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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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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인원 : 5,779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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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59[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민족]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9-11-06 (수) 11:32 조회 : 1860
*59[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민족]


히브리(이스라엘) 족속은 여호와(예수교의 주신)가 선택하여 특별히 사랑을 베풀며 아끼는 백성이라고 한다. 좋겠다.
그런데, 이 히브리(이스라엘) 족속은 애굽(이집트0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게 됐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모두 여호와의 섭리라고 한다. 헐!

종살이하던 히브리(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인도를 받으며 애굽을 탈출할 때, 그들이 건너야 할 넓은 
홍해 바다가 갈라지고, 그 갈라진 바다 밑으로 행군하는 과정이 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출애굽이다. 전지전능한 여호와(예수교의 주신)의 기적질이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대박!
 
자, 그러면 지금부터 여호와의 기적질에 의하여 넓은 홍해 바다가 갈라지고 그 사이로 히브리(이스라엘) 족속이 행군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하여 출애굽을 구경해 보기로 하자.
이런 장면을 <spectacle>이라고 한다던가?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剛愎=까다롭고 고집이 셈)케 할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왕)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시더니,]

(출애굽기 14;15~18)

 
여호와(예수교의 주신)께서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어 놓겠다고 한다. <강퍅>이란 깐깐하고 고집이 센 성품을 뜻한다.
즉, 히브리 족속을 종으로 부려 먹던 애굽 사람들로 하여금 상황 판단을 모두 비뚤어지게 하겠다는 말이다. 여호와는 이런 짓을 하기에 충분한 분(?)이시다. 솔직하게 말해서 잡놈이시다.

홍해 바다가 갈라지고 히브리 족속이 그 바다 밑으로 행군할 때, 애굽의 모든 장병들도 따라서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애굽 사람(병사)들을 싹 쓸어 죽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역시 대박!

"여호와(예수교의 주신)는 애굽의 왕과 병거(兵車)와 마병(馬兵)이 모두 몰살을 당하는 결과를 보아야 마침내  영광을 얻게 된다."고 한다.
"애굽의 모든 장병을 홍해 바다에다 수장(水葬)시켜 모조리 죽여 버리는 일이 여호와의 영광이라는 것이다."
여호와의 영광과 동시에 비로소 애굽 사람들은 여호와를 여호와인줄 알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인간의 마음에다 강퍅(까다롭고 고집이 셈)을 집어 넣는 짓이나, 애굽의 장병(사람)들을 모조리 수장(水葬)시키는 짓이 여호와의 영광이 된다는 것이다. 대박!
그렇게 하므로써 애굽 사람들이 여호와를 여호와인줄 알게 될 것이라는 말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신(神)다운 것이 있는가?
악마(惡魔)는 그런 짓을 하겠는가? 놀랍기만 하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더 보자.

 
2) [이스라엘 진(陣) 앞에 행(行)하던 신(神=여호와)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
구름기둥도 앞에서 그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 편(애굽)은 구름과 흑암(黑暗)이 있고, 이 편(히브리)은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 편에서 이 편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출애굽기 14;19~20)

 
히브리 족속이 애굽을 탈출할 때,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을 인도했다고 한다.
홍해가 갈라졌을 때에도 <밤새도록> 구름기둥이 활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밤새도록> 자체만으로도 적진(敵陣=애굽)은 흑암이 덮여 있었는데, 거기에다 구름기둥까지 합세하여 더욱 깜깜 절벽을 만들었던 모양이다.

오리무중(五里霧中)이란 말이 있다. 짙은 안개 속에서 5리 떨어진 거리는 아무것도 보일 리가 없다. 낮이라 해도.
출애굽 사건 당시는 오리무중 정도가 아니라 오리운중(五里雲中)이었던 모양이다. 그것도 깜깜한 밤중이었으므로 적(敵=애굽)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독자들은 <밤새도록이란 말과 <구름 기둥이 뒤덮인 흑암>이란 말을 기억하고 있기 바란다.
이럴 때, 그 넓디 넓은 홍해 바다가 갈라졌다고 한다. 대박!

반면에, 
히브리 족속이 움직이고 있는 쪽은 광명이 있었다고 한다.
적어도 1,000만(어쩌면 2,000만) 이상의 생명체가 움직일 수 있도록 밤새도록 비춰주는 광명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었을까?
이 엄청난 광경(기적)에 대하여 바이블에서는 아무 설명이 없다.
실제로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도 없다. 왜일까? 시시한 기적이라서?

 
그 때, 제삼자(필자)가 거기에 있었다면, 제삼자는 홍해 바다를 건너지 못했을 것 같다.
아군과 적군이 근접 거리에서 대치하고 있었으므로, 광명과 흑암의 경계면(境界面)이 가까이에 뚜렷하게 나타났을 것이다.
이 희한한 광경을 보고서 어떻게 발이 떨어지겠는가?
흑암 속으로 손을 넣어 보기도 하고, 휘휘 저어 보기도 하고, 몸뚱이 통째 들어가 보기도 하고, 경계면에 서 보기도 하고, ....
그 광명이란 것이 어디에서 오는가도 보고....
어쨌든, 그 때 그 출애굽 대열에 제삼자가 섞여 있었다면, 제삼자는 여호와의 기적질에 홀려서 끝내 채굽을 탈출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래 안 그래?


 
3)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東風)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行)하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출애굽기 14;21~22)

 
홍해는 남북으로 길게 놓여 있는 망망 대해이다. 그리고, 히브리 족속의 애굽 탈출이란 이 바다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건너는 일이다.
그런데, 이 바다가 갈라지게 한 것은 큰 동풍(東風)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강한 바람이란 말이다.

홍해는 가장 깊은 곳이 -2,920m이며, 바다가 갈라졌을 만한 곳의 깊이도 -1,676m 쯤 된다.
아니, 여기서는 홍해의 깊이가 -100 m라고 하자. 가장 좁은 곳의 폭은 70~80km(약 200리) 쯤 된다.

100m 깊이의 바닷물이 완전히 밀려날 정도의 바람의 세기는 어느 종류의 바람일까?
정온,
연풍,
화풍,
질풍,
강풍,
열풍,
구풍, 이렇게 7가지 세기의 바람 중 어느 세기의 바람이어야 할까? 

 
이렇게 강한 동풍(東風)이 앞에서 불어오고 있을 때, 이 바람을 앞에 안고서 도보로 전진이 가능할까?
또, 하루 밤 사이에 1,000만(어쩌면 2,000만)이 넘는 생명체(사람+가축)가 걸어서 200리를 건너갈 수가 있었을까?
바닷물이 갈라졌더라도 바다 밑은 아스팔트 길처럼 평평한 땅이 아니라 날카로운 계곡이다.
또, 바람에 물이 밀려나면 그 밑바닥이 즉시 마른 땅이 되는가?

제삼자(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홍해 바다의 해저는 우리 한국보다 훨씬 험악한 굴곡(계곡)을 이루는 지형을 하고 있다.
아니, 홍해의 해저(海底)가 아스팔트로 다져진 운동장 같더라도 하루밤 사이에 200리나 되는 거리를 건널 수는 없을 것이다.

출애굽에 포함된 히브리 족속의 대열에는
1. 가재 도구는 물론,
2. 임산부, 출산부, 각종 병자와 불구자가 있었을 것이고,
3. 노인, 
4. 가축도 함께하고 있었다.
5. 그리고, 이런 잡동사니가 자그마치 1,000만(어쩌면 2,000만)이나 되는 거대 집단이다.


 
4) [애굽 사람(장병)들과 바로(왕)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 뒤를 좇아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극난(極難)하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예수교의 주신)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출애굽기 14;23~25)

 
히브리 족속이 바닷물이 갈라진 홍해의 해저로 들어가자 애굽 장병들이 히브리 족속을 치려고 따라 들어 갔다고 한다.
깜깜한 흑암과 여호와가 덧씌운 구름으로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밤중에, 바다가 갈라졌는지, 히브리 족속이 그 곳으로 들어갔는지 어떻게 판단하고서 따라 들어가는가?
전혀 아무것도 분별할 수 없는 흑암(黑暗) 속에서 애굽 왕 바로는 무엇을 하려고 군사 작전을 폈을까?

"여호와는 바다 가운데서 애굽 장병의 병거(兵車) 바퀴를 벗겨 버려, 달리기에 극난(極難)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자, 애굽 사람들이 말한다. "도망가자. 여호와가 히브리를 돕고 있다." 고.
이 사실을 애굽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애굽 사람들은 신(神=여호와)의 활동을 감지할 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인가?
전쟁을 하고 있을 때, 적군을 신(神)이 돕는지 그렇지 않은지 인간이 어떻게 감지할 수 있는가? 헐!

서두에서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겠다." 더니, 그 예언이 이루어지려고 저절로 알게 되었는가?
그러나 저러나, 애굽 사람은 전멸했다. 이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이 "야호와를 여호와인줄 알았다."는 말인가?
바이블 내용은 예수교의 신(여호와 또는 예수)이 허구(虛構=가짜)임을 증명해 준다는 말을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가?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왕)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출애굽기 14;26~28)

 
갈라졌던 바다가 새벽녘에 원상으로 회복되자, 애굽 군대를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다 덮어 죽여 수장시켰다고 한다.
한 사람도 남김 없이 진멸시키는 전법이 여호와의 성전(聖戰)이다. 이것이 서두에서 말한 <여호와의 영광>이라는 것이다. 대박!
사람 죽이는 현상이 영광인가? 그래서, 예수교의 역사가 사람 죽이기 시합이었던가?

어쨌든, 여호와의 영광되는 장면은 바이블의 곳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또, 십자군 전쟁, 신대륙에서 벌어진 진멸 작전, 세계 도처에서 원주민들의 목숨과 재산을 강탈하고 전통과 문화를 파괴한 짓,
그리고, 마녀 사냥 등등, 여호와의 영광은 계속해서 빈 틈 없이 발휘되고 있다. 대박!


 
6)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 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출애굽기 14;30~31)

 
히브리(이스라엘) 사람들은 해변에 떠밀린 애굽 장병들의 시체를 보았다고 한다.
큰 동풍이 불었어도 시체들은 서쪽 해변으로 떠밀린 모양이다. 헐!
 
**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정독하면, 이런 엉터리 상황이 즐비하다. 이것이 예수교의 실체이다.

 
마지막으로, 
히브리(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커다란 기적을 보고서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로 장식하고 있다.
애굽에서 13가지 엄청난 기적을 체험했고, 홍해 바다까지 행군하면서 불기둥, 구름기둥까지 보고서도 믿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믿게 됐다는 말인가?

그러나, 저러나, 잠시 후가 되면, 히브리(이스라엘) 족속은 여호와를 헌신짝 버리듯 내동댕이친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여호와 쪽에서도 자기 백성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친다. 영원히 불변하는 여호와의 신실한 언약은 하루가 멀다 하고 변덕을 부린다.
전지전능한 신(神)은 그런 것인가 보다.

 
(히브리 족속의 출애굽 이야기는 필자의 저서 [신(神)의 이야기 사람 이야기]에서 자세히 논했다.)

 
미개 시대의 사람 손으로 씌어진 바이블, 이것을 과학이다 논리다 하며 비판할 가치도 없다.
여기에 신(神)은 없다. 이것을 무슨 진리나 되는 듯 끌어 안고서 민족의 얼을 빼내고, 나라를 풍비박산시키는데는 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300만 명이나 되는 떼강도]-헐!

(1) 인구 1,000만이 넘는다는 대도시 서울과 뉴욕에는 고층 빌딩이 즐비하다. 
이렇게 높은 고층 빌딩 숲에 살고 있어도 그 도시 범위가 어찌나 넓은지 그 지역을 벗어나려면 자동차를 타고 달려도 몇 시간(?)이 걸릴 정도이다.
그런데, 1,000만 인구가 고층 빌딩이 아니라 1층 짜리 만으로 지어진 건물에 거주하며 살아 간다면 그 도시의 범위는 그 넓이가 얼마만 해야 될까? 

제삼자(필자)는 은퇴 후, 미국의 대도시 중 하나인 애리조나 주의 피닉스(Phoenix) 근교에서 3년 가까이 여가를 즐기던 적이 있다.
피닉스는 인구가 300만 쯤 되는 대도시이다. 그런데, 이 도시는 서울이나 뉴욕과는 달리 중심가 일부를 제외하고는 도시 전체(근교를 포함해서)의 건물과 주택이 모두 2~3층 짜리로 이루어진 도시이다.
그래서 그랬던가? 자동차로 달려도 도시 지역 범위를 벗어나려면, 서울이나 뉴욕보다도 더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이 느껴졌었다. (물론, 건축물들이 띄엄띄엄 지어져 있고,  건물 앞뒤로 정원들도 널찍널찍하지만)

(2) (각설하고) 
300만 내지 1,000만 이상의 생명체가 이동식 천막(1층 짜리 건물) 생활을 하려면 그 범위는 얼마만큼 커다란 지역을 차지해야 될까?
300만~1,000만의 떼강도들이 1층 짜리 이동식 천막 생활을 하며 한 나라 안 또는 주변 나라를 돌면서 노략질을 일삼고 있다면 그 사회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가?

<출애굽(애굽에서 탈출)>할 때, 여기에 동참했던 히브리 족속의 숫자가 적어도 300만은 됐을 것이라 한다.
여기에 여러 잡족들이 함께 했으며, 수 많은 가축들도 함께 했다고 한다. 따라서, 출애굽할 때, 함께 움직인 생명체는 적어도 1,000만은 됐을 것이다. 이 숫자를 기억하면서 다음 바이블 이야기들을 감상하기로 하자.

(3) 예수쟁이들의 뿌리(옛 조상)는 자기 땅 없이 고대 중동지방의 사막 벌판을 배회하며 노략질을 생업으로 살아가던 떼강도들이었다.
예수쟁이들의 옛 조상을 <히브리> 족속이라고 하는데, 이들의 으뜸 되는 국시(國是=국가의 이념이나 국정의 근본 방침)가 바로 <노략질이 천하의 대본(擄掠질 天下之大本)>이었던 것이다.
우리 한국 민족의 <농자는 천하의 대본(農者 天下之大本)>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비적떼(예수쟁이들의 조상)들은 이동식 천막생활을 하며 항상 노략질을 위한 전투 태세를 갖추고 초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야 했다.
농업과는 달리 노략질은 상대를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죽어야 되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이 떼강도들의 사회를 지탱해 주는 법률이 바로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바이블>을 다른 말로 <율법>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바이블>은 노략질을 위한 살인 강도질과 노략질을 가르치는 아주 훌륭한(?) 지침서이다.

(4) 예수교의 역사를 보라.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이 보여 주는 시범에서 벗어난 모습이 조금이라도 보이던가?
노략질이 생업으로 되어 있는 떼강도들이 무장해야 될 절대로 필요한 수단으로는 다음에 열거되는 방법을 빼 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1. 전쟁 분탕질 작전,
2. 대량 살인 만행질 작전,
3. 사기 행각질 작전,
4. 속임수질 작전,
5. 뻔뻔해지기질 작전,
6. 귀구멍을 틀어 막고 옹고집되기질 작전, 
7. 눈웃음 살살 뿌리며 뒤통수 치기질 작전,
8. 쇠귀신 되기질(다른 말로 믿음질) 작전,
9. 허황된 천당 꿈꾸기질 작전, 등등은 예수교의 절대적 대명사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질>이란 직업적으로 벌이는 줄기찬 활동을 의미한다.

저런 <강도질 및 노략질>을 300만이나 되는 떼강도가 자행한다면 그 형세는 어떤 것일까?
우리 한국에 예수쟁이가 1,000만이 넘는다 하고, 현재 전 세계의 예수쟁이는 22억이라고 한다. 세상의 굴러가는 모습에서 짐작되는 게 없는지?


** 제삼자(필자)의 예수교에 대한 표현(판단)이 너무 지나치다고 여기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교의 숨겨진 발톱은 훨씬 더 무섭다는 사실을 아무리 크게 확대하며 설명을 해도 부족할 것이다. 

(5) 노략질이 생업으로 되어 있던 족속에게는 거기에 걸맞는 노략질 설화(신화)가 만들어질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농업 민족에게 풍년 설화가 만들어지듯, 노략질 족속에게는 셀 수 없이 많은 양의 노획물이 쌓이고, 수 없이 많은 원주민(적?)을 도륙시키는 노략질 설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출애굽기(바이블의 하나)>는 바로 예수교의 전지전능한 신이신 여호와가 함께 하는 통쾌하고도 신바람나는(?) 노략질(떼강도질) 설화이다.
히브리 족속 전체를 떼강도 또는 비적떼로 무장시키기에 대단히 훌륭한 가르침이요, 분기 탱천(憤氣撑天=분한 마음이 하늘을 찌를 듯이 격렬하게 솟구쳐 오름)시킬 수 있는 교과서가 바로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이다.

목사(또는 신부)와 신학자들은 하나 같이 <출애굽기>를 해설함에 있어서 노략질 장면은 쏙 빼버리고 엉뚱한 곳에다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출애굽기> 내용에서 노략질 장면이 빠지면 이것은 신랑 신부가 없는 결혼식 장면과 다르지 않다. 

그러면, 여기 쯤에서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을 보기로 하자.


(6) [여호와께서 아브람(이브리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애굽=이집트)에서 객(종=노비)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징계하여 다스림)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

"네 자손은 4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원주민)의 죄악이 아직 관영(貫盈=가득함)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창세기 15;13~16)

위의 바이블 이야기는 600여 년 뒤에 벌어질 일을 여호와(예수교의 신) 쪽에서 아브라함에게 들려주는 예언의 말이다.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족속은 원래 유프라테스강 하류 즉, 메소포타미아 남쪽 지방에 살던 족속이라 한다.
그런데, 아브라함(히브리 족속의 조상) 때에 여호와의 명에 의하여 가나안(팔레스타인=중동지방의 일부) 지방으로 옮겨와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가나안 지방에는 히브리(아브라함) 족속이 옮겨오기 훨씬 전부터 이미 자리 잡고 살아오는 원주민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 원주민들을 모조리 때려 죽이지 않고는 히브리 족속이 들어와서 살 수가 없는 땅이다.
따라서, 가나안 땅을 당장에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터전을 잡고 살아 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면 좋겠지만, 그 지방의 아모리 족속을 비롯한 원주민들의 죄악이 아직은 때려 죽일 만큼 가득하지 않아서 때려 죽일 수가 없기 때문에 당장 그 땅을 줄 수가 없다는 것이 여호와의 예언이다.

** 중동지방 원주민들에게서 죄악이 싹을 트려고 하면 이를 좋도록 선도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죄악이 점점 자라서 가득해(관영)지기를 기다렸다가 이들을 모조리 때려 죽이겠다는 여호와의 방식!
   세상에 이런 잡놈이 있을 수 있나? 헐!

어쨌든, 600여 년만 참고 기다리고 있으면 원주민들의 죄악이 가득해지게 되는데, 그 때에 그들을 모조리 때려 죽이고 들어가서 살도록해 주겠다는 것이 여호와의 약속이다.
그러면, 내 땅이 없는 히브리 족속이 그 600여 년을 어떻게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기다려야 할 것인가? 

여호와의 명과 예언(명령)에 의하면,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은 100~200년 동안 적당히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그 손자인 <야곱> 때부터는 애굽으로 피난을 가서 그 후손들은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며 기다려야 된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택한 백성이 왜 남의 나라에서 종살이를 해야 되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다. 그게 신의 섭리란다? 헐!)

 
이야기가 길어지고 지루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여기에서부터 가장 중요한 대목이 시작된다. 

여호와가 특별히 선택한 백성 히브리 족속이 애굽(이집트)에서 4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종살이를 하며 기다리고 있노라면, 마침내 때가 되어 여호와께서 애굽에다 큼직한 벌로 징치를 하게 돼 있다고 한다.
여호와께서 애굽에다 커다란 벌로 징치하는 틈을 타서 히브리 족속이 애굽을 탈출하여 도망을 치는 일이 <출애굽>이라는 것이다. 대박!

그런데, 말이다. 여호와의 명은 이러하다. "네 자손(히브리 족속)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출애굽을 할때, 히브리 족속은 맨 손으로 탈출을 하는 게 아니라, 애굽 백성들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금은 붙이와 가축은 물론 각종 재물을 탈취하여 가지고 도망을 쳐야 된다는 것이 여호와의 명이다.


430년 동안 종살이 하던 히브리 족속이 무슨 재주로 "애굽에서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온다."는 말일까?
그러면, 이제부터 여호와 쪽에서 예언을 해둔 6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벌어지는 바이블 내용을 보기로 하자.


(7) [(9가지 재앙으로 애굽을 징치하여 박살을 낸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가지 재앙(10번 째)을 바로(왕)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보낼지라.
그가 너희를 보낼 때에는 여기서 정녕 다 쫓아 내리니, 백성(히브리 족속)에게 말하여 남녀로 각기 이웃(애굽 민족)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그 백성(히브리 족속)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출애굽기 11;1~3)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는 애굽에다 핵 폭탄 같은 재앙을 9가지나 쏟아 부으며 징치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애굽 왕 바로는 여호와에게 굽힐 줄을 모른다.
바로왕은 강심장과 통뼈로 만들어져서 전지전능한 신(神)에게도 질 줄을 모르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다. 헐!

그런데, 10번 째의 재앙이 쏟아지자 마침내, 바로왕은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히브리 족속을 노비 신분에서 해방을 시켜 그 나라에서 모두 내보내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 맨 손으로 애굽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말고, 히브리 족속은 누구를 막론하고 "이웃(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을 내놓도록 요구하라."는 것이 여호와의 명이다. 그러면, 애굽 사람들이 히브리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게 될 것이란다.
다시 말해서, 살인 강도질로 재물을 탈취하면 그 재물은 바로 강탈당한 사람이 베푸는 <은혜>라는 말이다. 이것이 여호와의 아름답고도 멋진 <은혜법>이다. 대박이다!

예수교의 역사를 보라.
예수교(쟁이)는 수 천 년 동안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남을 유린(또는 노략질)하면서도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갖가지로 은혜를 받아 오고 있지 않던가? 대박!
이 모두가 여호와(또는 예수)가 내려 주시는 은혜이다. 암, 은혜고 말고. 아맹!

 
(8) [이스라엘 자손(히브리 족속)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으로 백성(히브리 족속)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의 구하는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출애굽기 12;35~36)

커다란 재앙(핵폭탄)을 10방 씩이나 맛을 본 애굽 백성들에게 저항할 힘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상대로 재물을 강요할 때 이를거절할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으로 히브리 족속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히브리 족속)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세상에 이런 날강도 같은 경우를 본 적이 또 있는가? 300만이나 되는 떼강도들이 일시에 한 나라 안에서 살인 강도질을 자행한다면 그 상황이 어떤 것일까?
이상의 노략질이 <출애굽기>의 골자이며, 따라서 이것이 예수교의 근본 정신이다. 예수교의 뿌리와 역사는 노략질이요, 비적떼의 분탕질이다.

위의 사실들은 히브리 역사와 예수교의 역사가 이것을 100% 증명해 주고 있다. 그래 안 그래?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9-11-18 (월) 08:44
[ 1 : 8 ]

고려말의 부패상 중 하나로서 세제(稅制)를 빼놓을 수가 없다.
농사꾼 1명에게서 각종 명목으로 세금을 착취해 가는 놈은 평균 8명 이상으로 되어 있던 사회가 바로 고려 왕조였다.
이 세금제도의 썩은 모습을 깊이 연구하던 조준은 혁명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조준이 정도전과 함께 이성계를 중심으로 역성 혁명을 일으키게 되는 동기였다.

기득권 세력은 나라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의 것을 양보하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현재의 우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 값의 고고행진 현상도 이러한 기득권 세력의 못돼 먹은 행패의 한 단면이 아니고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젊은들 사이에서 3포니 5포니 헬조선이니 하며 그 신음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있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자기 잇속을 차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기득권 세력들의 잔혹한 움직임을 보노라면 치가 떨릴 정도이다. 그래 안 그래?

기득권 세력은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외세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짓도 주저하지 않는다.
기득권 세력(고위 통치자, 고급 지식인, 종교 지도자 등등)은 언제라도 상황과 기회가 맞아 떨어지면 매국노 또는 매혼노로 돌변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이나 병자호란이 발발하기 직전 또는 을사늑약과 한일합방이 이루어지기 직전의 기득권 세력들의 모습은 매국노(또는 매혼노)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것도 그래 안 그래?

이런 모습이 모두 기득권 세력의 작태이다.

인류 역사상 단 한번의 예외가 있기는 하다. 바로 미국의 기득권 세력이었다.
1929년부터 시작된 세계 경제대공황을 해결하려는 로즈벨트 대통령의 조치(모든 재산권이 휴지 조각으로 바뀌는 정책)를 조용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 참고; <루즈벨트>가 아니라 <로즈벨트>가 가장 가까운 발음이라고 함)
다시 말해서,  세계 경제대공황 당시 미국의 기득권 조직은 엄청난 자기의 재력이 부서지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 정신이 마침내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음 할 수 있었던 기초 정신이라고 제삼자(필자)는 믿고 있다.

그러나, 그 외의 어떤 경우에도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한 예는 인류 역사상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혁명, 왕권 교체, 정권 교체 그리고, 기득권 조직의 해체만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는 해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리 한국은 기득권이나 재산권을 박탈하는 것이 아닌데도 금융실명제조차도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하는 못나니 나라로 판명이 났(었)다.

예수교는 가장 더럽고 질깃질깃한 기득권 조직이다. 예수교는 어떤 조직보다도 썩어 문드러진 질긴 기득권 조직이다. 예수교는 왜 그렇게 더럽고 질긴 기득권 조직이 되었을까?  
예수교는 무능한 사람이 자기 능력 이상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예수교는 자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매국노(또는 매혼노)적 방법은 물론 인간의 정신까지도 말살시키려고 한다.
그 방법 중 가장 흔한(쉬운) 수단이 바로 상대를 이단으로 몰아 처형하여 없애 버리는 것이다.
14~17세기에 유럽에서 벌어졌던 <마녀사냥>이라는 끔찍한 행패도 예수교가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치던 더러운 모습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또, 특히 예수교의 무섭고 더러운 현상 중 하나는 "예수교가 권력에 아부하는 근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도 남는다."는 사실이다.

** 예수교가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꼬리를 치며 아부하는 모습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과 예수교 역사 속에서 그 모습을 무수히 발견할 수가 있다. 
    재물(돈)은 왜 그렇게 또 밝히는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보라. 내(예수교의 신 여호와)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제물로 바친 짐승의 내장과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말라기 2;3)

[만군의 여호와(예수교의 신)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3;10)

예수교의 신(神) 여호와는 인간을 어르고 치면서 십일조(돈)를 강요하고 있다. 
심지어, 십일조(돈)를 바치지 않는 종자(사람?)의 얼굴에다 짐승의 <똥>을 쳐 발라 주겠다고 으르렁거리기까지 하고 있다. 헐!

예수교의 각종 헌금(착취)은 대단하지만, 소위 추수감사절이라는 절기에는 또 다시 1년 소득의 십일조(1/10)를 강요하기도 한다.
따라서, 중산층 이하 예수쟁이들은 경제적으로 영원히 일어설 수가 없다. 마치, 고려 시대의 일반 백성이 수탈당하던 상황과 별로 다르지 않다.
아니, 돈푼께나 쥐고 있던 가정이 예수교 때문에 아주 망하는 예도 많다. 대박!

고려 말기의 썩었던 세제(稅制) 즉, 농사꾼 1명당 착취자가 8명이었던 것보다도 더 많은 재물을 착취하는 조직이 오늘날 우리 나라 예수교의 중대한 문제라고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은 현상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 한국의 어려움은 그 제 일차적 근원이 예수교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상은 예수교와 경제적 측면 만을 간단하게 조명한 것이다.

예수교와 우리 인류의 정신적 측면은 이보다 한층 더 심각하다. 우리 한국은 예수교의 도태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나라이다.
이 악마적 거대한 기득권 집단을 문닫게 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앞날은 없을 것이다.
예수교에 의한 썩은 정신으로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깜깜한 밤 중에]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깜깜한 밤이 어떤 것인지 실감하지 못할 것 같다.
전기불의 보급으로 요즈음의 밤은 사실 밤이라고 할 것도 없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시골의 밤은 바로 옆 사람도 전혀 보이지 않는 깜깜 절벽이었다.

물론 휘영청 달이 밝은 밤은 예외가 되겠다.

구한 말(대한제국 시절), 서울에 전차길이 처음 놓이고, 
그 차고가 동대문 옆에 있을 때, 밤이면 그 차고의 정문에 전등이 켜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적어도 몇 사람이 모여 서서 밤새도록 그 전등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사람이 없을 것 같기도 하련만,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비를 맞으며 그 전등을 올려다 보며 서 있었다고 한다.
빗물에 젖으면서도 또, 바람이 세차게 부는데도 그 불빛은 꺼지지 않고 영롱했던 것이다.

이것보다 더 멋진 구경거리가 어디에 또 있었겠는가?


예수가 물(커다란 호수) 위를 걸었다고 한다.
그 때가 새벽 4시, 그러니까 깜깜한 밤 중이었다고 한다.
(물론 예수쟁이 중에는 새벽달이 떠 있었을 수도 있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다.)


얘기는 대략 이러하다.

예수가 떡 5덩이와 생선 2마리로 5,000명을 배불리 먹이고 난 후,
제자들을 먼저 배에 태워 건너 편으로 보내고, 예수 자신은 모였던 군중을 해산시키고, 그리고 기도하기 위하여 산으로 올라갔었다고 한다.

시간이 한참 흘렀으므로 배가 멀리 갔을 것은 분명하다.
그 때가 새벽 4시경이었다고 한다.


[제자들은 마침 역풍을 만나 배를 젓느라 몹시 애를 쓰고 있었다.
이것을 보신(?) 예수께서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 쪽으로 오시다가 그들 곁을 지나쳐(?) 가시려고 하였다.
그것은 새벽 4시경(?)이었다.]

(마가 6;48)


(1) 마태에 보면, 배가 수 리(數里)나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새벽 4시경 즉, 깜깜한 밤에 이 배가 예수의 눈에 보였다는 말인가?


(2) 몇 시간 후면, 호수에 역풍이 분다는 것을 예수는 몰랐는가?
구태여 제자들을 위험한 곳으로 먼저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
물 위를 걷는 기적질을 만들기 위하여 준비 작업을 한 것인가?


(3) 몇 시간 전에 떠난 배를 예수는 걸어서 따라갔는가? 아니면 달려서 따라갔는가? 아니면 날아갔나?
그런데, 예수는 제자(배)들 곁을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고 돼 있다.
제자들을 돕지 않고 그냥 지나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4) 제자들은 예수가 호수 위로 걸어오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 알고 놀랬다고 한다.
깜깜한 밤 중에 호수나 바다 위에서 무엇이 보일까?


(5) 파도치는 물 위를 걸으려면, 사람도 오르락내리락 상하 운동을 하면서 걸어야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걷는 모습이 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예수가 물 위를 걸었다."라고만 씌어질 문장일까?

바이블에서 설명되는 기적질들이 모두 맹물에 몽둥이 삶은 맛 같이 심심한 이유가 무엇일까?
모두가 없었던 허구를 두뇌 조직이 엉성한 자가 골방에 앉아서 조작해 낸 허구임을 증명하는 장면이다.


(6) 이 <물 위를 걷는 기적질 장면>의 앞 뒤 과정에는 모순과 궤변이 많지만 글을 짧게 줄이기 위하여 더 말함을 삼가겠다.


모세 때, 
깜깜한 밤 중인데다가 여호와가 덧씌운 흑암(구름)으로 더 더욱 깜깜 절벽인 때에 홍해(바다)가 갈라졌다고 한다.
그런데도 애굽의 장병들은 그 바다가 갈라진 것을 알기도 하고, 그 갈라진 사이로 히브리 족속들이 행진하는 것도 알아서, 이를 진멸시키려고 따라 들어갔다고 한다.

마침내, 애굽 장병들은 그 바다에 빠져 전멸됐다고 한다. 되는 말이라고 생각되는가?


엘리야 때, 
그의 사환(종)은 깜깜한 밤 중에 갈멜산에서 지중해 쪽을 보다가 <손바닥 만한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3년 동안 가믈다가 비가 오려고 기상 변화를 일으키는 장면이다.
 
깜깜한 밤중에 바다 쪽의 하늘에 손바닥 만한 구름 조각이 보일까? 되는 말이라고 생각 되는가?

이상으로 (1) 예수 (2) 모세 (3) 엘리야 중, 깨알 같은 부분에서 모순(궤변) 한 가지 씩을 지적 해봤다.
예수교에서 예수와 모세 그리고 엘리야가 누구인가?

설명이 더 필요할까?
 
* 사실은 수 십 년 이상을 예수교에 다녀야 겨우 알똥말똥한 바이블 내용이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문은 어느 것일까?]]

국내의 유명한 일간지에 다음과 같은 광고가 게재됐다고 하자.

"오는 한가위(추석) 명절에 
달나라에 살고 있는 토끼 부부 두 쌍이 서울 모처에 하강하여 쇼(show)를 보여 주기로 했습니다.
서울 시민 여러 분들의 관심은 물론, 많이 많이 왕림하시어 토끼 쇼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문의처; 전화 (000)000-0000>"

달랑 문의처 전화 번호 하나만 있을 뿐, 
장소, 시간, 요금 등, 어느 것도 자세한 내용이 없다.
따라서 문의 전화가 쇄도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1) "토끼 쇼 장소가 어디입니까?" 이런 전화 문의가 올까?
(2) "토끼 쇼 시간 좀 알려 주세요." 이런 문의가 올까?
(3) "토끼 쇼 관람료는 얼마입니까?" 이런 문의가 올까?

(4) "토끼가 어떻게 쇼를 합니까? 거짓말 마십시오." 이런 문의가 올까?
(5) "토끼가 어떻게 지구에 하강을 합니까?" 이런 문의가 올까?
(6) "...........................?"

어떤가? 이런 종류의 문의가 우선적으로 궁금하고 필요한 문의일까?

우리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문은 뭐니뭐니 해도.....우리가 가장 먼저 문의할 것(문제)은
(7) "달나라에 정말로 토끼가 살고(존재하고) 있습니까?"여야 할 것이다. 그래 안 그래?

위의 문의 (1) (2) (3) (4) (5) (6) ...... 등등은, <달나라에 토끼가 존재하느냐?>가 해결된 뒤의 문제들이다.

이야기를 <달나라 토끼 이야기>에서 예수교 <바이블(예수교의 모든 것)의 이야기>로 바꾸어 볼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즉, 예수교의 모든 것)에 의하면,

(1') 여호와(또는 예수)는 전지전능한 신(神)으로서 천지를 창조하고, 세상 만물과 인간도 창조했다고 한다.
(2')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사랑이 많아,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여 천국으로 보내려고, 그 독생자 예수를 보냈다고 한다.
(3') 그리고, 바이블에는 여호와(또는 예수)의 역할이 줄줄이 기록되어 있다.

(4') 그리고 또, 거기(바이블)에는 인간의 역할도 씌어져 있다.
(5') 바이블에는 좋은 내용도 조금쯤 있지만, 더러운 내용, 악독한 내용, 반인륜적 내용 등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6')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즉, 예수교의 모든 것) 속에는......................

이상에서 보는 것처럼 바이블 속에는 
위의 토끼 쇼에 대해서 가졌던 의문 (1) (2) (3) (4) (5) (6)에 해당하는 수박 겉 핥기 식의 허무맹랑한 말장난만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토끼 쇼에서나 바이블(예수교의 모든 것)에서나 가장 근본적인 내용을 우리 인간은 알 수가 없다. 그게 무엇일까?

(6) "달나라에 토끼는 존재할까?"
(6') "이 우주에 신(神)은 존재하는가? 또,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神)은 여호와(또는 예수)인가?"

위의 (6) 또는 (6')가 해결되어야 그 다음 문제 즉,
** "토끼가 지구에 하강하여 쇼를 하는 문제"라든지, 
** "여호와(또는 예수)가 천지를 다스린다."든지를 논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 안 그래?

그러나, 바이블(예수교의 모든 것)에는 (1') (2') (3') (4') (5') 등등,
신(여호와 또는 예수)의 역할과 사람의 역할만 씌어 있을 뿐, 정작 가장 중요한 신(神)의 존재 여부를 증명하는 내용에 대하여는 아무 것도 없다.
달나라에 토끼가 존재하지도 않는데, "달나라의 토끼가 지구에 하강하여 쇼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따라서,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의 존재 여부가 판명되지 않는 한, 
예수교(즉, 바이블)의 모든 것은 아무 쓸모 없는 허구(虛構)요 악(惡)일 뿐이다.

어느 예수쟁이가 말했다. "여호와(또는 예수)를 능가할 존재란 없다."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여호와(또는 예수)가 존재하는 신(神)이란 것을 증명한 뒤에 할 말이다. 그래 안 그래?
<전지전능하고> <천지를 창조하고> <사랑이 많고> <인간을 구원하고> 등등을 아무리 떠들면 무슨 소용인가?
그런 신(神)이 "존재한다."는 사실부터 증명하라.

예수쟁이들은 다른 쓸데 없는 말을 자제하고, 신(神)의 존재 여부(與否)부터 밝히고, 동시에 그 신(神)이 여호와(또는 예수)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부터 하기 바란다.
여기에 첨부하여, 
예수교는 여호와를 우리 한국의 전통적 신(神)이신 <하느님(하나님)>을 도용하는 짓에서도 벗어나기를 바란다.

여호와를 하나님(하느님)으로 부름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녕되히 일컷지 말라"는 여호와의 제 1계명에도 어긋나는 짓이 아니겠는가?
예수쟁이들은 그러한 불손한 짓을 하고도 천당에 갈 자격이 되겠는가? 헐!




[예수의 가르침과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 

얼마 전, 주로 70대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단체의 회원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말이 있다. 
50대 후반의 어느 유명한 교수(과학자)의 말과 행동을 가리켜 "어린애의 불장난"이라고 성토하는 내용이었다. 
나서서 뭐라고 떠들어 볼만한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조용히 입다물고 듣고만 있었다. 

50대 후반의 전문가의 활동이 "어린애의 불장난"이면, 7,80대 늙은이의 망령(?)에 가까운 주책바가지 고집이 어른다운(?) 모습일까? 
50대 후반의 원숙한 사람의 활동이 눈에 거슬리고, 못마땅해 뵈는 늙은이의 안목이야 말로 "어린애만도 못한 고리타분한 고집불통"이 아닐까? 
늙어가면서 거죽만 우굴쭈굴해지는 게 아니라, 속까지도 우굴쭈굴 험상 궂은 모습으로 굳어지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수 년 전(2012년 12월),  미국에 살고 있는 70대 부부가 한국으로 필자를 방문했었다. 
당시, 남편은 71세이고, 부인은 72세, 그러니까 부인 쪽이 1살 더 많은 연상의 부부였다. 
그들 부부는 그 해 45살된 딸과 41살 된 아들을 두고 있었다. 딸은 한국에 살고, 아들은 미국(뉴욕)에 살고 있다. 

잠시, 한국을 방문 중인 아버지(71세)가 하루는 45살 먹은 딸과 대선 문제로 의견이 달라서 밤새도록 다투었다고 한다. 
그 부인의 표현을 빌리면, 딸과 싸울 때의 아버지의 얼굴은 불그락 푸르락 가관이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필자가 그 아버지(71 세)되는 사람에게 몇 마디 질문을 던져 봤다. 

"당신은 40대 시절에 70대 늙은이를 만나면, 사람 취급을 해주기는 했었소?" 
"나는 당신이  '내 딸이 서울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틈만 나면 자랑을 해오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똑똑한 딸이 이제 45살입니다. 그런데, 71살 먹은 주책바가지 늙은이가 45살 먹은 젊은 딸을 이겨보겠다고 악을 썼다 이거지요?" 

결국, 아버지되는 사람은 아무 대답도 못하면서 뭔가 깊이 생각을 해보는 것 같았다. 

벌써, 거의 10년은 된 것 같다. 
김정일이 죽고 그 아들 김정은이 등장하자, 각 TV프로에서는 경쟁적으로 전문가들이 나타나서 김정은에 대해서 갖가지 진단도 하고 예측도 했었다. 
제삼자(필자)의 기억에 의하면, TV에 등장했던 전문가들은 대부분 5,60대 또는 70대들로 보였다. 

그 전문가들 대부분의 진단에 의하면, 김정은은 29살 짜리 풋내기라서 정권 안착에 모종의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 때, 그 TV를 시청하면서 마누라에게 말했었다. 
"내 눈에는 29살을 풋내기로 보는 저 6,70대 늙은이들이 진짜 세상 물정 모르는 풋내기로 보이는구만..."이라고. 

10년이 지난 지금, 김정은에 대해서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결국은 50~70대 늙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질병적 기우(杞憂=쓸데 없는 걱정=자기 환경에 절어 있는 망령?)임이 밝혀진 셈은 아닐까? 
세종대왕은 21살에 등극했고, 진흥왕은 6살, 광개토왕은 17살, 조선의 성종은 12살에 임금에 올랐다. 
물론, 등극하자 마자 실권을 쥐고 모든 것을 처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광개토왕은 38살에 죽었고, 조선의 대학자 율곡 이이와 22대 왕 정조는 각각 48살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상록수의 저자 심훈과 메밀꽃 필 무렵의 저자 이효석은 모두 35살 때 죽었다. 
너무도 젊은 나이에 죽었기 때문에 "어린애의 불장난"도 못해 보고 인생을 마감했을 것 같다. 
그러나, 위의 인물들은 한국 역사 속에서 커도 너무 커다란 족적을 남겨 놓은 인물들이다. 

5,60대 늙은이들 70%는 저쪽을 찍고,  2,30대 젊은이 70%는 이쪽.을 찍고.........
1~2%의 다름이 아니라, 수십 %가 얼굴을 붉히면서 늙은이와 젊은이가 저 잘난 멋으로 당파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대단한 정치적 경륜을 가지고 있기나 한 것처럼 자신의 주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 서지 않고 싸운다. 

부모 없는 자식이 없을 것이고, 자식 없는 부모도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늙은이만 따로 있는 집도 없을 것이고, 젊은이만 따로 있는 가정도 없을 것이다. 그래 안 그래?
늙은이와 젊은이는 모두 1촌 또는 2촌으로 묶여 있는 피붙이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되는 가족이란 말이다. 

아니, 자식 쪽에서 효도하는 마음으로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여 부모 쪽에서도 똑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식 쪽에서 저렇게 말을 했더라도 부모 쪽에서는 "나는 죽더라도 너(자식=젊은이)는 어떻게 하든 살아 남아야 한다."고 말해야 되고, 실질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되는 것이다. 
이것이 늙은이(부모)가 가져야 될 마음 자세이다. 그래 안 그래? 

그런데, 그런데........50대 또는 40대의 자기 자식의 활동을 가리켜 "어린애들의 불장난"으로 몰아 붙이는가 하면, 제 자식(젊은이)을 상대하여 이겼다고 쾌재를 부르는 늙은이들이 많아 뵌다. 세상에나!
뭔가 이상한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아서.......... 
앞으로 젊은이(자식)들이 살아 갈 세상에다 너무 삭막한 인간 관계 모형을 남겨 주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아들이 가장 먼저 뛰어 넘어야 될 산은 아버지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자식이 부모를 극복하지 못하는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성공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늙은이(또는 기성 세대) 쪽에는 젊은이가 갖지 못한 기득권이란 것이 쥐어져 있어서 늙은이의 고집불통적 고정관념이 우세할 수밖에 없다.

알렉산더 대왕의 부왕은 필리포스 2세인데, 그도 스스로 정복 전쟁을 여러 번 감행했다고 한다. 
왕이 직접 진두지휘한 전쟁에서 승전을 하고 개선을 할 때, 그 국가적 환영행사는 대단했을 것이다. 
부왕이 보무도 당당하게 개선하는 장면을 볼 때 마다 어린 아들 알렉산더는 말했다고 한다. 

"저 늙은이가 왜 저러지? 나는 무엇을 하라고..." 
그렇다. 아버지가 다 했버리면, 아들이 할 일은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다. 
하물며, 아들(젊은이)을 짓밟고 올라 서서 "내가 이겼다."고 으쓱대는 아버지(늙은이)가 있다면, 그 현상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될까? 

경제 전문 용어에 "핵심 생산 인구"라는 것이 있다. 
경제(생산) 활동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25세로부터 49세까지의 인구를 말한다. 
20대, 30대 그리고 40대는 철부지 어린애들이 아니라, 한 나라의 지금 당장을 짊어지고 땀을 흘려야 되는 기둥이요 대들보들인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역사 이래 처음으로 "핵심 생산 인구" 비율이 줄어 붙었다고 한다. 
하기사, "불장난이나 해대는 어린애들"이 줄어들었다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5,60대 늙은이들이여! 아니, 6,70대 늙은이들이여! 아직도 뭔가 느껴지는 게 없을까? 

"원래 지구는 젊은이들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지구의 한 귀퉁이를 늙은이들이 잠시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더부살이하는 늙은이 주제에 주인(젊은이)을 닥달한다는 것은 적반하장(賊反荷杖) 바로 그 모양새이다. 
제자가 자기만 못하기를 바라는 스승, 자식이 자기만 못하기를 바라는 부모, 이런 어리석은 짓에 자기도 모르게 한 몫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차분히 따져 볼 때이다.


그런데 말이다. 예수교의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녀석(예수)의 가름침이 참으로 괴이쩍다.

다시 말해서, 제자가 자기만 못하기를 바라는 스승이 있다거나, 자식이 자기만 못하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까?


우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이 동리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리로 피하라.
내(예수)가 진실로 너희(12제자)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예수)가 오리라.
제자(弟子)가 그 선생(先生)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

(마태 10; 23~25)


위의 바이블 내용은 제자들에게 전도 여행을 보내면서 예수가 떠들어 들려 주는 말이다.
<진실(眞實)로>라는 접두사(?)를 들이 밀며 떠드는 말이므로 틀림 없는(?) 말일 것이다.
아니지, 얼마나 자신이 없고 허황된 말이기에 <진실(眞實)로>를 거듭 거듭 강조했을까 싶다. "정말로 무서운 개는 짖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1. 전도 여행을 다니다가 상대가 핍박을 하거든 도망을 쳐라.
2. 전도 여행으로 이스라엘(조그만 세상)의 모든 동리를 다 돌기 전에 예수가 재림하리라.
3. 제자가 선생보다 더 높아 질 수 없다. 자식이 부모보다, 더 잘 될 수 없다.
4. 종이 상전보다 높아질 수 없다.


천방 지축 술취한 사람처럼 떠들어대는 말의 내용을 모두 끌고 가고 싶지는 않다. 예수의 떠드는 말에 체계는 없기 때문이다.
신의 아들이라는 녀석이 그냥 즉흥적으로, 단편적으로 떠들어대고 있으니........

도망다니기를 즐기는 신, 이스라엘(조그만 세상)을 다 돌기 전에 오겠다고 장담하던 신의 말은 나중으로 미루자.


제자가 선생보다 못해야만 되는 세상이라면, 또 자식이 부모만 못해야 되는 세상이라면, 끽해야 제자가 선생만큼만 되어야 하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의 결말은 무엇이 될까?

"곡식 밭의 김을 매지 말라."(마태 13;29)는 가르침과 "제자가 선생보다 더 크게 되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은 예수교(바이블)의 가르침 말고는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 안 그래?
그러면서도 사람보다 윗 자리를 밝히는 여호와(또는 예수)의 꼬라지라니.....기가 막힐 일이다.

결국 예수(또는 여호와)는 영원히 인간의 코를 뚫어 끌고 다니며 부려 먹고 착취하겠다는 의도인데, 실로 무서운 발상이다.



[인천에서  대전으로 갈 사람이 신의주 쪽으로 출발하는가?]

필자는 예수교를 논할 때, <하나님> <하느님> <복음(福音)> <성경> 등등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마태복음> 따위를 단순히 <마태>라고 한다.
다른 것도 신(神) 또는 여호와, 예수, 바이블 등으로 표현한다. 이 점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신약(바이블)에서 예수의 일대기를 기록한 글이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이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이 <마가>이며, 나머지는 <마가>의 기록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내용이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의 일대기의 기초가 되는 <마가>는 팔레스틴 지방의 지리(地理)를 전혀 모르는 무식한 자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우선 바이블의 한 부분을 살펴 보기로 한다.

[예수께서 다시 두로(티레) 지경(地境)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데카폴리스)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 (마가 7;31)

위의 내용대로 예수 일행의 행로를 보면,
인천(두로)에서 대전(갈릴리)으로 가려는 사람이, 인천(두로)을 출발하여 신의주(시돈)를 통과하여 경주(데가볼리)로 갔다가 다시 대전(갈릴리)에 도착했다는 말이다.
 
인천(두로)---->신의주(시돈)---->경주(데가볼리)---->대전(갈릴리)

더욱 중요한 점은, 
예수 당시(서기 1세기)에 시돈에서 갈릴리로 가는 길은 없었고, 오직 두로에서 갈릴리로 뚫린 길 하나 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는 두로에서 출발하여 시돈으로 갔다가, 없는 길을 따라 시돈에서 갈릴리로 여행하고 있다.
데가볼리 지방은 아예 경주 쯤으로 보면 될까? (너무 엉뚱해서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

이는 예수의 일대기를 가장 먼저 써서 다른 글(마태, 누가, 요한)의 자료를 제공한 <마가>는 
팔레스틴 지방의 지리를 전혀 모르던 무식한 사람이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이런 엉터리 글을 일점일획도 하자(瑕疵)가 없는 전지저능한 신(여호와=예수)의 진리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내 것 내 맘대로"-그 권리 한 번 좋구나!]

* 다음 이야기는 예수가 천당에 관해서 비유로 떠들고 있는 장면이라고 한다. 
  한 번 들어보자꾸나!

어느 포도원 주인(천당 주인=여호와 또는 예수)이 품삯을 3만 원으로 정하고서 이른 새벽에 일꾼들을 포도원으로 들여보냈다. 
오전 9시에도 노는 사람이 있어서 그들도  포도원으로 보냈다. "품삯은 일 한만큼 주겠다."면서. 

정오, 오후 3시 그리고 오후 5시에도 빈둥빈둥 노는 사람이 있어서 그들도 포도원에 들여보냈다고 한다.
날이 저물어 품삯을 나누어주는데, 맨 나중에 들어온 사람부터 3만 원 씩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른 새벽부터 일한 사람은 생각했다.
"내게는 3만 원보다 더 주려나 보다."
그러나, 그도 3만 원을 받았다. 그는 투덜거렸다.

"맨 마지막 사람은 겨우 한 시간 일을 했어도 3만 원을 주면서, 새벽부터 하루 종일 일한 내게도 3만 원이군 .... "
그러자, 주인(여호와 또는 예수)이 말했다.

["내 것을 내 맘대로 처리하는데 네가 무슨 잔소리냐? 내 후한 처사가 네 바위에 거슬리느냐? 꼴찌가 첫째 되는 모습을 보고 배 아프냐?"]  (마태 20장의 내용)

이상은 예수가 말하는 천국(비유)이라 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수고를 억울하고, 분하게 만드는 곳이 천국인 셈이다.  대박!

적당히 기회를 노리거나 빈둥빈둥 노라리로 세월을 보내더라도 그 천국은 신(神)의 기분 내키는 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는
"세상에서 수고한 만큼 천국에서 보상이 있다."는 가르침이 여러 번 보인다. (천국도 계급사회란 뜻이지만). 

그런데,  위의 천당 이야기는 다른 천당이야기와 상충된다. 그렇다면, 어떤 천당 얘기가 진짜로 맞는 말일까?
신이라는 녀석의 말이 왜 이렇게 두서없이 왔다 갔다 하고 있을까?

물론, 제삼자(필자)도 이 곳의 천당 비유를 좋도록 해석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다는 신(神)의 입에서 직접 쏟아 낸 말이고 보면 심히 고약하다. 
무능하고 불쌍한 인간을 상대하여 저런 엉터리를 제시해서야 되겠는가?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가늠하게 하는 가르침이란 말인가? 세상에나!

그리고, 이 세상에 제 것이 어디에 있다고 제 맘대로 하는가? 
또, 설령, 
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사람에게 쓸데 없는 기대를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며, 약을 올리면서 무원칙(無原則)하게 운영되는 곳이 예수교 천당이라면...그 놈의 천당!
한 번 살아 볼만 하겠구나. 헐!
 
예수(또는 여호와)의 심보짝을 알아 볼 만한 바이블 구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박!
제삼자 2020-01-03 (금) 04:15
[솔로몬왕과 여호와(예수교의 신)]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왕국의 제 3대 왕 솔로몬은 여호와의 집을 짓는데 7년, 자기 궁궐을 짓는데 13년, 도함 20년의 토목공사를 끝내고 그 기념으로 여호와에게 14일 동안 계속해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 때, 소모된 희생 제물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솔로몬이 화목제(제사의 한 종류)의 희생을 드렸으니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22,00이요, 양이 12,000이라.] (열왕기상 8;63)


이만하면,여호와(예수교의 신)란 녀석의 밥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커다란 여호와의 배때지(또는 배때기)도 14만 2천 마리에 해당하는 소와 양의 고깃덩어리가 들어가니까 꽉 찼던 모양이다.
어쨌든, 여호와도 배가 불러지자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뇌물은 사람이나 귀신(여호와 또는 예수)이나 좋아하기는 한통 속인가 보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더 보자.

[여호와께서...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간절히 바람)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殿=여호와의 집)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永永)히 그 곳에 두며, 나의 눈과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열왕기상 9;2~3)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 역시 뇌물(좋게 말해서 재물 또는 돈)을 많이 바치는 사람에게 침을 질질 흘리며 헬렐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호와(또는 예수) 앞에서도 무전유죄(無錢有罪), 유전무죄(有錢無罪)라는 것을 새삼 명심해야 될 것이다.
어쨌든, 겨우 14일 동안에 14만 2천 마리의 소와 양을 먹어 치우신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식성이 놀랍기만 하다. 헐!

그러나 저러나, 수 십 년에 걸친 토목 공사로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폭군이요 잡놈이었던 솔로몬을 감싸고 도는 여호와라는 녀석을 제대로 생겨 먹은 신(神)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조선 말기, 임오군란 때, 일본 공사관이 불에 타자, 조선 조정은 일본에다 배상금을 물어야 했었다. 그 때. 그 배상금 액수가 당시의 소 600마리에 해당하는 값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소 600마리 값에 해당하는 돈이 없어서 조선 조정은 마침내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얻어다가 그 배상금을 갚았다고 한다.

* 차관--한 나라의 정부나 기업, 은행이 외국 정부나 공적 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빌려 옴.

코딱지 만한 나라 이스라엘에서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란 녀석은 14일 동안에 600마리가 아니라 자그마치 14만 2천 마리를 꿀꺽하고 쳐 잡수셨다는 것이다. 세상에나! 대박!

이렇게 무지막지한 여호와(또는 예수)를 가리켜서 
"사랑의 신"이니, 
"공의의 신"이니, 
"전지전능한 신"이니 하며 미쳐 돌아가는 예수쟁이가 이 지구 상에 자그마치 22억 명(개신교, 구교 등을 합쳐서)이나 된다고 하니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또는 예수)가 얼마나 고약한 녀석인가를 한 가지만 더 간단히 훑어 보기로 하자.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르호보암왕이) 소년(젊은 층 각료)의 가르침을 좇아 저희(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솔로몬왕)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르호보암왕)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사람을 징계하여 다스림)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열왕기상 12;14)


뇌물을 푸짐하게 받아 먹은 여호와(예수교의 신)로부터 푸짐한 축복을 받았던 솔로몬왕!
예수쟁이들은 물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아는 체를 하며 수시로 그 화려했음을 읊어대는 솔로몬왕!
그 솔로몬왕이 어떤 녀석이라는 것을 그 아들 르호보암의 입으로 밝혀주는 대목이다.

솔로몬왕은 "백성의 멍에를 무겁게 했다."고 한다. 솔로몬왕은 "채찍으로 백성을 징계하며 다스렸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20년에 걸친 그 커다란 토목 공사를 해 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주 고약한 잡놈이 아니고서는 14일 동안에 14만 2천 마리나 되는 가축을 잡아서 제사를 지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고약한 녀석을 "훌륭한 사람"이라며 추켜 세우던 여호와!
결과적으로,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허구(가짜=거짓)이거나, 악신(惡神)이라는 증거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수 천 년에 걸쳐서 수 백 억의 사람들이 여기에 홀려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걸까? 

** 예수교의 신 여호와로부터 무지무지하게 커다란 축복을 받기도 했고 또, 그 여호와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혜까지 얻은 솔로몬왕! 
   그런데, 그 솔로몬왕의 아들 르호보암왕은 백성을 향해서 "전갈로 징치하겠다."며 으르렁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여호와(또는 예수)의 무슨 섭리일까?

** 섭리-세상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신의 뜻. 
         결과적으로,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가 허구(가짜)라고 증명해 주는 단어가 섭리?
         위에 열거된 모든 말이 모두 여호와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말 되는 게 없잖아?




[완전(完全)과 절대(絶對) 그리고 전지전능]


* 완전(完全)--필요한 요소를 모두 갖추어 부족함이나 결함이 없음.
* 절대(絶對)--그 자체로서 아무런 제약이나 구속을 받지 않고 어떤 조건에도 붙지 않는 상태. 견주어 맞설만한 것이 없음.
* 전지전능(全知全能)--모든 것에 대하여 다 알고 있으며 행하지 못하는 일이 없음.


그런데, 말이다.
완전(完全)과 절대(絶對) 그리고 전지전능(全知全能) 등등의 현상에서도 아직 무엇인가 모자라서 발전도 하고 퇴보도 하며, 결함도 있고 미비점이 있어서 이를 보완도 하고 때를 기다려 완성시키기도 하고 그러는가?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전지전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녀석들은 완전(完全)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 존재(絶對的 存在)라고도 일컬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또는 예수)에게는 견주어 맞설만한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서 아무런 제약이나 구속을 받지 않고 어떤 조건에도 얽매이지 않는 그런 존재가 바로 여호와(또는 예수)라는 것이다. 헐!
오죽하면, 이 녀석들은<천지를 창조하는 어처구니없는 짓>까지 저질러 놓았을까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신(神=여호와)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 2;52)


 
예수는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아들로서 삼위일체(三位一體) 중 하나라고 한다.
즉, 성부(여호와)와 성신(성령) 그리고 성자등, 이렇게 삼위(三位) 중에서 성자에 해당하는 녀석이 바로 예수라고 한다.
그렇다면, 위의 바이블 내용에서 보듯, 전지전능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이고 완전한 신이라는 예수 녀석도 지혜가 자라기도 하고 발전도 하고 완성되는 과정도 있고 그러는가?

"키(몸뚱이)도 자란다."던데, 그러면, 나이도 먹는가? 그렇다면, 예수(또는 여호와)는 어떤 모습(연령 층)으로 영생하는가?
늙은 모습으로 영생하는가? 젊은 모습으로 영생하는가? 아니면, 어린 아이 모습으로 영생하는가?
사람이나 신(神)이나 영생하려면, 어느 연령 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가장 이상적인가? (궁금하지 않아?)

 
"예수(여호와의 아들)는 성장하면서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라고 한다. 예수가 사람으로부터 받는 사랑도 점점 더 크게 자란다는 뜻이다.

그런데, 예수의 일생 동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예수는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서 엄청 커다란 배척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낭떨어지에서 밀쳐 죽이려고까지 할 정도로 극심한 미움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예수는 마침내 고향 사람들에 의하여 체포되고 결국은 십자가에 처형된다.
이런 현상들이 완전이요, 절대인가? 그리고, 이런 현상이 예수가 성장하면서 받은 고향 사람들의 사랑인가? 헐!

무슨 변명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이상의 현상들은 전지전능에 포함될 현상은 아닐 것이다.


정말로 한 가지만 물어보자.

 
예수교는 (1) 이단으로 취급되던 태동기가 있고 (2) 발전하던 시기가 있고 (3) 전성기를 누리다가 (4) 쇠퇴기를 지나 (5) 마침내, 와해기에 접어들고 있다. 그래 안 그래?
그렇다면, 전지전능하고 완전과 절대를 겸비한 신이란 녀석이 주관하는 예수교에도 발전과 퇴보라는 그러한 순서가 있는 것인가?
 
일점일획도 하자(잘못)가 없고, 진리만 담겨 있다는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도 수시로 재해석도 하고 정비를해야 된다고 한다.
바이블에 대한 재해석은 발전인가 퇴보인가? 그리고, 예수교의 변명은 발전인가 퇴보인가?


시작할 때나 마지막이나 항상 완성된 상태의 완전만이 있어야 그것이 전지전능과 절대라고 해야 될 것이다. 
아니, 시작도 끝도 없이 항상 완전과 절대만 있어야 그것이 여호와(예수)의 할 일과 모습이어야 될 것이다. 그래 안 그래?

그런데, 바이블(=예수교)을 보면, 완전과 절대 속에서도 무엇인가 할 일이 남아 있는 예수교(여호와=예수)이다. 
완전과 절대 속에서도 무엇을 더 완성(완전)하려고 활동하는 여호와(=예수)! 이런 현상이 성립되는 말인가?

예수교(여호와=예수)의 존재 자체는 참인가 아니면, 모순(거짓=가짜)인가?
아직도, 예수교를 혹세무민의 집단 또는 복마전(마귀가 숨어 있는 소굴)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예수교가 완전하고 전지전능한 신(神)이 인도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헐!



지금 그 회사 이름을 잊었지만, 미국에 유태인이 운영하는 회사가 있었다.
그 회사의 사훈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이미, 알고 있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사 훈>

(1) 고객은 항상 옳다.
(2) 만약, 고객이 틀렸다면 역시 (1)을 보라.


제삼자(필자)도 장사꾼으로 생업을 삼고 있던 때가 있었다. 그 때,
"고객은 항상 옳다."와 "고객은 왕이다."를 얼마 동안 점포 내부에다 써서 붙여 놓았었다.
고객들이 점포에 들어와서 그 글을 보며 싱글 싱글 웃기도 하고, 고객들이 오히려 제삼자(필자)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기도 했었다.

어느 미국의 영화 제작사가 제삼자(필자)의 점포를 배경으로 17분 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미전국 대학원,
특히, <인류학 전공 대학원>에 교육용으로 배포한 적도 있다.


위의 사훈은, 철저하고도 완벽하게 고객에게 친절과 봉사를 베풀어, 자기네 공장 제품을 한 가지라도 더 팔아 가능한 한 한 푼의 돈이라도 더 욹어 내려는 대단한 상술(商術)이다.
마찬 가지로, 예수교가 인류 역사 속에서 펼치는 눈웃음, 친절, 봉사, 교육, 의료활동 등등의 모든 활동은 혹세무민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교로 끌어들여, 금품과 시간과 노력을 철저하게 갈취하려는 수단과 방법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투망(投網) 작업일 뿐이다.

지구 위의 모든 나라가 예수교의 이 투망 작업에 말려들어 피를 뿌리는 역사를 점철시켜 왔다. 여기에 가장 늦게 말려든 나라가 불행하게도 우리 대한민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이여! 하루 속히 대오각성(大悟覺醒)할찌어다.
돈과 시간과 노력을 빼앗기는 게 문제가 아니다. 예수교에 의하여 정신(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보다 무서운 현상이 또 있을까?
예수교는 나라의 장래와 직결되는 중차대한 문제이며 무서운 중병(重病)이다.




참고; 가끔 각종 TV프로에서는 <영재>들에 관한 것도 방영하고 있다.
      수학, 어학은 물론 체육, 음악, 각종 예술 등등에 이르기까지 천재들에 관한 정보가 비일비재하다.
      제삼자(필자)가 알고 있는 어느 여자 아이(7세)도 각종 과목에서 벌써 고등학교(12학년) 수준에 달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각종 능력(또는 각종 재주과 성품 등등)은 연령에 관계 없이 습득될 수 있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지전능하다는 신의 경지일 경우, 그 능력이 어떠해야 될까?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신(神=여호와)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 2;52)
      이런 말이 성립될 수 있는 경우일까? 예수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능력이 완비된 상태였어야 되는 말 아닐까?
      그래야 그게 신(神) 아닐까? 그래 안 그래?




[잡놈의 행패]


1) "빵이 없으면 고기(또는 과자)를 먹으면 되지." 프랑스의 왕 루이 16세의 왕후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 말이라고 한다.

2) "왜들 밥을 굶지? 하두들 굶는다는 소리가 들리기에 나도 딱 한번 굶어 봤네. 왜들 밥을 해 먹지 않고 굶지. 배고프게?" 
흉년이 들어 전국이 기근으로 몹시 허던이던 조선 시대의 어느 지방관이 뱉어 놓은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에서 거론된 1)과 2)의 말은 꾸며낸 말이라고 한다. 그럴 테지. 사람 껍데기를 쓰고 있다면, 아무리 못된 성품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그럴 수는 없었을 게다. 그래 안 그래?


바이블(또는 예수교)의 내용은 전지전능한 신의 가르침이라 일점일획도 하자(잘못)가 없는 진짜만을 모아 놓은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예수교의 신(여호와=예수)은 잡놈에 해당할만 한가? 아직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대박!

일단,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1) [사람이 감당할 시험(시련)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여호와는 미쁘사(믿음성이 있어서),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어떤 일이나 사실을 견디어 내거나 받아들임)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13)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는 미쁘사 즉, 신의가 있으셔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시험(시련)만을 내리신다고 한다. 얼쑤!
여호와는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어렵고 힘든 시험(시련)은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한다. 대박!

여호와는 사람에게 시험(시련)을 내릴 때에, 피할 수 있는 길도 열어 놓으셔서, 사람이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이럴 경우, 사람 쪽에서는 여호와의 은혜에 고맙다고 해야 할까? 헐!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이든,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든, 시련이란 것을 인간에게 덮어 씌우는 여호와의 이유가 무엇일까? 이해되는 사람 있어?
"인간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희망 사항을 제출하고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없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태어나지 않고는 오로지 여호와(또는 예수)의 일방적이고도 독불장군 식의 결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태어난 사람들을 동원(창조?)시켜 놓고서 이게 뭣하는 짓일까?

 
신(神)의 간여가 없는 자연 질서 속에서 태어나 적자생존을 위하여 시련을 당하기도 하고, 경쟁도 하는 것이라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한 신(神)이 목적을 가지고 창조해 놓은 세상에서 자기 의지 없이 동원된 인간이 크든 작든 간에 시련(시험)을 당해야 될 이유가 무엇일까?

** 적자 생존--생물의 생존 경쟁의 결과,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되는 현상.

 
이 세상의 돌아가는 모습으로는 불쌍하고 무능한 인간(모든 생명체 포함해서)에 대한 여호와의 잔인한 횡포가 아닐 수 없다. 악마라도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하루 속히 자신이 허구(가짜=거짓)임을 만천하에 밝혀 자신이 뒤집어 쓴 악마적 누명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 제놈(여호와 또는 예수)이 뒤집어 쓴 불명예를 벗을 수가 있을 것이다.

위에서 거론된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와 조선 시대의 지방관 이야기는 꾸며낸 말이라니까 그런대로 재미있는 일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바이블이(또는 예수교)이 정말로 일점일획도 하자가 없는 신의 가르침이라고 박박 우긴다면, 이것이야 말로 "잡놈의 행패"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헐! 


 
"인간에게 시련(시험)을 내릴 때,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는 길도 열어주신다는 여호와(또는 예수), 이런 궤변도 있을 수 있는가?"
이 세상에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남겨 놓고, 암에 걸려 갖은 고생을 하다가 죽어가는 시련도 있다. 이것이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인가?

한 가정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던 남편 또는 아버지가 교통 사고를 만나 시체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남은 유가족이 겪는 고통과 슬픔이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인가?
젊은 나이에 질병으로 죽는 사람도 많다. 그 죽은 사람에게 여호와(또는 예수)가 마련해 준 시련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어느 것인가? 죽은 뒤에 천국의 복락을 준다는 말인가?


크든 작든, 인간에게 주어진 시련을 벗어난 사람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인간은 주어진 모든 시련을 극복한 셈이다. 이것이 여호와(또는 예수)가 마련해 준 피할 수 있는 길인가? (이런 경우를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자에게는 없다.)

 
어떤 주부가 콩을 가마솥에 넣고 볶고 있을 때, 콩들은 이유 불문 꼼짝 못하고 볶아지게 되어 있다. 콩들이 그 주부의 뜻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방법)은 없다. 크든 작든, 콩이 시련(볶아지기)을 극복하는 길은 그냥 볶아지는 것 뿐이다.
마찬 가지로, 여호와(또는 예수)로부터 주어진 시련을 벗어난 사람은 없다. 최종적으로, 모든 생명체는 각종 시련으로 시달리다가 총착역은 죽음으로 통하는 길 뿐이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느니, 시련을 줄 때에 피할 수 있는 길도 열어 준다느니 따위는 신(神)의 이름을 빙자한 궤변이요 "잡놈의 행패"라고 욕을 쳐 먹어야 되는 현상일 뿐이다.
신(神)의 이름을 빙자해서 손쉽게 남의 재물을 갈취하여 살아가는 종교 사기꾼들이, 인간의 수고와 고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기꾼들이, 혹세무민하기 위하여 꾸며낸 궤변이 바이블(또는 예수교)이다. 그래 안 그래?


 
**참고; 위의 바이블 구절과 비교하며 다음 글을 음미해보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예수)게로 오라. 내(예수)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예수의)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태 11;28~30)


원인을 알 수 없는 각종 시련으로 허덕이는 인간에게 달콤하기 이를 데 없는 멋진 말이다. 사기꾼의 말은 이렇게 멋진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수고, 자기의 무거운 짐, 자기의 멍에를 가볍게 해 주거나 벗겨줄 자(신)는 없는 것이다.
예수교의 모든 것은 혹세무민을 위한 달콤한 미끼일 뿐이다. 여기에 한 번 말려든 사람은 모든 것을 빼앗긴 얼빠진 종자가 되고 만다.

좀 냉혹한 말이지만, 자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사람은 자신 뿐이다.
여호와(또는 예수) 아니라 그 할애비가 나타나더라도,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대신 걸머져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생명체는 죽는다는 사실과 함께 우주의 진리(眞理)이다. 이 엄연한 진리를 엉뚱한 곳에서 찾으려고 시도하는 허욕이 바로 시련이요 불행이다.
제삼자 2020-02-04 (화) 05:46
[<에덴동산>과 <천당>]


<천당>과 <에덴동산>은 그 내용이 같거나 비슷한 동네일까? 아니면, 아주 다른 종류의 동네일까?

말세가 되면 예수쟁이들이 심판을 받고서 합격된 자들만 들어가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되는 동네가 바로 <천당>이다. 어쨌든, 이 천당에 들어간 예수쟁이들은 좋겠다. 얼쑤!
<에덴동산>은 여호와에 의해서 천지가 창조되는 과정에 만들어진 동네이다.
만약, 최초의 인간(아담과 하와)이 죄(?)를 짓지만 않았다면, 그 인간은 이 <에덴동산> 안에서 영생하면서 복락을 누리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에덴동산>과 <천당>은 그 내용이 동급이거나, 다르더라도 거의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고 계산해 보기가 어렵지 않다고 여겨진다.
여하간, <에덴동산>은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영생 복락을 누리기로 약속됐던 동네였다. 


예수교의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는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면서 매일 "보시기에 좋았더라."를 연발한다. 심지어, 마지막 날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며 감탄한다.
<전지전능자> 또는 <절대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여호와의 감각으로 "보시기에 좋았더라." 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평가 됐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의 이상한 짓이 발생한다.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6일 동안에 걸쳐서 보시기에 (심히) 좋을 정도로 천지가 완벽하게 창조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여호와는 또 다시 <에덴동산>이라는 동네를 하나 더 창설하신다. 
완전 무결하고 전지전능한 신의 감각으로 좋은 것이면 다 된 것일 텐데, 또 다시 더 좋은 <에덴동산>을 창설하시다니, 이런 게 성립될 수 있는 경우일까?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라는 것을 따먹지만 않았다면(원죄라는 것을 짓지 않았다면) 인간은 그 <에덴동산>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기로 되어 있었다.


수수께끼 하나만 내보기로 하자.

"일반 백성이 거주하는 주택과 죄수를 벌 주기 위하여 가두어 두는 감옥 중, 어느 것이 먼저 만들어 졌을까?" 짧게 말해서, "일반 주택과 감옥 중, 어느 시설이 먼저 만들어졌을까?"

사람이 태어나면, 아예 처음부터 모조리 감옥에 쳐 넣었다가 나중에 차츰 하나 씩 둘 씩 석방시켜서 일반 가정(집)으로 보낼까?
아니면, 일반 백성들로 하여금 자기 가정(집)에서 생업을 꾸려가게 하다가 범죄가 발생하게 되면, 비로소 감옥을 만들게도 되고, 잡아다가 가두게도 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그런데, 말이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라는 녀석은 그 하는 짓이 참으로 묘하단 말이다.
여호와는 처음에 인간(아담과 하와)으로 하여금 <에덴동산> 안에서 살게 했었다. 그러다가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는 죄(?)를 짓자 바깥 세상으로 쫓아냈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호와는 인간이 죄를 지은 후에 쫓겨날 지옥을 먼저 만들고, 그 다음에 <에덴동산>을 만들었던 것이다.

쫓겨난 후에 살아갈 지옥이나 다름 없는 바깥 세상을 먼저 만들면서 여호와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를 연발했던 것이다. 그런 다음, 맨 마지막으로 "에덴동산을 특별히 창설하셨다."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죄수를 벌주는 감옥이 먼저 만들어지고, 그 다음에 차츰 일반 백성들이 살아 갈 주택이 지어졌다는 말이 된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애시당초부터 인간이 죄를 짓도록 각본을 짜 놓은 다음 천지를 창조했다는 결론이다. 아직도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인간을 사랑하신다."고 우기겠는가?


천지를 창조할 때, 여호와는 6일 동안 생쑈를 부리지는 말았어야 했다. 
여호와는 간단하게, <에덴동산>만을 창조했어야 했다. 공연히, 세상의 이런 것 저런 것을 만들면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가 무엇에 필요한 생쑈였던가?
어차피, 마지막에 창설했다는 <에덴동산>만이 인간이 영생 복락을 누리기로 되어 있던 동네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에덴동산> 외의 바깥 세상은 무슨 소용이었나?

결과적으로, <에덴동산>은 필요 없는 것이 되었다. <에덴동산>의 창설은 여호와란 녀석이 대단히 못된 잡놈이라는 사실만을 뚜렷하게 증명을 해 주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인간이 죄를 지으면, 쫓아 낼 바깥 세상(지옥)부터 만들어 놓은 놈이 여호와였던 것이다."
(여기의 내용이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는 예수쟁이는 죽어서도 예수쟁이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각설하고)


여하간, <에덴동산>과 <천당>은 그 생김새가 대동소이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에덴동산> 안에서 살던 사람과 <천당> 안에서 살아갈 사람은 그 질이 100% 다르다. 
<에덴동산>의 사람은 아직 때가 묻지 않은 깨끗한  2명의 사람이고, <천당>의 사람은 용서를 받았는지 어떤지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더러운 때가 덕지덕지 붙은 많은 수의 죄인들이다.  

<에덴동산> 안의 사람은 어린 아기였을까? 청소년이었을까? 아니면, 중장년 이상의 늙은이였을까?
어떻게 계산을 해 봐도 <에덴동산> 안의 인간은 순수하고 깨끗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짧은 시간(창조 때부터 동산에서 쫓겨날 때까지) 동안에 <죄>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반면에, 장차 <천당>에 들어갈 인간들은 용서 받은 죄인(더러운 사람)들이다. 이렇게 더러운 인간들 만으로 뭉쳐진 <천당 사회>에서 어떻게 죄를 만들지 않고 영생 복락을 누릴 수가 있을까?
"여호와는 못하는 게 없기 때문에 여호와가 잘 인도해 줄 것이다."라고 변명하고 싶은 예수쟁이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천당>에서는 할 수 있는 여호와의 재주가 <에덴동산>에서는 그 여호와의 재주가 왜 잠을 자고 있었을까? 
"여호와가 하시는 섭리는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이다."라고 또 변명으로 억지를 부리겠지?

(또, 각설하고)


말장난 좀 해보기로 하자.

가장 큰 죄인을 0점으로 하고, 가장 의로운(착한) 사람을 60점이라고 해보자.
예수의 최고 최대의 앞잡이 바울이 말했다고 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제삼자(필자) 역시 100점 짜리 의인은 없을 것 같다.

<천당>에는 완전무결한 의인만 들어갈 수 있으므로, 그 <천당>에는 60점 짜리 인간들이 들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60+40=100점 짜리로 만들어서 그 <천당>으로 들여보내면 된다. 40점은 여호와(또는 예수)의 은혜로 채워지면 된다.

아무나 <천당>으로 갈 수는 없는 것이니까, 40점 짜리 미만의 인간은 모두 지옥으로 가고, 그 이상의 점수를 얻은 인간들은 천국으로 가게 되리라.
45점 짜리 인간은 45+55=100점으로 만들어서 <천당>으로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55점은 여호와(또는 예수)가 은혜로 베푼 점수이다. 대박!


그렇다면, 말이다. 0점 짜리에게도 0+100=100점으로 만들어서 <천당>으로 들여보내면 뭐가 잘못되는 것일까? 
0점 짜리까지<천당>으로 들여보내면 그 <천당>에 자리가 모자라기라도 할까? 설마!

요한계시록(바이블)에 보면 장차 천당에 들어갈 사람이 144,000명이라고 되어 있던데, 그 <천당>도 자격 시험이 아니라 정원이 정해진 입학 시험 같은 것인가?
<천당>도 T.O.(Table of Organization)가 있는가? <천당>도 정원제여서 자리가 나야 다음 사람이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인가?

50점 짜리 인간의 값에다 50점에 해당하는 값을 여호와(또는 예수)의 은혜가 보태져서 100점 짜리 인간이 <천당>으로 들어갔다면, 그 <천당>에 들어간 것은 사람인가? 아니면, 여호와(또는 예수)인가?
인간 것 50점에다 여호와(또는 예수)의 것 50점을 합쳐 놓으면, 그것은 인간일까? 아니면, 여호와(또는 예수)일까?

옛날 그 옛날, <에덴동산>에서는, 완전무결한 사람 2명이서 짧은 시간 안에 죄를 만들어 냈다.
장차 <천당>에서는, 용서 받은(더러운) 수 없이 많은 인간들이 영원토록 어떻게 죄를 만들지 않고 살아가게 될까?

<에덴동산(지금 세상 포함)>에서는 "인간에게 자율 의지를 주었다."고 한다. <천당>에서는 그 자율 의지라는 것을 박탈할 모양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천당에서는 영원토록 죄가 발생하지 않을까? 그런 천당이 과연 재미있을까?

영화관에서처럼 한 번 관람이라면 모를까, 반복 반복 또 반복하면서 영원토록 완전무결한 복락을 어떻게 얻어 낼 수 있을까?
시간이 없어 여기에서 끝내지만, 인간의 사유 세계는 엄청난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사유 세계를 억압하고서 그 <천당>이 영원히 운영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헐!



** 예수교의 모든 것은 바보들과 사기꾼들이 적당히 얼기설기 얽혀서 돌아가는, 부서지기 꽤나 힘든 쇠뭉치 같은 조직이다.
   예수교는 진짜 믿음을 가진 바보들과 이 바보들을 요리하는 사기꾼들이 잘 배합되어 돌아가는 묘한 쇠뭉치 같은 조직이다.
   예수교는 전혀 믿음이 없는 사기꾼이 가르치고, 진짜 믿음으로 마비된 바보들이 이것을 배우는 재미있는 쇠뭉치 조직이다. 
제삼자 2020-02-20 (목) 10:35
[신(神)의 이름을 팔아서 먹고 살아가는 직업]


신(神)의 존재와 그 능력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또, 그 신(神)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 신의 이름이 여호와(또는 예수)일까?
실질적 사기꾼이 아니라면, 어떻게 신(神)을 설명하겠다고 나설 수가 있을까?
(각설하고)

우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누구든지 부정(不淨=더러운 것)한 들짐승의 사체(死體)나, 부정한 가축의 사체나, 부정한 곤충의 사체들,
무릇 부정한 것을 만졌으면, 부지중(不知中=알지도 못하는 사이)에라 할지라도, 그 몸이 더러워져서 허물(죄)이 있을 것이요....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범과(犯過=실수를 저지름)하였노라" 자복(자기의 죄를 스스로 고백하고 복종함)하고,
그 범과를 인하여 여호와께 속건제(贖愆祭=제사 종류)를 드리되, 양떼의 암컷 어린 양(羊)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贖罪祭=제사 종류)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제(贖罪=죄를 씻음)할지니라.]

(레위기 5;2~6)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람이 더러운(?) 동물의 사체(死體)를 만지거나 닿게 되면 그 사람 자체도 더러워진다는 것이 여호와의 지적이다.
이 때, 더러워진 사람은 죄(罪)를 지은 것과 마찬 가지여서 여호와 앞에 가서 그 죄를 자복(자기의 죄를 스스로 고백하고 고백함)하고 깨끗하게 씻어야 된다고 한다.

그런데, 죄는 그냥 씻어지는 게 아니라, 양이나 염소를 제사장에게 바치고 제사를 지내면 비로소 제사장이 그 죄를 씻어 주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양이나 염소를 바칠 수 없는 사람은 비둘기 2마리라도 바쳐야 된다고 한다. (레위기 5;7) 이것도 할 수 없는 가난뱅이는 밀가루라도 가져오란다. (레위기 5;11)

여호와(결국은 예수교)는 돈을 벌기 위하여 죄(罪)의 종목을 헤아릴 수 없이 만들어 놓은 셈이다.
그물 코를 가능한 한 작고 많게 만들어 송사리 새끼 한 마리도 빠져 나갈 수 없이 싹 쓸어 긁어 모아 빨아 먹자는 심산이렸다. 대박!

부정한(더러운) 것은 고등 동물만이 아니라 곤충에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저러나 동물을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으로 구분해 놓는 여호와의 섭리가 참으로 재미있다. 그지?

그런데 말이다.
사람이 죽은 동물에 접촉이 되면 오염(汚染=공기나 물, 환경 따위가 해로운 물질에 물듦)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독 차원에서 세척(洗滌)으로도 족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왜 양이나 염소를 필요로 하는가? 지독한 혹세무민(惑世誣民)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다, 제사장(요즈음의 목사나 신부?))이 인간의 죄(罪)를 씻어 준다는 말도 웃기는 소리요, 여기에 재물을 요구하는 짓도 용서될 수 없는 일이다.
우매한 인간의 재물(또는 수고)을 빨아 먹는 짓보다 더 큰 죄악(罪惡)이 있을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라. 죄(罪)의 종류와 그 죄를 씻기 위하여 가져다 바쳐야 되는 재물 종류를...
지금은 그 제사들을 일요일, 수요일 또는 금요일 등등의 날에 벌이는 예배(禮拜)라는 것으로 통일시켜 놓고 있다.
예배 시간만을 철저히 지키게 세뇌시켜 놓으면 돈은 저절로 쏟아져 들어오게 되어 있다.
<십일조 헌금> <주정 헌금> <월정 헌금> <각종 감사 헌금> <건축 헌금> <특별 헌금> 등등...이 모두가 지옥으로 가고도 남을 크기의 죄목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한 구절을 더 보자.


[소제(素祭=제사 종류)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아론의 자손(목사와 신부 등등)은 그것을 단(壇) 앞 여호와 앞에 드리되....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그 나머지는 아론과 그 자손이 먹되....

이는 나의 화제(火祭=제사의 종류) 중에서 내가 그(예수교의 지도자)들에게 주어 그 소득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는 여호와의 화제(火祭) 중에서 그(예수교의 지도자)들의 대대(代代)로 영원한 소득(所得)이 됨이라.
이(소득=돈)를 만지는 자마다 거룩하리라.]

(레위기 6;14~18)


제사장과 레위인(종교 지도자 집안) 또는 목사(신부) 및 예수교의 지도자들은 좋겠다.
저렇게 수입이 보장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종교 지도자들은 얼마나 좋을꼬?

어쨌든, 사람들이 각종 죄(罪)를 용서 받기 위하여 제물(祭物=헌금)로 바치는 모든 재물(돈)은 모두 예수교의 지도자들에 대한 대대(代代)로 이어질 영원한 소득이라 한다.
이 돈을 만지는 자는 거룩해지기까지 한다니 얼마나 좋을꼬?

같은 부류들끼리 모여 저 좋아서 벌이는 짓이므로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자.
혹세무민(惑世誣民)으로 선량한 사람의 피땀을 욹어 먹으며 살아가는 짓보다 더 무서운 죄악(罪惡)은 없다는 사실을.


지옥이란 것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혹세무민으로 인생을 꾸려 가는 예수쟁이들 말고 누가 그 곳으로 가게 되겠는가?
그런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실질적으로 지옥을 믿지 않는 자들이 바로 예수쟁이들이라는 점이다." 이보다 무서운 사실은 없을 것이다.
이는, 예수교의 역사와 현실이 저토록 더럽고 잔인하게 썩어 문드러진 이유가 그것을 증거하고도 남는다.

지옥을 알거나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어떻게 감히 썩어 문드러질 수가 있겠는가?
예수쟁이들은 사실상 철저한 무신론자들이며, 대단히 악독하고 더러운 자들이라고 단정해서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혹세무민으로 또는 사기 행각으로 밥을 벌어 먹고 살 수가 있단 말가?
신의 존재를 믿어도 그렇고, 믿지 않아도 그렇고, 어떻게 어리석은 사람들의 쌩돈을 갈취해서 먹을 수가 있단 말가?

무섭지도 않은가? 신(神)의 이름을 팔아 먹고 살아가는 직업, 이게 어떻게 사람 껍데기를 쓴 자의 직업일 수가 있다는 말인가?
정말로 무섭지가 않은가? 하기사 무신론자가 무엇이 무섭겠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과연 무엇일까? 신의 이름을 팔아 사기쳐서 먹고 살아가는 예수쟁이들의 혹세무민보다 더 무서운 현상이 또 있을까?

아서라. 맙소사!
제삼자 2020-03-17 (화) 02:54
[개신교 21단체의 신천지 예수교 역성들기]


*역성들다--옳고 그름에 관계 없이 편들어 감싸 주다.


개신교 21개 단체(교단?)가 성명서를 발표했다고 한다.
"코로나19의 정쟁화와 신청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신도들에 대한 '마녀사냥'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각설하고)

예수교 종파 중에 어느 하나라도 사이비(似而非) 아닌 것이 있을까? 예수교와 사이비와는 <일란성 쌍둥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예수교의 어느 종파(교단)를 가리켜서 사이비다 아니다를 따져 보는 일은 무의미한 짓일 뿐이다. 예수교는 그 자체가 통째로 <사이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짓말>과 <속임수>와 <사기 행각>을 골고루 버무려서 운영되지 않는 예수교 종파(교단)도 없다. 이것이 예수교이다.

그렇거늘, "신처지 예수의 <거짓말> 때문에 역학 조사가 잘못되어 코로나19가 커졌다."고 시비하는 것은 잘못이다.
예수교의 <거짓말> <속임수> 그리고 <사기 행각>은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또는 예수)의 가르침과 시범에서 연유하기 때문이다.
(또, 각설하고)


예수교는 자그마치 그 종파가 35,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 많은 예수교 종파 중에 어느 것이 진짜(정통)이고, 어느 것이 가짜(사이비)일까?
사람들은 말하다. "신천지 예수교는 사이비이다." 라고.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일반 예수쟁이들은 한층 더 열을 올리면서 저들을 가리켜 "사이비" 또는 "이단"이라고 열을 올리며 성토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진짜(정통파) 예수쟁이이다."라고 자부한다. 그러니까, 대개의 예수쟁이들은 자기 자신은 진짜이고, 저 쪽의 다른 예수쟁이들은 가짜라고 여겨지는 모양이다. 대박!

그런데, 말이다.
다른 예수쟁이들을 <사이비>로 몰아치고서 자기 자신을 <정통파 예수쟁이>라고 자화자찬할 수 있는 잣대(기준 또는 근거)는 무엇일까?
예수교에 대해서 무엇을 어떻게 알고 있기에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자기는 <정통파 예수쟁이>이고, 저쪽은 <사이비 예수쟁이>라고 치부할 수가 있는 것일까? 

솔지하게 말해서, 예수쟁이들은 자기의 종교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을까?
일반 하빠리(하바리) 예수쟁이들은 차치하고라도, 꼭대기 층을 차지하고 있는 예수교 지도자급들은 예수교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을까?
혹시라도 예수교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면, 그 예수쟁이는 무슨 방법으로 무엇을 어떻게 알고 있다는 것일까?
어쨌든,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다. "기존(또는 기성)의 예수교 종파가 정통(진짜)이라고 판단되는 데도 새로운 정통파(진짜)를 또 만들어내는가? 예수쟁이들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예수교는 그 종파가 자그마치 35,0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이는 기존의 예수교 종파를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는 가짜라고 판단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올바른 새로운 진짜 종파를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교는 맨 마지막에 만들어진 종파 1개 만이 올바른 정통파이고, 먼저 만들어진 종파는 어떤 것이라도 <사이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결론이다.

실제로는, 예수(또는 여호와)에 의하여 최초로 만들어졌던 예수교도 <사이비>였었다.
어차피, 앞서서 먼저 만들어진 기존의 예수교는 깡그리 <사이비>이기 때문에 진짜 예수교를 찾아내어 바르게 세우려고 새로운 진짜 종파는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다시 강조해 둔다.
예수교는 맨 마지막에 생겨난 종파 1개 만이 진짜 정통파이고, 기존의 모든 종파는 한 개도 빠짐 없이 <사이비>이다.
기존의 예수교 종파가 모조리 가짜라고 판단되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 진짜 종파가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예수교는 그 종파가 35,000종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쉴 새 없이 새로운 종파는 계속해서 만들어지게 되어 있다.


요즈음, <신천지 예수쟁이>들이 수 많은 사람들로부터 뭇매(또는 몰매)를 맞고 있는 중이다. 
신천지 예수쟁이들의<거짓말> 때문에 역학(疫學) 관계를 찾을 수가 없어서 <코로나19>가 더욱 창궐하게 됐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런데, 예수교의 21개 단체(교단=종파)에서 성명서를 발표했다고 한다. "<신천지 예수쟁이>들을 향한 마녀사냥을 멈춰달라."고.

그러면, <마녀사냥>이란 무엇일까?
마녀사냥이란, 예수교가 최전성(최전성 알지?) 시대를 구가하던 중세 유럽에서 자기네 예수쟁이들끼리 <마녀 재판>이라는 이름으로 50만(또는 수 100만이라고도 함) 명에 달하는 생사람(주로 여자)들을 잡아 죽인 끔찍한 사건을 지칭하는 말이다.
예수교가 최전성 시대를 구가하던 시대에 예수쟁이들끼리 벌여 놓은 끔찍한 만행질이 바로 <마녀사냥>이란 말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향해서 예수쟁이들 쪽에서 "마녀사냥을 멈춰달라."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고라? 미친 것들 아냐? 예수(교)쟁이들은?


중세 유럽의 예수교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하인리히 4세)까지도 발 아래 굴복시킬 정도로 그 위력이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정도였었다. (예; 카놋사의 굴욕)
이런 정도의 전성 시대를 이루었으면, 전지전능한 신(神)이란 녀석까지 모시고 있겠다, 이쯤 되면 인류 평화를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 전성 시대를 만난 예수교는 200년 동안의 <십자군 전쟁>에서도 비참한 실패로 끝을 내고, <흑사병>이라는 혹독한 전염병으로도 쑥밭이 되더니 마침내, 예수교는 <사양길>로 접어들게 됐다.

마침내, 서구 사회에서 예수교는 쓰다 버린 <똥 폐차> 신세를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예수교로는 이제 돈벌이가 전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구미의 예수교의 교회당 건물들은 텅텅 비어 있거나 흉물스런 폐허로 변하고 있다. 동시에 목사(또는 신부)질로는 먹고 살 수가 없게 되었다.


"사이비다." "사이비가 아니다."를 불문하고, 한국의 예수교는 <코로나19>라는 역병을 만난 김에 <신천지 예수교>와 함께 의좋게 나란히 구미처럼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정통파라고 우쭐대던 기존의 예수교 종파들은 신천지 예수교가 뭇매를 맞는 광경에 스스로도 위기감을 느꼈을 것 같다.
<신천지 예수교>가 무너져 내릴 때, 혼자서 부서지는 게 아니라, <기성의 예수교 교단>들을 끌어안고서 도매금으로 동반 자살을 하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겼을 것이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신천지 예수교를 향하여 마녀사냥을 하지 말라."고 역성을 들게 됐을 것이다. 언제적부터 그렇게 아량을 가진 예수교였을까?
그러나, 신천지 예수교이건 기성 예수교 교단이건을 불문하고, 예수교는 통째로 한바리에 실어서 조금도 기울지 않을 사기꾼 집단일 뿐이다.


어쨌든, <코로나19>는 모든 예수교 종파가 동시에 앞다퉈가며 무너져 내릴 계기를 마련해 주는 사건이 아닐까 싶다. 
<기성 예수쟁이>들이나 <신천지 예수쟁이>들이나를 불문하고, 지금까지 <코로나 19> 위기를 대처하는 자세를 볼 때, 그런 인간들을 어떻게 공동체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코로나19>라는 역병 앞에서도 전혀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거짓말> <속임수> <사기 행각> 그리고 <재물>에 눈이 멀어 있는 아집을 나타내기에 여념이 없는 뻔뻔한 예수쟁이들의 모습, 이런 걸 어떻게 인간이라고 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헐!


-------------------------------------------------------------------
여기쯤에서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두서너 구절 보기로 하자. 
(바이블을 벗어나서 떠들어지는 말은 어떤 것을 막론하고 예수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헛소리일 테니까 말이다.)

**[그들(모세와 아론(히브리 족속의 지도자들)이 가로되,
"히브리인(예수쟁이들의 옛 조상)의 신(神)이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에 가서 우리 신(神) 여호와께 희생(犧牲=제사)을 드리려 하오니, 가기를 허락하소서. 
(그렇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온역(瘟役=염병,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애굽(이집트)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히브리 족속=노예)으로 역사(役事=토목이나 건축 따위의 공사)를 쉬게 하느냐? 가서 너희의 역사나 하라."]

(출애굽기 5;3~4)
.............................................................................................................

예수쟁이들의 옛 조상이었던 히브리 족속은 애굽(이집트)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교의 신(神) 여호와의 인도를 받아 애굽을 탈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팔레스타인) 지방으로 옮겨가서 터전을 잡고 살아가도록 약속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종살이를 하던 히브리 족속이 애굽을 탈출(출애굽)하는 일은 그냥 거저 손쉽게 되어지는 일이 아님은 물론이다. 애굽 왕(바로)과의 협상이 원만히 성사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위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은 히브리 족속의 지도자(모세와 아론)와 애굽 왕(바로)과의 사이에서 협상 과정이 시작되는 장면이다. 제1차 협상 장면인 셈이다.

모세와 아론이 애굽 왕(바로)에게 내놓은 협상안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족속에게 처음으로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진 신(神)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이 여호와께서 히브리 족속의 제사를 받아 잡수시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니, 히브리 족속을 사흘길쯤 광야로 여행을 보내주면 거기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겠습니다. 이를 허락해 주십시오."

그런데, 이 <사흘길> 협상안은 처음부터 거짓말(속임수)이었다. 왜냐 하면, <사흘길>쯤의 여행이 허락되면, 그 길로 히브리 족속은 아예 멀리 도망을 칠 계획이었던 것이다. 
즉, 협상안이 성사되면, 이 기회에 <출애굽=애굽에서 탈출>을 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협상안이 성사될 리가 없었다.
왜냐 하면, 이 때의 협상안은 결국은 결렬되도록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께서 계획을 짜고 진두 지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박! 

히브리 족속의 지도자(모세와 아론)와 애굽 왕(바로) 사이의 협상이 결렬되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협상이 결렬되어야 그 책임을 물어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는 애굽에다 커다란 재앙을 쏟아부을 구실을 만들 수가 있었던 것이다. (재미가 있다. 그지?)
결국, 10번의 협상 과정이 있게 되고, 동시에10번의 협상 결렬 과정이 벌어지게 된다. 마침내, 애굽(이집트)은 여호와가 쏟아 부은 10번의 재앙으로 초토화가 되었다고 한다. 헐!

히브리 족속과 애굽 왕 사이의 협상이 결렬되도록 유도하는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 녀석의 장난질(심술)은 또 있었다.
협상 회의가 열릴 때 마다, 여호와는 애굽 왕(바로)의 성품 속에다 강퍅(剛愎=까다롭고 고집이 셈)을 집어 넣기로 작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성품 속에다 그 강퍅(剛愎)이란 것을 쑤셔 넣어 놓으면, 마침내 그 고약해진 성품으로는 어떤 사람과도 좋은 방향으로 협상을 성공시킬 수가 없을 것은 뻔한 결과이다.

어쨌든, 전지전능한 재주(능력)를 가지고 있는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란 잡놈은 못하시는 게 없는 분임을 알 수 있다. 대박!
마침내, 애굽(이집트)은 혈상 결렬의 책임을 지고서 여호와란 잡놈이 쏟아 부은 10번의 커다란 대재앙(천재지변과 같은 큰 재난과 불행)을 당하게 됐다고 한다.
10번의 대재앙으로도 모자라서 마지막에는 애굽의 전 장병(將兵)과 군마(軍馬)가 하나도 남김 없이 홍해 바다 속으로 수장당하는 사건으로 끝 막음을 한다.

** 참고; 협상이 결렬되면, 애굽은 <재앙>을 당하게 되어 있고, 히브리 족속은 <온역(전염병)>을 당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애굽이 10번의 <재앙>을 당하는 동안, 히브리 족속은 <전염병>을 당하는 일이 없다. 왜 일까?
          왜긴 왜야, 바이블을 조작해 내던 종교 사기꾼의 실수임을 알 수 있다. 바이블은 신(神)의 말이 아니다.

결론을 말해야 될 것 같다.
예수교의 전지전능하신 신(神) 여호와란 잡녀석은 스스로도 <거짓말>과 <속임수>로 일을 꾸미는가 하면, 자기를 믿고 받드는 백성(신도)들에게도 <거짓말>과 <속임수>로 세상을 상대하도록 교사(행하도록 꾀어서 부추김)한다.
<기성 예수교 교단>은 물론 <신천지 예수교> 등등, 예수교 역사가 통째로 <거짓말>과 <속임수>와 <사기꾼 행각>으로 점철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신천지 예수쟁이>들의 거짓말과 속임수 때문에 역학 조사가 제대로 실시되지 못하여 <코로나19>가 위험 수위를 넘어 창궐할 지경이 된 이유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착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신천지 예수쟁이> 만이 거짓말과 속임수로 뭉쳐져 있다."고.
신천지 예수쟁이 만이 아니라, 모든 예수교 종파가 하나도 빠짐 없이 <사기꾼>이요, 거짓말과 속임수로 무장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한 구절을 더 보기로 하자.

** [여호와께서 너희(히브리 족속=예수쟁이들의 옛 조상)의 열조(조상)에게 맹세하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長久=매우 길고 오램)하리라.]

(신명기 11;9)
.............................................................................................................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라는 잡놈이 자기 백성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족속에게도 직접 사기 행각(거짓말 또는 속임수)을 쏟아내는 장면이다.
여호와는 맹세까지 하면서 자기 백성 히브리 족속에게 약속(사기 행각)을 했다고 한다.
"내가 히브리 족속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팔레스타인) 지방에다 터전을 잡고 살아가록 해주겠다."고.

그러나, 가나안(팔레스타인) 지방은 젖과 꿀은커녕 비도 제대로 오지 않는 기후가 몹시도 척박한 사막 벌판일 뿐이다.
중동 지방에서 그 흔하게 쏟아져 나오는 석유조차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거의 불로지와 다름 없는 땅이 팔레스타인 지방이다.
그런데, 이런 불모지의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며 여호와는 자기 백성(신도)을 속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헐! 그리고, 대박!  

<출애굽> 사건 자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애굽 사람들이10번의 <재앙>을 당하고서 꼼짝도 할 수가 없을 때, 히브리 족속은 그대로 애굽 땅에 눌러 앉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히브리 족속은 비옥한 나일강 유역의 땅을 버려두고(탈출하여?) 척박한 기후의 사막 벌판으로 옮겨가서 자리를 잡는다. 이해가 되남? 
여호와가 <거짓말>과 <속임수>를 섞어서 만든 <사기 행각>에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족속이 말려든 불행이 아니고 무엇일까? 헐!

예수교의 신(神) 여호와는 스스로도 <사기꾼> 노릇을 하는가 하면, 자기 백성(신도)에게도 <사기꾼>노릇을 하도록 강요하는 잡놈 신이시다.
그래서, 여호와의 그 더러운 성품을 이어 받게 된 예수교는 통째로 <사기꾼> 집단이 될 수 밖에 없으며, 동시에 예배당은 복마전(伏魔殿=마귀들이 숨어 있는 소굴)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신천지 예수쟁이들이 거짓말을 해서 <코로나19>의 역학 조사를 어렵게 만드는 짓이나, 이런 짓에 역성을 들고 있는 기성 예수교 교단이나 조금도 기울지 않는 사기꾼 집단일 뿐이다. 

이상이 보탤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모든 예수(교)쟁이의 실상이다. 할렐루야! 아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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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예수와 여호와의 관계]예수와 여호와는 어떤 관계일까?예수교(바이블)는 말한다. 예수는 여호와(예수교의 주신)의 아들이다."라고. 맞는 말일까? 사실…
제삼자 19/01/27 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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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수수께끼]예수교에서 "믿음의 조상"이라 칭송되는 위인 중에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있다.<아브라함>의 아들은 <이삭>이고, <이삭&g…
제삼자 18/11/15 2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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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사기꾼 세례요한과 예수, 그리고 그 후예들]   "예수교의 신여호와는 세상(인류)을 구원하기 위하여 구세주를 보내기로 되어 있었다."고 한…
제삼자 17/11/14 7146
728
*53[여호와(예수)의 축복을 받고 태어나면]미인박명(美人薄命)이란 말이 있다. 미모가 뛰어난 여자는 운명이 기박하다는 말이다. 흔한 말로 미인은 팔…
제삼자 17/09/10 6254
727
*52[죄인(죄악)과 병자(질병)]* 다음 이야기들은 조금 쯤 신경을 써야 들리는 내용이다.  즉, <죄인>이라는 개념과 <병자>라는 개념은 비교할 …
제삼자 17/05/07 8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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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예수 왈;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이는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아들임을 자처하는 예수가 한 말이라 한다.그…
제삼자 17/03/17 8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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