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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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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천부교(신앙촌) 창시자 박태선(펌)
글쓴이 : 리크  (112.♡.134.92) 날짜 : 2014-03-23 (일) 08:52 조회 : 4153 추천 : 1 비추천 : 0

천부교(신앙촌) 창시자 박태선은 6.25 동란 이후 전국을 돌면서 엄청난 기독교 부흥회를 주관해서 한 때는 박태선 장로의 천부교(신앙촌) 신자가 180만-200만명으로 추산될 정도로 교세가 확장되었습니다.

사실상 오늘날 기독교가 이토록 커진 것은 박태선 장로의 수없는 전국 부흥회가 사람들을 구름떼 같이 몰고 오고, 또 기독교를 믿어야만 천당간다고 선전했다가 후에는 자신을 믿어야 구원받는다, 자신은 감람나무(올리브나무)이다 라는 등 카리스마적 설교로 기독교인을 증가시켰던 것에 그 원인 중 하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박태선 장로는 자기 자식조차 제대로 사람을 만들지 못해서 당시 7공자(七公子) 사건으로 다른 부잣잡 자식들과 온갖 계집질과 주지육림과 범법행위 등으로 기소되어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1990년 2월 7일 죽지 않는다고 하던 박태선 장로가 사망했고, 천부교는 급격한 몰락지경에 달했으며, 180만-200만이었다고 하던 신도들은 4천명 이하로 줄었다고도 합니다.

세상에는 자기가 예수의 아들이라느니, 천사로부터 성령을 받았다느니 하면서 사기치는 목사들이 너무 너무 많습니다. 지금도 40여명의 재림예수가 한국에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제 세상을 속이는 목사들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세상을 속이는 목사들이 빨리 죽어서 박태선의 천부교처럼 몰락이 찾아와야 합니다.

다음의 글은 어떤 목사가 “타락한 천부교(신앙촌) 창시자 박태선”에 대해서 쓴 글인데, 일부만 펌했습니다.

http://www.dongil.or.kr/board/bbs/board.php?bo_table=spirit_01&wr_id=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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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천부교(신앙촌) 창시자 박태선

글쓴이 : 박진완 최… 조회 : 2,759

박태선은 1990년 2월 7일 사망했다.

그런데 지금도 기독교의 이단아 타락한 천부교(신앙촌) 창시자

박태선이 신앙촌의 교주로서 추앙받고 있다.

박태선의 새하나님설 선포이후,

천부교(전도관) 내에서는 성경을 가진 사람이 없어져 버렸고

기독교적 색채를 배제한 전도관 교리는 완전히 박태선 우상화로 기울어졌다.

이에 따라 30년간 그를 추종하던 신도들이 속속 이탈하여

86년 7월말 현재 약 4천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후 더욱 줄어들어 박교주가 사망한 현재는

2천명도 되지 않으리라는 추정들이다.


그러나 생명촌두부, 생명촌 생수, 시온그룹과

신앙촌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이단종교에 속아 살고 있으니 개탄을 금할수 없다


박태선의 계통을 이어 발생한 종파가

자그만치 20여개파에 이르러 그들은 대부분이 박태선과

유사한 스타일로 교세를 이끌어가고 있다.

박태선 신앙촌의 해프닝은 박씨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박씨를 그토록 결과적으로 만들어 준 배경은

부패하고 타락한 우리 기성교회의 책임이다.


박씨가 막 출발할 당시 수 많은 목회자들이

그 앞에가서 머리를 숙이고 안수를 받았고, 그를 합리화시켜 주었다.

그러나 그가 이단임이 드러난 뒤 슬그머니 자기만 물러 난채

양떼들을 고스란히 적지에 남겨두고 자신만 돌아섰다.


그 양떼들이 30년간을 속아왔으니 잃어버린 세월,

속아 산 세월을 누가 보상할 수 있으랴!

다시 이런 비극의 해프닝은 없어야 할 교훈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타락한 천부교(신앙촌) 창시자 박태선

연 구 자 : 박 진 완 , 최광 민 , 김 창 수(고신대학 신학과)


목 차

A. 서 론


B. 본 론

1. 창교자 박태선

가.출생과 성장

나.학문과 직업

다.신앙 생활과 종교 활동

라.집회 활동

마.경제 활동

바.탈 예수 그리스도의 노선

사.엄청난 카리스마화


2. 천부교의 교리및 주장

가.동방의 의인

나.이기는 자

다.감람 나무

라.백마 승인

마.구원자

바.심판 주


3. 기 타

( 이슬같은 은혜, 생수, 안찰,

사람이 살아있는 그대로 죽지 않는 세상을 이룬다.)


4. 천부교의 조직및 교세, 최근 현황, 예배

D. 참고 문헌

1. 서 론

한국 동란이 끝나고 전후의 폐허 속에서,

사람들은 절망과 좌절로 인하여 소망을 둘수 없는

극한 상황 하에서 신음하고 있을 무렵,

박태선이라는 사람이 불의 사자라는 탈을 쓰고 혜성처럼 나타났다.


그는 처음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증거하는 예수님의 종으로 밝혔지만,

차츰 세력을 덧입고 인기를 누리자 그를 냉열히 비판하는 기성교회를 반박하였으며,

급기야 탈 그리스도의 노선으로 치달았고,

최종 그는 천부교라는 세력을 발판으로

멸망의 가증한 자리에 앉았다가 끝내 제 갈길로 갔다.


그후 그의 죽음으로 인하여,

천부교는 분열의 양상이 일어났고

천부교의 모든 교리가 거짓으로 판명나게 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그에 (천부교) 대한 비판으로 천부교의 역사적 배경과 조직 및 활동,

교리 및 주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대응책에 관하여 살펴 보고자 한다.


2. 본 론

(1)창교자 박태선

가. 출생과 성장

박태선은, 1917년 평안북도 영변군 구장면 구장리의

가난한 한농가에서 부친 박영진씨와 모친 김헌태씨의 2남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이 부친은 주색으로, 조부로 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탕진했고,

처자식을 돌보지 않았었다.


가정의 불행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자란 그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전철을 되풀이 하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을 했다.

그런던중 그가 9세때, 그의 모친은 부친의 주색으로 인한 신경쇠약으로 사망했고


이때부터 박태선은 어린마음에,

자신은 결코 술을 대지 않으리라는 결심이 자리잡게 되었고

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부요하게 살리라는 욕구심이 키워지게 되었다.

그후 그는 얼마 안되어서 부친 마저 잃게 되었고,

두살위인 형 태국과 동생 태선은 천애 고아가 되어 버렸다.


그뒤 그는 구장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덕천교회 주일학교에 다니면서

부모의 죽음과 성경말씀을 보고, 접하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 학업. 직업

고향에서 소학교를 마친 박태선은,

약간의 여비를 마련해 가지고 무작정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다.

그는 그곳에서 공업학교를 다니면서,

낮에는 우유배달을 하고 신문 팔이를 하면서

밤에는 학교에 나가 공부를 하게 되어,

어떤때는 영양실조로 흑판에 쓴 글씨가 안보일 정도로 고생을 했다.


어떤때는 그나마 직장을 잃고 사흘씩 굶기를 예사로 했으며,

생활고에 견딜수가 없어서 4번이나 자살을 기도까지 했으나

자살하면 지옥간다는 주일학교때의 배움이 생각나서 실천에 옮기지 못했가.

그러나,그가운데서도 그는 종교강연회에는 빠짐없이 따라 다녔다.


그리고 그는 1945년 전쟁말기, 미국이 일본본토 공습때,

귀국하여 서울 아현동에서 공구 및 정밀 기계부품을 만드는 공장을 경영 하였다.


다. 신앙생활과 종교활동

전쟁말기에 귀국하여 해방이 되자.

그는 남대문 교회에 적을 두고, 집사직을 맡아 보았다.

남대문 교회 집사였던 박태선은, 북을 치며 노방전도를 할만큼 열심을 내었고,

공장을 경영 하면서도 새벽기도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또한 45년 5월 중순에 여아의 중병에서의 회생과 함께

신유의 은사를 받았음을 알게 되었고,

45년 10월 11월에는 용문산의 신비주의자 나운몽 장로와 같이

대구, 부산, 서울, 대전 순으로 순회 집회를 가지기도 했다.

그러던중 48년 그의 나이 33세때 남대문 장로교회 이성봉 목사의

부흥집회에서 큰 은혜를 받고 사흘동안 금식기도를 밤낮없이 하나님께 한 끝에

죄의 사함을 받고 뜨거운 불을 체험 했다고 한다.


그후 그는 49년 12월 19일에 창동교회에서, 다른 세사람과 함께 장로직에 임직 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피난을 했는데,

피난중 평택역이 비행기 폭격을 받을때,

특별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체험했고

이때 그는 피가름의 체험과 생명의 은사를 체험 했다고 한다.

(자기 몸의 모든 더러운 죄의 피가 소변을 통해서 빠져 나가고,

성령의 새로운 피가 자기몸에 주입 되었다는 것)


라. 집회 활동 및 망언과 제 1.2차 투옥 사건

1954년을 전후로 해서 경향각지에서 집회를 인도하던 박태선은,

1955년 1월 1일부터 7일까지 서울 무학교회를 필두로 (부흥집회 인도)

서울 남산 집회, 대구, 부산, 한강 백사장 집회를 인도 하면서

서서히 "불의 사자"로 데뷰하게 되었다.


또한 그는 1955년 3월 26일 부터 4월 5일 까지 10일간 남산천막집회에서 자신을 본격적으로 이단으로 몰아넣는 무덤을 파는 집회를 하게 되었으며, 그는 이때 기성 교회와 목회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마귀새끼들이라고 몰아세워 큰물의와 파문을 일으켰고, 이때 거둬들인 헌금과 금반지, 금목걸이는 부대에 담을 정도로 엄청났다.


그는 또 4월 27일부터 5월 6일까지 10일간 영등포 집회를 가졌고, 5월 12일 부터 19일까지 경북 안동집회, 5월 23일부터 5월 31일까지 부산 공설운동장 집회를 갖고 6월에 접어들저 자신이 속해 있던 대한예수교를 탈퇴 한다고 선언하고 칼빈의 예정교리를 뒤엎어 버리고, 칼빈은 지옥 아랫목에 가 있다는 폭탄선언을 하고 7월 1일에는 독자적으로 한국 예수교 부흥협회를 발족 했다.


이렇게 되자 즉시 한국 기독교 연합회(N.C.C.)는 박태선을 6개 항목으로 성토하고 사이비 종교집단으로 규정해 버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태선의 집회는 승승장구하여 55년 7월 4일- 11일까지 한강 백사장 집회, 9월 18일에서 23일 인천동산중학교 앞 광장집회, 9월 30일에서10월 6일 대구 칠성동 천막 집회, 10월 16일에서 22일 부산 초량동 집회, 10월 23일에서 11월 2일 서울 제2운동장 집회, 11월 25일에서 12월 2일에는 국회의원 2명과 경찰국장까지 동원하여 광주 집회를 가졌고, 12월 8일에서 15일에는 전남 순천천막교회집회, 12월 16일에서 24일에는 전남 목포집회


12월 25일에는마포 중앙전도관집회, 56년 1월 12일 인천제 2 전도관 개설, 56년 3월 5일에서 12일에는 경남 마산집회, 3월 4일에서 26일 전북 전주 공설운동장에서 제1차집회를 갖고 제2차로 6월 11일부터 17일까지 전주 북중학교 천막집회에서 집회하다 (이때 전주 신흥고등학교 학생들의 질문공세로 집회는 수라장이 되었다.) 최초로 반대에 부딪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해 9월 6일날 그는 전주전도관을 개설했다. 또한 그는 57년 4월 12일전남 광산군 지산면 지산리에 거주하는 김춘례(여 20세)양에게 자신이 축복한 생수를 강제로먹이다가 질식 사망케 했다. 또한 4월 30일에는자신이 하늘의 권세를 부여 받았다고 선언하고5월 18일에는 성화를 조작하여 마치 자연스럽게찍혔다고 주장했다. 6월에는 자신이 요한게시록에 나오는 감람나무라고 선언하고, 9월1일 소사에 신앙촌을 건설 하겠다고 샜다. 10월 23일에는자신이 "동방의 의인"이라고 선언하고 10월25일 설교시에는 기성교회에는 구원이 없고 전도관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57년 11월10일에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범박리에 15만평규모의 제1신앙촌을 건설했다. 58년 8월 10일에는 자신은 만능이므로 한강물에 손을 넣고 기도만 하면 한강물이 변하여 휘발유가 될것이라고 했으며, 11월2일에는 계시록이 7별의 출현을 예언하고 주님이 재림한다고 선언했으며, 12월21일에는 백색 곰팡이를 조작하여 만나가 내렸다며 선전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58년 12월 16일에는 사기혐의와 공갈, 폭력사주로 구속되었고 59년 1월 10일에 문교부는 전도관을 사교로 단정 규정 지었다. 59년 12월 4일 김세완 판사로 부터 그는 징역 1년6월을 선고 받고 확정이 되었으나, 1960년 3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생일 기념으로, 형기 3개월을 앞당겨 1년 3개월만에 가출옥을 했다. 풀려나온 박태선은 자신이 옥중에서 600여건을 발명했는데, 그중 한가지만으로도 전신도를 먹여 살릴수 있다고 허풍을 떨었고, 8월28일에는 모든 마귀를 무저갱에 쓸어 넣는다고 설교를 했다.

1960년 12월6일 동아일보 3면에서 박태선의 성화사진은 가짜이며, 신앙촌 사진사 김세연으로 부터 조작했음을 보도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격분한 신앙촌 신도들이 신문사로 몰려와 강제 점거와 기물을 파손하고, 윤전기를 파괴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당시 주동자였던 권기대씨는 나중 증언하기를 뒤에서 박태선이가 돈도 제공하며, 동아일보 습격명령을까지 내렸다고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702명의 구속난동 신도중 남자 197명 여자 135명 도합 332명만 구속기소하고, 370명은 불구속 기소 하기로 사건을 매듭 지었음)

또한 그는 61년 2월 10일 부정선고 관련자 처벌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 되었고, 결국 그는 1년 징역을 살고 1962년 1월10일에 형기를 마치고 나왔다. 그는 형무소에서 풀려나자 62년 7월 20일에 경기도 양주군 와부읍 덕소리 한강변에 제2신앙촌을 건설하기 시작 했다. 그러면서 그는, 2차례의 투옥 수난은 악한 사탄들에 의해 겪은 의인의 수난이었다고 변명하기도 했다.

1963년초 또 그는 덕소 제2신앙촌 제강공장에서 오토바이를 생산하여 집집마다 한대씩 나눠주고, 피아노와 전축도 한대씩 분배할 계획이라고 했으나, 끝내 실현 시키지 못했다. 또한 그는 1970년 4월부터 경남 양산군 기장면 죽성리 해변가에 제3신앙촌 건립을 추진하여 71년 8월에 건설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제1제2신앙촌은 폐허화가 되었음) 1973년 10월 7일 박태선은 죽은부인의 뒤를 이어 자신의 비서였던, 딸과 같은 최옥순과 재혼했다. 또한 1980년 신년 첫 집회시 예수는 99%이상이 죄덩어리요, 신구약성경 98%가 거짓말이요 2%만 진짜이며, 하나님은 철장속에 가두어 버렸다며, 새 하나님이 이땅에 와야하는데, 그분이 바로 자기자신이라고 하고, 자기 나이가 금년에 5798세라고 했다. (그러나, 그후 그는 자기 나이가 1조5천여세 라고 바꾸어 주장했다.)

<이하 생략>





아가놈 (210.♡.83.39) 2017-07-19 (수) 17:06
처음엔 성령에 속하였지만 사탄과 같이 교만하여져 하나님을 대적한 결과가 거짓신을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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