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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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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인원 : 5,938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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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17[예수교의 위대한 조상 잡놈 야곱 이야기]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20-12-23 (수) 03:31 조회 : 179
#17[예수교의 위대한 조상 잡놈 야곱 이야기]


**야곱(인명)--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는 야곱을 꽤나 사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도 하사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이라는 니라 이름이 생겨난 이유라고 한다.


50~60살 쯤 먹은 늙은이가 혼인을 하겠다면서 적령기의 딸을 달라고 하면, 딸을 가진 부모의 반응은 어떤 것이 될까?
모르기는 해도 딸을 가진 부모로서는 그 청혼을 해오는 신랑감이란 자를 당장에 요절(橈折=아주 못쓰게 깨뜨려버림)을 내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개할 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요즈음 벌어지고 있는 "Me Too."보다 더 큰 사건이 되지 않을까? 

조선 왕조 제 21대 왕 영조는 65살 때, 14살 짜리 어린 계집 아이(정순왕후)와 혼인을 한다. 
이 때, 부원군(府院군) 칭호를 얻게 된 정순왕후의 친정 아비 김한구는 "가문의 영광이다."라면서 좋아서 죽을 지경이었을까? 아니면,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 얼굴을 제대로 들고 다니지를 못했을까? 궁금하네!

(각설하고)


(1) 예수교에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커러지는 아브라함의 손자에 <야곱>이란 녀석이 있다.
여호와(예수교의 신)는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었다고 한다. 이것이 이스라엘(예수쟁이들이 껌뻑하는 옛 조상)족속의 시작이라고 한다. 
야곱은 에서(인명)와 함께 쌍둥이 형제라고 한다. (에서가 형, 야곱은 동생)
따라서, 에서와 야곱은 동갑내기일 수밖에 없다. 에서는 효자였고, 야곱은 간악한 사기꾼이요 잡놈었다고 한다. 같은 핏줄이라도 서로 사뭇 다른 경우는 많다.
형 에서는 40살 되던 해에 장가를 들었다고 한다 (창세기 26;34). 그렇다면, 이 때 동생 야곱의 나이도 40세였을 것이 분명하다. 


(2) 세월이 한참 흐른 후,  동생 야곱은 속임수를 써서 형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빼앗았다고 한다. 
그게 가능한 짓인지는 모르겟으나.....어쨌든, 여호와(예수교의 신)도 여기에 합세했다. 아니, 전지전능한 신의 오묘한 섭리였다. 헐!
또, 시간이 한참 흐른 후, 형 에서의 보복이 두려워진  동생 야곱은 야반 도주를 하여 수 백 km 떨어진 외삼촌 <라반>의 집(하란=터키의 우르파 주)으로 도망친다. 
이 때, 에서와 야곱의 나이는 몇 살이었을까? 적어도 50살은 넘어으리라. 어쩌면, 60살 내외의 늙은이가 되어 있지는 않았을까?


여기 쯤에서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자.


[라반(인명)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의 생질(조카)이나 어찌 공으로 내 일만 하겠느냐? 무엇이 네 보수겠느냐? 내게 고하라."

라반이 두 딸이 있으니 형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안력(眼力=사물을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7년을 봉사하리이다.
라반이 가로되, "그(딸 라헬)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7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7년을 수 일 같이 여겼더라.]

(창세기 29;~15~20)


위의 바이블 내용은 적령기(15살 짜리?)의 외삼촌의 딸 <라헬>을 두고서 적어도 50살은 됐을 늙은 야곱이 외삼촌 라반과 협상하는 장면이다. 
협상이 원만히 이루어져서 야곱은 이후 7년 동안 외삼촌 라반을 위하여 열심히 머슴살이를 하고서 외삼촌 딸과 혼인을 했다고 한다.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결과적으로는 14년이라는 머슴살이 이야기는 생략한다. 야곱은 작은딸 라헤만이 아니라, 큰딸 레아와 그들의 여종 2명까지도 차지하게 된다.)


(3) <야곱>은 부지런히 일했다고 한다. 그러자, 외삼촌 라반이 생질 야곱에게 말했다. 
"아곱아, 네가 나의 생질(누이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공짜로 나의 일만 하게 놔둘 수야 없지 않느냐? 무엇으로 너에게 보답하면 좋겠는냐? 말해 보거라." 

그러자, 야곱 왈,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를 내게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외삼촌의 머슴으로 7년 동안 봉사해 드리리다." (창세기 29;18) 

외삼촌 라반의 작은 딸 라헬은 <야곱>의 눈에 아리땁게 보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때 라헬은 5~6살 짜리 코흘리개 어린 계집 아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라헬은 적어도 결혼 적령기의 처녀였을 것이다. 
옛날이니까 적령기 처녀라면, 적어도 15세 전후의 나이를 먹지 않았을까? 12~13짜리 계집 아이일 수도 있고....


바이블을 더 보자.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기 나홀(인명)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가로되, "아노라."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가로되, "평안하니라. 그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창세기 29; 5~6)


야곱이 하란(외삼촌 라반이 거주하는 지명)의 양치기들과 나누는 대화이다.
여기에서, 라반의 작은 딸 <라헬>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양치기 노릇을 하는 것으로 보아 라반의 작은 딸 라헬도 코흘리개 어린 계집 아이가 아니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적령기의 딸에게 청혼이 들어와서 그 청혼을 허락을 하고는 7년을 미루다가 혼인을 시켰다? 되는 말 같은가?


외삼촌 <라반>의 대답을 들어 보자. 
"...그(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창세기 29;19) 
50살 또는 60살은 됐을 늙은 녀석이 "딸(적령기의)을 달라."고 하자, 내 놓은 아비의 화답이다.


(4) 이리하여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7년 동안 머슴으로 봉사한 후 마침내 라헬을 차지하게 된다. 
외삼촌 라반은 덤으로 큰 딸 레아(라헬의 언니)까지도 야곱에게 주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딸들의 몸종 2명까지 야곱의 첩으로 얹어주었다고 한다.
이 야곱 얘기는 예수쟁이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여호와의 진리의 말씀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유년 주일학교라고해서 초등학교 아동들에게 가르치는 대단히 중요한 교육적인 동화 이야기이다. 
다시 말해서, 60살(?) 먹은 늙은이가 음흉하게 장가드는 흉칙한 이야기가 어린이 교육용으로 떠들어진다는 말이다. 마치, 영화 제목의 <꼬마 신랑> 이야기처럼.....


(5) 결론: 50살(또는 60살) 먹은 늙은 녀석이 딸을 달라고 했을 때, "그(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좋다."고 맞장구를 치는 아비도 있을까?
또, 신랑감이 적령기의 딸을 달라고 해서 그것을 허락했으면 즉시 혼인을 시킬 생각을 하지 않고 7년 씩이나 뒤로 미루어 두었다가 혼인을 시켜 주는가? 
적당한 혼처가 나타났는데도 적령기의 딸을 붙잡아 뒀다가 7년 뒤에 시집을 보내는 그런 부모도 있는가? 

작은 딸만 달라는 늙은이에게 큰 딸과 그 여종들까지 얹어서 선물하는 부모는 또 뭐지? 
이 곳(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설교를 하는 예수교 지도자들은 많다. 
그런데, 신랑 야곱의 나이와 신부(라헬과 레아)의 나이를 계산하면서 해설하는 자를 보지 못했다.

아니, 여기만이 아니라, 바이블 전체를 통틀어 숫자 계산에 밝은 곳은 한 군데도 없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꾸며 낸 자들은 어쩌면 저리도 수리 계산에 빵점 짜리들만 모여 있었을까? 

그건 그렇다 치고, 외삼촌 라반과 조카 야곱의 대화가 인간 사회에서 있을 법한 현상일까?


(6) 바이블 내용 중에 수리 계산이 엉망이라는 것은 결국 바이블이 신(神)의 말이 아니라 통째로 허구(虛構=거짓, 가짜)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바이블은 허구(虛構=거짓, 가짜)를 지나 인류 사회에 존재해서는 안 될 악서(惡書)이다. 
바이블은 고대 중동 지방의 사막 벌판에서 노략질로 생업을 삼고 살아가던 비적떼 집단의 노략질(전쟁) 교과서일 뿐이다.
현대 문명 사회에서는 장난으로라도 흉내를 내어서는 절대로 안 될 흉악한 악서가 바로 바이블이다.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20-12-24 (목) 09:41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인간과 웬수란다]-헐!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족속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홍해 바다 쪽으로 돌출한 시내(시나이) 반도를 배회하고 있을 때, 아말렉 족속을 만나 전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여기에서 <모세>는 두목(頭目) 격이고, <여호수아>는 총대장(總大將) 격이다.
여기에 <아론>과 <훌>이라는 두 늙은이가 조연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모세>, <여호수아>, <아론> 그리고 <훌> 이렇게 4명이다. 이 성전(聖戰=성스러운 전쟁)을 관전해 보기로 하자.


우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자.


**1) [때에, 아말렉(적군)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군인=장정)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여호와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출애굽기 17;8~9)


사람을 죽이는 전쟁이지만,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가 진두 지휘하는 전쟁은 성전(聖戰=성스러운 전쟁)이라고 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성전(聖戰)은 그 방법부터가 여늬 전쟁과는 사뭇 다르다. 우선 성전이 시작되면 여호와의 지팡이를 잡은 모세가 산꼭대기로 올라간다고 한다. 좀 더 보기로 하자.


참고; 바이블에서 말하는 <사람>이란 노략질 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장정 즉 군인을 뜻한다.
인구를 조사할 때에도 여자와 아이들을 뺀 <사람> 즉, 노략질을 위한 전투(전쟁)에 동원될 수 있는 장정(군인)만 헤아리게 되어 있다.


바이블을 더 보자.


**2) [여호수아(총대장)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破)하니라."]

(출애굽기 17;9~13)


A) 모세가 팔을 불편한 자세로 올리고 있으면 아군(이스라엘군)이 이기고, 그 팔을 편한 자세로 내리고 있으면 적군이 이기더란다.
그렇다면, 모세가 팔을 내리고 있을 때, 아군(이스라엘군)이 이기도록 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그렇게 되면, 여호와의 기적질이라고 말하기가 곤란하겠지? 
평상시와 같이 <모세>가 팔을 내리고 있을 때, 아군이 이기고 있으면, 그것이 여호와가 베푸는 기적질인지 그런게 아닌지 구별하기가 곤란하겠지?

어떻게 하든 여호와의 기적질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은 비굴할 정도이다.
<모세>를 비롯하여 <아론>과 <훌>은 모두 100살이 넘은 늙은이들이었다. 그런데도, 편한 자세가 아닌 팔을 들고 있어야 아군이 이기는 것으로 꾸민 것은 재미 있기도(?) 하다.


B) 처음 얼마 동안은 아군과 적군이 엎치락 뒤치락 했던 모양이다. 늙은 모세의 팔이 피곤해서 올라갔다 내려왔다 했으니 말이다.
모세가 편한 자세로 팔을 내리고 있을 때, 적군이 이기고 있다는 말은 아군 쪽에서 사상자(死傷者)가 발생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도 문맥으로 보아, 바이블에는 히브리 쪽에서는 단 1명의 사상자도 없다. 오직 아말렉 족속 쪽만 전멸된다.
성전(聖戰)은 이렇게 그려야 된다. 적군 아말렉은 바지 저고리만 몰려 다닌 모양이다.


C) 나중에서야, 두 늙은이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모세>의 팔을 부축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은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됐다고 했다.
그렇다면, 100살이 넘은 세 늙은이가 과연 그 긴 시간 동안 팔을 들고 있을 수 있었을까? 이런 것이 다 없었던 허구를 사실처럼 만드느라 미쳐 생각하지 못한 헛점이다.
그리고, 전지전능(全知全能)하다는 신(神) 여호와가 진두지휘하는 전쟁인데, 전쟁 시간이 너무 길다. 인간 끼리 벌이는 전쟁인지 신(神)이 간여하고 있는 성전(聖戰)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D) 여호와의 위협 속에는 "칼날에 삼키우리라" 따위의 소름끼치는 표현들이 많은데, 여기서도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破)했다."고 한다.
도무지, 신(神)이라고 이름 부를 수 없는 자가 여호와이다. 그냥 아무 설명 없이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끔찍한데, "사람이 칼날에 삼키우리라"가 무슨 경우인가?
예수교는 그 태생부터가 무지막지(無知莫知=지나칠 정도로 사리를 모르고 우악스러움) 그 자체일 뿐이다.


바이블을 더 보자..


**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塗抹)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모세가 단(壇)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代代)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출애굽기 17;14~16)


A) 여기에도 바이블 기자의 실수가 많다.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여호수아>는 이 전쟁을 직접 지휘한 총대장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보다도 이 전쟁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여호수아이다.
그런데,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려 주라."가 되는 말인가? <여호수아>를 총대장으로 꾸며 놓고서, 그것을 까먹고 현실로 돌아와 착각하고 쓴 허구(虛構=거짓, 가짜)임을 알 수 있다.


B) "아말렉을 도말(塗抹)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여호와의 독설(毒舌)이다.
아말렉 족속들도 여호와가 창조한 인간일 것이다. <도말(塗抹)> 이 웬 말이며, "천하에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가 할 수 있는 말인가?

인간 중에 태어나고 싶다는 자기 소원을 말하고 이 세상에 온 자가 있는가?
여호와 쪽에서 제 멋대로 동원(창조?)시켜 놓고서, 사람을 이렇게 무지막지(無知莫知=)하게 대해도 되는가?
고장난 장난감이라도 이렇게 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악마(惡魔)라도 여호와보다는 자비(慈悲)가 있다고 하겠다.


C)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께서 맹세했다고 한다.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代代)로 싸우리라."하고.

도대체, 신(神)이란 작자가 인간과 무슨 원수를 졌기에 "대대로 싸우겠다."는 것일까?
아예, 그 전지전능하다는 재주로 노아의 홍수 때처럼, 단번에 인류를 멸종시키는 것이 백 번 옳다. 여호와는 인간과 불공대천지수(不共戴天之讐)라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다시 말해서, 여호와는 인간과 한 하늘 아래에서는 더불어 살 수 없는 원수라는 말이다.


이상으로, 여기에서 모세가 허구(虛構=거짓, 가짜)임을 한 가지 증명한 셈이다. 모세가 허구로 판명되면 예수교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모세>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신이다. 그런데, 모세가 허구로 밝혀지면, 여호와의 신세는 무엇이 될까? 이런 걸 두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라고 한다던가?

모세가 허구이면, 여호와는 자동으로 허구가 되며, 여호와의 아들을 자처하는 예수도 허구가됨은 물론이다. 동시에 예수교 역시 허구 위에 세워진 복마전(伏魔殿=마귀 소굴)이 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예수쟁이들은 바로 <매국노> <매혼노> 그리고 <잡놈>의 반열에 우뚝 서게 되는 것이다.
제삼자 2020-12-26 (토) 05:29
[X-mas, 여호와는 영광이요, 인간은 <코로나19>]


구세주 예수가 태어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한다.

한 나라에 왕자가 태어나면, "대역 무도한 죄인을 제외하고, 모든 죄수들을 방면하라."는 임금님의 어명이 떨어지게 마련이었다.
나라에 경사가 나면 옥중의 죄인들에게도 은혜와 혜택이 돌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교의 신 여호와의 아들 예수가 구세주(救世主)라는 이름을 달고 태어나던 날, 2살 이하의 사내 아기들이 도륙을 당했다고 한다.

이 비극은 오래 전에 여호와가 계획을 세우고,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예언을 해 두었던 것이 "이루어진 것이다."라며 바이블(예수교)은 우쭐거리고 있다.
장차 인간에게 있을 불행을 미연에 예방해 주는 게 아니고, 그 불행을 계획하고 예언까지 해 주고서, 그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출썩대며, 자기의 점괘가 맞아 떨어졌다고 예수교의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은 자랑을 하고 있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자.


[이에 헤롯(왕)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그 때를 표준하여, 2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더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마태 2;16~18)


(1) 예수가 태어나던 날, 베들레헴과 그 원근 일대의 2살 이하 사내 아이들이 국왕 헤롯에 의하여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이것이야 말로 날벼락이 아니고 무엇인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사건은 태초에 예수교의 신(신)이신 여호와가 계획을 세우고, 이것을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예언해 놨던 것이 이루어진 것이라 한다.

(2) 지금은 여자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 세상이 됐지만, 옛날의 인간 세상은 어디나 집집마다 어린 아기가 없는 집이 별로 없었다.
따라서, 당시 베들레헴 일대에서 자식이 죽임을 당하지 않은 집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죽은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소리가 천지을 진동했다는 것이다.

죽은 아기들도 불쌍하지만, 그 유가족들의 슬픔은 무엇일까?
여호와(또는 예수)는 인간이 감당할만큼만 시련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비극들이 인간이 감당할만한 시련들일까?

(5) <사랑의 신>이라고 말해지는 여호와(또는 예수)는 세상을 이런 식으로 다스려야 되는 것일까? 여기에서 우선적으로 여호와(또는 예수)는 욕을 한 번 더 얻어 쳐먹어야 될 것 같다.
여호와(또는 예수)를 가리켜 "악마(惡魔)요 잡놈이다."라고 하면 제대로 된 표현이 될까?"


여기 쯤에서 바이블을 더 보기로 하자.


[(천사가 이르되) "오늘날 다윗의 동리에 너희를 위하여 구세주가 나셨으니, 그리스도 주(主)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허다한 천군(天軍)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신(神=여호와)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천국?)에서는 신(神=여호와)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 2;11~14)


(1) 예수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지극히 높은 곳(천당?)에서는 여호와에게 영광이 되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한다.

(2) 그렇다면, 베들레헴 원근 일대에서 도륙된 2살 이하 사내 아이들과 불행 속으로 빠져 든 그 유가족들이 바로 "여호와로부터 기뻐하심을 입지 못한 미운 털 박힌 종자"들이었던 셈이다.

크리스마스를 2020년의 말로 바꾸어 보자. 

*** 크리스마스는 "지극히 높은 곳(천국?)에서는 신(神=여호와)께 영광이요, 지옥 같은 지구에서는 <코로나19>로 허덕이는 날이로다." 어때? 말 되지?

(3) 2살 이하의 아기라면, 자기 의지가 없을 때이다. 따라서, 그 아기들에게 <죄의식>이란 것이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도륙된 아기들이 여호와로부터 "기뻐하심을 입지 못한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4) 여기에서 여호와(또는 예수)는 부득이 또 한 번 욕을 더 얻어 쳐먹어야 되지 않을까?
"신(神) 아니라 신의 할애비라 하더라도 여호와(또는 예수)는 미친 잡놈이다."
"기준과 원칙이 없는 불한당 같은 악마 새끼가 여호와(또는 예수)이다."라고 불러도 그 호칭이 부족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위의 크리스마스 얘기(바이블 내용)은 허구(虛構=거짓, 가자)일 뿐이다. 그 사실을 바이블에서 찾아 보기로 하자.


바이블을 보자.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베들레헴에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마태 2;1~3)


(1) 옛날 왕권 시대에 어떤 아기가 하나 태어났다고 하자.
이 때, 어느 점쟁이나 도인이 나타나서 "이 아기는 장차 임금이 될 상이다"라고 선포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아기는 무슨 일을 당하게 될까? 이유 불문 그 아기는 당장에 죽여지게 되어 있다.

(2) 동방으로부터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왔다는 박사들은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천치 바보들이었던가?
동방박사들은 유대의 국왕이 머무는 도성인 예루살렘성에 들어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이렇게 공표해 버리면, 그 결과는 예수를 경배하러 온 것인가 아니면 죽이려고 온 것인가?

이렇게 상황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동방박사>라는 칭호도 어울리지 않고, 별을 보고 먼 동방으로부터 왔다는 말도 웃기는 상황이 되고 만다.

(3) 북쪽 지방 멀리(약 150km 떨어진 곳) 나사렛이란 동네에 살고 있는 마리아 부부가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예수를 낳게 된 것은, 로마 황제의 명을 따라 호적을 하기 위하여 잠시 여행 중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베들레헴은 잠간 동안 머문 곳으로 여기에서 예수가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이 이 곳 베들레헴으로 경배를 하러 왔다는 것이다.
그러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그 <동방>이란 것이 베들레헴 <건너 동네>라는 뜻인가? <건너 동네>에서 온 사람을 가리켜서 <동방>에서 왔다고 하는가?

(4) 미국에 살고 있는 A라는 사람이 한국에 살고 있는 친구 B라는 사람을 만나러 가게 되었다.
그래서, A는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B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마침 B는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기 위하여 동사무소에 가고 집에 부재 중이었다. 그래서, 전화는 B의 아내가 대신 받았다.

이럴 경우, 미국에서 한국으로 출발하는 A는 B를 만나기 위하여 B의 집으로 가야 하는가, 아니면 동사무소로 찾아가야 되는가?
같은 의미에서, 예수의 출생을 축하 하러 오는 동방박사들은 예수 부모의 본거지인 나사렛으로 가야 되는가, 아니면 호적 신고를 하기 위하여 잠시 여행 중인 베들레헴으로 찾아가야 되는가?

(5) 동방박사라고 할 때, <동방>은 적어도 바로 이웃인 건너 동네는 아닐 것이다.
상당히 먼 곳일 것이며, 걸어서 왔거나 낙타나 나귀 따위를 타고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동방박사들은 베들레헴이 아닌 나사렛으로 찾아 왔다고 했어야 되는 말이다.

특히, 유의할 것이 있다.
헤롯왕이 2살 이하 사내 아이들을 도륙시켰다는 말은 이 사건이 적어도 2년에 걸친 사건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더 더욱 동박박사들은 여행지 베들레헴이 아닌 예수의 고향인 나사렛으로 경배를 왔어야 된다.
호적을 하기 위한 여행이 1~2년 씩 걸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6) 또, 동방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으며 따라왔다고 한다.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서울에서 머리 위에 떠 있는 별은 대전이나 부산에서도 머리 위에 떠 있는 별이 될 것이다.
별이 머문 곳에서 예수가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예수가 태어난 집을 찾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별이 낮게 떠다닐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변명하는 예수쟁이가 없으란 법은 없다. 그러나, 낮게 떠 다니는 불을 별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것을 사람들은 <불똥>이라고 하는 것이며, <별>과 <불똥>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7) 헤롯왕은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고 태어난 정적(政敵)을 찾아 내어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좀 더 고도의 추리력이 필요하다.

(a) 만약, 헤롯왕이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믿었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그 예언은 전지전능한 신(神=여호와)의 예언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약한 인간인 헤롯왕이 감히 전지전능하신 신(神)이신 여호와의 아들 예수를 죽일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신을 믿는 사람으로서 신을 죽이겠다고 덤벼드는 그런 간덩이 부은 사람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b) 반면에, 헤롯왕이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믿지 않았다고 하자.
이럴 경우, 금방 태어난 아기가 죽여야 될 정적(政敵)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예수 하나만을 쉽게 찾아 낼 수 있다면, 국왕의 권세로서 어린 생명 하나 쯤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베들레헴과 그 원근 일대의 2살 이하 사내 아이들을 모조리 죽여야 되는 일을 감행한다는 말인가?실성한 미치광이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이라는 신(神=여호와)의 예언을 믿어도 또는 믿지 않아도, 헤롯왕은 예수를 죽여 없애 버릴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신을 거역할 인간이란 없는 것이며, 믿어지지 않는 허무맹랑한 유언 비어 때문에 하나 둘도 아닌, 수 천 수 만의 생명을 무차별로 죽일 그런 망나니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말로라도 그렇게 무수한 사람을 죽이기를 즐기는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이 바로 여호와(또는 예수)라는 악신(惡神)이다.

예수가 태어나던 날에 벌어진 일은 더 많이 있지만, 오늘은 여기에서 줄이기로 한다.
그러나, 예수가 태어나던 날 벌어졌다는 사건들은 어느 한 가지도 허구(虛構=거짓, 가짜) 아닌 것이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와 여호와의 얘기는 한 가지도 빠짐 없이 허구(虛構)이다.

따라서, 예수교의 모든 것은 허구(虛構=거짓, 가짜) 위에 세워진 마귀 소굴이요 혹세무민 집단일 뿐이다.
제삼자 2020-12-26 (토) 13:20
[종교 개혁인가? 예수교 개혁인가?]


**(1) 역사(특히 서양사) 교과서의 목차를 죽 훑어 보면 거기에는 <종교 개혁>이란 것이 반드시 끼어 있다.
이 게 또 눈에 거슬리는 이상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어째서 <종교 개혁>이란 말인가? <예수교 개혁>이 어째서 <종교 개혁>이란 말인가?
인류 역사 속에 종교가 예수교 뿐이던가? 그런데, 어째서 <예수교 개혁> 사건을 <종교 개혁>이라 명명하는가?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이 매국노 또는 매혼노가 아니라면 예수교의 사건을 <종교 개혁>이라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반드시 <예수교 개혁>이라고 기술해야 옳다.
서양 사람들이 자기네 종교의 개혁 사건을 <종교 개혁>이라고 했다하여 우리 한국 사람들까지 그렇게 표기해서야 되겠는가?

서양의 신앙교인 예수교는 오직 자기네 것만 있을 뿐, 타(他)를 조금도 용납하지 못하는 무서운 유일신교이다.
이런 사고 방식이 바로 <예수교 개혁>을 <종교 개혁>이라고 말하게 되고, 여호와를 하나님(하느님)이라 부르고, 바이블을 <성경>이라 하고, 예수교를 <기독교>라 부르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첨벙덤벙(엄벙덤벙) 정신 없이 따라 다니는 얼빠진 자들이 바로 한국의 예수쟁이들이다.

예수교의 교리책은 <성경(聖經)>이 아니며, 예수교의 신(神)은 하나님(하느님)이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바이블>이라고 말해져야 하며, <여호와> 또는 <야훼>라고 불려져야 옳다.
꼭 <성경>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싶으면 <예수교의 성경>이라고 해야 하고, 또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싶으면 <예수교의 하나님>이라고 해야 된다.

사실은 <예수교의 하나님>이란 표현도 예수교가 써서는 안 되는 말이다. 
왜냐 하면,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妄靈=말이나 행동이 정상에서 벗어남)되이 일컫지 말라."는 여호와의 엄명을 모르는가?
Washingtron을 <워싱톤>이라 불러야지 <서울>이라고 명명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워신턴>을 구태여 서울이란 명칭을 빌어 쓰고 싶다면 <미국의 서울>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보통명사와 고유명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알아 들을 수 없겠지?)

예수교의 역사적 사건도 두리뭉실 <종교 개혁>이라고 표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예수교의 개혁>이라고 말해져야 되는 것이다.
예수교는 인류 역사 속의 무수히 많은 종교들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예수교의 뿌리는 고대 미개시대에 사막벌판을 배회하며 노략질로 살아가던 히브리 족속의 신앙교일 뿐이다. 예수교는 종교라고도 할 수 없는 <신앙교>이다.

따라서 이후, 예수교의 교리책을 <성경>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나, 예수교의 역사적 사건을 단순히 <종교 개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매국노 또는 매혼노라고 지탄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참고;
아직도 이 게시판에는 예수교를 <기독교>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기독교란 Christ(그리스도 즉 구세주)교를 중국식 또는 한국식으로 표기한 말이다. 그렇다면 아직도 예수교를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교라고 인정한다는 말인가?
<종교 개혁>이 아니라 <예수교 개혁>이라 해야 하듯, <기독교>가 아니라 <예수교>라 해야 함도 당연한 결론이다.


**(2) 여기에서 <종교 개혁>이 아닌 <예수교 개혁>을 거론하게 됨은 제삼자(필자)가 이번 보름 동안의 여행에서 Amish(예수교의 한 종파)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동네를 들러 이모저모를 살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Amish>란 17세기 말 스위스의 <예수교 개혁가> Jakob Ammann(야코프 암만)이 창시한 예수교의 한 분파 또는 그 신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Amish>는 독일을 거쳐 마침내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자리를 잡게 된 예수교의 한 분파이다.

주로 미국의 Pennsylvania 주 쪽에 <Amish>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알고는 있었지만 그들을 만나 볼 기회는 갖지를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의 여행에서 그들의 생활 모습을 조금 쯤 엿볼 수가 있게 되었다.
이번 여행 코스에는 Ohio 주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곳에도 <Amish>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동네가 있었던 것이다.

세상을 등지고 깊은 산 속에 모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국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지리산 속에 모여 살고 있는 청학동 사람들이 바로 Amish와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
그들 중 어느 젊은 청년 하나가 상투를 틀고 갓을 쓴 모습으로 서울의 일반 대학에 진학하여 화제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마찬 가지로, 예수교의 한 분파인 <Amish>들도 세상의 문명을 배척하고 그 대신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려고 애쓰는 듯했다.
예수교에도 순기능(順機能=좋은 방향으로 작용하는 기능)이란 것이 있는 것이라면, 이 <Amish>들의 모습이 바로 그 순기능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Amish>들은 과학 문명의 산물인 전기와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으며 전화도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은 그들만의 특수학교를 다닐 뿐 일반 학교(교육기관)에는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먹고 살기 위하여 바깥 세상에서 직업을 찾지도 않는다고 했다.
예수교는 그 본질상 과학 문명을 철저하게 거부해야 옳다. 따라서, 예수쟁이들은 위의 <Amish>와 같은 생활을 해야 될 것이다.
그래야만 그것이 진짜 예수쟁이의 모습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예수쟁이들의 모습에서 진짜 예수쟁이를 찾아 낼 수가 있던가?

<Amish> 중에는 간혹 바깥 세상의 학교로 진학을 하기도 하고 직업을 찾아 나서는 수도 있는데, 그럴 경우 그 사람은 다시는 그 <Amish> 마을로 돌아 올 수가 없다고 한다.

이번에 제삼자(필자)가 만나 본 <Amish>들의 대부분은 농업으로, 그리고 일부는 식탁, 책장, 문짝, 의자 등등의 가구들을 제작하며 그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제품들은 일반 시중의 상품들보다 재료도 좋은 것을 사용하여 멋지게 생산해 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값은 일반 시중의 가격보다 훨씬 저렴했다.

그러나, <Amish>들의 생활은 극도의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Amish>들이 살고 있는 집(동네)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는 모두가 비포장 도로였다.
미국 생활 몇 십 년만에 처음으로 경험하는 비포장 도로 여행을 즐길 수가(?) 있었다.
여기에서는 글이 길어짐을 막기 위하여 <Amish>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기로 한다. 그러나, 꼭 짚고 넘어가야 될 이야기가 있다.

<Amish>들은 과학 문명을 배척하여 그것의 혜택도 거부한다고 했다. 따라서, 전기와 전화도 이용하지 않으며 자동차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은 남의 전화와 자동차를 이용해서 연락도 하고, 필요한 것들을 운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주문 받은 물건을 완성한 다음 그 제품을 배달할 때는 남의 자동차를 빌려서 한다고 했다. 헐! 아니, 대박!
독자들이여! 설명이 더 필요한가?

예수교는 그 교리대로 고집을 부려도 <악마 소굴>에서 벗어 날 수가 없으며, <개혁>을 하면 더욱 괴상한 모습으로 바뀌어 아예 예수교가 아닌 <사기꾼 집단>이 되고 만다. 이것이 예수교의 본질이다.
이 모든 사실은 <바이블>과 <예수교 역사>와 현재의 <교회의 형편> 그리고 <예수쟁이들의 모습>이 명명백백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3)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면서 실망(?)하다.

남산 위에서 서울역 청사를 내려다 보면 성냥갑보다도 작게 보인다.
서울역으로 드나드는 기차(열차)는 성냥 개피만하게 보이기도 한다.

이 지구에는 지평선(地平線)과 수평선(水平線)이란 것이 있다.
요새는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운평선(雲平線)(?)이란 것도 볼 수 있다.

미국 일리노이 주에 샴페인(Champaign=땅이 평평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함)이라는 조그만 도시가 있다. 인구가 겨우 10만이 조금 넘는 조그만 마을(?)이다.
여기에 명문 일리노이 주립 대학교(University of Illinois)가 자리잡고 있다.
이 곳 샴페인에서 동서남북 어느 쪽으로든 10시간 이상 고속도로를 달려도 낮은 산조차도 볼 수 없는 지평선만 보게 된다. 땅이 어찌나 평평한지 높낮이(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가 겨우 12feet(약 3.6m) 밖에 안 된다고 한다.

이런 미국의 일리노이 주를 출발하여 미시간 주를 거쳐 국경을 넘어 캐나다의 Ontario 주 쪽으로 한 없이 펼쳐지는 지평선만을 보며 질주 또 질주하는 통쾌한 여정이 이번의 여행이었다.
미국의 (1)일리노이 주--->(2)미시간 주--->캐나다의 (3)Ontario 주---> 다시 미국의 (4)뉴욕 주---> (5)펜실바니아 주---> (6)오하이오 주---> (7)인디애나 주--> 그리고 다시 (8)일리노이 주. 

이들 중 가장 작은 주(실제로는 국가임)라고 하여도 남한만하고, 큰 것은 한반도의 2배 이상되는 8개의 주를 일주했지만 산(맥) 하나 없는 지평선만 보면서 달리고 또 달리는 그래서 가슴 속이 툭 터지는 통쾌(痛快)한 여행이었다.

어떤 사람은 미국이 50개의 주로 이루어진 나라라고 알고 있다.
이 때, 주(州)를 우리 한국의 경기도, 강원도 같은 행정구역 쯤으로 오해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미국은 50개의 나라가 뭉쳐진 합중국(合衆國=United States)이다.

제삼자(필자)의 가족은 거의 20여 년 전 나이아가라 폭포를 미국 쪽에서 구경했었는데, 이번에는 캐나다 쪽에서 보기 위하여 떠난 여행이기도 했다.
20여 년 전,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면서 제삼자(필자)는 몇 가지 두려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었다.
그 중 하나, 저 거대한 나이아가라 폭포가 저렇게 세차게 강 바닥을 침식해 가면 머지 않아 미대륙 전체가 모두 없어지지 않을까?
지구의 육지를 모두 바다 속으로 밀어 넣으면 지구 전체가 바다물로 덮인다고 하지 않던가?

나이아가라 폭포는 제삼자(필자)의 눈에 그렇게 두려울 정도의 거대함 자체였었다.
배(Maid of the Mist)를 타고 폭포 바로 밑에까지 가서 볼 때는 내 생애 최대의 두려움을 경험하는 기분이었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바로 곁에서 보면 그렇게 엄청난 위력이었던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제삼자(필자) 일행은 나이아가라 폭포가 정면으로 보이는 호텔(Hilton) 22층 방에다 여정을 풀었다.
호텔에서 폭포까지는 눈 짐작으로 800m 내지 1,000m 쯤 되어 보였다. 그런데, 이 무슨 변괴인가?
미국 쪽 폭포는 한 뼘 정도로 보이고, 캐나다 쪽 폭포는 두 뼘 정도가 될까 말까? 폭포의 높이는 가운데 손가락 한 마디 쯤 되어 보이는 게 아닌가!

나이아가라 폭포 중 미국 쪽의 것은 그 높이가 56m, 폭이 335m라고 한다. 그리고, 캐나다 쪽의 것은 그 높이가 54m이고 폭이 610m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을 1,000쯤 떨어진 호텔 22층 높이에서 볼 때, 겨우 한 뼘 내지 두 뼘 정도요 손가락 한 마디 될까 말까였을 뿐이었다.
저 폭포가 아무리 열심히 침식 작용을 하더라도 미대륙을 바다 밑으로 밀어 넣으려면 영원한 시간을 주어도 불가능 또 불가능일 것이다.

호텔의 동서남북(360도)으로 뚫린 창문을 통하여 보이는 까마득한 지평선!
끝 없이 펼쳐지는 거대한 대륙의 까마득한 지평선 속에 파묻힌 나이아가라 폭포, 그것은 어린 아이 장난감도 못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배를 타고 폭포 밑에까지 접근했을 때도 시시하기만  했다.

사람은 자기 손으로 대궐이나 신전(神殿)을 웅장하게 지어 놓고는 그 속에 들어가서 그 거대함에 눌리어 종 노릇하기를 자처하게 된다.
나이아가라 폭포나 에베레스트산의 위력에 눌리어 신(神)을 찾아(만들어 놓고) 종 노릇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만 멀리서 보면, 대궐, 신전 그리고 나이아가라 폭포나 에베레스트산 따위는 어린 아이 장나감도 못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니, 지구를 통째로 수 백 수 천 또는 수 만 km 떨어진 곳에서 보면 그것은 조그만 공일 뿐이다. 전지전능한 신(神)이 존재한다면 이런 장난감을 만들어 놓고 장난이나 하고 있을까?


**(4) 놀면서 거져 먹고 사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을 가지게 되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뭉클했던 것은 미시간 주 Detroit의 <헨리 포드 박물관>에서 였다.
여기에는 자동차는 물론 기차, 비행기, 자전거, 각종 동력 장치, 주택, 가구, 의복, 그릇, 각종 기계 그리고 물이나 기름을 퍼올리는 각종 펌프 등등 과학 문명의 발달사가 고스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현대 과학 문명을 이루기 위해서 거쳐야 했던 모든 과정을 빠짐 없이 밟아 온 미국의 위대함이 여기에 모두 다 모여 있는 듯했다.

지름(직경)이 3~5m 쯤 되어 보이는 거대하고 육중한 쇠바퀴(관성바퀴)가 달린 각종 기계 앞에서는 그 위압감에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현대 과학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지구 위의 많은 나라들 중 미국처럼 모든 과정을 거친 나라가 몇이나 있을까?
우리 한국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나라들이 고난의 중간 과정은 생략한 채 초현대 과학 문명의 최종 열매만을 향유하는 것은 아닐지?

콜럼버스 달걀이라고 했던가?
이미 누군가의 피눈물 나는 수고로 이루어 놓은 열매(과학 문명)들은 손쉽게 배울 수도 있고, 심지어 몰래 훔쳐 올 수도 있는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하기사, 남의 발명(특허)품을 도용(모방)하여 피눈물로 수고한 주인보다 더욱 신나게 살아가는 날강도들이 즐비한 세상이다.
특히, 한국의 예수교는 한국 민족 신(神)의 명칭인 하나님(하느님)을 훔쳐다가 잘도 써먹고 있다.

마침내,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 내는 결과를 초래했다고나 할까?
수습 방법이 없을 정도로 민족의 미풍 양속과 인간 원형(정신)이 모조리 파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몇 년 전의 회상글이었다. 세월이 너무나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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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삼자 20/09/1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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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허구(虛構=거짓 또는 가짜) 주례사와 혼인식]서양에서는 예수교의 목사(또는 신부)들이 혼인식 주례를 많이 하고 있다.(더러는 법조계의 판사나 여객선의 선…
제삼자 20/09/13 1111
740
#7[예수교는 자력신앙인가? 타력신앙인가?]* 자력 신앙(自力信仰)--자기의 힘만으로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하는 신앙.  타력 신앙(他力信仰)--남(…
제삼자 20/09/01 985
739
#6[방역 수칙에 어깃장과 심술을 부릴 수 있는 뒷배경]우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 몇 구절을 보기로 하자.(다음의 바이블 내…
제삼자 20/08/18 944
738
#5["예수쟁이에게 미혹(迷惑)되지 말라."--예수]* 미혹(迷惑)--마음이 흐려지도록 무엇에 홀림.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자.[…
제삼자 20/08/08 786
737
#4[예수 일당과 여신도들]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자.**[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여호와의 나라를 반…
제삼자 20/08/06 836
736
#3[<코로나19>와 예수교의 교묘한 심술(心술)]** 심술(心術)--짓궂게 남을 괴롭히거나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는 못된 마음.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3…
제삼자 20/07/20 895
735
#2[사기꾼 세례요한과 예수, 그리고 그 후예들]   "예수교의 신(神) 여호와는 세상(인류)을 구원하기 위하여 구세주를 보내기로 되어 있었다."고…
제삼자 20/07/12 922
734
#1[예수의 산상 설교(수훈)]-대박!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자.[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
제삼자 20/07/10 904
733
*62[예수교 신의 개망신 사례(事例) 몇 가지]** 개망신--아주 큰 망신.어느 재벌 총수의 자식이 반지하의 허름한 사글셋방에 살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면, 그 형…
제삼자 20/05/14 1877
732
*61[예수교의 신(神)은 사이코패스(Psychopath)]사이코패스(Psychopath)--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사이코패스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
제삼자 20/04/22 2000
731
[천지 창조]--횡설수설!** 횡설수설--조리가 없이 이것저것 되는대로 지껄임.예수교의 전지전능하신 신(神) 여호와께서 천지를 창조하는데는 6일이 걸렸다고 한…
제삼자 19/12/28 2924
730
*59[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민족]히브리(이스라엘) 족속은 여호와(예수교의 주신)가 선택하여 특별히 사랑을 베풀며 아끼는 백성이라고 한다. 좋겠다.…
제삼자 19/11/06 2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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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반기련과 1,000만인 서명 운동의 위력]반기련이 <1,000만인 서명 운동>을 시작한 지 어언 10년하고도 2년 여의 세월이 더 흐른 것 같다.그런데, 1,000…
제삼자 19/04/25 4326
728
*57[여호와(=예수)와 맞장뜨는 똘마니 마귀들]* 맞장뜨다--우열을 가리기 위해 일대일로 싸우다. (누가? 예수교 신과 마귀가?)   마귀(satan)--악(惡)…
제삼자 19/04/09 3754
727
*56[[예수와 여호와는 어떤 관계일까?]예수교에서는 예수를 여호와의 아들이라고 가르친다. 과연, 그럴까? 우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
제삼자 19/01/27 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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