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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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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다리를 건너서(1)
글쓴이 : 생각하는나무  (124.♡.47.122) 날짜 : 2013-05-05 (일) 00:06 조회 : 3142 추천 : 3 비추천 : 0

고립된 섬에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그 섬에서 모든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었기에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에 대해선 알지를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 그에게 위기가 닥쳐왔다. 어느 날 갑자기 먹구름이 일면서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얼마 안가 그쳤을 터이지만 폭우는 몇 일이고 계속하여 쏟아졌고 결국에는 물이 불어나 섬을 삼킬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남자는 결국 섬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으나 섬에서 육지로 갈 배를 준비하지 못한 관계로 생명이 위태로웠다. 계속하여 쏟아지는 빗 줄기를 원망 섞인 눈 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거친 물살과 함께 위에서 무엇인가 남자가 있는 곳으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남자가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한 척의 작은 카누였다. 아마도 누군가가 섬에 숨겨놓았던 것이 물살에 떠밀려 내려온 듯 했다. 남자는 그 카누를 타고 힘들게 육지로 몸을 피할 수 있었기에 무사히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가 있었다. _?xml_: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섬에 도착한 남자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카누가 너무 고맙기에 그 카누를 자신의 머리에 이고 다녔다. 하루가 아니고 계속하여 머리에 카누를 이고 다니니 마을 사람들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젊은이 왜 그 카누를 머리에 계속하여 이고 다니는지 그 연유를 말해주겠나?”

이에 대해 남자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제가 홍수로 오도가도 못하고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이 카누가 저를 살렸습니다. 그러기에 이 카누는 저의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저는 이 카누를 계속하여 머리에 이고 다니는 것입니다.”

남자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남자는 그 후로도 계속하여 카누를 머리에 이고 다니고 죽음의 순간까지 그 카누를 버리지 않았다. 그렇게 남자는 그 카누와 같이 일생을 같이 한 것이다.

종교의 다리를 건너서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전에 나는 이 이야기를 서두에 놓았다. 내가 왜 이야기를 서두에 놓았는지에 대해 현명한 분들은 아마도 그 이유를 충분히 눈치 채 셨을 것이다. 그렇다. 범람한 강물은 세상을 뜻하고 카누는 세상을 헤쳐나가는 그 무엇이었다는 것을 충분히 간파했을 것이다. 그 무엇은 종교가 될 수도 있고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어떤 가치관일 수도 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엄청난 난관에 부딪치며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있다. 누구에게도 열외는 없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건강한 자든 병든 자든 누구도 난관에 부딪치며 살아가게 될 세상은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고달픈 현실로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범람하는 홍수는 바로 세상을 표현하는 너무도 적합한 용어가 아닐 수 없다.

이제부터 나는 이 범람하는 홍수로 인해 위기에 빠진 나를 구해줄 카누에 대해 논할 것이다. 그러나 혼동하지 말 것은 그 카누는 누구의 카누가 아닌 나 자신의 카누라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 동의하지 않음을 나는 탓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람마다 생각하는 주관이 다 틀리므로 동의할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논리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므로 동의를 필요치 않는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나는 부처와 예수 그리고 공자 맹자 노자 등 많은 스승님 들이 하셨던 몇몇의 말들을 나열할 것이다. 나는 그들을 무슨 신이나 메시아의 반열에 올려놓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이 지루한 작업은 신을 부정하는 무신론적 관념으로 흐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그들을 평범한 스승으로 여길 뿐이다. 위대한 스승이 아닌 평범한 스승으로 말이다. 위대한 스승으로 그 분들을 반열에 오르게 하면 나의 작업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언급할 터이지만 내가 왜 그들을 평범한 스승으로 여기는지에 대한 나만의 논리가 있을 것이다. 물론 지극히 나만의 개인적인 주관적 논리이지만 말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숱한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여기에서의 난관은 물질적 난관뿐만이 아닌 정신적 난관도 포함한다. 아무리 물질이 많은 자라도 이 난관을 피해갈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는 더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물질적 풍요가 난관을 피해가게 할 수는 없음을 이미 이천오백 년 전에 싯타르타는 간파했다. 싯타르타가 출가를 하려 하자 그의 아버지인 아놋슛다 왕은 이렇게 말했다 한다.

아들아 이 궁전에는 세상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모든 부귀영화가 있다. 사시사철 너는 궁을 옮겨 다니며 네가 원하는 생활을 할 수 있다. 네가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명령만 하면 너의 하인들이 너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줄 것이다. 네가 여자를 원하면 또한 그리 될 것이다. 너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혜택이 있다. 어찌하여 이런 궁을 두고 출가를 하려는가?”

이에 싯타르타가 아놋슛다 왕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한다.

아버지 저도 그런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 동안 저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세상의 그 누구도 누리지 못하는 모든 영화를 누리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뭔가가 부족했습니다. 그 부족함은 정신적 빈곤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그 빈곤은 어찌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여자들을 주위에 두고 있어도 그 빈곤만큼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그 빈곤함은 세상의 부귀영화로는 절대로 채워지지 않음을 저는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이 빈곤함을 채우지 못한다면 제가 사는 이 세상은 무덤과 같습니다.”

싯타르타의 출가를 아놋슛다 왕은 막을 수가 없었다. 싯타르타가 느끼는 그 빈곤함을 왕은 도무지 채워주질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정신적 빈곤에 대한 문제는 인류가 시작된 이래 계속 되어 온 하나의 커다란 숙제였다. 이 빈곤을 해결키 위해 지구상에 수 많은 사상가들이 나타났고 나름의 성과로서 어떤 자는 교조로 추앙 받아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가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어떤 종교의 창시자도 이 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종교는 만들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모든 종교가 그 시대에 널리 퍼져있는 종교적 관념을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분 받아들여 변형된 종교로 조작했다는 것이다. 일례로 불교는 힌두교의 영향을 받았고,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유대교의 영향을 받았다. 공자의 사상인 유교 역시 공자보다 훨씬 전의 탁월한 정치가인 여러 왕의 사상을 규합하여 자신의 정신적 자료로 삼아 생산된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우리가 그들의 작업을 과소평가 할 수는 없는 것이 그 들의 작업은 나름대로 엄청난 역사의 획을 긋는 중대한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종교로 인한 심심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요 근래에 상습 성추행으로 교회에서 추방된 J목사가 다른 곳에 교회를 내고 성업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헛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 자가 새롭게 자신이 새운 교회에서 내뱉은 말이다.

다윗 왕의 심정을 저는 알겠습니다. 제가 일을 당하고 보니 다윗 왕의 심정이 어떤지 진짜 알 수 있었습니다. 회개를 왜 공개적으로 해야 합니까? 회개는 하나님에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대 왜 나에게 공개적으로 회개를 하라는 것입니까?”

성추행을 당한 여성들에게는 아무런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단 말인가? 그저 그가 믿는 신에게 용서를 구하면 다 해결된다는 그런 말인가? 도대체 그런 자를 목사로 믿고 따르는 그들이 말하는 성도들이 참으로 불쌍할 뿐이다. 지금도 어떤 곳에서는 이런 일이 아니 이보다 더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목사들이 간통을 하면서 제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누구일까. 바로 그 유명한 예수의 족보에 올라있는 다윗 왕이다. 밧세바라는 여자를 겁탈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을 전쟁터로 몰아붙여 죽게 한 그 위대한 다윗 왕 말이다. 목사들이 비도덕적인 행위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말하는 성경에 들어있는 그 자가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위대한 그들이 말하는 성경인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이 세계의 움직임을 시시각각 전해주고 있는 시대이다.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났다 하면 얼마 안가 그 사실이 인터넷을 통하여 세계 곳곳으로 알려진다. 그 인터넷을 통하여 우리는 전에는 몰랐던 금기 시 되었던 종교에 대한 많은 의문들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사실 통신이 발달되지 않은 전에는 종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습득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그래서 누가 사기를 쳐도 그 것을 검증할 방법이 일반 사람들에게는 힘에 부쳤다.

이제는 모든 지식의 길이 개방되었다.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인터넷을 통하여 또는 책을 통하여 많은 사상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모든 움직임을 우리는 공개 되어 진 정보로 알 수 있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정보의 통로를 통하여 나만의 주관적 의견을 개진할 것이고 아마도 나의 이런 작업으로 인하여 누군가가 그것이 한 사람이 되어도 혹시라도 종교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나는 그 것으로 나의 노력에 대한 위안을 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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