얼마 동안 점포 내부에다 써서 붙여 놓았었다.
고객들이 점포에 들어와서 그 글을 보며 싱글 싱글 웃기도 하고, 고객들이 오히려 제삼자(필자)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기도 했었다.

어느 미국의 영화 제작사가 제삼자(필자)의 점포를 배경으로 17분 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미전국 대학원,
특히, <인류학 전공 대학원>에 교육용으로 배포한 적도 있다.


위의 사훈은, 철저하고도 완벽하게 고객에게 친절과 봉사를 베풀어, 자기네 공장 제품을 한 가지라도 더 팔아 가능한 한 한 푼의 돈이라도 더 욹어 내려는 대단한 상술(商術)이다.
마찬 가지로, 예수교가 인류 역사 속에서 펼치는 눈웃음, 친절, 봉사, 교육, 의료활동 등등의 모든 활동은 혹세무민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교로 끌어들여, 금품과 시간과 노력을 철저하게 갈취하려는 수단과 방법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투망(投網) 작업일 뿐이다.

지구 위의 모든 나라가 예수교의 이 투망 작업에 말려들어 피를 뿌리는 역사를 점철시켜 왔다. 여기에 가장 늦게 말려든 나라가 불행하게도 우리 대한민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이여! 하루 속히 대오각성(大悟覺醒)할찌어다.
돈과 시간과 노력을 빼앗기는 게 문제가 아니다. 예수교에 의하여 정신(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보다 무서운 현상이 또 있을까?
예수교는 나라의 장래와 직결되는 중차대한 문제이며 무서운 중병(重病)이다.



참고; 가끔 각종 TV프로에서는 <영재>들에 관한 것도 방영하고 있다.
      수학, 어학은 물론 체육, 음악, 각종 예술 등등에 이르기까지 천재들에 관한 정보가 비일비재하다.
      제삼자(필자)가 알고 있는 어느 여자 아이(7세)도 각종 과목에서 벌써 고등학교(12학년) 수준에 달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각종 능력(또는 각종 재주과 성품 등등)은 연령에 관계 없이 습득될 수 있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지전능하다는 신의 경지일 경우, 그 능력이 어떠해야 될까?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신(神=여호와)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 2;52)
      이런 말이 성립될 수 있는 경우일까? 예수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능력이 완비된 상태였어야 되는 말 아닐까?
      그래야 그게 신(神) 아닐까? 그래 안 그래?
제삼자 2020-01-11 (토) 04:27
[<나발>의 아내 그리고 <도미>의 아내]


(1) <도미의 아내> 이야기(설화)는 고려시대의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 열전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 나라 고대국가였던 백제(3국 중 하나)의 개루왕(또는 개로왕) 때, <도미>라는 이름을 가진 평민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가난하고 볼품 없는 평민이었지만 <도미>에게는 절세 미인의 아내가 있었다. 이것이 문제였다.
옛날에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별 볼 일 없는 평민 따위가 아름답고 예쁜 미인 아내를 가졌다는 사실은 대단히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 위험천만--위험한 일이 천 가지 만 가지나 된다는 뜻으로, 매우 위험함을 이르는 말. 
              예쁜 계집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그 만큼 위험한 일이다. 명심 또 명심할찌어다. 헐!

예수교의 경전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서도 언급하는 사건이지만, 아브라함도 예쁜 계집 <사라>를 아내로 둔 덕에 큰 곤욕(?)을 치르는 과정이 있다.
아브라함이 누구인가? 그는 예수교의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가 선택하고 뽑아서 특별히 돌보는 그런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그 아브라함은 건방지게도 감히 예쁜 계집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을 뻔했었다고 한다. 헐! 

아브라함의 처 <사라>는 90세가 넘었을 때에 아들을 낳기도 하고, 아리따웠다고 하니까 20~30대 때에는 얼마나 예뻤겠는가?
이렇게 예쁜 계집을 가졌다는 사실은 대단히 위험천만한 일이란 것을 아브라함도 모를 리가 없었으리라.
결국, 아브라함은 <사라>를 자기 아내가 아닌 "누이 동생"이라고 속이며 살기로 부부 간에 약속을 한다.
그러나, <사라>가 아브라함의 누이가 아니라 그의 <아내>라는 사실은 금방 탄로가 나게 되고, 이 소문은 마침네 애굽(이집트)의 바로왕 귀에까지 들어가게 됐던 모양이다.

처음에, 애굽왕 바로는 건방지게도 감히 예쁜 계집을 가지고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아예 죽여 버리고 당장 그 계집 <사라>를 빼앗아 오려고 작정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예수교의 신 여호와께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바로왕은 아브라함을 죽이지를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왕은 예쁜 계집을 빼앗아 오는 대가로 아브라함에게 많은 재물을 하사해야 됐다고 한다. 마침내, 아브라함은 예쁜 계집을 바로왕에게 넘겨주고 하루 아침에 거부가 된다. 대박!



참고; 반 년인지 일 년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아브라함은  자기 계집 <사라>를 바로왕으로부터 되돌려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자기의 계집을 얼마 동안 왕에게 빌려 주고서 그 대가로 많은 재물을 획득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자기 계집을 완전히 빼앗기지는 않고 잠시 동안 대여해 주는 것만으로도 거부가 된다! 이 얼마나 통쾌한 행운이냐?

      이 모두가 예수교의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의 섭리요 조홧속이라고 한다. 사실, 전지전능한 신의 능력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를 믿고 받들면, 이렇게 횡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대박!

(각설하고)



<도미>의 아내가 예쁘다는 소문은 퍼지고 퍼져서 마침내 대궐 안의 개루왕(개로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다. 
"별 볼 일 없는 하찮은 평민 <도미> 따위가 절세미인을 가지고 산다?" 개루왕의 귀에도 대번에 거슬리기도 하고 역겨운 소문이었다.
마침내, 개루왕은 <도미>의 아내를 대궐 안으로 불러들인다. 세상에나! 이렇게 예쁜 여자가 내 나라 백제 땅 안에 있었던가? 

개루왕은 욕심이 발동했다. 마침내, 왕은 갖은 감언이설로 꾀어보기도 하고, 위력을 가하며 협박도 해봤으나 도미 아내의 절개를 꺾을 수가 없었다.
자존심도 상하고 화가 상투끝까지 뻗힌 왕은 <도미>를 잡아다가 무지막지한 고문도 하고, 불에 달군 인두로 두 눈을 지져 아예 눈 먼 장님을 만들어 백제 땅에서 추방시켜 버렸다고 한다.

남편을 타국으로 추방시킨 후로도 개루왕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 동원하여 <도미>의 아내를 차지하려고 애를 썼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도미>의 아내는 궤계를 써서 궁궐을 탈출을 하고, 수소문 끝에 눈 먼 남편 <도미>가 고구려 땅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된다.
마침내, <도미>는 예쁜 아내를 다시 만나게 됐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어쨌든, 이것이 우리 나라의 정서이다. 우리 나라 만세!


그런데 말이다. 우리의 그 애달픈 정서 말고, 저 먼 곳으로부터 굴러온 예수교의 정서는 어떤 것일까?
우선, 예수교의 경전이라는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환난을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다윗)에게로 모였고,
그(다윗)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다윗)와 함께 한 자가 사 백(400) 명 가량이었더라.] (사무엘상 22;2)


예수교 역사상, 다윗(왕) 이상으로 여호와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다윗이 장인(사울왕)을 피하여 도망다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좋게 표현해서 망명 생활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위의 바이블 내용은 다윗이 도망다니던 때의 상황을 나타낸 말이다.

다시 말해서, 다윗(왕)은 <환난을 당한 모든 자> <빚진 모든 자> <마음이 원통한 자> 등등으로 뭉쳐진 집단의 우두머리였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또는 환경적으로 결함이 있어서 인간성이 제대로 형성되지를 못한 사람들의 무리 400여 명으로 뭉쳐진 집단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자가 다윗(왕)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수 천 년 전에 인간성에 심히 결함을 가진 사람들 400여 명으로 뭉쳐진 무리가 수 년에 걸쳐서 사방으로 몰려다녔다면 그들이 지나가는 동네마다 그 민폐가 어떠했을까?

수 천 년 전에, <환난을 당한 모든 자>, <빚진 모든 자>, <마음이 원통한 자> 등등으로 뭉쳐진 무리 400여 명이 여러 해 동안 중동지방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 깡패 집단의 우두머리는 그 유명한 다윗(왕)이었음은 물론이다.

자, 그러면, 이 깡패 집단의 어느 하루 동안의 활동 모습을 보기로 하자. (어쩌면, 며칠 동안의 활동 모습일 수도 있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을 여기에 첨부해야 되겠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고 지루해짐을 막기 위해서 일단 바이블 인용은 일단 생략하기로 한다.
다윗(왕)을 우두머리로 하는 400여 명의 깡패 집단도 여기서는 그냥 <깡패 집단>이라고 간단하게 표기하기로 한다.


<깡패 집단>이 하루는 어느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그 마을에는 매우 큰 부자가 있었다. 남편의 이름은 <나발>이었고, 그 아내 이름은 <아비가일>이라고 했다. <아비게일>은 미인이었다.
<나발>에게는 각종 가축도 많고, 넓은 농장도 있었다. 부리는 일꾼들도 많았다. 다윗의 <깡패 집단>은 <나발>이 살고 있는 마을 어귀에서 여장을 풀고 쉬게 된 것이다.

쉬는 동안 다윗은 수하 몇 명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너희들은 지금 <나발>에게 가서 내 말을 전하거라." 

"우리 <집단>은 지금까지 남을 해코지한 적도 없고, 민폐를 끼친적도 없다. 어느 동네라도 그 곳을 지날 때는 조용히 지났다. 농작물에 손을 대거나 가축을 해친적이 없다. 알겠느냐? 너의 농장에서도 아무런 해를 주지 않았다.
그러니, <나발>은 듣거라. 너는 우리 <집단>을 위해서 얼마간의 재물을 바쳐야 되지 않겠느냐?"


** 400여 명으로 뭉쳐진 집단이 몇 년 동안을 돌아다니면서 무엇으로 먹고 마시고 입으며 잠을 잤을까?
   민폐를 끼치지 않고 400여 명이 도망다니는 방법이 있을까? 예수쟁이들 사회에서는 그런 짓이 가능한 모양이지?


다윗의 전언을 듣게 된 <나발>은 말했다.
"다윗이 누구란 말이냐? 나는 그런 사람을 모른다. 또, 내게는 그런 <다윗>에게 줄 돈도 없고 주고 싶은 마음도 없다."
수하로부터 <나발>의 거절을 듣게 된 <다윗>은 그 분노가 하늘을 찌르게 된다.

"무엇이라고? <나발> 그 놈이 감히 이 <다윗>의 청을 거절했다고? 지금 당장 <나발> 그 놈을 박살 내러 가야 되겠다."
다윗과 수하들은 쉬기 위하여 풀어 놨던 군장을 다시 걸치기 시작했다.
집안에서, 남편 <나발>과 <다윗>의 수하가 주고 받은 이야기의 전말을 듣게 된 <아비가일>은 일이 크게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아비가일>은 부랴부랴 <깡패 집단> 400여 명이 먹을 만큼의 고기와 빵등을 준비해 거지고 <다윗>에게로 달려갔다고 한다.
"<다윗>님이시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제 남편 <나발>이 원래 미련하고 성격이 비뚫어졌습니다. 남편 대신 제가 얼마 간의 재물을 준비할 터이니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왜 <다윗>님의 손에 피를 묻히려고 하십니까? 그냥 내 버려 두면 여호와께서 알아서 <나발>을 죽여 주실겁니다.........."

<나발>의 처 <아비가일>은 엄청난 미인이었다고 한다. 마침내, 예쁜 여자의 아양에 하늘까지 치솟았던 <다윗>의 분노가 봄눈 녹듯 녹아 버렸다.
그런데, <아비가일>이 예언했듯 그 날 밤 <나발>이 급살맞아 뒈졌다고 한다. 여호와가 그런 조홧 속을 부렸던 것이다. 대박!

<나발>이 급살맞아 뒈졌다는 사실을 듣게 된 <다윗>은 즉시 <아비가일>에게 수하를 보냈다.
"<아비가일>은 듣거라. 네 남편 <나발>은 이제 죽었다. 그러니, 이제부터 너는 이 <다윗>의 계집 노릇을 하지 않겠느냐?"
<다윗>의 전언을 듣자마자 그 즉시 모든 것을 팽개치고 <아비가일>은 <다윗>에게로 달려갔다고 한다.

어두컴컴한 밤에 공동묘지의 어느 무덤 앞에서 한 여인이 무덤을 향해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나던 사람이 이상도 해서 물었다. "왜, 무덤에다 부채질을 하고 계십니까?"
"죽은 남편과 약속을 했습니다. 무덤이 마르기도 전에 개가하지는 않겠다."고. (멋져 부렀다.)
그런데, <아비게일>은 남편 <나발>이 급살맞아 뒈지자 마자 부채질이고 뭐고 다 필요없이 그 즉시<다윗>의 품으로 달려가서 안겼다고 한다. 대박!

유럽, 미국, 남미등, 여러 나라에는 <아비가일>이라는 여자 이름이 많다. 
<다윗>을 단번에 녹여 낼 정도로 예쁘던 <아비가일>의 미모가 서양 여자들의 흠모 대상인 것 같다.
어쨌든, 이것이 서양 여자 특히, 예수쟁이 여자들의 정서이다.

이상, <도미>의 아내 이야기와 <나발>의 계집 <아비가일>의 이야기로 우리 한국인의 정서와 예수쟁이들의 정서를 잠시 훑어 보았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제삼자 2020-01-11 (토) 04:29
[완전(完全)과 절대(絶對) 그리고 전지전능]


* 완전(完全)--필요한 요소를 모두 갖추어 부족함이나 결함이 없음.
* 절대(絶對)--그 자체로서 아무런 제약이나 구속을 받지 않고 어떤 조건에도 붙지 않는 상태. 견주어 맞설만한 것이 없음.
* 전지전능(全知全能)--모든 것에 대하여 다 알고 있으며 행하지 못하는 일이 없음.


그런데, 말이다.
완전(完全)과 절대(絶對) 그리고 전지전능(全知全能) 등등의 현상에서도 아직 무엇인가 모자라서 발전도 하고 퇴보도 하며, 결함도 있고 미비점이 있어서 이를 보완도 하고 때를 기다려 완성시키기도 하고 그러는가?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전지전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녀석들은 완전(完全)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 존재(絶對的 存在)라고도 일컬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또는 예수)에게는 견주어 맞설만한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서 아무런 제약이나 구속을 받지 않고 어떤 조건에도 얽매이지 않는 그런 존재가 바로 여호와(또는 예수)라는 것이다. 헐!
오죽하면, 이 녀석들은<천지를 창조하는 어처구니없는 짓>까지 저질러 놓았을까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신(神=여호와)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 2;52)


 
예수는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아들로서 삼위일체(三位一體) 중 하나라고 한다.
즉, 성부(여호와)와 성신(성령) 그리고 성자등, 이렇게 삼위(三位) 중에서 성자에 해당하는 녀석이 바로 예수라고 한다.
그렇다면, 위의 바이블 내용에서 보듯, 전지전능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이고 완전한 신이라는 예수 녀석도 지혜가 자라기도 하고 발전도 하고 완성되는 과정도 있고 그러는가?

"키(몸뚱이)도 자란다."던데, 그러면, 나이도 먹는가? 그렇다면, 예수(또는 여호와)는 어떤 모습(연령 층)으로 영생하는가?
늙은 모습으로 영생하는가? 젊은 모습으로 영생하는가? 아니면, 어린 아이 모습으로 영생하는가?
사람이나 신(神)이나 영생하려면, 어느 연령 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가장 이상적인가? (궁금하지 않아?)

 
"예수(여호와의 아들)는 성장하면서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라고 한다. 예수가 사람으로부터 받는 사랑도 점점 더 크게 자란다는 뜻이다.

그런데, 예수의 일생 동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예수는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서 엄청 커다란 배척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낭떨어지에서 밀쳐 죽이려고까지 할 정도로 극심한 미움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예수는 마침내 고향 사람들에 의하여 체포되고 결국은 십자가에 처형된다.
이런 현상들이 완전이요, 절대인가? 그리고, 이런 현상이 예수가 성장하면서 받은 고향 사람들의 사랑인가? 헐!

무슨 변명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이상의 현상들은 전지전능에 포함될 현상은 아닐 것이다.


정말로 한 가지만 물어보자.

 
예수교는 (1) 이단으로 취급되던 태동기가 있고 (2) 발전하던 시기가 있고 (3) 전성기를 누리다가 (4) 쇠퇴기를 지나 (5) 마침내, 와해기에 접어들고 있다. 그래 안 그래?
그렇다면, 전지전능하고 완전과 절대를 겸비한 신이란 녀석이 주관하는 예수교에도 발전과 퇴보라는 그러한 순서가 있는 것인가?
 
일점일획도 하자(잘못)가 없고, 진리만 담겨 있다는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도 수시로 재해석도 하고 정비를해야 된다고 한다.
바이블에 대한 재해석은 발전인가 퇴보인가? 그리고, 예수교의 변명은 발전인가 퇴보인가?


시작할 때나 마지막이나 항상 완성된 상태의 완전만이 있어야 그것이 전지전능과 절대라고 해야 될 것이다. 
아니, 시작도 끝도 없이 항상 완전과 절대만 있어야 그것이 여호와(예수)의 할 일과 모습이어야 될 것이다. 그래 안 그래?

그런데, 바이블(=예수교)을 보면, 완전과 절대 속에서도 무엇인가 할 일이 남아 있는 예수교(여호와=예수)이다. 
완전과 절대 속에서도 무엇을 더 완성(완전)하려고 활동하는 여호와(=예수)! 이런 현상이 성립되는 말인가?

예수교(여호와=예수)의 존재 자체는 참인가 아니면, 모순(거짓=가짜)인가?
아직도, 예수교를 혹세무민의 집단 또는 복마전(마귀가 숨어 있는 소굴)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예수교가 완전하고 전지전능한 신(神)이 인도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헐!



지금 그 회사 이름을 잊었지만, 미국에 유태인이 운영하는 회사가 있었다.
그 회사의 사훈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이미, 알고 있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사 훈>

(1) 고객은 항상 옳다.
(2) 만약, 고객이 틀렸다면 역시 (1)을 보라.


제삼자(필자)도 장사꾼으로 생업을 삼고 있던 때가 있었다. 그 때,
"고객은 항상 옳다."와 "고객은 왕이다."를 얼마 동안 점포 내부에다 써서 붙여 놓았었다.
고객들이 점포에 들어와서 그 글을 보며 싱글 싱글 웃기도 하고, 고객들이 오히려 제삼자(필자)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기도 했었다.

어느 미국의 영화 제작사가 제삼자(필자)의 점포를 배경으로 17분 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미전국 대학원,
특히, <인류학 전공 대학원>에 교육용으로 배포한 적도 있다.


위의 사훈은, 철저하고도 완벽하게 고객에게 친절과 봉사를 베풀어, 자기네 공장 제품을 한 가지라도 더 팔아 가능한 한 한 푼의 돈이라도 더 욹어 내려는 대단한 상술(商術)이다.
마찬 가지로, 예수교가 인류 역사 속에서 펼치는 눈웃음, 친절, 봉사, 교육, 의료활동 등등의 모든 활동은 혹세무민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교로 끌어들여, 금품과 시간과 노력을 철저하게 갈취하려는 수단과 방법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투망(投網) 작업일 뿐이다.

지구 위의 모든 나라가 예수교의 이 투망 작업에 말려들어 피를 뿌리는 역사를 점철시켜 왔다. 여기에 가장 늦게 말려든 나라가 불행하게도 우리 대한민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이여! 하루 속히 대오각성(大悟覺醒)할찌어다.
돈과 시간과 노력을 빼앗기는 게 문제가 아니다. 예수교에 의하여 정신(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보다 무서운 현상이 또 있을까?
예수교는 나라의 장래와 직결되는 중차대한 문제이며 무서운 중병(重病)이다.




참고; 가끔 각종 TV프로에서는 <영재>들에 관한 것도 방영하고 있다.
      수학, 어학은 물론 체육, 음악, 각종 예술 등등에 이르기까지 천재들에 관한 정보가 비일비재하다.
      제삼자(필자)가 알고 있는 어느 여자 아이(7세)도 각종 과목에서 벌써 고등학교(12학년) 수준에 달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각종 능력(또는 각종 재주과 성품 등등)은 연령에 관계 없이 습득될 수 있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지전능하다는 신의 경지일 경우, 그 능력이 어떠해야 될까?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신(神=여호와)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 2;52)
      이런 말이 성립될 수 있는 경우일까? 예수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능력이 완비된 상태였어야 되는 말 아닐까?
      그래야 그게 신(神) 아닐까? 그래 안 그래?
제삼자 2020-06-15 (월) 16:18
[어느 최상위급 예수쟁이의 사고 방식]


** 어느 의학박사의 <암치료 임상실험 논문>이 결국은 근거 없는 거짓으로 판명되고 말았다.
   이럴 경우, 그 의학박사의 <암치료 임상실험>은 암치료에 효력이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효력이 없다고 해야 할까?
   (각설하고)


꽤 오래 전, 캐나다에 유학 중인 신학박사 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어느 최상위급(?) 예수쟁이의 글이 이 게시판에 올라와 있었다.
그의 글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여기에서 다시 음미해 보려고 한다. 아니, 오래 전의 글이라서 한 자도 틀리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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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박사 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최상위급 예수쟁이 曰;


"성서(바이블=예수교의 경전)의 역사성이나 진위 문제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성경(바이블)의 표현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의 진위는 중요한 게 아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느냐는 육하원칙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왜>일 것이고, 
그 답은 하나님(=여호와)을 증언하기 위하여가 될 것이며, 
우리는 성서를 통하여 하나님(=여호와)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 등, 창조주 유일신을 형용하는 모든 언어를 동원하여 그 분을 이해하면 될 것이다.

성서(바이블)는 주님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므로......"
-----------------------------------------------------------------------------------


이상은 캐나다에 유학하면서 신학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최고위급(?) 예수쟁이의 글 일부를 한 자도 고치지도 않고 빠뜨리지도 않은 글이다.


그렇다면, 위의 방법론으로 <삼국유사(三國遺事)>도 한 번 풀이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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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유사(三國遺事) 풀이;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역사성이나 진위 문제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삼국유사의 표현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의 진위는 중요한 게 아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느냐는 육하원칙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왜>일 것이고, 
그 답은 단군왕검을 증언하기 위해서가 될 것이며, 
우리는 삼국유사를 통하여 단군왕검의 위대하심(천손이심)과 전능하심(홍익인간, 제세이화 등등?) 등, 천손이신 단군왕검을 형용하는 모든 언어를 동원하여 그분을 이해하면 될 것이다.

삼국유사는 단군왕검(천손이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므로......."
-----------------------------------------------------------------------------------


어떤가? 저런 종자가 신학이란 것을 전공한 후, 세상에 나가면 인류 사회에 무슨 일을 하게 될 것 같은가?
아니, 실제로 각종 각급의 예수쟁이들에 의하여 세상은 어떤 모습이 되어 가고 있다고 여겨지는가??
예수쟁들은 (1) 바보(돌대가리) 아니면 (2) 양가죽을 쓴 늑대(악질=악마)이다. 그것도 아니면 (3) 1과 2 둘 다를 합쳐 놓은 그 어떤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에서 예수쟁이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양가죽을 쓴 늑대> 말고도 근사한 다른 표현이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이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좋은 생각이 있는 독자들은 알려 주시기 바란다.


<홍길동전>이나 <춘향전>은 허구(虛構=실제로는 없는 이야기를 작가가 상상력을 동원하여 만듦)이다.
따라서,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인 홍길동과 성춘향은 실존할 수가 없는 가짜(또는 거짓)일 수 밖에 없다.
마찬 가지로, 예수교의 경전(바이블) 내용 역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虛構=거짓, 가짜)여서 그 속에 등장하는 여호와(또는 예수)를 비롯하여 그 어떤 인물도 이 세상에 존재해 본 적이 없는 가짜들일 뿐이다.


그런데, 무엇이 어떻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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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바이블=예수교의 경전)의 역사성이나 진위 문제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성경(바이블)의 표현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의 진위는 중요한 게 아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느냐는 육하원칙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왜>일 것이고, 
그 답은 하나님(=여호와)을 증언하기 위하여가 될 것이며, 
우리는 성서를 통하여 하나님(=여호와)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 등, 창조주 유일신을 형용하는 모든 언어를 동원하여 그 분을 이해하면 될 것이다.

성서(바이블)는 주님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므로...."라고라?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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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말하는 최고위급 예수쟁이의 <썰>은 대단한 발상(發想=어떤 새로운 생각을 해 냄)이요 논리의 비약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신학박사 학위> 꿈을 꿀 수가 있겠는가?
마찬 가지 의미에서 일반 예수쟁이 노릇도 저런 막무가내식(莫無可奈式=한번 굳게 고집하면 도무지 융통성이 없음) 고집불통이 아니면 성립될 수가 없는 예수쟁이들의 세계이다.
예수쟁이들은 못 말린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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